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에서 여행사진을 응모하면 항공권을 탈 수 있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이 모두 640x480이라서 응모조건에는 부적합하지만 대충 뻥튀기 해서 밑져야 본전이니까 되던 안 되던 응모해 보려고 한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요행에 기대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어떤 것이 응모하기 적합한지 3장만 찍어주시압.
네팔, 카트만두. 버스를 두 번 갈아탄다. 버스 지붕이나 트럭에 매달려 산길을 구비구비 돌아가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히말라야에 쳐박혀 사는 사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인데... 거기서 다시 산을 타고 두 시간쯤 땀 흘리며 올라가면 동굴에 짱박힌 채 평생 수행만 했다던 사두를 만날 수 있다. 그와 하시시를 나눠폈다. 네팔의 정나미 떨어지는 현실이 이 사진 한 장에서 팍팍 느껴진다. 찌든 가난, 돌아누운 할머니, 마오이스트와 정부군 그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지닌 할아버지, 가엾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젊은 신부. 뭐, 네팔 사정은 점점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이 사진이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이 웃지 않았기 때문이랄까.
1. 인디아, 꼴카타(캘커타). 묵고 있는 파라곤 호텔 앞에 널어놓은 빨래.
2. 멕시코, 빠라까스 섬. 갈매기들이 싼 인분이 다량 함유된 똥으로 바위 색깔이 변색. 내륙까지 진출한 '유명한' 빠라까스 펭귄과 바닷사자들.
3. 멕시코, 과나후아또. 봄(춘분)을 맞아 벌어진 축제. 귀여운 아이들. 도발적인?
4. 인디아, 깐야꾸마리. 인도양, 뱅골해, 아라비아해, 세 바다와 세 베다와 세 은유가 만나는 인도인에게는 꽤나 의미 깊은 장소. 바다가 합쳐지듯이 인도의 통일을 소망했으나 생전의 과업이 인도를 결론적으로 쪼개놓은 간디의 잿더미가 여기 보존되어 있다. 간디가 잘 했다고 생각하는 현대 인도 지식인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간디를 추앙했다. 그들은 영화스타도 추앙했다.
5. 이집트, 아스완. 잘 나가던 람세스 시절 이곳에서 나일강의 범람을 조사했다. 나일강의 범람이 축복인 것은 저 황량한 사막에 가물에 콩 나듯이 자라난 나무만 봐도... 이집트에 관한 내 인상을 모조리 쑤셔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진이다. 이집톨로지와 이집트의 관광 국가 이미지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
6. 이집트, 룩소르. 왕가의 계곡. 투트모시스 3세의 사르코파지(석관묘). 사진을 찍는 저 친구와 왕가의 계곡을 땀을 뻘뻘 흘리며 헤메 다녔다. 정말 미친 짓 했다.
7. 인디아, 뿌리. 골목길 맞은편에 보이는 것은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 중 하나인 자간나트 사원.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온갖 교통수단을 개무시한 채 길 중간에 편한 자세로 앉아 쉬고 있는 엄마 소와 아기 소.
8. 이집트, 시와 오아시스 부근 리비아 사막. 지나가는 백여우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 내 평생 여기만큼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은 본 적이 없다. 순 모래뿐이고 약간 덥긴 했지만((42도). 최소한 다섯 종류의 모래를 구분했으며, 그 모래 바닥에 길이 있다는 점, 모래밭에서는 제대로 걷는 방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9. 이집트, 시와 오아시스 부근 리비아 사막. 대낮부터 사막을 걸어서 헤메 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옆의 물 한 통을 반도 비우지 못했다. 난 아무래도 사막 체질인가 보다. 한참 주변을 헤메다닌 끝에 덤블을 조금 긁어 모을 수 있었다. 모래를 파고 불을 피워 이집트식 빵을 구워 먹었다. 마치 베두윈처럼. 그렇잖아도 사막에서 헤메는 도중에 베두윈을 만났다. 그가 날더러 자기 막사로 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말했다. 사막 저 끝에서 나를 발견하고 맨발로 달려와서. -_- 아름다운 보름달빛에 창백하게 빛나는 사막을 걸어서 오아시스로 돌아왔다. 내겐 gps가 있었다.
10. 페루, 아레뀌빠에서 꼴까 계곡으로 가는 길. 엘 미스띠 국립공원. 해발 3000m. 야마를 몰고 있는 할머니. 야마는 인디오들의 주요 식량원. 아니, 유일한 단백질 섭취원. 코카잎을 너무 많이 씹어 입안이 얼얼해지고 헤롱거리며 찍은...
11. 이란, 라쉬트. 인터넷 까페의 19살 짜리 여직원들. 아유... 정말 여우들 처럼 생겼다. 이란인들은 내심 호메이니 이전의 팔레비 왕조 시절의 화려함과 방탕함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스카프를 벗어 긴 머리를 보여주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꼬셔야 했던 것이다.
12. 이집트, 카이로. 일주일에 두어번 벌어지는 '무료' 수피 댄스 공연. 이집트의 빌어먹을 관광지를 새벽부터 전전하는 것 보다 이 놈에 수피춤 공연이 52만배는 나았다. 수피교는 이슬람 신비주의 일파인데 워낙 사람들이 이상하긴 했다. 그러고보니 팀 로빈슨의 화성 시리즈에서 수피교도들을 묘사한 것을 본 것 같다. 저렇게 한 시간 넘게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대단한 종교적 열정이다.
13. 네팔, 카트만두. 달밭 광장. 광장 주변을 배회하는 거지 소년. 아직 철이 없어서 나 같은 관광객을 어떻게 뜯어먹어야 할 지 잘 몰랐다. 건물 꼭대기에서 거지들 틈에 끼어 짜이를 마시며 석양을 바라 보았다. 분위기 캡이었다.
14. 네팔, 카트만두. 파슈파티나트 사원 뒷편 언덕.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히말리야 사두(수행자)들의 집결 장소. 그들이 떼거지로 모여 햇빛을 쬐면서 벼룩과 이를 잡거나 관광객들한테 삥 뜯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개나소나 들락거리는 인도의 바라나시와는 쨉도 안되게 성스러운 곳이라서 북인도 사원의 사제들은 그들의 사원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무굴의 영향을 받지 않은 authentic한 남인도 사원의 정통 사제들만이 들락거릴 수 있으며... 인도의 바라나시에서는 시체를 한 구 한 구 태우지만 여기서 만큼은 동시에 다섯 구 내지는 열 구씩 태운다. 대량 소각의 물결이 거세다.
15. 베트남, 후에. 베트남 전쟁 당시 워낙 쑥대밭이 되어서 후에 왕조의 유적 일부만 간신히 남고 나머지는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정신나간 미국놈들이 네이팜과 블록버스터를 쏟아부은 탓? 따라서 베트남에는 볼거리가 거의 없다. 아니, 하나도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에는 그나마 산사가 남아 있지만. 후에의 한 절에서 나머지 공부중인 젊은 스님. 중들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16. 인디아, 마이소르. 파크레인 레스토랑 내부에 조그맣게 운영하는 파크레인 호텔. 6호실. 파크레인 레스토랑은 전 인도를 걸쳐 가장 음식이 맛있었던 곳. 의자에 편안히 앉아 책을 읽거나 저녁 무렵이면 아랫층에서 풍겨오는 향기로운 음식 냄새와 흥청이는 소음을 즐겼다. 어쩌면 마이소르가 웨일즈 왕자에 의해 무참하게 농락당하기 전, 인도의 마하라자에게 봉사하던 요리사의 후손들이 그들에게 만들어주던 궁중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이소르에서 그 빌어먹을 인도인들에게는 심지어 긍지도 있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 저녁이면 모기에 뜯겼지만 잊지못할 낭만적인 곳이었다.
17. 페루, 쿠스코. 스페인 식민 풍의 건물과 골목길. 쿠스코의 건물들은 모두 붉은 색 기와를 얹었다. 길을 잃고 헤메다가 찍은 사진. 내가 묵던 게스트하우스가 오른쪽의 하얀 건물을 많이 닮았다. 빈부의 격차가 워낙 극심했다. 이곳이 부촌이라면 맞은편 산자락의 건물군은 달동네였다.
18. 인디아, 마말라뿌람. 30cm 코 앞에서 원숭이 독사진을 찍은 곳. 등대를 돌아가면 그놈이 앉아 있던 장소가 있다. 공방에서 땡땡이를 치고 나온 도제와 유적 꼭대기에 앉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평원으로 지는 해를 바라 보았다. 깔라마리(오징어)를 사서 오징어 덮밥을 해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요리사와 주인은 상습적인 마리화나 복용자였고 언제 어느때나 눈이 풀려서 실실 거렸다. 심지어 바닥에 엎어져 정신 못차린 채 헤롱거리는 놈도 봤다. 밤에는 해변에 나갔다. 해변은 완벽하게 어두워서 슬쩍 오줌 눗기에 그만이었다.
19. 터키, 셀죽. 어쩌다보니 입장료 못 내고 들어간 에페스의 로마 유적 중 원형극장. 들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궁리 중.
20. 터키, 셀죽. 에페스 유적. 대리석길(성스러운 길)에 드러누워 있는 개. 안 죽었다. 2천년 묵은 로마 유적지에 개가 느긋하게 자빠져 자고 있는 모습이 생각보다 보기 좋았다. 보는 눈들이 있어서 자빠진 개를 보면 응당 해야만 할 것 같은 일, 그러니까 옆구리를 걷어차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책은 한 권도 없는 비블로스(도서관)가 있었다.
21. 캄보디아, 시엠리엡(시엠립? 시엠리업?). 앙코르와트 유적지. 바욘. 나흘에 걸쳐 엄청나게 거대한, 아니 세계 최고의 규모의 유적지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본 거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이 얼굴의 모티브가 자야바르만 왕이었던가? 오래되니까 잊어버렸다. 주저없이 인류가 현재 보유한 최고의 유적으로 손꼽을 수 있다. 평생 한 번 쯤은 가봐야 할 곳이라고. 그리고 늦으면 국물도 없을 꺼라고.
22. 인디아, 오챠. 라즈 마할. 무굴식의 요새 겸 궁전. 병정과 사령관과 왕이 기거하던 곳. 마치 에셔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곳. 라즈 마할과 여자들이 기거하던 쉬즈 마할 사이를 한가하게 배회하며 책을 읽고 오후를 보냈다.
23. 터키, 셀죽. 이사베이 까미. 형형색색의 카펫과 알라께 경배드리는 어떤 여성의 궁둥이. 카펫은 이란제보다 질이 떨어지는데도 터키에서는 관광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는 것 같다. 터키의 무슬림을 무슬림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터키는 아시아 국가인 척 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유럽 국가라고 보기도 어렵다. 터키의 애매한 정체성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아시아의 분계선 때문이라고 하기도 뭣했다. 사실 터키는 동서양 문명의 교합점이라고 부를 건덕지가 그리 없었다. 그건 유럽인들이 로마/그리스 시절을 중심으로 재편한 그들 역사적 관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로만 유적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 터키다. 실제로 아랍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유럽의 사나이들이 함께 만나 칼은 탁자 밑으로 던져두고 술을 걸쳤던 곳은 지중해의 동쪽 끝, 비단길과 향신료길이 만난 곳, 최초의 알파벳이 발견된 나라, 그리고 모든 기성 종교의 도가니, 시리아와 요르단, 이라크 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대에 문명은 그곳에서 비롯되었고 그곳에서 융성하여 그곳에서 퍼져 나갔다. 터키가 아니라. 아참, 나는 역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다. 다만 터키가 동서양의 중심지였다는 그네들의 관광 팜플렛에 조까고 있네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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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멕시코, 우스말. 마야 유적지. 정부청사의 거대한 계단. 마야 유적이 혼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멕시코 북부의 똘떽과 떼오띠후아깐, 아스떼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티가 팍팍나는 건물들. (대체, 마야는 문명이 있었기나 한건가? 스페인의 조직적인 파괴가 라틴 아메리카 문명권 전체를 절단냈다는 것만 봐도 대단히 신기할 뿐더러, 스페인 침공 이전의 마야나 아스떼까가 인민들에게 한 짓을 보노라면 그런 문명은 없어지는게 바람직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에 수만 명의 심장을 도려내는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도살 컨베이어 시스템을 운영하던 고대문명이다) 그래서 대단찮은 건축 기술임에도 대단한 찬사를 받는 마야 문명의 거개 건물들에는 항상 볼 때마다 희안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마야 유적지에서 낮잠을 잔 횟수가 앙코르와트나 인도의 유적지에서 낮잠을 잔 횟수보다 더 많았다. 이 점은 매우 중요했다. 석조 건축물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문명과 낮잠 자기 불편한 문명의 구분. 피비린내는 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것이다.
25. 페루, 띠띠까까 호수. 아만따니 섬. 수정처럼 맑은 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거대한 화산 호수. 찢어지게 가난한 원주민들. 전기는 커녕 물 조차 제대로 안나오는 곳.
26. 페루, 띠띠까까 호수. 아만따니 섬. 남반구라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 한국의 봄 무렵 여기는 가을이었고 계단식 논에서 걷어낸 꼴을 나르고 있었다. 30대 이상, 시골 출신이라면... 이런 광경이 뭘 의미하는지 단박에 필이 꽂힐 것이다. 나는 저런 곳에서 살았다.
27. 멕시코, 치첸 이샤. 마야 유적지. 까스띠오. 마야 문명 최고의 걸작 건축물의 가파르고 미끄러운 계단, 기다시피 올라오는 사람들. 뭐 나야 그냥 평지 걷듯이 올라가고 내려왔다. 각도가 아주 좋아 여러 여자들의 가슴을 관찰할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360도로 펼쳐진 정글은 장관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대개들 벽에 달싹 붙어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나는 영험한 상승기류를 타고 콘돌처럼 날고 싶었다. -_-
28. 터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의 네크로폴리스(묘지터). 의학이 매우 발달했다고 여겨지는 도시지만 의료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하도 많아 시체를 채운 석관이 옹기종기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는 네크로폴리스의 길이가 무려 2km에 달한다. 의료 사고. -_-
29. 파키스탄, 훈자. 투어 가이드. 자기 없으면 빙하에서 떨어져 죽을꺼라고 겁을 줬다. 러시안과 몽골의 피가 3:1의 비율로 섞인, 훈자 부근에서는 흔해빠진 인종 칵테일. 훈자 부근은 히말라야 인근 지대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황량함, 그랜저, 홀리함 등등을 갖추고 있었다. 훈자 마을이 왜 나우시카의 배경이 되었는가는 카리마바드(훈자 마을의 명칭)에 며칠 머물다 보면 필이 딱 꽂힌다. 그들은 몸에 별로 안좋은 살구씨를 너무 많이 먹는 경향이 있었다.
30. 피키스탄. 훈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속도로인 카라코럼 하이웨이는 카리마바드를 통과한다. 사진에는 지나가는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추위도 보이지 않는다. 더럽게 춥고 더럽게 바람이 불었다.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고 그저 공기가 좀 있는 화성같은 곳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후로 화성같은 곳을 무척 많이 봤다.
31. 페루, 띠띠까까 호수. 따낄레 섬. 일요일이면 마을 주민들이 공회당에 모여 '섬의 앞날'을 논하는 모임을 갖는다. 자세히 안 들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섬에는 몇 개의 서로 다른 생활양식을 가진 부족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복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나? 하지만 내 눈에는 양키 문명을 들고 마을을 침략하려던 나쁜 그링고 몇명을 해치우는 고된 일을 마치고 밥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석양의 7인?
32.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라고 뭉뚱그려서 민망한 기분이 들긴 하나... 저녁 무렵 갑자기 쏟아진 비 덕택에 관광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유적지에는 나만 남았다. 저것은 불상이다. 하지만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유적의 건물 중앙에서 실루엣을 남기고 있는 모습은... 이 괴괴한 음산함은... 오버했군.
33. 과테말라, 국경. 국경이 강이다. 멕시코에서 넘어와 과테말라 이민국을 지나갔다. 이민국 관리라는 것이 자동 소총을 든 두 명의 군인이 전부였다. 뇌물 환영. 뭐 그런 분위기다.
34. 시리아, 알레포. 공원에서 할머니가 부랑생활을 하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있다. 그녀는 저민 고기를 고양이들에게 뿌렸고 고기 한 점을 사이에 두고 고양이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곧 이어진 처절한 전투는 장관이었다. 할머니는 싸우는 고양이들을 손찌검과 발길질로 말리고 무언가 그들이 알아들을 성 싶지 않은 말을 퍼부었다. 구부러진 등, 매부리코, 뒤집어쓴 두건, 영락없는... 마녀 할멈...
35. 볼리비아, 유우니. 살라르 데 유우니. 유우니의 소금 평원. 이 사진이 상당히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삽질 하다 말고 나를 쳐다보던 저 아저씨의 다음 동작은 땅바닥에서 소금 덩이를 줏어 내게 집어 던지며 사진 찍지 말라고 욕설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36. 볼리비아, 유우니. 소금 평원에서 찍은 사진. 투어 맴버들. 우리는 샤이닝 다이아몬드 같은 대형을 취했으며 결코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행 잘 하고 있을까? 그들은 나보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37. 이란, 밤. 밤의 옛 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사막. 밤은 오아시스 도시. 먼지와 털 색깔이 똑같은 양떼. 꾀죄죄한 것인지 아니면 주변 자연환경에 맞춰 털 색깔이 변한 것인지. 이란은 페르시아다. 페르시아는 아랍이 아니다. 아랍과 비슷하지만 아랍은 아니다. 페르세 폴리스를 세운 파르시 족이 만든 나라다. 파르시,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
38. 과테말라, 티칼. temple of the Masks. 왕비를 기리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라던데... 마야 유적중 가장 뻔대가 훌륭한 곳. 정글 한 복판에 솟아오른 광자력 연구소 비슷한 건물들. 껍질에 풀씨가 드러앉아 자란 세이바 나무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콩고 원숭이의 매우 울화가 치민듯한 울음소리.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고적함이 깃든 곳.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유적을 발견한 기쁨이 있었던 곳. 라틴 아메리카 유적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긴 낮잠을 잤던 곳.
39. 이란, 케르만. 길을 헤메다가 지역 예술가의 작은 박물관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그 뒷편으로 슬쩍 돌아가는 아이를 따라 가니 작은 숲을 지나쳐 고아원이 나왔다. 그 녀석들은 내 얼굴이 자기들과 무진장 많이 닮은데 말이 전혀 안 통해 신기해 했다. 교실에서 뛰쳐나온 여러 선생님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나누고(-_-) 그 선생님은 애들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려 하자 손부터 씻게 만들었고(-_-) 그들의 발꼬랑내가 진동하는 기숙사를 순시하고(-_-) 애들에게 동양무술의 신비를 가르치다가(-_-) 나왔다. 존만한 녀석들아, 부디 꿋꿋하게 잘 살아라!
40. 과테말라, 치치카스테낭고. 산토 토마스 교회 앞. 산토 도밍고 교회는 원주민들의 성서같은 것이었던 뽀뿔 뿌가 발견된 곳이었다.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매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부활절 프로세션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르기 바로 이틀 전. 양복을 입은 허수아비 인형에게 모자를 씌우고, 담배를 물리고 술병을 놓았다. 대접하는 것 같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다음날 두 허수아비는 교회 입구에 목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원주민 신앙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냔 말이다!!
41. 이란, 에스파한. 하쉬트 베헤쉬트 궁전을 감싸고 있는 공원. 낙엽이 깔린 아름답고 로맨틱한 공원, 그리고 저 멀리 벤치에 분위기 있게 앉아 있는 펭귄 복장의 아줌마.
42. 조르단, 페트라. 희생의 제단 부근. 페트라는 이 소녀의 머리 넘어 아래 계곡에 펼쳐져 있다. 어쩌다가 비 맞고 길을 잃고 헤메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머리털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로 심한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소녀를 만났다. 바람이 보이는가? 그의 부모는 근처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페트라가 관광지화 된 후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따라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양이나 치면서 사는, 관광화되지 못한 베두윈이다. 관광화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는 내가 먹고 있던 오렌지에 관심이 많았다. 설명을 이렇게 달지 않고, 이라크 난민이다, 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이다. 라고 말해도 다들 믿을 것 같다.
43. 이란, 에스파한. 시오세(33) 다리 밑 찻집. 애들이 빨아도 괜찮을 정도로 순한 물담배. 아버지가 피우던 것을 빼앗아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용을 쓰고 담배를 피우려 애쓰고 있었다. 쟁반에 놓인 것은 차 주전자. 설탕을 듬뿍 넣은 차를 마시면서 향긋한 물담배를 피웠다. 아주 좋았다.
수상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는 사진들이지만...
나머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