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ll have baggage

잡기 2014. 2. 12. 18:06


딸아이한테 가끔 밤마다 들려주던 작년 여행 얘기는 거의 끝났다. 일년이 걸렸다. 딸 외엔 내 얘기에 관심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편하다.

Paris


딱히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고...


Camino De Santiago


신발 끈이 끊어지고 가져갔던 양말들이 모두 구멍이 나고, 눈보라와 비바람을 맞으며 몸도 젖고 영혼도 쫄딱 젖은 채 걸었던 길,


Camino De Santiago


울던 사람들, 웃는 사람들, 지쳐서 포기한 이들, 여행 중에 죽은 이들...


Camino De Santiago


애가 커튼 만들겠다니 아내가 십 년 전에 쓰던 내 룽기를 아이에게 줬다. 내 밀레 배낭은 쓰레기라고 버리면서 아내는 자기 배낭은 버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내가 날더러 애와 둘이 놀러가고 자기는 저 혼자 놀러 가겠단다. 암, 여행은 혼자 개고생 해야 제맛이지. Travel의 어원이 개고생이다. 


Porto


술을 마셨다. 52일 중 이틀만 빼고 매일 마셨다.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게 언제부터 생활이 되었을까?


Budafest


작년 말 딴지 인터뷰에 환타님이 나왔다. 재밌기도 하고, 남 얘기 같지 않다. 제작년 마누라 여행 사진 정리 중에 환타 아저씨랑 찍은 사진을 보니 서로 아는 것 같다. 라가 까페 내외와 소울이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 바닥에서 셀러브리티인 환타님이나 심바나 엘리가 여행하던 시절에 마누라나 나도 인도에 있었다. 소위, 세계로 가는 기차 시절? 마누라는 열댓 번쯤 인도에 갔고 나 같이 인연에 흥미가 없는 자폐증 히키코마리와 달리 그 바닥의 알만한 사람을 거의 알았다. 


Budafest


인터뷰의 환타 아저씨 말대로 인도를 여행했던 사람들은 서로 연대감 같은 것이 있다. 알록달록하고 지저분한 싸롱을 입은 채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시골 벤치에 배낭을 대충 던져두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가 나와 비슷한 복장을 한 옆자리의, 어느나라 사람인지 딱히 관심은 없지만, 아무튼, 외국 거지의 낌새를 드디어 눈치채고  통성명 없이 어디가 제일 좋았다느니 하는 얘기나 나누고... 말해 뭣 하나 싶은 무수한 경이와 아름다움과 인연과 그에 따른 필연적인 고생. 


Plitvice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만 애써 생각하긴 어렵고, 요새는 추억이 거의 꽃포장이 된 채 각색되어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요새 꽃보다 누나로 유명해진 플리트비체에서 얼음장 처럼 차가운 물에 수몰된 산책로를 고생하며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외국 여자애 둘이랑 아침저녁으로 싸돌아다니기도 했다. 


Barcelona


한국남자애들을 찌질한 마초에 눈치없고 매너없는 머슴 취급하는 부류가 많아 한국 여자들을 피했는데, 예전에(지금도?) 한국 여자들은 비교적 기대 수준이 높아 사귀면 삶이 견조하지 못하니까 차라리 외국 여자를 사귀라고 권고하는 글을 동호회에 썼다가 다구리를 당한 적이 있다. 한국 여자들은 괜히, 소득이 낮고 피해의식에 쩔어 있고 현실적으론 병신 주제에 과대망상에 빠진 개마초같은 한국남자에게 시간낭비할 것 없이 매너 좋은 선진국의 여유있고 잘 생긴 외국 남자랑 사귀는게 적절하다. 세계는 넓다. 그게 맞고, 한국남자들은 원래 돈 없고 찌질한데다 생긴 것도 오징어 주제에 결혼해서 여자 고생시키며 자기도 힘들게 사는 등, 괜히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혼자 행복하게 살던가 외국으로 눈을 돌려보길. 울지 말고. 그리고 이 흉흉한 시대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이십 년을 아이에 메어 사는 것은 자기학대이자, 이기적인 동시에, 죄악에 가깝다. 


Split


십 년 전 쯤에 별 생각없이 지껄인 이런 말이 여전히 웃겨 보일지도. 병적인 허영과 금전만능의 시대인데 그래도 사랑과 낭만이 있다고 믿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Lisbon


지금은 십 년 전과 생각이 다르다. 히피들과 어울린다고 생노병사가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Live light니 respect simplicity 같은 '생각'이 생활과 일치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고, 혜능 말대로 맑은 거울같은 내 마음엔 티끌 한 점 없어 갈고 닦을 것도 없어서? 그런데 리스본에서 먹은 음식들은 맛있었다. 


Lisbon


그리고 한국 여자와 결혼한 지 십 년 째인데다가 심지어 애를 낳아 기른다. 나는 위선자인가? 그러게. 술 마실 때 남들 안 들리게 기도삼아 중얼거리곤 했다; One for the road. 실은 흥겹다.



Barcelona


말과 생각과 염원과 기도의 덧없음은 그렇다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앞으로도 세상이 이해가 안 갈 것 같으니 여행을 더 많이 해 봐야 한다. 돈 없고 못 생긴 오징어에게 세상은 쓰디 쓰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것을 좋아한다면,  여행하는 여자와 만나길 적극 권하는 글이 있다: Don't date a girl who travels.


Madrid


은하수를 보기 힘들 뿐더러 반닷불이의 집단 동조를 보기도 힘들다. 빙하를 만져보거나 용암을  보기도 어렵당!~~><귀염~~!!다람 !!~~~ 이거 쓰는 중에 딸이 끼어 들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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