should be more?

잡기 2011. 6. 2. 01:12
eBay에서 여러 종류의 GPS Jammer를 구경했다. GPS 뿐만 아니라 CDMA, wifi도 함께 재밍하는 디바이스도 있었다. 생각을 살짝 바꾸면 쓸모가 있어 보였다. 착하게 살자.

eBay와 국내 옥션에서 비슷한 아이템을 판매하더라도(우송료를 포함하더라도) 가격 차이가 커서 최근에는 eBay에서 물건을 자주 구입했다. 가격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중국에서 생산된 물건을 미국 등지에서 대량 판매하기 때문이지 싶다. 물건은 주로 중국 어딘가에서 배송되었다. 그런데 근 한 달 동안의 구매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가격은 모두 International shipping cost 포함).

  • 40Kg Hanging Weight Scale: 4/27 6.35$에 구입. ok

  • 15pcs Screwdriver Torx Tool Set: 5/6 2.48$에 구입. ok

  • Moisture pH Light Meter : 5/30 3.53$에 구입. ok

  • Plantronics BackBeat 903 Bluetooth Headeset : 4/18 65$에 구입, 5/7 입수, 5/10 클레임 이슈, 5/19 반품, 언제 오려나...

  • Garmin eTrex Vista HCx Handlebar Bike Mount: 5/7 25.9$에 구입. 5/17 입수. 5/18 클레임 이슈. 5/30 refund 받음.

저렴한 제품들, 각각 6.35$, 2.48$, 3.53$ 에 구입한 제품들은 가격 경쟁력이 우수했다. 이런 것들은 충동구매였다. 사고 나서 사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합리화하는 웃기지도 않는 수작질을... 걸이저울은 자전거 무게 다는데 한 번 써 봤다 -- 용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계량은 언제나 유익하니까. 별 드라이버는 아직 분해할 만한 전자기기가 없어 구석에 쳐박혔다.


블투 헤드셋은 중고가 왔는데, 1. 왼쪽 푸시 버튼이 눌리지 않았고, 2. 완전 충전 후 재생 시간이 보증 스펙보다 짧고, 3. 어댑터에 쥐가 파먹은 자국과 인두질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refurbished인 건 알지만(90% newer 라고 선전) 제품이 참 무성의해서 반품 요청했다. 반송료는 구매자 부담인데 우체국 EMS를 이용, 홍콩에 보내는데 14000원이 들었다.

배송에 14일 가량 걸리니 제품 구입 및 debate에 한 달을 소비한 셈. 더 비싸더라도 차라리 국내에서 판매되는 10만원 가량 하는 새 제품을 사는게 나았을 것 같다. 몇 푼 아끼려다 지뢰 밟은 꼴.


가민 GPS 자전거 마운트는 제품이 잘못 왔고, 맞는 제품으로 교환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판매자와 몇 차례 email 상담을 주고 받은 후 case open 하고 escalating 하니 그제서야 full refund를 해줬다. eBay customer service와 seller와 얘기하느라 2주를 기다렸다. 


반품에 관해선 말이 없어 25$ 짜리를 날로 먹은 셈. 하지만 원래 안 맞는 제품이라 써먹을 구석이... GPSr의 자전거 마운트 클립이 부러진 후 이전 케이스의 맞지 않는 부분을 갈아내어 전지를 교환한 다음엔 케이스에 테잎을 감아 사용했다. 마운트 클립만 다른 자전거에 설치해 두고 GPSr을 이 자전거, 저 자전거로 옮길 때 사용해야겠다.

구질구질한 독서생활. 재미없고 도움이 안되는 책들.

블라인드 사이트: 오랫만에 스릴감을 느끼며 읽은 SF. 안 그래도 이런 SF를 어떻게 분류할까 하다가 심연 위의 불꽃에서 착안해 high speed SF라고 불러주기로 했다. SF에 등장하는 첨단기술은 어느 정도 장르 내부에 고착되었다. 하지만 SF 독자 사이에서도 장르에서 유통되는 과학기술을 소화 흡수하는 속도에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큰 강이 있고 폭이 좁고 속도가 빨라 쉽게 붕괴되는 지류가 있다. 심금을 울리는 서사와 인문적 사유에 천착, 의미의 가소성 따위, 환유와 은유를 선호하며 SF의 위대한(?) 사회 실험에 집착하는 것들은 '예의상' 큰 강의 흐름에 해당하는 medium speed, SF 장르 자체가 이미 문화에 내재되거나 융합되었다고 믿고(영화 따위?) 시시한 인간 서사의 불편함 그대로 기계물 판타지스럽게 멍하면서 때때로 지저분한 계몽주의적 시각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천한 것들은 low speed, 이미 산전 수전 다 겪은 21세기 독자를 대상으로 작가가 귀찮은 부연 설명 없이 논문에서나 보는 전문 용어로 떡칠하며 자기 할 얘기를 마음껏 해대는 종류를 high speed라고...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저속은 등신 같아 더 할 말이 없다. 중속은 사유의 칼레도스코프 유람에 가깝다. 그 쪽 방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재미도 없는 말들을 많이 늘어놓았고 독자 속도에 맞춰 최적화되어 인기가 많다. 나야 뭐 SF 세례 요한이 아니라 그쪽을 칭송할 일은 없다. SF의 가치니, 문화적 침습이니, 과학기술과 서사의 화학적 결합 강도니, SF의 참맛 이라느니, 숙고할 가치 따위를 별 재미도 없는 SF를 상대로 열병 걸려 헛소리하듯 늘어놓는 건 영 취향과 동떨어져서...

그저 즐기자면 고속 SF가 장땡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탱글탱글하고 영롱하게 반짝이며 순식간에 지나가서 한눈 팔다가 핸들을 살짝 꺾으면 맥락을 놓친다 -- 독서 경험이 방해된다. 실수를 안 하려면 집중해서 봐야 하고, 집중해서 보려면 문맥을 원액 그대로 그 엑기스를 빨아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아니, 이미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의 변용이 작가의 기교이자 역량이지 싶다. 쓸데없는 얘기를 했군.

"탐사기가 타버렸어." 어맨더가 보고를 했다. "마지막에 불꽃이 튀었지. 꼭 파커 나선하고 부딪히는 것 같았어. 하지만 바람이 너무 쎘다고."
...
"그건..." 어맨더가 입을 열었다가 최종 수치가 '교감'에 뜨자 말을 멈췄다. 11.2 테슬라였다.
...
장축의 길이가 400미터였다.
...
"빠른 것들은 급선회를 하면서 50G의 힘을 받아." 아이작이 지적했다. "고깃덩어리들은 그걸 견딜 수 없지. 그러니까 저건 무인기야."
"고깃덩어리들도 강화할 수 있다." 주카가 말했다.


와아.. 우아...  

"별들은... 따가워." 미셀이 대답했다. "고개를 돌리면 피부 속에서 아주 작은 바늘 뭉치가 물결치면서 굴러다니는 것 같아. 하지만 하나도 안 아파. 따끔할 뿐이지. 전류 같아. 멋지지."

찌릿찌릿 따가운 별들을 본 적이 있다. 딸애가 보고 싶어하면 기회를 주겠다.

나를 묶어두고 있던 개줄이 팽팽해졌고 내 몸은 뒤로 낚아채진 후 허공에서 갑자기 멈췄다. 나는 1,2초 가량 최전선에 서 있었다. 1, 2초 가량 나 자신이, 기록자이며 실험용 쥐이고 오해의 전문가인 시리 키튼이 최전선이었다. 

좌뇌를 들어내고 그 빈자리에 기계를 채워놓은 시리 키튼이 주인공이다. 소설의 서사는 좀 개판이고(작가  말로는 실험이란다) 소설은 찌질하게 끝났다. 역자는 원문 맛을 지대로 보여주겠다며 꽃장식을 아예 안 했다(역자의 고집은 이해가 가지만 몇몇 번역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남들이 무겁다, 되게 무겁다고 '주장하는' 의식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심장 찾겠다고 헤메이는, 손 좀 본 현대판 오즈의 마법사 같았고 칡넝쿨처럼 칭칭 감긴 여러 차원의 대위적 변주는 낯선 해변가의 드라이브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매칭거는 그런 겁쟁이들보다 우월했다(겁쟁이들=핑커, 코흐). 매칭거는 핵심에 곧바로 접근했다. 그가 주장하는 '무의 세계' 가설은 인간이 스스로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현상뿐 아니라 그와 같은 환상 속의 1인칭 서술자의 존재가 왜 특정인식 체계 안에서 창발적인 속성인지를 우선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4인방 가운데 한 사람을 공감각자로 설정하면 멋질 거라고 생각했다. 교차 감각을 느끼는 사람은 이질적인 감각 양식을 지닌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는 데 이점이 있을 거라는 게 이유였다. 그런 다음 '블라인드 사이트'를 끝냈을 때 공감각이 형태 인식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논문이 등장했다. (Beeli, G., et al. 2005. Nature 434:38)


피터 와츠는 심지어 핑커를 겁쟁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다른, 신선한 견해: '의식은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다, 의식은 생존과 진화에 방해가 된다, 의식은 어쩌면 미학 같은 종류의 바이러스, 또는 진화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우왕좌왕의 산물인 것 같다.'

감사의 말(또는 변명) 뒤에는 인용한 논문 리스트가 있었다. 그중 '공감각이 형태 인식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은 한 번 찾아보고 싶어졌다.

블라인드사이트에 관한 평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당연히 휴고, 네뷸러 감은 아니고(이쪽 부류는 스노비시한 중속 SF의 항구적인 정박지이지 싶다) 평들이 별로 라서 샐쭉. alt.sf의 재밌지만 재미가 없다는 편집자의 횡설수설을 들어보면;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 소개된 SF들 중에서 가장 단단한 SF가 아닐까요. 출판사의 무모함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관적 추산이지만) 기껏 300여 명 정도나 온전히 즐길까 말까한 작품을 번역 출간하다니, 거의 자선사업 수준이로군요.

출판사는 자결할 결심으로 자선사업을 했는지 몰라도, SF독자이자 SF작가이기도 한 SF역자가 그간 너저분했던 한국 SF 공동묘지의 정비사업 같은 당연한 무료 사회봉사활동을 한 거라고 믿고 싶다.

댄 시먼즈나, (보다 정교하고 고급스럽지만 대중친화적인 면도 없지 않은) 이언 뱅크스라면 게걸스럽게 달려들어 신나게 읽어 치울 수 있을ㅡ그리고 포만감에 배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을 모던 스페이스오페라를 매끈하게 뽑아냈을 텐데, 그러나 피터 와츠는 불행하게도, 예술이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예술? 아하, 자위행위!! '감사의 말'만 봐도 그렇다. 글에서 묘사된 우주전과 탐사는 심지어 내가 십여년 전에 읽었던 '최근' 우주 활극 SF류에 비해 많이 고전적이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피터 와츠가 고전적라는 것은 댄 시먼스나 이언 뱅크스처럼 우주전에 관해 아는게 별로 없어 시시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분들이 사냥개처럼 수십 마리 쯤 달라붙어도 불필요한 장식과 수사를 생략하고 인간 의식의 본질에 관한 여우사냥 또는 의도적인 외삽을 시도했던 이 소설처럼은 안된다. 왜냐? 아는게 없어서다. 댄 시먼즈나 이언 뱅크스가 잘 하는것은, 우주가 방대하다는 느낌을 텍스트로 찰지고 쫄깃하게 재생해 주는 작가로써의 역량이지 하드SF 특유의 하이테크가 지닌 날카로운 코히런트 빔의 리사쥬 댄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럴꺼면, 서사는 덤이라고 여기지만, 서사도 완벽한 와츠를 보고 싶으면 와츠의 우뇌를 들어내고 댄 시먼즈의 우뇌를 갖다 붙여 머리속에서 바람직한 태풍이 휘몰아치게 하는게 낫지 싶다. 잘 안되면 될 때까지 예술에는 희생이 따른다고 생각하면 되고, 잘 되면 우리는 대뇌를 상호 교환한 대단한 SF 작가 둘을 가지게 된다.

플롯은 뒤죽박죽이고 서술은 지극히 불친절하며, 미지의 외계 생명과의 접촉이라는 매혹적인 주제를 돌리는 엔진인 핵심 서사가 결정적으로 진부한 성장소설!!!!!!입니다.

고속 SF는... 있어주기만 해도 고맙다. 그건 그렇고, SF는 그만큼 진전했는데 SF 독자는 이박사 뽕짝 메들리 같은 서사 타령이나 흥얼거리며 십년 굴린 똥차처럼 중저속으로만 탈탈 굴러가니 시리 키튼 같은 방관자 소시오패스인 내가 다 안타깝다. 혹시 읽다보면 찍어낸 글자가 반짝반짝 하는 것이 안 보이는 건가? 난 보인다. 그리고 외계 생명과의 접촉은 소설에서 지겹게 늘어놓았다. 예: 초반부터 후반까지 내내 진행되는 외계생명과의 전략 게임, 후반부에서는 뱀파이어-인간 사이의 피식/포식을 범우주로 확대한 진화론과 의식의 의미. 만일 와츠가 수사로 이 글을 포장했더라면 간단히 말해, 엿된다.

피터 와츠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한 길을 의연히 걸었고 그 결과, 이 뒤죽박죽 혼합물에는 아마 지금의 우리 장르소설 시장에서라면 결코 두 번 다시 접할 수 없을 기묘한 맛이 숨어 있습니다. 낯설고 이상하고 불편하지만 한 번 맛들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공감. 그게 SF지. 작가의 역량이 걸린 예술적 딸딸이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감동과 흥분이 없는 중저속 딸딸이와, 참된(찰진) 고속 딸딸이. 그 산출물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I Am Number Four. SF라고 하기엔 뭣한 청소년 판타지물. Twilight 유사품 같다. 청소년들이 자가정의하는 coolness가 이런 건가? 똥멋 든 우리 세대와 다를게 없었다. 성장에 부모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는 영혼의 북소리가 새삼스러웠다. 소울아 너는 혼자 자라라. 아빠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

Ishiqiya. 첫 시퀀스부터 어? 왜? 어? 어? 하다가.. 인도에서처럼 자막 없이 끝까지 보니 무슨 얘긴지는 간신히 알아 먹겠다. '인도' '느와르'의 감칠맛이 독특했다. 왠만한 인도 영화보다 음악이 좋았다.

가외로, 칸 나오는 영화는 이제 안 보고 싶다. 캐릭터가 참 지겹다. 이게 벌써 몇십년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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