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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3.09.25 민속 바위 메들리(44:23) 5
  2. 2003.09.24 임베디드 팡타그뤼엘 6
  3. 2003.09.21 도서관에서. 4
  4. 2003.09.19 도서관 2
  5. 2003.09.17 momenti si, momenti no 2
  6. 2003.09.14 bootstrap 7
  7. 2003.09.09 rabbit, the relativity 7
  8. 2003.09.07 직지 6
  9. 2003.09.05 스크립트 언어 3
  10. 2003.09.04 해체와 확장 3
  11. 2003.09.02 호주제 폐지 6
  12. 2003.09.02 switchblade, dull 4
  13. 2003.09.01 alternative energy resource 7
  14. 2003.08.31 bring me that horizon
  15. 2003.08.27 digitally high; 4
  16. 2003.08.25 비와 리눅스 7
  17. 2003.08.23 화장실 컴퓨팅 3
  18. 2003.08.23 Living Next Door to Alice 5
  19. 2003.08.22 주택 마련의 꿈 5
  20. 2003.08.21 토마토 요술 영양 냄비 2
  21. 2003.08.20 Vegul 2
  22. 2003.08.17 third ate 4
  23. 2003.08.15 바나나 한 무더기와 우유를 사다가 4
  24. 2003.08.13 Genre conversion 1
  25. 2003.08.08 앵벌이용 사진 28
  26. 2003.08.08 battery life 5
  27. 2003.08.05 ROMeo 4
  28. 2003.08.04 안 마시는게 내 뜻대로 되나 1
  29. 2003.08.01 술 안 마시기 3
  30. 2003.07.30 in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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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병은 관계기피증 -- 크리시 중 어떤 대사: 언제나 문제가 있었지. 언제나 여자와, 문제가 있었지. 여러 여자분들께서 내 관계기피증을 '확립'해 주셨다. 불가에서는 인연을 끊어야 해탈한다고 수천년 째... 저러고 있다. 한곡 땡길까? Esperanto, Last Tango, Last Tango

'올드 스쿨' 올해 최악의 영화, 낄낄거리면서 재밌게 봤다. '맛있는 섹스'는... 시간낭비였다. '2fast and 2furious'는... 오래전에 눈알을 반짝이면서 fast and furious에 나오는 차들을 쳐다봤다. 이번에도 차와 운전기술은 단순히 멋졌다. 그뿐이다. Nissan Skyline GT-R


처음에는 많이 웃고 아이같은 말을 하다가 점점 강아지 같아 지면서 나중에는 촛점을 잃은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데,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하던 안 하던 처신이 그닥 다르지 않다고들 하지만 해석이 안되고 학습한 적이 없는 여러 종류의 외국어가 마치 한국어처럼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체험, 그것이 대뇌를 오염시켜 대량의 시냅스를 차단하면서 피질 하부의 뇌에 전해지는 자극을 피층에서 거르지 않기 때문에(사실은 그 역이지만) 상대의 마음이 해석과 여과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대뇌피질의 기능 부전이 보다 원시적인 뇌의 하부구조를 상대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서 짐승 내지는 파충류의 본성을 드러내 보이게 하는데, 놀라웁게도 그 짐승에게서 비정함이나 적개심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 내적으로는 사물의 정합성이랄까, 논리적으로 세상이 맞아 떨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풍부한 감각의 세례를 받는듯한 기분이 들었지만(감각차단이 주는 아이러니컬한 풍부함).

깨고나면 (엿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쿼런틴의 마지막 글귀처럼.
마약? 나노드럭 얘기 중. 닐 스티븐슨의 다이아몬드 시대가 곧 나온다길래.

델과 HP는 갑자기 TV를 만들고 싶어했다. 이유야 뻔했다. 새로운 os가 수요를 창출하리라 믿었지만 두 차례나 기대가 박살났다. 시급히 돈벌이에 집착해야 하는데... 앞으로 PC로 장사해 먹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래, 유비퀴토스 티브이다. 나 멋졌어? 이러고 있을 것 같다. 유비퀴터스에도 디스플레이와 입력장치가 필요하다. 아... 키보드에 무선을 달고 화장실에 앉아 전면 거울에 떠오른 집안의 모든 기기들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것? 시시한걸. 아니면 자이로스코프를 단 TV 리모컨을 이용해 화면에서 커서를 움직이며 쑤신 팔에 짜증을 내던가? 방 구석 구석에 달려있는 동작감지센서들이 나를 지켜봐 주고 있을까? 외롭지 않게? 충실한 자바 지니처럼? 슬쩍 지나가기만 해도 유령집의 폴터가이스트처럼 장농이 제멋대로 열린다던가 불이 켜진다던가... 그래! 하나도 외롭지 않겠어! 니르바나의 주인공처럼 지랄하는 엘리베이터에 이렇게 한마디 해줄 수 있겠지. 닥쳐! 아니면, 꺼져! (be off!) 또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 등장하는 빌어먹을 인공지능 엘리베이터(우울한 엘리베이터?)에 농락당하면서 망연자실해지던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u-computing이란 조어가 일상화되기 전, 그러니까 소박하게 mcu니 avr이니 하는 것들로 불리던 작은 기계들이 있었고 지금도 하다 못해 냉장고나 TV, 전기밥통, 보일러 등에서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임베디드는 모르겠지만 유비퀴터스는 통신을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했다. 따라서 외롭게 돌아가던 밥통과 세탁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트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요청을 받아들이고 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밥통에 관해 말하고 싶은 '전부'는 입 다물고 밥이나 잘해 정도. 톨게이트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과금되는 시스템은 위험스러워 보였다. 유비쿼터스는 도심 거리를 꽤 짜증나는 것으로 만들 것 같다.

그렉 이건의 '리얼리즘 사이버펑크'는 확실히 그런 면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그의 피부 열전통(skin to skin infrared communication)은 근접 거리에서 악수를 하는 것만으로도 명함카드의 교환을 없앴고 보안 통신의 신기하고 재밌는 양상을 보여줬다. 게다가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전력선 통신은 홈 네트웍에서 별도 배선의 필요성을 없애줄지도 모른다. 푸른 수염이 장미빛 미래를 보여줬을 때, 주변의 아무도 블루투스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펙은 지저분했고 대체 왜 그렇게 지저분하고 라이센스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딜버트식으로 말해 비즈니스 세계는 세상의 우수한 또라이, 최고급 멍청이들, 최최고급 바보 기술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전념하는 삽질을 통칭하는 일반 명사기 때문에?

무선은 대세가 되겠지만 즐비한 무선에 오염되는 인간은? 거리에서 마저 난입하는 무선 스팸이 집요하게 달라붙는 것을 달가워할까? 반무선주의, 반편재 노선이 출현할지도. 무선클린지대나, 안티커넥션리스트같은. 난 '연결'되고 싶지 않다. 최소한 연결만큼은 선택하고 싶다. 불가에서는 '커넥션'을 끊어야 해탈한다고 수천년 째 저러고 있다.(어찌된 일인지 르네상스 이후 자유의지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처럼 취급되었다. 그것이 없던 시대에 살지 못해서 어떤 기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디즈니 만화부터 재미는 없고 한예술 한다고 우기는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떠벌린다. 하여튼, 휴양림 한복판에서 말을 걸어오는 빌어먹을 나무 따위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 어떤 나쁜 새끼가 내 임베디드 언더웨어에 채널을 맞추고 사정을 유도하는 개같은 광고를 보내는 걸 감내할 자신은 없다. 다 때려치우고 태양전지가 왕창 매달려있는 쓸쓸한 시골집에 머물러 백과사전이나 뒤적일까. 22세기 걱정은 그만하고.

나노테크=코스메틱스의 혁명. 나노테크는 산업계 하드웨어보다 진.선.미, 그것들을 몽땅 합친 '절대미'에 도전하는 여성 수요가 강력한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노포그가 정강이 털을 뽑아주고, 옆구리의 지방을 쪽쪽 빨아 분해하거나, 보톡스하고는 쨉이 안되는 믿음직한 성능으로 눈가위의 이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테니까.

다시 영화 니르바나로(사실 20세기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리얼리즘 사이버펑크'는 이 영화 밖에 없다), 끊임없이 옷 색깔이 바뀌는, 유비퀴토스 나노통신을 통해(일곱단계만 엮으면(커넥션) 인류 모두가 친구가 된다는 기괴한 이론도 있지만 그때 통신은 돈이 드는 장거리 직접 '인연'이 아닌 근거리 연속 체인을 통한 통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번은 팝아트 키취스러운 밀라노 패션이었다가 한번은 올 가을 도꾜 패션쇼에서 등장한 똥걸레 패션 따위로 옷가지를 바꿔준다. 나노포그면 사실 옷이란 것들이 필요없다. 피부, 그리고 포근한 나노포그. 이 정도면 족하니깐. 드렉슬러는 몽상가였고 그의 몽상은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나노포그는 화장빨이란 말을 없애고 나노빨이란 신조어로 대체될 지도 모르겠다. 나노포그는 물속에서 숨을 쉬게 해주고 벽 너머를 보게 해줄 수도 있다. 2300년쯤 되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부처와 예수를 비롯한 몇몇 성인들만 독점적으로 나노테크 후광을 달고 다녔지만 나노포그는 23세기 인류의 아우라가 된 채, 나노머신이 유전자를 후벼판 덕택에 성경 묘사 그대로 하늘에 물이 있던 시절처럼 모두 300살까지 장수할 것이다.

오래 살다보면 인류가 하느님만큼 타락해서 별에별 짓을 다 하겠지만. 그때 인류가 사지가 멀쩡하리라 생각지도 않았다. 뉴 에덴에 상주하는 사지타리우스와 인쿠부스 등등. <-- 황금 꽃가지가 빠졌군. 시들해진 인류는 외계인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외계인을 어느날 '발견'하고 환호작약할지도 모르겠다. 21세기의 후줄그레한 인종문제 따위는 쨉도 되지 않을 것이다. 코스메틱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닐 스티븐슨의 물질변환기(머티리얼 컴파일러)는 인류 전체를 살아서 숨도 쉬는 바로크, 여백을 두려워하는 괴물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두통이 사라지고 제정신이 들었지만, 원치도 않는 '인연'을 주구장창 엮어주시는 유비퀴토스 때문에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가 맛본 환희 같은 것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다.

관계기피증? 그저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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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잡기 2003. 9. 21. 16:50
도서관에서 블로깅중. 무선랜은 넷스팟을 말하는 것이었고 통합검색 시스템은 도서관내 소장 도서에 관한 검색만을 제공했다. 매점에서 2000원 짜리 맛없는 스파게티를 먹고 읽은 책들을 반납하고 서가를 빈둥거리다가 두권을 고르고(읽지도 않을) 노트북을 연결.

엊그제 먹은 술 때문에 골이 아파서 어제는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 입장료가 3000원이었지만 입체 영화 두어편 보는 것 빼고는 별로 인상에 남는 것이 없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과학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 같다. 그런 애들 틈에 끼어 지구의 생성과 공룡의 모험(?)을 다룬 애니메이션을 봤다. 후자는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를 만난 초식공룡들이 벨로시랩터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얘기였다. 공룡들 사이에 의리와 온정이 넘쳐 흘렀음을 알 수 있다. -_- 인류의 진화 과정을 묘사한 인형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까지 진화하는 동안 뇌 용적이 꾸준히 늘어났는데, 그렇다면 고환과 성기의 크기는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멋진 노을을 보며 자연사 박물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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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잡기 2003. 9. 19. 10:49
은평구립 도서관은 지하에 식당과 시청각실이 있었다. 시청각실에서 오늘 '스피드 오딧세이'를 상영한다. 스피드 오딧세이? 1층에는 일반 열람실, 정기간행물실이 있다. 1층에서 반층 내려가면 썰렁한 서가가 하나 나오는데 이공계 서적 열람실이었다. 토,일만 빼고 22시까지 개방한다. 특이하게도 몇몇 책상은 노트북을 사용해서 랜에 접속할 수 있다. 2층에 디지탈 자료실은 웹에서 미리 신청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3층은 나와 상관없는 곳이었다. 회원증을 만들었고 크리시 4,5권을 빌렸다. 시공사에서 4,5권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1999년, 2쇄를 찍은 책이다.

언덕 위에 건물이 있어 찌뿌둥한 서울 하늘을 노려볼 수 있었다. 흉흉하게 생긴 도서관 바깥에 커다란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한국 최초로 서가의 디지탈 검색이 가능하다는 것과(글쎄다?) 무선랜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무인 도서 대납이 가능하다는 것. 노트북으로 사이트 서베이를 해 보니 무선랜은 잡히지 않았다. 빌린 책 뒤의 바코드 태그는 1mm 정도 도톰했다. 회원증을 기계에 삽입하고 책을 평판에 댄 다음 옆 구멍에 넣으면 반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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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i si, momenti no

잡기 2003. 9. 17. 02:20
생각날 때 블로그질을 하자. 최근 통 무심했군.

추석 전에 선배와 집 근처에서 술 마시러 갔다. 스물넷쯤 되어 보이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자기 여자친구와 술에 취해 비벼대는 모습이 상당히 안타까웠는지 선배가 몹시 심하게 시비를 걸었다. 녀석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있다가 작업이 완료되자 우리가 마시는 자리에 와서 얼굴이 벌개진 채, 뭐라고 그랬어? 엉? 뭐라고 그랬냐고. 하면서 시비를 걸었다. 선배가 헛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선수쳤다. 너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야. 그만 입 다물고 싸움 나기 전에 네 자리로 돌아가. 순순이 돌아간다. 그래서 희안하게 생각했다. 희안해서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왜 갔을까. 맞짱 뜰 것이지.

다음날 아침에 어젯밤 무슨 일 있었어? 하고 선배가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어젯밤 맛이 간 것이다. 아무 일 없었어. 라고 대꾸했다. 그 선배와 술을 마실 때면 눈가에 멍이 들거나 발바닥이 찢어지거나 손가락이 부러지는 일들이 생겼다. 그에 비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지. 대낮에 선글래스를 안 써도 되니까 기뻤다. 선글래스를 썼더라도 기뻤을 것이다. 요즘 정서적으로 집 나간 가출소년 같고... 무엇보다도 운동부족이니깐.

케이 팩스. 지금 보고 있는 영화. 케빈 스페이시가 당신네 지구 별은 생각보다 눈이 부시네요 라고 말한다. 선글래스를 안 벗어서 체포되었다. 웃는다. LA 컨피덴셜에서의 케빈 스페이시는 노벨화학상 수상감이었다. 그는 멋졌다. 배우들 모두 멋졌다. 연출 죽였다. 원작 죽였다.

성격 검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싶으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지만, 정작 성격을 알기 위해 질문에 진실한 대답을 하려고 하면 진실한 대답이 불가능 한 멍청하거나, 야비한 질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성격 테스트에 등장하는 이런 질문: 나는 타인의 행동으로부터 기분이 변하지 않는다(상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타인의 행동으로부터 기분이 상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질문에는 예스나 노라고 답할 수 없다. 이 질문에는 스코프가, 문맥이 주어져야 한다. 암시적인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샤론이 오늘은 30명쯤 팔레스타인 머리를 날려버리겠다 라고 말했다고 치자. 타인의 행동으로부터 기분이 안 상하는 사람이니까 샤론이 무슨 짓을 하건 평소와 다를 것이 없다. 이번에는 기분이 상한다고 치자. 다섯살짜리 꼬마가 날더러 자기 사리사욕만 챙기는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기분이 상해야 할 것이다. 친구가 날더러 사리사욕만 챙기는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므로 사실과 감정을 매우 우수한 성능으로 분해하는 평소의 나라면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샤론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감정이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질문은 형태를 바꾸어 여러 번 반복된다. 내가 쥐냐? 엉?

Juanes가 남미 그래미를 석권했다. 가장 좋아하던 Mala Gente라는 곡으로 최우수 락 음악상 4개를 싹쓸이했다. 깐꾼에서는 토끼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농부가 자살했다. 별 감흥은 없었다. 그 동네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을 봤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친구가 왜 기차에 받혀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갑갑한 80년대에 울화가 치밀어야 할 영화일까? 과연. 살며시 들여다본 터널 끝의 과거. 지구를 지켜라(?) 라는 영화 였던가? 미친놈의 말을 안 믿어서 지구가 망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미친놈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환경 보호 안 하면 지구가 망한댄다. 망할 것 같다. 뭐 그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지난 150년 동안 인류가 묵묵히 정성들여 오염시켜 놓은 환경이지만, 베수비오급 화산은 단 이틀만에 그 짓을 해낼 수 있었다. 즐비한 시체들과 함께. 예를 들어 화석연료의 소비를 하지 않아도(우라늄, 석유 따위) 지구에서 생산되는 에너지 총량이 방출되는 에너지 총량보다 많다면 엄청난 태풍이 2030년경 지구를 휩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게 아마 피터 해밀턴의 소설에 나오는 얘기일께다. 동남아에서 30만명의 사람들이 목성반점같은 거대한 태풍에 휩쓸려 본의 아니게 승천하게 되는. 잘 기억이 안 났다. 피터 해밀턴의 소설은 총 쏘는 장면에서 종종 쿨해지고는 했다. 최근 수년동안 본 소설중 쿨한 것들은 손에 꼽을만큼 적었다. 지구가 망하건 말건 땅바닥에 엎드려 먹이감을 기다리는 구르카 저격수가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은 주인공이 나왔던 크리시. LA 컨피덴셜, 20세기말 하드보일드 편집증의 금자탑. 그러고보니 두어주쯤 전에 블랙 다알리아 사건의 범인이 자기 아버지였노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나 떠들썩했던 것 같은데...

매미도 갔는데 한잔 해야지? 좋지. 전화해서 나오라고 해. 아무렴. 그러고 두 시간 동안 연락이 없었다. 어디서 몇 시에 만나자는 얘기를 피차 안했다. 전화를 걸어 횡설수설 하다가 또... 약속시간을 안 잡았다. '학문의 즐거움'을 거리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다 읽을 때까지 나는 내가 어디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연세랑에 가서 새로 나온 가면 라이더 스피릿을 읽었다. YMCA 뒷편의 순대집에 가자길래 고개를 젓고 간만에 경북집에 갔다. 맛집이랍시고 이것저것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새 맛이 간 것일까? 순대맛은 변함없었다. 그는 죽어라고 자기가 데이트하게 될 여자 얘기를 늘어 놓았다. 일주일에 두 명이라... 날더러 어떻게 처신해야 하냐고 묻는다. 맨날 여자들한테 희롱 당하며 기구하게 사는 놈한테 뭐 물을 것이 있을까. 듣고 싶은 말이 뭐야? 무서워서 잡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술집에서 눈알이 예쁘다고 말한 여자가 있었다. 굳이 면전에서 말해 뭘 어쩌겠다는건가. 댁이 내 눈 안에 담겨있지 않은데 어째서 그 눈이 예쁘다는 건가요. 의문이지요. 그녀는 내 맥주를 가로채 다 마시고 주변에 강력한 저기압을 형성한 후, 나갔다. 시시껄렁한 수사학에 농락당하는 것은 비단 여자들뿐만은 아니겠지만.

난데없이 집에 온 거북이는 일주일 동안 밥을 안 줬는데도 살아 있다. 일주일 전 그 자세로 목만 넣었다 뺐다 하고 있다. 정력이 대단한데? 나보다 오래 살 것 같다.

머리 깍으러 가는 길에 살짝 옆길로 새서 도서관에 들렀다. 집에서 300m 거리에 놓여 있는데 그동안 무심했다. 공사하다가 말았는지 외장은 콘크리트 벽 그대로였다. 아닌가? 저것도 그 망할 현대예술? 어쨌건 수수했다. 분위기가 썩 좋다. 안내 데스크 아가씨의 눈을 노려보면서 저벅저벅 걸어가다가 그녀가 기대반, 의문반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하고 홱 돌아서서 입구로 들어갔다. 회원증을 만들려니 사진이 한장 필요하다. 으쓱. 다음 기회에. 정기간행물 열람실에서 과학과 사상 여름호를 보았다. 특집은 원자력 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체르노빌 사망자수 50명, 시민단체인지 환경단체인지의... 1만 5천명이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방사능 피폭의 위험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몇 가지 통계로 무의미해졌다. 그 다음은 폐기물 처리 시설에 관한 논란. 사람들이 원전의 위험에 대해 느끼는 태도를 수감 위험(percieved risk)이라고 불렀다. 쿨하군. 그런데... 퍼시브드 리스크라,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어디서 들었더라.

해외여행 하면서 영어 많이 늘었겠네? 제가요? 아니요, 거기서 쓴 영어는 밥줘 정도 였어요. 근데 왜요? 밥 사줄려고. 호텔 로비에서 염소 수염을 한 남자를 만났다. 너도 나도 명함을 건네오는 세 명의 사장은 입 다물고 있는 나를 보고 다 안다는 표정을 지은 채 제각각 자기가 통역을 자처하겠다고 나섰다. 염소 수염은 악수를 하면서 내 손이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내가 왜 실리콘벨리 염소 수염떼를 만나야 하는지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장님들이 안되는 영어로 쩔쩔 매는 것이 안타까워 하는 수 없이 염소 수염과 대화했다. 두 시간 동안 영어로 줄줄 떠들어대니까 사장님들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어 잘 하네? 아까 말했잖아요. 밥줘 정도는 할 수 있다구요. 그런데 밥줘가 영어로 뭔지 생각이 안나서 골치가 아팠다. 염소 수염은 나같은 싸구려 잡동사니와는 비교가 안되는 값비싼 기술자였다. 차이가 컸다. 그들은 극진한 호위를 받으며 이 호텔에 들어섰고, 나는 왜, 어딜 가는지도 모른 채 밥 준다길래 질질 끌려와 어떤 빌어먹을 기술에 관해 다 안다는 듯이 떠들었다. 염소 수염의 손가락이 으스러지도록 꽉 쥐어 악수를 하고 나왔다. 그의 악수는, 손아귀에 너무 힘을 줘서 팔목이 떨리는,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종류의 것이었다. 내 갸날픈 손은 남미에서 맥주병을 잡고 상대의 뒤통수를 때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힘차게.

밥은 챙겨 먹었다.

시연. demo or die. 그동안 작업 성과를 보여줬다. 조사장은 프롬프트에서 l자와 s자를 두드리고 잠시 망설인 후 엔터키를 힘차게 눌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볼 건 다 봤다는 듯이. 휘청였다. 빈혈끼가... 보드의 설계 스펙을 임베디드의 전문가라는 김소장님에게 넘겨줬다. 윤씨 아저씨는 핀 맵을 만들다말고 인터페이스 로직 전체를 3.3v로 수정하겠다고 말해서 매우 기뻤다. 거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까지 5볼트야? 속도도 안 나오고.

재미없는 얘기 하나 해줄까? 어... 안 해도 되는데... 일본의 어떤 실없는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다는데, 잘 생긴 놈들은 안 그런 놈들보다 연봉이 평균 10% 높대. 일 잘하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고. 아저씨 하고 내가 이렇게 거지같이 사는 데는 다 그런 이유가 있는거지. 참고로 말하지만, 좆데이 기사야. 그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느닷없이 말 울음소리를 냈다. 많이 놀랬다. 가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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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tstrap

잡기 2003. 9. 14. 00:00
사로 잡혔다. 몰두했다. 3일 동안 부트로더를 잡고 있었다. 다른 일에는 손을 놓았다. 밥 먹고 세수하고 사람 만나고 술 마시러 나가는 등의 일들.

다섯 종류의 부트 로더 소스를 구해 기능을 분석해 보고 미지 리눅스에서 공개한 부트로더를 수정하기로 했다. x-modem만 지원하는 단촐한 것이지만(단촐하면서 바이너리가 80kb나 하는, 무진장 큰 것이다) 커널의 MTD를 가져와 나름대로 파티셔닝을 하거나 menuconfig를 만들어 놓는 등 '발전'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 한 놈만 조진다. 라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를 건드렸다.

개발 중인 보드는 삼성의 ARM920T 코어를 사용하는 S3C2410TK 보드다. pda 개발에 사용하는 임베디드 이벌루션 보드지만 장비 컨트롤에 사용하려고 한다. 고급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적은 이유는, 누군가 같은 고생을 하고 있다면 참고가 되라고.

1. 메리텍 뿐만 아니라 삼성 사이트에도 플래시 컨트롤을 하는 부트로더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없다.
2. 삼성의 부트로더는 ADS(Arm Developement Studio)에서 컴파일하는 것이라 리눅스 크로스 컴파일은 되지 않는다.
3. 공개되어 돌아다니는(http://kelp.or.kr/) 부트로더의 BOOTP, TFTP 코드는 S3C2410TK에서 사용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코드 자체에 버그가 있는 것 같다.
4. S3C2410TK에는 세 종류의 플래시가 있다. 이 셋 중 최소한 두 종류를 혼합해 사용하기 때문에 부트 로더에는 그 기능들이 들어가야 한다. 거의 모든 부트 로더가 두번째 플래시의 존재(?)를 무시한다.

작업 순서: 1. Russel King의 arm patch와 samsung patch, 그리고 2410 patch를 적용한 리눅스 커널 2.4.18 컴파일. 별 이상없이 리눅스 커널은 잘 돌아간다. NAND Flash에서 약간의 문제 발생. MTD 최근 소스를 가져와 일일이 비교해 가면서 커널 패치를 하다보니 원래 버전보다 더 이상하게 작동한다. JFFS2 역시 파일 시스템 포맷할 때 에러라 줄줄이 튀어 나왔다. 어떻게든 NAND flash의 erase와 JFFS2 포맷은 제대로 되었지만 영 마음에 안 들어 YAFFS를 사용하려고 마음을 바꿨다.

2. AMD Flash가 계속 인식이 안된다. JTAG 케이블이 없어 여전히 프로그래밍은 못하고 있고 Intel Strata 플래시에서 작업중. nGCS 시그널과 Memory Bank Configuration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전에는 잘 되었다. 커널의 문제일 꺼라고 생각하고 (커널에서 udelay 코드를 보다가 맛이 갔다. 엉터리다. 왜 watchdog 타이머와 스핀락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작업 방향을 바꿔, 비교적 다루기 쉽고 작은 코드량을 가진 부트로더에서 플래시를 테스트 해 보기로. 2.4.x 커널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pthread는 보고 있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저렇게 개판이라니...

3. Mizi reserch의 vivi bootloader를 사용하여 작업. NAND writing/verifying에 아무 이상이 없다. 삼성의 NAND Flash 커널 패치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여기서도 AMD 플래시는 인식이 되지 않는다.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4. 하루 종일 코딩에 시간을 보냈다. 소스 코드가 워낙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머리 속에 정리하는 데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MTD 기능 추가. 각 플래시 별로 파티션을 보여주고 erase와 programming이 가능하도록 vivi 소스를 수정. 그다지 많지 않은 양이지만, 2,3 항의 테스트 때문에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5. vivi의 x-modem으로는 영 느려터져서 안 되겠기에 ethernet을 지원하기로. 개발용 리눅스 머신에 bootp server와 tftp server를 설치. bootloader 소스중 만만한 것을 잡아 포팅. 돌아다니는 소스는 한 사람이 만든 것을 이러저러 변형한 것이었다. 다들 little endian으로 메모리를 설정하고 한 모양인지... 컴파일 한 후 작동하는 모양이 개판이다. 소스를 조금씩 수정하는 정도로 작동을 기대했으나 컴파일, 업로드, 테스트에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작동 불량의 원인을 찾은 것 같다. cpu clock 때문이다. S3C2410 user's manual을 참조하여 BWSCON 레지스터에 CS8900A가 설치된 0x18000000(nGCS3)의 메모리 설정을 변경. Tacs = 14clk로 늘려주고 UB/LB, nWAIT 시그널을 사용하여 920T와 AHB 버스에서 교신하는 걸로.

6. 그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패킷을 면밀히 분석해 보니 EthRx() 루틴에서 이더넷 패킷을 i/o로부터 수신할 때 첫번째 word가 status, 두번째 word가 length 라는데 3번째 word의 첫번째 바이트를 스킵한 후 두번째 바이트를 실 데이터로 인정한 다음, 차례로 이어지는 데이터를 byte swap 해야지만(big endian이니까) 정상적인 ethernet packet이 된다. 의아하지만 소스 수정 후 bootp 패킷 수신 성공. 아니 간혹 성공. 왠일인지 패킷 수신할 때 어떤 것은 에러가 나고 어떤 것은 에러가 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4 바이트의 조각난 패킷들이 연달아 수신되거나 가비지가 끼는 현상이 발생.

7. 버스의 OE와 어드레스 발리드, 데이터 발리드 시그널링에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회로를 점검해 보니 분명히 nWAIT 시그널을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스코프가 없어서 회로를 찍어보지는 못하고... 순전히 통빡으로 굴려서 무식하게 삽질하는 방법 밖에 안 남았군. 4년 전에 이런 교훈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에서 안되면 하드웨어를 조질 것. 새벽 4시. 불편하게 잠들었다.

8. 일어나자 마자 샤워하고 2410 매뉴얼과 8900 매뉴얼을 놓고 타이밍 차트를 비교해 봤다. 클럭 디바이더 비율을 1:2:4로 했을 때 cpu 클럭이 200mhz, AHB bus clock이 100mhz, APB bus clock이 50mhz. 이중 ahb bus clock이 cs8900a와 인터페이스하는 클럭이다. 최대값을 넘겼다. 125nsec. 하지만 상관없는데? nWAIT를 사용하므로 타이밍에 문제가 없어야 정상인데. ahb 버스 클럭을 50mhz로 낮추자 bootp 패킷을 수신한다. 커널이 사용하는 dma/irq 모드에서는 정상 작동하겠지만 i/o 모드에서는 버스 클럭이 높으면 nWAIT 시그널을 사용하더라도 정상 작동이 안되는 것인가? 하여튼.

9. bootp를 대충 마무리하고 tftp로 넘어갔다. 커다란 파일을 수신할 때 종종 프로그램이 멈춰 버렸다. 패킷 헤더의 이상이었다. 4 바이트 짜리 팬딩 패킷이 버퍼에 남아 계속 읽혔다. 이 소스는 여러 사람들이 이미 코드를 검증했을 터이니 코드 자체에 문제가 있을 꺼라고 생각하지 않고 버스 클럭에 집착했다. 8시간 동안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 확 열이 뻗쳐서 cs8900A의 매뉴얼을 통째로 읽었다. 코드는 매뉴얼 대로 만들었지만, 그 코드는 매뉴얼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코드를 살펴보았다. 수신 패킷 길이가 516+42 여야 하는데 516만 읽힌다. 이상하다. 코드에 대한 믿음을 깨고 수정을 시작했다. 성공. tftp 패킷을 정상 수신한다. mtd flash programming과 그것을 연결했다.

10. 버스 클럭 스피드를 100mhz로 올리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건 분명히 버스 문제다.

3일 동안 삽질한 끝에 얻은 교훈은 남의 소스를 믿지 말자..는 것 정도. 힘들다.

드라이버 하나만 남기고(그건 간단하니까) 대체로 일이 마무리 되어 가는 것 같다. 앞으로 이 작은(?) 작업을 끝내기로 한 날짜까지 10일 정도 남았다. 임베디드를 오랫만에 손대어 보고(6년 만에?) 그것도 32비트 프로세서와 무거운 os 커널을 다루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의외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여하튼 일은 잘 되어 가지만 기분은 엿같다. 커널과 부트로더, 응용 프로그램까지 1-2주 정도에 끝나고 남은 2주 동안 공상에 몰두하고 싶었는데.

이 밤에... 바람을 쐬러 나갈 수도 없고.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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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 the relativity

잡기 2003. 9. 9. 16:20
hedwig and a angry inch라는 영화를 틀었다. 5인치 짜리 성기를 잘랐는데 수술이 잘못되어 1인치가 남았다. 그래서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한 보람도 없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상한 놈이 되었다. 그래서 angry itch가 아니고 angry inch. RHPS같은 영화인데 노래가 영 취향과 안 맞아 중간까지 보다가 말았다. 독일 락이라... 어렸을 적에는 녹턴-스페이스-사이키델릭-락을 하는 몇몇 그룹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독일 락에 환상을 가졌는데. City, City, Der King vom Prenzlauer Berg

이데올로기 사이의 타협과 관용, 협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관용은 위선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장치를 셋업하고 상대방이 가고 싶은 길로 가도록 인도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해 주다 보면 위선이 드러날 때가 있었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벤치마킹 했는가 하는 점을 중시했다. 상대의 이데올로기는 없애거나 짖밟고 불태워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는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약화되거나 때로는 경멸 당하거나... 시대에 따라 잊혀지거나, 운이 좋아 감응되는 것이지.

논쟁에서 백 퍼센트 깨지면서 이상하게 내가 원하는 목적만큼은 건졌다. 예를 들어 나는 네 생각해서 이런 저런 걱정까지 하고 있었는데 네가 내 걱정은 할 필요 없다고 그렇게 선언해주면(목적) 나는 정말 고맙지 뭐야. 내가 하는 행동의 부담을 네 생각까지 해서 50%라고 하면 지금은 1%도 안되게 되잖아? 사실과 정의, 그리고 각자의 장미빛 미래를 외면하게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날더러 기회주의자라고 불러도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사실, 그랬다.

토끼 꿈을 꾸었다.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에 관한 생각을 했다. 토끼 한 마리는 오른쪽으로 달아나고, 다른 토끼는 왼쪽으로 달아난다면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두 토끼가 같은 방향으로 뛰어 가도록 철저한 사전공작을 하는 수 밖에.

사전 공작은 매우 어렵다. 상황은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토끼가 한두 마리가 아니고, '나'라고 인식되거나 불리우는 세계의 중심에서 토끼가 왼쪽과 오른쪽 뿐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뛰어 달아난다면? 그리고 달아난 토끼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면? 한 놈을 붙잡은 후 옆으로 눈길을 돌려 최단 거리에서 달아나는 토끼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식이라면 2차원 평면에서 궤적은 나선 소용돌이 모양을 닮게 된다.

가정: 1. 각 토끼는 등속 운동하고 있다. 2. 각 토끼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3. 토끼는 한 번에 한 마리만 잡을 수 있다. 이런 가정은 현실적으로(꿈속이긴 하지만) 무의미했다. 토끼들의 속도는 제각각이고 어떤 놈은 가다 말고 방향을 바꿀테니까. 기한은 또한, 무한정 주어진 것이 아니다.

홈월드2 데모판의 지대한 영향 내지는 보다 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 보려고, 사냥터 우주를 2차원이 아닌 3차원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토끼를 잡으려면 뇌가 100% 다 돌아가도 모자라게 되었다. 사정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공황 상태에 빠지는 악취미랄까. 주어진 시간 안에 토끼 잡는 일은 글른 것 같다.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내가 만일 광속의 99.999%까지 가속할 수 있다면... 상대론적 효과에 따라 토끼들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둔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었다. 토끼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사라지는데 토끼의 시간과 내 시간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상대론적인 토끼들이 심지어 광속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잡아놓고 보니 3톤 짜리 슈퍼토끼라면? 토끼 A를 잡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토끼 B가 정 반대 방향으로 광속의 99.999%로 움직인다면? 또는 일부 미친 토끼들이 나를 향해 광속으로 달려오고 있다면 토끼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뼈도 못추릴 것이다. 광속 토끼들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토끼들은 이제 단순한 토끼들이 아니었다. 토끼는 우주적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_-

일 토끼, 사랑 토끼, 상대론적 토끼 뿐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토끼와 성전환 토끼도 있었다.

꿈속에서 토끼떼에게 시달리다가 깨어났다.
빌어먹을 토끼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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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잡기 2003. 9. 7. 14:24
SF 직지 프로젝트가 네이버의 사이트 상세 보기에 추가되었다. 기실 SF직지 사이트는 관리를 아주 게을리하고 있지만. travelwiki도 예전에 네이버에 등록되었다. 최근 이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검색엔진에서 검색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별 정보 없는데?

손전화기를 잃었다가 되찾았다. 약 먹고 술 먹다가 택시를 탔다. 두고 내렸다. 그제 저녁에 택시기사가 집 앞에 와서 건네주었다. 왕복 교통비로 2만원을 줬다. 거의 다 망가져서 전화가 걸려오면 자기가 스스로 판단해서 나에게 연결해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같다. 의외로 괜찮은 기능이긴 한데 받은 전화에 응답을 못해주므로 내가 되걸어야 하고 그덕에 전화세만 늘어나는 것 같다. 그 점이 마음에 안들어 잃어버린 김에 갈아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금요일에 대성이형이 이삿짐을 작은 방에 두고 갔다. 방 하나가 남아서 그 방을 쓰라고 했다. 12월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동네가 그럭저럭 마음에 들긴 하지만, 이사를 가야 할지...

홈월드 2가 나올 예정. 간만에 두근두근. 내 컴퓨터에서는 제대로 돌아갈 것 같지가 않다. cpu만이라도 업그레이드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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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립트 언어

잡기 2003. 9. 5. 19:16
바이트 코드를 사용하는 C :) (C-Smile)을 임베디드에서 돌리기로 결정한 것이 한 달 전이었다. 씨스마일이란 이름이 귀여웠고 귀여운 이름에 비해 자바 스크립트의 장점과 씨 코드의 장점을 잘 섞어놓은 썩 괜찮은 '단일' 프로그램이다. 소스 코드도 깔끔하고. 프로그래밍하면서 미소를 지으라나? 러시아 프로그래머의 작품이었다.

퍼포먼스 테스트를 안 해봐서 사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NT, 리눅스, arm 크로스 컴파일러에서 컴파일 했다. 후자의 두 버전은 컴파일러 버전이 다르고 gcc의 버그 때문에 몇 가지 귀찮은 일이 있어 포팅에 3시간쯤 걸렸다(세 버전을 컴파일 해야 하니까). 커널과 함께 일은 반이 끝났고 날짜는 이제 15일 가량 남았지만 셔츠깃을 잡아 당기는 일 외적인 요인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 실제로 작업한 시간은 3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부트 코드는 다른 소스를 참고해서 새로 짜는 편이 나을 것 같다. meritech 소스는 tftp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mizi 것은 소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였다. 필요한 것은 usb download와 tftp와 커널 로드 정도.

메모리 맵을 작성했고 리퍼런스 회로를 검토해서 memory mapped i/o에 필요한 타이밍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동안 골치가 좀 아팠다. 메모리 맵드 아이오가 아니면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아이오 오퍼레이션을 NT의 오버랩드처럼 만들거나 백터 테이블을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기존보다 6배 정도 빨라질 것이다. 커널과 유저 프로세스 사이의 컨텍스트 스위칭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으니까. 만들고 나면 꽤 귀여운 보드가 될 것이다. 꽤 귀엽고 플렉시블하고 강력한 보드. 잘 될까? 별 사고만 없으면. 대당 몇 억씩 하는 값비싼 기계를 고작 3명의 하드웨어 엔지니어와 2명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6개월 안에 만드는 일이라 입이 찢어질 정도로 기쁜 도전이었다. 미친 듯이 일해야 하니까.

공동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wiki를 사용했다. wiki 이외에 대안이 없었다. 작업 내역은 페이지를 작성하는 동안 그 자체가 매뉴얼이자 리비전 히스토리이자 설계 스펙이 되는 것이다. 그것만 조합해도 매뉴얼 한 권이 나왔다. 오늘 125 번째 페이지를 작성했다.

일을 끝 마치고 편안히 음악을 듣는 것처럼 프로그래밍이 늘 기쁘고 즐거웠으면 좋으련만.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Op.61, Allegro ma non troppo (12MB, 26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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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와 확장

잡기 2003. 9. 4. 02:03
영등포역 롯데리아에 앉아 감자튀김을 먹으며 블로그를 작성 중.

앞에 있는 여자가 뚜러지게 내 얼굴을 쳐다본다. 마치 어디서 본 적이 있지만 말 걸기는 두렵다는 듯이. 왜 쳐다봐? 잘 생긴 놈 처음 봐?
흥.

불스는 이런 얘기를 했다; 몽골에 가서 양 열다섯 마리로 신부를 얻어 한국에 데려올 것이다. 그는 그녀가 애 하나만 낳아주면 무슨 짓을 하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 그녀가 이혼하겠다고 말하면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라며 쾌히 이혼해 줄 것이다. 애당초 애가 필요해서 결혼한 것이다. 애는 낳자마자 고아원이나 무료 보육 시설에 보낸다.

일곱 살쯤 되어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 쯤 되면 보육시설에서 데려온다. 데려와서 적절한 교육을 해서 앵벌이로 내보낸다.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동안 그가 밥값은 해야 하니까.

사교육을 실시한다. 집에서 교육하고 학교도 내보내지만 학원에 가고 싶으면 자기가 벌은 돈으로 알아서 간다. 그가 원한다면 앵벌이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 대학에 가고 싶으면 자기가 벌어서 간다. 집을 나간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불스는 따뜻한 가정을 만들 꺼라고 말했다. 아이가 비정한 사회 속에서 힘겨운 앵벌이를 끝내고 돌아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앵벌이한 것은 50대 50으로 나누고 그중 불스가 얻는 50의 50%를 아이의 장래를 위해 적립한다. 18세가 되면 그것을 독립자금으로 돌려줄 것이다. 경제 사정이 안 좋으면 안 돌려줄 수도 있다.

나머지 50%는 하숙비로 받는다. 아이가 집을 나가고 싶어 한다던가, 아니면 집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인가는 아이의 뜻대로 될 것이다. 방목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동안 내내 웃었다. 가족 관계의 해체와 확장이란 얘기가 나오니 그의 얘기부터 떠올랐다. 그의 이상한 가족에게 사랑이 없다고? 나는 그 녀석을 15년 동안 형제처럼 알고 지냈다. 그는 가족을 사랑할 것이다. 방법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헤체에 관한 인용: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 '가족'도 민법 차원에서 동등한 권리를 확보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보면 우리는 아직도 까마득한 야만 상태에 있고, 오히려 가족의 해체를 더욱 가속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야만스럽기 때문에 가족의 해체를 더더욱 가속화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네덜란드나 프랑스 사람들처럼 덜 야만스러워진다.

같은 글에서 확장에 관한 인용: ... 가족은 이제 혈연이나 이성(異性)적 부부 또는 같은 성씨 중심의 집단이 아니라 친밀성 중심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하루에 십팔시간 동안 함께 먹고 함께 지내고 남은 시간 동안 함께 자는 것을 십팔년 동안 했던 동료들이 부모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것은 사실이다. 집에 잠깐 들렀다 올께요 라고 말하며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일종의 가족과 유사한 공동체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것을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무리 친밀성 중심의 관계를 가졌다 하더라도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 가족같은 사이라고 말하지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비록 가족이 '진정한 의미에서 '해체' 되는 한이 있어도 가족과 가족이었던 것과 가족이 아닌 것 쯤을 구분하는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가족의 개념을 확장하면 그들 역시 가족이 될 것처럼 말했다. 함께 하루에 18시간씩을 보낸 직장 동료를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 댁이나 많이 하세요. 저는 아닙니다.

웹을 돌아다니다가 한 살 짜리 내 아이를 그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 가족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 새로 배웠다. 나는 죽어라고 민주화, 개인화, 자유화 되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아이도 마찬가지고.

-*-

피곤한 삽질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마저 작성. 색온도 7300K의 차가운 모니터 앞에서.

수구꼴통들의 의견이 갖잖아서 호주제를 반대한다? <-- 그동안 배운 소중한 '상식'은 수구꼴통의 생각을 바꾸려면 비공개 사석에서 면면을 맞대고 얘기를 아주 많이 해야 하고(그들이 좋아하는 방식) 그렇다고 내 얘기가 옳다고 여긴 적도 없었고, 잘 안 먹혀 들어가면 꾸준히 괴롭히면서 그가 저 세상에 갈 때까지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아쉬운 것이 많고 자기들이 수구꼴통이라 불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어떤 때는 설득 당하고 싶어 하면서도 장난을 즐긴다. 때로 그저 대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구꼴통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여튼 여러 모로 좋다. 옛날 얘기도 듣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생각을 바꿀 이유가 없고, 도움은 도움대로 받고. 수구꼴통이 갖잖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할아버지한테 박통이 뭘 잘못했는가를 그들의 '정서에 맞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설득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꼴통에 신선한 바람을 넣어준 그런 사람들을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1로 한 사람씩 '조지는' 것이 취향에 맞는다. 수구꼴통은 공개된 자리에서 개쪽을 주는 방식으로는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이 또라이는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동시대에서 삽질하는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말하자면 바람 속의 먼지 같은 인간이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지도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는다. 단지 여자애들이 불편하다길래 불편하면 바꿔야지. 하고 동조하는 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민주화, 개인화, 자유화 되면(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할 것이다) 장래의 아내는 나를 자기 생각만 하는 야비한 놈, 결혼은 왜 했니? 라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개인화, 자유화 되기를 바라고 개인화, 자유화에 발 맞춰가야 할 형편이라면 주저없이 그러라고 할 것이다. 혹시나 어떤 피치못할 이유로 이혼을 원한다면 이혼해 줄 것이고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하면 위자료를 줄 것이다. 그리고 아내 더러 야비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고작 듣게 되는 소리가 무정하다는 것이라도.

어떤 개새끼(남자)가 날더러 나쁜 놈이라고 하면 욕설을 퍼붓고 면상을 한대 갈겨주고 주욱 나쁜 놈이 되면 그만이지만(때로는 재밌으니까) 여자들에게 더 이상 나쁜 놈 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여자애들 주장에 따르면 나는 기득권자이고 법적, 사회적, 제도적으로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가 자유로운 개인주의자이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것이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더 바랄 나위가 없다고 말한다.

이대로 계속 강력한 법적, 사회적, 제도적 지원을 받으며 자유로운 개인주의자로 살고 싶고, 법적, 사회적,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거나, 기득권이 사라져도 주욱 자유로운 개인주의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 사실 법적, 사회적, 제도적으로 내가 뭔가를 지원받았다는 점은 미지수고 기득권자의 권리를 행사한 적도 없지만 그래도 자유로운 개인주의자였던 것 같다.

법적, 제도적, 사회적 지원과 기득권을 애당초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애석해야 하나?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줘서 좋다. 여성계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전 사회에 걸쳐 스며들어 있다고도 말했다. 내가 버스를 탈 때 어쩌면 법적, 사회적 제도적 지원을 은연 중에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주장은 꽤 재미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희롱할 때도 써먹었다. 소주 한 잔에는 가부장적 권위와 여성에 대한 법적, 사회적, 제도적, 조직적 탄압이 스며들어 있다. 호적 등본에도, 설탕 한 봉지에도, 여성의 직장내 처우에도, 영화에서 터미네이터가 남성 화장실의 서서쏴 변기로 여자 터미네이터를 심하게 후려치는 장면에도, history라는 말에도, Ms를 써야 하는 이유에도, 담배 광고에도, 과학기술사에도, 유곽의 존재에도, 어쩌면 리눅스 커널 코드에도.

리눅스 커널을 임베디드 보드에 올려 돌렸다. 절반이 끝났다. 불평등과 모순, 법적, 제도적, 사회적, 조직적 탄압은 커널 코드에 존재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않을 것이다.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어쩌면 존재할 지도 모른다. 존재한다. 리눅스 커널 코드에 '여성계'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커널 코드에 여성계의 입장이 고려되면 수행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꼴도 보기 싫은 매우 지저분한 코드가 될 지도 모른다.

JTAG 케이블을 7만원 씩이나 받고 파는 걸 보고 좀... 부품값만 4000원 정도. 그냥 만들자. 만들겠다니까 만들지 말란다. 왜요? 시간낭비니까.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이 시간낭비였다.

식당과 사무실에서 각각 추석 선물을 줬다. 양말 한 켤레와 과자 한 상자였다.

소호 사무실 2인실을 잡았다. 월세 안 내도 좋으니까 들어오란다. 수도승들이 게송에 전념할만한 작은 공간이다. 흰색 회벽, 깔끔한 회의실, 각종 사무집기, 2개의 랜 케이블. 빈 책상. 의자 두 개. 거기에 내 자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얼핏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조사장이 옛날 얘길 했다. 기억나나? 하면서. 뭐가요? 옛날 옛날에 너 인터넷 해킹하면서 돌아다닌 거. 언제적 얘긴데요? 모자익이 나오기 전에. 그러고 보니 웹 이전부터 인터넷을 사용했던 것 같다. 패킷 어셈블리를 조작하고 라우팅을 위조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를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그 아저씨는 미국도 아니고(화이트샌드 미사일 기지였을 것이다. 매번 거기를 통해 들어갔고 거기서 수년간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해커들을 만났다) 왜 하필이면 그런 곳을 밤을 새워 돌아 다니는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단다.

기억이 잘... 그때 기억이라고는 상용이형과 타넨바움의 미닉스의 문제점에 관해 핏대를 올리며 마구 퍼 마시면서 떠들어 대곤 했던 것 정도. 그는 미시간에 가서 os를 더 공부했고 나는 화가 나서 그가 돌아오면 확실하게 엿 먹이려고 os를 남몰래 공부했다. 그때 대한이가 있었다. 대한이는 프로그래밍은 별로 였지만 여자를 기차게 잘 꼬셔서 항상 질투심을 느꼈다. 애 였고 늘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활활 타올랐다. 기억이 잘 안났다. 안 났으면 좋겠다. 제발.

제발 그만 해줘.
나는 너의 인형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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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

잡기 2003. 9. 2. 03:23
우연히 KBS2 TV의 호주제 폐지에 관한 100인 토론을 봤다. 1시간 가량의 토론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등장한 윤소라씨가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계의 주장을 말 그대로 박살을 내는 과정을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봤다. 어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KBS2 100인 토론: 호주제 폐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울산방송 호주제 토론 방송 -- KBS2 방송이 쇼라면, 이게 정말 토론같다.
호주제의 장단점과 폐지대책

어. 내가 정말 호주제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구나. 단지 많은 여자들이 불편하고 억울하다길래 불편하고 억울하면 없애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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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blade, dull

잡기 2003. 9. 2. 00:49
시간이 없어서 FeedDemon으로 최근에 블로그를 본 적이 없다. hollobit라는 아이디가 눈에 익었다.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옛날 옛날, 1200하고 2400 모뎀으로 비비에스를 운영하던 시절 얘기가 있네? 그의 기사에서 내 이름과 대성이형 이름이 보였다. 왜... 우리 이름이 나오지? 옛날에 bbs를 운영했다. 제닉스에서 bbs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8MB 라는 엄청난 고성능 AT 클론 머신이었다. 기계 성능이 너무 좋아 한 사람 혼자서 데스크탑으로 사용하기에는 아까워서 멀티 유저가 가능한 제닉스를 깔았다. sco 유닉스를 깔았던가? 가물가물하네. 14년 전 일이다. 세월 많이 흘렀다.

집에 책을 두고 와서 지하철 타는 내내 할 일이 없었다. 마침 노트북에 넣어두었던 읽을꺼리도 떨어졌다. 멍하니 음악을 들으며 칸 사이를 배회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졸았다. 피곤해서 최근 헛소리가 늘어난 것 같다. 어제 원자력 얘기는 왜 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골에 집이 생기면 대체 에너지를 쓸 것이다. 집에서 조그만 원자력 발전기를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년에 한번 시내의 시장에 가서 핵원료를 구입하고. 킥킥. 태양광 발전의 최대 효율은(16%) 수 년 전에 읽었던 것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DOE와 EPRI 사이트를 뒤지며 문서를 관람하다가 지쳤다.

어제 전자 신문 첫 페이지에 모바일 블로깅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SMS MO(Mobile Oriented)를 활용한 모바일 블로그에 관한 것이라고 아저씨가 말해준다. 괜찮은데? hochan.net에서 그 비슷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수년 전에는 이통사에서 SMS MO를 지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뭔가 사회적인 문제 때문에 취소되었다. 사양서와 소스 코드 어딘가에는 아직도 MO 코드의 흔적이 남아있다. 수년 전에는 안 되던 것이 갑자기 된다니까 기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그 당시 그 기능은 모바일 폰을 이용한 데스크탑 메신저와의 연동에 써먹을 수 있었다. 그럼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FreeBSD에서 삽질. 벌써 설치 삽질만 며칠째. ports install은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느렸고 기껏 설치해 둔 패키지의 파일들이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고민하다가 소스를 다운받아 컴파일하고, 거기서 생긴 configuration 파일을 가지고 다시 패키지를 인스톨하니 딱 4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처음에는 pkg_add 명령 사용법 조차 잊어먹었다. 징하다...

empal.com의 메일 서비스가 썩 괜찮아 보여 예전에 가입하고 잘 사용했는데, 금요일에 소스를 메일로 날렸고 사무실에 도착하고 보니 메일이 안 왔단다. empal.com에 들어가 현장 확인해보니 메일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소스가 없어 허탈해져서 돌아왔다.

천안에 갔다가 호서대 캠퍼스에서 Sktelecom(넷스팟)의 무선랜 전파가 잡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SSID하고 key만 알면 무선랜이 된다는 얘기네?

오랫동안 사이먼 싱의 코드북이 번역되어 나오길 기다렸다. 한 3년은 된 것 같다. 영림 카디널의 갈릴레오 총서 시리즈(8권 중 4권을 읽었다)는 몽땅 먹음직스러웠다. 그중 여섯 권을 박병철씨가 번역했다. 사이먼 싱의 얼굴 윤곽을 보니 짐작 했던대로 인도인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Singh은 아마 인도의 어떤 지방(라자스탄?)에서 '사자'라는 뜻이었던가? 그 지방 인구의 절반이 Singh이란 이름을 사용한다던가? 오래되서 잊어버렸다. 책은 시간 날 때나 읽게 될 것 같다. 읽을 책들이 밀렸다.

작년에 플레이보이 SF 걸작선이 나왔다. 모르고 있었다.

Canon A70을 살까 망설이다가 같은 사양에 해상도만 떨어지는 A60을 쳐다 보았다. 7-8만원의 가격 차이에 100만 화소가 차이났다. 아스님 홈페이지의 사진, 황가가 저녁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몇몇 시리즈 카메라의 구매는 아예 생각을 접어버렸다. A60, A70 두 모델 모두 AA 타입 전지를 4개 사용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카메라는 둘 다 썩 괜찮아 보였다. 직접 보기도 했고 포커싱도 마음에 든다. 2-3 초 이내에 사진을 찍으려면 자동카메라로 수동 모드 전환해 이것저것 조작할 시간 따윈 애당초 없다. 그러려면 일반 카메라를 사야지. 무조건 빨리 부팅해서, 많이 찍고 한 두 장 건지는 것이 장땡인 것 같다. 카메라가 망가져 놀고 있는 128MB CF memory와 배터리/충전기 세트를 계속 사용하려면 카메라 선택의 폭이 적다. 한달쯤 더 생각해보고 기종을 굳혀야지. 그나저나 사이트 돌아다니면 사진 잘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가 죽었다.

거리에서 사람 만한 흰 개가 갑자기 쏜살같이 달겨들어, 얼어붙었다. 어깨에 발을 올리고 핥는다. 그만 해라 이놈아. 수퍼에 있는 '맛있고 영양많은' 개먹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이 맛을 본 것일까. 개들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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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처리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불길한 것은 저러다가 새만금 꼴이 날 것 같다는 것이다. 새만금에서는 내 세금이 어떻게 한꺼번에 공중으로 허무하게 날아가나를 스펙타클하게 보여줬다. 세금 내고 싶지 않다. 절반은 생각 없는 정부 때문이고 절반은 광기에 사로잡힌 시민단체 때문이다. 열 받지 말고, 생각을 달리해야지 별 수 있겠나?

아는 얘기만 하자. 원자력 발전에 관한 하고많은 반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안이랍시고 제시하는 것에 관해 비웃음에 가까운 회의를 느끼고는 했다. 대체 에너지 중 현재로서 쓸만한 것이 하나도 없고 그 모든 것들이 미래에는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순진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반증 불가능한, 대체 에너지의 '효용성'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작살낼 수 조차 없었다. 연료전지, 태양전지, 풍력, 지열, 조력, 소규모 수력, 폐기물 발전 등 개중 상업화 된 것들은 대규모 상업 발전에 적합한 수준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 지난 30년 동안 정말 말 그대로 지지부진했다. 그놈에 동력원 중 어떤 것도 전구 몇 백 개 이상 켜는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알래스카의 오지에서는 태양전지나 연료전지가 아니라 가솔린으로 발전한다.

태양전지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정말 엄청나게 비싸서 30m^2짜리 태양전지판을 우리집 옥상에 설치해도(집 전체를 모두 가리고도 부족하다) 냉장고 하나 돌리기 바쁘다. 흐린 날에는 그나마 돌릴 수도 없다. 흐린 날에 냉장고 하나 돌리기 위해서는 비싼 축전지가 잔뜩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김에 함께 절전하면서 살아볼까?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다.

무절제하게 낭비되는 전력의 양이 엄청났다. 논리는 거기에서 부터 비롯된다. 발전소는 발전을 중단할 수 없다. 피크타임 전력사용량을 가정해 최대수요곡선에 맞춰져 있다. 경제와 산업의 양적 팽창이 필연적으로 낳은 결과다. 원전을 더 이상 건설하지 않고 '최첨단 환경친화 기술'을 사용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기를 아끼고 공장에서 남아돌아가는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그야 물론 현재의 발전 용량으로도 충분할 뿐더러 넘치기까지 한다. 과소비 사치 풍조를 조장하는 정부와 방송을 때려잡는 일도 물론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원자력 발전이 안고 있는 문제를 30가지 이상은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다. 그리고 '최첨단 환경 친화 발전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문제가 된다. 아쉽게도 틀렸다. 다시 말하건데 최첨단 환경친화 발전 방식을 사용하고, 기대할 수 없는 시민의식과, 전기가 남아도는 공장과 산업시설에서 전력을 아낀다해도 원전이 없던 시절처럼 오후 2시에서 4시까지의 피크 타임 때는 에어컨을 켤 수 없다. 아니 도로에 가로등을 켜둘 수 조차 없다. 단전은 일상화될 것이다. 하지만 단전에 익숙해지면 별 거 아닐 것 같긴 했다. 옛날에는 그렇게 살았고 내 생활 방식은 옛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난 전기를 아껴쓴다. 평범 이상으로. 그 때문에 대체 에너지에 평범 이상의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전기세 내기 싫어서.

환경단체 사람들이 미친 러다이트같이 기술을 배격하는 것 같고 확실히 자연친화적이긴 한데, 대체 에너지 개발 기술이 최첨단 기술이라는 것을 알기는 할까? 거대 자본이 들어가고 특정 지역에서만 이용가능하고 적어도 수십년 동안은 기술의 발전이 암울해 보이는? 다시 말하지만 알래스카에서는 가솔린을 가지고 가가호호마다 발전한다. 알래스카 얘길 왜 자꾸 하냐 하면, 환경단체 애들이 좋아하는 대체 에너지원 중 어느 것도 25% 효율의 값싼 가솔린을 사용하는 발전기만 못하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으면 인터넷을 친히 뒤져 보시라. alternative energy나 기타 비슷한 말로.차라리 집에서 매달 전기세 13000원씩 내는 것이 싸게 먹힌다. 집에서 컴퓨터를 다섯대 돌리는데도 한달에 전력 사용료로 13000밖에 안 낸다.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라 하다 못해 잘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의 플로피 드라이브와 cdrom 드라이브의 전원 라인을 다 빼버리거나 2-3분이면 standby 모드로 들어서는 컴퓨터 세팅 때문이다. 나는 TV를 안 본다. 밤에는 30W짜리 인버터 스탠드 하나로 조명을 때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환경친화적이다. 쓰레기 분리 수거하지요, 재활용 하지요, 전기 안 쓰지요, 냉장고에 썩어서 버리는 물건 하나 없지요, 매일 밥을 해먹으면서도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0에 가깝지요, 물은 대야에 받아서 아껴 쓰지요. 심지어 수돗물을 마시지요.

정말 대체 에너지에 관해 제대로 알고나 있어서 하는 말일까? 궁금하다. 내 집 마당에 연료전지와 태양전지와 수력발전과 풍력 발전과 축전지를 다 갖춰도(말 그대로 기천만원이 든다. 대신 전기세에서 해방된다!) 대체 컴퓨터를 몇 대나 돌릴 수 있을지를 우선 걱정하는 편인데... 어쩌면 시민단체는 내가 모르는 뭔가 새로운 것을 알고 있고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외계의 반영구 에너지원이나 원자력보다 수백만배는 더 무서운 안티 매터 프로덕션 엔진 같은 것들. (참고로 안티매터 엔진은 무공해 클린 에너지원이다. 반물질의 제조 단가가 천문학적이라서 그렇지. 한번 터지면 도시 하나쯤 손쉽게 날려버린다. 클린하게.) 저렴하게 거의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세계가 바뀐다. 어떤 정부도 그걸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음모론이라고 할 수 있지. 왜 효율적인 에너지는 놔두고 그보다 뒤떨어진 에너지 생산원에 각국 정부가 매달려 아둥바둥하고 있을까? 에 관한. (사실 궁금하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 왜 유독 지지부진할까? 석유회사의 음모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정부가 원자력에 환장한 이유는 단가당 전력 생산비가 그 어느 것보다도 싸기 때문이고, 둘째, 전력 수요가 나날이 증가해서 환경친화적이라는 수력 발전소 따위로 때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에 또라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유독 똑똑한 시민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단체에는 왜 그런지 또라이들이 많았다. 원자력 발전 문제를 경제 수요나 생활의 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 권력 구조 내지는 음모론으로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좀 핀트가 어긋난 것일까?) 그래서 무지한 시민들을 선동해 자신들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환경단체에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사실들 대부분이 마치 심리적 공황을 유발하기 위해 특별히 제조된 정치적 선전선동문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자기들도 잘 모르고, 대중은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 적혀 있는 갖잖은 홍보문구를 단지 정부 유관 기관이 썼다는 이유로 믿지 않을 것이고 환경단체 끼리끼리 어디서 줏어온 전설스러운 얘기들을 조합한 '민간인'의 얘기에 훨씬 더 신뢰감을 가질 것이다. 때때로 전문가들 몇몇이 끼어 들어 한 마디 썰을 푼다. 나는 이런 구조를 예전에도 익히 보아 왔다. 지식과 사실이 아닌, 일종의 신념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광신도들.

이런 얘기를 어젯밤에 했다. 간만에 흥분해서 침을 튀기면서. 하지만 그는 원전에도 대체 에너지에도 폐기물 시설에도 관심이 없었다. 될대로 되라고 해. 나는 방관자야. 라고 말했다. 이 양반을 설득할 실력이 내겐 없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을 설득할만한 웅변 역시 불가능하다.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말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국민은 어처구니없는 세금을 내는데도 의외로 얌전한 편이니까. 새만금 간척사업 때문에 나간 세금이 영 꽝이 되었다는 것으로 열받은 사람은 주변에서 오직 나 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외롭다!

폐기물 관리 시설을 건설하지 않고 폐기물을 몽땅 수출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심지어 별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로등을 꺼야 하니까) 대신 세금은 5% 증가한다. 뭐 그런 식으로. 아니다. 세금 부담을 늘리지 않을 수도 있다. 가솔린에 붙는 터무니없는 세금을 줄이기만 한다면. 대체에너지로 때운다? 한국의 총 발전량의 40%를 원전이 차지하고 있는데 걔네들이 좋아하는 대체 에너지로는 훨씬 값비싼 댓가를 치루고 아마 대략 5% 정도를 간신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해봤자 쓸모가 없다. 정부 프락치 취급이나 당할테니까. 그래서 잊어버리기로 했다. 대안도 없이 미신같은 얘기만 늘어놓고 결국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환경단체에 공감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작정 틀리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결국은 대체 에너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이란 책의 첫장을 열자마자 주위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자처럼 미친듯이 웃었다.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어떤 행동에 대한 반증(논거를 주도면밀하게 파괴하는 공작)에 대한 애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1장을 마감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토론은 필요없다. 애당초 말이 안 통할테니까. 웃으면서 이익을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원자력 발전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산간오지에 수만평의 땅을 사서 폐기물 처리 비용을 받고 그것들을 묻어버리고 그 옆에서 관리인으로 살며 책이나 보는 것이다. 환경단체가 때되면 지랄해서 처리 비용을 올려줄 것이니 의외로 유망한 사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프로그래머로서 연봉이 끝없이 올라간 이유는 멍청하고 등신같은, 말 그대로 프로그래머라고 부를 수도 없고, 책 한 줄 읽지도 않는 허파에 바람만 든 초짜들이 IMF 이전에 터무니없는 연봉을 받아 먹으면서 사이드 이펙트로 누렸던 호사였다. 세상이 멍청해서 해놓은 짓에 사실 나는 환호작약했다. 노동량은 같은데도 불구하고(하루 18시간) 어느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연봉이 올랐는데 입이 안 찢어질 수가 있겠나? 난 그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환경단체의 활약에 기대가 된다. 우리는 고비용 저효율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광기나 미신이 아니다. 환경단체는 나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내 장래를 위해서. 자칭, '하이 퍼포먼스 알바'인 나는 이런 세계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행복하게 잘 해 나갈 수 있다.

영풍문고에서 하릴없이 배회하다가 평생 안 볼 것 같은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읽어 보았다. 재밌는 얘기들이 많았다. 어떤 책에서 첫 찹터의 타이틀이 이런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믿을만 하다. 어? 내 얘기잖아?

크루그만의 책이 눈에 띄어서 얼른 집어 들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야 10% 할인이라도 되지만, 30분이면 기억이 자동으로 증발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잊어먹기 전에 7000원을 주고 카드로 그었다. 국제무역에 관한 재밌어 보이는 책이다. pop inter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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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g me that horizon

잡기 2003. 8. 31. 02:11
못 생기고 영리한 여자를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는 예쁘고 멍청한 여자를 영리하게 만드는 것이 더 쉬운 법이니까.. 라는 말을 늘어놓는 주인공이 나오는 어떤 단편 소설을 보았다. 주인공은 예쁘고 멍청한 여자가 영리해지자 마자 엿 되고 말았다. 예측 가능하고 당연한 귀결이다. 여자들에게 뭔가를 정성들여 가르쳐 준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학습은 혼자 해야지! 왠만하면 묻지 말고! 삽질 하면서! 실패를 겪어야, 그것도 아주 많이 겪어봐야... 그러고보면 나야말로 실패를 두려워했다. 실패를 두려워 하기 때문에 실패를 거의 안 했다. 아무 것도 안 하면 실패할 일이 없으니깐.

헤드헌팅 업체에서 해킹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며 연락이 왔다. 해킹이라니... 떨었잖아. -_-;

리눅스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 별로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년 리눅스를 어떤 식으로든 만졌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redhat 8.0을 설치 하느라 다시 삽질하고 nt 소스를 linux로 포팅. 일주일쯤 잡았는데 2-3일이면 끝날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다음 주에 데모를 한다나? 흥. 데모 하라지. 이틀쯤 삽질해서 끝냈다. 내가 끝냈다고 그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하는 걸?

양 아저씨는 무선랜을 BCE라고 정의했다. Bathroom Computing Environment. 재밌어서 웃었다.

옷을 입으면 답답하고 불편했다. 새벽잠이 없어졌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서 발가벗고 소스 코드를 본다. 일어나면 눈이 부시고 피곤했다.

애 안 나? 나오는 중이야. 2년 만에 재술씨를 만났다. 비가 와서 약속을 연기하잔다. 사내라면 비바람과 역경을 헤치고 서로 만나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집 주위는 비만 오는 일이 없었다. 비바람이 몰아쳤다. 나야 말로 모진 비바람을 뚫고 서울로 가야 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예수교는 하나만 믿으면 되니까(난 한 놈만 조져) 주제 집중도가 높은 신흥 종교라고 말하며, 신자인 그를 상대로 예수교를 희롱했다. 재미있었다. 그는 내가 여전히 불쌍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온 나에 대한 자신의 상대적 열등감을 보상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민을 갈 것이고 나는 일년 동안 여행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어 한국에 계속 남기로 했다.

위험한 사돈, 익스트림 OPS, 크레들 2 더 그레이브, 하프 패스트 데드, 원더보이, 보물성, 카리브해의 해적 등을 2주 동안 천천히 봤다. 원더보이, 카리브해의 해적 등이 재미있었다. 캐리비언의 해적? 제대로 영어로 쓰려면 캐러비안의 해적이 맞겠고 그 동네 사람들은 카리브 해라고 불렀다. 혀가 짧아 발음이 잘 안되는 영어권 애들 때문에 역사적으로 잘못 읽히는 지명이 얼마나 많은지. 조니 뎁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나같은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 '망할 해적들 같으니라고.'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펴들고 태연하게 봤다. 환승역에서는 걸어가면서 텍스트를 읽었다. 어두운 밤길을 천천히 걸으며 읽기도 했다. 몰두하고 매료되고 사로잡힐 수 있었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이렇게 귀와 눈을 틀어막지 않고 거리를 거닐며 관찰의 기쁨을 누렸건만.

사무실을 알아보잔다. 소호 사무실이면 두당 17~20만원 정도에 얻을 수 있단다. 집안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다섯 대나 되는 컴퓨터를 보면 한숨이 나왔다. 이것들을 어디론가 옮겼으면 좋겠지만, 이미 방이 웍스페이스가 되어버린 지금 새삼스레 사무실을 얻기가 뭣하다. 재정적으로 곤란하다. 사무실에 있으면 더더군다나 지금보다 더 일을 열심히 하게 되니까 꺼림직스럽다.

꿈을 꾸었다. 고양이가 강아지의 목덜미를 물고 있다. 강아지는 서서히 죽어갔다. 잘라진 뱀 조각들이 고양이 살갗을 물고 매달려 고양이 몸에 독을 주입하지만 강아지를 물고 있는 아구의 긴장은 여전했다. 뱀은 썩어갔다. 개미가 죽은 뱀에 새까맣게 달라 붙었다. 개미는 썩은 뱀을 통해 고양이 몸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강아지는 여전히 죽어가고 이제는 고양이도 죽어갔다. 잠에서 깨었다. 창밖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책이 도착했다. 기대되는 책은 '꼴통들과 화 안내고 대화하는 방법' 정도. '임베디드 시스템 임베디드 리눅스'라는 책은 개소리만 늘어놓다가... 끝났다. 두 시간쯤 읽고 집어 던졌다. 조까고 있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돈이 아까워서 약이 올랐다.

피곤해서 선잠이 들었다가 깨어 침대에 누워 끄적끄적 블로그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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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ly high;

잡기 2003. 8. 27. 01:34
백노이즈 깔고 시작. Faust, Faust IV, The Sad Skinhead

온갖 잡동사니를 다 끌어모은 지랄같은 샘플링, 그들 앨범에서 가장 거지같다는 곡? 왜? 옛날 옛날 우리 모두가 사이좋고 어리석었던 시절, 함께 엿 먹고 서로의 얼굴을 후려 갈기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없던 좋~았던 시절. 기억들은 시프트 레지스터에 밀려 좋든 싫든 떠나간다. 장마비에 불은 흙탕물 위로 돼지와, 누군가의 마누라가 한가하게 둥둥 떠내려 가듯이.

어젯밤 evaluation board에 linux kernel을 올려 돌렸다. 6시간 삽질. 매뉴얼도 없고 소스를 뒤져 간신히 로딩 방법을 찾았다. 회로도를 보다가, 설계 스펙을 좀 더 튜닝해야 할 것 같다. fclk divisor의 한계가 2^17이고 잘만 하면 direct mapped i/o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메모리 뱅크를 정리하고 mmu에서 virtual memory control을 exclude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한 달 이내에 boot code와 kernel과 device driver, 그리고 ram disk와 smart media를 마운팅하는 모듈을 포함시킨다. 부트 코드에는 ADS에서 작성한 빌어먹을 코드를 살펴 리눅스에서 gcc로 리컴파일하고, bootp와 tftp가 포함되어야 하고... 한 달이라? 이제 27일 남았다. JTAG cable이 있어야 마음껏 플래시 메모리를 날려먹어도 복구가 가능한데... JTAG 케이블이 사나이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CD-R의 수명 2년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결과 발표.
--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 아니었던가? 뉴스꺼리도 못 되는. 2년 전에 구운 영화 divx cd들이 맛이 가서 영화는 더 이상 굽지 않을 뿐더러 중요한 자료는 hdd에 저장하고 잼겨놓게 된 것이 바로 2년전 이맘 때. hdd의 기가당 단가가 싸지면서 cd 120장 구울 시간과 보상받지 못할 무용한 삽질에 들이는 정성을 감안하면 시중에서 가격대 성능비가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80gb 하드디스크를 사서 저장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면 말이겠지. cd 파손은 기억의 심각한 손상과는 무관했다.


[휴지통]로또20억 분배싸고 동거녀와 주먹다짐
-- 5억, 세금 제한 것이라면 총액의 1/4. 그녀는 불안했을 것이다. 돈 생긴 남자가 자기를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목적? 애정의 확인과 사랑이 깨졌을 경우 일종의 위자료로서. 그녀가 가만히 있었더라면 사정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후 그것 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만들기 일쑤였다. 도대체 왜 그러는건지 모르겠다.

애당초 인간은 자신의 실수를 통해, 기억의 잡목숲을 헤쳐 무언가를 배우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앞으로 천 년이 지나도 타인에게 자기 먹이를 안 나눠 줄 것이고, 머리 속에 모호하게 떠오른 유령같은 허름한 사상과 이념만 가지고도 사람의 몸에 갖가지 구멍을 내서 죽일 것이고, 우주로 나가 패싸움질이나 하는 등, 온갖 등신같은 짓을 다할 것 같다. 자기 얼굴이나 후려칠 것이지.

wake on lan을 사용해서 그동안 옆 방의 컴퓨터를 원격으로 부팅하는 등 잘 써 먹었는데 AIR-400K로 공유기를 바꾼 후 어찌된 일인지 udp magic packet을 공유기가 차단해서 로컬 랜에 브로드캐스트 하지 않는 바람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공유기에서 왜 필터링을 하는가 게시판에 물어보니 친절하지만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AIR-400K는 그 기능을 지원하지 않으며 그 기능이 '추가'되면 자료실에 펌웨어를 올려 놓겠다나. 잘 되던 기능을 없애 버리고 다시 '추가'를 한단 말이야? 맙소사.

볼 일이 있어서 드림위즈에 가입 신청을 하려고 보니 이미 가입이 된 상태고 아이디는 정지되어 있다. 정지를 풀려고 로긴하니 정지를 풀려면 암호와 주민등록번호, 이름을 입력하라고 나온다. 기껏 입력하니까 그 암호로는 정지 상태를 풀 수가 없단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메일질 하거나 200원 내고 SMS로 보내란다. 내가 왜 내 돈 200원을 들여서 SMS를 보내야 하나. 여러 모로 이해가 안 간다. 상담데스크에 email을 보내니 답장이 왔다. 본인 확인을 위해서 주민등록증을 팩스로 보내라는 것이다. 더더욱 이해가 안갔다. 내가 남의 주민등록증을 스캔해서 포토샵으로 그걸 위조해 팩스로 날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조언했다. 본인 확인은 드림위즈 본사에서 하십시오. 라고.

전 세계의 고객센터에는 세상의 온갖 바보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고객센터에 전화질, 메일질, 삿대질 해봤자 소용없다. 그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늘 얼간이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더더욱 그들이 얼간이 같아 보이는 것은, 심지어 상냥하게 웃기까지 한다는 것. 그리고 고객센터의 얼간이들은 십중팔구 여자다. 이건 음모다. 여자는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외국 항공사의 헬프 데스크부터 국내의 콜센터까지 그들은 경악에 가까운 일관성을 보여준다. 여성 운동, 이쯤에서 출격해야 한다.

설계 스펙 대부분을 외웠다. 화이트 보드에 그 복잡한 코드와 맵을 일사천리로 전개하는 동안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 보았다. 나도 놀랐다. 그 방대한 문서량을 어떻게 다 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루크는 나이를 먹어도 머리가 안 썩는 것 같아. 라고 말한다. 나이라... 그렇게 무언가를 외운 만큼 오래된 기억들은 떨어져 나간 것이다. 좋든 싫든, 똥 싸듯이.

그래서 내 대가리의 작동 방식은 NAND 플래시 메모리와 흡사했다. 임프린트가 있고 배드 블럭이 존재했다. ECC 체크로도 안 걸리는 한심한 에러들이 산재했다. digitally high에 추호의 주저나 흔들림 따위는 없었지만 어느날 배드 블럭이 되어 버렸고 버림 받았다.

그래서 내 대가리는 SDRAM처럼 작동했다. 하지만 리플래시 사이클을 잊어버려 무언가가 사라졌다. 플로팅 게이트에 떠 있는 전자 몇 마리는 호박 속에 갇힌 캄브리아 모기처럼 박제되어 있다가 어느날 우주를 변화시키러 떠났다. 실리콘 호박은 남고 빈 게이트에 더 이상 전자는 주입되지 않았다. 때로 전원이 나가기도 했다.

컴퓨터 얘기만 늘어놓고 있는 건가? 읽은 책들은 재미가 없고 보는 영화마다 꽝이었다. 오직 쿼런틴만 남았다. 쿼런틴 2부 반쯤 읽은 것 같은데. 전화기의 전지가 다 떨어질 때까지 쿼런틴 얘기로 '수다'를 떨었다. 역자가 역자 후기나 해설에 양자역학을 설명 하겠다던데 설명하면 할수록 독자들을 괴롭히는 것 밖에 안 될테니 제발 참아 줬으면 했다.

3시간 밖에 못 자서 피곤하다.
맥주 먹고 잘까, 아님 꿈을 꾸다 잘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애가 생기면 보조기억장치로 활용하자.
son of bits로 만들자.
son of bits는...
digitally high 였다가...
digitally low 였다가...
z state로 넘어가기도 할 것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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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리눅스

잡기 2003. 8. 25. 01:29
전갈좌 남성의 별자리는 언제 봐도 인기가 없군. 어서 빨리 달아나라니... 여복이 없어.

Redhat 9 을 다운받았다. Redhat 사이트가 느려 창환씨가 받고 나는 그의 컴에 접속해 ftp로 전송 받는 식으로. 창환씨의 VDSL은 2시간도 안되어 cd 5장을 모두 받아서 배가 살살 아파왔다. 어서 빨리 아파트로 들어가야 할텐데...

비가 몹시 오는 날이면 전송 선로의 속도가 느려져서 30Kb/s라는 56kbps 전용선 속도가 나오곤 했다. 하루종일 그걸 받으면서 문서를 살펴보니 2.4.18 커널을 모디파이해서 만든 거라나... 엿먹을. 다시 2.4.18 커널을 사용하는 가장 상위 버젼인 Redhat 7.3을 ftp.linux.co.kr에서 30kb/s 속도로 다운. 거의 다 받았을 때쯤 제작사 홈페이지를 보니 2.4.18 커널을 쓰고 redhat 7.1에서 테스트 했다나. 아아... 이래서 급해도 갖은 문서를 뒤져 봐야 하는 것이다. 화딱지가 나서 7.3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문서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언급된 적이 없었다. 삼성의 리퍼런스에 자기들이 리눅스 셋업 한 것만 살짝 추가해서 팔아먹다니... meritech가 좀 심하다 싶다.

공유기를 갈아치웠더니 로컬 랜의 스피드가 무려 76Mbps가 나왔다. 무선랜은 3개의 문을 뚫고 전파가 지나가면서도 5Mbps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런데 비가 심하게 와서 '온세통신 샤크 초고속 인터넷'은 1Mbps를 채 넘기질 못하고 빌빌거리고 있었다. 돈 안내고 쓰는 것이니 입 다물고 있어야지.

ARM 720T 코어에 귀찮은 MMU가 있다. 다이렉트 맵드 아이오를 하려면... 음... 몇 가지 고려할 것들이 생기겠는데...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문서 보기가 지겹다. 알라딘으로 책을 몇 권 주문했다. 열 권에 10만원 가량. '역전에 산다', 'Bad Boys 2' 따위의 그저 그런 영화를 보면서 다운로드가 다 되기를 기다렸다.

16시간 동안 레드햇만 다운받다가 지쳐서 동틀 무렵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12시쯤 일어났다. 한 손에 노트북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30m를 채 못 가서 signal strength는 말 그대로 drastic하게 감소했다. 유무선 공유기는 AP가 아니고, 무선 랜 카드는 싸구려니까. 그래도 집 안에서 5Mbps라니... 훌륭한 거지.

나간 김에 배추와 무우를 사왔다. 배추와 무우를 절이면서 다운이 다 끝나길 기다렸다. 밥 하고 배추국을 끓이면서 cd를 3장 구웠다. 밥 먹고 김치를 담그면서 인스톨을 시작했다. 내친 김에 집안에 굴러다니는 모든 채소를 몽땅 사용해서 절이거나 담궜다.

거지같은 삼성 cd/dvd 32배속은 구운 시디를 인식하지 못했다. 설치는 실패했다. 프레스 cd는 잘 인식했고 cd-r이 잘 되던 시절, 그러니까 레이저가 강할 무렵에 구운 cd도 인식이 잘 되었지만 최근에 구운 것들은 문제가 있었다. 어쩌면 iso 포맷 때문일런지도. 하여튼 빌어먹을 삼성 cd-rom 드라이브 같으니라고.

주 컴퓨터에서 LG cd/dvd를 떼어내 엊그제 17만원 주고 산 작업용 컴퓨터에 달고 레드햇 7.3을 설치했다. 저녁을 먹고 TV로 수해(?) 상황을 보다가 화장실에서 노트북으로 리눅스에 로긴해 Samba 설정을 잡았다. 준비가 다 된 셈이다. 그 망할 놈에 준비는 주말에 2-3시간 잠깐 짬을 내서 할 만한 성질의 것인데, 무려 28시간이 걸렸다.

28시간동안 한바탕 악몽이라도 꾼 것 같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영화 보고 자야겠다.
지쳤다.
Moody Blues - Your Wildest Dream

...
Once beneath the stars
The universe was ours
Love was all we knew
And all I knew was you
...
Once upon a time
Once when you were mine
I remember sk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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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컴퓨팅

잡기 2003. 8. 23. 20:14
어젯밤에 유무선 공유기와 AP(Access Point)에 관해 이런 저런 기계를 알아보았다. 품질은 LinkSys 재품이 끝내주고(전미 흥행 1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은 버팔로(일제) 것들이었다. Unicorn의 제품에 관해서는 안 좋은 얘기들이 다수 있었다. 홈페이지에 가봐도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뿐. 가만히 단위 기간당 문제 발생 건수를 살펴보니 게시물이 의외로 적었다. BuyKing.com(eOpinion.com과 비슷한 국내 사이트)에서는 에이엘테크의 애니게이트 제품이 사고싶은 제품 1위로 올라와 있었다. Linksys 제품은 비싸서 일단 제끼고 buyking.com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서 제꼈다(난 소비자 의견을 믿지 않는다. 그들 중에 전문가는 정말이지 극소수에 불과하다. 벤치 사이트의 벤치마킹 테스트 역시 믿기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Unicorn의 AIR-400K로 제품을 굳혔다. 무선 랜카드는 Nettop의 3만 6천원짜리 싸구려 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다나와를 뒤져 어디를 방문해야 할 지 결정했다. 그저 짤 없다. 가장 싸게 부르는 가게만 찾아가니까.

비를 맞으며 용산을 방문했다. 터미널 상가 지하의 제닉스 통신에 들러 유니콘 제품을 사겠다고 말했다. 그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역시 linksys 제품을 최고로 쳐주었다. 무선 랜카드는 2-3만원짜리 저가 보다는 만원 더 비싸더라도 Wax의 제품을 쓰는 것이 낫다고 충고한다. 왜요? 통달거리, A/S, 낮은 수신율과 잦은 끊김현상 등 저가 제품은 믿을 수 없고, 3com 제품은 6만원 이상의 가격대라 부담스러울테고 wax 제품은 자기들이 수십 차례 테스트를 해 봤다고 한다. 전형적인 용팔이 수법이구만. 하지만 테스트 해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제품 값을 치르기 전에 유무선 공유기와 무선 랜 카드를 테스트 해 보기로 했다. 랜에 물리자 마자 아무 문제 없이 접속되었다. 유니콘 제품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유선 공유기 때문에 친근하고 믿을만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회사에 A/S를 하러 갔을 때도 인상이 좋았다. 오케이. AIR-400K를 12만 7천원, Wax 무선 랜 카드를 4만 5천원에 샀다. 카드 결제 해서 18만원에 쇼부 봤다. 썩 만족스럽다.

지하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비를 맞으며 선인상가로 발길을 돌렸다. 선인 상가의 별칭 북간도(중고 물품을 취급하는 선인상가 북쪽 지역)에 들러 싸구려 중고 기계를 살 생각이었지만 마땅히 마음에 드는 중고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서브PC급의 작은 컴퓨터로 리눅스를 설치할 정도면 프로세스나 HDD 크기는 그리 상관없었다.

한참 돌아 다녔지만 결과가 실망스러워 어젯밤 kbench.com 장터에서 본 중고 PC를 사려고 전화를 걸었다. 팔겠다는 사람이 업자라서 그의 매장을 방문해 기계를 일단 살펴보고 살 생각이었다. 토요일이라 매장 문을 닫았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한다. 그의 집에서 기계를 살펴보니 삼성의 pentium iii 600Mhz, 128MB, 10GB 정도의 사양이었다. 용산에서도 자기한테 중고 기계를 사간다고 말한다.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CMOS세팅을 살펴 보았다. 나쁘지 않다. 오케이. 17만원을 주고 작지만 묵직한 기계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건들을 구매하는데 총 5시간이 걸렸다. 이래저래 테스트가 많았던 하루였다.

유무선 공유기는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고(이미 테스트를 해 봤으니까) 바로 작동했다. 무선 랜 카드를 노트북에 꽂아 방문을 닫고 테스트 해 보았다. 방문 3개를 닫았는데도 수신율이 90%를 넘었다. 한번도 끊기지 않았다. 대단히 훌륭하다.

이 글은 무선랜을 설치한 기념으로 화장실에서 담배 빨면서 노트북으로 쓰는 것이다. 냄새가 좀 날 것이다. -_-

화장실에서의 컴퓨팅, 드디어 소원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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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Next Door to Alice

잡기 2003. 8. 23. 00:13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여자친구에게 들었던 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the Alice에 관한 얘기: 여자친구를 그리워 하며 그 애타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24년 동안 앨리스의 옆집에 살면서 말 한 마디 붙여 보지 못한 화자는 앨리스가 리무진을 타고 떠나가는 것을 애처럽게 지켜보며 자신의 심경을 처절하게 토로한다. 난 주욱 그 노래를 들으면서 등장인물은 둘 뿐이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고 말해 주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은 다음 날, 노래를 귀 기울여 들어보니 분명 샐리라는 여자애가 등장했다. 앨리스가 떠나는 날 그 소식을 전하는 여자애의 이름이 샐리였고 화자가 넋이 나가 자기 심경을 구질구질하게 털어놓는 동안 샐리는 자기도 화자를 24년 동안 기다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화자는 그녀의 말을 개무시(-_-)한 채 주구장창 떠난 앨리스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28년 동안 그 노래를 들어왔던 나도 샐리라는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옛날 여자 친구 생각이 떠올라 낄낄거렸다. 그녀는 화자에게 뿐만 아니라 그 노래를 들었던 나같은 남자들에게 조차 '철저하게 잊혀진 샐리' 때문에 탁자를 탕탕 두들기며 격분했다.

노래를 올렸다. Smokie - Living Next Door to the Alice.

Sally called when she got the word, <-- 샐리 등장.
She said, I suppose you've heard about Alice
Well, I rushed to the window, and I looked outside
I could hardly believe my eyes
As a big limousine rolled up into Alice's drive

Don't know why she's leaving, or where she's gonna go
I guess she's got her reasons but I just don't want to know
'cos for twenty-four years I've been living next door to Alice
Twenty-four years just waiting for the chance
To tell her how I feel and maybe get a second glance
Now I've got to get used to not living next door to Alice

We grew up together two kids in the park
We carved our initials deep in the bark, me and Alice
Now she walks through the door with her head held high
Just for a moment, I caught her eye
A big limousine pulled slowly out of Alice's drive

Don't know why she's leaving, or where she's gonna go
I guess she's got her reasons but I just don't want to know
'cos for twenty-four years I've been living next door to Alice
Twenty-four years just waiting for the chance
To tell her how I feel and maybe get a second glance
Now I've got to get used to not living next door to Alice

Sally called back and asked how I felt
And she said, hey I know how to help - get over Alice
She said now Alice is gone but I'm still here
You know I've been waiting for twenty-four years
<--- 문제의 가사
And the big limousine disapeared <-- 이 시점에서 '철저히' 무시 당함.

Don't know why she's leaving, or where she's gonna go
I guess she's got her reasons but I just don't want to know
'cos for twenty-four years I've been living next door to Alice
Twenty-four years just waiting for the chance
To tell her how I feel and maybe get a second glance
Now I've got to get used to not living next door to Alice
No I'll never get used to not living next door to Alice

빨간 칠한 'She said' 부분을 스리슬쩍 넘어가면 마치 샐리가 말한 것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하하하! 웃긴다!

...

멋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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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마련의 꿈

잡기 2003. 8. 22. 22:16
웹 사이트를 뒤져보니 암말 말고 장기주택마련 저축에 가입하란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7년동안 비과세라나? 그래서 암 말 않고 만원 집어 넣었다. 나는 무주택자 이상이었다. 무주택자이자 실업자이자 도시 빈민이다. 예전에는 하이테크 로우라이프, 테크노 집시 등등 허황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건만.

주택공사에서 나 같은 도시빈민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심어 주려는 목적으로 만든 국민주택을 분양/임대 하려면 국민은행에서 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한단다. 싹싹한 창구 상담원께서는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하단다. 땀 흘리며 동사무소에 가서 등본을 떼고 다시 20분을 걸어 은행으로 되돌아갔다. 이미 청약부금 통장이 있어서 안된단다. 어? 확인해 보고 오세요. 은행을 나와 다시 걸었다. 2시간쯤 땡볕에서 오락가락 하며 은행 놀이를 했더니 덥다. 두번째 샤워.

메신저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주택은행이 국민은행에 병합되었단다. 그럼 창구에서 청약부금 해지하던가 청약부금 가지고 뭘 할 수 있는지 얘기해 주면 될 꺼 아냐. 국민주택 때문에 온 것 뻔히 알면서 내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다가 가서 알아 보시라니! 재테크 놀이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

그런데 언제 주택은행 청약부금에 가입한거지?
게다가 만기가 되었네?
이해가 안 가는군.
에잇 빌어먹을.
골치 아파.

싱글에 관한 무슨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싱글로 사는 것이 요새 '트랜드'란다. 본의 아니게 나는 트랜디한 사람이 되었다. 빈민 주제에. 웃음.

차가운 맥주 한 잔 하면서 음양사라는 색깔이 예쁜 영화를 봤다. 세이메이나 히로마사가 나오는 것을 보니 같은 이름의 만화책이 원작 아닌가 싶다. 그 만화책을 꽤 재밌게 봤었다. 옛날 옛날에. 세이메이는 사람이 아니고 사연을 가지지 않았다. 캐릭터나 그들의 연기가 영 마음에 안 든다. 영화에서 '주'라는 글자와 '온'이라는 글자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만화책을 보는 편이 백번 낫다고 중얼거렸다.

밤이 되었음에도, 오늘은 산에서 원정나온 벌레들이 별로 없다.
귀뚜라미가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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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가 '토마토 요술 영양냄비' 선전이 나왔다. 스타트랙이 끝난 후에도 토마토 요술 영양냄비가 나왔다. 뭘 보든 케이블 TV에서 토마토 요술 영양냄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도대체 토마토 요술 영양 냄비를 몇 카피나 팔아먹었길래 몇 개월째 저러고 있는 걸까? 토마토, 요술, 영양, 냄비를 조립한 상품명은 마치 마녀가 불에 그을리고 그녀의 나이만큼 세월을 먹은 커다란 볼에 두꺼비의 한숨과 죽은 자의 눈물, 처녀의 첫번째 피를 부어 그 늙은 메부리코와 쥐씨알처럼 작은 눈과 후드에 슬며시 가려진 이마의 깊게 패인 골 속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린채 설설 시간을 녹여 젓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TV에서는 그저 맛있고 간편하고 눌러붓지 않고 못 만드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토마토 요술 영양 냄비는 주방의 필수품인 것 같다.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컴팩의 새로운 PDA로 무선랜에 접속해 웹 브라우징을 하는 모습을 말 그대로 침을 흘리며 쳐다봤다. 자기 집에도 설치해 놨다고 해서 배가 아팠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AP와 무선랜카드를 사기로. 작업을 위해서라도 컴퓨터가 하나 더 필요하고 그렇게 되면 집 안에 널린 컴퓨터 수가 네 대를 넘어가 4포트 짜리 IP 공유기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침대에 누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없다는 것은 프로그래머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옥상에 올라가 북한산을 바라보면서 블로그에 시 한 수 읆는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 사나이의 로망이다. 무선랜 사고 싶어서 갖가지 변명을 늘어놓는 자신이 좀... 치사스러웠다. -_-

크립토노미콘, 빼앗긴 자들(빼앗길 자들?),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같은 번역자의 글을 내리 3개 연달아 읽는 것은 흔치 않는 경험이다.

어젯밤에는 드림캐처라는 아무래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 같아 보이는 영화를 봤다. 소설은 어찌 되었을지 몰라도 영화는 소설보다 한참 떨어진 한심한 묘사와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새벽 4시쯤, 인터넷이 끊기고 달리 할 일이 없어 대면한 어둠을 노려보다가 금새 잠이 들었다. web에 관한 꿈을 꾸었다.

은평구 구립 도서관은 집에서 200m 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 가 본 적이 없다. 그건 북한산 입구까지 몇 백미터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북한산에 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게을러서? 그렇진 않은 것 같고.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신호가 떨어지기를. 빨간불이 꺼지기만을. 그 대신 뒷산에 올라가 운동기구 선반에 몸을 누이고 책을 읽다가 산벌레들에게 몹시 뜯겼다. 동네 뒷산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올라왔다. 시내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우글거리는 산들하고는 달랐다. 벌레에 물어 뜯기며 책 읽는 사람으로 뒷산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탰다.

창밖으로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에 열매가 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다. 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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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ul

잡기 2003. 8. 20. 13:22
새로 만든 cpu의 인스트럭션 셋을 정의하느라 토론 했다. 화이트보드에 매직칠을 하며 총알처럼 말을 내뱉었다. 반쯤 제정신이 아닌 채로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떠들었다. 임부처럼 쉰 목을 달래기 위해 삼겹살과 소주를 마셨다.

새로 생긴 장난감을 들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묵직한 푸른색 하드보드 박스 안에... strongARM evaluation board. 비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남들처럼 영화 보고 그럴듯한 평을 쓸 줄도 모르고 책 보고 그 책이 왜 재미있는지 설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 봤으면 좋겠지만, 300페이지 짜리 책을 읽고 어떻게 300 단어가 넘는 즐거운 평론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자신에게 좀 질렸다.

Nest라는 레인보우 6같은 영화와 Visitor Q라는 일본 변태 영화를 봤다.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들이 가고,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비와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신, 365번째와 366 번째 날의 노래를 들어주렴.

King Crimson, Larks' Tongues In Aspic, Book Of Saturday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King Crimson, I Talk to the Wind

Said the straight man to the late man
Where have you been
I’ve been here and I’ve been there
And I’ve been in between.

I talk to the wind
My words are all carried away
I talk to the wind
The wind does not hear
The wind cannot hear.

I’m on the outside looking inside
What do I see
Much confusion, disillusion
All around me.

You don’t possess me
Don’t impress me
Just upset my mind
Can’t instruct me or conduct me
Just use up m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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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ate

잡기 2003. 8. 17. 20:48
괜히 blog를 WIK에 등록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8월초 그러니까 TWOV(Transit without visa) 라는 제3국행 중간 기착지로서 미국을 경유해 가는 것을 미국 정부가 금지한 이후 중남미로 가는 길이 예전보다 쉽지 않게 되었다. 미국이 자폐국가가 되건 말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으쓱.

웹캠과 헤드셋을 끼고 saynsay.com에서 온라인 화상 회의 테스트를 했다. 굳이 비교할 형편이 안 되었지만 용산에서 이것 저것 테스트해 보니 Kocom KMC-90 Web e Camera가 개중 나아 보였다. 27000원. 어제 오후에는 용산에 가서 헤드셋 2개와 웹켐 하나, 성능과는 무관하게 타인이 사용하는 것 하고는 똑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고집에 굴복하여 Panwest의 Lebeca Web(24000원)을 살 생각. 그러나 27000원 주고 샀다. 매장 직원이 왜 비싼지 시시콜콜한 이유를 대며 궁시렁거렸다. 그냥 입 다물고 3천원 더 내고 사겠다면 그냥 주면 되는 것이다. 6시 약속이라 서두르다가 그에 상응하는 급행료로 3000원을 더 냈을 뿐.

msn messanger로 얘기하려니 답답하고, 사무실은 멀기만 하고.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saynsay.com의 채팅 대기실에서 본 방 제목은 순 이딴 것 뿐이었다: 일단 벗고 시작하죠. 집에서는 늘상 옷을 벗고 있는 입장에서 그다지 자극적인 제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의 냄새나고 지저분하게 생긴 음부를 노출한다고 흥미진진해 지는 것도 아니고. 결론적으로 채팅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메이란 영화를 본 것을 잊고 있었다. 유일한 친구가 인형 밖에 없는 외로운 메이가 하나하나 친구를 사귀어 가다가 자기가 마음에 드는 부위 별로 친구들을 잘라내 완벽한 친구를 하나 만들어 위로 받는 멜로물이다. 심지어 그 친구가 자기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 한 나머지 자기 눈알을 정성껏 뽑아(비명과 함께) 인형에 달아주기도 한다. 신기했다. 가장 변화가 많고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을 듣는 인간의 얼굴이 그의 관심사 밖이었다는 점이. 메이의 내용은 컴퓨터 업그레이드와 비슷했다. 이것저것 잡동사니 부품을 사들여 컴패니언을 만들고 자신의 눈마저 그 비생물에게 부여하는 것. 내 친구, 컴퓨터. 컴퓨터 업그레이드에 미친 놈들이 그 정성의 반만이라도 애인과 가족과 사회에 쏟아 붓는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차게 될 것만 같다.

올드보이. 만화책. 별 것 아닌 어린 시절의 상처로 같은 반의 친구를 10년 동안 구금해 둔 미친놈이 있었다. 십년 동안 쪽방에 갇혀 배달되는 중국 음식을 먹으며 TV로 세상을 배우고 꾸준히 몸을 단련하다가 풀려 나온 친구. 그는 미친놈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게임에 진 그의 죽음의 방관자가 되었다. 돈은 엄청 많은데 하잘 것 없는 이유로 목숨을 버리는 개같은 놈이었다. 설정은 괜찮았다. 설정만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극장에 가서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 이란 영화를 봤다. 아는 이름이 튀어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심지어 노틸러스 호 위에 요니와 시바 링감을 얹어 놓아 한숨을 푹 쉬었다. 귀족 출신의... 네모가 깔리 신앙을 섬긴다는 우습지도 않은... 그렇게 따지면 세계 정복에 미쳐있는 M이나 자기 초상을 보면 죽는 도리언 그레이, 총질하는 톰 소여도 웃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뱀파이어 미나가 도리언 그레이를 살해하는 이유가 모호했다. 그리 오래 살았으면 세상 만사가 부질없다는 것쯤은 이해할텐데?

극장을 나오니 0:30am. 택시를 잡으려다가 바람이 시원해서 걷기로 했다. 거리에서 먹이를 찾아 해메던 3명의 핌프가 날더러 연애하고 가라며 말을 걸었다. 연애? 싫어, 싫어요. 싫어.

귓구멍으로 바하의 파이프 오르간이 울려 퍼졌다. 걷고 싶은 이유로는 훌륭했다. 바람이 불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했다. 끝까지 다 듣자. 그래서 걸었다. 1시간 반쯤 반짝이는 화성을 따라 걷다가 나를 인도하던 그 행성을 왼편에 두었다. 명동을 지나 노숙자들이 자고 있는 을지로를 지나고 경복궁을 지나고 사직공원을 지나고 독립문을 지나고 두 개의 터널을 지나쳐 연대 앞에 이르렀다. 다시 한 시간쯤 더 걸었다. 바하는 자기 마누라와 섹스 하면서 푸가를 구상했을 지도 모른다. 4/4박자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며.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슈베르트로 넘어갔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엊그제 밤에는 인류에게 왜 희망이 없는가 따위를 얘기했다.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대개의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얘기이자...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할 수도 있었다.

자다가 깨었다. 면도를 하고 이빨을 닦고 샤워 하다 말고 옷을 챙겨 입고 허겁지겁 사우나로 달려가 사우나와 냉탕 사이를 왕복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내 인생 최고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난 내가 옳을 때가 싫드라. 망할. -- 다이 하드2, 부르스 윌리스 왈.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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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한 무더기와 우유를 사다가 밀크 쉐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신기한 것은 썩은 바나나를 멀쩡한 바나나 옆에 놓아두면 멀쩡한 바나나가 쉽게 썩어 버리는 것. 잘못 본 것인지 '실험'이 충분치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msblast.exe로 날아간 컴퓨터들이 꽤 되는 것 같다. 치료법이 간단해서 별 피해가 없을 꺼라고 생각했는데... 원격 접속해서 바이러스 치료를 해줬다. 님다, 트로잔, 블라스트 등 골고루 걸려 있었다. 학교 네트웍이라 보안이 불안해서 파이어월을 설치해 주고 싶긴 한데... 그걸 설치하면 불편하게 여길 것은 뻔하고...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마누라와 싸운 자기 친구에게 '인생은 그런 것이여' 류의 충고를 내가 해줬으면 하고 바랬다. 희석씨는 내가 옆 자리의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다. 옆 자리의 아저씨와는 화장실에서 오줌 누면서 통성명을 했다. 맥주 마시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몇 마디 안 나눈 것 같은데 시간이 빨리 갔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이 추세라면 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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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값이 비싸서 장바구니(서재?)에 책들을 담아두고 책 안 사고 버티고 있다. 장르소설이건 행책 SF총서건 현재로서는 내가 살만한 책이 없다. 그래도 제인에어 납치사건은 사고 싶은데 책값이 만원이 넘어가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 책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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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re conversion

잡기 2003. 8. 13. 23:43
오랫동안 프로그레시브를 듣지 않았다. 최근에는 클래식만 들었다. 모짜르트 전곡. 뭐 이런 식으로. 다시 프로그래시브를 들으니 감흥이 새롭다. 개종해서 프로그래시브를 다시는 안 들을 꺼라고 결심하듯 되뇌이다가도 프로그래밍할 때는 환자처럼 덜덜 떨면서 찾아 들었다. 가끔은 그것들이 세상의 무수한 소음에 지친 고막을 다시 활성화 시켜 주었다. 프로그래시브란 장르 말고 Lord of the Light, Mars Chronicle 같은 곡을 어디서 듣겠나? 말 그대로, 스페이스 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를.

앞으로는 mp3를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 시대에 뒤떨어진 포맷이라서? 킥... 손에 잡히는 대로 한 곡 틀어야지. 이왕 틀꺼면 남들도 즐길만한, 말랑말랑하고 아름다운 인트로가 낫겠지? Il Volo, Essere O Non Essere 앨범 중, Gente In Amore

Advanced WMA Workshop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해서 과자를 먹여 길들였다. 10GB 분량, 1798 곡의 progressive mp3를 시간날 때마다 천천히 wma로 변환 시키는 중. 음역이 워낙 넓어 64Kbps로 엔코딩하면 소리가 찢어졌다. 다른 HDD에 6GB 정도 더 남아 있었다.

용산에 들른 김에 메모리를 사려고 국제무역을 찾아가니 문을 닫았다. 문 앞에 킹스톤 메모리 전문 취급이라고 적혀 있었다. 강남으로 가는 길에 사당에서 내려 가야테크(?)에서 transcend의 micro DIMM 256MB 133MHz를 8만 4천원 주고 샀다. 그 자리에서 꽂아 테스트 해 봤다.

그런데 왜 메모리를 샀을까? 원래 있는 128MB로도 왠간한 것은 충분히 돌아가는데. 그러다가 왜 샀는지 깨달았다. 256MB를 추가해서 그중 100MB를 RAM disk로 사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램 디스크에 만화책이나 텍스트를 넣고 침대에 누워 구경하면 HDD 엑세스가 없으니까 시간당 전류 사용량이 줄어든다. 거기에 mp3를 넣고 음악을 들으면서 만화책을 볼 수도 있다. hibernate 하면 램 디스크의 내용이 그대로 HDD로 저장되기도 한다. 음. 그런 훌륭한 생각을 했던 것이었군. 장하다. -_-;

서브컴에 Visual Source Safe server 설치. cd를 구하느라 어언 2주를 보냈다. 사무실 바깥에서 담배 피우며 용범씨와 visual c/c++ 프로그래머는 거의 멸종해 가는 것 같다는 류의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이나 나는 닷넷으로 넘어갈 생각이 아직은 없었다.

골이 아파서 기껏 산 웹캠과 헤드셋, 이어폰 등등을 전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 생긴 장난감을 구경하지 못했다. 아파서 웃을 기운이 없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네 번 왔다. 그후 꺼졌다. 전화를 받지 못하게 되니까 왠지 기뻤다.

현실의 오도(誤導)와 가장된 차악(次惡) -- 감상평: 이 아저씨가 알고 있는 현실은 18000km 정도 떨어진 2년 전 것인 듯. 그놈에 현실은 줄곳 움직였다. 옹기쟁이 라는 출판사가 팬덤과 접촉 했더라면 잘 구슬려서 happysf.net처럼 만들었을 것이다. 으쓱. 냉정하게 말하자면 나같은 독자나 번역자 또는 기획자는 출판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고 출판사가 망해도 책은 남기 때문에 웃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가끔 happysf에 들어가 나 또는 우리가 마치 happysf의 열렬한 충복인 것처럼 행동해서 그들의 어깨를 다독여 주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들은 거개 요사한 출판사보다 잘 해 나가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happysf.net에 들어가 홈페이지 개편을 희롱했다.

훌륭하신 기획자분들께서는 자기들이 알아서 별에 별 sf 같지도 않은 것을 특별히 골라 내준다. '편식'하지 말랍시고. 참, 재미가 없다.

닐 스티븐슨, 크립토노미콘. -- 올해 읽은 모든 책을 합쳐서 개중 가장 긴 것. 그 전에는 700_800 페이지 가량되는 Reynold Alistair의 Chasm City를 원서로 읽었다. 그런 걸 읽다니 나도 참 장하다. 닐 스티븐슨은 늘 그렇듯이 결말부가 영 꽝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튜링 테스트로 농담 짓거리를 하는 걸 보고 미친듯이 웃었다.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지만 1800페이지의 압박감을 그들이 견뎌낼 수 있을까? 그것이 시리즈도 아니고 1800페이지 짜리 '단행본'이라면. 생각해보니 단일 서적으로 내 평생 이렇게 긴 책은 처음 읽은 셈이구나.

그레고리 키스, 철학자의 돌 -- age of unreason. 1부만 번역되어서 읽다만 기분이 들어 약이 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각주 때문에 좀 어이가 없었다. 왜 각주를 이렇게 많이 달았나, 그것도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역자는 '판타지'의 탈을 쓰고 있는 이 책을 읽을 고삐리들의 교육을 염두에 담아둔 것일까?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랜달 개릿, 세르부르의 저주 -- 어... 언젠가 읽은 적이 있었던 글 같은데... 아닌가? 철학자의 돌과 마찬가지로... uncommon alternative science. 철학자의 돌과 함께 이런 종류의 글을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몸의 화학적 균형이 바뀐 후부터는 뭐든지 잘 먹었다. 암. 개고기나 여자도 잘 먹었다.

고구마에서 데이빗 로지의 아주 작은 세상과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우연찮게 발견. 프린시피아를 4000원에 판매하고 있었고 에릭 드렉슬러의 책도 보였다. 사라 아담슨의 SM 소설은 안타깝게도 이미 팔려나갔다. 저 책들 모두 읽은 것인데 언제인가 홀연히 서가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이 워낙 들락거리던 방이라서 잃어버린 책들이 부지기수다. 사실 어떤 책들을 잃어버린 것인지 잘 기억이 안났다. 좋은 책들은 이미 내 손으로 줘버려 서가가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쓰레기장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민국씨를 오랫만에 다시 봤다. 보도연석에 앉아 담배를 빨면서 실없는 대화를 나눴다. 다른 두 사람은 홀딱쑈 하는 술집을 찾아 주변을 헤메고 있었다. 딴 여자를 달라니까 제멋대로 무릅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며 저 혼자 아양을 떨었다. 술집에 책을 들고 다녔더니 샌님 취급하는 것 같았고... 젠장. 확 그냥.

http://www.readordie.net -- 사이트 제목이 애니메이션 제목하고 같잖아. 풋. 책을 빼앗으면 울다가 죽을 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바이어트의 소유를 재밌게 읽은 사람이 약간이나마 있기는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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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벌이용 사진

잡기 2003. 8. 8. 18:35
대한항공에서 여행사진을 응모하면 항공권을 탈 수 있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이 모두 640x480이라서 응모조건에는 부적합하지만 대충 뻥튀기 해서 밑져야 본전이니까 되던 안 되던 응모해 보려고 한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요행에 기대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어떤 것이 응모하기 적합한지 3장만 찍어주시압.


네팔, 카트만두. 버스를 두 번 갈아탄다. 버스 지붕이나 트럭에 매달려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가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히말라야에 쳐박혀 사는 사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인데... 거기서 다시 산을 타고 두 시간쯤 땀 흘리며 올라가면 동굴에 짱박힌 채 평생 수행만 했다던 사두를 만날 수 있다. 그와 하시시를 나눠폈다. 네팔의 정나미 떨어지는 현실이 이 사진 한 장에서 팍팍 느껴진다. 찌든 가난, 돌아누운 할머니, 마오이스트와 정부군 그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지닌 할아버지, 가엾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젊은 신부. 뭐, 네팔 사정은 점점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이 사진이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이 웃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1. 인디아, 꼴카타(캘커타). 묵고 있는 파라곤 호텔 앞에 널어놓은 빨래.


2. 멕시코, 빠라까스 섬. 갈매기들이 싼 인분이 다량 함유된 똥으로 바위 색깔이 변색. 내륙까지 진출한 '유명한' 빠라까스 펭귄과 바닷사자들.


3. 멕시코, 과나후아또. 봄(춘분)을 맞아 벌어진 축제. 귀여운 아이들. 도발적인?


4. 인디아, 깐야꾸마리. 인도양, 뱅골해, 아라비아해, 세 바다와 세 베다와 세 은유가 만나는 인도인에게는 꽤나 의미 깊은 장소. 바다가 합쳐지듯이 인도의 통일을 소망했으나 생전의 과업이 인도를 결론적으로 쪼개놓은 간디의 잿더미가 여기 보존되어 있다. 간디가 잘 했다고 생각하는 현대 인도 지식인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간디를 추앙했다. 그들은 영화스타도 추앙했다.


5. 이집트, 아스완. 잘 나가던 람세스 시절 이곳에서 나일강의 범람을 조사했다. 나일강의 범람이 축복인 것은 저 황량한 사막에 가물에 콩 나듯이 자라난 나무만 봐도... 이집트에 관한 내 인상을 모조리 쑤셔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진이다. 이집톨로지와 이집트의 관광 국가 이미지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


6. 이집트, 룩소르. 왕가의 계곡. 투트모시스 3세의 사르코파지(석관묘). 사진을 찍는 저 친구와 왕가의 계곡을 땀을 뻘뻘 흘리며 헤메 다녔다. 정말 미친 짓 했다.


7. 인디아, 뿌리. 골목길 맞은편에 보이는 것은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 중 하나인 자간나트 사원.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온갖 교통수단을 개무시한 채 길 중간에 편한 자세로 앉아 쉬고 있는 엄마 소와 아기 소.


8. 이집트, 시와 오아시스 부근 리비아 사막. 지나가는 백여우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 내 평생 여기만큼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은 본 적이 없다. 순 모래뿐이고 약간 덥긴 했지만((42도). 최소한 다섯 종류의 모래를 구분했으며, 그 모래 바닥에 길이 있다는 점, 모래밭에서는 제대로 걷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9. 이집트, 시와 오아시스 부근 리비아 사막. 대낮부터 사막을 걸어서 헤메 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옆의 물 한 통을 반도 비우지 못했다. 난 아무래도 사막 체질인가 보다. 한참 주변을 헤메다닌 끝에 덤블을 조금 긁어 모을 수 있었다. 모래를 파고 불을 피워 이집트식 빵을 구워 먹었다. 마치 베두윈처럼. 그렇잖아도 사막에서 헤메는 도중에 베두윈을 만났다. 그가 날더러 자기 막사로 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말했다. 사막 저 끝에서 나를 발견하고 맨발로 달려와서. -_- 아름다운 보름달빛에 창백하게 빛나는 사막을 걸어서 오아시스로 돌아왔다. 내겐 gps가 있었다.


10. 페루, 아레뀌빠에서 꼴까 계곡으로 가는 길. 엘 미스띠 국립공원. 해발 3000m. 야마를 몰고 있는 할머니. 야마는 인디오들의 주요 식량원. 아니, 유일한 단백질 섭취원. 코카잎을 너무 많이 씹어 입안이 얼얼해지고 헤롱거리며 찍은...


11. 이란, 라쉬트. 인터넷 까페의 19살 짜리 여직원들. 아유... 정말 여우들 처럼 생겼다. 이란인들은 내심 호메이니 이전의 팔레비 왕조 시절의 화려함과 방탕함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스카프를 벗어 긴 머리를 보여주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꼬셔야 했던 것이다.


12. 이집트, 카이로. 일주일에 두어번 벌어지는 '무료' 수피 댄스 공연. 이집트의 빌어먹을 관광지를 새벽부터 전전하는 것 보다 이 놈에 수피춤 공연이 52만배는 나았다. 수피교는 이슬람 신비주의 일파인데 워낙 사람들이 이상하긴 했다. 그러고보니 팀 로빈슨의 화성 시리즈에서 수피교도들을 묘사한 것을 본 것 같다. 저렇게 한 시간 넘게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대단한 종교적 열정이다.


13. 네팔, 카트만두. 달밭 광장. 광장 주변을 배회하는 거지 소년. 아직 철이 없어서 나 같은 관광객을 어떻게 뜯어먹어야 할 지 잘 몰랐다. 건물 꼭대기에서 거지들 틈에 끼어 짜이를 마시며 석양을 바라 보았다. 분위기 캡이었다.


14. 네팔, 카트만두. 파슈파티나트 사원 뒷편 언덕.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히말리야 사두(수행자)들의 집결 장소. 그들이 떼거지로 모여 햇빛을 쬐면서 벼룩과 이를 잡거나 관광객들한테 삥 뜯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개나소나 들락거리는 인도의 바라나시와는 쨉도 안되게 성스러운 곳이라서 북인도 사원의 사제들은 그들의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무굴의 영향을 받지 않은 authentic한 남인도 사원의 정통 사제들만이 들락거릴 수 있으며... 인도의 바라나시에서는 시체를 한 구 한 구 태우지만 여기서 만큼은 동시에 다섯 구 내지는 열 구씩 태운다. 대량 소각의 물결이 거세다.


15. 베트남, 후에. 베트남 전쟁 당시 워낙 쑥대밭이 되어서 후에 왕조의 유적 일부만 간신히 남고 나머지는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정신나간 미국놈들이 네이팜과 블록버스터를 쏟아부은 탓? 따라서 베트남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다. 아니, 하나도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에는 그나마 산사가 남아 있지만. 후에의 한 절에서 나머지 공부중인 젊은 스님. 중들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16. 인디아, 마이소르. 파크레인 레스토랑 내부에 조그맣게 운영하는 파크레인 호텔. 6호실. 파크레인 레스토랑은 전 인도를 걸쳐 가장 음식이 맛있었던 곳. 의자에 편안히 앉아 책을 읽거나 저녁 무렵이면 아랫층에서 풍겨오는 향기로운 음식 냄새와 흥청이는 소음을 즐겼다. 어쩌면 마이소르가 웨일즈 왕자에 의해 무참하게 농락당하기 전, 인도의 마하라자에게 봉사하던 요리사의 후손들이 그들에게 만들어주던 궁중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이소르에서 그 빌어먹을 인도인들에게는 심지어 긍지도 있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 저녁이면 모기에 뜯겼지만 잊지못할 낭만적인 곳이었다.


17. 페루, 쿠스코. 스페인 식민 풍의 건물과 골목길. 쿠스코의 건물들은 모두 붉은 색 기와를 얹었다. 길을 잃고 헤메다가 찍은 사진.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가 오른쪽의 하얀 건물을 많이 닮았다. 빈부의 격차가 워낙 극심했다. 이곳이 부촌이라면 맞은편 산자락의 건물군은 달동네였다.


18. 인디아, 마말라뿌람. 30cm 코 앞에서 원숭이 독사진을 찍은 곳. 등대를 돌아가면 그놈이 앉아 있던 장소가 있다. 공방에서 땡땡이를 치고 나온 도제와 유적 꼭대기에 앉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평원으로 지는 해를 바라 보았다. 깔라마리(오징어)를 사서 오징어 덮밥을 해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요리사와 주인은 상습적인 마리화나 복용자였고 언제 어느때나 눈이 풀려서 실실 거렸다. 심지어 바닥에 엎어져 정신 못차린 채 헤롱거리는 놈도 봤다. 밤에는 해변에 나갔다. 해변은 완벽하게 어두워서 슬쩍 오줌 눗기에 그만이었다.


19. 터키, 셀죽. 어쩌다보니 입장료 못 내고 들어간 에페스의 로마 유적 중 원형극장. 들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궁리 중.


20. 터키, 셀죽. 에페스 유적. 대리석길(성스러운 길)에 드러누워 있는 개. 안 죽었다. 2천년 묵은 로마 유적지에 개가 느긋하게 자빠져 자고 있는 모습이 생각보다 보기 좋았다. 보는 눈들이 있어서 자빠진 개를 보면 응당 해야만 할 것 같은 일, 그러니까 옆구리를 걷어차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책은 한 권도 없는 비블로스(도서관)가 있었다.


21. 캄보디아, 시엠리엡(시엠립? 시엠리업?). 앙코르와트 유적지. 바욘. 나흘에 걸쳐 엄청나게 거대한, 아니 세계 최고의 규모의 유적지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본 거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이 얼굴의 모티브가 자야바르만 왕이었던가? 오래되니까 잊어버렸다. 주저없이 인류가 현재 보유한 최고의 유적으로 손꼽을 수 있다. 평생 한 번 쯤은 가봐야 할 곳이라고. 그리고 늦으면 국물도 없을 꺼라고.


22. 인디아, 오챠. 라즈 마할. 무굴식의 요새 겸 궁전. 병정과 사령관과 왕이 기거하던 곳. 마치 에셔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곳. 라즈 마할과 여자들이 기거하던 쉬즈 마할 사이를 한가하게 배회하며 책을 읽고 오후를 보냈다.


23. 터키, 셀죽. 이사베이 까미. 형형색색의 카펫과 알라께 경배드리는 어떤 여성의 궁둥이. 카펫은 이란제보다 질이 떨어지는데도 터키에서는 관광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는 것 같다. 터키의 무슬림을 무슬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터키는 아시아 국가인 척 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유럽 국가라고 보기도 어렵다. 터키의 애매한 정체성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아시아의 분계선 때문이라고 하기도 뭣했다. 사실 터키는 동서양 문명의 교합점이라고 부를 건덕지가 그리 없었다. 그건 유럽인들이 로마/그리스 시절을 중심으로 재편한 그들 역사적 관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로만 유적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 터키다. 실제로 아랍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의 사나이들이 함께 만나 칼은 탁자 밑으로 던져두고 술을 걸쳤던 곳은 지중해의 동쪽 끝, 비단길과 향신료길이 만난 곳, 최초의 알파벳이 발견된 나라, 그리고 모든 기성 종교의 도가니, 시리아와 요르단, 이라크 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대에 문명은 그곳에서 비롯되었고 그곳에서 융성하여 그곳에서 퍼져 나갔다. 터키가 아니라. 아참, 나는 역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다. 다만 터키가 동서양의 중심지였다는 그네들의 관광 팜플렛에 조까고 있네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24. 멕시코, 우스말. 마야 유적지. 정부청사의 거대한 계단. 마야 유적이 혼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멕시코 북부의 똘떽과 떼오띠후아깐, 아스떼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티가 팍팍나는 건물들. (대체, 마야는 문명이 있었기나 한건가? 스페인의 조직적인 파괴가 라틴 아메리카 문명권 전체를 절단냈다는 것만 봐도 대단히 신기할 뿐더러, 스페인 침공 이전의 마야나 아스떼까가 인민들에게 한 짓을 보노라면 그런 문명은 없어지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에 수만 명의 심장을 도려내는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도살 컨베이어 시스템을 운영하던 고대문명이다) 그래서 대단찮은 건축 기술임에도 대단한 찬사를 받는 마야 문명의 거개 건물들에는 항상 볼 때마다 희안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마야 유적지에서 낮잠을 잔 횟수가 앙코르와트나 인도의 유적지에서 낮잠을 잔 횟수보다 더 많았다. 이 점은 매우 중요했다. 석조 건축물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문명과 낮잠 자기 불편한 문명의 구분. 피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것이다.


25. 페루, 띠띠까까 호수. 아만따니 섬. 수정처럼 맑은 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거대한 화산 호수. 찢어지게 가난한 원주민들. 전기는 커녕 물 조차 제대로 안나오는 곳.


26. 페루, 띠띠까까 호수. 아만따니 섬. 남반구라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 한국의 봄 무렵 여기는 가을이었고 계단식 논에서 걷어낸 꼴을 나르고 있었다. 30대 이상, 시골 출신이라면... 이런 광경이 뭘 의미하는지 단박에 필이 꽂힐 것이다. 나는 저런 곳에서 살았다.


27. 멕시코, 치첸 이샤. 마야 유적지. 까스띠오. 마야 문명 최고의 걸작 건축물의 가파르고 미끄러운 계단, 기다시피 올라오는 사람들. 뭐 나야 그냥 평지 걷듯이 올라가고 내려왔다. 각도가 아주 좋아 여러 여자들의 가슴을 관찰할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360도로 펼쳐진 정글은 장관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대개들 벽에 달싹 붙어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나는 영험한 상승기류를 타고 콘돌처럼 날고 싶었다. -_-


28. 터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의 네크로폴리스(묘지터). 의학이 매우 발달했다고 여겨지는 도시지만 의료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하도 많아 시체를 채운 석관이 옹기종기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는 네크로폴리스의 길이가 무려 2km에 달한다. 의료 사고. -_-


29. 파키스탄, 훈자. 투어 가이드. 자기 없으면 빙하에서 떨어져 죽을꺼라고 겁을 줬다. 러시안과 몽골의 피가 3:1의 비율로 섞인, 훈자 부근에서는 흔해빠진 인종 칵테일. 훈자 부근은 히말라야 인근 지대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황량함, 그랜저, 홀리함 등등을 갖추고 있었다. 훈자 마을이 왜 나우시카의 배경이 되었는가는 카리마바드(훈자 마을의 명칭)에 며칠 머물다 보면 필이 딱 꽂힌다. 그들은 몸에 별로 안좋은 살구씨를 너무 많이 먹는 경향이 있었다.


30. 피키스탄. 훈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속도로인 카라코럼 하이웨이는 카리마바드를 통과한다. 사진에는 지나가는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추위도 보이지 않는다. 더럽게 춥고 더럽게 바람이 불었다.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고 그저 공기가 좀 있는 화성같은 곳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후로 화성같은 곳을 무척 많이 봤다.


31. 페루, 띠띠까까 호수. 따낄레 섬. 일요일이면 마을 주민들이 공회당에 모여 '섬의 앞날'을 논하는 모임을 갖는다. 자세히 안 들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섬에는 몇 개의 서로 다른 생활양식을 가진 부족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복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나? 하지만 내 눈에는 양키 문명을 들고 마을을 침략하려던 나쁜 그링고 몇명을 해치우는 고된 일을 마치고 밥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석양의 7인?


32.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라고 뭉뚱그려서 민망한 기분이 들긴 하나... 저녁 무렵 갑자기 쏟아진 비 덕택에 관광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유적지에는 나만 남았다. 저것은 불상이다. 하지만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유적의 건물 중앙에서 실루엣을 남기고 있는 모습은... 이 괴괴한 음산함은... 오버했군.


33. 과테말라, 국경. 국경이 강이다. 멕시코에서 넘어와 과테말라 이민국을 지나갔다. 이민국 관리라는 것이 자동 소총을 든 두 명의 군인이 전부였다. 뇌물 환영. 뭐 그런 분위기다.


34. 시리아, 알레포. 공원에서 할머니가 부랑생활을 하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있다. 그녀는 저민 고기를 고양이들에게 뿌렸고 고기 한 점을 사이에 두고 고양이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곧 이어진 처절한 전투는 장관이었다. 할머니는 싸우는 고양이들을 손찌검과 발길질로 말리고 무언가 그들이 알아들을 성 싶지 않은 말을 퍼부었다. 구부러진 등, 매부리코, 뒤집어쓴 두건, 영락없는... 마녀 할멈...


35. 볼리비아, 유우니. 살라르 데 유우니. 유우니의 소금 평원. 이 사진이 상당히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삽질 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던 저 아저씨의 다음 동작은 땅바닥에서 소금 덩이를 줏어 내게 집어 던지며 사진 찍지 말라고 욕설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36.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 평원에서 찍은 사진. 투어 맴버들. 우리는 샤이닝 다이아몬드 같은 대형을 취했으며 결코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행 잘 하고 있을까? 그들은 나보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37. 이란, 밤. 밤의 옛 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사막. 밤은 오아시스 도시. 먼지와 털 색깔이 똑같은 양떼. 꾀죄죄한 것인지 아니면 주변 자연환경에 맞춰 털 색깔이 변한 것인지. 이란은 페르시아다. 페르시아는 아랍이 아니다. 아랍과 비슷하지만 아랍은 아니다. 페르세 폴리스를 세운 파르시 족이 만든 나라다. 파르시,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


38. 과테말라, 티칼. temple of the Masks. 왕비를 기리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라던데... 마야 유적중 가장 뻔대가 훌륭한 곳. 정글 한 복판에 솟아오른 광자력 연구소 비슷한 건물들. 껍질에 풀씨가 드러앉아 자란 세이바 나무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콩고 원숭이의 매우 울화가 치민듯한 울음소리.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고적함이 깃든 곳.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유적을 발견한 기쁨이 있었던 곳. 라틴 아메리카 유적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긴 낮잠을 잤던 곳.


39. 이란, 케르만. 길을 헤메다가 지역 예술가의 작은 박물관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그 뒷편으로 슬쩍 돌아가는 아이를 따라 가니 작은 숲을 지나쳐 고아원이 나왔다. 그 녀석들은 내 얼굴이 자기들과 무진장 많이 닮은데 말이 전혀 안 통해 신기해 했다. 교실에서 뛰쳐나온 여러 선생님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나누고(-_-) 그 선생님은 애들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려 하자 손부터 씻게 만들었고(-_-) 그들의 발꼬랑내가 진동하는 기숙사를 순시하고(-_-) 애들에게 동양무술의 신비를 가르치다가(-_-) 나왔다. 존만한 녀석들아, 부디 꿋꿋하게 잘 살아라!


40. 과테말라, 치치카스테낭고. 산토 토마스 교회 앞. 산토 도밍고 교회는 원주민들의 성서같은 것이었던 뽀뿔 뿌가 발견된 곳이었다.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매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부활절 프로세션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기 바로 이틀 전. 양복을 입은 허수아비 인형에게 모자를 씌우고, 담배를 물리고 술병을 놓았다. 대접하는 것 같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다음날 두 허수아비는 교회 입구에 목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원주민 신앙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냔 말이다!!


41. 이란, 에스파한.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을 감싸고 있는 공원. 낙엽이 깔린 아름답고 로맨틱한 공원, 그리고 저 멀리 벤치에 분위기 있게 앉아 있는 펭귄 복장의 아줌마.


42. 조르단, 페트라. 희생의 제단 부근. 페트라는 이 소녀의 머리 넘어 아래 계곡에 펼쳐져 있다. 어쩌다가 비 맞고 길을 잃고 헤메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머리털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로 심한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소녀를 만났다. 바람이 보이는가? 그의 부모는 근처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페트라가 관광지화 된 후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따라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양이나 치면서 사는, 관광화되지 못한 베두윈이다. 관광화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는 내가 먹고 있던 오렌지에 관심이 많았다. 설명을 이렇게 달지 않고, 이라크 난민이다, 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이다. 라고 말해도 다들 믿을 것 같다.


43. 이란, 에스파한. 시오세(33) 다리 밑 찻집. 애들이 빨아도 괜찮을 정도로 순한 물담배. 아버지가 피우던 것을 빼앗아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용을 쓰고 담배를 피우려 애쓰고 있었다. 쟁반에 놓인 것은 차 주전자. 설탕을 듬뿍 넣은 차를 마시면서 향긋한 물담배를 피웠다. 아주 좋았다.

수상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 사진들이지만...

나머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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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ery life

잡기 2003. 8. 8. 02:12
그래.
그렇군.
이어폰을 끼고 '기묘한 이야기'를 보면서 일기 쓰는 중.

완전 충전 상태에서 AC 전원을 빼면 15분 후에 즉사하는 노트북으로는 심심할 때 공원에 앉아 영화를 보긴 다 글렀다. 중고가 다 그렇지 뭐 시팔. 큰 맘 먹고 4만원을 들고 5282.com 신림 매장에 찾아가 배터리를 교환했다. 1800mA 짜리를 2200mA 짜리로 교체. 각각 3.4V짜리 리튬이온 전지 3개. 길고 얇은 강철띠를 스팟 용접(?) 해서 전지 세 개를 직렬로 연결하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추측컨대 충전 회로는 각 전지 사이의 전압과 전류를 측정하여 충전 완료 시점을 판단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단자 전압의 변화를 추적하여 컴퓨터가 그것을 읽고 배터리 잔량을 평가하는 것 같다. 좁은 가게에서 쭈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겼다. 전지를 갈면 5시간쯤 갈 줄 알았던 노트북은 4시간 정도... 그래도 그나마 이게 어디냐. 노천 화장실에서 오줌을 눗고 공원 벤치에 앉아 강북의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우산이 없다. 구름은 은빛으로 빛났다. 곧 우산이 필요할 것이다.

책은 지하철을 탈 때나 이동 중에만 읽었다. 그래서 크립토노미콘을 거의 2주에 걸쳐 천천히 읽게 된 셈이다. 1855페이지 중 200페이지가 남았다. 한 시간 분량이다. 마지막인데 피치를 올릴까? 아니야. 에비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고토 덴코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그 금을 사용하겠다고 소리를 질렀을 때 나도 모르게 골을 집었다. 빌어먹을. 닐 스티븐슨의 거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공통점을 또다시 보게 된 것이다. 기술자 또는 마법사의 선한 의지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내 생각은 달랐다. 비전이 있는 훌륭한 경영자를 만나 꿈의 기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 다물고. 하여튼 그전 까지는 좋았다. 토머스 핀천의 소설이 생각나기도 하고 조셉 헬러의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다. 심지어는 쪼다 샤프토에게 감정이입이 되기까지 했다. 에비가 좋은 기분 다 망쳐놨다. 방전.

며칠 게으름을 피웠다. 급한 김에 몇 가지 재미없는 기술문건을 읽거나 무릎에 노트북을 펼치고 스펙을 적고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코드를 작성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게 된 것 같다. 1280x600 짜리 풀밭에서 귀여운 도트가 뛰놀았다. 사각형 울타리를 치고 도트를 움직여 글자를 만들었다. 공중에서 그들을 조작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매스게임을 쳐다보았다. 엊그제 pdf 파일로 받은 몇몇 칩들의 데이타시트를 보면서 다른 쪽에 노트를 기록했다. 지하철 역을 환승할 때마다 번번히 지나쳐 엉뚱한 역에서 되돌아가는 차를 다시 타야 했다. 3일 동안 아홉 차례. 신경쓰지 않았다. 예전 생활로 돌아온 것 뿐이다. 입술에 담배를 물고 멍하니 앉아 양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화면 한쪽 구석에서 플레이되는 영화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방전.

존나게 커다란 닭을 사서 다리를 잘라 냉동실에 넣어두고 나머지 부분으로 삼계탕을 해 먹었다. 하루종일 닭만 먹었다. 그 다음날은 닭다리를 버터에 구워 내고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워낙 잘 먹어서 허릿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충전.

그렉 이건의 쿼런틴을 조금 읽었다. 기술적인 부분의 오역을 살펴달라나? 몇 년 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첫 문장이 시작되자 마자 자연스럽게 나머지 부분이 기억났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류의 영원한 희망인 '기술'처럼. 흐음... 무슨 불평을 늘어 놓으려는지 안다. 닥쳐!

쿼런틴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적외선 트랜시버와 나노 머신으로 모기를 스파이로 '변환'하는 부분이었다. SOB 3부를 쓰려다가 때려치우게 된 것은 망막 텍스트나 그런 따위 mod를 환상적으로 묘사하는 수준이 나보다 나아서 였다.

한국어화 되면서 문체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번역자는 그렉 이건이 자기 글을 쓰면서 동료 기술자들에게 얼마나 즐거운 환상을 심어주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렉 이건을 욕하는 사람들도 그 점에서는 비슷했다.

그렉 이건의 작품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과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방식이 달랐다. 그들이 문학작품을 읽고 있을 무렵 나는 전자회로집을 뒤적였다. 그짓을 아홉살 때부터 하면 자라면서 뉴런 배선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엔돌핀, 멜라토닌, 세로토닌, 등등등등 스테로이드계 호르몬 역시 방출되는 방식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방전.

십대를 컴퓨터로 보내고 나서 여자 친구 하나 없이 20세를 맞았을 때, 문득 깨달음을 얻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시마저 읽었다. 시는 코드와 비슷했다. 그러나 코드는 시와 달리 막강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지구온난화, 남북 경협,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 등등) 두 자릿수 뺄셈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아주 웃겼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제의 80%가 여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누군가 그럴듯하게 설명하기만 하면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런 말을 하니까 웃기는지 콧방귀를 뀌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 어떻게 된거 아니냐?' 그는 95%라고 주장했다. 인생 그 자체지 라고도 말했다. 방전.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세상에 여성 문제란 것은 없다. 만사가 백 퍼센트 여성문제니까. 여자들이 자기들 걱정하고,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들 걱정해준다.'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다.

영등포 역 입구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를 바라보았다. 배가 고파서 롯데리아 햄버거를 하나 사서 계단맡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며 꾸역꾸역 씹었다. 한 시간 동안의 기차여행, 노트북을 펼치고 얘기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한밤중에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쳤다. 방전이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블로그를 썼다. CSI 3기 마지막 편을 봤다. 3시간 동안 이런 저런 빌어먹을 교통 수단에 갇혀 이리저리 이동하는 동안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 말고 할 일이 생기는 것, 이런 것을 생활이라고 부른다. 죽을 때까지 차를 사지 않을 것이다. 차를 몰면 책 읽을 시간을 잃고 술 마시기 힘들어질 따름이다. 책이야 잘 안 읽으니까 그렇다치고 술도 건강 때문에 마시기 힘들어지면? 형편없이 망가지면 하는 수 없이 차를 사야겠지. 방전.

담배가 떨어졌다. 잠이나 자자. 충전.

BatteryMon v1.2로 배터리의 예상 사용시간을 측정 중.
완전 충전, 완전 방전.
완전 충전, 완전 방전.
리튬 이온 전지는 메모리 효과가 없다.
내 몸은 메모리 효과가 있다.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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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o

잡기 2003. 8. 5. 03:46
하이텔 VT 모드가 사라지면서 충격이 번지고 있는 것 같다. 거의 13년을 써왔던 터미널 모드와 몇몇 동호회에 대한 애착 때문에 차일피일 해지 신청을 미루다가 결국 제때 해지 신청을 하지 못해 한 달을 기다리게 생겼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난 것 같다.

웹으로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블로그라는 매체를 사용해, 보기에도 민망하고 뻔뻔스러운 2% 짜리 일기를 쓰면서도 한편으로 감쪽같이 숨어 100% 표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게시판을 낭인처럼 전전하는 이중 생활, 아니 다중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이런 사태를 맞이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은 주로 샤워를 할 때만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무덤덤한 생활이 이어졌다. 샤워할 때는 생각을 했고 길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릴 때는 비딱하게 고개를 꺾고 베를리오즈를 들었다. 녹색등이 점등하면서, 걷는 사람 아이콘이 픽 쓰러졌다.

블로그라... reason to be cheerful은 그렉 이건의 단편 제목이었다. WIK에 등록하려면 그림이 필요했고 dinosaur와 관련된 sf인지 fantasy인지 어떤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일부를 따와 적당히 배너를 만들었다. 수 년 전에 말레이지아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갑자기 쏟아진 스콜을 피해 이건의 reason to be cheerful을 읽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정글에서 쓰러진 독일인을 어찌어찌 해서 일으켜 세웠다. 바닷가에서 분홍빛 피부를 가진 돌고래를 보았다. 벼룩에 물려 에이즈 환자처럼 피부에 붉은 반점이 돋아 있었고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해갔다. 모스크에서 이슬람으로 개종당했다. 해안 언덕에서 바람을 맞으며 황혼을 보았다. 이상한 할아범을 만났다.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싱가폴에서 어떤 외국 여자애가 헤어지면서 나를 안아줬다. 보트키에서 떡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거리를 헤멨다. 절망감에 휩싸여 죽은 나비를 보았다. 완전히 맛이 간 정신상태와 몸이 스스로를 자기복구할 수 있는 어떤 실마리가 필요했다.

그런 정신 상태를 가진 적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대뇌의 어느 부분이 영구적으로 손상된 덕택인지 줄곳 행복했다. 아니면 마리화나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번연계 교란과 공명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그래서 뇌가 최근까지 3층밥 상태 임을 알았다. 공룡이 말하면 원숭이가 타이프 라이터를 두들겼고, 주술사가 그것을 각색한 다음 불꽃 놀이를 덧붙였다. 번쩍이는 뇌는 새로운 현실감각을 만들었다. 폐허 속에서 돌기가 스멀스멀 기어가 새로운 시냅스 접합을 형성했다. 아... 그리하여, 트림하는 공룡과 reason to be cheerful과 꾸란의 경구는 수년 전의 스냅샷으로 너무나 너무나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보고 있을까?
그럼 장난스럽게 히히덕 거리고 있으리라는 것도 알겠지.

서점에서 하루키의 신작을 읽고 어딘가에 무슨 글을 썼던 기억이 났다. '하루키가 잼없어서 더 못 읽겠어요. 그와 나는 필립 말로우에게 똑같은 빚을 졌지만 실제로 하드보일드해 진 사람은 둘 중 나뿐인 것 같더군요. 그는 글 속에서 살고 나는 내 삶을 꾸리는 탓이죠' 운운... 욕구불만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처럼 궁시렁거리길. 그래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았던가? 삼층밥과 백 퍼센트 순도높은 익명의 세례로.

주 거래 은행을 이리저리 바꾸는 짓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아마도 한미은행으로 끝까지 가게 될 것 같다. 아마도. 여러 은행에 아직 계좌 찌꺼지가 남아 있다. 카드를 몽땅 분실하고 새로 신청했더니 개중 한미은행 카드만 바로 발급 해 주었다. 신청한 지 한 달이 넘은 국민은행 카드는 언제쯤 도착할 지 기대된다.

클로버 아가씨와 전화 상담을 하거나, 방문 상담을 하거나, 은행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재 보거나, 여행할 때 환차손을 계산할 때도 내게는 메이저 은행보다는 한미은행이 항상 나았다. 의외로 사소한 '차이', 내지는 대접받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인상이 좋은 것일까?

심지어 한미은행 클로버 아가씨에게 은행 상품에 관한 상담을 하다가 자기들의 상품은 다른 은행의 비슷한 상품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므로 그쪽 은행 상품을 사용하라는 조언을 듣고 어이 상실. 로동과 투쟁의 전선에서는 백병전 칼질이 상시 가능하지만 그런 종류의 친절함에는 속절없이 목을 주욱 뺐다. 잡아먹어도 되요.

좆데이 기사: 훔친 오토바이로 여친찾아 '천릿길' -- 감상평: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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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와 송화가루를 넣은 동동주를 마셨다. 나흘 만에 가게 문을 열었다며 우리가 운이 좋았단다. 가게 문을 닫고 지리산으로 간단다.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어머니 수술 때문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서울에 올라왔단다. 삶의 무게에 관한 고리타분한 얘기가 오갔다. 황가는 그런 얘기를 개무시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귀중한 기술이 사라졌다는 악평을 그가 듣고 있었다. 아니다. 이미 같은 얘기를 수없이 들어 식상하고 지겨워졌을 뿐이다. 생각났다. 일주일 전쯤에 만난 선배한테 농짓거리로 사기를 한번 쳐 봤는데 깜빡 넘어갔다. 지난 10여년 동안 그는 내 거짓말에 언제나 변함없이(성실하게?) 넘어갔다. 희한하다.

한밤에 거리에 앉아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홀짝였다. 지나가던 거지가 다가와, 스님, 싸우면 안되요... 싸우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꾸벅 인사를 한 후 휘청휘청 걸어갔다. 함께 앉아 있던, 시찌푸스처럼(아틀라스가 더더욱 적합한 표현일 것 같다) 찡그린 채 앉아 있는 슬리퍼와 남의 말이라곤 한 마디도 안 듣게 된 스님은 맥주에 오징어를 씹으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괜찮은 밤이었다.

타즈마할에서 부페식 인도 음식을 먹었다. 값은 좀 비싸지만 난을 무제한 주었고 음식이 의외로 맛있다.

애비 북스토어에는 별로 눈에 띄는 책이 보이지 않았다. '원서를 읽지 않고도 번역할 수 있다'는 아저씨의 잘난 척을 듣고 그 더위에 낄낄낄 웃었다.

1100페이지 쯤에서 일단 스토리라인을 추측하기 위해 멈췄다. 거리에 앉아 바람을 쐬면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구경. 파란색 아이새도우가 올해 유행인가? 흠. 그게 말이지... 낯빛이 창백해야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데. 두께가 1cm 쯤은 될 것 같은 방탄 파운데이션 파우더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무더위를 느낀다.

굴다리에서 까마귀, 박쥐, 닭아이, 고이즈미, 가고일 등등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비가 왔다. 그 동안 그 '떨거지들'이 서로서로 자주 안 만났단다. 그들이 덜 정정하고, 생업에 시달리면서 뇌세포를 파괴하길 기원했다.

equalibrium을 추천하길래 다운 받았다. 건 카타라는, 총질에 최적화된 괴이한 무술을 창안. 아... 이거 주요 장면은 본 것들이잖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나오는 어둠 속의 총질, 달아오른 총신이 서서히 식어가는 모습이 썩 괜찮았다. 그후로는 스토리를 비롯해 줄곳 쓰레기 같았다. 모나리자를 태우는 모습에 왜 나는 희열을 느끼는 것일까... 마지막 총질 장면을 두 번이나 리플레이 해서 봤지만, 정교함이 없다.

속이 뒤집히고 맛이 간 지경 임에도 엉금엉금 기어서 밥을 짓고 북어국을 끓여먹는 어제 아침의 나 자신을 재삼 회상컨대, 이다지도 강한 의지력으로 밀어 붙이면 안되는 일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그렇게 악다구니로 끓인 북어국이 맛이 없었더라면 눈물을 흩날리면서 창 밖으로 몸을 던지는 편이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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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안 마시기

잡기 2003. 8. 1. 19:25
어제 하루 종일 몸이 뜨거웠다. 샤워를 하고 찬 음료를 들이켜도 홧기가 가시지 않았다. 인삼 동동주였나? 이전에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블로그 컨퍼런스가 코엑스에서 열렸구나... 어제는 우연찮게도 FeedDemon을 열지 않았다. 뒷풀이에 가서 블로그에 글 올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번 구경해 보는건데.. 아쉽다. 블로거 모임 같은 거 안 하나? 딴 건 몰라도 정말 얼굴 좀 봤으면 좋겠다.

밤에 수박 화채를 만들었고, 먹으면서 '주온'을 봤다. 무서운 영화라던데 조금 있으면 무서운 장면이 나오겠지 하면서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기다렸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뭐야... 이 녀석들이 지금 사람 놀리는 건가...

몰라도 아는 척, 아는 것은 주구장창 강조, 조금이라도 알만한 것들에는 크리틱해지고 정말 모르는 것들은 얼기설기 주워 모은 잡다한 지식을 끌어들여 추론한 후 회의적이고 잰 체 하다가 들통나면 쾌활한 웃음으로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고작 그런 거였냐고 반문하기. 내 블로그에 잘난 척이 심하다는 말을 들으니 아직 그 짓을 1/10도 채 하지 못해서 억울했다.

크립토노미콘 2권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다. 이 바닥에서는 마치 본능처럼 익숙한 단어들이 어설프고 힘겹게 각주를 달고 있었다. 심지어는 트랙볼에도 각주가 달려 있었다. 그레이트풀 데쓰에 대한 각주를 보고 뒤로 벌러덩 자빠지면서 미친듯이 웃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번역되기 힘든 전문용어들이 너무 많은 책이기도 했다.

거꾸로 생각해 봤다. 이해할 수도 없는 프랑스 관용어구가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소설을 진정,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기나 한지. 이를테면 크립토노미콘에 나오는 프리킹이란 단어는 어떤 닭질, 삽질, 한 보루의 담배, 48시간 노동, 어질러진 책상, 김빠진 콜라와 식은 서양 빈대떡, 그리고 발견의 기쁨, 드물긴 하지만 인생을 제외한 그 나머지 것들을 몽땅 의미하는 단어일 수도 있다. 닐 스티븐슨은 이 바닥 사람인 양 그런 단어들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브루스 스털링이나 윌리엄 깁슨이 프랑스 철학자 같은 되도 안되는 말을 늘어놓는 또라이로 보일 정도로. 하여튼 크립토노미콘을 맨정신으로 '번역'했다는 사실에는 숙연해졌다.

항공권 이용 마일리지 보러 웹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서울-제주 왕복 항공권을 얻을 수 있다. 항공권을 중심으로 놀러갈 계획을 세워야 예의가 아닐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제주도에서 일주일을 노느니 그 돈으로 타일랜드에 가서 럭셔리하게 노는 편이 백 번 낫다.

손끝으로 코딩 감각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다. 생활은 드라마틱하게 단순해졌다. 읽고 코딩하고 밥 먹고 코딩하기. 수박을 파서 블랜더에 얼음과 함께 넣고 갈아 수박 쥬스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 이 맛이다. 방콕의 조그만 과일쥬스 가게에서 십밧을 주고 사서 탁자에 앉아 먹던 그 맛.

선배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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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ective

잡기 2003. 7. 30. 16:32
틈틈이 CSI 3기를 봤다. 밥 먹을 때와 잠자기 전에 한두 편씩. 오로지 일만 죽어라고 하는 CSI 팀은 무식하게 범인을 때려잡는 강력계 형사를 상대적으로 바보처럼 보이게 했다. CSI 팀의 삶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밤낮으로 면봉을 들고 DNA를 채취하고 혈흔을 쫓으면서 일을 했다.

청각을 잃어가는 그리섬 팀장은 난장이를 만나고, SM 사업을 하는 여자를 만났다. 너구리같이 생긴 그리섬이 후자 같은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부럽게 생각했다. 그리섬이 아는 척 했다. SM의 세계에서는 복종하는 자가 지배한다죠? 신비스러운 세계다. 여자는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여자와는 사귀지 말라는 얘기를 어렸을 적에 들었다. 지금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웃음이 안 나오는 세계니까 뭔가는 웃어야 균형이 맞을 것 같다. 그리섬은 그 여자와 사귀지 않았다. 여자는 추락한 신뢰와 품위를 유지하려고 그리섬을 향해 몇 마디를 조잘거린다. 세상에서 제일 가엾은 것은 품위와 사랑을 동시에 잃은 여자들이다. 그리섬은 나쁘지 않다. 그는 익숙한 룰에 복종했다.

CSI에서 가장 인생이 복잡한 캐릭터, 그리고 가장 잘 생긴 캐릭터는 배추머리 흑인이었다. 동기가 주어지기만 하면 언제든지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굴 많이 닮았다.

일하지 않고 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에피소드와 농담꺼리를 만들어내는 딜레탕트에게 매력을 느낀 적이 없던 것 같다. 이를테면 한량에게, 또는 어떤 세대를 풍미하는 불필요한 절망감 내지는 시야 단축이 일종의 엘레강스가 되는 양 삶을 웃음꺼리로 만드는 몇몇 종자의 특이성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듯이. 단순성은 반드시 복잡성과 맞닿은 지점에서 작용해야 할 것이다. 복잡성의 층적 궤적은 확실히 성격의 다면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그것의... 아름다움은 대칭성의 확산, 질서의 건너편, 카오스의 바다를 떠도는 섬, 불길한 적란운이 떠 있는 지평선 따위를 생각나게 했다. 아참, 생각은 안 했다.

CSI의 인물들을 곰곰히 살펴보다가... 한 방 먹었다. 착각하고 있었다. 이들의 성격과 개성이 깊이 있고 다면적이라기 보다는 표면적인 질감과 풍성한 볼륨감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럼, 어디서 부터 착각이 비롯되었을까? 시청자가 지겨워 할까 봐서인지 연출의 리듬감, 완급 조절을 잘 해 나갔다. 매 에피소드마다 다양하게 죽은 시체들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밥 먹으면서 내장이 길바닥에 널린 시체를 보거나 뇌수가 졸졸 흐르는 모습을 보았다.

과학과 이성의 뒷받침으로 매번 우여곡절 끝에 정의가 실현되었다. 물론 리얼리티의 미명하에 정의가 실현되어서는 안되는 케이스가 있었고 그래서 도마뱀의 뇌가 가끔 변칙을 부렸다. 사건은 병렬적으로 진행되면서 두뇌를 쉬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CSI는 두뇌를 써가면서 보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세련된 연출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마음 속에 투영하는데 방해가 된 것 같다. 아니 착각을 유도했다. 캐릭터는 여전히 책에서만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착각인 것 같다.

대체 지금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있는 거지...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가잖아?

삭막해라.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지하철을 두 번 잘못 탔고 지갑을 안 가지고 나갔다. 비가 오다가 말았다. 가로등 밑에서 크립토노미콘을 읽었고 그간의 피로가 갑자기 몰려와 CSI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창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흔들리면서... 세계는 옳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꿈속에서 깃털을 쥐고 있었다. 깃털에는 일사천리라고 적혀 있었다. 머리를 깎고 패러 글라이딩을 하고 싶어한다는 뜻이었다. 정말이지... 어째서 꿈이 직관적으로 해석되는 것일까... 미치겠군. 신비감이 없잖아.

'제인 에어 납치사건'의 스토리를 보고 나서 어... 하고 말았다. 아는 책이다. 깔깔 웃는 소리와 함께 줄거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읽어 봐야 겠구나... 빌릴 수 있으면 더 좋은데... 책값이 비싸서 책을 사는 것이 꺼려진다. 책값이 비싸면 점점 내성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창 밖으로 매미가 울었다. 함께 술을 안 마시거나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안부를 전할까? 잘 지내고 있고, 체중이 차츰 늘어가고 뱃살이 나오고 있다고? 적응 안되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이유없이 열심히 일한다는 점. 그러면서 그들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개성이 부리는 기괴한 변덕을 구경할 수 있었구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만나기가 힘드네요. 안부 끝.

p.s. 가난이 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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