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le de la Luna

항공권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너무 비싸다.

속이 쓰려서 밥이나 먹어야 겠다고 마음 먹고 이름 모를 식당으로 들어갔다. menu especial dia de la madre라... entrada(전채)로 Huevitos de cordorniz, soup은 Chairo paceno, segundo(main dish)로 arroz chaufa와 ensalada classica, pollo a la naranja, 그리고 고구마 한 조각, postre(후식)으로 mouse de chocolate를 먹었다. 10볼리비아노, 1.2$였다. 먹으면서 울었다. 페루에서 시급히 볼리비아로 넘어 왔어야 했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풀 코스를 2달러가 안되는 돈으로 먹을 수 있나.

점심 시간 무렵에는 사무실들이 문을 닫아 애를 먹었다. 볼리비아의 점심시간이 2시간 가량 되고 여행사나 은행 따위는 12시에 식사를 시작해 3시나 되어야 사무실 문을 꾸역꾸역 열었다. 재개장 시각을 몰랐다. 성수기가 시작되면서 항공권 가격이 오르고 있어 조바심이 났다.

어제까지 640$ 가량 하던 항공권이 오늘은 720$ 정도 되었다. 라 빠스의 중심가 부근의 여행사를 이 잡듯이 뒤졌다. 이틀 동안 안 가본 여행사가 없다. 저렴한 항공권 구매에 관한 몇 가지 방법을 이번에 배웠다. 하지만 하루 차이로 80-90$이 그냥 날아갔다. 망설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통할까 하고.

라 빠스의 여행사들은 할인이 무지막지하게 이루어지는 multi carrier combined ticket에 관해 그다지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아낸 방식은 로이드 아에로 볼리비아노의 산타 크루스->메히꼬시티 티켓과 컨티넨탈이나 델타 또는 유나이티드 에어의 메히꼬시티->로스 앤젤레스 구간 티켓이다. 이 조합이 가장 저렴하고 스톱 수가 적은 방식인데 대개는 직항 노선이나 연결구간 사이에 협약을 맺은 항공사 끼리의 연결편을 제시했다. santa cruz -> miami -> (atlanta) -> los angeles 하는 식으로. 그들이 제시한 티켓 가격은 그래서 1080~1340$ 정도였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 거의 모든 여행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항공권 예약 프로그램은 일부 유명한 구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최적화된 항공권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두번째는 여행사마다 그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숙달도가 달라서 최저 항공권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가 타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를 해주기도 했다. 세번째, 각 여행사가 취급하는 항공권은 특정 항공사로 제한되어 있다. 이를테면 여행사를 고를 때 여행사 윈도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항공사 스티커를 유심히 살펴봐야 발품을 줄일 수가 있다.

내가 제시한 조합보다 여행사가 제시한 티켓이 더 쌀 거라고 믿었다. 그런 일에는 닳고 닳은 사람들일 테니까. 그런데 첫날 열 댓 군데를 돌아봐도 항공권 가격이 108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낙심했다. 그럴 리가 없다. 중남미는 그링고들이 떼거지로 놀러 오는 곳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LAB와 UA를 임의적으로 조합한 티켓 가격을 알려 달라고 했다. 750$ 까지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뒤져 720$까지 떨궜다. 그들이 제시하는 최저선인 1080$에서 무려 360$이나 가격을 떨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속이 쓰리다. 항공권 예매에 관한 보다 세련된 지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라 빠스라는 도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지금처럼 좌충우돌하면서 배우는 식 말고) 70-80$을 더 세이브할 수 있었다. 하루 만에 가격이 올랐다. 이집트에서 항공권을 구할 때 망설이다가 하루 차이로 몇백불 날렸을 때는 욕할 놈이라도 있었지만(부시 십새) 지금은 내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한다.

항공권 예약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상식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 월요일은 다른 주일보다 항공권 가격이 싸다. 최대 100$ 정도 차이가 난다. 두번째, 국적기는 이국기에 비해 구간 요금이 저렴하다. 이를테면 조합 항공권을 구하려 할 때 해당 국가의 국적기를 이용해 트랜짓(트랜스퍼?)을 조합하는 것이 유리하다. 세번째, 최소한 1개월 전에 예매해야 싼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상식이 있지만 버킷 티켓(할인 티켓)은 출발 며칠 전에야 구할 수 있다. 네번째, 여행사가 제시하는 가격만 믿을 것이 아니라 항공사 시간표를 참조하거나 인터넷 항공 티켓 구매 사이트를 참조해 조합 가능한 항공편을 미리 알아두어 여행사에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주 유리하다.

항공권을 구매하기 위해 돌아다닌 시간은 이틀에 불과하지만 항공권 구매에 관해 생각한지는 일주일이 넘었다. LA로 돌아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유우니 투어를 마치고 국경을 넘어 칠레를 종단해 산 티아고에서 LA로 가는 방법, 2. 루레나바께에서 정글 투어를 마치고 브라질로 넘어가 상 파올로나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마이애미를 거쳐 LA로 가는 방법, 3. 볼리비아 여행을 마치고 라 빠스로 돌아와 국제버스를 타고 페루의 리마로 돌아가 LA행 티켓을 구하는 방법(항공권은 500$ 가량). 세 가지 방법 다 장단점이 있다. 일정이 빡빡한 처지라 여행 경로가 방법 따라 워낙 다양하고 무궁무진해서 네 번째 방법을 택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서울-LA 왕복 구간 티켓이 원래대로 6개월 짜리였으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되었다. 그래서 내게 항공권을 사기 쳐서 팔아먹은 탑 항공의 그녀가 다시 생각났다.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돌아가서 종이 비행기 백만개를 접어 그녀의 얼굴에 집어 던질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허접스럽게 생긴 티켓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볼리비아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는 이 티켓에 붙은 세금은 무려 120$ 씩이나 된다. 원래 항공권 가격은 600$ 가량이다. 모험심을 발휘해 산타 크루스에서 하루 정도를 남겨두고 티켓을 구해보는 건데, 그러다가 저렴한 티켓을 구하지 못하면 300$ 가량을 일없이 날리게 되니까 무서워서 시도할 엄두가 안 난다.

이렇게 일이 안 좋게 풀려 나갈 때는 맛좋은 음식을 먹고 기분을 푸는 것이 바람직했다. 멕시코에서부터 간혹 살떼냐를 볼 수 있었다. 중미 스타일의 만두인데 멕시코, 중남미를 지나면서 먹을 때는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허기나 지우려고 길에서 우연히 먹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고국에서 삽질하고 계신 동포 여러분들을 제껴두고 나 혼자 먹고 있으니... 살떼냐 두 개면 배가 찼다. 고작 300원 돈이다. 살떼냐에 여섯 가지 소스를 발라 먹고 마무리로 120원 짜리 오렌지 쥬스를 들이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어젯밤에 바나나를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잠시 딴 생각하는 바람에 바나나 두 뭉치를 가슴에 안게 되었다. 어? 왜 이렇게 많이 주지? 3kg, 200원 어치였다.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바나나를 샀는지 모르겠다... 바나나 때문에 다른 음식을 못 먹게 생겨서 상심했다.

바나나를 먹고 다시 유쾌해졌다.

훌륭한 식사를 하는 민족이니 볼리비아 사람들이 제정신일 수 밖에 없다.
밤거리는 놀랍도록 한국과 흡사했다 -- 안전하고 시끄럽다.

밥을 거나하게 먹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여행사들은 오후 3시나 되어야 문을 열테니. 그래서 Valle de la Luna(valley of the moon)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감으로 찍어서 내렸다. 시내에서 대략 10km, 골짜기 아래. 정확한 위치다. 적도 부근부터 남반구로 내려 오면서 태양의 위치 때문에 종종 방위 감각을 잃었다. 북반구에 너무 오래 산 탓인 것 같다.

오늘 달의 계곡을 방문한 사람은 다 합쳐서 10명이 안 되었다. 미니 카파도키아 같다. 별 다른 감상은 없었다. 터키에서 훨씬 오래되고 장엄한 카파도키아 버섯을 이미 본 처지라. 한 시간쯤 거닐다가 적당한 곳을 찾아 오줌을 누어 제대로 마무리를 하고 라 빠스로 돌아왔다.


Valle de la Luna. 달의 계곡이라서 로맨틱한 곳인 줄 알았는데 영 황량한 것이... 달 표면 같다.

매트릭스를 보러 갔다. 매표원과 한참을 싸웠다. 그녀는 티켓을 줬다는데 나는 좌석 배정표만 받았다고... 티켓 달라고... 옥신각신 하다가 영화가 시작되어 정직하지 못한 그를 한껏 비웃은 후 지갑을 꺼내 표를 다시 사려고 했다. 어? 그런데 티켓이 지폐 사이에 끼어 있었다. 거스름돈을 받다가 중간에 끼인 것 같다. 망신살이 뻗쳤다.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여러 차례 사과 했지만 토라진 얼굴이 풀리지 않았다. 극장은 의외로 돌비 디지탈이었다.

네오가 개폼 잡고 하늘을 날 때부터(he's doing superman thing)알아봤다. 다음에는 부활일 꺼라고. 뱀파이어들이 누리는 가장 큰 호사가 예수의 몸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포도주를 성배에 부어(천사들이 거들 것이다) 우아하게 마시고 거듭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재생하는 것일께다. 따라서 뱀파이어 구전의 원흉은 창에 찔려 포도주를 펑펑 쏟아내는 예수가 맞다고 본다. 네오는 코드를 사용해 트리니티를 부활시킨다. 그 과정이 좀 더 극적이고 하이테크하게 묘사되었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잔 말도 많고... 시스템은 버그 투성이고... 매트릭스의 소스를 들여다보니 아니 이럴수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것이잖아? 이러는 거 아니야? 열쇠쟁이라니. 어쩌면 크립톨로지의 은유가 그렇게 한심하다냐... 매트릭스의 우주관, constructor(generator). 시온의 거리에는 크리슈나(destructor)의 포스터가 팔리고 있었다. 워쇼스키 형제는 그렉 이건의 sf를 봤어야 했다. 창조자에 의해 거듭 '릴로드' 되는 한 사나이의 비극을 봤어야 했다. 새로우 우주의 탄생과 프로세스 랙으로 느려진 시간 속에서 외우주와 상관 없이 영원히 거주하게 된 인간 정신의 복제본을 봤어야 했다. 하다 못해 인과율의 모서리가 부서져가는 우주의 지평선이 등장하는 그의 충격적인 단편이라도... 쌈마이 패치워크로 충만한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 철학서 몇 권 봤다는데 시나리오가 고작 그거냐? 어떤 영화에서 인가, 크리스토퍼 월큰이 늙고 염세적인 뱀파이어로 나와 지껄이는 웅변적인 몇 마디가 훨씬 더 그럴듯 하다.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쓰레기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말하자면 cause and effect에 따라 머리 속에 든 게 없어서 그렇다는 결론이 나온다. 쌈마이 워쇼스키. 아... 정말, 현대과학기술의 철학적 액기스가 가득 담긴 성배를 맛보고 디지탈 영생을 얻고 싶다. 액션 뽕짝 쌈마이 (짜가) 시뮬라시옹 말고. 액션도 많은데 영화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 보일까. to be concluded. 그건 멋졌다. 하하하. 거지같이 만들어 놨어도 결론을 내리겠다는 정신은 정말 훌륭하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왈, "광신도 집단들이 미래의 위험한 전쟁을 준비 중인 파키스탄이 바로 악마의 집"이라고 주장했다. -- 신문 기사 중. 어렸을 때 앙리 레비의 소위, '철학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취향에 안 맞는 작자로 여기고 있었다. 악마의 집? 여전하군.

"여행상품 : 7월 17일까지 스리랑칸 항공을 이용한 특별상품이 출시됐다. 목요일 출발 5일 상품(128만원)과 월요일 출발 6일 상품(144만7000원). 정상가보다 15% 이상 할인된 가격이다. 숙소에 따라 요금 차이가 있다. 클럽메드 코리아(www.clubmed.co.kr)" -- 어, 생각보다 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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