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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5 안면도-선유도 자전거 여행 1
2009/06/12 ~ 2009/06/14 사이 서산에서 군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다.

금요일 저녁 출발. 서산가는 막차가 19:45. 사무실에서 17:30에 나와 집에 들러 후다닥 준비하고 반포의 센트럴 터미널까지 자전거를 몰고 갔다. 늦을까봐 30kmh대로 자전거를 몰았다.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서인지 터미널에 도착할 즈음에는 다리가 뻑뻑했다. 저녁 삼아 라면을 후루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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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2009-6-16 해지기 바로 전.

21:20분 일반버스를 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옆자리 아줌마가 삼각김밥을 하나 나눠준다. 사양했다. 서산에 도착하니 23:30. 저녁때 먹은 라면 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배가 고파 시내에서 찜질방으로 가는 길에 치킨에 맥주 한 잔 할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보석 사우나 찜질방에 자전거를 놔두고 찜질방 옆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 마셨다. 담배도 한 대 피웠다. 그 와중에 주머니에서 지갑을 떨궜다. 영수증 챙기려고 주머니 뒤지다가 알았다. 하마터면 지갑을 잃어버릴 뻔 했다. 자전거를 잘 갈무리 해두고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흐릴 꺼라더니 쨍쨍하기만 하다. 8:00에 일어나 대충 샤워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9:00에 출발. 원래 계획은 평택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평택부터 안면도를 거쳐 군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었는데 거의 쉬지 않고 160km를 달려야 해서 부담스러워 서산 출발로 정했다. 태안이나 당진에서 숙박하지 않은 것은 서산에서 안면도 쪽으로 가는 길목에 굴밥집이 몰려 있어서다. 안면도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나가서 밥을 먹을 생각이다. 흔히 말하는 island price에 뭘 사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젯밤에 오랫만에 무리해서 달려서인지 다리가 묵직한게 불안하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22km를 달려 서산 A-B지구 방조제를 건넜다. 아침부터 가방을 맨 등짝에 땀이 흥건하다. 방조제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식당들이 보인다. 당암리굴밥집에서 굴해장국을 시켰다. 반찬 예닐곱가지와 콩나물 해장국에 굴을 잔뜩 넣어 주고, 공기밥이 아닌 돌솥밥을 지어 주는데 꽤 맛있다. 꼭 전라도 음식 먹는 기분.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만 원짜리 굴영양돌솥밥을 시켜먹을 껄 그랬나?

그런데 어제 서산에 온 후로 가게나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조선족이었다. 중국에서 보던 조선족과는 달리 한국의 식당에서 보는 조선족에 대한 인상이 좋은 편이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당암리굴밥집 식당 주인에게 음식이 맛있다고, 가게 이름을 널리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리지? 사진 한 장 안 찍었는데. 웹질해서 찾았다. 남면 당암리 1-1. 041-674-1446. 영양굴밥 10000원, 굴해장국 6000원. 생각대로 역시 이미 알려진 맛집이다.

갓길이 별로 없는 649번 지방도를 따라 달렸다. 대부분 평지라 견딜만했다. 서산에서 AB방조제까지 고개가 셋 있는데 고저차가 50m 가량이라 우아한 주행이 가능하다. 볼만한 것은 없다. 길을 따라가다가 청살모 로드킬은 무려 다섯 번이나 봤다. 승용차가 논길 옆 진창에 코를 쳐박고 있는 모습도 봤다. 그러고보니 변산반도 자전거 여행 때도 승용차가 박혀 있는 걸 본 것 같다. 차체가 망가지거나,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게 혹시 길조인가?

649번 지방도를 타다가 77번 국도와 만나 우회전해서 안면 대교를 건넜다. 도로가 널찍하고 갓길도 잘 되어 있어 주행이 편하다.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길로 난 해안도로를 타고 갔다. 다리를 건너면서 오른편으로 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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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해수욕장에 들러 해변을 거닐며 잠시 쉬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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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모래사장에 간간이 사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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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진 진흙처럼 고운 뻘모래 위로 조개들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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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충들의 꿈지럭거리며 뻘에 새겨놓은 그들만의 나스카라인. 그래! 얘들아 내가 지켜보고 있단다.

아직 해수욕장 개장 전이라 사람은 거의 없지만 해수욕장 앞 매점에서는 관광지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지 뭔가를 사서 나온 아저씨가 물건값이 어처구니가 없다며 일행에게 투덜거린다. 안면대교가 있건 없건 안면도는 섬이니까. 관광지 섬의 경제 시스템은 좀 유별나니까. 발에 물을 묻히긴 이른 시각이라 꽃지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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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벗어나 해수욕장을 잇는 비포장길을 신나게 달렸다. 그늘이 적당히 드리워져 별로 덥지 않다. 오른편으로 바다를 보며 달리니 상쾌하다. 도요 해수욕장과 밧개 해수욕장을 지나 해발 50m짜리 저 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고개를 넘자 방포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딱히 쉴만한 그늘이 없어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잠깐 쉬고 방포항으로 갔다. 방포항에는 조개, 굴 따위를 따는 무수한 사람들이 해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안면도 꽃 축제가 끝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꽃 축제장 철책 너머로  꽃이 잔뜩 피어 있다. 지나가는 시민을 위해 꽃축제장을 그냥 열어 놓으면 안되나? 돈은 벌만큼 벌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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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 해수욕장. 역시 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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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항 뻘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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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 해수욕장 말단에 있는 롯데 오션캐슬에 도착. 해변에 내려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아직은 물이 차가워서인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햇살은 따갑고 서풍은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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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보여주면 좋아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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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캐슬의 해변가 흔들의자에 앉아 잠깐 쉬면서 해변을 구경했다. 대천행 배편 시각을 알아보려고 영목항 페리 터미널에 전화했다. 요점은, 배편이 14:20에 있으며 주말에는 사람들이 몰려서 선착순으로 배표를 주는데, 언제 마감될지 모른다. 전화예약은 안된단다. 얼마나 일찍 가야 배표를 구할 수 있냐고 물으니, 그건 자기도 모르니 알아서 하란다. 친절도 하시다. 어영 부영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자전거를 몰다보니 지금 시각은 12:00, 영목항까지 남은 거리는 20km 가량. 1시간 반 동안 달리면 13:30에 도착하는데, 배표를 구할 수 있을까?

젓산으로 묵직한 다리를 끌고(거의 한 달 반 동안 자전거를 안 탔다. 타봤자 아이 짐칸 안장에 태우고 찬찬히 몬 것이 고작이니 다리에 알이 배기는 건 시간 문제다) 하는 수 없이 영목항까지 달리기로 했다. 끝없는 팬션들을 지나치며 영목항에 도착하니 13:35이다. 허겁지겁 배표를 구하려고 들어가보니, 왠걸, 널널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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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 출발 예정인 영목-대천간 페리는 14:40쯤 출발. 한 시간쯤 멍하니 부두에 앉아 오가는 고깃배를 구경하며 배를 기다렸다. 안면도에서 사먹은 것은 7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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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끼떼처럼 관광유람선을 졸졸 따라가며 새우깡을 기대하는 갈매기들.

영목항 올 때까지 64.5km를 달렸는데 다리가 뻣뻣해서 군산까지 달릴 수 있을지 걱정된다. 배 안에 누워 30분쯤 자다가 깨어보니 대천항에 거의 다다랐다. 15:40분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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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항. 어 밋밋해.

대천항 앞에 있는 GS25 편의점에서는 도시락을 팔지 않았다. 대천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나타난 고개를 넘었다. 대천 해수욕장 앞 분수공원의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을 팔지 않았다. 해수욕장 구경을 하다가 해변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몰았다. 배가 고파서 힘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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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 해수욕장. 노변에 레게바, 고고바만 있으면 파타야 같겠는 걸?

대천 해수욕장 거의 끝나는 지점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먹으려 했더니 무수한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왠 외국인이 이렇게 많지? 롯데리아 아래에 있는 패밀리마트에서 제육덮밥 도시락과 포도쥬스를 3천원에 샀다. 전자렌지에 도시락을 데우고 있는데 옆에서 물건을 사는 외국인이 종업원이 예쁘다며 수작을 건다. 종업원은 영어를 모르는 척 한다.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왠지 처량하다. 편의점 도시락을 처음 먹어 보는데, 딱 그 가격에 걸맞는 품질이다. 경기불황 탓에 도시락이 인기라는데, 이게 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거지? 경기불황이면 입맛도 떨어지나? 밥은 썩 품질이 좋은데 반찬이라고 붙어있는 제육과 볶은 김치는 여름 날씨에 상하지 않게 하려고 별별 걸 집어넣은 듯한 괴이한 맛. 아, 다시 먹으라면 못 먹겠다.

밥 먹고 16:10 쯤 군산을 향해 출발했다. 군산까지 대략 70km인데, 1시간에 20km씩 꾸준히 달리면 해지기 전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지? 대충 관광이나 하면서 천천히 달리려고 했는데...

날이 더워 가방을 등에 메고 있자니 땀이 흥건히 배어서 가방을 짐칸에 묶었다. 아침부터 별로 안 한가하게 달리기만 한 탓에 김이 새서 사진 찍기도 귀찮아졌다. 무작정 달리자. 죽도를 지나치고 독산 해수욕장도 들르지 않고 지나쳤다.

외국 여기저기를 다닌 탓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원없이 즐겼던 동해의 질 좋은 모래 해변 탓인지,저번 변산반도 때와 마찬가지로 안면도의 해변은 그저 그랬다. 돈 주고 그런 허름한(?) 곳에 가서 섬이랍시고 주야로 일 없이 돈을 뜯긴다는 것이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머리로 이해는 한다. 낭만과 꿈과 환상이 머리 속에만 머무는 관념이 아니라 시장에서 실거래되는 상품이니까.

그나마 자연 환경(?)이 해수욕장 같아 보이는 것은 대천 해수욕장 정도였다. 아무래도 워낙 좋은 해변만 봐서인지 다른 것들은 성에 안 찬다. 하지만 여름에 대천 해수욕장을 찾는 것은 미어터지는 인파 때문에 대략 정신나간 일처럼 보인다. 노련한 상인들이 어떻게든 등을 벗겨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관광지다 보니 오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곳이다. 차라리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태국 해변에 가서 맛있는 음식과 저렴한 맥주를 편하게 즐기겠다.

장안 해수욕장과 춘장대 해수욕장을 들러가는 루트를 짰지만 해수욕장에 실망감이 커서 더 봐서 뭐하겠냐 싶어 가던 길을 돌아 논밭을 가로지르는 비포장길을 따라 갔다. 차라리 이 길이 훨씬 났다. 엉망진창으로 난개발해 놓은 관광지의 팬션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별 특색없는 해산물 식당들을 안 봐도 되니까. 시골주민이 뻔히 쳐다보면 연쇄살인범처럼 히죽 웃어주며 지나칠 수 있으니까. 서해안에 와서 해산물을 안 먹은 것을 후회하냐고? 천만에~

주욱 해안도로를 따라 갔다. 서풍이 계속 불어 자전거 주행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관광지가 끝나자 주행이 한결 즐거웠다.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오른편에 해변을 끼고 소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평탄한 일차선 도로가 아름답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사먹을 가게 하나 안 보였다.  서천을 지나 장항에 이르자 이제 거의 다 왔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배가 고프다. 물은 다 떨어졌다.

장항은 입구부터 시내까지 줄곳 황량했다. 장항항에서는 포장마차를 열어 해산물을 싸게 파는 모양이다. 장항항을 지나쳤다. 들러서 하다못해 갑오징어 안주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군산에 가서 저녁으로 우렁쌈밥을 먹고, 군산 해변에 즐비할 것만 같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기울이자고 마음 먹었다.

금강하구둑을 건널 때 쯤엔 파김치가 되었다. 대천항서부터 62km를 달렸다. 오늘 아침부터 133km를 달렸다.  금강하구둑을 건너, 탐조대 부근의 우렁쌈밥 식당(강촌마을식당이던가?)에 도착한 시각이 19:35분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혼자 먹기 미안한 식당이지만 일인분을 주문해도 한 상 가득 차려준다. 쌈야채에 밥과 우렁쌈장을 얹고 꽁치 한 점 얹어 쌈을 해먹으니 목구멍으로 한없이 술술 넘어간다. 정신없이 먹었다. 우렁무침에 우렁쌈장과 우렁된장찌게에 꽁치를 준다. 가끔 서울서도 이렇게 맛있는 꽁치를 먹을 때가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런 걸 매일 먹고 사니까 심성도 고울 것 같다. 식당은 많이 허름하지만 밑반찬 하나하나도 빠지지 않고 맛있다.

배불리 먹고 식당을 나오니 20:10분. 어두컴컴한 해안도로를 따라 시내로 슬슬 주행했다. 내일 안면도 가기 전에 쇼핑을 해야 해서 emart에 들렀다. 내가 사는 동네의 emart는 날도둑놈들 같은데(타깃 고객층을 정해 그들의 가격민감도가 높은 일부 품목만 싸게 팔고 나머지는 비싸게 팔아먹는 수작질로 emart의 구매합산액이 재래시장은 커녕, 동네 수퍼만도 못할 때가 많다. 따라서 난 꼭 필요한 공산품 구매나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대형할인점에 가지 않는 편)  군산 emart는 정말 할인을 한다. 막 장보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다. 물건을 들고 계산대에서 봉투 구입을 망설이니까 종이봉투를 드릴께요 하면서 알아서 건네준다. 종이봉투는 무료란다. 아, 그러고보니 대형 할인마트에서 종이봉투는 무료로 제공하게 되어 있는데, 말하지 않으면 주지 않고 종이봉투 무료라는 것을 선전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네 대형할인마트는 딱 재수없고 계산 빠른 서울놈들 답게 장사를 너무 얍삽하게 잘 한다.

군산 시가지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주행계획 짠다고 군산 시가 지도를 이틀쯤 뚜러지게 노려본 탓인지 밤 늦은 시각임에도 어디가 어디인지 대뜸 알아먹겠다. 하지만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는다.

회 한 접시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을까 싶어 해망동의 횟집타운으로 향했다. 21:30이 넘어서인지 횟집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그 유명한 군산횟집만 광휘를 흩날리고 있었다. 횟집 들어가긴 뭣하고... 간단히 회 한 접시 먹을만한데가 없을까? 하지만 군산횟집과 몇몇 횟집을 제외하고 해망동 해변도로는 불이 꺼진 채 을씨년하다. 다시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시내 중심가의 젊은이 거리에도 어디 노변에 앉아 맥주 한 잔 하기 적당한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릴없이 시내를 배회하다가 피곤하기도 해서 (벌써 주행거리가 160km를 넘었다) 찜질방을 찾았다. 패밀리 스파는 망했는지 불이 꺼져 있어 금강레저타운으로 향했다. 찜질방을 찾아둔 후, 편의점에서 500ml짜리 캔맥주 한 병을 사서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냥 장항에서 갑오징어에 소주 한 잔 할 껄 그랬나? 그러면 맛있는 우렁쌈장은 영영 못 먹게 되는 거구나.

찜질방이 워낙 시끄러워 12시쯤 잠에서 깼다. 장소를 바꿔 사우나 수면실에 가서 잠자리를 청했다. 어떤 아저씨가 한 시간 반 내내 기침을 한다. 다시 잠에서 깨어 이번에는 찜질방 수면실로 갔다. 애들이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하고 떠들어서 새벽녁까지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애들한테 꽥 소리도 질러봤지만 한창 날뛸 나이인 개구장이들에게 소용이 있을리 없고. 대체 수면실을 시끄러운 게임실 옆에 만들어놓는 미친 센스는 어느 머리에서 나온 거야?

아침에 눈을 떠보니 8:30. 잔 것 같지가 않아 몸이 찌뿌둥하다. 잠을 설친 탓에 8:00 배를 타고 선유도 가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기운을 북돋을 겸, 아침이나 잘 먹자고 어젯밤에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본 횟집타운 입구에 있는 해장국집(시원복집 이던가?)으로 갔다. 원래는 해장국 거리에 있는 일해옥에서 진한 전주식 콩나물 해장국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이왕 먹을 꺼 좀 더 잘 먹어보자 싶어 부러 갔다. 목표는 매생이굴순두부, 가끔 매생이국을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매생이를 사다가 집에서 끓여 먹으면 번번이 실패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뜨거운 매생이국을 호호 불어 먹다보니 이상하다. 국을 헤집어 보았다. 눈 씻고 봐도 굴이 없다. 주인 아줌마에게 말하니,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안하고 굴을 물에 삶아 탁자에 놓고 간다. 매생이국에 그걸 부어 먹는데 굴 맛이 하나도 안 난다. 어제 아침 서산에서 먹은 굴해장국은 꽤 맛있었는데... 같은 냉동 굴이라도 이렇게 다르다니... 이건 뭐...
그래도 꾸역꾸역 배는 채웠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공단의 너른 길을 따라 군산항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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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짓고 있는 듯한 군산 산업단지의 어떤 공장. 군산 관광 팜플렛에는 군산 산업단지도 어엿한 관광지로 나온다. 산업시찰단 말고 일반인도 공장 견학이 가능하다는 뜻일까? 당면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여자들이야 공장 가면 구질구질한 환경에 먼지나 억수로 날리며 볼 것 없다고들 하지만, 거대한 기계가 무시무시한 파워로 작동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진 않았다.

10:20분에 쾌속페리표를 끊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아저씨들이 자전거에 관심을 보였다. 서산에서부터 주욱 내려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내 자전거가 값비싼 것인 줄 안다. 여기저기 고장나서 손을 봐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징징 앵앵 비명을 지르는 유사 MTB인데.

11:55 안면도 도착. 호객하는 삐끼를 보자 흐뭇하다. 마치 인도에 온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쫄쫄이 바지 입고 자전거 타고 와서 그런 것 같다. 관심을 안 보여주니 조금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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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명사십리도 옛말이다. 지나가는 카트에 귀동냥을 해 보니, 이 모래는 관광철을 앞두고 2주 전에 퍼다 놓은 것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 뿐만이 아니라 이 것이 바로 대한한국 모든 해변의 현실입니다' 라고 말한다. 동해안도 그렇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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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해수욕장. 어우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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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과 망주봉. 매년 수백톤의 모래가 유실되는 플로리다 해안도 모래를 해변에 퍼 나르는데,  상당한 예산을 쏟아붓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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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는 모양을 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등대. 그럴듯한데? 이왕 이렇게 만들었으면 관광객들 사진찍기 좋게 손바닥 직교 방향으로 방파제를 조금 연장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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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물이 얼마나 빠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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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정경. 낚시배다. 어떤 아줌마가 '고기 많이 잡았어요?' 하고 소리치니까, '안 가르쳐주지!' 라고 말한다. 흘낏 지나가다 어떤 낚시꾼 아저씨의 휴대폰 통화내용을 들었다. '우럭이 그냥 막 잡혀!!!'.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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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 가는 길에 바라본 망주봉과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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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풍광이 썩 괜찮지만, 썰물 때라 바닷물은 똥물 수준. 도저히 다리 담구고 물장구치면서 놀 엄두가 안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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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왜 찍었지? 갈매기야 뭐라고 말 좀 해다오. 

선유도는 아름답지만 멀리 볼 때나 그렇고... 해변은 별로...

큰 섬이라 그런지 한전에서 발전기를 설치해 놓았다. 해수 담수화 시설도 있다. 이왕이면 태양광 발전 플랜트도 만들어 놓으면 좋을 껄. 고군산군도에서 새만금 방파제까지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다. 곧 있으면 새만금 방조제와 붙어있는 신시도에서 무녀도/선유도 사이를 왕복하는 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안면도나 선유도에 와서 느낀 점은, 두 섬이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옵션이 되기에도 멋쩍을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섬들이다 정도? 또는, 이런데 와서 별 잔 정이 느껴지지 않는(타협 불가능한) 바가지에 시달리느니, 사활을 걸고 관광 사업에 매달려 바가지를 조직적으로 뿌리 뽑은 제주도에 가는게 낫다.

두 섬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장사꾼들의 악명이 특히 높았다. 나야 삐끼 천지인 곳들을 워낙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 것에는 가치 중립적이다. 장사꾼의 악명은 이유없이 확대 과장되는 것이 보통이고 사람들이 제 돈 들여 부러 관광지를 찾아와서 갈망하는 것은 좋은 서비스와 사람 냄새나는 친절과 환대인데, 그 환상이 깨지면 악다구니만 남는 것이지 싶다.

섬 사람들 인심이 박해진 것이 어디 섬사람들이 원래 악당이라서 그랬겠는가 하겠지만 이건 마치 '경제학 콘서트'에서 중고차 시장에 왜 좋은 차가 안 나오는지 설명하던 부분과 같아 보인다 -- 시설이나 서비스가 가격에 비해 현저하게 질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아니 미친듯이) 섬을 찾아오기 때문에 공급과 정보를 쥔 측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서비스와 제품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려고 시도한다.

수요가 줄어도 이 현상은 거듭 반복된다. 예를 들자면, 성수기에는 수요가 충분해 얼마든지 관광객을 뜯어 먹고, 비수기에는 비수기니까 관광객 한 명을 끝까지 정성스럽게 삥 뜯어 먹는다. 비수기에 숙소 가격은 떨어지지만 음식료 및 서비스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가격은 그대로고 음식료/서비스의 품질만 오락가락한다. 내키는 대로 해주면 그만이니까. 정보와 서비스의 공급을 쥔 쪽은 이쪽이니까. 서비스 프로바이더로서 점점 노련해진 섬 주민들이 간혹 생색이라도 내면 수요자는 양질의 서비스에 기뻐 날뛰지만 사실은 조삼모사다. 비용이 결국 같으니까. 선유도의 민박집은 어느 집이나 '수퍼, 낚시배 출항, 자전거 대여, 그런데 바지락 캐는 호미는 공짜' 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마음을 다잡는(옥죄는) 완스톱 토탈 솔루션인데 섬 주민이 노련해졌다는 증거라고  본다.

선유도와 안면도는 그 점에서 조금 다르다.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숙박시설이 있는 선유도와 달리 안면도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고 길도 뻥뻥 잘 뚫린 비교적 큰 섬이라 차를 몰고 얼마든지 섬에 들락거릴 수 있으므로 공급자가 '토탈솔루션'으로 정보의 독과점을 통해 가격협상력의 우위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팬션만 죽어라고 발달했다. 언제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려면 숙박시설의 품질을 높이는 수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 싶다.

선유도가 자전거 타기 좋은 섬이라고? 아니, 선유도에서 자전거 하이킹은 꼭 해볼만한 액티비티라고? 글쎄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두 발로 걸어서 세 섬을 오락가락하기 불편하니까 자전거 대여가 사업이 된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견인한 것이지 공급이 친환경 어쩌구로 계획적으로 자전거를 미리 도입한 것 같지 않다. 자전거 도로나 자전거 통행에 필요한 편의시설의 질이 낮은 것이 그 반증이다. 해수욕장 부근을 제외하고, 울퉁불퉁 대충 만들다 만 콘크리트 도로에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이 잡목숲으로 가려져 있다. 아래 동영상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안전 펜스는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잡목숲을 잘라내고 길가로 나무숲 터널을 만들어 놓으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전거 하이킹 코스가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땡볕이 내리쬐는 밋밋한 시골길이 되어 버렸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관광 산업이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부질없는 환상과 타협하지 말고, 적당한 가격에 질 좋은 풍광과 풍광을 더더욱 감칠맛나게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 쓸모있는 정보를 얻어 나은 대안을 찾던가, 기대 수준을 낮춰야 할 것이다. 난 너무너무 현명해서 가끔은 즐거운 관광이란 대의명분을 잊고 멍청해진 나머지 이런 섬에서 식사 한 끼, 맥주 한 잔 조차 하지 않은 채 무더위에 수도승처럼 자전거 타고 뺑뺑이를 돈다.

섬에서 서비스를 사지 않으니 마음 편하고 좋다. 시시한 서울 강변로 달리는 것보다 배경을 바꿔 바다를 보며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게 즐겁고 기쁘다. 만족스럽다.

여기저기 자전거로 돌아다니다가 더 돌아다녀봤자 볕만 따갑고 재미는 없을 것 같아 대장도의 장자봉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왠지 전망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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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봉 오르는 길. 전망이 그럴듯하다. 나는 회 먹고 하룻밤 즐겁게 보내러 온 것이 아니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며 이런 것을 보고 싶어 왔다. 어디 가서 이런 걸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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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메바위는 나무숲에 가려 잘 안 보이고...  멀리 모래 퍼다 부은 해변이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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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봉 정상에서 바라본 장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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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기타등등 고군산군도. 아... 시원스럽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르니 힘들다. 등산객들이 꽤 많다.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이다. 전망은 아주 좋다. 선유도의 모든 산에 올라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주말은 다 끝나가고 나는 아침 배를 놓쳤다.

어제 군산시내 Emart에서 구입한 빵과 오미자주, 쵸코바 따위를 점심으로 먹었다. 선유도에 들어와서도 워낙 현명한(?) 소비자이다 보니 풍광은 즐겨도 선유도에서 뭘 사먹을 생각은 없었다. 샤니 런치팩 블루베리&밀크는 emart 가격이 980원 밖에 안하는데 열량이 무려 330kcal나 된다. 국순당에서 나온 오미자주도 맛이 그럴듯 하다. 바닷바람을 쐬면서 정상에서 아름다운 섬 풍경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점심을 먹고 약주를 곁들이니 살짝 알딸딸한게 꽤 기분이 좋다.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과 기분좋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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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샤니 런치팩 블루베리&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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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당 명작 오미자 포터블 버전(75ml). 14도로 그리 달지 않으면서 맛있다. 양이 딱 포도주 반 잔 분량인데, 오미자 와인이라 불러주마. 집에 잔뜩 쌓아놓고 하루에 한 병씩 가볍게 마시고 싶다. 별 안주가 필요없다.

점심 먹고 느긋하게 산을 내려왔다.  볕이 강하지만 해풍 덕에 크게 더운줄 모르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바람이 안 부는 곳은 무척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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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줄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관광카트. 삐끼 아저씨 말에 따르면 선유도의 70%가 산악이라서 자전거 몰고 다니기는 힘들고(헛소리!) 오토바이도 좋긴 하지만(시간당 3만원? ), 카트를 타면 관광 안내를 받으며 즐겁게 섬을 돌아다닐 수 있단다.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를 걸어서 다니기는 힘들고, 적어도 자전거(시간당 3천원)나 오토바이는 타야할 듯. 선유도 및 인근 섬을 다합쳐 도로 길이는 약 22km.

14:40 선착장으로 돌아와 돌아가는 배편을 알아봤다. 15:30 옥도페리가 출발한다. 날 더운데 자전거 몰고 돌아다니려니 지친다. 표 산 다음 남는 시간에 무녀도 둘러보려던 것은 관뒀다. 가봤자 서해 똥썰물 밖에, 별 것 없을 것 같다. 군산항 배편을 구입한 다음 근처 수퍼에서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뭍 수퍼보다 백원 비싸고 할인마트보다 55% 비싸다.

앉아서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주말에는 관광유람선 타고 오는 것이 정기배편을 타고 오락가락하는 것보다 나아보인다. 군산에서 떠나는 관광유람선은 군산항이 아니라 군산회타운 근처의 유람선 선착장에서 오고가는 것 같은데(지나가다 얼핏 보았다) 단체 손님만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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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선착장 주변은 온통 이런 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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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근처에서 조개/바지락을 낚아 끌고 오는 몹시 실용적으로 보이는 배. 어마어마한 조개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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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는 더 실용적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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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페리에서 바라본 낚시꾼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한국의 바닷가에서 낚시꾼은 ubiquitous한 존재인데, 도저히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곳에서조차 종종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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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산업단지에서 맥없이 돌고 있는 풍력 발전기. 참 기운 없어 보인다.

GPS 전지가 거의 닳았다. OSM에서 작업하려고 페리 루트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GPS를 계속 켜 두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바람 맞으며 선상 난간에 기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새만금 방파제가 보인다. 요즘은 군산시와 인근 시가 새만금 간척지를 두고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17:00 군산항 도착. 스트래칭 하다가 무릎이 뱃전에 부딫혀 까졌다. 피 봤다.

바람을 등지고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해망굴을 통과. 일제시대에 뚫은 터널인 듯. 대마도에서 보곳하던 종류다. 해망굴 옆으로 월명공원 입구가 있었다. 올라갈까 하다가 관뒀다. 일단 배가 고파서 밥부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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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 맞은 편 미장원.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미장원을 운영하셨을까? 미장원 안에서 할머니가 마늘을 까고 있다. 손으로 쓴 글씨가 힘있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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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 일제시대때 일본군이 판 땅굴. 장항에서 해변도로를 따라 군산까지 오면서 느낀 거지만 군산항이 항구로서 정말 끝내주는 것 같다. 항구가 너무 끝내줘서 일제의 수탈 사업에 조금도 차질이 없었을 것 같다.

근처 편의점에서 AA 2개들이 건전지를 구입해 GPS에 갈아 넣었다. 무려 2550원이나 한다. 어쩔 수 없이 전지를 사야 했지만, 환경에 좋지 않은데다 비싸서, 건전지 사 쓰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바보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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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에서 76000원에 판매하는 이런 풍력 발전기를 자전거에 달 수는 있는데, 값도 비쌀 뿐더러 실용적일지 의문. 사진을 무단 복제하면 안되지만 장사에 도움되는 것이니 이해해 주겠지 -- 옥션에서 '풍력발전기'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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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rt 건너편 철로변에 늘어선 집들. 집 맞은편은 화장실이라고 하더라. 야밤에는 나름 스릴 넘치는 볼일이 될 지도. 남들 사는 모습 찍는게 미안하다. 레바논에 있을 때 건물에 난 총탄 자국을 호들갑을 떨며 구경하는 관광객과 달리 사진 찍는 것을 다소 불편하게 여겼다. 사진 폭력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강조'된 풍광도 좋아하지 않았다. 블로그 사진으로 보는 음식 사진에 대개의 경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공기중에 촐싹거리며 나풀거리는 언어를 믿고 말지. 풍광이 충분히 아름다우면 빛으로 환상을 빚어내지 않아도, 보기에 썩 좋다.

군산 오기 전에 군산에 가면 간장게장 백반을 3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호기심이 동해 부러 찾아본 집이 청기와아구찜집이다. 자전거로 그 지점을 찍고 찾아갔다. 일요일이라 군산 시내가 한가하다. 옷집이 몰려있는 시내 중심가에만 젊은이들이 돌아다녔다. 올해 유행한다는 치마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자애들도 눈에 띄었다. 지역 사회 인프라 확충은 별로라도 옷 유행만큼은 어느 지방 도시나 거의 광속이지 싶다.

주택가에 위치한 청기와아구찜집 근처에는 생선구이 파는 고궁식당과, 진미식당을 비롯한 군산 3대 백반집이 모여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기와아구찜집에 들어가서 혼자 3000원짜리 게장백반을 시켜 먹는게 미안하지만, 일인분이라도 서비스가 잘 나오면 정말 괜찮은 집인 거다. 3천원 짜리 치고는 많이 푸짐하지만 간장게장은 그저 그랬다. 되려 된장국이 맛있다. 게장에 밥 비벼먹고 된장국을 뜨는둥 마는둥 하며 적당히 먹고 나왔다.

버스 시간이 여유가 있어 일제 시대에 지어진 건물 몇 개를 구경했다. 마음 같아서는 해망굴이든 히로쓰 저택이든 구군산세관이든 다 밀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비록 집 없는 설움, 나라 없는 설움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나를 비롯한 후세가 영혼을 잃었던 일제 시대를 기억하기 위해 그것들은 보전되어야 마땅하다.

저녁을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  군산회타운 근처의 유명 식당인 쌍화반점에 들러 짬뽕을 주문했다. 면발이 여늬 중국집과 다르다. 잔맛없이 생생하달까? 다른 해산물은 일체 없고 야채와 싱싱하고 쫄깃한 바지락만으로 낸 빨간 국물맛도 특이하다. 조미료가 없다. 무척 담백한 맛이 난다. 별로 맵지도 짜지도 않은 짬뽕이 마음에 든다. 다 먹고 보니 바지락이 산을 이뤘다. 짬뽕이 아니라 매운 바지락 쫄깃 칼국수랄까. 썩 괜찮은 식사였다.

아이 줄 앙금빵이나 사갈까 싶어 60년 동안 가게를 운영했다는, 유명 빵집인 이성당에 들렀으나 일요일이라서인지 문을 닫았다. 시내를 빈둥거리며 자전거를 몰고 돌아다니다가 고속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표를 샀다.

19.40 출발. 천안 근처와 기흥 부근에서 잠시 막히고 3시간이 걸려 서울에 도착. 22:40분 자전거 몰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아득해서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승객들이 많으면 자전거를 지하철에 싣기가 죄스러웠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23:20, 아내에게 미리 전화해 치킨과 생맥주를 시켜놓았다. 샤워하고 그것들을 먹고 마셨다.

군산에 가면, 군산맛집이란 곳에 들러 서울에서 보통보다 조금 잘 하고 저렴한 식당에서 먹는 것 보다는, 차라리 횟집에 들러 화끈하고 배 터지게 먹는게 나아 보인다 -- 혼자 주행하다 보니 제대로 된 횟집에서 먹기는 뭣하다. 8층짜리 휘황찬란한 군산횟집의 일 층 전체가 광활한 수족관이었다. 그렇게 큰 수족관이 있는 식당은 처음 봤다. 그래서 '군산횟집'이구나. 그래서 군산에는 군산횟집이 있는 거구나. 회타운의 실비집은 아마 '다찌집'인 것 같다. 그런데도 가보고 싶은데 혼자라는게 이럴 때 참 아쉽다.

GPS에 최근 작업한 지도를 넣고 다녔는데 쓸모없는 행정구역 이름이 너무 잘 보이고 쓸모있을 POI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개선이 필요하다. 등고선과 도로 데이터는 잘 맞았다. draw order가 잘못 되어 지형도가 다 나타난 다음에야 도로와 경로가 보인 것이 아쉽다.

주행 데이터:

집->센트럴터미널: 22km
서산->찜질방: 4km
찜질방->안면도 입구 굴밥집: 22.5km
굴밥집->안면도 영목항: 42km
대천항->군산: 62.4km
군산시내: 16.3km
안면도: 15.5km
군산시내: 20.5km
총 216.3km.

주행경로 중 어려운 곳이 없다. 고저차는 50m 이내이고(거의 평지), 북->남으로 이동 중 꾸준한 서풍 때문에 바람의 영향이 적었다. 대부분 갓길이 별로 없는 1차선 국도를 주행했다. 지방도  구간 대부분에서 차가 별로 다니지 않아 비록 갓길이 적어도 교통 흐름에 크게 방해되지 않았을 것이다(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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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정 및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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