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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28 구월 1
  2. 2004.10.28 farscape 8
  3. 2004.10.20 도사 3
  4. 2004.10.11 cycling, ever. 3
  5. 2004.10.07 짜증 1
  6. 2004.09.30 진인생소사 2
  7. 2004.09.22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 1
  8. 2004.09.18 환절기 컴퓨터들과 나의 건강 2
  9. 2004.09.17 오랫만에 SF 셋 읽고 1
  10. 2004.09.15 HDD 고장 3
  11. 2004.09.14 지하철에서 생긴 일 2
  12. 2004.09.11 이미지 정리 1
  13. 2004.09.08 자궁근종 수술 3
  14. 2004.08.31 울지 않아도 되는 이유 2
  15. 2004.08.29 인사동 나들이
  16. 2004.08.28 파타고니아에 부는 바람
  17. 2004.08.28 불편부당, 그리고 오만함.
  18. 2004.08.22 일요일에 밥 해먹기 3
  19. 2004.08.22 multi precision arithmatic 2
  20. 2004.08.19 마음의 우기 4
  21. 2004.08.12 페르세우스 유성우 2
  22. 2004.08.08 계곡에서 보낸 이틀 4
  23. 2004.08.06 후두 염증의 진단과 치료 4
  24. 2004.08.06 Lyall Watson, Jacobson's Organ 1
  25. 2004.08.04 악마 같은 남성
  26. 2004.08.02 마이싱이다 1
  27. 2004.07.30 찌꺼지 사진들 정리
  28. 2004.07.30 설명이 제대로 안 된거야
  29. 2004.07.28 담백하라
  30. 2004.07.27 행복한 문희준 3

구월

잡기 2004. 10. 28. 23:15
10월말의 커스터머 스투피디티: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기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들은 어쩌면 조류일지도 모른다.

인생 전체가 패턴을 탐구하는 과정이랄 수 있겠는데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패턴을 찾고 패턴을 보고 패턴을 탐구하고 패턴을 걷고 패턴을 만든다.

공장에 오라고 호출이 왔다. 아... 싫다. 집에서 밥 해 먹고 빈둥거리는 패턴을 유지하고 싶은데.

구월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지우기 전에 정리.


서울역의 닭장 스러운 분위기.


핸드폰 카메라 화질이 워낙 구려서 80년대 서울 분위기를 재현해 주신다.



거기



오빠







팔자 좋은 마누라



근심 걱정 없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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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scape

잡기 2004. 10. 28. 01:20
일기 써본 지가 한참 된 것 같네. 귀찮아서...

국민학교 6학년 때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16살이 넘어서야 앞으로 펼쳐질 자기 삶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들보다 걱정거리가 적었다. 교차로에서 선택을 주저한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날이 갈수록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기술도 수준급에 이르렀다. 20살이 넘어서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훌륭한 기술자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기술자 주제에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적은 비용으로) 많은 여자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였다. 아내는 저장해 두고 잊어버린 옛 애인들의 사진을 용케도 하드 디스크에서 찾아내어 지웠다. 다시 볼 생각이 없으므로 지운다고 해서 뭐라고 책하지 않았다.

이 김에 pda에 저장되어 있는 더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정리할까? 그럼 줄곳 연락하는 사람은 20명 수준으로 줄어들어 삶이 좀 더 단순하고 가벼워질 것만 같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핸드폰에 아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몽땅 담아둬야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지 알 수 있고, 그래야 전화를 무시할 수 있다. 사전 연락 없이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힌다면? 무시한다. 내가 그들을 무시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무시하기를 바랬다. '고독해 질 자유'가 평등하다니까.

자기 똥고를 잘 보전하기 위해 백업 라인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가족이 그렇고, 직장에서는 전장의 피바람을 막아줄 우산이 되길 간절히 원하는 상사가 있고, 집안에서는 어려움이 닥치면 삼촌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된다. 친구가 몇 있으면 쓸쓸함조차 잊을 수 있다. 내게는 인간과의 관계를 엮어줄 수호천사가 없다. 위를 쳐다보면 맑고 푸른 하늘이 있을 따름이다. 하늘을 사랑한다. 요즘처럼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나는 그저 한 마리 외계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아무튼 하늘에 대고 하소연을 늘어놓지 않았다. 하늘과 나 사이의 불가근 불가원스러운 그 관계는 이렇듯이 좋았고, 바람직스러웠다.

일 하고 잠 자는 것 외에 요즘은 딱히 하는 일이 없다. 아내는 며칠 전 인천에서 밤배를 타고 제주도로 갔다. 7박 8일 동안 제주도를 일주하는 도보 여행을 하겠다던데, 웃기는 얘기다. 나와 6개월이나 함께 여행 다닐 때도 걷는 것을 그렇게나 싫어하던 사람이 하루에 20-30km씩 걸을 수 있을까? 최근의 내 실정에 비춰 보았을 때 아내의 현 상태를 칭하는 적절한 말은 이랬다.

팔자 좋다.

일 하고 잠 자는 것 외에 딱 한 가지 하는 일이 있다면 farscape를 보는 것이었다. 시즌 1에서 4까지, 시즌당 22편, peacekeeper war 2편을 포함해 총 90편의 45분 짜리 sf 시트콤을 보았다. 45*90 = 총 60시간 분량. 지하철에서 보고 기차 타고도 보고 버스 안에서도 보고 침대에 누워서도 보고 술김에 제정신이 아닐 때도 보고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보고 화장실에서도 노트북을 펼치고 봤다. 단, 일하면서 보지는 않았다.

하루 하루 한두 편씩 꾸역꾸역 보았고 주말에는 대여섯 편을 한꺼번에 봤다. 바빠서 다 보는데 한 달쯤 걸렸다. farscape의 미덕은 음... good looking alien, descent out-of-place scenary에 있다고나 할까? 다시말해 sf틱하다. 파스케이프 프로젝트의 파일럿인 존 크라이튼은 실험 도중 웜홀에 흡수되어 머나먼 은하계에 내팽개쳐진다. 그가 대여섯 명의 탈옥수들과 벌이는 모험액션 활극물이다. 그의 머리속은 아이디어로 철철 넘쳐나고 온 우주가 그를 잡으려고 안달이다. 그는 적대적인 외계에서 꿈에서나 그리던 여자를 만난다. 꿈에 그리던 여자들이 다 그렇듯이 그녀는 첫만남에서 그를 땅바닥에 쳐박았다. 주목할 만한 에피소드는 음... 글쎄다. 그가 alianate 되는 과정 정도. 아내와 소주 한 잔 하다가 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우주로 나가야 하는가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했지만 잘 하진 못했다. 옛날에는 조리있게 설명 잘 했던 것 같다. farscape의 마지막이 마음에 들 뻔 했다. 시즌 4의 에피소드 22편 마지막 장면에서 존 크라이튼은 에이린 순에게 청혼한다. 키스 직후 괴광선에 맞고 둘 다 크리스탈화 되어 죽는다. 좋았는데... 두 편을 더 만들었다. 그래서 farscape는 미국인이 외계에 나가 애까지 낳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산다는 동화같은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다.

farscape가 재밌냐구? 졸면서 봤다.



얘가 주인공.











파일럿. 할 줄 아는 것은 운전 밖에 없는 머저리. 머리에 쓰고 있는 저 멍청한 갓 모양, 약해보이는 눈동자, 내시같은 목소리, 멍하니 벌린 입, 게다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말이 i can't 등... 이쯤되면 기술자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듯한 캐릭터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기술자들이 삽질하고 있는 동안 관리자들은 '희생자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며 행복하게들 산다. 아... 오버했나?
















스콜피우스. 그의 복장은 바퀴벌레를 모티브로 한 것 같은데 이름은 왜 저 모양일까. 바퀴벌레처럼 장수하는 악당 캐릭터.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장수의 비결은 악당들에게 물어야 옳지 않을까 싶다.







언제가 되야 sf에서 제대로 좀 벗고 다니는 외계인들이 나올까...


주인공 존 크라이튼의 몹시 느끼한 모습


외계인 처녀가 미국식 영어 공부중. 미국 영어는 결코 인터내셔널 잉글리시가 아니며, 그 점은 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웜홀에 빨려 들어가는 한가한 정경






핵폭탄을 몸에 차고 협상중. 협상은 저렇게 해야지. 암.

이렇게 공중에 떠서 몸에 해로운 전자파를 마구 뿌려대는 년놈들이 싫다.

마지막 에피소드. 청혼하고 바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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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

잡기 2004. 10. 20. 18:52
... 그렇게 해서 시간이 흘러갔다. 하드웨어 설계에 관여하게 된 후부터 일거리가 많이 늘어났고 테스트할 것들도 늘어났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비해 하드보일드한 테스트 절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이 상당 수 있었다. 또 한번은 엔지니어와 술자리에서 몇 가지 cpu 기술의 구현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분기 예측이나 파이프 라이닝, 수퍼 스칼라, 코드/데이터 캐시, 라이트백, 버스트 리드 사이클 따위를 얘기하자 애초부터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해보면 말이 어렵지 되게 쉬운건데... 100메가에서 작동하는 cpu를 거의 1기가 대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이건 코어 테크널로지가 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는 내 입장이 꽤 한심해 보였다. 나는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다. 하드웨어의 커버리지를 넓히기 위해, 애당초 떵떵거려던 대로 소프트웨어에서 대부분의 구현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결과가 말해준다. 그놈에 결과에 다들 흥분했다. 이제 단지 클럭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류의 희망들이 오고갔다. 수개월 전과 달리 모던 cpu 디자인에 관해 떠들어도 이제는 경청해들 주셨다.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데 2년이 걸릴 꺼라고 얘기했다. 1년은 다음 1년 동안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자금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자금도 없고 다섯명 뿐인 회사에서 베이스라인이 별로 없는 기술자들끼리 모여 공상과학소설같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기실 나는 별다른 희망을 품지 않았다. 이 바닥에 뛰어들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은 탓도 있고 날이 갈수록 돌대가리가 되어가는 이 믿음직 스럽지 못한 두뇌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다. 그랬다. 공포스럽다. 학습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지금, 하드웨어로 전업함으로서 소프트웨어로부터 따뜻한 거리감을 유지 해보자는... 능력으로 따지면 나는 별 볼 일 없는 기술자다. 하지만 이 필드에 뛰어들자 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헤엄쳐 다닐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아이디어가 펑펑 튀어나왔다. 꿈속에서 프로그래밍을 했고 꿈속에서 솔루션을 찾았다. 최근에 재밌는 꿈을 꾸었다. 일은 힘들어도 무척 즐겁고 재밌다. 나이 30이 다들 넘은 기술자들끼리 서로 닭대가리라고 불렀다. 닭짓으로 따지면 나를 따라올 자가 없으므로 나는 그들의 닭사모 회장이 되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내게서 자꾸 다른 것을 보려고 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능력 같은, 관심 없고 익사이팅한 테크널로지하고는 거리가 먼 프로젝트 관리나 매니징, 여기저기서 찌꺼지를 모아 쌓아놓은 광범위한 지식의 쓰레기들, 협상 능력 따위.

공장에서 내가 가장 즐겨하는 작업은 드릴질과 드라이버질 따위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것들은 대단한 경력을 요구하는 고급 노가다였는데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내는 사람들 중에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들은 bga를 수리하고 smd 캡을 인두로 찍어 기판에 순식간에 납땜하는 아줌마들이었다. 같은 작업을 수십년째 하다보니 그들은 도통한 것이다. 아, 나는 앉은 자리에서, 매번 작성하는 더블 링크드 리스트 코딩도 제대로 못해 몇 번씩 디버깅을 해야 하는데... 십 년 넘게 그짓을 하고도 손가락이 엉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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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ing, ever.

잡기 2004. 10. 11. 19:14
금요일에 용산에 들러 떨이로 파는 만원짜리 300W 파워 서플라이를 샀다. 노트북 상가에 들러 이런 저런 모델을 쳐다봤다. NEC Versa S820 155만원, Toshiba Portage R100 중고 150, 소텍 7180C가 110여만원, TG삼보 Averatec 3200 BR100이 120만원. 도시바 포티지가 개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런 저런 노트북을 구경하면서 최종적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에버라텍 3200으로. nbinside에서 최근에 필드 테스트를 했고 사용기가 여럿 올라와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무게 2kg이 그저 마음에 걸릴 뿐이다. 견딜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파워를 조립했다.

토요일 점심 무렵 다나와를 뒤적여 보았다. 에버라텍 3200의 최저가가 125만원으로 나와 있다.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현금가로 113만원까지 해 준단다. 돈을 찾아 타이거노트에 들러 512MB로 업그레이드 해서 123만원에 기계를 샀다. 한 시간쯤 가게에서 물건이 오길 기다렸다. 북간도를 어슬렁거리다가 집에서 나뒹굴던 SDRAM PC133 256MB 짜리 2개를 팔아 88000원을 받았다. 노트북 살 때 그 돈을 보탰다. 가지고 있는 리브레또를 처분하면 50만원 가량 받을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그리 비싼 돈 들인 것도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한 시간쯤 노트북을 들고 왔다갔다 해 보니 2kg짜리 3200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리브레또는 팔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대체할만한 노트북을 사게 될 때까지 주욱 가지고 있으면서 사랑해 줄 것이다.

리브레또로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10GB의 하드 디스크에는 farscape 시리즈가 담겨 있었고 오고 가면서 8인치 와이드 스크린으로 드라마 감상을 해왔다. 가는 길에 한 편, 오는 길에 한 편씩.

3200의 셋업에 들어갔다. windows xp pro.를 설치하고 프로그래밍을 할만한 환경으로 만들어 놓고 고스트로 백업을 떠 놓았다. 그동안 고스트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파티션을 통째로 떠서 네트웍의 다른 서버에 올려두었다가 리스토어가 가능했다. 근 한달 동안 차례로 맛이 가는 컴퓨터들의 인스톨과 셋업에 시달리다보니 별 수 없다. 하드 디스크를 무조건 c와 d로 나누고 c에는 os와 사용자 프로파일과 프로그램 파일즈만 넣어두었다. 그렇게 구조를 심플하게 만들어 놓자, 백업 사이즈도 1-2기가 바이트, 고스트 백업 시간은 3분 가량이면 끝났다. 진작 사용할껄.

3200의 디자인은 영 아니다. 그렇지만 가격대 성능이 상당히 좋은 스펙이다. 키보드가 팬타그래프 타잎이 아니라 낯설다. 키보드 레이아웃이 영 꽝이라서 특수키를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키보드의 왼쪽 약지가 닿는 부분이 약간 떠 있어서 타이핑할 때는 착, 착, 하는 심벌즈 소리가 났다. 교환해야 하는데 용산까지 가기가 귀찮아서 뜯기로 했다. 헉... 그런데 이놈에 나사에 산화 도료가 묻어 있는 것 같다. 나사를 빼자 마자 새파랗게 물이 들었다. 나중에 as 받을 때 뜯은 티가 나서 골치 아프겠는걸. 설상가상으로 엉뚱한 나사 하나가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박혀 버렸다. 빼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안 빠진다. 어쨌건 키보드와 기판 사이에 명함을 한장 살짝 집어넣으니까 이격이 사라져서 키보드는 제대로 칠 수 있게 되었다. 셋업에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배터리 칼리브레이션에 4시간, 팬 속도 칼리브레이션에 10분 더 걸렸다. 하루가 그렇게 가버렸다. 컴퓨터 이름은 아내의 아이디로 정했다.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아내와 춘천에 나들이 갔다 왔다. 오고 가면서 에버라텍으로 파스케이프를 두편 봤다. 서울로 돌아 올 때는 입석이었는데, 자리를 잘 골라잡아 ac 아웃렛이 있어 충전도 하고 고스트 백업도 하고 영화도 보고 일도 좀 하고 내장 cd-rw로 일한 내용을 cd로 한 장 구웠다. 열이 좀 나긴 하지만 백만원대 초반의 올인원 서브노트북(2kg짜리가 어떻게 서브'급' 노트북인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으로는 만족스럽다. 100만원대 노트북에 802.11g가 내장되어 있다. 그건 정말이지 큰 매릿이다. 집을 포함해 돌아다니는 곳 어디에서나 무선랜을 안 쓰는 곳이 없는 실정이니.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althlon xp-m 모바일 프로세서의 스피드를 사용자가 임의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에디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영화보는데는 클럭 스피드가 굳이 빠를 필요가 없었다. 영화 보는 내내 타스크 매니저의 cpu 인디케이터는 20% 미만이었다. 프로세서 상한 스피드를 1.5GHz가 아닌 그 절반인 800Mhz로 설정해 두고 액정 밝기를 글자가 보이는 수준으로만 할 수 있다면 배터리 소모량을 많이 줄여 배터리만으로도 3-4시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일반적인 사용에 2시간 30분 가량. 그동안 얼마나 업그레이드를 안 했는지 새로 산 노트북이 집안에 있는 3대의 컴퓨터 클럭 스피드를 몽땅 합친 것보다도 빠르다.

새로 산 노트북으로 김씨 아저씨가 부탁한 ARS 자동 응답 프로그램을 짰다. 카드 영업점 실적 조회를 위한 ARS 서비스를 모뎀을 이용하여 자동화하는 것인데, 거래처와 출력 일자, 실적 정보를 받을 팩스 번호 따위를 자동 응답하는 자동응답 시스템에 막무가내로 자동 응답하는 프로그램이다. 안방의 전화선을 뽑아 한 시간쯤 쭈그리고 앉아 '현장' 작업해서 데이터 파일로부터 입력을 받아 간단한 막무가내 스크립트를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워낙 간단해서 한 시간이면 작성할 수 있다고 떵떵거린 탓이다. 그런데 3시간 걸렸다. 자기가 만든 덫에 자기가 걸린 꼴이다. 강력한(?) 스크립트 컴파일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덕택에 헤이즈 모뎀 호환 명령어군(워낙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짜봐서 아주 지긋지긋한) 중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재미있는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삽질의 댓가로 얻은 극히 사소한, 문자 한 글자 분량의 정보다.



조사장의 견해에 따르면 별볼일 없는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라도 그 사람이 만족하기만 한다면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사용자가 이해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 치고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허덕이는 시간 때문에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는 프로그램들이 부지기수로 많다고 했다. 내가 그의 견해에 일부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굳이 기술자라고 자처해야 할 명분이나 당위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거나, 간단히 말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자란 것이 날이 갈수록 싫어졌다. 문희준 병이랄까? 앞으로 아티스트로 불리우고 싶다. 돈은 안되고 삽질에 느는 것은 담배와 술 뿐이니. 황가의 주장에 따르면 요즘 아트가 개판인 이유는 예술가들이 술을 덜 처먹어서 그렇다고, 예술이 술에서 꽃피운다는 것을 몰라서 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듯 했다. 문학이 뒈진 이유는 소설가들이 예전만큼 술을 안 처먹어서 그렇다는.

김씨는 내가 sf판에서 잘 먹고 잘 살던 시절을 그리워한 나머지 뭔가 부흥회스러운 사업을 다시 하게 될 꺼라고 굳게 믿었다. 다른 김씨는 내가 어린애처럼 산다고 윽박질렀다. 또 다른 김씨(봉당 아저씨)는 내가 자기현시욕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라 현실을 왜곡하고 직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서, 헛똑똑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첫번째와 세번째 김씨는 비판적이라 바쁘고 자기 중심적인 일에 몰두한 탓에 미처 발굴하지 못했던 내 실상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도움이 많이 되어서 히히히 웃었다. 아이, 언더스탠드.

언더스탠드를 반쯤 읽었을 무렵이었던가? 김씨를 희롱하는 글을 쓴 후 언더스탠드의 마지막까지 읽다가 오해사기 딱 좋겠군 하고 골을 쳤다. 언어유사적이고 치명적인 키워드 트리거를 언더스탠드를 보고 난 다음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꼴이 되었다. 나라면 테드 치앙과 달리 호르몬 k의 투여 때부터 그것을 건드렸을 것 같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데리다가 죽었다니, 일단 명복을 빌어주고, 그가 지은 쓸데없는 여러 저작물을 무덤에 그와 함께 묻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아내의 경각심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auction에서 23000원 짜리 전자저울을 주문했다. 아내의 건강을 염려해서 예전에 auction에서 구매한 8000원 짜리 아날로그 온습도계는 안방 온도 24도, 습도 55%의 눈금을 한달째 변함없이 유지해서 그 성능의 의심스러웠다. 아내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아내를 위해 구입한 디지탈 체온계는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했다. 내가 냉정한 편이라서 그런지 겨드랑이 온도가 늘 36도 밖에 안 나왔다. 클리에의 싱크 케이블이 맛이 가서 벌써 15일째 핫싱크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 pdazzle.co.kr에서 14000원 짜리 케이블을 구매했다. 핸드폰의 cd/atm용 적외선 포트가 작동하지 않아 큐리텔 센터에서 os를 업그레이드했다. 되는지 안되는지 자기(기술자)도 모르겠으니 부디 한번 atm에 가서 테스트해 달란다. 리브레또를 드디어 오늘 우체국에서 소포로 부쳤다. 택배회사들이 언제부터 배송에 2-3일씩 걸리고 배송예약을 당일 하지 못하게 되었고 노트북은 절대로 받아주지 않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체국에서 소포로 부칠 때는 컴퓨터 부속이라고 속였다. 한 일년 오프로드에서 개고생을 한 노트북이니 집어던진다고 망가지지 않을 꺼라고 자신하지만, 모를 일이다.

이렇듯이, 나날이 드럽게 바쁘다 보니 자기정체성을 유지할 시간은 남아있지 않다. 또한, 20-20khz의 가엾은 떨림에서부터 공중을 누비는 88-108Mhz의 떨림, 빛으로 충만한 세계, 사방에서 파핑하는 2.4Ghz CDMA적인 떨림까지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떨림으로 가득 차 있건만, 전자파 차폐복을 입고 다니다보니 주변의 떨림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떨림이 있어야(떨려야)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난 안 떨릴 생각이다.

옆집의 망할 다람쥐는 자나깨나 쳇바퀴를 돌았다. 삐그덕 삐그덕. 놈은 인간과 만족스러운 유대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법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것 같다. 교훈을 심어줄까? 주입식으로, 조건반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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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잡기 2004. 10. 7. 15:38
추석 연휴 내내 일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술 한잔 하자길래 한잔 하고 집에서 재운 후 열쇠를 선배에게 맡기고 공장으로 갔다가 일하고 금요일 밤 차를 타고 처가에 들렀다가 다음날 천안에 다시 올라와 일하고 저녁 늦게 서울로 올라와 모임에 참석한 다음, 집에 도착하니 오전 3시가 조금 넘었다. 열쇠를 숨겨 놓고 가라고 했는데 열쇠가 없다. 전화해 보니 전화가 안된다. 열쇠를 한참 찾다가 못 찾고 근처 사우나에서 잤다. 지갑을 처가에 놔두고 오는 바람에 수중에 돈이 없다. 요전에 은행에서 스마트 카드를 받지 않았더라면 지하철, 버스조차 탈 돈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선배를 찾아가 열쇠를 받아오고 점심을 얻어 먹고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뻗었다. 그리고 다시 일하러 공장에 내려갔다. 밤낮으로 일하고 신경쓰이는 연봉 협상도 마무리 지었다. 잘 안되면 일을 그만 둘 생각이었다. 대책은 없었다. 그저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피곤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저녁에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 했다. 학교에서 축제중이다. 멍하니 쳐다보았다.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다. 오전 일찍 출발해 집에서 좀 쉴 생각이었는데 아내가 오후에 차를 탄대서 같이 올라오려고 오후에 기차를 탔다. 그 시간 동안 13장의 보드를 테스트 했다. 일만 한다면야 그렇게 피곤해지지는 않는데... 음.

오늘은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 깎고 노트북을 택배로 부치고 건강관리공단에 들르고 용산에 들르고 삼성동에 들르는 일정이었는데... 노트북을 붙이려니 오전 접수 때를 놓쳐 내일 발송하면 며칠이나 걸려야 도착한단다. 이번주에 못 부치면 다음 주에나 받게 되는 셈. 그럼 이번주에 노트북을 사야 하나? 작업을 진행할 수 없는 형편이니까. 택배 하나 부치지 못해 길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시간만 보내고 벌써 오후 3시가 다 되간다. 아내한테 건강공단 일과 택배 정도를 맡기고 움직이고 싶은데 아직 몸이 불편하니 그러지도 못하고.... 지난 2주 동안 줄곳 풀리는 일이 없이 짜증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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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생소사

잡기 2004. 9. 30. 16:46
언제부터인가 볼품없이 신발장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이름모를 주인들의 구두를 2000원 주고 수선해서 신고 다녔다. 지하철에서 산 1000원 짜리 우산을 부러 수선해서 들고 다니고 남이 신던 중고 구두를 수선해서 신고 다니고 남이 입던 바지를 입고 다니는 이런 모습이 궁상스러울 지는 몰라도 그렇게 살아온 사람더러 생각을... 음. 타인의 입장에 자신을 고려하기 보다는 그 아까운 시간에 다른 사람이 입다가 빨아놓은 팬티를 입어주자!

rss 리더로 블로그라인을 잠시 사용(테스트) 중. 간단한 인터페이스와 클립 기능이 괜찮긴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기사를 클립할 때 기사를 읽고 클립할 지 말지를 결정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이제나 저제나 일간신문들이 rss를 제공해주기를 기다렸다. 모바일, 유비퀴토스 시대라고 다들 외쳐대지만 정작 그렇게 외치는 언론은 늘 실망스럽고 바보스러운 모습이다. 몇 줄 안 되는 간단한 웹 프로그램이면 rss가 가능한데 말이야. 사주, 편집, 기자, 교열, 영업, 사이트 구축, 관리 까지 혼자서 다 해먹는 시골의 조그만 일인 신문사의 작업은 흥미진진해 보였다. 그들은 게다가 정말 필요한 지역 소식까지 전해주는 소사이어티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보였다. '무의미한' 분업화, 전문화는 사람을 확실한 머저리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 신비스러운 오해로 가득한 이상한 기사를 쓰는 기자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클리앙 사이트가 스폰서를 받았다. 사이트 라우팅을 하는 바람에(사업 주체 사이트의 조횟수 올리기?) 기사 수집이 안된다.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한 사람들이 있어 입을 다물고 있다. 고친다 만다 하는 얘기가 없다. pda 사이트가 rss나 기타 클립 가능한 웹 url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모양이 좀 우습긴 하다.

pda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정리해야 할텐데 시간이 없다. 가끔 regacy를 했다. 4mb 짜리 파일 하나, 마을에서 한가하게 빙빙 멤돌고 있지만 pda용 치고 썩 잘 만든 rpg 같다. sj33에서는 약간 느리게 작동한다. 만든 작자들은 might & magic 이나 eye of beholder 따위의 게임에 향수를 지닌 이들인 것 같다. 김씨와 손씨, 장씨를 만나니 그들 pda도 컬러화되어 있었다. 어느날 부터인지 그들 모두가 클리에나 텅스텐을 가지고 다녔다. 손씨가 머리를 하늘색으로, 거기에 구름이 송송 떠다니는 모습으로 하고 다니면 꽤 어울릴 것 같아 보였다. 이 세계에서 본 적이 없는 머리 모양인 것 같긴 하다.

서씨 아저씨를 오랫만에 봤다. 잠시 외국에 나갔다 온 새에 하이텔이 없어졌단다. 그러나 알던 이름들을 찾아니기에는 무리가 없었는데, 그들 거의가 egloos.com에 블로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들어 놓은 sf 동호회 사람들의 블로그 리스트를 퍼블릭 오픈 해 놓을까 했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고 싶을 것 같다.

구글 뉴스 서비스를 보기 시작. 포괄적(아니면 광범위하다고 해야 할지) 관심사를 다 떠들어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각 분야별 헤드라인 수준. 그러나 플래시, gif 애니메이션이 없는 깔끔한 텍스트 화면은, 흠. 단순하지만 우아한 기술이 내포한 상큼함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 구경 -- 이씨가 소개해줘서 들어가 봤다. 나하고 모델이 같은 garmin etrax gps를 사용하는 것 같다. gps 구매할 때 세계지도를 구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다. 여행준비물을 보다가 기겁했다. 준비물이 너무 많다. 상당기간 동안 여행을 준비한 사람들인데 그 정성이 놀랍고도 한편으로는 웬지 가엾어 보였다. 내가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것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사이트에서 인용한 어떤 캐나다인 말대로 한국인은 모험심이 좀 부족한 편이다. 그것을 굳이 흉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서양인들이 모험심이 많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과연? 저 하늘과 서양인 스스로는 알고 있다. 하여튼, 쓸데없는 모험을 과감하게 배제할 줄도 아는 동양인의 지혜도 배워볼만 하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돌이켜 보건대 쓸데없는 모험 끝에 부작용으로 남는 것은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 느끼는 지겨움 뿐이다. 서양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느끼는 상당히 지긋지긋한 권태를 인내하고, 또한 그것을 생산적으로 재해석하여 기쁨으로 돌이키는 동양의 지혜도 배워볼만 하다고 권하고 싶어진다.

farscape, stargate, star trek, andromeda, millenium, harsh realm, angel, 이런 시리즈를 노트북에 넣어두고 출장 갈 때마다 버스나 기차에서 한편씩 봤다. 봐도 봐도 끝이 없다. 극에 등장하는 외계인이 인간하고 워낙 하는 행동이 비슷해 자기중심적인 인간 드라마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가 되야 판갤럭틱 채널에서 외계인들에 의한, 외계인들을 위한, 제대로 된 sf 시트콤을 볼 수 있을런지... 그나저나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밥맛 떨어지고 설정은 한심하고 이야기는 식상하기 짝이 없고, sf도가 현저하게 낮은 스타게이트의 장수 비결이 궁금하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시리즈가 유지되었던 것은 아닐까? 나같은 sf 프릭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군소리가 나오지 않게 만들거나, 역으로 논쟁에서 플레임을 만들 꺼리를 대량으로 제공하여 반사이익을 노리는 전략.

소주 10병에 팔려 내 딸이 된 아이는 세일러복을 입고 완스인어블루문에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그동안 가슴은 많이 컸니? 라고 말했다. 아이가 삐친 것 같다. 내 가슴은 예전부터 컸단 말이에요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애비의 불찰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여자는 가슴으로 말한다. 아내의 얘기에 따르면 한국에서 판매되는 거의 모든 브라에 뽕이 들었다고 한다. 그랬단 말인가?

김씨는 내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지하철에서의 에피소드가 사실인지 의문을 품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를 듣고 보고 싶은 것들을 본다. 이야기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한 사나이, 이야기의 힘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 이야기, 이야기의 힘으로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이런 것들은 말과 글이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성립하고 나서야 전진할 수 있다고 본다. 말과 글에 그다지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한 인간의 인격이나 사상과 말과 글을 분리하는 편일 것이다. 그러는 편이 여러 모로 편했다. 안 그래도 되는데 편의상 그랬다. 둘을 뒤범벅하면 결과가 늘 골때렸다. 말은 사용법이 까다롭고 대단히 위험하고 휘발성이 강한 것이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안다, 두려워했다. 나는 말의 좋은 면을 잘 알지 못한다. 알고 싶다. 알게 되면 주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화려하고 유창하게.

언빌리버 김씨를 위해 얘기를 더 해 볼까?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sf컨벤션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픽션을 워낙 잘 지어내는 데다가(본의가 아닌 것 같지만) 대외 신용도가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편이라(그 전후관계는 확실치 않다. 원인을 다른데서 찾고 싶다) 그가 자칫 말 실수를 하다보면 본의 아닌 오해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었다. 몇 마디 근거 없고 시답잖은(내가 보기에) 말에 의해 사람들의 생각이 쉽게 바이아스 되는 모습은 충분히 보아왔다. 그래서 왠간해서는 잘 터지지 않는 부비트랩을 설치 했다. 트리거를 두 개 달았다. 트리거를 각각 Cs, Ds라고 칭해두자. Ds가 실제로 폭발을 일으키는 방아쇠가 된다. 방아쇠는 동종 관심사를 공유하는 among them 수풀에 감추어진, 사냥꾼이 설치하고 잊어버린 토끼덫 같은 것이다. 그리고 두 방아쇠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나 거리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 관계가 있지만 비밀이 아님에도 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김씨가 A에게 As를 말하면(거의 불가능한 경우다) A는 Bs를 말하게 된다. A는 아무라도 상관없다. Bs를 듣고 김씨가 상상력을 발휘해 또다시 아무라도 상관없는 B에게 어쩌다 우연히 Cs를 말하면 Ds가 나온다. 확신하건대 그럴 확률은 극히 낮다. 베이징에 설치된 덫에 사슴이 걸린 바로 그 시각에 아프리카에서 코끼리가 총에 맞고 쓰러지는, 서로 개연성이 없는 시공간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우연이 겹칠 그런 확률이다. Ds는 그들 사이에서 확산된다. Ds는 어떤 이에게 일종의 확신 -- 결정에 관계된 -- 을 주게 된다. 폭탄 설계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고 방아쇠를 분산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일에 나나 x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낼 경로나 흔적이 남지 않았다. 그건 그런 종류의 평범한 말이었는데, 몇 가지 필요한 어나운스를 할 때 문자열을(말을, 언어를, 특정 단어를) 배치하는 것이다. 결코 안 터질 꺼라고 믿었고, 장난삼아 만들었던 그 폭탄이 여행 가서 신나게 놀고 있던 어느 날 한국에서 터졌다. 터키의 괴레메 언덕에서 네스토리우스 파의 땅굴의 허접함에 질렸다가 갑자기 나타난 미친개들에게 쫓기고 있을 때 그 여진이 전해왔다. 폭탄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효과가 대단해서 뒤바꿀 수 없는 인간의 엄숙한 운명을 연상시키기 까지 했다. 운명의 잔인함이란... 안타깝게도 본인이 죽을 때까지 눈치챌 수 없는 운명의 잔인함은 그렇다치고, 절대 터지지 않을 폭탄이 어째서 터지는지 신기했다. 말은 애당초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것이다. 그걸 제대로 다룰 수 없으면 처음부터 발언하지 않는 것이 나아 보인다. 이야기를 믿지 않는 김씨의 건강을 생각하며 픽션을 하나 방금 만들어봤다. 제목은 '당신 삶에 관한 이야기 또는 진인생소사'

pda로 테드 치앙의 언더스탠드를 읽는다. 소설을 읽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생각은 거기서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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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가 how보다 많은 사람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는 성장한다. 아니, 고도 적응한다. 적응은 면역, 자기 방어, 회피 기동, 발전적 융합, 협동, 사이너지의 형태로 '표현'된다. 다시, 표현된다. 적응은 이력을 남겼다. 나아지거나, 발전한 적 없다.

이데올로기, 자신의 머릿속에 틀어박힌 사고방식이 타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살해하고 강간할 수 있다는 것은 비열한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전제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인도주의자가 아니다; 될 수도 없다. 인간성은 너나 내가 그것 때문에 살아야 할, 또는 의존해야 할 이유가 아니기도 했다. 따라서 나를 포함한 인간 존재의 합법성(?), 내적 타당성(?)을 설명할 때 즐겨 시작하는 무엇보다 앞선 전제는 늘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너)는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다.

my dear, sweetheart, darling에서 moron, bastard, shithead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했다. 옛날에. my dear였다가 bastard였다가 다시 sweetheart가 되는 등 왔다갔다 하다보면 관계가 손상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shithead와 sweetheart라는 동시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 나란 인간이 지닌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왠간한 바보가 아닌 한, 연결되었다가 절단 되었다가 다시 재결합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하철역에서 찍은 사진. 파장 시간. 앞 빨간 천막은 스페이스 판타지 클럽, 뒤 빨갛고 노란 천막은 행복한 책읽기, 행복한 책읽기 옆에 거울웹진인데 기둥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거울 웹진의 단편집을 보면서 SF 떨거지들은 그동안 대체 뭘 한 걸까 감탄사를 내뱉었다. 건질만한 글은 잘 안 보였다.

행복한 책읽기의 부스를 훑어보면서 여러 가지 잡생각이 들었다. SF는 SF고 여자는 여자다. 그럼에도 SF와 여자들 사이에서 맺었던 관계의 유사성이 서로 엇비슷했다. 여자들과 헤어질 때는 관계를 칼 같이 끊었다. 한번 돌아서면 되돌아 본 적이 없다 / 울다가 웃을 수 없다 / darling이였다가 bastard가 되었다가 다시 sweetheart가 될 수 없다 / 왠간하면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해물 스파게티를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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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xup 코드를 추가해서 2 pass를 1 pass로 고쳤다. 생산하게 될 메인 코어, 그러니까 cpu의 최종 머신 코드에 대한 정보 없이 작업했다. 스펙이 아직 불투명하지만 emit된 machine code를 검증 해 달라고 몇 번 졸랐는데 한 달째 묵묵무답. 안 급하다 이거지? 10월 20일까지 납품인데 대단한 여유들이군. 오냐. 내가 찾아가마. 공장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닥달하겠다는 각오다. 추석때 일하고 싶지 않아! 라고 굳은 결심을 했는데, 사무실의 작업 컴퓨터가 맛이 갔다. 아예 부팅이 안 된다. 파워 서플라이나 메인 보드가 간 것 같다. 내 주변의 컴퓨터들이 벌써 넷 씩이나 맛이 갔다. 환절기다.

용산에서 reenet 8p switching hub를 구매했다. 17000원. 너무 싸서 하나 더 샀다. 그런데 코딱지만한 smc 32mb 7장은 무려 7만원이나 했다.

머핀을 만들었다. 밀가루, 녹인 마아가린, 설탕을 1:1:1로 섞고 우유 약간, 소금 약간, 베이킹 파우더 약간, 바닐라 가루 약간, 계란 등을 섞어 달콤한 반죽을 만들고 건포도와 분쇄한 땅콩을 넣고 소주잔으로 모양을 낸 호일에 담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가스렌지에서 약한 불로 구웠다. 먹을만 했다. 고작 650원(바닐라향 500원, 베이킹파우더 150원) 들여서 배불리 먹었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머핀을 굽는 중에 아침에 만들어 먹을 짜장면의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다. 김씨 아저씨가 귀뜸해 주길 짜장면 면발의 비밀은 소다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반죽에 소다를 넣었다. 내일 아침에 그 결과가 기대된다.

오늘은 SF 벼룩시장이 있는 날. 저저번주에는 일요일에 하는 줄 알고 안 갔다. 그리고... 대창 먹는 날? 강남 한복판에 대창을 하는 집이 있다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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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SF 셋 읽고

잡기 2004. 9. 17. 22:50
SF가 판타지의 일종이라고? 물론 그렇다. 가장 재밌게 읽었던 '전형적인' 판타지에서 modernity, fidelity, accuracy, delicacy 등등 따위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주로 원시인들이 주유하는 판타지 월드의 묻지마 세계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늘 판타지를 저평가했다.

타인의 평가와 비교할 때 나는 SF에서 비교적 구분할 수 있는(또한 바라마지 않는 특정한) 경계를 본다. 갈 데까지 가려고 노력하는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익스트림한 현실에서 그 자신의 모든 수단방법, 특히 그가 가진 유일하게 설득력있고 쓸만한(쓸모가 없는 경우가 더 많지만 최선을 다 했다는 의미에서) 과학기술과 이성을 총동원하여 상황에 적응해 가는 서바이벌 게임.

며칠 동안 전에 읽다만 alistair reynolds(SF 작가치고 잘 생겼네?)의 revelation space를 마저 읽었다. 왠지 linda nagata의 소설이 생각났지만(하드한 면에서는 그녀가 좀 더 나은 면이 있다) 그럭저럭. cory doctorow의 down and out of the magic kingdom도 그럭저럭 읽었다. 공산 사회와 흡사한 bichun 사회가 도래한 후 우피라 불리우는 일종의 화폐를 사용하는데, 돈처럼 쓰이지만 그것을 버는 방법이 유명해지던가 존경받을 만한 업적을 이뤄야 한다. 기술자가 쓴 소설치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회의 저변에서 삽질하느라 누구에게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나같은 기술자의 우피 수치는 하는 일에 비해 형편없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우피 수치가 낮으면 주택 장만의 꿈도 접어야 하고 여행도 불가능하고(우피 자체가 화폐처럼 통화되므로) 대중 교통 수단 조차 이용할 수 없어 친구 차를 빌려타는 등 사회 저변에서 활동한 덕택에 사회 저변으로 쫓겨나게 된다 -- 언더그라운드에서 하수구 수리하는 사람들이 받는 대접과 비슷하다고 본다. 대신 어떤 백수가 할 일 없이 방바닥을 뒹굴다가 정치 패러디를 플래시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웹 사이트에 올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키득거리게 되면 그의 우피 수치는 대통령보다 높아질 수 있고 엑조틱한 미녀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우주 스테이션에 관광하러 나갈 수도 있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에서 charles stross의 halo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어디서 들었던거지? 스트로스가 그렉 이건과 닐 스티븐슨의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고. 다른 작가에 관한 평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의 장편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드물게 낄낄 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에게는 상상력과 유머, 비전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재능이 느껴진다. 그렇게 해서 찰스 스트로스는 꼭 읽어봐야 할 목록의 우선 순위 중 최상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 etext를 구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책 살 돈은 없다. 하늘에서 떨어지길 간절히 바라기라도 해보자. 그의 장편 제목은 singularity sky다. 제목부터 느낌이 확 온다. 확!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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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D 고장

잡기 2004. 9. 15. 00:33
아내는 9월 10일 오전에 퇴원했다가 그날 오후 11시 무렵에 재입원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3일 밤을 잤다. 첫날은 고열로 고생했다. 백혈구 수치가 12000까지 올라갔다. 둘쨋날에는 감기 기운이 찾아왔고 세째날에는 장염으로 임부처럼 헛구역질을 일삼았다. 참, 가지가지 병이 다 찾아왔다. 의사는 진단 결과 아내가 엄청나게 튼튼한 사람인데 어째서 저런 시시콜콜한 질환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이해가 안 간다. 그동안 잔고장 없이 튼튼했는데...

어쩌면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지 않으면 결코 완치되지 않는 심각한 질병인 꾀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너무 병인을 심리적인 허약함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경우에는 환절기마다 걸리는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어째서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되었는지 원인을 모르겠다. 집안에 미스테리가 많다.

아내가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아내에게 먹일 알맞은 먹이감을 구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오래 살고 싶으면 감기에 걸려라' 라는 책을 지은 도인, 노구치 하루치카 옹께서는 감기를 몸의 부실한 부분을 찾아 보완하는 기회로 여겼다. 등뼈의 일곱번째를 솜씨좋게 만지작 거리고 기를 불어 넣어주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셨다. 빨갛게 발등이 달아오를 때까지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왠간한 감기가 치료된다고도 하셨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아내가 주로 사용하는 서브PC의 HDD가 주인처럼 맛이 갔다. windows xp를 다시 설치했다.

그 다음날에는 서브 노트북이 말썽을 부렸다. 서브pc야 너 아프냐? 나 리브레또도 아프다. 뭐 그런 분위기.

노트북의 상판 뚜껑을 닫으면 자동으로 대기 모드로 들어가고 뚜껑을 열면 대기 상태에서 빠져 나오는데 며칠 전부터 뚜껑을 열면 인사불성인 상태로 그대로 있다. xp를 다시 설치하려니 hdd의 용량이 모자라 파일을 지우고 비록 용량이 10GB 밖에 안되지만 이 김에 파티셔닝을 새로 하려고 partition magic을 실행했더니 실행되는 도중 파티션 정보가 날아가 맛이 가 버렸다. 어쩌지?

그렇잖아도 서브 노트북의 키보드가 점점 맛이 가고 있어 애물단지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도무지 타이핑을 못 할 지경이다. 어떻게 고칠 수도 없었다. 분해해보니 팬타그래프 키캡을 겹쳐놓은 두 상판을 용접해 놓은 것이다. 키보드를 통째로 갈면 9만원이다. 9만원은 참 큰 돈이다.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분해해 hdd를 떼어내고 pc에 연결했다.



HDD Gender converter 2.5 inch to 3.5 inch.

블로그를 뒤져보니 2003년 7월 28일 용산에서 7000원 주고 구입한 것이다. 예전에 리브30이 사망하셨을 때 HDD 내용을 백업해야 했기 때문에 구매한 것이다. 이번에도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메인PC에 hdd를 달고 예전 자료를 되살려 백업하고 파티셔닝을 새로 하고 이런 저런 소프트웨어를 재 설치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의 저자 프랭크 오스키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우유는 송아지가 먹는 것이지 아기에게 먹이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20% 만이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고(다당->단당) 우유의 칼슘은 대부분 흡수가 잘 안되는 것이며 우유가 몇몇 질병이나 장애의 원인으로 의심되고 있지만 낙농업자들을 먹여 살려야 하므로(한국에서는 자기 몸에 우유를 붓거나 거리에 송아지를 풀어 놓으며 데모를 하고 있다) 우유의 해악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연구결과로 든 것들은 증거로서 좀 빈약하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써 놓으려고 재미없고 시시한 통계를 축약한 탓일지도...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최근 일년 동안 우유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탄산음료도, 과일쥬스도 마시지 않았다. 오로지 물만 마셨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유 대신 중국인들처럼 두유를 마시던가 두부를 먹는 것이 나아 보인다.

하여튼 차례대로 아내의 질병을 치료하고 월요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 팔팔했다. 돌아오는 길에 썩 괜찮은 두부 전문점에서 아내에게 두부를 억지로 먹였다. 단백질을 보충해야지. 나는 두부를 참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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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생긴 일

잡기 2004. 9. 14. 17:38
며칠 전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다. 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후드를 뒤집어 쓰고 혼잣말을 늘어놓으며 정신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친구가 있었다.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그 친구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전철에 올랐다.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맞은편 아줌마들이 뭐가 재미있는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핸드폰을 바닥에 힘차게 집어 던지길래 쳐다보니 아까 후드를 뒤집어 쓴 그 친구가 어느새 이쪽 칸으로 이동해 온 것 같다. 아줌마들은 저 젊은이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나 보군 하는 표정으로 힐끗 쳐다 보고, 산산이 조각난 채 바닥에 널부러진 핸드폰을 힐끗 쳐다보고, 하던 수다를 마저 했다.

이번에는 mp3 플레이어가 콰지직 소리를 내며 건너편 문짝에 부닥쳐 깨졌다. 또 그 후드를 뒤집어 쓴 친구가 집어던진 것이다. 쟤는 왜 저럴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벌떡 일어나더니 아줌마들에게 다가가 시끄럽다고 소리를 꽥꽥 지른다. 시끄럽긴 했다. 그렇다고 값비싼 핸드폰과 mp3p를 던지나? 아줌마들은 웃긴 놈일세 하는 표정으로 쳐다 보다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후드 쓴 녀석이 다시 벌떡 일어나 아줌마들 앞에 서서 주먹으로 위협하면서 뭔가 개소리를 늘어 놓으며 협박을 하자 아줌마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내 앞이다. 내 앞에서 대가리를 바짝 밀고 괴이한 선글라스를 쓴 우락부락한 놈이 으르렁거리며 아줌마들을 위협하고 있다.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은 그 괴상한 광경을 외면한 채 딴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놈은 갑자기 몸을 홱 돌리더니 하필 내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스스로 울화가 치밀었는지 다시 일어서서 아줌마들한테 이 미친년들아 조용히 안 해 운운하며 갖은 상소리를 늘어놓았다.

그가 으르렁 거리는 등짝을 바라보며 한숨이 나왔다. 이 놈한테 개기면 뼈도 못 추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험한 꼴 당할 각오를 하고 내 옆으로 돌아온 대머리를 노려보다가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야, 니가 더 시끄러워 라고 조용히 말했다. 놈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나한테 깍듯이 절을 하고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자기가 집어던진 핸드폰과 mp3p 파편을 꾸역꾸역 줏어 들고와 내 옆에 앉은 채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앉았다.

당황스러운 반응이다. 무엇보다도 같은 차량에 탄 사람들의 얼어붙은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맞은편의 아줌마들이나 그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내가 그 놈과 한패거리라도 되는 양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머나먼 곳을 응시했다. 왠지 기분이 안 좋다. 좋은 일 한 것 아닌가? 남들이 좋아하는 일을 한 것 같은데... 졸려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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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정리

잡기 2004. 9. 11. 01:03
하드 디스크의 루트 디렉토리 정리 중 발견한 파일들. 캡쳐해 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비디오를 보는 관계로 뭐가 뭔지 상황 설명을 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에 등장하는 오다기리 죠의 모습.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거지같은 것임에도 장미꽃을 들고 등장하는 이 친구의 괴기스러운 모습이 몹시 인상에 남아 부러 배우 이름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사토라레의 순진하게 생긴 오다리기 죠의 모습을 감안할 때... 사람들이 다 죽어 나자빠지자 기뻐서 저러고 있다.


표정 참 멋지다.


임모르텔. 비주얼이 예뻤던 영화. 제5원소와 달리 액션 하나 없는 참으로 쓰잘데기 없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


스타트랙 엔터프라이즈 시리즈. 시즌3까지 보는데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아처 선장이 시간 여행자를 만나 브리핑을 받는 중. 아처 선장은 시즌 1,2 까지는 줄곳 오지랍 넓은 미국인 아줌마 같더니만 지구에서 700만명이 학살 당하자 성격이 점점 괴퍅해지면서 극은 점점 재미 없어지고 말았다.


벌칸성인이 코크란 박사와 대면한 것이 지구인이 외계인을 만난 첫 접촉(영화 star trek: first contact)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엔터프라이즈 시리즈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스푸트니크 호의 발사를 보려고 관광차 지구를 방문했다가 불시착한 후 미국의 어떤 조그만 마을(카본 크릭)에서 서빙을 보고 탄광에서 일하고 전기기사로 몇개월간 머물렀다. 세상에나...


가진 기술이 없어 오로지 똥배짱으로 근근히 우주를 돌아다니는 80여명의 지구인들이 유난히 불쌍했던 엔터프라이즈 시리즈... 게다가 벌칸성인이 트렐리움에 중독되기도 하고 눈물을 끄억끄억 흘리면서 신세 한탄에 사랑놀음을 다 하질 않나... (그런데 illogical spock 홈페이지가 어디로 사라진거지?) TOS, TNG, DS9, VOY, ENT중 그래도 재미있었던 것은 아직 언제나 다 볼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오는 TNG랄까.


렉스 첫 시즌의 첫 화, i warship the shadow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미가제 돌격중인 병사들. 올해 본 sf 드라마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달까.


pbs 다큐멘터리 elegant universe에서 끈이론의 anormaly(스타트랙 엔터프라이즈 시즌 3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어떻게 극적으로 해결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 그런데 뭐랄까... 끈 이론을 설명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끈 이론을 만든 영웅들(?)이 몸소 나와 끈 이론을 구구절절 '프레젠테이션' 하면서(다큐멘터리를 그다지 잘 만들지도 못했고) 장래 밝은 내일까지 약속하는 모습이 어째 시장 바닥의 운동화 끈 장삿꾼들 같았달까... 동명의 책이 보여주었던 인상적인 '과학교양서'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가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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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근종 수술

잡기 2004. 9. 8. 15:20
아내가 출산이 얼마 안 남은 친구를 따라 산부인과에 들렀다가(놀러갔다가) 우연히 CT 촬영을 해보니 자궁근종(myoma of the uterus)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내게 연락하고 저녁때 얘기 좀 하자는데, 흔히 물혹(살혹이 더 정확할테지만)이라든가, 아기집에 혹 생겼다는 말을 하는 질환이고 여자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한가하게 술 퍼 먹고 집에 늦게 들어갔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밤이 늦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간 눈치 빠른 선배는 아침에 떠날 때 반성문을 써놓고 가기도 했다. -_-


ct 촬영 소견서. 자궁 뒤편(척추부근) 바깥 왼쪽에 돌출된 근종이 보이고 근종이 직장을 압박하고 있으며 석회화가 진행되지 않았고... 기타등등 그외 별다른 문제점은 보이지 않는다... 정도로 해석했다. 토씨만 빼놓고 온통 영어로 써놓은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한심한 생각이 들면서도 남 얘기가 아니라 할 말 없다. 그렇지만 굳이 전문용어가 아닌 것까지 영어로 써 놓을 필요가 있을까? 소견서 보고 영어사전 뒤적거리지 않고도 무슨 소린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게 해주지.


자궁의 평활근에 발생하는 자궁근종은 30∼50세 여성에게 많이 생기는 질환으로 근종이 생긴 장소와 크기, 방향 등에 따라 증상이 다르지만 대개 월경통이 심해지고, 월경에 이상이 생기고, 자궁출혈이 있으며, 하복부에 이물감을 느끼고 진행하면 영양 불량 및 빈혈증에 빠지고 현기증, 두통, 전신 쇠약,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자궁근종은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약물요법을 중심으로 치료하면서 경과를 관찰한다. 수술은 최후에 고려하는 것이 현명하다.


글쎄다. 약물요법 운운하는 걸 보니 한방쪽 의견이 아닐까 싶다. 배 째는 것을 워낙 싫어하지만서도 발견 즉시 수술이 가장 합리적인 옵션인 것 같다. 그 점에서는 아내의 선택이 옳았다고 본다. 참고 살 수도 있지만 약물치료로는 완치가 되지 않는다.

아내는 내가 자기 걱정은 안 하고 수술비 걱정이나 하는 수전노라고 매도하고 나하고 상의 안 하고 자기 혼자서 병원에 병실을 잡아놓고 수술 일정까지 일사천리로 잡아놓았다. 개인적으로 조사해본 결과, 역시 걱정할 것이 없었고 근종절제술(myomectomy)로 잘라내면 된다. 근종의 크기가 10cm이상 되면 자궁을 심하게 압박해 임신에 영향을 주고 때에 따라서는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궁근종은 여성의 20-25% 정도가 가지고 있고(어떤 문서를 보니 50% 정도까지)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으며 에스트로겐에 의해 성장이 촉진된다는 가설이 있다. 세 가지 가설이 있는데 유전설은 자궁근종이 유색인종에서 특히 다발한다고 하고, 호르몬설이나 메이어의 학설은 에스트로겐에 의해 미성숙한 근세포가 근종으로 발육한다는 스토리다. 에스트로겐 학설이 우세다.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 폐경기가 지난 여성에게서는 드물게 발현하고 폐경기 이후에는 근종이 줄어든다.



자궁위부터 아래까지 열세번 단층 촬영했음을 보여준다. 120kV, 160mA의 전류가 2초 동안 가해지면서 발생한 X-ray 광선을 조사해서 x선 검출기로 얻은 결과를 컴퓨터라이즈 한다는... 얼마전 어떤 과학자가 한국으로 돌아와 CT와 MRI를 합쳐놓은 장비를 개발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자궁과 척추 사이에 뚜렷하게 보이는 근종. 자궁 내부에서 발육한 것 같지는 않고 장막하근종인 것 같다. 그외, 주변의 희미한 선은 피부인데 피하지방의 단면적과 그 두께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네가티프 필름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잔머리를 굴리다가 노트북을 펼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띄우고 about:blank 를 url에 입력한 다음 F11키를 눌러 full screen 모드로 전환한 상태에서 필름을 LCD 스크린 위에 얹고 근접 촬영했다.


근종은 46.5mm x 48.8mm 크기. 핑크빛이겠지? 아내의 CT 촬영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병환'에 이런 류의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가설 운운하며 블로그에 올리는 등 한가해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자로서 사반세기를 살아온 버릴 수 없는 취향의 문제다. old habbit die hard. -- 그래도 무지에 따른 불필요한 공포보다는 낫지 않을까?

9월 6일 월요일 아침에 입원해서 오후 2시쯤 수술을 시작, 수술비 외에 13만원짜리 무통 주사를 사고 상처가 기관 외벽에 흡착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는 19만원 짜리 interceed란 일종의 생리 테잎을 따로 구매했다. 수전노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마땅히 품어야 할 의문을 품지 않고 그냥 결재해 버렸다. 성공적인 수술도 중요하지만 진통제는 달라면 맞게 해 줄텐데 굳이 48시간 동안 지속되는 무통 주사를 따로 구매할 필요가 있는가와(실제로 통증은 피부의 일부에서만 생길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고통을 참는데 익숙치 않다, 고통을 두려워한다),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주변 기관에 흡착되는 일이 잦은지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수술실에 환자를 들여보내 놓고 품목명세서를 들이밀며 이것들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라니, 애당초 수술 전에 충분히 얘기해 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어쨌든 수술후 한 시간쯤 지나 수술의가 근종을 들고와 보여줬다.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근종은 알탕에 들어가는 명란처럼 생겨 친근감이 들었는데 끓여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보였다. 만지려고 하니 의사가 흠칫 하며 뒤로 물러났다. 40분쯤 배를 꼬매고 뒷 마무리를 한 다음 입원실로 옮긴다기에 나가서 짜장면을 사 먹고 들어왔다.


수술 자국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약 5mm 크기의 이런 구멍을 배에 세 군데 뚫는다. 구멍 한 쪽으로(추측하기로 배꼽 쪽) 내시경을 넣고 배꼽 하단에 영점 사격을 할 때 처럼 삼각형의 두 꼭지점에 해당하는 구멍을 뚫어 길다란 수술도구를 삽입하여 한 손으로 근종을 고정하고 다른 한 손으로 절제하지 않았을까 싶다. 감탄스럽다. 수술 후 상처가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 국내에서 내시경 절제술은 2002년 부터 시작되었으며 입원한 병원이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여기저기 자랑을 늘어놓는 블레틴을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수술 경과가 몹시 훌륭해서 이런 수술은 다음날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진척이 빠르단다. 정말 그랬다. 아내는 다음날부터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고 나는 이틀 동안 병간호 하다가 집에 가서 그대로 뻗었다.

3일 입원+수술비 107만원. 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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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 엔트리.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바라본 하늘이 무척 맑았다. 맑은 하늘을 보고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다장조k467 제2악장을 연상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닐까? Cory Doctorow의 Down and out in the magic kingdom을 다운 받아 읽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TiBR와 RoadLingua를 새로 설치했다.

배씨 덕택에 스타트랙 엔터프라이즈 시리즈를 다운 받을 수 있었다. 평균 속도 120kb/sec으로 이틀에 걸쳐 시즌1과 시즌2를 다 받았다. 시즌3를 받는 도중 하드디스크 여유 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즌1의 5화 unexpected는 시종 낄낄 거리면서 봤다. 엄밀하게 말하면 난 스타트랙 팬이 아니다. 예전에 책으로 보고 참 재밌게 글을 잘 쓴다 싶었던 엘러건트 유니버스가 3부작 TV 다큐멘터리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떤 SF 영화 동호회에서 다운 받았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왠간한 백과사전보다 위키페디아를 더 자주 애용하게 되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KTF 플라자 직원의 거짓말 때문에 시간낭비를 한 셈이지만 성질 부리고 지랄하는 대신 입 다물고 조용히 넘어갔다. 왜 그랬을까? 예쁘지도 않았는데. 할 일이 많다.

여기 저기 거래 은행에 전화를 걸어 k-merce를 지원하는 단말기 할부 판매를 하냐고 물었다. 싸게 구입할 수 있을테니까. 6월에 끝났단다. 빌린 핸드폰을 아무 말 안하고 반납하고 종로로 무작정 갔다. 종로에는 분실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대리점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값싼 기계를 찾아 보았다. 여지없이 팬택&큐리텔의 PG-K5500C를 구매했다. 애들 장난감처럼 생겼다. 가장 싼 온라인 상점의 가격보다 딱 만원 더 비싸게 주고 샀는데(18만원), 어댑터와 핸드폰 고리 따위를 주었으니 사실상 온라인 상점에서 구매한 것보다 나았다. 온라인 구매는 배송기간이 있고 안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귀찮은 서류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큐리텔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시간 통화에 따른 통화 음질의 현저한 열화는 여전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UI에 일관성이 생겼다. 그 좋은 삼성폰이나 LG폰과 스펙을 비교해 보면 통화 음질 이외의 전 분야에서 큐리텔이 가격대 성능비가 좋았다. KTFT의 핸드폰을 구매할까 생각했는데, 그 핸드폰은 KTFT 직원들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아주 엿같다는 평을 여러 차례 들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큐리텔 통화음질 높이는 방법')에 따라 통화음질을 향상시켜보려고 했으나, 메뉴에 들어가보니 이미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 대기화면에서 ##20022002 + 종료버튼
* 4번-PREF VOISE SO 누름
* EVRC Capability - enable (disable)
* home page so - qcelp(13k)
* home orig so - qcelp(13k)
* roam orig so - qcelp(13k)

새 장난감이 생겼으니 이것저것 해 봐야지. 25만 컬러의 TFT 스크린이라길래 사진을 업로드 해서 화질을 보니 이전의 6만5천 컬러 액정에서 보던 것과는 현저하게 화질 차이가 났다. 스피커가 워낙 작아 벨소리는 찢어졌다.


전자사전이 내장되어 있다. 대체 왜 이런 것을 집어넣었을까? 글자 타이핑하느라 시간 다 보냈다.


GPS 기능이 된다. 내 위치가 실시간으로 화면에 나타나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핸드폰으로 전송해 줄 수 있었다. 이게 과연 GPS일까? 최소한 위성 3개와 싱크해야 하는데 동기 시간이 워낙 짧아서 믿어지지 않았다. 간단한 방법으로 테스트가 가능하다. 위성을 잡을 수 없는 실내에서 해보면 된다. 실내에서는 GPS 신호가 약해 기지국 기반으로 위치 추적 정보를 전송해 주었다. 진짜 GPS가 맞다. 오예. 껀당 사용료 80원. 10초당 18원씩 하니까 40초 이상 통화하면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번에는 거래 은행에 들러 k-merce용 smart id chip을 구하러 갔다. 한미은행에 들르니 이런 업무를 처음 해보는지 무척 버벅거렸다.


한미은행에서 얻은 칩.


핸드폰의 뒤쪽 배터리를 뜯어내고 안에 장착하기 전.


핸드폰으로 Bank On 서비스에 접속. 핸드폰에 한미은행 프로그램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Magic N으로 접속하여 프로그램을 다운 받았다. 한번 실행된 후 그다음부터 실행되지 않는다. KTF에 전화를 걸어보니 자기들이 알아보고 전화를 준단다. 어련하시겠어 콜센터의 친절하기만 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아가씨들. 한미은행 홈페이지에서 하는 방법을 찾았다.

국민은행에서는 칩을 발급받고 교통 카드 기능을 집어넣었다. 테스트해보니 잘 된다. 인터넷 뱅킹은 무료인데 핸드폰으로 하는 Bank On이나 K-Merce 서비스는 껀당 얼마간의 수수료가 들었다.

핸드폰의 어떤 서비스도 공짜로 작동하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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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나들이

잡기 2004. 8. 29. 20:43
1500원 짜리 국밥을 먹으러 낙원동에 갔다. 할아버지들과 합석해서 국밥을 먹었다. 맛이 그저그렇다.


찍으래서 찍었다.


찍으라니까 찍었다. 이홍렬?


제1회 우리 술 페스티발. 복분자, 막걸리 각각 한병씩 챙기고 알딸딸해질 때까지 공짜 술을 마셨다. 일년에 열두 번 정도 행사를 해줬으면 좋겠다.


제1회 우리 술 페스티발. 점잖아 뵈지만 사실은 아비규환. 저마다 술 한 잔 마시려고 북새통을 이뤘다. 이 다음에는 스포이트로 빨아서 술잔에 담는 것이 감질나서 병째 들이붓기 시작하거나 아예 술병을 들고... 참 무서운 사람들...


황새를 살리자? 찍으라니까 찍었지만.. 새한테는 통 관심이 안 생겨서...

앗싸. 이번달도 12개 엔트리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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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친구들 중 심바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내일 남미로 간다. 부럽다. 지금 생각에 그곳에 있을 때 좀 더 방탕하게 놀았어야 했다. 그 며칠 전, 술먹고 뻗기 전날, 충언씨는 파타고니아가 자기 인생에서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라고 거듭 강조했다. 몇몇 남미 여행자들로부터 장엄한 모레노 빙하에 관한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파타고니아에 관히 알고 있는 것은 오직 그것 밖에 없었고 아는 것이 그것 밖에 없으니 파키스탄에서 빙하 트래킹하던 것이 생각나 뭣하러 빙하는 또 보러 가나 뭐 그런 생각으로 칠레를 아예 여행 경로에서 빼버렸다. 실수였다. 다른 것이 있었다.

파타고니아에 관해 뒷조사를 해보니(그래봤자 도서관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피 과월호를 뒤적여보는 정도지만) 아니, 이런, 사나이의 피를 끓게 만드는 정직한 깡촌이 있었단 말인가? 내셔널 지오그리피의 기사 중 특히나 도발적이엇던 것은 파타고니아 지역을 위성 사진으로 찍은 후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 130킬로그램의 식량과 gps, 그리고 카누를 들고 트래킹을 한 것이었다. 멋지다. 책상머리에 앉아 볼펜처럼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일만 죽어라고 하는 내게 황량한 벌판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 도무지 왜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사회 부적응에 대한 긍정적 반발이 아닐까? 강조하지만 교미와 번식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투쟁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짬뽕을 만들어 먹고 싶었다. 어젯밤에 아내와 집에서 냉장고에 남아있던 돼지 주물럭으로 소주 한 잔 했다. 도서관에서 부실한 식사를 한 탓에 오늘은 유난히 실존적인 부조리함을 느꼈다. 아내와 결혼한 후로 냉장고에 왠간한 재료는 다 있어서 뭘 만들어 먹기가 편하다. 면발 만드는 것은 관뒀다. 퀀텀 그래프 이론에 의해, 면발까지 창조할만한, 또는 만들어진 면발과 내가 동시에 편재하며 연결될 시공간이 부족했다. 공상과학스러운 개소리는 그만하고, 하여튼, 만들기 귀찮아서 관두기로 하고 수퍼에서 샀다. 재료비가 그래서 천 원 들었다.



고춧가루를 기름에 볶아 걸러내어 바알간 고추기름을 얻고 거기에 마늘과 파를 넣어 볶아 기름에 향이 배이게 한 다음, 냉장고에 있는 여러가지 야채(호박, 당근, 양파, 표고 버섯, 붉은 고추)를 넣고 볶았다. 매워서 눈물이 찔끔 거렸다. 한편에서는 전에 조리하다 남은 치킨 스톡 다이스의 반 토막으로 닭 육수를 만들고 그 안에 조개와 다시다를 넣고 끓이다가 다시다와 조개를 건졌다. 담백한 치킨 스톡 덕택에 그동안 지긋지긋했던 멸치 육수와는 안녕이다. 조갯살을 발라내서 오징어 썰어놓은 것, 새우 등과 함께 프라이팬에 넣고 고춧가루 듬뿍, 후추를 약간 넣고 다시 볶았다. 야채가 사각사각 익을 무렵 닭육수를 확 부어 팔팔 끓이면서 간을 보고 부추를 약간 썰어 넣었다. 한편, 면을 삶아 채에 바쳐 물기를 빼고 그릇에 담아 놓았다.

끓고 있는 짬뽕 국물을 부어 완성. 18분 걸렸다. 담백하다. 간이 완벽하게 맞았다. 몹시 매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아쉬운 점; 면은 만들었어야 했다. 수퍼에서 사먹는 것은 맛이 없다. 짬뽕은 자취생이나 여행 중에도 고춧가루, 갖은 야채, 생 오징어 정도면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여행자들이 의외로 잘 해먹지 않는 것 같다. 얼큰한 고향 맛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근육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게 할 수 있을텐데 말이야.

여행지에서 냄비 하나로 짬뽕 해먹기 또는 남미 여행 중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들어먹던 방법: 시장에서 야채를 종류별로 하나씩 쪼잔하게 구매(물론 상인에게 욕을 좀 먹겠지만 철판 깔면 된다), 냄비에 고춧가루와 식용유를 일대일로 넣고 볶은 다음 화장지에 걸려 고추기름을 얻고 거기에 마늘을 두세등분한 것과 파는 없을테니 대신 레몬그라스나 양파, 생강, 코리안더 따위 향기 나는 식물들을 짓이겨 넣어 기름과 함께 볶아 향을 내고 빅토리녹스 만능칼로 대충 야채(피망, 양배추, 당근, 양파, 무 등 아무거나 많을수록 좋다)를 서걱서걱 썰어 고추가루와 설탕(고추가루가 한국처럼 단맛이 안 나니까), 미원 따위 조미료를 넣고 볶다가 오징어나 홍합 등이 있으면 대충 잘라 넣고 물을 부어 끓이면 된다.



땀을 냈으니 식혀야지. 수박을 썰어 검은 씨를 대충 빼내 블랜더에 넣고 연유 조금, 설탕 왕창, 얼음을 넣고 갈았다. 뼛속까지 시원하다. 이름하여 태국식 땡모(수박)쥬스. 맛없는 수박을 맛있게 먹는 법. 자꾸 해 보니까 날이 갈수록 솜씨가 좋아졌다.

신분증 사본 등 신분 증명을 위한 서류를 팩스로 보내야 하는데 팩시밀리를 쓸만한 곳이 뾰족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앗참 그렇지! 내가 아끼는 단종 모델 노트북, 이제는 영문 o자와 숫자 1자까지 망가진 채 고통스럽게 연명하고 있는 살아있는 고물, 리브레또 L1에는 팩스모뎀이 내장되어 있다. 그리고 windows xp 설치 cd에는 팩스 지원 소프트웨어(팩스 프린터 및 팩스 콘솔)가 포함되어 있다. 시험해 보니 쓸만했다. 팩스 송신과 수신이 다 된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길거리에서 polham이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학생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신문에서 부시보다 케리가 당선되길 원하는 한국인이 70% 가량 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를 봤다. 홍감독 영화를 안 볼 꺼라고 다짐하면서도 또 봤다. 여전히 차도가 안 보인다. 이 양반의 영화 주인공들은 여전히 메스꺼워 보이는 어떤 부류의 인간들의 삶에 대한 변명같다. 홍상수 영화가 아무 것도 보여주는 것이 없지만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로 몇 페이지를 써대는 비평가들에게 사뭇 존경심이 든다. 딴지일보에서 지민호 감독을 인터뷰했다. 지민호 감독은 밀리터리 SF를 만들고 있단다. 편대단편 (38:36) 감상평: 할 말 없다. 수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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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일요일, 용산에 가서 중고 핸드폰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업자에게서 분실보상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잃어버린 핸드폰은 24만원짜리를 24개월 할부로 구입한 것인데 아직 할부 기간이 끝나지 않아 해당 사항이 없단다. 잔금으로 치러야 할 것이 17만원 가량. 10만원 미만으로는 쓸만한 중고 핸드폰을 구하기 힘들어 보인다. 인터넷에서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KTF 콜센터에 전화하니 분실보상이 가능하단다. 대리점에 들러 기계를 구입하려고 하자 분실보상을 해줄 수 없단다. 다시 콜센터에 전화하니 분실보상은 엄연히 가능하단다. 다른 대리점에 들러 기계를 구매하려니 역시 안된단다. 이번에는 대형 대리점에 들러 분실보상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안 된단다. 그래서 콜센터 직원을 연결해 주었는데 대리점 직원 말로는 자기들에게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권한. 좋은 말이지. 이번에는 인터넷에서 KTF ever e-3300 기계(내 경우에 가장 가격대 성능비가 좋아 이걸 구매하기로 마음먹었지만)을 주문했다. 13만 7천원, 꽤 괜찮았는데 결정적으로 자기들은 분실보상을 해줄 수 없단다.

된다, 안 된다. 임대폰 빌릴 때하고 상황이 비슷하다. 전화질을 3일쯤 하다가 슬슬 귀찮아서 KTF 플라자에 들렀다. 임대폰을 반납하면서 분실보상에 관해 알아봤다. 자기들 플라자에서 가능하단다. 그러고 여러가지 기계를 내 놓는다. 전번 기계의 할부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비싼 핸드폰을 구매하려니 살 떨려서 지금껏 싼 것들만 알아보고 다녔는데 플라자에서 가장 싸다는 것이 23만원이다. 시중보다 무려 십여만원이 비싸다. 23만원 짜리는 영 꽝이라서 그보다 나은 것을 고르려니 팬텍의 K-1200 기종, 허접한 단말기 주제에 26만 7천원 짜리.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다시 물어봤다. 콜센터에서는 분실 보상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그 대리점까지 알려줬는데 대리점에만 가면 분실보상이 안된다고 말하더라. 왜 그러냐, 플라자 여직원 왈, 콜센터 직원은 몰라요. 분실보상이 되는 곳은 여기 플라자 뿐입니다. 그럴리가.. 전화기를 들고 대질확인을 해 보려고 콜센터에 전화를 하려다가 말았다. 플라자 직원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수 없이 여기서 단말기를 구입해야 할 것 같다. 플라자 직원은 10만원 가량을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붙여 요령있게 할인해 주었다. 다른 이통사로 전환하려는 사용자를 막기 위한 보상할인 제도라나? 그래도 16만 7천원이고 가격에 비해 기계의 허접스러움은 여전했다.

5분쯤 통화하자 핸드폰에서 소리가 뚝뚝 끊긴다. 큐리텔 단말기는 전부(2개 밖에 사용해 보지 않았지만) 그 모양인 것 같다. 슬슬 이러면 안되는데 싶어졌다. 이 기계를 들고 또 as센터를 들락거려야 한단 말인가? 구입 후 14일 이내에 환불이 가능하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니 애가 닳아서 KTF 웹 사이트에 들어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email을 보냈다. 답장이 왔다. 분실 보상 판매는 플라자 뿐만 아니라 일반 대리점에서도 가능하다고 앵무새처럼 다시 반복한다. 좋다. 그럼 환불하겠다. 행여 분실보상이 안되면 미납금 17만원을 갚고 다른 이통사로 이전하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아직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임대폰, 분실보상 두 가지 경우를 합쳐 대략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차라리 분실보상이 안된다고 말했다면,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찾을 가망이 거의 없다고 일찌감치 말해 주었더라면 2주를 이렇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허접한 서비스로 2주를 엿먹인 KTF를 계속 사용해야 하나? 실용적인 의문이다.

아내가 두더지처럼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것에 지쳤다며 버스를 타 보잔다. 그러기로 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원효로. 어떻게 가야 하지? 예전같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살고 있는 은평구, 서대문구, 일산 등지는 지역 코드 번호가 7이다. 달리 말해 대충 방위를 정한 후 버스 번호의 앞자리가 7인 버스를 찾아보면 된다. 있다. 7016번이 용산 부근에서 신촌까지 지나간다. 탔다. 내렸다. 배가 고파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떡볶기를 시켜 먹고 방금 내린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다른 버스를 탔다. 연결편이므로 요금을 더 내지 않았다. 새로 바뀐 버스체계의 좋은 점이다. 아무 것도 몰라도 집에서 동대문행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점.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옳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 전번 술자리에서 모 사장을 칭송했다. 그는 집을 네 채나 가지고 있는데 이번 부동산 법 개정 때문에 거의 폭격을 맞다시피 한 사람이지만 똥 씹은 표정으로 펼치는 그의 주장은, 노정권이 부동산 투기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익에 합치되지 않지만 옳은 것을 주장하면서 손해를 감내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계속 그러하길. 수고~

오래된 농담: 세상에는 오직 10 종류의 사람들만이 있다. 바이너리를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there are only 10 types of people in the world: those who understand binary, and those who don't.) 코코를 이용해 컴파일러를 만들긴 만들었는데 expression을 lvar euqal rexp 형태로 나타내는 것이 나을 지 rexp로만 설정하고 assignment를 구문으로 사용하는 것이 나을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구현은 후자 쪽이지만, 아무래도 전자가 c 관행에 어울린다. 후자의 경우 LL(1) parser라서 bnf구문의 left order conflict가 생겼고 resolve가 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음.. EBNF를 지원하는 보다 자유로운 LALR 파서로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농담만큼이나 실용적인 의문이다.

방문자를 배려하는 블로그, 이 양반의 주장에 따르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불친절한 블로그는 그만한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꺼이 그 댓가를 치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이유로 손님에게 불친절한 블로거가 딱하게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등'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나는 작년 2003 블로기 어워드에서 감히 남들이 넘볼 수 없었던 단독 경쟁으로 '유아독존' 부문 에서 상을 받았던 사람이다. 하하.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면 인격에 문제가 많은 나도 물론 게시판질을 한다. 이렇게;


갈 데가 없어 하플에 들렀습니다. '아이 재미없어. 재밌는 거 없어?' 라고 말하는 호미니드는 확 자살해 버리기는 커녕 지구 어디에서나 활발하게 입을 놀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옛날에 루시퍼 원리로 빅 히트를 친 바 있는 데이빗 블룸의 '집단 정신의 진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먹이가 풍부한 지역에서 번성하던 박테리아 군집체에도 위기는 어김없이(늘 그렇듯이) 닥친다. 기근, 아사 상태에 이른 군집체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포자를 파견해 주변 지역을 탐색하며 먹이를 활기차게(아, 아닌가? 절망적으로 미친듯이) 찾는데, 성공적으로 먹이를 발견한 SCV는 자신의 고향에 그 내용을 리포트하는 화학물질을 발산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실패한 포자는 자신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화학물질을 방출하며 죽어간다는군요. 군집체는 탐색에 실패한 포자의 메시지를 받고 그에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냄새라고 할 수 있겠죠. 비슷한 군집생활을 하는 인간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그와 유사한 펑션과 더불어 문화적 밈을 통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거지요. 가령, 우울증에 빠진 놈이나 미친 놈 또는 실패한 놈들은 집단의 시각에서 봤을 때 전철을 되밟지 말아야 할 일종의 지표가 되는 생물학적 시그널을 자기도 모르게 외부에 발산하게 되는데, 그래서 우울한 놈은 점점 더 우울해지고, 미친 놈은 계속 미쳐가고, 재미가 없는 놈은 점점 더 재미가 없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단의 생명력의 본질인 다양성을 추구하는 그런 종자 중 실패자는 집단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생물학적인, 집단에 내재된 메카니즘이 있다는 뜻이지요. 댁이 아주 싫어할 것 같지만 나는 히히덕 거리면서 즐기며 나름대로 해석해 본 블룸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재밌어져라 죽고싶지 않으면.


메시지가 분명하지만 타인에게 나는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인간이 되어야 할 환경압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생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재밌어지거나 앞서가거나, 시련을 극복하거나, 훌륭해지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진화상의 이익 내지 목적은 교미와 번식의 성공인 것 같다. '사회적인' 블로그가 설마 무의식적으로 교미와 번식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겠지?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제목이 무척 흥미롭다.

* 프랭크 오스키,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
* 노구치 하루치카, 오래 살고 싶으면 감기에 걸려라

한달동안 열댓 권의 책을 읽었다. 읽어야할 SF는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파퓰라 사이언스에 최근 SF의 추세에 관한 기사(Is Science Fiction about to go blind?)가 실렸다. 소개된 SF 작가들의 면면이 약간 지겹긴 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Charles Stross, Cory Doctorow, Greg Egan, Vernor Vinge, Neal Stephenson, 모두 프로그래머다. 이건의 신간 Schild's Ladder에는 양자 그래프 이론이 나온단다. 양자 그래프 이론은 현직 물리학자들도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이론이란다. 양자 그래프 이론이 뭐지? 이건이야 말로 날이 갈수록 점입가경, 엎친 데 덮친 격인 SF작가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면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단순하고 달성 가능한 쉬운 목표로 주말을 보내기로 했다. 면을 잘 만들기 위해 한 3년쯤은 노력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타고난 감각도 없는 주제에 너무 자신만만한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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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밥 해먹기

잡기 2004. 8. 22. 20:01
며칠 동안 집에서 되는 대로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다. 태국식 쌀국수, 베트남식 쌀국수, 탕수육, 월남쌈, 태국식 볶음밥 따위 여러가지 잡생각이 들면서도 비교적 만들기 간단한 것들. 남쁠라(베트남에서는 느억맘; fish souce인데 한국의 까나리액젓이나 멸치액젓처럼 생선을 발효시킨 조미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이 있으니까 그런 음식 만들어 먹기가 한결 쉽다.

탕수육. 꿀, 설탕, 간장, 식초, 물 약간 넣고 끓이다가 거기에 당근,오이 따위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전분을 첨가해 걸죽한 소스를 만들고, 계란, 밀가루, 물, 소금 약간 등으로 튀김옷을 만들고, 냉동실에 남아있던 삼겹살(안심이 좋겠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오징어, 두부 따위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중불에서 노릇하게 초벌로 튀기고 식혔다가 다시 센불에서 삽시간에 튀겨 기름을 빼고 접시에 올린 후 소스를 끼얹는다. 의외로 만드는 방법이 쉬웠다. 아내와 합작.

월남쌈. 재료 부실. 겨우 8가지. 특히 향초들이 없어서...

월남쌈을 살짝 튀긴 후 태국식 튀김 소스에 찍어 먹으니 그럭저럭 베트남 길거리에서 먹던 맛이 난다. 특히나 튀겨진 라이스 페이퍼의 아삭한 맛이 환상적이다. 춘권은 베트남식이 가장 나은 것 같다. 쌈 싸는 것은 과거 여러 종류의 잘 돌아가던 멀쩡한 기계를 망가뜨리며 뼈저리게 익힌 내 손재주가 아내보다 월등히 낫다.


태국식 볶음밥. 안남미로 밥을 지었다. 대략 10분 정도 걸렸다. 내 지론이지만 자포니카 종 쌀은 볶음이나 요리에는 부적당하다. 밥덩이가 뭉쳐서 양념이나 향신료가 잘 배이지 않고 밥을 짓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 밥을 하는 동안 재료 준비를 해 놓고,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 해 놓은 계란을 풀어 먼저 살짝 익혀 놓은 후 건져 놓고, 기름에 마늘, 마늘쫑, 부추를 볶아 기름에 향이 배이도록 한 다음에 감자, 당근, 양파, 피망을 넣고 볶다가 새우, 소고기를 넣고 볶고 밥과 계란, 남쁠라, 소금 약간을 넣고 센 불에 후다닥 볶은 다음 접시에 담아 쑥갓과 오이를 썰어 얹었다. 맛있다. 남쁠라가 없었더라면 이런 맛이 안 난다. 볶음밥 만큼은 확실히, 태국의 아주 잘하는 레스토랑 수준에 근접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태국식 고추 가루 풀어놓은(또는 절인) 식초가 빠져 약간 쓸쓸하다.

다음에 해 먹고 싶은 것은 태국식 커리인데 집에 갖추어놓은 향신료가 없어서 일단은 무리다. 태국 커리는 인도 커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향신료가 들어간다. 일단 http://www.yum.co.kr에서 코코넛 밀크와 그린 커리 페이스트, 치킨 스톡 따위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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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ti precision arithmatic

잡기 2004. 8. 22. 00:09
머리가 안 따라주면 주말에도 놀지 말고 일해야 한다. 어렸을 적에 짰던 코드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것을 짰다. 그런데 누쓰 알고리즘이 어떻게 되는지 잊어버렸다. 책을 찾아봐야 하는데, 그의 책은 옛날 옛날 먼 옛날에 고구마 궈 먹으려고 들판에서 태워버렸다. n-bit precision arithmatic 중 사칙연산과 논리연산만 있으면 되는데 토요일 하루 종일 안 돌아가는 머리로 코드를 짰다. 곱셈과 나눗셈 계산 하는 방법을 잊어먹은 것이다. 제길헐... 간신히 되긴 했는데 내가 왜 이 코드를 짜게 되었는지 그 '목적'을 잊어 버렸다. OTL

지금은 어떻게 연산 속도를 높일 수 있을까 궁리를 하다가... 속도가 별 문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난 대체 뭐하는 놈일까...



typedef unsigned int Unit;

class Integer
{
public:

#ifdef _WIN32
enum { // ms vc 6.0 has some bug on static const init in class definition
bits = 2048,
stsize = sizeof(Unit) * 8,
bytes = bits / 8,
MaxSize = bits / stsize,
};
#else // for linux
static const int bits = 2048;
static const int stsize = sizeof(Unit) * 8;
static const int bytes = bits / 8;
static const int MaxSize = bits / stsize;
#endif

Unit d[MaxSize];
...
};

int Integer::bitcount()
{
int kn = 0;

for (int i = MaxSize - 1; i >= 0; i--) {
if (d[i] != 0)
break;
}

for (int j = stsize - 1; j >= 0; j--) {
if ((d[i] & (1 << j)) != 0)
return i * stsize + j;
}

return kn;
}


Integer& Integer::operator+ (const Integer& x)
{
result = *this;
unsigned __int64 carry = 0;

for (int i = 0; i < MaxSize; i++) {
carry += result.d[i];
carry += x.d[i];
result.d[i] = (Unit)carry;
carry >>= (stsize);
}
return result;
}

Integer& Integer::operator- (const Integer &x)
{
Integer s = x;;
s.neg(); // 2's complementary
result = *this + s;
return result;
}

Integer& Integer::operator* (const Integer& x)
{
Integer N(*this); // multiplee
Integer M(x); // multiplier

result.clear();
if (M.is_zero()) {
return result;
}

int i, kn = M.bitcount();

M = M << (bits-kn-1);
for (i = 0; i < kn + 1; i++) {
result.shift_left(0);
if (M.shift_left(0))
result = result + N;
}
return result;
}

void Integer::div(Integer D, int modf)
{
// N = Q * D + R,
// where N is given numerator, Q = quotient, D = divisor, R = remainder

Integer N(*this);
Integer R;
Integer Q;
int i, carry, kn = bitcount();

if (N.is_zero() || D.is_zero()) { // D is zero: divide by zero
*this = R; // R or Q = 0
return;
}

if (N < D) {
* this = (modf) ? N : R; // N = remainder, R = 0
return;
}

N = N << (bits-kn-1); // left justify the numerator
for (i = 0; i < kn+1; i++) {
carry = N.shift_left(0);
R.shift_left(carry); // rotate left with carry
if (R >= D) {
Q.shift_left(1);
R = R - D;
}
else {
Q.shift_left(0);
}
}

* this = (modf) ? R : Q;
return;
}

Integer& Integer::operator/ (const Integer& x)
{
result = *this;
result.div(x, 0); // get quotient
return result;
}
Integer& Integer::operator% (const Integer& x)
{
result = *this;
result.div(x, 1); // get remainder
return result;
}

...

void main(void)
{
Integer x = "0x1234`5678`9abc`def0`1234`5678`9abc`def0";
Integer y = "0b00011001`11010101";
Integer z = "0x7E315816B6472299DF";
Integer p = "2327845370165345819103"; // same as z

cout << "x * y = " << (x * y).string(16) << "\n"; // represent value as hex string
cout << "x / y = " << (x / y).string(16) << "\n";
cout << "x << r = " << (x << p).string(2) << "\n"; // bin str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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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우기

잡기 2004. 8. 19. 19:12
이 도메인이 언제고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길래 홈페이지 이동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봤다.

yacc/lex, bison/flex를 써본지가 오래되어 새로 공부하다가 영 짜증나서 다른 랭귀지 툴을 찾아 다녔다. simplicity가 유난히 번쩍이는 쓸만한 것을 발견했다. coco/R. 더 좋은 것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렸을 때 나는 모든 프로그래머가 컴파일러 이론을 학습하는 줄 알았다. 프로그래밍은 패턴을 찾는 일이고 패턴을 찾는 일은 컨텍스트 프리 그래머와 연관이 있고 따라서 패턴을 찾으려면 컴파일러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의 대부분 프로그래머는 lamda가 뭔지 몰랐다. 어떤 때는 리스프를 사용했다는 프로그래머가 람다를 모르는 일도 있었다. 람다를 알아도 그게 뭐하는 것인지, 어디다 쓰는 지 모르기도 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들은 언어 이론을 공부하지 않으며, 나만 영 엉뚱한 곳에서 그동안 삽질한 것이었다. 요즘은 머리까지 굳어 버려 내가 과연 프로그래머일까 하는 의문만 생겼다. 뭔가를 학습하는데 학습시간이 워낙 오래 걸려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며칠 전에 꽤 재미있는 컴파일러를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설계했다. 구현하려고 보니 bison/flex 따위로는... 크흑... 툴을 탓하기 전에 머리가 굳은 것을 탓해야겠지.

술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모바일폰을 흘렸다. 전화기를 잡은 그 누군가가 전화기를 바로 꺼버려서 분실폰 위치 추적이 되지 않았다. 찾을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임대폰 무료 임대 기간인 14일 동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정통부에서 분실한 핸드폰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한다. 등록.

KTF에 이틀 동안 전화질을 했는데 임대폰 물량이 없단다. 여기저기 전화질을 했다. 없다, 없다, 없다고만 했다. 3일 동안 틈틈이 전화질을 했다. 과연 없을까? 임대폰이 없다고 곧 죽어도 '주장'하는 고객센터를 전화를 끊자 마자 직접 방문하니 그 자리에서 내준다. 없는 것은 내부 소통 정보와 클로버 서비스 걸의 권한이었다. LG CX-400K, 충전기, 배터리 두 개, 그런데 가지고 있는 '정통부 표준' 충전/데이타 케이블과 호환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유일한 문화생활이라고는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것 밖에 없다. 최근 읽는 책들은 모두 생물학, 특히 진화에 관한 교양과학서 뿐이다. 소설과 달라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읽으면서도 한 권 떼는데 이틀이나 3일씩 걸렸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특별히 재미있는 정보를 얻는 것은 아니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은 아주 지겹게 들어서 더 듣고 싶지 않지만 생물학 특히 분자생물학 소재의 과학교양서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그뿐인가? 인트론, CAG 연쇄고리 마이크로 새틀릿에 얽힌 신비도 마찬가지다. 미토콘트리아 DNA부터 늙어빠진 리보솜에 이르기까지 자동적인 단순반복학습에 의해 이제는 달달 외우다시피 할 지경이 되었다.

인간은 서로 동등하지 않은 피쳐를 가진 선택지 사이에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는 있으나, 여러 독립 변수에 걸친 가중치의 합이 서로 엇비슷하여 논리적으로 여러 선택지가 동등하게 존재할 때 그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이 아닌 호불호 따위의 감성에 의존한다. 인간 두뇌가 지닌 본질적인 구조에 기인했다. 말하자면 메모리가 512메가이고 음질이 약간 떨어지고 디자인이 멋있는 mp3p와 256메가이고 음질이 우수하고 저렴한 mp3p가 있을 때 객관적으로 나열할 수 있는 여러 스펙상의 피쳐에 점수를 메겨 가중치 합계를 비교할 때 서로 엇비슷할 경우 여러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변연계를 건드리는 소뇌의 역할이라는 것. 이런 종류의 knapsack 문제는 지나치게 보편적이다. 인간 사회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사실상 이성을 초월한 것들이니까 굳이 이성을 찾으라고 울부짖을 이유가 없다고... 해야 하나? 나는 감정적으로 메말랐기 때문에 뭔가를 선택할 때마다 그 무한한 다양성에 난감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개중 쉬운 것도 있다.

다음중 그나마 나은 행동은?

1. 술집에서 내게 욕설을 하는 사람을 두들겨팼다.
2. 외국계 대형 할인점에서 물건을 훔쳤다.
3. 이웃집 아줌마를 꼬셔서 성교를 했다.
4. 전쟁터에서 나를 죽이려고 총을 쏜 민간인을 사살했다.

문제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 굳이 '선호'하는 한 가지를 택하라면 1.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고 2. 최소한의 피해를 지니며 3. 나에게 피해가 없는 수준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4. 게다가 타인에게도 이익이 되는 행동을 우선순위 삼아 지문을 감별하는 것이다. 그 원칙을 지키면 세상의 윤리는 덧없어졌다. 순서대로 3,2,4,1번이다. 그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들이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하는 논리를 이해하면 의외로 '해석'이 쉽다. 농담도 이쯤되면...

음... 문화란 음식과 같아서 편식하다보면 희안한 정신 질환에 걸리기 십상이다. 읽는 책의 범위가 제한되면 사고방식도 그렇게 굳어버린다.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도서관에 몇 권의 책을 주문해놨다. 그런데, 은평구립도서관의 월보를 보다가 알게 되었다. 건물 앞에 흉물스럽게 서 있는 허름한 몇 개의 콘크리트 기둥을 그들은 '헤르메스의 기둥'이라고 한다. 쿨럭.

진화의 미래 children of promeheus, christopher wills -- 이 양반은 미토콘트리아 이브 논쟁에 낀 적이 있던 것 같다. 언제 읽었더라? 책에다가 워낙 썰렁한 농담들을 써 놓아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종류의...

"마라케시에서 할리데이 인에 투숙한다든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빅 맥을 사먹는 것과 같은 세계 문화의 미국화 현상을 비난하는 것이 유행이다.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두 가지 활동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환경은 오히려 다양성이 늘어났다." -- 옳거니! 바로 그거다.

"섬나라 영국은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돼어온 조리법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영국 음식을 먹고 자란 필자로서는 그 때문에 내 지능에 약간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주장을 적극 반기고 싶은 실정이다."

"1930년에 진화유전학 이론의 위대한 창시자들 중 한 사람인 피셔(R. A. Fisher)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진화적 변화의 최대 속도는 집단 속에 존재하는 유전적 변이의 양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돌아볼 때 이 사실은 명백해 보이며, 그리고 실제로 피셔는 자신의 직관이 수학적 공리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에 찬 나머지, 거기에다 '자연 선택의 기본 정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 진화의 속도 논쟁은 여러 생물학의 분야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진행중이다.. 대체 언제쯤 결론나는지 기다리기도 지친다.

"스마트 약이 우리 종에게 마구 사용될 때, 그 결과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스마트 약에 대한 반응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며, 숨겨져 있던 온갖 종류의 유전적 변이들을 노출시키는 또 하나의 와딩턴 실험을 초래할 것이다. 이 새로운 생화학적 학살에서 누가 살아남을지, 또는 우리의 유전자 풀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지만, 아무리 줄여 말하더라도 그 결과는 틀림없이 흥미로운 것이 될 것이다." -- 흥미롭고 말고.

"기계 문명에 반감을 가진 내 추측으로는 미래에는 오디세우스의 배에 탄 승무원들처럼 귀를 막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사이렌의 노래에 희생될 것 같다. 물론 음모론이 횡행하는 미친 우주에 무절제하게 접속하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편집증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유전자 풀에서 효과적으로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귀를 틀어막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아기를 낳는 진화상 중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해나갈 것이다." -- 윌스의 견해와 반대, 신생인류에게는 인터넷 노이즈 이뮤니티 또는 스팸 이뮤니티라는 사회적 적응이 생길 것 같다. 스팸을 견디지 못하는 유전자는 장차 서서히 제거될지도 모를 일이고.

mean genes 비열한 유전자, Terry Burnham, Jay Phelan -- 매우 재미없는 책. 유전자, 진화론을 가미한 '처세술'. 사회생물학적 태제를 대체로 마뜩찮게 보는 편이라...

"신선함을 추구하는 유전자는 한 집단의 사람들이 해외로 얼마나 멀리까지 이주하는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은 수천년 간 이주를 거듭해온 사람들의 후손으로 원주민의 2/3 이상이 신선함을 추구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세계 어느 민족과 비교해봐도 높은 수치다." -- 그게 말이나 되냐?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기를 화나게한 축구선수를 쏴죽이고 '신선함을 추구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부족한 나는 허구헌날 과거창산 문제로 싸우는 정치인들을 비웃으며 우주를 꿈꾸는 것인가. 게다가 내 주변 사람들은 전부 그렇다. 일부는 우주에서의 부동산 투기까지 꿈꾸고 있다. 아파트는 글렀다. 토지도 약빨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남은 것은 바다와, 우주 뿐이다.

"친구들과 외박을 할 때, 신용카드 룰렛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식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신용카드를 모자나 냅킨에 놓아두고 웨이터를 불러서 그중 한 개를 뽑도록 하면 된다. 신용카드가 뽑인 사람은 식사 전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것도 도박의 일종이지만, 복권이나 카지노 게임과는 달리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면, 결국에는 참가한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비용을 지불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도박은 공짜임에도 불구하고 해보면 놀랄 정도로 사람을 흥분시킨다." -- 하나도 재미없다.

"어떤 사람이 현재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싶다면, 그들의 직업이나, 수입이나, 연애문제나, 혹은 걸을 수 있는지 어떤지도 확인할 필요가 없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행복도를 알기 위해서 가장 유용한 데이터는 그 사람이 20살이었을 때(혹은 6살이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그 사람의 답변이다." -- 20세때 나는 행복했다. 그때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프로그래밍만 하면 됐으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와 전혀 다른 면역체계항원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MHC 또는 HLA라고 불리는 이 생물학적 특성은 사람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 출신의 사람일수록 많은 차이를 보인다. 두 개의 서로 다른 항원이 모이게 되면, 이 둘은 합해져서 더 건강하고 활기찬 자녀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 활기찬... 자녀?

"가시머리충(thorny headed worm)은 '시멘트 분비선'을 가지고 있는데 교미가 끝난 뒤에 그들은 암컷의 질을 시멘트 마개로 봉합해 버린다. 더 지독한 공충의 경우에는, 수컷이 자신의 정자를 다른 수컷의 몸 안으로 주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수컷이 나중에 암컷과 교미를 하게 되더라도 다른 수컷의 정자로 암컷이 임신하게 된다." -- 놀랍기 그지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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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 유성우

잡기 2004. 8. 12. 15:01
어렸을 때는 감기 몸살 등 잔병치레가 많았다. 지금은 감기 만큼은 잘 걸리지 않는다. 감기에 안 걸리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레에 물리면 피부에서 늘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이름모를 벌레가 팔뚝 부근을 물어서 벌겋게 변색된 피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저 열 받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에는 벌레에 물려도 이런 심한 반응이 일지 않았다. 그 때와 지금 사이에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음... 식생활 정도다. 어린 시절에는 벌레를 먹었지만 지금은 먹지 않았다.

헤모글로빈 분자를 파괴해 전신에 고열을 동반하고 그 다음에 심한 오한으로 고생하는 말라리아는 열대 지방에 매우 흔한 질병인데 요즘은 유행이 바뀌어 댕기열과 황열병이 대세다 -- 말라리아 같은 것은 취급도 안 해준다. 하지만 말라리아는 말라리아 약에 상당한 내성이 생긴 후에 보다 '진화된' 모습으로 인간 앞에 출현할 것이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말라리아는 문명에 의해 야기된(널리 퍼지게 된) 질병이란다. 1만년 전후로 인류가 무리를 지어 농업사회를 형성하게 되면서 숲을 농지로 개간했고 살 곳을 잃어 숲에서 터전을 옮긴 모기들이 습한 농지와 인가 주변에서 살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식생활을 개선한 탓이란다. 그 전에는 숲의 높은 나무에서 새나 들짐승들의 피를 빨아 먹으며 근근이 생명을 이어갔다.

내 경우도 모기와 마찬가지로 식생활 개선은 몇 안 되는 뻔한 식재료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현저하게 적어진 식재료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개미도 먹고.

식생활에 따른 드라마틱한 체질 변화에 두려움을 느낀다. 말복 때 단고기를 먹고 몸에서 심하게 열이 났다. 내 몸은 두 번 바뀌었지만 내 마음은 셀 수 없이 바뀌었다.



아스트로노트 오늘밤 별자리에서 뜯어온 그림. 북서쪽 페르세우스 자리 유성우 7/17 ~ 8/24. 최대 8/13. 시간당 110개 가량. 그믐달은 6.2%.

"유성우는 우리 시각으로 밤 8시쯤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이지만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해가 완전히 진 뒤인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가 될 전망입니다. ... 너무 관찰하기 쉬워 모기약만 들고 나가면 됩니다." -- from news

오늘밤에는 꼭 보자!

연말까지 부동산 거품 20% 빠져야 경제가 산다 -- 시원하다...
Philippe Dufour, "Simplicity"
금속학적 고찰 - 중간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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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주문진에 도착하니 열 시. 챙겨온 옷이라고는 입고있는 수영복과 티셔츠 하나. 그런데도 외국 여행 갈 때보다 짐이 많았다. 책 네 권, 버너, 가스등, 침낭 따위들...

사인이 안 맞아 강릉까지 내려갔다 올라온 누나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소담스럽게 생긴 주문진 바닷가를 휭 하니 한 바퀴 돌아 횟집에 내려 주었다. 마루 평상에 앉아 달을 쳐다 보면서 회와 소주로 배를 채웠다. 그집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한상 가득한 맛있는 식탁이 썩 좋았다.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속초에 들러 휴가중인 김씨 아저씨를 픽업하고 순두부를 후르륵 말아먹고 홍천으로 향했다. 2인승 차라 자리가 모자라 황가와 나는 짐들과 함께 뒷자리에 누웠다. 예전 여행할 때 생각이 났다.



짐칸에 누워 홍천 내촌의 깊숙한 깡촌으로 향했다. 승용차는 들어갈 수 없는, 깊고 깊은 계곡으로. 워낙 외진 곳이라 관광객이 있을 리가 없다. 홍천에서 칠정 검문소를 지나 현리 방향으로 가다가 장골, 큰골, 작은골을 거쳐 씹방관문을 지나... 먼지 날리며 아슬아슬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보면... 중간에 길을 한 번 잃었다. 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버너를 꺼내 건어물 따위를 구워 먹었다. 나름대로 재미있다.



먼저 도착한 팀이 계곡 개울가에 셋업을 끝내놓은 상태. 준비된 소주는 모두 50병, 맥주야 다들 잘 안 마실테고. 개울은 1급수, 그냥 먹어도 차갑고 맛있는 물이다. 가져온 몇 병의 생수들이 무색하다.



불 피우기. 버너가 넷이나 있었지만 그것들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장작불에 밥을 해 먹고 장작불에 국을 끓여 먹었다.



도착하자 마자 삼겹살을 구워 먹고 강가에 내려가 물장구 치고 놀았다. 물놀이 하다 보니 깜빡하고 핸드폰을 수영복에 넣어둔 채 두 시간을 놀았다. 그런데도 작동하더라. 그리고 바로 2차 시작. 닭갈비판을 가져왔기에 거기에 닭갈비를 구워 먹었다. 꿀맛이다. 남은 소스에 밥을 비벼먹으니 맛이 환상적이다. 근처 밭에서 고추와 깻잎 따위를 따서 곁들였다. 이 추세라면 한달도 여기서 개길 수 있다. 거기에 어젯밤 주문진에서 회를 먹고 가져온 매운탕 꺼리를 끓여 곁들이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밥안주(2차)를 끝내고 솥뚜껑을 가져와 본격적으로 3차 시작. 고추장 삼겹살. 불조절을 잘해 고기는 기름기 하나 없이 연해 마치 그릴에 구운 바베큐 같았다. 소주 한 짝을 마셨다.



유부남들. 각자의 마누라를 내팽개치고 우리끼리 모이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일급수에 좆 담그고 놀자' 였다. 누님이 일찍 잠들자 마자 우리는 부끄러움을 잊고 쉽게 대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꽤 술을 퍼 마셨음에도 술기운이 좀 오른다 싶으면 고추가 오그라들 정도로 차가운 개울에 '대가리 박기'를 하거나 전신욕을 하니까 확 깬다. 아침 8시 기상. 숙취가 없다. 솥에 쌀을 넣고 장작불에 밥을 짓고 얼큰한 김치 찌게와 된장 찌게를 끓여먹었다. 근처 밭에서 이런저런 야채를 뜯어와 국을 끓이고 안주로 먹었다. 점심에 다시 라면을 끓여먹었다. 장작불에 라면을 끓여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계곡이 시원하다. 물이 차갑고 맑다. 발밑으로 지나가는 저 물을 손으로 떠 먹어도 괜찮다. 돌아가기 싫다.

홍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뿔뿔이 헤어졌다. 셋은 서울로 올라가는 오후 세 시 버스를 탔다. 서울로 향하는 차량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북이처럼 기어갔다. 여름 휴가 막바지란다.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래도 서울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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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전부터 목이 아팠다. 목감기인가 싶었다. 통증이 오른쪽 후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기묘하게 여겨졌다. 편도선은 붓지 않았다. 이틀 동안 아내의 조언대로 항생제와 진통제를 먹었지만 차도가 없다. 동네 의원에 갔다. 의사는 목이 아프다니까 이런 질문들을 했다.

1. 잘 때 선풍기 틀어놓고 잤어요? 예.
2. 가래가 있습니까? 조금 있어요 (항생제를 먹었으니)
3. 코는 안 막혀요? 살짝 막혔어요. (2항과 같은 이유로)

그럼 감기네요. 그러고서는 여섯 가지 약을 이틀치 분량으로 처방해 주었다. 진료비 3000원, 약값 2000원. 항생제와 진통제는 그렇다치고 나머지는 뭔지 알 수가 없다.

이틀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애당초 의심스러웠던 것은 목구멍 근처에 염증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다시 의원에 찾아갔다. 상담중에 아예 단정적으로 '감기가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염증인 것 같으니 내시경으로 검사해 주세요. 라고도 말했다. 그럽시다 라고 의사가 말했다. 옅은 민트향이 풍기는 마취제 스프레이를 입에 뿌리고 10분쯤 누웠다가 목구멍으로 굵은 호스를 집어넣었다. 마취되어서 인지 구역질이 덜 치밀었다.

사진을 현상해서 보니 생각했던 대로 오른쪽 후두에 염증이 있었다. 술을 마시냐고 묻는다. 늘 마신다고 대답했다. 주사를 한 대 맞고 약을 받았다. 사진 찍고 진료한 것이 8000원, 약값 3일치 1500원 나왔다. 항생제를 저번 처방과 다른 것으로 바꿨다. 아내에게 약을 보여주니 신경안정제가 끼어 있다고 한다. 발륨 0.5. 신경안정제는 목 위의 염증에 신경쓰지 말라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처방해 준 것 같다. 신경 안 쓰고 싶어도 목구멍으로 침을 넘기거나 음식을 삼킬 때면 몹시 쓰라리다.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육신의 불편함이 귀찮을 뿐이지. 항생제/진통제 때문에 소화가 잘 안된다.

그렇게 나흘이 흘렀고 앞으로 3일이 더 흘러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병원을 들르면서, 그리고 이번 일로 한 가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는데, 의사와의 첫 상담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예로 들어 바람직한 의사와의 첫 상담을 예시하자면;

1. 잘 때 선풍기 틀어놓고 잤어요? 예. 제 목구멍 오른쪽이 아픈 것은 선풍기와 상관없습니다.
2. 가래가 있습니까? 조금 있어요. 제 목구멍 오른쪽만 아픈 것입니다.
3. 코는 안 막혀요? 저는 목구멍이 아파서 온 것입니다.
4. 감기 같군요. 아니요. 편도선은 붓지 않았고, 목감기라면 경험상 목구멍 전체가 아파야 하는데 오른쪽만 아픕니다. 내시경으로 목구멍을 검사해 주세요.

그런 일에 경험이 많은 아내는 내가 몹시 특이한 인간이라서 약빨이 듣지 않아 이틀 동안 항생제와 진통제를 먹어도 차도가 없다고 생각했고, 의사는 일분여도 안되는 진료 시간 동안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해 오판했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결국 어느 병원에 가던지 의사와 옥신각신하는 일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난 지금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의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무당이 사람 잡는 한이 있어도 기초적인 의학과 약학을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말 하는 모르모트가 되고 싶지 않다.


세파드록실 - 항생제
뮤코라제 - 소염제
매프론 - ???
바리움 - 발륨,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항경련제 등등..
씨스메친 - H2 차단제? -- 위산 억제제 같음.

부팅 가능한 USB 메모리 디스크를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구매하기로 했다. 모델도 정했고 남은 것은 용량에 따른 가격차 뿐이다. 64MB는 2만원, 128MB는 3만 2천원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 충전 겸 데이터 통신 케이블을 윤씨 아저씨에게 주고 그에게 만 오천원을 받았다. 충전 겸 데이터 통신 케이블이 가장 싼 것은 오천원 정도지만 용산에서 그렇게 팔 리는 만무하고 길섶의 케이블 점에서 만원 주고 샀다. 예상보다 오천원이 남아 미련없이 128MB 메모리를 샀다. 집안의 모든 컴퓨터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없어진 지 오래되어 바이오스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귀찮았다. 사실상 최근에 USB FDD를 구해 리브레또에 연결했더니 전력부족으로 인식이 되지 않아 좌절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도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리고 공인 인증서를 담아 가지고 다닐 것이고, 필요한 소소한 소프트웨어들을 넣어두고 다닐 것이다. 크기가 몹시 작고 무게가 가벼워(3g) 마음에 든다. 단지, 잊어버리기 딱 좋게 생겼다. 이게 다 캐논이 USB storage driver를 제공하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앞으로 여행갈 때(디지탈여행?) 써먹을 '아이템'


좀 허접스러운 수납 케이스. 열쇠고리에 달려 있는 카르투시는 아내가 첫 이집트 여행할 때 만든 것.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늘 들고 다녀야 한다. 저 기념품의 타원형 외양은 석관(사르코파지)에서 양각되어 있는 형식으로 신성한 왕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인데 샹폴리옹이 이집트어가 표음문자임을 밝히고 '프톨레미' 라는 이름을 발견한 최초의 단서가 되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다가 별로 안 신성한 아내의 이름을 새겨놓는 기념품으로는 좀, 그렇다. 아내 이름의 약어는 KMA, 그 약어는 언제나 Korean Morphological Analyzer(한국어 형태소 분석기)를 연상케 했다.

염증은 이렇게 해서 생기지 않았을까? 어느날(기억에 없다) 술 먹고 집에 돌아오다가 욱 했는데 그때 위에서 역류한 위산이 꺼칠한 음식을 먹어 상처가 난 부위에 스며든 것 같다. 그리고 콜록, 기침. 콜록, 한 번 더. 콜록콜록. 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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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all Watson?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책은 일단 긴장하고 평소보다 회의적으로 보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게다가 저자가 라이얼 왓슨이라면. '생명조류'나 '초자연'을 통해 라이얼 왓슨의 저작을 오래 전에 접했던 것 같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이하고 신선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한다. 그의 정서적이고(정열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가설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읽을만 하다. 하지만 그는 늘 증거와 통계는 뒷간에 짱박아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엄청난 학위에도 불구하고 전혀 과학자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이비 교주 같달까? 이번 책 '코'에는 때되면 잠에서 깨게 해주는 신비스러운 송과선 대신 제6감을 지각할 수 있는(있을 지도 모르는) 후각의 일부인 야콥슨 기관의 가치를 담았다. 여전한 그의 스타일 대로 사실과 가설을 뒤섞어서 믿거나 말거나가 되어 버린다.

게다가 나같은 사람에게 여성 페로몬이 효과를 발휘할 지 여전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나 역시 돼지 발정제를 구입해 맞은 편 여자의 술잔에 타 볼 궁리를 하던 어린 소년이었다.

스텔라 가오루코의 별점을 보는 기분으로 책을 완샷에 읽어치웠다.


스크랩:

강렬한 감각의 교차 현상을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선천적 공감각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의 경우, 대뇌변연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도 있다. 대뇌변연계는 포유동물의 경우, 오래 전에 후구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그렇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이게끔 되는거지.

호랑이를 일컫는 산스크리트어는 'vyagra'인데 이것은 '냄새 난다'는 의미의 동사 어간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아주 많은 수컷들이 자신의 몸에 오줌을 묻혀서 냄새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염소는 일부러 배에 오줌을 뿌리고, 순록은 뒷다리에 오줌을 뿌린다. 낙타는 꼬리를 이용해서 오줌을 대퇴부에 묻힌다. 또한 많은 영양들이 땅 위에 소변을 본 후 그 위에서 몸을 굴린다. -- 인간도 스스로를 똥에 굴린다. '뒹굴다'란 표현이 원래 '똥 구르다'에서 나왔던가?

블러드하운드는 못생겼는데 자세히 보면 더욱 못생겼다. -- 라이얼 왓슨이 영국인인가?

"내일 저녁에 파리에 도착하오. 목욕하지 마시오." 나폴레옹이 조제핀느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신선한 아포크린 분비물이 호기성 디프테리아와 기타 구균류 박테리아에 의해 사향과 흡사한 화학적 조성을 갖는 기폭제 페로몬으로 바뀌는 그 놀라운 증식 작용을 방해하지 마시오." -- 현대적 해석이라... 호감이 가는군

누구나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냄새를 말로 설명하는 것이 곤란한 경우에도 코는 이미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죽음은 고유한 냄새를 풍긴다. 모든 경찰과 병리의사는 이 냄새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연하고 달착지근하며 약간의 똥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한번만 맡으면 절대 잊을 수 없고 다른 냄새와 혼동하지도 않는다. 상처나 대소변의 실금이 없더라도 인간의 시체는 불과 몇 분이 지나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동안에 이런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 그 냄새를 나도 안다.

분노, 증오, 공포, 갈망 등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고양되어 있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냄새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정신분열증 환자가 자신만의 개성적인 냄새를 풍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정신분열증의 냄새는 실제적이다. ... 이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같은 정도로 기이한 과민성을 가진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위안을 줄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맞먹는 가치를 갖는다. 환각은 정신분열증을 진단하는 기준이 되는데, 많은 환자들이 남들은 맡지 못하는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호소한다. ... 정신분열증 환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 -- 입도 안 닦고 이런 말을 자유자재로 해내는 왓슨이 부럽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옴비아시'라는 현지 치료사들의 독특한 치료법이 있다. 그들에게 봄에 채취한 그 지방 원산인 개화식물의 잎이 그들이 '우유같은 피'라고 부루는 질병(백혈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묻는다면, 언제나 같은 대답을 들을 뿐이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 그건 쉬워요. 식물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 치료사는 숲 속으로 들어가, 환자에 대해 생각하며 이리저리 거닌다. 이렇게 거닐다 보면 어떤 식물이 치료사의 주의를 끌어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 식물은 기특하게도 자신을 치료약으로써 제공하겠다고 치료사에게 제안한 것이다.

여성 페로몬의 효과는 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발휘된다. 그것의 존재와 발원지를 알려주는 표지 냄새가 없으므로 여성의 익명성이 유지되며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게 된다. 반면 남성 페로몬은 성적 신호일 뿐 아니라 적극적인 광고의 역할도 한다. 자신이 냄새의 주인이라는...

우리는 더 현명해질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좀 더 신중해질 수는 있다. -- 전적으로 공감한다.

인간의 왼쪽 뇌가 보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왼쪽 뇌는 냄새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오른쪽 뇌는 직관적이며 정서적이다. 우뇌는 사물의 냄새를 맡고 그 느낌을 간직한다. 이상적으로, 유용한 결론을 내리려면 두 가지 냄새 정보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이전의 경험보다는 예감에 의존해서 행동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경우에는 왼쪽 콧구멍 쪽을 앞으로 향한 자세를 취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고 야콥슨 기관의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는 후각을 사용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을 거이다.

- 비가 내릴 것인지 여부.
- 현관 밑에 진짜 뱀이 있는지 없는지.
- 강 하류에 있는 무화과 나무 열매가 언제 익을 것인지.
- 과수원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 자동차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 아이들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그들의 친구는 누구인지.
- 이 의자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는 이 침대에서 잠을 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혼자 잤는지.
- 옆집 여자의 배란일이 언제인지. 그리고 남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공격적으로 되는 시기는 언제인지.
- 배우자가 점심 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냈는지. 그 결과로 변호사가 필요한지.

농담도 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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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의 2004 자전거 여행 -- 올해 하고 싶었던 바로 그것! '기상청에서 놀고 먹는 개새이들이게 이 글을 바칩니다' 라는 헌사가 적혀 있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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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은 남성

잡기 2004. 8. 4. 02:24
TV에서 풀하우스가 방영되고 있을 때 왕자, 공주가 나오는 원작 만화 보다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가 생각나는 편이다. 굴드가 죽어서 몇 년째 그 양반 생각만 하면 입맛이 쓰다.

정보에 어두워 읽을만한 과학교양서를 찾기가 힘든 탓도 있고 오랫동안 그런 책을 안 읽으면서 영양가 없고, 비범함도 없고, 지리멸렬한 인간성의 버라이어티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변주하는 소설 류나 읽는 탓에 일말의 죄책감 마저 느끼고 있다.

그저 색골로만 알고 있던(아니면 동성애를 하는 동물도 있다, 성애에 환장한 놈들도 있다는 류의 호사스러운 얘기에 인용되는) 보노보 원숭이가 유인원 떼거리 중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놈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없는 사회라고 지레 짐작했으나, 그보다는 먹이가 사방에 널려 있어서 굳이 수컷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먹고 살만 해서... 가 맞는 것 같다. 저자들은 사나운 암컷들이 무리를 주도하는 하이에나는 알아도 전 생애를 참으로 느긋하게 살아가는 팬더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팬더는 혼자 산다. 집단을 이루고 사는 동물들은 투쟁적이다. 사회단체, 노조 등의 소규모 단체로부터 민족, 국가, 종교집단 같은 거대 집단에 이르기까지, 가히 미친듯이 서로 물어뜯고 싸워댄다.

그래서 집단을 경멸한다. 다 함께 이 사회를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사회단체 조차도. 그 이유를 조목조목 대야 하나? 무식한 놈(politically incorrect, sociologically ignorant, philosophically poor, & morally corrupted) 소리 듣는 편이 한결 낫다. :)

책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폭력성의 기원을 찾아 유인원을 뒤지기는 찹터가 아주 길고, 수컷 중심이 아닌 몇몇 동물 종에서 보이는 특이한 '사회' 형태를 조망하기, 마지막으로 '희망적'이고 없어도 괜찮았을 결론으로 구성. 두 파트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나아갔지만 결론은 지나치게 간단했다. 일전에 읽은 보네것의 '갈라파고스'는 인간이 큰 대뇌를 가지지만 않았어도 전쟁, 폭력이 없었을 꺼라고 주장하면서 2천년 후 그 빌어먹을 큰 대뇌가 현저하게 크기가 줄어들고 무기를 잡고 흔들어대던 손이 지느러미로 바뀐 채 정기적으로 상어에 잡아먹히며 인구 증가 걱정 없이 평화롭게 잘 살게 된 얘기를 했다. 소설에서 그 자신의 지능으로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모를 현생인류는 전멸했다.

'갈라파고스'는 보네것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덜 웃겼다. 보네것이 그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다시 돌아와서, 저자는 '진화론에 익숙한 페미니스트'를 제외한, (성차란 전적으로 문화적인 것이라는 웃기는 주장을 늘어놓는) 무뇌아에 가까운 페미니스트를 그 유명한 마거릿 미드에 빗대어 놀리기도 했다. (저자는 엉터리 자료로 한심한 이론을 주장하는 마거릿 미드가 인류학의 어머니라 불리는 것을 상당히 아니꼬와 하고 있었다) 부계 사회의 형성에 관한 저자의 주장이 재미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모계 사회가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증거를 대보라고 주문했다. 증거가 없단다. 오히려 여성들의 성 역할이 부계 사회를 고착시켰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악마같은 남성'을 선호하고 그로부터 (진화적인)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부계 사회가 된 것이란다. 이 주장에 엄밀한 '생물학적 증거'를 들이대는 사람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

여성들이 보노보 원숭이 암컷들처럼 단결해서 사나운 수컷이 자연선택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도록 은근히 사주하거나, 믿을 것은 역시 인간의 지능이라는 식의 뻔하고 한가하기 그지 없는(나 몰라라 하는) 주장이 결론으로 나왔다. 물론 인간 암컷도 보노보 암컷처럼 아무 수컷한테나 다리를 벌려 수컷들의 극단적인 폭력성을 중화시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 보노보 사회와는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인간 사회에서도 그 비슷한 예가 있긴 하다. 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지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 같다. 보노보 사회처럼 태국도 먹이가 상당히 풍부하고(굶주림이 없는 나라) 성적으로 자유로우며(공식적이고 무의미한 수치보다 항간에 회자대는 대로 비공식적으로 매춘부의 70% 가량이 HIV 양성) 사람들이 대체로 행복해 보인다. 근세에 이르러 나라를 빼앗긴 적이 없고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제압한 적도 없다. 태국에서는 수개월 전에 마약 소탕 작전으로 수천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태국 남부의 이슬람이 정부와 충돌하여 유혈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먹으면 행복해지는 약물을 강압적으로 금지하거나, 종교적 순수주의자들의 문제일 따름이다... 라고 거짓말을 하면 안되겠지만.

책 읽기가 다소 어려웠다. 그래서 읽다가 자주 졸았다. 이공계의 그지같은 번역체 중에 그 문제가 특히나 심각한 피동태, 수동태형 문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리도 길게 이어진 탓도 있고 저자들이 가다듬은 재밌는 표현들이 어설픈 번역으로 망가진 것들도 있다. 역자는 번역에 익숙하지 않거나, 한국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게다가 과학교양서를 번역해 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쓸데없는 참견이 옮긴이 주로 상당 수 있다. 참조문헌, 인덱스는 길다랗게 늘어 놓으면서도 학술 용어나 학명 등을 한글, 영어로 병기해 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역자 후기는 왜 썼나 싶을 정도로 한심했다. 그 시간에 이 책이 불러일으켰을 법한 논란이나 그의 다른 저서, 아니면 그와 견해를 달리하는 작자의 글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역자의 역량도 문제지만(사실 크게 게의치 않는다. 두세 권 더 번역하다 보면 번역은 점점 좋아진다) 출판사에서 교정을 하고 편집을 하는 작자들이 그런 한심한 문장을 보고도 교정을 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을 상당히 괘씸하게 생각한다.

책에 굳이 평점을 메기자면 10점 만점에 4정도. 재밌게 읽은 것 치고 점수가 박하다면, 과학이란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라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저자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잘 나가다가 결론부에서 옆길로 새 허겁지겁 얼버무렸다. 대체 뭐하자는 거야? 인간의 지성과 지혜를 모아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슬기롭게 해결해 보자는 교과서적인 얘기를 늘어놓는 도마뱀의 잘린 꼬리같은 결론을 빼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게다가 철저하게 유인원을 들어 진화적인 관점에서 해설하다 보니 다른 부문에서의 설명이 부실했다.

한심한 결론을 보니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알 카에다가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제작한 바이러스가 변성되어 폭력성을 제거하는 (유전자 치료) 돌연변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변한 채 미국에 대량 살포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것이 전 세계에 퍼져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말았다던지...

그 동안 몰랐던 사실 한 가지:

'일반 청둥오리와 같은 몇몇 오리 종류에서는 강간 비슷한 것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수컷은 교미를 하려고 공격하고 암컷은 너무나 심하게 저항을 하는 과정에서 물에 빠져 죽기도 한다'

오리도 물에 빠져 죽는다.

하여튼 오랫만에 과학교양서를 읽으니 책 읽은 기분이 난다. 이 분위기로 한 권 더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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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싱이다

잡기 2004. 8. 2. 18:31
주말에 힐튼 호텔의 바베큐 파티장에서 열 명 가량의 얼굴이 하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전에는 태국에서 태운 내 피부가 그렇게까지 대비되지 않았다. 색소침착 때문인지 한 번 탄 피부는 쉽사리 제 색깔로 돌아오지 않았다.

내년 1월부터 NHK에서 '신 실크로드'를 방영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실크로드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주말 저녁에는 머리를 밀어버린 남자를 만났다. 맛없는 고기와 맥주, 그리고 망측한 나초를 먹고 마시며 스타일, 성향, 성격, 개성에 관한 얘기를 했다. 개성이 어쩌고 저쩌고 간에, 인간은 그 자신의 의도와 의지로 살아가야 한다. 조까라 마이싱이다 #1, #2 -- 이렇게.

밀려드는 더위가 감당이 되지 않는데 먹은 술과 음식은 하나같이 맛이 없다. 아, 괴롭다. 주말에 계곡에 짱박혀 놀기로 했다.

책 제목이 눈에 잘 띄었다; '악마같은 남성' demonic males. apes and origin of human violence. 대략 100페이지쯤 읽었다. 버스에서 읽다가 졸았다. 최근에는 숙면을 취한 적이 거의 없다.

서브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서 이리 저리 고쳐보다가 부팅이 되지 않았다. 하드 디스크를 떼어내 다른 컴퓨터에 연결했다. 파티션 매직으로 작업하다가 하드 디스크의 이상으로 파티션 정보가 날아갔다. 배드 섹터, 잘못된 링크 따위가 몇개 눈에 띄었다. 하긴, 오랫동안 잘 버텨온 것이다. 디스크를 점검하고 제대로 인식시킨 다음 어떤 파일을 복사하고 어떤 파일을 포기할 것인가 곰곰히 생각했다. 연결한 HDD 용량은 80기가이고 컴퓨터의 것은 40기가였다. 적어도 40기가의 데이터를 버려야 할 것이다. 작업은 토요일 오후에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어렵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시원찮다. 그래서 우스개도 나오지 않았다. 일찍 집에 돌아가서 컴퓨터를 고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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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지 사진들 정리

잡기 2004. 7. 30. 20:03


태국에서 즐겨피우던 크룽 팁(Krung Thip) 담배. 35밧. 980원.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조기 매진으로 한 편도 구경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땡기는 작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 끝나고 바로 가서 볼 수 있다는 천연의 장점을 놓쳤다.


성냥곽처럼 생긴 건물들이 들어차 영 정이 안 가는 부천의 저녁 스카이라인.


12v 팬으로 꾸민 데스크탑 입체 냉각. 손가락에 땀 날 틈이 없다 -_-



태국, 방콕, 차이나타운. 노상의 과일 칵테일 판매점



태국, 방콕, 차이나타운. 꼬치



태국, 방콕의 어느 길거리. 코코넛 과자



태국식 에피타이저. 이름이 뭐더라? 왼쪽의 박하잎 같은 것에 주변의 마른 안주를 싸고 가운데 소스를 얹어 쌈싸먹는 것.



옐로 커리.


똠얌꿍


그린 커리. 열댓가지 향신료를 넣은... 매우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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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a가 돌연 충전이 되지 않아 살펴보니 싱크 케이블의 usb vcc(또는 vdd)를 브릿지 해 놓은 점퍼 선이 끊겨 있었다. 집에서 고치려니 시간이 없어 사무실로 인두와 땜납을 들고 가서 이어 붙였다.

진단 프로그램을 작성하면서 되레 하드웨어 에러 수만 잔뜩 늘려 놓아 팀에게 미안했다. 약속대로 일주일 교육, 일주일 페어 프로그래밍, 그리고 일주일 후에 완성했다. 프로그램을 완성한 그들은 내게 고마워했다. 그들 스스로가 특정한 환경에 처한 탓에 한 번도 발현된 적이 없는 재능을 그제서야 발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문제다. 여자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거나, 쉽게 말해 불가능했다. 항상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안되는 걸까. 초기 조건은 여성들이 훨씬 우수한데.

일주일에 책을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까. 많아봤자 고작 다섯 권이다. 주5일 근무니까. 하지만 안 읽었다. 이번주엔 세 권만 읽었다. 잊어버리고 있던 revelation space나 마저 읽어야겠다.

어제는 가지 않아도 될 일에 괜히 끼어 있었다. 다섯 시간 동안 네 종류의 교통기관을 이용하고 후덥지근한 더위에 연신 학학 거리다가 두 시간 동안 영업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소릴 떠들며 한가한 양반과 잡담을 늘어놓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신도림-신대방 구간에서 오던 지하철이 인명 사고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을 네 번쯤 들었다. 그 방송을 선선히 듣는 사람들의 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20대에 서울로 올라와 가장 꼴보기 싫었던 그 표정들은 여전했다. 지친 듯, 지겨운 듯, 순종적이면서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듯한 일견 메스꺼운 도회적 무관심.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늦어지는 지하철을 기다리지 않고 등을 돌려 1호선, 3호선으로 차례로 갈아탔다. 집에 열두 시쯤 도착했다. 후덥지근하다.

기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프린트해서 말끔히 튀어나오는 승차권의 차량 번호와 좌석 번호가 크고 진하게 인쇄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매번 기차를 타면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어느 차량의 몇번째 좌석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곳 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자기는 그 정도로 나이를 먹지 않았다고, 맨눈으로 글자가 보인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한시간쯤 비유적 표현을 들며 설명하다가 내릴 때가 되어 내렸다. 설명은 영 꽝이었다. 누구나가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 직업에 대한 그간의 사고가 부족했음을 반증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시끄러운 할멈한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게 설명하는 일, 틈틈히 짱구를 굴려보자.

아내가 메신저 꺼두는 것을 잊어버려 불쑥 말을 걸어온 네덜란드에 산다는 자칭 에릭이라는 친구와 대화했다. 한국어는 대체 어디서 배운걸까... 그녀의, 냉정하고 시큰둥하고 만사가 귀찮은 남편하고 대화하는 기분은 또 어땠을까? 물을 퍼담는 풍차가 멎으면 네덜란드는 물에 잠기지 않을까? 꼬르륵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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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라

잡기 2004. 7. 28. 01:55
'범죄의 재구성'에서 기억나는 배우는 백윤식 뿐이다. 자존심이 짓밟힌 악당 마초의 애써 꾸민 유장함이 이빨 사이로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나이가 들면,
조금 추해져도 괜찮아.



그 백윤식이 붕어처럼 립싱크를 하는 '담백하라' 뮤직 비디오를 봤다. 김선생은 담백했는가? 그렇다. '담백하라'는 나에게 simplicity를 의미했다. 나이가 들어 조금 추해지고 망가져도 버릴 수 없는, 어쩌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과옥조다.

고려바위 첫 화면에서 우연찮게 들었던 귀에 익은 음악: Froggie Beaver, From the Pond, Just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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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문희준

잡기 2004. 7. 27. 01:44
오이 세 개만 먹고(오이는 천원에 세개씩 판다. 맨날 사봐서 안다) 락 음악만을 추구한다는 문희준이란 가수에 관한 얘기를 귀국하고 나서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열을 내고 신나 했다. 무뇌충이라고 놀렸다. 시사에 어두워서 무뇌충이 문희준인지도 몰랐다. 락 음악을 수십 년 들으면서도 자타가 주장하는 락의 저항정신인지 뭔지 하는 것들은 겉멋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이 좋아서 딴따라가 되었으면 딴따라질이나 열심히 하면서 자기도 기쁘고 남들도 기쁘게 해주면 그만이지. 딴따라스러운 전인권은 여전히 행복해 보였다. 아무튼 걔들만 유난히 슬프고 상처받고 열 받아서 절망하고 발광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어 월급 안 줘도 좋으니까 제발 컴퓨터만 만질 수 있게 해주세요 했던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 나는 프로그래밍 세계의 '저항정신'에 경도되어 있었으며 건방지고 오만했다. 재수없어서 문희준의 음악은 안 듣지만 그 아이도 하고 싶은 일이나 맘껏 하면서 살길. '얘들아... 난 맨정신이 싫거든... 그냥 노래나 한곡 할께... 나 이렇게 살아...' 간만에 파마머리 뚱땡이 전인권 노래나 들어볼까? 관두자. 구질구질하다.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곡으로; Le Orme, Uomo Di Pezza, Gioco Di Bimba (3:02)

십 년 전의 나는 무척 가난했다. 가난하지만 전인권처럼 행복했다. 지금은 먹고 살만 하지만 그때보다 더 가난하다고 느낀다.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한동안 시간이었으나 지금은 오로지 게으름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pda를 pc와 싱크하니 소설 보다 재밌는 뉴스기사를 늘상 보게 되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게임도 하고, 메모를 기록하고 mp3를 듣는다. 마치 수 년 전 pda가 내 일상의 일부분이자 모든 것이었던 때처럼. 보네것의 '갈라파고스'를 빌려 읽다가 만 기억이 나서(재미가 없어서) 다시 빌렸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원더우먼, 슈퍼맨 등 악당들을 때려잡고 언제나 시민과 정의의 편을 들어주던 수퍼 히로들에게 한국 경제를 부양할 능력은 없을 것이다. 그놈들이 착하다는 것이 문제다. 갈라파고스의 첫 장은 이런 고백으로 시작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믿어. 사람들 속 마음은 사실 착한 거라고 - 안네 프랑크(1929 - 1944)

유사장님은 착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우리'는 참새들처럼 늘 이렇게 짹짹거렸다; 착한 놈들은 돈 못 벌어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진화의 사다리 타기를 하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진화의 사다리 타기에서는 자주 꽝이 나온다. 착하건 말건.

아시모프, 풀 하우스, 파업, 버스노선 개편, 정치적 올바름 -- 왠지 신나 보인다. 그래도 여지없이 '꽝'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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