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에 남부의 어떤 해변에 갈까 궁리했다. 푸켓? 꼬 피피? 아오낭? 크라비? 꼬 따오? 꼬 사무이? 꼬 창? 꼬 사멧? 파타야? 식상하다. 꼬 따오 정도가 괜찮았다. 꼬 창도 가볼만 하지 않을까? 기나긴 화이트 샌드 비치... 카약을 타고 섬을 왕복하며... 그러다가 인도네시아 여행 중 만났던 여행자로부터 태국의 어떤 섬에 관한 얘기를 오래 전에 들은 기억이 났다. 여행자들 하는 얘기는 일정 정도 정형화 되어 있다. 당신이 여행한 곳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아내와 아이를 그 섬에 데려가기로 마음 먹었다. 아직 때가 덜 묻은 섬, 무꼬 쑤린으로.


치앙마이에서 방콕 돈무앙으로 가는 녹에어의 비행기는 737-800으로 인천에서 방콕으로 올 때 타고왔던 비행기와 같았다. 그리고 녹에어쪽의 비행기는 앞좌석 간격이 다소 넓었다. 항공권 가격은 두당 1600B 가량. 800B 가량의 기차표는 미리 예약을 시도했지만 침대칸 좌석을 구할 수 없었고, 500B 짜리 버스로 12시간을 달려 방콕에 도착하자 마자 당일 저녁에 다시 9시간을 버스를 타고 가자니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된다.


10.45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돈무앙 공항에 도착. 공항에서 35B 짜리 A1 버스를 타고 머칫 역에 도착. 머칫에서 아눗싸와리 까지 BTS를 타고 센트럴 플라자에 도착. 왜 이렇게 교통편이 분절되고 복잡하냐면 시위 때문에 길이 막혀서.


MK 수끼에 가 보고 싶어하는 아내에게 더 좋은 대안을 추천. 샤부시에서 수끼와 초밥을 먹었다. 1시간 10분의 시간 제한이 있다. 1시간 4분에 샤부시에서 나왔다. 그 동안 책상 밑의 아웃렛에 충전기를 달고 휴대기기들을 충전시키면서 식사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의외로 쓸모가 있었던 것이 Ankor 25W 5 port 충전기였는데, 어쩌다 Aliexpress에서 22$에 구매하고 깜빡 잊고 있었는데 6주가 지나 한국에 도착, 그 이틀 후에 여행을 갔으니 운이 좋은 셈. 이걸로 나, 아내, 아이 휴대폰과 여분 배터리 2개를 한꺼번에 충전할 수 있었다.


밤버스를 타고 가기 전에 셀트럴 플라자의 top super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구입했다. 컵라면, 빵, 따위 섬에서 사면 비싼 것들. 무꼬 쑤린(쑤린 섬)에 관한 정보가 태사랑이나 몇몇 한국 블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의외로 알려진 섬인데? 갔더니 관광객으로 버글거리면 어쩌지? 실없는 걱정을 하다가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식료품을 꽤 비싸게 파는 섬의 매점이 점심, 저녁 시간에만 잠시 문을 열고 스노클링 투어라도 갔다오면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배를 곪는다는. 


아눗싸와리에서 물어물어 512번 버스를 타고 콘 송 사이 따이 마이(남부터미널) 까지 가는데, 12km 가량 되는 거리를 2시간이나 걸려서 도착. 위만멕 궁전에서 짜오프라야 강 근처까지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차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6시가 다 되어 남부터미널에 도착해 버스표를 받고 짐 정리를 한 후 버스에 올랐다.


저녁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5시 무렵 쿠라부리에 도착했다. 사비나 투어에서 픽업이 나와 국립공원 입구의 여행사까지 데려다 준다. 방콕-쿠리부리 간 왕복 배편과 쿠라부리-꼬 쑤리 사이의 스피드보트 왕복 티켓 등이 포함된 투어 가격이 두당 2100B. 만일 티켓을 개별 구매한다면 대략 1700B 가량 되지 싶다. 좀 더 싸게 한다면 1500B 까지 가능하겠다. 나 혼자라면 아마 그렇게 갔을 것이다.


여행사 사무실에서 샤워를 하고 제공한 간단한 간식꺼리를 먹고 커피도 줬지만 안 마셨다. 생각보다 친절하다. 우연찮게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예전에 꼬 쑤린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부부가 아이스박스를 사 오길래 우리도 아이스 박스를 샀다. 중간 크기의 스티로폼 박스가 90B, 얼음 한 덩이에 7B x 4 덩이 = 28B. 가게 주인 아저씨 말을 들어보니 여기서 35B 하는 창 캔맥주가 섬에서는 80B 한단다. 그래서 맥주 몇 병과 아이 먹을 음료수 몇 병을 사고 수박도 한 통 사고 오이도 잔뜩 사서 아이스박스에 쟁여놓고 오징어 한 묶음도 샀다. 이렇게 하다보니 섬에 머물 이틀 동안 먹을 것만 잔뜩 챙긴 셈이다.


스피드 보트에 오를 때 어떤 아저씨가 내 딸을 귀여워 하며 이름을 묻길래 알려줬다. 아울러, 아내를 턱으로 가르키며 She's my heart, 그리고 딸을 턱짓으로 가르키며 And she's my soul. 이라고 말했다. 씨익 웃는다. 나도 씨익 웃었다. 하트와 소울은 보트 운전수 옆 상석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치앙마이 트래킹 중에 샘이 내 딸 더러 daddy's girl이라며 아빠랑 달싹 붙어 다니며,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강인하다는 류의 칭찬을 늘어 놓았다. 


한 시간쯤 달리자 에머랄드 색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와 섬이 나타났다. 


아름답다. 


슬로우 보트로 갈아타고 다른 쪽 해변으로 갔다. 


해변에 내려 아까의 한국인 부부가 찜해 놓은 손수레에 짐을 실었다. 이럴 때 경험이 빛을 발하는구나. 짐수레를 끌어 200m 쯤 오솔길을 가니 관리사무소가 나타났다. 우리가 일착으로 도착했고 아내 말대로 관리소에 가장 좋은 자리를 부탁했다.


그래서 가장 좋은 텐트 자리를 확보했다. 열 걸음을 걸으면 바다.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바다로 달려간 동안 아내는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짐을 풀고 텐트 구석에 아이스 박스를 놓아두고 배낭에서 덜렁거리는 자물쇠를 텐트 출입문에 달았다. 한국인 부부 말에 따르면 여기 섬에 온 사람들 중에 질 나쁜 사람들은 텐트를 털기도 하는데, 돈은 내버려 두고 음식만 털어간단다. 왠지 이해가 갔다. 이 섬에 관해 내가 아는 얘기는, 매 년 방문하는 장기 체류자들이 많다는 것, 일 년 중 6개월, 건기 때만 일반에 문을 개방한다는 것, 그리고 개발을 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우리 옆 텐트는 갓 결혼한 서양 부부였다. 텐트 사이트는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이게 내가 내심 바라던 바로 그런 곳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기대와 달리 낙담스럽거나,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멋진 곳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기대 수준에 딱 알맞는 장소는 생각 이상으로 적었다. 나는 여기에서 아이와 스노클링을 하면서 쉴 생각이다.


얕은 해변에서 아이와 아내에게 스노클링을 가르쳤다. 아내는 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아이는 금방 배웠고 망그로브 숲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물고기를 쫓았다. 휴대폰 방수팩에도 불구하고 쓸만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놀기 바쁘니까.


소울이는 해변을 사랑했다. 산호사에서 뒹굴고, 밀물에 몸을 맡기고, 썰물에 해변 멀리까지 걸으며 게와 망둥어와 갖가지 신기한 해물을 '발견'했다.


아침 식사 1시간, 점심 식사 1시간, 저녁에는 서너 시간 문을 여는 매점과 식당. 


식당의 각 끼니 때 세트 메뉴는 미리 주문을 해둬야 한다. 우리 식구는 두 번 디너 세트 메뉴를 예약했고 음식은 꽤 먹을만 했다. 두당 250B, 아내와 나만 주문해서 500B에 세 식구가 배불리 먹었다.


아이스 박스에서 차갑게 식힌 맥주와 음료수를 곁들여... 식당 한켠에는 50B 짜리 닭다리 튀김과 상당히 맛있는 70B짜리 솜땀을 팔았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간 망그로브 숲의 뿌리


놀랍게도 산호가 살아나고 있다! 대략 12년쯤 나는 태국에서 산호의 절멸을 목격했다.


식당의 아침식사. 숯불 토스터기. 설탕과 버터와 잼은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


딸애는 해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오전에 스노클링 투어를 떠났다. 9am에 시작해서 12am쯤 끝난단다. 롱테일 보트를 타고 작은 섬 부근에 정박. 애와 나는 바다로 뛰어 들었다. 살아나기 시작한 산호 사이로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볼륨 댄스를 추듯 부드럽게 미끄러져 갔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내 등짝을 당기는 손길에 수면으로 얼굴을 드니 창백하게 질린 딸애가 배가 저 멀리 가 버렸다고 말한다.


우리를 내려준 배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200m 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애가 무서워해서 배로 가려고 하는데 자꾸 고개를 들어 수면에서 어푸어푸 거리거나 내 손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 와중에 조류를 타고 천천히 흘러가는 배와 우리 사이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는 아이를 끌고 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손을 흔들어 배를 불렀지만 이미 너무 멀어져 일렁이는 파도 속에서 흔들어대는 우리 손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는 점점 더 겁에 질려 울상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나마 가까운 바위 투성이 해안으로 향했다. 조가비가 날카롭게 박혀 있는 바위 위로 아이를 올렸지만 내가 올라가긴 좀 어려웠다. 간신히 바위에 올라섰지만 이미 조가비가 다리와 손바닥 여기저기 살을 베었다. 내 발바닥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고 아이는 더더욱 공포에 질려 울먹였다.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올 꺼에요. 


손을 흔들고 소리쳤다. Help me! 아이가 따라 했다. Help me! 5분 쯤 그러고 있으니 멀리 있는 배 중 한 척에서 사공이 우릴 알아차리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다시 바다로 뛰어 들었다. 배는 높은 파도 때문에 접안할 수가 없어서였다. 아참 아이가 무서워 한 것을 배가 너무 멀리 떨어진 탓도 있지만 얕은 바다와 달리 여기는 파도가 높아서인 탓도 있었다.


무사히 배 위에 올라왔고 조금 있다가 다른 일행들도 배 위로 올라왔다. 모두 핀을 챙겨 왔다. 핀을 대여해서 가지고 올 껄 하고 후회했다. 핀이 있었으면 소울이를 데리고 배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었을텐데... 한 친구가 대략 1m 길이의 상어를 봤다고 흥분해서 말했다. 혹시 내 피 때문일까?


다음 스노클링 포인트로 이동했다. 아이는 파도가 높은 그 곳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전히 조가비에 베인 발의 상처에서 피가 질질 흘러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30분 쯤 다른 사람들이 자맥질을 하며 스노클링을 즐기는 동안 배안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내 뒷 자리에는 높은 파도가 무서워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남녀 젊은이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아이에게 스노클링에 대한 안 좋은 트라우마를 심어준 것이 아닐까? 그게 걱정되었다. 왠 걸?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는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앞 바다에서 신나게 돌아다닌다. 


딸애 디즈니 공주님들 방수 밴드에이드로 도배한 한쪽 발. 다른 발도 저만큼 밴드에이드를 쳐발랐다. 내 처지가 좀 한심해 졌다. 발바닥, 허벅지, 손에 난 상처 때문에 기대거나 걷기가 힘들다. 어처구니 없어 웃음만 나왔다. 여기 와서 아침 저녁으로 신나게 스노클링을 하자는 계획은 반 나절 만에 날아가 버렸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텐트 앞에 설치해 둔 해먹. 내가 누워있지 않은 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공공해먹이 되었다.


아내가 내 사진을 찍었다. 앞바다에서 딸애가 놀고 있고 난 저러고 뭘 읽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가 깨어서 읽다가 다시 잠이 들길 반복... 원숭이가 식당에서 식사중인 사람의 달걀을 훔쳐갔고, 그 원숭이가 누군가의 콜라와 먹거리를 훔쳐 나뭇가지 위에서 먹고 남은 찌꺼지를 아래로 던진다더라. 텐트에서 음식을 훔치는게 아마도 사람이 아닌 저 원숭이였지 싶다. 원숭이는 돈에 관심이 없으니까.


함께 꼬 쑤린에 도착한 한국인 내외 중 남자는 빅뱅이론의 레너드를 닮았다. 섬에는 샐든을 닮은 친구도 오락가락했다. 해먹에서 한가하게 흔들리며 잡지 따위를 보는 동안 아내나 한국인 내외 중 여자는 먹거리를 교환하면서 여행할 때 짐만 되는 남자들에 관한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여자들이란... 


아침 산책중, 고운 산호사가 깔린 해변에 게 다리 두 쪽만 남아 있었다. 산새가 게를 잡아 먹은 흔적이었다. 이 해변에는 소라게가 엄청나게 많다. 상어도 돌아다니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게도 있고 별별 물고기들이 해변가 근처에서 어슬렁거렸다.


섬에서 잠을 잔 지도 이틀째.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 오후 배를 타고 쿠라부리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환대해 주는 여행사에서 샤워를 하고 방콕에 숙소 예약을 했다. 아내 주장대로 이번에는 1650B 짜리 호텔로 간다. 예약은 수월하게 끝났다. 


여행사 직원이 우리 버스표를 미리 예약해 주고,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었다. 버스표 예약하고 수수료를 챙긴게 아니라 예약 대행을 무료로 해 준 것. 저렇게 영업하니 매년 단골이 생길 수 밖에. 다음에 쉬러 온다면 다시 이곳에 들를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무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오고 싶은 곳이다.


이번 밤 버스는 VIP, 춤폰의 대규모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뻐 능과 VIP 버스는 티켓에 저녁이 포함되어 있다. 간단한 간식꺼리와 물을 나눠주고, 하룻밤 숙박비도 절약하게 해 준다. VIP 버스는 과연 편안했다. 


태국에 오면 맨날 쌀국수만 먹어대고 망고스틴에 집착하는 아내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소개해 줬다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보람스럽다. 


오전 5시 방콕 남부 터미널 도착. 11시 이전엔 체크인이 안 되니 미리 가 있을 수는 없고 방콕 근교 투어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담넌 싸두악 수상시장에 가서 시간을 때우리고 했다. 플랫폼에서 엔진을 공회전 시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담넌 싸두악 행 버스에 올랐다. 요금은 두당 73밧, 아이 요금은 받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태국 여행하면서 받아본 가장 긴 버스표를 받았다.


두 시간 가량 졸면서 버스를 탔다. 해가 떠오를 무렵 피어오르는 낮은 안개 위로 야자수가 마치 신기루처럼 평원에 둥실 떠서 흘러갔다. 


세 식구가 배 한 척 전세내려니 800B을 부른다. 아내가 500B 까지 깎았지만 아내가 협상에 별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 기억에 두당 150B 정도 였으니 500B이면 뭐 그냥 수긍하고 말자.


9시 무렵의 수상시장에는 별로 배가 많지 않았다.


80B 가량 하는 망고 라이스를 사서 아내에게 맛을 보여줬다. 입 짧은 것은 두 모녀가 비슷한데 아내는 딸애가 음식을 잘 안 먹는다며 맨날 자기 가슴을 쳤다. 내가 보기엔 아내도 만만치 않았다. 망고 라이스가 맛이 없다니, 참 까다로운 입맛의 모녀다.


한 시간 가량의 수상시장은 예상대로 재미가 없었다. 관광객이 관광객을 구경하러 가는 곳이랄까? 암파와는 여기보다 좀 나으려나? 이번 여행에도 암파와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가지 못한다. 


방콕으로 돌아오는 편은 100B 짜리 롯뚜(미니버스)를 탔다. 1시간 10분이 채 안 되어 아눗싸와리 롯뚜 터미널에 도착. 호텔은 롯뚜 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이 안 걸리는 곳. 체크인 하고 잠깐 눈 좀 붙이며 쉬었다. 모녀는 잠이 들었고 나는 태블릿에서 크레마를 띄워 얼마 전에 구입한 소설을 읽었다. 크레마는 언제봐도 참 거지같은 앱이다.


내일 밤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오늘과 내일 오전엔 그래서 쇼핑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난 8일 동안 여행하느라 바빴다. 모녀를 데리고 걸어서 월텟 옆 BigC로 향했다. 아내는 빠두남 시장을 본체만체 지나쳤다. BigC에서 한국에 가져가 먹을 것 따위를 잔뜩 사고 아내는 심지어 호텔에서 먹겠다며 두리안까지 샀다. 호텔에서 두리안은 갖고 들어오지 말라는 사인을 못 봤단다. 어이구...


BigC에서 쇼핑만 하는데 거의 3시간을 보내고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는 씨얌까지 걸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 아홉시. 모녀를 데려다 놓고 보니 정작 맥주 안주로 먹을 것이 없어 아눗싸와리 쪽으로 걷는데, 문득, 숙소로 바로 가지 말고 매 번 방콕을 방문할 때면 들르곤 하는 섹소폰에 갈까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이 시간이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할텐데... 하지만 아내와 딸을 내버려두고 나만 갈 수도 없으니... 오징어 꼬치를 사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내는 오징어 꼬치를 처음 먹어보는 것 같다. 아내도 나 못지않게 태국을 자주 방문했는데 어쩌면 식생활에서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 까오만까이 처럼 값싸고 어디에서나 흔한 음식조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아내가 신기했다. 


다음 날 11시 무렵에 체크아웃 하고 짐을 호텔에 맡기고 씨얌에 왔다. 아내는 쇼핑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명품을 보는 눈도 없다. 무작정 시얌 부근의 백화점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뭐라도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돌아다니는데, 당연히 성과가 있을 리가 없었다. 방수백 하나 달랑 건졌다.


방콕 번화가의 백화점 1층 무대에서 고산족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자는 자선 바자회가 열리고 있었다. 동갑내기 태국 아이.


'We need reform before election' 태국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자니... 귀찮다. 관두자.

이 시각 무렵 바로 윗 거리에서 폭탄 테러로 어린이 둘이 사망했다. 


아내 수준(?)에 맞춰 MBK에 갔다. 맛있게 먹고, 배불리 먹고. 가열차게 쇼핑도 하고.


시간이 되어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고 바로 그 앞에 있는 파야 타이 역으로 향했다. 공항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인데 아내더러 먼저 역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고 아이와 마지막으로 수박쥬스와 꼬치를 먹어보자며 길거리 노점을 찾아 다녔다. 일요일이라서인지 그 많던 노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섭섭하지만 발걸음을 돌렸다.



파야타이에서 city line을 타면 두당 45B. 태국에서 지금까지 찾은 돈이 모두 30000B, 남은 돈이 1150B 이었는데 city line 표를 세 장 끊고 나니 1000B 짜리 지폐 한 장과 각각 10B, 5B 동전 하나 씩이 남았다. 완벽한 예산이었다. 


수하물을 붙이려고 배낭 무게를 재보니 두 배낭을 합쳐 15Kg. 사실 나 혼자 였다면 이것보다 짐을 절반 가량 더 줄였을 것이다. 귀항편이 지연되었다. 비행기는 10pm 뜨려던 것이 1am으로 밀렸다.


항공사에서는 지연 이유로 250B 짜리 식당 이용 바우처를 두당 1매씩 제공했다. 우리 세 식구 것을 합쳐(750B) 피자 컴퍼니에서 피자와 샐러드와 치킨을 시켜 먹었다. 나는 공항 라운지에 가서 음료수 몇개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나와 모녀를 먹였다. 아내와 나는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나아진 것 없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지 지연 사유는 강한 맞바람 때문이란다. 그 시각대에 한국 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중 결항편은 우리가 타는 그 한 편 뿐이었는데, 내 생각에는, 연료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지연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매우 피곤한 상태. 한국에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공항에서 씻고 사무실로 곧바로 가려고 했는데, 아뿔사, 바람막이 점퍼를 수완나품 공항에서 시간 보낼 때 그 자리에 두고 왔다. 그리고 샤워 좀 하려고 보니 출국장에는 priority pass를 사용할 수 있는 라운지가 보이지 않았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꾀죄죄하고... 할 수 없이 집에 들러 샤워하고 출근해야겠다.


방콕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천공항에서 아내와 나는, 겨우 10일 여행했을 뿐인데 어째 한 6개월 장기여행하다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공감했다. 하늘이 뿌옇다. 나라 꼴도 그랬다.


내 몸은 대충 이해한다. 한국 음식을 먹고 설사할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 


정리


  • 여행 경비 총계: 269만원 (9박 10일)
  • 항공권을 제외한 1일 생활비: 29000B/10일 = 2900B (9만 6천원/일)
  • 항공권: 인천-방콕 3인 138만원, 치앙마이-방콕 3인 21만원
  • 현지에서 찾은 돈: 30000B (997,002원, 33.23 won/B)
  • 숙박비: 3750B (3박) 
  • 교통비: 3557B 
  • 투어비: 13800B
  • 식비 및 쇼핑비: 789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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