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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uro

여행기/Bolivia 2003. 5. 30. 13:55
첫날밤은 여자 셋과 잤고, 둘째날은 다섯 명과 잤고, 세째날은 네 명과 잤다. 볼리비아 남서부 3박 4일 투어의 결과다.

적응이 안 된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온 후 태양의 위치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동에서 떠서 북을 지나 서로 진다. 남위 20도다. 이성은 잘 알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길을 걸어갈 때 동서가 감각적으로 헷갈렸다. 북두칠성은 북쪽 지평선에 낮게 깔려 있다. 아... 미치겠다. 길 찾기는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내 뇌의 오래된 부분은 아직도 북위 36도에 살고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학생들이 많아 공기가 상큼했던 오루로를 떠나 유우니에 도착하니 9.30pm. 내리자마자 여행사에 들러 채 1분도 안 되어 70불로 낙찰을 봤다. 다른 에이전시를 돌아봤지만 80불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밤 늦은 시각이라 눈에 띄는 아무 숙소나 잡고 들어가서 누웠다. 추웠다. 추워서 침대 바깥으로 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아침, 이런 저런 여행사에서 어중이 떠중이들을 모아 투어 팀을 후다닥 만든다. 투어 개시 시각인 10시에서 1시간 늦었다.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원래 투어란 것이 그러려니 생각하고 짐을 여행사에 맡긴 후 차에 올랐다. 어젯밤 리스트에는 아르헨티나인 3명, 그리고 국적이 불분명한 두 명이 기재 되어 있었다. 차량의 정규 수용 인원이 6명이니까 내 이름만 쓰면 리스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사기인 줄 알면서도 서명했다. 안 그러면 그 밤중에 투어 맴버를 찾으러 레스토랑을 전전해야 하니까. 아니면 하루를 까먹던가.

우리 그룹의 여섯 명 중 나를 뺀 다섯이 여자였다. 셋은 독일 출신, 하나는 스위스, 하나는 벨지움이었다. 차량에 차례차례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향후 나흘 동안 먹구름이 피어오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Salar de Uyuni(소금 평원)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방사상으로 흩어졌다. '개성'이라면 나도 어디가서 한 몫 해내는 편인데... 정말 개성 만점 맴버들이다.


Salar de Uyuni와 개성 만점의 투어 그룹 맴버들

왜 그룹 맴버가 중요한가. 나흘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면서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룹 맴버를 고르지 않고 그냥 투어를 한 것이 실수였다. 정력이 남아돌아 있는 힘껏 날뛰는 벨지움 여자는 그룹 맴버 중 처음부터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민폐를 끼치기 일쑤였다. 본인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독일 여자애 셋은 독일어와 에스빠뇰을 주로 했다. 영어를 잘 못한다. 벨지움 처녀는 혼자 나돌아 다니고, 독일 여자애 셋은(편의상 독일 전차군단으로 칭함) 수퍼 본드로 붙여놓은 것처럼 찰싹 달라 붙어서 자기들끼리 독일어로만 얘기했다.

첫날 밤 식사가 끝난 후 그룹 맴버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서(대체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 깡촌에서 갈데가 어디 있을까) 스위스 애가 늘어놓는 수다 내지는 한탄을 들었다; 자기가 지난 5개월 남미를 여행한 경험 중에서 최악의 그룹 투어 맴버 구성이라고 한다.

스위스 여자애의 영어 솜씨가 워낙 유창해서 의아스러웠다. 너네 스위스 사람들은 독어를 하지 않니? 물었더니 지역 마다 다르단다. 프랑스와 맞닿은 부분은 프랑스어를 하고 독일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기처럼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희안한 케이스에 속한다고. 우리 둘은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나야 시간 많고 할 일은 없었으니까. 날더러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고 칭찬했다. 암, 그룹 투어는 매너로 하는 거지. 스물 네살. international relation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벨지움 여자는 독신이었고(그룹에서 유일하게 나는 다른 맴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에서 쫓겨난 후 퇴직금을 받아 3개월째 남미 여행 중. 서른 여섯, 말 끝마다 남자 친구 얘기를 늘어 놓았지만 남자 친구하고 헤어진 것 같다. 가족이 없고 의심 많고 겁도 많고 그룹 맴버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취직 문제가 곤혹스러운지 걱정이 많았다.

툭하면 여행 경험 자랑을 늘어 놓았고 그럴 때면 옆에서 기를 죽여놨다. 난 거기서 제일 싼 숙소에 묵었는데 120밧이었지 그러면 어? 난 90밧이었는데? 라고 말했다. 그녀는 동남아시아의 깡촌 오지를 안 가본 데가 없고 다음 목표는 엘 살바도르라며 엘 살바도르 얘길 구질구질하게 늘어놓길래 엘 살바도르 활극을 얘기했다. rubbery를 대낮 거리 한복판에서 두들겨 패고 발른 얘기. 사실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워낙 꼬치꼬치 캐물어서... 날더러 칼 들고 설치는 것들이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모든 남자가 6개월에서 3년 정도 군 생활을 하며 some kind of killing skill을 익힌다고 떠벌렸다. 그러자 예전에 꼴까 계곡에서 총 한 자루만 주면 여기 있는 콘돌들을 싹슬이할 수 있노라고 떵떵거릴 때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killing skill이 아니고 some kind of killing skill이다. 거짓말 한 것은 아니다. some kind of..란 '거침없는 깡'과 '이유없는 개김성'을 말하는 것인데... 하여간 여행 하면서 뻥만 느는 것 같다.

독일 전차 군단은 그룹과 사교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라 빠스에 볼 일이 있어서 왔고 이번 투어는 좀 쉬어 볼 요량으로 무리하게 시간을 낸 것이다. 학교에서 전공이 social work라는데 영어를 잘 못해서 그들의 전공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라 빠스에서 집 없는 애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가르치는 여자애들은 자기들이 딴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며 (문맥을 짐작컨대) 남자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싫다나... 내가 약간 노한 기운을 보이니까, 덧붙이길, 하지만 남자애들이라면 자기들이 먼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여자애들에 비해 금새 이해햇을꺼란다. 당근이지. 우리 남자들은 비행기와 수세식 변기를 발명했고 심지어는 모두가 싫어하는 전쟁에도 재능을 쏟아 부으니까.

놀라운 것은 그들의 '자원 봉사'가 정부나 어떤 단체로부터도 보수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비행기 경비나 숙소 등도 자기들 돈을 들였다. 24~26세 사이. 오리지날 게르만족, 뽀사시한 피부에 금발. 명랑하지만 벨지움 여자를 거의 폭탄 취급했고 틈만 나면 뒤에서 그 여자 이바구를 깠다. 하여튼 투어 내내 온갖 우아를 다 떨었다. 가슴도 빈약한 주제에.

서양인들이 워낙 개성이 강하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각각 개성이 워낙 뚜렷한 사람들, 특히나 여자들이 그렇게 모이니까 투어 내내 피곤했다. 말이 볼리비아 남서부 3박 4일 투어지, 사실은 '머슴 투어'였다. -_- 여자들이 차량에 꾸역꾸역 올라올 때부터 한숨을 쉬었다. 한국 여자들은 그나마 눈치라도 있어서 괜찮은데 서양 여자애들은 자기 생각 밖에 안 한다. 그 점이 별로...

우리 차는 8인승 은색 랜드 크루저였다. 운전수 겸 요리사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따라서 나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여기서 볼거리가 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룹 맴버 중 유일하게 스위스 여자애가 가끔 날 위해 통역을 해 주는 정도였다.

4일 내내 포장도로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차량이 그나마 다른 투어 팀에 비해 나아서 먼지를 덜 뒤집어 썼다. 투어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시작하자마자 잽싸게 가장 좋은 프론트 시트를 점령했다. 그리고 투어 내내 독차지 할 생각이었지만 매너가 워낙 좋다보니, 아니 여자 다섯 명 틈에서 머슴 노릇이나 하다 보니 그 자리에 앉은 적은 그 후로, 없었다.


우리 그룹 투어 차량. 오른쪽 산 밑의 조그마한 점은 우리 그룹 공식 폭탄, 미스 벨지움. 그녀는 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그리고 언제 돌아 오려는가... 아아...

밥을 해 먹을 시간이면(주로 야외에서) 가스통과 버너, 식기류를 루프에서 내려야 하는데 여자들이 무슨 힘이 있겠나. 운전수와 둘이서 내렸다. 허름한 숙소에 도착하면 운전수와 내가 짐을 부리는 동안 여자애들은 좋은 침대를 먼저 차지했다. 단촐한 내 짐과 달리 가방 세 개씩은 가져왔다. 내 자리는 3일 밤 내내 문 바로 옆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침대였다. 걔들이 옷을 갈아 입을 동안에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덜덜 떨었다. 다섯이다 보니 다섯배로 시간이 걸렸다. 두당 5분씩 잡으면... 뜨거운 물이 떨어지면 불을 지펴 물을 끓였다. 속이 메슥거린다며 자리를 바꿔달래서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니다가 결국 뒷좌석의 짐칸으로 쫓겨났다. 여자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꽃동산 투어? 누군가 우리 팀을 보고 내가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글쎄다... 그래서 다른 투어 차량이 보이면 담뱃불 꾸러 간다는 핑계로 거기 남자들과 이런저런 사나이스러운 얘기를 나누러 피난갔다.

이들 전부가 싸가지가 없다고 여겨졌던 것은 그 추운 날씨에(영하 15도다) 운전수 혼자 고생하고 있을 때 차량 안이나 숙소에 짱박혀 도와주러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운전수 손등이 거북이처럼 터졌고 우리 식사가 끝난 후에야 남은 음식 찌꺼지를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혼자 불쌍하게 먹고 있을 때 조차 한 번도 그나마 따뜻한 숙소 안으로 부르지 않았다. 한국 여자애들이라면 그렇게 내버려 뒀을까?

기껏 늘어 놓는 얘기가 여기가 문명화가 되면서 전통적인 삶들이 사라져가고 있어 무척 아쉽다나? 속으로 천한 것들이라고 중얼거렸다.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고 이들도 문명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들도 TV를 보고 전기를 끌어오고 제대로 된 상수도 시설을 가지고 싶어 한다. 그 좆같은 전통적인 삶인지 빌어먹을 것인지 하는 것으로 원주민을 쇼윈도우 속에서 '전통' 나부랑이 하는 것들로 쇼를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다.

여자애들은(유럽은) 현지인과 접촉하지 않았다. 흙바지를 입은 애들과 낄낄거리고 있으면 더럽다는 듯이 차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다시 한번, 한국 여자애들이라면 그랬을까? 그나마 한국 여자애들이 그런 면에서는 좀 나은 것 같다. 그나마.

한국 역시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볼리비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말하자면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살았다. 30대 이상 이라면 이들 풍경이 낯설지 않고 정이 갈 것 같다. 그 황량한 벌판에 뻘쭘하게 서 있는 축구 골대 두 개가 왠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흙바닥에서 굴러 다니다가 해거름이 다 되어 집집마다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면 엄마한테 혼난다며 하나둘씩 사라지던 친구들...

불행히도 볼리비아의 촌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흘 동안 돌아다닌 마을 중에서 전력선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변변한 상수도 시설도 없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나마 투어 차량이 묵는 숙소는 태양 전지로 축적한 전기를 밤에 한시적으로 쓸 수 있는 정도 였다. 그리고 촛불과 끝없는 먼지...

자연 경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내줬다. 지난 1년 여행한 것을 모두 합쳐도 볼리비아의 altiplano(고평원쯤?)의 풍경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평균 고도 3800m(최저 3600, 최고 4900, 모두 gps로 찍어본 것들) 사이에 위치한 드넓은 평원과 그 높이에서 바라보는 '아기자기한' 6000~7000m의 설산과 아름다운 호수들, 얇은 대기를 뚫고 천연덕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자외선에 시꺼멓게 그슬린 자갈과 흙, 그 사이로 흐르는 실핏줄 같은 시냇물, 듬성듬성 자라난 고원 억새풀과 야마떼, 그리고 전기 조차 안 들어오는 숙소에서 바라본 지평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찬란하게 펼쳐진 은하수...

지질학자라면 볼리비아의 알티플라노에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내 알량한 지식으로도 이렇게 풍부한 미네랄은 처음 봤다. 화산에서 쏟아져 나온, 말 그대로 엄청나게 다양한 광물질군이다. 준보석류 부터 화석, 온천수, 미네랄 때문에 다양한 색깔을 내는 호수들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과 놀라움이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냥, 볼리비아에 왔으니, 유우니에 왔으니, 유명하다는 투어나 하자는 심정이었다.

사진을 270장쯤 찍었다. 자연경관 만으로 사진을 270장 찍어보긴 처음이다. 그중 130장을 남겼고 파노라믹 뷰를 만들려고 별도로 10장을 더 찍었다. 360도 파노라믹 뷰 만드는 프로그램이 어디있더라... 한국에 가서 찾자.


카메라가 맛이 가서 잘못 찍힌 사진이지만, 이 분위기가 맞다. surreal!

밤이면 영하 15도~30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해만 떨어지면 거센 바람과 함께 추위가 밀어닥쳤다. 반면 해만 뜨면 살 것 같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바람은 줄기차게 불어왔다. 마치 화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식물군은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주로 해조류(algae)와 이끼류가 강력한 자외선과 칼바람, 기온차에 살아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 풍광은 티벳 고원과는 많이 달랐다. 누가 볼리비아를 '남아메리카의 티벳'이라고 하는가. 바보 아냐?

수도가 없다보니 화장실에서 쓸 물 조차 부족해 나흘 동안 세수를 하지 못했다. 물론 머슴질 때문인 탓도 있었다. 2리터 짜리 여섯 개 들이 한 박스씩 들고온 생수로 우아하게 칫솔질을 하고 세수를 하는 독일전차군단을 보니 부럽긴 하드라. 난... 지나가다가 냇물이 보이면 얼굴이라도 씻었다. 자연공원이다 보니 비누를 사용할 수 없었다. 얼음장처럼 차갑다. 세째날 온천이 있어서 뛰어들고 싶었지만 여자가 다섯이다... 발 담그고... 그냥... 시시하게... 놀았다... 얼굴이 많이 탔다.

투어 둘째날 오전, 스위스 애가 맛이 갔다. 비포장 도로에서 춤추듯 달리는 차 때문에 화장실에 달려가 게웠다. 오후에는 독일전차군단의 전차 한 대가 연료 역류 현상으로 작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연료 주입을 거부하고 밤새도록 게웠다. 그녀는 투어 나흘 내내 식사를 하지 못했다. 세째날은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깡촌을 두루 답사했다고 주장하는 벨지움 처녀가 감기와 멀미로 맛이 갔다. 비포장이 처음은 아닐텐데? 희안하게도. 아울러 마지막 날, 그동안 남은 2대로 튼튼하게 버티던 독일 전차군단 마저 궤멸 상태에 이르렀다.

유능한 운전수와 좋은 차 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처참한 투어였다. 운전수가 얼마나 유능하냐면, 4륜 구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연료 절감을 목적으로?) 2륜으로 버텼다. 파워 스티어링 핸들도 아니었다. 우리 차는 다섯 여자의 밍기적거림(그들은 운전수가 게으르다고 하지만 식사를 한 시간 반 하고 이어 차를 마시며 채팅을 최소한 한 시간을 하는 그들이 어째서 운전수 탓을 하는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른 차량을 추월하고 따돌리고 앞서갔다. 함께 머슴질을 하는 운전수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면서 그의 훌륭한 프로페셔널 서비스에 감탄했다(그가 알게 모르게 우리 팀을 위해 사소한 것 까지 챙겨주고 있다는 점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더더욱 처참했던 것은 이들 다섯 명이 모두 채식주의자라는 점이었다. 나 하나 때문에 고기 식단을 만들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풀을 씹었다. 아침은 달걀과 풀, 점심은 풀과 달걀, 저녁은 풀죽과 더 많은 풀과 더 많은 달걀이었다. 식사는 많은 양이 남았다. 채식주의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소식을 하는 것 같다. 과일은 첫날 모두 해치워서 마지막 날에는 비타민이 부족했다. 우욱...

3800m의 희박한 대기 속에서 맞바람을 맞으며 '무산소 운동' 열심히 하다 보면 근육이 무척 좋아지는 것 같긴 한데, 영양 배급만큼은 제대로 해야 할텐데... 어느 정도로 심한가 하면 3일 동안 똥이 안 나왔다. 불쌍한 내 몸은 그나마 먹는 풀이라도 완전 연소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았다.

베지타리안 독일전차군단이 식사 중에 천연덕스럽게 한국에도 채식단이 있냐고 물었다. 있는 대로, 사실 대로 말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채식단을 가지고 있노라고. 그런데 한국인의 음식 문화가 최근 10년 새에 급격히 변해 채식단의 다양성이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고. 내친 김에 한국에서는 식용 식물군 중 약재와 식재를 구분하지 않으며 약재가 곧 식재라고 얘기했다.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지만 전부 사실이다. 나물류의 다양성이 식단에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절간 정도 밖에 없다. 독풀이 아닌 한 모두 먹으면서 수천년에 걸친 인체실험 끝에 탄생했던 '위대한' 채식단은 사실상 소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 정도 채식단의 다양성을 세계 어느 깡촌에서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문명권은 문명권 나름대로 식단이 이미 평균화, 균일화 되어 가면서 단조로워 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식재를 약재로 취급하는 나라라면 중국 정도인데 중국의 나물류가 한국만큼 발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금치를 주로 볶아대니까.

사실 이들에게 화산 지대의 생성과 미네랄에 얽힌 흥미로운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런 데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은 그리 냄새가 심한데도 호숫가에 퇴적된 인을 알아보지 조차 못했다. 그들에게 돌들을 보여주고 이게 바로 신석기를 이끈 주역들이라고 설명했지만... 음... 개무시 당했다. 난 머슴이니까?

여자들이 과학기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 놓아서야 말이 안되는 것 같다. 미국의 '여성 과학 기술 인력 개발 위원회'에 따르면 과학기술계에는 보편적인 성 차별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여성들이 과학기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엔, 여자들은 과학기술에 원래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의 진정한 관심꺼리는 네트웍과 소통인 것 같다. 그래서 유난히 뛰어난 화술을 구사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투어에 참여한 여자들은 각각 최소한 2개 이상의 언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난 모국어인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러니까... 쓰잘데 없는 돌덩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쓰잘데없는 돌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알고 그와 대화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여자들이 소통을 중시해서 언어지향적인 대뇌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회생물학의 여러 위험스런 주장과 마찬가지로 목적론적이다. 목적론은 아주 위험해서 이 우주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서슴치 않았다. 교육 받은 사람이라도 목적론과 자연선택을 종종 헷갈려 하는 케이스도 많은 것을 보면... 이 점에서도 여성은 그게 무슨 차이냐고 주장할 것 같다(무식 -_-). 목적론은 받아들이기가 아주 쉽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

좆데이(굿데이)가 어디서 줏어들은 기사를 인용한 것에 따르면 잘 생긴 남자는 정자의 활동력이 평범한 사람보다 활발하고, 잘 생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능력 면에서 뛰어나다고 한다. 과연 좆데이다! 우리 나라에 이런 신문이 하나 쯤은 있어서 장수해야 한다.

저 한심한 기사의 '그럴듯함'이 목적론이 지닌 '그럴듯함'과 같다. 왜냐하면 잘 생긴 여자는 많은 남자들이 뒤따르니까. 그래서 이런 의구심이 들겠지? 잘생긴 것과 자연 선택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굳이 통계적 조작이 아니더라도) 조사해 본 결과 정말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저런 얘기가 나온다. 자연 선택이 '무지향성'이라는 것을 백날 강조해도 이런 데에서는 사실 씨알이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무미 건조 하고 재미 없으니까). 저런 기사는 근데 나도 사람들하고 말할 때 울궈 먹는다. 재밌으니까.

일정이 오후 4시에 끝나고 바깥이 몹시 추운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잠들기 전인 9시 까지는 그룹 맴버들이 모여 얘기를 나눠야 했다. 식탁에서 벌어지는 이 끔직스러운 대화는 영어와 에스빠뇰과 도이치, 때로는 프랑세즈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서로 서로 통역을 했다. 첫날은 그나마 다른 투어 차량들이 함께 있어서 다른 팀의 남자들과 얘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둘째날 부터는 창 밖으로 참새 한 마리만 날아가도 까르르 웃어대고 촛불 하나를 주제로 족히 한 시간은 떠들어대는 아가씨들과 얘기하는 것이 대체로 고역에 가까왔다. 벨지움 여자는 담배 알러지가 있었고 스위스는 케첩의 품질에 관해 정신병리적인 증세를 보였다.

독일전차군단의 도이치 진세를 돌파하는 것은 몹시 피곤했다. 그들은 투어 중에도 시즈 모드로 일관했다 -- 춥다고 차 안에 짱박혀 부동의 앉은 자세로 창 밖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 벨지움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언제 돌아올 지 기약이 없었다. 스위스는 부루퉁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찬 바람에 차량 주위를 빙빙 맴돌며 담배만 피웠다.

문을 잠그고 파수견처럼 문가 옆 침대에 눕는다. 촛불이 꺼지고 추위와 어둠이 찾아오면 전차 한 대가 괴성을 내며 overthrow를 시작했다. 밤새도록... 이런 저런 충고를 했지만 두 대의 독일 전차가 자기들이 해결하겠노라고 강경하게 막았다. 두 전차 역시 별 대책이 없어 보이는데도.

남미에 와서 최고의 민간 치료술을 배웠다. 코카잎이다. 코카잎은 고통을 비롯한 감각을 제거한다. 걱정근심도 없앤다. 믿기지 않았지만 코카잎은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까웠다. '통'자가 들어가는 모든 질환에 효과가 있으며 심지어는 심인성 장애까지 치료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인간들이 코카잎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페루의 현대 미술관에서 코카잎에 관한 무한히 다양한 용도를 묘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전차군단은 코카잎을 싫어했다. 마약이라나... 마약 아닌데... 코카잎에서 알칼라이드를 고농도로 추출해 코카인을 만든다면 모를까. 코카 잎을 다린 차는 진통제나 두통약 보다 효과가 탁월했다. 다만 약간의 소화 장애와 식욕 감퇴가 있는 것 같다. 페루에 있을 때 코카잎을 가져갈 수 있냐고 물으니 세관에서 잡는단다. 벌금과 압수. 대신 코카잎으로 만든 차를 가져가라고 하는데 깜빡 잊고 사는 것을 잊었다. 바보.


화산과 야마와 호수

독일전차군단에게 있어 투어는 재앙에 가까웠다. 세 대 모두 궂은 날씨와 도로 사정으로 고장났다. 그들은 거의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투어가 만족스러웠다고 자구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misty from orient를 제외하고 서로서로가 최악의 맴버라고 흉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잠결에 이렇게 노래 불렀다.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the life~ 아, 그 노래. 안다. monty python이라는 정신병자들이 만든 영화의 주제가다.

여행 1년 동안 이렇게 개성이 강한 구성은 처음 봤다. 독일전차부대는 3일에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난 별 이유 없이 찬성) 벨지움의 독기 어린 반대로 무산되었다. 벨지움은 독일전차부대 앞에 대놓고 지금 투어를 마치는 것은 무척 멍청스럽다고 말했다. 독일전차부대는 벨지움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와우! 스위스는 여전히 자기와는 상관없다며 '중립'을 지켰다. (그러니 스위스가 3류 국가가 되가고 있는 것 아닐까?)

틈 나는 대로 그들 각각에게 투어 비용으로 얼마를 줬냐고 물어봤다. 그들 모두 에스빠뇰이 유창했고 내가 에스빠뇰 한 마디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기 안 당하고 여행할 수 잇냐며 의아스러워 했지만, 흐흐흐, 모두 80불씩 주고 투어에 참가했다.

내가 아는 생존 에스빠뇰...

버스 터미널이 어디에요?: 부스 터미날, 아미고?
피삭까지 버스비가 얼마에요?: 피삭 부스, 꾸안또 에스, 아미고?
꾸스꼬에서 뿌노까지 몇 시간 걸려요?: (손가락을 쥐락 펴락 하면서) 꾸스꼬, 뿌노, 꾸안또 띠엠뽀, 아미고?
버스가 우로스에 도착하면 내려 주세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우로스! 아미고! <-- 몇번 반복.
여기가 우로스인가요? : 우로스? 아미고?

안녕하세요? 홀라! 아미고!
방 있어요? : 홀라, 아미고!
방값이 얼마에요? : 꾸안또 에스, 아미고?
싱글룸이 얼마에요? : 솔로! 꾸안또 에스! 아미고!
체크아웃 타임이 언제에요? : (먼저, 시계를 가리키며) 꾸안또 호라, 아미고? (자는 시늉에 이어서 손가락으로 걸어 나가는 표현)
짐 좀 맡아주세요. : 이뀌빠헤! 아미고!
짐 찾으러 왔어요. : 이뀌빠헤! 아미고!
화장실이 어디에요? : 바뇨! 아미고! 바뇨!
화장실 달린 방 주세요: 바뇨! 아미고! 바뇨!

싼 걸로 주세요: 바라또! 아미고!
깎아 주세요: 디스꾸엔또! 아미고! 마스 디스꾸엔또! 아미고! (그리고 애원...)

화장지 있어요? : 띠에네 빠펠, 아미고?
식사 되요?: (말없이 숟가락질 하면 된다)
이해가 안가는데 영어로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 노 엔띠엔도. 잉글레스, 아미고?
인터넷 한 시간에 얼마에요?: (손가락 하나만 펴고) 꾸안또 에스, 아미고?

지난 3개월 동안 몇 안 되는 단어로 여행했다. 내가 아는 에스빠뇰은 꾸안또 에스(how much)와 숫자들, 그리고 길에서 줏어들은 몇 단어 정도 뿐. 단무지 정신이라고 하더라. 단순, 무식, 안되면 지랄.

안경 코 받침이 부러졌다. 강력 본드로 붙였다. 전지 케이스가 부서졌다. 망가질 만한 것들은 한 차례씩 다 망가져서 앞으로 망가질 것이 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내심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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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le de la Luna

항공권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너무 비싸다.

속이 쓰려서 밥이나 먹어야 겠다고 마음 먹고 이름 모를 식당으로 들어갔다. menu especial dia de la madre라... entrada(전채)로 Huevitos de cordorniz, soup은 Chairo paceno, segundo(main dish)로 arroz chaufa와 ensalada classica, pollo a la naranja, 그리고 고구마 한 조각, postre(후식)으로 mouse de chocolate를 먹었다. 10볼리비아노, 1.2$였다. 먹으면서 울었다. 페루에서 시급히 볼리비아로 넘어 왔어야 했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풀 코스를 2달러가 안되는 돈으로 먹을 수 있나.

점심 시간 무렵에는 사무실들이 문을 닫아 애를 먹었다. 볼리비아의 점심시간이 2시간 가량 되고 여행사나 은행 따위는 12시에 식사를 시작해 3시나 되어야 사무실 문을 꾸역꾸역 열었다. 재개장 시각을 몰랐다. 성수기가 시작되면서 항공권 가격이 오르고 있어 조바심이 났다.

어제까지 640$ 가량 하던 항공권이 오늘은 720$ 정도 되었다. 라 빠스의 중심가 부근의 여행사를 이 잡듯이 뒤졌다. 이틀 동안 안 가본 여행사가 없다. 저렴한 항공권 구매에 관한 몇 가지 방법을 이번에 배웠다. 하지만 하루 차이로 80-90$이 그냥 날아갔다. 망설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통할까 하고.

라 빠스의 여행사들은 할인이 무지막지하게 이루어지는 multi carrier combined ticket에 관해 그다지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알아낸 방식은 로이드 아에로 볼리비아노의 산타 크루스->메히꼬시티 티켓과 컨티넨탈이나 델타 또는 유나이티드 에어의 메히꼬시티->로스 앤젤레스 구간 티켓이다. 이 조합이 가장 저렴하고 스톱 수가 적은 방식인데 대개는 직항 노선이나 연결구간 사이에 협약을 맺은 항공사 끼리의 연결편을 제시했다. santa cruz -> miami -> (atlanta) -> los angeles 하는 식으로. 그들이 제시한 티켓 가격은 그래서 1080~1340$ 정도였다. 다시 말해 국제적으로 거의 모든 여행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항공권 예약 프로그램은 일부 유명한 구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최적화된 항공권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두번째는 여행사마다 그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숙달도가 달라서 최저 항공권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가 타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를 해주기도 했다. 세번째, 각 여행사가 취급하는 항공권은 특정 항공사로 제한되어 있다. 이를테면 여행사를 고를 때 여행사 윈도우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항공사 스티커를 유심히 살펴봐야 발품을 줄일 수가 있다.

내가 제시한 조합보다 여행사가 제시한 티켓이 더 쌀 거라고 믿었다. 그런 일에는 닳고 닳은 사람들일 테니까. 그런데 첫날 열 댓 군데를 돌아봐도 항공권 가격이 108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낙심했다. 그럴 리가 없다. 중남미는 그링고들이 떼거지로 놀러 오는 곳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LAB와 UA를 임의적으로 조합한 티켓 가격을 알려 달라고 했다. 750$ 까지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뒤져 720$까지 떨궜다. 그들이 제시하는 최저선인 1080$에서 무려 360$이나 가격을 떨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속이 쓰리다. 항공권 예매에 관한 보다 세련된 지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라 빠스라는 도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지금처럼 좌충우돌하면서 배우는 식 말고) 70-80$을 더 세이브할 수 있었다. 하루 만에 가격이 올랐다. 이집트에서 항공권을 구할 때 망설이다가 하루 차이로 몇백불 날렸을 때는 욕할 놈이라도 있었지만(부시 십새) 지금은 내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한다.

항공권 예약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상식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 월요일은 다른 주일보다 항공권 가격이 싸다. 최대 100$ 정도 차이가 난다. 두번째, 국적기는 이국기에 비해 구간 요금이 저렴하다. 이를테면 조합 항공권을 구하려 할 때 해당 국가의 국적기를 이용해 트랜짓(트랜스퍼?)을 조합하는 것이 유리하다. 세번째, 최소한 1개월 전에 예매해야 싼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상식이 있지만 버킷 티켓(할인 티켓)은 출발 며칠 전에야 구할 수 있다. 네번째, 여행사가 제시하는 가격만 믿을 것이 아니라 항공사 시간표를 참조하거나 인터넷 항공 티켓 구매 사이트를 참조해 조합 가능한 항공편을 미리 알아두어 여행사에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주 유리하다.

항공권을 구매하기 위해 돌아다닌 시간은 이틀에 불과하지만 항공권 구매에 관해 생각한지는 일주일이 넘었다. LA로 돌아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1. 유우니 투어를 마치고 국경을 넘어 칠레를 종단해 산 티아고에서 LA로 가는 방법, 2. 루레나바께에서 정글 투어를 마치고 브라질로 넘어가 상 파올로나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마이애미를 거쳐 LA로 가는 방법, 3. 볼리비아 여행을 마치고 라 빠스로 돌아와 국제버스를 타고 페루의 리마로 돌아가 LA행 티켓을 구하는 방법(항공권은 500$ 가량). 세 가지 방법 다 장단점이 있다. 일정이 빡빡한 처지라 여행 경로가 방법 따라 워낙 다양하고 무궁무진해서 네 번째 방법을 택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서울-LA 왕복 구간 티켓이 원래대로 6개월 짜리였으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되었다. 그래서 내게 항공권을 사기 쳐서 팔아먹은 탑 항공의 그녀가 다시 생각났다.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돌아가서 종이 비행기 백만개를 접어 그녀의 얼굴에 집어 던질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른다.

침대에 누워 허접스럽게 생긴 티켓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볼리비아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는 이 티켓에 붙은 세금은 무려 120$ 씩이나 된다. 원래 항공권 가격은 600$ 가량이다. 모험심을 발휘해 산타 크루스에서 하루 정도를 남겨두고 티켓을 구해보는 건데, 그러다가 저렴한 티켓을 구하지 못하면 300$ 가량을 일없이 날리게 되니까 무서워서 시도할 엄두가 안 난다.

이렇게 일이 안 좋게 풀려 나갈 때는 맛좋은 음식을 먹고 기분을 푸는 것이 바람직했다. 멕시코에서부터 간혹 살떼냐를 볼 수 있었다. 중미 스타일의 만두인데 멕시코, 중남미를 지나면서 먹을 때는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허기나 지우려고 길에서 우연히 먹었다.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고국에서 삽질하고 계신 동포 여러분들을 제껴두고 나 혼자 먹고 있으니... 살떼냐 두 개면 배가 찼다. 고작 300원 돈이다. 살떼냐에 여섯 가지 소스를 발라 먹고 마무리로 120원 짜리 오렌지 쥬스를 들이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어젯밤에 바나나를 사려고 시장에 갔다가 잠시 딴 생각하는 바람에 바나나 두 뭉치를 가슴에 안게 되었다. 어? 왜 이렇게 많이 주지? 3kg, 200원 어치였다. 무슨 생각으로 그 많은 바나나를 샀는지 모르겠다... 바나나 때문에 다른 음식을 못 먹게 생겨서 상심했다.

바나나를 먹고 다시 유쾌해졌다.

훌륭한 식사를 하는 민족이니 볼리비아 사람들이 제정신일 수 밖에 없다.
밤거리는 놀랍도록 한국과 흡사했다 -- 안전하고 시끄럽다.

밥을 거나하게 먹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여행사들은 오후 3시나 되어야 문을 열테니. 그래서 Valle de la Luna(valley of the moon)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감으로 찍어서 내렸다. 시내에서 대략 10km, 골짜기 아래. 정확한 위치다. 적도 부근부터 남반구로 내려 오면서 태양의 위치 때문에 종종 방위 감각을 잃었다. 북반구에 너무 오래 산 탓인 것 같다.

오늘 달의 계곡을 방문한 사람은 다 합쳐서 10명이 안 되었다. 미니 카파도키아 같다. 별 다른 감상은 없었다. 터키에서 훨씬 오래되고 장엄한 카파도키아 버섯을 이미 본 처지라. 한 시간쯤 거닐다가 적당한 곳을 찾아 오줌을 누어 제대로 마무리를 하고 라 빠스로 돌아왔다.


Valle de la Luna. 달의 계곡이라서 로맨틱한 곳인 줄 알았는데 영 황량한 것이... 달 표면 같다.

매트릭스를 보러 갔다. 매표원과 한참을 싸웠다. 그녀는 티켓을 줬다는데 나는 좌석 배정표만 받았다고... 티켓 달라고... 옥신각신 하다가 영화가 시작되어 정직하지 못한 그를 한껏 비웃은 후 지갑을 꺼내 표를 다시 사려고 했다. 어? 그런데 티켓이 지폐 사이에 끼어 있었다. 거스름돈을 받다가 중간에 끼인 것 같다. 망신살이 뻗쳤다. 민망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여러 차례 사과 했지만 토라진 얼굴이 풀리지 않았다. 극장은 의외로 돌비 디지탈이었다.

네오가 개폼 잡고 하늘을 날 때부터(he's doing superman thing)알아봤다. 다음에는 부활일 꺼라고. 뱀파이어들이 누리는 가장 큰 호사가 예수의 몸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포도주를 성배에 부어(천사들이 거들 것이다) 우아하게 마시고 거듭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재생하는 것일께다. 따라서 뱀파이어 구전의 원흉은 창에 찔려 포도주를 펑펑 쏟아내는 예수가 맞다고 본다. 네오는 코드를 사용해 트리니티를 부활시킨다. 그 과정이 좀 더 극적이고 하이테크하게 묘사되었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잔 말도 많고... 시스템은 버그 투성이고... 매트릭스의 소스를 들여다보니 아니 이럴수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것이잖아? 이러는 거 아니야? 열쇠쟁이라니. 어쩌면 크립톨로지의 은유가 그렇게 한심하다냐... 매트릭스의 우주관, constructor(generator). 시온의 거리에는 크리슈나(destructor)의 포스터가 팔리고 있었다. 워쇼스키 형제는 그렉 이건의 sf를 봤어야 했다. 창조자에 의해 거듭 '릴로드' 되는 한 사나이의 비극을 봤어야 했다. 새로우 우주의 탄생과 프로세스 랙으로 느려진 시간 속에서 외우주와 상관 없이 영원히 거주하게 된 인간 정신의 복제본을 봤어야 했다. 하다 못해 인과율의 모서리가 부서져가는 우주의 지평선이 등장하는 그의 충격적인 단편이라도... 쌈마이 패치워크로 충만한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 철학서 몇 권 봤다는데 시나리오가 고작 그거냐? 어떤 영화에서 인가, 크리스토퍼 월큰이 늙고 염세적인 뱀파이어로 나와 지껄이는 웅변적인 몇 마디가 훨씬 더 그럴듯 하다.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쓰레기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말하자면 cause and effect에 따라 머리 속에 든 게 없어서 그렇다는 결론이 나온다. 쌈마이 워쇼스키. 아... 정말, 현대과학기술의 철학적 액기스가 가득 담긴 성배를 맛보고 디지탈 영생을 얻고 싶다. 액션 뽕짝 쌈마이 (짜가) 시뮬라시옹 말고. 액션도 많은데 영화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 보일까. to be concluded. 그건 멋졌다. 하하하. 거지같이 만들어 놨어도 결론을 내리겠다는 정신은 정말 훌륭하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왈, "광신도 집단들이 미래의 위험한 전쟁을 준비 중인 파키스탄이 바로 악마의 집"이라고 주장했다. -- 신문 기사 중. 어렸을 때 앙리 레비의 소위, '철학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취향에 안 맞는 작자로 여기고 있었다. 악마의 집? 여전하군.

"여행상품 : 7월 17일까지 스리랑칸 항공을 이용한 특별상품이 출시됐다. 목요일 출발 5일 상품(128만원)과 월요일 출발 6일 상품(144만7000원). 정상가보다 15% 이상 할인된 가격이다. 숙소에 따라 요금 차이가 있다. 클럽메드 코리아(www.clubmed.co.kr)" -- 어, 생각보다 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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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az

여행기/Bolivia 2003. 5. 27. 18:34
Puno - border - Bolivia Copacabana - La Paz 12hrs.

아침 일찍 일어나 La Paz행 버스를 탔다. 왠 일로 아무 사고 없이 버스가 잘 가나 싶더니만 경찰 체크포인트에 차가 멈춰서 조사랍시고 설문지를 돌린다. 문항을 살펴보니 외국인 여행자들을 상대로 페루의 관광 시스템에 관한 만족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대체 어느 나라가 공권력을 앞세워 관광객 설문 조사를 한다며 잘 가던 버스를 한 시간 넘게 세워둘까. 설문지를 신랄하게 작성하고 나니(그래도 페루는 좋았다) 고생 하셨다면서 기념품을 준다. 버스가 가다가 다시 멎었다. 창밖으로 수떼! 수떼!를 외치는 걸 보니 또 데모구나... sute는 suit가 아닐까 싶다. Puno 사람들은 좀 무서웠다. 아스팔트에 돌 뿐만 아니라 깨진 유리병 조각을 깔아놓았다. 4시간 지체.

국경에서 여권 복사본을 달란다. 볼리비아는 과떼말라와 더불어 한국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은 나라로 알고 있다. 이민국 사람들이 어째 다소 희극적으로 보였다. 군복 탓일까.

여행 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지나온 국가들의 색채 이미지: 미국 노랑, 멕시코 낡은 주황, 과떼말라 회초록, 엘 살바도르 검정, 온두라스 황금색, 니까라구아 연두, 꼬스따 리까 은색, 빠나마 엷은 하늘색, 뻬루 짙은 초록, 볼리비아 채도가 낮은 빨강. 지나가면서 색깔이 바뀌었다.

꼬빠까바나에 하루쯤 묵어보는 건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라 빠스(라 빠스는 어두운 녹색)까지 버스표를 끊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띠띠까까 호수에 면한 조용하고 편한 도시 같다. 아름답다. 베리 매닐로우의 노래가 여기를 무대로 한 것인가? 로라라는 이름의 쇼걸이 있었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노래. 꼬빠까바나에서 내려 눈에 띄는 호스텔에 들어가 뒷일을 보고 관광버스 차장의 지시로 버스를 갈아탔다. 그 동안 옆 자리의 에쿠아도르 인한테서 벼룩이 옮았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벼룩은 통했고 그의 출입국 카드 작성을 도와줬다. 워낙 많이 작성해 봐서 빈칸 채우기에 불과했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오면서 풍광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설산들이 열을 맞춰 왼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페루의 어떤 현대 화가가 설산을 인격화 해 표현한 그림이 떠올랐다. 설산은 그의 그림처럼 생겼다. 히말라야 같이 위압적이지 않고 마치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얼굴을 덮은 늙은 할아버지처럼 평원을 말 없이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늙었지만 죽지 않은, 죽을 것 같지도 않은 정정한 노인네 같다.

흙벽돌로 지은 뒤숭숭한 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보트로 호수를 건너는 동안 내가 탔던 버스는 별도의 목조선에 올라 호수를 건넜다. 가라앉을 것처럼 위태위태한데 용케 건너온다. 띠띠까까 호수는 변함없이 맑았다. 호수 중간에서 엑스칼리버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 라 빠스... 저 멀리 황금색으로 물든 설산을 배경으로 석양 속에서 라 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가지를 형성한 비탈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군은 다마스커스를 연상시켰다. 어째서 도시 이름이 평화(paz = peace)일까. 평화가 없기 때문인가?

7시간이면 와 닿을 곳을 12시간 걸려서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전전했다. 아직 성수기가 시작되지 않았을텐데 숙소 구하기가 힘들다. 거리에는 그링고가 우글거렸다. 한 시간 넘게 비탈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기진맥진했다. 간신히 25 볼리비아노 짜리 숙소를 잡았다. 3.3$짜리 치고는 깔끔했다. 배고프다. 짐을 내려놓고 식당을 찾아 돌아 다녔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밥 먹으려면 시장에 가라.' 라고 LP에 적혀 있었다. 시장에 서서 접시를 받아들고 이름 모를 음식을 먹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거리에서 이젠 딱히 신기하게 여길 만한 것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투어 만이 남았을 뿐이다.

가이드북을 읽어보니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최후를 마감한 곳이 볼리비아의 어떤 작은 도시 근처에 있는 광산이라고 하더라. 아, 잊지못할 그 영화의 한국어 제목과 마지막 프리즈가 떠올랐다. 그때 흘렀던 노래가 raindrops falling on my head였던가?

선댄스: 오늘은 내가 쏠께. 내일은 니가 쏴라.
부치: 좋은 생각이야. 넌 명사수니까.

-_-

볼리비아는 그러니까,

1. 체 게바라가 빨지산을 하다가 볼리비아군에게 죽음을 당한 곳
2. 베리 매닐로우가 젊은 날의 잊지못할 추억을 노래한 곳
3. 전설적인 강도단 부치와 선댄스가 볼리비아군에게 벌집이 된 곳.

이렇게 슬픈 사연이 많은 곳 임에도 옆 방에서는 이스라엘리 남녀가 헉헉대고 있었다.

투자의 세계에 엔지(NG)는 없다 - 김준형
옆집은 뭘해먹지 - http://wwww.menupan.com
http://www.alberteinstein.info

상트 페테르부르크 - 세계3대 박물관 에르미타지 박물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삼위일체 다리 등. 삼위일체 다리?

부산∼광주 통일호 운임 8,300원. 우등고속 18,700원과 일반고속 12,700원의 절반. 8h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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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icaca

여행기/Peru 2003. 5. 26. 19:40
아침 일찍 일어나 띠띠까까 호수로 향했다. '아침 일찍'... 으윽... 배를 타고 보니 투어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열세 명. 나와 일본인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쌍쌍이다.

미국인 아줌마의 주장에 따르면 자국에서 사용하는 영어의 수준이 좀 한심한 편이란다. 그녀는 가이드가 구사하는 '복잡한' 단어에 감동한 것 같다. 그녀는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고 여행 좀 하게 생긴 마이애미 총각하고 줄곳 얘기를 나누었다. 마이애미 총각은 아줌마에게 이란에 꼭 가보라는 얘기를 했다. 내심 그가 이란을 여행하다니, 참 대단한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국적이 탄로나면 맞아 죽을 각오를 해야 하니까. 그와 단 둘이 얘기 할 기회가 있어서 페르세폴리스에 관해 얘기했다. 페르세폴리스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추 피추를 능가한다고 안 되는 영어로 하나 둘 따지고 있었는데, 이 친구 쉬라즈 얘기를 하면서 페르세폴리스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의아해서 이란에 언제 갔었냐고 물으니 얼버무린다. 엉? 케밥 먹어봤다며? 그는 쉬쉬케밥이 무언지 몰랐다. 황급히 도망친다. 그 친구 대신 미국인 아줌마한테 진짜 페르시아를 느끼고 싶으면 케르만의 시장통에 가보라고 열나게 설명했다. 가급적 '어렵고 우아한' 단어를 써가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끼리 떠들거나 서로 개성을 존중하는 것인지 앙숙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테면 '너 같은 관광객 때문에 띠띠까까 호수가 오염되고 있는거야' 하는 표정으로.

Uros, Amantani, Taquile 섬을 도는 1박 2일 투어였다. 여러 투어를 비교해서 밥을 가장 많이 주는 이 투어를 선택했다. 섬의 민가에서 하룻밤 자고 점심, 저녁, 심지어 아침까지 얻어 먹는다. 저렴하고, 밥이 공짜라서 내심 기뻤다.

그런데 어떻게 40km 이내에 있는 섬들을 둘러보는데 2일씩이나 걸리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배를 타고 gps를 켜보니 이해가 갔다. 배는 12km/hr라는 어이없는 속도로 '일정하게' 달렸다. 자전거도 아니고... 띠띠까까 호수에는 모두 40여개의 섬이 있었다. 호수 건너편은 곧 가게 될 볼리비아다. 볼리비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 거렸다. 싸다니까.

우로스 섬은 갈대를 1m 두께로 얹어 띠띠까까 호수 위에 떠 다니는 인공섬이다. 띠띠까까 호수에 관해 이전부터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우로스 섬의 원주민들이 유전병 치료의 혁명적인 단초를 제공한 순수한 피를 가진 종족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외에도 잉카 전설 속에 등장하는 신화 속의 호수 라던가(그들 태양신의 탄생지), 내륙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큰 규모의 호수라는 등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titi = puma, caca = great or stone 이라는 뜻인데 심혈을 기울여서(또는 사시를 치켜뜨거나 스스로를 납득시키면) 호수 모양이 문득 푸마처럼 보일 때가 있다. 띠띠까까 호수에 얽힌 잉카 전설과 그들의 전통적인 삶은 원주민들과 뿌노의 관광업 종사자들을 먹여 살리는 주수입원이므로 강력하게 보전되어야 마땅했다.

우로스 원주민들이 가족혼을 통해 순수한 혈통을 면면이 이어 왔으리라 생각하고 물어보니 인근 아유마라와 혼인을 해서 피가 섞인 상태였다. 실망.

워낙 철저하게 강간지화가 진행되어 거의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갈대 배 타고 다른 곳으로 간 동안 할 일이 없어, 띄엄띄엄 영어를 할 줄 아는 원주민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태양전지를 발견하고 환호했다. 제대로 사네? 그는 '관광수입'으로 지멘스제 750불 짜리 태양전지를 최근에 장만했다. 저녁이 되어 관광객들이 돌아가면 태양전지로 축전된 전기로 TV를 관람하고 전등을 켰다. 그런 모습을 대낮부터 보여주면 관광산업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태양전지 때문에 한 달에 150달러가 날아간다고 한다. 페루의 교사 월급이 2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그는 꽤 잘 사는 편이었다. 날더러 사진 찍겠냐고 묻길래 돈 받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그럼 안 찍는다. 돈 안 받을 테니까 찍어도 좋다. 그래서 그가 즐겨 먹는 물고기 사진과 그의 거친 팔뚝을 찍었다. 그는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에 다소 짜증이 난 상태인 것 같았는데, 자기가 지금 이런 집에서 살고 있지만 집 뒤에는 야마하제 모터를 단 최신식 모터 보트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갈대배만 몰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그래서 엿먹을 전통이나 갈대로 만든 좆 같은 관광 상품은 제껴두고 주로 남들이 재미없어 하는 얘기들을 나눴다. 그가 우로스 섬에 '전통적으로' 앉아 있으면 투어 가이드가 간강객들을 데리고 와 동물원 원숭이처럼 자기들을 보여준 후 여행사가 적당액을 분배해 주는데 그 수입이 변변치 않아서(여행사가 착취) 먹고 살기 위해 물고기도 잡는다고 한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니 밭이 없어 농작물을 사와야 할 때가 죽을 맛이란다. 너도 '전통'맛 좀 보겠냐고 위협했다. 오... 노...

전통을 피해 달아났다. 배는 세 시간을 지루하게 달려 아만따니 섬에 닿았다. 원주민 가정 한 가구당 관광객 두 명씩 배정했다. 짝이 없는 나는 일본인 할아버지와 같은 가족을 따라갔다. 할아버지는(오까다 상)은 몸이 불편한데도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오스까라는 그집 아들네미와 마리라는 그집 딸네미와 땀 나도록 놀았다.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어쩐지 애들 놀이상대로 그 집에 들어간 듯 했다. 마리는 내 다리에 찰싹 붙어 다녔다.

오스까가 가진 재산 일호는 소니 라디오였다. 20솔 짜리 라디오인데 내 gps는 소리가 안 나기 때문에 그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다. 사실 기를 쓰고 5불도 안 되는 그 싸구려 라디오보다 120불이나 하는 내 gps가 더 좋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등 좀 한심한 짓을 했다. gps는 말이야, 아웃도어의 거친 세계를 지향하는 사나이의 첨단 로망이라고... 이 자식 영어를 모른다. 소니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전깃줄이 곳곳에 보이고 방 안에 전구가 있어 전기가 돌아오나 싶었는데 그건 그냥 폼이었다. 우로스 섬과는 달랐다. 집 안을 슬며시 뒤져 보았지만 태양전지나 축전지나 TV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 섬에서 라디오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첨단 미디어 통신기기인 셈이다. 왜 그리 라디오를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겠다.


Isla Amantani

밥 먹고 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할머니들과 어린 여자애들만 반긴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았다. 이래 가지고야 언제 젊은 원주민 처녀들과 로맨틱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보나 싶어 아쉬웠다.

산꼭대기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석양이다. 빛들은 칼날처럼 구름 사이로 쪼개졌다. 여기가 몇 미터더라... 4100m 되는 것 같다.

그 다음은 별이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조금 더 참았다. 저녁을 먹고 사람들이 관광객용 피에스타(파티)에 몰려간 동안 마당에 서서 별을 쳐다 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오카다 상의 손을 끌어 별을 보여 주었다. 그는 감동했다. 말을 잊었다. 3900m의 전깃불이 없는 청명한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과 은하수이 있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믐에서 며칠 안 지났다. 운이 좋다.

한참 후에 오카다 상이 혹시 남십자성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남십자성을 별자리 지도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다. 쉽게 찾았다. 비로소 실감이 났다. 나는 지금 적도를 넘어 남반구에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여름으로 향하고 있지만 여기는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별자리들 중 생소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선이 그어지지 않는다. 난생 처음 보는 것들이니까. 아아... pda가 날아가지만 않았어도 밤새도록 덜덜 떨면서 별을 잇는 기쁨을 맛 보았을텐데. 심지어 여긴 전기도 안 들어오는데...

마리가 꽃잎을 잔뜩 들고 방안에 들어왔다. 심심한가 보다. 촛불 아래서 마리의 산수 공부를 지도했다. 내가 경험한 중남미인들은 뺄셈, 특히 돈 계산에 취약하니 그거라도 가르쳐줘야 생활이 보탬이 될꺼라고 생각했다. 밥이 공짜니까 있는 대로 더달라고 해서 계속 먹었다. 일본인 할아버지는 음식이 워낙 더러워서 잘 먹질 못했다. 관광지라더니 내가 묵고 있는 집의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쩔쩔 매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 산업도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으로 믿는다.

간간이 일본인 할아버지와 얘기했다. 그는 한국 음식을 좋아했다. 특히 '진로'를 그리워했다. 일본애들 만나면 의례껏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고 한국음식 매니아였다. 예전에 부산을 방문한 목적도 '본토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라나. 그에게 페루의 전 대통령인 후지모리의 안부를 묻자 좀 당황한 것 같다. 그가 나와 그 가족 사이의 통역 역할을 해 줬다. 고마웠다. 어딘가 모르게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일본 승려와 닮았다. 나보다 꼭 2배 나이가 많다.

밤에는 몹시 추웠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엄두가 안 나 그냥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아줌마가 뜬금 없이 춤추는 거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다 안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었다. 어젯밤에 마리랑 춤을 췄는데 걔가 고자질한 것 같다. 어휴...

따말레섬, 주민들이 '전통적인 삶'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가이드의 지리한 설명을 들었다. 미국인들이 원주민 사진을 찍고 돈을 몇 푼 슬쩍 건네주는 모습을 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해 한다. 씁쓸하다.

만족스러운 투어를 끝마치고 픽업을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자기 호텔에 내렸다. 2성, 3성 하는 호텔에 내리는데 나 혼자 여인숙 같은 곳에 내리니까 기분이 좀 묘했다. 다들 저렴한 여행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여행 1주년을 자축하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지나쳤다. 오늘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 돈을 펑펑 썼다. 그래봤자 4.7$어치 밖에 안 되었다. 지금까지 먹은 식사 중 가장 비싼 것은 꼬스따 리까의 산 호세 번화가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한 접시에 10$ 가량 하는 파스타였다. 워낙 고가라서 카드로 긁었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 식히는 과정인 것 같다. 잠시 머리 식히자는 것이 어느덧 일 년 째가 되어 머리가 점점 식어 가다가 절대 0도 부근에서 대뇌가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생체자석이 말을 안 들어 고민했다.

주간지 3개, 일간지 6개를 포함해 12개의 사이트를 정기 구독하고 틈틈이 만화책을 다운받아 보았다. 그런지 벌써 3개월쯤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인터넷 사용하면서 blog를 기록하거나 사진을 업로드하는 동안 뉴스와 만화책을 다운 받았다. 1시간 다운 받으면 3시간 정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용량의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값싸고 저렴한 문화생활이다. 그래서 웃겼다.

숙소에 돌아오니 뜨거운 물은 커녕 찬물도 나오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종업원들을 상대로 지랄했다.

여행 중에는 빛나는 승리로 점철된 영웅적인 행각을 이어갈 수 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난 좆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노다메처럼 행복했다. 별빛 아래서 꼬마애와 춤도 추고.

띠띠까까 호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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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o

여행기/Peru 2003. 5. 23. 20:59
오늘도 늦잠을 잤다. 차는 11.30am에 출발하는데 일어나니 10.30am. 고양이 세수를 하고 비바 라틴에 들러 가이드북을 전해주고 터미널까지 뛰었다. 데모 때문에 중심가에 택시가 다니지 않는다. 저 빌어먹을 데모는 페루에 도착하면서 부터 줄창나게 보았다. 알고 보니 후지모리가 쫓겨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교사 봉급을 인상해 주기로 하고 안 올려서 교사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오얀따이땀보에서 기차가 멎은 것도 데모대가 기차 운행 중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꾸스꼬에서 마추 피추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데 그게 멎었으니 관광객들은 엿 되고 말았다. 그래서 엿된 관광객인 나는 삽질하며 트럭을 타게 된 것이고.

3300m에서 배낭 메고 뛰는 것은 할 짓이 못 된다. 간신히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11.30am. 숨을 고르면서 버스 회사에 물어보니 아직 출발하지 않았단다. 버스는 12.30pm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내가 산 10솔 짜리 싸구려 티켓은 자리가 배정된 것이 아니라서 이리 저리 세 번쯤 쫓겨 다니다가 간신히 자리를 얻었다. 여러가지 복합적이고 페루적인 냄새가 나는 자리다. 일층에서 현지인들과 쭈그리고 앉았다. 관광객들은 이층에 있었다. 그래도 10솔에 비즈니스 클래스가 어디냐...

차량 운행을 방해하는 데모대가 없는 춥고 황량한 사막을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펑크가 났다. 해는 이미 졌다. 3800m에서 덜덜 떨며 쭈그리고 앉아 펑크 때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관광객들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담배 한 대 물었다. 멀리 민가의 불빛(장작불이었다)이 보이고 개가 늑대처럼 울고 있었다.

뿌노에 도착하니 8.30pm. 택시를 타야 하나. 두리번 거리니 마침 버스 터미널을 하릴없이 배회하는 삐끼가 있었다. 그에게 말을 붙였다. 그가 숙소를 권한다. 20솔. 노, 10솔. 숙소는 쉽게 협상이 되었다. 10솔에 욕실 포함된 걸 잡아보긴 처음인데?

그와 15분 쯤 열나게 달려서 숙소에 들어갔다. 날더러 꼬레아가 고산 지대에 있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대꾸했다. 내 나이를 묻는다. 동갑이다. 희안하게도 그가 묻는 에스빠뇰이 귀에 들린다. 왜 묻나 싶더니 난 배낭 매고 뛰는데도 숨 한번 안 헐떡이는데 그 친구는 헉헉거리고 있었다. 무척 신기한가 보다. 꾸스꼬에서 여행자들에게 들어보니 우아나피추를 30분 만에 뛰다시피 기어 올라간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다들 한 시간 걸렸단다. -_-;

숙소를 잡아준 동갑내기 삐끼와 협상해서 띠띠까까 섬 1박 2일 투어를 40솔에 쇼부쳤다. 35솔 정도면 그놈에게도 마진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구워 삶아도 씨알이 안 먹힌다.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바가지 쓴 것 같은 필이 왔다. 그 필링은 정가는 25솔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쩌겠나 시간도 없는데 협상하기도 귀찮고, 어서 투어를 잡아야지. 1-2불에 연연하지 말자. 나중에 정보를 뒤져보니 다른 사람들도 40솔에 잡은 것 같다. 고개를 갸웃 했지만, 맞겠지.

밥 먹으러 나오니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 한참 삽질하며 걷는데 누가 뒤에서 갑자기 덮쳤다. 경찰이다. 가방 조심하란다. 고작 그 말 해주려고... 깜짝 놀랬잖아. 주먹이 나갈 뻔 했다. 소매치기나 강도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지만 경찰을 대하면 좀 캥겼다.

아침에 또 늦게 일어났다. 요즘 왜 이러지? 볼리비아 대사관에 들어가니 비서관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꼬레아노! 하하하하!! 라고 소리친다. 어이가 없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한국인인 줄 알았지? 알아본 건 둘째치고 대사관을 쥐새끼처럼 들락거렸지만 이런 괴상한 사무관은 처음 봤다. 여권의 파키스탄 비자 가지고 뭐라 왈가왈부 하지 않는 최초의 사람이다. 20불 은행에 납부하고 영수증을 갖다주었다. 스탬프를 여권 페이지에 찍은 후 은행 영수증을 붙인다. 별 것 아닌 그걸 하는데 10분이 걸렸다.

비자 받으니까 기분이 좋다. 등짝에 햇살을 받으며 광장을 거닐었다. 아레끼빠나 꾸스꼬하고는 분위기가 또 다른 도시다. 그들 도시 보다 더 가난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활기차고 밝다. 광장에서 기분좋게 햇살을 쬐며 구두닦이 소년들과 웃었다.

데모가 한창이라 술렁거리는 거리에서 가판대의 신문을 흘낏 봤다. 꾸스꼬의 데모가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꾸스꼬의 광장에 있는 성당 옆에 서 있던 데모진압용 차량을 보았다. 사과탄을 쏜 것 같다. 6월 24일이 페루의 태양 축제라는데(교묘하게 피해가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태양 축제 때 몰릴 관광객들 때문에 정부 쪽에서 강경하게 진압할 것 같다. 돈 되는 그링고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데모하는 교사들의 월급이 700솔이란다. 겨우 200달라.


꾸스꼬 광장 앞의 데모대의 광장 진입을 저지하고 있는 경찰(오른쪽). 왼쪽 구석에 보이는 시위진압 차량. 며칠 후에는 경찰도 파업할 예정이란다.

하루종일 남은 돈이 얼마나 되나 계산했다. 그게 왜 하루종일이 걸리는지 모르겠다.
루트를 짰다. 시간이 별로 없다.


고산 적응은 잘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코카 잎을 너무 씹은 것 같다. 하루종일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은 까닭은 코카 잎 때문이다. 어제 이리저리 길길이 키아누 리브스 처럼 뛰어 다녔는데도 피곤하지 않은 것도 코카잎 때문이다. 이렇게 효과적인 진통제는 처음 경험해 본다.

self destruct dvd의 불투명한 장래: 한번 보고 버린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환경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좋은 방법이 있는데. 48시간이 지나면 dvd가 쿠키로 변하면 되지 않을까?

정치에는 낭만이 있어야지 -- 김종필이 룸사롱에서 술 먹다가 그렇게 말했다. 왈가왈부를 떠나, 재밌다. 하하하

한국행 항공권 정보:
2003-6-11 1220-1555 UA897 LA-TOKYO
2003-6-12 1900-2130 UA827 TOKYO-INCHEON

이글 보는 사람 중에 혹시나 해서: 마중 나오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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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le

여행기/Peru 2003. 5. 22. 21:14
거리에서 한국인 남녀를 봤다. 버스표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그 한국인 남녀를 다시 봤다. 비바 라틴에서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을 때 한국말이 들렸다. 책을 읽다가 계산을 치르고 나오는데 주인 아저씨가 방금 지나간 여자가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란다. 이 책의 저자를 웹에서 한동안 자주 봤다. 그럼 미키님 인가보죠? 예스. 아까 거리에서 본 여자가 미키님이었구나. 이틀에 걸쳐 비바 라틴 사장님과 미키님 등 유명인사 둘을 다 본 셈이다. 흐뭇하다. 마주 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뻘줌해 질 것 같아서 서둘러 나왔다.

비바 라틴에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가난한 배낭 여행자가 밥 한두끼 먹어준다고 사업에 보탬이 될 것 같지는 않고...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중미 가이드북이나 슬며시 놓고 가야지.

"미얀마인들은 Minggala Sutta라는 부처님의 설교집 속에 있는 행복해 질 수 있는 33가지 교시를 통해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이중 마음에 드는 것들만, 바보 같은 친구를 멀리할 것, 술에 취해 이성을 잃지 말 것, 검소할 것, 해탈에 이르는 길을 견지할 것, 공포심을 버릴 것. 팔정도; 정견(正見), 정사유(正思維),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情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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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Cusco

여행기/Peru 2003. 5. 21. 18:59
Machu Picchu photos

Agua Caliente -> Ollantaytambo -> Urbamba -> Cusco

새벽 5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밍기적거리다가 5.30am, 기차는 5.45am에 출발. 짐을 싸고 허겁지겁 달렸다. 아침 일찍 일어난 동네 아줌마들이 깔깔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기차역을 알려준다. 계단에서 한번 엎어졌다. 일으켜준다. 추운 새벽인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기차는 8시쯤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해야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중간에 섰다. 자다 깨서 객실을 살펴보니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러 짐을 짊어지고 나갔다. 기차가 언젠가 가겠지, 여기서 움직이면 돈 낭비고 체력 낭비라니깐 하는 무책임한 희망을 품고 느긋이 객실에 앉아 눈을 붙였다. ...... 합쳐서 두 시간 넘게 지나도 아무 일이 없어 차장에게 물어보니 기차가 언제 출발할지 자기도 모른단다. 멋지군. 하는 수 없이 짐을 들었다.

gps로 찍어보니 목적지인 오얀따이땀보까지는 직선거리로 12km. 고개가 많은 산악이고 고도가 높아 배낭을 메고 도저히 걸어 갈만한 거리는 아니다. 지나가는 트럭에 올라탔다. 합승객이 너무 많아 아비규환이다.

차는 시속 10km의 속도로 비포장 도로를 달려갔다. 마추 피추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왜 도로를 안 만들었을까? 기껏해야 40~50km 구간인데. 대부분의 수입이 정부에 귀속되어 다른 일에 쓰여지던가 아니면 일부 재벌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페루의 IGV라는 부가세 비슷한 세금은 무려 18%나 했다. 도로 건설은 국가 개발 계획의 핵심적인 사업이다. 세금 걷어서 도로를 지을 것이지 빌어먹을 새끼들. 그러고 보니 주요 도로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이었다. 페루의 관광지를 전전하면서 비까번쩍한 도심의 상가와 페루 농촌의 극단적인 가난이 이루는 대비가 보통 가난한 나라들 수준 이상 임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페루에서 데모가 잦은 것 같다.

트럭은 오얀따이땀보를 4km쯤 남겨두고 섰다. 앞에 데모 행렬이 걸어가면서 도로에 돌을 던져 놓고 있었다. 운전수가 내려 돌을 치운다.

하는 수 없네. 걸어야지. 트럭에서 내릴 때 말썽이 좀 있었다.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서양 여행객들과 트럭 이용료가 3솔이라고 바가지를 긁는 운전수와 대판 싸움이 붙었다. 대략 10km쯤 달렸으니까 운임은 0.5솔 정도가 적당한데 서양인들은 1솔 이상은 못 주겠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 2솔 정도로 타협할 것이다. 나는 그 가격에 절대로 못 탄다. 일부는 달라는 대로 다 준 서양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서양애들이 흥정할 때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같이 덤터기 쓰니까. 나 혼자만 외롭게 0.5솔(신 꿴또~~)을 외치다가 목소리가 묻혀 버려서 트럭에서 내려 운전수에게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돈 안 내고 그냥 걸었다. 서양애들에게 바가지 씌우느라 바빠서 0.5솔 짜리를 신경쓸 틈도 없을 것이고 내가 0.5솔 짜리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협상해봤자 본전도 못 건질테고... 운전사와 차장이 뻘쭘하게 웃으면서 보내준다. 3솔 낸 녀석들이 내 운임까지 내준 셈이 될 것이다. 나야 그런 일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몇몇은 씩씩거리며 억울하다는 듯이 2솔을 말 그대로 도로에 집어 던지고 나를 따라 걸었다. 앞으로 2km만 걸어가면 된다. 대여섯 명이 걸었다. 미국인 셋, 좀 시건방진 프랑스 여자애 둘. gps를 보고 몇 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말해주고 상대하기 싫어서 혼자 성큼성큼 걸었다. 그들이 현지인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밥맛 떨어져서 그랬다.

기차가 멎자마자 재빨리 튀어나와 먼저 트럭을 타고 도착해서 헤메고 있는 여행자들과 시장통의 북적거림을 뚫고 지나갔다. 데모로 사방이 정신이 없다. 말려야 할 경찰은 박수치면서 데모대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페루의 사정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여기서 꾸스꼬 행은 드물게 한 두 차례 밖에 없다. 우르밤바에서 꾸스꼬 행을 갈아타는 것이 낫다. 꾸스꼬행 버스를 기다리는 몇몇 허름해 보이는 여행자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 했다. 까탈 안 부리고 따라오면 저렴하게 너희들을 꾸스꼬까지 데려다 줄 수 있지롱. 꾸스꼬행 다이렉트 버스는 5솔이다. 우르밤바까지 1솔, 한 시간 거리. 꾸스꼬까지 3솔, 두 시간 거리. 4솔.

꾸스꼬에 내려 여행자들과 바이바이했다. 푸노 간단다. 고도차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고산증이 벌써 일주일 넘게 괴롭힌다. '비바 라틴'이라는 한국 식당에 들어가 라면을 시켜먹었다. 라틴 여행인가 하는 책을 보니 중남미 코스를 밟은 몇몇 여행자들의 글이 있었다. 비바 라틴 사장님이 한국인이다. 숙소를 같이 하는 것 같아 물어보니 10달러란다. 아! http://www.amigos.co.kr이 여기였구나! 10달러는 좀 비싸서 짐을 지고 숙소를 찾으러 광장으로 향했다.

전에 묵은 숙소도 좋지만 다른 숙소를 찾아보려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숙소가 정말 많다. 15솔 하는 숙소를 30초 만에 10솔로 협상하고 얻었다. 새로 지어 깨끗하다. 하룻 동안 쌓인 피로가 그제사 갑자기 몰려왔다. 밤 열시쯤 컴퓨터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었다. 뭘 할까...
마추 피추를 보고 나니 잉카 유적은 좀 그렇다. 더 보고 싶지도 않다.
다 제끼고 그냥 빈둥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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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u Picchu

여행기/Peru 2003. 5. 20. 19:33
gps가 고장났나? 마추 피추에 올라왔다. gps에는 2500m라고 찍혔다. 오얀따이땀보가 3500m니까 그것보다 훨씬 잘난 마추 피추는 4000m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200m를 더 올라가 와나 피추에 이르렀을 때 정상 지석에는 2700m라고 적혀 있었다. 어라? 맞잖아? 학자들이 마추 피추가 경이로운 건축물이라고 게거품을 물었을 때 나는 마추 피추가 최소한 4000m는 되어서 엄청난 노동력을 들여 어렵게 건설한 것으로 믿었다. 2500m라... 약간 실망. 멕시코의 떼오띠우와깐이 중남미 전체를 통털어 최고의 건축인 것 같다... 잉카의 건축가들은 부조나 조각을 별로 남기지 않았다... 단지 벽을 쌓고 집을 지었는데 아파트 건설업자와 뭐가 다른지 누가 설명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마추 피추 입구에서 폐기된 국제학생증의 구멍을 살짝 가리고 내밀었다. 학생할인, 되었다. 만세다.

남들은 120$ 주고 잉카 트레일로 3박 4일 벌벌 떨며 고생해서 와 닿는 곳인데 나는 50$ 들여서 2박 3일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마지막까지 안 걸으려고 버스 타고 마추 피추에 올라갔다. 그 사람들이 잉카 트레일을 트래킹해서(고생해서) 닿았는데 마추 피추가 별로 안 멋있으면 김 새거나 열 받을 것 같다. 그래서 마추 피추는 최고다. 이렇게 멋진 계획 도시는 로마 시절에는 흔해 빠진 것이긴 하지만 700m의 깍아지를 듯한 절벽 위에 세운 건물들과 저 멋지고 용도를 알 수 없는 테라스는 입에서 으윽 하는 감탄사가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심하게 씹었군.

처음 마추 피추의 테라스를 보았을 때 칼리오스트로의 성과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올랐다. 우연찮게도 작은 광장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야마 몇 마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음... 유럽 여행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도 웃통을 벗고 선텐을 하고 있었다. 보기 싫다.


마추 피추 전경. 맞은편의 산은 와나 피추.

마추 피추의 사소한 단점들은 몇 안 되었다.

그들은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정교하게 지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탐구욕으로 가득찬 채 건물의 돌을 들어 보았다. 들린다. 밀어 보았다. 밀린다. 욕 먹을까 봐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주위에는 인부들이 돌 틈에 낀 이끼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저 이끼들은 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하여튼, 발로 열나 걷어차면 마추 피추는 무너진다. 이유는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얄 패밀리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몇몇 건물들과 성스러워 보이는 것들은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잘 지어 놓았다. 그런데 그것들은 무너지고 있었다. 종으로 힘을 균등하게 받지 못해서 그렇다. 기초 공사를 어떻게 한 거지? 어떤 일본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마추 피추의 어떤 부분은 한 달에 1cm씩 가라앉고 있단다. 그래서 2002년부터 마추 피추에 하루 입장객 수를 500명으로 제한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마추 피추는 언젠가 그링고 관광객들과 함께 무너져 내릴 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장관일 것 같다.

그 다음은 용도를 알 수 없는 테라스다. 테라스에는 작물을 키울 수가 없다. 농작물을 키우면 테라스가 무너진다. 테라스가 좁아 농작물을 키우면 지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그래서 테라스를 만든 것이 경작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일단 건축물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잉카인의 아크로 폴리스를 지탱하기 위해) 그리고 아마도 야마를 키우려고 뿌리가 깊숙히 박히지 않는 풀들이 테라스 에서 자라게 내버려 둔 것 같다. 풀이 자라면 야마들이 풀을 뜯어먹고, 잉카인은 야마를 잡아먹고. 테라스의 또다른 목적은 도시를 잘 은닉하는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밑에서는 테라스 때문에 건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위에서는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마추 피추에는 자폐증 왕족들이 살고 있었을까? 어떤 주장에 따르면 선택받은 여자들이 마추 피추에서 살았다고 한다. 유골의 80%가 여성이었다. 소수의 사제와 다수의 여성들이라면 음... 흔한 그림이 나오는군...

마추 피추 유적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게 '과학적'인 부분은 태양석이다. 한눈에 보자마자 알았다. 그런데 그놈에 태양석은 하루 중 시간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눈금이나 파낸 흔적이 없다) 계절의 변화만을 추적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천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장치 같은 것은 없었다. 잉카 문명은 ad 12세기에서 ad 17세기 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에 다른 문명권에서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천문 관측 시설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천문관측의 목적도 아리송하다. 주변에 컬티베이션이 가능한 면적은 강을 따라 지극히 좁았다. 여긴 꼴까 계곡처럼 광대한 경작지가 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잉카인들은 창문을 항상 마름모꼴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건축의 기적 중에 하나인 아치를 17세기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은 ad 2세기 무렵 그것을 발견했다. 아마 더 이전에 아치를 알았을 것이다. 가이드라면 왜 그들이 마름모꼴로 창문을 만들었는가 라고 질문한 후, who knows? nobody knows!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연극적으로. 흐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3000년 전의 인간과 현재의 인간은 완전히 똑같다. 현세의 사람들이 그 당시 사람들이 뭔가를 하나 이룩해 놓았으면 기특하다는 듯이 찬탄을 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추 피추의 수로 관계 시설: 로마에 비교할 바는 아닌 것 같고, 위쪽 지방의 떼오띠우아깐 문명의 사우나 시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당시 아랍 문명권은(특히 무굴은) 기압차를 이용하여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끌어 올리고 자랑 삼아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잉카는 2단계 수도꼭지를 만들었다. 이거 정말 신기하다.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고 눈으로 보면 재밌다. 오얀따이땀보에서 가이드가 시범을 보일 때는 오얀따이땀보의 수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실험해 보니까, 된다.

아무튼 여러 가지 면에서 마추 피추는 최고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잘못 읽었나 하고 여러 문헌을 뒤져 보았다. 잘못 읽었다. 마추 피추는 '남미' 최고의 유적지였다. 으어어어...

마추 피추는 고소 공포증을 유발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분위기가 사뭇 으시시했다. 직접적인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는 여러 사진들의 입체감이 없는 묘사와는 달리 그 테라스를 걷고(모르타르 안 발랐다. 모서리에서 발 구르다가 추락할 수도 있다) 건물 사이를 돌아 다니면 내가 마치 공중에 뜬 건물을 유영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발걸음이 가볍다->시원하다->썰렁하다->으시시하다 순으로 기분이 변했다. 감이 느려서 그런건가...

마추 피추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심심해서 와나 피추로 올라갔다. 와나 피추란 마추 피추 사진에 흔히 등장하는 마추 피추보다 약 200미터 높은 모나미 볼펜 끄트머리처럼 생긴 산이다. 올라가는 입구에서 이름을 적었다. 가끔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생길까봐 이름을 적어두고 돌아오면 돌아왔다고 신고하란다. 그렇게 위험한가? 고소 공포증이 거의 없는 편인데도 올라갈 때부터 분위기가 안 좋다. 바위는 미끄럽고 계단은 무너질 것 같았다. 다시 생각나는 것인데, 이 미친 놈들은 모르타르를 안 썼다. 잉카인은 날개라도 달렸단 말인가? 아니면 영양실조로 몸무게가 날아갈 것처럼 가볍기라도 했나? 최소한 잉카인들에게 고소 공포증은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정신병인 것 같다. 태양과 콘돌의 후손이니까?

빡세게 30분 가량 올라가 마지막 오분은 오체투지로 기다시피해서 정상에 이르렀다. 2500미터라서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그리고 무시무시하다. 뭘 하나 굴리면 지엄한 중력 가속도를 충실히 지키며 떨어져 내릴 것 같은 900미터의 깍아지를 듯한 절벽이 눈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와나 피추에서 중력의 사과와 에너지 바를 피지컬한 점심으로 먹고 담배 한대 피운 후 내려왔다. 바람이 안 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상에서 겁에 질렸음에도 겁에 질리지 않은 체 하는 있는 집 페루 자제들과 농담 따먹기를 했다. 어제부터 줄곳 만났는데, 재밌고 밝은 아이들이다.

에너지 바: 트래킹할 때 반드시 지참하라는 식품. 여러 곡물류와 견과류를 살짝 압축해서 만든 과자. 대략 100kcal 정도인데 400kcal라고 믿을 수 없는 사기를 치는 제품도 있다. 적어도 4개를 먹어야 한 끼 식사를 한 정도가 되는데(1솔) 조금 무겁더라도 사과(1kg에 1솔)가 나을 것 같다. 초콜렛바만도 못하다. 신뢰가 안 가는 제품이다. 잉카의 전통적인 어떤 식품은 고단백질이라 우주 비행사들이 먹는다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음료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잉카 사람들은 콘돌이 나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들도 날아보자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콘돌 같은 커다란 날개를 만들고 벼랑에서 연습 끝에 드디어 조정에 성공했다. 상승기류를 정복했다. 그들은 당시 잉카의 전통적인 고단백질 음료수를 끼니 때마다 마셨을 것이다.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와나 피추와 마추 피추와 그 아래에 있는 아구아 깔리엔떼 사이를 행 글라이더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잉카 글라이더는 잊혀지고 말았다.

그들은 과학 문명의 발전과 예술의 방종이 인간성을 망가뜨리고 자연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신석기 시대에 숙지한 다음 모든 과학문명을 폐기하고(글라이더나 바퀴 따위 빛나는 최신 기술) 그것을 기록하는 문자 체계를 없애버린 채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에서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삶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들은 황금을 찾아 헤메다니는 스페냐드라는 돌발변수를 예측하지 못했다. 때문에 잉카는 몰살 당하고 현재의 잉카 후손들은 스페인 문화에 거의 동화되거나 흡수되고 심각한 빈부의 격차가 중대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잉카의 후손들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게 된 데에는 거개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지, 잉카 문명이 다른 문명과 교류를 못해 심각하게 정체된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발해와 돈독한 교류를 가졌더라면 글라이더에 바퀴를 달고 양 날개에 화통을 설치하고 몸통에 화약을 달아놓은 콘도르 전폭기를 개발했을 지도 모른다. 수백대의 콘도르 전투기가 푸른 하늘을 뒤덮고 구름 사이를 넘나들며 스페냐드의 무적 함대를 전멸시키는 장쾌한 광경을 상상해 봤다. 상상만 할 수 있어서 아쉽다. 식민 역사란 더럽게 슬프고 구역질나는 것이다.


와나 피추 정상. 매우 스산.

돌아와서 몇 명이나 와나 피추를 올라갔나 봤다. 오늘은 140명 가량. 별로 추천해주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가봤자 전망이 끝내 주게 좋지도 않았다. 원근이 안 잡힌다. 그냥 정력이 남아돌아서 올라갔다 오는 것이지. 마추 피추는 hut of the care taker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가장 멋지다. 엽서 사진에 워낙 많이 등장해서 식상하긴 하지만. hut of care taker에서 draw bridge 쪽으로 좀더 가면 테라스와 도시 윤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다. 발자국이 나 있었다.

마추 피추에서 내려 올 때 버스를 탔다.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에는 노인네들만 탔다. 다른 사람들은 걸었다. -_-; 1m 라도 덜 걸어보자고 하는 짓이긴 하지만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마추 피추가 4000m는 되는 줄 알고 부러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4000m가 어떤 곳이냐. 내리막길에서도 숨이 턱까지 차고 땀이 주르륵 흘러 내리는, 그런 곳이다. 사전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않은 탓이다.

마추 피추에 올라가느라 고생 했으니 이제 온천욕을 즐겨야지. 수영복은 없고 반 바지와 타올을 들고 온천을 찾아갔다. 오오... 단돈 1.5$짜리 노상 온천이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천에는 서너 명의 인디헤나 밖에 없다. 머리에 비를 맞으며 따뜻한 온천 속에서 손가락이 심하게 쭈글쭈글해 질 때까지 밍기적 거렸다. 뼈속까지 시원하다... 여독이 순식간에 풀리는 것 같다. 온천은 흙바닥에 사방을 콘크리트로 둘러놓은 단순한 것이었다. 발바닥이 따끈따끈한 것을 보니 밑에서 물이 데워지는 것 같다. 서양애들이 몇몇 들어오려고 해서 재빨리 나왔다. 서양 애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대한 공포 내지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들이 탕에 들어오면 물이 더러워 진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며칠 샤워를 안한 내가 더 탕을 더럽혔을텐데...

온천을 끝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해 보자. 식당을 전전했다. 별로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 고르는 건 정말 일이다. 그러다가, 입이 방정이라고... 20솔 하는 식사를 6솔에 해주면 먹겠다고 말했다. 그는 7솔을 불렀다. 맙소사. 식사를 가지고 흥정을 하다니... 그리고 흥정이 되다니! 아무리 everything is negotiable이라고 하지만 식사 가지고 흥정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섰다. 손님이 없다. 비수기니까. 레스토랑 세팅이 럭셔리하다. 괜히 비싸 보이는데 들어온 것 같은데.. 그냥 점심 때처럼 시장통에서 왕창 퍼주는 밥이나 배불리 먹을 껄 그랬나? 그래도 빈티 좀 그만 내고 제대로 먹어보자. 온천에 들어가 모처럼 기분이 개운한데...

송어가 이 지방 특산물이었지. 물이 차갑고 맑은 동네다. 하지만 강원도하고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온두라스 정도라면 강원도와 막상막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옥수수 크림 스프와 송어 튀김과 밥과 감자 튀김과 샐러드와 레몬 쥬스를 시켰다. 감자 튀김은 언제나 plentyful하게 나와서 만족스럽다. 감자의 제국이니까.

스프가 잘 나왔다. 제대로 크림을 얹어왔다. 따뜻하다. 적당한 끈기에 맛이 고소하고 식욕을 돋군다. 식탁 세팅은 약식이지만 제대로 해 놨다. 한켠에 스페인 와인 셀렉션 북이 놓여 있다. 암 그래야지.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메인 디시가 나왔다. 송어 튀김은 뼈를 바르고 양쪽을 저며서 밀가루 옷을 아주 얇게 입혀 튀겨왔다. 모양은 예쁘장하고 그럴듯 한데, 소스가 약간 무겁고 고기 맛이 별로다. 무슨 망할 놈에 양식이라고... 역시 송어는 회를 떠서 회고추장에 퍽퍽 발라 소주와 함께 배불리 먹어야... 샐러드는 약간 미끈거리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먹을만 했다. 레몬 쥬스는 단순히, 신선했다. 레몬 쥬스는 만점이다. 서빙 보는 태도가 나쁘고 와인을 권하지 않았다. 아무리 싸게 '할인'해서 먹는 것이지만 디저트 주문을 안 받아 점수가 많이 깎였다. 난, 젤리를 먹을 생각이었다... 음. 빈티가 나서 그랬나? 뜨내기 손님을 받는 관광지 식당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럭 저럭 맛있게 먹었다. 온천욕 다음에 괜찮은 식사를 한 정도면 까탈 부리지 말고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맨날 식당에서 이 지랄을 하니 여자가 도망가지.

지배인이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계산서를 내밀었다. 나도 약간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계산을 치렀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당근 하뽕(일본)이지. 사요나라, 하고 인사한다. 암, 사요나라지. 마추 피추 마을은 관광지답게 숨이 턱턱 막히는 가격을 제시하고는 했다.

아, 그러나 마추 피추...
오늘 저렴하게 한 관광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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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군데를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사서 10불 주고 사서 그중 여섯 군데를 돌았다. 구멍난(폐기된) 학생증을 내밀었지만 25세 이상이라며 할인이 안된단다. 성당 들어가는데 돈을 받는 것에 익숙해 지지 않는다. 중미에서는 즐비하게, 화려한 것들을, 공짜로 봤는데... 남미는 다른가?

꾸스꿰냐,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 중 최고봉에 속한다는 것. 벽돌 이음새에 면도칼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만들었다는 것. 꾸스꼬의 도시 계획을 보니 꾸스꼬의 거리와 건물 배치가 푸마를 닮도록 해 놓았다. 샥샤이후만이 머리에 해당한다면 꾸스꿰냐는 음경 쯤에 위치. 암. 머리만큼 음경은 중요하지. 규모로 보아 그럴게 대단치는 않았다. 그러나 대비는 매우 인상적이다. 몇백 명 안되는 피사로의 부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성당을 지었을 리는 만무하고, 스페냐드 군대의 칼날에 떨었을 잉카인들이 자신의 조상들이 지어놓은 멋진 성을 파괴해서 그 벽돌로 스페냐드식 건물을 지었을 터인데, 그것들과 더러 남아있는 꾸스꿰냐의 기반이 부조화를 이루었다. 형편없이 만든 성당과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만든 성벽이라...

잉카 문명이 지배했던 시기를 살펴보았다. ad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다. 전 세계적으로 그 시절의 건축술을 비교해 보건대, 잉카 건축술이 남다르게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돌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 쯤은 할 수 있다. 건물 벽 마다 약간의 경사를 주었는데(0.5도 가량)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이상하게 만들어 놨는지, 이런 건물을 왜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건물을 짓기 전에 일종의 3차원 설계 조감도를 돌로 만들어 놓고 시작했다는 것. 특이하다고 하는 이유는 진흙으로 만들면 간단한데 왜 돌로 만들었나 하는 점이다. 아니면 돌로 만든 것만 남아있는 것이던지. 잘 만든 것들은 아름답다. 부스러기와 윤곽 밖에 남지 않았지만 꾸스꿰냐는 아름다웠다.

까떼드랄에서 사진 찍다가 걸렸다. 부주의했다. 사방에 사진 찍는 것을 감시하는 짭새가 깔려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날더러 여권을 달라고 한다. 어... 지금 없다고 했다. 이건 명백한 절도 행위이므로 경찰에 가자고 한다. 바쁜데 경찰에는 왜 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 그러면 사진 지우면 될 꺼 아네요. 개중 혼자서 길길이 날뛰는 작자가 있었다. 아아 사진 찍으면 안 되는지 몰랐다. 미안하다. 내가 지우려니까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 염려스러웠던지 자기가 직접 지운다. 성당이 성스럽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걸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찍은 잉카 유물을 찍은 사진은 지우지 않았다. 잉카 유물 찍은 것은 안 지우고 성당의 별볼일 없는 그림들은 지운다? 재산의 값어치를 평가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상황이 안 좋으니 부조리에 항의하지 말고(잉카 유물 사진도 지워야 공평하지 않은가!) 입 다물자. 경찰이 성당 바깥까지 정중하게 안내해 주었다. 다시 말해, 쫓겨났다. 성당 바깥에서는 성당 내부를 찍은 엽서를 버젓이 팔고 있었다. 비웃어야 하는데 민망하기만 하다. 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므로 돌아 다니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까뜨리나 성당에 들어가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관리인에게 들켰다. 굴뚝에 관해 좀 이상한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성당의 역사에 관해 설명해 주려고 했다. 별 관심 없는데... 내 국적을 묻더니 내가 리마에서 왔거나 미국인일 꺼라고 생각했단다. 거짓말. 그래서 그녀에게 시내에 일본 음식점이 있냐고 물었다. 알려준다. 킨 따로 주인은 나를 보더니 대번에 한국인인 줄 알아보았다. 음식이 쥐꼬리만큼 나와 몹시 허전했다. 한국인은 이렇게 먹으면 쓰러진다...

한국 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corea house라고 씌여 있었지만 메뉴에는 중국식, 일식, 페루음식들이 뒤죽 박죽 섞여 있었고 심지어 가라오께도 운영하고 있다. 메뉴를 보고 이게 꼬레아노 라면 맞냐고 몇 번을 확인해서 물으니 그렇다면서 가져온 것이 중국식 완탕 스프였다. 어? 아닌데. 신라면 봉투를 들고온다. 바로 그거라고요! 끓여온 라면에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들어가 있다. 어쨋든 라면에 밥 말아 먹으니 좋다. 고기는 건졌다.

구불구불한 꾸스꼬 거리 모습이 인상적이다. 개중 절반이 레스토랑과 호텔이었다. 해가 질 무렵 산 블라스에서 느적느적 고개 중턱으로 올라가(꾸스꼬의 도시 설계상 푸마의 등 언저리에 해당)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지는 모습을 감상했다. 달은 둥글고 선명했다. 달은 광장에 서성이는 레스토랑 삐끼떼와 그링고 그룹 관광객들과 무력하게 앉아 있는 거지들을 자세히 비춰 주었다.

밤에는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꾸스꼬에서 경험한 여러 아이러니와 부조리 때문이라고 믿는다. 낮에는 쌀쌀하고 잘 때는 어깨가 시렸다.

디즈니가 48시간 이후면 다시 읽을 수 없도록 스스로 망가지는 self destructing dvd를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산소에 노출되면 dvd가 붉은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해 레이저를 차단한다나. 렌탈 회사에 다시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일회용... 훌륭한 기술이다. 빌려서 48시간 이내에 복사하고 원본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조지 부시가 '조지고 부시는' 사람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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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sco -> Urbamba -> Ollantaytambo -> Agua Caliente

마추 픽추를 힘 안 들이고 가장 싸게 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꾸스꼬 부근의 전 유적지를 3.5일 만에 다 돌아볼 수 있는 괜찮은 스케쥴을 '발견'했다. 그것보다 짧은 루트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난 그대로 하지 못한다. 이미 옵티마이징을 할 시기가 지나 버렸다. 꾸스꼬는 페루 관광의 핵심이라 많이들 찾는 곳임에도 최적 루트에 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리마에서부터 만나는 여행자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하긴, 내가 지금 가는 코스는 페루 남부 여행 루트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지.

무슨 무슨 협회의 고산병 적응에 관한 몇 가지 주의점을 읽었다.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1. 물을 많이 마실 것.
2. 탄산 음료를 마시지 말 것. <-- 증세를 악화시킴.
3. 기름기 있는 음식을 피할 것.
4. 코카잎이나 코카잎으로 만든 차를 계속 마실 것.
5. 서서히 운동을 해 나갈 것
6.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을 것.

어떤 멕시코 여행자가 가르쳐 준 고산병 적응에 관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달디 단 캔디를 수시로 복용.

오얀따이땀보에서 예기치 못한 수확을 얻었다. 잉카 시절의 도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저 기차 시간이 남아서 돌아다닌 것 뿐인데... 운이 좋다. 성스러운 계곡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들이 많아 어차피 조용하게 시간 보내기는 글른 곳이었다. 지나가는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하면서...

페루는 투어를 따라가는 편이 안 그런 것 보다 나아 보인다. 가격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도 아니고. 바예스타스 섬이나, 나스카나, 꼴까 계곡 등은 투어가 아니면 도저히 제대로 볼 방법이 없다. 바예스타스 섬이나, 나스카는 투어가 아니면 아예 갈 방법조차 없다. 꾸스꼬 주변의 잉카 유적도 마찬가지다. 왠간히 공부해 오지 않는 한, 이건 정말 심한 돌덩이들이다. 부조가 전혀 없다. 그래서 추측이나 상상이 매우 어렵다. 유적 형태의 기능적인 분류가 일부분 가능한 정도다. 이 지역을 방문할 때 배낭 여행자들이 늘 그렇듯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추천해 줄 수가 없다. 투어가 낫다. 가이드들 대개가 성실하다. 이런 것을 누가 조언해 줬더라면(아니면 게시판에 올리던가) 페루에서 멍청하게 도시를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텐데...

중남미 쪽은 한국 여행객들이 찾는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 같다.

기차를 타니 아구아 깔리엔떼로 가는 배낭 여행자들이 거의 200명 가까이 되었다. 마추 픽추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잉카 트레일은 3박 4일에 140$ 가량 하고 지금 내가 따라온 길은 2박 3일에 50$ 정도 든다. 140$ 가량 들면서 나흘 동안 추위에 벌벌 떨면서 갖은 고생을 하고 마추 픽추를 찾는데, 나처럼 이런저런 트래킹을 많이 해 본 사람에게는 잉카 트레일이 별다른 매력이 없을 것 같다. 여행사를 전전하면서 잉카 트레일의 사진들을 쳐다보다가 안 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을 안 봤으면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사진에는 산뜻한 오솔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과, 떼거지로 모여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음에 안 든다.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해서 오후 3-4시면 캠핑 사이트에 도착하고 그 다음에는 밥 먹고 할 일이 없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덜덜 떠는 것 밖에. 으쓱. 돈 더 들여 더 고생 하겠다는 패기가 하나도 안 부럽다. :)

Colca Canyon &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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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quipa to Cusco

여행기/Peru 2003. 5. 17. 19:11
엊그제 바빠서 미처 적지 못한 것들. Colca Canyon tour에 추가할 것들.

함께 투어에 간 일행은 페루에 정착해 살고 있는 미국인 가족 4명(아들, 딸은 페루인) 25$, 캐나다인 2명 20$, 한국인 1마리 18$, 페루 가족 3명 ?$. 캐나다인들과 한국인만 빼고는 모두 에스빠뇰을 할 줄 아는 관계로 스트레스 받게 에스빠뇰로 자세히 설명하다가 영어로 다시 설명한다. 남들 다 웃은 다음에 웃는 기분 아나?

국립공원을 지나갔다. 길은 내내 비포장이었다. 그 옆으로 아스팔트 길을 내고 있었다. 하하, 나는 운이 좋다. 뻑 가게 멋있는 국립공원이다. 특히 당나귀처럼 신음하는 고물 봉고로 비포장에서 먼지 날리며 달려야 제맛이 날 것 같다. 강수량이 연중 40mm에 불과한, 매우 황량한 동네라 정착해 살고 싶은 기분은 영 들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살만한 동네가 아닌 곳은 종종 멋졌다. 꼴까 계곡과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은 구차하게 주전부리를 떨 것이 아니라 그냥 한가할 때 가서 보면 될 것이다. 자외선이 듬뿍 들어간 햇살로 살균하면서. 구름, 새파란 하늘, 화산, 탁 트인 지평선, 점점이 움직이는 짐승들.


Reserva Nacional Salinas y Aguada Blanca. 앞 산은 El Misti(5822m). 아레뀌빠를 작살냈던 화산. 그 앞에 거의 멸종될 뻔 했던 Vicunya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다

적어놓은 가격은 그들이 투어에 지불한 액수다. 가격 탓인지 우리는 각각 다른 숙소에 묵었다. 페루인 가족과 나는 한 숙소에 묵었다. 수준 차이가 현격하게 났다. 캐나다인 둘과 투어 내내 붙어 다녔는데, 별 이유는 없고 에스빠뇰이 물결치는 투어 차량 안에서 우리 셋먼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잉카 문명에 관해 공부할까 하다가 김이 새 버렸다. 그들이 식용으로 사용한 감자의 종류가 2000종이라는 글도 있고 200종이라는 글도 있었다. 헷갈리잖아. 문제는 그게 아니고 그들이 품종 개량을 시도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떻게 수천년 동안 자기들이 재배하는 주요 농작물을 그렇게 방치해 놓을 수 있을까. 시장에서 본 감자들의 종류가 여전히 가지각색이다. 바퀴가 없었다는 것은 이번에는 부차적인 문제다. 수도사 멘델 이전에도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은 인위적인 교배가 품질 개량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꼴까 계곡은 그런 육종학 실험을 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연간 서늘하고 일정한 기온과 풍부한 수량, 비옥한 토질 등등. 어쩌면 그런 이상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 근심 없이 살다보니까... 모르겠다. 나란 놈은 그런 시시한 것에 토라진다.

중간 중간 다른 투어차를 타고 온 일본인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걔네들 가이드는 설명을 안 해주었단다. 차를 타고 행선지에 도착하면 사진 찍고 멀뚱히 있다가 다시 이동한다고. 그래서 그들에게 잉카 토착인들의 복식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우리 가이드는 아는 것이 많아서 너무 많은 설명을 해 줬다.

우리 팀 가이드는 머리가 벗겨진 인텔리인데 잉카 제국 얘기를 하다가 아레뀌빠의 식민 역사와(초기 피사로의 정복 기지) 현재의 아레뀌빠에 살고 있는 토착 인디헤나(인디언)의 비참한 삶을 얘기했다. 그들은 요즘 물이 없어 원주민끼리 돈을 걷어 50솔에 물탱크 하나를 산다고 한다. 아레뀌빠 시민들의 자존심 얘기도 줄기차게 늘어놓았다. 아레꿰빠는 식민지에 정복당하여 식민 생활에 젖은 페루인들을 멸시했는데, 먹고 살자니 자기들도 서양인들이 가져온 편리한 서구식 생활에 적응하는 등 전통적 이념과 생활의 불일치가 한동안 골이 깊었다나. 그런데 지진이 싹쓸이를 한 후 사정이 변했단다.

우리 안경을 끼고 머리가 벗겨진 인텔리 가이드는 취미생활로 태권도를 하고 있다. 날더러 한국에서도 태권도가 인기있냐고 물었다. 내가 아는 것은 태권도 협회의 뿌리깊은 비리 뿐이었다.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종류의 무술과 구기 종목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지 오래되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데이빗(캐나다인)이 나에게 물었다. 넌 그중 뭘 할 줄 아냐? 아무 것도 못해. 몹시 비웃는다. 당황한 나머지 나를 포함한 한국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태권도를 배우고 살인술도 배우고 개나소나 총질을 다 한다고 말했다. 나한테 M16A1 한 자루만 주면 여기 있는 콘돌들을 한 시간 만에 전부 몰살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말 좋은 사격 표적이라고도 말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몹시 썰렁해졌다. 콘돌이 페루의 국조였던가?

데이빗은 참 대단한 친구다. 한숨도 못자고 지난 밤에 10시간 동안 설사를 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투어 팀의 여자들 앞에서 미소를 띄운 채 재롱을 떨며 그들을 즐겁게 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그 정신 만큼은 본받을만 하다.

캐나다인들을 포함한 우리 아웃사이더(떨거지) 셋은 콘돌을 멍하게 쳐다보는 일이 남자가 할 짓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사실 할 일이 없어서) 1200미터짜리 계곡을 내려 가려다가 경찰한테 걸려서 무안을 당했다. 하긴 그랬다, 우리는 콘돌이 아니라서 떨어지면 상승기류를 탈 수 없을 것이다.

높이 높이 높이 멀리 멀리 멀리 하지만 우아하고 느긋하게. 9시가 지나자 콘돌들이 사라졌다. 콘돌은 어디로 갔나. 잉카인의 비극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시나 노래 제목으로 어울릴 것 같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그런 얘기를 들어서 지금 기억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대머리 인텔리 가이드 아저씨 말처럼 페루인들은 정체성을 잃고 특히나 돈이 한푼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인디헤나의 유아 사망률은 극단적으로 높단다. 페루는 극빈국 중에 하나였다. 잊어먹기 전에 적자. 가이드의 이름은 기예르모다. 그는 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전공을 살려 가이드로 삽질하고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얘기는, 스페니야드에게 개죽음을 당하고 토지를 약탈당한 사람들이 반군을 만들어 그들과 대항하다가 죽어간 얘기다. 그중 한 명은 잡혀서 사지를 말에 묶어 능지처참을 하려고 했는데 잘 찢어지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목을 잘랐다고 한다. 그 찢어지지 않은 남자를 꾸스꼬의 거리 무랄에서 발견했다. 과떼말라의 가엾은 인디오처럼 술과 마약에 쩔어 길거리에 개처럼 나뒹굴지 말고 잉카의 후손들은 잘 해 나가길 빌어줬다.


돌아오는 길에 치바이에서 데모가 있었다. 선생들이 파업하고 학생들이 그들을 밀어줬다. 선생들 봉급 인상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길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

아레끼빠에서 꾸스꼬까지 12시간 걸리는 버스가 실제로는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편하게 가지고 그나마 침대차를 탄 것인데 이 모양이다. 중간 중간 도로를 점거하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때마다 버스가 멎었다. 그때마다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데모를 한 모양이다. 어쩌면 일시를 정해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한 데모인지도 모르겠다. 이 데모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주요 도로 상에 돌을 깔아 차량 통행을 막고 구호를 외친다는 점이다. 투어 이틀하고 20시간 차를 타고 고산병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서 거진 3일째 맛이 간 상태인데 어서 빨리 꾸스꼬에 도착해 발 뻗고 누워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래도 궁금함을 참지 못해 도착하자마자 페루 소식을 뒤져봤지만 별다른 얘기가 없다. 대체 이 나라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가?

버스가 멈춘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벌써 4시간을 기다렸다. 하는 수 없이 지도를 펼치고 gps로 지점을 찍어 대충 위치를 파악했다. 26번 도로와 어떤 도로가 만나는 지점인 것 같다. 한마디로 교통의 요충지인데 여기서 2시간을 더 가야 꾸스꼬가 나올 것이다. 직선 거리는 98km. 버스 앞으로 수십 대의 차량이, 버스 뒤로 또한 수십 대의 차량이 네 시간째 데모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만 더 기다려보고 짐을 버스에서 내려 각개전투를 할 생각이다. 히치라도 해야지 이거야 원.

버스가 움직였다. 다시 선다. 피시식 김이 샌다.

남들이 한 번 쯤은 와 보고 싶어하는 꾸스꼬에 그렇게 간신히, 꾸역꾸역, 돌을 치워가며 도착했다. 데모대는 도로에 깔아 놓은 돌을 치우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하지만 아레끼빠에서 꾸스꼬로 오는 도중에 본 풍경이 오래오래 인상에 남을 것 같다. 엄청나게 커다란 보름달이 평원을 비추는 장관을 넋을 잃고 쳐다 보았다. 잠을 못 잤지만... 아...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정말 운이 좋다.

별 생각 없이 페루에 와서 좋은 것 많이 본다. 멕시코 여행할 때처럼 어리버리 하다가 한 달 보내는 것은 우스울 것 같은 나라다.

꾸스꼬를 페루의 카트만두라고 하던데 도심의 지독한 매연이 카트만두와 정말 똑 같았다. 다른 점? 많다.

고산병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 마떼 데 꼬까(코카잎으로 끓인 차)와 코카잎을 줄기차게 마시고 씹었다. 차 안의 안내양은 내가 시들어 갈 때마다 따뜻한 마떼 데 꼬까를 건네줬다. 아레끼빠 사람들의 친절이 인상에 남는다. 아레끼빠 사람들은 지금까지 만난 페루 사람들과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다른 것 같다.

광장에 있는 INTEJ로 학생증 만들러 가봤다. 만드는 작자가 마추 피추 할인받으려고요? 라고 묻는다. 그런데요? 카드는 만들 수 있지만 꾸스꼬에서는 이 카드로 아무 것도 할인 안 됩니다. 예? 안되요. 예... 안 되는구나. 안 되는데 가지 말까?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랬지.

지쳤다. 만사가 귀찮아서 택시 타고 시내로 들어와 밥부터 먹고 빨래는 론드리에 맡겼다. 수염 안 깍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 걸레같은 옷 뿐만 아니라 마음도 남루해졌다. 지금은 그냥 우라늄 235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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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a Canyon

여행기/Peru 2003. 5. 15. 18:26
9am. 투어 시작. 4800m에서 잠시 휴식. 머리가 아파 줄곳 Coca잎을 씹었다. 한번에 10개 이상은 씹지 말란다. 그래서 20개씩 씹었다. 황홀하다.

3.30pm. Chivay 도착. 꼴까 계곡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계곡이 아니다. 하지만 가이드 설명에 초를 치지는 않았다.

펀치 드렁큰 상태로 작은 마을을 좀비처럼 어슬렁거렸다. 고산에 오르면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은 금방 적응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1.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수가 원래 적다. 빈혈끼가...
2. 운동 부족과 흡연으로 폐활량이 작다. 폐가 망가져서...
3. 대뇌의 산소 소비량이 매우 크다. 머리를 많이 써서...

3항이 유난히 마음에 든다.

고산증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통을 가라 앉히면서 적혈구 숫자가 늘어나길 기다려 보는 수 밖에.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는 관계로(앞으로도 주욱) 내게는 코카잎이 꼭 필요하다. 원츄~

그나저나 4000미터만 넘으면 한결같이 화성같아 보일 꺼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꼴까 계곡 근처는 좀 달랐다. windows xp 초기 바탕화면 같은 곳이었다.

5am. 기상. 아침. 코카잎을 너무 많이 먹어 밤부터 10시간을 줄곳 잤다.
6am. Cruz del Condor 방문.

콘돌이 1200미터 깊이의 계곡 사이에서 상승기류를 타고 활공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스프링처럼 빙글빙글 돌며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꼬리 날개를 좌우로 비틀어 방향을 조절했다. 갈색의 새끼들은 이곳에서 활공 연습을 한다고...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잉카 전기 시대에 두 종족이 이 꼴까 계곡으로 내려왔는데 하나는 콘헤드고 하나는 플랫헤드였단다. 콘헤드 족은 뾰족한 화산에서 살았고 플랫헤드족은 평평한 분화구가 있는 화산에서 살았는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기 위해서 어렸을 적부터 머리를 모자로 묶어 머리 모양을 완성한단다.

참... 멋진 부족들이다. 피사로가 꾸스꼬에서 산맥을 넘어와 그들을 몰살시켰다. 그래서 콘헤드와 플랫헤드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5.30pm. 아레뀌빠로 돌아왔다. 꾸스꼬행 버스표를 예약했다. 한 시간 후에 꾸스꼬로 떠난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

나스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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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quipa

여행기/Peru 2003. 5. 13. 17:45
Nazca Lines Over Flight tour는 아침 8시에 시작해서 딱 한 시간 만에 끝났다. 공항 픽업, 3인승 경비행기 35분, 다시 시내로. 예쁜 일본 아가씨가 함께 해서 즐겁게 오버했다. 그나저나 너무 일찍 끝나서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다. Arequipa행 버스는 저녁 8시에 떠난다. 체크아웃한 숙소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세 시간쯤 잤다.

40년 동안 나스카 라인을 연구한 마리아 라이히 Maria Leiche 여사의 주장에 따르면, 나스카 라인은 별자리를 나타낸다. 몽키가 큰곰자리하고 같다나? 그 그림들은 나스카 사람들이 심심해서 그린 것 같다. 왠일인지 학계는 인류 문명과 예술을 발전시켜 온 가장 큰 동인인 '심심함'을 줄곳 무시했다.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다가 시작한 것들.

예술이 죽여주는 점은 처음에는 심심해서 했는데, 하다 보니까 의미와 추상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찍어 놓은 나스카 사진은 맨눈으로 판독이 불가능해 이미징 작업이 필요해서 아직 안 올렸다. 미스테리 스럽지는 않았다. 심심해서 만든 티가 확연히 났다.

라이히 여사는 1998년에 죽었는데 올해는 라이히 여사의 100년째 탄신을 맞아 이런 저런 행사를 일주일 동안 하는 모양이다. 행사, 축제는 가능한 피해 다니는 형편이라 뭘 하는지 관심은 없지만.

LP를 보고 들어간 파스타 집에서 맨 스파게티를 시켜 먹었다. 그게 가장 쌌으니까. 맨 스파게티에 약간의 소금과 후추와 버터 가루만 뿌린 것 임에도 맛있다. 오랫만에 잘 만들고 제대로 삶은 스파게티를 먹어본다.

책 만드는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면 차라리 이 사이트를 화석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읽기나 할까? 재미없고 쓸데없이 긴 여행기로 텍스트의 쓴 맛을 보여주지.

아레뀌빠까지 9시간. 버스는 좋았지만 자기엔 매우 불편했다. 터미널에서 바로 꼴까 계곡으로 가려다가 감기 기운 때문에 하루 쉬기로 했다. 음... 가지 말까? 가봤자 별 것도 없을텐데. 콘돌 몇 마리 보고 1200m 짜리 계곡을 잠시 걸어다니는 것이 전부다. 3-4000미터고, 추울테고, 가면 1-2일 묵어야 할 것이다. 교통이 불편하다.

평생에 한 번 와볼까 말까 한 곳이니 빼먹지 않고 다 가는 여행자와 내가 다른 점은 그런 것에 별 미련이 없다는 점이다. 여행 중 포기를 잘 했다. 귀찮거나 힘들어서.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고, 실패란 바느질할 때나 쓰는 말이다." -- 어느 집의 가훈.

가훈이 왜 저 모양일까. 배추가 없어서 꼴까 계곡 투어를 신청했다. 처음 들어간 여행사에서 가격도 묻지 않고 신청했다. 아줌마가 믿음직스러워서. 18$. 14시간 왕복 교통편, 하룻밤 숙박, 아침식사, 입장료 포함.

'오늘의 메뉴'(Menu del dia)는 리마, 삐스꼬, 나스까를 거치면서 점점 싸지더니 아레뀌빠에서는 2솔(0.5$)에 새우 스프와 오징어 튀김, 샐러드, 밥, 음료수가 나왔다.

페루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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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 Ballestas

여행기/Peru 2003. 5. 12. 14:18
Isla Ballestas 투어 참가. 여행사를 돌며 깎아보려고 애 쓰다가 그냥 40솔 짜리로. 거의 12$ 가량 되는 투어. 차 타고 배 타고 한 시간쯤 섬을 빙빙 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인데 왜 이렇게 비싼가. 추워 죽겠구먼. 펭귄 한 마리, 펠리컨 잔뜩, 그리고 바다 사자의 군락지를 보고 왔다. 바다 사자들이 떼거지로 모여 목청껏 소리지르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물개는 컹컹 짖지만 바다 사자는 으르렁거린다. 그 차이다. [바다사자의 울음 소리]


바에스따스 섬 가기 전에 빠라까스 반도에서 깐델라브라라는 이상한 그림을 목격했다. 모터 소리에 파묻혀 가이드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모래밭에 그려진 저 그림은 2000년전 것이란다. 황당했다. 내가 잘못 들은건가?

바에스따스 섬에는 투어 외에는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뭐 원하는 장관을 구경했으니 40솔이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차 시간이 남아 시장 구경 하다가 시장통에서 세비체를 먹었다. 멸치(anchovy)와 조갯살, 문어를 잘라 야채와 레몬즙으로 버무려놨다. 거기에 푹 끓인 마 비슷한 식물이 곁들여져 나왔다. 맛있다.

버스를 탔다. 차가운 사막이다.

중남미 오기 전에는 그 나라가 그 나라 같았는데, 바로 옆 나라라도 워낙 다른 것이 많아 마치 동남아시아 인접국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듯 했다. 동남아시아는 잘 지내고 있을까?

5시. 일찌감치 해가 지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반갑게 아우성치는 삐끼들, 10솔을 부르는 삐끼가 있어 미끼를 물은 붕어처럼 나도 모르게 끌려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르는 숙소 가격은 10솔로 한결 같았다. 나스카라인 보려면 항공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담합이라도 한 것인지 40$로 일정했다. 숙소 삐끼 말로는 독점이란다. 삐끼 말은 안 믿는다. 날더로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며(feliz mama dia; good mother day쯤 되겠지. 이젠 그냥 몰라도 찍는다) 가격 다 똑같으니까 어서 계약하고 자길 집에 보내달라며 사정한다. 그를 자리에 앉혀두고 만일 다른 곳도 가격이 다 똑같으면 10분 후에 돌아와서 당신 껄로 해 주겠다고 말하고 거리로 나왔다. 45$ 부르는 도둑놈들 투성이였다. 한 시간쯤 느적느적 돌며 대여섯 군데를 둘러보고 돌아보니 가격이 다 그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물어봤다. 자기들도 다 알아봤단다. 걔들도 40$. 어? 그런가? 숙소로 돌아오니 삐끼가 처량한 표정으로 아직도 앉아 있다. 정성이 갸륵해서 계약했다. 입이 찢어지게 좋아한다.

밥 먹으러 숙소를 나오니 누군가 나를 잡는다. 아까 들렀던 사무실인데 30$에 해달라고 우기다가 영 협상이 안되서 그냥 나온 곳이다. 그가 이제 와서 30$에 해 주겠단다. 한숨이 나왔다. 진작 그럴 것이지. 계약 다 해놓으니까...

짱께집에서 5솔 짜리 식사를 주문, 또 다시 엄청난 양의 접시를 보고 기겁했다. 거기다가 620ml짜리 맥주까지 시켜 놨으니... 맛이 없으면 남기겠지만... 그렇지도 않고... 꾸역꾸역 먹고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갈수록 운동량은 적어지고 식사량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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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co

여행기/Peru 2003. 5. 11. 12:13
날씨가 쌀쌀하다. 날이 흐리다.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위험하다는 곳을 골라 다녔지만 엘 살바도르에서처럼 나를 주시하는 부랑아의 눈길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저녁 9시가 넘었지만 안전하다. 새벽애는 거리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했다.

귤 1kg가 1솔(345원), 점심 한 끼가 3.5솔(1200원) 가량. 꼬스따 리까나 빠나마보다 싸다. 두 나라는 이해할 수 없이 물가가 비쌌다. 지들이 미국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그 나라들 밥값이 비싼 것은 오로지 미국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페루도 후지모리가 대통령 하던 시절에 떼거지로 이민 온 일본인들 때문에 물가가 상당히 오른 편이라고 들었다. 몇몇은 그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극장에서 x-men 2를 봤다. 마치 서커스 단원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연습한 다음 한 가지씩 묘기를 부리러 나온 것 같았다. 스토리의 밀도가 희박하다. 잘들 놀고 있구나 싶었다. 마그네토의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자비에르 박사에게 그런 대단한 능력이 진즉부터 있었다면 성능이 떨어지는 보통 인간들을 싹쓸이 해 버렸어야 한다. make it so 해 버리라고 피카드. 정신병에 걸린 호머 사피엔스는 6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도가 안 보인다.

방법 개념도를 그렸다. 멕시코에서 손으로 그려 보고 두 번째로 그리는 셈이다. 작전지도를 그리고 나니 루트가 한 눈에 들어왔다. 페루 북부(아마존과 안데스의 고봉)는 제꼈기 때문에 간단해서 좋다. 15일 정도면 관광을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리마에서 삐스꼬로 이동. 사막과 해변 한 가운데로 길이 나 있다. pan-america highway. 적도 부근이고 해변 근처인데(따라서 고도가 100m가 채 안되는데) 날씨가 이렇게 차가운 것은 그... 악명 높은 해류의 영향 때문인가? El Nin~o. 에스빠뇰을 아주 조금(little, poco)이나마 이해하기 때문에 니뇨가 작은 사내아이를 뜻하리라고 짐작한다. 엘 니뇨는 7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고(7년 짜리 어린애) 그 다음 해에는 La Nin~a(작은 소녀)가 이어진다. 엘 니뇨와 라 니냐는 말 그대로 집안(페루)의 재앙이다. 엘 니뇨 때문에 사막이 암처럼 자라나는 것 같다. 나일강을 따라 이어진 누비아의 사막이 떠올랐다. 그 사막은 자존심이 있어 보였다.

삐스꼬에 도착하자 시큼한 생선 냄새가 사방에서 풍겨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는데 내 앞에 있는 아저씨가 작성한 카드를 보니 corea del sur(남한)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분이세요? 고개를 끄떡인다. 그 아저씨도 나처럼 사람 만나는 일에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하다. 같은 숙소에 묵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서 다시 만나지 않았다. 피차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인 것 같다.

빠라까스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좀 일찍 도착했더라면 물개가 왕창 있는 국립공원 뒷편에 가 볼 생각이었는데 버스 기사가 이 시간에 가면 별로 안 좋을 꺼라고 말렸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반도를 돌다가 나를 내려준다. 친절하다. 하는 수 없이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다가온 거지와 얘기했다. 그는 삐스꼬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들이 자기를 미친 놈 취급한다고 말한다. 무슨 사고가 나서 삐스꼬에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횡설수설이다. 물개 얘길 하다말고 갑자기 펭귄으로 바뀌었다. 거지가 어떻게 그리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나. 미쳤다고 생각할 밖에. 그와 오랜 시간 옥신각신 하다가 내가 1솔을 동냥하고 그가 리마에서 나를 재워 주기로 합의를 봤다. 펠리컨들이 자기 배인 양 어선에 올라서서 저녁식사로 무슨 생선을 먹을까 골몰한다. 태평양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삐스꼬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세비체를 먹을까 했는데 음... 이 집에는 없네? 아로스 꼰 마리스꼬스. 1.5불로 엄청난 양의 밥과 샐러드가 나와 어안이 벙벙했다. 여러 종류의 어패류가 밥 속에 파묻혀 있다. 페루 사람들은 대식가인가? 며칠 동안 밥 양이 너무 많아 남기기도 뭣하고, 좀 난처했다. 식당을 나와 배가 무거워 펭귄처럼 걸었다.

pc방을 기웃거리다가 마침 컴퓨터를 조립하는 친구가 보여 펭귄처럼 걸어가 windows xp cd를 구워달라고 부탁했다. 12솔. 약 3달라 가량? 비싸게 받아먹는군. 으쓱. 어쩌겠나 아쉬운 사람이 손 벌려야지. 2개월 전 집을 나올 때 빅토리녹스 칼과 xp cd를 두고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얼간이인 것 같다.

원숭이 우리에 컴퓨터를 넣어두고 어떤 글자를 타이핑하나 살펴 보았단다. 원숭이들은 S를 유난히 좋아했다더라. 서칭 엔진의 검색 1위를 차지하는 단어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S로 시작했다. 결론: 인류의 90% 이상은 원숭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별 진전이 없어 보인다. :)

오아시스 도시인 Ica에 가볼까?
내일 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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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able ego

여행기/Peru 2003. 5. 9. 17:41
엘 도라도. 빠나마 시티의 어떤 구역. 빠나마 시티가 줄곳 발전하면서 시 외곽으로 날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가다가 생긴 곳. 내게 전해질 소포가 보관되어 있어야 할 곳. 엘 도라도를 들락거리면서 FlashPlus를 받을 수 있을 꺼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2주 전에 한국의 컴퓨터부품 쇼핑업체를 통해 플래시플러스를 전자결제로 구매하고 지인에게 부탁해 우편으로 파나마로 부쳐달라고 했다. 그동안 줄곳 국경을 넘나들고 있어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하는 것을 잊은 것이 잘못이다.

1. 빠나마 시티에서 우편을 받으려면 지역을 반드시 지정해야 한다. poste restante 서비스 우체국이 하나가 아니다. 가이드북에서 말한 main post office는 그 자리에 없다.
2. 소포는 관세부과를 심사하므로 플래시플러스를 종이로 싸서 우편봉투에 넣어 부쳐야 한다.
3. 일반 우편 서비스는 3-5일 안에 처리된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더 많은 시일이 걸릴 수 있으므로 fedex나 dhl을 사용했어야 한다.

그런데 '부품이 도착하면 그걸 바로 파나마의 이 주소로 부쳐주기 바란다' 라는 SMS 메시지만 달랑 남기고 말았다. 주도면밀하게 계획했더라면 그 부속품을 제때 수신했을 것이다. 왜 주도면밀하지 못했을까. 1항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2항,3항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가이드북만 보고 빠나마에서 영어가 통하리라 짐작하고 만일 수신할 수 없으면 추적이라도 가능하겠지 싶었는데(지정한 곳으로 재전송 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니까) 우체국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할머니였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다/안했다/난처해했다. 어떻게 그들에게 복잡한 내용을 에스빠뇰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없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은, 내 이름은 이러한데 우편을 찾고 싶다. 당신이 안되면 영어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담당자를 불러달라. 아니다. 그건 우편이 아니라 소포다. 소포란 이렇게 생긴 것을 말한다. 그림. 한국에서(그림) 누군가가(그림) 소포를(그림) 나에게(그림) 보냈다(그림). 지금 그 소포는 관세부과 심사(난해한 그림) 중인가. 그렇다면 세관(매우 난해한 그림)은 어디인가. 아니면 다른 우체국(그림을 그린 나조차도 이해가 잘 안가는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가?

2-3일 동안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니며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부품값과 운송료 50$과 이틀을 고스란히 허공에 날렸다. 아아... 삽질로 보낸 아까운 내 청춘.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플래시플러스가 없으면 한번 리셋된 pda는 기본적인 기능 밖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읽을 책이 단 한 권도 없는 난처한 상태가 되었다. 요즘은 늘 그런 상태다. 앞으로는 해변에서 가장 재미없는 책을 골라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재미없는 책이 없으니까 멀뚱멀뚱 있다가 그냥 갑자기 잔다. 요즘 장거리 버스에서 하는 짓이 그렇다. 자기 전과 깬 후가 이어졌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순탄하고 연속적으로.

그나저나 우편을 집에서 수신하지 않고 poste restante(빠나마에서는 entrega general이라고 불렀다) 서비스로 우체국의 사서함을 통해 받는다는 것이 의외로 낭만적으로 보였다. 오늘 편지가 왔나 우체국을 방문해 안 왔으면 다음날 다시 방문하고... 방문하고... 나들이할 때마다 혹시나 하고 방문하고... 마치 떠나간 님이 보낸 편지가 오늘은 도착하지 않았을까, 저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혹시 내 편지를 지나치고 못본 것은 아닐까 애가 타는 심정으로...

캬...
내가 그랬지.
애가 탔지.

항공권을 구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이드북의 페루 페이지조차 들춰보지 않았다. 그대신 스포츠 투데이의 만화와 작문 실력이 출중한 굿데이의 연애란을 낄낄거리며 쳐다보았다. 굿데이를 좆데이라고들 하던데 한국 3류 연애 가십 언론의 꽃 중의 꽃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런 신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기업으로 넘어간 뒤 매우 한심해졌다는 리마 국제 공항에 내리면 삐끼들이 반겨준다는 말을 들었다. 미라플로레스행 택시를 타면 된다나. 그 와중에 잡음이 좀 있을테지만 평소처럼 인상 쓰고 악 쓰다 보면 별일 없이 순탄하게 풀리는 것 같다.

충전기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동안 사진을 줄곳 찍지 못했다. 충전기 수리를 맡긴 작자에게 디지탈 카메라 수리까지 맡길 껄 그랬나? 어디를 고치면 멀쩡해지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여태 안 고치고 있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사실 사진 찍기 귀찮아서 며칠은 배낭에서 사진기를 꺼내지 않았다.

Costa Rica 사진
Panama 사진

서울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어줄까 했는데 오후만 되면 문을 닫았다. 빠나마시티는 조금 색다른 국제도시였다. panamian authentic cousine이 있기나 한건지 의심스러운, 다국적군같은 부페 식단에 익숙해지자마자 떠날 때가 되었다. 생선은 신선하고 스프는 야릇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야채와 돼지고기 비계를 함께 오랫동안 고아 만든 스튜인지 스프인지(그들은 스프라고 한다) 알 수 없는 음식이 특히 그랬다. 비계가 느끼하지 않고 젤라틴처럼 쫄깃하고 맛있다. 고수가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스프맛이 제대로 안 났을 것이다. 싼 음식점임에도(이름 있는 음식점이었지만) 훌륭하다.

-*-

교통체증 때문에 공항까지 가는데 1시간에서 3시간까지 걸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찌감치 일어났다. 한시 반에 자서 다섯시에 일어났다. 씻고 어젯밤 수퍼에서 산 빵과 비스켓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틀 동안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잤다. 스스로가 바보스러웠다. 에어컨을 끄고 자면 되는데. 입김이 서린다.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갔다. 도로 중간에 서서 지나가는 버스를 세웠다. 도로가 엉망이고 버스 정류장 표시는 있으나 마나 였다. 아무나, 아무데서나 세웠다. 이점은 마음에 든다. 공항까지 1시간 30분 걸렸다. 아침인데도 땀에 절었다.

출국 수속할 때 파나마 출국세 20$와 페루 입국세 15$를 내고 나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검문대를 통과하다가 경찰이 라이터 있냐고 묻길래 엉겁결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모처럼 라이터를 담배곽 안에 잘 숨겨놨는데 빼앗겼다. 한번도 뺏긴 적이 없었는데...

비행기가 비구름 위로 날아올랐다. 비행기나 시내버스나 요즘은 그게 그거였다. 멀뚱멀뚱 하다가 잠이 들었다. 가이드북을 뒤적여 페루에 관해 뭣 좀 알아봐야 하는데 정신이 딴데 가 있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출국장으로 나오니 막막하다. atm에서 돈을 찾다가 300솔(대략 90불)을 찾는다는 것이 300달러를 인출했다. atm에 머리를 한 번 박은 다음 추가로 300솔을 인출하고 잔돈을 거스를 겸 인터넷으로 숙소를 뒤져봤지만 없다. 기껏 돈 들여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환율을 점검해보지 않고 일어섰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정신이 구름 위로 올라가 있는 걸까. 한숨 한 번 쉬고 출국장을 나왔다.

택시 기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나를 둘러쌌다. 오..예... 정신이 번쩍 난다. 처음 가 보는 곳에서 이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 힘이 솟고 여행할 맛이 난다. 오늘 한 바보짓을 만회할 기회다. 그들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쏘이 데 꼬레아. 꼬레아 수르. 티코, 꼬레아!(난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남한이라고요. 아저씨들 몰고 있는 티코가 한국제에요.) 티코는 남자라는 뜻도 있었다. 꼬스따 리까인들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티코라고 말했다. 술집에서 술 마시고 껄껄 웃으며 소란을 피우는 그들은 정말 남자스러웠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티코 택시 기사였다. -_-; 그런데 난 돈이 없어서 버스를 탈 꺼에요. 그리고 나서 평소에 잘 짓고 다니는 저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가락질 해서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가르쳐준다. 왜들 이러나. 이러면 안되지. 택시 밖에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야지. 삐끼 교범 1장. 먹이감의 한정된 시야와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고립된 상황을 조장한다.

음. 버스라? 버스는 관두자. 스스로의 바보짓에 의기소침한 나를 행복하게 해준 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인도에서나 하던 경매를 시작했다. 30초도 안 되어 가격이 죽죽 떨어진다. 10불에서 20솔(5.76$)까지 떨어졌다. 손가락으로 한 아저씨를 집어서 얼마? 라고 물었다. 20! 노! 아저씬 얼마? 15! 그러면 안되지 아저씨. 10 없어요? 10을 부르자 모두들 야유를 던진다. 한 용감한 아저씨가 13을 소리쳤다. 괜찮을 것 같아서 오케이 했다. 열받은 한 아저씨가 10에 해주겠다고 나선다. 뒤에서 다른 기사 아저씨가 찌른다. 저거 10달러야 10달러. 아무래도 10은 무리인가보다. 13이면 3.74$ 가량인데... 제대로 한건가 모르겠다.

가방을 티코 뒷자석에 던지자 차가 출렁거린다. 이제 차에 올라 제 2 라운드를 시작해야지. 아저씨가 중간에 잔대가리를 굴려보려고 한다. 기름값 좀 줘. 푸하하하. 그럴 줄 알았지요. 드리지요 네. 돈을 줬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기름을 넣자마자 잔돈을 그 자리에서 주려고 한다. 어? 사기 쳐야 하는데? 공항 이용료가 택시비에 포함되지 않았다거나 짐값은 별도라거나 톨게이트 통과료를 내야 하고 잔돈 없어서 나중에 준다고 말해야 하는데? 안 그럼 맥 빠지는데? 페루에 관해 여행자들로부터 내가 들은 얘기는 어떻게 실랑이를 벌였고 어떻게 사기를 당하고 어떻게 도둑질을 당했는가 하는 얘기 뿐이었다.

잔돈 계산을 못해 쩔쩔매는 아저씨의 손바닥에서 필요한 만큼 집어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인도에서 배운 것 같다. 좋든 싫든 인도에서 굴러먹은 것 때문에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데도 여행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상황이 손바닥 보듯 늘 뻔하다.

차가 멈추면 시동이 꺼진다. 그래서 신호등 정차 후에는 번번이 시동을 다시 건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그 아저씨와 즐겁게 얘기했다. 페루가 좋아질 것 같다.

미라플로레스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미라플로레스로 안 가기로 했었다. 그래서 시내로 들어왔는데 의외로 분위기가 좋다. 더 볼 것도 없이 마치 길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번도 안 헤메고 숙소를 잡았다. 싱글 6$. 양쪽 벽에 라파엘 풍의 아도니스(?) 그림이 걸려있는, 그럭저럭 괜찮은 아담한 방이다.


WinHEC 컨퍼런스에서 빌 게이츠가 오버를 좀 한 것 같다. 참가자들은 누군가 빌 게이츠를 해킹해서 새로 프로그래밍한 것 아니냐고 야유를 던졌다. 게이츠가 거진 맥과 비슷한 컨셉(펀 컴퓨팅, 굿 룩스)을 들고 나왔다. 낯설지 않다. 게이츠는 10여년 전부터 맨 머신 인터페이스에 관해서는 종종 이성을 잃곤 했다. 맨 머신 인터페이스와 상관있는 것중에, 무선랜을 이용해서 화장실에서 컴퓨팅을 하도록 만들어보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변비 걸린다고. 마오쩌뚱도 모르나? 천한 것들...

빌 게이츠가 불쌍해 보이는 것은 그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작자임에도(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천할 의지와 돈도 있다) 그가 가진 말쑥한 댄디 이미지에 가려져 아무도 그를 제정신이라고 믿어주지 않는데 있다. 솔직히 말해서 컨퍼런스에서 윈도우즈의 보안 따위의 정 떨어지는 얘기를 하면 속으로 짜증이 나지는 않았을까? 그가 보이는 정열은 어쩌면 그가 망쳐놓은 이상적인 컴퓨팅 환경에 대한 원죄 의식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의 방법이 재수없어 보였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10년 전에 일어났어야 했을 인터페이스 혁명을 그가 저승으로 돌아가기 전에 제대로 완수 해 보길 바란다. 인터페이스는 변해야 한다. 컴퓨터와의 인터랙션 속도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점 때문에 늘 짜증이 났다. 이 지긋지긋한 마우스, 이 지긋지긋한 키보드...

blog는 점점 '박진감 넘치는 소설'이 되어가고 있고 앞으로는 점점 더 심해질 것 같다. 이전에는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라에드라는 친구의 글이 블로거들을 바글바글 끓게 했다면 이번에는 이사벨 V.라는 정략결혼에 희생된 어느 여자가 쫓기는 스토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 뭐 둘 다 재미가 없어서 안 보지만... 그런 거 말고 NSA 전직 직원이 쓴 콘돌같은 스토리가(사실이건 아니건) 블로그에 등장하는 날을 고대한다. 나를 포함하여, 남들의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는 시시껄렁한 일상에서 잔잔한 감동 따위의 평소 지겨워 하는 종류를 다시 보길 바라지는 않았다. 그것 보다는 액션과 모험, 위험과 로맨스, 그리고 하이테크와 죄악이 병존하며 활활 타오르는 블로그가 등장하길 고대했다.

활활 타오르는 블로그라.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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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 blues

여행기/Panama 2003. 5. 7. 15:36
킁킁. 어디서 한국인 냄새가 나는군. 혹시 중국인 냄새가 아닐까? 그러다가 거리에서 나부끼고 있는 태극기를 보고 놀랐다. '서울식당'이라는 간판도 보였다. 좀 살만하다 싶은 동네다 싶으면 한국인이 없을 리가 없지. 두세 시간 어디라도 외딴 거리를 걸어보면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 저것 뒤져보니 파나마 시티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기좋은 나라 3위 안에 든단다.

반바지 입기를 꺼리는 편인데 옷들이 땀에 절어 할 수 없이 그걸 입고 돌아다녔다. 공원에 앉아 있으니까 말을 걸어오는 곱상한 녀석이 있었다. 내 다리를 보더니 걷는 근육이 아니라 뛰는 근육이라고 말한다. 음? 난 뛴 적이 없는데. 그가 해변을 따라가는 조깅 코스를 소개해 주면서 다리를 만졌다. 잘 얘기하다가 기분이 언짢아 져서 너 호모섹슈얼이냐 그랬더니 왜요? 그러면 안되나요?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쳐다본다. 어휴... 그러면 안되지 자식아... 녀석의 팔을 아프게 꽉 쥐고 여자는 그냥 슬며시 피하는 정도지만 남자는 싫다고 말했다. 자기는 여자도 좋고 남자도 좋단다. 그러면서 되레 설교를 늘어 놓고는 클럽에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꼬셨다. 마침 어제 본 세구리가드(사설 경호원)이 아는 척을 해서 그를 벤치에 앉혔다. 셋이 앉으니까 벤치가 좁다. 세구리가드가 호머더러 뭐라고 비웃는 듯한 호통을 지르니까 그가 일어서서 사라진다. 담배 한 대 내놔 봐. 세구리가드한테 담배를 얻고 내것을 줬다. 내껀 켄트 라이트인데 비싼거다. 이렇듯이 난 거지는 아니다. 나한테 호모가 꼬이는 것이 우스운지 낄낄 웃더니 저 녀석들은 도둑이라고 말한다. 그래 보이진 않았다. 어느 대도시에나 널려있는 외롭고 쓸쓸한 '여자' 중에 하나였을 것 같다.

번개가 심하게 치더니 비가 왔다. 어제와는 달리 그리 심하진 않았다. 비를 맞으며 걸었다. 1.25$ 짜리 식사를 했다. 시장에서 간간히 25센트짜리 식사를 보긴 했지만 튀긴 바나나와 쌀밥 한줌이라 그거 먹어서는 가다가 멎을 것 같았다.

사람들 표정이 무뚝뚝하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은 표정이 대체 이 모양이다.

여행사에 들러 항공권을 예매했다. 내일 항공권을 손에 쥘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학생증을 내밀고 10% 할인된 가격의 항공권을 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학생증이 가짜인 것이 탄로날 것 같다. 40불 아끼려다가 가짜 학생증을 빼앗길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40불이면 큰 돈이라 학생증을 내밀고 도박을 했다. 지금은 항공권 가격이 300불이었는지 400불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심지어 항공권을 구매한 여행사 이름이나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사 아가씨가 예쁘고 수줍었던 것만 기억났다. 여행사를 이리저리 알아본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첫번째 여행사에 들어가서 덜컥 구매의사를 밝혔다. 경험상, 여행사별 항공권의 가격 차이가 5-10불 정도 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물론 아주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싶어도 알고 싶어하는 본능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내 마음속 구석탱이 어딘가에서 이 정도면 적정가격이다 라고 푸른 불이 들어왔었다. 내일 항공권을 손에 쥐면 웃을 것이다. 아가씨에게 25센트 짜리 사탕 하나 줘야지...

다음날 여행사를 찾아가니 돈을 돌려준다. 구멍을 뚫어놓은 가짜 국제학생증과 함께. 어... 이거... 15불이나 주고 만든건데... 어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 여행사를 나왔다. 원래 304$을 돌려줘야 하는데 학생증에 구멍을 내서 미안했는지 307$을 돌려줬다. 3$ 먹었다. 다른 여행사 가서 예매했다. 학생증을 안 돌려줄 것 같다는 예감은 들었지만...

오늘도 우체국을 뺑뺑이 돌았다. 물건은 오지 않았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지만 마음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광장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거지들이 지나다니며 담배를 달라고 하거나(없어 새꺄) 호모가 옆에 앉아 다리를 쓰다듬거나 가끔은 예쁜 아가씨들이 지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모자 가장자리로 빗물이 뭉쳐 떨어졌다. 건물 처마에서 누군가 손짓한다. 이리와서 비를 피하란다. 그에게 머리 깎는 시늉을 하면서 이발소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5불 주고 머리를 깎았다. 한국에 잠깐 있을 때 미장원 아가씨가 여행 중에 머리 깎지 말고 돌아와서 깎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자기가 깎아 주겠다고. 터키 괴뢰메에서 깎은 머리 모양이 영 아니었나 보다. 이발사는 마쵸 스타일로 깎아줬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사진 찍고 페인트 샵으로 이리저리 노력을 기울여 봤지만 어떻게 해도 뽀사시가 나오지 않았다. 베트남 여행중에는 장동건 소리까지 들었는데 이렇게 망가지고 얼굴이 굳었구나... 생각하다가 얼굴이 더 굳어지고 말았다. 호모같은 자식이 집적대도 인상 긁지 말아야하나?

호주제가 폐지 된다니 기쁘다. 여성에게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법/제도는 다 뜯어고쳐야 한다. 완전한 평등이 실현되어야 나같은 여성 차별 주의자가 상황에 굴절되지 않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나저나 '유림' 분들이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 같던데... 흠... 원래는 조선일보 전용 문구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또라이들이 소신을 가지고 있을 때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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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 City

여행기/Panama 2003. 5. 6. 14:49
가물에 콩나듯이 가끔 말 붙여주는 현지인들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어 심심하다. 담배가 있지만 거리에서 거지한테 담배를 얻어 피웠다. 그만큼 나도 줬다. 홍콩인들의 흡연 사스 예방론이라고 있다. '생고기는 쉽게 썩지만 훈제고기는 그렇지 않다'

깨보니 12시. 거리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공쳤다.

파나마시티는 우체국에서 집으로 우편이나 소포를 배달해주지 않는다. 우체국 안에 사서함을 개설해서 그리로 받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거리가 엉망진창이다. 번지나 건물 번호 같은 것이 아예 없었다. 길 이름이 두 블럭마다 바뀌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길 이름을 잘 모른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종단할 수 있는 길을 다섯 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오락가락했다. 비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물어물어 우체국을 찾아 거의 시 전역을 돌아다녔다. 옷이 흠뻑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체국 네 군데를 돌았다. 물건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세관을 아직 통과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세관이라...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피나마 이외의 나라에서는 도난 사고가 잦아 받을 가능성이 낮았다. 이건 일종의 도박이다. 최장 3-4일은 더 머물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될 것 같다.

비가 오니 우울하다. 꼬스따 리까부터 꼬미다 부페가 보여 한두 번 들락거렸다. 2-3불 정도면 먹을만한 양이 되었다. 밥 먹으니 기분이 그나마 나아졌다.

배터리까지 맛이 가는 것 같다. 충전을 시키면 1/3 정도 충전되다 말았다. 충전기, 충전지 어느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다. pda가 다시 맛이 갔다. 기계들이 하나둘 맛이 가면서 나를 희롱하는 것 같다. 충전지를 뜯었다. 인덕터스가 맛이 갔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파상을 찾았다. 인두와 납을 빌려달라고 하니까 그가 불쑥 영어로 말한다. 네 직업이 뭔지 알겠어. 하지만 이건 내 프로페션이야. 기술자들이란... 그에게 어디를 고칠지 알려줬다.

무슨 놈에 여행이 rpg 게임의 search and quest가 되가는 것 같다. 당면 과제: 충전기라는 아이템을 수리할 것. 우체국을 찾아낼 것. 항공사에서 적당한 가격의 항공권을 알아볼 것. 페루 자료 수집.

길거리에서 대형 x-men 2 포스터를 보았다. 극장 이름이나 위치가 적혀있지 않다. 흠.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키는군. 또다른 퀘스특 되려나. 거리 이름도, 극장 이름도, 극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극장을 물어 찾아내서 한번 보고 싶다.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물가가 상당히 비싸다. 그런데 인터넷은 시간당 0.5$ 밖에 안 한다. 거리에서 조그만 과일 쥬스 한 잔 마시는 가격이다. 중미 전역에서 가장 싸다. 호텔은 10불 정도면 묵을만한 곳들이 많다. 내일쯤 더 좋은 호텔로 옮겨볼 생각이다. 2불 더 주고 욕실과 에어컨이 달린 곳으로. 이럴 때 호강해보지 언제 호강한다냐... 나중에 예산 정리하면서는, 빠나마시티는 숙소값이 비싸서 어쩔 수가 없었지. 라고 자조하면 될 것 같다. 다음 날 호텔을 옮겼다. 전등에서 전기를 끌어썼다. 전화기까지 놓여 있었다. 글쎄.. isp만 알면... 인터넷을... 침대에 누워...

파나마에 왔는데 운하를 안 보고 갈 수 있냐?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운하 보려면 미라플로레스 락스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중간에 내려 걸어가면 된다. 쉽다. 운하는 이미 tv로 많이 봤다. 옛날 옛날에 자금성 만들었던 중국인들이 빠나마 운하를 만들었다. 안 봐도 훌륭하게 잘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홍콩인들은 알콜이 사스 균을 예방해준다는 낭설에 심취해 있다. 보라, 죽어라고 술을 마시는 한국인들은 사스에 안 걸리지 않냐? 하면서. 홍콩 사람들은 정말 멋지다.

빠나마에서는 요즘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별걸 다 한다. 신호등이 있어서 거리를 횡단할 때 괴로움을 느꼈다. 중동에서 길들인 버릇 때문인지 차들이 달리는 거리로 뛰어들어 시간차를 절묘하게 활용하여 건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옛날에 하던 개구리 게임처럼.

게임에서 살아남은 개구리가 되고 싶다.
자,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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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ma

여행기/Costa Rica 2003. 5. 5. 18:14
San Jose -> border -> Panama City

복사한 론리의 파나마 섹션을 들쳐 보았다. 가이드북을 살펴봐도 싸게 먹히지가 않는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고 돈도 많이 들고... 하는 수 없이 투어 버스를 잡으러 갔다. 투어 버스의 가격은 17$, 내가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8$), 손수 국경을 건너고, 늦은 밤이라 차가 없으니 국경마을에서 1박 하고(6-7$) 다음날 파나마 시티로 가면(10$) 투어 버스 타는 편이 편하다. 표를 사는데 옆에 있던 멕시칸이 영어로 당신 왕복 티켓을 사야지 국경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알고 있지만 편도 티켓을 샀다. 왕복 티켓은 40불이나 해서 거지가 넘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돈이 별로 없다.


버스를 탔는데 옆 자리에 앉은 작자가 영어를 할 줄 안다. 아... 얼마나 오랫만에 들어보는 제대로 된 영어냐... 읽고 있는 책이 심상치가 않다. 중미 근현대사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 자락에는 소니의 MD 플레이어가 달려 있었다. 잘 사는구나... 꼬스따 리까 사람인데 직장이 파나마에 있단다. 그와 어쩌다가 중미의 경제 사정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생각하는 중미의 경제는 정치와 지나치게 맞물려 있어 암울하다는 것이다. 멕시코는 괜찮지 않나? 했더니 실실 웃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멕시코의 가장 큰 문제는 국부가 계속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멕시칸은 돈을 좀 벌면 모두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고 또 미국으로 넘어갔다. 또한 미국인의 투자러시가 지속되면서 멕시코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이미 잠식했다는 것도 있었다. 멕시코인이 미국 비자를 받기가 워낙 까다로운 관계로 멕시코 부모들은 국경을 넘어 아이를 낳아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선물'한다고 했다. 왜 자꾸 미국으로 가려고 하느냐 하면 정치적인 불안감 때문이란다. 멕시코 의회나 대통령의 권한이 워낙 약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서 누가 방아쇠만 한번 당기면 곧바로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국경에서 이민국 통과와 짐검사 따위로 2시간을 보냈다. 이민국 관리가 징그럽게 생겼다. 빠나마 이민국에서 뜬금없이 날더러 한국 돈을 보여달란다. 여권만으로는 당신이 북한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믿을 수 없단다. 웃기고 있네. 웃기고 있었지만 내 뒤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터라 실랑이만 벌이고 있을 수가 없다. 배낭에서 한국돈 5000원 짜리를 꺼내 보여주니 자기한테 달라고 한다. 줄 수 없다고 우겼다. 이 자식이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10분이 흘렀다. 내가 졌다. 한국 동전 100원 짜리를 던져주고 투어리스크 카드를 사서 다시 스탬프를 찍으려고 이민국 관리 앞에 섰다. 밤 9시다. 그 자식이 스탬프 찍어주길 망설이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왕복 티켓 얘기가 나오면 어쩌나 속으로 좀 캥겼다. 날더러 인지를 사란다. 앞 사람이 사길래 별 생각 없이 1달러 짜리 인지를 샀다. 서류 작성비 2불을 내란다. 못주겠다고 말했다. 벌써 15분이 넘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너 이름이 뭐야? 라고 물으니까 마지못해 여권을 건네주면서 실실 웃는다.

배고파 죽겠는데 돈은 없고... 남은 꼬스따 리까 동전으로 빵 두 개를 사서 먹었다. 버스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당했다. 인지는 꼬스따 리까 국민들이나 사는 것이다. 5불짜리 투어리스트 카드만 사면 되는 것이다.

빠나마 시티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반. 썰렁하다. 어쩌라는거여... 물어물어 호텔 지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찍어둔 숙소 있는 곳까지 걸어가자니 너무 멀다. 택시 타기는 싫고... 하는 수 없이 일대를 샅샅이 뒤져 그럭저럭 쓸만한 숙소를 잡았다. 8불이나 들었지만 방에 TV가 있다는 점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잠 자고 일어나 인터넷 까페부터 찾았다. email을 작성해서 파나마 관광청과 이민국 앞으로 보냈다. 대통령 email 주소는 못 찾았다. 하자가 없음에도 인지 판매를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은 내가 멍청했다는 얘기지만 그런 낌새는 비추지 않았다. 국경 이민 사무소 놈들 어디 한번 엿먹어 봐라. 과연 엿먹을까? 엿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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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ta Rica

여행기/Costa Rica 2003. 5. 4. 11:34
Granada -> Rivas -> Panas Blancas -> border -> Costa Rica San Jose

5월 2일은 오이 먹는 날. 그래서 vitamin C가 풍부하고 피부미용에 좋은 오이를 먹었다. 니카라구아 오이맛은 최~악~이다.

나와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대박이다. -- 어느 음반 기획자가 로또 말고도 우리 인생이 행복해야 할 '망할' 이유들이 많다며 하는 말.

언제나 대박? 맛없는 오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멜론을 먹고 싶어도 부담스러운 크기 때문에 과일 칵테일류만 먹었다. 오렌지 한두 쪽, 멜론 한두 쪽, 수박 한두 쪽, 파인애플 쪼가리가 비닐봉지에 1킬로그램쯤 들어있는 한화 300원짜리 비타민과 섬유질 덩어리. 천성적으로 과일과 야채에 '친화력'을 가진 여자들과 달리 남자애들이 여행하면서 말라가는 것은 영양소를 효과적으로 흡수하도록 도와주는 비타민의 섭취를 등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열대지방에서 열대과일의 비타민은 일종의 생명선 같은 것이다. 여자들이 과일과 채소에 집착하는 것은 그간 문명의 발달이나 인류 진화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듯.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봐주려는 노력이 있어서 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당신 인생은 대박이고 내 여행은 쪽박이다. 이 더위에 살 빠지면 맛이 갈 것 같아서 밥은 걸러도 과일을 챙겨 먹는다.

국경 이동이 잦아 최근 늘 긴장해 있다. 긴장해 있으므로 현지인을 대하는 것이 뻣뻣하다. 한밤중에 지나가던 술 취한 아저씨가 내가 떨구고 잊은 담배를 줏어준다. 히죽 웃는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니카라구아인은 친절했다. 니까라구아는 전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에 하나니까 친절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엘 살바도르나 온두라스보다 잘 사는 것처럼 보였다. 에스빠뇰만 좀 할 줄 알면 재밌을 것 같은 나라다. 수퍼에서 아줌마가 쇼핑에나 전념할 것이지 옆에서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묻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대충 짐작해보니 어떻게 니카라구아에 왔냐는 질문인 것 같다. 말도 못하는 바보 취급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영어도 한국어도 스페인어도 안하고 그냥 바보같이 어버어버 거렸다. 친니, 라면서 아줌마들 끼리 무슨 놀라운 것이라도 발견한 양 자기들끼리 열심히 쑥덕거린다. 부질없는데 관심 두는 것이나 당사자를 바보로 만들어 소외시키는 것은 한국의 아줌마들하고 똑같다.

눈에 띄는 현상만 보건대, 중미인들이 숫자 계산에 약한 것 같다. 지난 3일 동안 경험한 것들; 케이스 1: 수퍼에서 10.25가 나와 20 짜리 지폐와 50짜리 동전을 주면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설이다가 50짜리 동전을 돌려주고 9장의 지폐와 50짜리 동전과 25짜리 동전을 거슬러줬다. 딜버트를 보면 엔지니어들의 영 바보스러운 버릇 중에 하나가 상대방의 편의를 배려해준답시고 내가 하듯이 해서 계산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던데, '숫자에 밝은' 엔지니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인들이 다 그러지 않나 싶다. 동전이 싫다. 환전이 안되니까 거지한테 줘야 한다. 어떤 거지는 외국돈이라며 사절하기도 했다. -_-

케이스 2: 국경으로 가는 버스에서 계산이 잘못 되었다. 버스비가 얼마냐고 물으니까 15란다. 잔돈이 없어 100 짜리를 주니 20짜리 다섯장과 5짜리 동전을 건네준다. 100-15=105가 되었다. 왜 이러나. 돈도 남고 해서 버스가 잠깐 섰을 때 바구니를 든 아줌마에게 아구아 데 오차따(Agua de Hochata; 쌀 가루와 계피 가루를 타서 얼음을 넣은 물)를 샀다. 3 꼬르도바 짜리인데 잔돈이 없단다. 그래서 과자 2개를 더 샀더니 20짜리를 받아 11을 돌려준다. 13을 돌려줘야 맞지만 그 동안 중미인들이 보여준 친절에 보답할 겸 그냥 넘어갔다. 1 꼬르도바는 0.06896551724138 달러다.

케이스 3: 피씨방 주인이 계산을 잘못해서 콜라값을 빼먹었고 2시간을 사용했는데 1시간 10분 사용한 비용만 받았다. 다시 들렀을 때는 내가 얼마를 사용했는지 되려 나한테 물어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두 시간 썼지만 한 시간 비용만 냈다. 이렇게 돈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웃으며 고객에게 감사할 줄 아는 이들의 모습이 몹시 흐뭇하다. 피씨방에 그렇게 오래 있었던 이유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였다. 울컥.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내 오렌지 쥬스를 누가 다 마셨다. 여행자가 몇 명 있는데 가만히만 있으면 아는 척 하지 않아서 좋다. 다들 가만히 있는다. 그라나다 시내에서 외진 곳에 떨어져 있는 싼 숙소라 여기 들어오는 작자들은 대충 서로 서로가 어떤 사람들인지 말 안해도 알고 있는 것 같다. 혼자 다니고, 허름한 옷차림에 음식을 늘 해먹고, 일 없이 시간을 잘 때우는 모습을 보면 그간 얼마나 굴러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냉장고에서 남의 재료를 조금만 슬쩍 해서 활용하는 것조차 '장기 여행자의 도'에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서로 여행 얘기는 입도 뻥끗 않는다. 오늘 숙소에서 상영하는 영화 제목이 하루 일정을 결정하기도 하고...

부엌을 남김없이 활용하는 재주 중 하나는, 냄비선점이다. 냄비에 뭔가를 남겨놓고 악착같이 내주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다. 나도 최근에 이들로부터 배웠다. 우리는 샤워실에 있는 누구것인지 모르는 작자의 비누를 돌려 가면서 사용했는데 어느새 다 닳아 버렸다. 세탁대의 세탁 비누도 마찬가지다.

숙소 중앙의 작은 정원을 가로지르는 형형색색의 빨랫줄만 봐도 그렇다. 피차 돈이 없으니까 빨래를 론드리에 맡겨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 중남미에서는 론드리가 싸지만 이 숙소에 모인 거지들은 이 더위에 땀을 꾸역꾸역 흘려가면서도 빨래를 했다.

그 돈을 아껴서 맛있는 바나나 스플릿 같은 것을 사 먹을 때 쓰는 것이다. 숙소에 있는 친구들을 시내에서 가장 싼 식당에서 얼굴을 다시 보게 되면 약간 머쓱하다. 어떻게 여길 귀신같이 알고 찾아왔지...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그 가게에서 제일 싸고 양 많은 똑같은 메뉴라는 점이다... 물을 공짜로 준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으면... 으...

아이스크림 집이 문을 열지 않아서 몹시 안타까웠다. 값싸고 양 많아서 한끼 식사로 충분한 바나나 스플릿을 먹을 기회가 사라졌다. 바나나 스플릿은 아이스크림계의 꽃 중의 꽃인데 그라나다에서 틈틈이 여러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골고루 섭렵하면서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던 것이다. 거리를 샅샅이 뒤져 그 아이스크림의 본점을 이미 파악해 둔 상태였다. 각국의 바나나 스플릿을 먹어보는 것이야 말로 중미 맛따라 길따라의 기본 정석이라고 믿는다. 중미 아이스크림은 값이 싸면서도 품질이 수준급이다.

꼬스따 리까에 가면 엑스맨2를 볼 수 있을까? 마그네토가 인체의 철분을 뽑아서 무기를 만들어 감방을 탈출한다던데... 요즘 생체 자석이 말을 안 들어서 길에서 종종 헤멨다. 북쪽(자북)으로의 쏠림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체내에 철분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그라나다에 부동산 가게가 많은 이유를 꼬스따 리까에서 알게 된 것 같다. 꼬스따 리까는 살기 좋은 나라다. 그래서 정착해서 살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이 많아 부동산이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여파가 니까라구아까지 건너간 것 같다.

-*-

다음날 국경을 건넜다. tica international bus를 타면 전처럼 편하게 넘을 수 있지만 비자 문제가 나 모르게 처리되는게 마음에 걸려 혼자 넘기로 했다. 버스 두 번 갈아 타고 니까라구아 출국장에 가니 이민국이 세 개가 있어 그 사이를 돌아다니느라 삽질했다. 꼬스따 리까 이민국에서 입국신청할 때 사람들이 리턴 티켓을 들고 있어서 불안했다. 리턴 티켓을 제시해야지만 입국시킨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국경에서 니까라구아행 티켓을 판다나... 돈 들어서 사기는 싫고, 종이 한 장 줏어와 반쯤 접어 마치 티켓인 양 다른 사람들처럼 손에 쥐고 있었다. 여권을 살펴보던 작자가 파키스탄 비자에 멈칫한다. 또야? 환장하겠군. 파키스탄 사람들 착하기만 한데... 창구 너머로 나를 흘낏 쳐다본다. 미소를 짓고 손을 들어 '티켓'을 슬쩍 흔들어보였다. 무사히 넘겼다. 티켓 검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안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있어 보이는 티를 내야 할 것 같다. 그렇잖아도 국경 넘을 때와 대사관 갈 때는 깨끗한 옷을 입고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꾸했다.

스탬프를 보니 꼬스따 리까 공짜 비자가 90일 짜리다. 비싸기만 하고 딱히 볼 것도 없고 그링고들이 우글거리는 나라라 2-3일 머물다가 파나마로 갈 생각이다. 휴게실 매점 아줌마의 영어 솜씨가 유창하다. 남은 동전은 환전할 수가 없었는데 아줌마가 음료수 사면 환전해 준단다. 아침부터 과일 칵테일 먹은 것 빼고 쫄쫄 굶었다. 숙소 냉장고에 있는 내 오렌지 쥬스와 우유를 누가 다 먹어서 콘플레이크를 그냥 먹기가 뭣해서 놔두고 왔다. 간만에 콘 플레이크 좀 먹어볼까 했는데...

산 호세까지의 버스표를 샀다. 계산해 보니 티카버스는 22불인데 이렇게 혼자 넘으니까 8불 들었다. 흐뭇하다. 한 시간 반쯤 멍하니 앉아 산 호세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pda도 날아가고, 책이라고 있는 것은 가이드북 달랑 하나라 할 일이 없다. 암케가 꼬리를 세우고 나다니는 것을 보니 꼬스따 리까의 경제 사정이 좋고 국민들이 행복한가 보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짐 검사를 좀 심하게 했다.

국경을 넘자마자 어쩌면 이렇게 풍광이 확 달라질 수가 있는지 신기하다. 시원스러운 들판이 펼쳐졌다. 모두 잔디밭이었다. 간간히 그 잔디밭 위에 축구 골대가 덜렁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잔디밭 만들기는 쉬울 것 같다. 풀밭에 소 한두 마리 풀어 놓기만 하면 다음날 말끔해지니까. 음... 축구장을 환경친화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랄 수도 있겠다. 관중들이 화장지를 던지면 그 사이를 소들이 지나다니며 줏어 먹는다던지... 해가 지고 있다. 고생스럽게 빨리 이동할 필요는 없는데,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경치 보는 것이 재미있다.

졸다 차가 멈춰 깨어보면 경찰의 검문, 가는 길에 검문만 다섯 번, 그래서 5시간 걸린다는 버스가 6시간 30분 걸렸다. 차에서 내리니 저녁 8시가 다 되어 거리에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럽다. 내린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 고도는 1100m, 3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에서 연평균 기온이 24도인 곳에 오니 쌀쌀하다. 발걸음을 서둘러 한참 걸으니 중심가가 나왔고 사람들이 지나 다녀 안심했다. 가장 싼 숙소를 잡고 근처 중국집에서 광둥식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식당이 보통 소란스러운 것이 아닌데 다르게 보면 사람들이 활기차달까. 바나 테이블에 빈 맥주병이 그득하다. 중국 음식점이 정말 많다.

테드 치앙이 상을 받았다. 처음 테드 치앙 글을 읽었을 때 상 받을 글 쓰는 타입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렉 이건을 좋아할 줄 알았다. 테드 치앙 같은 작가는 그렉 이건처럼 시대를 선도하는 오리지널리티를 생산하는 작가를 좋아할 것 같았다. 한 시대를 앞서간(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전격 하드보일드 막 나가자 sf를 썼던 그렉 이건의 폭력적인 상상력이야 말로 진정한 sf 사나이의 로망이다.

코드웨이너 스미스의 sf를 그닥 재밌어 하는 편은 아니었다. 단편집 보는 내내 하품을 했다. 구한말 공룡 씨나락 까먹는 구리터분한 얘기를 머가 지금 봐도 신선하다는 건지. 21세기에 불사판매주식회사를 읽는 것만큼 하품 나온다. 차라리 라엘리언 사이트와 안티 라엘리언 사이트를 찾아서 논쟁을 읽는 것이 더 나았다. 어서 빨리 라엘리언 재단에서 클론을 대량 생산해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엿먹여 주길 바라는 편이다. 라엘 재단은 장생, 불노불사(냉동수면 연구도 포함해서), 인간복제, 외계인과의 교류, 프리섹스 등 재밌는 것들만 콕 집어서 다 해먹고 있는 관계로 미워하기가 힘든 집단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저서, 앎으로부터의 자유에서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배우려는 자는 언제나 중고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쳤다. '믿음과 이상은 부정직한 삶을 만든다'고도 했다. 믿음과 이상은 '앎'이라는 '착각'으로부터 온다. 참고로 크리슈나무르티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중고가 된다. 최신판 인간이 되고 싶으면 그의 주장은 흘려들어야 한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슬쩍 하지 않은 말이 있다면, 사실 인간은 중고라는 점이다. 중고면 어때? 중고는 값이 싸고 부서져도 안타깝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하여튼 주관적인 인식으로 우주라는 패턴을 이해하게 되면(지난한 과정을 통해) 크리슈나무르티가 한 말이 그가 한 말이 아닌 자신이 한 말이 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의 의도가 그것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크리슈나무르티는 항상 자유에 관해 이야기 했는데(그는 평생 자유를 추구했던 관계로 부인을 비롯한 여자 관계가 안 좋았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배움과 삶을 강박관념이 아닌(삶과 배움은 때때로 강박적이다. 심지어는 대박 운운 하며 예찬할 필요가 없는 삶을 예찬하는 행위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위 등) 애시당초 '자유로운'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과 연결시키고 싶어했다. 각성을 통하여 자연스러움으로의 회귀. 글쎄다. '앎' 만큼이나 희망이자 착각으로 보인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언술은 껍데기에 설탕을 발라놓은 고급 궤변에 속한다고 보았다. 언어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언술을 포함하여, 제한적인 삶을 투영하는 제한적인 도구이다. 역으로 말해 언술이 삶 자체가 되고 힘이 되는 소수도 있게 마련이다.

말(앎)을 버리고 자유를 얻은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자유로운지를 설명할 수 있을까?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자신이나 타인은 어떻게 인지할 수 있을까?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각하면 된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가 직관과 통찰을 얻었다는 뜻이 된다. 자신은 그렇다 치고 타인이 그가 자유로운지 아는 방법은 그럼 무엇일까? 간단하다. 타인 역시 직관과 통찰을 얻어 자유로운 자의 머리를 꿰뚫어보고 즉각적이고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인지하면 된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자는 자유로운 자를 알아볼 수 있다. 피차 초능력자들이니까. 인류가 모두 초능력자라면 기아나 전쟁은 없을 것이고 저 남자가 저 여자와 자고 싶어한다는 것을 전 인류가 다 함께 알게 될 것이다.

이렇듯이 자유로워 지려면 초능력자가 되어야 한다. 대개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럴 일이 없으니까 자유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자유 없이도 만족할 만한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이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음에도 자유 운운 하고 말았다. 왜 했을까? 안 해도 되는데. 이왕 사는 김에 자유도 한 번 얻어 보자고 결심한 사람들이(수요가) 의외로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는 '앎으로부터의 자유'를 써서 벌어들인 인세 수입으로 '경제적인 자유'를 얻었을 것 같다.

크리슈나무르티가 의도했던 것은 그런 길로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였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직관과 통찰은 누구의 도움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얻는 보석이니까. 이쯤 막 나가다 보니 갑자기 골다 메이어의 주장이 생각났다; 겸손할 것 없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니까. 올더스 헉슬리도 그랬다. '45년 동안 끊임없이 연구하고 학습했는데, 이런 말을 하기가 조금은 부끄럽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충고는 각자에게 조금만 친절하라는 것이다.' 두 양반의 말에 힘입어 하고 싶은 말은, 여행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희안하게도 참 많아서 웃긴다는 것이고, 내가 30년 동안 갈고 닦은 직관과 통찰을 바탕으로 불친절하게 간단히 말하면, 조까고 있네 쯤이 되겠다.

nucleus(core) 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음... 정말 이상한 영화였다.

한국 음식점이 있다는 가이드북의 '주장'을 믿고 어렵게 찾아갔는데 중국집이었다. 또다시 지긋지긋한 광둥식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홧김에 맥주도 시켜 먹었다. 뭐 가장 값싸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배낭식이니까. TT 이놈에 가이드북의 레스토랑 섹션 만큼은 확 찢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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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ada

여행기/Nicaragua 2003. 5. 1. 20:01
더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체온이 1도 상승하면 신진대사가 10% 가량 증가하고 그에 따라 500~1000ml의 수분이 더 필요하단다. 체온을 낮추기 위해 얼음을 넣은 코코아물로 버티고 있다. 코코아물은 마시고 비닐봉지에 든 얼음을 목덜미에 얹어 다니니까 애들이 웃는다. 우기가 시작된 줄 알았는데 아직 며칠 더 남았다. 어서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

에어컨이 그리워서 숙소를 전전해봤지만 지금 묵고 있는 숙소보다 비싸서(도미토리가 7.5$, 지금 있는 숙소는 선풍기가 있는 싱글로 4$) 가기가 꺼려진다. 여행중 만난 한국인이 추천해준 호스텔에는 풀장이 있고 인터넷이 30분 동안 무료다. 생까고 마구 써도 될 것 같다. PS2가 있어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복도 곳곳에는 해먹도 있었다. 도미토리를 살펴보니 A/C 아우틀렛이 없다. 그래서 안 갔다.

이 작고 매혹적인 식민지풍의 도시에 있는 건물들이 멕시코에 있는 식민지풍 건물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처마의 폭이다. 도로 쪽으로 난 처마가 넓어서 비를 피하거나 햇빛을 가려준다. 마음에 든다. 대신 2층이 없고 따라서 꽃 장식을 해 놓은 작은 베란다가 없다.

같은 식민지풍 건물인데도 조금씩 차이가 눈에 띈다. 식민지, 스페인 풍 건물은 길거리로 난 벽면에 창문 몇개 달랑 달려 있고 출입구가 정문 하나, 건너편 길쪽으로 쪽문이 하나 달려 있다. 입구 안은 일종의 리셉션이고 리셉션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면 빠르께(정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복도가 있고 복도를 따라 방들이 있다. 바깥의 소음과는 달리 안은 조용하고 시원하다. 한켠에는 물을 담아놓는 커다란 콘크리트 수통이 있고 거기서 빨래를 할 수 있다.



니카라구아 식민풍 건물의 내부에는 복도를 따라 많은 수의 흔들의자와 해먹이 놓여 있다. 때로 벽에 무랄을 그려놓는다. 색감은 전반적으로 얘네들 먹는 푸르고 붉은 망고와 닮았다. 열대임에도 건물 내부에는 모기가 없다. 높은 천정 탓에 언제나 바람이 불어 습기를 날려 버리고 모기 또한 조용히 쓸어버리는 것 같다. 벽은 일반적으로 속이 빈 콘크리트인데 겉에 회벽을 두껍게 발라 벌레가 잘 기어다니지 않는 것 같다. 벽돌도 물론 사용했다. 언젠가 벽돌 굽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대체로 잘 굽는 편은 아니다. 벽돌을 제대로 구우려면 벽돌집을 쌓아 내부에서 불길이 골고루 번지도록 통퐁로를 잘 만들어줘야 하는데 벽돌을 굽다가 심한 열변형으로 벽돌집이 무너지거나 풍로를 작게 만들고 벽돌을 두껍게 쌓아 한쪽만 심하게 그을리고 부르튼 벽돌을 만들었다. 정원에 꽃은 잘 키우는지 모르겠지만 건축용 자재나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면 성의가 없어서 좀 안타깝달까. 내가 십장이거나 공사 감독이었으면 즉각 잘라버리고 값비싼 한국인 인부를 투입했을 것이다. 일하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든다. 가장 상위 층에는 방수도료나 고무를 발라야 하는데 안 바른다. 비가 많이 안 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붕과 천정 사이에 배수로를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지은 집이 그 모양이라 제대로 짓지 않은 집은 껍데기는 멀쩡해 보여도 영 꽝이다. 지진나면 틀림없이 무너질 얇은 벽과 물이 샐 구석이 너무 많고 지붕과 천정 사이는 대낮의 열기로 열지옥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여튼 높은 천정을 만든 것은 잘한 것이지만 높은 천정에 걸맞는 건축이 아니라서 유감스럽다.

그라나다에서 눈에 많이 띄는 것은 해괴하게도 부동산 가게였다.

틈틈이 입력하고 있는 라틴위키가 여기를 여행하게 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미 인도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중남미는 누워서 떡먹기랄까... 인도나 여타 여행지와 다른 점이라면 동선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택시를 타지 않을꺼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는 점. 아, 달리 말해 나는 상당한 체력을 지녔다. 45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들고 32도를 오락가락하는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 다니니까.

bLog는 자폐증 환자들의 노출증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 같은데 홈페이지의 조회수가 45일 동안 2700회가 나와서 대단하다. 같은 코스를 밟는 여행자들이 이 blog를 봐주고 어디 가 보라고 제안이나 충고를 해줬으면 싶은데, 중미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씨가 마른 것 같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안녕하세요?' 라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크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미국인, 한국에서 얼마간 놀았고... 별 관심없는데 자꾸 말을 시켜 도망가느라 애먹었다. 좀 고독하게 내비두면 좋겠다. 대신 니카라구아 애들과 놀았다.


멋있어 보이려고 인상을 긁긴... 니카라구아인들은 여자에게 쓸데없이 친절한 것만 빼면 한국인과 많이 비슷해 보인다.

볼거리가 없다. 볼거리는 멕시코와 과떼말라에서 모두 끝장난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일없이 도시 사이를 잇는 기분 밖에 들지 않는다. 거대한 니까라구아 호수를 보고 나니 오떼뻬께 섬에 안 들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스따 리까로 직행이다. 호수나 섬이나 화산이나 정글 같은 거 말고 좀 더 신선한 것 없을까? 모험과 로맨스가 있고 24시간 편의점과 24도의 쾌적한 온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친절한 상어와 열대어가 우글거리는 잔잔한 초호 바다, 5분 거리에 쏘가리가 잡히는 맑은 시냇물, 거리에는 친절한 아랍인 장사꾼들, 식당에서 타이음식과 베트남 음식과 광둥 음식을 값싸게 먹을 수 있고, 삐끼는 인도스럽고 숙소비는 이집트처럼 싸고 멕시코처럼 손쉽게 맛있는 맥주를 구할 수 있고, 여행자 거리에는 미국인과 이스라엘리가 전혀 안 보이고, 숙소는 산 뻬드로 라 라구나처럼 한가하고, 현지 여자들이 나같은 동양인에게 반갑게 꼬리치는 그런 여행지 없나?

책 10권 만드는데 15만원 정도라고 들었던 것 같다. 여행 끝나면 여행기를 제대로 손봐서 책자로 만들어 친지들에게 나눠줄까 보다. 진작 알았으면 처음 여행 시작할 때부터 여행기를 제대로 써둘껄 그랬다.

hawler monkey가 뭔지 알았다. congo다. 띠깔에서 그들의 괴괴한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쫓아가서 돌이라도 던져보는 건데... 아쉽다.

더위를 무릅쓰고 거의 아비규환에 가까운 시장을 한바퀴 돌다가 닭을 잘라서 판매하는 가판을 발견. 앗. 오늘은 백숙이나 해먹자. 최근에 배운 것을 토대로 잘린 부위가 분홍색인 것을 골랐다. 싱싱한 닭은 분홍색이라고 하더라. 이것 저것 재료를 다 사니 25꼬르도바(1.7$). 흐뭇. 한국인에게 고춧가루를 받은 것이 있어서 제대로 된 오이절임과 제대로 된 것 같은 무지 매운 닭죽을 해 먹었다. 용기 있어 보이는 외국애에게 맛 보게 해 주었더니 오 쉿! 이라고 외쳤다. 참고로 외국인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오 쉿 !이라고 외치는 경향이 있다. 너무 맵단다. 그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두 그릇을 해치웠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위장이 얼얼하다. 콧물이 나왔다. 닭죽 먹으니까 살 것 같다.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수준이다.

담배를 물고 신문을 들여다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멜론 사러 시장 갔다가 마땅한 놈이 보이지 않아 정처없이 걷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세 시간 동안 계란 네 개 사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못 산 채 거리를 헤맸다. 한심하다.

니카라구아 인은 친절하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니면 한 블럭이나 두 블럭 쯤은 우습게 지나쳤다. 멕시코서부터 중미인들의 뛰어난 방향감각과 거리 감각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그냥 친절하기만 했다. 정확하게 친절했으면 더더욱 좋겠다.

사내 대탐험/데이브 베리 지음/조경숙 옮김/아름드리미디어 -- "이 책은 여성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유치함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이해시켜주므로." -- 놀고 있네.

페로몬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페로몬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개미나 벌같은, 그러니까... 벌레같은 인간이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워낙 더워서 에어컨이 나오는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 이런 홈페이지나 보고 있다니... 우윽... 인터넷이 워낙 빨라서 마음에 든다.

여행 오기 전에 iRiver의 Flash Memory MP3 Player를 사려고 고심했었다. 안 산 것이 후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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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aragua

여행기/Nicaragua 2003. 4. 30. 09:54
Tegucigalpa -> border -> Nicaragua Managua -> Granada

한산한 밤거리에서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은 거지와 강도와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는 마약상들 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일년 동안 강도만 세 번을 당하고 소매치기는 다섯 번, 마리화나를 파는 작자들을 마약상 취급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어쨌거나 가내수공업 약재상 패밀리는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만났다. 또 있다. 거리의 여자들. 모두 슬기롭게 대응해서 돈 한푼 잃지 않았다. 거참... 한편으로는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몸이 솜뭉치 같아 걸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택시를 탔다. 약발이 워낙 쎄서 헤롱거린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몸이 좋아진 다음에는 내 몸이 그동안 얼마나 나빴는지 잘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알코올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 몸이 알코올을 예전처럼 좋아하길 빌었다. 그 와중에도 택시를 잡아 협상했다. 그래 이놈아 나는 꼬레아노다. 꼬레아노는 다 나같은 놈들이다. 기사가 거지나 그 돈으로 불쌍해서 태워준다고 직직거렸다. 어젯밤 틈내서 게스트하우스 주인한테 택시비 다 물어본거지만 입을 다물고 실실 웃었다. 뭐 그냥 한국 청소년 축구 대표팀이 온두라스를 박살내면 그만이다.

비자 문제 만큼은 신경을 곤두 세우는데 비자 정책이 자주 바뀐다는 니카라구아의 외교부 홈페이지에 가보니 그렇잖아도 스트레스 돋게 만드는 에스빠뇰로 잔뜩 적어 놨다. 용어의 특성상(특히나 외교용어의 특성상) 영어로 적어 놓은 것도 이매모호해서 알다가도 모를 지경인데 간간히 아는 단어가 눈에 띄는 에스빠뇰 문서라면 짜증만 돋굴 뿐이다. 외교용어라... 이를테면 기분좋게 '당신은 웰컴이에요' 하지 않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이런 이런 포말리티가 필요하며 이런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제한은 이러이러하다 라는 원칙론을 적어놓는데(애매하게) 실제 가서 영사나 사무관을 만나면 제한조건은 거의 없거나 명시적일 뿐 실무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엄포용이다. 우리나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여 라는. 여행자/관광객은 별다른 꼬투리가 없으면 비자가 쉽게 나온다. 그리고 그 꼬투리라는 것들은 언제나 이유가 부족하므로 허점이 많아 헛점을 잘 캐치해서 강짜를 부리다보면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경험상, 이성적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니카라구아 대사관에서 발급하는 비자는 25불 짜리인데 몸도 성치 않고, 여러 경험자들이 국경에서 받았다길래 국경에서 받기로 했다. 미친 가이드북은 대사관에서 받을 것을 권고했지만 얘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몸이 천당에 가 있으니 안전빵하게 투어버스를 타기로 했다.

국경에서 비자 발급 없이 투어리스트 카드를 10$에 발급해준다. 음? 왜 10$일까 싶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앞에서 얼쩡거렸는데 5$가 맞을 것 같아 왠지 속이 탔다. 투어버스라서 출국수속과 입국수속을 안해서 좋은데 비자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알 수가 없다. 말이야 뭐 늘 안 통했으니까 그렇다치고. 이 망한 놈들은 왜 영어를 안 하는겨? 돈을 걷어가서 1시간 반 기다리니까 자기들이 서류까지 다 써서 한꺼번에 처리해서 가져온다. 물론 그걸 노린 것이긴 했지만 왠지 투어버스라는 것이 탐탁치가 않다. 쓰잘데 없이 미묘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차장 녀석은 내 패스포트를 들춰 보지도 않고 내게 건네준다. 다른 서양인들은 일일이 이름을 불러 여권을 돌려주면서. 녀석이 나를 기억한다는 뜻인데... 과떼말라 때부터 국경에서 이상하게 관심을 받았다. 파키스탄, 시리아 비자 때문인가? 내 얼굴을 보라고. 나쁜 짓하고는 거리가 멀게 생겼잖아. 국경에서 패스포트를 들출 때마다, 파키스탄 비자에서 멈칫하는 사무관들의 야릇하게 바뀌는 표정을 볼 때마다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환전상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눴다. 주로 숫자로 대화했다. 2003/4/29 고지환율은 1 USD 당 14.75 니까라구안 꼬르도바인데 14.50 정도까지 언급해서 흔쾌히 환전했다. 기분좋은 거래다. 환차손은 100불 기준 1.6$ 가량. 대단히 훌륭한 환율인데 요르단-이집트 국경에서 관리가 뉴스 볼 시간이 없어 잘못 알고 있던 덕에 공식환율보다 더 높게 받은 이후로는 환차손이 가장 적은 케이스다. 그만큼 양심적인 장사꾼이랄까? 엘 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 넘어올 때 환전상이 계산기로 장난을 쳤다. 기괴한 계산기였는데 10/2=4가 나오는 식이었다. 확인하지 않았으면 깜빡 넘어갈 뻔 했다. 어쨌거나 그때는 환차손이 너무 커서 안했다. 계산기에 무슨 조작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나도 배워서 써먹고 싶은데.

국경에서 기다리는 동안 서양 여자들 다리통을 보니 내 다리만큼 말이 아니다. 대체 뭐에 물렸기에 이 지경이 되었냐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개미라고 알려주니 반신반의한다. 당신 나무로 지은 집에서 잤지? 그렇단다. 한 여자는 워낙 긁어서 피멍이 들었다. 칼라민 연고가 소용이 없단다. 글쎄, 칼라민 연고가 소용없다는 말을 두어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럼 왜 그 약을 판매하는 것이고 왜 그 약이 벌레 물린데 치료제로 광범위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일까? 벼룩과 모기와 샌드플라이와 개미가 짖밟고 지나간 흔적들 사이의 차이를 말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나만큼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없었다. 다 물려 봤으니까. 말 나온 김에 피부를 뚫고 자기 알을 낳는 벌레도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한 여자애는 자기 남자 친구랑 안 돌아다녀본데가 없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이 벼룩 저 벼룩 얘기를 늘어놓았다. 난 왠지 저러고 싶지가 않다. 약을 나눠줬다. 한 알에 0.7$나 하는 비싼 약인데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그거 먹으면 쓰러지니까 자기 전에 먹으라고 당부했다. 난 정말 쓰러질 지경이었다. 버스에 올라 한 알을 삼키고 연구 좀 하다가 세상 모르게 잤다.


가장 쉽게 통과한 국경 되겠다. 국경에서 내려 한 시간 반쯤 기다렸다가 다시 투어버스를 탄 것이 고작이니까. 국경을 넘어 니카라구아 들어서서 시간 계산을 잘 해보니까 잘만하면 마나구아에서 바로 그라나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마나구아는 나중에 또 들르게 될테니까. 그렇게 했다. 버스에서 내려 달겨드는 택시기사들과 쇼부를 쳐서 1$ 주고 4킬로쯤 떨어진 터미널로 향했다. 보통 2~3$ 정도 한다는 조언을 여행자들에게 들었는데 어째 인도에서처럼 협상이 내 뜻 대로 '합리적이고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게' 진행되어서 마음에 든다. 약 기운에 제정신도 아닌데. 그라나다행 완행 버스에 오른 시각이 저녁 6시. 미적미적 대는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 도착하니 8시. 가게문을 다 닫아 텅빈 거리를 바짝 긴장한 채 30분쯤 걸어(헤메어) 싼 숙소(기쁨과 함께)에 도착.

그라나다는 밤에 안전한 도시같다. 엘 살바도르나 온두라스에 비하면 잘 사는 나라같다. 온두라스의 수도는 밤에 군경이 사방에 깔려있어 나다니기가 좀 캥기는 곳이었다. 그나저나 덕택에 하루종일 굶었다. 가게문을 다 닫아 뭘 먹을 형편이 안된다. 배는 고프고... 어쩔 수 없이 밤 늦은 시각까지 여는 비싸 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밤늦은 시간에나 먹는 그저그런 음식을 시켜 먹었다. 오픈 테라스라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식사 한 끼로 어제, 오늘 삐끼들과 투쟁해서 아껴 모은 돈을 가볍게 날려버렸다. 하는 짓이 매번 이랬다. 절약해서 밥값으로 날리기.

음식이 맛있기나 하면 투정을 안 부리지!

숙소에 누워 오늘의 유머(조선일보)를 봤다. 며칠전보다는 증세가 호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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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eiba에 있을 때 TV에서 farscape란 SF 드라마를 봤다. 대충 훌터보니 지구인 우주 비행사가 재수없게 웜홀에 빠져들어 엉뚱한 외계인들 한 통속과 돌아다니며 자기가 속한 세계로 돌아가기를 고대한다는... 그런 얘기인 것 같은데 재미있어 보였다. 돌아갈 곳이 없거나 돌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서 한가해진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온두라스 정보 정리. 온두라스 사진

한 프로그래머가 미국의 침략전쟁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어떤 잡지의 인터뷰에 밝히고 나서 DoD는 그가 손보고 있던 OpenBSD 개발자금을 중단했다. 그는 자신이 주도가 되어 만들고 손질하고 있는 openbsd가 국방성에서 미사일의 os로 탑재되는 것을 탐탁치않게 생각했고 그래서 국방성에 밉보여 한 마디로 짤린 것이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i love the universe. it doesn't love me back. but that's okay.

돌아다니다가 어느 홈페이지에서 본 말.

1. 우주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2. 그냥 일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사랑하려면 보통 용기나 정성이 아닌 것 같다.
3. 나는, 지나가는 개미들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실없이 히죽 웃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4. 사랑 받는 편이 사랑하는 편보다 편하지 않나? 사랑받지 않을 때도 생활에 별 무리는 없다. 여자들은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지만.
5. 그래서 저 문장들을 다시 재구성해 보았다. the universe doesn't love me. that's okay/fine/even nice.
6. 5항을 적어 놓고 보니까 내 정신상태와 훨씬 접근한 것 같다.

꽃의 유혹/샤먼 앱트 러셀/이제이북스 - 샤먼 앱트 러셀은 화원 한 가운데 서 있다가 열정적으로 섹스를 나누는(거의 무차별적으로) 꽃들에 둘러싸여 민망해서 얼굴을 붉힌 채 몸둘 바를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꽃을 사랑한다. 꽃들이 그를 사랑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꽃들이 그에게 꽃잎을 유혹적으로 흔들려 애교를 떨었으리라고는 상상이 불가능) that's okay 내지는 no problem이었을 것이다.

우주나 꽃들에게 사랑받았던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했을까? 인류의 지성을 총 동원해도 아직은 밝힐 수 없는 문제다. 대개의 인류는 우주나 꽃들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사랑이 없더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 음. 우주가 인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인류는 망했을 지도 모른다. <-- 이런 주장은 심지어 최근의 과학자들까지도 한다. 과학자들 버젼의 목적론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가능성 속에서 인간이 나타났다는 것이고 마치 인간을 위해서, 우주가 존재한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조차 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인간이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같은 이유로, 꽃들이 더이상 인류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인류는 멸종할지도 모른다. 나를 심하게 물어뜯은 개미들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에 물었다?

며칠 전에 후세인이 자신의 궁전 은밀한 곳으로 종종 외계인을 초청했으며 후세인이 갑자기 증발한 것은 외계인들이 그를 데려갔기 때문이라는 이라크인들 사이의 소문을 들었다.

꽃들이 나를 사랑한다거나 후세인이 외계인의 도움으로 탈출한 것이나 잠시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주제에 관해 말하다보면 어느새 바보로 되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런가 보다 하면 될 것을 생각한답시고 자꾸 말하다보면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불쌍한 바보들을 위해서 '바보라고 말하는 것은 용기있는 행위이며 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는 먼저 우리가 바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다'... 라는 위로를 하자는 것인지 희롱하자는 것인지 하는 주장도 있었다.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먹으면서 생각했다. 접시 한가득 나온 볶음밥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최소한 3인분은 되는 양이었다. 2인분까지는 어떻게 되었지만...

4월 25일부터 멕시코에서 즉시 발급해 주던 과떼말라 비자가 약 3주 이상 소여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본국의 허가를 받는 기간이 그렇다는 얘기고 비자가 나올지 안 나올지는 본국의 심사 여부를... 기가 막혔다. 시리아 때도 그렇더니만 과떼말라 마저... 그럼 과떼말라를 마지막으로 통과한 사람이 나와 나 다음으로 다음 날 국경을 넘은 어떤 한국 아가씨, 둘 뿐이라는 얘긴데... 그러고보니 그 아가씨가 국경에서 나를 기억하고 내 얘기를 하더란다. 내가 운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액운을 몰고 다니는 것인가.

산 빼드로 라 라구나 같은, 배낭여행자에게는 환상적인 곳에 못가게 된 사람들이 왠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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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gucigalpa

여행기/Honduras 2003. 4. 27. 12:02
San Pedro Sula -> Tegucigalpa

수년 전 태풍 미치가 온두라스의 국토를 초토화한 후 별다른 국가적 제도적 장치의 보호가 없었던 온두라스 시민들은 집과 닭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온두라스 수탉은 한국의 장닭처럼 멋있게 생겼다. 닭을 잃은 농부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흉악한 절도/강도 사고가 무수히 발생하는 탓에 왠간하면 거리에서 걷지 말고 택시를 타길 충고한다. 주변국의 실정에 비추어 택시값이 워낙 싸기도 했다. 개중에서 콜렉티보라 불리는 '더럽게 싼' 택시들은 마치 이란의 사바리처럼 정해진 주행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1킬로미터쯤 가는데 0.2$ 가량. 대부분의 시민들은 언제 올지, 언제 떠날지 모르는 버스 보다는 택시를 더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나는 걸었다. 택시비보다 음료비를 더 많이 쓰면서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바닷물에 담궈놓은 듯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도 뙤약볕 아래서 삐거덕 거리는 고물 로봇처럼 전진했다. 숙소로, 식당으로, 버스 터미널로, 광장으로.

태양이 가장 격렬하게 활동하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가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태양의 고도가 45도를 넘은 3시부터 해가 지기 1시간 전인 4시 반 정도까지가 가장 땀이 많이 흐르는 때다. 광선의 각도가 변화하면서 빛이 닿는 신체의 면적이 증가하고 대기를 뚫고 들어오는 태양광 중 자외선은 공기와 부유 입자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지고 대기와 먼지를 뚫고 전진하는 적외선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적외선은 쉽사리 몸을 뚫고 들어와 내장과 근육의 온도를 꾸준히 높이면서 몸을 행주 비틀듯이 땀이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땀으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에 적어도 2리터 이상의 물과 음료를 마셨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딱히 건조한 날씨가 아님에도 흡수된 수분은 빠른 속도로 체외로 빠져나가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습도는 90% 이상 올라갔다. 피는 피를 부르고... 아니지, 땀은 땀을 부르고... 수분이 피부를 덥자 땀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할 열은 몸 안으로 되돌아간다. 덥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했다...

볼거리 하나 없는 가엾은 거리를 할일 없는 개처럼 배회했다. 이 동네의 볼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민들을 가난으로 몰아놓은 천연덕스럽고 아름다운 주위의 자연 환경이다. 전 국토의 80 퍼센트 이상이 가파른 산악이라 농작물을 키울 형편이 안된다. 열대 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보이는 과일은 극단적으로 종수가 적다. 바나나, 망고, 그리고 말라 비틀어진 사과가 거의 전부다.

개미한테 심각하게 물어뜯긴 팔다리가 가려워서 안티셉틱/안티히스타민을 구해야 하는데 마침 토요일, 일요일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다. 대체 얼마나 피곤했길래 섬에서 개미에게 그렇게 물려 뜯기면서도 곤히 잠들 수 있었을까. 피곤한 것이 당연한가? 왠만하면 무식하게 걸어 다녔으니. 하여튼 벼룩이나 모기도 아니고 개미한테 물리다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모기, 벼룩은 그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콧방귀를 뀌면서 무시할 수 있었다. 벼룩이 찌를때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 하고. 그 지독한 개미산 때문에 빨갛게 부풀어오른 작은 종기가 시도 때도 없이 가려워 참느라고 더 미칠 지경이다.

모처럼 큰 맘 먹고 에어컨 버스를 타러 갔는데 일요일이라서 오후 3시 반 차 하나 밖에 없단다. 표 파는 아가씨는 도도했고 난 몹시 안타까왔다. 아픈데... 되돌아서 온 거리만큼 꾸역꾸역 다시 걸었다. 그나마 오전이라 땀이 많이 나지 않았다. 한 시간쯤 기다려 히터를 켜놓은 듯한 버스에 올랐다. 순서대로 약을 삼켰다. 기침/진해라고 씌어진 것 두 알과 진통제 500mg과 항생제 500mg. 감기 걸렸을 때 먹는 배합과 똑 같다. 이 품종의 기침/진해약(안티히스타민)은 단 한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한 방에 뿅 가는 액티피드가 내게는 아주 잘 맞았다.

항생제 기운이 퍼지면서 슬슬 행복해지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차가 달린다. 10분도 안되어 시내를 빠져나간다. 차에 탄 사람들은 걱정 근심 없이 행복해 보인다. 지금 빠져 나온 도시는 온두라스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다. 걸어서 25분이면 종단 내지는 횡단할 수 있다. 지금은 온두라스에서 첫번 째로 큰 도시인 떼구시갈빠로 향하는 중이다. 사람들이 떼구시갈빠라는 이름을 들어보기나 해 봤을까? 차창 밖으로 펼쳐진 cloud forest의 풍광은 더없이 위협적이고 아름답다. 차창 밖이라...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후덥지근한 열풍이 얼굴에 와 닿는다. 버스가 1초라도 멈추면 이마에서 주르륵 땀줄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있는 시민들의 염원은 한결 같다. 제발 계속 달려주기를, 열풍이라도 좋으니까, 차 안에서 풍기는 각종 냄새를 날려주시고...

고개를 돌렸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온두라스는 마치 열대판 설악산 같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허리에 정글 칼을 찬 메스티소(스패니시+인디언)와 가리푸나(인디언+흑인)가 나란히 도로 옆을 걷고 있다. 정복자 스패니시의 체면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 대단한 색욕에 삼가 경의를 표했다. 불과 다섯 세대 만에 온두라스 인구의 75%가 메스티소가 되었다. 첫 세대에 스패니시 한 마리가 몇 명의 토착 인디언 여성을 능욕해야지 2200만의 인구 중 75%가 혼혈이 될까. 세대당 평균 자녀수와 출산율과 사망율을 알면 계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약 기운에 기분이 좋아져서 만사가 귀찮다.

비몽사몽에 산자락 위로 떠오른 뭉게구름을 쳐다 보았다. 푸른색이다. 사진기를 더듬다가 관뒀다. 어차피 찍히지 않을텐데 뭐... 푸른색 구름을 두번째로 본다.

찢어지게 가난한 이 나라의 도로 시스템이 마치 전문가가 시공한 것처럼 정교한 이유를 알았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개입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 때문이다. 이 정교한 도로망은 미국이 깔아준 것이다. 이를테면 도로의 회전반경이라던가 슬로프, 아스팔트의 두께 따위를 유지하는 토목공사는 선진 기술, 특히 측량과 설계, 시공과 그만한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돈이 없는 온두라스가 만일 도로를 자체적으로 건설했다면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처럼 아스팔트를 깔긴 깔았으되 설계하지 않고 대충 깔은 울퉁불퉁하고 괴상한 도로였어야 한다. 정글칼과 소 달구지로는 도로의 속도 한계를 계산한 후 설계한 이런 종류의 도로를 만들지 못한다. 너무 무시했나? 이 도로는 온두라스의 비참한 미국 현대 식민 역사로 보여서 그렇다.

온두라스인은 혁명을 통해 나라를 독립시키고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났다. 최소한 그래 보인다. 태풍 미치만 아니었더라면, 아니 근본적으로 미국과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부패한 군부 독재 정권만 아니었더라면 온두라스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을까? 온두라스에는 혁명과 개혁을 짖밟은 미국이 있었다. 이 나라 걱정해 주러 여행온 것은 아니지만... 온두라스는 아마도... 레바논같은 나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꼬라지로 봐서는 발전속도가 참으로 더딜 것 같아 보인다... 안된 얘기지만 별다른 기적이 없는 한 동남 아시아권역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자력갱생으로 향하는 길이 저 밀림과 산세를 뚫고 나아가는 것처럼 험난해 보인다...

우띨라 섬에서 허겁지겁 빠져 나온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날 저녁 무슨 파티에 초대 받았었다. 분위기가 이상한 섬이었고 그 이상하다는 분위기의 대부분이 온두라스와는 다른, 정상적이지 못한 것임을 막연하게 감지했다. 어쩐지 그 섬은 미국인이 사들이고 그들의 이기적인 커뮤니티를 배타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일찌감치 빠져 나와서(파티에 안 갔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없었지만 혹시라도 우띨라 섬의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변칙적인' '비온두라스적인' 부분에 관해 딴 사람들에게도 좀 들어봐야겠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은 아니냐고? 중동 여행 끝나고 나서 그 동안 쓰고 다니던 노란 색안경은 버리고 지금은 색없는 안경 쓰고 다닌다. 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와 깐꾼은 서양, 특히 미국 여행자들이 판을 치고 다닌다. 그런데 그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과떼말라의 치치까스떼낭고는 별명이 그링고떼낭고다. 그것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그 둘은 각자의 문화라든가 삶의 양식에서 그 나라의 보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또한 미국적이라는 특성이 외부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우띨라에서는 거꾸로 '온두라스틱'하면서 온두라스의 보편적인 도시와는 아주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관광지라던가 그런 부분이 아니라 가끔 여행자를 잡아서 인신 공양을 드리고 증거가 안 남게 나머지 살과 뼈는 잘 갈아 쏘세지로 만들어 파는 듯한...

멕시코가 미국과 캐나다를 엮는 북미권 자유 무역 협정의 기본 골격을 마련하고 곧 실현할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멕시코는 중미 국가가 아니고 북미 국가다. 멕시코는 그 나라가 지닌 수많은 불가피한 행운에 하나 더 역사적인 행운을 타고났다. 지정학적으로 '돈버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중미로부터 원자재 수입과 싼 노동력을 이용해 북미라는 거대한 하이엔드 마켓에 팔아 먹거나 또는 그 반대도 되고. 21세기에 멕시코만큼 희망찬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헤롱거리면서 이런 저런 잡상을 떠올리다보니 아무도 이름을 기억해 줄 것 같지 않은 온두라스의 수도 떼구시갈빠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내리자 마자 LA의 'HOLLY WOOD'라는 글자처럼 저 멀리 맞은 편 언덕 위에 하얀 글씨로 씌여진 대형 간판이 보였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Coca Cola


착취를 일삼았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미국의 군부 독재 정권 지원과... 내가 느낀 우띨라의 이상스러운 분위기에 대한 온두라스인의 답변은, Coca Cola Siempre(Coca Cola Always)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웃었다. 과거에 사로잡힌 내 편견이 웃음꺼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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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 Utila

여행기/Honduras 2003. 4. 26. 19:13
La Ceiba -> Isla Utila -> San Pedro Sula

선착장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버스도 없고... 배 시간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50 렘피라(3$ 가량) 정도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정가는 25렘피라였다. 이거야 원.

배 타고 섬에 진입할 때 부터 영... 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쿠버가 아니면 별로 오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은 섬이었다. 작은 해변이 한 둘 있고 근처에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볼거리였다. 해변에는 샌드플라이가 우글거렸다. 대낮에는 샌드플라이에게 뜯기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개미들에게 뜯겼다. 특히 개미한테 물린 정도가 워낙 심해 뭘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밤새도록 뜯겼다. 다음 날, 마침 배가 출발할 시간이 되어서 바로 짐 싸들고 섬을 나와 산 뻬드로 술라로 향했다.

산 뻬드로 술라에서 괜찮은 숙소를 싼 값에 잡고 샌드플라이와 개미한테 얼마나 물렸나 살펴보니 이건 좀 심했다. 왼팔에만 80방쯤, 오른팔, 다리, 허리, 목 부위까지 합치면 수백군데를 뜯긴 것 같다. 육보시 한 번 징하게 했다. 개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섬이 좀 실망스러워 만사(스쿠버, 스노클링, 해변에서의 한가한 오후) 다 포기하고 나왔다. 원래 계획은 적어도 4-5일은 짱박혀서 논다는 것. 멕시코의 이슬라 무헤레스에서 그래보지 못했으니까. 거기서 뭘 기대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뭔가, 여태까지 가봤던 섬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걸 해변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보잘 것 없는 해변에서 한숨이 나왔달까...

캐리비언 최고의 섬 중 하나라는데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라... 인터넷 가격이 시간당 5$~10$로 지난 1년 가량의 여행 중 최고의 물가를 자랑했다. 스쿠버 비용이 가장 싼 곳 중 하나라는데 여러 모로 비교해봐도 뭐가 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이빙을 안 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워낙 섬이 마음에 안 들어서 후회스럽지는 않다. 가까운 태국에서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으니까.

무척 덥다. 남미로 내려갈 때 까지는 이 더위에 한동안 정신 못 차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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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eiba

여행기/Honduras 2003. 4. 25. 12:10
Copan Ruinas -> San Pedro Sula -> La Ceiba

어제 만났던 한국인은 과테말라 비자를 국경에서 받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다. 남미 쪽에서 비자 받아 올라오기가 힘든 듯. 방을 같이 썼다. http://www.wowlife.net

꼬빤 루이나스에서 중국 음식점을 발견하고 저녁을 거기서 먹었다. 중국 음식점들은 하나같이 양과 맛에서 사람을 감동시킨다. 지금까지 먹은 중국 음식 중 접시를 다 비운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La Ceiba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으러 배낭을 매고 한 시간 반을 돌아다녔다. 싼 숙소가 안 보이거나 싼 숙소는 너무 싼 탓인지(2$ 가량) 머물기 꺼려졌다. 구멍이 숭숭 뚫린 판자로 사면 벽을 대충 막고 천정을 덮은 로맨틱한 방인데 아름답고 지저분한 침대가 하나만 달랑 놓여있고 창문이 없다. 전등이 없다. 바닥은... 환경친화적인 흙바닥이었다. 문명의 도시에서 날문명 내지는 비문명을 힐끗 쳐다본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막연히 시내를 헤메다가 그라스를 파는 잘 생기고 자메이카식 영어를 하는 믈라토의 도움으로 찾아보려던 숙소를 포기할 수 있었다. 그의 영어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마치 레게를 듣는 것처럼 리드미컬한 영어였다. 토킹을 뮤직으로 만든 것 같다. 하여튼 믈라토의 말에 따르면 그 숙소는 시내에 있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헤메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시내와 버스 터미널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가이드북이 깜빡 잊고 안 적어 놓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땀으로 걸죽하게 목욕하며 운동 하니까 건강은 점점 좋아지기만 한다. LP의 지도를 보고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LP에는 길 이름도 없었고 길 위에는 아무 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길을 찾을까. 택시를 탈까? 택시를 딱 한 번 타봤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국의 거리를 이해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야지만 내가 먹은 음식들도 위장 속에서 보람을 느끼며 소화될 것 같았다.

몹시 더웠다. 흠뻑 젖었다. 어깨가 쑤신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내를 돌자 하다가 운 좋게 100 (5.8$) 짜리 아주 깨끗한 더블을 얻었다. 시내의 더럽고 지저분한 방이 10$ 가량이었는데 훨씬 낫다. 멋진 실링팬과 TV가 있었다. TV 있는 방에서 자보기는 중미 여행 중 처음이다. 호텔 부페에서 음식을 사와 베란다에서 garafono라는 사람들의 삶을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다. 가이드북을 보니 내가 택한 숙소 근처의 거리는 더럽고 지저분해서 하룻밤을 간신히 잘만 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럴듯한 말이다. 판자촌 한가운데니까. 밤이 되자 한 가라포노가 다른 가라포노를 때렸다. 남자 가라포노는 여자 가라포노를 울리기도 했다. 여러 여자 가라포노가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바가지를 긁는 모습도 보였다.

경로 짜야 하는데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제한된 시간에 남미에서 하나만 제대로 본다면 페루가 나온다. 엄한 곳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페루와 볼리비아만 가자고 일단은 정했다. 이 재미없고 시시한 중미는 어쨌거나 빠져 나가야 하는데, 정말 귀찮아 죽겠다.

멕시코의 깐꾼에서 운이 좋았다. 버스를 타던 날 섬머타임을 실시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한 시간 일찍 가서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탔다. 아구가 맞아 떨어진다. 빨렝게에서 과떼말라로 넘어올 때 왜 한 시간 일찍 깨우러 왔는지... 같은 투어 버스를 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기습적으로 섬머타임을 실시한 멕시코 정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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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an Ruinas

여행기/Honduras 2003. 4. 23. 19:29
어제 여행 중 두번째로 한국인을 만났다. 그는 남미에서 중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맥주를 좀 마시면서 남미의 가볼만한 곳들을 들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다 까먹었다. 아아... 형편없는 기억력이란...

꼬빤 유적지가 중요한 것은 마야 유적지 중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sculpture 때문인 듯 싶은데 그저 그랬고 폐허의 규모가 아담해서 2시간 정도면 유적지 전체를 꼼꼼이 둘러볼 수 있었다. 유적지의 입장료만 10불, 터널의 프레스코인지 아니면 부조인지를 보는데 12불을 더 내야 하고 박물관 관람에 다시 10불, 온두라스가 꼬빤 유적지로 관광객을 등쳐 먹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 이렇게 조그마한 유적지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마야 유적 중 입장료가 가장 비싸다는 점이 희안하다. 내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는건가. 1830년에 발견되어 카네기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부 복구가 진행되다가 온두라스 정부가 맡기 시작, 그런데 지난 170년 동안 대체 뭘 했다는 것인지... 입장료가 비싸서 유적지만 보았다. 워낙 조그마한 유적지라 유적지 전체를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마땅히 낮잠을 즐기고 쉴만한 곳을 찾지 못해 일찌감치 나왔다.


유적지 입구에서 본 앵무새들

지금까지 돌아본 마야 유적지 순위 메기기: 띠깔, 치첸 이사, 빨렝게, 우스말, 꼬빤. (뚤룸, 보남빠크 등은 안 갔는데, 안 가길 잘했다)

우리나라 남자 직장인의 40.5%는 주 1회 이상 폭음하고, 7.3%는 거의 매일 폭음한다? 폭음의 기준이 고작 소주 한 병 또는 맥주 네 병을 마시는 것이라고... 그랬구나. 어제 맥주 네 병을 마시고 푹 잤던 이유가.

체질량지수 : 21.72(kg/m^2. (과체중 23이상, 비만 25이상. 비만관련 질활은 23~27 사이에서 급격히 증가) 혈압 120/75. 수치로 나타낸 내 건강은 극도로 좋다. 그래서 모기들이 내 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비타민은 어쩐지 체내에 축적 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비타민을 왕창 먹어도 내일은 내일의 비타민이 필요한 것이던가, 비타민 소비량이 매우 높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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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duras

여행기/Honduras 2003. 4. 22. 18:53
San Salvador -> El Poy -> Honduras 국경 -> Ocotepeque -> La Entrada -> Copan Ruinas.

미친 가이드북의 횡설수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도를 그렸다. 잘만 하면 꼬빤까지 하루에 꾈 수 있을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5.30am) 버스 터미널로 걷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국경으로. 거기서 정신없이 입출국 수속과 환전을 마치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탔다. 온두라스에서 탄 두 번째 버스의 운전수는 중간에 내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길 건너편을 보니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반가운 정경인데... 배고픈데 아침에 쿠키 다섯 개와 오렌지 쥬스 반 병을 먹었고 오는 길에 남은 포도로 끼니를 때웠다. 삶은 옥수수 하나가 0.1$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치고 산악을 휫감아도는 도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 훌륭한 도로 위로 말들이 지나간다. 가끔은 버스 같은 것도 지나갔다. 엘 살바도르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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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Salvador

여행기/El Salvador 2003. 4. 21. 18:50
아침부터 온두라스 대사관을 찾아 다녔다. 가이드북에 나온 주소는 옛날 것이고, 온두라스 대사관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난감하다. 용감하게 버스를 타고 거리에 내리긴 했는데 대책이 없네. 전화번호도 바뀌고... 무작정 걸었다. 인터넷 까페가 보이면 들어가 온두라스 대사관 주소를 확인해 볼 참이었다. 중간 중간 대략 3-40여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물었다. 결국 택시 한번 안 타고 땀 흘리며 걸어 대사관을 찾았다. 비자 발급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줌마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비자 스티커를 붙인 후 10달러 달라고 말한다. 감동했다.

대낮의, 멀쩡한 대로에서 술 취한 작자가 시비를 건다. 무시하고 가려니 모자를 나꿔챈다. 본의 아니게 인상을 구겼다. 기분이 나빠져서 안경을 벗었다. 거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반쯤 일어섰다. 생략. 가던 길을 갔다. 그나저나 도시 분위기가 왜 이 모양일까. 7000번의 지진이 나는 동안 시민들의 두개골이 심하게 흔들려서 정신이 어떻게 된건가? 아니겠지. 술 취한 녀석들 중 일부는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굳이 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다.

미친 가이드북이 산 살바도르를 이렇게 묘사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시지만 그 짧은 동안에 경험하게 되는 산 살바도르 시민의 친절과 미소는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이다.'

아무렴.

엘 살바도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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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Salvador

여행기/El Salvador 2003. 4. 21. 11:02
8.20am. 늦게 일어났다. 대충 씻고 체크아웃했다. 걷기 싫어서 매연을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산 살바도르행 버스에 올랐다. 2시간 반쯤 아름다운 풍경을 달리자 다리가 나타났다. 국경인가 보다. 출입국 수속은 어이없게 간단했다.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은 엘 살바도르에 비자나 투어리스트 카드 없이 들어갈 수 있다지만 제대로 출입국을 한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삐끼가 환전하라고 달라붙었지만 하지 않았다. 38불 어치를 28불에 환전 해준다니 도둑놈이 따로 없다. 협상이 잘 안되고 일요일이라 은행이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과떼말라 꿰찰을 그냥 들고 버스에 올랐다.

산 살바도르에 내렸지만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이 더위에 또 걷고 싶지는 않아 물어물어 시내 버스를 탔다. 달러를 사용할 수 있다길래 급한 김에 달러를 내미니 달러로 거슬러준다. 허거덕.

숙소까지 걸었다. 긴장했다. 공원에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실업자처럼 보였다. 지진과 내전 때문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서 무장 강도가 판을 친다나? 과떼말라 시티의 사설 경호원 숫자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숫자의 사설 경호원들이 가게 곳곳에 널려 있었다. 경찰은 방탄복을 입고... 어? 저 총은 k2 잖아?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며 유심히 쳐다보니 살벌한 눈빛이 되돌아온다. 선량한 시민은 관심 끄고 조용히 꺼져 주십쇼 하는 듯한.

숙소에 짐을 내려놓았지만 일요일이라 딱히 할 일이 없다. 볼거리도 없는 나라다. 거리를 세 시간쯤 돌아다녔다. 시장통을 빼고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쩌면 그런 거리를 돌아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물어도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알아듣질 못한다. 아니면 엘 살바도르 최대의 대학은 시민의 관심꺼리가 못 되던가.

간간이 골목에서 불쑥 나타나 말을 걸어온 다섯 중 넷은 평범한 거지였고 하나는 구걸이 아니라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는 인상 드러운 녀석이다. 소리를 꽥 지르며 돌로레스! 라고 외친다. 하핫. 중미 1개월이면 에스파뇰을 안다고, 돌로레스가 무슨 뜻인지 알지. dollor말이지? 사방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쪼개보면서 진중하게 한 마디 했다. 쫄았잖아 새꺄. 영양상태가 부실한 놈이 총도 아닌 조그마한 쇠꼬챙이를 흔들며 위협해서 가당찮았다. 손사레를 하고 등을 보인 채 그냥 걸었다. 뒤에서 그라시아스! 하고 소리쳤다. 뭐가 고맙다는 걸까. 길을 못 찾아서 더운 날씨에 가뜩이나 열 나는데 홧김에 두들겨 패지 않아서? 대낮부터 이 모양인 걸 보니 밤에 돌아다니기는 글른 것 같다. 메뜨로센뜨로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해산물이 잔뜩 들은 이런 저런 부페를 4불 주고 먹었다. 맛있긴 한데, 식사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 가난하다면서...

엘 살바도르에는 변변한 쇠 쪼가리 하나 없어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정복이나 학살은 없었다. 옥수수만 무럭무럭 자라는 무심한 땅이다. 가끔 지진이 모든 것을 쓸어갔다. 2001년 3개월 동안 여진을 포함해 7000번의 지진이 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건물이나 나무들이나 하는 수 없이 지진에 맞춰 살사를 땡겼을 것이다. 산 살바도르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화산이다. 참 지지리도 복이 없는 나라다.

마음이 변해서 지폐 몇 장 챙기고 간소한 옷차림에 시계마저 벗어두고 맥주를 마시러 밤 거리로 나섰다. 술집 입구에서 경비원이 몸수색을 한다. 맥주나 마실까 하고 들어간 바에는 왠 여자들이 앉아 무슨 말인가를 한다. 문맥상, 분위기상, 자기도 한 병 사달라는 뜻인 것 같다. 거절했다. 쥬크박스에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쥐구멍만한 가게가 왠만한 디스코텍 못지 않게 출력이 쎄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 볼륨이니 머큐리의 정신병자같은 절규가 들어줄만 했다. 노래가 열댓 곡 쯤 이어지는 동안 담배를 피우고 목구멍을 축이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노랫가사가 왠지 심금을 울린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서 서성이는 창녀들이 쳐다보았다. 마주 쳐다 보았다. 금새 외면한다. 그들은 저렴한 남자를 한 눈에 알아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왠지... 쓸쓸했다. 이 동네에서 내가 좀 이국적인 편 아닌가?

아홉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두운 거리에는 이상한 녀석들만 간간히 보이고 개조차 지나 다니지 않는다. 분위기가 영 안 좋아 발걸음을 서둘렀다. 숙소 문이 잠겨 있다. 떨린다. 문을 두들기자 호텔 주인이 문을 열어준다.

내 욕망과, 내가 가진 것 만큼 이 밤거리가 위험한 것인가? 거리에서 서성이는 창녀나, 술에 취한 거지는 위험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고 그렇고 그런 동네에서 지금껏 살았으니까. 스승께서는 요점만 말씀하셨다. 욕망을 버릴 것, 마음을 비울 것. 그런데 갑자기 골목에서 괴한이 불쑥 나타나 그의 불알을 꽉 움켜쥐고 가진 거 다 내놔 라고 말하면 앞서 깨달은 스승은 과연 뭐라고 말할까? 음. 이를테면 라즈니쉬나 예수가 괴한에게 불알을 잡혔다면? 가진 거 없어. 라고 정직하게 말하겠지? 그럼 네 머리라도 내놔. 생각할 수 없는 머리가 없으면 일곱 차크라를 열고 군달리니의 기쁨을 누리는 머리도,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머리도, 사랑이 샘솟는 머리도 없다. 스승이라도 그 상황에서는 별 수 없다. 머리를 잘리던가, 안 잘리던가. 그건 괴한의 의지니까. 괴한이 에스빠뇰을 사용하고 스승은 에스빠뇰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았다. 불알이 잡힌 상황에서 스승의 처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스승은 어떻게 목이 안 잘리고 살 수 있을까. 막무가내인 괴한에게 고작 1달러만 주면 되는데, 평소 무소유라 그 돈이 없고... 말이 안 통하니 설교가 안되고... 불알은 아파 죽겠고... 고민해 봐야겠다.

이왕 고민하는 김에 이순신, 강감찬, 김두한, 김구, 노무현 들이 괴한에게 불알을 잡힌 수치스럽고 괴로운 정국에서 1 달라를 줄까 안 줄까도 함께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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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temala City

여행기/Guatemala 2003. 4. 19. 18:49
Chichicastenango -> Guatemala City -> El Salvador border -> San Salvador

2003/4/19 토요일

깨어보니 9시. 아는 척 하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침 지나가는 닭장차에 올라탔다. 작은 도시에서 이틀이나 묵으며 같은 길을 열댓번은 지나 다녔으니 '꼬레아'를 모를 리가 없겠지. :) 지금까지 탄 닭장차들 중에서 가장 상태가 안 좋은 버스였다. 세 시간을 다리에 힘주고 버티다가 과떼말라 시티에 내리니 기진맥진했다.

황량하다.

과떼말라 인구 2천만 중 천만이 살고 있는 도시 임에도 거리에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들은 거의가 아니라 전부 문을 닫았다. 항공권 날짜를 조정하려고 하루나 이틀쯤 묵을 예정이었는데, 세마나 산타 때문에 엿되었다.

배낭을 단단히 메고 걸었다. United Airlines 사무실을 먼저 찾아보려고 했다. 문득 '부활절 휴가'라는 것이 생각났다. 한숨 짓고 중도에 포기했다. 숙소를 찾으려고 한시간 쯤 더 걸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택시가 보여야지 타던지 말던지 하지.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지.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 마자 바로 나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산 살바도르행 버스 정류장을 찾아 다시 한 시간을 걸었다. 출발시간이라도 알아놓을 참이다. 이 도시에는 터미널이 무려 13개나 되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버스편을 미리 알아둘 밖에.

거리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다. 술주정뱅이를 향해 한 경찰이 총을 겨누고 다른 경찰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보고 세 사람이 사이좋게 장난치는 줄 알았다. 떨렸지만 용기를 내어 업무 수행에 여념이 없어 보이는 경찰에게 살그머니 다가가 산 살바도르행 버스 정류장을 물었다. 발길질을 멈추고 이마의 땀을 닦고 싱그럽게 웃으며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신시가지로 일컬어지는 INGUAT(과떼말라 관광 사무소) 앞이었다. 그리고 다시 업무 수행에 열중했다. 저러다가 사람 잡겠다. 내가 뭘 어쩔 수도 없고...

세마나 산타 행렬을 피해 성당 안에 들어갔는데 마침 미사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라서 성당을 나왔다. 십일조가 겁났다. 이 화려한 성당을 짓고 유지하려면 엄청난 십일조를 걷었을 것이다. 성당이란 참 편리한 곳인 것 같다. 뭔가 나쁜 짓을 하고 나면 성당으로 쪼르르 달려와 몇 마디로 용서를 빌고 그 덕에 가벼워진 영혼으로 나쁜 짓을 더 하러 나갈 수도 있고... 음... 마음에 쏙 든다. 오늘은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나 하나님이 무시할만한 시시한 것 밖에 없다.

많이 지쳤다. 해가 진 후 광장 앞에서 따꼬스와 맥주를 시켜 먹으며 한가하게 거리를 구경했다. 다들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 과떼말라의 따꼬스는 맥시코에 비해서 별로 맛이 없는 편이다. 따꼬스는 그렇다치고 지난 한 달 동안 먹은 또르따다스 중 가장 맛있고 stuffy한 것도 멕시코에서 먹은 것이다. 맛이 별로인데 뭔가 하나 제대로 먹을 요량이면 3-4000원은 들었다. 과떼말라 음식값은 전혀 싸지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따꼬스와 샤와르마와 펠라펠과 수불라끼 삐따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고기와 야채와 소스를 밀가루/옥수수 전병에 싸 먹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곁들여 먹는 것이 피클류의 식초에 절인 야채류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어째서 이다지도 대중 음식이 비슷하게 다양성이 부족한 것일까? 고대문명은 모두 한통속이었던가?

멕시코와 과떼말라에서 사용하는 마이스(옥수수 전병)는 영 아니었다. 아랍에서처럼 진흙 화덕에서 원적외선으로 구워야 제맛이 날 것으로 추측된다. 원적외선과 철판구이는 확연히 달랐다. 전병에 얹어먹는 속은 다양한 고기와 매운 소스를 사용하는 멕시코와 과떼말라가 훨씬 낫지만, 가격 대비 성능을 생각하면 아랍쪽 음식들이 월등히 나았다. 맛? 아랍쪽 음식은 별 맛이 없다. 맛있어 하는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간식이든 주식이든 따꼬스를 한두 개 씩은 꼭 먹어 봤는데, 개중 치치카스떼낭고의 광장에서 파는 따꼬가 과떼말라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괜찮았다. 고기 기름을 끼얹어 4-6장의 마이스를 뜨거운 불판에서 지지는 동안 돼지 족발을 포크로 재주를 부려 갈기갈기 찢은 다음 반쯤 불판에서 튀겨진 마이스 위에 얹고 볶은 양파와 절인 야채를 얹고 그 위에 두 종류의 칠리 소스를 뿌리고 다시 마이스 두어장으로 덮어준다. 다시 마이스로 덮는다... 이런 따꼬는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다. 열이 달아나지 않도록 하는 것일까? 2-3개 정도 먹으면 배가 불렀다. 레몬즙을 약간 짜 주면 고기맛도 상큼해지고 위생에도 좋을텐데 과떼말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서 약간 아쉽다. 멕시코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에 레몬을 뿌려 먹었다. 레몬즙(citric acid?)이 살균작용을 하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 세균에 의한 급성 복통 같은 것이 생기지 않도록 한 합리적인 후처리로 생각된다. 멕시코에서 흔히 쓰이는 레몬은, 아니 거의 모든 음식에 곁들여지는 레몬은, 콜레라에 대한 공포심 때문인 것 같다.


광장 앞 노점에서 따꼬스에 맥주 한 잔 하며 찍은 사진

맥주와 따꼬스로는 배가 안 찼다. 거리에 유난히 중국 음식점이 많이 보여 그중 한 군데 들어가 별 기대를 안 하고 볶음밥을 시켰다. 5분 후에 나온 볶음밥의 기쁘지만 한편으로 부담스러운 양은 그렇다치고, 정통 중국식으로 제대로 만든 것이라서 몹시 놀랐다. 달콤한 간장 냄새, 샹차이와 파를 넣은 것은 물론,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적당한 그을음까지? 널쩍한 중국식 프라이팬에서 조리를 해야 나는 제대로 된 화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맛도 좋았다. 정통 중국식 볶음밥처럼 목구멍으로 삼켰을 때 밥알이 위장에서 곤두서는 기분이 제대로 났다. 오오...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다가 누군가 인사하길래 쳐다보니 그집 주인장이다. 중국인이다. 니 하오마! 그럼 그렇지. 아는 중국어는 다 말했다. 이, 얼, 싼, 쓰. 음... 할 말이 다 떨어져서 엄지를 들어 최고라고 말해줬다.

중국 노동자들이 파나마 운하 건설 때 집단 이주 했다는 얘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여기서 중국 음식점을 하는 이 사람들이 바로 그들의 후손인 것 같다. 가이드북에서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점은 놔두고 영 거지같은 음식점들만 추천하는데 그런데서 맛 없고, 양 적고, 영양가 없고, 값비싼 음식을 먹다보면 어느새 영국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영어에 important(importado)라는 단어가 있었지. 그 단어의 어원이 import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 먼 외국에서 수입한 것은 귀중한 것이다? 커피도 그렇고 후추도 그렇고, 감자, 고추, 토마토, 옥수수, 각종 보물 등등. 특히나 영국은 자국의 음식 전통은 쥐꼬리만큼 남았고, 인도와 중동 등 제 3세계의 음식문화를 대거 수입하여 사실상 영국인의 식단을 갈아치웠다. 식사가 부실한 국가는 정신병자가 많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이 그렇고 미국도 그렇다.

생마늘을 들고 다니며 가끔 비타민제 먹듯이 먹었다. 웹에서 찾아보니 항암작용은 물론이고, 알려진 것만 해도 27 종류의 세균에 페니실린보다 '독하다'고 나와 있었다. 마늘의 참조 항목에 된장(soy paste)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드라큘라에게 간장을 뿌리면 몸부림 치다가 간장 냄새를 풍기며 고통스럽게 죽을 지도 모른다.

과떼말라에 한국 식당이 20여개나 있다던데, 별로 갈 생각은 없다. 비쌀테니까. 과떼말라 공업의 20%를 한국계 봉제공장이 장악했다. 그런데 봉제공장 사장들이 여종업원에게 나쁜 짓을 자꾸 하고 노조문제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부도를 내고 달아나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져 비자 받기가 까다롭다나.

저녁 8시, 거리는 벌써 썰렁해졌다. 경찰이 두려워서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낮에는 몰랐는데 방 벽에 친숙한 마크들이 보인다. 잘못 그린 옴 마크와 피스 마크 따위들... 아... 어디가나 배낭 여행자 숙소들이란... 죽어라고 비틀즈 노래만 불러대는 일본 여행자 한 떼거지만 있으면 '완벽한' 배낭여행자 숙소처럼 보일 것이다. 그 대신에, 다소 철이 지난 감은 있지만 흐뭇하게도 메탈리카의 음악이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숙소 안의 작은 정원에서 과떼말라인들과 미국인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잠깐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방으로 돌아갔다. 아니다 다를까, 술 먹다가 욕설이 오고간다. 며칠 안 있어봤지만 과떼말라인들 술 버릇이 개판이라고 생각하는 편. 미국인들이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얼굴에다 대고 욕을 해서야 쓰겠나... 욕 나오게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과떼말라의 사정을 싸가지없이 언급하는 미국인이 있다손 치더라도, 술 먹고 하는 주사는 제 3자에게 인정받기 힘들 것이다. 어쨌거나 마음 좋게 생긴 주인 아저씨가 수습을 하고 나니 정원이 비고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그 위로 비행기 폭음이 들렸다.

밤은 깊어가는데 간혹 총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열한발 째다. 과떼말라 시티의 시가지 중심부는 단위면적당 사설 경호원 수가 지금껏 돌아다녔던 23개 도시 중 가장 많다. 120 달러면 라이플을 구할 수 있단다. 파키스탄하고 가격이 비슷하다는 점이 믿기지가 않는다. 예전에 미국이 군부를 지원할 때 공급한 무기란다. 과테말라를 분열 양상으로 몰고 있는 심각한 빈부 격차는 국부의 대부분을 점거하고 있는 스페인계 백인 혼혈, 메스티소 mestizo와 그러한 계급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애썼던 민주적 정치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메스티소와 군부를 지원한 미국 때문이다. 동남아와 중동에서 제국주의 때문에 마음이 아팠는데 여기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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