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1:00

방콕 돈무앙 공항에 도착. 배군을 레스트 룸으로 보내고 수속을 마친 후 로비를 빠져나왔다. 이제 고군과 둘이서 열흘 가량의 짧은 태국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환전을 마친 후 400 바트나 하는 택시를 탔다. 기분이 좋아서 택시기사에게 부탁해 근처 수퍼에서 싱하 맥주를 구입해 기사에게도 한 캔 권해 주었다. 그는 그것을 벌컥벌컥 잘 마셨다. 택시는 방콕 시내로, 카오산 로드로 들어섰다. 450 바트를 요구했다. 물가가 감이 잘 안잡혀 달라는 대로 주었다. 택시를 탄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하지만 태국에 관한 가이드북 하나 없었고 거의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카오산 로드에서 홍익인간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문이 닫혀있었다. 이곳저곳 들러보았으나 방이 full이거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델리에서 보았던 친구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만남의 광장에 갈 수 있었다. 역시 문이 잠겨 있었다. 사원 앞에서 모기에 뜯기며 한 시간쯤 개겼다. 그러다가 걸어다니면서 길을 익히고(아니 그냥 헤메고) 편의점에 들러 태국 라면을 사서 길에 쭈그리고 앚아 먹었다. 졸라 매웠다.

다소 힘이 생겨 졸린 눈을 부비며 길을 헤메다가 아까 들렀던 tep 게스트 하우스로 다시 들어갔다. 이전에 6시부터 첵인을 한다고 했기 때문. 방을 잡고 들어서자마자 잠들었다.

13:00, 깨자마자 샤워부터 했다. 목구멍이 아픈게 심상치 않았다. 또 감기인가? 고군과 함께 어젯밤에 보아두었던 보헤미안 까페를 찾아갔다. 한국인 둘이 마침 있었고 신라면을 시켜 먹었다.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 것인 줄은 몰랐다.

한국인 여자의 도움으로 왓 포에 가서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옆의 홍익 여행사에서 450 바트를 주고 꼬 따오 행 버스+보트 조인트 티켓을 예매했다. 세 시가 넘어 왓 포로 가는 길을 서둘러야 했다. 뚝뚝 기사가 길가는 우리를 불러세우고 왓 포는 문을 닫았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길가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왓 포가 문을 닫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왓 포 근처에서 헤메다가 선착장에 도착해 막연히 강만 바라보았다. 건너편에 왓 아룬이 있었다. 배를 타기로 하고 파타프라야강을 거슬러 올라 카오산 부근에서 내렸다. 마침 옆에 있던 노점서적상에서 speaker for the dead를 발견하고 150 바트에
구매하고 카오산 로드 쪽으로 걸어갔다. 비가 올 날씨. 카오산 로드 부근의 서점에서 테리 프라쳇의 책을 발견, 프랭크 허버트의 destination:void도 있었으나 책값이 비싸 사지 않았다.

고군은 내가 서점과 책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숙소에서 우산을 들고 나왔다. 사점을 둘러 보다가 저녁을 먹어야 겠기에 노점식당에서 45바트를 주고 카오 팟 탈레(새우볶음밥)를 시켜 먹었다. 맛있지만 내일부터는 싼 식당을 찾아 보기로 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근처를 돌아다니며 꼬치와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꼬치(20바트, 4개)는 돼지고기와 문어를 구운 것이었다. 맛있게 먹고 팟퐁에 가기로 했다.툭툭기사에게 물어보니 50바트를 요구, 차라리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복권청 앞에서 룸피니 공원 쪽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차장(안내양)과 손짓발짓을 해 간신히 의사소통을 한 덕택에 근처에서 내렸지만 가는 길이 막막했다. 한참을 걷고 물어물어 팟퐁 거리에 도착했다.

환락가+상가, 마치 신천 일대 같았다. 멍하니 거리에 앉아 달라붙는 삐끼와 환담을 나누고 근처의 토플리스 바에 들어가 90바트 짜리 맥주를 주문했다.아가씨들이 껀수를 잡으려고 나를 꼬였다. 스테이지에서는 전라의 여자들이 애로틱한 춤을 추고 있었다. 고군은 멍청히 굳어 있었고 나는 아가씨와 꺄안고 키스하며 난리법석을 부리고 있었다. 그녀가 내 귀를 핥으며 속삭였다. you came back? yes.

그녀는 나를 위해 자신의 쇼타임 때 옷을 벗지 않았다. 상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과 몸매가 경이로웠다. 문득 이 예쁜
아가씨를 꼬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만 맞았다 하면 입은 것이든 벗은 것이든 여자들이 여기저기서 달려와 애교를 부렸다. 내가 낄낄거리며 여자들의 젖무덤과 젖꼭지를 희롱하며 귀여워 해 주고 있는 동안 고군은 옆에서 '도대체 붓다라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를 새삼스럽게 고민하며 다리를 꼬은 채 무대만 뚜러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고군은 즐기지도 못하고 340바트를 뜯겼다.

택시 미터도 아닌 일반 택시를 타고 그 녀석이 94 바트라고 우기는 것을 70 바트 주고 카오산까지 돌아왔다. 고군이 내 목덜미와 귓바퀴, 입술 주변에 키스 마크가 있다고 말해주어 서둘러 지웠다. 나만 즐겨서 고군에게 미안한 나머지 맥주와, 물, 과자를 사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시암 스퀘어 찾아가는 법을 찾느라 낮에 친절한 한국인 아가씨에게 빌린 책과 지도를 뒤져보았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 잠들었다. 소화가 잘 안되어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9/8 10:30

늦게 일어났다. 샤워를 마치고 첵아웃한 후 근처 백화점을 헤멨다. 어제 까페에서 빌린 가이드북이 오래되어 실정과 달랐다. 백화점은 망했다. 포기하고 시장통으로 들어가 카오 팟 까이를 시켜먹었다. 얼음물도 마셨다. 오후 한시쯤 지났다. 근처 서점을 돌다가 고군이 배가 아프다고 하여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어제 그 아저씨가 그곳에 있었다. 치앙마이 쪽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행 가이드 북 몇 권을 들쳐보며 맥주, 음료수, 그리고 죽이게 맛있는 짬뽕밥을 먹었다. 나란 한국인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서가에서 무심코 고른 '검증된 베스트셀러(?)' 앵무새 죽이기(killing mockingbird)를 꺼내 보았다. 재미있었다. 아니 오랫동안 책에 굶주려 있었던 탓에 별볼일 없는 것이라도 재미있게 여겨지는 것 같았다. 출발 시각이 가까워 홍익여행사로 향했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하리형이 어이없이 깨끗한 차림으로 거리에 서 있었다. 그를 우연히 만났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라오스로 갔다가 21일쯤 방콕으로 돌아온단다. 30달라 짜리 비자도 받아둔 참. 며칠동안 술집에 앉아 우리들이 올지도 몰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와 작별하고 안내원을 따라 이리저리 묶은 개처럼 끌려다니다가 버스에 올랐다.

잠이 오지 않았다. 버스가 너무 깨끗해서일까? 한국인 몇몇이 차를 타기 전에 길바닥에 서성이는 것을 보았지만 외면했다. 고군은 기를 쓰고 한국어를 사용하며 그쪽에서 아는척 해줬으면 하고 애쓰고 있었다. 일본애들 몇몇이 내게 다가와 일본인인줄 알고 길을 묻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가급적이면 한국인들 좀 안 봤으면 좋겠다.

춤폰에 도착, 합쳐서 네 시간쯤 잔 것 같다. 트럭같은 차를 타고 새벽에 근처 여행사에 도착. 하릴없이 여행사 주위의 길을 따라 걷다가 식당을 발견해 고군을 불러와 까오 뚬 꾸이(닭죽)을 시켜 먹었다. 20바트. 물값은 5바트. 수퍼에서 담배 한갑 25바트, 비누를 구입. 7:00 출발을 기다리는 중. 고군이 꼬 따오의 지도를 구입했다. 계획을 세웠다. 남쪽 해안으로 가자. 해돋이와 일몰을 볼 수 있을 테니까.

9/9 7:00

speaker for the dead를 읽으며 동이 트길 기다렸다. 아침 7:00가 되자 트럭이 와서 우리를 태웠다. 차에 탄 녀석들은 대부분 초짜같아 보였다. 그중 한 명만 눈에 띄었다. 그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고 이곳 저곳을 헤메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역시 나를 살폈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동자는 내 꾀꾀죄한 차림을 훌터보고 있었다. 거리는, 언젠가 와보았던 곳처럼 낯익었다.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풍경이었다.


speed boat를 탔다. 구명의를 입고 강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은 흙탕물에 가까웠다. 강변을 따라 썩어가는 수상가옥들이 늘어서 있었다. 강 하구를 지나 바다로 나서자 보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내 옆자리에는 타이 애들이 넷 타고 있었다. 둘은 화교처럼 보였고 둘은 토착민처럼 보였다. 선글라스를 쓰고 그들을 한참 인도인처럼 쳐다보자 불안한지 고개를 돌렸다. 영국애가 지지리도 못치는 기타를 치며 개폼을 잡고 있었다.

졸음이 밀려와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자고 깨어나 자세를 바로 잡고 정좌해 물결을, 그리고 멀어져가는 육지를 바라보았다. 문득 하시시를 한 대 피우고 싶어졌다. 고군은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옆으로 꺽고 잠들어 있었다. 승객들 대부분이 자고 있었다. 74km, 다시 잠들었다. 고군이 깨워 일어나보니 눈 앞에 섬이 있었다.

12:30, 섬에 도착. 꼬 따오. 부두를 따라 삐끼가 늘어서 있었지만 무시했다.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수퍼에 잠깐 들렀다. 가게에 들어서기 전에 신을 벗어야 했다. 바닥은 깨끗했다. 지도를 펼쳐들고 길을 확인하고 언덕을 조금 올라가다가 더워서 택시 기사를 불렀다. 요금표를 들이밀었다. 흥정을 해볼까 몇마디 하자, 30 바트, fixed price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웃었고 나는 아연했다.

미니트럭을 개조한 택시였다. 뒷좌석에 앉아 남쪽 해안으로 향했다. 뜨거운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았다. 해변 끝 부근의 방갈로에서 서양인으로 보이는 친구에게 방을 알아보았다. 해안 쪽 방은 이미 다 나간 상태였다. 그에게 키를 받아내 위쪽에 위치한 방갈로를 살펴보러 올라갔다. 별로 마음에 안들어 내려와서 고군에게 고개를 저으라고 말했다. 짐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고군을 남겨둔 채 방갈로를 찾으러 해변을 천천히 걸어갔다.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스킨 스쿠버 회원 전용이 많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가격이 비싸던가 방이 있지 않았다. 개중 눈에 띄는 것이 있어 베란다에 앉아 신문을 펼쳐보고 있는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더블룸, 400바트를 불렀다. 350바트까지 깎았다. 그는 더이상 깍아줄 것 같지 않았다. 지금은 오프시즌이고 나는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고 말하며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250 바트를 불렀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히죽 웃었다. 해변-바다까지의 거리는 불과 10미터가 되지 않았다. 사진에서나 보던 그림같은 방갈로였다. 마음에 들었다.

고군을 불러와 짐을 내려놓고 주인으로부터 키를 받은 후 수영복부터 사러 갔다. 130바트, 호롱불 램프 45바트, 램프기름 20바트, 과자 한봉 20바트, 점심값 45바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해변 끝까지 걸어갔다. 해변에 널린 죽은 산호초 쪼가리에 발바닥을 이리저리 베였다. 해변의 모래밭에 룽기를 넓게 펼치고 살을 태웠다. 잠은 그리 자지 못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식사를 하러 갔다.

새우볶음밥이 70바트, 근처 수퍼에서 메콩과 생선튀김을 사와 해변에 누워 술을 마셨다. 외국인들이 호롱불을 켜놓고 모래밭에 누워 위스키를 처먹는 우리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보며 지나갔다. 편안했다.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육신의 피로가 씻기는 것 같았다.
고군은 은하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23:00쯤 방으로 들어와 잠이 들었다.

9/10 5:00

코코넛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해변으로 나가보니 별들이 쏟아질듯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밤 12시 이후에는 섬의 전기가 나간다는 것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해변과 하늘 사이를 가르는 지평선이 희미하게 보였다. 해변을 걸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기억을 씻어주는 것 같았다. 고군을 깨워 해변을 보라고 말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별을 마음속에 담았다.

6:00, 새소리에 재차 잠에서 깨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담배 한대 물고 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아무래도 글른 것 같아 옷을 허겁지겁 줏어입고 동쪽 해변을 향해 산으로 난 길을 달려갔다. 땀으로 뒤범벅이 될 지경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동쪽 해변 끄트머리의 산 정상에 도착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온 사방으로 막막한 바다 위 지평선으로 거대한 태양이 올라왔다. 눈이 따가워 시큼한 눈물이 나왔다. 숨을 헉헉 댔다. 뛰어온 보람이 있었다.

개들이 모여 패싸움을 하고 있었다. 녀석들과 놀아주었다. 내가 편을 들었던 소수는 다수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때리지는 않았다. 집집마다 거북의 등껍질이 걸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파인애플 쥬스를 사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10:00, 고군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원숭이를 이용해 해변 앞의 야자나무에서 코코넛을 따고 있었다. 한둘쯤 사려고 고군을 보냈더니 관광객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란다.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아 아미 나이프로 껍데기를 벗기려고 애를 써봤지만 노력만큼 잘 되지 않았다. 주인 아저씨가 우리 하는 모양을 지켜보다가 씨익 웃으며 도끼를 들고 와 코코넛을 까 주었다. 달작지근, 미적지근, 그런데도 맛이 시원하다.

해변에 누웠다. 뚱뚱한 아줌마의 그림자가 내 몸을 덮고 마사지를 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돈이 없었다. 해변에는 브라를 걷어내고 별볼일 없는 가슴을 드러낸 채 살을 태우고 있는 외국인들이 있었다. 고군은 그늘에서 잠만 자다가 다리만 태웠다. 나는 참지 못하고 킥킥 웃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고군이 알아서 콩나물과 돼지고기가 섞인 시큼한 덮밥 재료와 스파이스 치킨을 가져왔다. 맛있었다. 잠깐 인터넷을 하러 가게에 들렀다. 45바트. 사무실에서 메일이 왔다. 날더러 돌아오라고 말했다. 급한 일이 생긴 듯 싶다. 젠장.

12:00,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준비를 갖추고 항구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녀석들을 많이 보았다. 오토바이에 겁을 먹은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시내에 들어서 꼬 낭유안으로 가는 배를 수배했다. 마침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인 둘과 함께 그쪽으로 향했다. 택시보트 기사가 섬의 북쪽으로 가자고 꼬셨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 와중에 영국인들이 찬성했다.

섬 북쪽은 다이버 강습과 스노클링으로 이미 북적이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스노클링 장비를 대여해 주었고 한시간쯤 주변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스노클링을 처음 해보았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나보다 더 많이 바다쪽으로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바다 밑으로 깊숙이 잠수했다. 고기떼들이 내몸에 와서 부딛쳤다. 고군은 적응을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바위에 앉아있을 동안 일본 여자애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시간이 되어 목적지인 코 낭유안으로 향했다. 산호 해변. 특이하게 생겼다. 몸에 기름칠을 한 레저 리자드들이 잔뜩 누워 바베큐 통구이처럼 가끔 몸을 뒤집었다. 25바트 짜리 콜라 한잔 마시고 물어물어 뷰 포인트로 올라갔다. 신발이 미끄러워 바위를 기어 올라가야 하는 정상에 이르지는 못했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담배 한대 빨고 다시 내려왔다. 같이 온 일행 영국인들은 해변에 퍼져 있었다. 30분 후쯤 돌아갈 생각이란다. 나는 근처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있을테니 알아서 오라고 일러두었다. 택시기사에게 다시 장비를 빌려 주변의 깊은 곳들을 둘러 보았다. 물살이 빠르고 물이 차가워 멀리 나갈 수는 없었다.

수면에 대가리를 내밀자 영국인들이 해변에서 나를 멍청히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타고 꼬 따오로 돌아왔다. 200 바트를 달란다. 흥정을 해서 대충 가격을 깎았는데, 사정을 생각지 않은 멍청한 영국인 녀석들이 덥썩 200 바트를 냈다. 바보 녀석들. 그들과 헤어져 30 바트를 주고 택시를 탔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얼핏 보았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후 6:30, 생선덮밥이었는데 비린내가 심했다. 다시는 시도하고 싶지 않다. 식당 아줌마에게 스트로우를 좀 얻고 수퍼에서 술을 샀다. 어제 저녁때 저녁을 먹었던 레스토랑에서 105바트를 주고 생선과 소고기를 구웠다. 코코넛 둘을 길가에서 줏어왔다. 레스토랑 주인이 그건 임자 있는 물건이라며 멀리서 농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해변에 자리를 깔고 호롱불을 밝히고 술을 마셨다. 코코넛을 까내고 그 안에 위스키를 부어 마시는 것도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고군은 맥주를 더 마셨고 나는 누워 멍청하게 별이나 쳐다보았다. 잡생각들이 여럿 떠올랐다.

9/10 10:00

잠에서 깨자마자 식사를 했다. 최악이었다. 옆 코티지에 가서 택시를 탔다. 항구 근처의 여행사를 돌며 돌아갈 배를 알아보았다. 조인트 티켓이 너무 비싸서(550-650바트) 슬로우 보트로 예약했다(100바트). 항공표의 리컨펌을 받기 위해 전화를 찾았다. 여행사 놈은 전화 비용이 그쯤 나오니 차라리 자신들에게 리컨펌 수수료를 조금 받고 대행하라고 꼬셨다. 150바트. 귀찮기도 해서 그렇게 한 후 곧 후회했다. 전화로 하면 2-30초면 끝날 일에 150바트를 지불한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태국에 도착한 이래로 이래저래 돈만 쓰고 있었다. 고군은 섬에 가둬놓고 돈을 뜯어낸다고 표현했다. 아니, 이건 인도탓이다. 모든 것이 인도보다 두 배는 비쌌다.

쓰린 속을 움켜쥐고 숙소 옆의 코티지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빌렸다. 50 바트 each 인줄 알았는데 오리발만 따로 50바트를 더 내야 한단다. 고군이 숙소로 돈을 가지러 간 사이 그곳의 방값을 물어보니 400 바트라고 했다. 우리가 옆 숙소에서 그보다 더 싸게 묵고 있다고 말하니 놀라워 했다. 주인장을 수전노라고 놀려주었다. 한국어로는 관광객 등처먹는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며.

숙소 앞의 얕은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해보았지만 바다가 지루하게 얕아서 재미가 없었다. 고군을 데리고 coral view 부근의 산을 올랐다가 다시 coral view로 내려왔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작자가 해변 근처의 야자수 그늘 밑에서 석쇠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 앞바다에서 놀다가겠다고 말했다. 사유지였다. 그가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떡였다.

옅은 바다를 한참 걸어 산호초가 우거진 곳에 당도했다. 신발 때문에 미끄러져 오른발에 상처가 났다. 피를 닦아냈다. 다소 깊은 바다로 왔다갔다 했다. 파도에 몸이 흔들리고,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전신에 부드럽게 부딪쳐왔다. 산호초는 갖가지 생물들로 가득찬 채 분주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고군은 겁을 먹고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옆에 정박중인 어선이 보였다. 어선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조금만 바다쪽으로 나가려고 하면 파도가 세찼고 물이 금방 차가워졌다. 바다 위에서 중성부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회전하고, 잠수하고, 인어처럼 팔을 허리에 붙인 채 다리와 허리만으로 헤엄치는 방법을 터득했다.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수경 옆이 튿어져 깊이 잠수할 수 없었다. 소금물을 여러번 마셨고 수경을 닦아내기 위해 물 위로 간혹 고개를 내밀어야 했다.
고군은 얕은 바다에서 오리새끼처럼 첨벙거리고 있었다. 나는 물이 좋아졌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두 시 가량 되었다. 산호 때문에 생긴 상처가 쓰라려서 움직이기도 귀찮았다. 샤워하고 있을 때 고군이 과자와 물과 담배를 사왔다. 베란다의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산들 바람이 불어왔다. 평화로웠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어두운 등불 밑에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코코넛 벗기는 솜씨가 많이 늘었다. 도끼질 서너번이면 코코넛을 깔 수 있었다. 그걸 까먹고 23:00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9/12 8:00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청소를 하고, 첵아웃했다. 항구로 나가 할일없이 앉아 프라이드 에그와 샌드위치를 시켜먹었다. 이틀 전에 우리를 태우고 코 낭유안에 갔던 택시기사가 다가와 북쪽 해변으로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곧 떠난다고 말해 주었다. 녀석이 히죽히죽 웃을 때마다 금니가 반짝였다.

슬로우 보트가 없어 스피드 보트에 탑승시켜 주었다. 덕택에 시간이 많이 남게 되었다. 택시기사가 손을 흔들어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고군은 아직도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상을 남기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만난 인도인들은 언제나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가 차갑고 살벌함에도 불구하고. 다이버들의 천국이라는 꼬 따오는 차츰 변해가고 있었다. 변화를 느낄 정도였다. 곳곳에서 리조트가 지어지고 있었고 방갈로의 숫자가 1년동안 200% 늘어났다. 다음에 쉬러 태국에 가게되면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가난한 여행자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체 할 것이다.

춤폰에 도착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돌았다. 일단 버스 터미널에 가서 표를 끊었다. 190바트. 터미널의 직원에게 부탁해 짐을
맡겨두고 거리를 빈둥빈둥 돌아다녔다. 고군이 어디선가 사온 닭똥집 꼬치구이는 최고였다. 더럽게 맛있었다. 정말 할일이 없어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태국인들 틈에 끼어 물어물어 극장에 들어갔다. 태국 아가씨들에게 화장실을 묻자 수줍은 듯 웃었다. mummy를 보았다.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일어서 주었다. 태국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국왕에게 예의를 지키는 우리에게 만족한 듯 싶었다.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돌아 춤폰 시의 북쪽에 있는 공원에 들러 간단한 음식을 시켜놓고 연못가에 앉아 빈둥거리며 책을 읽었다. 이 근처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시장에서 저녁으로 국수를 먹었다. 외국인이라고 그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태국 아가씨들은 여전히 수줍어했다. 귀여웠다. 버스 터미널에서 잠깐 개기다가 버스를 탔다. 에어컨 버스라 다소 추울 것 같아 배낭에서 룽기를 꺼냈다. 고군은 내 룽기를 부러워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그 모든 별들의 유의미한 반짝임에도 불구하고 고군이 계산해 준 바에 따르면 고작 36일 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9/13 5:40

방콕 도착. 2바트 짜리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질하고 세수를 했다. 세면도구를 꺼내 그짓을 하자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아마도 여행하면서 남의 눈에 개의치 않게 된 것 같다. 근처의 노상 가게에 들러 죽을 먹은 후, 버스 정거장을 찾아 카오산 로드 쪽으로 향했다. 30번. 방람풍 방면. 뉴월드 빌딩 앞에서 내렸지만 길이 낯설었다. 태국인 부부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들이 몹시 겁을 내며 길을 가르쳐 주고는 황급히 그들이 가던 길을 갔다.

6:30, 할일이 없는데다, 만남의 광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수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서양 여행자와 게이들이
농짓거리를 주고 받으며 놀고 있었다. 일본인 몇몇이 수퍼 앞에 나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몇마디 주고받다가 졸려서 책에 코를 박았다. 정찰보낸 고군이 문을 열었음을 알려 만남의 광장에 첵인, 더블, 커먼 배쓰, 150바트. 방이 아직 빠지지 않아 일층의 다다미에 누워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 다다미에는 나처럼 떼굴떼굴 굴러다니며 빈둥거리는 일본인들이 여럿 있었다.

점심무렵 밥을 먹으러 시장부근으로 나가 뭔가를 먹었다. 최악의 식사. 보헤미안 까페에 들러 숀 코넬리가 주연하고 쿠알라룸프르가 배경인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인 아저씨 둘이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잠깐 인터넷 사용. 만남의 광장으로 돌아왔지만 들어가려는 방 사람이 첵아웃 후 짐정리를 안해놓고 나가 다섯시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역시 책을 읽었다.

5시쯤 바깥으로 나가 미노나를 콜해 보았으나 오빠로 보이는 작자가 영어를 못해서인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인터넷으로 간단한 메시지를 남겨두고 저녁때쯤 확인해 보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꼬치를 샀다. 남은 돈으로 만남의 광장에서 '소주'를 마시기로 했다. 대략 500 바트 쯤 남았던가? 고군에게 깨달음에 관해 얘기했지만(마음속의 보석) 그는 그런 걸 믿지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빛을 본 적이 없었고 이제는 별로 기대 하지도 않았다.

술 마시다가 담배가 떨어져 담배를 사러가는 김에 인터넷 샵에 들러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으나(9:30pm) 미노나의 답장이 없었다. 가게 주인은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인도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도 릭샤를 공짜로 탔던 생각이 났다. 이것도 팔자인가? 아니면 운이 바뀌려는 신호일까.

나온 김에 서점에 들러 110, 130 바트씩을 주고 destination: void와 neutron star를 충동구매했다. 돌아와서 술을 한병 더 시켜 마셨다. 아까 까페에서 보았던 아저씨가 술을 너무 마신다고 충고하며 합석. 알고보니 만남의 광장 사장이었다. 그와 하리형 얘기를 했다. 둘 사이는 사소한 오해나, 자존심 때문에 틀어진 것 같았다. 11:30pm까지 술을 마시다가 숙소로 올라와 방콕 신문을 좀 읽다가 잠이 들었다.

9/14 10:00

주변이 시끄러워 몇번이나 깨다가 10:00쯤 일어낫다. 샤워를 하고 짐을 싸서 아래층에 내려놓은 후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 11:00쯤 고군의 책을 팔러 고서점을 돌아다녔지만 아예 책을 살 생각들이 없었다. 팔리지 않았다. 헤메며 걷다가 지쳐 운하 부근의 다리 밑에서 바미 남(물 국수)을 시켜 먹었다. 21바트. 맛대가리가 없었다. 다리 밑의 구정물 운하에는 멸치같은 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방콕에서는 아무 곳에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다음 번 오면 제대로 돌아다녀 봐야지.

만남의 광장으로 돌아와 책을 읽는 둥 조는 둥 하며 오후 세 시까지 있다가 버스를 타러 복권청 앞으로 갔다. 59번 에어컨 버스. 18바트. 짐을 잔뜩 들고 있는 서양 여자에게 슬쩍 자리를 양보하고 한참 서서 갔다. 길이 막혀 한 시간 반가량 걸려 17:00쯤 공항에 도착. imigration gate를 지나 보딩 패스를 받고 아예 보딩 게이트 안까지 들어갔다. 주머니에 땡전 한푼 남기지 않고 털어 햄버거를 사 먹었다. 지금 시각 18:35, 출발까지 40분 가량 남았다.

namaste.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한국인이 너무 많다.
고작 한 달을 떠나 돌아온 이곳은 생경하고 낯설다.
내 마음속의 아주 깊은 곳 어딘가에서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도 조금은 변한 것 같다.

저것은 완전하고
이것 또한 완전하다
완전함에서 완전함을 빼니
또한 완전함이 남는다
무지로써 죽음을 건너고
지혜로서 구원을 얻으리다
의지를 가진 마음이여!
네가 한 일을 기억하라
네가 한 일을 기억하라

- 이샤 우파니샤드

(영빨이 깃든) 모든 살아있는 생물 사이에서 느끼는 모호한 개연성은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세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아야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여전한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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