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아내와 태국에 가자고 약속했고, 올해가 결혼 10주년이라 휴가를 내서 10일 동안 태국을 여행했다. 결혼 10주년, 아내 생일, 발렌타인 데이, 딸애 봄방학. 뭐라도 액션을 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항공편은 아내가 마련. 이스타 항공,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포함해 두당 대략 50만원 가량, 3인 150만원. 비슷한 라인을 운영하는 제주 항공보다 이스타 항공이 조금 더 나은 점은 기내식. 이스타 항공의 기내식은 달랑 오이절임 하나를 속에 넣은 김밥 도시락. 


두꺼운 옷을 코트룸 서비스에 맡길까 하다가... 그다지 부피가 크지 않아 배낭에 패킹했다. 아내것과 내 배낭을 수하물로 보냈는데 합쳐서 12kg 가량. 이스타 항공은 두당 15kg 까지 수하물로 보낼 수 있다.


비행기가 착륙. 수완나품 공항에서 첫번째로 한 일은 ATM으로 돈 찾기. 얼마 전에 씨티은행의 국제현금카드 수수료가 많이 올랐다. 그래서 여행 오기 전에 은행에 들러 현금 카드를 새로 발급받았고 EXK 연동을 신청했다. ATM에서 20000B를 현금으로 뽑으니 수수료가 고작 500원! 와우!


그 다음에, AIS에서 판매하는 299B 짜리 1GB data SIM을 둘 구입해서 하나는 아내 휴대폰에, 하나는 내 휴대폰에 꽂았다. 개통은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이 카드는 1주일 동안 3G로 1GB data를 사용할 수 있고 무료 통화를 85B 제공한다. 1GB 데이터를 다 쓰고나면 속도가 느려지지만 그래도 데이터 통신이 가능했다. 여행 8일차 되는 날, 잔여 데이터가 700MB 가량 남아 있었지만 얄짤없이 통신사가 데이터 통신을 끊어 버렸다.


공항에서 카오산으로 가는 길: 3인 기준으로 (ARL 45B + 버스 30B) * 3 = 225B인데 뭐하러 밤 11시가 다 된 시각에 배낭을 메고 애 데리고 고생할까 싶어 400B 짜리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여행을 한 1주일 한 기분이라고 말하니 아내가 공감한다. 매년 어떤 식으로든 해외여행을 하다보니 여행이 반쯤은 생활의 일부인 것 처럼 여겨진다.


2년 만에 방문한 카오산 로드. 여전하다. 카오산에 도착하자 마자 아내는 팟타이를 먹고, 예전에 태국에 온 경험이 있는 아이가 수박쥬스를 기억해서 그걸 사러 거리를 걸었다. 


홍익인간 지기와 안면이 있는 아내가 거길 통해 숙박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보통 나 같으면 도미토리에서 묵지만 3인 도미토리 비용이 600B 인데, 에어컨 잘 나오고 화장실 딸린 트리플 룸이 800B. 아마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널찍한 스파르탄 더블룸을 주는 파아팃 거리의 피치 게스트하우스로 가거나, 삼쎈 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갔을 것 같다.


거의 십여년간 탈카오산을 부르짖었지만 카오산만한 곳이 없다. 이건 뭐 숙명같은 거랄까? 숙소에서 샤워하고 빈둥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문 연 식당을 찾다가 뿌라 쑤멘 거리에서 쪽을 시켜 먹고 홍익여행사에 들러 Siam Ocean World 표를 예약했다. 홍익인간 아저씨가 아내더러 오션월드에 왜 가냐고, 한국이 훨씬 낫다고 말했단다. 


택시 타고 싸얌으로 가려니 막힐 것 같고, 모처럼 방콕에 왔으니 수상보트를 타고 멀리 빙 둘러 가기로 했다. 파아팃 선착장에서 사톤 선착장 까지는 꽤 긴 거리였고, 거기서 BTS를 타고 싸얌 까지 갔다.


Siam Ocean World. 동남아시아 최대의 수족관은 아주 좋았다. 1200B 짜리 티켓을 여행사를 통해 구매하면 500B에 해 준다. 세 식구가 저녁까지 시간 때울 꺼리가 마땅치 않았는데 세 시간 보내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망고탱고에서 망고 아이스크림을 사 주려니 다들 싫단다. 망고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 망고 아이스크림보다 맛있는 것은 두리안 아이스크림인데, 이거 파는 데가 별로 안 보였던 기억.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보고 감탄했던 것이 십년도 더 전, 달랏의 시장에서 였다.



싸얌 스퀘어 부근, 내셔널 스타디움 역 앞에서는 Bangkok Shutdown protest가 한창 진행 중. 한국으로 치면 싸얌 인근은 서울광장 같은 곳이다. 'No more election, No more corruption'이란 문구가 곳곳에 보였고 사람들은 연설이 끝날 때마다 호각을 요란하게 불거나 손뼉 치는 소리가 나는 작대기를 흔들었다. 시위 현장 출입구에 보안요원들이 인원 통제를 하고 있었고 현지인들의 짐을 검사했다. 하지만 외국인은 반기는 미소와 함께 시위 장소로 마음껏 진입 가능했다. 


방콕 여행할 때 빨간 셔츠나 노란 셔츠는 입지 말란다. 이들은 말하자면 반탁신파인 노란 셔츠 쪽인데, 보시다시피 노란 셔츠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테러 염려 때문에 이들도 노란 셔츠를 안 입는 것 같다. 시위장 인근은 인파와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가판대로 북적였고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카오산으로 돌아와 밤 버스를 타고 치앙마이로. 여행자 버스 티켓은 두당 500B, 1박 2일 트래킹 티켓은 1300B. 뭐하러 이렇게 하냐 싶기도 하지만 이 더위에 북부 터미널에 가서 치앙마이 티켓을 사고 치앙마이 도착해서 아침에 문을 연 여행사를 찾아다니며 트래킹 예약을 하는 과정이 식구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기엔 뭔가 번거로웠다. 하여튼 치앙마이 행 여행자 버스에 올랐다.


새벽 5시 무렵 버스가 도착한 곳은 치앙마이 인근의 어떤 주유소 앞. 여행사 픽업을 기대했으나 썽태우 운전수는 서로 자기네는 픽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황당하달까. 구글맵을 살펴 보니 배낭 메고 터덜터덜 걸어서 10km 가까이 떨어진 시내에 가기엔 무리다. 어쨌든 시내엔 가야 하니 두당 60B 씩 내고(어린이는 40B?) 썽태우를 탔다. 자기들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세 이탈리아 처녀들의 길을 GPS로 찾아주고, 뉴욕 아가씨를 도와줬는데 아내는 우리 처지가 제일 한심한데 남들 돕기 바쁜 남편을 질타했다. 


썽태우 기사가 내려준 곳은 Nice guesthouse 앞. 영어가 안 통하니 썽태우 기사더러 뭐라 할 수도 없고 손짓으로 그가 가리키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서 우리는 트래킹 예약을 했는데 여기다 내려 주더라, 여기가 맞냐 하니까 어디서 트래킹을 예약했냐고 묻는다. 홍익 여행사 라니까 알았단다. 아홉시 무렵에 픽업이 올테니 그걸 타고 가면 된단다. 그리고 샤워장은 2층에 있으니 사용하란다. 참 마음에 드는 주인이다. 널직한 수영장이 딸린 게스트하우스도 좋아 보였다. 숙소 예약을 하려니 full이란다.  


샤워하고 짐을 맡겨놓고 성곽 안쪽의 북동쪽 게스트 하우스 밀집 지역을 한가하게 걸어갔다. 내일 계획은 트래킹이 끝나자 마자 방콕행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것. 아내는 사람 잡을 일 있냐며 치앙마이에서 하루 묵잔다. 그래서 아침을 먹을 식당을 찾을 겸, 게스트 하우스도 알아볼 겸 걷는 중인데 찾고자 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안 보였다.


치앙마이는 세 번째. 저번에 라오스 여행할 때는 님만헤만 부근의 우유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 묵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성곽 안쪽이 여전히 좋다. 아내는 여기서 며칠 묵었으면 바랬지만 우린 장기 여행자도 아니고 며칠씩 멍 때리면서 시간을 보낼만큼 여유도 없었다.


이 여행은 아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되었다. 고전적인 코스인 태국 북부에 갔다가 남부에 가는 것. 아내나 나나 트래킹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위해서 트래킹을 신청했다. 내가 트래킹을 안 하려는 이유는 뭐 별 건 없었다. 고산족을 관광 상품화 하고 코끼리를 괴롭혀서? 


트래킹 첫 코스는 이렇게 코끼리를 타는 것. 누구 말마따나 코끼리 먹이 주기 같았다. 아내가 기억하는 치앙마이 트래킹은 코끼리를 타고 강을 건너고 밀림 속을 걷는 것이었는데, 조그만 야산을 이렇게 코끼리 등짝에 편히 앉아 30분 가량 한 바퀴 도는 것이 다였다. 투어 맴버가 조촐해서 우리 가족 세 명과 한국인 대학생 두 명. 대학생들과 우리가 서로 사진을 찍어서 카카오톡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걷기 시작. 건기의 막바지라 떡갈나무 잎사귀처럼 보이는 낙엽이 잔뜩 쌓인 길을 헉헉 대며 올라갔다.


우리 가이드는 샘, 48세 였던가? 카렌족. 목 긴 카렌족 말고 그냥 카렌 족. 아이에게 낙엽 모자를 만들어 주더라. 애는 더운데도 씩씩하게 잘 걸었다. 


중간에 만난 폭포. 폭포 아래서 물을 뒤집어 쓰고 물속에 푹 담궜다 나왔다. 학생 중 한 명은 감기로 골골 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억지로 트래킹에 참가했단다.


10km 가량 걸어서 오늘 밤 묵을 카렌족 마을에 도착했다. 이 촌락은 15년 전에 버마에서 건너온 카렌족들이 만들었고 관광객을 받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안 되었단다. 


아이는 닭, 병아리, 풀어 키우는 돼지 새끼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먹이를 주고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흑돼지 잖아? 


아이가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을 때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가 장닭 한 마리를 가르키며 지금 모이를 주는 닭들 중 저 놈은 오늘 당신들의 저녁식사꺼리란다. 아이에게 알려주니 신이 나서 그놈에게만 모이를 준다.


화장실 겸 샤워실. 해가 져서 기온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샤워부터 했다. 샤워 꼭지가 달려있고 모터 펌프로 지하수를 끌어 쓴다니, 이 정도면 럭셔리 아닌가?


숙소. 매트리스를 깔았고 모기장을 쳐 놨다. GPS로 고도를 보니 1000m. 모기가 없단다. 저녁이 되자 기온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벼룩, 빈대류가 염려스러워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깔개와 역시 폴리에스테르제 침낭을 들고 왔다. 벼룩, 빈대로부터 자유로워 지려면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폴리에스테르로 도배하면 장땡이다. 


부엌


골골대던 젊은 친구에게 약을 줬었다. 아세트 아미노펜 계열의 타이레놀과 오래된 인연을 끊기로 하고, 이번엔 이부프로펜 계열의 '이지엔6'를 가지고 다녔는데, 약효가 신속하고, 아이 한테도 먹일 수 있으며, 부작용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저녁 먹을 무렵엔 젊은이가 기운을 차렸다. 트레킹 중 너무 힘들어 해서 샘이 오토바이를 태워 미리 마을에 보냈었다. 산속 깊은 곳이라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오토바이로 문명과 연결되었고 멧돼지에게 먹이를 줘서 집돼지로 키우던 수쳔년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았다. 다만, 화전은 안 했다. 


저녁을 먹으며 카렌족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별달리 새로운 얘기는 없었다. 아편 농사니, 카렌 반군이니, 미얀마에서 쫓겨나고 태국 정부에서도 쫓겨나고 유엔 캠프에서도 쫓겨나는 얘기들. 그런데 왜 소는 안 키워요? 뭐라고 그러는데 잘 못 들었다. 잠깐 빠져나와 어른들 얘기에 심심해 하는 아이를 데리고 어두운 길섶을 거닐며 은하수를 구경했다. 구글 별지도로 별자리 이름을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모닥불 피워놓고 고기 궈먹게 시장에 들렀을 때 삼겹살을 사올껄, 후회되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일찌감치 잠에서 깼다. 어젯밤에 8시에 출발하자고 말했다.


아침을 먹었다. 모이를 줬던 닭 요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사탕외교. 마누라가 고산족 준다며 집에 있던 사탕을 그러 모으더니... 샘의 딸 중 하나는 아파서 밤새 고생했다더라. 샘은 장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 모계사회였던가? 잊어버렸다.


대략 8km의 길을 걸어서 내려가는 도중 샘이 아내와 나를 위해 풀반지를 만들어줬다. 샘에게는 딱히 우리 부부가 결혼 십년차 기념으로 여행 중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풀반지를 재밌어 했다.


대나무 뗏목을 타고 내려오기. 물에 엉덩이가 잠긴 채 한가하게 40분쯤 떠내려 갔다. 바람이 불자 낙옆이 하늘에서 춤을 추며 떨어졌다. 나같은 어른이야 이런 트래킹이 많이 시시하지만 아이는 코끼리도 타고 뗏목도 타고 아빠와 여행하는 것이 신이 났다. 


아내는 젊은 친구들에게 여행 정보나 팁을 알려줬다. 그들더러 맥주를 사란다. 내가 사오려니 말리며 눈치 빠른 젊은 친구들이 싸가지가 있단다. 아내가 하는 꼰대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젊은 시절 돌아다닐 때 받은 은혜를 나이 들어서 젊은 여행자들을 돕는 것으로 갚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니 자기는 은혜를 입으면 그때 그때 바로 바로 갚았단다. 


치앙마이로 돌아와서 어제 예약해 두었던 호텔로 갔다.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무한도전의 메뚜기 아저씨를 좋아하며, 한국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어하는 아가씨가 리셉션에 있었다. 딸애가 수영장에서 노는 동안 벤치에 앉아 한가하게 책을 읽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거리로 나왔다. 


여행은 내게 영구적인 뇌손상에 버금가는 변화를 준다. 그것과 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약, 술, 실연 정도? 나열 가능한 항목 중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이 여행이다. 


야시장 까지는 걸어가기 애매한 거리라서 사원이나 돌자고 올드 시티를 한가하게 걸었다.


왓 쩨디 루앙. 아이에게 머리를 만지면 안 된다고, 왜 안 되는지 가르치고 와이도 가르쳤다. 태국도 많이 변해서 왠만한 시골이나 서비스 업종 종사자가 아니면 와이를 하지 않았다. 


왓 쩨디 루앙. 밤에 오니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죽은 선사의 밀납인형을 봉납당 문틈으로 구경했다. 부처와 마찬가지로 깨달은 자는 태국에서 존경받으며 그래서 그의 밀납인형을 만들고 인형 앞에 그가 죽으면서 남긴 투명한 사리 항아리를 진열하고 기복한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태국인은 점잖다. 그들이 서양인을 칭하는 파랑이란 단어에는 그런 점잖음과 다소의 모호한 경멸과 갖가지 향신료 같은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내가 까올리라고 말하면 친니를 대하는 태도와는 다른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중국인은 정말 많았다. 트래킹 중에 샘에게 중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오냐고 물으니 그들은 대개 치앙마이에서 머문단다. 적은 수의 중국인 배낭 여행자들이 산간오지를 방문한단다.


아내가 사원 관람이 진력이 났는지 나이트 바자에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야시장에 갔다. 돌이켜보면 나나 사원 관광을 좋아했지 아내는 좋아한 적이 없다. 야시장엔 볼만한 물건이 별로 없었다. 주말시장은 어제 끝났고 치앙마이의 나이트 바자는 십수년전의 팟뽕 야시장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패션프룻과 드래곤프룻을 헷갈려서 마누라가 엉뚱한 쥬스를 마셨다. 아이는 변함없이 수박쥬스로 배를 채웠다. 


이번 여행에서 계획, 기획, 숙소 예약, 일정,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내가 했고 아내는 주로 협상을 했다. 아내가 내게 여기서 택시값은 보통 얼마야? 물으면 적정한 택시값을 알려주고, 아내가 흥정하는 식. 


아내는 날더러 길치라고 했지만 나처럼 길을 잘 찾는 여행자는 지극히 드물다. 길에 관한 동물적인 감각이 있달까? 그래서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의, 무미건조하고 어디가나 똑같이 거지같은 도로에서는 길을 잃었다. 파리의 도로는 사선으로 비스듬히 누워있고 교차로 다섯 개 정도를 지나면 각 계산이 잘못 되어 옵티멀 패스에서 벗어나 어떤 식으로든 긴 우회 경로가 되어 버렸다. 문화예술의 도시인지 문화관광의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거지같은 도로 계획이 수백년째 이어지는 걸 보면 프랑스인들의 두뇌 구조가 의심스러워 진다. 반면 바라나시는 길의 접속과 분기가 예측 가능했고 거리마다 미묘하게 특색이 있어 분류가 가능했다. 


아내는 아마도 라오스 일주를 할 생각이었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늦은 저녁 무렵에 라오스 국경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여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려고 했다. 나와 딸은 따로 여행하면서 남부의 한적한 시골 해변 마을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방콕에서 헤어졌다가 방콕에서 만나 귀국하는. 아내와 나는 여행 하는 스타일이 워낙 다른데다 피차 개성이 강해 같이 다니면 보통 티격태격 싸움이 났다. 


대부분 만실이라 한참을 여기 저기 걸어다니며 간신히 숙소를 구했던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나이  든 한국인 부부가 값싸게 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이라며 까미노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라오스 여행 중 빈대에 심하게 당했고 한쪽 눈을 다친 남편을 아내가 보살피고 있었다. 부부의 말이 계기가 되어 작년에 까미노를 걸었다. 숙소에서 그날 밤 나는 주인장과 라오스의 땅 값, 사업 아이템 따위를 늦은 밤까지 얘기했고, 그 다음 날 몇 명의 여행자들을 그러모아 썽태우를 임대해 폭포를 구경하러 갔다. 폭포에서 한 친구가 거머리에 피를 빨렸다. 힘겹게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내고, 일행 중 한 명이 호기심에 통통해진 거머리에게 콜라를 부었더니 먹은 피를 다 토해내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콜라에 이런 효능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 콜라에 말라죽은 거머리  생각이 났지?


아침을 먹으러 들른 식당. 어제, 오늘 두 끼를 여기서 먹었다. 따지기 좋아하는 마누라가 주인장에게 쪽에 계란을 넣었느니 마느니 옥신각신 하는 동안 슬그머니 애를 데리고 나왔다. 


치앙마이 공항 가는 길. 썽태우 적정가는 60B라고 생각했지만, 100B 달라는 거 80B 주고 탔다.  


숙소에서 전날 밤 아내 얘기대로 고생해서 버스나 기차 타고 방콕에 가지 않기로 하고 녹에어의 비행기를 예약하려고 했다. 작년까지는 별 문제 없었던 기억인데, 결재 창에 갑자기 한국 페이지가 나타나 인증서 암호를 요구해서 결재가 안 된다. 망할 대한민국 정부다. 세금이 아깝다. 하는 수 없이 회사 컴퓨터에 원격 접속해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다. 두당 1650B짜리 항공권. 


방콕까지는 1시간 비행. 737-800. 빵과 음료수를 줬다. 터불런스 때문에 비행기가 요동을 치고 착륙을 참 지지리도 못 했다. 태국인들은 쿨해서 스페냐드처럼 착륙에 성공했다고 박수를 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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