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주 자전거 하이킹

'아름다운 폭풍의 계절, 관광은 관광객에게 맡기고 자전거에 몸을 실은 채 씨원한 바람 맞으며 제주도 해안을 돌자' 라는 생각으로 제주 자전거 하이킹을 생각했다. 씨원한 비바람, 죽도록 맞았다. 아드레날린이 솓구치던 나날들이었다. 9/13~9/16 사이의 공교로운 제주 여행기는 어떤 야한 싸이트에서 제주 하이킹 사이트를 소개한 것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http://www.chejuhiking.co.kr

김훈이 지은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의 소갯말에 이런 것이 적혀 있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빈곤하고 보잘 것 없는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후, 두말 않고 그 책을 샀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다.

9/13 12:00

아침부터 비가 올 기색이었다. 전날밤엔 부러 술을 자제했다. 술이 들어가면 근육이 뻑뻑해서 잘 움직이지 않으니까. 아침에 깨어났을 때 짐을 챙겼다. 여벌의 티셔츠, 반바지 각각 한 벌, 침낭 하나, 알콜 램프, 칼, 룽기, 모자 하나, 수건 하나, 칫솔, 치약, 비누, 오버 트라우저 한 벌, 비상식량으로 쵸코바 두 개, 혹시나 해서 판초우의, 그정도였다. 그런데도 짐이 무거웠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 사먹고 램프에 넣을 알코올을 사러 돌아 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다. 늦기 전에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칼기보다 스튜어디스가 예쁘고 비행기가 깨끗하다는 이유로 만원 더 주고 산 아시아나 항공권을 잘 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유도, 맥주도 없었고 고작 캔디 하나를 더 줬다. 팜 파일럿을 꺼내들고 소설을 읽었다. 5400m까지 올라가자 우중충한 지상과는 달리 솜덩이같은 구름 위로 밝은 해와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9/13 16:00

제주항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열대 수목의 허리가 휘어졌다.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내게 제주도는 그닥 이국적인 곳이 아니었다. 모자를 쓰고 오버 트라우저를 걸쳤다. 그리고 자전거 가게에 전화했다. 텐트와 자전거를 빌리고 싶다고 하니 공항까지 픽업하러 나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항 내의 관광센터에서 렌트카 회사에서 만든 듯한 관광지도를 한 장 가져오고 담배 한 대 피우며 여정을 짚어 보았다.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태풍 사오마이는 아마도 오끼나와를 거쳐 동해안 쪽으로 빠질 것이다.

2000/9/16 태풍 사오마이는 동해안을 거쳐 빠져 나갔다. 그 빌어먹을 것이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현금지급기에서 10만원을 뽑아 주머니에 구겨 넣어두었다. 봉고가 왔고 자전거 가게로 안내해 주었다. 타고 갈 자전거를 점검했다. 자전거를 타 본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작년 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이국을 돌아다닌 기억이 얼핏 머리속을 스쳤다.

마침 일정을 다 마친듯한 두 사람이 비닐로 된 비옷을 걸치고 가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 돌았어요? 라고 물으니 부끄러운 듯이 성산에서 하이킹을 포기하고 버스 타고 돌아왔단다. 비바람 때문인 듯 싶었다. 자전거 가게 주인 아저씨는 추석이 끝나고 10월 초 무렵까지 비수기라고 말했다. 비수기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배낭 커버로 배낭을 싸고 텐트를 달라고 하니 이런 날씨에 야영은 불가능하다고 말렸다. 그래도 달라고 우겼다. 아줌마는 텐트값을 받지 않았다. 텐트를 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주인 아저씨는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었다. 태풍 때문에 완주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라고, 그럼 데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전화할 생각은 없었다. 태풍은 내일쯤 남쪽을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다섯 시, 가게를 나오면서 다짐하듯이 인사했다; 완주하고 오겠습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바람을 등지고 순조롭게 출발했다. 추석 연휴 때문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시내를 빠져 나와 공항을 끼고 돌아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마침 착륙하는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갔다. 비가 몹시 내렸지만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는 풍광이 볼만했다. 간간이 어디로 갈지 길에서 우왕좌왕하며 무작정 헤메는 신혼부부의 렌트카가 보였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어촌을 따라 좁은 골목길로 나다녔다. 길이 아주 쉬워서 해안을 끼고 돌다가 내륙 쪽으로 돌아서면 제주 일주도로인 12번 국도가 나타나고는 했다. 여행 내내 12번 국도를 타고 다니게 될 것이다.

비는 멈출 기색이 없이 줄곳 내렸고 바람도 자꾸 거세졌다. 태풍인가? 길다란 오르막길을 올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가파른 내리막 경사길에서 자전거 바퀴가 도로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중간 쯤에서 왼쪽으로 크게 꺽어지는 도로였다. 바퀴의 휠에 밀착된 브레이크의 고무가 비명을 질렀다. 양쪽 브레이크를 모두 잡았지만 자전거가 미끄러지며 좌우로 요동을 쳤다. 페달을 박차고 펄쩍 뛰었다. 뛰면서 '나는 닭이다' 라고 생각했다. 자전거는 도로의 가이드 펜스에 맞고 핑그르르 돌았고 내 몸뚱이는 닭처럼 땅바닥으로 고꾸라지면서 주욱 밀려나갔다. 몸이 두세바퀴쯤 구르다가 중앙선을 침범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나는 도로의 왼쪽에 와불상처럼 누워있었고 자전거는 오른쪽에 널부러져 있었다. 다행히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일어서보니 특별히 뼈가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비 때문에 마침 입고 있었던 방수의가 약간 찢어지고 왼쪽 팔꿈치와 왼쪽 엉치뼈가 도로에 미끄러지면서 긁혔다. 반청바지가 찢어져 구멍이 뚫렸다. 피부가 벗겨진 팔꿈치 상처에서 피가 맺혀 뚝뚝 떨어졌다. 도로변으로 흐르는 빗물에 상처를 씻었다. 상처가 안 아픈 것을 보니 체내의 비상 경보체계가 제대로 동작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 찌든 허약하고 병신같은 몸뚱이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쓸만한 듯 싶다. 빗줄기 덕택에 휠에 빗물이 묻어 제동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자전거를 점검해 보았다. MTB라서 그런지 휠도 휘지 않았고 핸들도 꺽이지 않았다. 기어도 멀쩡했다.

천천히 가자. 해안의 촌락으로 들어서자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태풍이 불어와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해안을 따라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두어번 파도를 뒤집어 쓰니까 방수의도 쓸모가 없었다. 쫄딱 젖었다. 안경에는 바위에 부서진 파도의 포말이 내려앉아 종종 시야가 희뿌옇게 변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12번 국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계속 논밭만 나왔다.

날이 일찌감치 저물어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허허벌판의 중심이다. 사방에서 바람이 밀어닥치고 전신주의 전선을 통과하면서 찢어졌다. 허공에 비명 소리가 남았다. 마파람 탓에 페달에 힘을 주어도 자전거가 나가지 않았다. 기를 쓰고 페달을 밟았다. 결국 페달의 플라스틱 발판이 한쪽 방향으로 부러졌다. 바람과 비가 교대로 나를 우롱했다. 첫날부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에 12번 국도가 보였다. 거리는 50여 미터가 되지 않았지만 포장이 되지 않은 자갈 도로라서 20분 이상이 걸린 것 같다. 이번에는 도로를 따라 제대로 갈 작정이었다. 도로에는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웠고 인가의 불빛마저 보이지 않았다.

저녁 7시,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것은 이쯤 해두고 해수욕장을 찾아 보았다. 예정으로는 그곳 야영장에서 야영 생각이었다. 해수욕장은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고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너비 20여 미터 정도 되는 해변 끝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해수욕장 옆의 야영장에는 소나무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귀곡성처럼 음산하게 들려왔다.

날이 어두워 텐트를 치기가 힘들 것 같아 근처 민박집을 찾아 돌아다녔다. 쉽지 않았다. 무작정 집의 문고리를 두들겨 이집 저집을 전전하다가 간신히 하나 발견하고 들어갔다. 25000원을 달랬다. 비수기니까 15000에 해달라고 말했다. 20000원에 해주겠다고 말했다. 15000원이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비바람에 지쳐 다른 곳을 찾아볼 형편이 아니어서 불안했다. 주인 아줌마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흔쾌히 수락하고 이불을 가져다 주었다.

생각해 보니 하루종일 컵라면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근처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아 민박집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 수퍼에서 라면과 맥주 한 캔을 사왔다. 아줌마가 식은 밥과 김치를 가져다 주었다. 라면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보긴 처음이다.

밥먹고 짐을 정리했다. 오는 길에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로 젖은 옷들은 선풍기 바람에 말렸다. 배낭은 젖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기 전에 파일럿으로 소설을 마저 읽고 잤다.

9/14

눈을 떴다. 사방에서 덜커덕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문틈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커튼을 들춰보니 밖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 기온이 대략 20도 안팎일텐데 바람 때문인지 생각보다 서늘했다. 그나저나 태풍은 거의 지나갔나? 비가 안 오네?

짐을 자전거에 싣고 물병에 수돗물을 채우고 복장을 단단히 여민 채 도로로 나섰다. 제주도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식수로 사용한다고 어젯밤에 주인 아줌마가 자랑했다. 히죽 웃고 수돗물을 마셨다.

7시 밖에 안되어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한림공원이라? 공원 따위는 흥미가 없어 들르지 않았다. 어제는 용두암도 그냥 지나쳤다. 배가 고팠지만 뭘 사먹을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해안 도로 곳곳에는 추석 연휴 탓인지 태풍 탓인지, 아니면 비수기라서 그런지 평소라면 쥐치와 한치회를 파는 작은 방갈로같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놓았다. 비상식량으로 한두 개 준비해 온 초코바를 꺼내 씹어 먹었다.

간간히 비가 오다 멈추다가 했다. 기온은 그럭저럭 따뜻했지만 바람은 어제보다 심했다. 해안도로랍시고 따라간 도로는 종종 이유없이(?) 끝나기 일쑤였다. 비가 왔지만 자전거를 멈추고 해변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느적느적 늦장을 부렸다. 풍경이 삼삼하다.

어째어째 해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야트막한 산 정상이었다. 산 기슭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여자가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텐트가 있었다. 제주도의 대부분이 화산을 중심으로 한 평야이기 때문에 바람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이래저래 개떼처럼 돌아다녔고, 바람이 마치 고인 것처럼 한 곳에서 머물러 소용돌이 치는 곳을 바람코지라고 불렀던가?

수월봉, 바다 건너편으로 차귀도가 보였다. 해안에서 대략 100-200 미터 거리 밖에 안되어 보였다. 제주도와 그 작은 섬 사이로 큰 파도가 마치 마녀가 사틴 드레스를 펼치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듯 우르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곳곳의 어촌에는 배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태풍은 이미 지나가고 그 흔적만 남아 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아닐까?



날이 맑다면 저녁 때 석양을 보기 좋을 것 같다. 비록 70여 미터 밖에 안되는 야트막한 오롬이지만 전망이 좋았다. 내가 바라본 곳은 서쪽이었고, 그리로 해가 질 것이다.

길을 따라 내려와 논밭 사이로 지나갔다. 흙은 검고 작물은 이미 수확했는지 밭에는 이랑질만 되어 있었다. 왠일인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줄곳 진행해도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촌락의 검은 논밭 사이로 구비구비 뻗은 한적한 농로와 촌락의 을씨년스럽게도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골목길을 더듬어가는 짓은 그만두고 다시 12번 국도로 돌아왔다.

도로에는 맞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경사가 4- 5도 정도 되는 내리막길에서조차 자전거가 가속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나아가질 않고 뒤로 밀려갔다. 평지에서 가만히 있으면 맞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스멀스멀 뒤로 기어갔다. 페달을 밟아야 했다.

오르막길에서 닥친 맞바람은 이중으로 피곤했다. 페달을 밟다가 지치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갔다. 그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구름이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검은 구름이 밀려오면 어김없이 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구름이 다 지나가면 갑자기 햇빛이 쨍쨍 내리쬐었다. 짐칸에 묶어둔 방수의를 풀어 입었다가 다시 벗어 짐칸에 묶기를 반복했다. 돋아나는 땀 때문에 햇볕 아래에서 방수의를 입고 있기는 힘들었다.

간간히 읍리 정도의 거리가 보였다. 노변에 늘어선 가게들은 강원도 산골의 전형적인 촌락의 단층짜리 건물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제주도의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개발이 되지 않았던가 주요 산업이 농업과 수산업, 그리고 관광업이 전부인 점도 강원도와 닮았다. 관광산업은 강원도를 극도로 망쳐놓았다. 제주도 인심이 좋다던데, 제주도만 좋을라고. 한국인들은 어디가나 인심이 좋다.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같이 따라와 주고, 물과 음식을 나누어 준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쳐다보면 마주 쳐다보았다. 그다지 웃음이 없는 편이라 그들에게 표정을 지어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미소를 지었다.

미친년 지랄하는 것 같은 날씨였다. 오르막, 내리막, 어느 경우에나 강한 맞바람, 그래서 다리에 차츰 알이 배기기 시작했다. 바람의 저항이 이다지도 거셀 줄이야... 지쳐 쓰러질 지경이 다 되어서야 문을 연 구멍가게를 발견해 우유와 빵을 각기 두개씩 사서 가게 한켠에 앉아 말 그대로 게걸스럽게 우걱우걱 1분 만에 먹어치웠다.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여긴 늘 바람이 이렇게 쎄게 불어요? 아줌마가 태풍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풍은 어떻게 되었죠? 제주도 남쪽 바다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바로 여기군요. 고개를 끄떡였다. 왠지 재수가 없는 것 같았다.

한림에서 중문까지가 가장 힘들다는 코스였다. 대부분 이 코스에서 기진맥진해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거나 자전거를 대여해 준 가게에 전화해 포기하겠노라고 항복선언을 할까말까 망설이게 되는 코스, 아마도 전날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 근육이 뻣뻣하게 굳은 데다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다보니 근육이 피로해져 견디기 힘들어진 탓일게다.

면밀히 검토를 거듭해 제주시 서쪽에서 시작해 남쪽의 서귀포를 거쳐 서쪽의 성산 일출봉을 지나 다시 제주시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처음 힘들고 나중에는 편하게 가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듣자하니 그 코스면 맞바람 안 맞고 갈 수 있다고도 했다. 12번 도로의 일주거리는 대략 180km 안팍, 해안도로나 이것저것 관광지를 둘러보며 다닌다면 220km 정도, 자동차로는 서너시간이면 돌겠지만 시간당 12km씩 잡아서 자전거로는 18시간 가량 소여된다. 하루에 6시간씩 잡으면 3일 정도의 거리가 되는 셈. 첫날은 한림까지, 둘째날은 중문, 세째날은 성산까지, 네째날은 제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아놓았다.

오전 중으로 중문에 도착하면 오후 내내 '해수욕'을 즐기기로 했다. 간간히 반복되는 강한 비바람을 헤치고 정작 중문에 도착하고 보니 중문 관광단지로 이어지는 심상치 않은 내리막길에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리막이 이렇게 급하면 올라올 때는 힘든 법, 길을 잘못 들어 하얏트 호텔과 신라 호텔, 롯데 호텔 구경은 신나게 했다. 하얏트 호텔의 직원들에게 해변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냐고 물었더니 폐쇄되었다고 한다. 한 친구는 폐쇄되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듣자하니 이상해서 그들 말을 무시하고 다시 기어올라갔다.

두세 번쯤 오르락 내리락 하니까 파김치가 되어 중문 관광 단지 입구의 소공원 앞 수퍼에서 우유 하나 사 먹고 오버 트라우저를 맞은 편 벤치에 펼쳐놓고 이쪽 벤치에 누워 헉헉거렸다. 다시 몸을 일으켜보니 샌달과 담배, 파일럿, 오버복 등등이 공원 저쪽으로 낙엽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바람은 아침부터 오후가 된 지금까지 꾸준히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더 나아가려니 힘들고 날도 더워 여미지 식물원에서 시간을 죽였다. 이런저런 열대 식물들이 있었지만 딱히 흥미를 끄는 식물이라고는 여인초 하나 뿐이었다. 일정한 방향으로 자라기 때문에 여인초가 자라난 잎새의 방향으로 여행자들이 방위를 알 수 있고, 그 잎둥지를 뜯으면 물이 나와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실용적인 식물이다. 그것 외에는 몇가지 유실수를 제외하고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꽃들은 화려했지만 왠지 씁쓸해 보였다.

어제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온 외국인 몇몇이 식물원 아케이드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일본 여자애에게 한국에 놀러 왔냐고 영어로 물으니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식물원 꼭대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볼만한 풍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관광지에 이것저것 제주 특유의 자연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바람이 지나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내게 길을 물었다. 어디 가나 그곳 현지인처럼 보이는 것도 심심치 않은 경험이다. 되는 대로 가르쳐 주었다. 이쪽, 저쪽, 그쪽, 오던 방향, 가는 방향, 기타 등등. 길도 못찾나? 바로 앞에 관광센터를 앞에 두고도? 귀찮아서겠지.

중문 해수욕장에서 서귀포 시가지로 올라가 민박을 찾아볼까 했지만, 오후 2시, 너무 지쳐서 그냥 그대로 퍼시픽 랜드에서 '돌고래쑈'나 보며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한가해 보이는 사람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있었다. 어쩐지 정이 안가는, 나하고는 거리가 먼 관광객들로 보였다.



평상시의 중문 해수욕장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보니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도저히 '해수욕'을 즐길 형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태풍. 아까 들렀던 하얏트 리젠시 호텔이 저 멀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었다. 해변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태풍 때문에 위험하다고 해수욕장을 폐쇄해 놓은 것 같다. 공짜라는 탈의실, 샤워실도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샤워할 형편이 안되었다. 그저 식수대에서 얼굴에 물을 묻혔다.

'돌고래쑈'를 다 보고 팔자좋게 빈둥거리고 있는 물개와 펭귄들을 약올려서 길길이 날뛰게 만들고 나니 허기가 져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보자고 식당에 들어갔다. 이틀 동안 라면, 우유, 빵 따위만 먹어서 도저히 힘이 안났다. 텅 빈 식당에서 종업원은 '관광지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불쑥 내밀었다. 식당에는 한물간 70년대 팝송이 줄기차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그걸 따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싼 것은 꿈도 못꾸고 그나마 '해산물(단백질)'이 다수 들어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해물 뚝배기'를 시켰다. '조개밭'이었다. '모래'도 간혹 씹혔다. 밑반찬으로 나온 무의미한 '야채들'은 한켠으로 제껴두고 밥 한 톨,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해치웠다. 머릿속으로는 포도당, 단백질, 탄수화물, 단백질, 그 생각만 했다.

식사가 힘이 되주지 않아 다시 자전거를 몰고 언덕을 올라갈 기운이 없었다. 야영에 대비해 호롱불의 연료를 사려고 '관광지 가격'으로 감귤을 팔고 있는 할마시에게 물어보니 산등성이에 있는 콘도에 가보라고 했다. 산등성이까지 힘겹게 올라가서 물어 보았지만 그런 것은 취급하지 않는단다. 콘도의 옥외 수영장에는 물 한방울 없었고 비수기여서 인지 빨래가 널린 베란다는 셋 정도 밖에 보이지 않았다. 파리를 날리고 있는 관광상품점에 들러 플래시라도 사려고 하니 플래시만 있고 전지가 없었다. 알이 배겨 내치기도 힘든 다리를 끌고 이런저런 가계들을 이 잡듯이 뒤져보았지만 시내로 가야 구할 수 있을 꺼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다리가 몹시 아팠다. 가슴도 아팠다.

짐과 자전거는 야영장에 내팽개쳐두고(누가 훔쳐갈 걱정은 안했다) 물어물어 시내로 향하는 좌석버스를 탔다. 좌석에는 호텔이나 관광단지의 상점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몇몇 올라탔다. 시내에 내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쫄닥 맞은 채 낚시점을 전전하며 연료를 구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플래시를 간신히 구해 중문 해수욕장 옆의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오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오늘 태풍이 부니까 여기서 야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 마디씩 마치 녹음기처럼 얘기했지만 묵묵히 텐트를 쳤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 텐트 치는데만 한 시간 가량 걸렸다. 대부분은 주변에서 무거운 바위를 낑낑 매고 들고와 고이거나 줄을 찾아 다니느라 소비한 시간이다. 스위스제 아미 나이프는 구입한 지 일년이 지났건만 녹 한번 안슬고 생생하게 날이 살아 있어 그나마 흡족했다. 고단한 허리를 들고 야영장을 둘러 보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야영장에 텐트를 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간간이 아베크족들이 야영장 근처를 배회하다가 차량점검을 하던가 2-30분쯤 음악을 즐긴 다음 슬며시 떠났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자 주위에서 인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젯밤 비탈길에서 넘어진 상처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거나 팔꿈치를 굽힐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고 그 사이로 빗물이 스며 들었지만 약을 바르지 않았다. 내버려두면 나을 것이다. 그점에서는 일말의 확신이 있었다.

텐트 바깥의 주차장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아 가로등 밑에서 시내에서 사온 맥주를 꺼내 마시고 알이 베긴 다리를 한 시간쯤 정성껏 주물렀다. 바람은 여전해서 안주가 몇개씩 날아다니고는 했다. 배가 고팠지만 근처에 문을 연 가게는 없었다.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해변에 나가 다시 소주 한 병 깠다. 파도가 허벅지까지 기어 올라오고 강한 바람 때문에 여러번 휘청거렸다.


올라오는 길에 물개한테 플래시로 눈을 집요하게 비추어 놈이 미쳐 날뛸 때까지 약을 올렸다. 물개는 정말 개처럼 '컹컹'하고 짖었다. 재미있었다.


어제 다친 상처 때문에 평소 왼쪽으로 돌아눕지는 못하고 텐트에 반대로 기대 누웠다. 텐트 안은 완벽하게 어두웠다. 밤이 되자 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비가 아니라 비바람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쳤다. 텐트가 좌우로 흔들리다가 그짓도 식상해졌는지 동서남북으로 흔들렸다. 낌새가 안 좋아 빗줄기를 맞으며 밖으로 나가 텐트에 묶인 줄을 점검하고 다시 한번 조였다.

플래시를 켜놓고 파일럿을 꺼내 소설을 읽었다. 플라네타리움 프로그램으로 확인해 보니 그믐달이다. 사리 때이므로 물이 불어날 것 같다. 플래시를 끄고 텐트에 누웠다. 쉬익, 슈웅, 바다다다, 투둑투둑, 두다다다, 부드득 부드득, 쏴아, 펄러덕, 핑, 태풍의 비바람 속에 놓인 텐트는 별에 별 소리를 다 내며 상하좌우로 카오틱하게 흔들렸다.

새벽 두 시쯤 추워서 잠이 깼다. 소리는 여전했고 포닥포닥 쌔앵 철컥 지이이이 하는 새로운 소리가 추가되었다. 나무 곁에 세워둔 자전거가 자빠져서 바퀴가 헛도는 소리인 듯 싶었다. 파도는 이제 폭음에 가까웠다. 퍼엉, 츄아아아 하는 소리가 4-5초 간격으로 꾸준히 들려왔다. 텐트가 무너질까봐 줄곳 걱정스러웠다. 낮 동안 줄곳 비바람과 싸우느라 알이 베기고 뼈 마디마디 마다 땅의 냉기가 스며들어 쑤시고 결렸지만 다시 잠을 청했다.

9/15

6시쯤 잠에서 깨었다. 텐트 밖으로 비가 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화장실 옆의 급수장에서 칫솔질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수건이 비에 젖어 한번 빨고 쥐어 짠 다음 머리를 문댔다. 세수와 멱감기는 적어도 25년 이상 지속되어온 관례적인 행사일 따름이다. 따라서 멱감기가 끝난 머리에 빗물이 떠러져 내려도 신경쓰지 않았다.

망할 놈에 비 때문에 새로 갈아입은 옷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할 것 다하고 텐트를 걷었다. 텐트에 물기가 잔뜩 배어 상당히 무거웠다. 옷가지, 침낭 등이 조금씩은 젖어 있거나 습기로 묵직했다. 비가 계속 오기 때문에 말릴 처지도 안되었다. 밤새 추워서 덮고 잔 룽기는 기특하고 쓸모있는 여행의 컴패니언이었다. 이놈은 수건으로도 쓸 수 있고 샤워타월로도 쓸 수 있고 치마로도 쓸 수 있고 때로는 보따리로도 쓰였다. 지난 새벽에는 이불로 요긴하게 쓰였다.

물개 우리에서 인기척을 느낀 물개가 컹컹 짖어대기 시작했다. 자식 깨어났군. 다가가자 몸을 황망히 비비 꼬으며 우리의 구석으로 피했다. 나랑 놀고 싶다는 뜻이지? 사람들이 오기 전에 녀석을 마지막으로 놀려주었다. 해변의 풍광을 바라 보았다. 어제보다 심하면 심했지 파도와 바람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어젯 밤 해변을 걸으며 선명하게 찍어놓은 내 발자국들은 모두 사라졌다. 소나기인가? 태풍은 어떻게 된거지? 해수욕장에 몰아치는 파도는 기세가 여전했다. 오끼나와에 가 있어야 할 태풍이 아직까지 설치고 있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자전거를 몰고 일찌감치 주상절리로 방향을 틀었다. 서귀포에 몇 개 있는 폭포 따위는 이전에도 보았고 지금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주상절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쩌면 폭풍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좁은 어귀로 밀려들어온 파도는 갑자기 용솟음쳐서 소나무 꼭대기까지 치달았다가 잦은 포말이 되어 밀어 닥쳤다. 덕택에 전신이 다 젖었다. 아직 관광객들이 얼마 찾아오지 않는 탓인지 사람 때를 별로 안 탔다. 호박엿 파는 양반에게 물어보면 서귀포로 15분은 빨리 갈 수 있는 해안도로를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무도 없었다. 맞은 편에 컨벤션 센터를 한창 짓고 있었다. 여기도 곧 관광지가 되겠군. 컨벤션 센터 공사현장의 수위 아저씨에게 가는 길을 물었지만 잘 모르는 듯 했다. 주상절리의 입구이기도 한 민속 마을은 내 관심사 밖이고 관광객들이 열심히 봐줄 것이므로 지나쳤다.

평상 시의 주상절리

하아, 한숨 한번 쉬고 빗속을 뚫고 자전거를 몰아 서귀포 시내까지 올라갔다. 다리가 묵직했다. 문득 배가 고파서 식당에 찾아가 '고단백질 영양 만점 선지 해장국'을 시켜먹었다. 3일만에 하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어쩐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났을 때, 비가 잠시 그친 하늘 사이로 얼핏 보이는 파란 하늘이 기분 좋았다. 오늘은 의외로 시작부터 기분 좋은 출발이 될 것 같다. 다리는 알이 배겨 있었지만 그럭저럭 나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30분쯤 지나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다시 그 빌어먹을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늘 성산까지 가려면 적어도 4시간 이상은 꾸준히 달려야 하는데... 어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아니 빗줄기와 바람은 어제보다 더 심했다. 한 시간도 안되어 온 몸이 젖었다. 무시무시한 강풍은 중력의 손아귀에서 빗줄기를 이리저리 끌어당겼다. 빗방울들이 비행하기 시작했다. 거의 5-60도의 각도로 비스듬히 날아온 빗방울의 타격은 마치 쌀알로 피부를 강하게 두들기는 것처럼 따끔따끔 했다. 그것도 익숙해지자 드러난 얼굴, 팔, 다리가 마치 맛사지를 받는 것 같았다. 빗방울이 우박처럼 여겨지는 것은 처음이다. 바람은 적어도 7~10m/s 정도의 속력으로 불어오는 것 같다. 빗방울은 더 이상 '떨어진다'는 상식에 부합되지 않았다.

도로의 낮은 곳에는 간혹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자전거 중심축까지 푹 잠길 지경이었다. 어젯밤 비로 무거워진 텐트 사이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짐들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짐칸에 매어둔 배낭이 젖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물에 푹 젖어 동작 불능 상태였다. 파일럿 역시 물기가 스며 들어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담배와 라이터 역시 젖어 이 모든 비바람을 저주한 후 한숨 한번 길게 쉬며 길가에 주저앉아 담배 한 대 피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사실 앉을 형편도 안되었다. 비를 가려줄 처마는 커녕 사방이 뻥 뚫린 길이 훤한 평야로 펼쳐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3일 동안 담배 한 갑을 다 피우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을 뿐더러 담배를 피우면 입안이 건조해져서 피료 이상으로 수분을 많이 섭취하게 될 터였다. 아침에 채워둔 물병의 반은 이미 먹어치웠다.

다행히 바람은 동서남북 차례대로 불어주었다. 빗줄기가 잦아들 쯤에는 간간히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튀겨대는 물 때문에 당하는 피해가 심각했다. 브레이크는 지속적으로 생긴 수막 때문에 거의 작동하지 않았고 팬티 속까지 흠뻑 젖어 들었다. 3일 내내 자전거를 탔기 때문인지 똥고 부근(회음부라고 하던가?)이 이래저래 쑤셨고 이쪽에 뭉치고 짓눌린 근육은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비 덕택에 다리 근육에서 나는 열이 상당히 잘 식었다. 공냉식에 비하면 냉각효과는 꽤 탁월해서 근육을 피스톤처럼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훌륭한 아침 식사 덕택에 몸에서 힘이 났다.

고개를 스무 개쯤 넘었을까? 서서히 숨이 막혀 오면서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졌다. 그저 기계처럼 막연하게 패달을 밟고 있었다. 강풍이 불어오면 자전거에서 내려 질질 끌고 갔다. 간간히 돌풍에 자빠지기도 했다. 바람에 밀려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 바닥에 자전거를 포개고 납작하게 엎드려 가로등을 붙들고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BB탄알처럼 따끔따끔한 빗방울이 안경에 자주 부딛혀 시야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안경을 벗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빗방울이 눈알에 정면으로 맞았을 때를 생각하면 끔찍했다.

바람을 등지고 고갯마루를 달려가다가 가속으로 힘을 받았을 때는 자전거가 잠시 공중에 떴다. '자전거도 나도 닭이다' 라고 생각했다. 철커덩 하고 떨어졌을 때는 소화가 촉진되는 듯 싶었다. 그러고보니 이틀 내내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그저 방귀만 한두번 피식 하고 김새듯이 흘러 나왔다. 음식물은 거의 완전하게 연소된 것이다. 이제 그 동안의 게으른 문명 생활로 축적된 지방이 연소될 차례였다.

브레이크를 쓸 일이 없었다. 제대로 들어먹지 않았고 항력이 매우 쎘다. 어차피 자전거가 빨리 달려봤자 시간당 30km 미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비바람이 회오리처럼 온몸을 감쌌을 때는 세탁기 속의 빨래가 된 기분이 들었다.

도로공사 중인 곳을 주로 다녔다. 도로는 멀쩡한데 공사중이라고 막아놓은 곳이다. 가끔 보이는 다리 아래로 보이는 건천은 콸콸 거리며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말라있다가 바가 오면 건천이 흐르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차량 한 대,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공사중인 도로를 빠져 나와 어떤 작은 읍내로 들어갈 무렵 빗줄기가 다소 약해졌다. 긴장이 풀린 순간 그동안 치뤘던 비바람과의 씨름으로 맥이 탁 풀리며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핫 브레이크 두 개는 이미 먹어치웠고 물도 한 방울 남지 않았다. 수퍼에 들어가려고 생각해보니 가게에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갔다가 나와 다시 복장을 저미는 과정이 귀찮았다.

다시 해안 도로로 접어 들었다. 성산까지는 20여 킬로미터가 남았다. 언제나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용감한 낚시꾼들이 휘청거리는 비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갯바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파도가 무척 거세서 도저히 도로로는 치밀어 오르지 않을 것 같은 파도가 간혹 도로까지 혓바닥을 낼름 거리고 있었다.

해변을 따라 간간이 부대 초소가 보였다. 초소에서 기르는 듯한 강아지가 세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짖어대기 시작했다. 지친데다가 허탈하고 가소로운 기분이 들어 자전거를 멈추고 노려보았다. 세 놈 다 비를 맞아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코가 발달한 짐승들은 다른 짐승들로부터 공포의 냄새를 맡는다. 상대가 공포를 느끼면 기고만장해서 달려드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개한테 한 번 물린 이후로 개에 대한 두려움을 조직적으로 없앴다. 이제는 그런 유치한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개들은 내가 자기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짖어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눈치챘다. 누가 더 쎈가도 눈치챘다. 물론 예외는 있다. 덩치 큰 녀석들은 언제나 기고만장했다. 맞장을 뜨고 싶어하는 것이다. 녀석의 공격무기래봤자 입 밖에 없다. 겁먹지 않고 침착하게 옆구리 한번 걷어차면 대부분의 개는 깨갱 거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가 개한테 유난히 유감을 느낀 적은 없었고 개들을 귀여워 해주는 편이었다. 힘 없고 불쌍한 녀석들이다.

해안도로를 가도가도 구멍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지쳐서 국도로 접어들려고 한 순간 갑자기 기적처럼 가게가 나타났다. 컵라면을 주문했다. 꾀죄죄하게 비에 젖은 새앙쥐같은 몰골로 달랑 컵라면을 주문하며 휘청거리는 내 몰골이 불쌍했는지 아줌마가 밥과 김치를 떠다 주었다. 보잘것없는 포장으로 콧방귀를 뀌게 만드는 농심 새우탕면이 이렇게 맛있는 라면인 줄은 처음 알았다. 정신없이 먹었다. 만일 밥이 없었더라면 막걸리를 한 병 주문했을 터였다.

아줌마가 태풍 소식을 전해 주었다. 사오마이 태풍은 어제 한동안 제주 남부 바다에서 정체되어 있다가 갑자기 내 생각이 났는지 제주도를 향해 빠른 속도로 기어 올라오고 있으며 지금은 제주도 전역에 태풍경보가 발효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이틀 동안 남다르지 않은 값진 교훈과 악천후 공수훈련 및 생존술의 기회를 선사해준 '닝기미 시부랄 좆도 사오마이 태풍'은 내일까지 제주도를 유린한 후 내륙으로 진출할 예정이란다.

아줌마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이빨을 악다물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오늘 오후까지, 성산 일출봉까지 미친듯이 달려간 다음, 내일 일정을 완벽하게 마무리 하고 자전거 가게에 들러 '완주하고 왔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할 작정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려가는 내내 생리혈에 밥 말아먹을 미친년 같은 태풍에 욕설을 퍼부어대는 무의미한 짓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휴가를 갈 때면 어김없이 비가 왔다. 적어도 지난 10여년 동안 줄곳 그랬다. 어린 시절 소풍가서 맑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몇주 전에 무릉계곡에 잠시 머리 식히러 갔을 때도 그랬다. 그날도 등반을 포기하니까 비가 멈추었다. 지난 여름 초에 용추 계곡에 놀러갔을 때도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는 동안 비가 내렸다. 작년에 인도에 갔을 때는, 하!. 그때는 우기였다.

원래 이번 제주 여행 계획은 이랬다: 오후 중 제주항에 도착, 제주시 서쪽으로 출발, 장렬한 석양을 바라보면서 한림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 그리고 호롱불을 밝히며 낭만적인 야영, 다음날 아침에는 선 블럭 크림을 바른 채 느긋하게 해수욕, 제주도 흑돼지 갈비로 영양 보충, 다시 중문으로 출발, 중문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희롱하며 오후를 보낸다, 맛있는 해물 찌게를 먹고 나서 야영, 다음날 아침, 서귀포로 가다가 해녀가 방금 잡은 문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소주를 한잔 곁들이고 도로에서 내다파는 시큼한 감귤을 한웅큼 씹어 비타민을 보충하며 낭만을 구가, 그리고 성산에 도착, 전복죽 한 그릇 먹고 이틀간 여행의 피로를 날려버리기 위해 오늘은 특별히 민박,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시큼한 소주 한 잔, 그리고 다음날 아침 5시 기상, 성산 일출봉으로 떠오르는 감격스러운 해돋이를 바라보며 그것을 뒤로 한 채 제주시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태풍 때문에 다 틀어졌다.

성산에 도착했다. 관광이고 나발이고 중간에 있는 모든 볼거리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다리 근육이 몹시 뜨거워진 상태였다. 오후 3시,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완벽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섭지코지에서 그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다가 자신이 한심스러워져 물어물어 민박집을 잡았다. 주인 아저씨에게 했던 첫 마디가 '뜨거운 물 나옵니까?' 였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고 안심하고 들어갔으나 뜨거운 물은 물론 나오지 않았다. 지치고 귀찮아서 보일러 켜달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온 몸이 물에 젖은 상태라 샤워부터 했다. 차가운 물줄기 덕택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고 근육이 더더욱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먹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올림픽 개막식을 멍청하게 구경했다. 성화대에 불을 붙일 때에도 물이 콸콸 흘렀다. 3일 내내 나를 엿먹인 '빌어먹을 날씨' 소식을 듣다가 잤다.

9/16

나흘째, 마지막 날이다. 거의 10시간을 잤다. 방구석을 쳐다보았다. 한쪽 구석에 이불이 있고 방의 대부분은 말리려고 펴놓은 옷가지와 짐 투성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선풍기는 밤새 돌아갔다.

공동 샤워장에서 칫솔질을 하며 창 밖을 바라 보았다. 어젯밤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심하게 할퀸 자국이 역력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밭 작물들은 한결같이 모로 누워 있었다. 쉬이익 하는 칼바람 소리가 불길하게 들렸다. TV를 켜고 뉴스를 들어보니 태풍은 제주도를 통과했다고 나왔다. 이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갈 참인데 태풍이 제주도를 올라간 바람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또 마파람을 맞고 가게 생겼다. 좌절감에 탄식이 흘러 나왔다.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4000원짜리 백반은 밥 한 공기와 풀 국 한 그릇,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희안한 물고기 구이, 그리고 죽은 채소 무더기 다섯 접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광지 음식은 이래서 싫다. 돈을 더 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할 껄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성산을 빠져나가기 전에 수퍼에 들러 우유를 하나 들이켰다. 빙그레 바나나 우유, 양과 질에서 만족스러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유.

제방을 건널 때 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지난 이틀 동안 거의 마파람을 상대하느라 파곤죽이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이 모양인가? 해안도로 구석에 자전거를 눕혀 놓고 망연히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참, 요란하게도 치는구나.

다시 출발했다. 성산에서 북으로 이어진 4 킬로미터 가량의 해안도로는 지옥이었다. 도저히 자전거를 끌고 갈 형편이 안되었다. 게다가 어제 너무 무리하게 나아가는 바람에 근육에 힘이 없었다. 오르막길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거의 끌고가다시피 했다.

어제 바람은 비와 함께 오느라 세력이 약했지만 오늘은 비는 거의 안 오고 바람만 미친듯이 불어댔다. 힘에 부쳐 10분을 채 못가고 주저 앉아 담배를 피우고는 했다. 담배는 30초도 안되어 꽁지까지 타들어갔다. 미처 한 모금 빨기도 전에 바람이 대신 담배를 태웠다. 다 탄 담배는 바람에 날려 바다에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바람의 저항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갯지렁이 한 마리가 길을 횡단하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바퀴에 깔려 짓이겨져서 죽었다. 태풍이 안 불었더라면, 내가 9월 16일 오후 5시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 성산에서 10시 무렵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밥공기에서 마지막 밥알을 다 먹었더라면, 내가 중간에 잠시라도 한번 쉬지 않았더라면, 이런 무한한 우연이 단 하나라도 겹치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무사히 길을 건넜을 것이다. 너는 오늘 성불하고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겠다.

도로에서 지난 나흘 동안 배가 터져 죽은 뱀 한 마리, 짜부러져 깃털만 남은 새 두 마리, 내장이 터진 쥐 한 마리를 보았다. 도로 중간중간에 말리려고 내어놓은 미역들은 바람 때문에 반은 휩쓸려 도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지옥의 해안 도로를 통과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내륙의 촌락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따라갔다. 야트막한 돌담이 자전거 높이까지는 바람을 가려주어 진행이 수월했지만 곳곳에 도사린 물웅덩이에 고인 흙탕물 덕택에 드러난 맨살과 샌달에는 흙탕이 튀겼다. 길은 종종 막혔다. 도시였다면 거의 모든 도로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갑자기 길이 끝나면 당혹스러웠다. 썬컴퍼스로 대략의 방위를 알 수는 있었지만 그 방위에 있어야 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도저도 안되어 힘겹게 패달을 밟아 간신히 작은 시가지에 들어섰다.

어제부터 '고기국수'라는 것이 궁금했는데 마침 그것을 파는 분식점이 보였다. 들어가니 점심 시간임에도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물끄러미 아줌마가 '고기국수'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 냄비에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지방이 잔뜩 낀 돼지고기를 꺼내 끓인다. 2. 배추와 당근을 썰어 끓기 시작한 냄비에 넣는다. 3. 국수를 넣는다. 4. 내온다. 무슨 맛이 이런지 모르겠다. 쓰잘데기 없는 야채도 그렇고 당장 열량으로 바뀌지 않는 지방도 그렇고 너댓번 젓가락으로 짚자 없어지는 밀가루 국수도 그랬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는데 점심마저 이 모양이라니...

아침 10시에 출발해서 해안도로만 통과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가늠잡아 두 시간 동안 더 바람하고 싸워서 6킬로 남짓을 나아갔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어젯밤 비에 젖어 너덜너덜 해진 지도를 정성스레 말려 놓았는데, 지도를 살피려고 꺼내 들었다가 바람 때문에 반이 찢어지면서 두쪽이 난 채 날아갔다. 날아가는 지도를 잡기 위해 허벅지가 얼얼함에도 뛰었다. 반쪽만 잡았는데, 이미 지나쳐 온 부분이었다. 돌아갈 길이 적힌 남은 반쪽은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우두커니 서서 지도가 날아가는 모양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12번 국도는 그렇다치고 제주시내의 지리를 통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지긋지긋한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금방 개었다. 바람 때문에 비가 내린 도로는 금새 말랐다. 바람 때문에 제주도 곳곳은 무척 깨끗했다. 바람이 도로의 잡 쓰레기들을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물병이 바람에 날아가 갈증이 심했다. 바람 때문에 땀이 나오자마자 신속하게 증발했다. 날씨가 맑아 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땀을 말리면 피부에는 결정화된 소금만 남아 벅벅 긁혔다. 돛단배도 아니고, 바람에 이렇게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도록 신경 써보기는 처음이다. 배 고픈데 빵이라도 사먹게 근처에 구멍가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램과 달리 도로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건너편 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두 친구가 보였다. 인사할 기운이 없었다. 바람을 등지고 힘차게 나아가는 그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다. 나는 맞바람 속에서 기진맥진해 페달을 밟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채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멀뚱히 쳐다 보았다. 뭐가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지나갔다. 여행 내내 나를 앞서간 팀도 없었고 마주친 팀도 없었다.

자전거를 고단으로 맞추어 놓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전진했다. 태풍 때문인지 수업을 안하는 작은 분교에 들러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흙탕으로 얼룩진 정강이와 샌달을 깨끗이 닦은 후 수도꼭지에 입술을 붙인 채 오랫동안 꿀꺽꿀꺽 물을 삼켰다. 물배라도 채울 심산이었다. 오줌을 눗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다가 거울을 흘낏 쳐다보니 팔 다리 얼굴 할 것 없이 제주도 흑돼지처럼 새까맣게 탔다. 흑돼지도 전복죽도 먹어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볼거리도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선글래스를 꺼내 썼다. 얼굴에 묻은 물은 바람에 금새 말라버렸다. 맞바람은 제주시까지 오는 동안 지속되었다. 차들이 횡횡 지나쳤고 제주시까지 가는 길은 비좁았다. 시내에서 우왕좌왕 했다. 눈에 띄는 사람들마다 거리를 물었다. 시내에는 그래도 바람이 심하지 않아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자전거 가게 앞에서는 기운 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후 다섯시였다. 일곱시간이 걸려서 고작 36킬로를 온 것이다.

나는 웃고 있었다. 가게 주인이 자전거 탄 사람들을 보았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떡였다. 그 친구들은 어제 도착해 태풍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하루가 지나 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속으로 배짱이 부족했군 하고 중얼거렸다. 주인이, 댁은 여행 경험이 많은 것 같아 완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킨 후 가게를 나와 맥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쇼윈도의 거울같은 유리에 몰골을 비추어보니 예상대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입가에 야비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 한참 만에 수퍼를 찾았다. 거기서 빵과 우유를 사다가 놀이터에서 게걸스럽게 먹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와서 뭘하다 간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배가 좀 차자 기운이 났다. 집에 가야지.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기사가 잘 놀다 가냐고 물었다. 히죽히죽 웃었다.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스튜어디스가 재난 발생시 승객이 해야할 안전 사항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동작이 우스워보였다. 산소 호흡기를 내려 입에 갖다 붙인다? 파이팅 클럽에서 주연 배우는, 산소 호흡기를 끼면 순수한 산소가 흡입되면서 뇌가 일시적으로 현기증을 일으키고 환각상태에 빠진다고 말했다. 산소 호흡기를 끼는 것은 곧 닥칠 죽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서울에 돌아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오버 트라우저를 뒤집어 쓰고 얕게 내리는 빗속을 거닐다가 포장마차에서 닭꼬치와 오뎅을 사 먹었다. 아줌마에게 물었다. "여긴 언제부터 비가 왔어요?" "나흘 전부터. 댁은 딴데서 왔어요?" "예." "어디서?" "딴데서요." 다른 곳, 태풍이 휘몰아치던 곳.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진 한 장 안 찍었지만 정신이 오락가락 할 정도로 태풍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위기의 나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던 나날들이었다. 이번 자전거 하이킹의 교훈: 음식은 맛보다 열량이 훨씬 중요하다.

제주 하이킹 후 새까맣게 탄 얼굴, 지쳤다.

3박 4일 제주도 하이킹 경비 총액: 220,000원
제주 왕복 항공료=141,000원
민 박 2회=30,000원
자전거 4일 대여료=20,000원
나머지는 식비, 기타등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