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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garcoating for sure

잡기 2006. 6. 23. 12:22
'살아있는 화석' 라오스 바위 쥐 -- 라오스에서 먹은 쥐고기가 이거였단 말인가, 맙소사.

세제곱 킬로미터당 몇만 테라와트씩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가 몹시 낭비되는 여름이 왔다. 전 지구적으로 자행되는 대표적인 자원 낭비 사례다. 내 키만한 크기의, 대략 80와트 정도의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이용하여 발전 및 축전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100만원 가량의 돈이 든다. 100만원을 들여 절전형 전구 2-3개를 간신히 켤 수 있다.

자전거 발전기를 달아 회전하는 바퀴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전구를 밝히는 시스템은 토크를 비효율적으로 낭비한다. 차라리 개당 300원 가량 하는 AAA 타입 알칼라인 전지를 3개 직렬로 연결하여 LED 전등을 구동하는 편이 무게와 효율, 비용면에서 낫다. 그래서 지금의 자전거에는 자전거 발전기가 달려 있지 않다. <--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정부가 아직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공짜 에너지를 이용하여 삼계탕을 해 먹을까 해서 웹을 뒤적여 쏠라 쿠킹 사이트를 다시 방문했다. 집열, 축열등에서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어 제3세계 국가에 어느 정도 보급되었다. 내 마음은 아직 가난에 찌든 제 3세계에 속해 있다. 태양열을 이용한 일종의 슬로우 쿠커로 140도까지 올라간다. 튀김은 불가능하다.

dmb 수신기가 100만대를 넘어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LG DMB MP3 플레이어 FM35는 아이리버의 B10보다 수신율이 낫다고 한다. 여기저기 올라와 있는, DMB 수신 감도 및 실사용시간, DAB 실사용시간, MP3 실사용시간 등의 '데이터'가 없어 아쉬운 리뷰를 보자니 한참 개발이 이뤄졌던 인천 중동의 상가 아케이드에서 보던 여대생 마사지 찌라시가 생각난다. 또는, 옆집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뜬금없이 김해가 최고지 라고 말하면 그 말을 믿어버리는 앞집 어린애 한테나 씨알이 먹힐 아마추어들의 지긋지긋하게 도움 안되는 제품 사용기에 다소 환멸을 느낀다. dmb 내장한 3~40만원대 PMP/내비와 10만원대 b10 사이에서 FM35는 이도저도 아닌 제품이지 싶다. FM35는 라디오 수신이 안된다. dmb 안 나오는 인도네시아 메라피 화산 근처에서 긴급재난방송을 들을 수 없다는 뜻이다.

올해도 보르부드르 유적지 구경은 글러먹었다. 작년에는 지진, 올해는 화산이 폭발했다. 동경 110.27, 남위 7.32에 위치한 메라피 화산은 보기에도 기분 나쁘게 생긴 stratovolcano다. 같은 타잎의 화산 중에서도 유난히 기분 나쁘게 생겼는데 아마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하게 하는 여러 자연 재해와 형태가 같은 꼴이기 때문이지 싶다. 기대했던 정선-영월 구간은... 길이 없다. 자전거 메고 산을 타야 한다. 십년전이었으면 자전거를 메고 산에서 어슬렁거린다는 이유로 지역주민의 신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구글 어스 4.0의 인터페이스가 합리적으로 개선되었다. 말하자면 그 전까지는 왜 그렇게 UI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UI는 학습의 노고 없이, 또는 적은 학습 노력으로 의미 전달과 파악이 분명하고 일관적으로 전달되도록 직관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UI가 쉬워야 한다는 견해와는 관련이 없다. 그저 인간의 기억과 인지 구조, 그리고 반응에 적합한 구성을 가지기만 하면 된다. 오랜 동안의 학습으로 내 인지 구조가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의도와 의사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왔다. 블로그에는 의도와 의사가 분명하게 전달될 이유가 없고 사람들에게 설명을 늘어놓아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일기장이 되어 버렸다 -_-

경력 사원 둘과 인턴 사원 셋을 더 뽑았다. 파스칼이 말했다; 나는 지극한 고독이 두렵다. 새로 들어온 총각에게 최초의 버그는 진짜 벌레였다고 말해주니 믿지 않았다. 디버그는 따뜻한 진공관 주변에 몸을 비비적거리던 벌레들이 회로의 단락을 유도해 회로를 태워먹던 시절에 나온 것이고, 그때는 성전 같았던(요즘 심하게 무시당하는 매뉴얼은 성서였고) 컴퓨터 주변에서 에어 컴프레셔와 빗자루로 타죽은 벌레와 쥐들을 쓸어담는 작업이 debug였다고 말했다. 심지어 디버깅 툴 이름이 농약 이름과 같았던 DDT라는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나를 뮌헨하우젠이라도 되는 양 쳐다본다. 선배가 말하면 믿어야지! 그랬어요? 그럼, 정말이라니깐? 둘은 취직하고 싶어했다. 글쎄, 잘 될 지 모르겠다.

risk has some notable characteristics: 보슬비를 맞으며 줄서서 기다려 종로 근처의 뚝배기집에서 3000원짜리 된장찌게를 먹고 뎀셀브즈에서 4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네 시간 동안 떠들었다. 경력 사원 하나 뽑으려고 3개월째 작업중이다. 말 나온 김에 오늘 결정해요. 안되면 늦기 전에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 해. 일대일 대면대화에서 상대의 입에서 나온 말을 존중한다. 어젯밤 홍수로 집과 죽은 돼지가 떠내려갔다고 말하면서 탁자 밑의 다리를 발발 떨어도, 여전히 존중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나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굳세게 믿었다. 나는 내가 옳으면 당신이 틀려야 하는 이상한 나라에서 미친 토끼의 가죽을 벗기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일을 왜 할까? 달리 할 것이 없어서 일한다. 역으로 말해 뭔가 할 것이 있는 사람과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진게 없으면 일이라도 해야 한다. 가진게 많으면 해 볼 것 다 해본 다음에 일한다. 대부분은 일에 두려움을 느낀다. 똥오줌 못 가릴 때는 두려움이 스릴이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두려움이 더 많다 -- 그러면서 생각하는 척도 해 보지만 생각은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주로 한다. 사람이 하는 걱정의 70%가 뜬금없는 망상이라는 소리 못 들었나? 여자들은 남자들이 있어 심심치 않으므로 일을 안 해도 된다. 심심한 여자들은 일을 한다. 요즘은 여자들이 남자들처럼 생각한다. 이왕 일을 하게 되었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 무섭고 힘들고 어렵고 눈이 나쁘고 머리가 안돌아가고 팔 다리가 부러져서 못할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해 이 세상에는 의외로 장애인들이 꽤 많다. 게다가 자기가 아니면 일이 안돌아간다고 여기거나 자기는 회사에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고 여기거나 기타 등등의 온갖 변명과 핑계(예를 들어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류의 환각 증세)를 들이미는 정신이상자들과, 놀 줄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장애우나 일을 안 하면 인간쓰레기라고 믿는 수구꼴통 부류도 많다. 이는 인류의 대부분이 장애인, 정신이상자라는 내 가설과 매끄럽게 맞아 떨어진다.

내 가설들은 입증할 필요가 없으므로 틀릴 일도 없다. 다소의 의견충돌이 있을 수 있으나 사소하다. 누군가는 일을 하는 이유가 돈과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릅을 탁 쳤다. 아! 사람들이 일하는 이유 중에 돈과 명예가 있었구나! 하고. '간신히 생존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돈과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명성은 장애인과 정신이상자 분류 중 어디에 적당한지 차차 궁리해 봐야겠다.

업무 조건에 관련한 협상을 30분 만에 끝 마치고 합의가 이루어졌다. 채용되었다. 라기 보다는 들어와 주셨다. 이 친구의 장점이 많다. 단점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사소했다. 기술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망원경으로 지평선 너머 한 곳을 뚜러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시야 바깥에서 조류에 휩쓸려 허부적 거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놓친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면 잔물결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는데 나하고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바로 그것이다. 다음날 해변에 떠밀려 온 나하고 상관없을 것 같은 시체를 들춰보니 제 마누라였다는 얘기다. 나와 같은 종류의 음악을 들었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제작년 살던 집이 도둑에 털린 두 아이의 아빠다.

올해 과연 서울에 사무실을 차릴 수 있을까? 엉덩이에 화살 맞고 사냥꾼들에게 산토끼처럼 쫓겨다녀야지 차릴 수 있지 싶다. 두들겨맞고 피를 흘려봐야, 피보다 아까운 돈으로 쳐바르고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고 나서야 뼈저린 교훈을 얻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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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 대부분 다 잡았고 기능 하나만 더 추가하면 된다. 한참 일하다 말고, 충동적으로 금요일 오후에 평창에 가기로 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6.55pm 출발 12300원, 3h20m.

자전거 가방에 자전거를 넣어보니 들고 다니기가 참 뭣하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자전거를 타고 동서울터미널까지 가기로 했다. 간단한 옷가지 정도만 챙기고 집을 나섰다. 나서자 마자 비를 맞았다. 훗. 어련할라고. 항상 비님이 호들갑을 떨며 마중나와 주셨지.

쇼핑몰 처마에 우두커니 서서 담배를 태우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칠 기미가 안 보여 할인마트에 들어가 쵸코바와 우유 둘을 샀다. 30분 동안 내린 비 덕에 도로가 많이 젖었다. 물이 튈 때마다 출발 전에 기름을 먹여둔 체인에 물때가 끼고 녹이 슬까봐 걱정했다. 녹이 슬면 자전거가 안 나간다.

에라 모르겠다. 신나게 물을 튀기면서 강변도로를 질주했다.

출발 30분을 남기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가 고프다. 매번 터미널에 들를 때마다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음식이 형편없어서 안 먹는다, 안 먹는다 하다가도 먹게 된다. 떡볶이를 시켰더니 고작 한줌에 2천원씩 받는다. 배가 덜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를 사먹었다.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쑤셔넣고 버스에 올랐다. 졸다 깨다 하면서 pda로 음악을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휴게소에서 내리는 바람에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갔다. 휴게소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훗. 그럴 줄 알고 비옷을 준비해왔지.

장흥을 거쳐 대화, 평창에 도착했다. 해가 져서 사방이 깜깜한데 보슬비가 살짝 내린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잠자리를 찾아 시내를 배회했다. 출발 전에 민박집을 좀 뒤져보다가 관뒀다. 펜션이나 민박이나 평창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들 있는 듯 하다. 비가 올 지도 모르는데 한밤중에 가로등이 들어오지 않는 도로를 달리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찜질방을 찾아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나 듣는 종류의 사투리로 응답한다. 아줌마가 청소하다 말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대체로 여자들이 알려주는 길은 방향 외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무척 친절하게 설명해주려고 애쓴다. 이 도로를 따라 읍 외곽으로 나가면 무슨 호텔이 하나 있는데 그 옆 샛길로 가다보면 있단다. 이름이 뭐에요? 그건 모르겠고... (정말 막연하지?) 어두컴컴한 도로를 달렸다. 비는 그쳤다.

청성애원 건강센터라는 곳이다. 사슴농장인데 골프장과 찜질방을 지어놨다. 자전거를 세울데가 마땅치 않다. 밤에 비가 내릴 것 같은데... 산등성이 너머로 번개가 번쩍인다. 경비실 앞 나무에 매어놨다. 들어가보니 손님이 거의 없다. 나를 포함해 일곱명의 남자. 사우나에서 간단히 샤워하고 맥주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메다녔다. 냉장고에 맥주가 있긴 했다. 마시고 싶은데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그래 마시지 말자. 스카이라운지의 해먹에 누워 빈둥거렸다. 춥다. 안으로 들어갔다.

빨간색이 안 나오는 TV에서 월드컵 개막식을 한다. 여자들을 끈에 묶어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마치 공중 부양 하듯이) 월드컵의 신화를 이룬 역사적인 인물들이 입장한다. 입장이 꽤 오래 걸렸다. 호리병처럼 매달린 여자들은 14개의 각기 다른 대륙을 상징한단다. 좋은데, 그만 내려줬으면 좋겠다. 개막 행사가 끝날 때까지 매달아 놓았다. 마치 월드컵은 여자애들 목 매달아놓고 벌이는 마초 행사다, 뭐 그런 의미인 것 같다. 독일 친구들 유머감각이 별난 것 같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산한 찜질방 구석의 어두컴컴한 땅굴 같은 곳에서 잠이 들었다. 경주의 이름모를 황토찜질방 생각이 난다. 거기도 아무도 없었지. 흡사 외국 여행지의 도미토리 같았달까. 새들이 짹짹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 어? 모두 어디 간거지? 시계를 보니 8am. 목욕탕에 아무도 없다. 깜빡 잊고 칫솔을 안 챙겨왔다. 제길. 체중을 쟀다. 67.5kg. 샤방하게 꽃단장 하고 출발준비를 마쳤다.


아침이 밝아온다. 찜질방 스카이라운지.

자전거 여행 중 들었던 곡: Gravy Train, Ballad Of A Peaceful Man, Alone In Georgia (4:33)

gps를 켜고 평창읍으로 달렸다. 흘낏 현수막을 보니 평창읍내의 장은 5일, 10일 열린단다. 오늘이네? 터미널 주변에 짐보따리를 내려놓은 장꾼들이 보인다. 규모가 작다. 평창읍에 상설시장이 생기면서 장 역시 규모가 작아진 듯 싶다. 시장에서 메밀부침을 지지고 있다. 식욕을 돋구는 고소한 냄새가... 안 난다. 올갱이 국수와 메밀부친개를 먹을까 하다가 편의점에 들러 그냥 삼각 김밥 하나와 우유, 그리고 컵라면으로 때웠다. 출발이다.


9.30am 평창강을 끼고 달리는 도로. 영월까지 내내 이렇다. 분위기 몹시 상쾌. 저 멀리 빌립보 환경친화 어쩌구저쩌구 단지의 흰 돔이 보인다. 풍력 발전기가 돌아간다. 풍력발전기가 소음이 요란하고 지나가는 새들 회 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던데... 요즘은 많이 좋아졌으려나?

며칠 전에 눈 다리끼가 났다. 벌써 세번째다. 병원에 들르니 피곤해서 생긴 거란다. 피곤했지. 여의사가 눈이 에쁘시네요 하며 안심시키더니 갑자기 눈두덩을 잡고 있는 힘껏 고름을 짜낸다. 어어... 아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신음을 삼켰다. 정말 징하네. 그리고나서 내 생애 맞았던 주사 중 순위권 안에 들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언제 바늘이 들어갔는지 모르겠고 빠질 때도 느낌이 없다.

주사가 정말 좋았는데 한 30분 지나고 나서부터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면 엉덩이가 쭈볏거리며 쑤셨다. 이틀 내내 그 모양이라 자전거 탈 때 걱정했다. 그보다는 밥 먹고 이틀 동안 먹는 항생제가 골칫거리였다. 아직 부어오른 눈두덩이 덜 가라앉아 약을 먹는데, 먹을 때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위궤양약, 진통제, 항생제, 안약, 연고. 의사들이 원래 상상력이 부족한건가? 세상에 약이란 것은 원래 저 다섯가지 뿐인건가?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가끔 차가 지나다닐 뿐 한적한 도로. 있으나 마나한 갓길. 그 옆으로 언제든지 뛰어들어도 괜찮은 지방 1급수 하천 평창강. 이번에도 역시 수영복만 입고 자전거를 탔다.

한가하게 관광하듯 자전거를 설렁설렁 몰았다. 도로교통 표지판에는 '천천히'라고 쓰여 있었다. 천천히 즐기면서 갈만한 길이다. 우거진 신록에서 향긋한 풀내음이 난다. 십오년 전에 이 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때는 gps가 없었다. gps도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길이 나타나면 내려서 걸었다. 걷다가 지치면 주저 앉았다.


이쯤에서 빠지는 길이 있을텐데... 있다. 십오년전 그 도로다. 오른쪽으로는 새로 뚫린 영월, 제천행 도로가 이어진다. 핸들을 꺽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리로 비포장길을 한참 가면 길이 끊긴다. 길이 끊기는 지점에 나루터가 있고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도로가 있겠지?


간만에 나타난 포장길. 비포장길을 한 시간쯤 달렸다. 비포장 오르막길은 아스팔트 오르막길보다 1.7배 가량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비포장에 이르러서야 MTB의 진가가 드러났다. 내 자전거의 두꺼운 타이어가 늘 마음에 안 들었는데 비쭉비쭉 튀어나온 자갈길에서 펑크 나지 않고 잘 나간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낼 때는 이를 악물었다. 안 그러면 도로의 요철 때문에 턱이 으덜덜덜 떨린다. 길가에 나비가 앉아 있다가 자전거가 지나가면 훨훨 날아간다. 나비가 참 많다. 그러고보니 오랫동안 나비 구경을 못했다.

길이 끊긴 곳에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새로 도로를 내려는지 아스콘을 치기 전 도로 토목 작업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었다. 평창의 도시 구호가 해피700이던가? 인간이 생활하기 가장 좋은 고도가 700m인데 그 고도에 평창이 있다고 주장한다. gps에 찍힌 평창읍의 고도는 280m였다.

여기저기 메밀밭이 보인다. 늙은 농부들이 기도하듯이 고개를 숙인 채 김매기를 하고 있다. 자전거가 지나가면 농가에서 개가 짖는다. 개들은 사람을 닮아 말을 아낀다. 컹~ 컹~~ 하고. 마치, 왠일로 여기 왔대요? 그냥 가나요? 하듯이. 강가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고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술을 마시고 있다. 평균 2km 간격으로 놀이팀이 있다. 누가 옆에 붙어 있는 걸 못 견디는 편이라 여름의 동해안 해수욕장에는 한 번도 놀러간 적이 없다.

강변의 몫 좋은 곳에는 여지없이 팬션이 보인다. 강가에는 수영금지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유속이 느리고 물이 얕아 수영이 가능하다. 자전거를 세우고 물가에 앉아 발을 담궜다. 차다. 어쩔까. 물에 몸을 적실까. 땀이 거의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날이 흐려 상대적으로 물이 더 차게 느껴진다. 신발을 도로 신었다. 그냥 가자.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사람들이 얍삽하고 성질 더러운 큰 도시에 옮겨온 지 십년이 넘었다. 여행은 나를 다시금 문명이 그다지 필요없는 생활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비누와 치약, 컴퓨터 정도만 있으면 나름대로 살만하다.

간간이 감질맛나게 보슬비가 내렸다. 최종병기인 비옷을 입을까 말까 망설이게끔 하는 정도만.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서울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온단다. 그러길래 토요일에 출발했으면 엿될뻔 했지. 나만 괴롭히는 것 같은 날씨신을 엿 먹이려고 하루 땡긴 것이다. 그래서 눈 다리끼로 탱탱 부은 눈을 하고 항생제로 찌든 몸임에도 일찌감치 출발한 것이었지.

비야, 왜 안 오니? 이럴 땐 ㅋㅋㅋ 하고 웃어줘야지.

책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언젠가 영월 책 박물관의 홈페이지에서 책 박물관 인근 마을을 헤이온와이같은 고서 마을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본 기억이 난다. 게다가 가는 길에 책 박물관이 있다니 꼭 들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가는 길에 없다면 안 들러도 무방하지만. 길을 잘못 알아서 오르막길을 두번 오르락 내리락 하고 나서야 박물관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마땅히 세워둘 곳이 없어 계단 참의 난간에 매 두고 올라갔다. 왠 폐허가 나타났다. 흔히 폐교라 불리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책 박물관은 폐교를 수리해서 만든 것이구나. 분위기 좋아 보인다.

담배 한 대 빨고 입장권을 사려고 건물을 빙 둘렀다. 주인 아줌마가 차 닦다 말고 2천원짜리 표를 끊어준다. '철수와 영이'가 그려진 표다 -_- 신발을 벗고 달랑 교실 세 개짜리 분교 건물로 들어섰다.


정약용이 쓴 한글 언해본. 근데 제목이 뭐였지? 얼마 전에 소설 정약용 살인사건을 읽었는데 꽤 재미있어서 자전거 타고 해남에 갈 생각이었다. 며칠 전에 소설의 저자와 중국집에서 쿄코님이 극찬하던(?) 연태고량을 연거푸 퍼마셨는데(34도짜리 순한 술로 향과 맛이 일품인데다 뒷끝이 깔끔하다) 저자는 정작 책이 잘 안 팔려서 시무룩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연태고량은 가을 저녁 길가에서 슬며시 잡아본 여인의 허벅지 아니 팔똑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지는 술이다. 저절로 입맛을 다시게 되는군. 쩝쩝

3개의 전시실을 둘러 보았지만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 서종이 논리적이거나 치밀하거나, 다양하거나, 재밌지 않았다. 아직 두서가 없는 편. 그런데 영월책마을 프로젝트의 로드맵은 어딨는거야? 물어봐야지.

갑자기 애들이 저그 떼처럼 밀어 닥쳐서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황급히 나왔다. 아! 책박물관을 나와서 한참 업힐을 낑낑거리며 오른 다음에야 주인장에게 직지 프로젝트 홈페이지 알려준다는 걸 잊어버렸다 -_-


한창 도로를 건설 중인 자갈길을 오르락 내리락했다. 원래 가려던 길이 아닌데 gps를 보니 가는 길인 듯 하여 선암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강굽이가 기이하게 틀어져 내려다보면 한반도 지형처럼 보이는 곳이란다. 저 멀리 이 지방 토박이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는 현대시멘트의 공장 건물이 보인다. 현대시멘트 가동 후 마을의 대기중 미세먼지 농도가 서울의 무려 4배 수준에 이르렀다. 묘하게도 중국 위치쯤이 되어서 중국에서 날리는 황사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한국처럼 보였다. 지도의 서해안 부분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갯펄처럼 보이지 않나? 사진의 동쪽은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오지 마을 중 하나(였)다.


한반도 지형은 그저 그런데 조망대가 아름답다. 시원한 솔바람도 불어오고. 올 봄 조망대 밑에 무궁화 묘목을 심어놨다. 옆에는 '일본 독도망상을 규탄한다' 라고 적혀 있다. 말 뜻 그대로 해석하면, 누가 망상이나 공상을 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처럼 보인다. 또는, 이념이 다르면 확 죽여버리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냥 '맨날 회나 쳐먹는 빌어먹을 원숭이 놈들아 독도는 우리 꺼야!' 라고 적어놓는게 훨씬 직관적이고 호소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플랭카드 한 장에도 센스를 담자 님들아.

공사한다고 길을 막아놨다. 길이 없고 요즘 생기는 중이다. 생기는 중인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자의 로망이지 싶어 턱이 으덜덜덜 떨리는 비포장 도로를 마구 달려갔다. 사우나 마다 설치되어 있는 벨트식 허리 진동기는 허리에 낀 지방을 제거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상하로 흔들어댄다고 지방이 분해될 리가 없지. 체지방이 분해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소화된 탄수화물-당분이 다 분해되어 더 태울 것이 없어지면 체지방을 연소시키는 것. 그러니까 물과 공기만 마시며 허기져서 쓰러질 때까지 운동하면 된다.

땀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소금끼가 까칠한 맨살에서 먼지 알갱이처럼 굴러 떨어졌다. 체지방 연소도 좋지만 배가 고파서 어제 비올 때 편의점에서 사둔 초코바를 꺼내 씹어먹었다. 영월에 도착하면 그때나 밥을 먹자고 마음 먹었다.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다. 지나가는 덤프트럭 때문에 먼지 풀풀 날리고 포크레인이 삽질하고 있는 길을 달리는데 현장감독쯤 되 보이는 아저씨가 승용차를 멈춰 세우고 '아저씨 저 길로 돌아가는게 좋을 겁니다'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 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힐탑까지 올라가 도로를 탔는데 뒤에 경찰차가 따라 붙었다. LA라면 악셀을 밟아 뺑소니 치겠지만, 자전거를 갓길에 세우고 경찰차가 옆에 설 때까지 기다렸다. 경찰만 보면 왠지 캥겼다. '아저씨 여기 자동차 전용 도로라서 이리 가면 안되요.' 라고 말씀 하셨다. 열나 업힐해서 장마비처럼 땀을 흘리며 올라왔는데 내려가라니 억울하잖아요? 좀 가다가 옆길로 빠질께요. 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지만, 얌전하게 네. 하고 대꾸하고 핸들을 틀었다.

강원도에서는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녹색 신호등이 점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한다. 법이 광의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합의라면, 사회라 부를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라면 굳이 규칙을 지켜야 하나? 오래 전 배낭여행자들이 숙소에 모여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싱가폴에서는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거나 술을 마시면 즉결로 넘어가 곤장을 맞고 추방당하는데, 이색체험이랍시고 태형을 한 번 당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여행자로서 색다른 관록 하나를 만든다? 할 짓이 없어서 자기 몸을 혹사하는 그런 일을 할까? 그런데 나는 그 세 가지를 다 해 봤다. 사귄 여자애가(물론 싱가폴 아가씨다) 가게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가게 맞은 편에 놓여있는 오처드 로드의 한 벤치에 앉아 근처 수퍼에서 산 맥주를 홀짝이며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었다. 내 옆에는 경찰관이 서 있었다. 잡혀가지 않았다. 그날 밤 보트키에서 한물 간 디스코 리듬에 춤을 추고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떡이 되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이국의 거리를 헤메며 비틀거렸다.

곤충박물관이 나타났다. 역시 폐교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입장료 2천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다양한 수집물과 정성어린 표제가 눈에 띈다. 잘 봤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나왔다. 음료수를 마시며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비가 올듯 올듯 하다가 오지 않는다. 해가 보일듯 말듯 하다가 구름 속에 숨었다. 어린 시절 즐겨 튀겨먹던 저것이 노린재 중에 하나였구나. 호랑나비보다 제비나비를 더 좋아했다. 어렸을 적에 번역된 존 파울즈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다. 미란다, 마구스, 콜랙터, 꾀뜨미네의 사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그중 콜랙터는 몹시 인상에 남는 소설이었다. 박제를 볼 때마다 그 소설이 생각났다. 이제 출발해야지. 몇 안되는 업힐이지만 길고 지루해서 지친다. 평창강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업힐에서 자전거가 취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앞뒤 기어비는 1:1. 입술을 핥았다. 짜다.


다 오르니 선돌이 100m 앞에 있단다. 오로지 주행만 할 생각이었는데 오늘 볼꺼리가 이것저것 꽤 되는 편. 선돌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어딘들 안 그렇겠나) 소원을 빌었다. 통일 되게 해주십쇼. 개마고원 함 달려보게. 남자가 순진한 여자애 꼬시는듯한 모습이네?

시원한 내리막이다. 오후 4시다. 여기저기서 길을 헤메지 않았더라면 좀 더 빨리 왔을텐데. 내리막 끝에는 유배 생활하다가 사약 받고 승하한 단종을 모신 단종대가 있다. 충절의 고장 영월이라고 하더라. 모험 관광의 출발지 영월이라고도 한다.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구경하다 갈까, 하다가 영월->서울행 버스 시간을 모르고 허기져서 영월에서 밥 한끼 먹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영월로 발길을 돌렸다. 어린 시절 대인관계와 성정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는 애착 이론에 따르면 나는 non-secure attachment 타잎의 삶을 살았다. 생후 일년 이내에 부모와 아이 사이에 형성되는 애착 형성이 훗날 대인관계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긴데, 비안정애착을 마치 안 좋은 성장 장애처럼 묘사하는 아동심리학을 약간 희안하게 여기는 편이다. 대인관계와 리더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라고 말하면 나같은 놈을 dismissing avoidant attachment type이라고 불러 주신다. 대부분의 정치형 리더는 조직과 집단에서 공개된 희생양 내지는, 신성한 공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안정애착형 대부분은 대인관계가 몹시 좋을진 몰라도 리더는 평생 못해 먹는 잡초같은 인생을 살아간다(잡초가 비아냥은 아니고 내 인생의 중요한 지향점이긴 하다). 대인관계는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우주의 크기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공상을 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왜 애를 안정애착형 만들려고 전전긍긍하나? 타인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읽고도 대충 무시하고 살아가는 비안정집착 또는 자유방목형에는 나름대로 장점이 꽤 많다. 말은 못하겠군.

영월에는 김삿갓 박물관이 있고 동강이 평창강과 만나고 고씨 동굴이 있고 한겨울에 벌벌 떨면서 타오르는 화성을 구경했던 별마로 천문대도 있다. 그럼 먹을만한 밥집은?

오기 전에 곤드레 나물밥을 먹을 수 있는 청산회관과 평창식당(김인수할머니 순두부집)을 점찍어 두었다. 청산회관은 입구가 영 식당틱하게 생기지 않아 평창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반찬 14가지에 순두부 찌게 한 그릇. 밥맛은 훌륭한데 14가지 찬은 그저 그랬다. 하여튼 7가지 이상의 반찬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더 드릴까요? 아네요 이것만 해도 너무 많은데요. 배불리, 맛있게, 잘 먹어서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나왔다.

강변에서 벌어지는 마을 잔치 구경하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버스에 우겨넣고 좌석에 앉으니 승객 수가 11명 뿐이다. 토고 감독이 보따리 싸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다소 황당한 뉴스를 보았다.

차에 타고 좀 가다가 창밖으로 비가 퍼부을 기세로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 입었다. 비옷도 꺼내 놓았다. 강남 터미널에 도착하니 비가 멎었다. 자전거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 빗물이 척척하게 고인 강변로를 따라 달렸다. 비 때문에 아무도 없다. 어두워지고 있다. 신나게 밟으며 집에 가서 뭘 먹을까 오직 그 생각만 했다. 두 시간 반 전에 배불리 먹었는데도 이틀 동안 워낙 먹은 것이 없어 여전히 배가 고프다. 살갗을 스치는 이 스산한 바람에 통닭과 맥주를 마시기는 그렇고, 고깃집에 혼자 가서 땟국물 좔좔 흐르는 이 복장으로 소주에 삼겹살 먹는 것은 청승맞고... 아내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고 없다. 자고 오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부대찌게를 만들어 소주 한 잔 곁들였다. 반 병도 채 마시지 못했다. 강가에서 찬 바람 쐬다가 뜨덧한 것이 목구멍에 들어가니 살 것 같다. 누워 노트북으로 영화 아르센 루팡을 보다가 그대로 뻗었다. 루팡이 의외로 재밌다. 루팡 2탄 꿈을 꾸었다.

점심 무렵 일어나 어제 먹다 남은 부대찌게로 밥을 해먹고 빗물과 먼지로 엄청 지저분해진 자전거를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분해하고 정비했다. 기름때가 잔뜩 묻었다. 목욕탕에 가서 정성껏 때를 밀었다.


주행기록을 살폈다. 평창-영월 구간만 68km. 최대속력 51.7kmh. 주행시간 7h36m, 그리고 평속 9kmh(당연하지. 핏발 세우며 주행에 전념한 것이 아니라 거의 빈둥거리면서 갔으니까). 아닌게 아니라 정말 기가 막힌 길이다. 줄곳 내리막인 경관 수려한 자전거 관광 전용 도로라 할만 하다! 평창,영월군은 이 코스 필히 개발해야 한다.

* 평창->영월 GPS Trackmaker file
* 평창->영월 Google Map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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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al road

잡기 2006. 6. 5. 23:56
등산 매니아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 맵 매칭을 하는 저런 종류의 작업은 내 구미에 맞는다. 알게 된 김에 또 다시 부질없는 웹질을 했다. Poz G300을 찾아다녔다. 가격은 아무 옵션 없이 35만원까지 나와 있다. 포즈 G300을 지나치게 극찬한 나머지 사무실의 한 직원이 얼마전에 구입했다. 그래서 사무실에는 G300을 가진 사람이 둘이나 있었고 기계 실물도 쓸만했다. 조디악을 팔면 20만원은 건지겠고, 15만원 + SD 메모리 2G 짜리(5만원) 하면 20만원을 더 추가해야 한다. 20만원에 802.11b와 SiRF III GPS는 의미가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보았다. 모르겠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 아무튼, '등산매니아'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 있다.

5일 동안의 황금 연휴가 시작되는 6/2. 5/1~6/1까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인데 서류가 도착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공장을 오락가락하는 처지라 바빠서 서류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었다. 세무서에 전화를 해보니 어제 마감되었단다. 왜 안내 고지서를 안 보내줬냐고 물었더니 안 보내 준단다.

세무서에 찾아가니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없다. 한참 기다려 세무2과에 들어가서 담당자라는 젊은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마감을 넘겼으므로 종소세 신고는 불가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전고지 의무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는 국세청에 email을 등록해 놓았는데 종합소득세 신고 안내에 관한 서류나 email 한 통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년하고 제작년에는 보내줬는데 올해는 왜 안보내주는가? 라고 점잖게 물었다. (세무서에도 콜센터 클로버 아가씨가 있는건가? 뭔 말을 하건 '안된다'고 하고 '없다'고 말하고 '죄송합니다' 라며 잔잔하게 개기는?) 그래도 안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봅시다, 그럼 내가 올해 처음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해서 세무행정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세무 고지 한 번 안 해주고 뒤늦게 세금 신고 안했다고 중과금 고지서를 당신들이 보내 주면 모르던 나만 바보잖아요? 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책임자쯤 되는 아저씨가 보던 신문에서 눈을 돌리고 관심있게 쳐다보았다. 새로운 스토리를 개발했다. 이번에는 애원이다. 이번에 세무 신고를 못하면 저는 앞으로 2개월 동안 해외출장을 갈 지 모르는데(뻥이지) 돌아오면 무조건 벌금 물어야 하는거죠? 제가 좀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데 좀 봐주세요. 바보 아가씨한테는 말이 안 통했지만 아저씨는 말이 통했다. 단말기를 두들겨 소득액을 확인시켜 준다. 맞아요? 예. 그러더니 계산기를 두들겨 서류를 대신 작성해준다. 여기에 사인해 주세요. 넵. 올해도 어김없이 환급금 없이 과세되는 기타소득자다. 그래도 8%씩 뜯기는 직장인보다 3.3% 뜯기는 프리랜서가 낫다. 마감을 넘겼지만 어제 날짜로 신고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가씨가 끼어든다. 다음에는 늦지 마세요? 네(댁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안 늦을께요).

저녁 무렵, 멍하니 프로그램을 작성하다가 자전거로 서산에서 해남까지 자전거로 달려보려고 계획을 잡아 보았다. 서산에서 안면도를 거쳐 하루, 대천 -> 정읍 이틀, 정읍 -> 목포 3일, 목포 -> 해남 4일, 해남 -> 땅끝 마을 5일, 땅끝 -> 강진 6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7일이 걸린다. 이 코스는 작년에도 검토해 보았는데 다시금 궤적과 웨이포인트를 세심하게 다듬었다. 7일이나 걸리는 코스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해남, 강진, 목포만을 포함한 궤적을 검토했다. 백운사, 다산초당, 미황사, 대흥사, 초호 해수욕장을 에두르는 코스다. 땅끝은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어차피 통과해야 할 장소다. 그래도 주행에 3일이 걸린다. 6/3일 오전 1시, 다음날 아침 일어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6/3 아침에 아내가 오늘 결혼식이 있다고 한다. 잊었냐고 묻는다. 물론 잊고 있었다. 신날 것 같은 해남 자전거 여행은 접어두고(남도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말투가 시비조라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에 갔다. 성당에서의 지루한 예식이 끝나고 그 둘은 저녁 비행기를 타러 간다.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에서 자동차를 사서 독일까지 한 달 동안 여행하기로 했다.

둘 다 허름한 배낭여행자들인데 이번에는 한두 푼 아끼는 궁상 그만 떨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신부는 거적데기같은 숄을 둘러쓰고 거지꼴로 돌아다니던 배낭여행자였다. 나도 즐겨 두르고 다녔는데 그걸 망또라고 불렀다. 슬쩍한 항공사 담요를 망또처럼 두르고 말 타고 설산을 달릴 때는 나 자신이 딜비쉬처럼 여겨졌다. 아무튼 거지 꼴이었던 둘은 인도의 어떤 절에서 아내의 주선으로 눈이 맞았다. 둘은 이번 만큼은 럭셔리하게 가보자는 생각으로 차를 샀는데, 왠간하면 돈을 아끼기 위해 차에서 잔다고 말한다. 벼룩 한 마리 없는 차에서 망또를 덮고 잔다니, 정말 21세기스럽게 럭셔리하다. 그런데 한 달이라... 얼 빠진 신랑 어깨를 두들기며 '수고하라'고 말해줬다. 암. 노새가 따로 없지.

집에 돌아와 못해도 사흘이 걸리는 해남 코스는 잊어버리고 이틀 짜리 코스를 궁리해 보았다. 어디 좋은데 없을까? 인적 드물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강원도. 십수 년 전 강원도 여기저기를 걸어다닌 기억이 난다. 애매한 갈림길과 길 없는 길을 참 많이 걸었다. 4년 동안 걸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만큼은 안 되지만.

머리 속에 전구가 반짝했다. 평창강이 흐르는 평창-영월, 동강이 흐르는 정선-영월, 주천강이 흐르는 영월-제천 구간은 기억에 꽤 괜찮았던 곳이다. 아름다운 곳이긴 한데, 지금 쯤은 길이 뚫렸을까? 내친 김에 알맵과 홀씨를 띄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길이 별로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여긴 자갈밭이다. 기슭에 줄을 동여매고 나룻배를 타고 건넜다. 경로를 그려본 뒤 고도차를 확인하려고 구글어스로 둘러 보았다. 오... 이거 노다지일세. 조물주가 자전거를 위해 특히 공들인 지형이랄까? 거리는 각각 60km 안팎, 강변을 따라가므로 고저차가 심하지 않다. 하루 거리에 딱 알맞다. 수영복만 걸치고 돌아다니다가 여차하면 강에 뛰어든다!

일단 평창-영월 구간을 점찍었다. 버스로 3h30m 달리면 평창에 도착. 하룻밤 민박에서 묵고 아침 일찍 출발, 평창강을 따라 60여 km를 달려 느긋하게 영월로 내려간다. 저녁 버스를 타고 2h이면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 빙고다.


6/4 일요일. 전화가 왔다. 내일 공장에 내려와 줄 수 있냐고 묻는다. 바빠서 못 내려간다고 말했다. 다시 비상 대기 상태인가? 일을 제껴두고 놀러 갈 수가 없다. 오늘 저녁 출발해야 하는데... 평창 코스는 다음으로 미뤘다. 저녁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못 가게 된 것이 섭섭하지만 코스 궤적과 웨이포인트는 이미 완성해 두었다.

일단 동서울 터미널까지 가는 길을 미리 알아두자는 생각으로 강변로를 달렸다. 동서울터미널까지 32km, 1h40m 걸린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된다. 사놓고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자전거 가방을 이번에 사용해 볼까?

불광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 역 앞에서 자전거를 분해한다. 퀵 릴리즈 레버를 들면 두 바퀴가 분리된다. 바퀴와 프레임을 자전거 가방에 넣은 다음 어깨에 두르고 지하철을 탄다. 강변 역까지 PDA로 오늘 뉴스와 잡지 따위를 보며 간다. 물품 보관함에 자전거 가방을 보관한다.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다. 평창에 도착. 민박 집을 찾아 저녁 거리를 배회한다. 수퍼에서 소주 한 병 사다가 오징어를 안주삼아 먹는다. TV에는 볼만한게 없다. 책은 가져오지 않았다. 천정에 아이콘과 그림을 그린다. 잠든다. 새벽 여명에 일찌감치 깨어났다. 이슬이 맺힌 자전거 안장을 털어낸다. 한적한 길을 따라 자전거를 몰고 간다. 물안개와 산안개가 묘연히 피어오른다. 새벽이 시려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다람쥐가 허겁지겁 도로를 가로지른다. 해가 돋으면서 금방 날이 더워진다. 개울에 자전거를 엎어놓고 물 속에 들어가 미역처럼 흐느적거린다. 고개를 몇 넘자 땀이 돋는다. 강에 몸을 담그고 담배를 뻐금뻐금 피운다. 핸들에 웃옷을 벗어 걸어놓고 달린다. 길이 끊겼다. 자전거를 어깨에 매고 폭이 좁아진 강을 건넌다. 책 박물관, 벌레 박물관 따위에서 실없이 시간을 보내고 영월에 도착한다. 배가 고프다. 곤드레밥을 먹을까 시장통에서 감자전에 올갱이 국수를 먹을까... 오후 6시 무렵 서울행 버스를 탄다. 동서울 터미널로 돌아와 자전거 가방에 다시 자전거를 넣는다. 집에 돌아와 옥상에 올라가 돼지갈비를 구워 먹는다.

이렇게 해서, 5일 동안의 황금연휴를 순전히 머리로 여행했다. 심지어, 일본의 후쿠오카-오사카 구간도 갔다왔다.

나는 입으로 걷는다 -- 얜 또 뭐야? 제목이 기분 나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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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1

잡기 2006. 6. 2. 00:23
* 시도지사 민노당 김종철
* 구시군장 열우당 고연호
* 시도의원 무소속 최경준
* 구시군의원 무소속 최준호
* 정당은 모두 민노당.

6장의 로또같은 것인데, 단 하나도 안 맞았다. 며칠 동안 후보자의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공약의 구체성, 실천가능성을 위주로 후보를 선정했다. 선거 쇼핑인 셈. 제품의 실용 가치와 가격대 성능비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 서울시장을 빼고는 후보자들의 토론이나 공약과 정책에 대한 인지도/실천의지/구체적 추진 가능성 따위를 검증할 자료가 부족하여 아줌마들이 수소문으로 냉장고 구입하는 것과 별 차이를 못 느꼈다.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지 않다. 상상력이 부족한 정치인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서울 시장 후보로 김종철을 뽑았는데, 강금실같은 인간이 서울 시장 보다는 대권 후보로 한번 뛰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정치는 비록 독을 삼켜도 철학과 비전과 꿈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웨스트윙을 너무 많이 봤나?


초음파의 반사파 음영을 3차원으로 구성하는 3차원 초음파 투영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진 귀퉁이에는 4차원 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게 해서 4차원 아스트랄로피테쿠스(Astralopithecus) 같은 아이 얼굴을 감상했다. 흠. 얼굴 생김새가 자야바르만 7세를 닮았는걸?

2주 전 아이의 몸무게는 720g 이었다. 어떻게 계산하는지 궁금하다. 평균 체질량으로 체적을 가지고 어림잡는 걸까? 720g은 고깃집에서 삼겹살 3인분 분량인데 아직은 '구제해야 할'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알 턱이 없는 핏덩이다. 아직 골이 덜 찼다.

아이는 생후 2개월이 될 때까지 시각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얼굴을 분간하지 못한다. 촛점을 잃은 멍한 눈으로 공허하게 쳐다볼 따름이다. 그들의 뇌에서 시각과 관련한 시냅스 접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오직 냄새와 소리, 그리고 촉감에 반응한다. 그들은 타고난 반사 작용을 통해 주위를 인식하고 경험하여 어리석은 범주화를 행한다. 알만한 성인은 알겠지만 학습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끊임없이 뉘우치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이번 선거를 통해 '세상에 나만 옳은게 아니지' 라는 것을 뉘우치는 것처럼.

불광중학교 1학년 3반 교실에서 투표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을 돌아 효자동으로 향했다. 며칠 전에 산에 올랐지만 갑자기 산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길은 자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길이다.

무성한 밤나무가 드리운 시원한 그늘길을 걸어 도착한 밤골 매표소의 아저씨가 흥분해서 말하길, 200장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표가 동이 났다며 입장권이 없어 더 이상 팔 수 없으니 그냥 올라가란다. 그러면서 누가 입장권 검사하면 버렸다고 말하라고 조언한다. 아저씨, 그건 아니에요. 쓰레기 불법 투기로 벌금 물어야 되요.

1600원짜리 입장권을 사려면 천 원짜리 지폐를 두 장 내고 400원을 거슬러 받아야 한다. 지폐는 동전보다 가볍다. 동전은 짤랑거리고 무게도 많이 나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불편하다. 주머니에 동전이 많이 짤랑거리면 육체는 물론 영혼마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백만원짜리 수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때는 영혼이 가벼웠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래서 영혼이 가벼워지려면 동전보다는 고액권으로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효자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떤 개척교회의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02-xxx-0691. 전화번호가 참 멋졌다. 영육구원이라니.

구시군의원 선거에서 의원들 공약의 공통점은 불광동 주민들이 북한산 올라갈 때 입장료를 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호젓하다. 앞서는 사람도,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오늘만 벌써 200명이 지나간 길이다.

불광역, 연신내역, 구파발역 중 한 곳에서 내려 704번 또는 34번 버스를 타고 효자동 효자비 나 성황당 앞에서 내린다. 효자비에서 내리면 입장료 안내고 올라가는 길이 있다. 성황당 앞에서 내리면 버스 진행방향으로 잠깐 걸으면 밤골 매표소가 나온다.

불광역 -> 밤골 매표소 -> 갈림길에서 좌측 (사기막 매표소 방향) ->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사기막 매표소 방향) -> 철조망 끝나는 지점에서 우회전 -> 송전탑


전망 좋은 곳. 보기보다 으시시. 잠시 땀을 식히면서 서늘한 바람을 쐬었다.


해골 바위가 내려다 보이고, 좌측의 잘린 부분 부터 순서대로 인수봉, 숨은 벽, 백운대. 숨은 벽은 깍아지른 듯한 암릉이다. 한숨 지었다.


숨은 벽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두려워서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안 난다. 올라오는 길에 죽을 뻔 해서 서늘해진 영혼을 다독이기 위해 열심히 밥 먹는데 어떤 아가씨들이 다가와 옆에서 밥 먹어도 되냐고 '용기를 내어' 묻는다. 예.


숨은벽으로 향하는 암릉길. 바람이 부니까 심장이 서늘해진다. 숨은 벽은 백운대, 인수봉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아내가 올 봄에 지나간 '효자동 코스'가 아마 여기가 맞을 것이다. 휴식년제가 얼마 전에 끝났다.


윗 사진을 확대한 것. 해골 바위 아래에서 밥 먹는 곳까지 경사 40 가량의 30m 릿지 코스는 미처 보지 못하고 해골 바위 부근에서 좌측으로 내려와 '재보던 곳'에 이르렀다. 경사 60도 가량, 대략 15m를 사뿐 사뿐 뛰어가면 소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내린 바위 밑둥에 닿을 수 있는데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다가와 여기 길이 맞다고 한다. 그가 갈 때까지 기다렸지만(그럼 먼저 가 보세요) 머뭇거리더니 돌아간다. '재보던 곳'을 갈 수 있으려면 왠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 마당 바위(해골 바위) -> 암릉 능선 -> 숨은벽 우회로 -> 좁은 틈 -> 인수봉과 백운대 사잇 계곡 -> 인수봉 암벽 등반 장소

인수봉과 백운대 사잇계곡에 길이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써서 원숭이처럼 헉헉 대며 올라갔다. 사람들 지나간 흔적이 간간이 보이긴 하지만 어째 등산로는 아닌 것 같다. 바위틈에 오줌을 누웠다. 계곡 끝까지 올라가니 암벽 등반팀들이 여럿이 모여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땀을 식히며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효자동 숨은 벽 코스가 정말 훌륭하다.

-> 우측 백운대 방향 -> 위문 -> 용왕문 -> 대동문 ->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대동문까지 걸었다. 물이 다 떨어져서 갈증이 심했다. 마침 나타난 샘에서 바가지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영혼이 뽀드득해지는 느낌이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멨는데 남녀가 돗자리 펴놓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하우스 쪽이 경치가 좋다는 얘길 언젠가 들은 적이 있어 그리로 내려갔다. 발끝에 힘을 주고 근육이 수축, 이완하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그래서 내리막길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담배진으로 뒤덮인 허파꽈리로 흡수되는 적은 양의 산소 때문에 근육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오래전부터 느꼈다. 일정 정도 이상의 강도높은 운동을 하면 산소 부족으로 두통이 생겼다. 담배를 줄이지 않으면 긴 여행에 무리가 생길 것이 뻔하다.

다섯 시간 동안 아크로바트를 하며 돌아다녔더니 온 몸이 노곤하다. 작년 겨울 배에 낀 기름은 거의 사라져 몸에 기름기가 얼마 없다. 보쌈과 막걸리를 사 들고 집에 돌아와 마누라에게 먹였다.

일의 조정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타협도 필요하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산소 부족에 허덕이며 비꺽이는 육신을 좀 더 허우적거려야 할 것 같다.

Google Earth 북한산 좌표 KML file --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있던 자료를 구글 어스용으로 변환했다.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 트래킹 포인트를 모아놓은 것. 파일로 저장한 다음 구글 어스로 로드. 생각해 보니 이걸 gtm 포맷으로 변환해야 GPS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겠구나.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귀찮아서 관뒀다. 나중에 나한테 필요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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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on D

잡기 2006. 5. 28. 18:06
극장에 걸린 영화 중 볼만한게 없다. Mission Impossible 3를 봤다. 그외의 영화도 뻔한 포맷에 뻔한 시나리오였다. Travellers and Magician이 란 판타지 영화를 봤다. 영화 감독이 부탄의 승려다. 신탁을 받고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한다. 느와르물인 Running Scared 역시 판타지였다.

휴일인데 비가 와서 자전거를 못타고, 해서 괜한 일을 벌이다가 시간을 허비했다.

1. 놀고 있는 PC의 80GB HDD를 빼내 백업용으로 사용하려고 os partition과 data partition을 Partition Magic 8.0으로 합치던 도중 원인 모를 에러가 나면서 양쪽 파티션 모두가 날아갔다. 갑자기 멍해졌다. 다른 데이터 날린 거야 그렇다치고 힘들게 모아놓은 progressive rock mp3 전부가 날아간 셈. 복구하려고 보니 artist와 album 명을 알 수가 없다. Partition Magic을 믿지 않고 그냥 백업 받고 포맷한 후 다시 복사해 놓았더라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는데 그놈에 게으름 탓에... 이 김에 모아두었던 클래식과 프로락은 깨끗이 잊기로 했다. 새 삶을 사는거지.

2. 놀고 있는 PC는 P-III 333Mhz 짜리 저사양 PC인데 20GB HDD를 달아 Windows XP repack 버전을 설치했더니 설치가 끝나고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HDD가 계속 돌고 뭔가 반응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화면만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데스크탑 PC의 모니터를 빼어 연결하니 화면이 나타난다. 왜 화면을 1024x768 기준으로 만들어가지고... 당황하게 만드냐... 말이다...

3. 데스크탑 PC를 정리한 김에 os partition을 백업받아 놓으려고 Norton Ghost 2003 버전을 실행했다. 어? 부팅을 하지 않는다. 노트북으로 허겁지겁 인터넷을 뒤져보니 2003 버전은 SATA HDD를 지원하지 않는단다. Ghost 작동 방식이 HDD의 여분 공간에 부트 파티션을 임시로 만들고 그 부트 파티션으로 부팅해서 백업을 마친 후 부트 파티션을 삭제하는 것 같아, 마침 있는 USB Memory의 MS DOS로 부팅하여 Fdisk를 실행해 Active Partition을 바꿔주자 XP로 부팅이 가능했다. 그동안 인터넷을 뒤져본 결과 Norton Ghost 2003을 Update해주면 SATA HDD가 인식이 된단다. 일단 XP로 부팅하여 Ghost 2003을 업데이트하고 백업하니 잘 작동한다.

한국의 개발자, 기획자 분포도 -- Our DREAM!

일본에서 한국인과 깜댕이의 말다툼? -- 저질 일본 TV

KBS의 아시아 대기획이란 6부작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말레이지아의 한 마스지드(masjid; mosque)에서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모습.

(경제적으로) 떠오르는 아시아가 주제 임에도 인도를 빼고는 기획이 어설프고 연출 역시 진부하다. 농도가 낮아서 재미가 없다.

새로산 신발의 성능을 테스트할 겸 일요일 아침에 도시락을 싸들고 북한산에 올랐다. 거의 6개월만이다.


아내는 새 신발을 사면 이런 노래를 불렀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비 온 뒤(b on d; 어떤 까페 이름)라 지평선을 따라 30km 너머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놀랍다. 서울이 이럴 때가 다 있다니...


아침 겸 점심. 도시락은 밥과 김치가 짱이다. 컵라면 하나 곁들이면 배부르다. 땀을 식히면서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개미가 꽤 많다.


비봉.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하다.


auto bright를 걸었더니 지중해에서나 보던 류의 구름이 나타났다.


보물을 숨긴 곳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숙원이던 지오캐싱 보물찾기 놀이용 패키지를 하나 숨겼다. 2개의 펜, 제주/경주 지도,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동전들, 레모나, 밴드 에이드 2개. 소개: 북한산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산. 연평균 5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이킹을 하고 매년 적어도 2건 이상의 추락 사고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곳. 서울에서 접근이 용이하며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매우 훌륭하여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산이다. 한국의 다른 많은 산들과 달리 북한산에는 샘이 거의 없으므로 물병을 꼭 챙겨갈 것. 6호선 독바위역에서 내려 불광사 매표소로 올라가 약 2시간 등반하면 다다를 수 있다. hint: 보물은 바위 틈새에 솔잎으로 가려놓았다.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절벽 중턱이라 떨어져 죽을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서 접근할 것. 난이도: 중. 좌표계: WGS84, UTM 좌표로 52 S 0320256, 4166596 또는 hms 포맷으로 북위 37 37'44.1'', 동경 126 57'47.0'', 해발 578m.


대동문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한강과 강남 지역이 지극히 선명하게 보인다. 놀랍다.


오늘도 평창 매표소 방면으로 내려왔다. 내려 오는 길에 늘 들르는 작은 개울에서 얼굴과 팔 다리를 씻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편히 발 담그고 쉬지 못했다. 개울 중간에 거미줄이 놓여 있었다. 망가뜨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평창동의 대궐같은 집. 산을 내려와서 연신내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천원짜리 잔치국수를 먹었다. 땀을 많이 흘렸다.

아래는 최근 감명깊게 본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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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ways

잡기 2006. 5. 21. 23:42
카게야마 히로노부(影山ヒロノブ' ), 엔도 마사아키(遠藤正明) 한국 방문!! -- 어? 오네?

작년에 했던 산학 협력 때문에 교수님의 귀찮은 전화를 받았다. 애당초 결과가 안 나올꺼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실무'가 뭔지 경험이나 하게 해주자는 차원에서 설계서를 작성하고 일을 맡겼다. 성과가 없을 것이 뻔해 별로 맡기고 싶지 않았지만 보통의 경험있는 프로그래머가 1주일 정도면 해낼(실제로는 구현까지 3주) 작은 모듈을 일꺼리로 만들었다. 설계서에 뭔 소리를 써놨는지 이해를 못하고 2개월 넘게 버벅대길래 잊어버리고, 그 모듈을 내가 작성했다. 다시 2개월이 지나 교수님은 산학 협력으로부터 성과를 얻은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정부로부터 2천만원인지 3천만원을 타냈다.

그런건 사이좋게 나눠먹어야 하는데 우리한테는 땡전 한 푼 돌아오지 않았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성과물이 건네진 적이 없으니 실무에 응용된 적도 없지만 좋은 일 한 셈 치고 빙긋 웃고 잊어버렸다. 그쯤 하고 서로 웃으면서 등을 돌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교수님 측에서는 정부 돈을 타먹었으니 정부에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향후 응용 분야와 전망'을 쓸 수 없었고(설계서 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의뢰받은 일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뭔지를 모르는데 그게 가능이나 하겠나?) 그래서 날더러 그걸 좀 문건으로 작성해 달라고 전화가 왔다. 현재 그것이 적용된 시스템에는 꽤 돈을 쳐발라서 실용적인 어플리케이션까지 거의 다 진행된 상태고 산학으로 우리가 얻은 성과가 제로였으니 만일 그걸 써주게 되면 마치 현재 개발중인 장비에 그 교수님이 참가해서 성과가 나온 것처럼 되니까 기술자 양심상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기가 힘들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 그런거였군요 교수님. 교수님이 정말 멋져 보였다. 깔끔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새는지 모르겠다. 귀찮은 일들만 토막토막 나타났다. 아무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없는 듯 하지만 새로 설계해야 하는 보드에 심한(쓸데없이) 열정을 보였다.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고. 경쟁업체와의 상대적 우위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포텐셜을 가져야 하고 자본이나 인력이 거의 없는 이 조그맣고 시시한 회사에서 포텐셜이라고 해봤자 기술적 우위 밖에 없는데 납품 몇 대 했다고 만족해서도 안되고 그것에 허덕여서는 더더욱 안되고 경쟁력을 깔끔하게 유지해 가려면 기술개발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흔해빠진 논리다. 우린 세계 최초의 컨커런트/폴트 톨러런트/플렉시블/핫 플러그 장비를 만들었지만 내 생각에 후발 업체와 고작 6개월 정도의 기술 격차로 평가했다. 몹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몇몇 업체들 뒤통수를 때리고 엿 먹이고 히히덕거리며 팔짝팔짝 뛰어 고개를 넘은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약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공감하겠지만 이 세상은 논리만으로는 이해불가능한 곳이다. 그럴 때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현실'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쪼개보자, 다시보자 뭐 이런 말이다. 사람을 웃기려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희망이나 미래를 목청껏 노래한 적이 없다. 미래 중에는 칠 년 고생해 간신히 아파트를 마련한 세 아이 가장의 가슴에 엄청난 상처를 남겨주려고 외계인들이 쳐들어와서 갓 분양받은 새 아파트를 시원하게 때려부수는 것도 있다. 검고 거친 바다 어느 구석에 얌전하게 세워진 미래나 희망이라는 등대를 외면하고 현실을 직시하다 보면(노려 보고, 다시 보고) 사장님이 장비 다섯 대 납품하면 독일 월드컵 보내준다는 직원들과의 약속 역시 무의미해진다. 실제로 무의미해졌다. 바쁘니까 다음에.

사정이 그런데 어떤 망할 회사 전무가 내 자리 옆에 앉아서 술 한 잔 따라주며 벤처 정신을 잊지 말라고 당부 말씀을 전한다. 입에 신물이 넘어오도록 벤쳐질 했으면 이제 돈 벌어야지 벤쳐질을 또 하라고요? 맘 같아서는 경쟁업체들이 사업포기해서 '우수'인력들 슬슬 기어나올 때 공 들이지 않고 날로 먹게끔 제대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본다. 로드맵, 마일스톤 따위는 필요없다. 눈 앞에 길이 보이니까. 눈 앞에 그 길이 훤히 보이는데 안 가니까, 마음을 비우려고 자전거를 많이 탔다.

관심사는 돈도 벌면서 되게 재밌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재밌는 놀이터가 되려면 재밌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재밌는 사람들을 끌어 들이거나 낚으려면 논리, 현실, 희망, 미래와는 상관없는 매력과 마법, 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는 월급이 필요하다. 요즘은 그게 절실했다. 꿈이 한심하게 현실적이라서 1년 후 20Mhz 구현 후 인도네시아 탐방, 2년 후 400MHz 풀 스피드 구현 및 아이언 실크로드 원정, 3년 후 1GHz 코어 테크널로지 확보 및 장차 외계인들이 부숴놓을 내 집 마련 같은 것이다. 보잘 것 없는 꿈을 한탄하며 자전거 열심히 타고 개울가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 한 대 피웠다.

웹 인생을 살다보면 별과 달과 행성들 사이의 인력 평형점인 라그랑지안 포인트에 스스로를 방치할 수 있어 블랙홀에 안 끌려가도 되고 우주 바깥으로 내팽개쳐지는 일도 없다. 무슬림은 '신에게 복종하는 자'라는 뜻인데, 이슬람은 '신에게 복종하다' 라는 뜻이다. 무슬림을 비롯한 하늘 앞에 겸손할 줄 아는 자는 보통 인력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다. 방종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만 노력과 성과는 별개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연말까지 비등점을 넘기지 않고 얼마나 적정한 평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록 삽질에 불과해도,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아무튼 의지를 관철시킬 것이다. 왜 그 법석을 떠냐고 물으면 할 말이 있다: right time, right place, right person, right wing. 우리가 만든 첫 날개니까. 아.시.아.나.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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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er of indifference

잡기 2006. 5. 11. 00:57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2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로 음악세계의 팬들을 방송국에 초청해 공연을 한다고 했다. 한 달 전쯤의 얘기인데 방송국에서는 좌석이 빌 것을 염려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단체표를 미리 나눠줬다. 음악세계의 팬들이 적을꺼라고 과소평가한 것인데, 실제로는 좌석을 다 채울 정도의 사람들이 참석 신청을 했다고 한다. 단체표를 미리 뿌려두어 정작 팬들의 상당수는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때 참가 신청을 했는데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씁쓸해서 입맛을 다셨다.

방송사 대신, 별 잘못을 하지 않았던 기념행사 준비위원회에서 미안했던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20주년 기념 팜플렛을 나눠줬다. 소포로 받았지만 거들떠 보지 않았다. 기실 따지고 보면 음악세계가 20년을 넘게 이어왔지만 밤 한 시, 두 시에 하는 변두리 지방 방송 프로그램(또는 미얀마에서 듣는 voice of america나 청각장애인 전용 프로그램?)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 싶다. 십 년 전 이 나라에서 대놓고 다른 건 시시하고 재미없어서 못 읽겠고 SF'만' 읽는다고 하면 반쯤 또라이 취급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정이 그러니까 입맛이 쓴 것이다.

기회만 있으면 자전거 타러 나가니 책 읽을 시간이 통 없다. 어쩌면 잘된 일이다. 자전거를 타면 머리가 멍 해져서 무위자연에 좀 더 가까워지고 현빈 -- 무릉도원이 눈 앞에 펼쳐진 듯한 기분이 드니까.

며칠 전 자전거를 타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가보지 못한 길을 가기로 했다. 지도를 더듬어 보니 산자락을 끼고 달리는 길이다. trackmaker로 route를 만들었다. 북한산성 입구 - 송추계곡 입구 - 온릉 - 곡릉 - 지축 - 구파발 코스. 코스가 마음에 든다. 약 두 시간 반이 걸리는 적당한 길이의, 난이도가 평이한 코스인 것 같다. 집까지 2km를 남겨놓고 시간이 많이 남아 난지도 공원으로 갔다.


 날씨가 아주 좋아 20여 킬로 떨어진 곳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비온 뒤 날이 개어 하늘이 정말 파랗다. 날이 풀린 후로 인파로 바글바글한 한강변 도로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곳이 되어 간다.


 돌아오는 길에 구글 어스의 지형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아보려고 gps로 좌표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구글 어스에서 바라본 모습. 고동색 줄은 자전거 주행 경로의 gps track log


 같은 지점에서 찍은 사진. 실제 사진과 구글 어스의 지표면이 달라 실망. 아예 다르다. 구글 어스가 이 모양이라면 어떻게 대단한 인기를 끌 수 있었지? 의아하군.

돌아와서 gps의 주행기록과 맵 매칭을 해보니 꺽어지는 곳을 지나쳤다. 공사현장이라 길이 없을꺼라고 지레 짐작하고 직진해 버린 것이다. 어째 너무 길이 평이하더라니... 아쉽다.

2002년 이란에서 gps를 구입한 후 틈틈이 찍어 두었던 도시의 좌표 정보 파일을 찾아 trackmaker 포맷으로 변환하고, 그것을 다시 구글 어스로 입력하여(트랙메이커는 garmin gps 좌표 정보를 kmz 또는 kml 파일로 변환하여 구글 어스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으로 넘긴다) 돌아다녔던 지역의 위성 사진을 살펴보았다. 의외로 결과가 놀라웠다.


2003년 중남미 여행의 시작점인 티후아나의 구글 위성 사진. 사진을 보자마자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샌디에고에서 트램을 타고 종착점에서 내려 걸어서 국경을 통과하여(빨간색 아령처럼 생긴 것) 우왕좌왕 헤메다가 우락부락한 스트립바 삐끼들의 도움으로 우측으로 돌아 버스 터미널까지 갔다. 버스 터미널에서 오후 6시쯤 Los Mochis행 버스표를 끊고 이십여분 버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gps로 좌표를 찍어둔 곳이 바로 저 노란 점이다!

그럼 그렇지. 구글 어스와 gps가 결합해야 막강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국의 지도 프로그램 그 어느 것도 38선을 넘어선 북한의 도시에 관한 자그마한 지리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구글 어스로는 북한을 볼 수 있다. 평양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트램 코스를 따라 시내를 배회하고 임진각 너머의 도로를 따라 개성 시가지를 자유로운 새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북한은 물론이고 이 세상 어디든 가보지 못한 곳을 갈 수 있다.


라오스의 방비엥. 해상도가 좋지는 않았지만 저것을 확대해 흐릿한 위성 사진을 보자마자 자그마하고 포근한 촌락인 방비엥의 시가지 모습을 머리 속에서 재구성할 수 있었다. 화면 중앙의 저 지점을 확대하면 '세계의 끝' 까페(the end of the world cafe/restaurant)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도로가 나타난다.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곳이다. 아내는 내가 그 길을 지나갈 때 동행하던 한국인들과 잡담하면서 내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내기를 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은 물론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 여행자와 개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한 여행자를 부러 만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주욱 그럴 것 같다(전갈좌, A형은 원래 그렇다). 아내가 물었다. '한국인이죠?' 멈칫 하고 뒤돌아서서 까닥 인사하고 가던 길을 갔다. 바로 저 지점이었다. 그 후로 아내는 내 뒤를 몇 년 동안 졸졸 쫓아다니며 구애했다. :)


파키스탄의 north frontera(outpost?) 지역. 길깃-카리마바드-파수-소스트를 경유하는 카라코럼 하이웨이는 파키스탄과 중국을 연결한다. 저 곳은 훈자 마을이 있는 곳이다. 5-6천 미터의 웅장한 산맥들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오아시스같은 마을.


구글 어스의 내비게이션을 적당히 조절해 훈자 마을의 게스트 하우스 부근 위치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


실제 사진. 어? 이건 거의 비슷하네?


심심해서 올라갔다가 죽도록 개고생만 하고 내려왔던 과떼말라의 안띠구아 부근에 있는 빠까야 화산(2495m). 등반은 노란 점이 있는 1893m에서 시작했다. 나는 저 지점을 기억한다. 혹시라도 조난을 당하면 저 지점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릇처럼 좌표를 찍었다.


이건 그나마 올라가는 길에(제정신일 때) 찍은 사진. 능선을 따라 분화구까지 올라가는 것인데, 그 날은 분위기가 몹시 안 좋아서 죽을 뻔 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와 빗물이 증발하여 발생한 엄청난 수증기 때문에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따뜻한 바위를 껴안고 추위와 강풍을 버텼다. 혼자였고, 길을 잃었는데 gps가 작동하지 않아 야성의 감각만으로 gps를 찍은 지점으로 돌아왔다. -_-

하루 종일 구글 어스로 여행했던 도시와 유적지를 찾아 다녔다. 위성사진을 보고 gps로 찍은 좌표를 보니 그때 어떤 이유로 좌표를 기록했는지 마치 사진처럼 즉각 떠오르는 것이 놀랍다.

여러 가지로 테스트 해 본 결과, google earth, gps track maker의 결합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신세계가 열렸다. kml및 kmz 파일을 적당히 우려내는 작은 프로그램을 짜면 이 나라 저 나라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이나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좌표를 gps에 담아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수많은 좌표에는 식당, 숙소, 버스 터미널, 유적지, 박물관, 뷰포인트 따위의 쓸모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심심할 땐 남극도 가보고.


오늘 주행코스 중 연신내역 부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멈춰 주차장에 잔차를 세우고(노란선이 끊긴 부분) 바로 옆 롯데 수퍼에서 저녁에 해먹을 스파게티를 위해 면과 베이컨을 샀다. 이 부근의 위성 사진은 비교적 잘 일치했다.

오늘은 엊그제 실패한 곡릉 코스를 제대로 찾아갔다. 코스가 썩 괜찮다. 업/다운힐이 쉴 새 없이 반복되고 계곡을 따라 곡릉천이 흐른다. 집에서 시작하여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30분, 경치가 괜찮고 공기 맑아서 자전거로 운동하러 왔다 갔다 하기에 알맞다. 다만 유원지라서 여름 휴가철에는 차들로 붐빌 듯.

구글 어스를 제대로 울궈먹을 방법을 천천히 궁리해봐야 할 듯. 흠. 구글의 이 놈들, 장사할 여지는 아주 확실하게 남겨 놓았군. 여러 면에서 짱구 굴린 티가 확연하잖아? 그 생각에 귀여워서 히죽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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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tual ride

잡기 2006. 5. 6. 18:48
전세계 동시 개봉한 지 이틀이 지나서 올라온 미션 임파서블3 캠 버전 영화 파일에 붙은 댓글: 동시개봉에 따른 동시업로드! 대한민국 만세!

자전거 타러 가려고 했는데 비가 와서 못 갔다. 그래서 trackmaker와 google earth로 과거 주행 자료를 가지고 장난쳤다. 3d로 주행 흔적을 이리저리 뒤져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다. 구글 어스를 이용할 방법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다만 위성 지도가 구한말에 찍은 것인지 워낙 구리고 지명이 엉망이라 쓸모있는 자료로 활용하긴 좀... 지리정보원이나 항공우주국은 대체 뭐하는 곳일까. 국민의 세금으로 지도 작성해서 두루 장사하는 정부 기관? 멋지군.


송추계곡 한바퀴 돌기


동해안 삼척 부근 주행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의정부에서 북악터널과 구기터널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주도 성산에서 제주시까지. 곰보자국처럼 여기저기 보이는 오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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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ral highway

잡기 2006. 5. 5. 22:41
플루토에서의 점심(Breakfast on Pluto)의 소제목을 따서 제목을 달았다. 영화 제목이 한 눈에 봐도 인문계스러워 절대 SF로 착각하지 않았다. 날 때부터 여성으로서의 자아에 눈 뜬 주인공의 세 친구 중 하나는 달렉 껍데기를 뒤집어 쓰고 다니던 저능아였고 다른 하나는 혁명에 넋이 나간 친구다. 개중 가장 정상적인 친구는 여자애였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되지 류의 코메디물인데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그닥 재미는 없었다. 영화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얼토당토 않은 장미빛 팬터지로 상대 성의 우월성을 부드럽게 타이르는 개소리에 신물이 넘어온다. 여성적 가치? 글쎄. 이 지저분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여성적 가치가 아닌 거 같은데?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첫 15분 동안 한국의 여러 극화에서 출산이 어떻게 묘사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출산이 여성에게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 것처럼 나오던데, 어째서 출산이 가족의 기쁨이고 (인류의) 축제가 될 수 없는지 역설한다. 강연 주제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여러분' 이었는데 현실적으로는 꽤 부질없었고 미래를 바꿔야 할 그 여러분들을 제대로 설득한 것 같지 않았다. 듣자니 영 시시해서 pda로 뉴스나 읽었다.

잊지 말자. 어떤 정치로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흉칙하게 변한 한국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어미다. 교육이나 부동산이 적절치 못한, 잘못된 정책 문제 같아 보이나? 난 안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 '백합물'을 문맥으로 파악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전율을 느끼는 오타쿠로서의 나 자신이 말하건대, '어미 근성'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부어 싸이클로트론을 건설하거나 황량한 화성에 인간을 내려놓기 위한 노력을 출산휴가나 영원히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은 국가의 양육 및 교육비 부담 문제로 바꿔놓을 수 있다. 개소문 닷 컴에서 어쩌다 읽은 글이 있는데 군 가산점을 없애버린 한국의 여성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양키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니들이 '출산의 고통'을 아냐고 묻고 니들이 양육과 애들 교육 문제로 자아 실현 못하고 '희생'하는 여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냐 이 개마초야 라고 물으면, 말하자면, 인생이 갑자기 환멸스러울 정도로 이해할 수 없이 복잡해지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머리 아프니까 그쯤 해 뒀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전쟁과 테크널로지에 미쳐 지내건 말건 여자는 아이를 기른다. 너희들이 세상의 비밀을 알고 우주의 지평선 너머까지 탐색하고, 또 열반하겠다고, 저 혼자서 열반해서 천당에 가서 살건 말건 여자는 아이를 기른다.'

어렸을 적에 어떤 개마초같은 여자가 술집에서 대화 중 술잔을 쾅! 내려놓으며 나한테 저렇게 비장하게 말했다. 수천 년 동안 양육에 남자의 도움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던 것 같다. 팔짱을 끼고 들었다. 이해했다. 정말로 이해해서, 그냥 쓰시마섬에서 활동하는 아메바처럼 행복한 개새끼로 남기로 했다.

터키문화원인지 이스탄불 문화원인지에 얼떨결에 가서 제목을 알 수 없는 영화를 봤다. 얼핏 듣기론 '마음의 상처'라던가? 당신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한 시골 교사가 터키 개국의 신화이자 영웅인 아타투르크의 혁명 정신에 경도되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세상을 바꾸고자(실은 현실로부터 도망쳐서) 터키에서 가장 깡촌 소릴 듣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오랜 교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을 맞이 해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가족사적 비극을 터키 근대문명이 겪어온 고난의 역사에 투사한다. 그의 얼마 안 남은 생애에 걸쳐 벌어질 피투성이의 아비규환을 모른 채 하늘은 푸르렀고 길은 아름다웠다.

영화는 심금을 울렸고 함께 영화를 보던 뒷자리의 귀여운 터키 아가씨들은 울었다. 투르크인은 남자다. 주인공이 땅문서 밖에 관심없는 자기 아들에게 주라며 문서를 건네고 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다 말고 말한다 '미안하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이상의 희생자야' 그러면서, 그의 실수와 도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어째서 일이 이 모양이 되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이생에 했던 일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울적하게 말한다. 그는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어째서 일들이 그 모양이 되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슬픔을 나르는 무화과 나무에요' 하는 쿠르드 족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북한산을 에둘러 업힐을 연습했다. 모처럼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모르는 길에 잘못 들었다. 계속 가 보고 싶었지만 해가 지고 있었다. 갈까 말까 잔차를 세워두고 고민했다. 안 갔다. 다음 기회에.

날도 좋은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죽어라고 해서 바보가 다 되었고 딴지일보 보다가 생각난 김에 전주 지도를 뽑아 유명 식당 좌표를 여기저기 찍었다. trackmaker를 이용해 gps로 옮겨두고 화요일에 공장에 가서 하룻밤 새고 다음날 아내더러 전주로 내려오라고 말하고 버스를 탔다. 전주에 도착하자 마자 역전 근처의 가게에서 육수가 꽤 그럴듯한 국수를 먹고(이조국수, 2천원, 사리 무제한) 영화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하릴없이 빈둥거리다?한울집에서 쓰리걸리 완스타(9천원, 막걸리 세되에 사이다 한병 타 놓은 것)를 먹고 마셨다. 달착지근한 막걸리 맛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13가지 안주꺼리가 정말 감동적이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가하게 전주시내를 배회했다. 전주 시청 앞에 홍등가가 길죽하게 펼쳐져 있다. 민원에 지친 시민들을 배려한 것인가? 지정학적 위치가 정말 감탄스럽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경기전 마당에서 만든 4천인분짜리 비빔밥을 줄서서 배급받아 먹었다.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마지막 황손이란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고 시민의 질서의식을 간곡하게 고취시켰다. '어떤 또라이 새끼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에 불을 질렀어요. 이게 도대체 제대로 된 세상입니까? 제발 질서를 지킵시다' 라고. 전통주 박물관에서 술 두어 잔 얻어먹고 경기전으로 돌아와 철쭉이 예쁘게 핀 근처 잔디밭 나무 그늘에서 양말 벗고 한 숨 자다가 성미당에서 8천원짜리 비빔밥을 먹었다. 성미당의 그 유명한 비빔밥은 맛은 좋았지만 8천원 짜리 값어치는 아닌 것 같다. 서빙이 꽝이라 추천할만한 식당도 되지 못했다. 전날 밤 발견한 도넛 가게에서 찹쌀 도넛과 꽈배기를 사 먹었다.

아내가 워낙 쉽게 만족해 하루 3끼식, 6끼를 그저 먹고 마신다는 계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전주영화제를 핑계로 갔지만 영화는 한 편도 보지 않았다. 기차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전주역에 도착했다. 돌아다니는 동안 gps가 큰 도움이 되었다. 사흘 후 집에 도착하니 모바일폰, pda, 노트북, gps의 전원이 거의 다 나갔다. 다음 번에 전주를 지나치게 되면 '싸고, 양 많고, 맛있다'는 전주 음식을 제대로 즐겨볼 테다. 단, 8천원짜리 비빔밥은 빼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행복의 비결을 아냐고 물었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아내는 단순하게 살면 되지 하고 평소 철학인 무위자연을 대꾸했다. 쓰시마섬에서 활동하는 아메바처럼 말이야? 내가 좋은 거 알려줄께. 행복해지고 싶으면 말이야, 필요한 것을 잘 갖추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 해. 라고 말했다. 전주 시내에서 걸어다니다가 어떤 가게 앞에 쓰여진 문구였다. '좋은 말이네?' 라고 말한다. '좋은 말이지' 라고 대꾸했다.

단오, 석탄일, 어린이날이 겹친 5월 5일, 석가모니에게 언제나 잔정을 느끼고 그의 사상과 철학에 공감하는 편이다. 심지어 어린 시절 내 꿈은 어서 빨리 자라 열반에 드는 것이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여자가 끼면 열반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은 하지 못 했지만 그 마음 잘 안다). 그래서 절에 가서 공양했다. 개척교회같은 작은 절이라 비빔밥, 된장국, 부침개, 과일 한 접시로 이루어진 공양 음식은 참 훌륭했다.


소화도 시킬 겸 공양 한 번 더 할까 해서 옆 불광사로 느긋하게 걸어갔다. 역시 작은 곳이라 분위기가 좋다. 반찬이 그저 그래서 밥은 되었고, 떡을 얻어 먹었다. 석가모니나 예수는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떡도 나눠주지만 뉴턴역학이 지배하는 사상종교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야 말로 아인슈타인 같은 존재다. 그들은 인류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줬다.

v for vendetta라는 영화였던가? 하회탈을 쓴 작자가 '그렇게 총알을 먹였는데 어떻게 안 죽을 수가 있지?' 라며 울상을 짓는 원수의 목뼈를 부러뜨리며 이렇게 말한다; faith is bulletproof.

Dragon's World -- A Fantasy Made Real (2004)을 봤다. 재밌다. 대나무숲에서 어슬렁거리며 돼지 사냥에 열중하는 용은 개중 압권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투쟁하며 모진 삶을 살아가던 용들은 지구상에 거의 전 종을 멸종시켰다고 추측되는 거대운석의 낙하 이후 바닷속에서 익룡으로 살아가다가 다리 여섯개 달린 돌연변이로 난데없이 '진화'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대나무숲에 적응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자기가 사냥하려던 돼지들을 겁줘 쫓아버리자 화가 치민 용이 돼지가 꿀꿀 거리는 소리를 흉내내어 호랑이를 유인하여 잡아 죽인 후 위장에 사는 특수한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한 수소 가스와, 평소 섭취하던 암석으로부터 추출한 백금을 용매로 화염을 일으켜 호랑이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데(용들은 생고기보다는 불갈비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숲 속에서 이를 쳐다보던 신생 인류는 용이 무서워 벌벌 떨지만 불의 가치를 재빨리 깨닫고 불을 훔친다 -- 제작자의 유머감각이 곳곳에서 돋보이는 꽤 재밌는 영화지만 애들이 보면 정말 드래곤이 실재했다고 믿을 것 같은 영화다. 저정도의 개그 솜씨면 말하는 나무토막을 갖다놓은 듯한 연기가 설마 형편없기 때문일리야 없고 의도된 연출일 꺼라고 굳게 믿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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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y helped you

잡기 2006. 4. 27. 13:45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이란 설문에 응답하니 '주위 사람들은 당신을 상큼하고, 발랄하고,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현실적이면서 늘 즐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든지 주위의 이목을 사로잡는 사람이지만 적당한 주제파악으로 교만해지지 않을 줄도 아는 사람이죠. 당신은 다정하고 친절하며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처진 기분은 업!시켜 주고 어려울땐 도와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좋군. 어제 술자리에서 만난 공무원 중 한 친구는(마누라는 집에서 놀고 변변한 일꺼리 없이 빈둥거리는 프리랜서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날 때려 주겠단다. 강원도 영동 놈이라서 그런가? 영동 놈들은 나 같은 영서 놈들이 쩨쩨하고 얌체스럽고 병신 같아서 늘 패주고 싶어했다. 아무튼 그게 '다정하고 친절하고 이해심 많아서 분위기 업! 시켜주는' 내, 변할 리 없는 첫인상이다.

갠적으로는 가만히 있으면 아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아무의 성질을 돋구는 일 없이 언제 어디서나 투명인간처럼 있으나마나 한, 아무 도움이 안되는 하찮은 인간이 되길 희망한다.

현실은 그 반대라서 '사람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엊그제 병점역에서 차를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어떤 아저씨가 쭈볏거리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기는 노가다하러 수원에 왔다가 어젯밤에 열나 술 퍼먹다가 뻗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지갑을 잃어버려 오도가도 못하고 역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민망하고 창피해서 말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창피해서 말을 못 붙일 처지인데 왜 하필 '당신들'은 나한테 말을 거는 것일까? 벤치마다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줬다. 예전에 무전여행 하던 시절에 '사람들'로부터 고마운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사람을 도우면 심심찮게 뒷구멍에서 욕을 먹었다.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나? 건방지다나? 잔대가리 굴린거지? 뭐 그런 이유. 심지어 그런 건방진 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므로 절대 불가하다고 믿거나 도움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했다. 남의 정신세계를 한눈에 간파하는 심오한 내력은 늘 감탄스럽지만 그런 꼴 보기 싫어 안 도울 수도 없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느끼는 불확실한 감정 한 가지만큼은 어렴풋이 알겠다. 네가 나보다 처지가 나으므로 너는 나를 도와야 한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싫은 기색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무조건 -- 도울 때는 그런 예절과 법도가 있다.

자신이 쌓아올린 바보짓 무더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도울 필요가 있을까? 달리 말해, 멍청함을 도와야 하나? 상황과 관계의 역학을 빼버리곤 말할 수 없겠지. 천재지변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그 멍청함을 뒷수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 얼굴에 그게 표시가 나니까 밥맛 떨어지고 재수없는 거지.

따라서 다가올 2010을 위해 내가 할 일은 이렇다(한미 FTA보다 심각하다).

1. 이미지 변신
2. 표정 관리

성공하지 못하면 말 못하고 울기만 하는 공룡처럼 멸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처지는... 웃음.

웃지 마라! 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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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ly good ceramics

잡기 2006. 4. 24. 00:00
토요일 저녁. 터키 빵을 안주삼아('have bread like turkish' 란 속담이 생각나서) 얼마전에 웹에 공개된 더글러스 러쉬코프의 Cyberia 첫장 revenge of the nerds을 읽었다. 사이버펑크가 전시대의 문화유산처럼 느껴질 정도로 참 세월 많이 흘렀지... 예전에 책을 읽긴 읽었는데 통 기억 나는 것이 없다.


아침부터 마누라가 깨워 이천의 도자기 축제를 구경하러 갔다. 젠장 아홉시에 일어나라니... 아홉시경 아침이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좀비같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도자기 축제라... 내가 알 정도면 꽤 유명한 연례행사인 듯. 대략 140개의 부스가 있고 부스당 150만원씩 뜯어먹는 걸 보니 지자체에 꽤 짭짤한 벌이가 되는 것 같은데 도자기 축제의 운영 점수는 50점을 못 주겠다. 차량 통제, 연결 교통편, 비상시 통제 능력 등. 식당가에서 밥을 먹으려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비가 오자 행사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갑자기 비바람이 불었는데 마치 한여름 태풍 처럼 몰아닥쳐서 식당가 파라솔이 모두 자빠졌다. 공연은 취소되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비를 피할 처마를 찾아 황급히 움직였다. 뭐, 이 몸이 어딜 놀러가든 비바람이 몰아치는 자연재해는 기본이지. 밥 먹다 말고 파라솔이 뒤집혀서 대피했다.

집에 가려니까 날씨가 갰다.
그래서 변치않는 상식: 날씨, 우주, 그리고 자연은 늘 누군가를 엿먹이기 위해 편재한다.


도자기에 관해 아는 것이 없어 전시장을 전전하며 오직 한 가지 주제만 찾아 보았다. 이 컨셉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 맥주 피쳐병과 소줏병.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딱이다.


맥주잔과 막걸리 사발도 갖춰 놓았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런데 이 부스의 잔 무게가 범상치 않다. 실은 부스를 돌아다니며 잔 무게를 가늠했다 -- 소주 한 잔 분량이 담겼을 때의 완벽한 무게를 찾고 있었다. 잔 무게에 더해 53g의 액체를 담아 한 손에 들어 3도 각도로 팔굽을 구부렸을 때 가벼운 듯 가볍지 않으며 술자리에서 얼른 한 마디 하고 낼름 비워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약간의 불안정함과 떨림이 느껴지는 날카롭고 아슬한 중량감은 쉽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술에 닿는 잔 모서리의 감촉도 마찬가지. 약간 거칠고 한편, 부드러운 요철, 그리고 안개비에 흐릿하게 비치는 달빛을 닮은 모호한 촉감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제대로 된 옹기쟁이가 갖춰야 할 장인정신이지. 생각보다 술꾼, 아니 장인이 적어 섭섭하다.


술병은 병 목이 가늘고 그 배가 처녀의 아쉬운 듯 튼실한 가슴을 쥔 것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유지하여 한 손으로 병목을 쥐고 다른 손으로 배를 받쳤을 때 안에 든 액체의 유동과 질감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 그래서 무거운 술병은 대부분 꽝이다. 따라서 병의 크기와 무게, 그리고 각 부분의 무게 균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주둥이의 곡부는 유량의 흐름을 조절하기 수월토록. 안타깝게도 꽃꽂이 통인지 술병인지 그저 서재를 장식하는 바보스러운 예술품인지 애매한 것들만 잔뜩 진열해 놓아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참나원,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틈날 때마다 가슴을 많이 쥐어봐야... 아는 사람이라서라기보다는 이 집 도자기들이 매우 마음에 든다. 찻잔이나 술잔이나 그게 그거지.


왠지 제삿상 분위기. 탁자 위에 놓인 사진은 마누라가 네팔에서 찍어준 도공의 것. 언제 봐도 매우 잘 찍은 사진이다.


아이가 나하고 눈을 맞추려고 했다. 대개 여자애들이 그랬지.

* 목적의식을 갖춘 천진한 표정으로.
* 입도 안 닦고.
* 날로 먹으려고.

살짝 무시하자 걸레로 내 등짝을 후려쳤다. 훗. 그건 무시당한 여자애들이 내게 보이던 전형적인 반응이었어. 젠장맞게 익숙하지.

오늘의 개그는 그만하고 돌아와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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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spring

잡기 2006. 4. 16. 21:18
바람이 몹시 분다. 대략 시속 25km쯤 되는 것 같다. 7m/sec 정도니까 머리털이 뒤죽박죽 헝클어지는 정도? 맞을꺼야. 산에 가려다가 마음이 변해 꽃사슴이 있다는 서울숲에 가보기로 했다. 바람을 등지고 강변로에서 시속 35km가 나왔다. 그럼 해 볼까? 43.5kmh가 나왔다. 야 대단한걸. 바람이 6kmh를 보태고 저번 주에 다섯 시간 공들인 '정비의 힘'이 나머지를 보탰다. 어렸을 적에 배를 못저어 이 여자 저 여자한테 구박당했는데(봄이면 공지천에서 보트를 탔다) 자전거 탈 때는 뭐라고 앞뒤에서 짹짹거리는 여자애들이 없어서 정말 좋다.

서울숲에 노루와 꽃사슴이 한가하게 똥 싸고 있다. 잎사귀가 안 달려 분위기가 몹시 황량하다. 볼 것 다 본 것 같아 자전거를 이리저리 돌려 짱박힐만한 곳을 찾았다. 오늘 도시락은 김밥과 오렌지 둘, 따뜻한 물과 교회에서 나눠준 부활절 달걀 하나. 아내가 김밥을 만들어 준다고 일찍 일어나서 뭔가 잔뜩 준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역시 이번 김밥도 내가 말았다. 무위자연에 여념이 없는(정말 여념이 없는) 아내는 김밥 말기 열 번 해도 엉성했고 늘 어떻게 마는지 잊어버렸다. 벤치에 앉아 허기를 때웠다.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으로 몹시 힘들고 지루했다.


항상 쉬어가는 반포대교 앞 공터. 비둘기들이 물 마시고 후드득 날아올랐다. 56km 주행했다. 튜블라 벨즈와 일 볼로를 들었다. 지구물리적으로 봄이 왔다. 버들잎이 15mm돋고 25kmh 짜리 좀 심한 봄바람이 분다.

정신없이 노를 젓다보면 머리로 피가 덜 가 아무 생각 없어진다. 반면, 사지에 피가 몰려 발가락과 손가락은 생각이 많아 진다. 사우나에 들어가 팔 다리를 들고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누워 핏물을 돌렸다.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몸무게는 여전히 66.6kg, 66번 락커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먼지를 먹은 눈이 토끼처럼 빨갛다. 눈 앞 풍경도 불긋푸릇 디지하다.

갤럭티카를 마저 봤다. 아닌게 아니라 자막 없이 1기를 예전에 다 보았던 것 같다. 아마다 함장이나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들었다. 각본가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사일런 클론이 함장을 쐈고 예언 따라 산 넘고 물 건너는 바보 대통령은 곧 죽을 목숨이다.


배틀스타 페가수스와 갤럭티카는 클론 부활선을 호위하는 사일런 모선을 작살내고 있다. 아다마 대령(?)은 피격후 사출 당해 저산소 환각 상태에서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화질 만큼이나 구린 전투씬.

2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바이퍼의 전투 씬은 스펙타클 면에서 점수를 주기 힘들다. 지가 무슨 아트한다고 카메라는 흔들어대고 지랄인지. 값 비싼 드라마 만들면서 고작 4만7천명 남은 인류가 처한 절명의 위기상황에 저마다 불편한 심기나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생략되었다. 왠간하면 사일론의 재활용 클론으로 보이는 연출가를 벌크헤드 바깥 천연 냉동고인 우주로 영구 방출하고 다른 사람으로 갈아치웠으면 좋겠다.

게임 홈월드를 드라마판으로 만든 것 같은 각본은(인류 전멸 후 얼마 안 남은 사람들, 살 곳을 찾아 열나 도주) 2기에서 다소 차도를 보였다. 하지만 아마다 선장 아들 놈의 뻘짓과 늘 횡설수설하는 사일런 놈들이나 점술이나 믿는(아폴로의 화살을 찾아와서 12부족의 유산 앞에 서면 지구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나같은 천진한 SF팬을 이렇게 방자하게 유린할 수 있는 거야?) 순진하고(멍청한) 대통령을 보니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 하여튼 이 드라마에는 마음에 드는 철학을 가진 놈이 없다. 저 허접하지만 즐겨 보는 스타게이트 아틀란티스를 봐라. 거기 주인공들 정말 아무 생각 없잖아? 왜 생각을 하나. 인류가 정말 불쌍해 보이는 것은 쫓기고 망가지고 처참하게 부서지는 매우 처절하게 안 좋지만 기운 내서 꾸역꾸역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주는 것이지 사일런에게 부족한 사랑으로, 개개인의 사랑 타령으로 면피할 성질의 것이 아닌 거 같은데...

'낸시랭, 이색 퍼포먼스로 8개 도심 습격'에 달린 리플: 할 일 없는 지지배들이 길거리에서 노닥거리는 걸 예술이라고 하냐? <-- 그렇다. 예술이다. 낸시랭의 예술은 갠적으로 재미가 없다. 재밌는 것도 많은데 왜 맨날 그런 등신같은 카피나 하고 돌아댕기나 싶다. <-- 방금 것은 예술 비평이라고 한다.

예술은 패턴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고 시선의 독창성, 표현의 독창성, 사고의 독창성 빼면 기술 외에 남는 게 얼마 없다. 생업에 바쁜 사람들은 예술을 알아먹기가 어려운 관계로... 그래서 예술 비평이 필요한 것이다. 저 일반인처럼 똥오줌 분간하지 못하니까 뮤즈의 미소를 봤다고 사기치는 임포스터 클론이 설치는 것이지.

예술 비평이 필요하다니 원 세상에. 누가 보면 내가 미친놈인지 알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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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rky charm

잡기 2006. 4. 9. 03:43
날씨가 꽤 좋은 것 같더만 한강변에 가보니 황사 때문에 강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다. 먼지를 뒤집어썼다.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보니 기어 변속 와이어와 브레이크 와이어의 텐션이 느슨해졌다. 타이어 공기압도 떨어진 것 같고... 다섯 시간 동안 75km를 주행했는데 차체는 물론 입고 있는 옷의 주름마다 황사가 두껍게 내려 앉았다. 가끔 멈춰서 그것들을 털었지만, 맞바람에 묻어오는 것이라 털어도 털어도 끝이 없다. 화창한 토요일인데(아... 아닌가?)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바일폰으로 '재난방송'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언제나 한창 재난을 실감나게 당하고 있는 중에 오는 메시지라서 도움이 된 적은 없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오늘이 최악의 황사였단다. 샤워하고 집에 찾아온 후배(아침에 통화할 때 오늘은 자전거 타기 정말 딱 좋은 날씨라고 말한 장본인)와 마누라와 함께 고기를 구워 e mart에 들러 사온 7500원 짜리 칠레산 포도주와 함께 먹고 마셨다.

할머니는 지난 겨울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개나리와 백목련이 마악 꽃을 피울 때쯤 마른 가지에 마지막 남은 잎새처럼 앙상한 모습을 한 할멈이 난간에 기대어 작년 가을의 그 쾡한 표정으로 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살아 있다. 매년 돋아나는 새싹같지는 않지만. 노인들은 봄에 잘 떠난다. 견디시길.

입구가 단 하나고 지하철이 편도 운행하는 독바위역은 서울시에서 가장 깊은 지하에 위치해 있다. 미국이 원폭을 떨궈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독바위역 만큼은 안전할 정도다. 지하 6층이라 에스컬레이터만 12기인데 에스컬레이터 수리를 일년 내내 하는 것 같다. 출장 때문에 역에 가면 낯익은 기술자가 특히 자주 고장나는 특정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고 있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에스컬레이터의 계단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곤 했다. 1년째 그러고 있다.

세상에는 해결이 아주 어려운 문제가 있다. 1년이 넘어도 해결이 안되는 문제. 그런데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기계보다는 사람 쪽에 더 많은 것 같다. 프랑스는 '우리는 크리넥스가 아니다'라고 울부짖은 100만여명의 떼거리가 데모하던데,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인간을 다른 많은 resource와 마찬가지로 disposable 하다고 가정한다 -- '당신들은 휴지쪼가리처럼 언제든 내다 버릴 수 있다' 같은 말하기 거북한 욕설은 영어나 프랑스어로 쓰면 참 어울릴 것 같다.

처음으로 이공계 CEO 숫자가 상경계를 넘었다.

거래처 직원은 일하다 말고 잠적했다. 사표를 내던지고 떠났지만 회사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모 사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맞춰주다가 일에 환멸을 느끼고 태국으로 달아난 것이다. 그 케이스가 한 번 더 있었다. 그 모사는 내가 일해주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랄'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닭대가리라서 회의석상에서 쌍욕으로 된 비를 맞아도 왜 저 지랄인지 잘 이해가 안가(의문부호가 머리통 주변에 만개한다) 일하다 말고 도망가지 않았다. 왜 달아나? 심지어 대들기도 한다.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부리로 머리를 마구 쫀다.

우스꽝스럽게 고된 출장에서 돌아오는 '본좌'를 위해 아내가 고추장 돼지 불고기를 준비했다. 배불리 먹으면서 후덕을 베풀었다 -- 노자 도덕경을 늘어놓았다. 아내에게는 특별히 붓다의 정신세계와 이슬람의 의미, 심지어 예술 감상법 따위를 가르쳤지만 별 관심은 없어 보인다. 얼마전에 제 잘난척뿐인 도덕경을 심지어 방송으로 강변하기도 했던(그걸 제대로 된 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올선생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노무현을 개새끼라고 말했다 -- 도올의 소원은 십년 똥을 시원하게 싸는 것이었다. 자신을 자수성가한 동양학의 대가라고 울부짖는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엽다. 재밌었고 도올의 최근 저작을 몇 권 읽었다. 안 좋다.

응. 우리 애들 때 교과서에 나오는 중국의 사상철학 중 도덕경 바로 그거.. 잊어먹었지? 노자가 말한 핵심은 무위자연인데 말이야, 무위자연의 위자는 꾸밈을 얘기하는거야. 그래서 무위는 꾸밈이 없다는 거고 자연은 환경운동가들이 말하는 자연이 아니라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고. 그래서 악한 놈은 악한 놈대로 꾸밈없이(그놈이 선한척하면 위선), 착한 놈이 악한 짓하면 그것도 무위가 아니라고. 사회인이란 것은 무위자연하는데 에로가 많은 것이라고.

에로가 많은 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 느끼는 일정한 고정관념 탓도 컸다. 뜻대로 안되니까. 인간을 대할 때 고정관념이 없다고 자부하지만 자신없다. 며칠 수염을 안 깎았더니 날더러 인상이 터프해 보인단다. 바빠서 안 깎은 것이고, 코믹 캐릭터가 터프해봤자 우스꽝스러움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과장은 언제나 회의장에 '가끔' 마실가듯 나타나는 말끔한 나를 보고 정체가 의심스럽다는 차원에서 정선생이라고 불렀다. 비아냥이지. 다들 망가지고 있는데 왜 나는 안 망가졌나 궁금해 했다. 그는 수염을 기르고 인상 더러워진 나를 처음 봤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정도령이나 정도사, 새롭게 출현한 '정선생'은 개새끼라고 불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김'선생'은 좋아하는 타잎의 인간이다. 하여튼 내가 심혈을 기울여 '무위자연'하면 보통은 상황이 나빠진다.

러셀이 자신을 불가지론자라고 말했을 때 그가 죽을 때까지 도가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서양 양반들은 동양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단정적이다. 제대로 번역된 책도 없다. 그럼에도 러셀만큼은 좋아했다. 좋게 말해 방법론이고 아무리 나빠도 방편에 불과한 방법론적 회의의 '선택가능'한 돌파구는 불가지론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러셀만큼 고민하지 않고 e mart에서 쇼핑하듯이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잡아 자신을 불가지론자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대체로 평범한 개새끼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위자연' 노선이라서 굳이 불가지론자가 안되도 된다. 그래서 모르는 것에 가설과 현학, 그러니까 비증명과 입증 가능성 따위를 전건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노자의 도덕경은 삶이란 다양한 양태 중 모종의 슬립스트림을 규정하는 희안하게 상세한 프로토콜이란 점에서(내 '느낌'에) 어린 시절 대단히 충격적인 저작이었다. 거기다가 현명함을 뽐내는 세계에 대한 일종의 전방위적 경고를 표현한다. 현명함을 뽐내는 세계는 내 현명함이 다른 사람의 현명함을 실험하고 평가하고 비교하는 장소, 시간대이다. 흡사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위험성을 예언한 것 같달까? 토플러나 나이스빗들이 열광했던 이런 세계가 실은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기 딱 좋은 것이라고. 그리고 성인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이 있는데, 중요하지는 않다. 그쯤 해두고, 집에서 술 한잔 하면서 아내에게 무위자연과 사장과 사주와 이사와 CEO, 그리고 법인의 의미를 가르쳤다. 아내는 그쪽으로 아는게 없어 나보다 '무위자연'을 훨씬 잘 했다.

포도주와 소주를 섞어 마셨고, 황사에 시달리며 여섯시간을 나돌아 다녔더니 피곤해서 일찌감치 잠들었다. 노트북 자판으로 이 글을 두들기다가 그대로 뻗은 것이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두운 강당의 좁은 탁자에 올라가 각목에 턱을 괘고 어떤 여자한테 무슨 말인가를 했다.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 것 같다. 그런 말로 잘난척해서 나를 아주 싫어하는 여자애와 함께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다음날 아침에 우리는 소주병 두 개가 주둥이가 깨진 채 한가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다른 하나는 사파이어가 달린 깃털인데 안간힘을 써서 그것이 어떤 학교에서 학생이 만든 비행기처럼 보이도록 애를 썼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내가 최근에 본 변화들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에 관한 연설을 했다.

빅뱅 이후 이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의 기본적인 상수들이 다른 우주와 연결된 우주의 변방에서 변형되거나 파괴되고 있으며(그렉 이건의 어떤 단편 내용을 베꼈다) 예전에는 변경에서 일어나던 것이 전이 속도가 매우 빨라 최근 이 우주에 침투했고 그것이 현실세계에서 익숙한 형태의 물질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걸 조사해야 하는데 패터닝에 최적화된 인류 문명 최고의 자산인 기호 패턴 언어를 이용한 프로그래밍이 가장 적합하다고. 그리고 그 여자를 쳐다봤다.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본다. 넘어왔다. 그 꿈은 비록 황당무개한 것일지언정 여자를 설득하는 것과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같은 매력과 마법임을 시연한 것이다.

잠에서 깨어 콜록거리는 아내에게 도덕경에 버금가는 또 다른 가르침을 줬다. 방안에 떠돌아다니는 미세 먼지를 없애려면 가습기를 틀어 작은 물방울이 먼지를 포획하여 땅바닥에 떨어지게 하면 된다고. 새벽에 깨어 이 시간에 블로그를 마저 끄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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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a

잡기 2006. 4. 1. 23:00
영어로 제목을 쓰면 블로그 individual entry가 영문 제목을 달고 저장되는 줄 알았는?며칠 전에 올린 것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 사설 서버에서 홈페이지 운영하는 것이 손이 많이 간다.

커뮤니티 아웃렛 마켓플레이스: SK가 이글루스를 인수하기로 한 후 그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블로거들이 떠난다는 소식이 얼마전 기사화되었다. 두당 만오천원에 팔려갔다. 이글루스는 옛날 하이텔 시절 알던 사람들이 많아 향토예비군 소집이나 재향군인회 또는 알바 아줌마와 함께 다정히 손잡고 노래 부르는 단란주점 분위기가 났다.

생각해보니, 아이러브스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돼지갈비가 지글지글 익는 술집마다 자기가 몰랐던 어린시절이 공개적으로 까발려지던 어느 해 여름은 내게도 찾아왔다. 기억으로 당시 여러 사정 때문에 친구가 없었다. 술집에서 만났다. 동창 중에 아무도 내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단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당연하지. 내가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단다. 술에 취해 맛이 갈 때쯤 날더러 너는 학교에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고 번복했다. 친구들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고 말했다. 버럭 화를 냈다. 헤어질 때 귀뜸해줬다. 그때 할 일이 좀 있어 학교에 그리 자주 가지는 않아 급우들 얼굴을 모른다. 라고. 저들 수업받을 때 복도를 한가하게 배회하던 아이를 기억했던 것은 아닐까?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저자가 직접 사인한 책을 받아서 매우 기분 좋긴 한데 그 날 술값을 누가 낸거지? 나와서 생각해보니 아차, 부조 안 했다. 와인을 열 병 가량 마셨으니 술값이 만만찮을텐데. 개중 와인을 소주처럼 마시는 사람은 y님과 나 뿐인 것 같았다.

만화방에 오랫만에 갔고, 우연찮게 '루카와 함께 한 여름'을 보았다. 뒷 장에는 그렉 이건의 행복의 이유(reason to be cheerful)에 대한 짤막한 작자의 감상이 적혀 있다. irc에서 jap을 성심껏 뒤져 당신네 나라에서 그렉 이건이 유명한가 물어봤다. 그렇단다.

5년 전 이맘때쯤 말레이지아의 어느 이름모를 정글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을 때 reason to be cheerful을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았다. PDA에는 당시 말레이지아 여행의 비참한 실상이 적혀 있었다. 그저 먹고 자고 움직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빌어먹을 정글과 축축한 햇살 때문에, 아니 다른 이유 때문에 기운이 나지 않았다. 모스크에서 쫓겨나고 다시 모스크에서 무슬림이 되어 손과 발을 닦고 무릎을 꿇고 살아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운을 내야 했다. 기운 내서 죽은 나비와 핑크빛 돌고래를 보러가야 했다. 그때처럼 우울했던 시기가 없었다.

'루카와...'는 뜬금없이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공교롭게도 몇 개월 전 아내의 친구는 내 아이디와 아내 아이디를 합쳐 루까라는 태명을 지었다. 아이가 생기면 정소여라고 이름 붙여줄까? 집안의 재앙인 리스크 게놈의 symbolic manifest로, 'poor adventure of jeong sawyer'는 참, 처량하게 어울렸다.

carnivale을 보기 시작. rome의 타이틀 롤과 카니발의 그것이 분위기가 흡사하다. 타롯 카드 페이스가 대공황기의 입체적이고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삶으로 묘화되는 타이틀 디자인은 그걸 만든 작자가 뭘하는 친구인가 살짝 궁금해진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이라 불리우는 교활한 원숭이떼에게 지배를 맡겼다' 라는 난쟁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판타지물이다.

인간 여성(또는 남성)은 하나도 남김없이 닭대가리다 -- 이런 걸 순수이성비판이라고 한다.

선과 악의 싸움이라는 얼핏 풀어보면 개잡종 하이브리드 영웅본색 시트콤(흔히 '인간적 고뇌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느니 하는..)처럼 보일만한 것을, 화면빨과 연기력으로 잘 커버했다. 분위기 몹시 어둡고 칙칙하다. firefly처럼 재정적인 문제로 고작 2기 24편으로 막 내렸다. 그러니까 막 신나는 헐리웃 액션이 전개 되려는 찰라에. 감질맛나게.

장애인, 유색인종, 동성애자, 낮은 학력, 백수 또는 저소득 단순 노동 계급, 여성이 핍박받는 사회에서 맥도널드 카운터에 근무하는 게토 출신의 검둥이 무슬림 레즈의 사회적 지위는? SF를 읽고 프로그레시브를 들으며 울적해서 핑크빛 돌고래를 보려고 1200km를 돌아다니고 인생이 판타지이자 SF인 준 장애인 이공계가 제작사에서 외면(?)당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작하자마자 망한 드라마를 재개해 달라고 팬레터를 보냈다. 그래봤자 공기처럼 투명해서 존재감이 있으나 마나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역시,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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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ending cycloid

잡기 2006. 3. 25. 01:03
자전거의 계절인 봄이 왔지만 날씨나 일 핑계로 아직 안 탄다. 얼마 전에 어떤 아저씨가 자전거 사고로 사망했다. 산도 아니고 일반 도로에서 '라이딩'중 MTB의 프레임 용접부가 갑자기 부러졌다. 그 때문에 잔차 동호회에서 말들이 많다. 대만 업체로부터 자전거를 수입해 판매하는 후지 바이크는 발칵 뒤집혔고 사망자의 보상 문제와 일부 기종에 대한 무상 프레임 교체를 실시하는 중. 후지 바이크 본사가 집 근처라 작년에 자전거 사러 돌아다닐 때 들렀던 기억이 난다.

마누라가 제주도로 며칠 놀러간 동안 주말에도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대략 4개월을 프로그래밍만 하고 있으니까 돌아가시겠다. 간만에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h를 만나고 다음 날 y를 1년 만에 만나 그 동안 시시하다고 생각하던 프로그래밍 얘기를 했다. 그는 c/c+의 신봉자였고 얼마 전에는 c가 빠른가 c++이 빠른가 하는 논쟁을 했다고 한다.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요즘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떠들고 다니는 패턴 얘기가 나왔고(여전히 쓸데 없다고 생각하지만) c++의 유용성이나 가용성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어쩌다 보니 논란이 많은 aspect oriented programming에 관한 몇 가지 쟁점을 얘기했다. 고슬링은 욕설을 퍼부었지만 aop는 요새 프로그래밍이 그 원순적인 뿌리, 그러니까 본질을 깜빡하고 장식이나 형식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올바른 지적을 했다고 본다.

프로그래밍의 본질? problem solving이다. 문제가 없으면 해결할 문제도 없다. 아름답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아름다운 방식이 있지만 아름다운 방식이 아름답지 못한 문제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타월로 눈을 가리고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못한 '문제'는 물론 아름다운 방식이나 아름답지 않은 방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도록 하자.

이 말을 좋아했던 것 같다: 모든 인간은 문제 앞에 평등하지 않다.

프로그래밍이나 프로그래밍 주변부 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워낙 울궈먹기가 심한 헛소리들이 많아서. 예를 들면 개기자마저 한 마디 꼭 하고야 마는 web 2.0같은. 세로운 세기와 인류의 장래를 거론하는 가슴 뛰는 hypertext 관련 초기 문서나 제대로 읽어보고 얘기하란 말이야. 그거 sf인데.

아참, y를 면접 보러 나온 거였지. 그런데 내가 왜 마담뚜처럼 여기 앉아 있는 거지? 나는 왜 프로그램을 안 짜고 집을 나와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일까? 정신 차리고 보니 네 시간이 흘렀다. 그는 내가 자기 인생에서 만나본 사람들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싸이코 아니 뛰어난 프로그래머라고 크게 착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몇 년 전에 어떤 회의에서 누가 아이디어를 내자 두어 시간 만에 그걸 내가 후다닥 구현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업계 용어로 fast prototyping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쓸모가 많은 어프로치 방식인데 이너서클이 아닌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기술만능주의 환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으므로 기획벌레나 영업벌레가 주위에 알짱거리고 있을 때는 안 하는게 좋지.

그때는 한창 잘 나가던 때였다. 돈, 얼굴, 몸매, 정력, 실력 뭐 하나 제대로 받쳐주는 것이 없었지만 주변에 여자들이 우글거렸고 일하는 것이나 성실성, 출퇴근 따위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이 없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내가 잠시 입을 열기만 하면 하늘에서 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지금은 먹고 자고 놀러 다니며 인생을 즐기는 마누라조차 내 말에 콧방귀도 안 뀐다. 바빠 죽겠는데 짐 들러 나오라고 부른다.

어젯밤에 악몽을 꿨다. 대단한 실력자들이 우글거리는 프로그래머의 발할라 같은 곳에서 열댓명이 모여 무슨 일인가 작당을 했는데 펀딩을 제대로 받고 돈을 차곡차곡 쌓아둔 후 사무실을 구하고 '이사진'은 낚시하러 떠났다.

남은 떨거지들은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엄청난 두뇌로 설계와 구현을 마쳤다. 화이트 보드에 지렁이처럼 써내린 방정식을 따라 가다가 절망했다. 현저한 실력차를 느끼고 의기소침해서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아버지를 만났고 수 년 전에 줄곳 피해다니던 재수없는 여자를 차에 태웠다.

그 여자는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나를 좋아한다고 하더니 다짜고짜 내 배를 찌르고 내장 일부를 기념으로 잘라 손에 든 채 히히덕거리며 달아났다. 배에서 피가 꿀럭꿀럭 솟아나는데 아버지가 걱정 말라며 사과를 권해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사과를 잡고 씹었다. 사과에서 쇠비린내가 심하게 났다. 씹다가 이가 부러졌다. 무쇠사과였다. 제대로 찔린 건지 몸에서 피가 많이 빠져 눈앞이 칠흑같이 변하더니 쇼크로 뻗었다.

별 성취나 기쁨이 없는 고독한 삽질이 주는 스트레스를 묘사한 지옥도다. 이걸 극복하려면 지표 상에 방정식 (dy/dx)^2 = (2r-y)/y을 만족하는 멋진 사이클로이드를 그리며 달리는 자전거 바퀴 밖에 딱히 뾰족히 떠오르는 대안이 없다. 사면초가다. 아름답지 못한 문제로부터 눈을 가린 타월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한 이틀 실컷 떠들었으니 그만 입 다물고 망상의 나래를 펼치자. '말하기'가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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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her of lie

잡기 2006. 3. 19. 01:32
밀로셰비치의 사인: 인과응보. <-- 합리적인 소견이군.

Sick And Tired <-- 택시 타면 지만원 같은 기사 아저씨들과 즐겁게 재잘거리던 내용이지 싶다.


닥터 하우스한테는 이런 인간적인 면도 있다. 배우자.

어떤 원숭이 집단의 깃발을 찢으면 그 원숭이 집단이 미쳐 날뛰는 현상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가슴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나를 몹시 싫어한다고 믿어지는 친구가 어느날 추파를 던지며 공공연하게 그와 내가 안부와 웃음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랬다.

그는 일년에 한두 번 전화를 걸었고 내 안부를 주위에 전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잘 웃는 편이긴 하나 사정이 훌륭하게 안 좋아 독립심을 키워주는 모진 환경에서나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사람을 정겹게 웃게 만드는 재능은 없다.

산속에서 움막 짓고 살 때 다람쥐, 청솔모, 노루, 들개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다람쥐들은 내 눈 앞에서 도토리를 까 먹었다. 노루도 가끔 바위를 지나치듯이 흘러갔다. 노루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불을 피우고 지냈으니 지독한 생나무 연기로 훈제 내지는 방부처리가 잘 된 이 몸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산속같은 소년이었다.

짐승들과 사이가 좋았다. 따라서 여자들과도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과 구름처럼 먹고 먹힐 필요가 없이 서로가 위협이 되지 않는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였다. 성장 과정의 문제로(성장 과정의 문제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몹시 차가운 인상을 주는 아이였다. 죽음과 공포로 고단한 일상을 보낸 쿨한 소년, 대마 자생지에서 살아온 아이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도시에서 개폼 좀 잡으려고 담배 피는 아이의 차이랄까?

호주머니에는 빨랫줄, 딱총과 칼 한 자루, 성냥이 들어 있었다. 항상 산 속으로 기어 들어갈 준비가 된 상태였다. 머리속에는, 음, 특공정신을 담고. 내가 살던 20년 전은 병아리를 잡아 먹기 위해 키웠던 것 같다. 솔개가 가끔 그것들을 채가고 들쥐가 다리를 쏠았다. 일상적으로 참새를 잡아 먹었고 벌레는 간단히 구워 먹을 수 있는 좋은 간식꺼리였다. 가끔은 장수하늘소 같은 천연기념물도 먹어줬다. 매일 하나둘씩 뭔가가 소리없이 죽어 다양한 위장 속에 들어가 꿀럭거렸다. 들판에 자라는 풀과 나무 중 이름을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이름들은 마법이 아니었다. 먹을꺼리였다.

알아서 잘만 자라는 자연의 생장력을 무서워 한 나머지 씨를 먹지 않았다. 씨앗을 먹으면 피부에서 싹이 돋을꺼라 두려워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어린 시절이 사라졌다. 사람보다는 혼자 산속을 돌아다니던 것을 좋아하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더 차가워졌다. 책을 읽고부터 머리통을 부수면 깨알 같은 의문부호가 잔뜩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읽은 호문쿨루스라는 만화책에는 글자로 이루어진 아이가 등장했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고 한쪽 귀가 이상하고 두 눈알은 특정 조건에서 색깔을 구분하지 못할 뿐더러 디옵터 2.0이라는 대단한 근시에 늘상 두통에 시달리고 환청과 환시 등의 환각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혼자 중얼거리거나 낄낄 웃는 등, 시야가 심각하게 왜곡된 준 장애인이 경험하고 만지는 세계와 참 비슷해서 놀랐다.

아무튼 올해는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 다람쥐와 다시 안부와 웃음을 주고받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길 바라는 것은 똥굴러먹은 인생의 사치겠지만 도회적인 쿨함에서 풍기는 몸에 배인 역겨운 냄새 정도는 날려 버렸으면 싶다. 책을 통해 얻은 어떤 것들은 내 삶의 어두운 회랑을 비추는 작은 촛불과 같았다. 따라서 먼 어둠은 비추지 않을 뿐더러 더 어둡게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야맹증 환자가 된 것이다. 비록 심하게 왜곡되었다고는 하지만 의문부호 포장지를 벗겨내면 코끼리 뒷다리를 코끼리 뒷다리라고 쪽집게처럼 알아 맞추는 어둠과 공포에 대한 내 감각은 믿을만 하다.

쌀국수를 먹는데 고수를 안 준다. 달라니까 주방장이 히죽히죽 웃으며 들고 나왔다. 맥주 한 병 시켜서 춘권을 안주 삼아 먹었다. 맛 없다. 머리를 식히려고 밤거리를 배회했다. 늦가을 산 속은 정말 추웠고 아무도 없는 그 어둠에서 끊임없이 작지만 영문 모를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오래된 낙엽을 들추고 그 사이를 작은 짐승들이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한밤중에 움직이는 대부분은 먹어도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픈 쥐들이다. 저들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하려고 움막에 떼로 몰려와 부러 찍찍 거렸다. 쥐들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 이 개새끼야 저리 꺼져! 하면 좁쌀같은 검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 난 개새끼가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짐승한테 말을 걸 정도로 어린 나는 몹시 순수했지만 디즈늬 스몰윌드에 등장하는 동물들 만큼은 현실성이 결여된(미친 양키들이 자기도 살아본 적이 없는 희안한 꿈동산의 정경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허튼 수작 쯤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리얼하게 어글리한 미키 마우스들과 밤마다 승강이를 벌이느라(그렇다, 피를 보게 된다) 디즈늬 만화를 평생 즐기지 못했고, 그것들을 때려 죽일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대마처럼 환각을 주는 글자가 마법이 아니듯이.

Medium (영매)를 2기쯤 보고 한 동안 West Wing 2기를 봤다. 그 다음에 The Shield를 마저 봤다. 실드의 선곡 솜씨가 훌륭하다. 몇 편에서인가 엔딩 송으로 들어봤던 음악이 흘러 나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세기말 마지막으로 들었던 포크송이다. 더 이상 음악을 찾아 듣지 않게 되었지만 mp3를 부러 구했다.

Flogging Molly, Alive Behind The Green Door, If I Ever Leave This World Alive (3:44)

인류가 자생하는 어느 깡촌에서건 시대를 초월해 음악이 없는 곳은 없었는데, 그것들은 대개 사슴뿔관을 쓰고 북 치고 춤추면서 인간의 빌어먹을 운명을 저주하거나 위로하는 등 공염불을 외울 때 주로 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 끄적여 놓은 것은 말하자면, 사회와 인간과 시대를 등지고 손수 지은 초라한 움막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쥐를 잡던 소년의 영혼을 위한 장송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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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more sugar

잡기 2006. 3. 15. 00:30
정리하던 홈페이지 디렉토리에는 별별 쓰레기가 다 있었다. 쓰다만 편지와 끄적이다 만 글 쪼가리 따위. 보전을 위해 기록.

-*-

인도, 아그라의 한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흉내낸 수제비의 형편없는 맛 때문에 나름대로 실존적인 고민을 하던 차에 만났던 한 프랑스인 여행자의 사진이 색달랐습니다. 타즈마할의 정면이나 측면, 또는 아그라 포트에서 찍은 사진은 워낙 흔해 빠졌지만 타즈마할의 뒷면을 찍은 사진은 처음 보았어요. 어째서 뒤를 찍었을까, 타즈마할의 뒤는 강인데 보트 위에서 찍어도 그런 각도는 안 나올텐데, 의아해서 어떻게 찍었는지 물어봤지요. 강에서 배를 타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에서 펄쩍 뛰어내려 놀라서 경악하는 인도인 뱃사공을 뒤로 한 채 건너편까지 헤엄쳐 갔다고 말하더이다.

새벽에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배를 몰고 나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엄청난 똥물에 뛰어들어 기슭까지 기어 올라가 사진을 찍는 그의 열정은 사뭇 감동적이었습니다. 덧붙여, 샤워는 꼼꼼하게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필자가 만난 배낭 여행자들 중에서 가장 지저분한 부류가 프랑스 여행자이었는데, 세수를 안 하고 다니는 것은 같은 여행자로서 이해가 가지만 마지막 샤워를 언제 했는지 날짜를 손가락으로 꼽는 친구들이 몇 있었지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여행입니다. '고향에서 죽는 자는 행복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여행을 시작한 이유가 십인십색(every man has his humor)이었습니다.

* 세상 구경이나 할까 해서 잠깐 바람 쐬러 나왔어요. 일 년이 지났군요. don't know how.
* 원래는 유럽이나 돌아보려고 했는데 자다 깨보니 아프리카네요. never intended.
* 친구 따라 나왔는데요? 친구는 돌아갔고요. 돈 떨어질 때까지 돌아다니려고요. something may happen today.
* 저는 비행장년이거든요. nowhere to go really.

장기여행자 중 절반 이상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봤자 몇 컷 찍지도 않지요. 짐 된다고, 여행에 방해가 된다고요. 인도의 깐야꾸마리 부근에는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언덕을 뒤덮고 있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석양 속에서 본 그 광경이 너무나 멋있어 사진을 들이대고 찍으려 했지만 속절없는 버스는 나를 위해 차를 세워주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요. 그래서 석양 속의 거대한 팔랑개비는 내 마음속에서만 천천히 돌아가게 되었지요. 지금은 사진으로 안 찍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에 관한 이런 저런 짤막한 정보와 여행과 디지탈 장비가 궁합이 맞는지, 제 경험을 빌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행 계획 준비와 비용은 기간에 반비례 합니다. 만일 일주일 여정으로 여행을 계획했다면, 그리고 그곳이 처음 가는 곳이라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충분한 사전 준비와 일이 틀어질 경우에 따른 대안을 마련 하지 않으면 길 위에 돈을 뿌리고 다니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여행 기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자유도가 늘고 여행 비용이 줄어듭니다. 보통 2-3주가 지나면 다른 사람이나 가이드북의 도움 없이도 이동과 숙식 등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여행에 집중하게 되지요. 제 경우, 태국 1주일 여행 경비는 100만원 가량, 인도 한 달 여행은 120만원, 세계 1년 여행이 1000만원 가량 들었습니다. 천만원 중 400만원이 항공료였는데 보시다시피 여행 기간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점점 저렴해지지요? 몇몇 국가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하루에 7불 이내로 여행이 가능합니다.

저는 장기여행자 주제에 온갖 장비들을 들고 다녔습니다. PDA는 금전 관리, 특히 환전할 때 계산기로 쓸모가 있지요. 엘 살바도르 국경에서 환전할 때 어떤 특이한 기술을 사용한 것인지 환전상의 계산기로 0.1 곱하기 10을 두들기면 0.9가 나옵디다. 사기 치는 녀석에게 화를 내는 것도 잊고 그저 기발하고 신기했지요. 그것 외에 무료하고 심심한 이동 중에 책을 읽는다던지 하는 용도로 사용했고 인터넷에서 수집한 여행 정보를 넣어 두었습니다. 과테말라의 시골에서 히치한 짐받이 차의 요란한 뒷자석에서 충격을 받아 메모리가 포맷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 아주 요긴한 기기였습니다.

디지탈 카메라와 64MB, 128MB 메모리를 가지고 다녔고 찍은 사진은 노트북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여행자들을 만나 사진을 보여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비디오 테잎 크기만한 조그만 도시바 리브레또 노트북으로 신통하게도 여러 가지 작업을 한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던데, 덩치 좋은 외국인들은 보통 거대한 노트북과 엄청난 장비를 이고 지고 들고 다니면서 여행을 하러 온 것인지 장비를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보따리 장사하는 것인지, 가엾어 보였습니다.

무거운 장비로 여행을 망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 장비들과 함께 쉽게 하려고 결심한(피치못하게 방어적인) 여행과 관광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경계도 없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의 비교적 편안한 여행지에서도 고생스럽게 록키 산맥을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오토바이나 자동차, 심지어 자전거를 몰고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국의 해변에 누워 불어오는 따뜻한 무역풍에 읽던 책을 모래사장에 떨구고 느긋하게 낮잠을 자는 여행자도 있지요. 그 반면 몽골의 푸른 초원까지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날아가 한족이 만들어놓은 몽골 전통 관광 타운에서 말젖으로 만든 술을 마시고 30분에 10달러를 주고 말 한 번 타보는 것으로 썩 괜찮은 경험을 했다고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거의 아무도 안 가는 몽골 북서부 산악, 러시아 국경 부근의 길가에서 히치하이킹 안 해주는 똥차에 대고 욕설을 퍼부으며 인상을 쓰는 여행자나, 자그마한 카약에 하루 종일 앉은 채 수백 년 전 에스키모와 러시아 모피 상인들 외에는 발이 닿지 않는 처녀지를 천연덕스럽게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디지탈 장비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여행은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행자들의 철칙 중에는 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짐의 무게와 부피는 행동을 제약하는데, 8kg짜리 배낭 하나만 들고 다니는 여행자와 40kg 짜리 큰 배낭을 들고 다니는 여행자가 막 떠나는 버스를 향해 품위 없이 달음박질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버스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8kg 짜리 배낭을 맨 사람입니다. 여행이 점차 쉬워지고 있는 최근 상황에 비추어,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30-40도를 오르내리는 뙤약볕 아래에서 버스 터미널로부터 숙소까지 3km를 짐을 지고 걸어야 할 처지라면 심사숙고해 볼 가치가 있지요. 택시요? 택시가 다니는 문명도 있긴 합니다.

특히 여행을 처음 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미리 걱정하는 것은, 한국보다 사정이 안 좋은 나라에서는 좋은 물품을 구할 수 없고, 반대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에서는 물건 가격이 비싸므로 한국에서 미리 짐을 준비해가는 것이,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의 물건 중에서 외국에서는 동일한 품질의 공산품을 싯가로 구하기 어려운 것은 (극단적으로 말해) 신발 뿐입니다. :)

짐은 자신이 평소 입고 있는 옷과 평소 신고 다니는 신발과, 약간의 세면 도구 정도면 어떤 종류의 여행에서도 충분합니다. 그럼 자기 키만한 짐을 지고 다니는 서양 여행자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짐의 크기는 종종 그 여행자의 두려움의 크기와 같습니다. 여행자들의 속어로, 짐의 크기는 업보의 무게와 같다고도 합니다.

필자의 경우 일년 가량의 장기 여행을 준비하면서 옷가지 등의 부피가 나가는 짐을 줄이는 대신 중고로 구매한 작은 서브 노트북과 사용하던 PDA, 디지탈 카메라 등을 챙겼습니다. 노트북이 890g, PDA가 175g, 카메라가 250g, 여분의 전지 6개, 충전기, 몇 가지 케이블, 유니버셜 플러그 컨버터 등 대략 4kg 정도의 전자기기와 가이드북 1kg 가량, 기타 잡동사니들(2kg), 배낭 45리터(5kg) 등 짐의 무게가 15kg 내외였습니다. 서브 노트북이므로 공간이나 용적을 차지하지 않았고 PDA는 책 수백권 분량을 대체했습니다. 카메라, PDA 등속은 모두 일반 건전지를 사용할 수 있는 타입이었지요.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처지에서 일단은 값이 싸고 망가져도 굳이 미련을 남기지 않을 장비를 가져가는 것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효용가치가 높았던 것은 노트북과 PDA였습니다.

대다수의 물건은 현지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이 백 번 낫습니다. 그 핑계로 시장도 구경하고 하다 못해 실랑이질을 벌이며 현지인과 '대화' 비슷한 것도 할 수 있지요. 굳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시장 구경 자체가 여행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여행자들이 많아요. 시장이 아니면 어디가서 쥐고기를 맛 보겠습니까? 플러그 컨버터는 시장에서 1 달러 미만에 살 수 있습니다. 케이블도 그렇고 건전지도 거의 싯가 그대로 구매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숙소에 전력 아웃렛이 존재하지 않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면? 물론 여행용품점이나 공항의 면세점에서 유니버셜 플러그 컨버터(각국의 사정에 맞게 전력 플러그를 교환할 수 있는 장치)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애당초 숙소에 아웃렛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게다가 충전할 기기는 세 개인데 아웃렛이 단 하나 뿐이라면? 멕시코의 남부 지방을 여행하는 도중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멕시코의 남부와 북부는 경제수준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데 남부에는 인디헤나라는 토착민들이 많이 살고 있고 멕시코의 오래 전 생활양식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지요(개발이 되지 않았어요). 멕시코 남부는 침략자들이 관심을 둘만한 황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부의 대다수 저렴한 숙소에는 아예 아웃렛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장 노트북을 충전하고 꽉 찬 디지탈 카메라의 메모리를 옮겨야 할 판인데 주인장에게 애걸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리로 무작정 나가 시장에 있는 작고 허름한 전파상에 들러 안되는 에스빠뇰로 몸짓 발짓을 하며 나중에는 사다리를 놓고 천정에 걸려 있던 백열전구용 리셉터클을 뽑아 지불하고 숙소의 천정에 매달려 있는 하나 뿐인 전등에 연결하고 220v -> 110v 플러그 컨버터를 리셉터클의 소켓에 연결한 후 충전기의 플러그를 다시 꽂았습니다. 이후로 남미에서 어떤 숙소에 묵더라도 전력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지요. 전등은 어느 숙소에도 달려 있으니까요. 도난 등의 이유로 숙소의 프론트에 노트북이나 충전세트 등의 값 비싸고 잃어버리면 속 쓰린 장비를 맡겨 충전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캥기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중국 서북부의 설산을 말 타고 나흘간 돌아다닐 때는 그 나흘간 전기 구경을 못했습니다. 오직 밤하늘의 별빛 만이 요란하게 반짝였지요. 레이저 광선처럼 내리 쬐는 3500미터 산정의 찬란한 별빛 아래 똥을 눗는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나뭇잎으로 마무리를 했지요. 돌아올 때쯤에는 그렇게 지독하던 말똥 냄새가 몸에 배여 더 이상 말똥 냄새가 나지 않더이다.

소금평원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유우니에 이르러서도 사정이 마찬가지였습니다. 랜드 크루저에 물과 연료, 식량을 싣고 평균 고도 3500m의 고원 호수 지대를 나흘간 돌아다니는 동안 세수할 물은 커녕 어디에서도 전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이동 차량의 시가 잭에서 충전용 전기를 끌어쓸 수 있다고 별 걱정없이 장비를 챙겨온 여행자들을 더더욱 처량스럽게 만든 것은 차량이 워낙 노후해서 시가 잭으로부터 전기를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이드 겸 운전수 겸 요리사(다재다능하지요?) 말로는 일 년에 한두 번은 차량 고장으로 오도가도 못한 채 다른 팀이 도착해서 구조해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경우도 있답니다. 하여튼 그래서 카메라를 가지고 갔던 여러 여행자들은 이틀이 지나자, 사실상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 충분히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일반 건전지를 사용하는 카메라였기 때문에 전날 밤 6개의 충전지를 모두 충전해 두고 별도로 건전지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사진을 찍었어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아프가니스탄 비자를 기다리고 있던 한 한국인 여행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에게는 유니버셜 플러그 컨버터 보다 더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한쪽은 220V용 3구 멀티 컨센트이고 다른 쪽은 보통 1구 컨센트에 꽂는 220V 플러그가 달려있는, 한국의 수퍼마켓 어디서나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연장 케이블을 구매해 플러그 부분을 떼어내고 벗긴 전선 그대로 방치해 둔 것입니다. 약간 위험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어느 나라, 어떤 종류의 컨센트에도 꽂을 수가 있었지요. 그는 아이디어맨이었습니다. 고기를 구해 다져서 숙소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는군요. 세상에.

unreal하고 unusual한 끝내주는 경치를 보려면 문명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장소로 가야 하는데, 하다못해 여행자들이 많이 다녀가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네팔의 안나푸르나 서킷 일주의 경우에도 보통 일주일에서 21일까지 장기간 트래킹을 해야 합니다. 꾸스코에서 시작하여 마추피추에 이르는 길도 나흘 이상 걸리고 가깝게는 중국의 사천성 북서부나, 우르무치 이후부터는 황량한 사막이 펼쳐지는 실크로드, 몽골의 북서부에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경로도 사정이 마찬가지입니다. 별 방법이 없습니다. 충전지를 여벌로 준비하고 하루의 전력 사용을 면밀히 계획에 맞춰 하는 수 밖에요.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열대의 섬들은 늦은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발전기를 돌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는 단전과 전력 불균형이 일상적입니다. 인도의 경우 하루에 수 차례 전기가 나가는 것은 예사이고(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전압이 80V에서 240V까지 치솟는 일이 잦아 정전압 정전류 충전기가 아닌 값싼 충전기를 사용하면 기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지요. 노트북의 충전기는 세간의 상식과는 달리 전압 불균형에도 노트북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습니다. 믿겨지지 않지요? 필자는 일년여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도 수십개국의 온갖 종류의 전력 사정을 경험했지만 열악한 전력 사정 때문에 노트북이 망가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정이 저렇다보니 필자의 경우 숙소를 고를 때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것이 숙소에 전력 아웃렛이 있는가 입니다. 배게 위로 바퀴벌레가 한가하게 기어 다니거나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감방 같은 숙소라도 전력 아웃렛만 있으면 오케이였습니다. 숙소를 고를 때 그 다음에 체크하는 것이 안전한가 여부입니다. 숙소를 잡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창가에 기기들을 놓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창문을 통해 훔쳐갈 수 있지요. 창문 곁에 놓아둔 짐을 몇 가지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냄새 나는 양말과 팬티 따위는 왜들 훔쳐가는지 모르겠군요.

숙소 내부라고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충전 중이라도 기기를 침대나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보다는 충전할 기기와 충전 케이블을 배낭 속에 넣고 배낭을 잠궈두는 것이 좋습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숙소의 종업원이 슬쩍하고 입을 닦는 경우가 있습니다. 숙소의 자물쇠 보다는 자신이 들고 간 자물쇠를 달아두는 것이 좋지요. 특히 인도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값비싼 것들은 잠시 눈을 떼면 뜬금없이 사라지는 것이 뉴턴의 만유인력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기기의 전력 사정 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충격과 모래, 먼지입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불어닥치는 모래 바람, 고작 200km를 이동했을 뿐인데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까지 오르내리는 기가 막힌 날씨, 습도가 80%를 넘어 잠깐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의 대기, 저 먼 지평선은 물론 지근 거리의 모든 것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는 끔찍한 눈보라, 롱테일 보트의 갑판으로 쉴새 없이 밀어닥치는 바닷물 등등.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는 버스는 종종 20-30cm 떠올랐다가 콰당하는 소리와 함께 흙바닥에 내려 앉는데, 살과 지방으로 적절한 완충 작용을 하는 인체와는 달리 버스의 바닥이나 천정에 동여매 놓은 짐은 고스란히 그 충격량을 감내해야 합니다. 노트북 등의 기기는 그래서 티셔츠, 속옷, 양말 등 갖은 옷가지로 몇 번 싼 다음 짐의 중심부에 놓아 충격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필자는 몇 번의 여행으로 생긴 경험 덕택에 빅토리녹스 만능칼과 작은 드라이버를 챙겨 가고는 합니다. 기기를 분해해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면봉으로 모터 구동부에 쌓인 모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스 대용으로 콜드 크림을 바르는 일이 숙소에서 할 일 없이 앉아 있을 때 주로 하던 일이었습니다. 기기 정비가 끝나면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베란다에 앉아 벼룩을 잡거나 빨래를 했지요.

꾸준히 유지보수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 저기 발생하는 잔 고장을 다 막을 수는 없지요. 필자의 경우, PDA의 액정에 줄이 가고 전지가 닿는 접점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충전기의 충전 회로에서 기판이 뜯어지고 노트북의 하드 디스크에서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할 때 나는 괴이한 소음이 들렸습니다. 카메라는 진작부터 전지 홀더가 깨져 테잎으로 붙여 놓았지요.

기기가 고장나면 전기적인 문제의 경우 전파상에서 납땜질을 튼튼히 하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노트북이나 카메라, PDA를 가져가면 십중팔구 신기한듯이 쳐다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자기 녹슨 시계를 불쏙 꺼내 들고 이것과 교환 하자거나, 얼마면 구입할 수 있냐고 묻기 일쑤입니다. 새로운 기기에 보이는 그들의 호기심과 무작정 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전 정신은 높이 살만 하지만 수리를 맡겼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기기의 소형화 덕택에 SMD(surface mounting device)를 다량 사용하는 것이 최근 기기들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그들이 가진 납땜 인두를 잘못 들이댔다가는 수리는 커녕 기기를 날려먹기 십상이니까요.

험한 여행을 하고 난 뒤 대다수의 장비는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지요. 특히나 노트북은 고생을 하도 많이 한 탓인지 도착하자 마자 액정이 나가고 더 이상 부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놈에게 고맙고 해서,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싶었지요.

여행이 장기화될수록 카메라의 메모리만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보조 기억 장치를 챙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여행 기간이 2주를 넘어가고, 디지탈 카메라의 비좁은 액정 화면으로 사진의 디테일을 충분히 알아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지우지 않은 채 남겨두는 사진을 고려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평생 단 한 번 밖에 방문하지 못할 여행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단 눈에 잡히는 대로 사진을 찍게 되는데, 하루 중에 메모리를 다 써버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인도의 카쥬라호(Kajuraho)에서 필자가 이틀 동안 정신없이 찍은 사진은 대략 400장이었습니다. 메모리나 저장 공간의 한계로 그중 320장을 눈물을 머금고 버렸습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는 1천장 이상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12개월 여행 기간 동안 찍은 사진은 대략 2만장이 넘는데 그중 2000여장만 남았습니다. 여행이 장기화될수록 이들 사진을 메모리로 보전하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고 분실의 위험도 적지 않지요. 여행 중 특히 자주 일어나는 사고가 카메라 도난 사고인데(바깥에 나와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충분히 그 값어치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때는 경로가 같아 함께 여행하던 외국인 친구들이 숙소에서 슬쩍 기기를 훔쳐 달아나기도 하지요. 정작 카메라보다는 갖은 고생을 해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있는 메모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여행자들을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심지어 실수로 메모리 카드를 포맷하고 술과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여행지에는 메모리에 담긴 사진을 CDROM으로 구워주는 가게들이 있는데 그 나라의 수도에서 여행자들의 숙소가 밀집한 장소, 특히 PC방에서 CD-R 서비스를 해주고는 합니다. 베이징, 방콕, 호치민 시티, 마닐라, 방갈로르, 카트만두, 델리, 꼴까타, 쉬라즈, 에스파한, 이스탄불, 다합, 과달라하라, 안띠구아, 리마, 꾸스꼬, 라 빠스 등등 여행자들이 자주 오가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CD-R을 구워주는 가게가 있는데,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20불 미만) 600MB 정도의 CD를 구울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여행자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PC방을 찾아볼 수 있는데 현지인들에게 물으면 잘 가르쳐 줍니다. 심지어 한국인 여행자들이 다녀간 곳이라면 한글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아직은 USB 포트가 달린 컴퓨터나 windows xp를 운영체계로 사용하는 컴퓨터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대개는 windows 98을 사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전송할 수 있을까?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전송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300만 화소가 넘어가는, 프레임당 못해도 2MB 이상이 되는 사진을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IT 강국 답게 한국'만' 인터넷 사정이 좋지요. 미국에서 조차도 한국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파일을 전송하는 속도가 최대 100kb/sec을 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1달러 짜리 지폐를 사용하는 internet access point에는 USB 포트가 바깥으로 나와 있지도 않고 한글 사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달리 말해 2Mbytes 짜리 jpeg 파일을 하나 전송하는데 적어도 20초 이상 걸립니다. 미국, 일본, 중국등은 희망적인 경우이고 그외의 국가에서는 속도가 그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필리핀의 마닐라 같은 경우 평균 속도가 30kbps를 넘지 않습니다. 서남 아시아, 중동,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도 사정이 대동소이합니다.

인터넷 비용은 보통 한 시간에 0.5불에서 아주 비싸봤자 5불 안쪽인데, 속도를 30kbps로 가정하고, 시간당 인터넷 사용료를 1불로 가정해서, 만약 2Mbytes 짜리 사진 100장을 전송한다면 19불 정도로 그렇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지만 19불은 19시간 동안 아무 사고없이 전송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더욱 상황을 끔찍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56kbps 모뎀으로 접속하여 20대의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한 PC방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상황에, 시도 때도 없이 접속이 종료되는 열악한 환경입니다. 그쯤 되면 인터넷으로 사진을 전송하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지요.

사진을 보전하는 방법은 그래서 별도의 저장장치를 들고 가던가, CDROM을 굽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필자의 경우는 장기간의 여행인데다 그렇게 구운 CDROM을 들고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워 사진의 크기를 640x480으로 줄여 찍은 대로 인터넷의 홈페이지로 바로바로 전송하고 노트북에도 남겨 두었지요. 잘 발달한 문명권에 등을 돌린 채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여행할 생각이라, 애당초 사진을 인화한다거나 특별히 고해상도로 보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담을 줄였고, 심지어는 한 시간 전에 돌아다니며 찍은 이국의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두어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들에게 방송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필자는 한국의 웹 호스팅 업체에서 1-2만원을 주고 구매한 계정에 홈페이지를 꾸미고 여행 정보와 여행기와 여행 사진 등을 올려 두었습니다. http://luke.turbocpp.com/onload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잘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한국에서 열심히 일 하시라고 염장 지르기에 참 효과적인 방법이더군요. 특히 블로그(blog)가 여행기를 올리기에 적합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친지에게 사진을 보내거나, 홈페이지에 전송하는 일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고려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개괄적인 내용이므로, 하향평준화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 사진의 용량. 아까 말했듯이 사진의 용량을 줄이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PC방에 포토 리터칭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 애당초 저해상도로 찍던가, 노트북 등의 수단을 사용하여 전송할 파일의 사이즈를 임의로 줄여놓는 방법이 있지요. 만일 노트북을 들고 다닐 사정이 안된다면 cd-rom에 프로그램을 구워놓고 pc방에서 설치하여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접속 방법. USB 포트가 달려 있고 windows xp가 설치된 컴퓨터라면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USB 포트는 있는데 windows 98이라면 카메라 별로 별도의 드라이버가 필요합니다. 드라이버를 다운받을 수 있는 위치를 잘 기억해 두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드라이버를 복사해 놓고 다운받아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지요. USB 포트가 없다면? 그때는 노트북이 있어야 합니다. PC방에서 랜 케이블(RJ-45)을 뽑아 자신의 노트북에 연결하고 자신의 노트북으로 직접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비용은 그대로 지불해야 하고, PC방에 따라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전송방식. 웹을 통해 사진을 전송하는 것은 사진 사이즈의 20% 이상이 더 전송됩니다. 웹 페이지로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를 전송할 때는 base64라는 encoding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원본 파일의 크기보다 항상 20% 이상 큽니다. 게다가 사진을 한 장, 한 장 전송해야 하므로 눈을 뗄 수가 없고, 전송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지요. 그래서 ftp로 다수의 사진을 한꺼번에 전송하는 편이 낫습니다. 별로 권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경우 필자가 써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PC방의 컴퓨터에 사진을 모두 옮겨놓고 ftp 프로그램으로 전송을 걸어 놓은 채 한 시간 분량의 사용료만 지불하고 슬쩍 PC방을 나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은 내가 나간 후에도 계속 돌아가는 것인데 얌체스러운 방법이지요. :)

- 한글 문제. 외국에서 한글을 사용하려면 한글입력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여행감상을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친지와 잠시라도 대화하려면, 또는 email을 보내려면 한글 사용이 필요하지요. 무수한 여행 사이트에서 이에 대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한글 입력기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아 설치하는 것은 인터넷 사정이 좋을 때나 가능하므로 CDROM에 해당 프로그램들을 구워 가는 것이 좋습니다. 180MB 용량의 작은 크기의 CD가 제격입니다. MSN Messenger는 보통 PC방의 컴퓨터 마다 설치되어 있으므로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 PC방의 대다수 PC에 CDROM이 달려 있지 않을 경우에는 관리용 컴퓨터에 CD를 넣어두고 다른 PC에서 CDROM 드라이브를 공유해 설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PC방에 따라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인장에게 여기에 korean을 설치하면(korean font라고 해야 통합니다) 보다 많은 한국인이 찾아오게 되고 본인이 선전도 해주겠다고 말해 보세요. 점원하고는 얘기가 잘 안 통하니 한국에서처럼 윗 사람(사장)과 직접 얘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습니다. USB 포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카메라와 USB 케이블을 꺼내 보여주고 연결할 컴퓨터를 찾아봐야 합니다. 이런 절차가 굳이 영어나, 그 나라의 언어를 몰라도 손짓발짓으로 어떻게든 됩니다.

ftp 프로그램, 포토 리터칭 프로그램, 한글 프로그램 등을 CDROM에 담아 구워 다니는 것이 좋고요. 필자는 거기에 덧붙여 사진기의 메모리에도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담아 가지고 다녔습니다. 128MB 메모리에서 대략 20MB 정도를 차지했는데 CDROM 드라이버가 없는 컴퓨터에서 USB 포트에 카메라를 연결해 카메라의 메모리에 들어있는 프로그램들을 PC에 옮겨놓고 설치 했습니다.

windows xp의 경우에는 한글 프로그램 설치가 특수한데 windows xp cd를 가지고 다녀야 하지요. 필요한 경우 컴퓨터 가게에 들러 보통 3-5불 가량을 주고 windows xp cd를 복사할 수도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DA 말고도 이란의 테헤란에서 미제 GPS 리시버를 구매해서 들고 다녔습니다. 이틀 동안 건설 측량 장비를 파는 가게를 들락거리며 한푼이라도 깍아보려고 가격 협상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머나먼 한국에서 온 우리의 형제에게 사장님을 비롯한 우리 점원 일동은 지금까지 가게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스페샬 디스카운트'를 단행 하기로 결심했답니다. 여행자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는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동 국가들은 언제라도 다시 가보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중동 사람들은 여행자를 형제라고 부르고 중남미 사람들은 친구라고 부르지요.

GPS 리시버가 있으니까 좋아진 점이 하나 있었지요. 숙소에서 나올 때 현재 위치를 찍어두고, 원없이 거리를 마구 헤메 다녀도 걱정없이 숙소로 돌아올 수 있지요. 그 후로는 고대 유적지가 있는 빨렝게의 울창한 밀림에서 길을 잃어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안띠구아의 화산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화산재와 거센 비바람을 만났어도, 다마스커스의 거미줄처럼 뻗은 뒷골목 미로에서도 길을 잃어본 적이 없었지요.

여행 중 만난 한 한국인 디자이너는 사진을 잘 찍을 뿐더러 여행 경험이 많았는데 카메라 두 개 뿐만 아니라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별도로 들고 다니더군요. 친절하게 대해주는 현지인 사진을 찍어주고 건네주면서 친구를 만듭니다. 다음에 여행할 때 한 번 쯤은 써먹어 보고 싶은 훌륭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그가 그렇게 훌륭한 방법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가 된 식당 주인에게 애써 가르쳐 준 코리안 누들 수프(라면) 맛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요.

돈 몇푼 건네주면 '토속적인' 생활을 하는 현지 원주민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수월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역 경제에 갑자기 눈을 뜬 원주민들이 더 이상 원주민이기를 거부하고 점점 양아치가 되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여러 감정이 생기는 일이에요. 그네들은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전통 복식을 하고 몫 좋은 곳에 앉아 여행자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사진기를 들이대면 바로 손바닥을 내밀어 돈을 요구하지요. 여행지에서 찍은 소수민족의 전통 복식 사진과 그네들이 파는 기념품은 구분이 되지 않아요. 필자는 이런 저런 매체에 실린 소수민족의 사진을 보게 되면 몇 푼 주고 찍어서 사진을 얼마에 팔아먹었을까, 남는 장사였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지구적으로 어디 가나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이나 점점 사라져 가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망쳐놓은 여행자의 본의 아니게 몰지각한 행동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필자는 소수민족의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사진기를 치워두고 동네 노인네가 권해주는 술잔을 받아들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고 또, 코닥 모멘트는 잠시 잊은 채 그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소수민족들이 그네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보전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들에게서 TV를 빼앗고 너희들이 전통을 제대로 보전하지 않아 섭섭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전통생활로 밥벌이를 하는 것보다 더 위선적인 것입니다. 베트남을 여행할 때 하노이에서 만난 한 젊은이는 여행자를 싸잡아 제국주의자라고 하더군요. 필자는 그의 친구였기에 안 제국주의자였지요. 이집트의 룩소르에서 만난 미국인 여행객은 식당의 여러 여행자들 앞에서 시건방을 떨고, 바깥에 나가 아랍인들 앞에서 건방 떨다가 그의 목에 칼을 겨누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고국으로 달아나더군요.

혹시 이란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있으시면 에스파한의 이맘 마스지드(Masjid; mosque) 사진을 찍어 필자에게 살짝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에스파한에서 만난 독일 사진 작가들은 며칠 동안 모스크의 사진을 찍느라 추위에 벌벌 떨며 고생하고 있었는데 찍은 사진이 신통치 않아 난감해 하고 있더군요. 모스크의 푸른 빛깔을 띤 외장 타일(페르시안 블루라고 하는데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청자기 기술이 원천입니다)의 굴곡이 일정치 않아 빛의 각도에 따라 난반사가 심해서 사진이 제대로 나온 것이 없답니다. 상당한 장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품질은 의외였지요.

필자의 경우, 여행담이란 것이 내가 당신보다 더 고생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 뿐이라면 상당히 재미가 없는 것이고, 쩍어놓은 사진을 구경하며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은 두 번 째로 재미가 없는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괜찮은 동료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현지에서 사람의 살냄새를 경험했다는 것은 세 번째로 시시한 것이지만, 일생을 통해 희박한 기회를 잡아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하나 뿐인 시공간 속에 거치된 '나'를 드라마틱하게 경험하는 것이라면 눈빛을 반짝이며 경청할만하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 색다른 경험을 하려고 여행을 하고, 심지어, 속칭 '선천성 여행중독증'이라는 치료불능의 질병을 안고 떠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 처녀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새로운 경험을 아직 해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처녀지입니다. '나'와 디지탈 장비와 함께 즐거운 여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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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solstice

잡기 2006. 3. 10. 21:39
2002년 12월 언젠가 쓴 글. 홈페이지 정리 중 발견. 보고 있자니 오금이 다 저린다. 내가 저렇게 살았구나.

-*-

'동방견문록'을 도마로 쓰거나 찌게 받침으로 쓰고는 했다. 두꺼운 하드커버 동방견문록 완역본은 그 역할로 정말 제격이다. 마침 라마단에 훈자 마을에 도착해 먹을 것이 떨어져, 일주일 내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동방견문록을 도마 삼아 양파를 썰고 마늘과 당근과 감자를 썰어 국을 끓여 먹었다.

영양 발란스를 고려해 식단의 테마는 매번 달랐다.

* 플레인 야채국.
* 야채 스프 v2.0.
* 감자 보강 야채국.
* 야채국 위드 스페샬 게스트 생강.
* 남은 야채로 팔팔 끓여보는 리벤지 오브 파이날 베지 스튜

그렇게 해서 야채 껍데기를 남긴 채 라마단에서 살아남았다.

옆 구석, 아니 온 사방에서 눈덮인 산들이 매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거기서 발견한 외국 여행객은 다섯을 넘지 않았다. 좀비같은 일본인 셋, 미친 한국인 둘. 비수기에, 매일 전기가 나가 따뜻한 물이 잘 안 나오고 추워 죽겠는데 2500미터 산중에서 떨면서 음식 만들어 먹는 일은 결코, 낭만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벽 세시 이십분, 보름달이 떠오른 가운데 해발 4000미터의 장엄한 흰색 준봉들이 눈부신 별들과 함께(보름달인데도 말이다!) 바로 눈 앞에서 펼쳐보이는 이 지구상의 것 같지 않은 풍경에 관해서는 침을 튀기며 말할 수 있었다. 단 한 음절 짜리 말로: 쾍!

데자부는 언제나 지겹다. 데자부는 글줄 깨나 읽은 녀석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 데자부 내지는 예지몽에 따르면 나는 언젠가 사막에서 죽을 팔자였다. 그래서 남북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쉬테 까비르와 다쉬테 루트를 건너기 전에 유언장을 써 두었다. 누군가 호신불을 내게 주었다. 죽지 말라고. 어떤 작자는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다. 죽지 말라고. 낄낄 웃는 사람도 있었다. 안 죽을 꺼라고.

생생한 과학의 시대에 운명론이 밥맛 떨어진다면, 밥맛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하나 하나 설명해주며 겪은 일화가 있다. 천날의 밤이 흘러 노곤하게 긴장이 풀린 어느날 술자리에서 천천히 얘기할만한 것이었다. 흠. 달콤한 로맨스와 곁들여서? 하여튼 그 빌어먹을 데자부에 따르면, 언젠가 일본인 친구와 눈보라 속을 함께 헤메게 될 것이다.

정말 그랬다. 2002년 12월 13일, 금요일, 해가 질 무렵, 바그다드로 향하는 고대 황금로의 주요 도시 중에 하나인 하마단에서 이름모를 깡촌 어딘가에 있는 알리 사드르 동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엄청난 눈보라 때문에 차가 안 와서 하는 수 없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벌판을 걸었다. 흔히 사막이라고 하는 곳이다. 사막에 눈보라라니. 당황스럽잖아.

아침부터 굶었다. 배가 몹시 고팠다. 얼어죽을 지경인데 모리상은 불쑥, 불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앞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수수깡처럼 지그재그로 걷고 있었다. 맛이 간 것이다. 입이 얼어붙어 한동안 말 못하다가 대꾸했다. 나도 불고기가 먹고 싶어.

여건이 몹시 열악한 관계로 우리는 십 분에 한 마디씩 얘기를 주고 받았다. 하늘도 하얗고 땅도 하얗고 지평선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가로로 세차게 흐르는 눈보라 속에서 한 동안 맛있는 불고기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러다가 모리상이 갑자기 외쳤다.

비빔밥!

여건이 더더욱 나빠져 가고 있어서 말이 잘 안 나와 고개를 끄떡이며 나도 먹고 싶다는 제스쳐를 처량하게 취하고 맛있는 비빔밥을 생각하며 걸었다. 모리상은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비빔밥 마저 생각해 내다니...

그리고 유리구슬처럼 뻑뻑한 눈알을 굴렸다. 장관이라고도 생각했다. 온통 하얘서 흡사 천당 같았다.

내 눈 앞으로 눈보라의 눈알갱이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수평으로 피융 하고 연달아 다다다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걸리적 거릴데가 없는 허허발판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희안한 일이 벌어진다. 오른쪽 어깨에 눈이 달라붙어 얼음이 되었다. 조금 더 걸으면 괜찮은 동상이 될 것 같다. 겨울에 태백산 눈축제할 때마다 보곤 했던 얼음 동상.

모리상이 회의적인 표정(얼굴이 얼은 관계로 그렇다고 추측했을 따름이지만)을 지으며 말했다; 이 길이 맞는거야?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기랄. 알게 뭐람. 뭐가 제대로 보여야 말이지.

정강이까지 푹푹 파이는 눈 속을 헤집고 반쯤 눈에 파묻힌 민가를 발견해 문을 두들겼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잘 안 나와서 그냥 악악 거리기만 했다. 한국어, 영어는 어떻게 되는데 파르시로 어떻게 말해야 하지? 모리상은 입을 다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눈보라는 여전했다. 무척 떨리는 상황이다.

눈알이 차가워서 눈알을 굴리면 눈가위가 몹시 시원했다. 발은 이미 젖어서 얼어붙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간신히 지나가는 차에 구조 되었을 때(누군가 마을에서 떠나는 모습을 보고 우리를 뒤쫓아왔다) 모리와 나는 얼굴이 얼어 웃을 수 조차 없었다. 기뻐야 하는 상황이지만 피와 살은 얼어붙어 있었다.

하룻밤 인가에서 신세지며 호구 조사를 하다가 이튿날 미어 터지는 미니버스를 잡아타고(냉방이 끝내줬다) 돌아왔다. 지랄같은 눈보라였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는 눈이 그쳤고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 찍을 기분은 아니었다.

하마단에 돌아왔을 때 모리가 묵고 있던 호텔 주인과 내가 묵고 있던 호텔 주인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다. 그들은 아침까지 잠을 안 자고 우리를 기다렸다.

우린 정말 좋은 추억꺼리를 갖게 된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모리상은 똥 씹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40도는 술이 아니고 -40도는 기온이 아니고 400킬로미터는 거리도 아니다!' 그래! 허풍쟁이들아! 동-감이다!

이스파한에서 엿새동안 머물며 이맘 모스크만 네 번 들락거렸다. 꽤 많이 갔다고 생각했는데, 모리상은 다섯 번을 들락거렸고, 어떤 한국인은 17번을 들락거렸다. 이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의가 페르시안 블루에 맛이 가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뿌듯한 색깔이었다. 이맘 모스크를 견학하던 여중생이 꽃을 선물로 주었다. 한 입에 삼켜도 목구멍이 메이지 않을 것 같은 귀여운 여학생이다. 모스크의 사위를 둘러 보았지만 애석하게도 으슥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네 번이든, 다섯 번이든, 열일곱 번이든 우린 입장료를 안 내고 개구멍으로 들락거려서 다소 떳떳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모리는 건축학도였고 그는 6개월째 세상의 내노라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둘러보러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구조(?)된 날 밤 우리는 페르세폴리스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그에게 garrison과 건축물의 높이, 아파다나 궁전의 건축 방식, 미완성 문과 신전 바닥을 흐르는 상수도 및 수로 설계, 그리고 거주구와 궁전의 상호 위치에 관해 거의 sf에 가까운 공상스러운 가설들을 늘어놓았다. 아르게 밤에 있는 동안 나는 거진 고고학자가 된 기분으로 지병인 두통이 도질 때까지 고대 도시의 살아있는 모습을 재구성 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영역 표시도 할 겸 오줌을 누었다.

페르세폴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 오줌을 쌌다는 얘기는 아니고... 우리를 감동시켰던 것은 페르세폴리스 보다는 야즈드의 고대 도시나 아르게 밤 같은 편안한 사막 건축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그 역사적 전통. 다시 말해 적어도 신석기 이후 거의 변화가 없었던, 완벽하게 사막 기후에 적응한 건축 양식에 관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카쥬라호의 놀랍고 경이로운 인도 사라센 양식의 생동감 넘치는 신전이나 오르차의 뛰어난 무굴 양식 등 내 생각에 건축학도라면 필수적으로 보아야 할 것들 보다는 돈지랄 마우솔레움인 타즈마할 밖에 보지 못했다. 물론 타즈마할은 모든 무굴 건축 중 단연 돋보이는 뛰어난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오르차에서 라즈마할과 쉬즈마할을 보고 그 안을 둘러보고 담배 한대 빨면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다 보면 건축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참 난 건축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오늘은 제과점에서 초콜렛을 사고 견과물을 취급하는 곳에서 피스타치오를 사서 쵸코바를 만들었다. 곤로에 일단 파운드 초콜렛을 녹이고 피스타치오를 까서 섞은 후 영하로 떨어진 창가에 놓아두어 굳혔다. 맛있다.

얼어죽을 지경이다. 호텔에서 곤로를 주었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는데 새해 인사랍시고 찍은 동영상은 수년간 산적질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산 넘고 물 건넌 사연, 즉 지난한 알리바이를 실토하는 초췌하고 괴상한 모습이었다. 옆구리에 코란까지 끼고.

사나이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고 소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엇인가를 찾아.

lwq (islamic pronounciaion)
in
persia
,

Synaesthesia

잡기 2006. 3. 9. 19:04
life is easier when you lighten your head. 닭대가리가 되면 인생이 즐겁습니다 라는 좋은 뜻일께다.

내 홈페이지에 접속이 안된다고 연락이 왔다. 유씨 아저씨가 관리하는 도메인이 날아갔다. 도메인 연장 신청을 하려 했으나 그 도메인을 관리하는 업체가 망했단다. 바빠서 복구를 미뤘다. 반성: 도메인 정도는 만들어두자. whois.co.kr에서 28000원 주고 2년짜리 도메인 이름을 받았다. pyroshot.pe.kr

홈페이지를 옮기고 이 김에 엔트리를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google.com에서는 홈페이지가 검색되지 않지만 google.co.kr에서는 종종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구글 한국은 로벗 배제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나처럼 서칭엔진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사람들이나 알만한 것이겠지만, 따라서, 구글은 한국 실정에 맞춰 현지화도 할 줄 아는 업체인 것이다.

어쩌나? 홈페이지가 변경되었다고 알리긴 알려야겠지?

어린 시절 책에 쓰여진 단어나 말하는 단어로부터 색상을 느꼈다. 조금 학습하고 나서야 그것이 공감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글자의 색이 많이 바래진 상태였다. 대마초 피우면 음파가 색깔로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마초로는 안 되고 lsd를 빨아야 알록달록한 무지개색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공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지개를 본 적은 없다. 색상의 파도, 몇몇 유려한 문장가의 글에서 풍부한 색상의 유동을 보았다. 마치 시선을 천천이 이동하면서 홀로그램 스티커로 난반사되는 알록달록한 색깔을 보는 것처럼. 게다가 글에서 호흡과 리듬을 같이 읽었으니 어지간히 잘 썼다는 글을 읽어도 재밌게 읽기가 힘들었다. 특히 시 나부랑이를 경멸하게 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그런 거지같은 글을 시라고 쓰는게 한심해 보인달까. 다른 사람에게 내 감상을 말하기는 힘들었다. 공감각을 지니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좀 더 글을 직관적, 감각적으로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정작 나는 적록색맹이다.

묘하게도 어린 시절에는 그나마 십중 대여섯은 보이던 것이 나이 들면서 점차 나빠지다가 이제는 테스트 용지의 숫자판이 완전히 안 보였다.

그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 이제는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전차가 플랫폼에 진입할 때 흘러가는 역 표시 글자가 안 보였다. 몇 번이나 테스트를 반복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다.

노후 걱정은 안 했다. 때 되면 오드아이TM나 첫눈TM 같은 값싸고 패셔너블한 눈알들이 시장에 나타날 것이다. 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잠깐 후설! 버클리! 멋대로 정하지 마! 라캉, 데리다! -- from Ergo Proxy.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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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기사는 언론이라기보다는 감정 조절 능력이 없는 인격 파탄자의 유치하고 비열한 감정적 배설 행위" -- 영화계, 조선일보와 대립각

인격 파탄자? 내 얘기 같은데?


진단의학과의 수장이자 무결점 인격자 닥터 하우스. 한 눈에 봐도 호인 타잎이다. 진단의학은 환자를 상대로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마루타 실험을 하는 곳이다. 이런 의사라면 무의미하고 보잘 것 없는 내 생명을 맡겨도 되지 싶다. 그는 환자의 거짓말을 믿지 않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제대로 된 엔지니어 환자를 만나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는 늘 환자의 생명을 걱정하고 밤낮으로 고민했다. 돈만 밝히는 사업가와의 직장내 권력투쟁에서도 투철한 자의식을 양보하지 않고 영약한 대리전을 통해 승리했으며 그를 좋아하는 병원 사람들, 환자들에게 자기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지 않아 섭섭하다는 불평이 담긴 팬레터를 산더미처럼 받는다.


유능한 의사라 일에 치여 살 것 같지만, 근무시간 중에는 간혹 짬을 내서 제네랄 하스피탈을 감상하며 의사의 도리를 배우거나 20살 차이가 나는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를 즐기는 등 정상적인 생활도 즐겼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바보 친구들이 있다. 의외로 행운아다.

닥터 하우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이 다양성을 가치관이랍시고 주장하는 세계에 실재하는 존재론적인 부조리다.

iternal sunshine on the spotless mind? 던가? 영화는 21세기 현대 문학의 주요 갈래라고 할 수 있는 SF, 판타지/무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고전 멜로물이었다. 인간의 상심은 본인이 원치 않는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는 감정이입의 주요 수단으로 오랫동안 변치 않고 울궈먹는 소재다. 운명선이 약간 비뚤어진거지 자기 탓은 절대 아니라고 고집 부리며 사회 체계 속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탈선과 범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고전 예술의 담화와 뭐 다를게 있어야지.

21세기는, 세계정부가 출현하고 전쟁이 사라지고(예정) 누구나 변비처럼 불편하고 필요없는 기억을 깔끔하게 지울 수 있으며(예정) 감기 등의 불치병이 치유되고(예정) 하늘로 출퇴근용 반중력 자동차가 날아다니며(예정) 아침은 베니스의 노상 까페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고 점심은 월면 거주지의 처가집을 방문하고(예정) 무료 의료 시스템과 굶주리는 아이들 하나 없이 가사노가다로부터 해방되어 많은 이들에게 부담스럽고 능력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은 자기만의 우아하고 창조적인 예술활동 놀이에 시간을 보내게 되는 등 21세기적, 아울러 22세기적 인간이 되기가 영 어려운 수구꼴통들에게는 어렵고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그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진정 멜로물이 아닐까? 상기한 21세기가 오기 전까지는 인간이 약하고 보잘것 없어 비맞고 돌아다니는 길잃은 강아지처럼 동정하게 해주는.

그래도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삶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겠지. 왜냐하면 수백만년동안 축적된 구체적인 증거가 있으니까. 코앞에 들이미는 그 증거는 21세기가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이자, 누구 말로는, '인간성에 대한 종교적인 신뢰감'이다. 산 넘어 산 이라는데, 나는 인간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핵폭탄 4700개면 경위도선을 잘 구획해 촘촘하게 떨구어 팔 다리나 뇌가 없는 돌연변이가 출현해 인간성 자체에 획기적인 개선도 가능하리라 본다.

보네것의 소설에서는 핵전쟁 이후 인간의 팔 다리가 모두 사라지고 뇌 기능이 축소되어 지나가는 상어에게 정기적으로 잡아먹히는 등 무자비한 포식자 하나가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다 발생하는 과거의 온갖 불상사로부터 해방되어 생태계의 균형이 그제서야 제자리를 찾는 등, 인간성의 장래를 낙관했다.

그건 그런데, '후지산 폭파 조짐이 보인다'같은 가슴이 훈훈해지는 소식을 곧이 곧대로 즐기지 못하고 일본 멸망 후 한국이 입게 될 심대한 타격을 생각하게 되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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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하우스의 철학

잡기 2006. 2. 26. 23:56
저는 결혼했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 from House, M.D.

그렇긴 하지.



마하발라뿌람인가? 언젠가 아내는 (무의식적으로) 검은 깔리처럼 앉아있는 저 친구가 단지 여자를 얻어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는 이유로 가엾다고 말했다. 여자들이란... 싸늘하지만 상냥하게 쳐다보며 대꾸했다; (입 다물어. 알지도 못하면서.) 저 아이는 행복해. 아내는 개길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댁이 저 사람이 행복한 지 안 한지 어떻게 알아? 라고 말할 태세였다.

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하다'는 기준에 별로 흥미가 안 생겼다. '일반적인 기준'이란게 뭔데? 라고 물으면, 할 말 없다. 저 친구 역시 관계 속에서는 별로 건질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그냥 알았을 것이다. 심심한데 피리나 부는게 낫지. 나도 피리나 불까?

제 사진 나돌아다니는 걸 나만큼 싫어해서 적당히 심령처리했다.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역할을 해야 하므로 마리오넷처럼 굴기는 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면 안 해도 되서 기쁘긴 한데,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내가 걱정이 있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거나, 현 상황을 타계할 궁리를 한다거나, 또 무슨 못된 궁리를 하며 희희낙낙한다거나, 자기나 만남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등, 여하튼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대충 정리했다.

딴 생각을 하긴 했다; 어제는 회의실에서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으면 전갈자리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사람들이 웃을 때 때 맞춰 웃기도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펜을 들고 토폴로지를 죽죽 그려 놓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나를 싸이코나 얌전한 연쇄살인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첫인상이 그렇다는데야... 말 다했다. 그러니까 자꾸 일반적인 기준 어쩌고 하면 화낸다?

뇌 속에 기생충처럼 살고 있는 '생각'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타지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것이다. 내가 그 방면에 '타고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수도사 멘델의 유전 법칙을 알았을 때(내가 어렸을 적에 본 멘델은 인자하게 생긴데다 과학에 대한 정열로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젊은이였는데 똥오줌 가릴 시기가 되어 뒷조사를 좀 해 보니 구라였다), 했던 일은 간단하고 명백한 팩트(이를테면 정보 진실성(?)의 최소 단위) 수백 개를 나열하고 집합으로 분류한 후 정말로 콩 심은데 콩이 나는지 집안에 전래된 유전형질의 발현 '강도'를 3대에 걸쳐 조사하는 것이었다. 그 짓을 열대여섯살에 해치웠고 암울한 결론을 내렸다.

으시시하게도 정말 그랬다.

정말 그래서 다섯살 때 집을 나가 논 한 가운데, 대머리에 몇 가닥 난 머리카락처럼 키가 큰 포퓰라 나무 밑에서 징징 짜대며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일을 여전히 기억했다. 8킬로미터를 가는 동안 나는 가족을 까맣게 잊고 인간이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심리적 경계를 어처구니없이 넘었다. 다섯살 때와 지금이 달라진 것이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생을 거쳐 스쳐가는 기억들을 정리하다보면, 아니 실패를 반추하다보면, 내가 정말 저렴하게 실용 가치를 추구하는 건설적이고 철학적인 인간이긴 한가? 그냥 평범한 닭대가리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고는 했다.

닥터 하우스의 지론은 이랬다; 환자는 거짓말을 한다.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부분에 이르면 스스로에게 변명을 나불거리는 것이 꼴보기 싫어(그것들 대개가 우아하기 그지없다는 점에서) 하우스 선생의 또 다른 말을 그럴 때 써먹으며 스스로를 비웃었으면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영점 조정이 안 된 원심분리기는 정말 슬퍼~

그렇게 해서 아가리에 총구를 틀어 박고 연사로 쏴죽이고 싶은 놈이 미 제국주의 한 놈만은 아니었다. 철없던 시절 나는 내 리스크 게놈을 증오했고 만만한 상대가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이유없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미워했다. 어머니의 어머니들도 잊지 않았다. 나는 소심한 A형 사회주의자라서 하나도 빼먹지 않고 인류 모두를 저주할 자신마저 있었다.

한가한 얘긴 그만 하고, 오늘 밤엔 문득 무슬림 형제들이 정성 들여 만들어 판매하는 시원한 메카 콜라를 마시고 싶다. 메카 콜라의 요즘 선전 문구는 이랬다;

정치의식을 가지고 마시자!

절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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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ty shit

잡기 2006. 2. 17. 23:16
http://news.media.daum.net/edition/net/200602/13/ned/v11683755.html -- 원숭이도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황야의 무법자와 더티 해리 시리즈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광범위한 영화를 한 단어로 축약하면 이렇다: '젠장' 그가 최근에 만든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도 젠장 정신은 변함 없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그랬고, 플레이 미스티 포 미 도 그랬다. 한번 젠장은 영원한 젠장인 것이다. 그런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로버트 레드포드는 왜 생떽쥐베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지 않았을까? 연료통 게이지가 바닥을 가르키는 젠장할 상황에는 곁에 없을 사랑이나 신념이나 자비를 구할 신조차 소용없다.

이거선생님번호맞는가몰르겠네요~저이쁜진현이에요기억하시겟죠?오늘눈이대따많이왔어요~

조금 후...

선생님보고싶어용~~~♡♡

눈이 와서 80글자를 꽉 채워 수컷 선생님한테 문자질한 건가? '남편은 부재중이에요'라고 써서 보내려다 관뒀다. 장난끼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한 달 내내 바빠서 미뤘다. 잠깐 짬을 내 은행을 방문했다. 한미은행은 파업중인 것 같다. 창구 직원 몇 빼고 은행이 한산하다. 죄송합니다 지금 처리할 수 없겠네요, 아, 그것도요. 불평 안 했다. 댁들이 친절해서 다른 은행으로 안 가는 거에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오는 길에 파업 잘되길 빌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아줌마가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린다. 댁보고 웃은 것 아뇨.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듯이 고통은 내재화된다.

'황금키위' 인지 하는 걸 사러 가다가 한국-멕시코 축구 방송이 눈에 띄었다. 길 옆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없던 최근 상황을 우울하게 생각하던 차, 그래 멈추자, 발길을 멈추고 축구 중계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았다. 멕시코인은 오랜 식민생활 탓에 유순하고 비굴한 민족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을 한 작자에게 밥맛 떨어졌던 기억이 났다. 그래도 사준 술은 비웠다. 난 합리적인 것 같다.

그 위대한 젊은 시절의 옥타비아누스가 엄마 치맛바람에 정신 못 차리는 우울한 꼬마애로 나오고, 거기다가 두 병사가 대체역사적 개그를 보여줘 히히히 웃었던 Rome을 다 보고, 재미가 없어서 그만 판을 접었으면 싶은 Threshold를 시큰둥하게 쳐다 보다가 새삼스럽게도 '인생은 불공평해' 라고 주장하는 unfair라는 재미없는 드라마를 억지로 보다가 접었다. 어디 시원한 드라마 없을까?

Serenity를 두 번째로 다시 봤다. 말콤 선장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본받고 싶은 작자다. 그가 얼마나 합리적인 사람인가 하면... 대화가 잘 안 통하면 지체없이 총을 뽑아 쏴 죽였다. 미국식 프론티어 정신의 절망은 무의미한 상징일 뿐이다. 상징의 힘이 그다지도 막강하다는 얘기를 부정한다. 그것은 인간이 부가한 것이다. 꽃들이나 새들은 그러지 않았다.

조이가 금고를 털다가 말했다. "당신 '영웅'의 정의가 뭔지 알아? 다른 사람들 다 죽게 만드는 거야" 조이 누님은 말콤 선장만큼 멋지지만 영화판에서는 '바람 속에 떠도는 가랑잎'이라던 제 남편이 산 채로 사람을 뜯어먹는 리버스의 공격에 어이없이 죽자 잠시 이성을 잃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하늘을 주름잡던 남편은 지상에 내려 앉자마자 당했다. 우리 모두는 그래서 가슴에 혈액에 산화된 녹슨 칼 하나씩을 품고 살게 된다.

Shield를 보기 시작했다. LA Confidential 처럼 매우 지저분한 드라마다. 서로 죽이겠다고 악을 쓰는 두 갱을 히히덕거리며 컨테이너 박스에 쳐 넣고 다음날 아침 컨테이너를 열어보니 한 녀석만 피투성이가 된 채 기어 나와 아침해를 보면서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실드에서 내 취향은 더치보이다. 더치보이가 어떻게 망가질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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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영화가 구립 도서관처럼 공공재가 되었나. 미제국주의 할리웃 쓰레기 영화(문화)가 한국을 점령한다손 이 나라 국민은 상당히 독창적으로 고집이 쎄고 성질이 뭐 같아서 무장 원숭이 집단이 30년이나 지배해도 근본을 뽑아내지 못한 아주 희안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뭐를 쳐보여줘야 저 개같은 정신세계를 뜯어고칠 수 있을지. 한숨. 그러니까 문화식민같은 것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내 눈에는... 영화는 문화라기 보다는... '문화'를 재가공해서 팔아먹을 수 있는 썩 괜찮은 사업 아이템 중 하나 같아 보이는데.. 안성기나 장동건 나온 영화가 뼈를 깍는 인고로 산출한 한민족 문화의 특소성(아까 말한 거)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예술 영화였나? 아니잖아. 관객 수백만이 봤다는, 재미도 있고 볼만도 하고 팔아서 남는 장사가 되는 산업으로써 유난히 돋보이는 영화였잖아.

'왕의 남자'를 만들어 빚 다 갚고 나서 피켓을 든 감독이 말하길, 스크린 쿼터가 없었더라면 '왕의 남자' 같은 영화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자기만의 싸이코적이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졌으나 돈은 안 되는 영화만 줄곳 만들어 온 김기덕 감독은 '영화제 시상식을 싹쓸이하는 것이 기분 좋긴 한데 말야, 사람들이 내 영화도 좀 봐줬으면 좋겠다' 라고 상패를 만지작거리며 말한 적이 있다. 왠일인지 대박만큼은 철저하게 피해 가는 그 양반의 영화는 스크린 쿼터하고 별로 상관없어 보이던데, 창작물이란 것이 말이지... 해변의 파도처럼 밀려 왔다 밀려 가는 것과 상관없이 만들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든 만든다.

사실 농산물 수입 개방과 달리 한국 영화가 망해도 별로 골치 안 아프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스크린 쿼터를 사수하건 말건 남의 사업에 감 놔라 배 놔라 의견이라고 말할 것이 없다.

상관없지만, 돈 버는 얘기 같아 스크린 쿼터 축소를 지지하려고 여기 저기 뒤져보니 쓸만한 논리가 없다. 그 운동이 (내가 조선일보를 읽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읽는 잡지인) 씨네21에서 시작한 것 아니던가? 예전에 자기들이 시작했다며 꽤 자랑스러워 하던 것 같던데. 기대한다 씨네21. 쓸만한 논거는 예쁜 데이터가 뒷받침해 줘야 하지. 인문 수사의 화려함이나 유장함은 데이터, 논거, 매끄러운 전개, 아름다운 결론을 장식할 때에만 가치가 있는 거야. 그 외엔 정말 쓰레기지. 그 동안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날 한 번도 설득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제대로 낚아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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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ical truth

잡기 2006. 2. 11. 00:14
Keren Ann, Not Going Anywhere (3:37)

tide will rise and fall along the bay... and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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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와 떡밥

잡기 2006. 2. 4. 11:52
아내는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내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의 후배 남편 얘기를 해주는데, 결혼 전에는 그렇게나 잘해 주더니 결혼 하고 나서 안면을 싹 바꾸었단다. 문제의 후배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미끼를 문 고기에게 떡밥을 주는 것은 무의미한 짓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하는 것이다.

파이어폭스의 메모리 릭 문제를 떠들었더니 그걸 전후해 하루 70명으로, 접속자가 많이 늘어 기隙?상했다. 뭐가 문제인가 싶어 뒤적여보니 allblog를 통해 들어온 것이 있고 한 동안 구글애드(구글머니?) 한답시고 robots.txt를 지웠다가 복구하지 않은 실수를 한 것이 눈에 띄었다. 당장 막았다. 어디까지나 지인들에게 잘 살고 있음을, 걱정하지 말라고, 잘 되진 않지만 사회 적응에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심지어 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논쟁에 깨지고 공개적으로 망신 당하고 온갖 원망과 비난을 듣고 바보 소리 들어도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

어렸을 적에 처음 가는 동네에서 애들을 감언이설로 휘어잡아 있지도 않은 복숭아를 서리하러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넘어간 것과 비슷했다. 복숭아는 없었지만 힘들다고 불평하던 녀석들이 산 정상에 다다르자 자기만의 이유로 기뻐했다. 나도 기뻤는데, 내 목적은 산 너머 개울에 가는 것이었다.

복숭아라... 소가 음메 울고 햇살이 반짝이던 그 개울은 말라 버렸겠지? 쿠빌라이 칸의 상상 속에서 이상화된 도시처럼, 소뇌 어딘가에 '그곳에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무의미한 이미지만 남긴 채.



실크로드 2부 '로마편'을 거의 다 봤다. 심금을 울리는 타이틀 롤. 동영상으로 만들어봤더니 용량이 mp3 한곡 분량이 안 된다. 그래서 올렸다. 작년에 지진으로 쑥대밭이 된 밤 성을 보고 있자니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무의미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곳에서 그들은 죽을 때까지 투쟁하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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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군. 격조했군.

바빴다.

웹의 벤치마크 테스트를 보니 국내 제품은 신호 강도 면에서 외국 제품에 많이 딸리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 유무선 공유기를 하나 사다 달라기에 Linksys WRT54G를 사다가 테스트를 해 봤다.

이전 유무선 공유기는 철제문을 지나 밖에 나가면 신호강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는데 이 놈에 공유기는 어찌된 일인지 옥상에서도 팔팔하게 전파가 잡혔다. 무려 -34dbm이 나온다. 한 층을 올라가 영화를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성능이 너무 좋다.

1. 아무리 보안에 공을 들여도 유무선 공유기는 보안에 취약하다
2. 이렇게 좋은 제품은 네트웍 게임에도 효과적이다.
3. 나는 참 열심히 일한다.

이상의 이유로 집에서 쓰던 내 유무선 공유기를 사무실에 갖다 주고 새로 산 건 내가 사용하기로 했다.

집에서 사용하던 공유기는 정성껏 닦아서 갖다 줬다.

집에서 사용하던 공유기에 사연이 있다. 예전에 FTP 서버가 안되서 Reenet의 기술 직원과 통화한 일이 있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 직원이 제안하길, 제품을 가져오시면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귀찮아서 찾아가지 않았다. 그까이꺼 안 하면 그만이지.

한참 지난 후에 어쩌다가 일 때문에 FTP 프로토콜 규약을 다시 살펴본 결과... passive mode에서 사용할 때는 ftp 포트 외에도 이쪽 공유기에서 특정 포트 레인지로 인입할 수 있도록 공유기에서 passive mode용 버추얼 서버 포트를 열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예전에 알던 사실이지만 한 일 년 여행 갔다가 돌아온 다음에 머리도 심장도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 공유기가 안 되던 이유는 단지 그 포트를 열지 않아서 였을 뿐이다.

네트웍 프로그래머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에서 간단히 말해, 수준이 낮다고 본다. 십수 년 동안 tcp 프로그래밍을 해왔다는 소위 그 분야 전문가란 작자가 don't linger나 keep alive, oob, windowing, naggle 알고리즘 따위의... 말하자면 기초적인 것을 모르거나 TCP negotiation이 트래픽이 대단한 네트웍에서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던가...

국산 엔지니어 얘기냐고? 어릴 때는 외국인들하고 일했고 그들이 한국에서 삽질하는 엔지니어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국산 엔지니어와 대접의 수준이 다른 것을 대단히 억울하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그들은 월풀이 있는 호텔 스위트에서 자는 동안 나는 공장 한켠 야전침대 위에서 잠을 설쳤다. 자는 건 그렇다치고 먹는 건... 갑자기 울컥하는군. 그런 와중에 왠 40대 외국인 철부지 꼬마가 자기도 잘 모르는 걸 나불대는데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떠들어 대는 그 시시한 내용을 참고 듣고 있자니 가려웠다.

논쟁은 무의미하다. 논쟁이란 고만고만한 도토리들끼리 서로가 얼마나 멍청한가를 공공연하게 나불거리는 몹시 이상한 짓이다.

한 일주일쯤 십년차 경력의 프로그래머와 일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이 친구도 여지없는 또라이였다. 코웍을 하면서 프로토콜 스펙을 만들었는가 말하니 플로우 하나 보여주면서 이대로 하잔다.

살다살다 '당신은 이런 종류의 프로그래밍은 한 번도 안 해봤군요!' 라는 등의 별 희안한 소리를 다 듣게 되어 오랫동안 인상에 남을 친구 같다. 사정은 이렇다. 그 친구는 비디오 데이터를 대역폭 한계까지 보낸다. 내가 트래픽 아날라이즈를 해 보니 80Mbps를 100Mbps 라인에서 24시간 365일 보내고, 임베디드 보드의 10Mbps 랜 카드들은 한계 영역에서 간신히 작동할 전망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갑자기 거기서 자기가 보내는 패킷에 반드시 ACK 패킷을 날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은 점점 나빠지는데 그게 또 하필 TCP 통신이다(왜 TCP를 쓰는거지?). 더더욱 가관인 것은 L2 하나, 리피터로 쓰는 100Mbps 더미 스위칭 허브가 2개나 중간에 끼어 있다. 150m까지 네트웍을 연장하려고 그랬단다. 차라리 1000Base-LX를 쓰지. 그쯤에서 끝나면 좋을텐데 끔찍한 것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 라인은 에머전시 라인이다. 한번에 2500명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라인인 것이다. 와... 설계 누가 했는지 완전 미친 놈 아니야? 이거 대량학살자네? 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친구가 설계한 것이었다.

...

내가 잘못했다.

그 친구 한테 '초짜' 라는 둥, 심지어 '스트리밍' 프로그래밍도 안 해봤다는 둥 하는 얘기를 묵묵히 들어줬다. 자기보다 실력도 떨어지는데 내가 돈은 더 많이 받아 기분이 몹시 상해 심사가 뒤틀렸는데 그의 설계에 감탄해 버렸으니... 이해한다. 나는 사장한테 사기 정말 잘 쳐서 돈을 더 받는 것이다. 내가 2주 일해서 그 친구 3개월 급여만큼 받는다. 마누라가 에어컨 사달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알바를 했다.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일이지만. 뭐 하는 회산지 구경이나 하려고 들렀다가(어떻게 나를 알고 연락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기밀유지 협정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p )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놓은 회로를 검토하고 몇 가지 고쳐서 작동하게 만들어줬다. 부사장 말로는 내가 한 시간 작업해서 2개월 작업하여 제작한 400장 보드 2억원 어치를 살렸단다. 시팔 좆됐다. 그후 2주 동안 내 전화기는 한시도 끊긴 적이 없었다.

아까 그 대량학살자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원안 대로 10Mbps 대역을 full로 쓰는 클라이언트를 작성했다. 말이 클라이언트지, 이게 서버인지 클라이언트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설계대로 해줬다. 어서 빨리 끝내고 달아나고 싶다. 프레임 레이트가 15fps에서 간신히 똥을 싸고 BDP가 엄청나다. cpu 부하율을 그래도 1% 이내에서 잠잠했지만... 그걸 디스플레이하니 화면이 출렁거린다. 저게 바로 TCP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건데, 자주 보면 우울해지지. 현학적인 TCP 최악의 시나리오가 밋밋해진 친구라도 다음날 신문 기사에 2500여명이 죽었다 라고 실리면 많이 우울해질 것 같다.

증거를 보여줘도 끝끝내 우겨대길래(황우석이냐?) 다음날 패킷 압축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같은 상황에서 360fps로 전송되는 것을 보여줬다. 네트웍 트래픽은 80Mbps에서 1.5Mbps로 팍 줄였다. 소스를 건네줬다. 바빠서 공부할 시간 없었던 사람에겐 욕 안 한다. 하지만... 음...

프로그래머는 직업적 특성상 또라이가 유난히 많은 직종이지만 자신의 무식을 전문성으로 알고 있는 30대 후반 또라이는 첨이라서 신선했다. 게임 쪽에는 또라이가 적고 뜨네기나 얼간이가 많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외로 장관인데, 사람 목숨이 오락가락 하거나 작은 실수 하나로 몇 초 사이에 수천만원이 공중에서 타버리는 관계로 식은 땀을 흘리며 하는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는 탓이지 싶다. 게임 프로그래머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 그냥 업무 강도나 위험성(?)이 내쪽 일과 많이 차이난다는 뜻이다. 사실 또라이나 얼간이나 그게 그거지.

가끔 또라이 소리를 듣는다. 흡사 또라이처럼 보일 때도 있는데 그건 내가 방어적 프로그래밍, 방어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위험요소 분석을 하고 그쪽에 관련된 엔지니어가 보이면 친절하게 쪼르르 달려가서 히죽 웃으며 잘못 짜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해서인 것 같다. 그것 말고도 철없던 어린 시절 80만줄 짜리 어셈블리를 생짜로 아무 도구없이 c 소스로 리버스 엔지니어링한 적이 있었다. 엔지니어링 업계에 길이길이 남을 또라이짓으로 몇몇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렇게 만든 소스는 그 회사가 4년 동안 350억을 벌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었는데, 나한테는 국물도 없었다. 그때 일을 마치고 파산한 상태로 인도를 저렴하게(거지꼴로) 돌며 어떻게 고기 좀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빌빌거리고 있었다. 그게 특허를 10여개나 만들고도 특허권 한 장 얻어본 적이 없는 불쌍한 엔지니어의 모습이다.

불쌍한 또라이 얘기 하다 말았던가? 이를테면 나는 쇳국물이 줄줄 흐르거나 50V 600A 짜리 보아 뱀처럼 생긴 케이블이 기어다니는 바닥에 라면 박스 깔고 앉아 프로그래밍하다가 노무자들이 곡괭이 들고 떼거지로 쳐들어와서 어떤 새끼가 CB 내렸는지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뛸 때 양처럼 순진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 CB는 내가 코드 한 줄로 내렸다. 다행히 그날 작업실 문을 걸어두었다. 많이 쫄았다. 코드 한 줄이면 수십명쯤 삽시간에 죽일 수 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목숨의 소중함, 그리고 목숨의 위협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특히 내 목 위에는 항상 머리가 제대로 붙어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된다. 내 목 뿐만 아니라 네 목도 제대로 붙어 있게 하기 위해서 그 정도 협박 쯤이야 할 수 있고 그렇게 또라이 소리 듣는 것을 기분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대다수의 엔지니어는 착한 놈이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감추려 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엔지니어다.

서로를 뜯어먹고 아둥바둥 살아가기 위해 각자 애쓰는(또는 믿어지는) 이 세계가 왜 쉽사리 붕괴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농담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월 스트릿이나 펜타곤 하나쯤 다운 시키는 것은 그 내부 사정을 아는 기술자에게 일도 아니다. 그런데 단순한 변심이나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가했다는 증거는 여러 사정으로 듣기 어렵다. 대부분의 은행 전산망은 이미 깨졌어야 하고 국가 기간망이나 백본의 대부분은 사적이고 은밀한 샐러미에 이미 이용되고 있어야 한다. 워낙 철저하고 우아하게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때문이 그들이 걸리지 않았을까? 왜 피라미들만 날뛰는 것일까? 오캄의 면도날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세계를 만들었고, 이 세계를 유지했던 엔지니어들이 단순히 양심이나 정직하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그리고 아까 어떤 엔지니어의 예를 보았듯이 실은 먹고 살지 못하더라도 지랄하지 않고) 시스템을 훼손하거나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것은 가능한 설명 중 단순한 것이다(정직하게 말하자면 더 단순한 것도 있다).

버튼 하나로 이 세계를 붕괴시키는 것은 아름답고 우아하며 가끔 해 볼만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 짓을 하지 않았다. 협박하거나 협잡을 늘어놓자는 수작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이 여러 가지로 부르짖는 허튼 소리는 그 와중에도 선택에 영향을 끼친 적이 없다. 참고로 아까 그 불쌍한 또라이는 공중도덕도, 법도, 정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강원도 산골짝의 촌뜨기 출신이다.

지금은 계약금도 못 받았는데 일을 마쳤고 주말에 100여장 분량의 오퍼레이션 매뉴얼, 소스 어노테이션, 메인티넌스 매뉴얼, 필드 인스톨 가이드 따위 다큐먼테이션을 마치고 아까 손수 작성한(-_-) 검수평가서를 완성한 불쌍한 엔지니어일 뿐이다. 12일 걸렸다. 12일 동안 잠도 못 잤다. 이제 밀린 일을 하자.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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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

잡기 2006. 1. 11. 15:45
바쁘니까 한가하던 작년 가을이 그리워진다. 비상대기 한다고 여차하면 PC방에 들어가 작업할 수 있게 핸드폰과 usb 메모리를 챙기고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요즘은 점심 무렵 깨어 새벽 늦게까지 정신없이 작업하다가 암 생각없이 잠들었다. 꿈속에서 오늘 안 된 일들의 원인을 차근차근 검토하고 내일 할 일을 궁리했다.

잠깐 멍하니 앉아 이시크쿨 호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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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 -- 글쎄... robot exclusion standard를 안 지키면 지키게 만들어 보자, 이게 다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라고 꼬시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내가 합의해서 만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중요하다는 듯이 열을 올리는 규칙을 안 지키는 것을 탓할 근거가 없고 별로 탓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개인 정보 보호? 보험회사가 더 위험하다.

혹시나 노파심에서 'standard'짜가 붙은 저것이 '국제표준'마냥 굉장히 중요한 뭔가인 줄 아는 사람도 있을 거 같아서 말인데, 로벗 배제 표준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해도 그만인 것이다. 법이나 논쟁꺼리가 아니다. 네이버 10새끼가 지 맘대로 내 사이트를 긁어가서 인덱싱하는 것을 욕은 하지만, 하지 말라고 막지는 않는 것이고 구글 비둘기들이 로버트 배제 규칙대로 예절 바르게 사이트 크롤링을 안 해준다고 칭찬할 이유가 없다.

저거 믿고 웹에 사적 정보 올리는게 진짜 병신이지. 난 내 홈피에 내 이름도 안 올린다~

구글은 공정하고 멋있는데, 지저분하고, 못 생기고, 밥맛 떨어지는 국내 모 기업들은 그냥, 그렇게 못한다는 것이다. 수입원이 고작 그것 밖에 없는 그들더러, 그들이 가진 유일하고 보잘 것 없는 무기를 내려놓고 싸우라는 얘기는 당사자들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싶은 것이 내 견해다.

그럼 왜 구글은 사적 정보 보호를, 로봇 배제 표준을 준수할 수 있을까?? 그 나라 풍토가 그래서 그렇지. 선진국의 물심양면으루다가 이 나라를 앞서는 것이니(뭐가 앞섰는데?) 당나귀, 돈키호테로 이력서 백 장쯤은 우습게 입수하고 게시판에 글 올릴 때 ip가 나와도 암 생각 없고, 정당들이 합심해서 공공 게시판에서의 개인 정보 공개를 입법화하는 등 골 때리는 나라에서 비즈니스할 때 어드밴티지로 삼을만 하겠지.

예전에 블로그를 수익모델로 만드려고 하는 업체들 얘기에 리액션을 보이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누가 돈 안줘도 자발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기 위한 올바른 방향과 기준을 세워보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의 초기 발흥기에 여러 사람들이 학계나 업계가 아닌 자발적 표준을 만들었던 것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켜 보려는 소명 의식이었을 것이다. 이들 활동에 회의적이거나 야유를 보낼 의도는 없으나, 블로그로 돈벌이 하겠다는 것이나 로벗 배제 표준을 안지킨다고 등신이 되는 것을 이상 여러 가지 이유로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바쁘다.

그건 그렇고 인터넷의 각종 프로토콜의 근간이 되는 RFC는 참 예절 바른 이름이지 싶다. request for comment라니. 그런데 그걸 'rule'이라고 하면 대화가 참 재미 없어져서, 드라마나 볼까 하는 딴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요즘 브룩하이머 사단이라는 찌질이들 모임이 만든 e-ring이란 미국 드라마를 본다. 감정을 쥐고 흔들어대는 보기 드문 드라마다. 선배 말로는 내가 얼음장 처럼 차갑고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조금은 열정적일 필요가 있단다. e-ring을 매 화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뜨거운 피가 머리 끝까지 솟구쳐 오르고, 욕설이 목구멍에서 가스처럼 픽픽 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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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황교수가 사기쳐서 별로 이득 본 것 없을꺼라고, 그런 바보짓을 왜 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순진한 체 말하니까, 술 먹다 말고 의협심이 강한 청년이 황교수가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쳐서 그가 국가로부터 챙긴 것을 얘기해 주었다(과학적 진실에 관해 거듭 강조하지만, 어떤 과학자가 남들 보기에 명백하게 사기라고 할만한 짓을 했건 안 했건 그거 별로 중요한 것 아니다. 심하게 말해 황교수가 여러 사람들 마음 먹고 사기 쳤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원천기술인지 뭔지 왠 뚱딴지 같은 소리 그만 하고 그냥 과학계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게 그냥 좀 내비둬라 언론아). 의협청년이 말하길, '그런 사기꾼을 검증조차 안해 보고 무작정 믿어버린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그가 무려 5억원이나 받았다는데 교수 직위 박탈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죠..' 라고 자신의 소감을 피력한다.

순간 술자리가 썰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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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5억?

술자리에 앉아있던 당황스러운 표정의 두 사장님은, 제때 맞춰 평상시 굴리던 머리로 며칠 싸매고 제안서 몇 장 사기쳐서 끄적이는 것만으로 정부 돈을 3-4억씩 타 먹는다. 정부의 눈먼 돈 울궈먹은거, 자랑꺼리 축에도 끼지 못한다. 이 나라의 머리 잘 돌아가는 벤쳐 사장님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짓으로 회사를 꾸려봤을 것이다. 그러더니 P 사장님이 말했다. '설마 그걸로 한 달이나 버티겠어?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한 2-300억은 먹었겠지. 일 년 동안 황교수 때문에 주가가 그렇게 오르락 하고 내외로 시끄러웠는데...' 맥주 한 잔 꿀꺽하며. '내가 하는 일보다 백배는 수익성이 있어보이더만' <-- 이런 생각 하시면서?

정말 5억 밖에 못 타먹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사기꾼 같은 사장님들 틈에서 거진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다시피한 의협청년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거들었다. '뭘요, 5억이면 충분하지요. 연구원들 한 달에 40-80 가량 받으면서 주 7일 근무해요. 황교수가 하는 연구란게 뭐 별다른 연구기자재가 들었던 것 같지도 않고... 젓가락질만 잘하면 되잖아요? 프로그래머가 손가락질만 잘하면 되는 거처럼' 사장님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양반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만 하다. '40만원만 줘도 일주일 내내 일하는 녀석들이 있단 말이지? 사람 구하기 힘든데 내일은 학교 가서 점심이나 먹을까?' 이러고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교수가 학생들 산학 보내서 받아온 돈을 제 통장에 입금시키고 그걸 다시 빼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다 걸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업체에서 달달이 200만원 받아오면 자기 통장에 넣게 한 후 80만원만 빼서 학생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먹는 것이다. 한 30년은 써먹었음직한 교수들의 이런 낡은 수법이 여전히 사용된다는 것이 무척 놀랍고 신선했다.

그런데 황교수가 정말 5억 밖에 못 먹은 것일까? 믿기지가 않는다. 십수년 전부터 밤낮으로 삽질 해서... 겨우 그거? 그걸 누구 코에 갖다 붙일까... 내가 요즘 일해주고 있는 직원이 다섯 명인 회사 같지도 않은 회사의 1년 운전 자금이 3억인데.

평균 임금 200만원인 근로자가 열 명인 회사의 일년 순수 인건비만 3억이다. 제경비, 부대비용을 합치면 5억 나온다. 정말 그거 밖에 못 타먹었다면 상아탑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던 바보 학자라서 세상 물정 몰랐다는 말 밖에 안된다. 아니면 그 청년이 잘못 알았겠지. 황교수 얘기를 언론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몹시 짜증이 나는 관계로 웹질 조사는 안 했다.

5억도 큰 돈이며 당신이 말하는 그 회사 같지도 않은 회사에서 나는 1억 가지고 벌벌 떤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은 보시다시피 워낙 넓고 복잡하며, 다양한 종류의 사기꾼들이 함께 어깨를 부대끼며 도토리 키재기 하듯이 살아가고 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자면, 제한된 자원으로 경쟁하는 세계에서 정직도 일종의 (전략적) 사기라고 본다. 정말 제한된 자원인지, 경쟁인지는 물음표로 해두고.

아니야...
내가 순진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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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bout:config에서 세팅한 메모리 설정.


HDD가 자지러지게 움직여 이상하다 싶어 작업관리자를 열어보니... 아까 그거 설정해 놓아도 별 소용없다. 최고 메모리 사용량(아마 peak memory usage같은데)이 800MB에 달했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정도의 브라우징을 한 avant browser는 겨우 40MB.

파이어폭스는 의심스러운 사이트에 드나드는 수단 정도로 밖에 사용할 수가 없겠다. 나처럼 웹 페이지를 여럿 열어서 작업하는 사람에게는 좀...

그런데 firefox가 '정말' 뭐가 좋다는거지? 표준웹 준수? 확장기능 일일이 설치하고 해서 귀찮기만 하던데. avant browser는 다운 받는 시간 1분, 4-6초면 설치 끝내고 마우스 제스쳐, 플래시 블럭, 애드블럭, 탭브라우징을 몇 년 전부터 지원해 왔는데. 아반트 브라우저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임베드한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파이어폭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해보려고 일년 내내 '애써' 봤지만 저 모양인 걸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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