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742건

  1. 2005.07.09 beloved 1
  2. 2005.06.28 한라산 우중산행 1
  3. 2005.06.25 firefly 1
  4. 2005.06.21 최근 보는 SF 시리즈 2
  5. 2005.06.19 원근상실 1
  6. 2005.06.12 왠만하면 묻지 말자고
  7. 2005.06.09 조디악 싱크-충전 케이블 다시. 1
  8. 2005.06.08 마사지
  9. 2005.06.04 이해만으로는 부족한 것 1
  10. 2005.05.27 Zodiac2 Bluetooth Network setup 4
  11. 2005.05.20 조디악의 케이블 개조 (USB 충전) 1
  12. 2005.05.20 Zodiac 2
  13. 2005.05.18 Sony Clie SJ-33 판매
  14. 2005.05.16 안녕, 프란체스카 2
  15. 2005.05.05 어린이날 1
  16. 2005.05.03 생활의 어려움
  17. 2005.04.24 환상적인 믿음 1
  18. 2005.04.22 ...
  19. 2005.04.19 노트북 A/S
  20. 2005.04.17 뒷산에서 점심 먹고
  21. 2005.04.16 벚꽂놀이
  22. 2005.04.14 대단해
  23. 2005.04.11 4/10, 4/11 Bangkok, Incheon 1
  24. 2005.04.11 4/10 2
  25. 2005.04.10 정리 2
  26. 2005.04.10 4/8-4/10 Bangkok
  27. 2005.04.08 4/8 back to Yangon
  28. 2005.04.07 4/7 Bagan
  29. 2005.04.05 4/5 to Bagan 3
  30. 2005.04.04 4/4 Back to Mandalay

beloved

잡기 2005. 7. 9. 23:27
TCPMP 0.65z2가 나오면서 palm os를 사용하는 동종 기종중 조디악이 최강의 성능을 보였다; TCPMP 벤치마킹 심지어 바닥으로 엔코딩을 새로 안 한 오리지널 비디오가 그냥 플레이된다. 일부 사용자는 PSP보다 성능이 낫다는데, SD 가격은 언제 떨어지려나. (그런데 텝웨이브의 개발자들은 아직도 api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단 말이지?)

갑갑해서 밖으로 나와 길가에 앉았다. 술집에서 처음 만난 누나가 내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남편하고 헤어졌지만, 남편이 밉지는 않아. 힘 내'라고 말한다. 당황했다. 같은 술집에서 합석한 여자애 둘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줄 담배를 피우는 아이, 삼순이를 진지하게 보는 기껏해야 스물셋 먹은 어린 아이들.

술집에서 탁자에 tv 놓고 '삼순이'라는 드라마 보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난생 처음 해보는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삼순이가 유명하다던데 시시껄렁한 몇 마디 대사가 왜 그리 멋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삼순이는 나처럼 한라산에 올라갔다. 그 거리에서는 대화가 안된다. 한라산의 지랄비바람을 우습게 보는군.

삼순이 드라마 보다가 합석한 두 아이 중 하나는 올 여름에 유럽에 갈 생각이다. 진짜 오리지날 배낭 여행을 하겠다고 해서 나 같은 관광객이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프랑스 같은 나라 보다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깡촌을 가보라고... 권했다. 여자애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하겠다고 주장했다. 결혼해서 애를 펑펑 낳고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재차 다짐하는 그 나이 또래의 낭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티셔츠를 걷어 배를 보여준 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들기며 '나 배 나왔다?' 라고 말했다.

아내는 집을 나간지 사흘 만에 돌아왔다. 남들 눈에는 내가 아내 때문에 맛간 줄 안 것 같다. 아내 걱정 보다는 아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 이름의 특이함을 줄곳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국에 그런 이상한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었군. 아내가 나를 특히나 기특하게 여기는 부분은 자기가 없어도 혼자서 밥 잘 해 먹고 팬티도 잘 갈아 입는 것이었다. 그 시골마을의 어느 절간에 짱박혀 있을꺼야. 그랬다.

암자에 들어가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공양하고 하루 종일 풀 뽑고 아홉 시면 피곤해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3일째 천도복숭아 한 봉지를 사들고 돌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노가다만 했더니 행복해진 것 같다. 당시 안방에는 전날 밤 술 마시고 빌빌 거리는 작자들이 팬티 바람으로 tv를 보고 있었고, 나는 작업실에서 인두를 잡고 일 하는 중이었다. 아내가 집을 나간 이유를 말해 주었다.

1. 남편이 폭언을 했다.
2. 혼자만 제주도에 가서 놀다왔다.
3. 남편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4. 음식 타박이 심하다.
5. 사랑스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는다.
6. 그리고 위의 모든 항을 포함하여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특히 5항.

그랬다. 성인이 된 후 줄곳 이 세상에서 굶어죽는 인간들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저녁에 횟집에서 회를 떠와 넷이서 다시 술을 마셨다. 장마 기간이라 옥상에 올라가 숯불 삼겹살이나 숯불 닭갈비를 해먹겠다는 계획은 무기한 연기했다. 아내는 '달의 잔'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예쁘장한 토기 찻잔에 소주를 부어 연달아 마신 후(찻잔에 소주를 콸콸 부어 마시는 것은 악취미다) 할 말 다하고 술에 취해 잠들었다. 나는 설겆이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시간 가량 두부를 사려고 시장 바닥을 돌아다녔다. 아침 일찍이라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거리에는 파리한 얼굴빛으로 출근하거나 학교 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산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두부를 사갖고 집으로 돌아오니 옆집 중학생 여자애가 우산을 든 채 현관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우편함에 감춰둔 담배를 슬며시 꺼내 한 모금 깊숙이 빨고 하늘을 쳐다보고, 두부를 든 내 얼굴을 쳐다봤다. 빙그레 웃었다. 출근 전 담배 맛을 아는군.


다시 인두를 손에 잡았지만 엊그제 대충 만든 회로는 작동하지 않았다. 비도 오는데 산에나 갈까? 자기 긍정이나 세계 긍정, 자기 부정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행위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바보짓이라고 여겼다.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실이 매우 좆같을 때에도 최선을 다 해 하던 일을 마저 하는 것 이외의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했다.

아내가 싸준 천도 복숭아 셋을 작은 배낭에 넣고 산에 올라가 안개 속에 있었다. 평소처럼 평창동 방면으로 내려왔다. 3시간 40분.



동네가 잘 보인다. 그런데 너였구나 안정훈. 너는 산을 사랑하지 않아.



안개 속의 문수봉.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아저씨가 문수봉 깔딱재를 간신히 넘고나서 말을 건넸다; 저쪽이에요 이쪽이에요? 저쪽 길은 쉽고 이쪽 길은 어려워요. 바위는 무서워서 못 올라가겠어요. 오늘은 힘들 겁니다. 뭐 인생이 다 그렇지.



옥션에서 19000원 주고 새로 산 트랙스타 샌들의 그립이 훌륭하다. 하도 훌륭해서 50도 가량의 비에 젖은 바위 경사를 내려와 폭포에 섰다. 아찔하다.



세수하고 발 담그고 놀았다. 북한산은 워낙 메마른 산이라서 장마 때가 아니면 수량이 적어 계곡에 발담그고 노는 재미는 느끼지 못할 듯. 책을 꺼내들고 좀 읽다가 발이 시려서 일어섰다.



등산로에서 시계를 줏었다. 산이 좋다.
,
마일리지가 좀 남아 있어 저저번주부터 머리 식힐 겸 제주도에 가려고 했다. 제주도에 가긴 가는데, 별달리 뾰족한 테마가 생각나지 않았다. 제주 날씨; 안 좋다. 다시 다음주로 미룰까 하고 아시아나 홈페이지에 들어가 발권 상황을 보니 시간 맞는 것이 없다. 다음주는 본격적인 장마니까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좌석이 없어 일요일 아침에 도착해 월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표를 끊었다.

6/25, 간단히 짐을 싸두고 자명종을 맞춰 두고 자료 수집 시작. 주로 '야후 거기'의 콩나물 지도를 참조. 별다른 테마가 없고, 있다 해도 돈이 들 것 같아 그냥 한라산에 가보자고 마음 먹었다. 제주를 두 번 갔지만 번번이 한라산에 갈 기회가 없었다. 한라산, 어떤 코스로 가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항공권 사정상 일정이 이틀 짜리라 시간이 남아돈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코스는 영실(어리목)에서 올라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어리목(영실)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경치가 괜찮다는데 등반 시간이 짧다. 남은 시간에 뭘 해야 할지. 게다가 비가 오니 경치 관람은 별 의미가 없다. 성판악에서 출발, 관음사로 나오는 코스는 10시간 가량. 길이 평탄하고 지루하단다. 그래도 10시간 동안 줄창 걸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처음 제주에 간 것은 십 년도 전의 일이다. 그때 아마 전국 여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목포까지 가서 어디갈까 궁리했다. 갈데가 없다. 그래서 배를 탔다. 그날 바다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커다란 배가 기우뚱 기우뚱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을 때 갑판에 나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 바다의 무서움을 그때 처음 느꼈다. 제주항에 도착했을 때 항구에서 노란 비옷을 입고 있는 여자가 다가와 하룻밤 같이 보내잔다. 창녀였다. 제주의 첫인상이 그랬다.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그냥 첫인상이다. 우중충한 선창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던 노란색 비옷. 매킨토시? :)

두번째 제주 여행은 4년 전, 그때도 폭풍이 몰아쳤다. 3일 밤낮으로 폭풍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끌고, 밀며 해안도로를 일주했다. 제주에서는 빗방울이 수평 궤적을 그리더라, 하니까 믿지 않는 작자도 있었다. 폭풍이 제주도를 유린하던 그 와중에 텐트 치고 자기도 했다. 매우 고생했다.

6시 집에서 출발, ATM에서 10만원을 찾았다. 7시30분 김포공항 도착.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350ml짜리 물(1400원)을 사 먹었다. 그리고 초코바를 세개 샀다. 8시 비행기를 탔다. 기내에서 나눠주는 사탕을 한웅큼 집었다. 캐빈 어시스탄트가 헤~ 하고 웃었다. 배낭여행만 해서인지 이놈에 거지 근성은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있는 것 같다.

9시 5분, 제주공항 도착. 교통 경찰에게 물어 시내 버스 타고(850원)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 5분 걸렸다. 최근 제주 시내버스가 파업에 돌입했다. 최저 생계 보장을 외치고 있다. 시내버스 타고 다니기 힘들겠구나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터미널에서 1700원 주고 표를 샀다. 담배 한 대 빨고 성판악행 버스에 올랐다. 9시 25분 출발. 간간이 안개를 통과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엿됐다 중얼거렸다. 성판악에 도착하니 매표소가 어딘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와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오버 트라우저로는 아무래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비닐로 된 일회용 우의를 샀다. 3천원. 이리저리 헤메다가 매표소를 발견. 1600원. 오후 한 시까지는 진달래 대피소에 다달아야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단다. 기상 상태가 안 좋단다. 슬슬 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별 걱정하지 않았다. 제주의 '지랄 비바람'은 익숙한 것이다.



한라산의 동서 사면은 기울기가 비교적 완만해 3-5도 사이, 남북은 5-7도 사이다. 거의 산책로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그렇게 편한 길이지만 한라산에서 한 달 평균 3-4건의 탈진, 부상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가 나면 별다른 방법이 없어 안전요원이 산에 올라가 들쳐 업고 내려온다. 운 나쁘게 정상 근처에서 사고가 생기면 왕복 10시간 거리다.

등산객이 거의 없어 호젓한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기저기 해송과 산꽃나무가 보였다. 귀찮기도 하고, 카메라를 꺼내 찍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비바람이 숲을 뚫고 몰아쳐서 오버트라우저가 흠뻑 젖었다. 그걸 벗고 대신 비옷을 걸쳤다.

오후 한 시가 한계라 발걸음을 빨리 했다. 앞에 놀러온 부산 아가씨들이 씩씩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제주도에 왔으니 백록담을 꼭 보고 가겠다고 호언장담한다. 빗물에 홀딱 젖은 티셔츠로 브라 끈이 비쳐 보인다. 길이 편하긴 하지만 준비없이 빗 속에 올라가는 것은 무리인데... 지방층이 두터우니까 추위를 잘 견디겠지. 나야 애당초 백록담 볼 생각은 없었다. 그냥 비바람을 '즐기자고', 뭐 그런 마음을 품었다. 아까 비행기에서 얻은 사탕을 나눠주고 지나쳐 올라갔다.

안개와 비바람에 휩싸인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니 11시 40분, 사람들이 대피소 안에서 바글거렸다. 얼른 컵라면(1600원) 하나와 포카리스웨트(1000원)을 사서 먹었다. 뱃속이 따뜻해지고 액체를 섭취하니 좋다. 하산하는 등산객들 중 몇몇 사람들이 정상 부근에서 비바람이 심해 올라가다 돌아왔단다. 별다른 대비없이 무작정 올라왔던 사람들은 홀딱 젖어서 아까 본 아가씨들처럼 비맞은 강아지 꼴이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다. 정상 부근은 추울텐데? 왜 올라왔나 싶다. 아이까지 데리고 올라온 사람들은 또 뭘까.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4시간 30분 걸린다. 왕복만 해도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인데 아무리 길이 편하다지만 애들 데리고 10시간 동안 걷는 것은 무리다. 앗. 애들한테 빗 속에서 열시간 산행을 시키는 것이 혹시,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12시에 출발. 1570m 지점에서 gps를 찍었다. 시계를 살펴보니 기압계는 830 헥토 파스칼, 비는 한 동안 계속 올 것이다. 우의를 벗고 비에 젖은 오버트라우저를 다시 입고 그 위에 우의를 걸치고 배낭을 바깥에 매고 배낭 끈으로 우의 바깥을 단단히 조였다. 초콜렛 바를 두개 우걱우걱 씹어먹고 실개천에서 손으로 물을 받아 마셨다. 차고 달다.


개울로 변한 등산로. 신발에 물이 차서 질퍽거리지만 찬 개울물에 발 담근 것처럼 시원하고 기분 좋다. 이래서 사고가 나는 걸까...

진달래 대피소를 나오자 길이 조금씩 가파라지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면서 1800까지 구상나무 숲을 지나쳐갔다. 빗속이지만 특유의 테르핀 향내가 풍긴다.

개활지에 이르자 광포한 비바람이 남남서에서 불어닥쳤다. 풍속이 10~20m/sec에 이르는, 내가 두번째 제주 자전거 여행에서 익히 그 맛을 보았던 바로 그 지랄풍이었다. 반갑다 지랄풍. 제주의 참맛은 역시 지랄풍이지. 빗방울은 수평으로 날아다니고 피부에 빗방울이 닿자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비닐 우의는 미친듯이 파다닥거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람이 벽으로 몰아 세웠다. 비틀비틀, 시계가 겨우 1m 정도인 막막한 계단길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죽이는군.

정상에 다달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재수 좋으면 백록담에서 한가하게 뛰노는 노루떼를 구경할 수 있다는데 온 사방이 그냥 하얀 백지 상태였다. 한라산 중턱에는 버려진 밭이 있는데, 밭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어느날 한라산 자락에 공들여 풀어 놓은 노루 중 새끼를 잡아 먹었단다. 그래서 노루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밤마다 밭에 내려와 작물을 망쳐 놓았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밭을 포기한 채 산을 내려갔다는 민담이 있다. 정상에서 이히히, 이히히 웃으며 노래 부르고 있는데 옆의 오두막에서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뛰쳐 나와 그만 내려가란다. 관음사로 내려갈 꺼라고 소리 질렀다 -- 서로 말이 안 들린다. 계곡에 물이 불기 전에 빨리 내려가란다. 서 있기가 곤란한 처지라 얼른 바람을 피해야 겠기에 정상에서 겨우 5분 남짓 있었다. 올라오는데 3시간 걸렸다. 관음사에서 정상까지 5시간 가량, 하지만 내리막이니 3시간 정도면 될 것 같다.

내려 오다보니 무릎이 욱신거리고 사타구니 양쪽이 아프다. 사타구니를 만져도 엄밀히 그곳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싶더만 몇 년간 줄곳 쿠션이 있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다가 이번에 밑창이 그냥 고무 한 장인 아쿠아 뭐라는, 집에서 슬리퍼로 신던 신발을 신고 와서 뒷꿈치와 발끝으로 전해오는 충격이 무릎과, 넙적다리와 골반을 연결하는 부위로 직접 가해져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거 안 좋은데? 타이레놀을 한 알 삼켰다. 내리막이니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한가하게 천천히 내려왔다. 골반, 무릎이 쑤셔서 무리하게 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어서 이번에는 정강이에 알이 배겼다. 잘 한다. 내 정강이는 왠간한 여자들의 것보다 미끈하게 잘 빠졌다니 관리 잘 해야지.

기압이 1000헥토 파스칼로 정상 회복되었고 곧 비도 멎을 것 같다. 정상 부근에서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배낭 커버가 살짝 벗겨지면서 그 사이로 빗물이 비집고 들어와 배낭에 넣었던 여분의 티셔츠가 흠뻑 물에 젖었다. 다행히 pda는 젖지 않았다. repligo를 깔아서 제주 정보를 넣어 둔 것이다.

두 시간 쯤 걸려 2/3를 내려왔다. 비가 멎었다. 잠시 쉬면서 신발의 물기를 닦아내고 두번째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초콜렛 바를 먹으며 10분쯤 쉬었다.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어댄다. 까마귀들은 조류 중에 유난히 머리가 좋아서(그래봤자 새대가리지만) 데리고 놀기 딱인데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초코바를 조금씩 뜯어서 뿌려 두었는데도 관심을 안 보인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울창한 숲속에서 쏴아 쏴아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분위기 좋다.


산수국. 토질의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분홍색, 흰색, 또는 푸른색으로.


산수국. 겉의 네 잎 달린 것은 헛꽃(무성화). 내심 한라산의 꽃과 나무에 기대를 걸고 올라왔지만 본 것이 몇 안 된다.


건천은 건천답게, 이날 내린 비가 33mm 가량이나 되는데도 비가 그치지 마자 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건천 주위에 널린 화성암, 퇴적암 등에는 침식 등 기계적 풍화작용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하류 부근에서는 깎인 바위의 침적에 의해 얕은 물이 고인 물 웅덩이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공질의 화성암 사이로 스며든 그 방대한 양의 물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깊은 지하로 스며들어 해안가의 용천에서 솟아나온다? 그렇기도 하고, 수퍼에서 '제주 삼다수'로 잘 팔린다. 마시자, 제주 삼다수!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딱 6시간 걸려 등산을 마쳤다. 비가 안 오면 5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을 것 같다. 골반이 쑤셔서 관음사 휴게소로 어기적 어기적 기어 나왔다. 장소가 썰렁한 것이 버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관리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오른쪽으로 4km쯤 걸어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단다.

길가에 주저앉아 짐을 풀고 옷가지들을 말리며 담배 한 대 빨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옷가지는 금방 마를 것 같다. 젖은 옷가지를 배낭에 매달았다. 그리고 슬슬 걸었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녔더니 녹초가 되었다. 걸어가려니 힘들다. 앞은 목장인지 말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뜯어 먹었는지 신록의 계절인데도 땅바닥에 녹색이 안 보인다. 그 뒤로 초속 12m/sec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먹구름'떼'.

히치가 된다. 사람 태우면 해꼬지 한다고 히치하이킹을 안 해주는 각박한 인심이 없는 곳이 강원도와 제주도다. 처음 제주도 여행 할 때 절반을 히치로 다녔다. 역시 좋은 곳이야.

아줌마는 주말이면 관음사 코스로 한라산을 자주 오르는데 오늘은 비바람이 심해서 중간에 포기했단다. 오늘, 내일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분단다. 공교롭게도 내심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것, 관광객들이 아이들 데리고 한라산 오르는 것을 성토한다. 아줌마 말에 따르면 성판악-정상-관음사 코스가 보통 10시간 걸리는데 애들을 그런데 데리고 다니면 제주도에 무슨 좋은 인상이며 추억이 남겠냐는 것이다. 그러더니 버스 정류장에 안 세워주고(그곳은 버스가 자주 없다면서) 목석원 앞에 세워 주면서 이왕 제주도에 왔으니 다만 목석원이라도 구경하고 가라신다. 아, 정말 고마워요.


목석원. '갑돌이의 인생'이 있다.



기괴한 형상의 말라 비틀어진 나무와 바위를 전시하는 곳.


아이를 안은 천사같은 엄마


목석원의 여러 전시물에 제목을 단 사람은 SF적인 센스는 전혀 없었다. 한눈에 봐도 전시물 대개가 SF&F로 완벽하게 번역되는데.


이 바위는 일러스트로 본 적이 있는 형상이다. 용암이 식으면서 겉 표면과 속의 식는 속도가 달라 밀도차가 생겨 연필심 모양으로 속이 빈 바위가 화산지대에 생긴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목석원 구경을 끝내고(입장료 2000원) 길가에 앉아 옷을 말리다가 시내 버스가 와서 탔다. 자리에 앉아 pda를 꺼내 주린 배를 채울만한 곳을 찾았다. 일단 그 유명한 도라지 식당에 가보기로 하고 시청 앞에서 내렸다.

시청 앞 작은 광장에서 관중이 모여 노래를 듣고 있다. 잠깐 벤치에 앉아 보다가 식당을 찾아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헤메다가 찾아가니 오늘은 영업을 안한다. 온몸이 삐꺽인다. 17시. 해는 세 시간 후에 지니까 식사를 마치고 해변가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숙소를 찾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몸이 노곤하니 만사가 귀찮다. 택시를 타고 신제주 시가지로 향했다(3700원). 두번째 후보로 삼았던 '용꿈돼지꿈' 식당은 엄청 푸짐하다는 한정식 집이다. 혼자라서 곤란하다기에 몹시 안타까웠지만 지친 다리를 끌고 인근의 '청해원'으로 걸어갔다.


지친다...

자리물회를 시킬까 하다가 술안주로는 안 어울려 보여 한치물회를 시켰다. 밑반찬이 나오는데 생선젓도 맛있고 수북히 담아오는 간장게장을 안주삼아 반 병을 비웠다. 게장이 좀 달긴 하지만 이건 거의 한끼 먹을 분량을 주니 허겁지겁 먹을 밖에. 한치물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해물 뚝배기를 달라니까 종업원이 눈이 동그래서 쳐다본다. 아침부터 굶었어요. 말투가 조선족 아줌마 같다. 종업원이 조선족 아줌마나 아가씨면 왠지 기분이 좋다. 조개와 오분자기, 성게, 게 따위가 수북하게 들은 해물 뚝배기를 다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한치물회 6000원, 해물뚝배기 8000원, 소주 한 병 3000원. 혼자온 탓에 옥돔, 고등어, 갈치 따위를 못 먹는 것이 좀 아쉽긴 하다.

느적느적 걸으며 숙소로 찍은 밸리스 불가마로 향했다. 도착하니 8시, 7000원 짜리 표를 끊고 사우나에 푹 잠겨 딱딱해진 근육을 물렁하게 풀었다. 냉탕에 머리를 박았다. 지나치게 근육을 풀어 온 몸이 흐늘흐늘해졌다. 빈둥거리며 pda에 담아온 시리즈물 비디오를 보다가 미역국 한 그릇 먹고 아이스크림 따위를 사 먹고 두 시까지 pda 비디오를 보다가 땅굴에 기어 들어가 잠들었다.

밸리즈 불가마가 한국에서 1등 먹은 곳이라는데 시설이 과연 훌륭하다. 놀이방, 아이스방, 헬스 시설, 노래방 등등, 특히 벽면을 보면 엄청난 돈을 들인 것 같다. 그렇지만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사우나만 놓고 보자면 살고 있는 동네의 수양탕 만한 곳은 찾기 힘들었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tv를 보거나 폭포수에 편안히 몸을 식히는 것이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이벤트 탕' 따위 여러 개 두는 것보다는 다 년간 사용자의 편의를 도모한 UI면에서 실용적이고 충실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수양탕의 TV는 몇몇 사우나에서 드물게 본 적이 있지만 수양탕의 폭포수 냉탕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 있다.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사타구니 사이로 강력하게 뿜어 올라오는 두 개의 냉류, 회음부를 그 냉류에 맡기고 허벅지 사이를 부르르 떨다보면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 그것이야말로 장기간 목욕탕을 경영하여 소비자의 니즈를 철저히 분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인 것이다.

8시 기상. 자던 땅굴에서 어기적 어기적 기어나왔다. 온 몸이 뻐근하다. 사우나 몇 번 들락거리며 땀을 뺐다. 어제, 오늘 합쳐 600g 감량. 내 몸은 제주도의 건천처럼 금새 말라버려, 어제 그처럼 배불리 먹었건만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인근의, 유명하다는 유리네 식당을 찾아갔다. 성게 미역국을 시켜 먹었다. 명성에 비해서 맛은 별로 였다. 벽면에는 온갖 유명한 사람들의 사인이 붙어 있다. 어젯밤에도 그랬지만 제주에서 미역국 먹는 것은 바보짓인 것 같다. 그냥 갈치국이나 시켜먹을껄 -_- 밑반찬은 훌륭했지만 아무리 성게가 들어갔다고 해도 미역국이 8000원이나 하는 것은 좀 그랬다.

엇. 밥 먹다가 생각났다. 불가마에서 나눠준 옷에서 어젯밤 이것 저것 사먹고 남은 돈 4000원을 빼놓지 않았다. 자신의 실책을 갈구고 채찍질한다는 의미에서, 택시비를 날렸으니 공항까지 걸어가자. 일단 온 몸이 뻑적지근하고 심난하니 담배 한 대 빨고.

담배 사러 수퍼 들어갔더니 아줌마가 날더러 대학생...이죠? 라고 묻는다. 울컥 하고 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민증 보여드려요? 서른을 넘긴 지가 몇 년 전인데, 아무리 간만에 사우나에서 때 빼고 광을 냈지만 그건 좀 심한거다. 그런데 두 번째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를 내주면서, 담배값이 얼마지 학생? 하고 묻는다. 내가 고삐리처럼 보일 수도 있단 말인가... -_-

제주 시내에는 가히 돌풍이 몰아쳤지만, 목덜미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푄 현상인 것 같다. 이런 바람이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어 가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변변한 게스트하우스가 드믄 실정에서 7~8달러의 저렴한 가격에 각종 레저,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불가마가 있기에 비로서 한국에서 배낭여행이 할만한 것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달리 말해 한국에서 게스트 하우스는 불가마라는 강력한 라이벌을 만난 것이다. 외국인들이 이 중요한 사실을 알기나 할까? 한국에는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럭셔리한 도미토리에서 7~8달라에 묵을 수 있다는 것을.


제주공항에 거의 도착. 언제 그렇게 비바람이 몰아쳤나 싶다.


땅에 떨어진 이게 뭘까. 설마, 감귤?

저기압 탓인지 엄청난 측풍 때문인지 롤러 코스트처럼 덜컹대는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 비행기 타면서 추락을 걱정해 본 것은 참 오랫만이다. 비행기를 타면 언제나 보게 되는 도우미의 착륙시 비상 행동 요령 율동이나 안내 책자는 감성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2만 피트 상공에서 비행기가 지상에 추락하면 뼈도 못 추리는 것이야 당연하고, 마치 바다에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명의 착용 요령을 가르쳐 주는데, 시속 500 마일로 날아가는 수백톤 짜리 비행체가 2만피트 상공에서 바다로 추락하면 지상에서와 동일한 효과가 난다. 비행기에서 엔진 2기가 모두 꺼지면 그냥 무거운 쇳덩이가 되는 것이다. 2층 창문에서 떨어진 화분처럼 와장창. 살기를 바라는 것이 럭셔리한 착각이지.

서울에 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쩔은 옷들은 벗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한라산의 간략한 정보 정리

여행 일정: 1박 2일
경비 내역: 총 56200원 (하루 평균 28100원)

* 항공권 - 마일리지로.
* 숙박 - 불가마 7000
* 식비 - 3끼(한치물회 6000, 해물뚝배기 8000, 소주 3000, 미역국 4000, 성게미역국 8000) = 29000
* 간식 - 컵라면 1600, 아이스크림x2 2000, 쵸코바x3 1500, 샌드위치 1400 = 6500
* 교통비 - 시내버스x2 1700, 시외버스 1700, 택시 3700 = 7100
* 기타 - 우의 3000, 한라산 입장료 1600, 목석원 입장료 2000
,

firefly

잡기 2005. 6. 25. 03:11
한 달 전 쯤에 스팀보이를 봤던가? 말하기가 꺼려지는 '작품'이었다. 앞으로 주욱 생각 안 났으면 좋겠다.

하루 일이 끝나면 firefly를 봤다. 간만에 멀티미디어 수렁에서 건진 물건이다. 스토리, 스페셜 이펙트, 엑션, 캐릭터, 사운드, 연출, 그 어느 것도 딱히 흠 잡을 것 없이 무난하다 -- 거지같은 영상물을 대충 참아가며 봐주는 최근 수 년 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칭찬이 맞다 -- 니힐 동산의 왕따 텔레토비처럼 말해버렸군. -_-;

연출, 사운드, 캐릭터에 점수를 주겠다. 스토리는 그저 그렇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상물이 그 동안 많지 않았다. 딱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제인을 꼽겠다. 이런 시리즈가 1기로 쫑이 나서 아쉽다. 폭스 네트웍은 나같은 마이너, 아싸, 니힐, 텔레토비 따위나 좋아하는 이 드라마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시원찮아 중단해 버렸단다. 캠 들고 CG 찍는 괴이한 연출이나 멜랑콜리한 잡탕 사운드 트랙, 이야기 구조에 철철 넘치는 독기어린 위트와 페이소스 만으로도 충분히 점수를 받을만하지 않나 싶은데... 게다가 기본적으로 마초물이니까. (이문열도 좋아하지 않을까?) 최소한 카우보이 비밥 즐기던 이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파이어플라이의 배경은 나름대로 처절했다. 지구의 자원이 똑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지구 바깥으로 쫓겨난 지구인들이 여기 저기 행성 사이를 표류하게 된다. 테라포밍 덕택에 살만한 환경은 갖춰졌지만 그 테라포밍 때문에 나노봇과 유해 바이러스들로 가득찬 행성에서 어떤 작자들은 운좋게 살아남고 어떤 작자들은 운이 없었다. 그 와중에 초강대국이 된 중국과 미국이 유니피케이션 전쟁을 벌이고(이건 정확하지 않다) 두 패로 갈려 박터지게 싸우다가 얼라이언스의 승리로 전쟁은 진정된다. 레이놀즈는 그 전쟁에서 지는 편에 운 없이 끼어 있었고 지금은 전쟁 후 대세가 된 얼라이언스의 눈을 피해 해적질, 이를테면 열차강도질을 하고 파괴된 우주선을 도둑질 하고 병원을 털고 갱단과 손을 잡는 등 생계 유지에 힘쓰고 있다. 생업이 바쁜 관계로 우주를 구한다거나... 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쯤에서 시리즈가 끝난 것이다.

조디악에 어떤 이름을 붙여줄까 골몰하다가 머리가 아파서 관뒀는데, 적당한 이름이 생겼다. 파이어플라이에 등장하는 전직 병사인 흑인 여자 Zoe가 조디악의 이미지와 잘 맞았다.

반딧불이급 운송선(해적선) 세레니티의 '가족': 가운데가 선장 레이놀즈, 오른쪽 부터 컴배탄트 조이, 하이어드 제인, 쉐퍼드(프리스트), 엔지니어, 닥터, 파일럿, 싸이킥(미친년), whore는 사진에서 짤려 손만 살짝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디악 사길 잘 했다. 아니, 다들 왜 그 값싼 조디악을 안 사는지 궁금하다. 동영상 때문에 SD는 항상 꽉 차 있는 관계로, 내장 메모리 128MB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소설, 다큐먼트, 매뉴얼 따위 682개와 전자 사전 8개를 설치했다. 그 중 하나는 온라인 사전을 캡쳐한 47MB짜리였다. 깔았다가 10MB 짜리 영한사전만 하나만 남기고 모두 지웠다. 좀 더 많은 게임을 깔아야지, 사전 따위로 메모리를 낭비할 수는 없지.

Firefly title song: Balad for Serenity (0:52)

Take my love, take my land
Take me where I cannot stand
I don't care, I'm still free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Take me out to the black
Tell them I ain't comin' back
Burn the land and boil the sea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There's no place I can be
Since I found Serenity
But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you can't take the sky from me...
,

최근 보는 SF 시리즈

잡기 2005. 6. 21. 23:49
병신같은 해커, 자신의 컴퓨터를 해킹하다 -- 생쑈를 하는구나...



Dr. Who episode 2였던 것으로 짐작. 태양의 폭발로 지구는 열지옥으로 변한다. -- 지구는 적색거성이 된 태양에 삼켜진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한가하게 구경하는 두 주인공. 매우 재수없게 생긴 아가씨와 9대인지 8대인지 하는 닥터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불철주야 날뛰는 시리즈. 한국에서도 최근 어느 방송에서인가 연재중. 재밌다.



Dr. Who 1기 마지막 에피소드 까지 다 보고 더 볼 것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안드로메다 시리즈를 다운받아 보기 시작. A hero from another time, faced with the universe and chaos. Dylan Hunt recrutes an unlikely crew, and sets out to re-unite the galaxies. On the starship Andromeda, hope lives again! ... 이란, 몹시 짜증나는 인트로가 매 회 마다 반복된다. 기본적으로 이 시리즈는 다른 많은 SF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SF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판타지다. 화면은 세이무스 하퍼라는 몹시 말이 많은 해커, 이 녀석만 나오면 도저히 히어링이 안된다 -_-



시리즈물이란 무협지와 같아서 한번 손대기 시작하면 아무리 허접해도 끝을 봐야 한다. 그래서 zodiac에 넣어가지고 보고 다니기 시작. 위엣 화면과 같은 장면을 캡쳐한 것인데 바닥으로 인코딩한 품질이 오리지널보다 좀 더 낫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pda의 아무래도 데스크탑보다 떨어지는 후진 액정 화면으로 보려면 필터를 써서 화질을 강화하는 수 밖에 없다. 브라이트와 감마를 약간 조절하고 샤프닝을 먹인 것이다. 변환한 파일을 pda로 보여주면 그래서 '쓸만하다'란 소리를 꼭 듣고 말았다. -_-





이제야 필터를 먹여 색이 깨지는 것이 보이는군.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맨 시꺼먼 우주 밖에 안 나오는 화면을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야 pda에서 볼 수 있으니까. 원래 해상도는 640x352, 변환된 해상도는 480x320. 필터를 두세가지 썼고 전송률은 250kb, 프레임 레이트는 29.54(던가?), 파일 크기는 43분에 103MB. xvid 2pass encoding. 1pass에 비해 모션 에스티메이션이 확실해 썩 괜찮은 화질 향상이 이루어지지만 시간은 거의 2배 이상 걸린다. divx는 화질이 워낙 구려서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급한 경우: 10분 안에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pda에 볼만한 동영상이 없을 때 급히 엔코딩해야 하는 상황) 종횡비가 틀린 관계로 화면의 좌우가 압축되지만 그럭저럭 볼만. 바닥(정확히 말해 mencoder)의 인코딩 옵션을 정리해 놓아야 할텐데 귀찮다.



어찌보면 안드로메다의 진정한 주연이랄 수 있는 안드로메다, 그녀는 전투우주선의 AI다. AI=Artificial Insanity. 1,2화에서 안드로메다의 전투씬은 홈월드의 우주전 씬을 방불케 했다. 솔직히 말해 그 장면을 보고 상당히 기대에 부풀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쓸만하다. 과거 커먼웰쓰 시절의 우주평화유지군 같은 존재였던 하이가드 출신의 선장이 수백년 동안 동면 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서 우주 최고(?)의 해커와 상황으로부터 사건의 확률을 순식간에 알 수 있는 신비스러운 소녀, 해적 여선장, 니첸이라 불리는 툭하면 게임의 룰(마치 게임이론의 장난감 같은 라이스나 부시처럼)과 손자를 나불거리는 포스트휴먼(인간병기)이 우주를 구하기 위해 날뛰니까. 그런데 갈수록 영... 아니다. 스토리야 언제나 그렇듯이 담담하게 넘어간다 치고, 액션과 전투씬의 한심함 때문에 괴로워 죽겠다. 거의 스타트렉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액션이 무슨 쭈꾸미들이 낙지들과 댄스하는 것 같달까.

안드로메다 1기를 힘겹게 끝냈다. 더 봐야할 지... 이것저것 다운 받아 검토해 봤다.

Earth, Final Conflict 1화를 다운받았다. 주인공이 멍해 보여서 볼까 망설이게 되는 SF 시리즈다. 안드로메다와 마찬가지로 진 로덴버리가 제작했다. 로덴버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SF 시리즈를 말아먹을 작정인지...


 Firefly, '진정한' 우주활극물인 듯. 인류가 전 우주로 뻗어나가 식민지를 건설해 나가는데 분위기는 완전 서부시대다. 등장인물의 복식, 분위기, 하는 짓거리들이 그랬다. 외계인은 한 마리도 안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실망스러운데?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역시 SF다 보니, 초전도레일 위를 달리는 자기 부상 열차를 우주선 타고 턴다는 정도? 1화를 거의 다 보면서 별다른 매력을 못 느꼈다. 착한 열차강도한테 흥미 없으니까.


 그러다가 이 장면을 봤다. 대사가 이랬다; (돈을 흔들며) We're not thieves. But we are thieves. Point is, we're not taking what's his. We'll stay out of his way as best we can from here on in. You explain that's best for everyone. Okay? 강도 대장(주인공)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일을 사주한 놈의 똘만이가; Keep the money. Use it to buy a funeral. It doesn't matter where you go or how far you fly. I will hunt you down, and the last thing you see will be my blade. 라고 대꾸한다. 대장은 즉시 그의 가슴을 뻥 차 화면에 보이는 터보 프롭(?) 엔진 속에 쳐놓고 갈은 고기로 만들었다. 괜찮군.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현재 나와 있는 1기를 몽땅 다운받았다.

내가 좀 감상적인 편이긴 하지.
,

원근상실

잡기 2005. 6. 19. 15:14
'봄이니까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나니 비로소 봄이라네.' -- 과학적 사고 훈련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법정이 한 말이다. 법정이 했기 망정이지, 내가 그렇게 말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알맞다. 그래서 저런 류의 실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말귀를 잘못 알아듣는 것에 관해 좀 더;

from a distance, we all have enough and no one is in need. there are no guns, no bombs, and no disease, no hungry mouths to feed. from a distance, you look like my friend even though we are at war.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Batte Midler가 보드라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From A Distance (4:16)는 내 귀에 워낙 시니컬하게 들렸다. 마지막 코러스에서 god is watching us, god is watching us from a distance 할 때는 감칠맛 마저 느껴진다. 냉소적인 성격은 7살 무렵에 형성된다는 과학자들의 견해가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냉소적 성향이라는 것이 믿음이 부족하고 사실을 실물 그대 바라보지 않고 비딱하게 해석하는 것 쯤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사실을 워낙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일말의 잡스러운 낭만주의를 곁들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겠나.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사실'은 별 차이가 없는, 없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훈련해 왔고 최근 몇 년 동안은 누가 농담을 해도 그것을 그가 말하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마치 머저리 같이). 굶어 뒈지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지 싶다. 내가 보는 세상은 봄이니까 꽃이 피는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라거나, 멀리서 보면 우리 모두가 평화로워 보인다며, 적당히 말장난하기는 버거운 곳이다. 상황은 매우 거북스럽지만 노래는 노래고 중대가리의 헛소리는 헛소리로 알아 먹었다. -- 게다가 너저분한 속물을 꽤나 많이 보아왔고 내가 그런 속물이 되어 간다는 사실에 그다지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어젯밤에 김씨 아저씨는 날더러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치'라고 말했다. 말하면서 속으로 캥겼다. 정치도 물론 잘 하지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면서 실없이 사람을 놀리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다지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저주받은 재능이 있긴 했다. 김씨 아저씨한테는, 인도는 특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말하자면, 병신들이 주로 많이 찾아가는 곳이라고 위로해 줬다. 인도에 가면 누군가가 병신이라는 것이 티가 나지 않을 뿐더러 딱히 결함도 아니다. 좋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는 정신질환자-병신, 쪼다, 찌질이란 것들은 제 팔 닿을 거리에 놓인 사탕을 못찾아 울고 불고 생쑈를 거침없이 해내는 족속이다.

The Political Compass
Economic Left/Right: -3.50
Social Libertarian/Authoritarian: -4.46

테스트 결과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망할 자유주의자에 심지어 비뚤어진 좌파적 경향도 있다고? 이런 질문에 답변이 이런 사람이?

The freer the market, the freer the people. -- strongly disagree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 strongly agree
All people have their rights, but it is better for all of us that different sorts of people should keep to their own kind. -- agree
Those who are able to work, and refuse the opportunity, should not expect society's support. -- strongly agree

재밌어.
,
Cockroach-Controlled Robot -- 내가 좋아하는 뉴스 소스. Slashdot. The Nuts and Volts of News for Nerds. 여러 화성인들과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음.

레드 드워프 보다가 졸립고 지겨워서 관뒀다. 닥터 후로 갈아타기로.
뉴로맨서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나 보다. 도서관에 신청해 놔야지.



Abstract Spoon의 todo 프로그램. xml로 자료가 저장되므로 사용 편리. 관련 항목별로 어플리케이션 런치 가능. 요즘은 메모, 위키 다 때려치우고 이거 씀. 위키에는 매뉴얼만. pda와 싱크되면 참 좋겠구먼. listpro같은 프로그램과... 저기, 내가 하는 일이 몇 가지나 되는지 보여? 졸라 많지?



Windows PowerToy중 TweakUI를 사용해서 Documents and Settings의 Desktop, Favorites, My Documents등을 다른 디렉토리로 지정할 수 있음. Documents and Settings 디렉토리는 원래 윈도우즈가 설치된 디렉토리로 지정되나 윈도우즈 OS 파티션을 날려야 할 경우 일일이 여러 세팅이 담긴 파일들을 백업해줘야 하는데, 귀찮게 그러지 않아도 됨.



이렇게 만들 수가 있는 거지. My Document 디렉토리를 d:\luke로 바꾸고 그 안에 Favorites와 Desktop 따위를 넣은 것. 이렇게 하면 백업이 쉬워짐.



UltraEdit v11.00a+, 설치 후 디렉토리의 wordfile.txt를 적당히(말 그대로 적당히) 바꿔주면 커스텀 컴파일러의 syntax highlight을 쉽게 할 수 있음. ctags를 설치하고 Advanced 메뉴의 Tool Configuration을 적당히 해두면 에디터 내에서 컴파일, error line follow up 등등 IDE처럼 쓸 수 있음. configuration을 어떻게 하냐고 묻는 건 좀 치사한 질문 아닐까.

귀찮게 이런 것 묻지 말고 알아서 하는 센스를 갖추자. 화창한 일요일인데 일이나 하지.
,
예전에 PC USB 전원을 조디악의 싱크 케이블의 배터리 충전 단자에 직결(직접 연결)하는 방법을 적은 적이 있었다. 좀 문제가 있는 방식이다. 어댑터와 PC USB 전원을 직결하면 전압차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만일 어댑터 전원이 PC USB 전원보다 전압이 높으면 어댑터->PC로 전류가 흐르고(두 전원 사이에!) 반대로 PC 전압이 높으면 PC->어댑터로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기에 파괴적인 영향(재수없으면)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양단을 직결하는 것은 그다지 추천할만한 방법이 아니다.

대안은; 직결하지 말고 스위칭 다이오드나 정류 다이오드 대신 전압 강하가 작은 쇼트키 다이오드(Schottky Diode)를 사용하여 양단을 연결하는 것이다.

부품은 이렇게 생겼다. 용산에 들렀다가 생각난 김에 사왔다.



부품명은 1N5819(5817, 5818, 5819 아무거나 사용하면 된다). 하나에 20원 짜리, 하나 사기 뭣해서 10개 구매 200원. 내가 부품을 구한 곳은 용산전자상가 지하 B18, 동신전자, 02-719-0466. 안에 들어가서 그냥 쇼핑하면 된다.



이 사진은 에전에 개조한 것. 직결. 그런데 사진 날짜가 왜 6/10로 나오지? 묘하군.



1N5819를 연결하고, 1N5819가 부피가 조금 나가는 관계로 조립할 때 뚜껑이 닫히지 않으므로 걸치는 부분의 고무 패드를 니퍼로 깎았다.

쇼트키 다이오드는 양단에서 대략 0.2v 정도의 전압 강하가 발생한다. 입력측에서 5V가 주어질 때 다이오드의 다른 쪽에는 4.8V가 나온다는 뜻이다. 정식으로 하려면 여러 개의 전원 소스를 가지고 하나의 출력 전원을 구성할 때 사용하는 diode or-ing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외, 요즘은 2종 이상의 전원을 손실없이 (전압 강하가 200mv 이하) 배터리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칩들이 많이 있지만 장점이 많은 만큼 칩을 사용하게 되어 만들기 번거롭고, 값이 비싸다.



재개조 후 충전 중. 커넥터 하우징을 뜯었다가 접착제로 붙였다가 세 번을 반복하니 걸레가 다 되었다. 충전, 싱크, 어댑터 연결 모두 확인. 아무튼 이제 좀 제대로 된 것 같다.


mypalm.co.kr에서 26000원에 공구한 가죽 케이스.



케이스에는 SD 카드 2장 수납칸이 있고 카드 두어장 들어간다. 케이싱을 하면 조디악 두께가 1.7배 가량 늘어난다. 스타일러스 빼내기가 좀 귀찮다.


뚜껑을 닫으면 싱크 커넥터를 살짝 가려준다.


손에 쥐어본 크기. 파우치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가죽 케이스 때문에 전원 스위치가 잘 안눌려서 좋다. 오른쪽 스피커에 구멍을 내 놓았고 상판이 두꺼워서 액정을 잘 보호해 준다. 여러모로 케이스 품질이 만족스럽다.
,

마사지

잡기 2005. 6. 8. 02:06
한밤중에 동네에서 꽥!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한골 넣었군 하고 생각했다. 그날밤 한국-우즈벡 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몰랐고, 관심 없었다. 며칠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포함한 웹 미디어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도 일주일에 한두 번 쳐다보고 산들바람에 버드나무 잎사귀 흔들리듯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시들해져서 물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꼴이랄까. 뭐 재밌는 블로그 없을까.

걸어다니면서 책을 보던 시절이 있듯이, 걸어다니면서 게임을 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있는 것이다. 조디악 사길 잘 했다.

아내는 9일만에 돌아왔다. 앙코르 만세 게스트하우스(long live)에 갈꺼지? 어? 어떻게 알았어? 라는 대사를 가기 전에 주고 받았다. 아내는 앙코르와트만 세번째다. 인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유리시아 대륙 횡단을 두 번 했고 인도를 여러 번 다녀왔다. 수 년전 시엠립에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적지를 돌아다니고 시장통에서 허기를 때우고 밤이면 술을 마신 기억 뿐이다. 어쨌건 마시고 뻗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다. 아내 더러 돌아올 때 방콕의 시얌 근처 디스크버리 센터 안에 있는 아시아 북에서 그림이 가장 많고 쉬워 보이는 태국 맛사지 책을 사오라고 주문했다. 갈 때마다 잊어먹었다. 사왔다. 어젯 밤에는 책에 나온 대로 교대로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추측이 대충 맞았다. 태국 맛사지는 시술하는 자가 비교적 적은 노력을 들여 효과적으로 상대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배워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내가 열심히 배우길 기대해 본다.


맛사지의 타깃은 근육. 그런데 가슴은 어디있는 거야?




쉽다는 책이 앞장 이론 학습에서는 거의 의학서적같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


그래서 앞장은 건너뛰고 바로...
,
생각해보니 내 블로그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제목이 상당히 꿀꿀해 보이는데? finite state machanism이라... 꾸란 생각하면 그게 맞다. 꾸란은 데카당하고, 꾸란은 who are you? what do you want? where are you stand? 같은 의문에 무책임하다.

who are you는 종종 what are you? 라고도 말하는데, 동네깡패들이 골목에서 지나가는 애를 잡고 넌 뭐야? 라고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황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동네깡패가 말하는 것이나 교황이 묻는 것이나 매일반이라고 본다. 저 질문에는 상대방을 한코 죽이자는 뜻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머리속으로 이리저리 심중을 궁리하면서 아마도 정황에 걸맞는 대꾸를 하거나, 이름을 대거나, 누구누구의 자식이라거나, 아니면 자신의 지위와 신분, 또는 권위 등 자신의 힘으로 얻었거나 천성적으로 가진 어떤 것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대답들은 삥 뜯을려고 마음먹은 동네깡패(내지는 교황, 기타등등)를 만족시키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그들에게 바보 소리를 듣거나 화를 돋구게 마련이다. 너는 누구인가? 나? 대답 못해서 어린 시절에 오다가다 죽도록 맞았다. 더 안 맞기 위해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어느날 질문의 근원을 폭력적으로 처리하고 그 후로 다시 그 질문을 듣지 않게 되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누가 누구더러 너는 누구냐? 라고 물을 때 쓸만한 대답이 없으면 일단 때려 눕혀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넌 뭐냐?" <-- 상황에 따라 자격과 권위를 요구하는 질문같아 보이겠지?
대꾸, "그러는 넌 뭔데?" <-- 시간낭비의 대표적인 사례.

바빌론5 시리즈 시즌1부터 시즌5까지 끝냈다. 그 다음에 크루세이드가 있고 중간에 메이킹 오브 바빌론5가 있지만 화면으로 충분히(아니 질리게) 본 이상 관심 밖이다.

극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인물은 마르코스다. 그를 죽인 시나리오 작가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은 이바노바다. 선장 쉐리단은 죽었다 살아난 탓인지 별다른 바이탈 사인을 보여주지 못하고 시즌4,5에서 줄곳 골빈 좀비처럼 지냈다. 어쩌면 딜란과 결혼한 다음에 가족과 사랑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는 등, 안된 말이지만, 맛이 간 것일께다. 물론, 유부남-좀비-쉐리단이라는 도식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잭에게 정들 뻔 했다 -- 타이틀 하나 단 다음부터는 그 바보 같은 웃음끼가 사라졌고 그래서 아쉽다. 지카르의 현란하게 활자화된 고통과 론도의 아이러니와 데까당이 시즌4부터는 갑자기 사라지면서 (미국식으로) 진지해졌다. 막판에 신파가 되는 한국 드라마처럼 미국 드라마들은 애국과 정의, 의무와 책임에 관한 설교 어쩌고로 실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있는데 워낙 나라가 누더기 기워놓은 모양이다 보니 페트리봇을 생산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인 듯. 다 자란 애들이 원하는 것은 마초스러움, 신나는 우주 전쟁과 상명하복, 모두를 엿먹이는 절묘한 사기극과 함께 easy come easy go하는 패턴이 아닐까. 미래에 대한 되도않는 희망을 품거나, 인생이란 그렇게도 가는 것이지 류가 아니라.

시즌4부터 바빌론5는 엡실론 에리다니 어디 비루한 행성계에 궁상스럽게 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슬프게도, 맛 간 것이다. 바빌론5는 '로봇'에 관해서는 침묵했다. 100여편의 에피소드 중에서 단 한 번,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단 몇 초간 언급되었을 따름이다. 전반적으로 초반에 너무 막 나갔다. 우주를 구하고, 지구를 구하고, 튄다니, 무법자가 개과천선해서 지구를 구하고 우주를 구하는 것보다 티피컬하고 어글리한, 말하자면 험상궂은 설정 아닌가?

바빌론5는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거의 2000년 역사중 극히 짧은 6년을 다루고 있다. 시즌4,5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 적당했다. 텔레파시 전쟁은 재미가 없거나 속편 기획에 지쳐서 다들 쓰러진 탓인지 뉘앙스만 풍기고(이런 거 정말 싫다) 전개가 흐지부지하다. 제대로 했어야 했다. 센타우리(아마 알파 센타우리겠지? 그런데 본인들이 센타우리 인이라고 하면 자존심도 없어 보이잖아)와 나른의 흥망성쇠가 좀 더 치열하고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론도 말대로 우주는 자기를 싫어하고, 개나 소나 다들 알다시피, 우주는 imperfect하니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메들리란...

초능력 중에 가장 쓸만해 보이는 것이 tele kinesis다. 물리적 실재에 영향을 끼치니까. 그런데 그 반대로, 직업이 시원찮다 보니 tele kinesis와 '거의 비슷한' tele kinetics나 tele metrics 따위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빌론5에서 갖은 궁상을 다 떠는 텔레파시들(자기 몸을 팔아서 텔레파시들만의 homeworld를 만들려고 애쓰는 처녀도 있다)에게 공감이 간다.

천부적인 재능이 하도 끝내줘서 정치가, 기업가, 연구가, 예술가는 될 수 있다고 어린 시절 굳게 믿었지만 기술자만큼은 정말 만만치않게, 어렵게 느꼈다. 기술자 노릇 뿐만 아니라 언급한 나머지 네 가지 역할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재밌는 것은 나머지 네 가지 부류 떨거지들에게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요구받거나, 기대되거나, 기술자에게 필요한 것은, 또는 기술자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로는, discipline, knowledge, love, insight, faith, inspiration, focus, loyalty, courage, compassion, dignity, charity, professionalism, fidelity, enlightment가 있고, 개중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income이다.

왜 tapwave에서 조디악(황도대)이란 생뚱맞는 모델명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대충 알겠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보니까 내 조디악2가 그제서야 조디악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색깔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정말 딱 조디악이다. 디자인 컨셉이 조디악이었거나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고 보니 다들 조디악처럼 보여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일께다. 마치 바빌론5에서 레인저들이 몰고 다니는 몸매 잘 빠지고 쌔근하게 생긴 화이트 스타라는 우주선이 약간... 마이너한 관점에서는... 날아다니는 통닭처럼 보이는 것처럼. 우주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활약하고 있는데 통닭이라고 말하면 미안하지 않겠나. 조디악이 조디악처럼 생겼다고 말하는게 더 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스타워즈 보기; 바빌론5 보느라(45분짜리 에피소드가 무려 110편이다!) 기력을 다 소진해 어디 돌아다니며 영화볼 시간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누워서 노트북으로 봤다. 작업용 필름이 누출된 것인가? 초반의 신나는 액션씬을 제외하면 스토리라인에 뭐 신선한 것 없이, 죽은 시체 불알 만지듯 플랫라인을 그렸고 시종일관 구질구질했다. 대사만 나오면 졸았다. 그러다가 정말 잠 들었고(그 동안 100여개의 바빌론5 에피소드를 보느라 피곤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두 번째 divx를 마저 봤다. 대단한 제다이 유전자를 지닌 스카이워커 집안이 대대로 돌대가리라는 점은 이것으로 의심의 여지 없이 명확해진 것 같다. 어쩌면 바빌론5의 피튀기는 외교전을 보다가 스타워즈의 숙명 어쩌구 하는 허튼 소리를 들으니 더더욱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조디악2를 사고 나서 생활패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책보다 동영상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예전에 시간이 없어 중단했던 바빌론 5 시리즈를 다시 시작했고(그런데 이거 할란 엘리슨이 자문역이었잖아? -_-) 수 개월 전 내셔널 지오그래피 백년을 다운받아 보관하기 위해(고작 그 이유로) 하드를 구매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보기 시작했다. xVid로 파라메터를 살살 잘 조절하면 바닥으로 엔코딩할 때 50분에 100MB 정도가 나온다(bitrate 250Kbps, 480x320, 64kbps MP3 정도). 용산에서 1GB SD를 7만5천원에 샀는데, 1G에 대략 10편이 들어가니까 여덟 시간 정도는 볼 수 있다. 조디악의 배터리가 그럭저럭 쓸만해서 동영상 플레이만 2시간 하고도 58% 가량 남았다. 공장에 오고 갈 때 대략 5시간을 길에서 동영상만 봤다.

조디악의 사용자 그룹에서는 푼푼이 돈을 걷어 조디악을 사서 헝가리에 사는 TCPMP라는 동영상 플레이어의 개발자에게 전해줬다. 덕택에 팜 진영에서 폭발전인 인기를 몰고 온 그 무료 동영상 플레이어에 조디악 전용 패치가 들어갔고 동영상 재생 속도가 30% 가량 빨라졌다. 참, 정열적인 '사용자 그룹'이다.

조디악에서 작동 잘하는 에뮬 게임들도 꽤 재미있다. 에뮬로 슈퍼로봇대전이 그럭저럭 돌아가는 정도니 게임 때문에라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기계다. 게임을 안하는 내가 게임으로 하루에 3-40분을 보낸다는 사실이 생경하기까지 하다. 이래저래 이유로 조디악 산 후로는 책 보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다. 별 기대를 안하고 산 탓이겠지만 의외로 조디악으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PSP를 사느니 일정관리도 되고 WMA, OGG, MP3도 플레이되고 리모컨으로도 써먹을 수 있고 에뮬 게임도 돌릴 수 있는 조디악 사라고 권하고 싶어졌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런 말 안 나왔다. -_-

www.auction.co.kr에서 29500원 주고 bluetooth dongle을 샀다. 제품명: Mars II, 대만산 잡표. 매우 작다. 이틀 만에 도착. 일은 접어두고 당장 셋업 시작.



zodiac의 bluetooth 버튼을 누르면 주기적으로 파란 LED가 깜빡인다. 그 불빛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배터리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블루투스 동글은 USB에 꽂아 사용하는 것인데 안테나가 기판에 달려있다. 아무래도 PC에 바로 붙이면 PC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을 것 같아 보여, 연장 케이블을 구매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블루투스 디바이스 인식은 잘 된다. 워낙 블루투스 프로토콜이 지랄같아서(라고 생각하는데, 하여튼 블루투스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싼 맛에 '장난감' 하나 사서 굴려보는 거지) 이런 14MB짜리 어플리케이션을 상주 시켜 놓고 써야 한다.

조디악 자체가 별 feature를 가지지 않은 device이다 보니 인식되고 나서 나타나는 아이콘이라고는 object push(vcard 따위의... 일정,메모,주소록을 싱크시키기 위한 vCard와 file transfer에 사용되는 것) 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이왕이면 헤드셋 기능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랬다면 PC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조디악에 이어폰을 꽂은 채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예전에 블루투스 규격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시간 낭비였다.

Object push로 조디악<->PC 사이에서 파일 전송과 vCard 전송을 실험해 봤다. 잘 된다. 조디악의 주소록의 send 메뉴도 잘 작동한다. 전송 속도는 초당 40KBytes 정도로 매우 속도가 낮은 편. 통달 거리는 벽을 끼고 5m 가량? class 1 디바이스의 통달거리가 100m라는데 의외로 전파가 약한 편이다. 이래서야...



hotsync manager의 serial을 COM6로 잡아놓고 bluetooth serial로 hotsync를 시도해 봤다. zodiac의 connection 메뉴에서 bluenet이라고 하나 만들어 놓고 hotsync app를 띄워 무선으로 핫싱크가 되는 것을 확인. 속도는 역시 느리다.

자, 이제 웹 브라우징을 해 봐야지. tapwave.com에 들어가서 문서를 읽어보니 windows의 ICS(internet connection share)를 사용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리게 적혀 있다. 셋업 하다가 웹질로 시간낭비할 것 같아서 더 찾아보는 것을 관뒀다. NT 4.0 RAS server 이전의 MPR(multi protocol router) 때부터 갖은 고생을 다 해 본 셋업이 그것이다. RAS server가 ICS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거, 정말 안 좋아한다.

집안 사정(내 네트웍) 때문에 ICS를 써서는 안 될 것 같다. 공유기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니까... 시험삼아 ICS를 설치해봤는데 잘 깔다가 자기 멋대로 인터넷 방화벽을 설치한다고 하더니 설치 마지막 단계에서 '설치를 계속 진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나온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도 안 나온다. 역시 그 망할 놈에 RAS 서버는 이름이 바뀌어도 여전하구나. 때려치웠다.



preference->connection



connection->[Details...] click



preference->connection->[Device] click



preference->network



network->[Details...] click



preference->network->[Connect] click

조디악, 블루투스의 네트웍 메뉴에서 서비스를 하나 만들고 커넥션 타입을 아까 connection 메뉴에서 셋업해 놓은 bluenet으로 잡아 놓았다. 블루투스가 시리얼로 작동하는 관계로(예전에 공부한 기억이 난다)... 음... 메뉴를 살펴보니 PPP 셋업으로 하고, Idle Timeout=never, Query DNS에 체크 해두고 IP Address는 automatic으로 받게, script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았다.



PC를 셋업할 차례다. Bluetooth PAN network는 사용할 일이 아마 없을 것이다. 네트웍 연결 설정에서 들어오는 연결을 선택해



COM port로 잡힌 bluetooth LAP Modem을 체크 해두고,



사용자 설정에서 암호화와 사용자 authentication을 생략했다. 뭐 통달거리가 고작해야 20여미티 안짝인 장치에서 인증, 암호화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옆집 와이파이는 30m를, 벽 셋을 뚫고도 정정한 시그널을 자랑해서 가끔 무심히 사용해 주기도 한다.



그 다음에 네트워킹 탭으로 들어가서,



호출자가 내 네트웍에 엑세스하도록 하고, DHCP를 사용하지 않고 IP를 직접 지정했다. DHCP를 사용하도록 하거나, 호출하는 컴퓨터가 자신의 IP 주소를 지정하도록 허용하면 네트웍 접속 테스트에서 번번이 실패했다. 공유기가 이미 router 역할을 하고 있고 공유기가 배당한 c class network의 일부 IP를 사용해야지 routing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연결 시도. 조디악으로 접속한 다음에...



접속된 IP가 맞는지 확인해 보았다. 서버 IP 주소가 게이트웨이로 쓰이는 것이고, 클라이언트 IP가 조디악에 할당된 IP다.



network->menu->Options->View Log click



IP 확인.



커맨드 라인에서 인터페이스의 IP를 확인해 봤다.



라우팅 테이블도 확인해 봤다. metric 50짜리 192.168.1.40 네트웍이 있지만 43 클라이언트는 동일 클래스의 랜에 접속되어 있으므로 디폴트 게이트웨이(공유기)를 사용한다. 조디악의 네트웍에서 커넥트를 시도한 다음 로그 보기에서 어렵사리 ping 192.168.1.254를 타이핑하여(그래피티2가 이전 그래피티보다 불편해서) 핑 테스트를 해 봤다. 성공이다.



바로 옆의 PC에 동글을 달아놨는데도 신호 강도가 저 모양이고 속도가 저 모양이다. 저러니 블루투스가 망한거지!





이것저것 web browser를 테스트해 봤지만 조디악 처음 구입할 때 끼워준 CD에 있는 보너스 소프트웨어(이름이 그냥 Web Browser다 -_-)가 가장 속도가 빠르고 양호하게 작동한다. http:://www.rudals.net의 만화 서비스에 접속 테스트. 속도는 초당 15KBytes 가량. 이걸로 웹 브라우징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여러 사이트를 전전해 봤는데 화면이 많이 깨져서 보기 정말 힘들다. 하지만 팜 클리핑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 정도는 출력이 괜찮다. 누워서 노트북으로 서핑하기도 힘겨운데 간단한 뉴스 정도면 볼만하겠다.

와이브로가 드디어 임박했으니 세상이 한 번 뒤집히겠지.
,
조디악을 USB로 충전할 수 없다는 것은 좌절감을 맛보게 한다. 그렇다고 5V 1A 짜리, 커넥터가 이상하게 생긴 '전용' 어댑터를 만날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해서 웹 사이트를 뒤져봤다. 조디악의 커넥터 핀 배열을 알아보기 위해 웹 사이트를 전전하던 중, tabland.com에서 usb power로 검색하니 바로 http://www.ucpzone.com/zodiac/en 이 튀어 나왔다. 그럼 그렇지, 벌써 누군가가 시도한 것이다.

작업 시작이다.



일자 시계 드라이버로 강제로 뚜껑을 열었다.



내부 기판에 보이는 P13c3308L 칩은 인터넷을 뒤져봐도 데이터 시트가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 싱크 버튼이 달려 있고 3개의 SMD 트랜지스터와 몇개의 저항, 컨덴서 등등이 보인다. 테스터로 찍어보니 커넥터 왼쪽은 USB 케이블의 파워 커넥터와 연결되어 있고...



뒤집어서 기판면을 보니 왼쪽부터, GND, +5V, 그 다음은 USB의 GND, +5V, D+, D-, shiled ground가 차례대로 납땜되어 있다. 아까 검색한 웹 사이트에서는 다이오드를 달지 않아서 컴퓨터에 USB를 연결한 상태에서 어댑터 전원을 인가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당연하겠지.

그래서 집 구석에 굴더다니는 1N4148을 달기로 했다. 이걸 달아두면 역전위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어댑터 전원과 USB 전원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테스트해보니 충전(노란색)등이 들어온다. 재빨리 빼서 케이싱을 하려고 보니 다이오드의 폭이 두꺼워서 케이스를 덮을 수 없다. 아까 웹 사이트에서도 그런 얘기가 있었다.



다이오드의 위치를 바꿨다. 이렇게 하니까 케이스에 들어간다. 순간 접착제로 억지로 뜯은 케이스를 붙였다.

그런데 왠걸, 충전등이 처음에는 제대로 들어왔다가(노란색) 조금 지나자 녹색(충전완료등), 노란색, 그리고 불안스레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다. 노트북이라서 그런가? 데스크탑의 USB 포트에 연결해 봤다. 역시 마찬가지다.

에고야... 열심히 본드로 붙여놓은 커넥터를 다시 뜯었다. 다이오드를 떼 내고 전원 선의 +5V와 USB의 +5V 라인을 그냥 연결했다.

조디악과 노트북을 연결해서 충전 테스트를 해 봤다. 이제 정상적(?)으로 충전이 된다. 어댑터는 포기하자.



다시 아까 웹사이트에 들어가 선배 경험자들의 게시물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배터리가 텅 빈 상태에서 충전 전류가 950mA 가량이란다. USB 포트에서 줄 수 있는 전류가 500mA니까 1500mA를 USB 포트로 바닥 상태에서 완전 충전하려면 산술적으로 3+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나처럼 누군가 삽질할까봐 커멘트를 남겼다.

충전, 싱크는 잘 된다.
,

Zodiac 2

잡기 2005. 5. 20. 15:00
PDA에 비틀즈 음악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들은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새로 산 조디악에서 처음 들은 음악이 초콜렛처럼 달콤한 비틀즈다.

1999년 3월 Palm III (160x160, 1MB) 중고 30만원 -- 15만원에 판매.
2000년 9월 Visor Deluxe (160x160, 8MB+128MB) 새것 300$ -- 고장
2004년 5월 Clie SJ-33 (320x320, 16MB+128MB) 중고 20만원 -- 14만원에 판매.
2005년 5월 Zodiac 2 (480x320, 128MB) 새것 27만5천원

3년 8개월 동안 바이저를 사용했다. All My Loving (2:04) 매우 잘 만든 기계이고 활용도가 높았다. 전지 한 번 넣어 한달씩 사용하던 저 기계는 중미에서 고장난 후 줄곳 문제를 일으켰다. 128MB CF 메모리를 디지탈 카메라와 공유해서 사용했고 대단한 양의 텍스트를 가지고 다녔다. 몹시 터프하게 사용했지만 견뎌주셨다. 애착이 가는 기계다. 이제 고장이 나서 팔아먹지도 못하고 서랍에서 안면중이다. 버리지는 못하겠고. I Forgot to Remember to Forget (2:09)

클리에 SJ-33은 이상하게 정이 안 가는 기계였다. 허우대가 그럴 듯 해서 지하철에서 펼치고 ebook을 읽고 있으면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긴 하지만 작은 화면이 답답하고 일사광에서 액정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충격에 약해 거의 모시고 다니는 수준이었고 OS 버전이 낮아 많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었다. 바이저는 중고시장에서 일찌감치 똥값이 되었지만 이 기계는 어찌된 일인지(소니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중고시장에서 비싼 값에도 잘 팔린다. I Just Don't Understand (2:47)



미우나 고우나 그간 정이 들었기에 클리에를 팔기 전에 가족 사진 한 방 박았다. Things We Said Today (2:18) 어두운 과거에서 밝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같다. -_- 조디악은 그래피티 부분까지 늘어나 160픽셀을 더 디스플레이할 수 있다!



찍어놓고 보니 그게 그거 같은데, 조디악 액정이 약간 더 밝다.

조디악2: mypalm.co.kr에서 만원 가량하는 액정 보호지와 디오펜 4.0, 우송료를 포함해 27만 5천원에 공구했다. 뭐 클리에를 14만원에 팔았으니 13만 5천원을 주고 '업그레이드'한 셈. 5/11 공구 신청. 5/13 입금. 5/17 택배 수령. 6월에 다시 공구 예정. 지금은 1G SD 공구중. A Hard Day's Night (2:24)

무게는 클리에보다 20그램 정도 무겁다. 제조사인 Tabwave는 애플의 뉴턴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회사다. 알루미늄 바디의 디자인은 세련되었지만 그립감은 좀 시원찮다. 튼튼해 보인다. 일단, 파워 스위치가 마음에 안 든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눌릴 수 있을 것 같다. ATI의 이미지온 그래픽 카드를 사용했고 480x320, 65k color 3.8인치 TFT LCD와 야마하 사운드 카드, 그리고 진동 기능 등 게임기로서의 기능이 PDA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전지가 1500mAh 짜리 대용량 리튬이온 전지(마음에 든다), 듀얼 SD 슬롯을 지원하고 Sandisk에서 256KB + SDIO WiFi 카드가 출시된 상태. GPS도 있을까? 블루투스가 내장되어 있지만 PC에 블루투스 카드를 달아야(7만원 가량?) 라우팅을 해서 인터넷 브라우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SDIO 와이파이 카드(100$ 가량)를 구매하던가. sandisk의 wifi카드는 300mA나 처먹는 녀석이면서 일반 SD 메모리 크기의 2배로 PDA에 꽂으면 모양이 좀 흉해 보인다. 내장 블루투스는 속도는 느리지만 나중에 키보드, 마우스에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편이 낫지 않을까..



술자리에 기계를 꺼내놓자, 당신들의 입에서는 당장 '어, PSP!'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조디악2는 그렇게나 마이너한 것이다. 왼쪽에는 전원 버튼, 아날로그 조이스틱, 그 아래 펑션 버튼, 홈 버튼이 차례대로. 오른쪽에는 A,B,X,Y 버튼이 있고 기계 상단에는 양손 검지로 누를 수 있는 트리거 버튼이 2개 있다. 트리거 버튼 사이에 보이는 작은 돌출부, 스위치는 블루투스를 on/off 하는 것이고 그 스위치 양 옆으로 SD 슬롯이 2개, 기계 뒷면에서 딸깍 꽂는 스타일러스는 착탈이 몹시 불편하다. 화면은 매우 직관적인 기본 라운처.

누가 PDA를 산다면 여러 여건상 조디악2를 추천해주지는 않겠다. 살까말까 며칠 동안 고민 많았다. 무려 13만원이 날아가는데, PDA로 기껏하는게 책 읽기 밖에 없는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래서 질렀다. I'm a Loser (2:33)

그렇다면 나는 왜 조디악2를 샀을까? 일단 싸니까. 시중에서 판매되는 정상(?) 소매가는 50여만원을 호가한다. 출시된 지가 1년이 넘었음에도 조디악2의 빵빵한 하드웨어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실정이고(불행한 명작이라는 말이 떠돌기도 하더라) 장사가 잘 안되는지 암암리에 30만원 이하 가격으로 시장에서 땡처리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기계임에도 480x320 스크린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실제로 ebook을 설치해서 보니 빽빽한 텍스트가 한 화면 가득 드러나 이제사 책 보는 기분이 제대로 난다. 기본 라운처는 생각했던 것보다 편해서(홈 버튼 한번, 조이스틱으로 두어번 움직이면 어플리케이션 실행) ZLauncher나 AppSelf는 설치했다가 메모리가 아까워 미련없이 지웠다. 기본 라운처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기계를 받자마자 충전해서 이런저런 프로그램 설치하는데 9시간쯤 걸렸다. 클리에에서 사용하던 프로그램들을 버전업하여 설치하고 과자 구하느라 애먹고 Pocket tunes를 깔아 음악을 들었다. 이어폰을 안 끼고도 대충 들을만한 소리가 나온다. 몇몇 어플리케이션은 실행이 묘하게 되거나 fatal이 난다. 이거 좀 아쉬운데...

조디악2로 넘어오면서 그 동안(그 동안 최신과는 거리가 먼 구린 기계만 사용해왔던 처지라) 해보지 못했던 것을 했다; 드디어 게임기 에뮬레이터를 설치했다. LJZ에 NES, Genesis, SNES 롬들을 구해 돌려보니 그럴듯 하다. 게임롬은 인터넷에 잔 자갈처럼 엄청나게 굴러다닌다. 게다가, 특히나, 공짜로. MP3 파일 20개와 게임롬 8개를 설치하고도 내장 메모리가 40MB 남았다.



Genesis 에뮬. Alladin. 비록 lightspeed를 이용해 230Mhz로 오버클로킹을 하고 프레임 스킵을 2씩이나 한 상태지만 게임은 그럭저럭 부드럽게 실시간으로 작동. 사운드 에뮬레이션은 잘 안되는 듯. 제네시스의 사운드카드 에뮬이 힘들다나...



나름대로 이 바닥의 명작이라는 Chrono Trigger. 왕비 침실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몰라 성 근처를 방황하는 중. 남도의 액정보호지를 부착해 놓으니 반사가 심하다. ebook을 읽을 때, 조디악을 잡고 있기가 좀 그렇다. 클리에보다 가로로 4cm 정도 클 뿐인데도 각이 잘 안 나온다. 싱크 케이블 커넥터 부분이 노출되어 있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무엇보다도, USB 케이블만으로 충전할 수가 없다. 5V 전용 어댑터를 사용해야 하는데, 커헉. 환장하겠군. Lonesome Tears in My Eyes (2:36)

NES 에뮬레이터로 추억의 게임인 갤라가를 해봤다. 오랫만에 손맛을 느꼈다. 그런데 호기심에서 다운받은 HK hot girls나 여자애들 벗겨놓은 애니 망가는 대체 뭐하는 거지? 용량도 아까운데 바로 지우고 스트리트 파이터2를 깔았다.

SD를 구매하게 되면 하드 디스크에서 놀고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피 68편을 차례대로 집어놓고 TCPMP를 설치해 돌려볼 생각이긴 한데, 당분간은 SD를 구매하지 않을 생각이다. 13만원이 날아갔으니 13만원어치 게임을 일단 돌리고 보자.

그래... 조디악2는 아마도 내가 사용하는 마지막 팜 기종이 될 것 같다. 난 팜이 좋다. Don't Ever Change (2:02) You don't know the latest dance, But when it's time to make romance, Your kisses let me know you're not a tom-boy
,

Sony Clie SJ-33 판매

잡기 2005. 5. 18. 15:42
PDA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팔게 되었습니다. -- 팔렸습니다.
판매가는 14만원.

* SJ-33 (영문 업그레이드)
* Memory Stick 128MB (Lexar)
* 스타일러스
* 이어폰 (cresin 도끼) -- 오리지널 이어폰이 마음에 안들어 구입한 것.
* 박스 (매뉴얼, 오리지널 CD, 프로그램 백업 CD)
* 충전기 및 충전 케이블 (원래 것인데 충전만 가능하고 핫싱크가 안됨. 고장)
* 충천/싱크 케이블
* 액정보호지 붙어 있으나 새로 사시는 것이 좋을 듯.



박스 포장



구성품. 스트립은 불포함입니다.





사진으로는 잔 기스 하나 없이 깨끗해 보이지만 실기스가 꽤 있습니다. 기스가 늘어 표면에 넓은 셀로판 테잎을 붙였다가 팔기 위해 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문지르면 없어지는데 귀찮아서...).



장터에 내놓기 위해 충전/핫싱크 겸용 USB(일명 돌돌이)를 17500원(우송료 포함)에 새로 구매했습니다.



SJ-33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뚜껑과 닿는 내부 프레임에 기스가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프레임에 셀로판 테잎을 붙여둔 것입니다.











,

안녕, 프란체스카

잡기 2005. 5. 16. 01:36
신은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못하는, 다른 분야의 그저 그런 전문가쯤으로 보였다. 그래도 포기하기 아까운 비전이었다.

딱히 볼 것도 없고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사실은 비상 대기 상태지만) 예전에 다운 받은 동영상을 봤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거... 언젠가 어떤 순정 만화책으로 본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면 요즘 가벼운 망발을 일삼는 '시츄에이션' 코메디가 다 그런 모양이던지. 닭대가리 켠이 그나마 정이 갔다 -- 닭 발에 소주 한 잔 생각나게 한다. 돼지 껍데기도 땡기고. 음...

생각난 김에 도서관에서 스키즈매트릭스를 빌려 읽었다. 스털링의 쩨쩨한 정치적 작풍이 체질상 잘 맞지 않아 오랫동안 우선 순위에서 밀린 실정이지만 같은 쉐이퍼-메카니스트 세계관을 공유하는 스파이더 로즈에서 보여주었던 세련됨이 어째서인지, 아니면 번역 탓인지, 여러 면에서 둥글게 마모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값싼 진실'에 등장하는 아베리타스의 개똥철학은 게토에서 성장한 철딱서니 없는 인텔리겐챠가 지껄여대는 개소리에서 더도 덜도 아니지만 재미있었고, 그런 재미를 기대했다. 아니면 이제 왠간한 소설에는 약발이 닿지 않던가. 공교롭게도 닉시티 아저씨와 떠들었던 내용이 나왔다. 심해저 생태계 연구.

모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세포내 리보솜과 미토콘트리아를 뜯어 고친 다음 우주에 나가 살아도 큰 무리가 없다.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이고, 칼을 놓으면 부처고, 고개를 돌리면 나타나는 생경한 피안을 전망으로 삼았던 기억이 났다. 부처는 나고 죽고 시츄에이션 코메디라는 점에서 삶이 유별나지는 않았다.

IBC의 메모리 소모량을 조사하다가 의문이 생겼다. 로직 아날라이저로 찍어보니 인터럽트는 30usec 이내에 잡혔다. 그러나, 얼마 안되는 데이터를 가지고 링크드 리스트로 구성한 데이터 형태는 최악의 경우 50Mbytes 이상을 잡아 먹었다. 참으로 멍청한 설계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생각 없고 무책임한 닭대가리면 그 외연과 시뮬라시옹으로 여러 사람들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시킨다.

매일 밤 꼬박꼬박 이빨 닦고 잤다. 피곤한 한 주였다.
,

어린이날

잡기 2005. 5. 5. 16:14
수 년 동안 어린이 날에는 일을 했다. 이러다가 전통으로 굳어지겠다. 어제는 전주 가서 하루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 했는데... 그러고보니 다음 주는 내내 일을 해야 한다. 암담하다. 일주일 내내 밤낮으로 일이라니.

일년 전 대비, 스펀지에 먹물을 흘려놓은 듯한 우중충함은 변함이 없다. 개인의 삶에 관한 오래된 깨달음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제거하고 새롭게 할 재능이 없다는 것. 그래서 본인을 변화시킬 우연을 기다린달까?

1. 사람은 변한다. (그의 환경이 변화하거나 환경을 선택하여)
2.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1항에 의거)

그 때문에 사람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환경을 선택한 다음, 적응하여 그 자신이 변했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갯소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늘 사람이 변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

생활의 어려움

잡기 2005. 5. 3. 09:57
이 놈에 집으로 이사온 다음에는 온 방안에 빛이 흘러 넘쳤다. 너무 밝다. 어쩔 수 없이 아침 9시에 일어나고 1시에 잠드는 백수답지 않게 어이없는 생활이 계속된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데스크탑에서 작업할 때 inlive.co.kr의 클래식 방송을 즐겨 들었다. 걸어다니면서 pda로 mp3를 들으면서 etext를 읽을 수도 있지만, mp3는 잘 듣지 않았다. 최소한 귀는 열어두는 것이 여러 모로 안전했다. 사무실에서 mp3로 귀를 틀어막고 작업하기도 힘들고, 도서관에 짱박혀 공부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음악을 장시간 듣는 것은 집에서 일할 때 아니면 기회가 없다.

도서관에 간만에 들렀다. 열람실에는 변함없이 그 할아버지가 앉아 있다. 열람실에서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사라져 슬펐다. 이발소에 들렀다. 앞서 온 손님이 머리 깎는 동안 도서관에서 얼떨 결에 빌린 책을 읽었다.머리 다 깍고 나니까 날더러 '책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잠시 생각 좀 해 보다가 '별로 안 좋아합니다'라고 대꾸했다.

디버깅 하는 모양을 지켜보다가 그가 하나의 테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타이핑에 소비하는 시간을 속으로 측정했다. 24초. 그런 테스트를 하루에 수백 번 반복한다. 단순 반복 작업에 용하게 써먹으라고 프로그래밍이 있는 것이다. 멍하니 지켜보다가 할 일이 딱히 없고 해서 듀얼 프로토콜 리모트 디버거를 짰다. 텔넷 프로토콜이 이렇게 간단했나? 최초의 TCP/IP 프로그램을 짤 때 텔넷 프로토콜(RFC854)이 잘 이해가 안가서 헤메던 20세 초반의 어린 아이였다. 텔넷 클라이언트를 한 시간도 안 걸려 짰다. 터미널 에뮬레이션을 제대로 하려면 이것저것 추가할 것들이 있지만 일단은 작업 생산성 향상이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주말에는 아내가 가자는 대로 따라갔다. 점심 먹으러 전주식당에 가는데 버스를 잘못 타고 한참 헤멘 후에야 도착했다. 저녁 때도 헤메기는 마찬가지였다. 쿠스코에 들러 영주라는 친구를 만나 맥주 한 잔 마시다가 여러 잔, 아니 엄청나게 마셨다. 세르베자, 마란자, 치체론, 따코, 이런 단어를 오랫만에 접하니 반가웠다. 음식 맛은 영 아니었다. 원래 페루 음식이 맛이 없다. 카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마치 무슨 동호회 오프 모임이 열리는 듯한. 아내에게는 어째서 한국 음식이 점점 달고 매워지나를 애써 설명했다. 단 음식에 대한 집착은 진화와 관련있다. 듣는 둥 마는 둥 해서 설명이 시들해졌다.

애플리 leading company라고? 글쎄다.. iPod보면 머리는 비었지만 그런 사소한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해 줄 미모를 지닌 블론디가 생각난다. 그래서 '애플은 USB2.0, SATA, DVD-RW, IDE를 메이저 PC업체 중 가장 늦게 그들 시스템에 구현한 회사다(남들 다 집어넣었을 때).'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 usb를 자기들 시스템에 처음 소개한 것은 맥이지만 그들은 그것 이외의 옵션을 남겨두지 않았다. 일전에 스티븐 잡스가 새 OS X를 내놓으면서 드라마틱하게 시연한 iChat의 화상 채팅은 과연, 소프트웨어는 이랬어야 해! 라고 감탄하게 만들면서도 그 프로그램으로 4자 3차원 채팅을 하려면 G4이상의 기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슬쩍 잊혀지는 듯 하는 것처럼. -- 잡스의 짧은 데모는 멋졌지만 여전히 애플 기계를 살 일이 없다.
,

환상적인 믿음

잡기 2005. 4. 24. 15:55
블로그라인즈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다가(밀린 글이 8천개나 된다) 뭔가 토달 일이 생겨서 달려다가 부담감을 느꼈다. 아마도 결혼 전 쯤에 은자인 양 머리 위에 흙을 붓고 땅 속에 파묻혀 살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읽고 있는 책인 류영모에 관한 글에서도 그는 땅 파고 사는 삶을 견지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죽은 후 '발굴'되었고 제자들의 입심에 의해 해석되기도 했다. 나나 다른 사람들에게 안 생겼으면 싶은 불행이다.

술을 전보다 덜 마시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진통제를 입에 달고 지냈다.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를 지겨워 하면서도 오고 가며 꾸준히 읽고 있다. 왜 이리 말이 많을까. 스파게티를 먹으려다가 접시 위의 국수를 이리저리 흐트러놓는 꼴의 문장이랄까. PDA를 며칠 공장에 내버려 두고 와서 그 부재가 불편했고 심지어 부당(?)하게 느껴졌다.

테스트 막바지, 유사장님에게 팀원들에게 제발 압박을 가하지 말라고 저번 주에 술자리에서 간곡하게 부탁했다. 수개월간 미친듯이 일하고 간신히 도달하게 된 이 지점에서 이번 월요일, 화요일 테스트는 장비 납품과 연결되는 분수령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 그만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뻔히 알고 있는 압박감을 재차 강조하며 머리, 배, 가슴에 순서대로 말뚝을 박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사장의 견해는 달랐다. 그 정도 스트레스는 누구나 받으며 일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되려 그가 본 팀원들은 행복했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지 않은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눈빛을 보다가 이번에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유사장은 개발 단계에서 거의 소외되었고 팀 맴버들은 세 블럭으로 나뉘어 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가장 큰 랙으로 생각하는 것을 조사장의 소프트웨어 파트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 나는 내가 무슨 파트에 있는지 잊어버렸다. 닭이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두 사장님들, 그리고 이사진, 팀원들 사이에서 가장 큰 위험부담은 매니지먼트와 리스크 관리였다 -- 여태까지 일해오면서 있지도 않은 것이었으니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테지만 일이 끝나면 그 뒷수습에 걸리는 시간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시간만큼 걸리지. 암. 하지만 내가 이사나 매니저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이상 기술자 주제에 쓸데없는 내정 간섭(?)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저 묵묵히 맡은 닭이나 먹자.

내 일은 작년 12월에 거의 끝났고 지금은 오락가락 하며 일하는 팀원들의 뒤를 봐주면서 농담 따먹기나 하고 하품 하며 테스트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당분간은 신경이 곤두서는 낮과 밤이 계속 될 터이지만 코딩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도 남는 시간에 잡담 하는 것처럼 유사장님에게 충언(?)이랍시고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은 대충 성공했다. 어젯 밤에 걸어둔 테스트는 에러 하나 없이 끝났다. 예상 시간은 4시간 30분이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1시간 40분만에 2G 테스트가 끝났다. 계산을 잘못했다. 개선한 커널 인터럽트 핸들링이 예상보다 현저하게 빨라 완전한 컨커런트(!)가 달성된 것이다. 예상보다 3배 빠르다고 행복해 할 처지가 아니라 계산 실수가 치명적인 과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적당적당 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자. 찰싹. 걱정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SMS로 기쁜 소식을 전했다. 편안히 푹 들 쉬고 월요일 아침에 보자고요.

You scored as Buddhism. Your beliefs most closely resemble those of Buddhism. Do more research on Buddhism and possibly consider becoming Buddhist, if you are not already.

In Buddhism, there are Four Noble Truths: (1) Life is suffering. (2) All suffering is caused by ignorance of the nature of reality and the craving, attachment, and grasping that result from such ignorance. (3) Suffering can be ended by overcoming ignorance and attachment. (4) The path to the suppression of suffering is the Noble Eightfold Path, which consists of right views, right intention, right speech, right action, right livelihood, right effort, right-mindedness, and right contemplation. These eight are usually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that base the Buddhist faith: morality, wisdom, and samadhi, or concentration. In Buddhism, there is no hierarchy, nor caste system; the Buddha taught that one's spiritual worth is not based on birth.

Buddhism

75%

Satanism

71%

Islam

67%

atheism

63%

agnosticism

63%

Paganism

58%

Judaism

42%

Christianity

8%

Hinduism

4%

Which religion is the right one for you? (new version)
created with QuizFarm.com


사타니즘은 왜 끼어 있는 거지? 내가 악마교 신자였다면 벌써 중간 관리자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

...

잡기 2005. 4. 22. 18:53
휴가(?)에서 돌아와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일주일에 출장은 두세번은 가는 것 같다. 철도청의 바보같은 놈들은 예약하고 구매까지 끝내놓은 표라도 5분 전에 역에서 찾지 않으면 거래를 취소했다. 두 번이나 기차를 놓쳤다.

처음 보는 사람과 면담을 해 보니 왠간한 업체에서 pm쯤 하던 사람인 것 같은데 얘기가 아주 잘 통해서 미팅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앉은 자리에서 30분 만에 끝냈다. 근간에 보기 드문 쾌속 인터뷰였다.

장비 설계 스펙이 네 번이나 뒤집히는 바람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코피 터지게 일하고 있다. 커널 인터럽트 핸들링에 문제가 있어 하드웨어 문제인지 소프트웨어 문제인지 찾아내느라 며칠 고생했다. 뭐 내가 고생했다는 얘기는 아니고. 결론은 소프트웨어 쪽으로 났다. copy_to_user()를 워낙 독특하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널 메모리를 할당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고치면서 이것 저것 뜯어고쳐 인터럽트 속도가 개선되긴 했지만(47us -> 1us) 가장 쉽고 깔끔하고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방법에서 차선책으로 한 계단 내려온 셈이라 기분은 영 안 좋다.

술 한 잔 하고 쉬자. 내일은 또 출장이니까. 토요일에도 일하다니... 참 오랫만이군.
,

노트북 A/S

잡기 2005. 4. 19. 22:00
삼보의 노트북 A/S가 훌륭하다.

콜센터의 아가씨와 딱 한 번 밖에 통화하지 않았다.

가택 방문 해서 노트북을 들고 갔다.

시리얼 넘버가 없어 '원칙적으로' 무상 A/S가 안되는데, 대충 구입일자와 구매처를 알려주니 거기 전화해서 시리얼 넘버를 자기들이 알아서 알아냈다.

구입 일시가 6개월을 넘겨 배터리 무상 교환 기간이 끝났는데, 구매처와 협의해서 구매일자를 조정해 주었다. 매우 감사하다.

가택 방문해서 노트북을 건네준다.

이 모든 일들이 전화 한 통 한 후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내 평생 이렇게 제대로 된 A/S는 처음 받아봤다.
,

뒷산에서 점심 먹고

잡기 2005. 4. 17. 21:48
아내가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점심을 준비. 북한산 간단다. 느즈막히 일어나 사우나 가려다가 지퍼락 도시락 케이스가 보이길래 나가서 점심이나 먹을까 해서 아내가 남긴 반찬과 밥을 챙기고, 쭈그리고 앉아 어깨 죽지가 찢어진 네팔 색동옷을 바느질해 기워 붙였다. 그리고 트레이닝복과 반팔 티셔츠를 걸치고 새벽 조깅하는 기분으로 뒷산에 올랐다.

독바위-평창동 코스가 날이 갈수록 마음에 든다. 입장료 1600원. 초입부터 대뜸 오르막길, 한 시간 빡세게 올라가고(쉬지 않고 헉헉대니까 운동 되고) 비봉 한 번 타고, 능선에 올라 시원한 바람 맞으며 사모바위에서 점심 먹고 깔딱재라고 하는 문수봉 우회로, 대략 800m를 줄창 올라가는 길. 그 길 보면 한숨이 푹 나오지만 이번에도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문수봉 코스는 위험해서 나이든 할아버지들만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내 신발이 죽죽 잘 미끄러지므로 무서워서 다음에 신발 사면 올라가 보련다.

소방헬기가 능선을 오락가락 해서 누가 산 타다가 다친 것 같아 아내한테 전화를 걸었다. 사고 안 났단다. 불광동에서 모여 간다길래 아마 버스 타고 구기터널이나 북한산성쯤으로 올라갔겠거니 싶더니만 나중에 들어보니 효자동으로 올라가 우이동으로 나온 것 같다.

대동문을 지나 평창동 쪽으로 내려오면 절 하나, 약수터 하나, 그리고 졸졸 흐르는 개울 둘을 지난다. 땀과 바람으로 어두워진(?) 얼굴을 맑고 차가운 개울물로 씻어내고 줄곳 평탄한 내리막길을 내려와 썰렁한 부자 동네 구경하면서 가나 아트홀 옆길로 천사가 강림하 듯 사뿐사뿐 내려와 평창수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500원) 담배 한 대 맛있게 빨고 올림피아 호텔에서 7211 버스(800원)를 타고 연신내로 돌아온다. 다들 구기 터널 근처로 내려오므로 그 보다 앞선 올림피아 호텔에서는 버스 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편안히 앉아올 수 있다. 오늘은 북한산에 사람이 워낙 많아 3시간 조금 더 걸렸다. 적당한 시간에 운동량 많고 경치 좋고 비교적 편안한 코스다. 추천할만한 코스다.

연신내 역에서 내려 잘 가는 덕수 목욕탕(대인 3500원)에 들어가 땀을 뺐다. 들어가기 전 64.8kg, 사우나 끝내고 나오니 64.3kg, 500g이 땀인지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럽게 뜨거워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사우나를 네 번 들락거리고 냉탕의 폭포수와 수류제트(110m 암반수)로 골고루 몸 이곳저곳을 안마하고 온탕에 앉아 TV를 보다가 나온다. 시장통 중간에 있는 새장골에 들러 냉면이나 갈비탕을 먹는다. 살얼음이 송송 뜬 냉면 육수가 시원하고(6000원, 정체를 알 수 없는 냉면인데 맛이 썩 좋다), 갈빗대가 서너 대는 나오는 한방 갈비탕(8000원)도 맛있다. 다만 약간 단 편.

저번 일주일을 계속 걸은 탓인지 이번에도 힘들이지 않고 올라갔다. 총 경비는 12400원, 대략 12$ 가량.
,

벚꽂놀이

잡기 2005. 4. 16. 22:54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아내의 직장동료들... 이라기 보다는 지기라고 할만한 사람들과 용산에서 마포대교를 넘어 여의도로 갔다. 사람들이 많다. 120만명이 벚꽃보러 나왔더란다. 잔디밭에 누워 짧아진 치마들 구경하고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해서 닭 배달시켜 먹고 맥주 배달해 먹고 김밥도 배달해 먹었다.


서강대교에서 해지는 모습. 앞은 밤섬.


서강대교. 3배 광학줌을 더 땡겨 10배 디지털줌으로! 징하게 깨지는군.
,

대단해

잡기 2005. 4. 14. 23:37
12일 동안의 여행 기록 텍스트가 120kbytes 가까이 된다. 아, 대단히 주접스러웠구나.

노트북 배터리가 맛이 간 상태여서 삼보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니 사람을 보내주겠단다. 기사가 집으로 찾아와 시리얼 넘버가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뒷 패널에 시리얼 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있는데 글자가 거의 지워진 상태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일련 번호를 그렇게 허접하게 기록하지 말았어야죠 -- 내가 말했다. 본사에 문의해 보고 무상 A/S가 가능한가 통보해 주겠다며 일단 고장난 곳을 알아야 하니 노트북을 들고 갔다. A/S가 되건 안되건, 노트북 A/S가 보통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방문 서비스라... 기대 이상이다. 무상 배터리 교체를 기대해 본다.

교황은 죽고, 강원도에 또 불이 났다고?

평소처럼 일했다.
,
이틀동안 같이 돌아다닌 한국인은 자신이 '맛따라 길따라'라고 밝힌 바 있다. 아, 반갑군. 맛따라 길따라는 말이야, 숙소나 교통은 처절하게 싸구려를 지향해도 음식 만큼은 결코 양보해서는 안되지. 하지만 나를 따라 다니다가 계산서가 500밧, 700밧(18$ 가량?) 씩 나올 때면 표정이 안 쓰럽게 변했다. 나하고 같이 다니면 배낭여행자처럼 할 수는 없어. 라고도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하루에 천밧씩 쓸 예정이거든? 보통은 하루에 200밧으로 식사 두 끼와 숙박비, 느적거리며 여기 저기 버스 타고 돌아다니고, 거기에 150밧 정도를 보태면 적당한 바에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하루 생활비를 한 끼로 썼다. 물론 국수와 길거리 음식도 보이는 족족 꾸준히 먹어 주었다. 하루에 간식 빼고라도 여섯 끼 정도는 먹어줘야 하니까. 그 친구는 원래 방콕에 이틀 정도 있다가 북부로 갈 생각이었는데, 인도에서 굶주리다 온 탓에 태국의 풍부함 음식에 눈을 반짝이다가 결국 방콕에서 일주일 가량을 묵게 되었다 -- 주저앉았다. 머리는 땋아서 파인애플처럼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그가 여행할 어떤 도시도 방콕 같지 않을 것이고 방콕 보다 좋지도 않을 것이다.


새 아침. 8시. 너무 일찍 일어났다. 묵고 있는 도미토리에 아무도 없다. 벌써들 나간건가? 만남의 광장이 좋은 점은 숙박객이 별로 없어 팬티만 입고 복도를 활기차게 돌아다녀도 된다. 저 빨간 바지는 여행 내내 입었던 단 한 벌 뿐인 바지. 저녁마다 빨았다. 빨아도 빨아도 빨간 물은 줄기차게 흘러 나왔다. 인도제나 네팔제나... -_-

카오산을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는데(더위는 아침이라고 봐주지 않으니까) 왠 시크 교도가 불러 세우며 날더러 다짜고짜 행운아라고 한다. 암 행운아지. 평상시에는 운이 안 따라줘서 안 해도 되는 삽질을 꼭 하게 되는데 죽을 일이 생기면 운이 따라붙는단 말이야? 장수하면서 고생하는 운이라는 것이지. 그러더니 손금을 봐주겠다며, 내 어머니 이름을 알아맞출 수 있단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 난 행운아가 아네요. 당신을 만난 것만 봐도 그래요. 그러고는 히히히 웃어주었다. 그 친구도 히히히 웃는다.

문을 연 가게가 없어 시장통에서 아침 밥을 먹고 인터넷 좀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어젯밤 숙소에 체크인한 미국계 일본인과 그가 온 몸에 새겨 놓은 문신에 관해 노닥거리다가 체크아웃하고 짐을 맡겨 놓고 월텟행 버스를 탔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월텟의 일 층에서 일식당을 본 것 같아 한 번 방문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여전하다. 태국에서 먹는 초밥은 변함없이 꽝이다. 나를 일본인으로 아는지 중업원들이 무척 어려워 하면서 말 끝마다 일본어를 사용했다. 카드로 결제하려니 안 된다. 어제부터, 이상한 일일세?

에어컨 펑펑 나오는 월텟의 벤치에 앉아 놀았다. pda에 책 몇 권을 담아 왔는데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그 동안 나름대로 바빠서 읽지 못했던 '데프콘'을 읽었다. 숙소에 일본인 둘이 있었는데 자기 전에 그들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고, 데프콘 한-일전 편을 마저 읽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한국이 핵폭탄으로 일으킨 해일에 일본이 침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이 어이없이 아작나서 고개를 갸웃했다. 일주일 가량 인터넷을 못했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그 동안 모르고 있었는데 방콕에서 뉴스 사이트를 돌아보니 중국에서 일본을 비난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상임이사국 엿 될 것 같다. 일본은 왜 저럴까? 얻는 것도 없으면서. 원숭이기 때문일까? 혹시 요즘 일본 여성 여행자들의 얼굴이나 몸매가 영... 그런 것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책 읽으며 빈둥거리다 보니까 어느새 오후 4시. 빅씨로 가서 1kg 가량의 망고스틴을 사고 근처 이탈리안 식당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스파게티 맛이 꽝이다. 먹다 말고 남기고(배도 부르고 해서)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 주문한 루트 비어로 목을 축였다. 요새는 민트 티나 루트 비어 따위 이상한 것들도 시켜 마셨다. 계산하려고 식탁에 그동안 철렁거리던 남은 잔돈 동전을 파고다처럼 쌓아 놓았다. 스카이스크래이퍼, 장관이다. 종업원을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요즘 방콕 사람들은 외국인을 향해 잘 웃지 않는다.

11시 30분 인천행 항공권이지만 방콕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 때문에 일찌감치 서둘러야 한다.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도착하니 6시. 카오산은 지나치게 바글거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카오산에서 맥주 마시고 노닥거린 때가 언제인지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카오산에서 논 적이 없다.


코카콜라 협찬 송크란인가 보다. 펄럭이는 코카콜라 깃발 밑에서 펩시 깡통 차(좌측)가 나타나 공짜로 펩시 콜라를 나눠 준다. 며칠 전부터 하루에 여섯끼씩 먹느라 배가 불러서 콜라 같은 저질 싸구려 탄산음료는 영 손이 가지 않는다.

길 가는데 어떤 여자애가 물을 뿌렸다. 뒤돌아 봤다. 그 표정. 뭔가 말할까 하다가 돌아섰다. 나는 아내에게 충실했다. 그건 짝짓기나 사랑 나부랑이 등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다. 게다가 21세기는 신용사회다.

숙소에 맡긴 짐을 찾고 수박쥬스 한 잔 마시고 짐을 챙겨 일어나 복권청 앞에서 59번 버스를 한 시간 가량 기다렸지만 안 온다. 오후 7시 30분. 교통체증을 감안하면 공항에 도착하는 시각은 9시 무렵이 될 텐데... 더 늦으면 땀나는데... 송크란 때문일까? 아침부터 재수가 없나보다 싶어 짐을 들었다. 하는 수 없이 공항 버스를 타기로 했다.

걷는 도중 59번 버스가 막 오고 있다. 반전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허겁지겁 뛰었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랐다. 졸다가 눈을 떠보니 공항에 가까워진 듯. 짐을 챙겨 확인도 안 하고 성급하게 내렸더니 공항까지는 아직 3km 남았다. 에고야... 이런 실수를. 마지막 순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게 되다니.

망고스틴을 넣은 가방이 걱정이다. 쿼런틴에서 걸리지 않을까. 망고스틴 몇 개가 한국의 자연환경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리는 없다. 그 보다는 컨테이너 선저에 담겨오는 이국의 바닷물에 포함된 미생물이나, 검역을 소홀히 한 육가공품, 엄청난 양의 채소들에 함께 딸려오는 작은 생물군이 지역 생태계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 종의 멸절, 먹이 사슬을 구성하는 피라미드의 한쪽 변이 무너지면서 그 종과 연관된 주변 종들이 트럼프로 지은 집처럼 함께 무너져 내려 생태계 전체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가설이 있다 <-- 여러 모로 의구심이 많이 생기는 썰이긴 하나, 주접 떨기보다는 망고스틴 잘 챙기고 여행기나 마무리 짓자. 산처럼 쌓아놓은 망고스틴 피라미드에서 망고스틴을 하나 하나 고를 때마다 심혈을 기울였다. 심지어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망고스틴 고르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꼭지는 연노랑, 잡티 없고 짙은 보라빛의 탱글탱글한 바디라인, 배꼽이 단단한 것들.

공항 대기실에 도착하니 9시 50분. 수속은 10시 30분. 아까 빅씨에서 사온 100밧 짜리 초밥 도시락을 꺼내 흡족하게 배를 채웠다. 어떻게 고급 일식당의, 그때 그때 만들어 배에 얹어 띄우는 초밥 보다 대형 수퍼마켓에서 대충 만들어 파는 초밥이 더 맛있을 수가 있을까. 신기한 일이지. 오늘은 다섯 끼 밖에 안 먹었지만 나머지는 기내식으로 보충하자고 마음먹었다. 대기실 구석에 앉아 ac 아웃렛에 어댑터를 꽂고 노트북을 연결해 이 글을 쓰고 있다.

탑승 수속이 11시 50분으로 밀렸다. 대기실은 갑자기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돗대기 시장 같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송크란 휴일로 한국에 가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송크란 때문에 항공기가 연착하여 밀린 사람들이 몰렸단다. 그래서 전세기가 3대나 동시에 출발한다. (여러 이유 탓에 동남아의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같다) 어느 나라에 가나 축제는 일정을 틀어지게 만드는 귀신같은 것이다. 축제 때는 이동이나 숙소 구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축제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을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술 먹은 한국인 아저씨가 옆에서 고성을 지르고 있다. 여행사에 사기 당했다고 소리 지르는 것 같은데, 비행기 한두 시간 연착한 걸 가지고 뭘 그리... 아무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지만 참 열심히도 소리를 지른다.

담배나 한 대 피우려고 흡연실에 들어가니 어떤 한국인이 말을 걸어오며 한국 담배를 권한다. 고맙게 받았다. 화보 촬영차 태국에 왔다는 것이다. 음식 값이 싸다면서 식당에서 한끼 식사로 15만원을 썼단다. 그 시간에 누군가는 미얀마에서 42도 뙤약볕에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45도라는 설도 있다). 방콕 가면 에어컨 펑펑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끼에 무려 10$나 하는 음식으로 우아하게 배를 채우자, 뭐 그런 다짐을 하면서. 담배를 다 태우고 나니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왠지 나와는 클래스가 다른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오지만 찾아 빡세게 여행하는 용가리같은 비일상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비일상적인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미얀마 북부의 외국인 여행자 제한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북부 기점 도시에 도착하면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픽업을 탄다. 픽업으로 30분에서 한 시간 단위로 짧게 이동한다. 무수한 검문소가 있으므로 여행자 티나는 복장을 하지 않는 편이... 해가 지는 오후 6시가 넘을 때까지 제한 지역으로 계속 밀고 들어가서 도시에 도착한다. 외국인 여행자 숙박이 인가된 숙소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해가 져서 오도가도 할 형편이 못되고, 미얀마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태국에서 따지렉을 거쳐 육로로 미얀마에 입국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 역은 가능하다. 그리고 미얀마에서 중국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인도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한번쯤 장기여행을 해 봐서 인지 도시에서 도시를 잇는 것이 아닌, 아무도 안 가본 곳을 가는 것이 요즘은 여행 같다고 느끼고 있고, 가끔(그걸 가끔이랄 수 있을까?) 만나는 히피같은 작자들은 나와 달리 그런 비일상적 여행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블로그 따위를 안 올리고 책도 안 쓴다. 그래서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다. 알려지면 대단한 오지탐험가쯤 되는 오해를 받는다. 이를테면 한비야같은 사람. :) 구설을 통해서만 몇몇 이름과 사연이 알려지고(대개는 어느 나라의 '아무개'가 어떻게 몇 년을 여행했다는 식으로), 우연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 그 도시의 가장 싸구려 숙소의 도미토리가 이상적인데 마치 이들 숙소는 체인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히피 해픈 라인을 연결하여 도시에서 도시로, 점에서 점으로 가늘고 희미하게 이어져 있다. 아마도 내가 그런 여행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던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 싼 숙소만 찾아 가니까. 그들을 통해 다른 여행자들과는 약간 색다르고 상대적으로 '진기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마치 신밧드의 모험처럼. 하지만 그건 남들 얘기고, 해보지 않은 나와는 상관없다. 이런 직업 생활하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여행과 직업생활 중 어떤 것이 더 재미있다고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었다. 그러니 교대로 해 보고 나서 몸이 뜻대로 잘 안 움직일 때 다시 평가해 보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올 때보다 더 형편없었다. 기내식, 서비스, 기타 등등... 무의식적으로 포장도 안 뜯은 모포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아침, 랜딩 후 이어지는 지루한 택싱이 끝나고 인천 공항에 도착. 검역소에서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i hvae nothing, nothing to declare. 인천은, 서울은, 한국은 마치 거대한 에어컨 룸 같다.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덜덜 떨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크룽 팁 담배곽에서 마지막 가치를 꺼내 빨았다. 입맛이 쓰다.

내 앞에서 서양인 둘이 어떻게 버스를 타야될 지 몰라 헤메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싱가폴 항공 기장이 그들을 도와준다. 나와 가는 방향이 같다. 602-1.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를 타려니 카드가 되지 않는다. 어제부터 왜 이리 말썽인가. 원화가 하나도 없어 10달러를 내고 7000원짜리 (어이없이 비싼) 버스표를 끊고 잔돈으로 2500원을 거슬러 받았다. 카드 받기를 거부하는 운전사나, 환율을 적당히 때려맞춰 적당히 잔돈을 거슬러주는 두 양반에게 그래도 삿대질을 하고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여긴 모든 것을 협상하고 타협해야 하는 여행지가 아니다. 안되면 안되는 거고 주는대로 받으면 되는거다. 이 곳은 한국이다. 게기면 표 안 팔고 버스 안 태워준다. 무서운 여행지다.

인도네시아에 지진과 해일이 덮치기 바로 전 인도네시아 보르부두르 유적지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휴가 계획은 그랬다. 항공권을 안 끊은 아내의 게으름이 내 생명(?)을 구했고, 그래서 바꾼 여행지가 고생만 죽어라고 한 미얀마였다. 동남아 3대 고대 유적지 중 두번째가 그렇게 끝났다. 동남아(south east asia)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독일인 학자였다. 지리적 편의상 지어진 그 이름보다 나은 것은 정녕 없었을까.

집에 와서 짐을 풀고 잤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깼다. 태국에서 카드 사용하셨죠? 네. 거래를 중단시켰습니다. 동남아에서 말이죠... 그러니까... 불법 도용... 그래서... 안되고... 카드를... 그러므로... 다시... 발급하세요...

이런 망할. 이불 덮고 다시 잠을 청했다. 노트북 배터리는 완전방전되어 고물이 되고 회사에 안부 인사하니 지난 2주 동안 파란만장한 사연이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나는 내가 없어도 일은 잘 돌아간다고 굳게 믿었다 -- 굽힐 수 없는 사내의 신념으로.

--끝--

총 여행일수: 미얀마(7일), 방콕(4일) = 12일
총 여행비용: 294+490 = 784$

미얀마 여행 경비: 168+26+17+83 = 294$

* 방콕->양곤 항공권 6600밧(168$, 푸켓에어 한달 오픈), 밍글라돈 공항 출국세: 10$

* 숙박비: 양곤(2박, 6+5=11$), 만들래(2박, 6$), 시뽀(1박, 1500짯), 바간(2박, 7$) = 약 26$
* 입장료: 보타따웅(2$), 쉐다곤(5$), 바간(10$) = 17$
* 교통,음식,기타비용: 환전(70$ = 63000chat, 환율 900chat/$), 보유액(12000) = 75000(약 83$)
* 항공권, 공항세를 제외한 일평균 비용: 126/7일 = 18$

태국 여행 경비: 360+104+26 = 490$

* 인천<->방콕 항공권: 세 포함 360000원, 돈무앙 공항 출국세: 500+500 = 1000baht = 26$

* 숙박비: 방콕(4박, 400밧) = 약 10$
* 교통,음식,기타비용: 3600밧 = 약 94$
* 항공권, 공항세를 제외한 일평균 비용: 104/4일 = 26$
,

4/10

여행기/Myanmar 2005. 4. 11. 12:41
아침 8시에 일어났다. 할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씰롬에 괜찮은 식당이 있대서 찾아갔으나 문을 닫았고,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오이시에 들어가 수끼+초밥 부페를 먹었다. 배불리 먹었다. 오이시가 돈 좀 벌더니 예전 같지 않아 입맛을 다셨는데 아직 부페를 하는구나... 그러나 역시 초밥은 맛이 없었다. 배 터지게 먹고 펭귄처럼 걷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월텟 4층에 올라가 벤치에 누워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잤다. -_-

아내는 참 운이 없다. 이세탄 백화점에 들러 두 시간 동안이나 쪽팔림을 무릅쓰고 정성들여 보석을 둘러보고 간신히 25만원짜리 썩 괜찮은 사파이어 목걸이를 골라 포장까지 마치고 계산 하는데, 점원이 실수로 4밧 더 많게 계산해서 그걸 취소하고 다시 카드로 긁으려니까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았다. 한참 시도 해 봤지만 만밧이 조금 넘는 트랜젝션을 두 번 실수한 탓인지, 아니면 한국의 은행이 영업시간을 넘긴 탓인지 거래가 되지 않는다. 점원 말로는 하루 사용 금액을 초과했다고 한다. 글쎄? 내가 한미카드 vip고객인 것으로 아는데? 국제 전화를 걸어야 하는 등, 일이 귀찮게 꼬여서 거래를 취소하다. 한가하게 돌아다니며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사 먹었다.

에어컨이 나오는 대형 백화점 사이를 전전하며 빈둥대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하라' 영화가 별로 재미 없다.

밤 아홉시 가까이 되어 수쿰빗으로 가서 이런 저런 바를 돌아다녔다. 생음악 하는 술집들은 보통 아홉시 반에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술은 안 마시고 서성이며 분위기 보다가 다른 바로, 또 다른 바로, 여기저기 메뚜기처럼 바 호핑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일본인들 상가 부근의 도쿄 조'스 블루스 바에 들렀는데 분위기 괜찮다. 사약같은 기네스 드라프트를 시켜 먹으면서 흥겨운 음악을 들었다. 아, 방콕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바 안에 있는 사람들 절반이 뮤지션이다. 오늘 잼 세션이 있는 날이라서 악기를 들고 서성이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분위기 매우 훌륭하다. 블루스가 워낙 마초 폼 잡는 음악이라 그런지 집적거리는 게이도 없고 재즈바처럼 음악에는 별 관심없는 찌꺼지들 아니 계집애들도 없고 담배 연기 자욱한 가운데 다들 입 다물고 음악을 듣는다. 연주솜씨가 괜찮다. 분위기가 좋아서 자정을 넘겼다. 너무 늦어버렸다. 거리로 나오니 썰렁하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아쉽다. 엊그제 한국인 젊은 친구 도와준답시고 이틀을 같이 다니는 바람에 밤마다 수쿰빗의 바를 전전하는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방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동안 배낭 여행 한답시고 거지처럼 돌아다니느라 방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데, 나는 왜 맨날 방콕에 올 때마다 처음 방콕에 오는 친구들의 가이드질을 하게 될까. 아무래도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묵어서 그런 것일께다.
,

정리

잡기 2005. 4. 10. 11:50
미얀마 여행 루트 정리하고, 여행기도 대충 마무리 지었다. 미얀마 사정상 실시간 블로깅은 불가능했다 -- 군부 독재 정권의 참맛을 제대로 느꼈다. 더위 때문에 힘들었던 여행이다. 그리고 근간에 들어 이렇게 빨리, 빡세게 움직여 본 여행이 없던 것 같은데, 나름대로 보람있었다. 세포가 팔팔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사정상 사무실에 연락 한 번 안 했다. 내일 귀국.

JPEG 스펙에 사용자가 자유롭게 데이터 청크를 포함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집어 넣는지, 어떤 툴을 사용하는지 알아봐야겠다. 사진 파일에 따로 커멘트 달려니 귀찮고 음악이나 음성 녹음을 파일과 함께 기록했으면 싶다.

서울 가서 마저 정리하자. 지금은 열심히 쉬고..
,

4/8-4/10 Bangkok

여행기/Myanmar 2005. 4. 10. 01:07


화이트 하우스 옥상에서. 만달래 맥주 마시고 알딸딸.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정신없이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 손님들은 8시 정각에 기상해서 개떼처럼 식사를 하러 내려오지만 거의 아무 말도 없이 아침만 먹고 일어나는 지극히 특이한 분위기였다. 배 채우기 바빠서? 아니면 최근 여행자들 추세가 인터넷이나 가이드북으로 인해 충분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서로 할 말이 없어져서?

양곤에 온 후 엽서를 구하려고 돌아다녔지만 품질이 좋으면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싸면 품질이 떨어져서 망설여졌다. 화이트하우스에서 50짯에 한 장 짜리를 15장 구매했다. 아침을 든든이 먹고 숙소를 나와 시장통을 돌아다녔지만 택시 협상이 신통치 않다. 아홉시가 넘었고, 1달러 깎으려고 보낸 시간이 벌써 30분째, 에라 모르겠다. 협상은 그만 하고... 2500짯 주고 택시에 올랐다. 35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 수속을 재빨리 마치고 대합실에 들어가니 썰렁하다.


양곤 밍글라돈 공항 대합실 맞은편 흡연실. 한산.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 동안 남은 돈 1340짯을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했다. 아내를 본받아 엉뚱한 짓을 해보기로 했다. 대합실 윗편의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FEC(Foreign Exchange Currency)만 받는다고 써 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던 FEC는 얼마 전에 사라졌다. 메뉴판에는 달러만 받는다고 써 있었다. 매니저를 불러 나한테 지금 1300짯이 있는데 이 2 달러짜리 코카콜라를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순순이 오케이 한다. 700짯 짜리를 1300짯 주고 마셨으니 왠지 스스로가 바보같았지만 최소한 그 걸레같은 지폐 쪼가리들을 처분했다.


돌아오는 727-200편의 좌석은 30여석만 차고 나머지는 비었다. 일제 중고 시내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향해 간다. 내리려면 위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


방콕에 도착하니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버스 정거장까지 비 맞고 간신히 걸어갔다. 미얀마에서 돌아와서 그런지 방콕이 상대적으로 쌀쌀했다.

송크란 축제가 예년같지 않다. 푸켓 해일로 막심한 피해를 입은 태국이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듯한 인상.

만남의 광장에 다시 가니 이번에는 사람이 들어차 있다. 빨랫줄에 걸어놓은 빨래들을 보니 인도에 갔다온 사람인 듯. 대충 씻고 빈둥거리니까 들어온다. 24살, 450만원 짜리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완 월드 티켓을 들고 처음 들른 곳이 인도. 함께 돌아다녔다. 나랑 돌아다니면 안 좋을텐데... 왜냐하면 나는 하루에 천밧씩 사용할 작정으로 방콕에서 나흘 있을 예정이니까. 방콕에 온 기념으로 쌀국수 가게를 소개해 주고 저녁에 함께 수끼를 먹었다.

그랜드 쉐라톤 호텔에 밤 아홉시 사십분쯤 도착. 썩 괜찮은 재즈를 들을 수 있다길래 찾아온 것이다. 스트릭트 드레스 코드 때문에 문전박대 당했다. 젠장. 예상했어야 했다. 인도 갔다온 복장, 미얀마 갔다온 복장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그냥 나가기 뭣해서 옆 자리에 구겨져 않아 두당 235밧 짜리 맥주를 마셨다.

방콕에서는 평생 다시 탈 일이 없을 것 같은 마이크로 버스에 매달려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젊은 친구와 함께 대충 밥을 먹고 빤팁 플라자로 향했다. 그의 도시바 노트북이 부팅이 안 되는데 그걸 계속 들고다니려니 애물단지가 되고, 한국에 보내려니 안에 넣은 것들이 많아 아깝다. usb 외장 cdrom drive를 구하면 windows xp를 다시 깔기만 하는 것으로 복구가 가능하리라 짐작했다. 빤팁 플라자의 여러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usb external cdrom drive를 구하기가 만만찮다. pcmcia cdrom drive로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 usb floppy로 시도했으나 파티션이 ntfs로 포맷되어 있고 리패어 서비스 센터에는 ntfs를 다룰 수 있는 툴이 없다. 외외로군. 간신히 물어물어 usb cdrom drive를 찾았는데 그것도 안 된다. 주인장 말로는 도시바 전용 cdrom drive만 가능할 꺼란다. 벌써 네 시간이 흘렀고 지쳐서 그냥 나왔다.

빅씨의 4층 일식당에서 돈까스를 먹고 평일에도 밀리는 길을 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에 축제 행렬을 만났다. 축제가 시작된 것인지 교통 체증이 보통이 아니다.




즐겨 피우는 크룽 팁의 겉 표지에 이런 사진을 올리다니... 태국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트랜스젠더다.


역시 트랜스젠더다.


사타구니 사이가 솟아있는 것을 보면 아직 덜 트랜스했다.


뭔가 할 것 처럼 한참 지껄이더니...


닌자 차림의 두 남자가 무대에 나타나 굉장히 재미없는 퍼펫쇼를 한다.


파아팃 선착장 옆, 무슨 공원에서 바라본 라마 xx 다리


공연, 꽤 재미있었지만 밥 먹으러 갔다.


파아팃 선착장 옆의,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인데, 이름을 잊었다. 방콕에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오늘의 추천 메뉴를 소개해 달라니 뿌 팟뽕 까리와 똠 얌 꿍을 주저없이 권한다. 푸훗. 그 둘과 싱하 두 병, 밥 두 접시 해서 740밧.


,
항공권 일자 변경은 실패. 버스표를 어제 간신히 예매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좌석이 없다. 복도 중간에 앉았다. 거참 자리 훌륭하다.

이 더위에 버스에 에어컨이 안 나오는 거야 뭐 늘 그랬으니 그렇다치고. 버스에 정말 전형적인 jerk처럼 생긴 젊은 미국인 남녀가 탔다. 여기가 발리섬이라도 되는지 하와이안 꽃무늬 반바지와 난방을 입고 있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안 어울린다. 밤새도록 미국 여자애가 징징대고 옆 자리의 아가는 울어대고 앞 자리 아줌마는 바닥에 드러눕고 차는 타이어가 터져서 새벽에 허허벌판 한 가운데 멎었다. 새로 간 타이어 역시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얼마 못 가서 다시 차를 세운다. 승객들과 운전수가 합심해서 지나가는 버스를 세워 바퀴를 하나 빌려 돌돌 굴려왔다. 터진 두 바퀴는 짐칸에 다시 쑤셔넣고 그 분량의 짐을 객실로 옮겼다. 버스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일이 다 끝나자 차장이 미안한 지, 그들이 스노우 타월이라 부르는 '물수건'을 공짜로 하나씩 더 나눠준다. 다들 뜬 눈으로 고생 많았다. 잠도 못 자고, 미얀마에서 탄 것 중 최악의 버스다.

양곤에 도착해서 지친 나머지 택시를 타고 술레 파고다 까지 갈까, 삐끼와 간신히 2천에 협상 하고 택시에 짐을 실었다. 얼른 숙소 가서 씻었으면 좋겠다. 옷가지, 짐, 드러난 팔 다리에 온통 땀과 기름과 먼지가 얼룩덜룩 앉았다.

두 미국인은 나와 택시를 쉐어 해서 양곤에 들어가려다 말고 미얀마에 질렸다면서 바로 공항으로 간단다. 가 봤자 비행기 좌석이 당장 안 나와서 한참 기다려야 할텐데... 미얀마에 있는 내내 죽어라고 바나나로 연명하고 값 비싼 코카콜라를 마시면서(스타 콜라 가격의 무려 일곱배다)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택시 협상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뭐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니 멀뚱히 쳐다봐 주었다. 어쨌든 꽃무늬 티셔츠, 반바지 차람의 럭셔리 배낭 관광객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처음 봤다. 버스 터미널에서 공항까지 천짯이면 충분한데 무려 십 달러를 준다. 가는 길을 지켜봐 줬다. 힘들었는지 표정이 많이 안 좋다. 불쌍한 녀석들...

택시가 손님 더 끌어모으려고 기다리길래, 짐을 내려 터덜터덜 버스 터미널 입구까지 걸었다. 바보같은 택시 삐끼 녀석들, 밤새 고생해서, 2천씩이나 내고 자진해서 봉이 되 주겠다는데 다른 손님 태우려고 욕심을 부리니까 손님을 놓치는 거지. 50짯 주고 물어물어 시내버스에 올랐다.

옆 자리에 미얀마 에너지성에서 근무하는 샨족 출신의 할아버지가 앉았다. 그의 고향은 시뽀였고, 일본에서 컴퓨터 컨트롤 시스템 교육을 받고 캐나다에도 있었지만 정부에 소속된 관리라 다시 미얀마로 돌아왔다. 언젠가 내가 다시 미얀마를 방문하게 되면, 자기는 내년에 은퇴하여 고향에 돌아가니까, 시뽀로 놀러오란다. 40여년을 기술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부럽다. 행상을 짊어지고 나와 함께 버스 타고 열일곱 시간을 달려왔지만 몰골은 그래보여도 아세안 에너지 부문 미팅에 참석하는 엘리트다. 이 나라의 엘리트들은 말년에 쉬지도 못하고 텔렉스 전문 한 통과 동봉한 버스표 한 장 달랑 받고 먼 길을 제발로 찾아와 국제 행사에 참석하나 보다. 그는 자신이 샨족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악수하고 헤어졌다.

단지, 전세계 배낭 여행자 숙소 중 세계 최고의 무료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는 자화자찬을 확인할 겸(디스커버리에도 나온 적이 있는지 요란한 선전 문구가 입구에서부터 새겨져 있다), 화이트 하우스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6달러 짜리 값비싼 8층 독방에 체크인 하고(아무 생각없다. 이 상태로 도미토리에서 도저히...) 샤워하고 8시부터 시작하는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다. 거짓말이 아니다. 돌아다녀 본 어떤 나라도 아침 식사가 이런 성찬인 곳은 없다. 심지어 '식중독 경고'까지 붙어 있었다; 아래와 같은 것은 함께 먹지 말 것, 식중독 걸림: 수박과 계란, 라임과 우유, 망고스틴과 설탕. 아... 그렇구나. 하나 배웠다. 그런데 음식을 그렇게 안 내 놓으면 될 것 아니야?

샤워하고 방 안에 퍼져 있다가 티켓 오피스가 문 열 시간 즈음에 프론트로 내려가 푸켓 에어라인 오피스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왠 여행사를 가르쳐 준다. 사쿠라 빌딩 일층의 sun far라는 곳. 지쳤지만 이놈에 신년 때문에 또 발이 묶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꾸역꾸역 걸어갔다. 직원이 30분 쯤 간신히 전화하고 나서야 티켓 날짜를 '드디어' 바꿨다. 아... 만들래, 바간 때부터 계속 시도했는데 정말 징하다. 이 나라의 전화는 대체...

아까 할아버지 말로는 미얀마의 인터넷 라인은 바간넷 이라는 사설 회사가 아이비스타의 회선을 임대해서 운영한다고 하는데(그의 처제?가 그곳에 근무한다), 다른 데는 안 될지 몰라도 양곤에서는 인터넷이 가능할 꺼라고 말한 기억이 나서 사이버월드라는 인터넷 카페로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대부가 살고 있는 캐나다와 자주 email을 주고 받았는데 얼마전부터 계정을 차단 당했다고 한다. 옆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어서 자세한 얘기를 더 하지는 못했다. 입 조심 해야지.

인터넷 카페에 찾아가 양 손을 비비며 이제 사진을 올릴 수 있겠구나 히히 했는데 왠 걸, ftp 포트를 여전히 막아놨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올리면 되지만 20메가 분량의 백여장 사진을 그렇게 올릴 수는 없고. 터미널 서비스 포트도 막아놨고 메신저 포트도 막혀 있고 dns 연동이 안 되고, 심지어 nslookup조차 막아놨다. 웹질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것도 프록시에 여러 제한을 둬서. 중국도, 이란도, 시리아도,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는데. 이 나라 군부독재 여러분, 정말 대단하십니다요.

미얀마 여행은 끝났다. 짧은 시간 동안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체력이 허덕여 힘들었다. 더워서 많이 둘러 보지 못했고 더 돌아다니다가는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될 것 같아 인레 호수는 가지 않고 양곤으로 돌아왔다. 미얀마에 대한 인상이 참 좋다. 새해와 건기 막바지가 겹치고 물이 몸에 안 맞아 항상 입이 바짝 타 있는 등 여행하기에는 괴로웠지만, 시골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친절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것 외에는, 볼 것은 없는 나라다. 파고다 매니아라면 또 모를까. 기예하고는 '약간' 거리가 있는 무수한 파고다, 파고다, 또 파고다, 부다, 부다, 부다들은 좀...

윌리엄스라는 학자는 미얀마의 역사를 이라와디 강의 흐름에 비유했다. 이라와디 강의 저류는 변화하지 않고 상층부는 흐른다는 것. 그러니까 외세의 침탈과 수난, 모진 식민 역사를 겪어 왔지만 버마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는 마치 강바닥의 저류처럼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남아에는 문자화된 역사 기록이 오직 베트남에만 남아있어 서기 이전의 역사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나는 너무나 오랫 동안 동남아를 식민지 침탈의 정치경제적 역사 현장으로만 인식해 왔고, 그러한 내 관점이 동남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상당히 왜곡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번 여행에서는 접근 방법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왜 여행 중에 방문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 이 지랄을 떨고 있을까. 일부를 제외하고 개인사는 보잘 것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와 사회 전통은 그들의 삶이 영위되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따라서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는 주요한 지침이 된다 -- 이런 대외적 선전 문구 보다는, 그 나라를 좋아하기 위해서다.

시프트, 컨트롤, 영문 o, 숫자 일, 숫자 9 키가 안 먹는 맛이 간 리브레또의 키보드로 몹시 힘들게 타이핑 한, 미얀마에 대한 '문자화된' 내 여행 기록은 여기까지다.

방콕 도착. 할 꺼 다 하셨으니 맛있는 거 먹으며 스킨 케어하고 살 찌우고 놀자. 얼굴이 정말 맛이 갔다.
,

4/7 Bagan

여행기/Myanmar 2005. 4. 7. 20:34
아침에 일어나니 벼룩 물린 자리가 예닐곱 군데 생겼다. 미얀마 벼룩은 36.7도의 따뜻한 고기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 중에 영국인 여자와 '데이'를 '다이'라고 발음하는 영국인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인도에 있다 와서 짜이맛을 그리워 했다. 그가 양곤에서 만난 세 한국인 여자들 얘기를 했다. 꼴까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무작정 양곤에 왔는데 가진 것이 카드 뿐이고 수중에 달러가 없어서 애를 먹어 한국 대사관을 찾고 있단다.

미얀마에는 us 달러 외에는 거의 사용하기 힘들다. 어제 만난 오스트라아 친구는 유로당 850짯이라는 환율상의 불이익을 무릅쓰고 간신히 유로를 짯으로 환전할 수 있었다. 대사관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긴 하지만, 만날 수가 있어야 도와주지. 인터넷은 커녕 전화기에도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간신히 통화할 수 있는 형편이니. 옆에 있는 영국 여자가 참견하길, 큰 호텔에서 비자 카드로 7퍼센트의 수수료를 떼고 현금 지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자기는 그렇게 했다고. 혹시 시도나 호텔 아뇨? 그렇단다.

항공권 일자 변경이 잘 안되어(전화가 잘 안된다) 열 시까지 시도하다가 전날 예약한 마차 투어를 시작했다. 어쩐지 타운에서 나만 마차 투어하는 외국인 '봉' 같다.

바간은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가 들어섰던 곳이고 왕조를 형성한 지 3대 만에 몽골이 심심해서 침략했다가 멸망했다 -- 몽골 녀석들은 말을 한 번 타면 어떻게 멈추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왔다가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시시했는지 그냥 돌아갔다. 그걸 역사상 중요한 사건으로 여기는 관점과 달리 미시 역사 해석에서는 왕조의 절멸이 북부 미얀마 문명의 절멸을 의미하지는 않고, 미얀마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역사학자들이 즐기는 그 관점에서는 몽골의 침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 3대째 왕의 무리한 파고다 건설 작업에 의해 국부가 바닥난 상황이라 몽골의 침략은 단지 마지막 쐐기를 틀어박은 것이라고 한다. 대다수 파고다는 바고에서 끌고 온 3만여명의 중들이 설계하고 만든 것이다. 지역 전체에는 4천 여개의 파고다가 있었고, 그중 2천개는 지진이나 전란 등으로 무너졌다.

파고다에 관해 일일이 설명하기가 귀찮다. 사실상 이곳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원 외형은 몇 안되었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이고 무지한 관점에서다.

마부는 젊은 친구인데 적당히 일하고 돈을 벌려는 생각인 것 같아 다소 빡세게 굴렸다. 오후 세 시가 넘자 눈에 띄게 지쳐서 음료수 하나 사주고 다독이며 계속 굴렸다. 별 이유는 없었다. 바고에서 늙은 싸이카 운전수는 다섯 시간 넘게 그 앙상한 몸뚱이로 제 다리를 놀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둥 말둥 일해 간신히 돈을 벌었는데 이 녀석은 6천짯이나 되는 돈을 마차를 몰며 편히 다니는데도 날더러 다른 관광객은 그렇게 많은 곳을 둘러보지 않는다 둥, 날도 더운데 두 시쯤 마무리하고 돌아가자는 둥 바간의 무수한 파고다를 향한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지닌 손님을 무시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계약의 무서움도, 돈벌이의 힘겨움도 모르는 스물 네살 짜리 인생에게 다소 살벌하게 구는 것을 보니 나도 많이 늙은 것 같다.

그의 이름은(미얀마 남자는 여자와 달리 성이 없다) 바간 왕조의 두번째 왕의 이름이지만 자기 이름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미얀마인은 출생한 요일에 해당하는 미얀마 글자 자음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갖는다.

파고다의 여러 사이트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끔, '오빠', '진짜 루비', '구경하고 가세요' 따위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들이 프레젠트를 주고 받은 천원 짜리 지폐를 짯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들은 손으로 만든 작고 보잘 것 없는 선물을 건네주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관광객의 주머니에서 기어이 천원, 오십밧, 십위엔, 백 리알 짜리 지폐를 꺼내게 만들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쳤고, 그들에게 그들이 그린 그림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기도 했다. 상황이 웃겼다. 바간의 환쟁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그림을 그려서 판매하는데, 자기가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크리슈나를 부처라고 하기도 하고, 마라를 천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날도 더운데 돌겠다.

바간의 넓은 사이트에서 만난 미얀마 사람들은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임을 느끼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사람들도 이 지경까지 '무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뽑기에서 아주 나쁜 패를 뽑은 것 같다. 고수들은 이 더위에 집에서 쉬고 있나 보다.

몇몇 사이트에서 본 페인팅은 더 바랄 나위없이 훌륭했다. 작열하는 태양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사원들을 팔짝팔짝 뛰어다닌 보람이 있다.

비록 겉 껍데기는 인도 짝퉁 사원이지만(수학적 엄밀함에 필적하는 대칭성에서 비롯된 아름다움, 복제 손실과 그 문화가 지닌 독자적인 창조적 재해석 등 여러 관점에서) 그런 그림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대개의 그림은 부처의 행적을 묘사한 것인데 면 캔버스에 회반죽을 입히고 벽면에 고착시킨 후 여러 암석에서 추출한 염료와 금가루를 섞은 안료로 그렸다. 십이세기 무렵의 그림인데 열대성 기후에서도 그 화려한 색채를 잃지 않은 것도 있다. 십이세기나 되었는데 사실 그림의 정교함은 좀...

보전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지만(터키의 카파도키아라고... 네스토리우스의 버섯 둥지에서 본 적이 있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페인팅을 생각하면 관광객으로서 판단컨대 가격대 성능비가 양호하다)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만지게 하고, 백열등을 비추는 등 관리 상태는 아주 나빴다. 나야 늘 그렇듯이 사진 찍지 말라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대다수 역사 유적지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전등을 비추는 것이 그림을 더 손상시키는 것임에도, 디지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바간 지역은 워낙 광활해서 둘러보는데 만도 며칠이 걸릴 것 같다. 이 더위에 제대로 둘러보긴 무리일 듯. 마차를 타고 편하게 돌아다니는데도 지친다.

지나가다가 자전거를 타고 사이트를 순회하는 일본계 미국인 여자를 만났는데, 날더러 대뜸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니까 편하고 좋겠어요' 라고 말한다. 그녀의 남편은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자전거를 허리춤에 기대놓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암요. 그 재미죠(yep, that's why i took the horse wagon) 라고 말하고 미소지으며 그녀의 헉헉거리는 자전거를 추월했다. 그녀는 의식있는 훌륭한 남편을 둬서 정.말. 좋겠다. 답사는 역시 말 다리가 아닌 자신의 두 다리로 직접 해야지, 나처럼 마차 타고 드러 누워 한가하게 돌아다니면 안되고 말고. 정말 서양인들의 체력은 끝내주는 것 같다. 자전거야 500짯이면 빌리고 원하는 곳은 어디나 갈 수 있는데, 이 놈에 호스웨건은 6000짯이나 하면서도 드라이버와 어디 가자 어디 가지 말자 신경전을 벌여야 하니 말이다. 아, 덥다. 이번에는 어느 사원으로 다그닥다그닥 느긋하게 달려가 볼까.

거의 모든 한가한 삐끼들은 한결같이 내 목에 두른 손수건을 탐냈다. 한국 천의 품질과 발색의 우수성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지. 물건 볼 줄 아는군. '진짜 루비' 정도면 견줄만 한 거야. 이것하고 같은 빨간색 루비하고 바꾸자니까 손사레를 친다. 손수건을 물에 적셔 목에 두르면 시원하고 신경계의 열폭주도 막아준다. 내 시계도 탐을 냈지만 그에 상응하는 값어치를 지닌 물건은 안 보인다.

어떤 녀석은 불상 머리를 잘라 팔려고 했다. 왜 그러는거야 대체 엉? 한참 캄보디아가 앙코르와트 하나로 먹고 살고, 문화재가 어쩌고 저쩌고 설교를 늘어놓았다. 이 김에 인디아나 정스 짓이나 해볼까. 11세기 무렵의 빨리 한 보따리 가지고 오면 시계와 바꾸겠다고 말했더니 표정들이 진지해진다. 구하지 못할 꺼니까 어떻꼐 잔머리 굴려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광객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모조품을 미리미리 준비해 둘 것이지. 파고다에서 방금 캐낸 것처럼 적당히 박쥐똥 냄새와 썩은 내도 나게 해서. 산스크리트와 빨리어 잘 아는 나이 든 중 하나 꼬셔서. 장삿꾼들이라 장사만 안다. 장사 잘하려면 물건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안 그럼 용팔이처럼 헛소리나 늘어놓고...

물론 미얀마 정부는 안틱의 외부 유출을 막고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 한테 자기들 유물의 가치에 관해 되레 설명을 듣고 있으니 어디 관광지에 가나 장사꾼들이 무시당하는 거다. 뭐 일단 값어치 있는 것들은 일찌감치 벌써 털려 나갔을 것이다. 남은 것들은 쓰레기 뿐. 그러나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평범한 시장통에서 오래된 골동품이 보이듯이 여기도 대외적으로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국가였던 터라 잘 뒤지면 뭔가 나오긴 할 것 같다.

투어가 끝나니 오후 6시, 말은 뻗은게 이해가 가는데, 마부도 뻗었다. 소파에 널부러진 그의 손에 돈을 쥐어 주고, 내년에 또 보자니까 질렸다는 듯이 히히 웃고 슬며시 외면한다. 녀석... 마음에 안 든다. 이 놈은 한국인을 좀 더 만나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워낙 아는 것이 없고 제 편한대로 게을러서 추천해주긴 뭣하다.

사진은 많이 안 찍었다.





































저녁에 누와 레스토랑에 들러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한 천짯짜리 미얀마 백반을 주문하는데, 날더러 일본인이냐길래 한국인이라니까 일하는 아가씨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며 난리 법석을 부린다. 조금 있으면 저기 틀어놓은 tv에 한국 드라마가 나온단다. 태국에서 요즘 한창 '불새'라는 드라마를 하는데 혹시 그건가? 그렇잖아도 미얀마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얘기를 나한테 부러 하던데, 날더러 뭘 어쩌라고.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밥 먹고 튀었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냐웅 우 주변 마을과 쉐지곤 파고다를 돌아다녔다. 라기 보다는 길을 잃어 정처없이 헤멨다. 숙소와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관광지인 냐웅 우 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미얀마 촌락의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산다. -끝-

오늘도 어제 만났던 일본계 미국인 여성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쉐지곤 파고다를 방문했다. 난ㄴ 일본 여성들에게는 비교적 친절한 편이다. 그런데 어제 나하고 함께 온 오스트리아 외톨이는 어디 짱 박혔길래 관광 안 하고 있는 것일까. 만나서 내가 신경 써서 완성한 밀리터리 캠프 아이디어를 들려주고 어떤지 물어보고 싶은데. 일본 여성에게 남편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숙소에서 쉬고 있단다. 푸훗.

특이하게도 그녀는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삐끼들이 돈 많은 일본인 취급해서 귀찮지 않냐고 물으니 그렇잖아도 괴롭단다. 그럴 땐 한국인 행세를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마흔이 넘은 지금이 처음 동남아를 방문하는 것이다. 일본도 안 가봤다. 남편 참 대단한 사람이다. 여긴 인도에서 굴러다니는 녀석들이나 좋아할만한 곳이지 왠만한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텐데. 학교 교사고 딸이 하나 있고 자기는 남편 말 듣고 따라 왔는데 이렇게 고생스러운 줄 몰랐단다. 잠시 뒷골이 땡겼다. 아내하고 다닐 때 저 아줌마 남편처럼 나도 그랬던 것 같긴 한데, 함께 파고다 경내의 달구어진 돌위를 팔짝팔짝 뛰어다니다가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서 헤어졌다.


Shwezigon paya, 붓다의 치사리를 등에 지고 돌아다니던 코끼리가 '''더위에 지쳐''' 멈춘 자리에 세운 사원.


Shwezigon paya, 아, 이것은 남인도에서 많이 보던 방식. 왠만큼은 건전한데, 한 군데, 반나의 여자들이 승려 밑에서 춤추고 있다. 뭐하자는 걸까. 약올리는건가? 아니면 육보시?


Shwezigon paya, 미로처럼 얽힌 회랑을 따라 걷기. 만만해 보였는데, 십분 가량 걸은 것 같은데, 미로가 끝이 안 난다. 그래서 허들을...


Shwezigon paya, 그럴듯. 설교듣는 분위기 나올 듯.


Shwezigon paya, 동쪽 입구의 긴 회랑을 걷던 중 왼편에 보이던 힌두 사원. 아저씨는 사방을 두리번 거리더니 오줌을 누었다.


쉐지곤 파야 Shwezigon paya, 동쪽 입구의 긴 회랑.
,

4/5 to Bagan

여행기/Myanmar 2005. 4. 5. 14:32
6시 기상. 숙소 카운터에 가서 티켓을 다시 물었다. 금시초문인 듯 한 말 또 하게 만든다. 어젯밤 다시 이 숙소를 찾아왔지만 도무지 나로서는 숙소 스태프들이 친절한 줄 모르겠다. 남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저 앵무새처럼 '안녕하세요'하는 정도랄까. 그들은 백불 환전해 달라는 내 부탁도 잊어 버렸고, 바간 버스 시간표를 아는 내 앞에서 바간 버스는 하루에 오후 한 편 뿐이라고 우겼고, 아침식사 준다는 말도 안 해서 저번에는 아침을 걸렀고, 체크인 다 마치고 20분 기다리는 동안에도 방 청소가 안 끝났고, 다시 찾아온 손님을 이래저래 귀찮게 하고(두번째 체크인인데 패스포트를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어젯밤 부탁한 티켓을 알아보지 않아 다시 묻게 만들었다. 좋은 숙소란 생글생글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 붙이는 것보다 손님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곳을 말한다.

사적인 통화를 하느라 20분이 지나서야 티켓 상황을 알려준다. 자리가 없단다. 입석이라도 괜찮냐고 묻는다. 일종의 감이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오늘 바간 가는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명 있단다. 그러고는 은방울 자매와 스태프는 그 건을 잊은 채 태평하게 앉아 있어서, 내려오는 여행자들 마다 바간 가냐고 물었다. 이틀 동안 본 친구다. 택시 쉐어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왔다. 로얄 게스트 하우스가 친절? 그냥 평범한, 그저 그런 숙소다.

택시를 같이 탄 친구는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내가 구질구질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난 얘기를 줄곳 장황스럽게 늘어놓는 이유는, 아내가 나는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구질구질한 얘기, 한 이야기 또 하게끔 하는 이야기가 별로 내키지 않아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처음 나누는 말들이 무엇인가. 신변과 하는 일(여행에서 만난 여행자라면 여행 얘기)에 관한 것들이다. 서너번 하다보면 질린다. 어쨌거나 그게 얼마나 재미없고 지겨운 얘기인지(특히 아내는 거의 믿지 않을테지만, 나처럼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증명하려면 좀 더 흥미로운 주제를 제쳐두고 사람들 만난 얘기를 늘어놓겠다. 그러다보면 여행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라는 남들의 개똥철학이 가진 자기모순이 스스로 드러나겠지.

택시 잡으려고 돌아다니다가 택시 삐끼가 하나 접근해서 버스 터미널까지 간다니까 운전수가 2천 달라고 하자 대뜸 하는 말이 i don't like cheating. don't cheat me. 였다. 갑자기 앞날에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 원체 서양 여행자들하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지만 왜 가격 뻔한 걸 가지고... 그 친구가 잠깐 환전하러 간 사이 여러 택시 삐끼들과 환담을 나눠 판단해보니 2천이 적정선 맞다. 20분 남았는데 500짯 주고 싸이카 타고 가기는 시간이 늦고, 택시를 잡았다. i don't like cheating 어쩌구 하기 전에 시계를 보여줘서 입을 막았다. i don't like cheating이라니... 간만에 들어본다. 내가 알기로 치팅을 즐기는 여행자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숙소에서는 좌석이 없다고 했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돈을 지불했다. 4200짰, 이제 대충 교통비를 감 잡았는데, 시간당 500짯으로 계산하면 소여시간과 도시간 이동 교통비가 얼추 드러난다. 4200짯이면 8시간 거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빙고! 좌석이 있다. 그럼 그렇지. 한 시간 전에 예약해도 자리는 난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좌석을 강제로 양보당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짐을 버스 상판에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오스트리아 친구와 나란히 일,이번 상석이다. 버스는 30분 후에 출발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친구는 치앙마이에서 항공권을 끊어 만달래로 곧장 날아왔다. 복식의 특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인도에 다닌 티가 났다. 정말 그랬다. 제일 좋아하는 인도의 도시가 어디냐고 물으니 푸시카르란다. 푸시카르? 버스 여행 하다가 속이 뒤집혀서 푸시카르에서 묵게 되었는데 요양겸 며칠 쉬다보니 3주를 묵었단다. 25루삐짜리 숙소에서. 스물일곱, 독신, 학생. 가족은 아버지와 스페인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하나 뿐이고 빈에서 비즈니스 스쿨을 6년 다녔다. 빠이에서 잘 놀다가 누가 미얀마가 좋다는 소리를 해서 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빠이는 완전히 맛이 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태국 동부와 태국 최남단의 괜찮은 처녀지가 아직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기차 운전수였고, 그는 열살때 처음으로 기차를 몰아봤다. 기분 끝내줬겠다. 그래서 기차를 좋아하지만 버스는 영 아니란다. 남인도 얘기를 하다보니 그가 사원에도 제대로 들어가 본 적이 없고 프리스트와 노가리 까 본 적도 없고, 사두와 놀아본 적도 없는 등 다른 많은 서양 여행자들처럼 인도에서 재미있는 것만 쏙 빼고 불쌍하게도 다르질링이나 스리나가르 같은 곳에서 짱박혀 시간 죽이다 보니 깔리가 년인지 놈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 다른 많은 '전형적인' 여행자처럼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고생담을 줄줄이 엮고 가끔 나이스 플레이스 한둘 쯤 튀어나오는 뭐 그런 것이다.

날더러 종교가 있냐길래 없다니까 놀라워 하는 눈치다. 한국에서는 출생 신고서에 종교를 적지 않냐고 묻는다. 한국에 종교 비슷한 것이 있는데 종교 라기보다는 종교 마케팅과 종교 삐끼와 종교 시장이 있어서 수요자들이 종교 쇼핑을 한다고 대꾸했다.

네가 한국에서 밤 비행기 타고 돌아다니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네온 글로우 크로스를 볼 수 있는데(월리엄 깁슨을 아냐? 알면 상상이 될꺼다. 모른다) 마치 거대한 그레이브 야드를 연상시킬 것이라고, 도시는 그런데, 한국의 모든 산에는 호국 몽크들이 죽치고 있는 템플이 있어서 크리스찬과 몽크가 종교시장에서 경합을 벌이는 중이며 공식적으로는 한국의 종교시장을 크리스찬과 몽크가 7:3으로 나눠 먹고 있는데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해줬다. 종교시장은 그렇지만 그 생활과 문화가 종교와 분리되지 않은 의미에서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가 선교 활동이라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에게는 그게 무척 신선했던가 보다. 종교 얘기를 한참 하고 나서야, 중국, 일본, 한국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관한 얘기가 뒤따랐다.

말한 것 중 요점만 간략하게 정리하면, 한국, 일본은 중국은 한 뿌리다. 자기들끼리는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그 문화, 역사가 동아시아권 역사로 통합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앞으로 골치아픈 문제들이 많다. 뭐 그 정도.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 지도 모르는 형편이라 한국이 20세기 신흥공업국가 중에서 매우 큰 생장(성장이 아니다)포텐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약하다는 것도 모른다. 그가 한국이 모더나이즈된 국가라고 할 때 나는 한국이 웨스터나이즈된 국가라고 야유했다. 그는 내심 한국의 생활 수준이 동남아 여러 국가 보다 약간 나은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아는게 그거 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알면 된 거다 굳이 알려줄 필요 없고 서양 사람들한테 한국이 어떻다느니 설명하는 것을 별로 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여행을 통해 동양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그 나라 사정을 알게 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한국의 숙소 가격이 얼마냐고 묻길래 미니멈 십불이고 그걸로는 거지같은 방 하나 간신히 구하니까 유스호스텔을 잘 찾아보라고 말해줬다.

십오세가 넘은 사람은 오스트리아에서 직업과 진학 둘 중에 하나를 스스로 선택하는데 대부분 직업을 선택해서 오스트리아 인들 중에서 자기만큼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유럽식 교육의 문제점을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그만큼 영어를 잘 하는 오스트리아 사람을 여러 번 만났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인간은 호모 제록스라서 반복암기, 복제를 통한 학습이 창의력 운운하며 실제로는 그저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고 '방치하는' 학습보다는 유효하다고 본다. 창의력의 상당 부분이 섬세한 복제 능력, 따라하기에 좌우된다는 것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다. 소위 창의력(창조적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좀 더 기술자스럽게 말해)의 습득 시기가 영아 때 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20세 이전까지 단순 암기 학습한 것들이 전면에 등장해 뇌에서 조화로운 양자 폭풍(패턴 일치, 깨달음 등 뭐라고 부르건 간에)을 일으키는 시점은 십육세-이십세 무렵이 맞지 않을까 싶다.

(영아때 사고의 자율성을 통제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는 그것이 발현될 토양이나 사고 선택의 자유가 현세 이전에 단지 부족했을 뿐일 수도 있다. 한국인이 밀집 사회에서 별고없이 존재하려면 자신의 미친 생각을 합의 가능한 최저-상한 수준으로 노말라이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보라. 이제 아무도 한국 사회가 초딩부터 보수 꼴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사회를 박살낼 것 같은 반타협적이고 자기중심적 규준으로부터 균등 조화와 이데올로기의 일치를 목말라 하지 않던가?

내 견해는 그러니까 창의적 사고방식은 반복적이고 단순한 암기 등의 방식으로 충분한 지식을 습득하고(이 과정이 가장 중요. 영아 시기를 지나면 지식의 흡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식-수단을 확보하지 않은 채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봄) 더불어 학습의 방법을 배우는 등의(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자발적인 사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맞지 않냐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그럴듯 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의 자유방만한 유럽식 교육의 문제점에 맞장구를 쳐 준 것이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창의력 교육이나 대안교육이 기존의 강압적이고 전통적인 학습에 비해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나쁠 수도 있다고 여겼다.

흠, 영어나 학습은 그렇다치고,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세계 인식이 없으면 그냥 오스트리아라는 깡촌에 사는 촌뜨기에 불과하다. 그는 여행이 한국인을 만나 한국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지적인 면에서 나같은 한국 여행자를 통해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한정적이다. 차라리 한국에 관한 책을 한두 권 읽고 한국에 찾아가서 사회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아야지, 나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한국 상황은 나름대로 즐거운 무협지가 되어 버린다. 학습에 관한 얘기 이후로는 입 안으로 먼지를 삼키며 졸기 바빠서 더 이상 대화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차가 송아지를 치일 뻔 해서 깨어나 다시 잡담을 늘어 놓았다. 어찌된 일인지 승객이 30퍼센트는 늘어난 것 같아 버스가 미어터질 지경이다. 그가 한국에서 갈만한 곳이 어딘지 추천해 달란다. 한국만의 독특한 관광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외국인을 만나면 떠들어대는 내 십팔번은 백두대간 종주이지만 너무 자주 써먹어서 나 자신이 식상해진 나머지 새로운 아이템을 떠올려 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템플스테이를 알려주었다. 외국인 여행객 상대하는 여행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성공할 것 같은데, 절간에서 몽크들과 함께 참선하다가 잠시 딴 생각하거나 조는 머리통에 죽대를 한방씩 날리면 중들도 재밌어 할 것 같다. 제대로 하기 위해, 머리는 민다. 자기가 먹을 나물은 자기가 캐도록 하고 숙소 청소 등속도 '마음 수양'을 위해 본인이 알아서 하게 하면 되니까 절간에도 여러 모로 큰 노력 안 들이고 이익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두번째 테마는(이건 말하지 않았다) 한국 고유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밀리터리 트레이닝 캠프다. 제대해서 놀고 있는 조교들 모아 가슴에 명찰 하나씩 붙여준다. 'license to kick'이라고, 한국 군대의 강도높은 훈련은 주둥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단 한국의 살벌한 분단 대치 상황을 설명하고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잠시 브리핑한 후, 돈 내고 들어온 여러분은 조인트를 까여도, 불알 한 쪽이 터져도 그 책임을 묻지 않겠으며 여기서 받은 훈련 내용을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않겠다는(별 이유는 없다. 장사속이다) 피의 각서를 쓰게 한 후 입교시킨다.

훈련은 6주 과정이다. 여행자 훈련생들의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이마데 돋은 식은 땀을 닦게 될 정도로) 살벌한 훈련과 갖은 구타를 통해 그들은, 한국식 군대용어로, 드디어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만일 자기 힘 믿고 개기는 혈기 왕성한 놈이나 방법론적 회의에 심취한 녀석이 있으면 그 즉시 조교들 떼거리로 집단구타를 실시한다. 그리고 훈련이 없는 날에는 잔디깎기와 경쟁을 붙여준다.

훈련 일주차, 마리화나에 쩔은 몸을 갱생하고 플라워 파워를 믿는 온갖 히피스러운 정신상태를 고상한 맨정신, 즉 군바리 정신으로 일깨운다. 훈련 2주차, 익숙해질만하면 온갖 트집을 다 잡아 군대란 그저 집에 키우는 강아지처럼 상사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곳임을 똑똑히 깨닫게 만든다. 훈련 3주차 pt열나게 시키고 마지막에 실탄 사격 훈련 5분 실시하고 훈련 4주차에 일주일간 행군을 실시하여 개인주의자에게 동성애, 아 실수, 동지애를 가르치고, 5주차에 야산을 빌려 서바이벌 북진 통일 게임과 일본 원숭이 정벌 게임을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예로운 향토 예비군복을 지급한 후 이틀에 걸쳐 진정한 전역 군인의 행동거지를 지도한다. 이거 의외로 익사이팅하고 도전적이다. 대다수 국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군 경험이 전무하며 한국군의 훈련 강도는 세계적으로 수준이 높다. 장비가 후져 정신력으로 버티다보니... 이 밀리터리 캠프의 단점은 실탄 사격 연습이 가능한가와 이런 걸 즐기는 개마초들에게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 친구에게는 아시아권 최고의 밤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의 나이트 부킹 또는 루어낚씨질을 소개해 줬다. 한국에 놀러온 여행자들이 동아시아 일대를 휩쓸고 있는 영어 학습 열풍에 힘입어 쉽게 강사 자리를 얻고 수많은 현지 여자들을 골라 사귀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등등.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여덟 시간에 걸쳐 했다. 내 자신이 지겹다. 이런 얘기나 늘어놓으려고 비싼 돈 들여 여행하겠나. 아내 말대로 나는 사람을 가린다. 귀찮아 한다. 오늘 충분히 했고 아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만은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매우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라면 믿지 않겠지. 가급적 안 만난다. 안 만나고 얘기 안 한다. 그게 내 삶에서 앞으로 주욱 나아갈 방식이다.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오스트리아 촌뜨기는 버스에 내려서 삐끼떼가 몰려오는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고 그들을 마다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삐끼 하나 골라잡아 마차에 누워 숙소까지 띵까띵까 가는데 그는 배낭 메고 졸졸 따라온다. 마치 다른데 갈 것 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숙소에 도착해서 안 도와줬다. 협상 안되니까 멍하니 있다가 다른 데 가서 에어컨도 없는 방을 이틀에 십불로 잡았다. 나? 나는 그가 협상하다가 실패한 아가씨더러 예쁘다고 한 마디 해주고 더블룸 에어컨 있고 배쓰 포함해서 이틀에 7불.

이번 여행에서는 가이드북도 안 들고 왔고, 프린트물도 쳐다보지도 않고, 아내가 즐겨하는 방식대로 무작정 가서 알아서 하는 방식을 택했다. 숙소 매니저에게 항공권 날짜를 바꿀 수 있는지 항공권을 맡기고 괜찮은 식당을 물었다. 미얀마식 백반으로 오랫만에 포식했다. 대략 2달러에 고기 커리 한 가지와 열 다섯가지 반찬, 국, 한 솥 분량의 밥이 통째로 나오고 식사가 끝나면 세 가지 디저트를 먹는 코스다. 모든 반찬이 기름에 볶아 기름기가 너무 많고 약간 짜서 반찬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숙소에 벼룩이 있는 것 같다. 에어컨을 틀고 나일론으로 된 츄리닝을 입고 잤다. 벼룩은 나일론을 싫어한다. 그나저나 젠장 난 왜 맨날 벼룩에 물리냐...

열시 무렵에 픽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빨래를 하지 못했다.
,
아침 일찍 일어났다. 닭들이 우짖는다. 미얀마 닭들은 마지막 여운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꼬끼요꼬끼요' 대신 '꼬끼요 꼭'하고 잘룩 울음허리를 끊었다. 낮에는 발음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베란다로 붉디 붉은 해가 떠올랐다. 해 뜨는 시각 5:30am, 해지는 시각 6:30pm.


2달러가 안되는 괜찮은 숙소의 아침.

주인 아줌마의 추천으로 옆집에 가서 '꼭이요 꼭' 아침 닭으로 국물을 우려낸 맛있는 샨족 스타일 국수나 먹을까 했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근처 찻집에 앉아 라파이를 시켜 한 잔 들이키고 뜨거운 차를 몇 잔 더 마셔 속을 풀었다. 입술이 하얗게 떠 있다. 숙소 주인장에게 기차 시간을 물으니 'nine thrity maybe'에 출발한다고 알려준다. '아마도 9시 30분'까지는 '최소한 한 시간'쯤 여유가 있어 동네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동네 정경. 오른쪽의 쓰레기만 빼고. 아침을 만들어 먹으려고 곳곳에서 피운 장작불 탓에 대기가 뿌옇다. 어쨌든 호빗족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같지 않을까 싶다. 오른쪽 쓰레기만 빼고.


잠에서 깬 사람들이 다운타운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샨 궁전에 갔으나 너무 이른 시각인지 문이 닫혀 있다. 그에게 샨족 역사에 관해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샨족은 아마도 중국 서북부에 사는 장족이 이주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샨 궁전만 빼고 사실상 이 동네의 모든 '관광' 포인트를 어제 다 둘러본 것 같다. 트레킹이 있는데 소수민족 구경거리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는 주인장한테 온수 샤워는 필요없다고 떵떵거렸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쌀쌀하다. 공동 샤워장에서 슬그머니 온수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다. 윽 차거. 태양열 축열로 쌓아놓은 온수는 어젯밤에 벌써 다 식었나 보다. 방값을 지불하고 체크아웃했다. 주인 아줌마는 장사속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목소리로 며칠 더 쉬다가지...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기차역 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떡이며 들었다.


아침 시주 행렬에서 본 괴승. 가다가 pda를 숙소에 두고 온 것 같아 철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배낭을 열어 뒤적이고 있었는데, 슬며시 다가와 시주받은 과자 하나 건네주고 쓰읍 웃더니 자기 갈 길을 간다. 중들이 원래 시주받은 거 사바세계의 평민 족속과 나눠먹기도 하던가? 아니, 그건 그렇고, 내 몰골이 뭐가 어쨌길래 자비심이 발동한 거지?

기차역은 정말 징하게 생겨 먹었다. 식당인지 역사무실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공무원'이 앉아 외국인 삥 뜯어먹고 있었다. 오늘 출발하는 외국인이 있냐고 물으니 없단다. 2달러짜리 티켓을 사려다가 마음이 변해 4달러 짜리 티켓을 끊었다. 기차여행을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사연 많다. 인도에 있을 때 라즈다니는 물론 샤탑디 한 번 타보지 못했고 중국에서는 꼬랑내가 진동해서 거의 미쳐버릴 것 같은 3등석 기차만 타고 다녔다. 베트남에서 딱 한 번 타 본 기차는 멀미로 밤새도록 왝왝대는 아줌마가 옆에 앉아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탄 기차는 그나마 컴파트먼트였는데 사막을 가로지르다 보니 자나깨나 먼지를 뒤집어 썼다. 모처럼 분위기 잡고 안데스에서 탄 기차는 파업 때문에 가다가 멎었다.

이쯤 되면 기차에 한이 맺히는 것이 당연해서 기차를 안 타게 된다. 특별히 띠보에서 핑우린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이유는 이 구간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깊은 협곡을 통과하는 코스이고 경치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며, 매번 기차운이 나쁠 수는 없을 꺼라는 확률적 믿음이 있었다. 암 뽑기지. 그래서 띠보를 방문한다기 보다는 기차여행이 여기까지 올라온 목적이다. 그리고 이왕 가는 김에 2달러 더주고 좀 더 안전빵하게 럭셔리 기차 한 번 타보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기차는 정확히 나인 써티 펄햅스에 도착해서 텐 섬씽에 출발했다. 와우! 제 시간에 오는 기차라니 신선한 충격이다. 한 시간 밖에 안 늦었다. 만사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자리를 보니... 2달러 짜리 ordinary class와 내가 끊은 4달러 짜리 first class 좌석 사이에 차이점은 앉는 자리에 쿠션이 하나 더 깔려 있는 것 밖에 없다. 좌석 번호는 일번. first class라서 일반인들이 범접치 못할 뭐 그런 멋진 칸을 상상했는데, 오디너리와 마찬가지로 온 사방에 짐짝들이 꾸깃꾸깃 쑤셔 넣어져 있고 닭장처럼 바글거렸다. 내 자리에 젊은 처자가 앉아 있다. 눈치 주니까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손짓 발짓을 해보니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먹겠다. 멀미가 날 것 같으니 자리를 좀 양보해 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멀미? 아, 그러라고. 얼마든지.

멀미가 난다는 처자가 왠일인지 스테이션에 도착할 때마다 자꾸 창문을 닫아 달라고 부탁한다. 뭐 부탁이니까 들어주지만 왜 저럴까. 그 처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창문에 유리창이 달린 것이 아니라 숨구멍이 숭숭 뚫린 그냥 철판이다.

다음 역에서 창문을 좀 늦게 닫다가 물벼락을 맞았다. 역 주변에 양동이와 컵을 들고 어슬렁 거리는 꼬마애들이 바글거렸는데, 양동이 물을 손님한테 파는가 보다, 야, 저렇게 물도 한 컵씩 팔다니 여행 오래 하고 볼 일이야, 나름대로 신선하고 여유롭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기차가 슬슬 출발하기 시작하자마자 컵으로 양동이 물을 퍼다가 창문 마다 냅다 뿌려대는 것이다. 일부 힘 좋은 놈들은 양동이 채로 들이 부었다. 호스도 있었다.

그 양동이 물을 뒤집어 썼다. 역마다 있는 그 망할 녀석들이 집요하게 부어대는 통에 옷이 흠뻑 젖고 젖은데 또 젖으니까 옷이 마를 새가 없다. 쫓아가서 알밤이라도 먹여주려고 하니까 말린다. 처음에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페스티벌 이란다. 워터 페스티벌, 낀쏨? 태국식으로 송크란 축제, 그게 앞으로 일주일 후에 시작되는데 이 깡촌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이 난리다. 아니 컨츄리 사이드에서는 축제를 무려 한달 동안 한단다. 그래서 매 스테이션 마다 속수무책으로 물을 뒤집어 쓰고, 축제지, 허,허, 암, 축제니까, 허허 웃었다. 그나저나 내 기차여행은 매 번... 관두자.


정겹고 친근한 보통 시골역 풍경같지?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오른쪽 구석에 물 양동이와 컵을 들고 승객을 바라보는 저 불순한 눈빛이 군중 속에 틈틈이 도사리고 있다. 저 앞에도 한 놈 있다. 이 놈들은 물을 뿌려대고 움직이는 기차를 향해 악귀처럼 낄낄 웃는다.

카메라가 젖어 세상에서 두번째로 깊은 계곡 모습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핑우린에 도착. 기차는 두 시간 연착.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 픽업이 역 앞에 있다. 픽업을 몇 번 타보니 사람들에 치이는게 끔찍해서 500짯 더 주고 운전수 옆, 앞 좌석에 앉기로 했다. 만달래까지 1500. 짐을 다 싣고 그 비좁아 터진 좌석에 사람들이 꽉 차고 열댓 명쯤 차 난간에 샹들리에에 달린 유리조각처럼 주렁주렁 매달리고 나서야 차가 출발한다.

내 옆에는 군바리가 앉았다. 대학 마치자 마자 하사관으로 들어가서 지금 captain이란다. 자기는 일반 군인과 다르단다. 자꾸 스왓, 스왓, 람보, 코만도 하길래 뭔 소리인가 했더니 특무대(special army force)소속인 것 같다. 인상 참 드러웠지만 화끈하게 자기는 타이놈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애 둘 딸린 아버지 답지 않게.

ak47과 m16을 사용한다니 반갑긴 하다. 이들의 정신력은 소총으로 능히 코브라를 하늘에서 떨굴만도 했다. 그런데 특무대가 그런 구질구질한 소총을 사용한단 말인가? 담배를 자꾸 권하고 휴게소에서 쉴 때 음료수도 사준다. 그러더니, 한국은 핵을 가져서 좋겠다는 것이다. 얼떨떨하다. 또, 미군 탱크에 깔려죽은 한국 여중생 얘기를 한다. 자기 같았으면 미국놈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분해한다. 나는 그저 평범하고 애국심 강한 바보 군바리인 줄 알았는데, 이 나라엔 대체 얼마나 많은 구두닦기 대학생과 해골 바가지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온 몸에 문신을 새긴 날나리 처럼 생긴 장교들이 있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하나 더, 한국의 소식은 미얀마로 전해지는데, 한국의 여러 신문에서 아시아 관련 뉴스 중에 컨텐츠가 제대로 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자기 주변 나라 소식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인 셈이다. 언제까지 그러려는지들.

잘 가던 픽업이 멎었다. 운전수가 뒤에 가서 한참 소리를 질러댄다. 승객 중 몇 명이 사라진 것이다. 앞 좌석에 타고 있어서 몰랐는데 장교가 통역해주길, 뒷 손님 중에 한 명이 술을 사들고 타서 컨덕터를 포함한 뒷좌석 손님들이 한 모금씪 병나발을 불었는데(아마 400짰 짜리 지독한 만들래 럼일 것이다) 다들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휴게소에서 술을 잔뜩 사 들고 올라타서 몇 병인가 더 마시고 잠시 엔진 식히는 틈에(여기 차들은 가끔 엔진을 식혀줘야 한다) 숲 속에 짱 박혀 자고 있다가 못 탔단다. 다들 삘리리 맛이 가서 누가 안 타고 누가 탄 건지도 파악이 안된단다.

안타까웠다. 평소 아내는 내가 현지인들과 잘 안 어울린다고 구박을 주고는 했는데, 뒷좌석에서 술이 도는 줄 알았더라면 앞에 타지 않았을텐데... 아무튼 차장은 근무중 술을 마셨다고 운전수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고 향방중인 향토예비군처럼 여기 저기 짱 박힌 사람들을 수거하러 돌아다녔다.

그래서 예정보다 한 시간 반 늦게 만달래 기차역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애 딸린 미얀마 람보는 담배를 한 가치 더 권하고, 손님들은 휘청휘청 말 그대로 그들이 가져온 푸댓자루와 함께 떨어져 내리고, 운전수는 자기가 태운 최초의 외국인을 잊지 않겠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과자도 줬다. 그는 힌두교도라서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떼를 전혀 짜증스러워 하지 않았고(요즘은 인도인들도 툭하면 도로를 가로막고 똥을 싸는 성스러운 흰 소에 짜증을 내는 판인데) 그들이 다 건네갈 때까지 차를 멈추고 기다렸다. 그가 말하고 장교가 통역해 주길, 한국이라면 손님들이 술 처먹고 행패 부리지도 않고 시간도 엄수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차가 좀 늦게 오면 술도 안 처먹은 손님이 운전수를 두들겨 팬다고 말해줄까 하다가, 그래도 사람 사는게 어디나 똑같으면 재미없으니까, 한국은 품위있고 교양있는 나라로 남겨두자. 사실 그거 통역하기 힘들다.

다시 로얄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가끔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제발 도착할 때까지 비야 오지 말아라... 너무 늦어 바간행 표를 예약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열블럭쯤 걸어 도착. 얼른 체크인하고 바간행 버스를 예약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티켓 오피스가 문을 닫았단다. 내일 아침 일찍 꼭 좀 부탁한다고 말했다.

탁자 위에 어디서 많이 보던 담배곽이 눈에 띄었다. 디스 플러스, 한국인이세요? 물으니 그렇단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여행자들이 가물에 콩나듯 눈에 띄어 쓸쓸했는데... 5주 동안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대만을 돌아다니는 바쁜 일정이다. 5주라니 부럽다.

하루 종일 거의 물만 마셔 허기가 져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지경이라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밥 먹고 돌아왔다. 바나나 스플릿은 이번에도 먹지 못했다. 전 세계의 바나나 스플릿을 다 먹어보자는 소박한 꿈이 그 동안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시도였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숙소에서 그가 기다려 주고 있었다. 함께 맥주 한 잔 했다.

별 일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신없는 하루였다. 비틀즈를 듣다가 세상 모르게 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