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에 해당되는 글 569건

  1. 2007.12.03 개성의 탄생
  2. 2007.11.23 노인들의 전쟁 3
  3. 2007.11.11 반시계방향 인류 5
  4. 2007.11.08 how the mind works 1
  5. 2007.10.31 there's world elsewhere 1
  6. 2007.10.24 vaya con dios 2
  7. 2007.10.14 자전거 바퀴 정렬 2
  8. 2007.10.07 노래하던 뮤즈도 훨훨 날아가고 1
  9. 2007.10.04 자전거 사고 4
  10. 2007.09.27 luke rocuta, causa finita
  11. 2007.09.17 오줌 마시기 1
  12. 2007.09.12 평행우주 2
  13. 2007.08.30 본 울티마툼
  14. 2007.08.25 싱크로 2
  15. 2007.08.25 뜬금없이 귀뚜라미 찌질찌질 우는 여름 1
  16. 2007.08.08 faction
  17. 2007.08.06 ignorance is poor execuse
  18. 2007.07.24 replica
  19. 2007.07.22 tunnable 2
  20. 2007.07.17 mentis incognita 2
  21. 2007.07.09 after drill 1
  22. 2007.06.25 prep. 1
  23. 2007.06.17 geodesic eval.
  24. 2007.06.11 geocode
  25. 2007.06.10 time quake 1
  26. 2007.05.26 pot of doom
  27. 2007.05.16 80000
  28. 2007.05.12 bike maintenance
  29. 2007.05.06 omphalos 1
  30. 2007.04.30 leaper 2

개성의 탄생

잡기 2007. 12. 3. 17:34
"론, 어지러운 생각들은 고통으로써 정화시킬 수 있어" -- Life, 크루즈 형사가 정보를 얻기 위해 한 친구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한 말. 드라마로 별별 스릴러 물을 다 봤는데, 뇌사 상태의 형사, 외계인 형사, 아버지가 살인마인 형사, 경찰인 의붓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교육받아 잡히지 않은 살인마, 지랄병에 걸린 형사, 죽은 사람과 얘기할 수 있는 형사, 자폐 형사, 그런데 크루즈 형사는 12년간 누명을 쓰고 복역하다가 무죄가 입증되어 백만장자가 되기에 충분한 합의금과 경찰 뱃지를 받은 형사다. 감방에서 12년 동안 두들겨 맞으면서 선도를 열심히 닦은, 복수심에 불타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 같다. 몽테 크리스토 백작보다는 베트맨이 되는게 백 번 나아 보이는데(복수심을 해소하기 위해 바퀴벌레같은 사회악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보는 입장에서), 하는 짓이 영 바보같다. 아직 뭔가가 진행되지 않아(8화까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story of life: boy meet girl, boy got to be stupid, then boy and girl stupidly ever after" -- House, 존재감이 희미한 윌슨이란 종양전문의의 새겨들을만한 말씀. 사지 멀쩡한 슈퍼맨, 스파이더맨, 베트맨 등등도 결혼하면 모두 바보가 된다. 그중 많은 수는 목화 짐을 지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슈퍼) 당나귀나 (슈퍼) 노새이기도 하다.
Dexter Season 2
반면, 덱스터는 요즘 인상을 구기고 다니며 쓸만한 말을 한 마디도 늘어놓지 못했다. 총각임에도.
 
블로그 타이틀을 바꿨다. '알라여,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짐을 주소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오래 전에 알게 된 꾸란의 기도중 일부. 꾸란의 기도문들은 아름답다.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나 능력 이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으셨다' 라는 말은 하여튼 그래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유명하다.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신의 뜻이고 신의 자비인데 그 때문에 화가 치밀면 '인샬라' 라고 말하면 된다. 인샬라는 석유로 재벌이 된 쿠웨이트와 사우디 사람들이 애들을 미국 학교에 보냈더니 마약질을 해서 속상하거나 기차를 놓쳤을 때 하는 말이다.

신의 뜻 중에 이스라엘이 지도 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주장도 있다.
 
때때로 자기는 지옥에 살지 않거나, 이렇게 행복한 지옥이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실한 사람들이라면 잘 알다시피 댁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댁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신의 뜻이고 신의 농간이다. 신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겸손하게 살다보면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무의미한 존재이면서도 무의미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데(그리고 그런 가없는 노력이 생각만큼 쓸모가 없음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 모든 노력이 허위로 돌아가고 존재감이 무의미해지는 그곳은 지옥이다. 하여튼 그래서 돌아가시기 직전 노인들의 원망 성취 여부, 또는 삶의 질, 또는 삶의 그간 만족도는 종종 퍼뜨린 자손의 숫자가 되는 것 같다.

소박하지 않은가...
그럼 아이없이 늙어가는 사람들은 생지옥에...?
이럴 때 바로 다목적 경구를 읆는거다.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나 능력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으셨다.

하나님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존재한다. 그 반대는 아닌데, 무신론자가 왜 유신론자를 경멸하거나 증오 해야 하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맨날 유신론자를 놀려대는 나로서도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신없이 살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여기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장애인, 소수자, 외계인 차별은 본래 생득적인 그루피인 인간(어떤 깃발 아래 뭉쳐 깃발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멸시하고 살인을 깃발의 가치를 빛내는 스포츠처럼 즐기는 종족)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 지도 모른다.

세상을 냉소함으로써 얼마나 쿨한 놈인지 잘난체 하려는 이유가 아니라면 시도 때도 없이 인간을 경멸하는 질 나쁜 버릇을 버려야 한다? 버릇이 오래고 절망도 그만큼의 연륜을 쌓아왔던 것 같다. 지금은 절망하지 않았다. 골이 텅 비어 아무 생각 없다. 다만 자기통제력이 대단히 강한 종류의 멍청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 안 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알 알고 있다. 뜻깊은 멍청함은 그대로 놔두고, 버릇이 된 말투는 차츰 고쳐가야 할 것이다.
차마고도: 순례의 길
차마고도 2편 순례의 길. 하다를 들고 생불의 축복을 받고자 기다리는 사람들. 그렇다, 티벳에는 살아있는 부처들이 차 타고 이 고을 저 고을 돌아다닌다. 티벳에 별로 갈 일이 없다고 여겨 안 가고 버텼는데 스님이 얼마 전 티벳 가서 찍어 온 불상과 탱화를 보고 뻑 갔다.
차마고도: 생명의 차
차마고도 3편 생명의 차. 중국에 있는 천년 묵은 차나무 신. 매년 한해 차농사가 잘 되길 기원하며 제물로 닭을 잡아 바친다. 사람도 돈도 믿을 수 없고 줄곳 떠나가지만 차나무는 대대로 남는다는 그네들 속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에도 그 비슷한 속담이 있다; 부동산 불패.
 
차마고도: 생명의 차
차마고도 3편 생명의 차. 티벳에서는 주로 중국에서 수입한 싸구려 차로 버터티를 끓여 마신다. 라마가 마시다가 일반에 널리 퍼지게 된 말린 찻잎 때문에 티벳 경제가 파탄났다. 티벳에는 차가 자라지 않고 비타민을 섭취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티벳이 말을 팔아 차를 사온 그 길이 차마고도다.
 
쥬디스 리치 해리스, '개성의 탄생' -- 책의 전반부에서는 자신의 양육가설에 반대가 심한 학자 한두 명을 골라내 집중적으로 보살피며 사지를 찢어 놓은 다음 도끼로 머리통을 부수고, 잊을만할 때쯤 다시 그 시체를 꺼내 내장을 들짐승 먹이로 던져준다.

정리가 다 된 것 같다고 여길 때쯤 다시 묻어놓은 시체를 파내어 그 썩은 몸을 동네방네 끌고 다니다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누벽에 걸어 전시했다. 자신의 가설에 반대하는, 자료도 논증도 부실한 학자의 반박을 듣고 그들을 삼세번 살해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며 손녀딸에게는 한없이 인자한 학자 같다. 심지어 읽으면 DHA가 샘솟는다는 천재 스티븐 핑커와 친한 사이인 것 같다.  처음으로 읽은 해리스의 저서 임에도 흡사 오래 전에 알던 사람처럼 친근감이 들었다.
 
툭하면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본문에서 느긋하게 말하는(노인네가 자기 가설에나 충실할 것이지) 해리스의 책을 읽은 것은 그래서 커다란 기쁨이다. 해리스의 견해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 오래 전부터 나는 우연찮게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 겪은 정서적 장애와 혼란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잘 자라 정상적인 성인이 된다고 우겼다.  또, 유아기의 애착 유형에 관한 글을 읽고 콧방귀를 심하게 뀐 다음 그것을 비난한 적이 있다.

해리스도 그랬다. 확증을 얻고 싶었던 것은 부모의 존재가 아니라 부모의 양육 모델이나 롤플레잉이 아이의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쓸데없이 돈을 안 써도 아이는 이상없이 자랄 수 있다는 점이다(지금까지 아이에게 장난감이라고 사준 것은 지하철에서 산 천원짜리 고무덩이가 전부다).
 
하지만 해리스가 제시한 여러 증거와 정황을 종합해 보건대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려면 peer group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어야 하며,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나와 시집 잘 가기 위한 (뚜렷하고 합리적인) 목적도 아니면서, 단지 또래와 함께 있어야 발육이 되기 때문에 애들이 많이 드나드는 '학원' 같은 곳에 보내야 한다는 돈 드는 결론이 나온다.
 
사회가 날이 갈수록 야만스러워져 예전과 달리 돈 안 들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

소울이 애비는 그 또래 집단이라던가, 완전히 자라기 이전의 소셜 클럽이란 것들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사회화 대신 어둠의 길인 비사회화로 나아갔다. 게다가 제 애비처럼 소울이가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 대부분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성의를 가지고 교미와 번식(말하자면 사랑)에 임한다. 소울이도 교미와 번식에 충실하며 별달리 지랄맞은 개성이 느닷없이 발현하지 않길 빌어본다. 아내와 내 유전자만을 생각하면 아이의 장래가 몹시 암울해 보인다.
 
'육아'에 관한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훌륭하고 영롱한 조언을 얻었던 해리스의 책을 읽은 마무리: '개성의 탄생'에서 해리스는 침대에 누워있는 형사 흉내를 내며 가설군의 후보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 다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검증은 다른 사람 몫으로 남겼다. 아카데믹 고어물 수준이던 전반부와 달리 개성에 관한 그의 책 후반부, 가설에 관한 설명은 재미없다. 그뿐 아니라 쓸데없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다. 그가 말하길, 앞으로 나올 가설들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해리스 본인 생각에는 책 쓰면서 문제와 경로를 웰 디파인 했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김새는 시시한 결론이었다.  

최근 몇 년간 읽은 육아 관련 서적들에서 얻을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과학자가 저술한 극소수를 제외한 상당수가 근거 없이 나불대는, 시간 낭비나 하게 만드는 등 언급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해리스 역시 대다수 유아/청소년 대상 실험의 데이터 처리 방식이나 대조군 설정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그의 책에서 빈번하게 지적한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쪽 실험이나 데이터 중 제대로 된 것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을 해리스가 어느 정도 확증해 줬다. 그의 견해가 옳고 지지할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방법론적 접근 방식이 옳기 때문이다. 합리적 접근 방식이 차근차근 옳다면 인간성도 무척 좋은 것은 당연하다.

책: 번역 품질이 양호하다. 룰도 잘 지켰으며 심지어 기대하지도 않았던 부록으로 한/영 인명 대조표까지 들어 있다. David Rowe를 본문에서는 로위라고 표기하고 인명대조표에는 로 라고 표기했다. 나는 데이빗 로우로 알고 있다. 시시콜콜한 트집을 잡으려는 것은 아니고 인명대조표의 효험이 이렇게 좋더라는 것 뿐. 옮긴이 주석의 위치가 책 읽을 때 시선을 교란해 좀 기분나빴다. 동녁 사이언스,  곽미경의 번역. 곽미경이 폴 블룸의 '데카르트의 아기'도 번역했다. 나이스. 그런데 데카르트의 아기가 '개성의 탄생' 어딘가에서 언급되었던 것 같은데 인명 대조표와 찾아보기에서 찾지 못했다. 유명한 저자라서 당연히 블룸이 있을꺼라고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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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전쟁

잡기 2007. 11. 23. 18:11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할 수 없는, '혼자 밥먹기 최상위 레벨'이란 글에 달린 리플들에 대한 해당 사항 체크:
  • 삼겹살집 -- ok
  • 패밀리 레스토랑 -- ok
  • 부페 -- ok
  • 모텔방에서 맥주와 족발 -- ok
  • 유명 음식점 줄서서 기다리다 혼자 테이블 차지하고 먹기 -- ok
  • 프랑스 요리집 풀코스 -- ok
  • 중국음식 풀코스 -- ok
  • 도시락 -- ok
  • 길가에 주저앉아 먹기 -- ok
  •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 -- ok
  • 구걸 -- ok
  • 무전취식 -- ok
  • 산속에서 굶주리다가 이것저것 줏어먹기 -- ok
  • 결혼정보회사 주최 디너쇼 소개팅 이벤트에서 혼자 먹기 -- 여기서 좌절
볼 마음이 없었지만 나아졌다길래 하우스 4기를 보기 시작. 3기에서 워낙 찌질거려 문 닫을 줄 알았던 드라마가 4기에서 별난 병력으로 다시 차도를 보인다. 2화 제목은 Right stuff(같은 제목의 영화에 등장하는 앗싸가오리판쵸클럽(자막 번역 센스가 훌륭)이나 원숭이와 경쟁하는 정신병자 척 예거가 지금도 생각난다), 우주에 가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병을 감추고 어처구니 없는 유방확대 수술을 받는 테스트 파일럿 얘기다. 2화를 감상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평했다(2화를 보기 전에 그의 평을 먼저 보았다). 테스트 파일럿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그 자신 때문에 기회를 잃게 되는 누군가를 생각지 못한 것 같다. 글쎄다, 기회를 균등하게 주려고 인간이 할 만큼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까닭은 기회가 애당초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그의 평은 여러 모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번에 버그 잡은 것을 마지막으로 올해 기획했던 일들은 사실상 모두 끝났다. 연말쯤 '책임과 반성의 시간'이 온다. 경험상 선의가 사람들에게 이해될 정도로 쉬웠던 적은 평생 없었다.
 
작년 9월에 SW팀을 별도의 사무실로 독립하여 연구소를 설립하고 그쪽의 실질적인 운영책임을 맡았다. (그러니까, 서류상으로는 이사고, 직함은 과장이며, 실제로는 프리랜서인데 하는 일은 연구실장이자 프로젝트 메니저였고 거래처 사람들은 나를 '관계자외 출입금지' 라고 적힌 문 앞에 서 있는 안드로메다 다크호스로 알았다) 연구소를 만들면서 약속한 것은 1년 안에 지정한 과업을 완수하겠으며, 그 기간 동안 내게 연구소의 전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 2개월 지체로 끝맺지 못했다. 그간의 과정과 지체 사유야 어떻든 책임질 시점이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올 연말이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만 두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런 짓을 하면 당신들 엿 먹어보라는 수작 밖에 안되니까 타이틀을 반납하고 예전처럼 개별 고용된 용병 자격으로 일하며, 제반 업무에서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9월부터 어떻게 해야 이것을 부드럽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장님에게 9월부터 언질을 줬더니 굳이 책임 안 져도 된다고, 연구실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렸다. 사임하면 무슨 일이 생기나? 일단 연구실을 접고 연구원들은 본사로 귀속된다 -- 본사의 개발부서로 편입된다. 업무 결정권이 소실되므로 사실상 나는 자유의 몸이 된다. 연봉은 변화가 없다. 즉,  무척 좋은 일이다. 작업량이 1/2로 줄고 연봉은 그대로면서 가외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반드시 책임을 지고 싶다.

나이 들면서 고집이 늘었다. 안타까운 것은 나만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의 고집이 더 센가 자웅을 겨루는 꼴이랄까. 내 견해를 관철시키기가 그래서 어렵다.

11월 10일 토요일 밤에 먹은 멕시카나 치킨은 최악이었다.
 
John Scalze의 Old man's war. 하인라인의 적통을 잇는 훌륭한 밀리SF란다. 웃길 줄 아는 소설가와 웃길 줄 모르는 소설가 중 웃기는 소설가는 글을 좀 못써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후자는 글을 못쓰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자연의 섭리다. 스칼지는 웃기는 소설가다.

첫 30페이지까지 살만큼 산 노인들의 자발적인 고려장 내음이 물씬 풍기지만, 노인들의 끝없는 사르카즘과 위트가 SF로써는 지루했어야 할 전반부를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해 준다. 시트콤 풍의 아메리칸 조크라서 크게 기대할 것은 아니었다. 스칼지의 첫 작품이라는데, 당황스러운 노련미를 풍길 뿐더러 완급 조절이 수준급이고 글 자체가 무척 재밌다. (Conquering the universe was beginning to get to me <-- 일본 개그 아니메에 나올법한 문장이 천연덕스럽게 등장)

그리 많은 SF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40p쯤에서는 이들에게 시술될 기똥찬 의술이 어떤 것인지 감 잡을 수 있었다 -- 그나저나 홍씨나 김씨 처럼 일평생 많은 SF를 읽고도 정신이 멀쩡할 수 있음을 평소 무척 신비스럽게 여긴다. 농담. 

SmartBlood,  CatsEye, UncommonSense, HardArm, BrainPal 등을 장착한 노인네들이 외계인과 땅따먹기를 하며 묻지마 살육전을 벌이는 스토리인데 밀리SF치고 SF novice와 오타쿠들 양자를 잘 배려했으며 (나중에 그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 아하, 무릅을 쳤다) 첫 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SF가 지녀야 할 미덕(SF가 SF인 이유)을 유지한다.

김씨 말에 따르면 작가 본인이 SF 왕팬이란다. 그래서인지 SF에 등장하는 여러 가젯을 매우 능숙하게 다룬다. 얼마 전에 김씨와 그런 얘기를 나눴다. 나올만한 가젯은 이미 다 나왔다. 그것들을 조합해 어떻게 짜맞추어 그럴듯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가가 21세기 SF의 대중적 성공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Old man's War를 읽은 것이다. 대박날 작품이다.

2년 전부터 노인의 전쟁이 대박감이란 걸 알고 있던 김씨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놓쳤는지 의아하다. 지금 말하는 대박은 팬덤에서 2-3천권 소비되고 2쇄 간신히 찍는 대박(?)이 아니라 스타쉽 트루퍼급, 은영전급 대박을 말한다. 작가가 아예 작정하고 그렇게 쓴 소설이다. 김씨 사정을 들어보니 단순히 게을렀던 것 같다.

한국은 합리적인 이성이나 문장을 틀리지 않고 제대로 쓸 수 있는 작가는 물론, 문화란 것이 거의 없는 야만국가인 관계로 국가의 형태를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  서구문명 수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인데 국민성이 천박하고 교활하여 체면을 엄청 따지고 개개인의 인격이  본인의 수입과 광활한 학식과 인맥의 폭으로 측정된다. 그중에서도 서구 문물에 대한 감응도 랄까, 감수성이 높고 서구 문명에 대한 깊이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존경받는다. 말하자면, 좋은 작가를 선별하고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소개/번역하는 역자들이 명망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김씨가 그나마 지금까지 '명망'을 누릴 수 있던 것은(명망은 종종 기회를 뜻한다) 옛날 옛적에 번역한 젤라즈니의 소설 몇 권 때문이다. 이제 약빨이 다 닳아 새로운 보약이 필요한데, 최근에 소개 번역한 것들 대개는 그저 그렇거나, 시시껄렁하거나, 단순히 재미가 없다. 예를 들면 pern은 한 권만 내긴 뭣한 책이라 세 권을 내다 보니 엄청난 두께가 되었으나 그 두께만큼의 포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게다가 Science Fantasy라지만 Fantasy쪽에 무게 중심이 쏠려있고 1권에서 나올만한 설정과 장치는 모두 끝난 상태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첫 권 역시 마찬가지, 또 경계소설인지 뭔지 추리소설도 아니고 스팀펑크 흉내 조금 낸 소설류도 마찬가지. 유일하게 쓸만한 글이랄 수 있는 것이 테드 치앙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테드 치앙을 대체로 기묘한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글을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흥미로운 작가임에도 그의 글을 읽으면 흡사 영혼이 빠진 락 음악을 듣는듯한 기분이 든다. djuna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느낌이기도 하다.

주제 넘게 이러쿵 저러쿵 떠들 얘기는 아니지만 김씨가 명망있는 번역기획자로서 명망을 유지해 줄만한 '메이저급' 작품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게다가 김씨가 명망을 따지는 부류인지는 의문이다.
 
“북극곰 멸종위기 허풍” -- 신문 과학기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철지난 얘기를 잊을만하면 내보낸다. 몇 개월 전, 심하게는 몇 년 전 외국에서 나온 얘기를 올리는 기자는 정말로 낯 뜨겁지도 않은 걸까?

‘한때 위대했다·영국’냉소적 국가 모토 속출 -- 찌질국가가 되가도 과연 영국이다. 기대 이상의 모토들:  
  • 최소한 프랑스는 아니다!
  • 내 온 힘을 바치겠습니다. 뭘 해도 잘 안되는 나라니까!
  • 실컷 술 쳐먹고 로또나 사자!
관음증적 '미녀들의수다'와 경박한 미디어  '자밀라의 섹시함을 부각시키는 ‘미녀들의 수다’가 한국사회가 외국여성을 바라보는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우즈베키스탄 처녀들은 예쁘다는 대중적 편견을 조장했다는 뜻이지? 애인 구하기가 힘들어 울부짖는 한국 청년에게 우즈베키스탄은 꿈의 나라가 되었다. 사진에서 도미니크의 가슴 크기를 보면 그런 안 좋은 편견이 마구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진 올려놓은 센스가 뛰어난 경박한 미디어다.

우즈베키스탄이란 전설의 나라를 묘사하는 말: 김태희가 소 몰고 한가인이 밭 메고 샤라포바가 감자 캐는 나라.  어떤 유학생의 또 다른 증언. '우즈벡은 김태희 정도 되면 (외모가 안 따라주므로) 고등학교때 공부에 모든 걸 겁니다. 한가인 정도 되면 기술을 배웁니다.  옆집 전지현씨랑 매일 눈인사 하고 다녔어요. 김아중 정도급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노처녀입니다'  -- 훌륭한지고.

스타트렉 TNG를 다시 보기 시작.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타이즈를 입고 한물간 고물같아 보이는 우주선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저 정다운 촌스러움이란... 김C란 연애인은 시골 춘천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레 생각했다. 나도 그렇다. 날 때부터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인생에 길이 남을 경험을 그닥 많이 접해 보지 못한 것 같다.
도로로
영화 '도로로'의 한 장면. 어린 시절에 반딧불이로 가득한 저런 계곡을 하릴없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반딧불이를 한 가득 모아 그 빛 아래 책을 읽었다는 개뻥을 일찌감치 비웃을 수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서야 저런 반딧불이 떼를 본 사람들이 지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일께다. 어린 시절에는 반딧불이를 못 봤거나, 스타트랙을 안 보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다.

도로로
꽃미남이 나와도 영화가 재미 없다. 내가 네 애비다. 나는 네 애비가 아니다. 다 자라서 이런 말을 듣고 심란해진 아이들은 제대로, 올바르게 성장해 자신의 길을 가게 마련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가 시련이라니 우스운데, 아임 유어 파더 변주극들은 60년대 양육을 제대로 못한 부모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던 행동주의자나 프로이트주의자들의 견해를 반영했을 뿐, 순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또는 60-70년대 미국에서 문란하고 자유로운 연애가 성행하던 시절 차 뒷좌석에서 벌인 우연한 섹스로 태어난 아이를 훗날 찾아간 남자가 할 법한 대사일 것이다. 자신과 부모의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 및 희비극이 고대 그리스 비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서사적 원형으로 지지되는 것을 그래서 꼴 같잖게 여기는 편이다. 간단한 이유 때문에; 애들은 보통 그리스 비극 속에서 처럼 잠재의식 속에 영원히 뿌리 박힌 트라우마를 지닌 채 성장 장애를 겪으며 자라지 않는다. 그들은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이 자란다.

도로로
도로로는 데츠카 오사무 원작의 만화다. 2편, 3편을 연달아 제작한단다. 기대감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일본인은 원작을 망치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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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계방향 인류

잡기 2007. 11. 11. 17:31
세계일주하며 80차례 맞선 -- 신부감, 신랑감은 원래 이런 방식으로 구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노출 기회를 확대해 적합한 배우자를 입맛에 맞게 고르는 것.강한 자기애에 유별나게 집착하던 과거 내 자신의 우스운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적령기(?)에 여자들과 맞대면하면 사귀거나 사귀지 않거나 상관없이(피차 무책임하게)  저울질하고 재는 느낌 때문에 불편했다. 나이든 여자는 아주 노골적이고 젊은 여자들 중 일부는 수상한 게임을 하고 낚시질은 보편적이었다(안 그러는 여자들은 존재감이 희미하던가 재미가 없고). 나도 똑같은 짓을 했으니 할 말 없다. 따라다니면 달아났다. 유부남이 된 후로 강력한 천연 AT 필드가 생긴 것 같아 숨통이 트였다. 이제는 즐길 수 있다. 아... 이건 아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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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초쯤 이 그림을 봤다. 시계 방향이면 오른뇌, 반시계 방향이면 왼뇌를 자주 사용한다고 하더라. 오락가락 한다. 이공계열에 좌뇌형 인간이 많다고 하는데, 이공도 인문도 아닌 상경계는 왼쪽, 오른쪽으로 오락가락 고속회전하던가 살색을 입혀 본 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난할 것 같다.

이씨가 어젯밤 모임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상경계를 다룬 우스개를 했다: 물리학자와 화학자, 경제학자가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했다. 통조림을 하나 발견했는데 통조림 따개가 없다. 물리학자는 뉴턴역학을 기억하고 돌덩이로 힘을 가해 통조림을 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화학자는 전공을 살려 바닷물로 통조림을 부식시켜 보려 했으나 택도 없었다. 그때 경제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 통조림이 있고, 통조림 따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텔미 텔미 테테테테테 텔미 -- 리드믹하고 고저차가 별로 없는 쉬운 노래와 레트로 디스코 댄스가 결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원더걸스. 유행에 딱히 관심이 없지만서도 길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이 장난 아니다. 흡사 목적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그저 독자 생존의 길을 걷는 막무가내 문화적 밈처럼 무섭게 번져간다. 좌뇌, 우뇌가 골고루 발달한 상경계라면(추정) 여기서 마진을 취할 방법을 제대로 집어낼 것 같다. 하루 빨리 상경계가 되어 대뇌를 백퍼센트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 '한국어를 잘 쓰려면 '~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 적혀 있다. 찾아보려니 기사를 찾을 수 없다. 요지는, ~의가 일본의 언어생활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한국어/한글에서 굳이 사용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맵시있게 잘 사용하는 사람을 많이 본 적 없다.

최근 2주간 세미나에 보낸 직원들이 보여준 교재 내용의 수준이 상당해 교수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박사 학위 따고 모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양반이란다. 교육 과제가 데이터베이스 튜닝에 관한 것인데 이론과 실무 운용 경험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말하자면 학교에서 이론 연구를 주로 하던 사람의 글솜씨치고 몹시 훌륭했다. 이런 수준 격차가 학교 교육 때문인지 아니면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에서 비롯된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수개월 전 직원들에게 한 달간 어플리케이션 매뉴얼을 작성시켜 보니 철자 오류/띄어쓰기 오류는 기본이고 아웃라인을 잡을 때부터 헤멨다. 장/절 나누기, 문장 기호, 단락 구분, 비문, 수동태,  접속사 오류, 부사구 사용 오류, 아스트랄한 서술, 시제 불량 등등 버그가 상당했다. 매뉴얼은 요령이 몸에 배면 서술형 글쓰기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체계적 글쓰기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그럴 필요성을 이공계 학생들이 느끼지 못한 것일께다.

그런 까닭에 이공계 졸업생들이 레포트 작성해 놓은 것을 보면 애들 장난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 직원 중 뒤늦게 석사가 될 친구의 학위 논문 작성을 며칠 도와주었다. 이공계 논문 작성에 필수적인 '실험 데이터를 뜻대로 조절(조작)하여 대조군과의 변별성을 강조'하는 것을 제대로 못했다. 논문 심사할 때 디펜스 제대로 하려면 사전 지식도 많이 구축해 놓아야 하는데 잘 될런지... 리허설 해 준다니까 석사 논문은 그리 빡세지 않다고 사양한다. 빡세지 않단... 말인가?

송씨 말로는 이공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문계 역시 글쓰기가 심각한 수준이란다. 입말은 정황적/정서적 문맥 해석이 가능하지만 (별 관심없는 인문계 글쓰기와 달리) 이공계가 사용하는 글말은 정확성, 적합성, 간결한 서술, 구조적 완결성 등 갖춰야 할 간단한 규칙이 몇 가지 있다. 자나깨나 그런 종류의 문서를 밤낮없이 읽는 이공계라면 그런 규칙을 자연 학습할 법도 한데, 글쓰기, 글읽기, 말하기가 제각각 달라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대뇌도 부위별로 학습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그건 그렇고 며칠 전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감자탕은 감자와 돼지고기 등뼈를 넣어서 감자탕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 돼지고기 중 '감자'라 불리는 부위가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황당하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이다지도 어려운 한국어를 공용어로 만들기는 바늘구멍에 낙타 집어넣는 만큼 힘들겠지만(대세는 영어, 그것도 미국이나 서구권 영어가 아닌 지방색과 뉘앙스를 제거한 공통상업영어) 작년인가? 사라져 가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보전하기 위해 한글을 사용하자는 문자화 시도/제안은 매력적이다(영어권에서 소수민족의 언어를 기록해 놓긴 했는데... 영어가 워낙 한심해야 말이지, 나중에 제대로 재현해서 읽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한글이 배우고 사용하기 쉬우며 유연하다는 뜻이겠지. 문서화, 전산화 등 보전/전수하기도 쉽고.

그렇다고 한글이 많은 언어의 음운/음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국문학자나 인류학자들이 한글을 꾸준히 개량해서 적용범위를 넓히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영어마저도 한글로 표현하려면 확장이 불가피하다. 영어의 V/B, R/L, F/P, TH등의 음가를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까. 'Victor Flash really like go through' 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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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한글 고어보다 간단하고 멋지긴 한데, ER이 빠졌군. Flasher를 '플래셜ㄹ' 이나 쌍리을로 해결~ <-- 이게 바로 인문학/이학과 공학의 차이. 이론이나 학술적 배경에 관심없고 실무 적용 후 들어맞지 않으면 덕지덕지 갖다 붙여 외계어 체계를 대충 완성하고 만족. 때로는 이김에 관련 체계를 특허나 내 볼까? 라고도 생각해 보지만 현업과 무관하니까 관두자.

제임스 호건의 Giant 3부작 중 두번째, Gentle Giant from Ganimede를 마저 읽었다. 보스턴의 셜록 홈즈라 불리는 빅터는 이번에도 단체커 박사와 합심해서 가니메데에서 250만년 전에 사라진 평균 신장 2.4미터 외계인(자이언트라 불림)의 미스테리를 추적한다. 전통적인 추리 미스테리와 다른 점은 희박한 증거(지구와 가니미안의 세계 및 생태계에 나타난 변별성, 즉,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엔자임, 행성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희박한 태양 에너지, 가니메데의 왕성한 지질 활동) 를 바탕으로 한 (사변적 연역) 추리를 통해 250만년전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가 초기 가설을 만든 후 추가로 수집된 정보를 덧붙여 성립된 가설 중 부합한 것을 과학자 집단에서 토론을 통해 진화시키는(선택과 도태) 과정에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두 세계의 기원과 실체에 접근한다는 점(추리기법이 도입된 SF). 물론 외계인과 음모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글의 중반쯤에 이르러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거의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래도 만약 번역이 된다면 호건의 소설은 수능 교재로 사용하기 적합해 보인다. 몇 가지 조건을 예시한 후 지구인의 기원에 관한 추리를 완성하던가, 소설의 절반을 읽고난 다음 가능한 가설을 제시하던가, 글의 끝에서 가니미안의 선택지를 추론해 보는 것이다. 결론: 제임스 호건의 SF는 학회SF이자 수능SF.

이번에야 조사해 본 호건의 이력: 1941년 출생. 전자공학과 디지털 시스템을 전공,  몇 년 동안 엔지니어로 지냈으며 DEC에서 메인프레임 영업을 하다가 (훌륭한) 기계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인간에 관해 배워 보고 싶어 2년 동안 생명보험 외판원을 했다(뭘 배웠을까?). 1977년 미국으로 이주해(36세) DEC에서 영업 교육 컨설턴트와 미니 컴퓨터 어플리케이션 개발 및 과학연구 활동을 했다. 지금은 그것을 기술영업이라고 부르는데, 요즘의 기술영업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때가 DEC의 황금기 였고 애정 때문인지 소설에서 컴퓨터 시스템을 설명할 때 DEC가 언급된다.  2년 후(38세) 아일랜드로 옮겨가 전업작가가 되었다. 당시의 컴퓨터 엔지니어링 및 세일즈는 지금과 달리 커팅엣지 산업이었으며 그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광신도들로 구성된 폐쇄된 종교에 가까운 엘리트 사제 집단이었다. 한편에서는 기술을 통한 인간성의 개량에 관한 희망적인 믿음이 팽배했으며 깁슨처럼 기계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출현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호건은 글쓰기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한 것이다. 혹시나 해서 알아본 배경은 예상대로다! 엔지니어링 마인드가 글 전체에 흠씬 묻어나 있어 (누구는 글이 최악의 수준이라지만) 읽기 쉽고 편했다. 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해석할 줄 알았던 아시모프, 세이건, 클라크와 같은 간결한 글쓰기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지만, 대략 16년 이상 숙성된 훌륭한 엔지니어링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없음(엔지니어의 말투가 모노톤인 점과 무관하지 않음)이나 당면과제와 문제점에 대한 집요한 집중력이 이해가 갔다.

최근 일본, 미국, 프랑스를 대상으로 엔지니어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어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기술자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편인 것 같다. 특히 미국 기술자들중 많은 수가 기술직을 descent job으로 인식하며 자신의 자손에게도 기술직을 권고해주고 싶어했다(한국의 엔지니어중 자기 자식이 기술자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본의 경우 전체 기술인력 중 2%가 여성이다. 전반적인 통계로 보건대 세계적으로 여전히 여성은 기술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위선적인 유리천장이나 기술자 사회의 남성중심적 배타성 때문에 여성이 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뜻대로 생각하시길.

미국 등지 기술 선진국의 컴퓨터 엔지니어 초봉 수준은 4만달러(한국은 2만 달러대),  5-7년 경력직은 대략 8-10만 달러 가량을 벌어들이고 기술직의 한계 연봉은 (들은 바로는) 대략 20만 달러 가량이란다. 물론 몇몇 기업에서 스타급 엔지니어나 성장세가 유지되는 곳은 인센티브, 스톡 옵션 등을 합쳐 실질적으로 이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다. 경력자로서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하면 세금은 대략 30% 가량, 주택 모기지와 적어도 한 대 이상의(보통은 2대) 차량 구입/유지비,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등을 더하면 한국에서 연봉 4-5000만원 정도의 기술자와 비슷한 생활 수준이 된다.

한국의 컴퓨터 엔지니어 대부분은 퇴직 전까지 꾸준히 기술직으로 먹고 살았으면 하는 순진한 바램이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지난 20년간 툴은 수십 차례 바뀌었고 기반 기술이나 플랫폼이 뒤집힌 것은 대여섯 차례 가까이 되며 유행하는 사조 역시 셀 수 없이 변화했다. 개발 방법론도 조직 구조도 몇 차례 바뀌었다. 삼성 회장이 말했던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 안 그래도 그 지경이다.  컴퓨터 엔지니어는 전문직종 중 유난히도 꾸준히 학습해야 한다. 반면 좌뇌던 우뇌던 대뇌의 신경세포는 꾸준히 죽어 나간다. 스펀지처럼 쭉쭉 지식을 빨아들이던 십대, 이십대 머리는 점차 딱딱하게 굳어가 학습 곡선이 예전같지 않게 된다. 머리가 안 따라주고 겁만 늘어나니까 생뚱맞은 고집과 온갖 종류의 핑계만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당신보다 값싸면서도 경험이 몹시 부족해 겁대가리가 없을 뿐더러 최신 기술을 익힌 젊고 혈기왕성한 엔지니어와 경쟁해야 한다.

두번째, 나이가 들면서 결혼도 하고 애도 갖고 이런저런 책임을 지게 되면 자연히 일과 상관없는 생활의 복잡성도 증가하게 마련이다. 하루 18시간씩 아무 생각없이 기쁘게 일에 매달리던 젊은 시절과 달라진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삶이 무한투쟁에 가까운 한국의 특수성 탓에 부스에 틀어박혀 행복하게 코딩만 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은 나이가 들면 천천히, 슬며시 접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잖아도 한국에는 기술과 경영, 기술과 마케팅, 기술과 영업, 기술과 기획, 특히 기술과 기술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중간 기술 관리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가 예전처럼 스타 플레이어 한 두 마리가 전체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현하던 단순한 시대는 지나갔다.

선진국 기술이민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는데, 단순 기술직으로는 연봉 상승에 한계가 있다. 단순 기술직->기술 관리직으로 업그레이드하게 되면 연봉이 상당히 올라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순 기술직 까지는 언어에 불편함이 없지만 기술 관리직으로 넘어가면서 망할 언어적 뉘앙스를 비롯하여 다방면에서 문화 차이가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 (한국의 자회사나 한인교회의 끈끈한 우애나 한인사회 내부에서 안전하게 거주하지 않는 한) 뼈속까지 미국 외계인이 되지 않으면 기술전문직 또는 고위직으로의 이동이 그렇게 쉽지 않다.

등등의 이유로 단순 소득면에서 기술직 이민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또한, 아까 말했다시피 억대 연봉을 받아도 손에 쥐는 소득은 그렇게 많지 않아 여유자금을 이용한 금융투자 등으로 직업외 소득을 얻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기술자는 의사나 경영직과 달리 거의 쉬지 않고 학습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 근무하면 주 5일에 나인투파이브 근무라고 하지만 전세계 어느 나라든 컴퓨터 엔지니어가 야근 안 하는 곳은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특히 다른 나라들 대개가 작업 강도가 쎄서, 한국에서처럼 웹질하며 탱자탱자 일하는 둥 노는 둥 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사회 안전망/사회 간접 자본에 대한 투자가 한국에 비해 현저한 차이가 나므로 기술자로 먹고 살기로 결심한 이상 미국 등지에 취직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아내가 외국 나가 살고 싶어하기도 하고)  글쎄, 나는 이씨 아저씨의 표현인  '한반도 변태들'과 소주 한 잔에 스트레스를 풀고 날이 갈수록 SF&F 스러워지는 한국에서  (때로는 먹고 사는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스릴을 만끽하면서) 온갖 미친 리얼타임 인터랙티브 생쑈에 짜증을 내거나 즐거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비록 대다수의 출연진이 로봇같은 개성빵점의 소설을 썼지만 호건의 이력과 그의 글에 몹시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기술만능주의 시대의 풍요로운 결실과 희망을 맛본 순수한(순진한?) 작가이며, 무엇보다도 (컴퓨터 엔지니어의 숙명이기도 한 끊임없는 학습에 염증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지만) 38세에 직장을 접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아쉽지만 엊그제 시작한 3부 Giants' Star 초반부는 많이 지지부진하다. Old man's war부터 읽어봐야지.

오늘 블로그질 하면서 많이 호들갑스러웠다. 기분이 좋아서. 어제 일년 가까이 잡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던 다른 사람 프로그램의 버그를 드디어 잡았다. 내가 넘겨받아 본격적으로 버그를 사냥하기 시작한지 나흘만이다. 장시간 운영중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랜덤 에러라 잡기가 무척 까다로운 버그였다. 시뮬레이션을 해서 거의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버그를 재현해 보니 결국은 간단한 스레드간 락킹 문제였다.

The Unit
헐리웃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총파업. 2차 저작권 문제 때문인 듯. 한 동안 유닛, 덱스터 등이 지지부진하게 생겼다. 제이양처럼 스타트랙이나 다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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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사진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첨부. 아빠건 엄마건 음마로 통일해서 부른다.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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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사생활'의 그 영악스러운 아기처럼 책 읽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집에서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 우유 배달부라도 왔다간건가? 그림책에서 뭘 보던 손가락으로 집으면서 '음마' 라고 부른다. 일관성인지 자기만의 고집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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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he mind works

잡기 2007. 11. 8. 00:45
스티븐 핀커의 저서가 국내에 여럿 번역되었다. 게을러서 안 읽고 게겼던 것 같다. how the mind works, language instinct, tabula lasa. 이중 빈서판은 작년에 읽은 것 같은데? 남은 두 권은 언제나 읽게 될까... 쥬디스 리치 해리스처럼 싸움닭스럽고 쥬이시, 스파이시한 주제로 글을 쓰는 매우 인상적인 학자 임에도 논란의 와류는 제법 요령있게 피해가는 듯. 어떤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그의 글을 읽으면 똑똑해진단다. DHA가 풍부한 교양과학서랄까.

술을 안 마시는 것은 인생에 대한 중대한 직무유기인 것 같아 일주일에 못해도 한두 차례는 술을 마셨다. 중이염 치료가 더뎠던 것은 뇌물에 찌들은 신경계 내지는 부패한 면역계의 외설스러운 반응이나 지방이 풍부한 안주를 곁들인 술 마시기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식습관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개중에는 상갓집에 가서 새벽 네 시까지 퍼마시고 출근한 최근 일도 있었다. 그럼 의사들은 잠꼬대처럼 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추측컨대 술을 마시는 것은 위장과 간에 무리를 주어 수면중 알콜 분해에 역량을 집중하느라 병균을 죽이고 인체를 재건하는데 열심히 삽질해야 할 세포들이 딴전을 피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라고 생각했다. 그럴듯하긴 하지만 근거 없다.

2주 동안 병원을 들락거려도 도통 염증이 가시지 않다가(적은 양이지만 술은 마셨다) 갑자기 딴 생각이 들어 병원을 바꿨다. 유크라 정과 알콘시프로바이점이현탁액(퀴놀론계 항균제) 투약 후 약 2시간 만에 염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2주 동안 먹었던 각종 기분 나쁜 소염진통제, 항생제, 위장약 트리오가 아닌, 단 하나의  알약으로 기적같은 치료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날 밤(11월 2일) 편히 잤다. 의약품 검색은 http://www.kimsonline.co.kr/

의사의 진료행위에 대한 불신은 치료에 전혀 도움이 안 되야 정상인데, 나처럼 위약 효과가 별 의미가 없으며 현대문명, 특히 의학과 생물학에 대한 뿌리깊은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병도 더디게 나을 것 같지만, 사실 그 반대였던 적이 더 많았다.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매일 밤 늦게 자고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는 내가 불가해하게 건강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정신 상태가 가끔 심하게 멀쩡하기 때문. 멀쩡하다고 하긴 뭣하고 명료하다고 해야할지(하얀 눈밭을 에운 검은 숲처럼) 가끔씩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가볍게 한 대 맞은 것처럼(뎅~) 갑자기 의식이 뚜렷해 질 때가 있다고 해야 할지. 하루중 대부분이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런 순간은 짧고 단속적으로 한 두 차례 두서없이 나타날 뿐이다. 그보다는 형편없는 기억력이 생활에 많은 불편을 야기했다. 하여튼 그런 순간이 오면 섭취한 영양분이 삽시간에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타민이란 괴상한 TV 프로그램에 따르면 건망증은 DHA가 풍부한 삼치로 치료하면 된다.
아니면 똑똑한 채 잘난척하기 좋은 책(이를테면 핀커류)을 몇 권 읽던가.

스푹스는 3기에 들어서 메가리가 없어졌다 심하게 말하면 스파이들이 꼴갑 떨고 있다. 자전거 타기처럼 드라마란 업이 있으면 다운이 있게 마련 -- 영화와 달리 드라마란 것은 원래 너저분할 수 밖에 없게 마련. 덱스터는 2기에 접어들어 자신의 어둠을 드러내는 방법을 서서히 배워가는 중이다. 내게도 덱스터같은 어둠이 있던 시기가 있다. 심연을 뚜러지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당신을 쳐다본다 고 니체가 말한 적이 있다. 30대 초반까지의 고민과 30대 중반 이후의 고민은, 설령 그것이 프로그래머의 것이건 살인마의 것이건, 질적인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덱스터가 바로 그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자신이 살해한 18구의 시체가 발굴되면서 화면은 빙글빙글 돌아가고 그동안 별고없이 행복하게 살았던 덱스터는 자신의 인생을 강제로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씹은 것 또 씹는 무슨 황소도 아니고, '나는 뭘까?' 참고로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일관적이다.

애매한 정신세계는 단속적인 성장 상태  또는 지지부진한 답보 상태, 이도저도 아닌 상태  등 몇 안되는 state에서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내가 가끔은 성장했다고 잘난 척 할 처지가 못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나 인간에 관해 그렇게 많이 알아봤자 써먹을 데도 없고 실제로 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도 모르는 그런 류의 지식을 갈고 닦아봤자 뭐하겠나 싶다. 가끔 당신에 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 놀래키는 용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에게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조씨 아저씨는 평소 저 혼자 일하면서 연락도 안하고 사무실에도 가끔 안 나오는 등 나름대로 자유를 만끽하며 지내다가 사람들이 자기를 왕따 시키는 것 같아 한편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동시에 한편으로 소외되어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자기는 소외되어서 기쁘다며 화를 내는 것이다. 그는 그가 응당 받아야 할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 쓸모도 없이 버려지거나 웃음꺼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 듯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조씨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살아야 할 이유를 늘 오락가락하는 결의와 사회에서의 위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인정, 감정적 결속(사랑, 신의, 우정 등속) 속에서 굳이 찾아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에 관해 의문을 갖고 다른 것이 있는지 찾아보지는 않으려나? 그런 고민없이 정말 어처구니없게 행복하게 사는 나는  뾰족하게 뭐라고 위로해 줄 수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주윗 사람들의 고집이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고, 마찬가지로 자존심도 밑도 끝도 없이 커져가면서 머리는 점점 나빠지고 감정적 격앙 등의 정서 반응이 점점 십대스러워지는 모습을 본다. 

AR의 Pushing Ice를 10일에 걸쳐 읽고 감상문을 쓰지 않았다. 레널즈는 드디어 하드SF가 아닌 SF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드한 묘사의 파격적인 생략과 지저분한 인간관계를 전면에 내세우는 센스, 그러면서도 상대론적 속도로 은하계 저 먼 곳까지의 로-맨틱한 여행(만 오천년이던가? 십만년이던가?), 커다란 드럼통에 은하계에서 긁어 모은(흡사 지나가는 강아지를 쏘세지로 꼬시듯이)  각종 외계인을 수집하여 동물원을 꾸미려는 미스테리한 외계인스럽게 밑도 끝도 없이 장려한 계획, 살아남기 위해 피차 발버둥치는 외계인들 간의 처절하고 궁색한 생존 경쟁, 나노테크는 시시해졌는지 이제는 펨토테크가 대세다!  라마와의 랑데뷰 + 링 월드 + 타우 제로 + 영화 아마겟돈 을 합치면 이런 SF가 나온다. 누가 코치라도 해 준 건지 날이 갈수록 글솜씨가 좋아졌다.

 

인터뷰 사진은 시끄러운 옆집 노파를 토막 살해 후 입 닦은 모습이었더랬는데...

Alastair Reynolds
푸싱 아이스의 책 날개 사진은 한 십년쯤 집에 틀어박혀 가사와 사이버세계에 전념해 온 88세대같은 모습이었다. 레빌레이션 스페이스 시리즈가 끝난 후 우리(?)가 포근하게 느껴왔던(?) 그의 고딕 스타일 우주는 그렇게 끝장난 것이다.

레널즈가 이번에 특별히 가볍게 과학기술을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SF 업계에서 네임벨류는 거의 없지만 위대한 하드SF의 거장답게) 디테일의 일부는 어쩔 수 없이 하드했다. 벨라와 스베틀라나의 역학 관계의 이동 중심추가 무식하고 힘만 쎈 웨일즈 촌뜨기 광부를 모티브로 삼은듯한 얼음청소부인 것은 사실 정해진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극 전개를 예상하게 하지만 부담 없으면서도 깔끔한 전개와 결말을 비교적 짧은 500 페이지 가량에 균형있게 배열했다. 아무래도 누군가 그에게 작법 지도를 하던가, 편집 쪽에서 상당한 파워를 가했던가, 레널즈가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자고 정신 차린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 면에서나 SF 함량 면에서나, 읽기 좋고 즐거운 소설이었다. 떠오르는 작가의 주특기가 몽땅 거세당하고 나서야 소설은 나오게 되는 것인가? 이런 토크플레이러브스러운...

제임스 호건의 giant series중 첫 권인 inherit the star도 마저 읽었다. 7월에 반쯤 읽다가 말았는데 어느 페이지에서 펼치더라도 상관없이 주욱 읽을 수 있는 정말 희한한(rare) 하드 SF다. 극 초반에 달 표면에서 발견된 5만년전의 인류를 쏙 빼닯은 외계인 시체의 미스테리를 푸는 과학자들의 논쟁을 다룬다. 7월에 더 읽을 맛이 안 났던 것이... 결말이 이렇게 저렇게 날 것이라고 예상해서(너무 뻔히 보여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증거와 논란 주제를 여러 개 나열하고 그걸 짜맞추기 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단일한 결론이 나온다(그리고 그 논란에 부속된 전개가  이 소설의 전부다). 그게 책의 딱 절반에 모두 제시된다. 마지막 한 둘 쯤은 꼬불쳐 두었다가 클라이막스에 써먹었어야 하는데, 이 책은 도대체가 클라이막스란 게 없다.

그러다가 무릅을 탁 쳤다 / 깨달음이 왔다 / 대뇌피질에서 포도당이 왕성하게 소비되는 느낌이 왔다. OSC가 예시하던 하드SF가 바로 이거였구나. 그러니 OSC가 하드SF의 'ㅎ'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바보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는거지.

아울러, 김씨 아저씨던가?  호건을 지지리도 글 못쓰는 얼간이라고 놀리던 기억이 난다. 산소가 부족한 우주선, 가니메데 캠프에서 공기 오염 걱정 없이 툭하면  담배를 뻐끔뻐끔 빨아대는 것, 주인공이 지구에 화상 메일을 보내는 극히 촌스러운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외계인의 지구기원설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단체커 교수가 많은 미스테리가 풀린 후 그것을 축하하는 칵테일 파티장에서 인간성을 씹어대는 연설을 멋지게 해 내는 장면이었다. 분위기 정말 cool(썰렁)한 것이, 호건은 '학회SF'라는 소설업계에선 존재해선 안되는 장르를 제대로 개척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고 싶어졌다. 그게, 70년대 소설임에도 별로 촌티가 나지 않았다 -- 학자들 세계는 백만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테니까.

Danchekker가 이렇게 끝맺었다. "Let us go out, then, and claim our inheritance. We belong to a tradition in which the concept of defeat has no  meaning. Today the stars and tomorrow the galaxies. No force exists in the Universe that can stop us."

피를 끓게 하는 연설같아 보이겠지만... 천성적인 개망나니 인류가 우주로 나가 무슨 짓을 할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뿐더러 말려도 소용없다 라는 뜻이다 -- 단체커는 cool할 수밖에 없는 학자기 때문에 인류가 그러다 멸종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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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world elsewhere

잡기 2007. 10. 31. 19:37
400줄 짜리 간단한 File System Notification 클래스를 하나 만들어서 도와줬더니 그거 코드프로젝트나 코드 구루에 올려보는게 어떻냐고 한다. 올릴 수야 있지만 올리기 위해 들여야 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아서 안했다. 구글 뒤져보면 있는데 뭣하러? 구글에 없단다. 구글 뒤져보니 쓸만한 것은 없었다.

운전면허 갱신. 새로 받은 운전면허증을 보니 1종 보통 면허를 1994년에 땄다. 두 번의 적성검사를 받았고 이전 것은 10년 무사고 때문에 말 많던 그린 면허증이었다. 적성검사는 간단한 시력 측정, 색맹 측정(보여요? 예. 끝), 앉았다 일어서기가 전부였다. 면허만 갱신하고 13년째 차를 안 몰고 있다. 뭐, 한국에는 저렴한 가격에 맘에 드는 모양을 가진 차가 없기도 했다. -_-

화창한 토요일에 자전거를 정비했다.
자전거 수리: Bottom Bracket 분리

패달과 크랭크 암을 분리하고 Bottom Bracket을 빼내어 정비했다. 이걸 빼고 깨끗이 닦은 다음 그리스칠을 해서 조립하는 비용으로 2년전 자전거 가게에 3만원을 줬다. 공구 가격이 6만 2천원이니까 이걸 두 번만 해도 공구 가격은 뽑는 셈.

자전거 수리: Freewheel 분리
프리휠도 분해했다. 분해 조립이 너무 쉬워 희희락락했다. 이렇게 해서(자전거 전체 분해 조립 후) 내린 결론은, 자전거 정비 중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이 앞 디레일러 조정이다. 어쩌면 자전거가 싸구려라 앞 디레일러의 유격 조절이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다 보면 짜증난다.

플라스틱 스프라켓 가드를 닦아 말리다가 바람에 날아가 옆집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2m가 넘는 담을 넘어 꺼내오면서 팔 다리에 생채기가 났다. 남의 집 담을 넘는 것은 참 오랫만인 듯.

스푹스 6화. 멋진 장면이 나온다. 두 스파이가 대면하면서 벌이는 의식. 이 드라마는 볼만한 드라마였던 것이다. 경찰을 짭새라 부르는 것처럼 스파이를 스푹스라고 부르는 것 같다. 국민 대다수가 술이나 퍼마시며 축구에 미쳐 지내는 후진국으로만 알고 있던 영국의 드라마 두 편이 연달아 볼만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점차 쓰레기 같아지는 히어로즈나 프리즌 브레이크에 비하면 말이다. 게다가 이들은 프로다. 친구는 도움이 안되고, 믿을건 오직 적밖에 없단 것을 안다. 스파이물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스파이의 교조적 정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예전 스파이가 habit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스파이는 hobbit을 가지고 있다. MI5의 구호가 Regnum defende(Defence of The Realm)였다. 개들이 자기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오줌을 싸는 것을 라틴어로 말하면 저렇게 되는 것 같다. 갖은 궁상은 다 떨지만, 비열하고 냉정하며 손속이 매서운 스파이를 가감없이 묘사한다. 종종 미국을 등장시켜 엿먹이며 영국인들끼리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서; Oh well, needs must.

키이쓰 E. 스타노비치 - 심리학의 오해  - 영문 제목이 How to think straight about psychology 6th Ed. 였던 것으로 기억.  그게 어쩌다 변명같아 보이는 한글판 제목을 달았을까.
 책 내용을 보면 그런 변명이 주저리주저리 언급된다. 훌륭한 저술이었고, 심리학에 관한 오해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 읽고난 후 책 제목이 납득이 갔다.
흔히 영화나 연극에서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책에 몰입하는 것이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이며, 고독하고 다소 염세적이며 자기 몰입적인 성격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이 연구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신화에 불과하단느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내성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버림받기는 커녕, 광범위한 사회적/문화적 활동을 보이며 적극적인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정반대로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은 많은 측면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통속적 신념의 검증 과정에서 나타난 한 조사 결과. 한국의 독자들이 자폐증 찌질이 같다고 생각해 왔는데, 놀랍다. 이런저런 블로그에 가면 몹시 거지같은 책에 관한 열성적인 호평이나 뭘 읽은건지 생각은 하면서 책은 읽는 건지 상관없이 되는대로 떠들어 대는 이유가 높은 외향성 때문일 줄이야...
닉커슨은 브로노프스키와 마찬가지로, "과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과학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해서가 아니라... 다른 과학자들이 견지하고 있는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동기가 무척 높기 때문이다"라고 믿는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굴드나 에드워드 윌슨이 존경받는 이유는 시기심 많은 동료 과학자들의 무자비하고 파상적인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자신의 가설을 어떻게든 생존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날이 갈수록 자신감이 쌓여 뻔뻔해져 갔던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의 개념은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에서 잘 예시되었다. 마법사가 실제로 깡통인간에게 심장을, 허수아비에게 두뇌를, 그리고 사자에게 용기를 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나아졌다고 느꼈던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메디컬 드라마적인 측면이 있었구나. 마누라가 두피 염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가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보았다. 그 한의원은 탈모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한의원에서 나눠준 책이 '모(毛)가 난 사람들, 모가 나지 않은 사람들' 뭐 그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 양방과 달리 한방의 거개 치료기술에 대해 신뢰가 안 생긴다. 치료 효과에 관한 통계 분석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아서다. 양방은 그런 면에서 검증할 수 있고, 재현가능한, 수치화된 자료를 제시한다. 하지만 '용한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더니 나았다'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었다. 위약 효과는 실제로 25% 가량의 치료율을 보인다는 어떤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용한 한의원에서 믿을만한 한의사에게 몸을 맡기면 희망과 그 자신의 신념에 자연 치유력이 보태지는 셈이다.
생물학자 윌슨(E. O. Wilson, 1998)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처치랜드의 생각이 정확한 이유을 시사한다: "두뇌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다. 이 두 목적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과학에서 얻어진 지식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마음이란 세상을 조그만 조각들로만 보게 된다. 마음은 세상에서 다음 날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알아야만 하는 부분에다 조명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 심지어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보다 자동차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본질적인 설명은 경험적인 것이지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물음이 아닌 이유인 것이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 치고 윌슨이 언급되지 않은 글을 본 적이 없다. 처치랜드도 가끔씩 나오긴 하지만 윌슨만큼 엄청난 빈도는 아니었다. 훌륭한 문구다. 두뇌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존재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에드워드 윌슨이 훌륭한 과학자인 까닭은, 한밤중에 으슥한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때려부수는 행동을 실현하는 십대 아이의 두뇌가 얼마나 생존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입증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역자주: 여기서 hard science란 전통적인 자연과학, 예컨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을 지칭하는 것이며, soft science란 최근의 컴퓨터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등을 지칭한다.
역자주: J. R. R. Tolkien은 하이틴 소설을 많이 쓴 문학교수이자 소설가다. 그가 쓴 몇 가지 소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예컨대 The Lord of the Rings는 마술반지라는 제목으로, The Hobbit는 꼬마 호비트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시중에 나와 있다.
컴퓨터과학이 soft science였었나? '마술반지'라는 하이틴 소설은 한국에서도 빅 히트를 기록했다. 이 책의 1판1쇄는 2003년 1월 10일에 나왔고 역자 서문을 2002년 말에 쓴 것 같다.

해피SF에 들어가보니 '쥬라기 공원'을 SF라고 하더라. 얼마전에 마이클 코디의 '신의 유전자'를 읽었는데 그것도 그럼 SF인 것 같다. 쥬라기 공원은 십몇년 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SF 동호회가 결성되고 첫 정기모임을 가질 때 대화의 소재였던 것 같다. 그 얘기를 십몇 년 후에 다시 들으니, 쥬라기 공원이 SF인지 아닌지 별 관심이 안 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정말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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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ya con dios

잡기 2007. 10. 24. 00:21
MI5를 다룬 첩보물인 Spooks 1기를 보기 시작. 몇 편 안 봤지만 아직까지는 볼만한 것 같다. 1화는 별 임팩트가 없었지만(보통은 1화가 아무 인상을 주지 못하면 시리즈를 더 안 보지만, 스푹스에는 뭔가가 있어 보였다) 2화에서 죄없는 여자를 튀김기에 튀겨 죽이고 3화에서  변절한 스파이가 쿠르드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척 하다가 MI5의 월급은행을 턴다. 4화에서는 부시 암살을 다룬다. 재밌어서 낄낄거렸다.

Unit 3기. 갈수록 차도가 보이는 드라마. 2기말부터 아줌마들 얘기가 덜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3기 스타트가 좋다. 델타포스 군바리 삽질하는 스토리만으로는 내구성있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힘들어지자 CIA를 동원하여 첩보전과 정보전을 시작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것은 좋지만 장기적으로 그게 과연 옳은 방향인지는 아직...

Scene from Prison Break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파나마시티를 패닝하는 장면이 나왔다. 유닛 3기에서도 파나마 시티의 그 지랄맞은 우체국이 등장했다. 재밌는 것은 이 장면에서 내가 묵었던 호텔이 나온다는 점. 해변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저 멀리 건너편에 보이는 비즈니스 구역에서 리마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러 돌아다니고 파나마 시 끝에서 끝까지 우체국들을 전전했다. 보기에는 멀쩡한 도시지만 이들은 주소를 별로 사용하지 않고 사서함에 우편물을 보관해 두는 터라 어딜 찾아가기가 좀 힘들다. 하여튼 국제우편물 수탁 때문에 우체국을 들락거리느라 진이 다 빠졌다. 덕택에 파나마 시 구석구석을 알게 되었지만. 일주일이나 지내면서 정작 관광지인 파나마 운하는 보러가지 않았다. 밤에는 숙소나 펍에서 술이나 퍼 마시고 위험하다는 올드 디스트릭트 주변을 배회했다.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은 것 없지만 오래 머물러서인지 정이 가는 '국제도시'였다.

Av. Balboa, Panama City
이 사진을 찍은 것이 벌써 4년이나 되었다. 여긴 산책하기 좋은 해안도로인 Av. Balboa. 직진은 신시가, 후진은 구시가. 이전 사진의 해변 부근.

이게 바로 기록의 힘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HP노트북을 언제 샀는지 블로그를 뒤져보니 안 나왔다. 예전에 Movable Type 업그레이드 하면서 엔트리가 날아간 모양이다. 그런 버그가 있었다. 이번에는 1999년 4월부터 부터 일정이 기록되어 있는 Outlook을 뒤져 보았다. 역시 없다. 기록의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이번에는 노트북의 가장 오래된 파일을 찾아보았다. 2006/04/22. 그러니까 이 노트북은 2006년 4월 20일 전후 해서 구입한 것이다. 가격은 기억난다. 30만원인지 40만원에 이전 노트북 (Averatec 3200)을 팔고 124만원 짜리 새 HP nx6120 노트북을 구입하는데 보탰다.

시장에는 백만원 미만으로 core2duo 노트북이 나돌아다닌다. 직원이 하이얼의 저가 노트북을 구매했는데 정말 괜찮았다. 이 노트북을 30-40만원에 팔고 새 노트북을 장만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감가상각율을 계산해 보려고 구매 데이터를 찾았던 것이다.

얼마 전에 위키 페이지가 날아갔다. 사실 언제 날아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2006년 12월의 과거로 돌아갔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덜 날아간 데이터가 그것 뿐이다. 말하자면 위키 페이지 유지보수에 워낙 관심이 없어 사용하지 않다보니 잡초만 무성해진 셈.  형상관리에 wiki를 사용하지 않고 trac을 쓰게 된 후부터 였을 것이다. 사실 wiki만으로는 부족했다. 버전관리, 타스크관리, 다큐멘테이션 저널링이 모두 필요하니까. 거기에 블로그까지.

이 블로그의 외양은 그대로지만 물밑으로는 많은 작업들이 이루어져 왔다. MT 컨버젼중 몇몇 아티클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일종의 메모랜덤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500개가 넘는 아티클에 태그를 달아보고 지역을 제대로 설정해 볼까 하다가 조금 하다 말고 포기했다. 너무 많다.

홈페이지는 신의 뜻대로.
홈페이지는 알라와 함께 가는 것이 여전히 바람직하다. 합리주의자가 신 운운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신은 나를 무신론자로 살게 하셨다. 신의 뜻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라는 유명한 경구가 있긴 하다. vaya con dios는 임종을 맞은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라고 들었다. 에스빠뇰을 여전히 잘 모르지만, 신과 가라(go with god)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사망한 데이터들이 그립다. 바야 꼰 디오스.

8월 무렵까지 상황이 좋았다가 사태가 갑자기 역전되어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다. 외부 여건으로 납품건이 몇 건 취소되고 직원 중 하나는 잦은 스트레스와 쌀쌀한 가을 공기 탓에 방치해 둔 감기가 악화되어 폐렴으로 입원했다. 과장급 이상은 의기소침해서 멍한 상태. 나 역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스트레스 없이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중이염 치료를 시작. 처음 방문한 이비인후과는 애들로 붐비고 귓속을 보는 장비가 없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의사가  애들 먹는 당의정을 포함한 약을 줘서  다음날부터 다른 병원으로 갔다. 일주일 동안 Ofloxacin(항생제), Klimain(비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 Himetin(위산 분비 억제)으로 귓속의 염증을 치료. 염증이 생기고 고통이 심해질 때까지 방치해두어 두터운 딱지가 않은 상처 부위를 들어내고 세척을 했지만 약을 복용해도 고름이 계속 나와 이번주부터 약제를 바꿨다. 린코마이신 주사(항생제)를 맞고 세프틸(항생제), 레녹스(뭐지?), 하이메틴으로 약을 바꿨다. 염증이 감소하고 고름도 줄었다. 의사는 경과를 두고 봐야 겠지만 진주종성 중이염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진주종은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냥 염증 치료 과정 중 발생한 단순 오염에 의한 포도상구균이었으면 좋겠다. 사진을 봐선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진주종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의사 선생이 진단과 약에 관해 친절히 설명해 준 적은 없다. 중이염 치료를 계기로 중이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혹시 이거 스트레스로 면역계가 약해져서 생긴 스트레스성 중이염? 그런게 있긴 한가? 치료가 더딘 것이 치료 기간 중 3일을 술을 마신 탓인 것 같아 술을 당분간 자제하기로.

2007.11.02 투병기: 치료가 되긴 된 것 같은데 고름이 계속 나오고, 집에서 출근길에 병원에 들렀다 가려니 출근 시간을 못맞출 것 같아 사무실 근처의 병원으로 옮겼다. 유크라 정(페니실린 계열) 및 알콘시프로바이점이현탁액(퀴놀론계 항균제) 투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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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퀴 정렬

잡기 2007. 10. 14. 16:27
회사에서 펀드계를 만들었다. 매달 직원당 10만원씩 모아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고, 3개월마다 한번씩 100만원을 몰빵해주고, 펀드 수익은 3년 후 나눠갖기로 했다. 손실이 가능한 없도록 우수 중소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신영밸류고배당주식1호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는데 3년 후에도 수익이 유지될런지는 의문이다. 목표 수익율은 연 15%. 지난 1년간 70% 가까운 수익이 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물원. 한 살 넘겼으니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뱀과 나만의 시간 같은 것


하늘공원 억새밭

하늘공원 억새밭

올해에는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의도 인근에서 불꽃축제를 본 모양이다. 매년 반복적으로 경험한 '학습효과'에 의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그쪽 방면으로 가지 않고 마침 억세 축제를 하고 있는 하늘 공원에 애를 메고 낑낑거리며 올랐지만 사람 많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 왜 놀러가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마누라 말로는 아이를 위해서란다. 2-3세 무렵이 되면 뇌내 신경세포의 아폽토시스가 일어나 이런 기억들은 깡그리 사라지게 된다. 2-3세 이전 까지는 주로 공포, 상실, 기쁨, 애착, 두려움 등의  원시적 감정을 다루는 소뇌가 발달하는 정서적 개발 과정이 주가 된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는 18개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대뇌피질의 개발이 시작되는 것 같은데(아울러 양 뇌엽을 연결하는 뇌량도) 이해하지도 못할 세계를 보여줘봤자 뭐하겠나 싶다.

다양한 체험을 통한 지능 계발은 무슨 놈에 얼어죽을 지능 계발이람. 여성의 경우 지능지수가 15포인트 올라갈 때마다 결혼할 확률은 40%씩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플라네테스

플라네테스. 뭔가 EVA 중.

약 일주일 동안 틈틈이 플라네테스 애니를 보았다. 때마침 레널즈의 푸싱 아이스를 함께 읽고 있어서 일주일 내내 '우주 모드'였다. 만화책 플라네테스가 비교적 충실하게 잘 구현되어 있었고 비주얼도 훌륭했다. 음악은 꽝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플라네테스에 나오는 우주개발 기술에 관해 별달리 볼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워낙 익숙해서). 그렇다면 플라네테스 만화나 애니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요소요소 잘 배치하고 설득력있게 극화했기 때문이지 싶다.

플라네테스 만화책의 완결을 보지 못한 기분이 그동안 주욱 들었는데, 애니 완결이 만화와 마찬가지로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난 것 같다. 애니에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구멍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이게 완결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데브리스를 치우던 환경미화원이 자기 주제를 잊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목성 탐사선을 타게 된다. 주인공은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다. 워낙 무딘 놈이지만 심지어 사랑도 잃지 않았다. 대사 그대로, 정말 복을 타고난 놈이다. 목성에 가게 된 것도 무슨 철학이나 사상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고딩 시절 오토바이 몰던 것처럼  '빠른 것은 좋은 것이다', '빠르고 큰 엔진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준다 어딘진 모르겠다' 라는 양아치스러운 생각이 그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원인이었다. 십대 방랑기를 삼십대에도 똑같이 해 낼 수 있다는 것,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불공평한 세계를 개무시하면서.

하여튼 그래서 이런 말도 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빈 공간은 마땅히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사랑이 틈입하고 스며들 수 있는 우주, 물리적인 우주는 사랑없이는 가혹한 곳이다. 지나치게 가혹하다. 소중한 영혼을 왕따시키고 가늠할 수 있는 증거와 물리량만을 다루는 하드 사이언스는 항상 인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자애는 지구에서 애 낳고 빨래나 하면서 살면 된다. 아니면 그럴 듯한 놈을 잡아 결혼하던가.

자전거를 구동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수치화(물리)가 필요할까? 앞 뒤 디레일러의 장력을 조절해 프리 휠과 카세트의 적정 위치에 정치시키는 것은 그다지 복잡한 원리로 보이지 않는다. 구동계는 인간이 페달을 통해 토크를 가해 앞뒤 기어셋의 기어비에 따라 바퀴를 회전시킨다. 타이어는 지면에 밀착되고 지표의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하중을 받아 타이어의 표면 마찰력을 이용해 원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변환한다.  앞 바퀴의 조향장치(핸들)를 이용해 자전거의 진행방향을 바꿀 수 있다. 바퀴를 정지시키려면 지렛대의 원리로 작동하는 브레이크 레버를 당겨 브레이크 패드가 타이어의 림에서 마찰을 이용해 바퀴를 정지시킨다. 이 정도면 뉴토니안으로 모두 커버된다. 고난을 꿰뚫는 열정, 사랑 따위는 뉴토니안으로 커버되지 않는다. 아무튼 자전거에서 눈에 띄는 발명품은 단연 바퀴다.

자전거 타이어 스레드

원래 타이어의 스레드. 거의 다 닳아 제동이 잘 안된다.

겨우 3년 탔는데 스레드가 다 닳았다. 편마모도 아니고 골고루 다 닳았다. 아마도 급제동 걸 일이 많아서 스레드가 닳았지 싶다. 급제동 걸 일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가 많이 날 뻔 했다는 얘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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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당 6천원 주고 산 새 타이어. 스레드 높이가 5mm 가량.

비싼 타이어는 개당 18000원씩 했다. 그런 타이어를 2개 구매하는 것이 영 마음이 아파 6천원짜리를 사게 된 것이다. 새 타이어의 냄새가 좋다. 원산지가 중국이 아니라 인도네시아라 믿음이 간다. 아무래도 중국은 고무 제품이 아닌 것을 고무같이 보이도록 할 수도 있는 곳이니까.  타이어 규격은 26x2.215. 그런데 림에는 26x1.5 또는 1.85로 적혀 있었다. 일찍 알았더라면 26x1.85 타이어를 시도해 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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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레버로 타이어 분리 중.

바이크핸드 자전거 공구셋

62,000원 짜리 자전거 수리 공구셋

아울러 정신 차리고 자전거 수리 공구를 구입했다 -- 그동안 공구 안 사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개겼다. 대만제 바이크핸드(bikehand)라는 것인데 이 바닥(?)에서 must have item이라고 할만한 자전거 수리 전문 공구셋이다. superB 것을 구입하려다가 결정적으로 타이어레버가 플라스틱이라 바이크핸드로 마음을 바꿨다. 바이크핸드(대)의 타이어레버는 스테인레스제다. 예전에도 튜브가 펑크나 핸드툴로 수리해 본 적이 있다. 핸드툴에 있는 2개의 플라스틱 레버로는 힘이 많이 들었다. 스테인레스 레버면 하나만 가지고도 타이어를 림에서 쉽게 분리할 수 있다.  뒷 바퀴는 두 번 펑크났다. 펑크는 주로 뒷바퀴에서 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하중이 그쪽에 쏠려있기 때문인 듯.

타이어를 교체하는 과정:

1. 타이어의 바람을 대기압과 같은 수준으로 뺀다.
2. 타이어 레버로 타이어를 분리한다.  .
3. 튜브를 새 타이어 사이에 거치 시키고 타이어를 림에 끼운다.
4. 다시 타이어에 바람을 넣는다.

3까지는 쉬운데 4번이 문제였다. 핸드 펌프로는 바람을 꽉 채워넣기가 힘들었다. 적당한 정도의 바람을 넣고 불광역에 있는 셀프 전기 펌프를 이용해 바람을 넣기로 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이 자전거 매니아라 서울시에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고(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시내 곳곳에 이런 전기 펌프를 설치해 놓았다. 오세훈 시장을 뽑지 않았지만 그가 서울시에서 행하는 여러 정책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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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뒷짐받이 장착 후. 무려 3만9천원이나 하는 Topeak의 Super Tourist 뒷 짐받이

두 장의 철제 스트립으로 안장 QR 레버에 연결. 하중 분산을 위한 세 개의 알루미늄 바나 철제 스트립이 다소 불안해 보이나(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매뉴얼을 보면 3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단다. 이전의 안장 짐받이는 1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데 어디에 박거나 비포장의 막무가내 요철면을 주행하다 보면 안장과 안장 짐받이가 틀어지는 문제가 있다. 생활자전거의 뒷짐받이는 하중을 버티는 수직 바가 하나 뿐이라 패니어 장착이 어렵다 -- 패니어가 뒷 바퀴에 닿을 수 있다.  이래저래 큰 맘 먹고 산 것이다.

얼마전 자전거 사고로 앞 바퀴의 휠이 틀어졌다. 그런 자전거를 타고 저번 주에 시험 주행을 했는데, 평평한 아스팔트에서 마치 요철이 잔뜩 있는 비포장 도로를 주행하는 것처럼 엉망이었다. 앞 바퀴가 좌우로 몹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잔뜩 비를 맞으며 주행하고 나니 의기소침했다. 올해도 다 갔고, 내년에 새 자전거를 살까? 무겁고 여기 저기 망가지고 정비 안하면 안 굴러가는 고물 자전거를 계속 굴리느니 새 자전거를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공구를 사고 타이어를 비롯한 이런 저런 부품을 교체하는데 대략 12만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자전거 정비의 마지막 과정으로 휠의 틀어짐을 교정해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매장에 있는 캘리퍼 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으니 자전거를 뒤집어서 브레이크 패드에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바퀴에 거의 밀착시킨 상태로 고정하고 플라스틱과 림 사이의 간격을 가늠하면서 림의 니플에 달린 스포크의 장력을 스포크 렌치로 조절했다.

스포크는 축에서 방사상으로 뻗어나와 림에 지그재그로 연결된 철사로 두 방향에서 가해지는 힘을 림 전체로 분산시키는데, 바퀴가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으면 왼쪽 스포크를 댕기거나 오른쪽 스포크를 느슨하게 해서 중심축과 림 사이의 장력을 조절하여 평평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휨 정도가 점점 심해지면서 나중에는 스포크가 휘거나 부러진다. 스포크가 부러지면 자전거 바퀴로써의 기능은 끝장난다. 이론상 그렇고, 꿈속에서 이미지로 본 것도 그랬는데(사고실험!), 실제로 해보니 정말 그랬다. 역시, 자전거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휠이다. 자전거 바퀴의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하중을 버티는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트러스.

림의 틀어짐을 교정한 후(생각대로 되니 기뻤다) 새로 산 바이크핸드 공구셋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자전거를 완전 분해해 볼 생각을 품게 되었다. 좋은 공구가 생겼으니 이 고물 자전거를 폐기처분하기 전에 자전거에 관해 좀 더 학습하는 기회로 삼고 당분간 더 타자고 마음먹었다. 
시험주행이 만족스럽다. 자전거에서 소리가 하나도 안 난다. 브레이킹이나 턴에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요동이 감소해 주행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흡사 새 신발을 신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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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수호자 - 소위 말하는 누님물. 연출과 시나리오, 음악이 매우 괜찮았다. 사실 배경과 디테일만 봐도 26부작 애니 볼 맛이 난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작화 중에 사용한 여러 가젯들의 문화-인류학적 요소. 사소한 것까지 신경 많이 썼다. 티벳의 하늘과 일본의 정령 신앙과 애들 성장소설을 짬뽕했다. 요즘 판타지 애니가 이렇게까지 좋아진 줄은 몰랐다(조금 더 기다리면 괜찮은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 인상적이라서 뒤져봤다. 공각기동대 SAC의 카미야마 켄지 극본, 감독. 어째 주인공이 쿠사나기와 분위기가 비슷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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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무사. 창술의 대가. 레, 라닥, 티벳, 네팔 등 적어도 해발 4000m 이상의 고지가 배경인 듯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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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훈을 위해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 설악산으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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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착한 곳은 태백산. 배경이 참 예쁘다. 해발 4000m가 넘어가면 화성스러워서 보기는 좋은데 살고 싶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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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것은 아보리진 분위기. 토착 문화에 대한 정교한 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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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상에 내놓은 식기는 덜어먹는 나무그릇과 대나무통밥, 그리고 옹기 속의 산마국, 가장 비싸 보이고 정성스러운 사기 접시에 담긴 고기와 야채 등. 이런 그림의 세심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게 뭔 대수냐고? 소수종족 마을에 가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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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분위기가 좋다. 흡사 태국이나 라오스 국경 부근의 소수민족의 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수호자를 데리고 달아났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얻어맞을 찰나인 소녀를 롱테이크로 잡은 연출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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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을 담은 토기를 건네는 장면. 이거 정말 작화, 연출하는 작자들이 동남아, 티벳 여행했던 사람들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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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 정말 네팔/티벳 분위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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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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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그랜드 캐년 같은데?


일찌감치 가사가 나왔더라면 극 말아먹을 정도로 중요한 주제가(1:28) 역시 마음에 들었다. 단순하지만 안정적인 서사와 캐릭터, 연출, 시나리오, 작화, 음악 등 뭐 하나 빠짐없이 훌륭했다. 최근에 본 애니 중 가장 좋았다.

송씨가 얼마 전에 술집에서 오지의 길가메쉬에 관한 얘기를 했다. 읽은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구하려고 했다. 아! 그러다가 기억났다. 길가메쉬가 괴상해 보였던 그 코메디? 그게 실버버그가 쓴 글이었나?
 
'당신도 해리포터를 쓸 수 있다' - 오손 스캇 카드, 스티븐 킹처럼  '베스트셀러형 작가'이고 재밌는 글을 쓰지만, 뭔가가 부족해 보이는 작가로 여겼다. 곧 내한한다는 드림 씨어터 앨범을 한 달 넘게 들으면서 특별히 기악곡의 구성이 재밌다거나 보컬이 괜찮다거나 연주 실력이 우수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지만(드럼이 좀 이색적으로 튀는 편. 그래서 조사해봤더니 몹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 내가 막귀는 아니군 하고 흐뭇했다) '적당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카드의 글을 읽을 때 그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송씨가 그 다음 모임에서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의 한 귀절을 보여줬다. 1990년 osc가 쓴 글로, 91년 휴고상을 받았다. 원제는 how to write SF&F로, 그 제목 그대로 한국에서 번역 출간했더라면 판매부수 채우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지은 제목 참 아스트랄하다.
몇몇 하드SF쪽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들이 SF를 발명했고, 모든 인류학이나 문학이나 모험 SF 작가는 모두 후발주자인 것 같다. ... 하드 SF는 다른 어느 과학소설들 보다도 더 충성스런 지지자들의 핵을 유지하고 있다.
아닌 것 같은데? 수렁에서 자기 부츠를 잡고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극단적으로 소수의 잘난체 하는 사람들이 보는 글이 하드SF라는 평이 지배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내가 수 년 동안 경험한 미국 팬덤의 하드SF를 위시한 장르의 정체성 논란은 한국과 놀라우리만치 똑같다)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에서 하드SF적 전통이라고 기술한 것
1. 독립적인 사색가가 위대한 착상에 도달. 하지만 관료들이 모든 것을 망처버린다. 독립적인 사색가는 그것을 모두 해결하고 관료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2.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독립적인 사색가가 나타나 그릇된 가설을 수없이 시험한 끝에 마침내 놀라운 대답을 발견한다.
3. 새로운 기계/장치/발견이 시험된다. 무엇인가가 잘못되고 모두 죽게 생겼다. 엄청난 노력 끝에, 모두가 죽거나 모두가 살아난다.
osc는 1980년 후반부터 융성한 '하드SF의 적자들'은 개무시하는 듯. 그는, 사변소설의 특징이 다른 세계를 통해 현실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준다고 한다. 공감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osc는 하드SF작가도 아니고, 하드SF에 별 취향이 없는 것 같고, 그걸 알면서도 2부 내내 하드SF를 희롱하길래 다소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70년대 구닥다리 삘이 나는 저 '전통'에 굳이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또는 osc가 스스로의 글빨에 흥에 겨워 살짝 무시했다고 할만한 것);
 
4. 하드SF는 트렁크와 브랜치로 이루어져있다. 세계관은 트렁크에, 그 세계관을 구체화하는 가젯과 주변 상황(그에 걸맞는 이야기들)은 무수한(무한한) 가지로 이루어진다. (이야기가 눈뜨고 못 볼 정도로 개판이라서) 독자가 참여하느냐 안하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개인사정이다. 그럼으로써 인물/화자와 상관없이(심지어는 스토리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독자가 원하면 그 세계에 발 담그고 살만 하다. 소설이 끝나도(비극이든 희극이든), 인터랙티브하게. 월마트에서 세계관을 쇼핑하듯 참조하고 비교하며, 설계도에 첨삭도 하고 열렬한 독자들 끼리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면서.
 
osc는 애당초 하드SF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서사전통을 무시하고 이야기의 힘이 딸리는 하드SF를 점잖게 비웃는 동안 오직 설정 뿐이고 인간관계 묘사가 없어도 그만인 하드SF의 오타쿠 세계를 불쌍히 여긴 것일께다(인정!). 좋은 세계가 주어지면 독자는 작가의 글이 끝나도 그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저들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맛간 TV화면같은 치바현이나 메타버스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거나 케이즘 시티에서 돼지들과 소고기 안주로 맥주잔을 기울이고 에덴의 심바이언트와 육박전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몇몇은 링월드에 짱박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그럴 땐 서사고 나발이고, 묘사-정보-트렁크가 생명이다. 독자는 듬성듬성한 간극을 기쁘게 인터폴레이션하고, 스토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무수한 곁가지에 붙은 작은 벛꽃 송이가 되어 봄바람에 화사하게 흩날린다. 사회,정치,종교 등의 제 문제에 관해 굳이 한바퀴 돌아야지 현세를 거리감을 두고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도 작가가 일정 부분 강요하는 사변적 시각(?)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 참 많다. osc는 글 얘기를 한 거고 하드SF도 글이라느니 어쩌구 하는 너무 뻔한 얘기는 영양가 없고 재미가 없다.
 
하드SF팬은 교리에 벗어나는 것들을 배척하는 맹신도, 또는, 장르 편가르기로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따라서 보잘 것 없는 하드SF팬(이건 SF팬 중에서도 극단적인 소수파고 뭐라고 지껄이든 무시하면 그만이다)으로서, 굳이 한 마디 하자면, 한국에 번역된 SF 거진 400-500여권 중 하드SF는 열 권도 채 안 되는데 '이게 다 하드SF에 환장한 놈들 때문'이라고 툭하면 게시판에서 지랄들이야!!! 뭐 제대로 읽어보기나 하고 좀 지껄여주시지 않구선.

저 비슷한 얘기를 얼마 전에 어떤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었다. 오타쿠 사이비 종교 집단같은 하드SF팬들이(그런 작자들이 있긴 한건가?) 영롱하게 빛나는 수 많은 SF를 국내에서 볼 기회를 가로 막고(어떻게?) 저희끼리 악의어린 비아냥이나 주고 받으면서 티격태격 하는 바람에 SF팬덤이 엉망진창 시궁창으로 변했다느니 하는 것에 대한 나름 전투적인 댓구였다 -- 수년 전, 활달한 처녀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던 리버럴한 소똥 분위기의 정크SF의 사이트 컨셉과 '철학'을 내가 만들었고 심지어는 음지 기생충같았던 미국 SF 팬덤의 쓰레기장같은 분위기를 완벽하게 사대주의적으로 재현하고 그것을 초월(?)해서 독랄한 루이스 샤이너와 옴니 아베리타스의 뺨을 칠 지경인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 써놓고 보니 괜찮은 실험이었지, 쓸만한 자랑은 아닌 것 같군. 글을 쓰고 나서 누구든 댓글을 달면 모처럼 친절하게 응대해서 난도질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12시간쯤 후에 그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한 응답을 확인하러 들어갔다. 답글이 12개쯤 달려있었다. 그런데, 댓글들이...
* 혹시 예전 하이텔의 luke님 아니세요?
* 오랫만입니다.
* 어, luke님이었어요?
* 말빨은 여전하군.
허걱. 당황. 며칠 동안 SF가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떠들던 사람들이 까대는 댓글이나 달라고 멍석 깔아줬더니 그런 것은 하나도 안 달고 안부인사를 묻고 있었다. 안부라니... 변방에서 정정하게 살아있는, 잊고 지냈던 오타쿠를 다시 본 듯한 말투잖아 -_- 동호회 db가 날아가서 다시 복구한 다음 재가입을 받았는데, 그덕에 내 아이디가 예전 대화명으로 복구된 것을 그제야 알았다.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luke로 게시물 쓰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글을 재빨리 지웠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그 다음 장에는 글쓰기의 구체적인 스킬과 방법론 따위를 다룬다. 다루는 방식이 마치 유치원 갓 졸업한 아이한테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는지 가르치는 양태다.
물론 이야기가 정말로 의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려는 인물의 투쟁에 대한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그 투쟁을 하고 있는 쪽이 인물이 아니라 독자들이라면 끔찍한 일이다. 이런 경우 수수께끼는 하나가 아니다. 누가 이 사람을 죽였는가? 이 행성은 왜 이렇게 중력이 낮은가? 와 같은 의문이 아니라 독자가 느끼는 의문은 더욱 단순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지?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지?' 공감. 요즘 소설을 보면 자주 그런 기분을 느낀다. 수천년 동안 같은 주제, 같은 소재에 조리법까지 공개가 되었음에도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듯. 아무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글을 잘 쓰기는 정말 힘들다.

그건 그렇고, 조그만 자취방 하나 잡아 적당히 먹고 살면서 수도승처럼 글을 쓰자고 마음 먹고 서울 올라온 것이 십여년 전 일이다. 글쓰기는 거진 20년 가까이 노력하다가 말았다. osc는 3,4장에서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절절해지는 얘기를 많이 늘어놓았다. 뮤즈는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글쓰기를 관두길 잘 했다.  인생에는 자기 영혼과 심장을 뜯어내는 자학과 자기희생 말고도 해볼만한 것이 아주 많다.
 
신경 끊고, Alastair Reynolds의 완전 소중한 하드SF인 pushing ice나 심혈을 기울여 읽자. 이게 얼마만에 먹어보는 특식이냐... 그런데 내가 뭔 얘기를 하려고 한 거 였지?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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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사고

잡기 2007. 10. 4. 13:45
영화에는 국경이 없어도 영화팬에게는 조국이 있다. -- 변희재씨의 돋보이는 생트집.

'금단의 선'을 넘어 북쪽으로 걸어간 노무현 대통령은 배낭여행자들의 오랜 숙원을 이뤘다. 남북분단선을 육로로 건널 수 있으면 유라시아 대륙이 완전히 뚫리는 것이다. 내친 김에 중국, 몽골, 러시아, 유럽까지 기차타고 돌아다니면서 외교활동을 펼쳤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리 정치적인 쇼라고 하지만 '금단의 선'을 넘은 그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정치가 미래, 비전, 희망을 보여주는 쇼가 아니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나.
 
추분이 지났다. 여름이 갔다. 여름처럼 맥주와 통닭을 먹지는 못할 것이다. 지방이 부족한 닭을 기름에 튀기면 기름옷에 지방이 배인다. 맥주에는 탄수화물이 많다. 따라서 맥주+통닭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이 골고루 갖춰진 삼위일체 저녁식사다. 통닭에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밀린 드라마를 느긋하게 쳐다볼 때는 행복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가기 -- 우연한 기회에 본 다큐멘터리. 1부만 보고 2부는 보지 못했으나, 듣자하니 일본 가족은 1주일 만에 포기하고, 미국 가족은 하루인지 이틀만에 포기. 한국 가족은 한 달을 중국 제품 없이 살아남았단다. 중국 제품 없이 살아가기에서 조차 한국인의 우수한 개김성(은근과 끈기)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웃음.
 
10월 1일 자전거 타고 출근하다가 그랜저와 박았다. 손가락 사이에 긁힌 상처 뿐 다친 데는 없는데, 20kmh로 달리다가 골목에서 나와 서 있는 차를 2-3초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박아 자동차 앞바퀴 사이에 자전거 바퀴가 끼었고 본넷에 몸뚱이가 부딫히면서 본넷이 일부분 찌그러지고, 범퍼에 긁힌 상처가 남았다. 자전거 앞 바퀴 림이 살짝 휘었다.

비가 살살 내리고 있었다. gps에 찍힌 당시 주행 속도가 20kmh(초당 5.5m)니까, 11m ~ 16m  앞을 보지 않고 진행중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를 발견하고(자동차가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늦어서 자동차를 박은 것이다. (내가 자동차를 사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운전중에 딴전을 피우거나 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걸 설득력이 없는 핑계로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경찰 불러서 사고처리할까, 하다가 내 잘못이 크고 자동차의 흠집이 그리 크지 않은 수준이라(두 사람 다 놀랐다) 대충 합의하기로 하고 명함 건네준 후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출근. 10월 2일 전화가 왔는데 사고 차량의 견적가가 무려 40여만원 나왔다.
 
2일 밤 퇴근 무렵에 경찰서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단다. 뺑소니 신고가 들어왔단다. 내 명함의 전화번호로 자동차 주인이 전화를 해 봤는데 전화가 안되어 뺑소니 신고를 한 모양인데 이미 연락이 된 상황. 명함의 전화번호가 잘못 찍혀 있었고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출근하지 않아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합의 후 30만원을 물어주기로 했다. 좀 더 까칠하게 나갈 수도 있었지만(자동차-자전거 사고에서 자전거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도로상의 약자 이므로 일정 비율의 쌍방과실로 인정되어 합의가 가능) 내 자신이 그렇게 할 만큼 뻔뻔한 것도 아니고(전방주시 잘 하면서 직선로에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와 브레이크를 잡았으나 제동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박았다고 우기기) 최근 자전거 운행하면서 사고가 잦은 이유가 내 자신의 30만원 짜리 문제임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다가 사람 치겠다.
 
공교롭게도 기어비를 평소의 2:6에서 3:6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28kmh 가량의 평속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최근에 도로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는데(주행중 케이던스 유지가 아니라 이제는 근력 강화로 바뀌어 가는 듯) 그런 시점에서 난 사고라 뜻깊다.

덕분에 누구나 선망하는 매트릭스 액션도 해봤다. 핸들을 놓지 않았고 브레이크 잡는 순간 뒷바퀴가 들리면서 몸이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아 본넷을 굴러(이때, 어깨로 둥글게 굴려 떨어지는 낙법 센스) 착지 순간 중심을 잃지 않고 체조선수처럼 등짝을 꼿꼿이 편 채 두 발로 서서 10점 만점의 착지에 성공한 것이다. 심지어 자전거도 자동차 바퀴에 끼어 똑바로 섰다. 사고 당시 주위 사람들 말로는 죽을 뻔 한 거 아니냐, 천만 다행이다 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고 순간 우아했다. 만족한다.

최근 사고는 대부분 내 잘못이 크고 상처가 경미하며 PTSD를 남기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오히려 두어달 전에 자전거 정비하고 나서 멍청한 상태로 천천히 달리다가 그냥 픽 쓰러지면서 손목을 삔 것은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손목에 힘을 주기가 힘든 상태.
 
올해 들어 다섯번째 사고인데, 이쯤 되면 자전거를 타지 말자, 바보같은 자식, 이러면서 PTSSD(post traumatic self-torture stress disorder; 사고 후 자학성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야 할텐데 되려 정신적 충격이 없는 이유는 뭘까, 장애를 현저히 상회하는 둔함/멍청함 때문이 아닐까 -- 이게 다 개마초 스피릿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사고난 날 밤에도 별다른 정신질환 없이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왔다. 헤드라이트가 없어 밤길에 제대로 주행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저 잔걱정이라곤 집에서 정비하면서 앞바퀴 휠셋 교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스포크 렌치로 니플을 조여 스포크 장력을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많이 휜 것은 아니니 힘이 가해지는 휜 림의 반대편을 조절하면 되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도, 한쪽 바퀴의 스레드만 다 닳은 줄 알았는데 양 쪽 바퀴의 스레드가 대부분 닳아 있어 바퀴 표면적이 넓어져 주행 중 부하가 커졌는데 타이어를 갈지 말고 이것을 근력 강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여기저기 덜컹거리고 망가져 가는 자전거를 이참에 바꾸는 것은 조잔한 기회주의자 처럼 보일꺼야 하는 류의 생각을 했다.
 
사실 산악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 장애, 사고 운운하는 것은 자전거 사고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호들갑에 불과하다. 자전거 주행=인력+기술+정비+사고
 
전제: 상처(사고)가 없으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
결론: 보다 큰 성장을 위해 정진하자.
부언: 마누라는 자전거 탈 때 이어폰 끼면 자전거를 부셔버리겠다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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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e rocuta, causa finita

잡기 2007. 9. 27. 22:18
로버트 조단이 9월 16일 사망했다. 한국에서는 마이너한 작가라 뉴스꺼리도 안되겠지만.

`깐수' 정수일씨 보호관찰 벗는다 -- 이제야 보호관찰을 벗는다. 그래도 축하드린다.
Jasmina Te?anovi?: Korea - South, not North -- 이건 왠 SF?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 놓고 정수리에 올려 놓은 다음, 그 휴대 전화로 전화를 걸면 전화올 때의 진동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 해보니 정말 그랬다, 흡사 닭대가리가 된 기분이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어렵게 읽었다. 책의 소재가 '과학사'인 것을 감안할 때 읽고 건질 것이 없다는 불편함을 꾹 참았다.
웜홀과 여분의 차원, 그리고 양자 컴퓨터의 개념은 우주 전체를 '살아있는 삶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 마틴 리스
살아있는 삶의 현장?
내가 배웠던 모든 교과서는, 모든 것을 식으로 표현하면 명백해진다는 재밌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심사숙고했던 문제들을 보여주는 설명을 해주면 미국 어린이들이 고마워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이 만든 것이다.
고상한 남자들의 바보같은 생각에 저항할 목적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는 뜻인가?
부시 대통령이 경솔하게 제안했던 유인 화성 탐사 계획은 4,500억 달러의 비용이 필요하고, 탐사선의 우주인들은 모두 목숨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무 설명도 없이 폐기되어버렸다.
'목숨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탐사가 취소되었다니 몹시 한심한 이유네. 미국인들이 자랑하던 그... 정신병, 프론티어 정신은 대체 어디 간거지? 그것 마저 없으면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있긴 한건가? '지구에서 달까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마녀사냥은 집어치우고 당장 (달로) 보내주쇼' '로켓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비행사는 죽을 수도 있는거지' 우주 탐사를 목숨 때문에 관두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1999년 2월 국제천문연합이 명왕성이 행성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것은 좋은 소식이다. 우주는 크고 외로운 곳이다. 가능하면 많은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랬다.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그동안 주욱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우주가 외로운 곳이라서 이웃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한다고 믿는' 미국 때문이었다. 다행히 국제천문학회는 그런 바보같은 주장에 아랑곳 않고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했다.
결국 우리는 나이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없고, 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별들에 둘러싸여서, 우리가 확인도 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채워진 채로,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물리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우주에 살고 있는 셈이다. ... 우리가 지구마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몇 가지 알아낸 것도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말투를 바꾸면 괜찮았을텐데...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한다는 유시민이 생각난다.
인체에는 100만 가지 정도의 단백질이 들어 있고, 그런 단백질 하나하나가 작은 기적이다. 모든 확률 법칙에 따르면 단백질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의 발생을 왜 자꾸 확률 문제로 왈가왈부 하는 것일까? 생겼으면 생긴 거고, 안 생겼으면 안 생긴거지. 생명이 생겨난 기적을 겸손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신경증(너나 나는 좆도 아닌 존재다 운운)에서 논리가 출발하니까 그렇겠지. 사실 우주도 좆도 아니다. 우주나 삶의 경이에 관해 거만할 것도 겸손할 것도, 인간중심적 사고의 잣대로 계량할 필요가 없는데 왜 자꾸...
생화학자 크리스티앙 드 뒤브의 말처럼 생명은 "조건이 적당하기만 하면 어느 곳에서나 출현할 수 밖에 없는 물질의 의무적인 발현"이다.
책 여기저기에 저런 재수없는 인용구를 갖다 붙여대는 바람에 부질없이 두꺼운 책을 만들고 뉴턴의 털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제에(게다가 유머감각은 밑바닥 수준) 매우 건방진 제목을 갖다붙인 빌 브라이슨은 관망자였고, 산업혁명과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이룩한 본질적인 원인중 하나였으며, 먹이 사냥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됨으로써 그 시간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닌텐도 게임을 하거나, 남아도는 힘으로 헬스장에서 다람쥐 쳇바퀴를 돌거나, 평화의 확산에는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우주론에 관한 사색을 하게 될 시간이 늘어난 것과 아무 상관 없는, 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신기해하는 것일까?
지의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생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애튼버러에 따르면, "지의류는 가장 단순한 수준의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감동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생명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존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지의류에게 생명이란 무엇일까? 지의류가 존재하고 싶어하는 충동은 우리만큼 강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숨속의 바위에 붙어서 수십 년을 지내야만 한다면 절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의류는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끼류는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낸다.
집 근처의 알맞은 지의류를 상대로 갖은 욕설을 퍼부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잘 참아낸다는 뜻이구나. 하필이면 꼭 괴상한 문구를 인용하거나 '잘못된 믿음을 가진 남자들'과의 차별성을 한심한 유머감각을 통해 드러내는 빌 브라이슨의 계집애같은 감상주의에 염증을 느꼈다. 하지만 굳이 욕할 것도 없었다. 그는 그저 '살내음이 나는 과학'에 관한 뭔가를 쓰고 싶었던 거다.
에드워드 O. 윌슨의 '생명의 다양성'에서 우리의 상황을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실험(One planet, one experiment)"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에서는 에드워드 윌슨을 잡아먹으려고 책 한 권을 부질없이 허비했는데 브라이슨은 윌슨을 인용하며 '삶이 행운이다'라고 에필로그를 맺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

삶은 기적이다?
삶은 행운이다?

재미가 없다. 5일간의 기나긴 연휴였던 추석 때는 어디 안 가고 집에서 애를 보며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얼마 전에 새로 산 22인치 LCD 모니터의 전원 스위치가 제대로 안 먹는데다 추석 전날부터 고객센터가 전화를 안 받아 장장 5일 동안 예전에 사용하던 조그마한 17인치 LCD 모니터를 보려니 한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모니터를 뜯어 고쳤다가(A/S는 이것으로 물 건너 간 것이다, 본드칠에 납땜질에 부품 하나를 떼는 등등...), 다시 고장나서 또 고쳤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 각각 한 시간씩 보냈다. 그래서 삶의 질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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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고친 후 집에 들러 붙어 틈틈이 밀린 드라마와 애니를 시청했다. BBC에서 연재하던 Life on Mars의 주인공 샘 타일러. 2기 마지막 편의 마지막 장면. 인상적인 엔딩을 보여준다. 느끼지 못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SF(라고도 함) 멜로 경찰물 이라는 독특한 장르 포지션과 양보 없는 매트릭스 존재론적 주제의식(무거움) 그리고 1973년이란 배경이 지닌 시대적 마초성,  연기가 썩 괜찮은 주연, 조연들 때문에 간만에 즐겁게 본 드라마 되겠다. '영국 드라마'이므로 보다가 되도 안되는 농담따먹기를 해서 졸리울 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교훈: 삶은 느낌이다(느끼지 못하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명랑애니인 '로켓걸'을 보다가 아, 우주여행의 로망을 제대로 쌈싸먹었구나, 하하 하고 웃었다. '어떤 기계에 앉아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원숭이도 할 수 있다' 라고 고1 여학생을 꼬셔 우주로 보내는 것이다. 프로젝트 리더의 이름은 NASDA다. 3화까지 봤는데 더 재밌어질런지는 의문이지만 더 보기로 했다. 곁들여 애니 '문라잇 마일'을 봤다. 컷 분할/배치(연출)을 제대로 못 한다. 만화는 재미있었는데, 1화를 보다가 더 볼 맛이 안나 접어버렸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건지 걸레같이 편집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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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렌라간.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싸워대는 애들 열혈물. 가끔 이런 장면도 나와 놀래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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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열혈물이므로  일정한(열혈물 스러운) 작화 패턴에서 여지 없이 벗어나질 않았다. 이런 그림을 두고, 멋질뻔 한 그림에 병신같은 로봇이 등장해 깽판쳤다라고 한다. 저 녹색 형광칠해 놓은 꼴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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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 비용 들인 것에 비해 어딘가 좀 어설픈데...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를 만든다니(흡사 D-Wars 같은 영화를 만들어 줘서 애국심이 절로 치밀어 오르는 것처럼) 대견하다.

실은 '베르사이유의 장미' 작가가 태왕사신기의 만화를 그린다길래, 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드라마도 다 안 끝났는데 만화화 한다는 걸까 궁금해서 봤다. 얼마 전에 모임에서 본 박씨 아저씨 말로는 김씨가 태왕사신기의 노벨라이즈를 했다더라. 김씨가 과연 담덕을 드라마의 저런 느끼남으로 묘사할지 흥미롭다. 연기력 자체가 발랑까진 아이들을 포함해 배역들이 참, 마음에 안 들었지만 무의미한 CG빨이 떨어진 지금부터가 재밌을(제대로 망가질) 지도 몰라 계속 보기로 했다. 5화까지 감상평: 순정만화였군 --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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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CG빨에 큰 관심이 없지만서도, 더 이상 볼 것이 없어 '히로익 에이지'를 찾아 봤다. 작명 센스가 영 아닌 거 같고, 첫 몇 화보고 CG로 떡칠한 그저그런 애니일 꺼라 지레 짐작하고 하품을 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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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스타크래프트를 베꼈다고 하던데, 10화쯤 나가니 그렇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점점 그럴듯해지고 그래픽스는 점점 더 입을 벌어지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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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란한 그래픽은 몇 차례씩 되돌려 보기도 했다. 뭐 삑사리나 재활용은 없나 세심하게 찾느라고. -_- 메카닉이 참 세련되었고 디테일을 뭉개버리지도 않았다. 이런 애니가 한국에서 과연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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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다소 못생긴 것이 아쉽지만(왠지 아구찜이 생각나는 인상) 보면 볼수록 성질이 돋는 배틀스타 갤럭티카에 비하자면 양호한 세계관이다. 그러고보니 Xebec의 작품 중에는 건담 류의 그 얼빠진(납득도 설득도 안되는) 군국주의 세계관에 쩌들어 우주관이 스토리에 밀려 심하게 왜곡된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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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웨이의 멋진 묘사. '별이여, 그들을 이끌어 주소서' 대사 마음에 든다.  초능력 무당 주인공 공주의 비련미 물씬 풍기는 오바에도 불구하고 불가해한 선의로 가득찬 칼 세이건식 우주가, 감상하는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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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족의 유산. 3D 그래픽은 여전히 장려하다. 애니가 애니답지 않고 점점 영화같아 지는 것 같다. 나는 진골 SF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연출 수준이 상당하다. 이 정도 연출을 하려면... 이 애니 만든 사람들 잠은 제대로들 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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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우주로 통하는 길. 10차원/11차원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근 각광 받는 우주론은 inflation 우주(대세)와 m-이론이 묘사하는 진동하는 막(membrain) 우주가 있다. 평행우주(새끼우주)는 하도 미친 생각이라 일부 비주류가 주장하고 있는데, 후자 둘이 각광 받는다고 말하긴 좀 뭣하지만, 아무튼, 이 우주의 특정 지점에서 특정 지점으로 움직일 땐 워프를 하고, 다른 우주로 가는 길은 이렇게 게이트로 만들었다. 최소한 이 애니를 만드는 사람들이 교양과학서 정도는 읽고 있다는 뜻이다. 연출에선 연출로 승부를 하고,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면 뭔가 갖다붙일 것들을 풍부히 활용한다는 점에서.

권력은 지식을 수하로 사용하는데, 시대의 지식인은 민주주의의 확산, 여성 평등, 전쟁의 종식, 공정한 기회의 확대, 세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확산, 정보와 지식의 공유, 국가간 갈등의 완화/해소, 폭력에 대한 저항, 환경운동, 다양성의 확대, 정치적 공정함 류의 메스꺼운 위선 등등 매우 좋은 일들을 해주는 나름 유익한 존재들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왜 그들이 똥개라 불리는가와, 지식(무생물?)이 권력(무생물?)과 타협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걸 이해한 후 돌파구를 찾게 되면 권력의 (반려동물로써) 믹스견이 되지 않고 눈에 띄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짓 다하면서 개마초로 장수할 수 있다. 요즘 대세 내지는 유행이 수구적 민족중심주의, 또는 실용적인 우익 순혈주의 임은 시대적 소명의식을 느끼는 지식인이라면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개그가 나온다;

[펌]일본을 공격한다

Q. 만약 미국이 북한을 한국의 동의 없이 공격한다면 ?
서울시민 : 일본을 공격하겠다.

밑의 그래프

-결과-
북한을 돕겠다 47.6%
미국 편을 들겠다 31.2%
일본을 공격하겠다 21.2%

...................


아니 저 질문에서 뜬금없이 왜 일본을 공격한다는건지..
북한을 돕겠다는 사람이나..미국을 돕겠다는 사람이나..
뭐, 어찌 이해는 되는데.
대체 일본을 공격하겠단 말은 왜 나오는지...

...그래도 뭐, 여기까지는 그냥 이상한 설문조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게 올라오고나서 한 양키가 운을 띄웠습니다.

Q.If you won 10,000,000,000W, would you

a. Buy a nice apartment in Gangnam
b. Emigrate to South Central LA and open a supermarket
c. Attack Japan.

그래서 시작된 것이...

Q.만약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

1. 아구창을 날려버린다
2. 행복을 빌어준다
3. 일본을 공격한다

Q.평행사변형의 넓이가 38.786 ㎠ 이고 . 밑변의 길이가 4.73 cm 라면 높이는 몇 cm 인가 ?

(1) 8.1cm
(2) 8.15 cm
(3) 8.2 cm
(4) 8.25 cm
(5) 일본을 공격한다.

Q.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1. 엄마가 좋다.
2. 아빠가 좋다.
3. 일본을 공격한다.

국왕 : 용사여. 마왕으로부터 상처입은 나의 딸을 부디 되살려 주게나.

- 예
- 아니오
- 일본을 공격한다

(연예 시뮬레이션)오빠.. 나 오늘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1) 아버님 어머님이 걱정하실테니 어서 복귀 찍으셔야지요
(2) 좋아 오늘은 우리들의 날이야
(3) 난 널.. 난 널.. (와락)
(4) 나와함께 일본을 공격하지 않을래 ?

- 2009년 서울을 배경으로 연쇄폭탄 테러범의 무차별 폭탄테러에 맞서는 서울시경 경찰특공대 폭발물제거팀의 활약을 그린 액션영화가 개봉되어 흥행성공을 거둔다. 아래는 그 액션영화의 클라이막스 중 한 장면에 나오는 배우들의 대사 중 일부이다.

"박현우 순경, 폭탄은 발견했나?"

"팀장님, 환기구 아래에 마지막 폭탄이 있었습니다. 폭탄 모양새를 보니 블루-3 타입의 폭탄입니다. 해체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블루-3 타입이라고? 침착하고 잘 들어, 그 폭탄은 파란 상자 모양으로 되어서 뚜껑 오른쪽 시계 밑에 전선 회로가 위치해 있을 거야."

"맞습니다! 시계 밑에 빨간 선과 파란 선이 있습니다!"

"좋아. 그 회로를 발견했으면 이제 자네가 선택할 문제네. 빨간 선을 자르던지, 파란 선을 자르던지, 아니면 일본을 공격하게. 어떤 걸 선택하겠나?"


- 2009년 서울의 Web 2.0 전문 회사를 배경으로 웹 디자이너와 PHP 프로그래머 남녀 사이의 삼각관계를 그린 러브코미디 영화가 개봉되어 흥행성공을 거둔다. (중략)

"오빠, 이제 선택해. 저 여자야 나야? 아니면 일본을 공격할 거야?"

-각 나라별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

미국 : 첨단기술로 코끼리가 들어갈 수 있는 냉장고를 만든 다음 윈도를 설치하여 오류발생으로 코끼리를 넣는데 실패한다.

영국 : 여왕이 영연방 국가들을 방문하며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어달라고 호소한다.

독일 : 한치의 오차도 없이 코끼리가 들어가는 가정용 사이즈 냉장고를 설계하지만 미국의 요청으로 생산계획이 중지된다.

러시아 : 정부가 냉장고에 코끼리가 들어갔음을 발표한다. 사실여부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실종된다.

일본 : [SOD]신인Debut! 나오미, 냉장고 안에서 코끼리와 극렬 퍽 20연발!.avi

한국 :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갈 때까지 일본을 공격한다.

Q . 이성계가 사대주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 이성계가 당시 정권을 잡으려면 당시 정권 즉 왕에 반대하는 인물을 규합해야 했으므로 일본을 공격한다

Q . 그 여자의 선택 . KBS 2TV 월 - 토 아침 9 시 방송 , 서유정 / 유태웅 / 박민호 / 차서원 출연
└ 인간의 선택 중 가장 중요하고도 고민스러운 선택은 결혼일 것이다 . 결혼만큼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건 없기 때문에 일본을 공격한다

Q . 그렇다면 Umehara Daigo 氏 에게 여쭙겠습니다 .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단 중킥 캔슬을 노릴 생각을 하셨는지요?
└ 상대방은 블로킹을 포기하고 가드를 굳힌 상태이므로 2 ? ( 하단 또는 중단 ) 으로 가야 했기에 일본을 공격했습니다.

나얼짱님께서 1:1 대화신청을 요청하셨습니다.
신청에 응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일본을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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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마시기

잡기 2007. 9. 17. 09:23
자전거 바퀴에서 소리가 심하게 났다. 여름내내 온도에 따른 팽창 정도를 감안해 바퀴에 바람을 조금 덜 넣었는데 가을이 되면서 주행할 때면 바람이 덜 들어간 바퀴가 주저앉아 스레드가 아스팔트에 폭넓게 닿아 요란한 소리가 나게 된 것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며칠 전 출근 길에 바퀴를 살펴보니  스레드가 많이 닳았다. 타이어 교체 시기가 된 것 같다. 일단 바퀴가 딱딱해질 정도로 바람을 꽉 채워넣어 소리를 줄였다.

공기가 빠지면 지면과 타이어 사이의 마찰 면적이 커져 주행이 버겁게 된다. 마찰 면적은 마찰력과 상관없다. 마찰 면적이 넒어지면 마찰력이 커지는 이유는, 마찰 때 발생하는 열이 타이어를 녹여 전체 마찰면의 응착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마찰 면적은 마찰력과 상관없는데, 마찰 면적이 넓으면 마찰력이 커지는 것이다 -_-

꿈은 신경 회로의 잡음과 찌꺼지를 제거하기 위한 자발적 정화 메카니즘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름답고 불가능한 환상과 얼토당토 않은 스토리가 말하자면 '잡음과 찌꺼지'인 것이다. 비교적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꿈을 연재 만화처럼 꾸는 나같은 사람에게 꿈이 잠재적 욕망의 해소가 맞다. 성적 욕망이 아니라, 합리성의 타이트한 결계를 빠져나오고 싶어하는 적당한 그럴듯함만을 갖춘 이야기들, 말하자면 자작극, 이성의 빛이 미처 닿지 않아 쌓여만가는 어둠의 총 질량을 감소시키 위한.

요즘 꿈에선 매운찜용 닭처럼 도마 위에서 사지절단 당하는 각종 인간과 mc로 만들어지는 이상한 공산품들이 단연 돋보였다. 희대의 걸작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꿈들이 무의식의 성적 욕구를 상징화한 것이라고 했을 때, 그 책을 읽던 어린이/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욕구 또는 욕망 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나,깨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비전에 대한 욕망이다. 어린 시절 일찌감치 그걸 알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도 알았다. 외설스럽게도, 무함마드처럼 꿈을 통해 비전과 어둠을 보게 된 것이다. 그걸 어떤 책에서 오줌 마시기 라고 말했다. 비유적인 표현인데, 자기 똥 먹기 보다는 표현이 덜 폭력적이지 않나? 게다가 오줌 마시기가 건강에 좋다는 myth는 꾸준히 인기가 있어왔다.

아내는 머리를 밀은 후로 희희락락이다. 알고 지내던 스님을 모셔 면도날로 머리털을 모두 제거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웃었다. 스님은 전날밤 날더러 아내 머리를 깍아도 괜찮냐고 물었다. 외모 따위를 평생 신경 써본 적도 없는 탓에 못생긴 여자더러 못생겼다고 말하는데 그다지 거리낌이 없었다 -- 올바른 평을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평을 들을 자격을 갖추던가 상대가 워낙 싸가지가 없어야 한다. 아내는 만족했고 아내가 만족하므로 나도 만족했다.

과거 아내가 나와 사귈 흑심을 품은 이유는 내가 '똑똑해 보여서' 였다.  결혼하고 보니 그렇지 않아 불만이 많다. 잘못 알고 있다. 법과 질서, 정의와 도덕 등 이 세계-사회 체계를 이루는 위대한 형평성과(자유,평등 그리고 민주주의 만세!) 제약조건을 제거할 경우, 말하자면 이 세계가 어둠으로 가득차면 운석의 도움이 없이도 백악기의 포유류가 어떻게 진화사상 먹이사슬의 최고위층에 속하게 되었는지를 재현해 줄 자신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새벽 하늘의 찬란한 루시퍼처럼 명석하다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가 자발적인 합의 아래 생산성을 담보로 시스템에 깊고 폭넓게 편재한 폭력을 유연화시킨 그간의 과정은 대단히 인상적인 '진보'였다. 물론 진보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인류는 교미와 번식을 장려하는 연가를 즐겨왔다.

인류의 꾸준한 영속성을 답보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50억중 49억 이상은 종교에 귀의한 자를 포함해 강인간주의가 유의미하다는 희안한 견해를 갖고 있다(삶은 기적이고, 우주는 여섯 개의 우연히 완벽하게 들어맞는 상수에 의해 생명체에게 적합하도록 창조되었다,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본주의와 타협한 과학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류의 자기모순적인 견해를 자기 입으로 얘기할 때 (양심이 있는 한) 사견임을 밝히는 것이다 -- 과학은 너무 연약해서 견해를 가지기 힘들다.

하여튼, 별일 없는 한 삶은 신의 부재를 절로 짐작케 되는(그 반대로서도 논증이 불가능하므로 논박되지 않아 참이 되는) 기적이다. 게다가 자기 기만, 자기 모순, 자기 합리화, 아이러니 등  자기 오줌을 마시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 같다.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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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잡기 2007. 9. 12. 16:37
홍보 자료 하나 대충 만들어 달래서 대충? 대충 하면 안되지, 그 정신상태로 며칠 내내 비디오를 만들었다. 기밀자료들도 많고, 그러다보니 자료가 거의 없어 머리가 아팠다. 달랑 디지탈 카메라 하나 들고 8분이 넘는, 나름 열혈 비디오를 만들었다(제목이 burning life, 첫곡은 chariot of fire, 마지막 곡은 kiss of fire. 등장하는 장비는 burn in tester. 불,불,불). 마누라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사실 주변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내는 비디오가 구리다고 평가했다. 특히 음악이 구리단다. 자막 만들다가 너무 힘들어서 자막 만드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여튼 넌더리가 나서 이제 그만 하련다.

 

Just like a torch you set my soul within me burning. I must go on along the road, no returning. And though it burns me, it turns me into ashes... My whole world crashes, without your kiss of fire

책을 서너권 더 읽고, 도서관에서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를 빌렸다. 대략 1년 동안 도서관에 갈 때마다 대출 신청을 하려던 책을 이제야 손에 쥐었다. 예전에 '아인슈타인을 넘어서'는 일찌감치 절판되었고(누구에게 빌려줬는지 잊어버렸다), '초공간'을 무척 재밌게 읽었다. SF 친화력이 매우 높은 물리학자로 종종 SF를 그의 책에 인용하거나, SF 같은 이론을 일반교양 수준에서 쓸데없이 이상한 비유없이 간략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솜씨가 뛰어나 알만한 내용을 재독해도 유머가 곁들인 감칠맛이 좋아 졸립지 않다. 종종 칼 세이건의 후계자로 비유되기도 하는 듯.

신입사원이 연봉협상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는다. '회사가 당신에게 절대 맨입에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과 유사한 제목) 같은 처세술 책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긴 사측에서 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은 때로 째째하고 지저분하기 까지 해서 기여도나 업무수행능력 따위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기 보단 얼마나 상급자에게 충성도가 높은가, 얼마나 성실해 보이는가(성실한 것과 성실해 보이는 것은 다른 문제), 출퇴근은 잘 하는가? 같은 것도 무시못할 변수다. 업무 수행 평가는 비교적 좋았지만(주로 연구개발이다 보니) 대인관계에 항상 문제가 있었고 출퇴근을 내키는 대로 한 탓에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연봉협상에 관해 물어봤자 도움이 될 리가...

그런데 며칠 후 사장님이 연봉협상에 참고할 팀원들의 직능평가서를 달라고 말했다. 이런 문서 작성하는 것은 정말 오랫만이다. 항목 분류로 업무 이해력, 적응력, 할당량, 수행능력, 업무 성실성, 상호작업 및 협동, 개발 능력, 생산성 기여, 문서화, 체계 순응, 대외 서비스, 교육, 시간외 근무, 학습 참여 따위를 넣고 가점요소는 그저 그런 것들을 넣고 감점 요소에 업무외 사적 활동과 출퇴근, 지시 불응, 초과 경비 지출, 개발일정 지체 등의 항목을 넣고 거창한 스코어보드를 만들고 점수를 메겨보니, 아, 나는 참 마음씨 좋은 중간 관리자구나 싶었다. 특별히 편애하지는 않았는데 한 친구의 점수가 유난히 높았다. 사장님에게 연봉 10% 인상과 인센티브 제시를 메모로 남겼다. 나머지는 물가 상승율 수준. 내 연봉은 동결이다. 더 받을 이유도 없고, 더 받은 만큼 마누라, 애 내팽개치고 일하고 싶지 않다.

연봉이 꾸준히 상승하면 복리 효과가 생겨 매년 10%씩 상승한다고 보면 2500만원 받는 신입사원이 7년차면 연봉이 5300만원이 된다. 능력있으면 실제로 그보다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연봉협상을 꼭 해야 하고, 제대로 미친듯이 일해야 하고, 자기가 한 일을  인정해주는 회사를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협상 할 때 맨 몸으로 가서 대충 때우겠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충고해줬다.

이명박은 법인세를 인하한다, 부동산 세제를 완화한다, 대운하 건설한다, 친북좌파 운운, 남북회담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느니(찬성이면 찬성이고 반대면 반대지, 별 견해도 없으면서 '원칙적'은 또 뭐지?)  류의  말을 줄줄이 늘어 놓아 흡사 정신병자 같아 보였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 성장통을 겪고 있는 정신병자가 대통령이 되는 셈인가? 재밌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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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울티마툼

잡기 2007. 8. 30. 01:13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 를 읽다가 심란해지고 말았다. 저자 스스로 과학에 문외한임을 밝혔고, 에드워드 윌슨의 Consilience 에 문제가 좀 있다고 하지만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작가와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우울해져서 책을 더 이상 읽지 못하겠다. 그의 대부분 견해는 논박이 가능하지만 무슨 소용이겠나... 그게 정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심슨 더 무비에서 바트(던가?)가 이렇게 외쳤다; life well spent!!

자기기만.

'삶은 기적이다' 때문에 이상한 상처를 입어(저자의 주장이, 소수에 불과한 건강한 회의주의자가 아닌, 인류 일반이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과학은 오만하다)과 다르지 않다는 것 때문에) 한 동안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것 같다.  정말 대미지가 크다. 그래서 책을 접어두고 영화와 애니메이션만 줄창 봤다.

약자를 위해 싸우는 것은 짜증난다. 누구나 한번은 해 봤을텐데, 요령은 엮이기 전에 재빨리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다. -- Burn Notice

간만에 건진 미국 드라마. 번 노티스 1화를 보고 재밌을 것 같아서 9화까지 다운받아 줄창 봤다. 한 마디 얘기도 없이 짤린 스파이가 마이애미 해변에서 약간 머리가 돈 전 여자 친구와 그를 FBI에 팔아넘긴 친구, 그리고 항상 어디가 아픈 엄마, 문제아 동생과 함께 궁상스럽게 먹고 사는 얘기다. 그 와중에 자기가 대체 왜 짤렸는지 조사하기 위해 애쓴다. 주인공의 스파이 시절 써먹던 '기술'은 흥미로왔고 보고 배울 점이 많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발 이 미친 여자 좀 어떻게 해 줘! -- 주인공의 전 여자친구에게 하는 말. 매력적인 아가씨다.

본 울티메이텀 -- 재밌다. 본 씨리즈 완결판으로써 손색이 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추후 두 편을 더 제작한단다. 멧 데이먼이 출연하는 영화는 본 울티메이텀을 포함해 최근 세 편을 연달아 보았다. 오션스 써틴(2편에 비해 반전의 묘미가 약함), 그리고 Good.Sheepherd. 멧 데이먼은 입 다물고 액션만 해야 영화가 산다. 소재가 좋아보였던 굿 쉐퍼드는 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본 시리즈가 멧 데이먼을 구원했다.

듀얼코어에서는 컴파일 시간이 1/2로 주는 것을 확인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회사에 가는 대신  용산에 가서 부품을 구입했다. 2005년 10월 20일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한 후 거의 2년이 된 셈이다. 계산해 보니 용량이나 성능을 2배로 향상시키는데 꼭 1/2만큼의 비용이 든다.

AMD 애슬론64-X2 브리즈번 BE-2350 79000
E5MEMORY EK DDR2 1G PC2-6400 RED x 2 76000
ASRock Alive NF7G-HD720P 에즈윈 58000
WD SATA2 320G (7200/16M) WD3200KS 정품 75000
288000

흠. 엑셀에 쇼핑 목록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복사해오니 url까지 그대로 긁어오네? tattertools가 의외로 편하군. 다나와 최저가보다 2천원 비싸게 한 매장에서 부품을 모두 구매했다. 좀 더 저렴한 유니텍 보드를 살까 하다가 유니텍 홈페이지에 가보니 A/S에 대한 원성이 자자해 포기했다. 나도 유니텍의 악명높은 A/S에 몇번인가 경험이 있다.

적어도 6개월동안 업그레이드를 미뤘는데 새로 조립하는 컴퓨터는 사무실에서 일할 때 사용할 것이다. 더 값싼 브리즈번 4000을 사려다가 BE-2350을 샀다. 65nm 공정에 TDP가 45W로 65W짜리 브리즈번 4000보다 소비전력이 작고 발열도 적다. 브리즈번4000을 저전압으로 동작시키면 2350과 다르지 않다는 말들이 있다. 글쎄다.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부품을 구입한 용산의 나진상가에 있는 한 매장에 젊은 연인이 찾아와 램을 교체해달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매장 주인은 쩔쩔 맸다. 램 모듈을 보니 cap 3개가 일렬로 납땜이 들린 채 부러져 있었다. 사용자가 모듈 삽입할 때 실수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부러질 리가 없지만,  그래서 언성을 높이는게 꽤 우습게 여겨졌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연인이 갖은 엄포를 놓으며 매장을 떠난 후 주인은 인상을 구긴 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전자상가는 금연구역인데, 담배를 피우다가 상우회에 걸리면 벌금을 문다. 50만원이던가?

두 연인같은 개싸가지에게도 삶은 기적이다.

집에 있는 250GB의 SATA2 HDD를 새로 구입한 320GB로 교체하기 위해 Acronis True Image를 사용하여 disk cloning을 했다. 디스크 크기가 달라도 파티션 복제가 가능했다. 대략 1시간 걸려서 HDD를 통째로 복사하고 새 HDD로 부팅을 확인한 후, 새로 구입한 보드에 이전에 사용하던 250GB HDD를 달고 windows xp sp2 black edition을 다시 설치했다. 아크로니스 트루 이미지와 블랙 에디션의 도움으로 교체 및 설치는 3시간만에 끝났다. 그 동안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고 와인 한 잔 곁들여 식사를 하며 노트북으로 플래시 고든을 봤다. 며칠 혼자 밥먹으니 참 구질구질하다.

어젯밤 백형에게 오랫만에 전화가 왔다. 애 돌잔치가 언제냐고 묻는다. 돌 잔치는 하지 않고, 그보다 마누라를 몇 대 때렸더니 처가로 도망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농담했다. '여전하군' 이라고 대꾸한다. 여전하다니? 성질 더럽게 마누라를 두들겨 패야 평소대로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뜻인가? 예전처럼 사람들의 심장에 칼을 꽂고 비틀어대야 여전한걸까?

가까운 친지들과 애 돌잔치를 하긴 했다. 아내가 한식당에 친지를 불러모으고 돌상을 차려놓은 다음 나를 불렀다. 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비꺽이건, 마누라는 마누라의 실천의지가 있는 것이다. 아이는 돈을 잡고 흔들다가 집어 던지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돌 잔치 안했다고 이래저래 욕을 들어먹었다.
소울아, 네 삶은 기적이 아니다. 자연사다.
아빠는 자연사에 굳이 미주알 고주알 축하를 늘어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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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로

잡기 2007. 8. 25. 12:25
종합소득세를 엄청 내고 나니 어이 상실. 한 달 새 끊임없이 밀어 닥치는 여러 악재와 무더위로 기분은 다운되고 그야말로 급핀치에 몰린 것 같은데 간신히 버티는 이유는 이 우주에 편재하는 나선력(spiral power) 때문이지 싶다. 그렌 라간 22화를 보고 맛이 갔다. 작화품질이 고르고 음악 좋고, 스토리 무난하다. 가이낙스가 간만에 작품 하나 만들었다. 그야말로 수습이 안되게 막가는 이 극화의 결말이 슬슬 걱정될 지경이다. 이게 일요일 8:30am 애들 보는 만화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사람과 짐승의 두 가지 길이
비틀려 만나는 나선도
어제의 적으로 운명을 깨부수고
내일의 길을 이 손으로 붙잡는다!
숙명합체 그렌라간!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거냐!!!

22화에 등장하는 위의 문구에 심오한 영감을 얻어 맥주 마시다 말고 사장님에게는 M&A와 ODM을 제안했다. '어제의 적으로 운명을 깨부수고.. 숙명합체를 이뤄 내일을 도모한다' 뭐 그런 의지... 기업활동은 그 자체로 놀이문화 열혈인 것이다!

좌우구분도 잘 안되고 권력을 얻자는 건지 이름을 남기자고 발버둥을 치는 것인지 뚜렷한 비전과 희망이 없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실망할 것은 없지만 가끔 가다가, 말 잘하고 내 마음에 꼭 맞는 좌익, 그저 똥오줌 못 가린다는 차원에서가 아닌 사민주의를 지지할 이유가 있는 지능과, 죽어서 1억을 남기는 우익 보험 류도 이제 한국에서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정치권을 욕하기 앞서, 스무디 킹은 이렇게 말했다; be good to youself

사무실 직원들과 민주적으로 합의해 문국현에게 몰빵하기로 했다. 목표는 4일 근무다!!!
 
소울이는 남들 얼굴을 뚜러지게 쳐다보거나, 제흥에 겨워 춤을 추는 것 외에 뚜렷한 지적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숙명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 발달의 뚜렷한 징후는 두 차례 밖에 보지 못했다(아니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가)
부모님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 아이의 숙명이다. -- 미야베 미유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미유키의 전 4권에 달하는 '브레이브 스토리'를 읽었는데 대체 뭘 읽었나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그런 면에서 참 인상적인 소설이다.

술집에서 D-war 얘기중, 군중심리의 동조 현상에 관한 얘기가 나와(한 밤중에 귀뚜라미가 찌질찌질  동조를 맞춰 우는 것이나 반딧불이의 깜빡임 따위)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싱크'를 찾아 읽었다. 과학교양서라기 보다는 수필에 가까웠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300여개에 달하는 레퍼런스를 미주로 달아놓고 자신에게 영향을 준 과학자(또는 지인)의 소개와 연구 내용을 줄줄이 늘어놓다가 마지막 장에는 그들의 근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여지없이 '일반인'의 수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수식이나 그래프로 설명하면 몹시 간단한 것을 장황한 말로 늘어놓으니 읽다가 두 번쯤 졸기도 했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꾸는 경험을 이렇게 서술했다;

.... 흥분해서 윈프리에게 편지를 썼다. 어디로 가야 수리생물학 대학원 과정을 밟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2주일 후 퍼듀 대학 주소가 찍힌 편지를 받았을 때 내 심장은 빠르게 고동쳤다. 윈프리의 친필 답장이었다.

스티븐 스트로가츠: 물론, 당연히 내게 와야만 하네.

꿈이 실현된 것이다. 그때쯤 윈프리는 나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생물학부에 있었다. 그리고 생물학 석사 학위는 내 계획에 없었다. 나는 수학 전공이 아닌가. 그러면 여름방학 때 일을 같이 하면 어떨까? 그래서 가능성을 물어보는 수줍은 편지를 보냈다. 2주 후 답장이 왔다.

자네의 1981년 12월 1일 편지를 받은 지 5분 후

친애하는 스티븐
이번 주 내게 돈이 한 뭉치 떨어졌다네. 그래서 여름방학 일자리는 오케이네. 급여를 줄 수 있네...
내 실험실은 공간이 널찍하다네. 멋진 주변 기기를 다양하게 장착한 애플 컴퓨터도 두 대 있네. 연구할 주제는 위상수학일세. 자보틴스키 수프의 3차원으로 꼬이고 매듭이 있는 파동의 수수께끼를 연구하는 걸세. 그리고 야간 아르바이트로는 이 파동을 심장 근육에 적용하는 문제를 연구할 걸세(심장마비 돌연사에 대한 내 논문이 내년 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실릴 걸세. 그걸 보면 이해가 될 것으로 믿네). 이런 분야들을 자네와 공동으로 연구하게 되면 정말로 기쁘겠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걸세.
자네가 이 제안을 거절하기 전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자네에게 여름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부추기지 않을 작정이네. 부디 거절하지 말기를 바라네.

감정에 이끌려서, 아서 윈프리

1982년 여름 윈프리의 여구실에 도착했을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코네티컷 주에서 인디애너 주까지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에 아버지가 함께 따라왔다.

연구실은 조용했다. 대학원생이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전에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나 말고 함께 일할 연구자가 있냐는 질문에 윈프리는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다른 학생들이나 공동 연구자의 이야기를 꾸며낼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아무도 없다네. 아마도 내가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너무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지.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내 연구실의 인구밀도는 1일세. 동첨할 사람은 자네가 유일하네. 이런 사살이 나에 대한 자네의 신뢰감을 저하시키는가?"

이공계식의 처절함과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이런 내용 때문에 정작 보고 싶었던 동조에 관한 중요한 내용들은 주마간산 격이다. 역자도 한 몫했다. 이런 대목;

캘리포니아 공대의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크와 프랜시스 크릭이 최근 발표한 공동 논문 '내부의 좀비'를 보자. "의식은 뉴런들이 1000분의 1초 수준에서 동조 발화하는 것을 수반한다. 이에 비해(뉴런들의 1000분의 1초 수준 동조와: 옮긴이) 관련되지 않은 발화는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뇌 속에 그 특별한 윙윙 소리(의식을 말한다: 옮긴이)를 발생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 이들의 추론이다.  ... 자기 자신의 의식, 스스로의 자기 인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를 표현할 단어를 나는 지금 더듬거리며 찾고 있다. 수많은 물 분자와 단백질과 지질,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이 망할 놈의 물건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나를 마주 쳐다보고 (거울 속에서: 옮긴이) 있다. ... 만일 의식이 어떤 종류의 신경 동조의 부산물이라면, 그렇다면 동조에 대해 단지 생각하는 것만도 동조 자체의 엄청난 활동(1000분의 1초 단위의 분주한 동조의 연속: 옮긴이)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므로.

387p가 되어서야 역자는 갑자기 친절해지기로 결심했는지 문맥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쓸모가 없는 역자주를 여럿 달아 놓았다.  옮긴이의 말에는 '변명과 제안'이 적혀 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자로서 자연과학 분야의, 그것도 비교적 전문적인 교양서를 옮긴데 대해 변명을 하고 싶다... 옮기는 과정에서 역자의 과학적 소양이 총체적으로 점검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분야별 전문 용어를 제대로 따르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으리란 우려가 남는다.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다지 전문적인 과학교양서는 아니다. 하지만 스트로가츠의 오락가락 하는 문장이 정제되지 않고 남아 역자도 오락가락해서 책의 문맥 파악하는데 애를 먹은 것도 사실이다. 후기에 적어놓은 역자의 우려와 달리 나는 작자만큼이나 그 책을 소개하고 번역한 역자를 대접해준다. 책을 고르는 안목, 책을 감동적으로 읽고 번역해야겠다는 결심(인류애지 뭐겠나?), 번역은 잘 안되었지만 과학교양(또는 마땅히 일반 상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등등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밌게 읽은 책이면 같은 역자의 책을 찾아본다. 후기 인지 변명인지를 읽은 후  지속적으로 그 분야 내지는 과학교양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그가 번역한 책들을 인터넷 서점에서 뒤져보았다. 역자는 지금까지 두 권의 책을 번역했다. 평가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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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문국현이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대선이 재밌어졌다. 문국현씨, 당신 찍을꺼요. 댁 집안은 HP 분위기가 나서 좋아했음. 물론 떨어지겠지만!

엠파스의 '많이 본 기사'에는 순, 연애인의 구질구질한 사생활 얘기 뿐이다. 기사를 보는 놈들이  한심하다고 생각. 많이 본 기사니까 싸잡야 욕하는 꼴이 된다. 쓰잘데기 없는 일로 자기 재능의 70% 이상을 낭비하는게 인간이고, 인류가 개발한 가장 위대한 놀이가 가십이다 보니... 이건 욕도 아니다.

pdanotes.net이던가?의 클리핑 사이트는 사라졌다. 뉴스룸을 약간 확장해 Naver New Clipping 사이트를 만들었다. php를 스케줄 걸어두고 기사를 일정 시간에만 수집하는 것은 방법을 몰라 관뒀다. 한 번쯤은 제대로 php를 배워봐야 할텐데...  한가해서 할 일 없을때나 해 보자. 그러다가 문득, 저런 거 소스 공개해 두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MT 3.2에서 태터툴즈 1.1.3인지로 아티클 변환하는 소스나 자기 구미에 맞게 뉴스 클리핑 사이트를 꾸미고 싶은데 만사가 귀찮은 프로그래머라든지... 그러다가 문득, 귀찮더라도 자기 힘으로 어떻게들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마누라가 컴퓨터를 날려먹어서 윈도우즈를 새로 설치했다. 어떻게 웹 서핑과 메시징만 사용하는데 파워 서플라이가 망가질 수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용산 전자상가는 일요일 오후에 문을 열지 않았고, 용산전자상가 앞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만오천짜리 싸구려 전원장치를 사 왔다. 날이 많이 덥다.

일요일 하루종일 윈도우즈 설치에 애를 먹었다. 이 블로그보다 오래된 SoundTrack DS-XG 754 사운드 카드 드라이버만 설치하면 윈도우즈가 다운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 동안 잘 써오던 것인데 왜 말썽을? 더위 먹었나? 미심쩍인 것이 있어 밤 12시가 넘어서야 사운드 카드의 엣지를 지우개로 닦은 후 슬롯에 삽입하자 더 이상 윈도우즈가 다운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지우개는 전자 엔지니어의 필수 아이템인 것이다. -_-

우르술라 르귄의 '로캐넌의 세계'와 '환영의 도시'를 출퇴근 길에 읽었다. '유배행성'인지 하는 것은 도서관에 아직 없어 빌리지 못했다. 누군가는 헤인 시리즈 전권을 도서관에 비치하고픈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다보면...

기나긴 유사장마 때문에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그러니 책을 죽어라 읽게 된다. 로캐넌의 행성에서 건질만한 문구는 '당신의 적들이 자식없이 죽기를' 정도. 두 책 모두 재미있었다. 환영의 도시: '생선과 손님은 사흘이 지나면 냄새가 나게 마련. 잘 가게', '믿음이나 희망이나 본질은 같다. 마음이 다른 마음들과, 세계와, 그리고 시간과 맺어야만 하는 관계들'

생선... 운운 하는 얘기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문장이다. 아마도 세익스피어일 것 같다. 르귄이 머리가 어떻게 되서 제대로 번역이 안되는 노자를 읆는 걸 보니 히죽 웃음이 나오기도.

대니 보일의 썬샤인을 이제서야 봤다. 사소한 실수 몇 가지 제외하고 오랫만에 재밌게 본 SF영화다.  영화감독들이 대부분 닭대가리 같아 보여서, 예술은 잘 할 지 모르지만 머리들은 나빠보였다. 메이저로 뜰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박씨 아저씨가 가끔 하는 SF상영회에서 상영할만 했다. 아마 대다수의 SF팬들이 놓친 영화일 것이다.

최근에는 Master of Science Fiction의 첫 작품(Clean Escape)를 봤는데, 진부하고 무거운 주제가 워낙 고전적이라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무겁고 고전적인 것에 걸맞는 '깨끗한 결말'이 나오지 않았다. 원작자나 시나리오 작가는 나름대로 잔대가리를 충분히 굴렸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나 같으면 시치포스의 영원한 형벌과 보편적인 인간성을 씨줄날줄처럼 교차했을 것이다. 평이하고 재미없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머리는 좋은 것 같은 심형래 감독이 SF영화도 만들었나? 저얼때 그럴 사람이 아닌데... 농담이고, SF가 한 마디로 정의되고 수습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충무로든 심형래든 SF의 컨셉을 그렇게 잡고 있으면 그런가 보다, 그걸로 끝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가르치려 들며 주절주절 늘어놓다가 깔끔하게 마무리가 안되는 꼴사나움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말수가 적은 편이 낫지.
진중권 비난한다고 반박하는 글을 보고 든 생각이라곤(영화에 들이댄 잣대가 잘못되었다... 류는 진화가 좀 진행된 먼 미래의 얘기고), 1. 전국민이 일 년에 책 두 권 제대로 안 볼 정도로 대따 무식한데다 2. 토론을 주먹질과 억하심정, 하소연, 푸념, 허가받은 개소리, 뜬금없는 헛소리로 알다보니 3. 논거 한두 개 잡고 늘어져 가볍게 말장난 하는 진중권에게조차 깨질 것 뻔한 부실한 체력으로 4. 욱하는 심정에 5. 먹이사냥에 나선 들개떼처럼 달려드는게 참... 네티즌이란 것들이 글이나 또 잘 쓰면 모르겠는데 글도 못써서 온 사방에 찌질찌질 찌질링... 심지어는 이 기사, 진중권―네티즌 맞장떴다… “논쟁없는 폭력”VS“싸잡아 비판이 더 문제” -- '첨삭 지도'같은 것도 받아 토론에 참석한다.
그러자 네티즌 패널 collin은 "디워에 서사 구조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심 감독의 의도는 영화를 보고 나서 해석이 가능하므로 넓은 의미로 서사가 포함돼 있다"고 반박했다.
그런걸 궤변이라고 합니다 -_-

아무튼 저럴 땐 '역시 다이나믹 코리아! 홧팅!'이라고 해줘야 하나. 한국만 그런 건 아니고, 흡사 인간성의 보편적인 특질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변치않는 찌질기백은 사막과 태평양을 가로지르고 국경을 초월한 전세계적인 보편 현상이긴 하다. 일종의 지구적 공감대 내지는 생체 전자기 상호유도 작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낸시 크래스 글 잘 읽었다는 어떤 포스팅에 어떤 골수페미년이 헛소리를 늘어놓으니까 게시판이 뒤집혀서 장난아니게 다구리질을 하다가 뜬금없이 무슬림 얘기로 새버려서(다 같이 짜장면 시켜먹기로 했는데 꼭 설렁탕 먹고 싶다는 녀석 있는 꼴로 설렁탕은 어디가 맛있다고 뜬금없이 성질 부리는 것) 어쩜 이 작자들은 십 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무개념이 상팔자라고 굳세게 믿고 있는 걸까.. 인류에게 진정 발전이란 없는 것일까... 21세기가 왜 이렇게 걸레같을까... 애들은 굶어죽고 로켓은 아직도 안 날아가고..

Animated Soul (16:30) 41MB
이건 뭐... windows xp 버전이 달라서인지 windows movie maker에서 편집파일을 불러오면 몇초도 안되 곧잘 죽어버리니, 만들고 나서 다시 편집할 수가 없어, 맞춤법이 틀린 파일을 열어놓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 마누라를 위해 아이 돌 기념 16분 짜리 비디오를 시간날 때 만들었다. 애들이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것은 제 엄마가 애 젖 먹이려고 미역국을 몇 개월씩 먹었던 그 괴로움을 맛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월이 좋아져서 그런 고생하는 임산부, 엄마는 없어졌고, 백일 이라던가 돌이란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 엄마는 말하길 '그래도 아이의 첫번째 생일인데 축하해줘야지!' 인과의 연쇄고리를 통해 삶의 타당성을, 삶의 위대함을 재현하는 것을... 관두자. 내가 틀렸다. 그래도 돌잔치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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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ion

잡기 2007. 8. 8. 03:04
Movable Type에서 Tattertools로 블로그 툴을 바꿨다. 태터툴즈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 인터페이스를 강요한다. euc-kr에서 utf-8로의 변화로써 늦긴 했지만 발전적(?)이다. 무버블타잎이나 태터툴즈나 뭔가 좀 해보려면 코딩을 해야 한다. 태터툴즈의 코딩량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적은 편이다. 올초부터 블로그 툴을 바꾸려고 했는데, 무버블타잎의 아티클을 변환하는 것이 번거러워 미뤘다.

며칠전 다운 받은 태터툴즈 1.1.3은 백업 파일을 xml로 저장하기 때문에 무버블 타잎으로부터 변환이 손쉬웠다. 여행기와 잡기를 편의상 통합했다. 지저분한 태터툴즈 로고, 스킨 로고, CC 로고 등등은 제거했다. 손쉬운 작업(?)인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워낙 블로그를 폐쇄적으로 운영해 왔다. 이 블로그는 자비출판된 공개 일기장과 다르지 않다. 문득 안네 프랑크나 빨강머리 앤이 생각난다. 주접을 떨어대는 앤에게 혐오감을 느꼈던 어린 시절도 기억난다.

괄약근에 힘주면 혈압이 오른다. 는 얘기는 술자리에서 자주 나오던 얘기였다. 그것으로 군대 면제받을 수 있다는 얘기. 그런데 그거 하다 걸린 녀석들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살아서는 돈 벌어오고, 죽어서는 보험금을 남기라' 는, 몹시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는 보험사 광고.

재테크 차원에서 저축보험에 들었다. 보장내역은 신경쓰지 않았다. 저축보험은 복리 저축의 효과가 있고, '죽어서 보험금'을 남기는, 사랑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훌륭한 애비가 될 수 있다. 교육비 상승률 연 7%를 감안하면 아이가 대학갈 때쯤 해서 대략 4년간 8000만원 가량이 학비로 필요하다. 아이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학비 지원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연구결과도 있다; 사랑은 건강에 해롭다.  합리적으로 연구결과나 세상을 믿지 못하고 살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태어나기 싫었는데... 살아가기 싫었는데... 사랑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고 훌쩍여봤자 이미 늦은 것이지만.

시세이도 샴푸 선전을 보다가 어디서 본 여자앤데 싶어 뒤져보니, 허니와 클로버, 훌라걸의 아오이 유우. 귀여워서 기억하고 있었다. 훌라걸은 묘하게 한국적인 분위기가 난다 싶더만 감독이 재일한국인이다. 훌라걸의 사투리가 강원도 정선 사투리랑 비슷해서 괴기스러웠다. 영화가 재미있었던가? 그게... 잘 모르겠다. 개마초(open macho)를 표방한 이후 허니와 클로버 같은 영화는 이해가 안 간다.  이런 것도 이해가 안 갔다;
... 여성들은 이런 부분에서 취향이 맞으면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라도 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 왈, "처자식 버리고 증발하는 아들을 키운 것은 나다, 내 탓이다, 사토코, 미안하다." 그렇게 사과하는 동시에 노부오를 매섭게 비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덜 되먹은 놈 같으니, 하면서. 화를 내기 시작하면 사과로 끝내고, 사과하기 시작하면 화를 내면서 끝냈다. 할머니가 감정을 발산하는 양상을 두고, 전에 고교생이던 쓰요시는, "그건 그냥 할머니의 취미에요. 거의 사는 보람이라고 할 수 있죠." 라고 말한 적이 있다. -- 미야베 미유키, 이유

미야베 미유키의 장광설을 좀 더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는 그의 책 거의 전부가 대출중이다. 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이번 여름에는 일본 추리소설을 읽어볼까? 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정보 소스가 박광규씨니까 그 양반이라면 재미없는 책을 설마 소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레몬'과 '환야'도 읽었다. 환야는 '백야'를 먼저 읽어야 아구가 맞을 것 같은데 대출중이다. 둘 다 재미있다. 레몬은 의아한 부분이 많았고 처녀생식에 관해 좀 더 치밀하게 묘사했으면 했는데, 히가시노가 과학 스릴러를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보다. 환야는 팜므 파탈 소설의 전형성을 그대로 보인다. 주인공 얼간이 남자가 조작되다가(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결국 쓴웃음을 지은 채 자멸하는. 악녀 치고 머리좋은 여자는 없다는 고래의 진리가 잘 반영되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자는 본래 선악의 구분이 없는 존재다. 그래서 마음만 맞으면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여여, 남녀가 공존할 수 있다.

하여튼, 미야베 미유키의 책들이 거의 다 대출중이라 하는 수 없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을 빌렸다. 글빨은 있지만 엉성하고 재미없는(입맛만 다시게 되는) 이야기에 실망이다.  so what? (그래서?)라고 물으면 하루키는 why not?(안될 껀 뭔데?) 라고 지껄일 것 같다. 글에 구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상표를 줄줄이 나열하거나 시답잖은 얘기로 심지어 글을 출판까지 하는 그의 괴상한 취미도 여전했다. 하루키 글을 읽으면 일본인들은 원래 이리도 소심한가 싶다. 아니다, 문학이 원래 소심한 장광설인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 빌려 나오는 길에 분실물 보관함을 흘낏 보았더니 저번주에 잃어버린 가방이 버젓이 놓여 있다. 사무실에 가서 분실물을 찾으러 왔다고 하니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다가 정확히 12시 30분에 열쇠(를 가진 사람)가 도착하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란다. 출근해야 되요, 라고 말하며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다. 요즘 새벽까지 잠을 못 자서 출근이 늦다. 출근이 늦으니 퇴근도 늦다.

새벽에는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았다. 실사를 만화와 똑같이 만들어 놓았다. 이틀 동안 새벽에 잠 안 자고 다운받은 드라마를 시청했다. 하하 자주 웃었다.

만화보다 나은 점은 줄기차게 어디선가 자주 듣던 클래식들이 줄줄이 튀어나온다는 점이랄까? 이를테면 Brahms, Symphony No. 1 in C minor op.68 (13:15)은 출근길 지하철에 앉아 책을 펼칠 때 흔히 시작하는 이른바,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아침을 여는 음악'이다.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92(13:31) 는 자전거를 타는 어느 시점에서 들려온다. 10대 시절에는 후까시가 왕창 잡힌 베토벤을 좋아했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썩 괜찮은 음악 드라마다. 원작이 원래 재밌다. 연주실력이 좋아서 유명 지휘자, 유명 레코드의 더빙인 줄 알았는데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오케스트레이션을 실제로 녹화했다는 얘길 듣고 신선했다. 제대로 하는군. 흔한 시쳇말로, 음악계는 천재들의 무덤이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그 주제가 여러 차례 변주된다.

오케스트레이션이라... 동시에 귀로 구분할 수 있는 악기 수는 기껏해야 6-7개 정도 뿐이다. 어린 시절에 클래식, 특히 교향곡을 많이 들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락과 헤비메탈이 쉬웠다. 락, 특히 프로그레시브 락은 대단했다 -- 온갖 (짜증도 가끔 나는) 음악적 실험을 눈도 한 번 안 깜빡이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시도한다. 요즘은 박상철, 무조건(3:36)이나 강진, 땡벌(3:11), MC몽, 아이스크림(3:36) 같은 최신가요도 디저트처럼 곁들였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사랑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꺼야, 무조건 달려갈꺼야.
짜짜라 짜라짜짜 짜짜짜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나-란 얼간이는 없다고-
그래도 너 하나만 사랑한다고-
쉽게 녹아버린 니 마음 상-처받은 엠씨몽
사랑은 아아아아이스크림

여기저기 전방위적인 '무조건'과 '아이스크림'은 여행을 연상케 한다. 노랫가사에 땡벌은 왜 나오는건지 뜬금없다. 들어보면 결국 찌질스런 사랑타령이지만. 뭄바이의 도미토리에서 만난 이란 출신의 치과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아이스크림이다. 녹아버리기 전에 낼름 먹을 것. 인생도, 사랑도 아이스크림인거다. 언젠가는 녹는다. mp3p에는 지난 8개월 이상 클래식만 저장해서 들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한동안 드림 씨어터 앨범 전집을 관람할 생각.

세금논란, 사학 비리, 이랜드 사태, 아프간 피랍 등 가히 한국예수교의 수난 시대인 듯. 이랜드 사태와 관련해서 '파견의 품격'라는 일본 드라마를 소개받았다. 파견없이는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정사원과 파견사원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내자. 는게 요점인 것 같다. 첫 화에서 정사원과 파견사원의 연봉을 줄줄이 보여주면서 자본사회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는가 싶더만 회가 거듭될수록 사연많은 슈퍼걸의 고뇌와 인덕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드라마가 좀 더 천박하게 각을 세우길 바랬달까? 사회문제의 평범한 귀결인, 첨예한 대립과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총인의 에너지를 소비한 후 정전 후 소강상태나 냉전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도 각자의 사정과 입장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 소위 엿먹을 인지상정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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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rance is poor execuse

잡기 2007. 8. 6. 23:59
괴수영화 전문 매니아로서 '디워'를 평가한다 -- 특히 이 말이 감동적이다; '괴수영화는 기술 선진국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이다. 기술 후진국은 오로지 시나리오로만 승부한다' -- 그러게 말이다. 수많은 평을 상대화해보니, D-war는 '아나콘다'나 '킹콩'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

선교사들이 납치된 이후로 정부 욕하는 글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테러 위험이 있는 줄 알았으면 아프간 정부에 양해를 구해 입국을 금지시켰더라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문제였다. 술자리에서 정치적으로 선교사들이 죽는 편이 더 많은 리스크를 떠안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테러리스트와 타협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현실적으로 탈레반을 상대로 제제나 보복을 가할 수 없다. 구호/봉사활동이 앞으로 입을 타격을 생각해보면 정말 우울해진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준다고 세계가 사정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 구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돈이면 그 지역 사람들 수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들은 그저 운이 없어서 납치된 것 뿐이다. 방학을 맞은 초딩처럼 그런 사람들이 '죽는게 낫다'고 말한 것이 후회스럽다.

Garmin eTrex Vista HCx의 평이 비교적 좋은 편. 사소한 버그가 좀 있는 정도(WAAS off)인데 업뎃용 소프트웨어가 나와줄 것이다. 흥미롭게도 SiRF III보다 수신율이 낫다는 평을 듣는 MTK의 32채널 gps 모듈을 사용한다. 실내에서도 3-4개의 위성이 잡힌단다(경악). 기대했던 갈릴레오 위성 지원은 안하기로 했다. 미국의 gps보다 10배 이상의 정밀도로 설계된 갈릴레오 위성이 계획대로 2012년까지 궤도에 뜰 지도 의문이다.

다운받은 매뉴얼을 읽다보니 재미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SD 카드의 여분 용량에 매일 매일의 트랙로그가 자동으로 기록된다. gpx 포맷이라 여러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에서 사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여행 기간에 상관없이 사진과 트랙로그의 동기를 맞출 수 있다. gpx 포맷은 파일 크기가 큰 편이라(xml text) 장기간의 여행에는 부적합하지만...

일본 자전거/모터 바이크 여행자들의 성서나 마찬가지라는 mapple의 디지털 버전인 700MB 짜리 super mapple digital을 대략 일주일에 걸쳐 어둠의 경로로 천천히 다운받았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여행하는 수많은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니 한결같이 중간에 길을 헤멨다. 이 지도만 있으면 길을 헤메는 것이 불가능하다.

관세청 웹페이지를 뒤져보았다. gps는 8526.92 (무선측정장치)에 해당하기도 하고 8526.91-9000 (자동차 내비게이션 시스템), 8471.30(PDA등의 자동 자료처리 기계)에 해당하기도 한다. 관세율이 모두 다른데 8471.30으로 분류되면 무관세가 가능하다. gps의 입력장치, 처리장치, 출력장치(lcd)를 감안하건데 8471.30의 기타 장치로 분류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불친절한 관세청 웹페이지는 그러나, 8%에 상당하는 '기본세율' 이란 것이 국가간 교역관세에 더해지는 것인지에 관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 같다(못 찾았던가). 250$ 미만의 기기를 수입해올 때는 무관세가 적용된다는데(전에는 100$로 알고 있었는데 바뀐건가?) 부가세 10%와 '기본세율' 8%, 우송료 60$ 가량을 감안하면 Garmin eTrex Vista HCx(250$ 가량) 구매 비용은 대략 33만원 수준. 원가에 10만원이 더 붙는다? 허걱!

gift 표시해서 관세 안 물고 수입하면 28만원 가량. 출시된지 며칠 밖에 안되어 기기 단가의 디스카운트는 고려할 수 없으므로 일본 여행을 당장 갈 것이 아닌 이상 gps를 지금 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garmin의 정식 수입판매처인 네베상사에서는 60CSx를 110만원에 판매한다. 한국 디지털 지형도(11만원)와 도로지도(5만원)을 합친 것인데, 순수한 기기 단가는 94만원. ebay에서는 330$(대략 31만원)에 판매하는데 우송료 60$을 합치면 대략 37만원 가량. 국내 판매가격이 무려 2.5배.

네베상사가 하는 일은 기기의 한글화(별 의미없음)와 애프터서비스 정도? 초기불량 없으면 기기에 고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적은 튼튼함이 가민 gps의 장점이므로 별 의미 없음. 수요가 적어 가격이 그 모양인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저 가격은 좀... 네베상사가 지금 가격의 절반 정도로만 판매하고 마케팅, 영업을 좀 열심히 한다면 달리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속도계 시장 말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garmin의 forerunner 시리즈나 etrex 시리즈는 그만한 포텐셜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해 시장 개척을 제대로 안 하면서 그 단가의 상당 부분을 구매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예전 한국 애플처럼 망하기 딱 좋은 방향이다.

여행할 때 들고다닐 소형 컴퓨터로, 곧 출시 예정인 ASUS eee가 상당히 쓸모있어 보인다. 막 굴리며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은 200$ 미만의 완전한 컴퓨터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주중에 한두차례 출근길 자전거 주행을 했다. 책을 읽으려면 건강을 포기해야 한다. '책이란 건 너무 많이 읽으면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여자는 시집을 늦게 가고 남자는 근성이 없어지거든.' -- 미야베 미유키, 마술은 속삭인다. 에서. 같은 책에 이런 귀절도 있다. '구사카, 난 유전을 믿지 않는다. 개구리의 자식이 전부 개구리가 된다면, 주위는 온통 개구리투성이라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거야. 난 평범한 체육 교사라서 어려운 건 잘 모른다' -- 이 세상이 다양성으로 충만한, 다양성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의지와 환상은 체육교사 뿐만이 아니다.

퍼언 시리즈를 발간한 북스피어의 글을 찾아 읽다보니(그래서 미야베 미유키의 글을 읽었다) 번역의 변에 이런 것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번역할 기회를 주신 북스피어의 대표님, 편집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다고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온다 리쿠의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은 열매'도 읽었다. (거지같은) 소녀 미스테리 판타지는 취향에 안 맞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가방을 잃어버렸다. 평소처럼 100원짜리 동전이 없어 열쇠사물함 위에 가방을 휙 던져놓고 책을 고르고 나와보니 가방이 없어졌다. 그 가방에는 반쯤 피운 담배 한 갑과 라이터, 안경닦이, 휴대폰 이어폰 밖에 없었다. 닳고 닳은 빈 가방을 훔쳐간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마누라가 스님에게 얻은 그 가방이 그 동안 정말 마음에 들었다. 크기에 비해 대단한 내용적, 수많은 주머니들, 이중 지퍼 때문에 여행할 때 보조가방으로 그만이었는데, 아깝다. 시장에서 좋은 가방을 찾기가 참 어렵다.

마누라, 애한테 잘 보이려고 주말에는 가급적 자전거를 안 탔다. 타봤자 2-3시간 거리의, 바람이나 쐬며 녹슨 근육을 풀어주는 정도였다. 마누라가 불편하다고 이사 가자고 하는데, 부동산에 관해 전혀 아는 것이 없고, 하다못해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벌어오고 그 돈이 어떻게 분배되고 소비되는지 몰라, 집 장만이나 앞으로 수 년 동안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마누라 입장에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자산과 현금 흐름 경향 쪽은 문서로 정리해두고 시간날 때 보라고 했지만 마누라가 부러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마누라는 지난 3년간 한 달 평균 생활비가 얼마인지 모르는데, 나는 안다. 나는 일 때문에 바빠서 집 보러 다닐 시간도 없고 집 장만 등등의 장기 계획을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검토할 시간이 없다. 집이야 마누라가 편한 것이 좋은데 늘 내 눈치만 봤다. 마누라는 집A와 집B의 장단점을 늘어놓고 집B가 집A보다 왜 나은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기가 앞으로 살아야 할 집이 이혼했을 때 반타작할 재산이라는 개념이나, 굳이 책임을 져서 욕 먹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고 보면 마누라는 직장 생활은 물론 각종 분쟁과 분투, 격렬한 감정과 이성이 오락가락하며 얻을 것(사람), 잃는 것(사람), 지킬 것(사람), 버릴 것(사람), 시간을 들일 것(사람)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공주님 이다.

내가 일없이 종횡사해하던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한 것이다!
대략 감개무량.

평지라면 대략 하루에 100~300km를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렴풋이 지금 이 몸으로 그게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일주일 이내? 올 가을에는 바빠질 것 같아 어디 놀러다닐 생각은 접은 상태. 관리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처지라 작년 가을부터 꼬박꼬박 출퇴근을 했다. 대체로 웃겼다. 프리랜서인데 출퇴근이라니...

올해도 기계 3-4대 납품하는 정도로 끝날 것 같다. 먹고 살 수는 있지만 몇년 후 먹고 살기 위한 연구비용 조달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가을에 인원을 둘쯤 더 늘리고 작업할당을 조절해서 3개의 조직을 만들어 한 팀은 전방지원, 한 팀은 연구개발, 한 팀은 TFT 하려고 하는데 프로그래밍은 가끔 하거나 멘토링 하는 정도고 요새는 매니징과 문서 작업, 교육 등을 주로 했다.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탓에 사람들에게 그다지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다. 엊그제는 직원들 10일 정도 교육 보내는 문제로 좌절스런 디베이트를 해야 했다. 한달 전에는 사원들 강제로 휴가계를 쓰게 했다. 이걸 주고 저걸 잃고 저걸 주고 이걸 잃고... 내 월급은 안 올려도 좋으니 직원들 월급이나 올려주세요, 저 친구는 인센티브를 받아야 해요, 앞으로는 지금 현업으로 회사를 먹여살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회사를 먹여 살릴 것입니다, 놀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안 나와요, 이런 따위의 말을 진심으로 한다고 해서 회사 및 직원들이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반대로 현실과 괴리가 심한 이상을 쫓는 순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란 착각을 하지 않았다. 4명을 교육 보내려고 했는데 2명 밖에 보내지 못한다. 못 가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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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

잡기 2007. 7. 24. 16:55
스파게티는 만들기가 너무 쉬워 사실상 패스트푸드에 속했다. 재료가 올리브유, 마늘, 스파게티면 밖에 필요없는 간단한 요리다. 면은 10분쯤 삶아 채에 받아두고 프라이팬에 올리브유와 으깬 마늘을 넣고 볶아 기름에 마늘향이 배고 마늘이 노란색에서 갈색으로 변할 때쯤 면을 넣고 몇번 뒤집어 준 다음 접시에 덜면 끝이다. 바질 있으면 좀 뿌린다. 그리고 쌀레 에 뻬베. 먹어 본 가장 맛있는 스파게티도 그렇게 만들었다. 묘하게도 번쩍이는 이탈리안 전문 식당이 아닌, 아무거나 다 하는 페루의 아스카의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그걸 먹었다. 인생이 그처럼 단순했으면 좋겠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개종시키러 떠난 한국인들은 붙잡혀서 순교당할 처지에 놓였다. 원리주의에 흠집을 내서 아프간의 이슬람을 내부로부터 붕괴시켜 장기적으로 아프간 인민을 천당에 보내고 아프간에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계획은 외계인이나 허구헌날 거울이나 쳐다보며 컴플렉스에 시달려 사는 한국인 아니고는 실행 불가능해 보인다. 예수교 선교 활동이 타국 문화에 대한 침략 내지는 강간과 유사해서 왠만하면 자제하길 바라지만 예수교에서 선교(포교)처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선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독랄한 다구리질을 일삼는 한국인들 때문에 사이트 돌아다닐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 한국인은 원래 정신상태가 이상하기 때문에 한국인 예수교인도 풍토와 정서상 당연히 이상해 보여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순교하는 것만은 막았으면 좋겠다. 그간 고국인들이 받은 스트레스를 감안해 볼 때,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울 것 같은 결론은, 그들이 잔뜩 얻어터져 어디 팔다리 하나 부러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미팅 15분 전부터 IMAX Amazing Caves를 틀었다. 큰 화면으로 장대한 그랜드캐년에 자일 하나 믿고 매달려 있는 사람이나 언제 녹을지 모르는 북극의 크레바스 틈새를 활보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뇌귀퉁이가 서늘하다. 프로젝트 종료 레포트를 브리핑했다. 많고 많은 프로젝트 경험이 있었지만 보고서 달랑 제출하고 만다던가 연이은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으로 바빠서 제대로 된 발표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류의 happily ever after는 일생에 몇 안 되는 인생의 경험이다.


미팅이 끝나고 밤새 술을 퍼 마신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나서 모니터를 새로 장만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용산에서 노트북을 켜고 무선AP를 검색해 인터넛에 접속하고 다나와를 뒤져 가게를 알아본 다음, 통장 잔액을 탈탈 털어 22인치 와이드 LCD를 사들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야 집에서 컴퓨터 쓸 일이 거의 없지만, 아내는 책상에서 늘 구부정한 자세로 흐릿한 17인치 모니터를 쳐다봤다.


아내는 사흘동안 애를 데리고 가출했고(바람쐬러 나갔고) 나는 보다시피 자전거를 타고 주말에 인근을 돌아다녔다. 쓰시마 여행 후 근육이 업그레이드된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여행할 때마다 그랬다. 직원이 새 자전거를 세 시간 동안 타고 사무실로 끌고왔다. 거의 조정되어 있지 않은 자전거를 손 봐주면서(대체 헤드셋, 기어가 엉망인 이걸 어떻게 여기까지 비 맞으면서 타고 온거지?) 아...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자전거의 기초를 알려줄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댓시간 동안 자전거 정비에 관해 알려줬는데 진도가 너무 빨라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알고 있는 지식이 무작정 젓기만 하면 자전거는 간다 정도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지만, 국내에 몇 안 되는 이런 저런 자전거 서적을 읽고 느낀 점은, 자전거의 기초에 관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설명을 하는 책이 국산 중에는 없는 것 같다는 정도. 역사에 존재하는 여러 위대한 발명품 중에 하나인 자전거가 기껏해야 온갖 감상주의로 치장된 레크레이션 활동 도구로 찬사 좀 받고 자전거의 명쳥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얼른 나가서 자전거를 모는 기쁨을 누려보라는 식이라면... 나같은 사람은 재미가 없어지지. 그 친구가 휴가 여행 갈 때 내 시계와 GPS를 빌려줄 생각이다. 시계에 달린 기압계 사용법 부터 가르쳐줘야겠다. 그 잡동사니 가젯들은 오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 거지만 어디까지나 레크레이션 도구다. 저번주에는 자전거를 천천히 몰고 가다가 맥없이 자빠졌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 한강로 자전거 도로 주행은 목적의식이나 위기감이 전혀 없으니까.
* 여행도, 운동도, 연습도 아니었으므로.

맥주 한 잔 하면서 와이드 LCD 모니터로 다이하드 4.0을 봤다. 와이드라니.. 팔자좋다. 전작의 궁상마초 스리핏은 흔적기관처럼 퇴화되고, 고생은 전보다 덜했다. 시큰둥했다. 영웅이 되고 싶어서 되나? 어쩌다 보니 아무도 안 하길래 나라도 해야지 하다가 그렇게 된거지. 기준선에 대한 뚜렷한 똥고집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내가 할 수 없으므로) 타협하고 살아야 한다는, 노땅들을 위한 잔잔한 가르침을 준다. 영화의 해피엔딩 때문에 시큰둥했던 것 같다. 그건 아니야. 딸년은 엄마한테 가 버리고 해커놈은 NSA에 스카웃 되어 헬기타고 날아가고 자기는 주머니를 뒤져보니 꾸깃꾸깃한 고지서 쪼가리뿐, 집에 갈 택시비가 없어 뻐근한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후줄근하게 내리는 빗속의 빈 도로에서 되지도 않을 히치를 시도하며 똥씹은 표정으로 꺼져가는 꽁초를 물고 있어야지. 절박함이 부족했어. 그래서 엑기스가 빠져 버린 화려한 액션씬이 부질없어 보였다.


최근 보기 시작한 Miracles란 미국 드라마의 주연 Skeet Ulrich. 이미 Jericho를 통해 얼굴을 알고 있다. 표정이 묘해 인상에 남는 연기자. miracles는 과연 액션 판타지 대작이었던 Carnivale을 능가하는 드라마가 될 것인가? 콘스탄틴류 마초물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각본가가 주인공을 얼마나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을지 기대되는데, 그 반대면 이 드라마는 가뜩이나 짜증나는 기적을 소재로 한 탓에 소똥이 될 수 있다.

dexter 2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crossing jordan을 보기 시작했다. '요단강 건너기'인 줄 알았는데 코믹멜로수사물인 듯(똥같은 엘리 맥빌의 악몽이 되살아 났다). 이 여자는... 딱 레즈들이 좋아할 스타일인데? 4기 진행중인 4400과 heroes의 차이점을 더 이상 모르겠다. 그저 제대로 낚였다...는 심증이 있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pretender 역시 최근 보기 시작한 드라마. 주인공인 재로드는 뛰어난 시뮬레이터이자 인간 컴퓨터인데 그 좋은 재능으로 이미 벌어진 과거사를 수습해 과거의 사건으로 상처입은 몇 안되는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 천재다 -- 다시 말해 심각한 두뇌 손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다. 섣부른 재단은 금물.

드라마 만들기: 면을 삶고 소금과 후추로 적당히 간 맞추기가 그렇게 힘들까? 2천년간 만들어 본 레플리카일텐데 어떻게 조리하길래 늘 중국산 짝퉁 같아 보일까?

'중국제품의 장점들' 이란 감탄스러운 글:

▶ 강력접착제 : 급히 떼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편리함.
▶ 공구세트 : 드라이버가 국산 나사한테 짐. 육각렌치는 동그랗게 변함. 새삼 한국 철강기술의 우수성을 깨닫게 해줌.
▶ 나무젓가락 : 차츰 길이가 짧아지면서 교체 시기를 알려주며 이쑤시개 대용으로 몇 가닥씩 갈라져 나옴. (숟가락 : 설거지를 하다보면 유리겔라가 됨.)
▶ 맥가이버칼 : 맥가이버칼을 수리하다보면 어느새 맥가이버가 됨.
▶ 머그컵 :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도 컵의 기능을 수행 할 수 있음을 보여줌. (손잡이 2개를 연결하면 하트도 만들 수 있음.)
▶ 면도기 : 감자 칼이 없을 때 유용함.
▶ 밀폐용기 : 김치나 장류를 넣고 뚜껑을 닫아두면 알아서 숨을 쉼.
▶ 방향제 : 모기가 줄어든 느낌이 듦.
▶ 변신로봇 : 부품이 하나 둘 분해돼 아이들의 조립능력을 향상시킴.
▶ 볼펜 : 펜 끝에서 볼(ball)이 분리되어 자신이 볼펜이라는 것을 직접 증명해 보임.
▶ 분무기 : 노즐이 차츰 넓어지면서 물총으로 변신함. (변신로봇 조립하다가 지친 아이들에게 주면 좋아함.)
▶ 손톱깎이 : 발톱깎이는 따로 있음을 알게 됨.
▶ 온도계 : 일년 내내 실내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줌.(강추.)
▶ 일회용 방독면 : 아직까지 재활용해본 사람이 없다고 전해 옴.
▶ 지압슬리퍼 : 각질과 굳은살까지 제거해 줌.
▶ 체중계 : 고장의 원인이 자신의 몸무게 때문이라고 자책하여 다이어트를 하게 됨.
▶ 충전기 : 왠지 전기료가 더 들까봐 건전지 사용을 자제하게 됨.
▶ 휴대용 가스렌지 : '폭발방지장착'이라는 문구에 오히려 안전과 생명보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됨.
▶ 연필 : 심이 쏙빠져 교체도 할 수 있음.

사장님이 뭐라 말하길래 쏘아붙였다. 기술자는 '컵에 물이 반씩이나 남았다'거나, '컵에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됩니다. '컵에 50ml가 남았다'라고 말하는 버릇을 들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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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nable

잡기 2007. 7. 22. 23:38
GPS의 감도와 트랙로그의 길이 때문에 쓰시마 여행 직후 GPS 리시버를 업그레이드하려고 마음먹었다. 지금 가진 것은 중고로 판매하고 새 것 사는데 보태면 될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있는 eTrex basic과 달리 topo map을 볼 수 있고 대용량 외부 메모리를 이용해 340MB 분량의 25000:1 일본 전도(지형도)를 담고 돌아다니면 획기적으로 쓸만할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모델은 Garmin의 eTrex Vista HCx. 7월이나 8월쯤에 출시 예정인데 지금은 예약 판매 중. 모델명의 H는 High Sensitivity, 기존 모델(Cx)보다 감도가 상당히 향상되었다고 가민사가 주장했다. 예상가(기대가)는 242$. 얼리 어댑터라 불리는 실험용 더미 또는 인간 마루타들이 사용기 올릴 때까지는 안 산다.

한때, 가칭 '딩동댕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사업 아이템으로 자전거용 GPS 리시버를 생각한 적이 있다. GPS 모듈이야 시장에 널려있고 일반 건전지 두개로 작동하는 16비트 mcu 하나 박고 흑백 액정 달고 usb 인터페이스를 달고 웨이포인트와 트랙로그 정도 저장하는 단순한 트립 컴퓨터 형태로 만들면 근근이 먹고 살만한 사업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비접촉식 자전거용 속도계 가격으로 GPS가 가지는 여러 장점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 히트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가 머리가 아파서 관뒀다. 기술자지 사업자 체질은 아니라서.

괴물냉채를 먹기로 한 먹자 모임에서 자다가 나온 라모님이 자전거 튜닝 한다길래 이것저것 묻다보니 허브 다이나모 얘기를 들었다. 허브 다이나모는 일종의 자전거 발전기. 내친 김에 웹질해서 스펙 보고 잔머리를 굴려봤다.

6v 3w 가 hub dynamo의 표준인 것 같은데 웹을 여기저기 뒤져보니 최적효율이 70%, 어림잡아서 50%라고 가정하면, 6v 500mA를 계속 공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w 이상이 허브 다이나모 때문에 추가로 소요된다고 볼 수 있고... 1kwh = 864kcal니까, 1시간당 5.2kcal, 하루 10시간 주행하면 평소보다 52kcal를 더 섭취해야 한다. 계산이 맞긴 한건가? 하도 오래전에 배운 것들이라. 허브 다이나모를 설치해도 주행에 큰 부담이 될 것 같지 않다.

정전압 레귤레이션 충전회로의 변환 손실, 이런 저런 장치에 의해 추가되는 무게와 전지가 빠짐으로써 감소하는 무게에 따른 에너지 소모량은 아예 빠졌고 위에서 계산한 전력효율이 잘못된 것 같은데 머리 아프니까, 간단하게, 평소 두 끼 먹을 것을 세 끼 먹고 열심히 페달질하면 GPS와 전조등, 후미등의 전력은 충분히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4w짜리 전조등과 간단한 레귤레이터 정도면 나쁘지 않은 효율을 낼 수 있으나(자전거가 멎으면 전조등이 꺼지는) 이왕 발전기 다는 거 적어도 GPS 정도는 전지 없이 굴려줘야 쓸만하겠다고 생각. GPS 용 충전지와 전조등, 후미등 전지등속을 모두 합치면 대략 500g. 허브 다이나모는 800g 가량. 충전회로와 충전지를 합치면 1kg는 나갈 것 같은데... 편의성은 크게 개선되겠지만 자전거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전선류와 기계들을 생각하니 꼭 좋지만도 않고.

그보다는 가격과 시간, 노력이 문제인데, 웹질 해보니 Shimano DH-3N70 dynohub 가 89$ 가량 하는 듯. 벤치마크를 보니 무게나 효율은 528g짜리 슈미츠의 SON 28이 나은 것 같은데 가격이 150$ 가량. 어차피 외국에서 주문해야 하니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이래저래 돈이 깨질 것이다.

두번째로, 4W짜리 국산(서울반도체) LED가 있단다. 자전거 동호회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그것으로 튜닝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4W 개조 정보를 주로 올리는 사람이 코난님인데 어쩌다 사진을 보니 행책 사장님이었다. 자출 경력이 꽤 되셨고 싸이클로 이틀만에 서울-부산 주행을 했고 평속이 30kmh를 넘는다니 나보다 잘 탄다. 어쨌거나 전조등은 2W 정도만 나와줘도 감지덕지다.

먹자 모임의 참석자가 다양해서 허브 다이나모처럼 가끔 얻는게 있다. 티벳, 지중해,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곧 독일 갈 사람 등 여기저기 많이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주최자 김씨는 올들어 밥 먹고 술 마시는 모임에 점점 흥미를 잃어 반대급부로 업무에 비상식적으로 매진하게 된 것 같은데. 한국의 SF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현상이지 암. 김씨 아저씨가 얼른 돈 벌어서 요트를 사야 모임이 더 재밌어질텐데. 지금 추세라면 돈이 될만한(인기 있을만한) 여러 작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pern 시리즈 기획물이 썩 괜찮아 보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에게는 필수적인 타월 한 장과 비치팩에 싸 놓은 책 세 권 해서 4만원 가량. 이건 딱 휴가 때 클럽 메드로 동남아 어디 풀빌라에 짱박혀 푹 쉬면서 사나흘 한가하게 읽기 좋게 만든 휴가 전용 기획이다. 항공권+클럽메드+판타지 몇 권 구성은, 격무에 시달리는 오타쿠 엔지니어의 휴가 패키지로 정말 딱이다. 북스피어란 출판사에서 냈는데 당연히 booksphere일 꺼라고 생각했건만 홈페이지가 booksfear였다. 농담인가? 아마도 booksphere.com을 누가 선점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음가가 비슷한 booksfear.com 도메인을 잡은 것 같다. 뭐하는 출판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3권을 호탕하게 출간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좋은 출판사지 싶다.

행복한 책읽기는 SF는 그동안 낼만큼 냈으니까 올해는 다른 책들도 내보겠다는 계획인 것 같다. 물론 국산 SF 출간도 이루어질 것 같다. 중소 출판사가 수 년에 걸쳐 별로 돈이 안되는 SF 기획을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만 해도 박수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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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is incognita

잡기 2007. 7. 17. 01:59
이씨가 추천해 줬는데 잘못 들어 '그랜드나간'으로 검색하니 나타나지 않았다. grand + naga + n이라고 생각했다. '열혈 로봇물'로 웹을 어렵게 검색하니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 앞으로는 뭘 들으면 글자로 적자. -_- 제대로 된 제목은 '천원돌파 그렌라간' 간만에 가이낙스제 열혈물을 봤다. 그러고보니 그 동안 열혈물은 씨가 말랐던 것이 아닌가? '너를 믿는 나를 믿어' 굉장한 횡설수설을 늘어놓지만, 의지가 있는 한 움직여야 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실낫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사변은 인류 역사상 사나이들에게 품질이 보증된 몇 안되는 잠언중 하나다. 애들 만화인데 그 정도의 대사가 나왔다. '너를 믿는 나를 믿어'는 언제든 골로 갈 준비를 갖춘 신념의 사나이들간에 흔히 일어나는 MAD(상호 확증 파괴; mutual assured destruction)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다.

여자애들 역시 상호 확증 파괴의 잔취미를 가지고 있으나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인류를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나이들뿐.

옛날옛날에 영웅본색을 좋아했다. 지킬 것이 없었던 주인공이 땅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줏어먹으며 비굴하다가도, 지킬 것이 생기자 갑자기 쌍권총 명사수가 되어 친구를 위해,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지금 봐도 재밌다. 이타적인 행동의 가치는 그야말로 무량했다. 이 문명은 선조의 시체가 남긴 피바다 위에 선 것이다. 비근한 예로 한국을 들자면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과 민주화 투쟁 등 지난한 노도의 시간을 거쳐 이 땅에 무개념이 상팔자라고 믿는듯한 100일녀가 태어나기도 했다. 수백년간의 양적, 질적 희생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댓가라고 할 수 있겠다. 군가산점 폐지에는 찬성하지만 100일녀하고는 이유가 다르다. 이 세상에 공정한 경쟁이 없으며 핸디캡은 필연적이다. 공부와 학습이 유일한 신분상승의 갖잖은 기회일 수 밖에 없어 어쩌다보니 알파걸들이 늘었다지만 남성이 지녀야 하는 핸디캡은 애당초 필연이다. 군가산점이 있건 없건. 어쨌거나 남자아이들은 철밥통 땡땡거리며 사는 것보다는 땅바닥에 떨어진 밥알 줏어먹으며 비굴하지만 위험하게 살았으면 싶다. 평안하고 잔잔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어지는 남은 찌꺼지들은 여자들이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자.

처절함과 악다구니 근성 면에서 좀 부족했던 그렌+라간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땅을 파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두더지소년의 맹활약을 다룬 것인데, 관점을 달리 해서 보면, 흡사 일본의 두더지같은 히키코마리를 위한 절전형 진혼광시곡 같았다. 골방의 천정을 뚫고 나가라. 첫 합체씬은 걸작이다. 비웃는 것은 아니고, 새벽에 의자에서 나동그라질 정도로 웃었다. 그래, 그렇게들 어설프게 의지와 용기만 믿고 정점을 향해 병신 몸으로 달렸다.

그러고 보니 최근 읽은 윌리엄 니얼리의 '혼자 배우는 산악자전거'라는 걸작이 생각난다. 몸에 관한 책이다. '기술적으로 근사하게 나가떨어지는 방법'을 가르치며, 자전거를 타다가 나동그라져 심한 부상을 입은 동료에게 '네 자전거는 이상 없어. 어이, 넌 어때?' 라고 말해주는 품위있는 매너를 가르친다. 훌륭한 라이더가 되려면 그을린 피부, 찰과상과 타박상의 무도회로 점철된 무릎, 최근에 치료한 쇄골, 윗옷에 묻은 진흙, 그리고 못이 박힌 손바닥이 있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라이딩시 항상 광적인 미소를 잊지않는 것이다. 덤으로 산악 자전거를 타면서 이성에게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식도 가르친다 '제가 묵는 곳으로 가서 함께 자전거나 광나게 닦아보지 않을래요?'

자전거 주행의 철학적 교훈도 잊지 않았다 '어떤 시련도 그대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그대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것이다 -- 니체' '산악자전거의 단일성은 존재의 단일성에 우선한다 -- 변증법적 유물론' '사색할만한 가치를 지닌 대상들은 새로운 부품과 섹스다'

preface에 '이 책을 사랑하는 홀리에게 바친다'라고 적혀 있는데 아무리봐도 홀리가 옆에 누워 TV보고 있는 마누라같진 않고, 아마도 자전거 이름인 것 같다. 마지막 장에는 원조 열혈이었던 니체의 경구가 말 그대로 선명하게 번쩍였다.

자신을 믿어라! 인생에서 최고의 결실을 거두고 최고의 기쁨을 누리는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


니체의 저 익숙한 경구를 믿었다. 아동 로봇물인 그렌+라간의 교훈과 정말 똑같지 않은가?

워낙 인쇄상태가 훌륭한 책이라 산악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권해줄만하다.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래서 내가 쓴 '쓰시마 여행기'를 보고 흥미를 느껴 여름 휴가로 쓰시마를 가겠다는 직원에게 빌려주려고 한다.

그는 엊그제 자전거를 처음 샀다. 그에게 추천해 준 자전거는 알톤의 알로빅스 500과 RCT 마스터 터보였다. 고리를 뜯는 옥션과 달리 gmarket에서는 20만원 미만으로 자전거를 구할 수 있었다. RCT 마스터 터보는 로드 타이어를 단 13kg대 국산 자전거였다. 국민자전거감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꿈도 못꿨을 상당히 괜찮은 스펙의 자전거지만 값비싼 외산 자전거를 선호하는 한국에서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내 자전거는 뒷짐받이를 달지 않은 상태에서 17kg쯤 된다(15kg인줄 알았는데 전자저울로 달아보니 17kg였다). 무거워서 한 손으로 자전거를 들어 어깨에 들쳐메고 석양의 설악산을 오른다던가 하는 로맨틱한 라이딩은 할 수 없다.

자전거 여행을 하겠다는 친구에게 마이크로파이버로 만든 버프가 얼마나 훌륭한 장비인지 시범을 보여줬다. 8천원짜리 버프를 산 지 딱 하루만이다.

주말 오후에는 자전거 정비를 했다. 7월 5일 돌아온 후 부속이 없어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팽개쳐 둔 자전거다. 여행 중 하도 비를 맞아 인기 가수 비가 싫어졌다. 가랑비라도 맞으면 쓰시마의 악몽이 떠올라 평소 취향에 안 맞는 노래들이 여럿 튀어나왔다. 버킷으로 퍼붓는 듯한 빗속이었지만 휴가를 알차게 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그 반대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당시에는 선구자의 가르침인 '광적인 미소' 역시 잊지 않았다. 여행기는 직원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위를 많이 낮췄지만(최소한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여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여행을 할 때 내가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미친개처럼 싸돌아다닌다는 것쯤은 마누라도 안다.


체인의 늘어난 정도. 처음,중간,끝. 아래의 새 체인과 대비해 한 마디 정도 늘어났다. 아직은 버틸만한 수준인데 좌우로 비틀면 이격이 상당해서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체인 2~3회 교체에 스프라켓/체인링을 교체하는 정도니까 앞으로 3년 안에 자전거를 갈아야 한다. 체인+체인링+스프라켓+체인 공구 등속을 합치면 차라리 자전거 한 대 사는 것이 낫다. 내 자전거는 그만큼 싸구려다. 구한말 40kg짜리 짐자전거에 짐을 싯고 어렵게 살았던 선조들과 밥알을 줏어먹던 주윤발을 상상해보자. 요즘 자전거 동호회에서 나이 서른일곱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독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일주를 하는 양반의 글을 읽는다. 인생을 바꾸겠다는, 무언가 이루어보겠다는, 그것은 용기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자동차에 치여 병원 신세를 지고도 계속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는 것도 용기다. 용기는 무모한 의지 없이 성립되지 않는다.


앞 브레이크 패드. 아랫 것은 wear line이 전부 닳아버린 원래 자전거의 브레이크. 윗 것은 3000원에 2조를 판매하는 싸구려 브레이크 패드


윗 것은 한 조에 5000원이나 하는 시마노의 정품 브레이크 패드. 아랫것은 원래 자전거의 다 닳아버린(녹아내린) 뒷 브레이크 패드. 저런 앞/뒤 브레이크 패드로 빗속의 내리막길에서 속된 말로 쌔려 밟았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쫙 끼쳤다. 하긴 그때는 브레이크 패드는 신경 끄고 타이타닉 호 뱃전에서 바람을 안은 케이트 윈슬랫 같은 자세로 다운힐을 했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 으하하하 광적인 웃음을 머금은 채.


스프라켓을 닦고 새 체인을 장착.


디레일러의 폴리에는 주행중 압력이 거의 가해지지 않는다. 체인의 텐션을 유지하는 정도인데 워낙 깨끗하게 닦아 눈이 부시다. 이 정도면 새것이나 다름없는 거다.


완전 새것은 아니고... 체인링은 닦기가 참 어렵다.


앞 브레이크도 번쩍번쩍


믿음직하게 번쩍이는 새 뒷 브레이크. 진부령 다섯개 정도는 문제없어 보인다. 나는 나를 믿는 너를 믿는 cogitan이다.


정비 다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네.

무려 4시간에 걸쳐 땡볕 아래서 닦고 기름칠하고 조인 정비였지만 자전거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4시간 동안 바퀴 청소, 스포크 장력 조절, 림 청소, 스프라켓 청소, 체인링 청소, 체인 교체, 뒷 디레일러 청소, 앞 디레일러 청소, 브레이크 패드 교체, 각종 와이어 정비, 앞뒤 디레일러 조정 밖에 하지 못했다. 차체를 닦는 다거나 구동부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손 볼 시간은 없었다. 그 동안 자전거를 정비하느라 구입한 각종 부품과 공구,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17만원짜리 RCT 마스터 터보를 사는 것이 싸게 먹힌다.

와일드 바이크 사이트의 산악 자전거 주행 동영상을 밤새 쳐다봤다. 풀샥을 장착한 다운힐 자전거는 심장을 쿵쿵 뛰게 한다. 해 보고 싶다. 해 보고 싶다. 산길을 60kmh로 달려보고 싶다. 버니홉은 커녕 스탠딩 조차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자전거 동호회에서 하룻동안 280km를 달리고 자기는 초보자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글을 봤다. 그 양반이 초보면 나는 최근에 감정을 가지게 된 뉴본차일드다. 소울이처럼 말을 배우기 전 소위 천사의 목소리라는 것으로 꽥꽥 기버리시를 주절거리는 수준이다.


소울아, 자세 똑바로 하고 들어. 네가 세계 거울을 이해하게 되면 아빠가 안 맞는 몸뚱이에 머리통을 꽂아 합체하고 아빠의 삶을 이끈 니체의 잠언을 가르쳐 주겠다. 영혼은 iskra, 타오르는 불꽃일 때가 아름답다. 네 아빠가 애들 열혈물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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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drill

잡기 2007. 7. 9. 17:59
미국에 가서 3개월쯤 일하다 올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 갖가지 핑계(처자식이 있고 언어가 안되며 굳이 미국까지 갈 이유가 없다)와 합리적인 이유(사업성 없음, 실은 가기 싫음)를 들어 고사했다. 들춰 볼수록 별 볼 일 없는 미국애들 기술에 들러리 서고 싶지 않다.

기술은 기술이고, 시장성과 시장점유는 기술과 무관한 문제라서 '하찮은 기술'로 경영 판단에 좋지않은 영향을 줄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상당한 리스크(적어도 2인이 앞으로 1년 이상 투입되어 실효를 얻지 못할 높은 가능성)를 안고 밀어붙이는 것에 휩쓸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여튼 영 내키지 않지만 11월쯤 프로토타잎을 만든단다. 스펙도 없이 기계가 미국에서 10월쯤 완성된다는데 소프트웨어는 그럼 남은 한 달 동안 짜라니 이건 거진 인력파견 SI잖아?

첫 해외/자전거/캠핑 여행 테스트를 마쳤다. 쓰시마에서 4박 5일 동안 비 맞으며 돌아다녔다. 제주도의 40%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자전거 여행에는 그만이다. 두 번 자전거로 여행한 제주도보다 만족스럽다. 볼꺼리는 별로 없는 곳이만 경치가 훌륭하다. 비가 많이 옴에도 불구하고 섬이 아름다워 여행 기간 내내 만족스러웠다. 소위 말하는 serene beauty다. 자전거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종류의 기쁨, 자전거여야지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만족감이다.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은 볼 것 없고 비가 오는 대마도에서 별 재미 못 봤다.

장기 주행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짐받이(rear rack, and maybe front rack) 장착이 필요하고 자립 정비를 위해 방청제와 구동부에 칠할 오일, 그리고 여분의 브레이크 패드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악천후 덕에 귀중한 정보를 얻었다.

부산에 돌아와서 이 분위기 그대로 국내 캠핑 투어를 계속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만사가 귀찮아 사진과 주행 기록을 정리하고 오겹살에 소주 한 잔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한 후 시체처럼 잤다. 자전거를 내팽개쳐둔 채, 주행 끝나고 바로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 기회에 체인을 갈기로 했다.
블로그 분류에 쓰시마 자전거 여행기. 시대가 시대인지라 앞으로는 디카로 동영상을 찍을 것이다. 홈페이지에 파일크기가 큰 동영상을 올리는 부담도 없고. UCC 사이트 중 youtube, naver service, soapbox 등을 벤치마크 해보니 microsoft의 soapbox의 화질이 가장 나았다. 업로드가 비교적 느린 편이나 업로드 인터페이스는 합리적이다.

후지필름 파인픽스 F11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만한 카메라다. 악천후 -- 하도 비가 많이 와서 버린 사진들이 많지만 6일간 대략 500장의 사진과 네 개의 동영상을 찍었음에도 배터리 잔량이 여전히 full로 나타난다.


Video: 자전거 타고 카메라 들고 찍은 쓰시마 39번 지방도 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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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p.

잡기 2007. 6. 25. 11:46
Six Feet Under -- 훌륭한 드라마, '드라마'로써의 드라마. 이런 드라마를 모르고 있었다니... 이제는 시들어버린 수많은 고인들을 다루는 가운데, 싱싱 냉장고의 오이처럼 파릇파릇한 개개 인물의 성격 구현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 수개월간의 지루한 미드질 끝에 하나 건졌다. Six feet under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라는 뜻인 것 같다. 땅밑 6피트가 아니라. (양키들은 죽어도 국제표준 미터법을 사용 안하네. 21세긴데 피트가 뭐야 피트가)

그곳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참된 곳은 지도에 나오지 않는 법이다. -- 백경, 허먼 멜빌

대뇌지도가 부실한 탓도 있지. 예전에 비하면 뇌과학은 많은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PET와 fMRI의 실시간 매핑이 가장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진단의학을 소재로 한 닥터 하우스에서는 fMRI를 사용하여 병력을 진단하는 모습이 나왔다. 망할 드라마들이 다 그렇듯 자세히는 안 나왔다.

학습에 간여하는 미러 뉴런의 존재로부터 유아기의 뇌 성장 방식(좌/우뇌가 교대로 성장), 뇌에 따른 성격 편향, 개성의 형성, 인격의 형성, 자아...의 형성. 그리고 지능의 발달. 아가의 iq와 제 양 부모의 iq 사이의 상관계수는 연구결과 0.72 정도 된다. 다시 말해 아이는 양 부모의 지능을 대략 51%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 그럼 나머지 49%가 환경과 성장배경? 그런 뜻은 아니고...


교사가 가진 능력은 인간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 에머슨 <-- '백만장자의 첫사랑'이란 재미없는 영화에서 본 다소 부질없는 대사. 교사가 인간을 감동시키고 그의 생에 질적인 변화나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 굳이 폄하하자면 에머슨의 확신은 희망일 뿐이다. nurture에 점수를 실어주는 수준급의 농담에 대응하자면; 프로그래머가 가진 능력은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저렇게 앉아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노년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은 불확실하고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물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지만, 소울이는 가끔 네 개뿐인 이를 으드득 으드득 갈았다.

뇌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 사람의 개성과 인격, 심지어 자아와 내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요인을 나름대로 두 가지로 규정했다.

1.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2. 면역체계

사회적 경험은 유전적 소인의 발현 강도만을 조절한다. 고 본다. 언제고 터질 일은 터지게 마련. 세계는 빠르게 수렴되어 가고 있으며 과거보다 더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경험의 가상 공유를 비롯하여, 동조된 자극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미국과 한국의 아이들이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게임을 하는 것처럼). 즉 유전자의 영향이 과거 어느때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만 같다. 커즈와일의 주장을 각색하자면 폭발적인 기술적 발전은 경험과 감각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확장하여 동조된 세계 자극은 부질없는 걱정이 된다. 물론 나는 그의 두꺼운 책에 그려진 싱귤라리티를 향해 치솟는 '발전속도' 그래프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TV에서 인간시장을 보았다. 이외수의 감성마을이 소개되었다. 고생하는 사모님은 어느날, 어린 아들이 학교가기 싫다고 말하자 아이 손에 만원을 쥐어주고 인근 버스터미널에 가서 아무 차나 타고 놀러갔다가 저녁까지는 돌아오라고 일렀다. 공주처럼 자란 아내는 그걸 보더니 자기도 꼭 그래보고 싶단다. 좋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 가기 싫어서 할아버지 돈을 훔쳐서 동네 애들을 데리고 버스 타고 먼 곳으로 놀러갔다. 배가 고파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눈물나는 가족상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영문도 모른 채 집에 끌려가 맞았다. 이외수의 사모님같은 분이 어머니였다면 나는 비뚤어져서 모범생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 계획없이 여행을 가는 것을 낭만이라고 생각들한다. '아무 계획'없이 가다가 길에서 만난 사건과 우연을 즐기는 것이다. 10대가 가버린 후 대체 내 삶에 낭만이 있긴 했나 의심스럽다. 자전거 여행은 종종 주행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열댓시간 뙤약볕에서 무미건조한 풍경을 보며 땀을 질질 흘리며 달리다보면... 여행을 하자고 자전거를 타는건지, 자전거를 타자고 여행하는 건지 헷갈린다.

엔진을 갖추면 어디든 갈 수 있을꺼라는 순진한 믿음은 버렸다. 엔진 보다는 엔진의 의지가 더 중요했다. 엔진의 의지는, 그래도 가자, 날이 덥거나 추워도 가자. 의문은 접어두고. 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 엔진의 의지는 삽질의 의지일 따름이다. 삽질하고 싶은 것이 여행의 의미? 그렇다.

애당초 내게 있어서 여행은 휴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공허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빈둥거리고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빠삐용처럼 인생을 낭비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자전거 타고 출근하다가 자전거 도로에서 하수 시설 공사차 진행하던 용달차가 T자 도로에서 좌회전으로 빠져나와 급정거 하는 바람에 차량의 뒤를 박았다. 시속 25kmh.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완전 제동이 안되어서(완전 제동이 되면 뒷바퀴가 들려(잭나이프) 운이 좋으면 하늘을 훨훨 날던가 뒷바퀴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다가 슬립해서 차량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작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좀 했는데(벽을 향해 치킨런, 급제동, 그리고 턴, 쾅!) 그게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제동이 된 상태에서 용달차 뒷 팔레트를 손바닥으로 짚었는데 가운데 손가락 손톱 밑에 팔레트 표면에 붙어있던 유리가 파고 들어 5mm쯤 찢어졌다. 키보드 두들길 때마다 손가락 끝이 따끔거린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새빨갛고 신선한 피가 핸들 사이로 뚝뚝 흘러내렸지만 출근길이라 귀찮아서 손가락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사무실까지 그냥 갔다.

저녁 퇴근길에 역시 하천에 작은 다리가 걸쳐져 있는 T형 자전거 도로에서 우회전 진입 중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진하던 자전거가 나를 보지 못하고 고속 질주하다가 충돌할 뻔 했다. 사위가 어두웠다. 자전거 기척을 느끼고 순간 브레이크를 잡았다. 뒷브레이크 7, 앞브레이크 3, 교과서대로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노면에 슬립해서 일부러 자빠링하여 충돌을 피했다. 자전거는 쓰러졌고 나는 한쪽 핸들을 잡은 채 도로에 멈춰섰다. 하아. 주행하던 그 자전거의 과실이지만 다친데도 없고 잘잘못 따져 친해져봐야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암 말 않고 자전거를 보냈다.

하루에 두 건이라... 긴장이 많이 풀어진게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 과실도 아니지만 속도가 전보다 약간 오른 후 위험도 그만큼 높아졌다. 재밌는 얘길 들었다. 타이어 펑크를 방지하기 위해 공기압을 대략 빵빵한 정도로 유지하고 다녔는데 더운날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를 과도하게 잡으면 림이 가열되면서 타이어 내 공기를 팽창시켜 펑크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운날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계속 잡다보면 림에 검게 녹아내린 브레이크 패드가 우중충하게 말라붙기도 한다. 그걸 볼 때마다 섬뜩했다. 패드가 다 녹아내리면 내리막에서 발바닥으로 브레이크 잡는 건 어림도 없고... 일부러 자빠링 해도 무사히 착지하리란 보장이 없다. 67kg+15kg, 60kmh. 인체의 대다수 뼈들은 저 정도 무게의 저 정도 속도에서는 그 경이로운 탄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부러진다. 내리막길에서 55-60kmh씩 밟는 짓은 안 하기로 했다. 물리학, 열역학적 사실 때문이라고 해두자.

초저속 주행시 스티어링과 사고 대비 자전거 탈출을 연습 좀 해야 할 것 같다. 알라딘에서 '혼자 배우는 산악자전거'라는 책을 주문했다. 설명은 단순하지만 그림이 많이 나와있어 흥미롭게 읽고 있다.

요 며칠은 '얼음과 불의 노래' 성검의 전설 편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이 책을 수 년 전에 etext로 읽었다는 것이고, 더더욱 흥미로운 점은 읽은 기억이 나고 내용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밀린 책이 9권이나 있음에도 1940페이지나 하는 책을 하릴없이 다시금 읽고 있다는 점이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전에 영화 '파프리카'를 보고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싶어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갸웃 했는데 일요일 오후 멍하니 서가를 바라보다가 서가에 꽂힌 '파프리카'라는 쓰쓰이 야스타카의 책을 발견했다. 1994년 8월 20일 초판 2쇄 발행. 당시에는 SF다 뭐다 해서 이래저래 책을 찾아서 읽었으므로 1995년이나 1996년 쯤에 구입해서 읽은 책일 것이다. 11~12년 전에 읽고 새까맣게 잊었다. 심지어는 얼마전에 잘난 척하며 최재천의 글은 안 읽을 꺼라고 떠들어댔는데 그가 1999년 번역한 책이 서가에 버젓이 꽂혀 있고, 무척 재밌게 읽은 기억까지 나서 소름이 돋았다. 읽은 책을 또 읽는 일이 잦은 내 자신이 징그럽고 경악스럽다. 가끔 1999년부터 보전되어 있는 PDA의 일정을 탐색해 보면 내가 정말 이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기억이 인간을 규정하는 주요 지표중 하나라면, 난 뭘까?
세계 정복의 파릇파릇한 꿈마저 잃어버린 광우병 환자?

오늘 하루는 '대한민국 30대, 재테크로 말한다'라는 책을 빌려 읽었다. 출간된지 두 달 만에 4쇄를 찍었다. 책 앞 장에 재태크 점수를 메기는 질문지가 있다. 내 점수는 75점. '기본기가 탄탄하므로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가난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만 겸비한다면 재테크에 관한 한 남부럽지 않은 고수가 될 수 있다' 평가가 후한걸?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에게는 한 푼도 물려줄 생각이 없다. 금융자산과 부동자산의 비율을 8:2로 맞추고 싶다. 노후는 네팔이나 태국 북부, 중국 후난/쓰촨성의 산간지방에서 글이나 쓰며 하릴없이 보내고 싶다. 반품 전문 쇼핑몰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www.jaego.co.kr, www.refurbshop.co.kr, www.uniz.co.kr

12억을 모아야 죽기 전까지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내용 중에는 앞으로 대형 평형의 아파트가 대세가 될 터인데, 그 이유는 대형 평형의 아파트라야지 가사를 도울 수 있는 로봇이 활기차게 움직일 공간이 확보된단다. 골든싱글이 사는 광활한 45평 아파트에서 낮에는 정숙한 가사 도우미로 활약하고 밤에는 침대를 따뜻하게 데워주길 기대해 본다.

그런데,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란 말인가? 베스트셀러라곤 파울로 코엘료의 책 몇 권 읽은게 최근 전부라서...

21세기를 주도한 세 가지 기술은 흔히 Genetics, Nanotech, Robotics의 두문자를 따서 GNR로 불린다. 이미 한물간 것으로 짐작되는 3대 기술, NT, BT, IT 다음에 요즘 유행하는 것이랄까? 빌 게이츠가 공공연하게 말한 후 로보틱스가 화제가 된 것 같은데, 말하는 암소가 손님들 사이를 걸어다니면서 자기 소개를 하고 어느 부위를 먹을꺼냐고 물어본 후 제 발로 도살장으로 들어가 자살하는 genetics를 선호하는 편. 아님 material compiler로 원소물질로부터 암소 안심 스테이크를 직접생산할 수 있는 nanotech도...

日 여성 선택받지 못한 ‘중년동정’ 너무해 -- 기사가 좀 우스워서.


이런 느낌? 2ch의 저 농담이 한동안 유행한 듯. 사방에 온통 저 그림이군.

이외수의 사모님같은 분이 어머니였다면, 어쩌면 모범생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비뚤어져서 수도승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불가에 귀의한 후 25년 동안 로보틱스가 주는 육체적 쾌락과 마법의 세계를 탐닉하다가 절의 돈을 훔치고 절집에 불을 지른 후 인도로 떠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헤멘다던지. 그러다가 신은 위대한 이원론속에 도사리고 있으며 수사학적 떠버리즘과 수학적 정교함의 애매한 어느 간극에 신이 스프링처럼 오락가락 진동한다는 것을 깨닫고 정보로서 존재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시공간이자 물질인 우주를 구성하는 비트의 진의를 이해하려고 프로그래머가 되어 '정진'하다가 해탈을 위한 고행의 길중 가장 어렵다는 결혼을 택하고 잃어버린 영혼의 대체재인 소울이를 낳은 후 재테크를 하며 고통스럽게 살았을 것이다.

지금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데우스 마키나가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눈먼 테이레시아스의 뒤늦은 증언(저주?) 같은 운명(천성; nature)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양육(nurture)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세대를 이어온 유전자 칵테일, 스크류 드라이버가 될지, 모히또가 될지, 마가리따가 될지, 폭탄주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페이지를 앞으로 스크롤해서 애 얼굴을 다시 보면 모든 것이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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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desic eval.

잡기 2007. 6. 17. 22:00
35불 주고 정품 사지 않으면 RoboGEO는 좌표에 무작위 오차를 일부러 만들어낸다. GPicSync로 바꿨다. GPicSync를 사용하니 싱크가 제대로 맞긴 하는데... 파이썬으로 작성하고 외부 유틸리티를 사용한 것이라 프로그램 속도가 느린 편. 사무실까지 하루 날 잡아서 출퇴근 왕복 84km를 실제로 주행하면서 waypoint를 찍고 그 지점에서 사진을 찍어 오차를 비교해 보았다. 개활지에서 오차 폭이 6~20m 이내다. 대단히 훌륭하다. 사진과 주행경로를 입력으로 GPicSync로 생성한 구글어스 KMZ 파일 (1.3MB)

흠...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 GPS 리시버는 active track log에만 timestamp를 찍어둔다. 만일 장거리/장시간 여행을 하게되면 active log를 pc로 백업해야 하는데 1초에 한번씩 로그가 기록된다고 보면 평균적으로 간신히 하루나 이틀 분량의 액티브 트랙로그를 남길 수 있게 된다. 트랙로그를 save하게되면 timestamp가 사라지므로 쓸모가 없다. 기록 메모리 용량이 적었던 예전 타잎의 gps 리시버에만 해당되는 얘기인지, 아니면 요즘 것들도 그런지 모르겠다. 요즘 것은 그렇지 않다면 새것을 장만할 이유가 된다.

구글어스의 위성사진 매핑에 오차가 있다. 예전엔 몰랐는데 네이버나 콩나물 지도를 오버레이 하고 GPS Maker로 좌표를 정밀하게 찍어보면서 알게 되었다. 심할 때는 30-40m까지 났다. 그동안은 정밀하지 않은 GPS 리시버 탓이라고 생각했다.

퍼펙트 블루를 만들었던 감독이 츠츠이 야스타카 원작 '파프리카'를 애니로 만들었다. 회사 직원이 어디선가 구해놨다. 1. 뿌린 대로 거둔다, 2.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이걸 완성하는 거야"

"하고 싶은 일에만 정신 팔려서 해야 할 일은 내팽개치고 자기가 무책임해서 희생자가 나왔는데 뭐 느끼는 게 없어? 그렇겠지. 지방이 두꺼워서 신경까지 안 갈테니까. 근데 뭐? '멋지지 않아요?' 과학 마인드? 웃기지 마. 사람 마음도 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주제에. 자기 꿈만 삼키고서 자존심만 불어터진 오타쿠 임금님이라면 그렇게 기계에 둘러싸여 평생 마스터베이션이나 하다가 죽어버려!"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나간 다음 오타쿠 임금은 기계에 둘러쌓여 늘 하던 마스터베이션을 했다. 여자는 그를 사랑했다.

옛날옛날에 어떤 아가씨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개, 돼지만도 못한 놈을 사귀는 것보다는 개,돼지같은 놈을 사귀는게 낫지.' 정리하자면, 나는 개만도 못한 놈보다는 나은 개새끼였다.

사귀어줘서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

작화, 꿈 시퀀스는 어디서 베낀 듯한 기시감이 자꾸 들어 마음 한편이 불편했지만, 음악은 마음에 든다. 엔딩송. 아마도 Meditation Field? (4:44)

'두꺼운 지방' 때문에 생각났다. 나노미니 스커트의 유행을 자기기만적이고 역겨운 유행병/미의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깡마른 여성의 체지방비율은 14% 정도로 돼지(14%)와 비슷하다(같다). 두꺼운 체지방 탓에 시스템의 냉각 효율이 좋지 않아(개처럼 혓바닥을 내밀고 헉헉 대고 돌아다니면 체통이 구겨지니까) 샌들, 배꼽나시티, 그리고 나노미니 스커트를 입어야 하는 여자들은 그러니까 나름대로의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체지방이 돼지같으니까. 노팬티도 그런 면에서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여자들은 여성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었고 여성을 얻는 것이 투쟁이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남성중심 사회에서 법, 질서를 이루었던 상호양해의 '전통'과 상충한다. 또한 합리적일 리가 없는 그들중 극히 적은 일부의 정신세계와도 상충한다. 그러니까 나노미니 스커트를 입는 여성 중 극히 적은 수는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거나 이중인격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굳이 나노미니 스커트가 아니더라도 전통과 근대를 조화시키고,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면서 대뇌피질의 이상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절충은 언제나 있어왔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주장하는 프랑스에서 인권주의자들이 이민 온 아랍여성들에게 히잡과 부르카를 벗어던지라고 부르짖었을 때 그 갖잖은 '전통'과 '문화'를 들먹이며 히잡을 벗지 않은 여성들이 있다. 그들이 정말로 전통을 중시하고 이슬람의 원리주의 마초 또라이들의 문화를 찬미해서 그랬다고 여겨지나? 일부분 그렇긴 하지만, 히잡과 부르카는 익숙해지면 실용적인 옷차림이다. 그걸 뒤집어 쓰면 거리에서 자신을 숨긴 채 마음놓고 눈알을 굴리며 활보할 수 있다. 대다수는 가능하지만, 극히 적은 수의 여성은 소화할 수 없는 나노미니 스커트를 입고도, 땀으로 떡진 화장과 끈적끈적하고 못 생긴 얼굴은 어쩔 수 없지만, 히잡과 부르카라면 안심할 수 있다. 히잡과 부르카는 한국 여성의 변신술에 버금가는 실용적인 코스메틱스인 동시에, 적령기의 무슬림 남성이 제대로 짝짓기를 하려면 상대 여성의 펭귄복장으로 철저하게 방호된 신비스러운 외모보다는 좀 더 그녀의 언행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다.

닥터 하우스 3시즌을 모두 봤다. 한동안 안 봐서 그런지 적응이 잘 안된다. 하우스가 저렇게 수다가 심했나? 세 바보 녀석들 뿐만 아니라 하우스 원맨쇼를 뒷받침해 주기 위해 동원된 갖가지 물건들, 그러니까 개성없는 조연들을 보니 물갈이할 때가 된 것 같다.

클로져 2기 시작. 처음 그 시리즈를 보았을 때 여주인공이 조지아 사투리로 간드러지게 '댕큐~'할 때는 우웁! 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댕큐~'가 심금을 울린다. 언젠가 실용적으로 써먹고 싶다.

이외수의 꿈은 주어가 없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평단, 독자들로부터 쌍욕을 먹을 것 같으니 저 세상에 가기 전에 쓰겠단다. 잘 생각했다. 그가 '칼'을 출판했을 때는 작가로서 자신의 양심을 팔아먹는 것 같아 괴로웠다는 말을 했다. 작가는 본래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마를 때까지 팔아먹어야 하는 존재다. 양심과 영혼을 덜 팔아서 덜 괴로워진 그의 글은 그래서 딱 그만큼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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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code

잡기 2007. 6. 11. 18:14
엊그제 모임에서 이씨 아저씨와 gps와 디지탈 카메라의 사진을 동기시키는 방법에 관한 얘기를 했다. gps의 tracklog를 디지탈 카메라 사진의 exif와 결합시키면 어디서 사진을 찍었는지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다. 소니는 그런 용도의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디어 상품으로 판매하는데 이씨 아저씨는 소니의 그 gps에 만족하지 않는 모양이다.

시간이 나면 exif와 garmin gps의 tracklog 데이터를 결합시키려는 프로그램을 짜려고 했으나, 이씨 아저씨 말대고 누군가가 그런 프로그램을 이미 만들었을 꺼라는데 동의하고 (실은 garmin의 인터페이스 프로토콜과 EXIF v2.0 규약을 보다가 만사가 귀찮아져서) 구글링을 해보니 바로 검색되었다.

검색 키워드 'google earth exif gps' 검색된 항목 중 Exif - Geocode photos for Google Earth or Maps. Geocode photos for ...로 들어가니 RoboGEO라는 프로그램이 바로 검색되었다.

1. EXIF 규약에는 GPS 좌표 정보, 이른바 geocode란 것을 삽입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2. 구글 어스의 KMZ 파일 포맷에는 웨이포인트, 트랙로그와 아울러 이미지를 임베딩할 수 있다.

저 두 가지를 만족시키면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지오코드를 수동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거의 미친 짓이니까 그것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거나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RoboGEO는 그 두 조건을 만족시켰다. 더더군다나 별도의 작업없이 garmin gps로부터 트랙로그 및 waypoint 자료를 곧바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작업이 무진장 간단해 진다.

1. 자전거 탈 때 늘 gps를 켜 놓고 다니니 상관없고,
2. 돌아다니다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와
3. 디카의 사진을 PC로 다운로드 한 다음
4. GPS 리시버를 PC에 연결한 후
5. RoboGEO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트랙로그를 가져온 다음
6. Google Earth 포맷인 KMZ 파일로 export하면 작업 끝이다.


시험삼아 1년전, 2006년 6월 10일 평창-영월간 자전거 여행을 예제로 roboGEO로 작업해 보았다. RoboGEO는 GPX(gps exchange format) 파일 import를 지원하기에 평창->영월 GPS Trackmaker file을 GPS TrackMaker에서 GPX 파일로 변환했다. 이게 작업 끝이다.


물론 Garmin GPS를 달면 메뉴에서 GPS 리시버로부터 곧바로 Tracklog를 다운로드할 수도 있다. 예전의 serial과 USB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최근 Garmin GPS를 모두 지원한다.


EXIF와 TrackLog의 동기에는 문제가 있다. 1. 카메라 시간과 GPS시간(원자시계)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GPS 리시버의 고유 오차와 시간에 따른 이동 거리에 의해 누적된 오차로 인해 카메라를 찍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 내 eTrex는 최적 조건에서 대략 15m의 오차가 나온다(이때 상공에서 잡힌 위성 갯수는 최소한 6개 이상). 만일 20kmh로 이동중이라면 20*1000/3600 = 5.5m의 오차가 더해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번째는 정지한 상태에서 사진을 찍으면 되니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첫번째 문제를 해결하려면 카메라의 시각을 정확히 GPS와 일치시켜야 하는데, 매번 그러기는 어렵다. 반갑게도 RoboGEO는 카메라 시각을 gps와 동기시키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KMZ 파일로 익스포트한 최종 산물 (753KB)(Google Earth가 설치되어 있으면 클릭하여 볼 수 있음). 푸른선은 주행경로. 노란 점은 waypoint. 유감스럽게도 GPS Trackmaker의 GPX 변환 버그인지 아니면 RoboGEO의 버그인지, Track이 엉망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GPS Trackmaker의 tracklog를 overlay한 화면. 카메라 시각과 일치시키지 않았으며, 정지상태에서 찍은 사진인데 오차가 15m에서 심하게는 600m까지 났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없는 것보다 낫지. (프로그램 안 짜도 되고)


RoboGEO에서 EXIF에 geocode를 삽입한 것. timezone을 지정하지 않았다. +9 하면 맞음.

앞으로 여행이 즐거워질 것 같다. 콩나물 지도 오버레이한 후 구글 어스에서 tracklog 만들기를 포함하여, 사실상 이것으로 GPS로 해볼 재밌는 일거리는 거의 해본 셈이 된다.

오랫만에 Garmin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eTrex H 시리즈가 2007년 3분기에 출시될 것 같다. 비록 SiRF III 칩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sensitivity가 상당히 향상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H 시리즈는 미국 위성 뿐만 아니라 유럽의 갈릴레오 위성을 지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갈릴레오 gps 위성 프로젝트는 예산 부족 문제도 있고 구심점이 없어 표류하고 있지 않던가?

아직은 새로운 GPS 리시버를 구입할 마음이 없다. 120$짜리 GPS로 벌써 5년은 울궈먹은 것 같다. 수신율이 떨어지는게 좀 안쓰럽지만, 업그레이드나 기변 욕구가 안 생기는 걸 보면 eTrex Basic은 명품이다.

* Wikipedia: Geocoded Photo
* 무료 Geocode S/W : GPicSy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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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quake

잡기 2007. 6. 10. 12:44

아버지는 사내다움을 입증하기 위해 총에 미치고 사냥꾼이 되셨다. 건축과 그림과 도예를 하는 예술가입네, 하는 분이. 강연이 있을 때면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다면, 그러면서도 호모가 될 용기는 없다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못된 짓은 예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2001년의 조개구이 파티에서 나는 킬고어 트라우트에게 형과 누나가 사냥과 낚시를 부끄러운 일로 여기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세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했다. "배은망덕한 자식을 두는 것은 독사 이빨에 물리는 것보다 더 아프나니!"
트라우트는 독학한 사람으로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세익스피어를 인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그 훌륭한 옛 작가의 말을 많이 암기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소, 동업자 선생. 인간의 삶을 단 한 줄로, 너무나 완벽하게 정의해서 그 이후로는 거기에 달리 덧붙일 필요가 없는 문장도 기억하고 있소."
"어떤 문장인데요, 트라우트 선생?" 내가 물었다.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일 뿐이다."


독무대 생쑈의 주연으로 살아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현실의 생활에서 사람들은 변하지 않으며 자신의 과오로부터 배우는 것이 없고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는다. ... 하지만 내가 한 인물로 하여금 변하고, 뭔가를 배우고, 잘못에 대해 사과하게 하면 나머지 모든 출연자들은 할 일이 없어지고 만다. 그것은 결코 독자에게 쇼가 끝났음을 알리는 방법이 아니다. ... 나는 내 저작권 대리인에게 그 모든 인물들을 다 죽이지 않고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그는 주요 잡지의 소설 편집자였고, 어느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관여하는 스토리 컨설턴트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야 손바닥 뒤집기죠. 주인공이 말에 올라 타고 석양을 향해 떠나는 거예요." 여러해 뒤, 그는 자신의 12구경 엽총으로 자살했다.


5년 전의 나는 이 세상에 볼 일이 더 없으므로 엽총이라도 구해서 시급히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다 그렇듯이 복잡한 사정으로 죽음을 맞지 못하게 되면 그것과 가장 흡사한 결혼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아팠지만 이제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당신은 아팠지만 이제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지금은 일곱 시이고, 바깥 기온은 화씨 32도, 섭씨로는 0도입니다"


드레스덴 폭격으로 영혼을 잃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절망으로 인해 뒤틀린 우연의 세계를 묘사하게 된 보네것은 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 중 과연 몇 사람이나 시시한 기적과 시시한 사랑으로 이 세계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킬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또한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한없는 무능력에 절망하게 되었는지도.


가장 위대한 영화는 뇌가 반쪽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개같은 내 인생'이다. 두 번째로 위대한 영화는 '이브의 모든 것'이다. ... 나는 철학자다. 고로 나는 존재해야 한다. ... 이걸 기억해야 해요. 키스는 여전히 키스고, 한숨은 여전히 한숨입니다.


아팠지만 이제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도 한숨은 여전히 한숨이다.


들어보라. 우리가 여기 지상에 온 것은 빈둥거리며 지내기 위해서다. 누구라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은 듣지 말라.


커트 보네것은 1997년 타임퀘이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소설을 쓰지 않았다. 2007년 봄에 죽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슬펐다. 만일 내가 회사를 차린다면 그의 모든 소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담아 회사 이름을 '딩동댕 테크널로지'로 지을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는 자살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이름을 딴 스위트룸에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과부였는데, 도망자는 그녀가 남편이 입던 옷을 가지러 간 사이 옷을 벗었소. 하지만 그가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경찰이 봉으로 현관문을 탕탕 두들겼지요. 그는 서까래 위로 숨었소. 그런데, 여자가 경찰에게 문을 열어 주었을 때는 지나치게 큰 그의 불알이 처진 채 공중에 훤히 드러나 있었소."
트라우트가 다시 말을 멈췄다.

"경찰은 여인에게 남자가 어디 있는지 물었소. 여인은 남자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소." 트라우트가 말했다. "경찰 하나가 서까래에서 처져 내린 불알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소. 여자는 불교 사찰의 종이라고 말했소. 경찰은 여자의 말을 곧이 들었소. 여자는 아버지가 늘 사찰의 종소리를 듣고 싶어 했노라고 말했던 거요. 경찰은 봉으로 불알을 쳤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소. 그러자 다시, 이번에는 훨씬 더 세게 쳤소. 서까래 위의 남자가 어떻게 비명을 질렀는지 아시오?" 트라우트가 내게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렇게 째지는 소리를 질렀소. '딩동댕, 이 개새끼야!'"



딩동댕 테크널로지란다, 소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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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 of doom

잡기 2007. 5. 26. 22:54
paprikamovie.com 구하는 중.

스파이더맨 3 감상문: 집사가 정말 나빴다. 진작 말했더라면 멀쩡한 젊은이를 찌질이로 만드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진실을 말하는 걸 보니 그 동안 급료 및 처우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젊은이는 팔자가 바뀌어 배트맨이 될 수도 있었다.

삼성 반도체에 예수 얼굴이 나타났다 -- 기사 밑에 달린 감동적인 리플: 에수 직업이 무슨 까메오냐? 그 밑에 달린 리플: 하이닉스 웨이퍼에서 사리 발견


저번 주에는 하늘공원에 애 데리고 놀러갔다. 해가 질 무렵까지 올림픽 공원을 빙글빙글 돌다가 올라갔다. 생각보다 석양이 얄팍하다. 일년에 한두 번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석양을 구경했다. 그런데 매년 그런 석양을 같이 봤던 사람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석씨 말로는 내가 7년 전과 비교해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았단다. 환골탈태했다. 다섯 바다를 건너고 네 대륙을 지나면서 오덕함이 넘치던 고독한 책벌레 히키코마리에서 세월에 삭은 흰머리에 돛천 바지가 어울리는 개마초 사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쟤는 왜 목이 없는거지? 카렌족의 목걸이를 구해서 달아 놓을까...


길고도 긴 길. 그래서 길은 길이로 말하는 길이 되었다. 길을 길이로 말하는 노래도 있다. 길에서 노래를 들었다. Sting, Shape of my heart (4:38) doesn't play for the money or respect, deals the cards to find a answer, sacred geometry of chance... spades are the swords of soldier, clubs are weapons of war, diamonds means money for this art, but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길이 길이가 되는 것은 그 자의 영혼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club) 쇠꼬챙이에 찔리고(spade) 돈에 무너져 버릴 때다. 그 자와 달리 길을 본 후로 play, act, find answer를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유난히 비인간적이란 평을 듣던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가 읽는 글을 보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 그가 듣는 것을 듣고 그가 느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서, 그의 상태가 좋아 보이면 좋아했다. 어쩌면 '내 딸애를 좋아하는 자식은 없애버리겠다'로 바뀔 지도 모르겠다. 석탄일에는 어린 시절의 철없던 나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하늘을 손가락질했던 싯달타를 섬기는 절집에서 밥을 얻어 먹은 후 즐겨 피우는 담배 the one을 피워 물었다가 아내한테 욕을 먹었다. 한 가치 밖에 안 피웠다.


주말을 맞아 집에서 밥하고 아내를 먹이고 나니 할 일이 없다. 갈데가 없어 geocaching 사이트를 뒤져 네 개의 포인트를 gps에 저장해두고 자전거를 몰고 나갔다. 숲은 모두 다르다. 숲속의 공터(clearing)는 예로 부터 신성한 만남의 장소(bloody joint)였다. 짐승들은 공터를 두려워했고 사람은 숲을 두려워했고 호랑이는 근처에 숨어 잡아먹으려는 짐승의 울음소리를 좀 어설프게 흉내냈다(용들도 그랬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은 숲을 돌아다녔다. 오늘의 퀘스트에서 세 야산을 헤메다녔지만 보물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급속한 문명화 탓에 숲길에서 흔적과 징후를 읽는 법을 제대로 몸에 익히지 못한 탓이다. 책은 감각을 둔하게 한다. 서생은 숲에서 길을 찾지 못한다. 별 일 없으면 숲에 들어간 서생은 죽는다.


흔적과 징후는 물론 보물을 찾지 못해 한심한 기분이 들어 자전거를 세워둔 곳에 쭈그리고 앉아 땀을 식히며 싯달타라면 아마 좋아했을 담배 the one을 피웠다. 숲속에서 마네킨을 보았다. 몸통은 강철 가시에 꿰여 있고 누더기가 된 옷가지가 찢어진 채 팔 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여성 마네킨의 머리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 사진을 찍었다. 숲속에 정신병자가 왔다간 걸까? 마네킨이 난도질당한 숲을 향해 오줌을 누었다.


세번째 숲. 높은 나무들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진인사대천명 -- 제 할 일을 다하고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길 기다려본다. <-- 이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필연적으로 복 받을 팔자다. 안 그런걸 보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인연론으로 해석하면, 세상과 나는 안 맞는 것이다. 다른 세상은 맞을 지도 모른다. 특허 정리 좀 해달라길래 다섯 가지 항목을 만들어뒀다. 변리사를 만나 눈을 뜨고 나서 신청할 특허 갯수를 13개로 늘렸다. 모두 합하면 22개가 된다. 제 할 일 다했는데 하늘에서 복은 안 떨어지고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신록이 이다지도 푸르른데, 앞으로 2주 동안은 망할 문서들로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주행거리는 24km가 채 안되었지만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는 수풀을 헤치면서 산길을 세 번이나 헤메고 나니 지친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데거라면 뭐라고 했을까. 신도 의지도 누구의 도구도 아닌 자유인의 오후 삽질 말이다. 힐튼 호텔 뒷편의 어느 산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 길이 없는 덤불숲에 앉아 몹시 고독하게 담배 the lonely one을 피웠다. 네번째 망할 산이 남아있지만 벌써 오후 다섯시다. 집에 가서 마누라 밥해 먹일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골뱅이 소면을 만들었다. 마누라는 식사를 마치고 아이와 잠들었다.

오늘 대체 뭘 한거지?

매주 자전거를 탈 때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머릿 속에 도사린 채 전등빛을 좇아 나방처럼 펄럭이는 잡생각들을 길가에 흘리고 다녔을 뿐이다. 쓰시마 부산 사무소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서 신청한 지도가 도착했다. 6월이 가기 전에 쓰시마 섬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캠핑을 하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 누워 별 구경을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담배나 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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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0

잡기 2007. 5. 16. 15:36
2007/05/08 09:53:45am에 이 홈페이지의 블로그가 80000번째 카운트 되었다. 예상보다 10일 정도 빠르다. 8천번, 1만번, 2만번도 아니고 8만번에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8자가 사람 인 자 모양을 닮았는데, 인간(사람과 사람 사이)은 공허하고, 공허하고, 공허하고, 공허하다 라고 해석한 것이 팔만이다. 이 블로그가 팔만 경구로 이루어진 팔만장경은 아니고, 이 홈페이지의 컨셉인 '인간관계 신경쓰지 않겠다'와 같다.

야... 웃긴다.
팔만번의 인간 관계가 이렇게 부질없다니.




실리콘 베어링 장착 후 주행테스트 목적으로 북악 스카이웨이를 관통하여 석계역을 거쳐 의정부로 가서, 송추계곡과 온릉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70km 짜리 주행을 해봤다. 대부분 오르막길이다. 그중 북악 스카이웨이 초입에서 팔각정까지 80m에서 280m까지 오르는 2km의 오르막 길이 압권이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베어링 탓일지도 모르겠다. 흡사 물살을 가르는 아웃트리거처럼 자전거가 부드럽게 진행한다. 평속이 1-2km쯤 늘어난 것도 같고.

의정부의 어느 뒷골목 중국집에서 2500원짜리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면이 2500원 짜리가 있었던가?

주행 4시간 20분, 최속 48kmh, 평속 16kmh가 나왔다. 석계-의정부 자전거 도로 구간은 평속 28kmh를 유지했다. 뒷바퀴 베어링까지 갈면 아이스링크의 하키 퍽처럼 부드럽게 움직일 것만 같다.


지난 3년 동안 자전거로 돌아다닌 서울 근교의 대략적인 gps point. 서울 남동부를 제외하고 꽤 넓은 지역을 돌아다닌 셈이다.

Alastair Reynolds의 Century Rain을 대략 1주일 걸려 읽었다. 출퇴근 시간에 읽었으니 하루 3hrs씩 7d = 21hrs. 500p / 21hrs = 23 page/hr. 한글책은 대략 100 page/hr이니까 다섯배 느린 것 같은데, 1p당 글자 밀도는 영문소설이 한글에 비해 2.3배 정도 높은 편이니까, 실질적으로 영문소설 읽는 것은 한글소설에 비해 2~3배 정도 시간이 더 든다고 볼 수 있다.

센츄리 레인의 주인공은 Verity Auger, Floyd란 형사다. 레널즈가 쓰라는 하드SF는 안쓰고 탐정 소설 비슷한 걸 써 놨다. 그래서 Auger양은 유감스럽게도 A4 용지 두께 정도의 얄팍한 개성을 지니게 되었다 -- 종잇장처럼 평평한 개개 인물들의 개성 때문에 그들이 흡사 MMORPG의 MOB들 같아 보였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스타게이트, 그렉 이건의 쿼런틴 + 다이슨구, 해밀턴식 외계문명, 나노테크널로지, 싱귤라리티, 마이 마인드 이즈 유어 마인드, 레리 니븐의 링월드,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고루한 탐정 등등 이것 저것 하도 많이 섞은 '존슨탕'으로 배경 설정에 100p가 들었고 전개와 진행에 300p 이상을 소비하다가 마지막 100p는 우주활극으로 마무리 지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지구는 nanocaust로 쫄딱 망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날씨가 엉망이 되자 나노테크로 날씨를 어떻게 좀 해보려다가 지구를 거대한 나노 슬러지 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인류의 대부분이 멸종했고 일찌감치 우주로 나간 사람들중 일부는 지구권 궤도면에 Tanglewood란 흡사 니븐의 링월드처럼 생긴 곳에 주로 거주한다. 우주인은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러다이트처럼 나노테크를 거부한 Thresher와 나노테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신체를 완전히 변화시킨 불사신에 가까운 Slasher가 있다. Slasher는 다시 두 부류로 나뉘어 쓰레셔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 공생을 추구하는 moderator와 이왕 이렇게 된거(지구가 쫄딱 망한거) 갈데까지 가보자는 aggressor가 있다.

23세기 무렵 Thresher는 Slasher와의 화성 쟁탈전이 끝난 후 화성의 달에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지구2(Earth 2)와 연결된 wormhole을 발견한다. 슬래셔는 이전부터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우주 여기저기 만들어놓은 웜홀에 관해 알고 있었지만 1949년 지구의 양자상태를 통째로 스냅샷으로 찍어놓은 지구2로 통하는 웜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으로 추측된다(Thresher들 생각으로는). Thresher는 지구2를 탐사중이었는데 탐사원 white양이 지구2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하고 그것을 알리려다가 의문의 사고사를 당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팽개치고 전 세기의 지구 유물 탐사에 미쳐 지내던 고고학자 auger양은(사실 제대로만 묘사했다면 꽤 싸가지 없을 인간형이다) 탐사중 연구원이 사고로 죽은 후 별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지구2로 가서 학계에서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white양이 죽은 후 남긴 유품을 접수하러 간다.

레널즈는 첫 100p에서 이딴걸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슬래셔와 쓰래셔의 오래된 분쟁과 슬래셔의 기술적 진보를 현란하게 묘사했더라면 좀 더 높은 집중력을 가지고 볼 수도 있었지만, 별다른 역할 없이 그냥 이곳 저곳에 감초처럼 끼어 부댓자루처럼 끌려다니는 Floyd란 20세기 형사와 20세기 파리의 모습에 지나칠 정도의 애정(집착)을 보인다. 쓸데없는 대사와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너저분한 얘기를 없애고 지구2의 정황을 사건과 끈적끈적하게 연결했더라면 꽤 재밌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서 죽도 밥도 아닌 소설이 되었다. SF의 여러 가젯을 늘어놓다가 수습이 안되니까 그의 장기인 우주 추격전으로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렇게 해서 그다지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aggressor들이 지구2를 뽀작내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작가 스스로도 별볼일 없는 헛소리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key person인 나이아가라를 죽여버린다. 정말 성의 없다.

악평을 늘어 놓았지만 최근에 읽은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의 첫번째 번역작품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현저한 차이가 눈에 뜨인다. 심하게 말해 마일즈의 전쟁은 희박한 SF적 설정을 제거하면 무협지와 별반 차이가 없는 반면, 센츄리 레인은 설정 자체가 극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자 진행의 핵심이 된다. SF같기도 하고 SF가 아닌 것 같기도 한 것과 SF와의 차이가 그럴 것이다. 아쉬운 것은 누군가 레널즈 옆에서 '그렇게 써서는 안된다'고 코치라도 한 것인지(서사가 중요하다고 우기는 인문학 닭대가리 편집자겠지) 하드SF가 나올만하면 툭툭 끊어지고 서둘러 묘사를 마감해 버린다. 레널즈의 가장 큰 장점이 그렇게 사라졌다. ALS의 물리적 속성이나 실버웨어(나노머신), 웜홀 물리학, 정말 끝내주는 슬래셔 우주선 그런 것 하나만 가지고도 소설 써서 밥벌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센츄리 레인에는 그런 가젯들이 무려 수십 개가 쏟아져 나오고 레널즈 나름의 독특한 해석도 있다. 레널즈가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우려먹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덕함으로 극소수에 불과한 하드SF팬으로부터 격찬을 받기 보다는 남들 다 읽는 소설을 쓰려고 한 것이다.

국내에서 (희망적으로 보았을 때) 5명 미만의 사람들이나 읽을 부류의 소설이라 스포일러 경고는 무의미하다. 평면적 인간형과 단순한 서사구조 때문에 상받을 소설로서는 글렀고 하이테크 면에서도 기대보다 수위가 낫다.

2/3쯤 읽었을 때, 설마 이거... 믹스견이 똥먹는 얘기로 끝나는 거 아닌지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수확체감과 달리 예술적 고양감 또는 앱솔루션에 대한 감각은 어쩌면 드물게 나타나는 저주일지도 모르겠다.

하여 교훈은 이렇다:

1.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갈잎 먹으면 죽는다.

2. 황새가 뱁새 흉내 내면 다리가 꼬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널즈의 pushing ice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갈증 때문이다. 하드SF에 대한 심한 갈증. 로빈슨은 그의 대표작인 화성 씨리즈가 아닌 '쌀과 소금의 시대'가 번역되었다. 케이트 빌헬름, 이 작가 글 잘 쓴다. 그런데 내 취향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문도 번역되었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이건 그냥 무협지 읽듯이 '평범한' SF설정에 스토리를 즐기는 페이지 터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번역되었다. 한국 출판시장은 정말 도깨비 시장 같다. 어디로 튈지 예측이 안 된다. 아너 헤링턴, 보르코시건도 나왔는데 old man's war나 reality dysfunction같은 것이 못 나올 이유도 없다.

논의와 숙고가 끝났으니, 이제는 막가는 SF로 즐길 때가 아닌가!

SF들이 줄줄이 번역되고 있지만 하드SF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전망이다.

Q: 왜 여성 작가들은 제대로 된 하드보일드를 못 쓰는 것일까?
A: 그들 중엔 맛간 또라이가 없으니까

미드 Travllers는 이제야 나오는 건가? 졸업을 앞 둔 두 젊은이가 배낭여행을 시작하자 마자 괴상한 사건에 휘말리는 얘기다. 작년에 파일럿을 보고 살짝 땡겼다. 1월중 방영 계획이 밀려 5월이 되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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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ke maintenance

잡기 2007. 5. 12. 16:34
자전거 정비를 위해 무려 4만 8천원 어치의 부속을 구입하고 마누라의 핀잔을 견뎌냈다.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새 자전거를 사면 정비의 기쁨을 영영 누리지 못할 것 같아, 이 자전거가 썩어버릴 때까지 유지보수를 해가며 타자고 결심한 것이 요 몇주전이다. 그 보다는 구매시 사은품이 네 가지나 된다. 주저없이 구매했다.


일단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체인 청소를 하기 위해 자전거 체인 분리.


아침에 주유소에 가서 1000원어치 백등유를 사왔다. 체인을 PET 병에 넣고 열심히 흔들어주니까 체인에 낀 먼지,때,기름이 새까맣게 올라왔다. 그동안 이렇게 청소하지 않았던 것은 체인 링크가 없어서 였는데 이번에는 인터넷에서 체인 링크를 샀다.


체인을 녹이는 동안 공구를 늘어놓고 다음 작업 준비를 했다. 자전거 정비에는 적합하지 않은 너무나 단촐한 도구들. 제대로 된 공구를 사고 싶어도 공구들이 워낙 비싸다.


앞 바퀴 분리.


볼 베어링 분리. 저번주에 정비한 것인데도 하얗던 그리스가 회색이 되었다. 캡 틈새로 스며드는 먼지와 베어링이 마찰하면서 갈려나간 것 같다. 최근에 앞바퀴의 구동에 미세한 언밸런스가 느껴지곤 했다.


깨끗이 닦아낸 베어링 홀. 카트리지 방식이 아니라서 수분과 먼지의 침투에 취약하다.


진주처럼 반짝이는 저것은 이번에 인터넷으로 구입한 4.6mm 짜리 일제 실리콘(질화규소) 베어링. 22개에 무려 14000원이나 한다. 강철 베어링에 비해 열에 의한 변성에 강하고 충격, 내마모성등의 특성이 우수하다.


앞바퀴에서 분리해 잘 닦아놓은 원래의 강철 베어링. 베어링은 완전한 구체가 아니라서 약간의 마무리 흠집이 있는 것이 정상인데, 그래도 심하게 닳았다. 평평한 곳에서 손가락으로 베어링을 굴려보면 우둘두둘한 것이 느껴진다. 이래서 앞바퀴에서 요동이 느껴졌다.


그리스를 듬뿍 발라 실리콘 베어링을 박았다. 앞바퀴 조립을 끝내고 구름성을 테스트 해 보았다. 실제 주행이 아닌 무부하 상태에서 앞바퀴를 힘차게 돌리면 강철 베어링일 때 26회 회전한다. 실리콘 베어링은 30회 회전했다. 무부하 상태에서는 별로 대단한 의미가 없는 성능차다.

흠... 내충격, 내마모, 내부식성 등의 테스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요즘 한번 자전거 탈 때 보통 60-80km 정도 타니까 비가 오나 황사가 부나 2-3개월쯤 타보고 앞바퀴를 뜯어보면 되겠지.


앞바퀴 조립을 끝내고 폴리와 뒷바퀴 프리휠을 깨끗이 닦은 후, PET 병에 넣었던 체인을 꺼냈다. 찌든 때가 말끔히 벗겨진 상태다. 그전에는 WD-30같은 디그리져로 30분 넘게 땀나게 닦아대도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체인의 한쪽 핀을 빼놓은 상태. 뜯은 김에 체인 길이를 체크할까 하다가 말았다. 자전거를 계속 타면 체인이 조금씩 늘어난다. 어느 정도 늘어나면 체인을 통째로 갈아줘야 한다. 그런데 내가 무슨 산악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아니고 고작 3년 탄 것으로 강철 체인이 늘어나봐야 얼마나 늘어났겠나 싶다.

추가: 나처럼 타고 다니면 많이 늘어난단다. 잴 필요도 없이 체인 갈라고 한다.


체인 분리 도구. 제작년에 2만5천원 주고 산 시그마 툴이란 핸디툴에 붙어있는 것으로 한번도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connex의 chain link. 독일제 부품으로 하나에 무려 6000원이나 한다.


조립전 체인 링크의 결속을 시도해 봤다. 체인링크는 체인 분리를 신속하게 해 주는 것이다. 체인을 닦고 정비할 때 아주 좋다. 결속된 체인링크를 직각으로 세워서 비틀어 밀면 체인이 분리된다. 체인이 분리되면 펑크난 바퀴의 수리도 편해진다.

체인 링크가 사랑의 하트 모양이다. 정비도 편해지고 여자애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기어에 체인을 걸치고 체인 링크를 결속했다. 그런데 저 방향이 맞는지 궁금하다. 매뉴얼에 설명이 없는 걸로 보아 방향성은 없는 것 같은데, 어느 바이크 사이트에서 체인링크를 역방향으로 결속하면 체인이 튀는 현상이 있다던데... 뭐 분리가 쉬운 편이니 타다가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역방향으로 끼우면 되겠지.


폴리 역시 완전분해하여 정비했다. 너무 깨끗해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누가봐도 3년 막 굴러먹은 자전거 같지가 않다.


프리휠도 깨끗이 닦은 상태. 부엌데기 신데렐라나 팥쥐도 이렇게 깨끗하게 닦지는 못할 것이다. 체인에 녹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은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제주도 갔다가 바닷바람과 비를 맞아 녹이 슨 것이다. 그때 자전거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후회수럽다.

체인에 테프론 오일을 먹였다. 부품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벨을 달았다. 파우치도 하나 달았다. 각종 케이블의 떨어져나간 케이블 캡을 달았다. 패들의 헐거운 부분을 조였다. 케이블 와이어에 기름을 먹였다. 휠의 림을 조절했다. 변속 장치를 정비했다. 안장을 완전히 고정했다.

갑자기 비가 내려 허겁지겁 마무리지었다.

완전 조립 후 차체를 둘러봤다. 거의 5만원이나 들여서 부속을 갈고 공들여 손을 봤지만 꾀죄죄한 자전거의 모습은 변화가 없다. 그 누가 봐도 업그레이드한 티가 안 날 것이다 -_-

뒷바퀴의 베이링도 갈고 싶지만 베어링이 너무 비싸서 다음 기회로 미뤘다. 앞바퀴의 베어링 교체는 메이저 업그레이드에 해당한다. 성능향상은 미미하다. 엄청난 기름때를 묻혀가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거의 세 시간을 공들여 정비를 하고 그다지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돈 들이고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데 왜 했냐고? 그야, 비 내리는 한가한 토요일 휴일을 때우는데 자전거 정비만큼 좋은 것이 없을 뿐더러, 아무도 관심없는 가운데 마누라의 핀잔을 들어가며 돈, 시간, 열정을 쏟아 부어야 제대로 된 취미생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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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phalos

잡기 2007. 5. 6. 01:00
사람들에게 잘 못하는 것은 그들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주고 다독여주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기운내 홧팅' 보다는, '기운내 병신아' 쪽이 더 가깝지 싶다. 케세라세라다.

최근 읽은 어떤 신문기사에서 '행복학'의 권위자가 주장하길(행복학에 권위가 있다는 것이 다소 수상쩍지만 신문은 늘 오버하고 연구자는 겸손했다) 행복의 본질은 '행운' 그러니까 '운명'에 가깝단다. 그러면서 happyness의 원형이 'happens'라나? 거봐라, 졸라 연구해봐도 행복=로또같은 것이다 라는 내 지난 일 년간의 주장과 다른 점이 없지.

덕,진,지,의,명,화,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글자들이다. 이 글자들은 모두 하나의 글자로 수렴한다. 전. 돈이 있으면 베풀 수 있고, 거짓없이 살 수 있고, 사교육도 할 수 있고, 어려운 친구에게 보태줄 수도 있고, 찰스 시모니처럼 우주여행을 할 수 있고, 업수히여김을 당하지 않고 조잔한 것들로 고뇌하거나 싸우지 않게 된다. 사랑은 돈 주고 사면 된다. 물론 돈이 없을 때에도 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글자들이지만 황금빛이 반짝여야 비로서 진가가 발휘된다. 이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중국인들은 정말 대단하다. 이런 중국인들과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하지 말고 동반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동반상생은 중국인들에게 무례한 표현인 듯 하니, 어떻게 꼽사리라도 끼어서 개평이라도 받아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국인들을 본받아, 계산과 이치에 밝아지자. 운명을 극복하는 또다른 행복의 갈랫길이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요즘 공학도들이 지구의 반지름이 6300km쯤 되는데 위도 30도에서 지구의 둘레가 어떻게 되는지 학교에서 12년씩이나 배운 간단한 계산도 못한다고 개탄하다가, 거기 앉아 있던 프로그래머들이 그걸 계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젠장 실수했군 했던 적이 있다. 비슷한 실수를 최근에 다시 한 번 했다. 아무 도구 없이 지동설을 입증해 보라고 했다. 정말 꼬질꼬질하게 입증해 보라는 얘기가 아니라 과학적 프로세스와 기본적인 개념을 알지 못하면 과학적으로 입증된 가설이나 이론들이 사실상 종교적 도그마나 이데올로기와 같다는 것을 반증하기 위해서였다. 과학 역시 맹신과 종교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놀라운 것은 지동설을 입증하기 위해 사실상 필요한 무척 다양한 지식과 방법론을 대개가 학교에서 이미 배웠으며 인문계나 이공계, 상경계 이런 전공선택은 그런 것과 무관하며, 70년대 이후 출생자 거의 전원이 교육을 받았는데(일부 불우한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은 빼자. 그런거 지적하는 양반들 귀찮다) 흡사 MIB에게 집단최면 시술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별 보면 아무 생각 안드는건가? 구닥다리 그리스, 그러니까 오랑캐 설화밖에 생각 안나나? 그저 좋아?

굳이 이런 얘기를 찌질스럽게 늘어놓는 까닭은, 생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얼마 전에 교보문고의 아동도서 코너에서 과학 관련 어린애들 교재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였다; 이런걸 창의력, 사고훈련이라고 하는건가? 팩트 나열에 지능개발 수준인 이런 것들이 어떻게 창의력과 유연한 사고방식하고 연관이 되는거지? 특히 유연한 사고는 일정 정도의 지식의 폭발적 결합과 유추에 의존하는데, 훈련한다고, 익숙해진다고 습득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지금껏 함께 일한 프로그래머중 열에 아홉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다. 그건 집단 최면이 아니라 대다수의 인간은 받아들일 수 없거나, 흥미가 없는 변태적이고 소수자적인 두뇌의 이상에 기여한 돌연변이 탓이 아닐까 싶다.

* 과학적 소양은 충분한 훈련과 학습에 의해 배양될 수 있다.
* 과학적 소양을 오랫동안 갈고 닦은 이런 재원은 시다바리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 아이디어는 자신의 비상식적이고 변태적인 재능을 감추고 기구하게 살아야 하는 소수자 찌질이들이나 내는 것이다. (드디어 내가 케세라세라 철학의 중심을 가닥 잡은 것 같다)

[MTBing] 서울 한복판 북악산 넘나들기 -- 서울시내에서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길을 잃고 이 길을 지나간 적이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기사를 참고삼아 시내 지도를 쫓다보니... 허걱. 나는 작년 9월쯤 그곳에서 야간 라이딩을 했다. 길을 잃고 헤메다보면 선구자가 된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권 '마일즈의 전쟁'이 최근에 출간. 어둠의 속도, 쌀과 소금의 시대 등 한동안 잠잠하다가 SF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마치 설사똥 싸듯이?


애를 업고 인근 산(인근 산이라봤자 북한산 밖에 없지만)의 공터에 올라가 1/3쯤 읽었다.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코믹 밀리물로 개마초 하드보일드하고는 거리가 좀 있었다. 아예 작정하고 개그물로 만들 생각이었던 듯, '마법사의 제자'를 차용한 듯한 구성으로, 문제아가 문제를 봉합하려다 문제를 눈덩이처럼 즐겁게 키워놓고 좌충우돌하다가 황당하게 해소하는 방식이다. 죽을 사람은 죽이고 불가항력은 적당히 방치한다. 비슷한 포맷의 소설을 여럿 읽어서인지(단지 SF라는 차이만 있을 뿐) 양식과 구성이 식상하지만, 서양 SF무협지같은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즐기는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재밌게 완샷에 읽었다. 머리가 좋은 곱추 병신이 정상인 병신들 틈에서 삐대지 않고 정치적 완급을 배워가는 성장소설로 이 소설의 뼈대는 '적을 기습하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넌 당혹한 표정으로 '아니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를 외치면서 죽어가겠지."
"아니,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이반이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바보를 이렇게 바보같이 묘사하는 건 좀 마음에 안 드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아! 바보는 바보같이 묘사하는게 맞구나. 하고 고개를 끄떡였다. 요즘은 정말 머리가 안 돌아간다.


자전거 타고 싶은데...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 공원까지 가려 했다. 오후 3시 30분이라 너무 늦어 집에 돌아와 얌전히 낄낄거리며 부졸드의 책을 마저 읽었다.

안 팔려서 재고 떨이로 내놓은 책같은 인상을 주는 레널즈의 century rain을 읽기 시작. 5$짜리 하드커버라니... '하드SF 취향'은 피골이 상접한 소아에 기형적인 성애를 보이는 것만큼이나 비일상적, 변태적, 소수자적 '취향'(말이 취향이지 범죄)인지라 그런 책을 읽거나 그런 책이 시장에서 팔리는 것은 심지어, 비윤리적이지 않을까?

비윤리적이라도 하드커버는 좋다,
큼직한 글씨와 손에 착 감기는 질좋은 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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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per

잡기 2007. 4. 30. 20:40
나이트 빌드 시스템과 하루 단위 소스 백업, 소스 리포지타리, 버그 트래킹 시스템, 게시판과 공개 자료실, 다큐멘테이션 웹 등, 돌이켜보면 없는 게 없는 개발환경이고 대부분 자동화되어 있지만 정작 쓰는 사람들이 게으르니 효율이 올라가질 않는다. 대략 한 달 동안 코로 숨을 쉰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보냈다. 흥행에는 매 번 죽을 쑤면서도 여러 예쁜 여자 배우와 잠자리를 함께 하였다는 김기덕 감독의 주장에 따르면, 코로 숨을 들이 쉬면 반드시 내쉬어야 한다. 들이키고, 내쉬고, 들이키고, 내쉬고.


경고문이 심금을 울렸다.

그럼에도 시간은 벌레처럼 기어간다. 깡총깡총 뛰면서, 타키온을 입에 물고. 시간의 속성을 이해한다고 시간을 마스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 벌레가 지나갈 때 제대로 작별인사를 못하고 지나간 벌레의 뒷모습과 n+1차원이 남긴 n차원의(보통은 왜곡된 3차원의) 스냅샷 또는 그림자를 멀거니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을 아쉬워한 적이 없다. 멍청할 때라야 비로서 행복해진다는 것은 위대한 진리다. 두개골을 비우고 인식하는 자아를 버리면 시공간은 축퇘(collapse)된다. 방법을 알았으니까 언젠가 번쩍이는 시간을 잡아 맛있게 구워 한 입에 삼킬 것이다.

planet earth: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은 해마다 녹아간다. 달리 말해 지각있는 북극곰이라면 털갈이도 하고 식생활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북극 최강의 생물체임에도 멸종한다. 태어난 것부터 실수일 가능성이 높은, 평생 실수를 통해 시시콜콜하고 하찮은 것들을 '배워가는' 인간의 힘으로 지구온난화를 되돌릴 수 있을까?

글쎄...

2족 보행의 진화적 증거라고 하기엔 미심쩍은 아이의 행동양식: 아이에게는 자기를 업은 부모가 앉아있는지 서 있는지에 관한 확실한 감각이 있다고 믿어진다. 다섯시간 동안 7.5kg짜리 아이를 업고 서성이는 것이 쉽지 않다. 흡사 배낭여행하던 시절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7kg짜리 배낭을 매고 오전 한나절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아우토부세스 떼르미날을 찾아 파김치에 땀범벅이 되도록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조용한 배낭은 참아줄만 하지만 이 배낭은 다섯 시간 동안 50dB로 울어댄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누워있을 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는 염세적인 표정을 짓는다. 팔을 벌리고 악을 쓰면서 '안아달라'를 자기만의 언어로 말한다. 우에에에-- 외계인이 따로 없다.


누가 봐도 남자애같은 이 아이를 업고 삼일을 인근 야산에 데려가거나 도심을 가로질렀다. 아줌마가 업고 있을 때는 자리를 내주지만 내가 업고 다닐 때는 선뜻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 없다. 겉보기에는 똘똘해보이지만 뉴런들이 덜 연결된 상태. 말하자면 두뇌가 파충류 수준.


안녕 소울이 페스티발(Hi Seoul festival)이 서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누라는 3일 동안 교육 받으러 가고 나는 금요일 하루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애를 봤다. 애 보면서 프로그래밍하려니 거의 미칠 지경이다. 소울이 눈물로 뒤범벅된 '눈물의 코딩'이었다. 둘째날은 시궁창 버전 3.0인 청계천에서 일없이 오락가락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상쾌한 개울이란 컨셉은 빌딩 스카이라인과 인간과 개울로 이루어진 3층밥처럼 마음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부조리한 식사처럼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렇게 부자연스럽지 않은데 말이야... 비자연스럽다고 해야 하나?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데 꼬집어서 뭐라 말 못하겠다.

생각났다.

너절하다.


세째날에는 북촌에 갔다. '조선시대 재현'이라고 하더라. 흙먼지 날리는 애들 놀이터라서 사진을 안 찍었다. 조선시대 재현은 무슨 얼어죽을... 조선시대 주막, 기생집 재현 같은 것은 왜 안하는 거야?

이렇게 3일동안 애를 짊어지고 다니며 개고생을 한 덕택에 아내가 시험에 붙었다. 이것이 바로 내조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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