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깼다. 어둑어둑하다. 숙소로 여행사 직원이 나를 데리러 찾아왔다. ISTI 게스트하우스에는 방 번호가 없다. 그래서 여행사 직원이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마다 문을 두드렸나 보다.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그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 보니 투어 시작 시간인 5am.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직원을 따라 여행사 앞으로 뛰어갔다(여행지에 있을 때면 불이 나도 곧 바로 뛰쳐나갈 수 있게 짐을 미리 정리해 두고 자는게 버릇). 이미 차량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 때문에 늦어진 것 같아 낯 뜨거워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더 잤다.
Borbudur 유적지에 도착하니 6am. 투어 비용에 표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외국인 전용 창구에서 입장권을 따로 사지 않아도 된다.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 입장권 가격 차이가 상당했다. 내외국인 차등 입장료로 외국인 뜯어먹고 입 닦는 여러 나라의 관광지야 한두 번 방문한 것도 아니니 식상한 성토는 접어두고, 특이하게도 외국인 전용 매표소에서 커피와 차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500ml 짜리 물병도 나눠줬다. 왠지 싸가지가 있어 보인다.
8.20am까지 자유 관람하고 음식점이 있는 이 자리로 돌아오란다. 반바지라 나눠준 싸롱을 입고 매표소를 지났다. 화장실에 들러 세수하며 눈꼽을 떼었다. 4am에 출발하는 Borbudur sunrise tour를 신청하지 않아 기쁘다; 해돋이 투어는 더 많은 투어 비용을 치루고 해가 뜨기 전에 유적지에 도착해 유적지에서 해돋는 모습을 관람하는 고생을 자진하는 것이라 취향에 안 맞았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볼 때처럼 두근거리지 않았다. 바간에서 마차 타고 투어할 때처럼 햇빛이 쏟아지는 광활한 평원에 불쑥불쑥 튀어나온 스투파를 볼 때처럼 신비스럽고 매력적이지도 않았다. 계단을 하나둘 오르며 서서히 유적이 나타났다. 마치 경주의 불국사처럼 자연스럽게 유적지가 나타났다. 시야각 120도를 살짝 넘어서는 길이와, 굳이 목이 뻐근해져라 고개를 들지 않아도 상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소박한 유적지, 족자를 강타한 지진에도 인도네시아의 자존심처럼 무너지지 않은 곳. 언덕 위의 사원은 근처의 산등성이에 아직 고여 있는 아침 안개 속에서 차분히 아침햇살을 받았다.
일출투어를 신청할 껄 그랬다.
5층으로 된 사원을 뺑뺑이 돌아 정상까지 가면 약 2.5km란다. 두 바퀴 돌았다.
Borbudur 입구. 투어는 4.00am부터 시작. 2시간 동안 투어 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지금 시각은 6.10am. sunrise tour는 이보다 비싸고 3.00am에 시작.
꿈에 그리던 보르부두르 사원이 보이기 시작.
아무 부조가 없는 기단부에 도착. 아쉽게도 유적 복구는 박정희 스타일로 한 듯.
회랑. 인도네시아의 높은 습도에 부조들 대개가 많이 손상되었다.
부조가 비교적 덜 손상된 곳은 해가 드는 쪽. 해가 들지 않거나 회랑의 안쪽은 높은 습기와, 돌 속으로 침투한 이끼의 침략으로부터 무사할 수 없었다.
곳곳에 난간에 올라가지 말라고 적어놨는데, 유적 보호 보다는 인명상해 때문인 듯. 일부 난간의 모르타르는 부식이 심각해 잘못 발을 디디면 바로 추락할 듯.
보르부두루의 최상단 meru(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을 상징). 사원의 상단 꼭대기는 천계에 해당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형태로 meru를 stupa로 형상화한 듯... 아마도... bagan 유적지에서도 이것과 동일한 형태의 크고 작은 스투파를 무수히 볼 수 있었다.
저기 30여km 떨어진 곳에 보이는 위협적인 gunung merapi (메라피 화산). 메라피 화산은 활화산이라 입산이 통제되고 있으며 아직도 분화구에서 김이 모락모락... 여차하면 불을 뿜는 화산 인근 30km도 안된 곳에 사람들이 잘들 살고 있다.
부조의 표현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났다. 아마도 아티스트가 수십 명 동원되었을테고, 그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도록 허락되지 않았겠지만 어떤 것은 멋있고 어떤 것은 그저그렇고...
차라리 이끼를 긁어내지 않던가, 복구를 하려면 많은 시간 공 들여서 하던가 했으면 좋았을 껄... 아쉽다.
보르부두르 투어에서 관람에 허용된 시간은 2시간. 2시간에 이걸 어떻게 자세히 볼 수 있겠냐마는... 한 바퀴 더 돌며 이 멋진 부조를 다시 찍었다. 아쉽다. 관광버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시간이 얼마 없어 같이 온 일행이 대기하고 있는 집합 장소로 돌아왔다. 투어에 아침 식사가 포함된 사람들은 토스트와 간단한 과일로 된 아침식사를 먹고 나는 어젯밤 수퍼에서 사온 빵과 오렌지 쥬스를 먹고 마시며 얘기에 끼어 들었다.
12인승 도요타 승합차에 탄 사람들 중 넷은 스웨덴에서 온 젋은 친구들로 영어를 거의 못 하고 마치 한국인들처럼 뭉쳐서 우르르 몰려다녔다. 한 명은 뉴질랜드 출신 생물학자인데 박사 학위는 environmental science(환경과학?)으로 받았다. 여행자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새침한 편인데 이 여자는 투어 후에도 발리까지 가는 길 내내 나와 줄기차게 다시 만났다(나처럼 여행자와 얘기하는 걸 별로 즐기는 타잎은 아니다). 차에서 내 왼편에 앉았던 프랑스에서 온 늙은 여행자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시작해 보르네오와 칼리만탄을 거쳐 자바섬에 다다랐다. 족자에서 장기체류할 생각이고 발리섬을 거쳐 파푸아 섬 끝까지 갈 생각이란다. 내 오른편에 앉았던 친구는 싱가폴 출신 어머니와 캐나다 출신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캐나다인이다. 미국식 영어를 사용하며 마초티를 많이 내는 젊은 친구다, 다른 친구는 말레이지아의 쿠알라캉사르(?)에서 온 대학생 배낭여행자인데 영국에 사는 스리랑카 출신의 변호사와 투어 내내 붙어 다녔다. 이름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밥 먹는 중에 캐나다 젊은이가 앙코르와트와 보르부두르를 비교하며 미주알고주알 보르부두르가 후졌다고 평했다. 뭔가 좀 길게 설명해 주려고 했는데 왠걸 몇 년 동안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니 혓바닥이 굳었는지 말이 잘 안 나와 무척 당황했다. 전에는 대체 어떻게 말했지?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말할 때는 생각은 모국어로 하고 말은 영어로 하니 머리가 희안하게 뒤죽박죽이 되더라. 영어로 말하느라 진땀을 흘렸지만 참을성 있게 들어주더라. 그에게 인도에 반드시 가보라고 말했다. 인도에 가면 끝내주는 자연경관과 당신 좋아하는 사원들이, 엄청난 사원들이 소똥 범벅인 채로 흔하게 널려있다고...
9am 쁘람바난 사원으로 이동하는 중 작은 힌두 사원과 불교 사원에 차가 잠시 멈췄다. 그때쯤 비슷한 시각에 투어를 시작한 다른 차량들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여행자들은 서로의 여행 얘기로 꽃을 피웠고 난 재미가 없어 보리수 그늘에 앉아 쿠알라캉사르 출신 말레이인과 그의 캐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창 복구중인 힌두 사원과 거대한 보리수
쁘람바난 사원에 가는 길 내내 왼쪽, 오른쪽의 프랑스, 캐나다인은 연신 사진을 찍고 이죽이며 그걸 굳이 보여주며 나와 얘기를 나눴다. 흡사 여행 처음 하는 사람들처럼 천진난만하달까? 차가 족자 시내에 들어서고 보르부두르 유적지 투어만 하기로 한 사람들이 내렸다. 말레이인만 내렸다. 다시 출발. 차 옆으로 곡예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충돌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다들 감탄했다.
10.50am 무렵 쁘람바난에 도착. 12pm까지 관람하고 다시 모이기로. 지진 때문인지 복구하다가 말았는지 돌무더기가 쌓여있다. 화산암들. 보르부두르 유적처럼 아마도 저 멀리 보이는 메라피 화산 근처에서 돌을 날라와 가공한 것 같다.
Candi Prambanan(짠디 쁘람바난. Candi=사원) 입구
복구가 덜 되었거나 무너진 것들. 아무래도 지진 때 무너진 것 같다. 복구가 덜 된 형태가 아니라서...
주 사원의 압도적인 위용.
자세히 보면 벽감 속의 신상들이 거의 없다. 국립박물관의 수장고에 있겠지? 아니면 누군가 훔쳐가서 어느 부호의 집 장식으로 쓰이고 있던가...
사원의 규모는 놀라웠지만 부조는 조악했고 벽감의 deity는 누군가 도굴한건지 거의 다 사라진 상태다. 자와섬을 지배한 과거의 인도 출신 힌두교도들이 정신줄을 놓은 건지 내부성소로 이어지는 기나긴 회랑도 없고 사원 전체의 바닥을 뒤덮는 판석도 없이 흙바닥(!)에 기초공사만 한 채 사원을 올리고 성소의 조각을 짝퉁스럽게 만들어 실망스럽다. 그렇다는 얘기는 힌두 지배 시기가 그렇게 강력하고 찬란하거나... 길지는 않았던 것 같다. 힌두인들은 신앙심이 돈독해서 카스트로 있는 힘껏 착취해서 사원을 꽃치장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들이니까.
그런데 왜 여기에 쁘람바난 사원을 지었을까? 저 멀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메라피 화산을 보고 고향의 히말라야를 연상했던 이주 인도인들이 메라피 화산을 메루산의 아바타 쯤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인도에서 유명한 힌두사원은 그 지역의 중심에서 지역생활의 신앙 중심 역할을 하던가, 그냥 의미심장하고 특별한 장소에 사원을 지었다. 강줄기가 둘로 합쳐지는 곳은 엄청나게 중요한 곳이다. 쁘람바난 사원 역시 보르부두르처럼 19세기 무렵 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더치가 발굴한 건가? 무슬림은 이런 유적에 관심이 없을 테니까.
사원 옆의 박물관에서 가멜란 연주를 하고 있다. 독창하는 아줌마를 비롯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공연... 건기 저녁 무렵이면 국립 박물관 뒤쪽 식당에서 쁘람바난 사원을 배경삼아 디너쇼가 벌어진단다. 무척 로맨틱할 것 같다.
캐나다인이 옆에 달싹 붙어 같이 다녔는데 내가 영어가 잘 안 되니까, 사내 흉내 내며 bro, huh 하며 말 붙이는게 불편하고 귀찮았다. 그래도 쁘람바난이 인도의 힌두사원과 하나 닮은 건 있었다.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사원 유적지에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 사원 관광을 끝내고 설렁설렁 투어 차량이 정차해 있는 주차장으로 걸었다. 연휴라서 유적지는 관광 온 인도네시아인들로 버글버글했다.
운전사는 어디갔는지 안 보인다. 누군가, 햇볕을 피하느라 잎사귀가 다 말라버린 나무 한 그루에 달싹 붙어 뭉쳐 있는 우리를 보더니 운전사를 데리러 갔다. 그새 뉴질랜드 박사 여자는 출구의 시장통에서 뭔가 잔뜩 쇼핑해 와서 가판 벌리듯 늘어놓고 이건 얼마 짜리, 저건 얼마 짜리 설명했다. 네고 참 잘 한다. 마누라 생각이 났다. 운전사는 독실한 무슬림인지 사원 입구 근처에 마련해둔 기도소에 머물러 있었나 보다.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아임 쏘리, 아임 쏘리를 연발. 인샬라 하니까 낄낄 웃는다.
족자에 돌아오니 12pm.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북을 뒤져 말리오보로 거리 시작 즈음에 위치한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사 사무실을 찾았고 투어 차량이 여행사 앞에 서자 마자 항공사 사무실로 갔다. 에어컨이 망가져 창문 열어 놓고 다니는 차에 있다가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에 오니 살 것 같다. 바깥 기온은 32도, 건기인데도 습도가 높아 등짝이 땀에 절었다. 내 차례가 되어 항공권 프린트 물과 라이온 항공표를 보여주며 사정 설명하고 귀국항공편의 날짜를 하루 앞으로 댕기는 것이 가능한지 문의. 불가능하단다. 그날 좌석이 전 시간 모두 여유 좌석이 없고 웨이팅도 할 수 없단다. 라이온 에어 항공사 위치를 아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여행사 가면 라이온에어 항공권 날짜를 변경할 수 있을까 물으니 잘 모르겠다며 무척 미안해 한다. 사탕 하나 먹고 물 한 잔 마시고 빙글빙글 웃으며 나왔다. 이 나라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는 기분이 참 좋다.
빌어먹을 더위에 거리를 걸어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물어물어 여행사를 하나 찾았다. 라이온 항공권을 보여주며 일정 변경이 가능한지 물었다. 워낙 싼 항공권(promotion)이라 불가능할꺼란다. 자기들은 그런 업무를 하지 않는다며 미안해 한다. 그럼 혹시 환불은? 항공사에 직접 가야 한단다. 시내에 항공사가 있나? 없다. 족자 외곽의 공항에 사무실이 있단다. 이게 영어로 한 얘기가 아니지만 뜻만 통한다면 뭐...
하아... 덥다. 옵션이 하나 밖에 안 남았다. 굶으면서 이게 무슨 꼴이지? 얼른 이것저것 볼 일 끝내고 어제 못 본 끄라톤을 보러 가야 하는데. 인도네시아의 관광지들이 다 그런 것 같은데, 2.30pm이면 문을 닫았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덥다.
어제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denpasar to jakarta 인도네시아 국내선 항공표는 전 시간 매진되었다. 마지막 남은 옵션은 가루다 항공권의 출발지를 jakarta에서 denpasar로 변경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되면 라이온 항공권은 환불해야 한다. 가루다 인도네시아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아까 그 친절하고 예쁜 아가씨가 맞아 주었다. 출발지 변경이 가능한지 물었다. 2-3분쯤 터미널을 검색하더니 아주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 항공권의 발권을 한국에서 한 것이라 한국에서만 변경이 가능하단다. 시스템이 후진 거니 미안해 할 만 했다. 국제전화를 해야 하나? 그러고보니 생각났다. 한국에서 귀국편 출발지를 변경하려고 전화하니 추가비용 얘기를 했다. 여기선 결제를 할 수 없다. 천상 아내한테 얘기해야겠다. 라이온 항공편은 환불해야 하니 공항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종이에 적어준다.
말리오보로 거리의 Indo Mart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하려고 1700rps 짜리 가장 싼 비누 하나를 달랑 사니 카운터 아가씨가 낄낄 웃는다. 나도 웃겼다. 마침 아내와 스카이프 통화가 되었다. 출발지 변경을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잘 되야 할텐데... 딸애가 아빠 보고 싶다고 전날밤 울었나 보다. 떠나기 전날 대형마트에 들러 떨이 판매하는 강아지 인형과 카드를 사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가 걸어놓은 양말에 넣어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카드에는 '다음엔 아빠, 엄마랑 함께 여행가자' 라고 적었다. 마누라가 나랑 같이 가려고 할까? 인도 가자고 하면 미끼를 덥썩 물 것이다.
공항에 가자. 트랜스족자 버스를 타러 말리오보로 거리의 버스 정류장에 갔다. 왠 서양인이 길을 묻길래 친절하게 알려줬다. 내가 인도네시아인인 줄 알았던 모양. 버스 매표원이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른단다. 그러면서 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교통체증. 길 옆 식당에서 어제 얘기 들은 나시 구덱을 시켰다. 별로인데? 하지만 3000rps 짜리 얼음을 잔뜩 넣은 사탕수수 쥬스는 무척 좋았다.
밥을 먹으며 현지인과 낄낄 대며 놀다가 교통체증이 좀 완화된 걸 보고 버스정류장에 갔다. 말리오보로 거리는 일방통행이라 버스정류장을 헷갈릴 염려가 전혀 없다. 내 얼굴을 기억한 매표원이 저 버스를 타면 된다고 알려줬다. 쁘람바난행 1A 버스다. 버스는 콩나물 시루 같았고 에어컨은 대충만 작동했다. 50분 정도 땀을 줄줄 흘리며 공항에 도착했다. 오히려 바깥이 더 시원하다.
라이언 항공표를 refund하기 전에 아내가 항공권 스케쥴을 변경했는지 통화해 봐야 한다. 아니면 이 표를 그냥 들고 가서 자카르타에서 하루 버린다 치고 더 묵어야 하니까. 공항 안내소에 와이파이 사용가능한 곳을 물으니 depature launge에서만 사용가능하단다. 역시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아내에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떻게든 솔루션을 찾을테니 믿고 도박을 하기로.
아침에 함께 투어했던 스웨덴 친구들이 짐을 맨 채 멍하니 서성였다. 눈인사만 하고 항공사 창구에 가서 항공권의 refund를 요구. 영어를 잘 못 알아 듣지만(내 영어도 뭐 시원찮으니 상관없다) 어찌어찌 의사가 통했다. 55% 정도만 환급이 가능했지만 그게 어디야.
족자로 돌아가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누가 허덕허덕 쫓아오며 등을 건드린다. 어? 아까 봤던 스웨덴 사람들 중 그나마 영어가 되는 친구다. 날더러 혹시 surabaya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묻는다. 공항에 오니 surabaya행 항공권이 매진이란다. 지금 bus나 기차표, 항공권은 아마 구할 수 없을 것이다, holiday season이나 완전히 매진되었다고 하니 다 죽어가는 표정이다.
수라바야에는 왜 가는데요? 물으니 내일 오후에 수라바야에서 자카르타 가는 항공권을 미리 끊어 놓았단다. 그거 못 타면 엿(totally screwed up)된단다. 그 편을 타야 자카르타에서 집에 가는 귀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으니... 어제부터 표를 구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못 구하고 공항에 오면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는 현지인 충고를 듣고 여기 왔지만 표를 구할 수 없었단다. 딱 한 장, 창구에서 낙장 표를 구할 수 있었는데 넷이서 고민하다가 함께 왔으니 끝까지 함께 가자고 얘기하다가 그래도 한 명이라도 보내는게 낫다고 가장 나이 어린 친구를 보내기로 합의하고 표를 사러 갔더니, 그새 팔렸단다. 사정이 딱해서 낄낄 웃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솔루션이 안 나올 것 같기에, 어떤 상황에서건 마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 마누라를 시뮬레이션해 봤다(그러니까 잔머리를 굴렸다). 묘안이 떠올랐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게 뭐냐? 족자로 돌아가 여행사에서 브로모 화산 투어표를 끊는 것이다. 여행사 투어 버스는 언제나 있다(비싼 비용을 치루니까). 브로모 화산 투어가 프로볼링고를 거쳐 가는데 거기서 수라바야가 가깝다. 아마도 프로볼링고에서라면 대충 아무 버스나... 또는 히치하이킹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친구들을 데리러 간다며 공항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불쌍한 녀석들. 아참, 나도 불쌍하지. 여전히 그 친구들 이름을 모른다. 난 왜 사람 이름이 머리에 남지 않을까? 숫자처럼 여행자가 균등해 보여서? 여늬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무의미해서? 비록 친절한 편도 아니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행자들을 도왔다.
버스를 탔다. 이번엔 에어컨이 작동한다. 그래도 땀을 흘렀다. 산유국이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연비가 안 나오면 일단 에어컨을 끄는 안 좋은 관습이 있는 듯. 더더욱 사람을 힘들게 하는 관습은 관공서와 관광지가 입장을 2.30pm까지만 받는 것.
말리오보로 거리에 도착하니 어느새 5pm. 허탈한데? 아까 비누를 산 Indo Mart에서 오렌지 쥬스를 한 병 사서 마시며 아내와 통화. 항공권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러니 다들 마누라 없으면 못 산다고 그러지. 열심히 땀 흘려 삽질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흡족하고 씁쓸하고 노곤하다.
트윗질 몇 번 하고 구글맵으로 브로모 일대와 발리섬 지도를 다운 받고 생각난 김에 여행사에 들렀다. 숙소에 묵고 있던 일본인 여자가 무려 통역을 데려와 투어를 예약하고 있었다. 아는 척 하니 어디 가냐고 묻는다. 내가 유부남만 아니면 오늘 보르부두르 간 사실을 숨기고 내일 당신이 가는 보르부두르 선라이즈 투어를 신청할 것이다. 사원에 떠오르는 멋진 해돋이를 보며 하루살이처럼 살자고 거듭 다짐할 것이다. 농담이고... 어렸을 때 일본 여자애들과 참 많이 돌아다녔지...
일본 여행자를 보내고, 브로모+이젠 투어를 예약하려니 유독 가스와 화산탄 때문에 이젠 화산은 아직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단다.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요. 꼭 가고 싶은데요? 제가 죽을 병에 걸렸거든요? 킥킥 웃는다. 정말 안되요. 그래서 브로모 투어만. 일정: 짚차를 타고 view point#1에 올라 일출을 보고 내려와, 브로모 화산까지 걸어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 공항에서 헤메던 스웨덴 청소년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해가 졌다. 숙소에 들러 샤워하고 다시 나왔다. 배가 고파 밥을 먹어야겠다. 오늘 한 일이 대체 뭐지? 아, 여행을 했구나. 말리오보로 거리를 따라 내려갔다. 거리에 돗자리를 펴고 사람들이 앉아 노점에서 파는 밥을 먹는다. 거리에서? 재밌어 보여 밥을 주문하고 먹었다. 낮에 먹은 것처럼 10,000rps에 나시 구덱과 사탕수수 쥬스를 시켰는데 굉장히 맛있어서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족자카르타의 유명한 식사 방법: 길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나시 구덱을 먹는단다. 나도 해봤다.
길거리 노점상. 아까 돗자리 깔고 먹던 곳 옆자리.
Mal Malioboro 지하 수퍼에 들러 맥주와 샌달 따위를 샀다. 식빵도 샀다. 내일 아침부터 이틀 동안 다시 강행군이다. 거리에 인터넷 가게가 보여 들렀다. 한 시간에 4000rps. 휴대폰에 찍어놓은 사진을 백업 차원에서 올리려고 했으나 너무 느리다. 값이 싸서 그런가? 항공권을 프린트 하는데 인터넷 까페에 프린터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어제 갔던 인터넷 까페에 들러 한 시간에 7000rps 짜리 인터넷을 사용하고 1000rps 주고 일정이 변경된 항공권을 프린트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Gang 1 어귀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안주꺼리로 1200rps짜리 쌀과자를 샀다. 아까 거리에서 옆에 앉아 함께 밥을 먹던 현지인이 내가 워낙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웃겼는지 쌀과자를 나눠줬는데 무척 맛있던 기억 때문이다.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숙소 거실의 소파를 치워놓았다. 방바닥에 앉아 동네 노인네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다. 나더러 함께 먹자고 했지만 배가 찼다고 거절. 아줌마가 나를 주방에 데려가 굳이 밥을 퍼주려고 한다. 비닐봉투를 열어 맥주를 보여주니 히죽 웃는다. 맥주가 팔리는 걸 보면 인도네시아 무슬림이 맥주를 마시는 것 같긴 한데... 하여튼 그 자리에 젊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면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샤워하고 맥주를 마시며 일정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