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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9.25 ruling the rolling 1
  2. 2005.09.24 사랑스런 염세주의자들
  3. 2005.09.23 번식 알고리즘 2
  4. 2005.09.17 강화도
  5. 2005.09.15 보물찾기
  6. 2005.09.14 ... 1
  7. 2005.09.11 보물찾기(geocaching)
  8. 2005.09.05 임진각, 광릉 수목원 2
  9. 2005.09.01 헤메다니기 4
  10. 2005.08.28 강변도로 일주 4
  11. 2005.08.26 어쩌다 떠오른 씬의 집합 3
  12. 2005.08.23 3년 만에 5
  13. 2005.08.22 소녀스러운 질문에 청승떨기
  14. 2005.08.17 반성과 자각
  15. 2005.08.17 동해안 일주: 반성과 자각
  16. 2005.08.16 실패한 동해안 자전거 일주 2
  17. 2005.08.16 실패한 동해안 자전거 일주
  18. 2005.08.12 어제 주행
  19. 2005.08.10 아내의 음식 솜씨
  20. 2005.08.08 오늘은 자전거 안 타고...
  21. 2005.08.08 이것저것 4
  22. 2005.08.02 일주일 평가
  23. 2005.08.02 마이너리티 리포트 1
  24. 2005.07.28 두번째 주행
  25. 2005.07.25 첫번째 자전거 실험 7
  26. 2005.07.22 휘파람 6
  27. 2005.07.18 책 신청하기
  28. 2005.07.16 귓가에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 1
  29. 2005.07.13 uphill
  30. 2005.07.11 영화보기 4

ruling the rolling

잡기 2005. 9. 25. 21:53
마누라 더러 전날밤 물과 밥 좀 챙겨 달랬더니 제것만 챙겨서 산행 한다고 나갔다. 도시락 싸려니 밥통 바닥에 찌꺼지만 살짝 남은 밥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물을 얼리려고 물통을 찾아 보았다. 기껏 모아놓은 물통은 어디 버렸는지 모르겠다. 전날 밤 아내가 만들어 놓은 김밥을 꾸역꾸역 챙겨 먹고 하는 수 없이 그냥 나왔다. 저 나름으로는 내 생각해서 만든 김밥이지만 위장에서 차가운 밥알이 곤두선다. 도시락을 싸 달란 것도 아니고, 제 도시락 챙기려 밥 지을 때 내 먹을 밥이나 좀 남겨 놓았으면 안 섭섭했지.

생각해봤자 기분 상하는 것들은 잊고 오늘은 난이도가 약간 높은 트레져 헌트가 되겠다. 코스가 산속 국도다. 지도로 시뮬레이션을 해 봤다. 이놈에 전자지도는 등고선이 엉터리라서(당연히 자동차만을 고려해서 만든 것이다) 가보기 전에는 표고나 고저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해봤다. 추천 코스다.

웨이포인트만 찍어 갔기에 고양시에서 좀 헤멨다. 뒛박 고개를 넘을 때 숨을 헐떡였다. 보물을 보리밥 식당 뒷편에 숨겨놓아서 마침 배도 고프고, 6천원 짜리 보리밥을 시켜 먹고 한숨 돌렸다. 된장국이 그저 그래서 별 느낌이 없다.


그런데 물김치가 예술이다. 유명한 집인지 손님이 끝없이 들이닥쳤다.

gps를 들고 식당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긴 찾았다.

보물은 이 안에 있다. 시시한 장난감 쪼가리를 보려고 자전거를 타는 우아한 손으로 이 '밀림'을 헤쳐야 한단 말인가? 콧방귀를 뀌고 가볍게 포기했다.

강원도였다면 숲과 호수만 달랑 있을 터지만 여긴 경기도다. 경기도 답게 물 좋고 산 좋으면 어김없이 음식점과 호텔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다. 차를 세워놓고 밤나무를 흔드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쪼개놓은 밤껍질 때문에 길바닥이 살벌하다.


지산 저수지. 힘들어서 잠시 쉬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 되었다. 근육이 딱딱하게 굳고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린다. gps를 흘낏 보니 해발 260m, 1단으로도 버티지 못해 결국 자전거에서 내렸다. 330m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과거 데이타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머리란 이러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넘은 가장 높은 고개는 동해-울진간 주행 때 110m, 고저차는 100m, 여기는 330m, 고저차 190m, 거의 두 배 가량이다.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뒛박고개는 어떻게 넘겼지만 이건 도저히...

피크를 넘자마자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1차선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엉덩이를 한껏 뒤로 뺐지만 브레이크 잘못 잡으면 바로 공중제비 아크로바트를 할 판이다. 브레이크에 땀 나도록 브레이크 레버를 당겼다. 으시시하다. 속도계는 50kmh를 가리켰다. 쭉 뻗은 도로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속도지만 코너가 무섭다.

그간 얻은 보잘 것 없는 소득이라면 가건 못 가건 업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힐탑에 오르기까지의 실낫같은 기대감으로 땀 나게 괴로운 현재를 버틴다.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나아가다 정상에 서서 쫙 뻗은 다운힐을 볼 때의 상쾌한 기쁨이란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업힐에 대한 불안감이 없다. 밑천이 다 떨어져 헉헉 숨을 몰아쉬며 내려서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때는 머리 속이 하야니까 딴 생각 안 난다. 업힐은 그러니까 은색 바퀴와 합체된 바퀴-벌레가 어차피 마주치게 되는 고난이다. 업힐이 있으면 다운힐이 있고 고통이 끝나면 안식이 찾아온다. 안식은 귓가를 고속으로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다. 타이어는 미친듯이 돌아가고 살짝만 건드려도 튀어나갈 것 같은 핸들의 그 불안정한 촉감.

업힐할 때 딱-딱-하는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한적한 도로에서는 장작 쪼개지는 소리처럼 괴괴하다. 집 근처 자전거 가게에 들렀다. 전에도 내 자전거를 싸구려라면서 장황하게 연설을 늘어놓고는 원인을 찾아 보지도 않고 스프라켓을 교체해야 한다며 7만원을 달라더니 이번에도 원인은 찾아보지도 않고 싸구려 자전거를 샀으니 응당의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라고 주인 아저씨가 말한다.

BB 교체하는데 그것도 중고를 6만원 달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정쩡하게 서 있자 새 손님을 받아 팔 자전거를 설명하는데, 처음으로 자전거를 장만하는 손님인지, 처음 장만하는 자전거는 싸구려 사면 고생한다느니 하는 말을 내 쪽을 흘낏 보며 줄줄이 늘어놓는다.

뭐 싸구려 자전거 맞으니까 속으로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했다. 아저씨는 내 자전거는 손 볼 생각이 없는지 여기 저기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 주인 아저씨 왼편에 늘어선 싸구려 새 자전거들에 주목했다. 그는 값비싼 자전거도 팔지만, 인근 동네 주민들이 원하는 5만원짜리 중국제 자전거도 함께 취급한다. 자전거를 보는 그의 싸구려 관점은 주목할만 하다. 피식 웃고 가게를 나왔다. 아저씨 말고도 이걸 봐 줄 사람을 못 찾아서 여기 온 건 아니야.

동네 한 바퀴 돌아 다른 자전거 가게에 들렀다. 딱-딱- 하는 소리의 원인이 BB쪽에서 난 것으로 결론이 나서 그때 BB 축이 풀린 것을 조였다는 내 말을 묵묵히 듣더니 BB를 분해한다. BB를 갈아야 하냐고 물었다. 글쎄요. 내 자전거를 아마도 처음으로 싸구려 취급하지 않은 그 아저씨는 BB는 멀쩡하다고 말한다. 에? 멀쩡해요? 원인을 알 것 같다며 BB에 그리스를 다시 바르고 조립한다. 그리고 패들을 크랭크 암에 연결하는 조임쇠를 스패너로 힘차게 조인다. 조치는 그게 다였다. 타 봐요. 타 봤다. 소리가 안 난다. BB쪽 문제가 아니요. 음, 그럼 저번 자전거 가게의 젊은 친구가 잘못 판단했군. 의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독점적 지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양도불가능한 권위의 후광에 검은 줄을 죽죽 긋는 남사스런 실수를 한다. 이해한다.

BB를 분해하고 조립한 비용으로 만 원 줬다. 소리가 나는 원인은 내가 처음에 추측했던 대로 패달 때문이다. 천 원 짜리 15mm 스패너 하나 사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속 쓰리지만 지식의 댓가로 그 동안 총합 2만 5천원을 지급했다. 의사나 자전거 수리하는 아저씨들은 그걸로 먹고 산다. 이해한다. 나도 내가 가진 전부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창녀처럼 팔아 먹고 산다.

괴로운 것은 내 대가리에는(아내의 주장에 따르면 대가리는 생선에나 쓰는 말이라고 한다) 의사 성분은 없어도 그들과 같은 종류의 메카닉 성분이 일정량 존재한다는 점이다. 구동부는 점성이 높고 고온에서도 성분이 변하지 않는 그리스를 바르고 15mm 스패너는 15mm 두꺼운 너트에 끼워 돌리고 BB에 돌리는 나사는 진행 벡터의 반대 방향으로 조인다는 것도, WD-40과 테프론 오일 스프레이의 정확한 용도 쯤은 알고 있다. 공구만 주어진다면 뭐 하나 복잡한 구석이 없는 이놈에 자전거 따위는 완전 분해 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도 있다!

공구 하나 사기 귀찮아 현실에 타협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아 낭비한 시간과 정력 때문에 속이 쓰리고 낯을 붉혔다. 알라께서는 내게 능력 이상의 부담을 준 적이 없다. 슬기로운 무슬림은 이 말을 그들의 유일하고 개망나니 같은 신을, 또는 불규칙한 인생을 아이러니컬하게 비아냥거리는데 사용할 줄 안다. 또한 자기완결적인 고유의 한계 시스템을 정량적으로 취급하는 기술자로서 시스템의 작동 메카니즘에 대해 알만큼 아는 새끼가 같은 실수를 연달아 세 번씩이나 하는 것은... 앞으로 잘 할테니 용서하자. 인생 별거 있나?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오는 업힐과 에발란치에 겁먹지 말고 존내 배우는 거지.

그런데 근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업힐에 낑낑대면서 흘낏 쳐다본 오늘 하늘과 구름은 아주 멋졌다. 기름칠하고 손 본 자전거는 얼음 위를 굴러가는 아이스퍽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한적한 도로에서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자아유, 자아유, 자아아유, 그를 만난 뒤 나는 알았네 내가 애타게 찾던 게 무언지. 하덕규, 자유 (5:05)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자전거님이시다.


고딕풍 주행 흔적. click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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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시드 데스티니: 염세주의는 사랑 한 방이면 끝장난다? 사랑 한 방에 끝장 날 염세주의는 가짜지. 제대로 된 염세주의자는 바다에서 갓 잡아 뜬 달콤물컹한 회와 끝내주게 얼큰한 매운탕을 먹더라도 자신의 이데아에 한 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엿 드셔 건담 시드 데스티니. 45화까지 봤다.

20년 또는, 10년 안에 킬리만자로 꼭대기에 놓여 있는 희안하게 생긴 빙하는 모두 녹아 없어질 것이다. 그 전에 가서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 원주민들은 보름달 밤 이과수 폭포에 떠오르는 밤 무지개를 보면 행복해진다고 믿었다. 이과수 폭포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보름달 밤 떠오른 그 무지개를 보았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이미 씨가 말랐지만 자작나무 숲속 오두막에서 자다가 신성한 까마귀가 말을 걸어오는 꿈을 꿀 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빨렝게 유적지에서 힌두 코끼리 석상을 발견했던, 사기가 횡행하던 낭만주의 시대를 답습하는 것 같군.

한 시간 가량 자전거를 정비했다. 그리고 새로 가져온 자전거를 정비하는데 추가로 네 시간을 보냈다. 체인, 핸들, 스템, 뒷 디레일러, 앞 디레일러, 브레이크 등 크랭크 암과 BB를 제외한 자전거의 거의 모든 부분을 분해하여 찌든 때를 닦고 녹을 벗기고 기름을 먹이고 다시 조립하여 브레이크를 조정하고 틀어진 앞 핸들도 조정하고 기어 변속까지 마쳤다. 테스트를 해 보니 앞 바퀴가 휘었고 뒷바퀴 축과 카세트가 틀어져 있는데 그건 내 손으로 어찌해 볼 수 없다. 시간이 다 되어 마감했다.

저녁 무렵 출발해서 천안에 도착, 몇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에 당진의 장고항으로 향했다. 배를 빌려 낚시하기로 했다. 낚싯배 빌리는데 30만원, 장비와 먹거리 장만하는데 10만원 가량, 최씨 아저씨가 배 빌리는 비용을 부담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회비를 4만원씩 걷었다. 배 낚시는 처음이다.

전날밤 FTV에서 전라남도 어느 섬으로 부사리(?)라는 물고기를 잡으러 떠난 두 낚시꾼을 보여줬는데 이틀 동안 배 타고 돌아다니며 삽질했지만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뭔가 하나 낚기는 낚았다. 지나가는 갈매기가 걸렸다. -_- 그런 일 안 생겼으면 좋겠다.


장고항. 들물이 아직 덜 빠져나간 아침 나절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 뱃전에 오르기 전에 멀미할까봐 걱정했는데 여행 다니며 갖가지 종류의 배를 타서인지 괜찮다. 조류가 거세다. 종종 낚싯줄이 엉킨다.

미꾸라지 미끼를 써서 추를 매단 타래 낚시인데 어군탐지기가 있어 모니터를 보던 선장이 배를 멈추면 추를 내려 낚다가 끌어올리고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이다. 오전 9시까지 한 마리도 낚지 못하다가 (김씨 아저씨는 시작하자 마자 30cm가 넘는 우럭을 낚았다. 어이가 없다) 11시 무렵까지 우럭 세 마리를 낚았다. 각각 20cm, 15cm x 2 가량. 한 번은 큰 놈이 물었는데 미끼와 바늘을 통째로 물고 사라졌다. 아쉽다. 성적이 좋다고 볼 수 없는데 아무래도 깊이를 잘못 잡은 것 같다.

미끼를 물 당시에는 입질이 좀 느껴지다가 잡아당기면 저항없이 그냥 끌려 올라온다. 17m 물 속에서 급작스럽게 끌어올린 우럭은 기압차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지 수조에 쳐넣자 배를 까 뒤집고 거꾸로 헤엄친다. 20m 물속에 있어본 적이 있어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

열한 시가 좀 넘어 선장이 회를 뜨기 시작했다. 큰 놈 다섯만 골랐다. 초고추장에 두텁게 썬 회를 한 점 찍어 소주 한 잔 들이키니 살 것 같다. 회 뜨고 남은 머리로 매운탕을 끓여 주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소주 몇 병 비우고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 나니 만사가 귀찮아져 뱃전에 누워 버렸고 낚시고 나발이고 다들 지쳐서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소주 한 잔 하고 밥 먹었으면 오늘 일정은 끝난 것이지.


얼음에 담궈두었던 남은 잔챙이들. 맨 윗것이 20cm 가량. 잡은 우럭은 모두 23마리, 30cm 이상 씨알은 무려 다섯 마리나 되었다. 회 떠 먹고 남은 18마리를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 하다가 나를 뺀 셋이 나눠 가져갔다. 난 서울로 올라가야 하고 아이스박스를 가져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입맛을 다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꾸준히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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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 알고리즘

잡기 2005. 9. 23. 00:07
밀리기 전에 블로그나 써두자.

블로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글루를 쳐다보고 있으면 가끔 아는 사람의 글을 본다. 그건 별로 흥미로운 구석이 없지만, 내가 어쩌다 아는 A와 내가 어쩌다 아는 B는 서로 모르는 일도 많고 둘은 각자의 블로그에서 댓글을 쓰면서 논쟁하기도 한다. 팔짱 끼고 둘 중 누구의 알고리즘이 우세할지 구경한다.

아내가 놀러 다니는 사무실에서 아내가 자전거 타는 연습한다며 자전거를 얻어 놓았다. 그 자전거를 인사동에서 끌고 왔다. 헤드셋이 흔들리고 뒷 브레이크 레버가 망가지고 기어 변속이 잘 안된다. 두어 달 전부터 스포시엘 자전거를 사줄까 생각했다. 내 자전거보다 비싸다. 그러나 가볍고 작다. 자전거도 못 타고 수영은 물론 스킨 스쿠버를 겁내는 아내를 보면 안쓰럽다. 그의 남편은 싸기만 하면 몸이 부서질 때까지 뭐든지 다 하는데.

6600원 짜리(우송료 포함) 우의를 하나 샀다. 그럭저럭 괜찮다 싶은 것은 OK New 시에라 XS 자켓이지만 일전에 우의 입고 바지가 젖으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싸고 가벼운 것이 장땡이다.

우의를 테스트해 볼 겸 빗속에서 자전거를 몰았다. 위험해서 속도를 내지 못하겠다. 자전거는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다. 공구가 다시 걸리적거린다. 이 김에 제대로 갖출까? 으음. 20만원 주고 산 내 자전거가 저가 자전거보다는 그나마 좋긴 좋구나. 자하문 터널을 거쳐 홍제 방면으로 나와 불광동 까지 고개가 셋이다. 21단 기어이긴 하지만 어쩐지 무늬만 그런 것 같고 변속을 해도 변속한 기분이 안 든다. 우의는 그 가격치고는(우송료 포함!) 그럭저럭 쓸만하다. 싼 게 좋다.



바람이 불면 후드가 벗겨지고 모자를 안 썼더니 면상이 젖는다. 황씨는 이거 보고 살지 말지 알아서 해라.

infix 수식을 postfix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짰다. 타넌바움 알고리즘이 있다. precedance를 어떻게 줄까 궁리했다. 8개의 연산자를 가진 3차 부울 연산식을 사용하여 스크램블러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며칠 후에 테스트에 들어갈 것이고 내 최근 역할은 그런 알고리즘이나 단순한 컴파일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vs.net으로 넘어간 후 처음으로 짜보는 프로그램이다. 적어도 십오 년 전에 짜 본 것을 오랫만에 다시 짠다. 그때는 뭐든 배웠고 지금은 뭐든 배우지 않고 필요한 것만 '응용'했다. 기본적인 알고리즘과 데이터형은 그것이 처음 발상된 이래 수천 년은 지속되기 때문에 말하자면, 영원하다.

생장하는 존재는 영원하지 못하다. 건축물의 내구수명은 유한하다. 알고리즘 따위의 이데아는 그런데 무한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우주가 내포한 근원적 구성 원리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좁게 정의하자면 인간 의식이 인지하는 통시적 구조 되겠다. 하지만 아내에게 슈뢰딩거 방정식을 설명해주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내는 생활 하고(사람을 살리고) 시대적 상황에 걸맞는 모랄을 고취할 수 있지만 아내가 죽고 내가 죽고 21세기 인류가 다 죽으면 모랄이 철철 넘치는 생활은 덧없이 사라지거나 변화한다. 수학과 알고리즘은 인류의 대뇌 생리가 획기적으로 바뀌어 인지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도식이 뻔해서 지겨워 보이는 정치경제 체계가 세월에 따라 변화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인식 구조에 포획되거나 수용되는 (상당히 저차원스러운) 수준을 항상 유지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의식의 언저리에 존재하는 맥거핀처럼 기만적이고 영원할 수 없지만,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의 '알고리즘'은 (조건절:현생인류의 의식체계가 잔존하는 한,) 영원할 수 있다. 철학적인 개념의 엄밀성 만한 정밀도를 갖췄지만 연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는 무의미하고 애매모호한 언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숨.

GPS Trackmaker와 Almap으로 작업하다가 거진 돌아버릴 것 같아서 이런 삽질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사이트를 전전하다가 알맵 SDK를 다운받았다. 두 지점을 입력하면 이미지 파일을 순서대로 다운받아 주는 간단한 플러그인을 작성했다. decimal degree 좌표계를 UTM 좌표계로 변환하는 식을 찾아 수식을 보고 프로그래밍 하다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왜 이리 복잡한가. UTM은 잘 되었다. 난 UTM이 마음에 든다.


이것 저것 우겨넣어서 어쨌든 프로그램을 다 완성해 돌려보니 저장한 각 이미지마다 미세한 차이가 발생했다. 구면 좌표를 평면에 투사하면서 발생하는 오차인지 아니면 알맵이 속도를 위해 정밀도를 일부분 희생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이걸로 반나절을 보냈다.

터틀도브의 '비잔티움의 첩자'를 읽다가 기분이 상했다. 마호멧이 크리스티안에 귀의해서 찬송가 만들다가 죽어 기독교 성인이 되었다는 것 정도는 원래 대체역사물이니 그렇다치고 매 챕터마다 그 얘기가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짜증이 돋기 시작했다. 마지막 편은 전편 어딘가에서 등장하던 페르시안 스파이가 사주하여 이콘을 부정하는 파와 허용하는 파 사이의 일종의 내부 종파전을 치루는 것인데,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슬람을 심하게 희롱하는 바람에 입에서 터틀도브 개새끼 라는 힘없는 바람소리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괴짜경제학: 신문에 연재하던 컬럼 쪼가리 몇 개 모으면 책이 되는구나.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본 지라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다루는 소재가 대부분 흥미로운 얘기들이다. 그래도 책에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이 사용하는 언어가 중언부언 난잡하고(번역 탓일까?) 툭하면 일상 속에서 비일상을 제대로 눈 뜨고 바라보는 작가는 천재 운운하는 얘기가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것은 고작 인센티브와 통계의 해석 뿐이었고 회귀분석에 관해 몇 줄에 걸쳐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는 '텍스트가 아깝지 않은가?'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굴뚝같은... 아무래도 팝아트 처럼 가벼운 경제 언저리 얘기보다는 징그러운 폴 크루그먼이 취향인 것 같다. 게다가 크루구먼의 컬럼이나 책은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잖아?

딜비쉬: 젤라즈니 스럽다. 감상평은 그것으로 끝이다. 예전에 읽었던 그의 다른 글과 달리 마치 무협지처럼 완샷에 읽었다. 아니지, 이제사 드디어 젤라즈니를 제대로 읽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지난 한 달 열댓 권 쯤 읽었는데 당장 기억나는 책들은 이것 뿐이다. 일 하랴, 책 보랴, 건담 데스티니 보랴, 자전거 타랴, 나처럼 바쁜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저씨는... 이성관 30문 30답같은 설문도 한단 말인가... 댁이 하면 나도 한다.

1.당신의 성별은? 스파게티교도.

2.지금까지 모두 몇번 이성과 사귀어 보았습니까? n개요.

3.연상선호입니까?연하선호입니까? (남성의 경우 로리지온/누님연방) 털은 나야죠.

4.첫사랑은 몇 살때 해보았습니까? 첫사랑이라... 어린 시절 먹어본 동태찌게 맛에 대한 장식된 그리움 같은 거죠. 내 기억을 믿지 않아요.

5.현재는 어떤상황입니까? 커플지옥-솔로천국을 믿습니까? 곤조 깊은 내 지론은, 머리가 나쁜 연놈들은 사랑을 못한다 입니다.

6.이성을 볼때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빛. 시장에서 동태 고를 때처럼.

7.당신의 이상형에 대해 살짝 말해 주세요. 바로크적인 이성을 받쳐주는 건축적인 몸매/얼굴, 그리고 연금술에 재능이 있는 눈빛이 촉촉한 마녀.

8.이런 사람이 있으면 사귀고 싶다! ..라는 것이 있다면, 간단하게 말씀해주세요. 현세의 여성에게 보편적인, 미약한 환멸감을 느껴요.

9.당신에게 바람기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笑) 그래서 있을 리가 없지요.

10.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결혼은 이성을 사회에서 구제하는 모랄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붇는 배트맨의 정의사회 구현 같은 것이죠. 내 몸을 아끼지 말고 불쌍한 인생을 구제해 성불합시다.

11.결혼을 하게 된다면, 최우선으로 고려하는것은 무엇입니까? 연금술의 연성.

12.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하고싶은 일이 있나요? 함께 전설적이고 이니그마틱한 동태찌게를 만들어 먹죠. 그래봤자 저 멀리 지평선으로 달아난 추억 거북이를 쫓는 제논의 아킬레스 같은 심정이지만.

13.이런 이성만큼은 꼴불견이다...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해 주신다면? 기아, 테러리즘, 환경주의, 사회 복지 그리고 분단의 비극적 현실이 만든 정치적, 사회적, 시대적 상황인 겁니다. 미친년은.

14.당신은 이성을 친구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따먹을 듯 따먹지 못하는 그 아슬아슬한 가상의 경계면에서 애틋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던데요.

15.헤어진 연인과 친구가 되는 일은, 가능할까요? 친구가 되기 수월쵸. 적이 되기도 쉽구요. 청승 맞아서 안 하는 편이.

16.누군가를 짝사랑 해 본적 있으십니까? 없어요.

17.아이돌 스타나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등등을 현실속에서도 실제로 좋아하고 사랑해 본 적이 있나요? 아키타잎화된 이콘, 아바타에는 별로 관심 없어요.

18.사귀는 관계에 있어서, 스킨쉽의 한계는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귓가에 속삭이는 언어가 좀 더 육즙이 흥건하죠.

19.계약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겁쟁이들이 잔대가리 굴린다쯤?

20.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동거할 의향이 있습니까? 아뇨.

21.사랑때문에 눈물 흘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마음 아팠던 적은 있어요. 노.

22.지금 혹시 마음속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혹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거나... 없어요.

23.고백했다가 채여보신 적 있으신지... 여자한테 뭔가를 suggest/proposal 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런 것은 거래처한테나 하는 거에요. :)

24.삼각관계를 겪어보신 적은? (꼭 사귀는 것이 아니더라도...친구와 함께 똑같은 사람을 좋아했었다거나..) 연적 말이에요? 로맨스의 꽃이죠.

25.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 좋아해 보신적이 있나요? 오래된 절구통이 깊지요.

26.만약 연인을 사귀게 된다면, 그사람의 과거라던가....예전의 사귀었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실 것입니까? 뒤가 약간 구린 편이라 할 말 없어요.

27.만약, 당신의 연인이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게 된다면 어떻게 조치하실 겁니까?(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없더라도 상상해서 재미있게 대답해주세요.) 감가상각 면에서 내구연한이 다 된 것은 폐기처분해야죠. 자연재해'는 보험처리가 안 되구요, 안좋은 감정은 죽은 생선처럼 부패하기 쉬운데, 얼린 감정과 얼린 동태는 그래서 쿨한 것이에요.

28.지금까지 연애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혼자 히죽히죽 웃고 말겠어요. 이를테면 넣었다 빼는데 뻥~ 하는 와인 콜크 따는 상쾌한 소리가 나서 무척 신기하고 재밌어서 갖가지 실험을 했다는 종류의 얘기를 댁 같으면 자유롭게 할 수 있겠어요?

29.당신에게 있어 사랑(혹은 이성이라던지...사귐이라던지,결혼에 대해)은 어떤것인지. 간략하게 정의한다면? 번식.

30.이 설문을 하면서 대답하신 답변들의 정확도....내지는 소감 한말씀. 행복한 번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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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에게 자전거 가방을 건네주려고 만났다. 근처 통닭집에서 맥주 한 잔 하다가 내일 강화도에 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강의 야경이 마치 로트렉의 그림처럼 볼만하다. 알딸딸해서 그럴까?

다음 날 12시 20분쯤 출발. 도시락을 쌌다.


잠수교에서 본 오리떼

미리 가는 곳까지 트랙백 자료를 만들어 두었다. 이렇게 해두면 자동차로 하는 도로 내비게이션처럼 때 되면 어디서 방향을 바꾸라는 지시가 나온다. 웨이포인트만 몇 군데 찍어 라우팅을 하는 방식보다 정교하다. 강변남로 자전거 도로 끝단에 두 번 갔고 한 번은 보물찾기 하러 간 적이 있어 그 자료를 사용하니 그 이후부터 작업할 수 있어 쉽다. 코스: 집 -[자전거도로]-> 불광천 -> 올림픽공원 -> 성산대교 -[자전거 도로]-> 방화3동 -[일반도로]-> 방화역 -> 개화산역 -> 김포IC -> 김포시 -> 석산교 -> 초지대교 -[강화도]-> 길상공설운동장 -> 온수 -> 전등사 -> 함허동천(마니산 입구) -> 분오리돈대 -> 동막해수욕장 (64km)

성산대교를 건너 바람을 등지고 평균 25kmh의 속도로 달릴 때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전날 맥주 마시고 객기 부리며 50km를 달려 집으로 도착한 것 때문에 황씨 아저씨는 다리가 뻐근하단다. 왠간하면 20kmh로 달리기로 했다. 갑옷처럼 두른 것 같은 내 허벅지 근육은 기특하게도 이제 평지에서 순간적으로 35kmh를 낼 수 있다.

발산역부터 김포시까지 순조로왔고 컵라면을 사서 아파트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싸온 도시락이 남年? 편의점에서 물을 보충했다. 날이 흐려 덥지 않아 주행이 편안하다.

알맵이 오래전 지도인건지 석산교는 실제로 석산 인터체인지였고 인터체인지에서 강화도 초지대교 방면으로 널찍한 3차선 도로가 뚫려 있다. 갓길이 넉넉하다. 구릉이 얕아 주행은 쉬운 편이다.

자전거 타는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평속 35kmh로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사이클 선수의 평속이 40kmh임을 감안하면 더 무겁고 두꺼운 타이어가 달린 MTB로 35kmh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황씨를 버려두고 갈 수 없어 속도 경쟁을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나보다 빠른 사람은 모두 스승이다. 속도는 힘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다운힐에 약하다. 속도가 심리적 수용 한계를 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에 손이 가니까.

길 한 번 헤메지 않고 쉬엄쉬엄 초지대교에 도착했다. 트랙백 자료를 만들 때 지도 매핑에 문제가 있어 gps를 보니 실제로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초지진 안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가 뒤늦게 입장료를 냈다. 낚싯대로 게를 낚는 사람이 있다. 갯벌에는 신발 신고 들어갈 수 없다. 갈매기들이 갯벌을 뒤뚱뒤뚱 걸어간다. 갈매기들은 신을 신지 않았다. 한 아저씨가 신을 신고 들어가 있다. 갈매기나 그 아저씨나 내가 볼 땐 천연하다.


초지대교에서 바라본 강화도. 감상평: 정말 특색없게 생긴 서해안 어느 섬.


초지대교. 자전거 주행의 꽃은 업힐이다. 업힐을 만나도 눈쌀을 찌푸리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여행 가능한 인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아마도.

강화도로 들어오면서 굽이굽이 언덕이 나타났고 황씨는 힘들어 한다. 강화도 들어서기 전까지는 거의 평지라 2시간 반 만에 초지대교까지 왔지만 강화도로 들어온 다음 부터는 업힐이 여럿이라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관광하면서 돌아다니자고 농짓거리를 하기도 했지만, 40분쯤 달리다 쉬다를 반복하니 그럴 시간도 없고, 황씨 안색이 변했다. 평지 주행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업힐에서는 차이가 벌어진다. 한 시간 반쯤 더 달려 분오돈대를 돌아 동막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썰물이라서인지 모래밭은 조금 밖에 안 보이고 너른 갯벌이 드러나 있다. 황씨를 편의점 앞에 쉬게 해두고 민박집을 알아보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민박 가격을 물어보니 3만원으로 어디나 일정해서 언덕배기에 무늬만 팬션인 민박집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저녁 먹었냐고 대뜸 물어본다. 안 먹었다니 해수욕장 중간에 있는 칡냉면집이 그나마 싼 집이라고 가르쳐준다. 갯벌을 눈 앞에 둔 바닷가에서 왠 칡냉면? 아니요, 회 좀 먹어보려고요. 일단 샤워부터 하기로 했다. 황씨는 안쓰럽게도 다리가 거진 맛이 갔다. 나왔다. 6시 반. 어둡다.


약수터 팬션(민박) with 갯벌 뷰. 팬션이라고 하기는 민망했는지 괄호 열고 닫고가 간판에 적혀 있다. 동해안을 따라 잡겠다고 부르짖는 서해안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에서 팬션이 들어선 것은 극히 최근의 일.

대하나 전어를 먹으려고 주인 아저씨에게 물으니 대하는 킬로그램에 3만5천원씩 한단다. 전어도 몇 마리 해서 3만원? 허걱했다. 어떻게 서울보다 더 비싸냐. 주인 아저씨 말로는 동막 해수욕장의 횟집은 같은 가격을 받으면서 무게를 속인단다. 강화도에 정착한지 8년 되었단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그나마 전어회 무침을 싸게 샀지만 그래도 2만 5천원이나 한다. 굳이 음식점에서 먹을 것 없이 민박집에서 먹기로 하고 싸들고 왔다. 아저씨 말로는 강화도의 횟집에서 판매하는 수산물을 가락시장에서 사 온단다. -_- 그럼 강화도에서 전어 따위를 먹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겠네요? 라고 물으니 선도가 틀리단다. 선도라... 우리가 전어를 산 '그나마 싼' 가게는 커다란 수족관에 대하와 새끼 손가락만한 전어를 키우고 있다. 선도만큼은 죽이겠지.

아저씨더러 함께 먹자고 하니 아저씨가 소주 두 병과 사이다를 들고 나왔다. 공짜로 준다. 한참 즐겁게 술 마시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나와 주방에 밥 차려 놨으니 아저씨더러 들어가서 먹으란다. 아저씨가 들어가서 아줌마한테 한 소리 들은 다음에는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주인 아저씨는 보통 술을 마셨다 하면 고주망태가 될 때 까지 마시고 그렇게 마신 밤이면 아무데나 풀밭에 쓰러져 잠을 자는데 자기는 모기가 안 문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모기가 안 문게 아니라 모기가 물어도 감이 안 올 정도로 마신 거겠지. -_- 전어무침이 남아 밥을 비벼먹으니 그럴듯하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아저씨는 끝내 나오지 않으셨다.

PDA로 마야에 관한 글을 좀 읽다가 11시쯤 불 끄고 잤다. 모기가 극성이다. 어디선지 쿵-쿵- 하는 대포소리가 들린다. 병자호란인가? 천둥소리다. 모기들한테 물어뜯겨 잠을 설치다가 선풍기를 틀었다. 열대 지방을 여행할 때는 잘 때 실링 팬을 켜두는데, 그래 두면 모기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리느라 제대로 식사할 틈이 안 생긴다.

새벽에 설핏 잠에서 깨니 창밖으로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일곱시에 깨었다. 여전히 비가 온다. 아홉시까지 기다렸지만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다. 핸드폰에 기상청에서 보낸 문자가 찍혀 있다. 서울, 경기 호우 주의보 발령. 재난 발생 상황이면 문자가 오게 되어 있는데 어디 멀리 놀러갈 때면 늘 오는 친근한 메시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창밖은 지붕이 있는 베란다지만 바다 쪽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 지붕이 쓸모없다. 황씨의 시집이 젖어 있다. 어젯밤에 약 2줄쯤 읽고 펼쳐둔 채 그대로 뻗은 것 같다.

라면 둘을 끓여 어제 싸온 도시락의 먹다 남은 밥을 말아 먹었다. 9시가 되었는데 TV에서는 뉴스를 틀어주지 않는다. 대신 코메디언들이 나와 무의미한 노래를 부르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서로 깔깔대고 있다. 아내한테 전화해 인터넷에 들어가 오늘 서해쪽 날씨가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응답이 왔다. '비!' '비?' '비!' 자전거를 맡겨두고 몸만 오란다. 싫다.

비가 내리는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창밖 전선에 까치가 조용히 앉아 있다. 뭔가를 시도하려는 것 같다. 까치는 날아보려고 퍼드득 날개짓을 한다. 강풍에 휩쓸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날개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고 바다 쪽을 바라본다. 내쪽을 바라본다.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날개를 퍼득여본다. 제자리다. 빗물을 털어낸다. 고개를 여기저기 돌린다. 난감해 보인다.

별 대책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비가 살짝 잦아든 틈에 민박집 아줌마에게 가까운 시외버스 터미널을 알려달라고 어제 초지진에서 받은 관광지도를 펼쳐 보였다. 강화 종합 시외버스 터미널은 여기서 너무 멀고 화도 버스 터미널이나 온수 버스 터미널이 가깝단다. 일단 거기까지만 가면 어떻게 되겠지. 아줌마는 버스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을 꺼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더니 비가 저렇게 오는데 정말 갈 수 있겠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별 수 없잖아요. 가야지. 아줌마가 트럭으로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준단다. 속으로 얼씨구나 그 말을 기다렸어요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했다. 아줌마한테 비닐봉투를 구해 배낭 속의 짐을 쌌다. 비에 쫄딱 젖어 기분이 엿 같아 잠시 자전거를 세워 두고 담배 한 대 피우려고 하는데 담배 마저 젖어있으면 심하게 우울해지니까. 가는 길에 어제 전어무침을 산 가게에 들러 일회용 비옷을 샀다. 어차피 서울에 돌아가더라도 빗속을 달리려면 필요하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니 놀란다. 읍내에서 자전거 빌려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줄 알았나 보다. 어제 아저씨는 여자 여섯명이 자전거 타고 왔다가 완전히 퍼져 트럭으로 집까지 데려다 주고 7만원 받았단다. 황씨나 나는 가난해서 그럴 일 없다.

종점인 화도 터미널에 세워준다. 고마워서 돈을 좀 드리려니 안 받으려고 한다. 어제 공짜로 먹은 소주값, 밥값으로 받아달라고 말했다. 강화->신촌행 버스표를 사고, 비 맞으면서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실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처마 맡에서 담배를 피우며 우리가 삽질하는 모습을 웃으며 구경한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두 자전거의 앞 바퀴를 빼니 잘 들어간다. 처마 밑에서 담배를 한 대 빨았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쉴 때마다 사나이들의 구순기 영양간식인 담배를 자주 피웠다.

버스 라디오의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서해 인근에 풍랑 주의보가 발령되었고 경기, 서울 등지는 여전히 호우주의보가 내린 상태다. 하지만 강화도를 벗어나니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젖은 옷에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서늘하다. 한숨 놓고서야 숙소 화장실에 시계를 벗어놓고 온 것이 기억났다. 이런 낭패가. 민박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택배로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버스의 라디오에서 우울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어디로 가느냐 내 아들아, 어디로 가느냐 내 딸들아.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로 돌아갈래요.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서 갈래요. 빈손을 쥔 사람들을 찾아서 갈래요. 내게 무지개를 따다준 소년 따라 갈래요.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 없이 비가 내리네. 밥 딜런은 세상의 종말을 폭우로 표현했다.

신촌에 내렸다. 한 시간 반 걸렸다. 어제 갈 때 네 시간 반 걸린 거리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단 점심이나 먹고 출발하자고 했는데 황씨가 벌써 저만치 갔다. 갑자기 장대비가 마구 퍼부었다. 상가 처마로 허겁지겁 대피했지만 벌써 다 젖었다. 심지어 마음 마저 젖었다. 허접한 일회용 비옷을 꺼내 입었지만 앞 여밈에 틈새가 많아 통쾌하게 젖을 것 같다. 스카치 테잎을 꺼내 붙였다. 여행할 때 스카치 테잎을 들고 다니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황씨가 또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출발한다. 광흥창에서 300m만 가면 바로 강변 자전거 도로인데 정말 양화대교까지 가려는 것 같다. 먼저 내려가 전화질 하면서 기다렸다. 양화대교로 내려온다. 너덜너덜한 비옷을 스카치테잎으로 붙여 재무장했다. 비닐봉투에 곱게 넣어 둔 담배 한 대씩 나눠 피우고 헤어졌다.

119 차량, 경찰차량, 그리고 해상구조대가 강가를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자전거를 세우고 살펴보니 웃통을 벗어제낀 어떤 아저씨 시체가 뱃전에 놓여 있다. 뛰어내리고 바로 건졌는지 배가 안 부풀었고 비를 맞으며 잠자듯이 누워 있다. 편안히 가시길.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자살하지 마세요' 라는 광고를 본 기억이 난다. 내 맘이다.

강변 자전거 도로는 텅 비어있다. 힘껏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비바람이 심해서 잘 안 나간다. 불광천 길로 들어섰다. 콸콸 흐르는 냇물의 수위가 자전거 도로와 높이가 같다. 불안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길이 잠겨 있다. 크랭크 축이 잠기더니 이번에는 상행 패달까지 잠겼다. 정강이 깊이의 구정물 속에서 용쓰며 패달질을 했다. 뭔가가 앞에서 헤엄쳐 지나간다. 곧 멸종할 수달인가? 아니다. 쥐다. 쥐가 안간힘을 쓰며 수영하고 있다. 안간힘을 쓰다 지치면 다리질을 멈추고 배를 수면에 드러낸 채 둥둥 떠다닐 것이다. 쥐는 살아야 하고 나는 집에 가야 한다. 쫄닥 젖은 회색 시궁쥐와 함께 온갖 잡것들이 둥둥 떠 다니는 똥물에서 함께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인지 기분이 별로다. 델리와 꼴까타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랬지.

물에 푹 잠긴 자전거가 걱정이다. 기껏 수리한 BB에 물이 들어간 것은 아닌지. 집에 돌아와 구정물을 휘젓고 다닌 발로 방안을 가로지르려니 민망하다. 샤워부터 했다. 핸드폰에 빗물이 들어가 뿌연 수증기가 끼어 있지만 제대로 작동한다.

GPS의 트랙로그를 살펴보았다. 좀 이상한데? 어제 만든 트랙을 따라 갔더니 샘플링이 매우 성기게 되어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garmin 제품은 트랙로그를 저장하면 날짜가 리셋되어 버린다고 한다. 70여km 밖에 안 되지만 자료를 잃은 셈이다. 그렇게 해서 1004개의 계단이 있다는 마니산 한 번 못 올라가보고 제철임에도 맛없는 회를 비싸게 주고 먹고 비를 억수로 맞은 1박 2일의 여행을 끝냈다. '자전거 여행'이다. 도보와 자동차의 중간 쯤에 위치한 자전거 여행은 시야의 잊혀진 가장자리를 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반복되는 갖은 '시련'을 통해 전보다 더더욱 건강해졌다. 힘든 신체활동은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 뇌 속에서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하고 한번 분비되기 시작한 호르몬의 맛을 못 잊어 조건강화를 반복하게 된다. 마라톤 하이나 근육통 뒤에 찾아오는 멍한 평화는 중독성이 있는데 다른 모든 마약과 마찬가지로 중독된 행복감은...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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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잡기 2005. 9. 15. 02:57
홍대 뒷편 공원 산책로에서 발견. 좌표가 약간 틀리다. 자전거로 집에서 왕복 22km, trip time 1h45m. 미군이 쓰는 압박 붕대를 가져오고(T) 열쇠고리를 남겨뒀다(L). 이것으로 세번째 지오캐싱. 지오캐싱 뿐만 아니라 알맵과 GPS 트랙 메이커를 사용하여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이 많이 익숙해졌다. 지오대싱을 한 번 해볼까?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도로의 분지와 접점이 지닌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려면 직관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런 재능이 없다.

이를테면 한국식 도로는 평균 50m 마다 분지하며 굽이가 자유롭고 목표까지의 직선거리로부터 평균 1.432 배의 길이를 가진다. 또는 산길은 일반적으로 CW를 따라 허리를 돈다던가, 몽골리안의 금지는 예외없이 CCW라던가. 하지만 나뭇 가지 사이에 조약돌을 올려놓는 다산을 상징하는 외설적이고 문화적인 버릇이 도로의 분지점에까지 전승되지는 않았다던가. 흠. 아니야, 모를 일이지. 한국의 문화적 유산은 대부분 원형이 크게 파괴되거나 변위가 극심하여 어딘가의 숨겨진 오솔길이 상징 그대로 남는 고대의 잊혀진 전통을 이어가고 있을 지도 모르지. 길을 찾으라, 길을 읽으라. 둘은 나에게 변별되는 양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길은 길고 거리는 걷는 것이다. 엘 카미노로 이어지는 목자의 순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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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05. 9. 14. 07:22
자료로 쓰기 위한 사진 & 두번째 보물찾기 (한강 조류 관찰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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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geocaching)

잡기 2005. 9. 11. 20:18
패달에서 계속 들리는 뚝- 뚝- 소리에 신경이 쓰여서 자전거 가게에 들러 어디가 문제인지 물어 보았다. 젊은 친구 말로는 bottom bracket의 나사가 헐거워져서 그렇단다. (그렇지? 패달, 디레일러, 체인링 문제는 전부 아니었으니까!) BB를 뜯으려면 공구가 있어야 하는데... 크랭크 공구, BB 공구, 몽키 스패너, 이렇게 셋이 필요하다. 공구를 또 사야 하나? 그 나사 조이는데 얼마나 드냐고 물으니 정비까지 해서 만오천원 달란다. bb 뜯어서 그리스 바르고 조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난 공구가 없다. 안 좋은 시츄에이션이다. 그 동안 몇 번이나 했지만 한 번도 정확하게 맞지 않았던 기어 조정을 bb 조이는 김에 부탁했다.

BB를 뜯어보니 일체형 하우징(몰딩?)이 안된 것이다. 중국산으로 보인다. 물어보니 자기 생각도 그렇단다. 값비싼 자전거들이 즐비한 값비싸보이는 샵이라 내 자전거는 정말 싸구려로 보였다. 수리하는 중에 이것 저것 물었다. 저 크로몰리(크롬 몰리브덴 합금 같다. CrMo라고 적힌 걸 보니) 프레임은 얼마에요? 200이요. 비포장 다운힐에서 하도 덜컹거려 앞 쇽 앱저버를 갈려고 하는데(내껀 스프링이다) 유압식으로 갈면 얼마에요? 못해도 40 들죠. 타이어를 저런 섹시하게 오동통한 것으로 바꾸려면 얼마에요? 한 쌍이 50 정도 됩니다. 디스크 브레이크는요? 60 정도 됩니다.

날도 덥고 해서, 그만 묻기로 했다.

BB에 그리스를 바르고 다시 끼운다. 잘 봐뒀다. 타보니 뚝-뚝- 하는 소리는 사라졌다. 게다가 비비를 조이기만 했는데 기어가 마술처럼 딱 맞아 떨어져 더 조정할 필요가 없단다. 그렇다면 여태 내가 조정해 놓은 것이 맞다는 것인가? 그럴리가... 난 손재주가 없는데...

정비료가 만오천원이라니 속이 쓰리다. 자전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나간다. 심지어 처음 샀을 때보다도. 그런데 bb 나사 헐거워지는 것을 조이려면 6개월에 한 번 정도는 샵에 들르는 것이 좋단다. 슬픈 소식이다. 무슨 강아지 키우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가게에 같이 있던 아줌마는 차 지붕에 자전거 행어를 달려고 왔다. 자전거 탄 지 한 달쯤 되었단다. 내가 핸들바를 라이져 타잎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하니 아줌마는 그냥 일자 쓰라고 말하면서 왜 시트가 높아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시트가 핸들바보다 높으면 등이 구부러지고 배가 움푹 들어가면서 팔이 자연스럽게 핸들에 걸치게 되어 어깨가 안 아프단다. 핸들바를 가볍게 잡으면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충격도 없고. 아, 그랬구나. 팔을 일자로 뻗어 핸들을 잡았고 마치 팔을 서스펜션처럼 사용한 탓에 손바닥이 몹시 아프고 손목이 꺽여 무리가 갔다. 아줌마는 자전거 잡지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단다.

술 취한 할아버지가 들어와 체인 한 토막만 끊어달라고 한다. 요철을 지나면 체인이 난데없이 다른 톱니에 올라타 있단다(자동 기어 변속?). 뒷 디레일러의 장력을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자기는 절대 술 안 마셨다고 말하면서 사장님을 찾는다. 그러면서 일제 시대 때 자전거의 각 부위 명칭을 어떻게 불렀는지, 술냄새 풍기는 자기를 무시하는 기사 말고 나한테 일일이 설명해 준다. 나는 그에 상응하는 영어식 명칭을 대꾸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째서 자전거 부품 이름이 몽땅 영문이고 누구나 그걸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다리가 뻐근해서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 올림픽 공원에서 브레이크 잡는 연습을 했다. 기둥에 박을 찰라에 브레이크를 잡고 슬쩍 비껴가는 것이다. 한 30분 연습하니 브레이크 감은 잡히지만 그래도 막판에 몇 번 박던가 스쳐가는 중에 바엔드가 긁힌다. 한계제동은 더 많이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그 다음에는 회절 연습을 했다. 좁은 길에서 직각으로 꺽이는 길로 회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퉁이 길을 패달이 지면에 닿을락 말락하는 정도로 뺑뺑이 돌았다. 회전하면서 패달링을 멈추면 안되니까. 비포장에서 하면 백퍼센트 슬립했다.

잔디밭에 들어갔다가 턱에서 브레이크를 잘못 잡아 몸이 앞으로 펑 튕겨 나갔다. 손발을 뗀 자전거는 뒤가 들리면서 180도 공중제비를 돌았다. 멋지게 발부터 착지했지만 시급히 몸을 굴려 뒤에서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덥쳐오는 자전거를 피해야 했다. 콰당. 야 이런 건 처음 보는데? 튼튼한 자전거라 마구 굴려도 된다. 포장길의 좌회전 구간에서 괜히 앞 브레이크를 잡아보았고, 앞 바퀴에 락이 걸려 꺽인 핸들이 밀리면서 옆으로 자빠졌다. 일부러 만든 상황이지만 15kmh 가량의 속도에서도 다양한 사고가 날 수 있다. 도로였다면 큰 사고감이다. 팔꿈치가 까지고 왼쪽 무릎에 멍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팔, 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공평하게 멍들고 까진 셈이 되었다.

운동신경이 영 꽝이니 이렇게라고 기본적인 연습을 해야지, 일전에 같은 속도에서 컨트롤에 밀려 할아버지한테 앞을 내준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뼈도 못 추릴 것은 확실하고 깡이 늘어 도로 주행 속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매점 앞에 앉아 잠시 쉬면서 음료수 한 병 마셨다. 한 친구가 앞 바퀴 들고 달리는 연습을 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자주 자빠진다. 고생한다. 석양이 참 멋지다.

공장에서 기판을 들여다보니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사업성이야 사장님들 세 분이서 알아서 판단할 문제고 내게 떨어질 돈이 안 될 것 같아(사업참여? 현찰이 오고가야 하지. 객기는 사라졌다) 적당히 우회해서 빠지겠다고 말했는데 알아들은 건지 모르겠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나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말한다. 기분이 좀 그래서 술잔만 기울였다.

코로나 한 병 시켜놓고 느긋하게 사람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김씨 아저씨는 날이 갈수록 모임을 주관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봉사 및 정치 활동 때문인지 그의 뒤통수에는 후광이 번쩍였다. 김씨 아저씨가 www.nyxity.com에 들어가 이 문구를 봤을 지는 의문이다. '출판계의 규칙은 SF 팬들이 가장 이상하다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SF 팬 중 상당수가 자신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꽤 많은 수가 아마도 정말 외계인일 것이다. 염세주의자가 옳고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싶으면 SF 모임에 가보라. - 피터 게더스, 프로방스에 간 낭만고양이'

염세적인 외계인들의 모임이라... 참가하셨더라면 자리를 빛내주셨을 대게 외계인, 랍스터 외계인의 다리를 하나 하나 뜯어서 빨아 먹는 상상을 했다. ... 버본 스트레이트에 향긋한 커피를 곁들이니 희안하게 궁합이 맞았다.

GPS를 좀 더 잘 활용해 보려고 compeGPS를 다운 받았다. 구글 맵과 나사의 여러 지도 프로젝트에서 지도를 얻어와 경로와 겹쳐 실제 사진과 3d 맵으로 보여준다.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 보다는 gps 가진 사람들 끼리 보물찾기(지오캐싱)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북위 36.245523, 동경 126.72383 지점에 음란물 cd를 묻어 놓고 지오캐싱 닷 컴에 위치를 공개하는 것이다. 보물을 발견하고 몹시 기뻐할 사람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오늘이 911인가? 짜장면 시켜먹고 그동안 미루고 있던 보물찾기 놀이를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인데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www.geocaching.com에 들어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를 찾아봤다. gps에 좌표를 입력한 다음 자전거를 몰고 달려갔다. 아파트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목표 지점에 거의 이르렀다. 땀에 절었다. 아줌마 두 분이 돗자리 펴고 앉아 있다. 아줌마들 주변을 왔다갔다 했다. 오락가락 할 때마다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다. 낯 뜨겁지만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여긴 한국이기 때문에 산 한 가운데 아줌마 둘이 돗자리 펴놓고 앉아 부동산 얘기하며 막거리를 마시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누군가 처음 이 산에 와 본 나한테 길을 묻는 것은 워낙 익숙해서 자연스럽기 조차 했다.



어처구니 없는 장소에서 드디어 발견. 왼쪽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사진에 나왔네?



보물을 찾으면 내꺼가 되는 거라 믿고 흐뭇한 마음에 발견한 것을 통째로 들고 내려 오다가 집에 들고 가기 전에 버릴 것은 버리자 하는 마음에서 약수터에서 발견한 '반찬통'을 까 보았다. 안에는 돈 되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고 잡동사니만 빼곡하게 차 있다.



땀 흘리면서 표고차 120m의 산을 올라왔는데 이게 뭔가.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로그북이란 것이 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교환 시스템이라 이거지... 낚시의 캐치 앤 릴리즈처럼 발견한 기쁨만 누리고 다음에 찾아오는 사람을 위해 내용물의 일부를 가져가거나 내 것을 남겨두는 것이다.

로그북에 심드렁한 메시지 하나 남기고 그걸 들고 다시 산을 올라갔다. 원래 장소에 그대로 갖다 놨다. 로그북에는 외국인들이 남긴 20여개 가량의 영문 로그가 있다. 그리고 트레블 버그라 불리는 것도 있다(왼쪽의 군바리 인식표처럼 생긴 것). 지오 캐싱에서 대략 6$에 판매하는 것인데 그걸 꺼내 다른 보물을 숨겨놓은 곳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트래블 버그는 어떤 때는 수십개 국가를 떠돌아다니는 일종의 히치하이커가 되기도 한다. 여기있는 것은 뉴저지에서 온 것이다.

한국에는 대략 40여군데의 지오캐싱 웨이포인트가 있다. gps가 없으면 거의 찾기가 불가능하지만 gps를 산 꼬마 녀석들이나... 심지어 어른 마저도 전세계적으로 환장하는 게임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괜찮은 scenic spot을 알려줄 수 있겠구나 싶어 근간 북한산 어느 바위 구석에 나도 하나 남겨놓겠다.

이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취미가 하나 더 생긴 셈인가?
gps 하나로 몇 년 동안 참 많이 울궈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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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쯤 비 맞으며 자전거 몰고 다녔는데 정비를 통 안 해서 이 김에 닦고 조이고 기름칠 좀 했다. 리튬 그리스가 있는데 바를마한 곳이 마땅치 않다. 앞 기어와 뒷 기어 조절은 해도 해도 뭔가 잘 안 맞았다. 기어 조절에 관한 무림비급 2권을 봤는데도 이 모양이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일까? 기름칠 하니 잔차가 스무드하게 나간다. 페달 갈려면 15mm 스패너 부터 사야 한다. 어휴 죽겠군.

토요일 점심 나절, 초코칩과 포도를 도시락으로 싸들고 자전거 몰고 임진각까지 갔다. 몇몇 포인트를 찍어두고 라우팅 했다. 어떻게 하는지 그 내용을 한 번 정리하긴 해야 하는데...

길이 평탄해서 주행이 쉽다. 해가 안 나와 덥지 않고 좋네. 불광동-임진각 코스는 동호인들이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많이들 다닌다는데 타는 사람들 하나도 안 보인다. 매연을 흩날리며 차들만 줄줄이 지나갔다. 파주시는 차들이 좀 더 편안하게 다니라고 기껏 있던 갓길 라인을 지우고 아예 안쪽으로 그려 놓으셨다.

할 수 없이 찻길로 다녔다. 차들과 나란히 서서, 차들처럼 신호등 대기하고 신호등이 바뀌면 주행한다. 차들처럼 녹색등에서 노란등으로 바뀌면 뻔뻔하게 교차로를 횡단했다. 물론 차들처럼 신호 무시도 했다. 두 번, 인명 사고가 날 뻔 했다. 건널목 바깥 쪽에서 뛰어가는 아이, 아무 생각없이 건널목도 아닌 길을 횡단하는 할아버지. 두 번 다 차에 가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정비하면서 헐거워진 브레이크를 조여두지 않았더라면 사고날 뻔 했다. 그렇잖아도 브레이크를 좀 헐겁게 해 놓고 다니는데... 정신 차리자 찰싹! 그나저나 뭐가 하이킹하기 좋은 도로냐. 길가에 코스모스가 널려 있다는데 파주-문산의 짧은 구간 뿐이고 한적하다는 도로는 오고 가는 길 내내 차들이 쌩쌩 달린다.

임진각에서 세계 평화 축제인지 뭔지 하는 것을 하고 있다. 임진각에 처음 와 본다. 갈비탕 하나 사 먹고 싸온 도시락도 까 먹었다. 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 녹차를 마셔줬다. 공연 구경도 했다.



집->삼송역->파주->문산->임진각. route를 잡아 놓고 그리고 follow 버튼을 클릭하면


navigation 화면에서 다음 목적지가 나타나고 거리와, 현재 속도에 따른 예상 도달시간, 그리고 현재 스피드를 출력. 컴퍼스처럼 보이는 것은 위성으로 부터 수신한 시그널을 시차를 두고 진행방향을 표시한 것으로 자북을 가르키는 마그네틱 컴퍼스와는 다른 것이다.


route를 그래피컬하게 보여준다.


자유의 다리. 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대체 이 양반들 루트가 어떻게 되길래 가는 관광지 마다 보게 되는 것일까...


카메라의 사운드 메모로 녹음한 그들의 신나는 음악 (1:00)을 들어보니 터키시 밴드 같은데?

im

주행기록: 84.91km (4h30m) max/avg 42.7kmh/18.4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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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ansys-kr.com에서 Garmin eTrex Camo를 11만 천원에 판매한다. eBay, Amazon, Yahoo를 다 뒤져봤지만 그것보다 싼 것이 없다. 황씨 아저씨 더러 구매하라고 소개해줬다. 내친 김에 바이크 마운트 2개도 함께 주문해 달라고... 동해-울진 주행 때 가위와 스카치테이프를 들고 다녔다. 매일 매일 주행 나갈 때마다 가위와 스카치 테이프로 gps를 붙이자니 영... 구리고 가난해 보인다. 그렇다고 garmin.co.kr에서 4만원이란 괴기스러운 가격에(무슨 플라스틱 쪼가리가 4만원씩이나 하나?) 바이크 마운트를 구매할 수는 없고...

관세 안 물려고 박스 겉 딱지에 선물이라고 적어달라고 한 것으로는 모자라, 오더 담당자한테 '10만원 미만이면 한국에서 관세 안 무는데 아이템 금액과 합계를 90$ 미만으로 적어주면 안되나요?' 라는 애걸조의 메일을 황씨 아저씨더러 보내라고 사주했다. pc inteface cable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만날 자전거 얘기만 하니 좀 식상한데, 나는 지난 5일간 비상대기 상태다. 어디 놀러 갈 수 없다.

그럼, 자전거 얘기를 계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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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날씨: 흐림. 아주 좋다. 황씨와 만날 약속을 하고 12시 집에서 출발. 다리가 무겁다. 느적느적 의정부 도착하니 1시 40분. 의정부에서 중랑천까지 자전거 도로가 있다. 의정부 시민들은 좋겠다. 의정부시는 중랑천 도랑 한 가운데에 분수대를 설치해 놓았다.

광릉 수목원에 가기로 했다. 광릉 수목원은 토,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광릉 수목원의 홈페이지 FAQ에는 왜 토,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적어 놓았으나 사람들은 그걸 못 봤는지 일반 게시판에 공휴일에 문을 열지 않는 것은 공무원 편의주의라고 심하게 질타한다. 가고 싶고 보고 싶은데 안 보여 주니 열받은 거다.

의정부시에서 헤메다가 고개를 둘 넘어 포천으로 향하는 도로를 '발견'했다. 간단히 의정부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아간 후 그 도로를 따라 주욱 가면 되는 코스지만 지도가 없으니 전후좌우 사정을 단지 GPS의 나침반만 보고 확인하는 꼴이다. 그래서 주행코스가 사다리 타기처럼 되어 버렸다.

의정부시에서 빠져나와 축석까지 완만한 업힐 구간, 대략 2km쯤? 업힐 연습하긴 좋겠군. 고갯마루에서 광릉 표지판이 보이길래 아직 축석 휴게소에 다다르지 않았지만(300m 전방) 우회전했다. 잠깐 동안의 업힐 후 갑자기 엄청난 다운힐이 나타났다. 당황했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GPS를 살펴보니 수목원은 좌측으로 4km 가량. 어쩐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광릉수목원은 정확히 진행방향 쪽에 위치한 산 너머에 있다. 그래서 4km인 것이다. 산타기는 글렀고 되돌아가자니 끔찍한 업힐이고 여기도 적당히 시골이니 밥이나 먹고 가자. 애당초 광릉 수목원을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 광릉 수목원까지 가는 것이 목적이니까.

시골 한 가운데 난데없는 생선구이 집이 있다. 1인분 6천원에 돌솥밥과 20여가지 반찬, 그리고 삼치와 꽁치구이라니 나쁘지 않다. 배불리 먹고 물병을 채웠다. 도로 맡에는 '문전옥답 일궈놨더니 이제와서 어디로 가란 말이냐?' 라는 플랭카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서울 방향 도로를 따라가다가 퇴계원쪽으로 갈까 아니면 의정부시로 들어가 자전거 도로를 타고 내려갈까,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자전거 도로가 편하니 그리로 들어섰다. 한 손으로 모바일폰을 수신하고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다가 도로턱에 걸려 자빠졌다. 마누라 안부 전화였다. 젠장, 핸들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뭘 하기만 하면 꼴아박고 고꾸라지기 일쑤니. 그것 말고도 90도 이상의 급격한 커브길에서는 핸들링이 불안하다. 시간 내서 디버깅 해야겠다.

누군가 할머니를 치었다. 머리를 다친 것 같다. 의정부시가 정성들여 깐 우레탄 자전거 도로는 폭이 좁은 편이고 때마침 주말이라 나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사고나기 딱 좋다.

내 앞의 황가는 24kmh, 그렇게 빨리 달리지 말랬는데 속도를 낸다. 근육을 혹사하면 젖산이 생성되고 젖산이 한 번 생성되기 시작하면 근육 여기저기 고여서 에너지 대사를 방해한다. 그러다가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마치 근육 양옆에 브레이크를 달아놓은 것처럼 안 나가는 것이다. 나나 황씨나 일주일 내내 무리해서 근육통이 있는 상태다. 젖산이 제거되려면 3-4일쯤 걸린다.

황가 앞의 할아버지가 호루라기를 불며 맵시 좋게 나아간다. 굉장하다. 단지 추월을 위한 스팟일까? 황가를 제쳐두고 할아버지를 쫓아갔다. 오랫동안 단련한 듯 구배가 일정하다. 잠시 추월했지만 장애물이 많은 도로에서 컨트롤이 딸려 다시 할아버지에게 앞을 내줬다. 할아버지와 내 옆으로 무수한 자전거들이 뒤쳐진다. 속도계는 30kmh를 가리킨다. 이 비좁은 도로에서 30kmh는 위험하다. 할아버지를 계속 쫓아갔다. 그래도 잘 타는 사람 쫓아가는 것은 연습이 된다.

월령교에서 멈췄다. 추월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집에도 가야 하고... 체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니... 황씨를 기다려 집까지 가는 길을 설명 듣고 헤어졌다.

석계역을 지나 월곡역을 거쳐 사거리에 이르렀다. 사거리가 복잡하다. 국민대 방면으로 가려는데 택시 한 대가 미아 방면으로 가려고 중간에 끼어 들다가 범퍼로 패달을 스쳤다. 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으면 안돼! 하면서 오히려 패달을 밟았다. 택시가 진행 중이고 이때 내가 멈추면 800kg짜리 택시에 밀려 자전거가 쓰러질테니. 택시가 멎고 나도 브레이크를 잡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서 도로 중간에 자전거를 세웠다. 택시 역시 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엑셀을 밟아 미아 방면으로 진행한다. 고개를 홱 돌려 길음쪽을 쳐다보니 경찰이 있다. 망할 택시가 문제가 복잡해질 것 같으니까 달아난 것이다. 사고로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그때서야 등골을 따라 서늘한 기운이 지나갔다. 살았다. 살아서 신기하다. 짜증나는 햇살은 도로를 비추고 있었다.


차량에 가려 건널목을 횡단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예방책: 건널목 앞 무조건 서행. 그런데 이런 경우가 서울 시내에서 아주 잦다.


서울 시내 주행 하면서 사고 날 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경우가(어째서 그렇게 되야 하는지) 교차로에서 우회전 하는 차량들이 있을 때다. 신호 대기중일 때는 속도를 높여 차선에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정차선에 세우던가, 우회전하여 건널목 앞까지 완전히 진행한 후 대기하는 것. 파란색 위치가 가장 좋은 정차 위치. 신호등이 파란색일 때 건널목을 따라 가는 것은 위험. 굵은 붉은 선이 이번에 택시 사고가 날 뻔 했던 코스.

저렇게 그려놓으면 서두른 택시 잘못 같아 보이지만 실은 직진로와 우회전로가 중간에 갈라져 있어 직진로의 2차선에 진입하다가 우회전하는 택시와 박기 딱 좋은 도로다.

한국 도로 사정상 자전거는 보행자와 마찬가지로 약자 같아 보이지만, 차를 몰며 자전거와 피치못할 사정으로 도로를 공유하는 자동차 운전자 입장에서 보면 자전거는 주행하는 지뢰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유독 서울만 차량이 하는 짓들이 지랄 같은 이유는 뭘까. 나같은 서울 시민이 서울이란 환경을 만들었다 -- 자문자답하는 바보짓은 하지 말자.

국민대를 지나 업힐 마지막에 북악 터널을 지나간다. 후텁지근하다. 땀방울이 이마에서 콧잔등을 타고, 속눈썹을 타고, 양 볼로 미끄러져 턱밑으로 떨어진다. 덜컹거리는 길을 천천히 주행했다. 어서 갑갑한 터널을 벗어나고 싶다.

구기 터널을 지났다. 시원한 내리막에서 50kmh에 이르렀다. 브레이크를 느슨하게 잡았다. 50kmh 이상 올라가면 무섭다.


생선 꼬리를 잡고 흔드는 펭귄

주행기록: 77.84km (4h51m) max/avg 50.0kmh/14.8kmh

집에 돌아와 짐을 내리고 사우나로 향했다. 한 시간 반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땀을 뺐다. 땀을 빼고 돌아와서 땀을 빼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사우나를 나오니 65.3kg에서 64.6kg로 700g이 땀으로 빠져 나갔다. 스산한 기분이 들어 사우나 맞은 편의 세숫대야 냉면집에서 냉면을 시켜 말끔하게 해치웠다. 턱이 으드드드 떨린다.

22:50에 상영하는 '친절한 금자씨'를 보러 갔다. 코메디인가? 암. 웃어야지. 죄를 지었으면 속죄해야지. 금자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시스템이 말하는 죄와 스스로가 짊어진 짐으로써의 죄 중 나는 후자에 무게를 더했다. 내가 이 세계에 많은 빚을 지고 연리 3.5% 장기상환으로 갚아 나가는 것처럼. 할 말 없다. 극장에 별로 사람이 없어 앞 좌석에 턱 다리를 걸치고 편한 자세로 관람했다.

새로 개장한 팜 스퀘어, 거리 앞에서 공연을 했던지 지저분하게 널려 있던 색종이들이 소용돌이에 휘감겨 하늘로 올라가다 떨어진다.

가을이다. 대하와 전어와 낙지가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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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메다니기

잡기 2005. 9. 1. 03:48
북한산을 끼고 돌아 의정부에 가서 황씨를 만나 헬멧을 주고 대신 백라이트를 받았다. 황씨 아저씨의 새 자전거는 American Eagle AE5300 Presto, 14만원 주고 샀다는데 투어용으로 딱이다.

황씨 아저씨의 자전거는 부드럽게 잘 나가고 기어 변속이 상쾌하게 이루어졌다. 바디도 내 것보다 가볍다(11kg, 내것은 13kg) 그리고 라이저 핸들이라 장거리 여행에 적합해 보인다. 다만, 황씨 아저씨의 21단과 내 24단의 차이, 24인치 바퀴(황)와 26인치(luke)의 차이는 패들링에서 눈에 띄는 차이를 만들었다. 어차피 프레임이 14.5인치 짜리라 내 키에는 안 맞았기에 이전에 9만 9천원짜리 아메리칸 이글이 옥션에 올라왔을 때도 구매하지 않았다.

자전거 구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자전거는 아무래도 동네 자전거 가게에서 사는 것이 나처럼 옥션에서 싸게 올라온 것을 사는 것보다 백번 낫다. 어찌된 일인지 자전거 가게 주인들은 자기 가게에서 산 자전거가 아니면 손을 봐주려고 하지 않았다. 번번이 거절당하면서 하는 수 없이 자전거 정비를 배워야 했고, 공구와 부속을 눈물을 머금고 구입했는데 가격이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정비가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깝다.

자전거 각 부위의 명칭 정도는 알아둬야지 싶다. 자기가 즐기는 것의 제대로 된 '이름'조차 모른다면 그건 버그다. 자전거의 경우에는 바퀴벌레가 되겠군.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일반적인' 자전거 얘기가 아니다. 나는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학습했다. 따라서 시마노의 계보라든가, 멋지고 섹시한 유명 브랜드 자전거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올 것이다. 못 살고 못 먹는 프롤레타리아트 궁상이 되지 싶은데...

접이식 자전거에는 좀 회의적이다. 자동차 트렁크에 쉽게 넣을 수 있고 용적을 적게 차지하며 운반이 편하다고들 하는데, 그럴 바에는 QR 레버가 달린 자전거를 사서 앞 바퀴 빼서 뒷좌석에 넣는 것이 낫다. 잘 들어간다. 앞뒷바퀴 빼면 트렁크에도 잘 들어간다. 그리고 운반하기 편하다? 접이식 자전거 무게나 일반 자전거 무게나 큰 차이 없다. 되레 더 무거운 것들도 있다. 10kg 넘는 자전거 들고 언제 어디서나 이동중 헬쓰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짐작된다.

프레임: 자전거는 무조건 가벼운 것이 장땡이다. 원론이다. 프레임은 하이텐(강철)과 알루미늄, 티타늄, 카본 등이 있는데 순서대로 점점 가벼워지고 강도가 높아지지 싶고 그런 특성의 이로움이 증가하는 그래프는 선형인데 가격은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른다. 마음속에 50만원 이상이면 '고가'라는 일종의 장벽이 형성되어 있는데 생업에 시달리는 관계로 마음의 벽을 깨부순 적이 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프레임이 알루미늄인 것을 추천한다. 왜냐, 하이텐은 녹이 슬고 약간 더 무겁고 강도가 떨어지니까.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자전거는 2-3년 꾸준히 타면 이것저것 많이 갈게 되는 것 같다. 차체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처럼 2-3년 타고 버린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멋진 MTB로 비포장 산악, 업다운힐 어택, 수시로 여기저기 꼴아 박으며 비바람을 뚫고 사나이 답게 달려가는 사람 얼마 없다. 가벼운 구릉이 끼어 있는 아스팔트 도로에서 하루 평균 4-50km 가량의 주행이면 일반적이지 싶다. 그런 길을 번쩍이는 카본 프레임으로 달리는 것은 한국에 만연한 특이한 현상, 일년에 너댓번 7-800미터 짜리 아기자기한 옆 동산 '트래킹'가기 위해 70만원짜리 상하의 등산 복장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 싶다. 하긴 한국에는 가격대 성능비를 농담따먹기로 여기는 '얼리어댑터'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티코는 절대 못사는 사람들이 좀 있지 싶다. 물론, 젊은이들이 티코를 안 사는 이유를 카섹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은 백퍼센트 공감한다.

프레임 크기: 170cm 이상의 키면 보통 프레임 크기는 16인치 짜리, 바퀴 크기는 26인치 짜리가 언제나 추천되었다. 14.5인치, 24인치 바퀴는 160-170cm 사이인 것으로 기억한다. 수치는 잊어버렸고 크랭크 암의 길이도 키와 상관있다. 인터넷 잘 뒤져보면 나온다. 하지만 바퀴 크기가 20인치가 안 되는 미니벨로 타입의 자전거가 그렇게까지 느리지는 않았고, 심지어 멋도 아는 여성이나, 오직 시티 바이크로만 쓰는 용도라면 차라리 앙증맞고 아담한 미니 벨로가 쓸모 있어 보인다. 모양이 예쁘다. 여자가 타기 쉽다. 그래도 나는 무조건 26인치 바퀴를 쓰겠다. 몇몇 자전거를 직접 타 보니 바퀴 크기 차이가 있다. 패달링 한 번에 주행거리 8cm 차이난다. 1분에 60회 패달링하면 4.8m. 한 시간이면 288m. 하하하.

자기 키에 맞는 자전거를 선택하는 방법? 가랑이를 탑 튜브(자전거의 다이아몬드형 프레임의 상단)에 끼웠을 때 2-3cm 정도 여유가 있으면 된다. 튼튼한 무생물에 자전거를 박았을 때 안장에서 미끄러져 탑 튜브에 사타구니를 쓸려 보면 이게 몹시 합리적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닫게 되지 싶다.

안장과 싯포스트: 안장과 안장 지지대의 높이 조절은 자주 타면서 이리저리 조절해 보면 되는데, 보통은 발 뒤꿈치로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가볍게 무릎이 굽혀지는 정도가 알맞다는 기준이다. '가볍게'다. 안장 높이 조절은 최적화될 때까지 반복해야 할 것이다. 안장 높이 1-2cm 차이로 패달링 동력이 많이 차이난다. 안장 높이가 낮으면 보통 무릅이 쑤신다. 그리고 선수 아닌 바에야 안장은 평평한 지면과 평형한 것이 보통인 것 같다. MTB의 안장은 폭이 좁고 딱딱해서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 여기저기가 쑤신다. 일부분은 자주 타서 익숙해지면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긴 하나, 장거리 주행할 때 안장이 딱딱하면 마음 마저 아파진다. 그래서 안장에 덧씌워 쿠션을 만드는 젤 커버 라든가, MTB 안장이 아닌 일반 자전거용 스프링 안장이라든가, 푹신푹신한 MTB 안장이라든가, 가운데 구멍이 뚫린 전립선 안장 같은 것들이 있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자전거 전용 져지를 입는 것이다.

쇽 앱저버: 쇽 앱저버는 아예 없는 것, 앞 바퀴에만 쇽 앱저버가 달린 하드테일형, 앞뒤 다 달린 풀 서스펜션 타입이 있는데 내 것이나 황씨 것은 하드테일이다. 쇽 앱저버가 앞 바퀴에만 있으면 손목에 덜 무리가 가는 것 같다. 풀 서스펜션 타잎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추천을 꺼리는데, 이유는 아마도 서스펜션이 패달링 동력을 많이 깎아먹기 때문일 것이다. 요철이 있는 업힐(언덕 오르기)에서 땀을 좀 더 흘리게 된다는 뜻이다. 자전거 주행의 분수령은 업힐이다. 다운힐에서는 누구나 50-60kmh 나온다. 당연히, 업힐을 생각하면 자전거를 안 타고 있더라도 마음속으로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업힐 중에 앞 택시가 가로 막아 가뜩이나 낑낑거리고 있는데 브레이크를 하는 수 없이 잡아야 할 상황이면 활자화되지 않은 딜비쉬의 염병할 욕설들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마구 떠오르기도 한다.

기어: 21단은 3x7, 24단은 3x8이다. 뒷기어 고작 1단 차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21단과 24단이 차이가 있다. 황씨 아저씨의 21단 자전거 주행을 뒤에서 쫓아가면서 그의 패달링을 보며 느낀 것인데 그가 평범한 오리 처럼 발을 젓는다면 나는 깨달은 오리처럼 조금쯤은 더 우아하게 패달링 했다. 하지만 24단 기어는 보편적인 21단에 비해 현저하게 비싸다. 기어 박스 하나 더 달고 시프터에 눈금 하나 더 있는 것 뿐인데 비싼 이유는, 아무래도 21단이 널리 보급된 것인 반면 24단은 보급이 안되어서지 싶다. 여러 가지 실험을 못 해봐서 21단과 24단 사이의 성능 차이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핸들과 스템: MTB에 아주 불만스러운 부분. 한국에서는 스틱형 일자 핸들로 아예 통일해 버린건가? 간간이 보이는 라이저 핸들이란 것은 스틱 핸들보다 좌우가 약간 올라온 것이다. 라이저 핸들은 장거리 주행할 때 상체가 스틱보다 많이 펴져 손목에 무리가 덜 간다. 핸들을 편안하게 잡았을 때 손목이 꺽이는 각도는 5-10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더라. 뭐 나도 5-10 가량 나오긴 하지만 서너 시간 연속 주행하면 손바닥이 뻐근하고 손목이 아리다. 처음 자전거 사서 신나는 사람은 그 차이를 잘 모를 것이다. 하여튼 핸들이 편안하면 장거리 주행에 좋다.

타이어: 오프로드 주행이 아니면 굳이 MTB용 두꺼운 타이어를 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주행이 무겁고, 그렇다고 제동이 더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광폭 타이어'일수록 힘이 좀 더 든다.

브레이크: 보통은 일반적인 말발굽 모양의 v-brake를 사용한다. 그래서 굳이 뭐가 달려 있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보다, 브레이크는 쓰면 쓸수록 느슨해지고 일주일 주행중 못해도 1-2일 이상, 말하자면 거의 매일 정비가 필요하다. 브레이크 이격 조절은 공구가 있어야 한다. 나중에 설명.

기어 시프트: 오토바이처럼 돌려서 하는 그립 시프터와 시마노에서 개발한 원터치 하이 로우 레버 시프터가 있는데 원터치(아마 이지 파이어가 정식명칭이지 싶다)가 사용하기 편했다. 기어 시프팅은 연습이 좀 필요하다. 케이던스(일정 속도의 패달링 리듬)를 꾸준히 유지하도록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어 시프팅을 하게 된다. 3단 짜리 앞 기어에서 일반적인 주행시에는 2단에 놓고 고속 주행시에 3단에 놓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고 뒷 기어는 고속 평지 주행시는 7-6 부근, 약간의 경사에서는 5-4, 급경사에서는 차례대로 3-2-1 순으로 움직인다. 말뚝 기어 자동차나 오토바이 타 본 사람은 쉽게 이해할 것이다. 기어 변속은 리듬을 유지할 수 없을 때 한단씩 땡기고(저단 7->1) 오르막의 막바지에서 평지 또는 내리막일 때 한단씩 밀어내면(1->7) 된다. 연습하다 보면 차차 몸에 배이는데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싶다. 일단 편하고 안정적으로 패달링을 지속할 수 있는 리듬을 찾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리듬은 분당 60-70회다. 기어비와 바퀴 크기, 그리고 패들링 속도를 알면 속도 계산이 된다. 분당 6-70회면 21단 짜리 기어의 가장 고단일 때 어느 정도 스피드가 나올까. 대략 20~25kmh 가량이다. 나처럼 처음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 분당 6-70회로 꾸준히 두어시간 밟으라는 것은 한 번 죽어보란 소리다. 처음부터 6-70 회 할 생각 말고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리듬을 타면서 기어 시프팅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 조금씩 속도를 올려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속도계가 있으면 어느 정도 바이오 피드백을 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패들링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왜? 리듬을 타면 힘이 덜 든다.

QR 레버: 앞뒤 바퀴의 QR 레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야지만 자전거 포장 가방에 컴팩트하게 넣어 우송이 간편하다고 믿었는데, 버스로 자전거를 옮기니까 내 경우에는 QR 레버가 의미가 없었다. -_- 굳이 QR 레버가 아니더라도 작은 스패너 정도면 앞 뒤 바퀴 분리하는 것이 큰 일은 아니다. QR 레버가 있어 좋은 점을 잘 모르겠다. F1 그랑프리 레이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전용구: 제대로 안전용구 구입하면 자전거 구매 비용만큼 나온다. 오히려 더 비쌀 수도 있다.

헬멧: 자전거 사고의 90% 가량이 머리가 깨진단다(신뢰는 안 간다). 헬멧의 겉감은 강화 플라스틱(속칭, 파이버)인 것 같고 안쪽은 스티로폼으로 되어 있다. 머리가 땅에 먼저 박으면 스티로폼이 압축되면서 충격량을 흡수해 머리를 보호해 준다(그럼 목은?). 따라서 다음 번에는 그 헬멧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멋있고 스티로폼 없는 독일군 헬멧은 어떨까? --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다. 난 헬멧 쓰면 땀나서 안경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안 쓴다. 골이 빈 탓에 배드민턴 공처럼 머리부터 떨어질 이유가 없다고 보는 탓도 있다. 그리고, 혹시, 낙법을 익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장갑: 이걸 안전용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손가락이 나온 것은 안전용구로서 기능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폼 안나게 패드를 잔뜩 댄 긴 장갑을 끼고 다니자니 땀나고 덥겠지? 차라리 핸들 바에 바엔드를 장착해서 손이 땅바닥에 쓸리기 전에 바엔드가 긁히는 것이 낫겠다. 버스가 지나갈 때도 쓸모가 있고 벽에 핸들이 긁힐 때도 손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장갑이든 장갑은 한 번 끼어보면 아마 계속 끼고 다니게 될 것이다. 그립 때문이기도 하고 손바닥 패드 때문에 손바닥에 가해지는 충격을 덜어준다. 한국의 아스팔트는 공사를 자주하는 탓인지 요철 꽤 많다. 난 목장갑 사서 손가락 잘라 사용한다. 싸다.

보안경, 팔꿈치, 무릎 보호대: 진짜 MTB 해 볼 생각이셔?

뒤깜빡이: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미친 차들을 보면 야간 주행시 뒤깜빡이를 절로 달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야간 주행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장수하는 길이다. 실은 뒤깜빡이가 정말 쓸모가 생기는 경우는 전등이 없는 으슥한 지방도를 주행할 때다. 아낌없이 전기를 써서 '미인 50명 대기' 간판을 번쩍이게 만드는 시내에서야...

앞 헤드 라이트: LED 집속 라이트는 대체로 가시 거리가 5m 안쪽이다. 속도가 꽤 날 때는 시야 확보가 안 되어 별 쓸모가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싶다(그래서 헤드라이트에 깜빡이 기능이 있는데 앞에 사람이 있으면 깜빡이 보고 알아서 피하라는 뜻인 것 같다). 브레이크 제동 거리를 잘 알아둬야 한다. 브레이크를 잡아 바퀴가 멈추기 직전이 제동력이 가장 좋다. 그것을 한계 제동이라고 하더라. 제동거리 계산하는 수식은 어려워서 생략하고(마찰계수를 내가 어떻게 알겠냐?), 경험상. 25kmh 속도로 주행중인 80kg짜리 물체(인체+자전거)가 갑자기 멈출 때 제동거리는 대략 3-5m 가량 된다. 뒷 브레이크와 앞 브레이크의 사용 비율은 프로 선수의 경우 1:9 정도 라고 하는데 뒷 브레이크 잡으면 자전거 전체가 S 커브를 그리며 미끄러지다가 재수 없으면 90도로 꺽이고 자빠진다(내가 그 경험 참 많다) 앞 브레이크를 잡을 때는 무게 중심을 뒤로 이동시키는 연습을 평소 해 둬야 할 것이다. 제동력은 앞 브레이크 쪽이 더 높다고 한다. 하여튼 브레이크 잡는 법과 제동 거리는 반드시, 그리고 시간날 때마다 몸에 익도록 연습해야 한다. 그 연습 덕택에 일반 도로 주행시 사고 많이 피했다. 얼마나 많이 피했던가... 아, 셀 수가 없군...

자전거 복장: 제대로 구매하면 저가 자전거 2대 이상의 가격이다. 져지라고 불리는 기능성 옷인데 웃도리는 무늬가 화려 찬란해서 밤낮으로 잘 보인다. 입기가 좀 민망한 쫄쫄이 바지는 엉덩이에 패드를 대서 장거리 주행에 유리한데, 입으면 좀 오리 같다. 한 번 입기 시작하면 계속 입게 된다고 하더라. 난 같은 계열의 기능성 옷인 등산복을 입는다. 가격이 훨씬 싼데(한국에 등산하는 사람이 워낙 많고 옷가게들이 사시사철 땡처리를 하다보니) 무늬는 덜 화려해서 밤에 입고 다니기는 위험스럽지 싶다 -- 안전이고 나발이고 땀의 확실한 배출, 그거면 장땡이다.

자전거 정비용 공구: 공구셋이 여러 종류 있다. 하나 사두면 이모저모 쓸모가 많다. 특히 6각렌치. 자전거의 거의 모든 부속은 6각 나사를 사용한다(구동 부품은 대체로 육각렌치를 많이 사용한다. 나사 쓰면 나사홈이 쉽게 부서지고 나사로는 구동 부위를 꽉 조이기 힘든 까닭이다). 브레이크 와이어 이격 조절은 거의 매일 하게 된다. 경정비에 사용하는 것들은 6각 렌치, 스포크 렌치, 15mm 스패너(패달 교환 따위), 드라이버 등속이 있고 펑크 때울 때 타이어 레버, 펑크 패치, 에어펌프 등등이 필요하다. 그외 오일(재봉틀 기름도 상관없지만), 방청제(WD-40 따위), 솔(나는 칫솔을 애용) 등이 필요하다. 어차피 바텀 브래킷, 크랭크, 스템 따위는 직접 손대려면 공구가 많이 필요해져 자전거 가게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차체에 녹이 슬건 말건 신경 안 쓰면 편하지만 적어도 체인과 디레일러, 스프라켓, 브레이크 및 기어 와이어는 지저분하게 이물이 묻거나 녹이 슬면 구동부위를 갉아먹고 주행에 많은 영향을 주므로 가끔은 정비랍시고 '청소'를 해 줄 필요가 있다. 청소 방법은 간단하다. WD-40 뿌리고 30분 후 녹과 찌꺼기가 떨어져 나가면 닦아내서 잘 말린 다음, 오일 발라주고(테프론 오일 스프레이가 간단해서 좋다) 마른 걸레로 쓱 닦아 주는 것이다.

이미 자전거를 산 처지라 뭐라 하긴 뭣하지만 몇 가지 저기 지적한 주의 사항만 염두에 두고 동네 자전거포에서 6-7만원하는 자전거를 부담없이 사서 2-3년 열심히 잘 굴려 먹다가 페기처분하고 그때 나온 더 좋은 자전거를 6-7만원에 사서 몰고 다니는 것이 장땡이라고 본다. 나처럼 투어나 시내 주행하는데 굳이 좋은 자전거 살 필요가 있는지 회의적이다. (물론 차이가 있다. 모르는 거 아니다)

황씨 아저씨와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중에 자전거 속도계 얘기가 나왔는데, 6-7만원 하는 유선 또는 무선 속도계를 사느니 차라리 GPS를 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일명 '노랭이'라고 불리는 내 Garmin eTrex는 이미 단종된지 오래 되었으나 아직도 세계적으로 불후의 명작 취급을 받고 있다. 140x160짜리 커다란 LCD에 알기쉽게 나오는 화면도 큰 몫을 한다. 잘만하면 eBay에서 80여불 가량에 구입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지금 들어가서 조사해 보니 50$ 가량 한다. 더 둘러보니 Summit 기종이 100$ 가량 했다. Summit에는 고도 로그와 기압계, 그리고 '진짜' 컴퍼스가 달려 있다. 사려면 바이크 마운트 홀더와 PC cable을 같이 구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참, 가민과 달리 마젤란은 필요한 정보를 한 화면에 한꺼번에 출력하는 모드가 있는데 그점에서는 마젤란 것이 가민 것보다 낫다. 가민 GPS는 주행중 버튼 누르는 것이 신경쓰인다.

국내 gps는 차량용이 대부분이라 장시간 사용이 필수적이고 자동차 시거잭을 이용한 충전이 불가능한 장거리 트래킹이나 바이크 라이딩에는 큰 쓸모가 없다. pda와 gps receiver를 들고 다니는 것도 좀 그렇고, 짧은 배터리 사용 시간 때문에 한국 지도가 나온다는 매릿을 빼고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자전거에 ipaq pda 마운팅 해서 쓰는 사람이 있을까?

Garmin eTrex로 알 수 있는 것

* 해뜨는 시각, 해지는 시각: 주행계획을 세우는데 쓸모 있다.
* trip odometer: 주행거리계. 자전거용 속도계에도 붙어 있다.
* trip time: 주행시간. 자전거용 속도계에도 붙어 있다.
* max, average speed: 주행속도계. 자전거용 속도계가 더 정확하다.
* track log & pc interface: 자전거 속도계에 없는 기능. 자신이 지나간 코스를 알 수 있다. 각 지점마다 경위도, 고도, 시각 등이 기록되므로 GPS trackmaker 따위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주행기록을 알 수 있다. 더더군다나 주행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지도를 가지고 트랙 로그를 pc에서 만들어 gps에 업로드 하면 gps로 routing이 가능하다. 오늘 의정부의 전혀 모르는 길을 가서 황씨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것 때문에 가능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자전거용 속도계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Garmin Summit에 추가된 기능

* '진짜' 나침반: 자북(magnetic north)을 알 수 있다. gps의 위성 나침반은 위성 수신이 불가능할 때 쓸모가 없다. 자북은 어느 때 의미가 있을까? 웨이포인트도 안 잡혀 있고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서 날이 흐려 태양 컴퍼스를 사용할 수 없는 등, 어쩔 수 없이 자기만의 신비스러운 감을 믿고 가야 할 때.

* 기압계: 일기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기압 저하에 대비(비가 올 징조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

* altitude profile log: eTrex는 pc가 없으면 이걸 볼 수가 없다. 안 써봐서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산악 트래킹할 때도 고도가 큰 의미는 없었다. 보면 열 받으니까 안 보고 말지!

아무리 생각해도 6-7만원 하는 속도계를 구입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으로 보인다. 차라리 심박계를 산다면 쓸모나 있을텐데.

그럼 자전거 속도계가 gps보다 나은 점: 긴 배터리 시간. 위성이 있으나 없으나 주행상황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런데 대부분의 도로에서 위성이 셋 이상은 늘 잡히므로 두번째는 큰 의미가 없다. 주행 내내 주행로그를 쳐다볼 것도 아니고.

eTrex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신품 가격이 20여만원 한단다. 3년 전인지 4년 전인지 여행 중 이란에서 백몇십불 주고 산 것인데 사실 싼 값에 꼭 필요한 기능만 들어 있어서 여행 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테헤란 대학 앞 부근의 건축용품 가게의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 사겠다고 마음 먹고 들어갔다. 차 한 잔 대접받고 이틀에 걸쳐 가게를 방문하며 협상하니까 자기들 끼리 상의 하더니만 이란을 방문한 한국인 손님에게 스페샬 프라이스로 주겠다고 해서 환호작약했던 기억이 난다. 워터 프루프에 아주 튼튼해서 3년 동안 여행 다닐 때마다 들고 다녔으며 쓸모가 많았다. 이를테면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찍어두고 길 잃어버릴 염려 없이 시내를 마음놓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나같은 뚜벅이에게는 엄청난 매릿이다. 사막에서도 길을 잃어 버리지 않았던 것은 '신뢰성이 매우 우수한' 이놈 덕택이다. 그리고 그걸 사게 된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계기는, 사막에서 심한 눈보라 속을 길을 잃고 헤멘 경험이 있고 나서다. 눈보라 속에서 함께 헤메던 일본애와 꼭 끌어안은 채 서서히 잠이 들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_-

황씨한테 백라이트를 받았다. 자전거 도로는 식상하고... 헤드라이트도 있는데 시내 야간 주행을 한 번 해 볼 겸 해서 모르는 길을 따라 갔다. 몇몇 큰 도로 빼고는 전혀 모르는 길이다.

혜화 로터리 맞은편 롯데리아에서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우연히 냅킨으로 얼굴을 문질렀는데 새까만 매연이 적나라하게 묻어 나와 몹시 놀랐다. 서울 시내의 이런 자연 환경 속에서 두꺼운 파운데이션 파우더는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여성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행인을 한 번 치일 뻔 했다. 차들에 가려 사람이 횡단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GPS의 Home 까지 직선 거리 11km 였지만 길을 몰라 도로 이곳저곳으로 가다가 삼청각까지 올라가는 지독한 업힐에서 땀을 바가지로 흘리고 결국 자전거에서 내렸다. 다시 도전. 어쩌다 흘러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흐린 헤드라이트로는 다운힐 할 때 굽이가 안 보여 겁이 나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

터널 둘을 지나 상명대 앞에 다다랐을 때, gps는 전방 8km 지점을 가리켰지만 gps를 무시하고 역주행했다.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내 감을 믿었고 그 감이 맞았다.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나저나 얼마나 헤메 다녔는지 코스가 곰 발바닥 같다.


집 -> 북한산성 -> 송추 -> 의정부 -- [황씨 만남] --> 도봉역 -> 석계역 --[헤어짐]--> 돌곶이역 -> 월곡역 -> 고려대 -> 보문역 -> 동묘역 -> 동대문역 -> 종로5가역 -> 대학로 -> 혜화동 로타리 -> 서울 과학고 -> 삼청각 -> 삼청터널 ->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아 -> 경기상고 -> 자하문터널 -> 상명대 -> 홍제역 -> 녹번 -> 불광 -> 집

63.3km (3h50m, 실제로는 대략 70km), max/avg: 55.5kmh, 15.4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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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도로 일주

잡기 2005. 8. 28. 22:02
가을이다. 올해 독서는 흉작이다.

1박 2일로 강화도에 갔다 오려고 했으나 아내가 연극 보자고 해서 혜화동에서 재미없는 연극을 보고 술을 마셨다. 비단 아저씨는 내가 고민해서 산 자전거인 라레이 기종을 알고 있었다. 저가 모델로 쓸만하단다.

일주일 동안 자전거를 안 타서 몸이 찌뿌둥하고 할 일 안한 기분이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자. 아침 일곱시에 일어났는데 비가 내린다. 아욱국을 끓여 해장하고 눈 좀 붙였다가 다시 깨니 비가 잦아든 상태다. 재빨리 도시락 싸서 집을 나섰다. 자전거 타면서 비를 맞았다. 곧 그쳤다.

반포대교 부근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30번씩 꼭꼭 씹어 먹었다. 30번씩 씹어 삼키면 아무리 보리밥이라도 잘 분쇄되어 방구가 안 나오리라 기대하면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간간이 떨어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비에 천막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내가 도시락을 꺼내 먹자 못볼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침을 꿀꺽 삼킨다. 열두시 이십분. 희롱하는 것처럼 30번씩 천천히 씹으며 냄새를 풍겼다. '정직한' 아이들은 제 부모더러 밥 먹자고 성화다.

음식의 향과 맛을 내는 성분은 지방에 녹아 있는데 이빨로 음식을 분쇄할 때마다 음식 속의 지방 기포가 터지면서 향이 입 천정을 타고 올라가 콧구멍의 세포를 자극한다. 그래서 미식가는 음식을 느긋하게 오래오래 씹는다. 그들은 30번이라고 말했고, 과학자들도 30번 정도라고 말한다.

반포대교 앞에서 공사중인 구조물에서 미끄러졌다. 제동력은 좋은데 접지력이 떨어지는데다 빗물에 젖은 철판 급경사라 자전거가 뒤틀렸다. 패달에서 발을 떼고 날아서 스파이더맨처럼 멋지게 착지했다. 물병은 저만큼 날아갔다. 안 다쳤다.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스파이더맨 역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강북쪽 길은 아기자기하고 햇살에 줄곳 노출되면서 거의 평지인 반면, 강남쪽은 구릉이 있고 그늘이 많다.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이나 애들이 많아 강북 강변도로에 비해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많다. 강남쪽이 전반적으로 물이 좋다. 진작 오는건데. 진작 와서 확 박아버리고 인연의 씨줄 날줄을 새콤하게 엮어보는 건데.

탄천을 지나고 천호대교를 지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광나루 반환점에 이르렀다. 불광천 입구에서 한 시간 30분 걸렸다. 페달링을 거의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 38.62km 지점. 평균속도 25kmh. 놀랍군.


GPS TrackMaker로 뽑은 이동 경로

돌아오는 길은 줄곳 맞바람이라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다리가 뻐근하고, 강남 사람들은 잘 먹어서인지 평균 19kmh로 달리는데도 그들에게 줄곳 추월 당했다. 잠실에서 포도맛 폴라포 하나 사 먹고 여의도에서도 하나 사 먹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천정에 멀끔히 떠 있어 살이 탄다. 날이 흐릴 줄 알고 모자를 안 들고 왔다. 오줌 눗고 화장실 거울을 보니 봉두난발 도깨비 같다.

사람과 차량으로 바글거리는 성산 대교에 이르렀다. 아침에 보고 온 자전거 도로 지도에는 성산대교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것 같은데 주위를 한 동안 빙빙 돌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에라이... 자동차들을 따라 자동차 도로로 들어서서 성산대교로 올라타 인도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다리를 건넜다. 강북쪽 성산대교에는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풍력 발전기인지 바람개비가 돌고 있는 하늘 공원에 올라갈까 하다가 저번 주에 자전거 자물쇠를 잃어버려 자전거를 주차할 수가 없어 집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줏어온 한강 자전거-인라인 코스. 클릭하면 원본 크기. 이런 지도를 다 만들다니... 흐뭇하다.

역촌역 근처의 김치말이 국수집에 들렀다. 함병헌 김치말이 국수 체인점 같은데, 어렸을 때 먹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가족과 예전 옆집이 모두 평안도 사람들이다. 예전에 먹었던 것은 이렇게 화려한 음식이 아니다. 지독하게 소박하고 시큼하고 위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음식점에서 먹은 김치말이 국수는 갖가지 부재료 때문에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5천원 받는다. 14가지 부재료 탓이겠지 싶다.

마치 포호아에서 먹어본 쌀국수 같달까? 한국의 포호아 국수는 무슨 궁중요리 같다. 베트남에서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육수를 붓고 고명으로 고기 한 점 얹어 내 주면, 숙주와 파와 고수를 내 손으로 대충 집어 지저분한 사발에 듬뿍 담아 조그만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후루룩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것과는 영 딴판이다 -- 길거리에서 먹던 2000동 짜리 국수(130원)가 한국에서 포호아식 궁중요리가 되면 8천5백원이 된다. 맛은 포호아가 낫다. 포장마차에서 2-3천원에 팔면 얼마나 좋을까...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했더니 모니터 앞에서 졸았다. 마누라가 얼굴 팩 해주고 흰 머리를 뽑아주고 다리를 주물러줬다. 수퍼 가서 우유 사오라고 말했다. 단백질이 필요하다.

주행거리 79.4km, 주행시간 4h20m, 평균속도 18.6kmh, 최대속도 29.2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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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질 백날 해봤자,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을 고작 2년 동안 몇백 개 안 되는 에피소드로 이해할 수 없다. 는 가정을 바탕에 두고 있다. 알 수 없을까? 에르디시는 가기 전까지 천진난만하게 그래프를 연구했다. 잠시 수학사에 길이 남을 그 할아범에게 안부 인사하고. 뇌의 시냅스 접합은 초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무작위적으로 구성되는 그래프와 같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시 아무렇게나 시냅스 하이웨이가 뚫리면서 언어와 의식과 이성이 개미집처럼 형성된다 -- 음악을 듣고 글을 보고 타인의 감정을 경험하면서 현란한 색채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는 타인의 언어와 사고로부터 찬란한 색깔의 향연을 보는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이 세상에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언덕을 넘으면 펼쳐질 새로운 풍경을 기대하고 있다 -- 그래서 남의 블로그질을 관람하는 심심한 사람들도 많다. 어떤 말더듬이 오타쿠가 독신남 게시판 사람들의 성원과 도움을 받아 연애하면서 거듭 사는 얘기가 '전차남'인데, 간판 음악이 어? 어디서 많이 듣던건데? ELO, Twilight (3:42) 전차남은 오타쿠, 인터넷 찌질이들에게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셈인가?


이 하한선은 일상 생활에도 있다. 인간이 공적 영역에서 자신을 표출하는 방식에는 언제나 하한선이 있다. ... 그래서 나는 적어도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는 하한선이 없다고 말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점잖은 타입보다는 그걸 솔직히 밝히는 뻔뻔하게 솔직한 타입을 좋아한다. ...

-- 말하지 않은 현실의 하한선 중. 이 양반 글, 틈이 생기면 읽으면서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즐겼다. 순수하게, 재밌다. 그런데 쿨한(정말 썰렁하다) 여류 마초물인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재간된 건가?


이 엔트리의 제목인 '어쩌다 떠오른 씬의 집합'은 '말하지 않는 현실의 하한선'에 대한 정확한 대척점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핵심어휘와 구결은 반말로 끝나는 것이 올바르다: 역설적으로 '하한선이 없는' 뻔뻔한 블로그질을 하는 나로서는 지금 하는 짓에 결맞는 비유가 있긴 하다... 타인을 희롱하는 일을 관둔 것처럼 자신을 희롱하며 즐기는 것도 관둬야겠지? 생략. 그 대신 뉴턴 역학 만큼이나 세간에 유명한 법칙;

1. 너는 이길 수 없다.
2. 너는 본전도 건질 수 없다.
3. 너는 이 바닥을 떠날 수 없다.

도박의 법칙, 오타쿠의 법칙, 로또의 법칙, 게시판의 법칙, 프로그래밍의 법칙, 게임의 법칙, 생명의 법칙, 연애의 법칙, 등등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227k원 주고 LCD 모니터를 하나 샀다. 스펙을 교차 비교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17인치, dvi, 8ms, 300칸델라, 명암비 700:1, 삼성 패널. 마누라는 델 모니터보다 스펙이 더 좋은 그 모니터를 쳐다보더니 구리다고 말한다. 델 모니터에 비해 값이 훨씬 싸니까. 마누라가 사준다는 거니까, 주도면밀하게 훈련된 합리적 이성으로 대들지 않고 무시했다. 이제는 대낮에 일 하다가 햇빛에 반사된 흐릿한 모니터 화면 때문에 창문에 블라인더를 치고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55k원 주고 dvd+-rw 드라이브도 하나 샀다. dvd-r 미디어 가격이 장당 280원, 용량은 4.2GB, 작업한 파일들+홈페이지 백업하면 2.1GB쯤 되니까 280원에 값싸게 백업할 수 있겠다. dvd-r 미디어가 그렇게까지 싸진 줄은 몰랐다. 그러나 dvd-r은 다른 용도로 쓰기로 하고, 백업용으로 재기록 가능한 dvd+rw 미디어를 열 장 더 샀다. 장당 950원.

용산 가서 한 시간 만에 30만원 쓰고 손이 덜덜 떨렸는데 '여기서 담배 피우면 첫 적발시 만원, 두번째 이만원, 세번째 삼만원 -- 상우회 일동' 게시물 앞에서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진정했다. 벌금은 차수마다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메기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벌금이 덜 바람직하고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내라고 하면 개길 것 같다.

길에서 내 나이 또래의 네팔 사람을 만났다. 모르는 길을 묻길래 그냥 보내기 뭣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가는 길을 알려줬다. 네팔의 또라이 국왕이나 또라이 마오이스트 때문에 네팔리들 고생이 많다. 담배 한 대 권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고맙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절한다. 한국에서는 개, 고양이, 제 3세계 외국인들은 사람을 피해 기가 죽어 빌빌 거리는 경향이 있다. 그나저나 올해 복날 즈음해서 먹은 개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몇 년 만에 입에 착착 달라붙는 쫄깃하고 제대로 된 수육을 즐겼다. 네팔리가 묻던 길이 그... 줄 서서 먹는다는 맛있는 개고기 집이 있는 공덕 부근이다.

손수 목욕하고 동거동락한 애완견도 털 뽑고 삶으면 그냥 고기다. 잘 키워 잡아먹는 닭이나 30년간 외양간에서 주인 할아버지와 동거동락하며 정을 나누고 끝내 죽어서도 쓸모가 생기는 소(고기)를 연상하면 되지 싶다. 어렸을 적에 도살 구경을 하고, 손수 먹거리를 '제작'하며 자라서인지 살아서 꿀꿀 거리는 돼지와 마트에 진열된 포장된 베이컨을 굳이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 때문에 마누라가 내 눈에 가끔 살기가 돈다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기는 아니고, 무언가를 긍정적이고 맛있게 바라보는 건강하고 생생한 삶의 증거가 눈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뒷골목 갱들과 찌질이들은 자기가 그런다고 타인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룰이 있다.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긍정적이고 맛있게 바라보는 건강하고 생생한 삶의 증거'가 눈을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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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잡기 2005. 8. 23. 00:08
국산 병맥주를 어떻게 해 먹어야 맛있을까. 아니면 국산 병맥주를 화공약품 같다고 느끼는 내 입맛이 영 황이던가. 여름 내내 큰 유리 글래스에 매끈한 얼음을 듬뿍 넣고 거기에 옅은 호박색으로 반짝이는 테카테를 술술 따라 마시고 싶었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광장 곁 레스토랑에는 마리아치의 연주가 들려온다. 신선한 바람 냄새를 맡으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사방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리고 탁자마다 꽃다발이 놓여 있다. 배 나오고 콧수염을 기른 휴머노이드 서비터가 다가와 탁자마다 촛불을 하나 둘씩 켠다. 오버차징의 다크포스가 희미하게 풍겨온다. 피곤한데 또 공정함으로 떡칠한 포스를 사용해야 하나? 몇 년 전 일인데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저번주 목요일에 돼지고기를 3kg 사서(너무 많이 사서) 지인들을 불렀다. 옥상에 올라가 휴대용 가스렌지를 놓고 돌판에 지져 먹는데, 맛이 없다. 비가 사랑사랑 내렸다. 늦게 오는 김씨 아저씨더러 올 때 숯을 사오라고 했다. 작년에 6천원인가 9천원인가 주고 숯불구이를 해 먹을 수 있는 가로 40cm x 세로 60cm 그릴을 싸게 사놓고 여름이 다 가도록 써먹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에 안 들어가고 개겼다. 인간은 늘 자연에 맞짱 떴다. 우산을 들고 나왔다. 젖어가는 종이로 숯을 태워 보려 애썼지만 연기만 뭉글뭉글 난다. 10분쯤 고생하다가 렌지에 숯을 구워 새빨갛게 타오를 때쯤 그릴로 옮겼다. 진작 이렇게 할껄. 날이 어두워져 가스 랜턴을 켰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 속에서 각자 우산을 든 채 지저분한 플라스틱 두부 상자를 엎어놓고 앉아 흐릿한 랜턴 빛 속에서 빗물 반, 소주 반 들어간 잔을 기울이며 고기를 구워 먹었다. 숯불에 구우니까 돌판에 지질 때와 달리 꽤 맛있다. 입가심으로 얼린 맥주를 한 잔씩 했다. 다 먹고 나니까 비가 그쳤다. 누가 봐도 난이도 높은 처절 OTL 궁상일 것이다.

옥상에서 뭔가 구워 먹으려 할 때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비가 오니까 시원해서 좋다. 술이 안 취하고, 셋이서 2.5kg을 먹어 치웠으니 꽤나 먹은 것이다.

난 좋았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 자전거를 몰고 나가 63빌딩 맞은편에서 해 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저번 주에 빗 속에서 술을 마실 때 날더러 자전거 타는 걸 강요하지 말라고 김씨 아저씨가 주장했다. 강요한 것은 아니고 내가 본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지만 잘 된 적이 없다. 내가 뭘하든 다들 오지에서 죽어라고 고생만 한 줄 안다. 고생만 죽어라고 하고 감동과 기쁨은 쥐꼬리만큼 얻었으니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것이겠지?



아내가 나하고 여행을 같이 다니지 않게 된 것도 사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퀴퀴하고 값싼 숙소나 돌아다니고 죽어라고 걷기만 해서다. 별일 없으면 하루종일 걷는다. 그렇게 걸어서 돌덩이만 잔뜩 있는 곳에 도착하여 알렉산더 더 싸이코와 헬레니즘이 어쨌고 아람어와 향료길이 어쩌고 천연 요새로서의 카즈네의 가치 따위의 얘기나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니까 더더욱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 위대한 고대도시, 다마스커스에서 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맛이 가서 현기증을 느끼며 거리를 정처없이 헤메는 동안, 그는 숙소에서 여독에 지친 몸을 뉘었다. 향료 시장을 보았다. 물담배를 피우며 한가하게 잡담을 늘어놓는 수크의 상인들을 보았다. 언덕에 늘어선 고대의 집들을 보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의 매연을 보았다. 삼천년 전의 바로 그 방식으로 구리 등잔을 장식하는 장인을 보았다. 이 땅에 전해진 이집트식 문간 장식을 보았다. 그리스 정교와 유태인과 무슬림과 가톨릭과 크리스찬이 한 구획에서 사이좋은 이웃처럼 함께 지붕을 맞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오! 경악스럽게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우마야드 모스크! 어떻게 해서 그것들이 '관광화'되지 않고 아직까지 원형 그대로 전승될 수 있었을까? 이스탄불에서 본 동서양의 융합은 이미 박물관의 말라 비틀어진 미라였는데. 터키에서 본 그리스는 폐허였는데! <-- 이렇게 적으면 좀 나아 보이려나? 메스껍군.

그야...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과정의 '역학'도, 길을 벗어난 모험도, 길가의 인연도, 길 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도. 내 여행 주제가 사랑과 모험이었고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남들 생각하는 바대로 고생만 죽어라고 하고 감동과 기쁨, 그리고 현기증은 쥐꼬리만큼 얻었을 뿐이겠지.

엊그제는 술 먹다가 무지개를 보고 흐뭇했다. 곧이어 김씨 아저씨가 지나가는 전두환을 봤다길래 술맛을 잃었다.

일요일에는 그 동안 밀린 책들을 읽었고 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최근엔 늘 그랬다. 옛날에 한 울티마에는 브리타니아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하릴없이 TV 채널을 돌리며 지겨워 하는 모습이 있었다.

저녁에 책을 덮고 유선방송의 낚시채널에서 '사할린 원정 연어 제물 낚시'를 구경했다. 그는 두 종류의 미끼를 사용했다. 맑고 투명한 물 속으로 연어들이 떼지어 상류로 올라간다. 산란철이다. 인적이 없다. 그의 곁에 곰 발자국이 생생하게 찍혀 있다(이런 젠장할). 저녁에는 물고기 내장을 들어내고 깨끗이 씻은 후 잎으로 싸고 진흙을 발라 구워 먹었다. 하루 종일 낚시질 해서 두 마리를 간신히 낚는다.

종종 낚시 채널을 구경했다. 그들은 고생만 열나게 하고 많은 경우 실패한다. 모기에 물리고 곰에 쫓기고 미끄러져 물에 엎어지고 꾸벅꾸벅 졸다가 낚싯대가 떠내려가고 계곡에서 고립되고 파도에 휩쓸리고 배멀미로 웩웩 거리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해서 간신히 한두 마리 낚는다. 거의 한 시간 동안(실제로는 하루종일) 그들은 물고기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소가 적당한지, 먹이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지 온갖 종류의 가설과 체득한 지난 경험을 얘기한다. 낚시질이 끝나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고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껄껄 웃으면서 애기한다. 잡은 고기는 '캐치 앤 릴리즈' 원칙대로 풀어준다. 방송이라서 그럴까? 나 같으면 연어알을 꾹 짜내 쌈 싸 먹고, 회 뜨고 ,구워, 레몬즙을 뿌리는 등 온갖 음식을 다 해먹었을 것이다. 어떻게 잡은 고긴데.

등산 채널이 없는 것이(안 나오는 것이) 다행이다.
여행 채널이 없는 것도(안 나오는 것도) 다행이다.

낚시는 낚는 물고기나 있지, 여행이나 등산이나 자전거 여행은 TV 화면으로 보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어떤 분야든, 생고독이 기본인 아웃도어 장르는 카메라가 피사체에 닿으면 마치 매크로적 불확정성 원리처럼 만사가 확 뒤틀어진다. 그뿐이랴. 글로 읽으면 더 시시하기만 하다. 왜 시시할까? 가볼 만한(가 보고 싶은) 장소에 서 있던 그들이 글 잘 쓰는 작가가 아니니까. 한국 소설도 재미가 없어서 안 읽는데 글도 제대로 못 쓴 걸 읽으면 재미가 있겠나. 본인이나 보람차고 재미있겠지. 글에는 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아무리 사진을 쑤셔 박고 빼놓은 것 없이 세심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각자가 하는 여행은 각자의 경험과 사고가 반영되는 것이라 글을 읽는 독자가 간접적으로 느끼고 상상한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착시는 그렇게 생긴다.

인도 여행 초기에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보고 인도에 온 사람들이 많다. 워낙 재밌게 써서 인도가 정말 그런줄 알고 온 사람들이다. 대단한 글이다. 아주 가끔 여행자들은 류시화가 쓴 글의 폐해를 얘기한다. 류시화가 워낙 '그럴 듯 하게' 묘사해 놓는 바람에 인도에서의 체험이 류시화를 통해 '투영'되는 것이다. 차라리 안 읽고 왔더라면 '몇 페이지 몇째 줄에 류시화가 써 놓은 바로 그것'이 아니라 훨씬 생생하고 강렬한 문화적 충격을 길바닥에서 얻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킹피셔 맥주병으로 머리를 맞고 기절한 여행자도 있다.

인도여행에 얽힌 아주 오래된(사실 아직도 그 얘기가 나와 이제는 지긋지긋한) 괴담이 하나 있는데, 인도 남자가 접근해 여자 여행자에게 수면제를 먹여 납치한 다음 팔 다리를 잘라 사창가에서 방에 가둬놓고 손님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종된 한국 여성 여행자를 그 사창가에서 봤는데 자기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더라... 뭐 그런 얘기.

여자애가 인도 어느 지방을 여행 중 사망했다. 며칠 후에 발견되었는데 사인은 불확실하고 며칠 동안 숙소에 방치된 시신이 더운 날씨에 썩어가기 시작해 부모님이 시신을 이송할 때까지 한국인 몇몇 사람들이 얼음을 사다가 담궈 놓았다. 실화다. 몇 명이 함께 인도에 놀러갔는데, 그 중 한 친구가 기차에 매달려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람을 쐬고 있다가 목 윗부분이 없어졌다. 어디 부딪혀 부러진 것이다. 그걸 발견한 동행들은 넋이 나갔다. 역시 실화다. 신문에는 몇 줄 안 나오지만 여행지에서는 여행자를 통해 이 얘기 저 얘기를 구체적으로 듣는다. 사지 잘라서 사창가에 팔아넘긴다는 얘기는 사실 여부가 확인된 적 없다. 아무튼 저런 여행자 얘기가 내 얘기도 될 수 있는 정도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한 것이다.

올 봄에 미얀마 여행 가면서 들고간 것이라곤 프린트물 달랑 하나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유적지 정보 외에는 쳐다보지 않았다. 아내가 하도 뭐라고 해서(가이드북 없으면 시체 같은? 글쎄 내 자평에 신뢰성이 없겠지만 나는 준서바이벌 전문가고 사람 사귀는 일에 불편이나 어려움을 겪어본 적 없다. 음... 상대가 불편하겠지) 이번에는 숙소, 레스토랑, 교통수단에 관한 사전 정보 없이 돌아 다녔다. 그랬더니 사람은 떼로 만났는데 별 정보가 없고 재미도 없었다. 혼자 돌아다니는게 편하다. 여행자들 만나서 여행 얘기 하는게 썩 내키지 않는 탓도 있다 -- 마치 두 오따꾸가 만나 오뎃사 작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왈가왈부 하는 것 처럼 들려서.

굳이 안 그래도 만날 사람은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편하다. 눈빛 한 번 오고가면 대화의 절반이 끝나는 종류의, 피차 귀찮게 말 안 걸어도 되는 사람들. 웨얼 아 유 고잉? 투 만달레이. 아이 씨. 하우 어바웃 유? 암 고잉 투 방콕 투모로우. 굿 럭. 굿 럭. 헤이, 두 유 노 웨얼 아 캔 파인드 굿 레스토랑? 저스트 아웃사이드 프람 디스 게스트하우스, 유 윌 씨 더 베스트 레스토랑 인 타운. 더 네임 이즈... 아이 씽크... 베어 리얼리 라이크 데드 피셔맨스 미트. -끝- 깔끔하고 콘텐트풀하군.

여행은 스스로 해 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은 저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고생 죽어라고 했던 부분은 만국공통이다 -- 따라서 여행기에 고생한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여행하면서 혼자 재처리 농축되고 단물빠진 질긴 껌처럼 고독을 잘근잘근 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먹지도 공감하지도 않을 부분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기에 '아름답다'느니 '감동적이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단 한 두 문장을 굳이 장황하게 늘려 적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취향에 안 맞는다. 고로, 내 여행기에는 고생한 얘기만 있다.

갈 생각 없는 사람은 생각 없는 시체가 되도 어디 안 간다. 여행을 하다보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보고 듣고 느낄 감수성이 애당초 있던 것이... 그만 입 다물고,

너나 잘 하세요

-- 친절하기 짝이 없는 금자씨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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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귀엽고, 맛있어 보이는 여자

2. 상처받는것. 상처주는것. 어떤입장에 서고싶습니까? 이익이 되는 쪽.

3. 눈동자색깔을 바꾼다면 무슨색으로? 무아딥처럼 푸른 눈.

4. 음악을 들으면서 자살한다면 틀고싶은 BGM은? (풍경을 흔드는) 적당한 바람 소리로 충분.

5. 자살을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여섯 재생의 문을 닫고 스스로 심장을 멈춰서.

6. 영원을 믿습니까?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우정 같은 어린 계집애들이 신경쓰는 것에 큰 관심 없는 편.

7. 소리내며 우는 편입니까? 눈물만

8. 아침에 눈을 뜨는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것은? 3년째 꾸고 있는 어떤 행성에 관한 오래된 꿈.

9. 짝사랑이란? 변태 성행위

11.거짓말... 자주 합니까? 안 해

12. 20년후의 당신은 어떤 모습? 마징가Z

13.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열하시오. '좋아하는' 단어 없음

14. 증오하는 단어들을 나열하시오. 좋아하거나 증오하는 단어 없음. 단어나 개념은 내 눈에는 균질적이고 균등함.

15. 당신이 끝까지 믿고있는것이 있다면? 나와 너의 의심과 회의, 공포. 그리고 '눈이 맞았다'고 할 때의 그 눈빛.

16. 몸에 상처가있는가.. 이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주 많음(심지어 사람한테 물린 자국도 있음).

17. 변하고 싶습니까? 때가 되면 알아서 변했음.

18. 당신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제목과 장르는? '딥스페이스 모비딕'이나 'FTL 너머의 악마' 정도가 괜찮지 싶어. 일단 땅바닥에서 발을 떼야 하고, 장르는 스페이스 오페라 마초물로.

19. 만약 정신병을 앓고있다면 병명은? 제정신이란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곤 했어.

20. 인생의 황홀경은 언제? 어린 시절에는 시도 때도 없이 '깨달았지'.

21. 종종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들은? 마누라

22.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약은? '당장', '필요'할 정도는 아니지만, 하시시 한 모금이 그립군. 정정: 한 모금은 궁상스러우니까 대여섯 모금으로...

23. 피(BLOOD) 를 봤을때 드는 생각은? 음... 선지 해장국?

24. 신이 존재한다면 당장 해주고 싶은 한마디는? 뭐 딱히 할 말은 없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겠지.

25. 비밀이 많은 편입니까? 기억나지 않아요

26. 신체에 문신을 한다면 어느 부위에? 이마와 볼. 양영순의 1001에 나오는 그런...

27. 버리고싶은게 있다면? 똥과 오줌

28. 당신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곳? 해바라기 밭

29. 현재 중독된것이 있다면? 없음.

30. 오늘밤 꾸고싶은 꿈이 있다면? 다시다 부인, 그래, 이 맛이야!

31. 개인적으로 문답 하라고 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잘 안 물어보는데, 말 하면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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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과 자각

잡기 2005. 8. 17. 21:07
이제야 핸드폰 사진과 gps를 꺼내 데이터를 뽑았다. 출장 다니고 살 찌우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여행 기간 중 나름대로 신경 쓴 주행 복장. 굳이 말 안 해도 애들이 흉내낼 것 같지는 않다. 모자가 황이었다. 바람에 펄럭여 시야를 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보자. 눈빛 만큼은 그래도 싱싱하게 살아있지 않은가??


경주 동대 황토 찜질방. 나흘 여행하고 사진을 너무 안 찍은 것 같아 막판에 두 장 정도는 찍어주는 센스.


멕시코 티후아나 동쪽으로 278km 떨어진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위치한 라쿠카라차 황토 찜질방 분위기로 바꿔 봤다.


긴 여행을 마치고 라쿠카라차 황토 찜질방의 미딛이 문을 열고 들어선 자전거 강도는 어깨에 묻은 모래먼지를 툭툭 털고 모자를 살짝 들어 찜질방 안을 둘러본다.

장난은 그만하고,
동해안 주행의 실패 요인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반성.

1. 지구력 -- 연습 중 기어 변속에 문제가 있었다. 앞 기어를 2단으로 놓고 꾸준히 밟아주는 연습을 했어야 하는데 3단에 놓으니 높은 기어비를 가지게 되어 무리하게 힘을 가하면서 근육이 쉽게 피로해지고 안정적인 케이던스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기어 변속이 잘 안 이루어지니 업힐이 연속되는 구간에서 힘의 분배가 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구력 보강은 물론 충분한 유산소 운동을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할 것이다.

2. 음식과 수분 -- 2-3시간의 주행으로도 쉽게 허기를 느꼈다. 주행 1-2시간 전에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고(탄수화물:지방=6:4) 에너지바나 쵸코바를 몇 개 준비해 가는 정도의 대비는 있어야 할 것이다. 10시간 동안 4-5kg의 체중이 빠진 것이 애들 말대로 '어의'가 없다. 더위 속에서 주행을 계속해 가기 위해 시간당 450ml 분량의 수분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과도한 수분 섭취가 오히려 몸을 무겁게 할 꺼라는 오해 때문에 물 섭취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 햇살이 쨍쨍한 35도의 더위에서 무슨 깡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희안한 것은 동해-울진 간 10시간 주행 후 찜질방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도 그 다음날 알이 배기거나 근육의 피로 등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햇살에 다리가 타서 욱신 거리는 것이 귀찮은 정도? 적어도 3주 동안 하루에 한두 시간씩 자전거를 탄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지구력을 키우고 업힐 연습을 좀 더 하자. 돌아오고 나서 체중은 아주 빨리 회복되었고(아마도 체중이 감소한 것은 수분의 증발 때문인 것 같다) 옆구리와 뱃살의 지방층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놀랍다.

GPS trackmaker를 사용해 GPS에 남아있는 tracklog를 다운 받고 구간을 제대로 정리한 후 살펴 보았다.


8/15 남부 고속터미널에서 불광천 자전거 도로가 끝날 때까지의 약 18km 동안의 주행 중 고도 변화 그래프. 강변 자전거 도로는 해발 20m 수준의 평탄한 지형이다. 6km와 8km 지점, 다리 밑에서 쉬면서 gps가 시그널을 받지 못해 고도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집에서 남부터미널까지 22.45km, 주행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

gps의 성능 향상을 위해 보조 안테나의 장착을 고려해 봐야겠다. 오차가 크고 빌딩숲이나 산간 트래킹 중에는 토끼 현상이 일어나서 gps에 찍힌 최고속도가 113km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주행 중 순간속도가 45kmh를 넘은 일은 없다. 일부분은 모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굽이굽이 마다 브레이크를 잡은 탓도 있고 일부는 자전거 핸들 바에 장착한 가방에 부딪이는 바람의 저항으로 자연감속 되기도 했다. 맞바람에 저항하느라 체력의 2-30%가 (실없이) 소비된다는 글을 읽었다. 핸들이 무겁고 공기 저항이 있는 등 자전거 가방이 그리 좋아뵈지 않는다. 차라리 짐을 줄이고(옷가지를 없애고) 간단한 전용 자전거 가방을 등에 메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8/14 경주 불국사-보문관광단지-경주 시내 코스. 고도 변화가 비교적 완만하며 업힐 구간은 2km에 이르는, 단 하나 밖에 없다. 시내-불국사 구간은 gps를 켜지 않아 트랙 로그가 남아있지 않으나 대략 18km, 거의 평탄하고 토함산 부근에 이르러 오르막길. 즉, 이 반토막짜리 그래프에 따르면 경주-불국사-보문관광단지-경주 라는 코스가 가장 이상적이다.

불국사에서 보문관광단지를 거쳐 시내에 이를 때도 대략 18km, 합계 36km 가량으로 3시간 정도면 경주 시내 전역의 유적지와 불국사를 주파할 수 있는, 상당히 편하고 훌륭한 코스다. 경주에 놀러 가면 터미널 앞에 즐비한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 한 대 빌려 하룻 동안 여기저기 둘러보고 하룻밤 묵고 다음날 올라오는 코스로 괜찮아 보인다. 자전거 대여료가 비싸니(하루가 14000원 이던가?) 나 같으면 자전거를 버스에 실어 가겠지만.


8/13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자료로 남기려고 부러 맵 매칭을 하고 고도추이도를 붙여 만들어 봤다. 동해시에서 울진군 시내까지 주요 언덕구간은 총 11개, 거리는 81.76km(이 거리는 지도 평면상의 단순 거리(78.5km)가 아닌 실제 고도 고저차가 반영된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거리다), (내 경우) 주행시간 7시간 30분 가량.

그림 한 장 만들어 놓으니 한 눈에 확 들어와서 좋구나. 그나저나 이런 자료는 국내 웹에서 찾아봤는데 안 보인다. 티벳-카트만두 사이에는 훌륭한 자전거 지도가 있더라. 사실 자전거 타고 연습 좀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 티벳-카트만두 구간을 자전거로 간다는 기획을 올린 한 여행사의 야심찬(항간에는 미쳤다는) 기획안을 보고, 또 어떤 회장 아저씨가 빌려준 멋진 네팔, 티벳 자전거 지도를 보고 나서다.

자전거 타는 친구들이 통 gps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고, 자전거 도로를 편찬하는 회사가 국내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주먹구구식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 같은데,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그 모양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자만심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으로 동해안 일주에 실패했지만, 나름대로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특히 주문진에서 삼척 아래까지 즐비하게 널려있는 해수욕장들은 사람들이 바글거렸지만 울진 부근의 해수욕장은 사람도 없고 접근도 편하고 심지어 입장료도 안 받아 마음대로 들락거렸다 -- 왜 삼척 윗 부분에서만 바글거리는지들 모르겠다 좋은 해수욕장이 아랫 지방에 즐비하고 같은 '동해안'인데. 비록 하루 뿐이지만 물놀이는 네 차례나 즐긴 셈이 되었다.

7/28: 39.900km (2h43m) max: 32.3kmh, avg.: 14.6kmh
8/17: 30.185km (1h38m) max: 55.1kmh, avg.: 17.9kmh

이런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 오늘은 내리막길에서 좀 밟았다. 60kmh가 충분히 나올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러나 평지에서 아무리 페들링을 열심히 해도 50kmh를 넘기지 못했다. 덕분에 젖산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젖산은 심하게 근육을 움직이면 15~18초 후부터 생성된다고 한다. 이 값을 잘 알아두면 인터벌 트레이닝할 때 쓸모가 있다. 15초 이내로 업힐에서 전력 질주, 3분 쉬고 반복, 을 계속 연습하는 것.


자주 가는 송추계곡의 주행 고도 변화도. 계곡까지 왕복하고 돌아오는 코스이므로 대칭을 이루는데 양단의 가는 코스와 돌아오는 코스가 조금 다르고, gps의 오차로 완전한 대칭은 아니다. 아무튼, 이 따위로 딱 하나 밖에 없는 업힐로 하루에 고작 한 번 연습했더니 실전에서 작살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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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핸드폰 사진과 gps를 꺼내 데이터를 뽑았다. 출장 다니고 살 찌우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여행 기간 중 나름대로 신경 쓴 주행 복장. 굳이 말 안 해도 애들이 흉내낼 것 같지는 않다. 모자가 황이었다. 바람에 펄럭여 시야를 가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보자. 눈빛 만큼은 그래도 싱싱하게 살아있지 않은가??



경주 동대 황토 찜질방. 나흘 여행하고 사진을 너무 안 찍은 것 같아 막판에 두 장 정도는 찍어주는 센스.



멕시코 티후아나 동쪽으로 278km 떨어진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위치한 라쿠카라차 황토 찜질방 분위기로 바꿔 봤다.



긴 여행을 마치고 라쿠카라차 황토 찜질방의 미딛이 문을 열고 들어선 자전거 강도는 어깨에 묻은 모래먼지를 툭툭 털고 모자를 살짝 들어 찜질방 안을 둘러본다.

장난은 그만하고,
동해안 주행의 실패 요인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한 반성.

1. 지구력 -- 연습 중 기어 변속에 문제가 있었다. 앞 기어를 2단으로 놓고 꾸준히 밟아주는 연습을 했어야 하는데 3단에 놓으니 높은 기어비를 가지게 되어 무리하게 힘을 가하면서 근육이 쉽게 피로해지고 안정적인 케이던스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기어 변속이 잘 안 이루어지니 업힐이 연속되는 구간에서 힘의 분배가 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구력 보강은 물론 충분한 유산소 운동을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할 것이다.

2. 음식과 수분 -- 2-3시간의 주행으로도 쉽게 허기를 느꼈다. 주행 1-2시간 전에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고(탄수화물:지방=6:4) 에너지바나 쵸코바를 몇 개 준비해 가는 정도의 대비는 있어야 할 것이다. 10시간 동안 4-5kg의 체중이 빠진 것이 애들 말대로 '어의'가 없다. 더위 속에서 주행을 계속해 가기 위해 시간당 450ml 분량의 수분을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았다. 과도한 수분 섭취가 오히려 몸을 무겁게 할 꺼라는 오해 때문에 물 섭취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 햇살이 쨍쨍한 35도의 더위에서 무슨 깡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희안한 것은 동해-울진 간 10시간 주행 후 찜질방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도 그 다음날 알이 배기거나 근육의 피로 등으로 고생하지 않았다. 햇살에 다리가 타서 욱신 거리는 것이 귀찮은 정도? 적어도 3주 동안 하루에 한두 시간씩 자전거를 탄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지구력을 키우고 업힐 연습을 좀 더 하자. 돌아오고 나서 체중은 아주 빨리 회복되었고(아마도 체중이 감소한 것은 수분의 증발 때문인 것 같다) 옆구리와 뱃살의 지방층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놀랍다.

GPS trackmaker를 사용해 GPS에 남아있는 tracklog를 다운 받고 구간을 제대로 정리한 후 살펴 보았다.



8/15 남부 고속터미널에서 불광천 자전거 도로가 끝날 때까지의 약 18km 동안의 주행 중 고도 변화 그래프. 강변 자전거 도로는 해발 20m 수준의 평탄한 지형이다. 6km와 8km 지점, 다리 밑에서 쉬면서 gps가 시그널을 받지 못해 고도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집에서 남부터미널까지 22.45km, 주행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

gps의 성능 향상을 위해 보조 안테나의 장착을 고려해 봐야겠다. 오차가 크고 빌딩숲이나 산간 트래킹 중에는 토끼 현상이 일어나서 gps에 찍힌 최고속도가 113km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주행 중 순간속도가 45kmh를 넘은 일은 없다. 일부분은 모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굽이굽이 마다 브레이크를 잡은 탓도 있고 일부는 자전거 핸들 바에 장착한 가방에 부딪이는 바람의 저항으로 자연감속 되기도 했다. 맞바람에 저항하느라 체력의 2-30%가 (실없이) 소비된다는 글을 읽었다. 핸들이 무겁고 공기 저항이 있는 등 자전거 가방이 그리 좋아뵈지 않는다. 차라리 짐을 줄이고(옷가지를 없애고) 간단한 전용 자전거 가방을 등에 메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8/14 경주 불국사-보문관광단지-경주 시내 코스. 고도 변화가 비교적 완만하며 업힐 구간은 2km에 이르는, 단 하나 밖에 없다. 시내-불국사 구간은 gps를 켜지 않아 트랙 로그가 남아있지 않으나 대략 18km, 거의 평탄하고 토함산 부근에 이르러 오르막길. 즉, 이 반토막짜리 그래프에 따르면 경주-불국사-보문관광단지-경주 라는 코스가 가장 이상적이다.

불국사에서 보문관광단지를 거쳐 시내에 이를 때도 대략 18km, 합계 36km 가량으로 3시간 정도면 경주 시내 전역의 유적지와 불국사를 주파할 수 있는, 상당히 편하고 훌륭한 코스다. 경주에 놀러 가면 터미널 앞에 즐비한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 한 대 빌려 하룻 동안 여기저기 둘러보고 하룻밤 묵고 다음날 올라오는 코스로 괜찮아 보인다. 자전거 대여료가 비싸니(하루가 14000원 이던가?) 나 같으면 자전거를 버스에 실어 가겠지만.



8/13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자료로 남기려고 부러 맵 매칭을 하고 고도추이도를 붙여 만들어 봤다. 동해시에서 울진군 시내까지 주요 언덕구간은 총 11개, 거리는 81.76km(이 거리는 지도 평면상의 단순 거리(78.5km)가 아닌 실제 고도 고저차가 반영된 아주~ 정확하고 훌륭한 거리다), (내 경우) 주행시간 7시간 30분 가량.

그림 한 장 만들어 놓으니 한 눈에 확 들어와서 좋구나. 그나저나 이런 자료는 국내 웹에서 찾아봤는데 안 보인다. 티벳-카트만두 사이에는 훌륭한 자전거 지도가 있더라. 사실 자전거 타고 연습 좀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 티벳-카트만두 구간을 자전거로 간다는 기획을 올린 한 여행사의 야심찬(항간에는 미쳤다는) 기획안을 보고, 또 어떤 회장 아저씨가 빌려준 멋진 네팔, 티벳 자전거 지도를 보고 나서다.

자전거 타는 친구들이 통 gps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고, 자전거 도로를 편찬하는 회사가 국내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주먹구구식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 같은데,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그 모양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자만심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으로 동해안 일주에 실패했지만, 나름대로 즐겁고 신나는 경험이었다. 특히 주문진에서 삼척 아래까지 즐비하게 널려있는 해수욕장들은 사람들이 바글거렸지만 울진 부근의 해수욕장은 사람도 없고 접근도 편하고 심지어 입장료도 안 받아 마음대로 들락거렸다 -- 왜 삼척 윗 부분에서만 바글거리는지들 모르겠다 좋은 해수욕장이 아랫 지방에 즐비하고 같은 '동해안'인데. 비록 하루 뿐이지만 물놀이는 네 차례나 즐긴 셈이 되었다.

7/28: 39.900km (2h43m) max: 32.3kmh, avg.: 14.6kmh
8/17: 30.185km (1h38m) max: 55.1kmh, avg.: 17.9kmh

이런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 오늘은 내리막길에서 좀 밟았다. 60kmh가 충분히 나올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러나 평지에서 아무리 페들링을 열심히 해도 50kmh를 넘기지 못했다. 덕분에 젖산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젖산은 심하게 근육을 움직이면 15~18초 후부터 생성된다고 한다. 이 값을 잘 알아두면 인터벌 트레이닝할 때 쓸모가 있다. 15초 이내로 업힐에서 전력 질주, 3분 쉬고 반복, 을 계속 연습하는 것.



자주 가는 송추계곡의 주행 고도 변화도. 계곡까지 왕복하고 돌아오는 코스이므로 대칭을 이루는데 양단의 가는 코스와 돌아오는 코스가 조금 다르고, gps의 오차로 완전한 대칭은 아니다. 아무튼, 이 따위로 딱 하나 밖에 없는 업힐로 하루에 고작 한 번 연습했더니 실전에서 작살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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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술자리에서 부른다. 스티프(stiff, 시체)를 읽으며 낄낄 거리다가 버스를 잘못 탔다. 간만에 웃기는 책이다. 택시로 갈아 타면서 그 동안의 트레이닝이 효과가 있는지, 내일 연습 삼아 동해안에 가볼까 생각했다. 황가는 50cc 오토바이로 방향을 바꿨다. 함께 자전거 타이어로 일본 땅을 밟아보자는 계획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 같이 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라도 가야지. 부슬비가 내렸다.

8/12

느즈막이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다가 휴일 나흘 동안 멍하니 집에 틀어박혀 건강에도 안 좋은 컴퓨터만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어제 술집에서 헛소리 한 대로 동해안에 가기로 했다. 누나한테 전화하니 동생 때문에 방문하기 힘들단다. 숙소 하나가 날아가는군. 홀씨 지도로 위치 검색해 좌표를 찍어보다가 데이텀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고양시 중남미 문화원을 gps에 입력해 놓고 찾아가다가 200m 정도 어긋났다. 아무래도 데이텀을 Japan을 사용하는 것 같다. 국토지리원도 거의 표준인 wgs84 대신에 japan을 사용해서 데이텀 변환이 아주 귀찮았다. 홀씨 지도는 그러니까... 무료라는 점 이외에 거의 쓸모가 없었다. 다행히 알맵 딜럭스는 wgs84인 것 같다.

12:20pm, 얼른 준비해야 할텐데, 찜질방 닷 컴과 '야후 거기'를 뒤져 숙소를 알아내고 그것을 알맵 딜럭스에서 다시 검색해 경위도를 얻었다. 야후 거기는 의외로 쓸모 있다. 그렇게 해서 두 시간에 걸쳐 동해, 울진, 포항, 경주의 찜질방 좌표를 얻은 것이 작업의 전부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울시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동서울 터미널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준비를 끝낸 시각이 3:00pm.

짐:

* 전자기기: gps, pda, 모바일폰, pda 충전 어댑터. 이것들을 넣을 비닐봉투.
* 자전거관련: 휴대공구, 예비튜브, 펑크 패치 셋, 백라이트, 휴대용 에어펌프
* 옷가지: 반바지 한 벌과 쿨맥스 팬티 하나는 비닐봉투에 쌌다. 그리고 입고 있는 수영복 바지, 쿨맥스 긴팔 티셔츠, 등산 손수건, 손가락 끝을 잘라낸 작업 장갑, 모자
* 기타: 스카치 테이프, 가위 -- gps를 스템에 고정하기 위한 것.

저울로 무게를 달아보니 가방 포함해 3.4kg, 별 것 없는데 의외로 무겁다.

BB나 패달, 또는 스프라켓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일단 점검을 받아보려고 동네 자전거 포에 들렀는데 문을 닫았다. 두어 군데 들러 봤지만 자기들 제품이 아니라고 손봐주기를 거절한 채 산 곳에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야속한 주인들이지만 그 중 한 아저씨가 미안하다며 말릴 틈도 없이 wd-40을 기어에 뿌려준다. 어, 뿌리면 안되는데...

중랑천 입구까지 잘 나갔다. 그런데 지루하다. 중랑천 건너편으로 넘어가니 자전거 도로가 끊겼다. 어디로 가야 자전거 도로가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2호선 지하철 역을 따라 강변 역까지 간신히 갔다. 도착하니 6:30pm, 집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데만 3시간이 걸렸다. 중간 중간 길을 헤메고 자전거 포가 보일 때마다 들렀더니만... 어이가 없군. 자전거를 터미널 앞에 묶어놓고 얼른 동해행 표를 끊었다. 강원도 가는 사람들이 창구마다 바글거린다.

버스에 자전거를 싣겠다고 하니 어떻게 실을 꺼냐고 묻는다. 잘 실을 수 있다고 웃으며 대꾸했다. 자전거는 버스 짐칸에 쉽게 들어갔다. 배가 고파서 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사 먹었다. 버스는 3시간 조금 넘어 동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사방은 컴컴하고 터미널이 시 외곽에 위치한 탓인지 참조할만한 지형지물이나 길을 물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와 본 도시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gps를 스카치 테이프로 스템에 고정하고 스위치를 켠 후 첫번째 목표로 내비게이션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악천후 계기비행인 셈이다. 10여분 화살표를 따라가니 오차 범위 20m 이내에서 화정원 찜질방을 가르켰다. 알맵 지도에도 안 나온 장소를 어림잡아 찍었지만 gps는 아주 양호했다.

자전거 여행할 때 찜질방을 전전한다는 얘기를 동호회에서 익히 들었지만 자전거 보관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했다. 창구 여직원에게 물으니 지하 기계실에 놓아 두란다. 찜질방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술 먹고 들어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인 것 같다. 배가 고파 미역국 하나 시켜먹고 잠을 청해 보려고 했지만 사위가 시끄러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마치... 난민 구호 캠프 같다.

8/13

선풍기 옆 구석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락가락 하며 선풍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느라 부스럭 거리고(이 선풍기 어떻게 켜는 거에요? 라고 깨워서 묻기도 한다...) 가끔은 허벅지나 발을 밟고 지나갔다. 잠을 설치며 뒤척였다. 햇살이 눈부셔 일어났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별다른 계획은 없고 오늘부터 그저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정신 차리고 샤워 한 후 체중을 재어 보았다. 어제는 66.6kg, 오늘도 66.6kg,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고 어째서 수년 전부터 저울로 몸무게를 잴 때마다 별일 없으면 66.6kg가 나오는지 의아하다. 내가 바로 정신이 육체를 제어한다는 살아있는 증거? 아마 몇 년 전에 공교롭게도 몸무게가 66kg였는데, 이왕이면 600그램만 더 더해서 분위기 로맨틱하게 만들어보자고 작심했다. 그렇게 되더라.

8:30am 출발. 햇살이 '소름끼치게' 싱그럽다. 시계를 보니 기압은 1010밀리바, 약한 측풍, 아침 기온은 음지에서 27.5도 가량. 양호하군. gps를 트래킹 모드로 맞추고 목표지점2, 3, 4를 route로 맞췄다. 이렇게 해두면 3일 동안 울진, 포항, 경주를 차례로 거치게 된다. 부산에 가려다가 경주가 자전거 하이킹 하기 좋다기에 수십년 전 수학여행 가서 어리버리 둘러보다가 지나친 유적이나 한가하게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 싶어 부산 대신 경주로 최종 목표를 변경했다.

몇 번 검토해 봐도 마찬가지다; 동해안 도로는 7번 국도를 따라 주욱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쉬운 루트도 없을 것이다.

찜질방을 나오자 마자 uphill, 아침부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업힐, 다운힐, 업힐, 다운힐을 반복했다. 1차선, 2차선을 왔다갔다 하는 도로임에도 뒤쫓아오는 버스가 위협적으로 크랙션을 울리며 빵빵 거리지 않고 조용히, 슬며시, 배려 하면서 멀찍이 옆에 거리를 두고 지나쳐갔다. 역시 강원도야. 빌어먹을 서울 시내 같지 않다고.

동해시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한참을 지나도 삼척이 안 보인다. 겨우 삼척 동쪽 외곽에 다다라 수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우유와 빵으로 허기를 때우고 물을 한 병 샀다. 잠시 쉬었다. 기온은 29도. 7번 국도는 삼척 외곽을 따라간다. 다리를 건너 삼척역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업힐, 다운힐이 계속 반복되었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나 다리 옆에서 쉬었다. 싯포스트가 자꾸 덜렁거려 조여야 할 것 같다. 트럭들이 쌩쌩 옆으로 지나간다. 담배 한 대 물고 열심히 휴대용 공구로 작업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던 친구가 옆에 섰다. 어디까지 가세요? 묻는다. 울진이요. 아 저도 오늘 울진 가요. 그런데 이 길 맞아요? 글쎄요 이 길 맞는 것 같은데...

7번 '국도'가 갑자기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는 지점이다. 그래서 차들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하는 곳이다. 좀 물어봐야겠네요, 하더니 사라진다. 멋진 자전거다. 한달 내내 거리에서 자전거만 보이면 물끄러미 쳐다보는 버릇이 생긴 탓에 그의 자전거가 최소한 60만원 이상 가는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 그러니까 델로어급은 된다는 것을 대충은 알았다. 상의, 하의 모두 저지를 갖추고 등에 달라붙는 전용 가방을 매는 등 복장이 나하고 엄청 비교되었다.

여행 다닐 때 쓰는 구깃구깃한 모자에 인부들이 작업용으로 쓰는 고무 밑창 달린 장갑을 가위로 손가락 나오게 잘라 내고 등산 상의에 수영복 하의를 입은 나하고는 참 비교 많이 된다. 자전거는 또 어떻고. 어설픈 MTB에 억지로 갖다붙인 짐받이,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gps를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놓았으니 참 없어 보이는게, 마치 유럽 배낭 여행자와 인도 배낭 여행자만큼이나 격차가 컸다. 어쩌겠어, 자전거 여행은 장비가 아니라 근성으로 하는거지, 암!

그 친구가 돌아와서 말한다. 이 길 말고요, 저쪽 해수욕장으로 나는 구도로로 가는 것이 낫대요. 하긴 그렇겠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 들어가서 갓길에 짜부러든 채 오들오들 떨면서 갈 수야 없으니까. 아 고마워요, (장비 때문에 기가 죽어서) 먼저 가세요. 라고 말했다. 예 그럼 수고 하세요. 그 친구가 멀어진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패달질을 시작했다. 시작하자 마자 업힐이다. 언제 끝나는건지 원. 해는 중천에 떠올라 기온이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뻗뻗해진 무렵에 업힐이 끝났다. 언덕 아래로 바다가 새파랗게 보인다. 지평선 너머는 경계가 불투명하다. 구름이 띠엄띠엄 흘러가고 그 위에 군림하는 태양이 성질을 갈군다. 고갯마루에 이르자 시야 중앙 아래에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신나는 다운힐이다. 바람이 귓가로 스쳐가고 모자가 펄럭였다. gps의 속도계에는 45kmh가 찍혔다. 길이 구불구불해서 속도를 더 올리는 것은 겁이 난다. 브레이크를 간간히 잡았다. 앞서 가던 친구와의 격차는 10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벌써 한참 지나갔는지 그림자도 안 보인다.

넘은 고개는 한치이고 언덕에서 본 아름다운 백사장은 한치밀 해수욕장이다. 다운힐이 끝나자 기분좋은 평지가 주욱 펼쳐졌다. 하맹방 해수욕장을 지나 개천이 보이길래 잠시 쉬었다. 11시 무렵. 자전거를 제방에 자빠뜨리고 다리밑 그늘로 기어들어가 웃도리를 벗고 개울로 뛰어 들었다. 시원하다. 20분쯤 물속에 몸을 담그고 물장구 치고 놀면서 담배 한 대 빨다가 올라왔다. 너무 기분 낸 것 같군. 자, 다시 출발해야지.

어? 그런데 아까 본 친구가 버스 정류장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사 하고 먼저 간다고 빙긋 웃었다. 바로 옆에 시원한 개울 있는데 왜 버스 정류장 처럼 사방이 막혀 바람 한 점 들어갈 틈이 없는 곳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일까? 아, 그렇지. 그는 져지를 입고 있었지. 나야 수영복 입고 나돌아다니니까 개울만 보이면 뛰어들어도 괜찮지만 그 친구는 좀 그렇겠지. 아마 수영복 입고 자전거 여행 하는 사람 없을꺼다. 하하하.

한참을 갔는데 쫓아오는 기색이 안 보인다. 평지는 끝났다. 업힐, 다운힐을 반복했다. 지긋지긋하다. 근육이 뻑뻑해지기 시작한다. 해는 하늘 천정에서 화살촉같은 햇살을 쏘아대고 있다. 도로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상의는 쿨맥스 임에도 다 배출하지 못한 땀이 배어 나면서 축축하게 젖었다. 힘겹게 업힐을 끝내면 다시 짤막한 다운힐이 이어지고 패달을 밟아도 밟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언덕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지쳐갔다. 대체 어디까지 온 것일까... 지도가 없으니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황영조 기념 공원을 지나칠 때 앞서가는 자전거가 보였다. 앞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를 목표로 삼으면 덜 힘이 든다. 리듬을 그에게 맞추고 천천히, 천천히, 간신히 고갯마루에 이르니 그가 그늘에 자전거를 세우고 앉는다. 옆을 지나쳤다. 쉬었다 가요. 아, 예. 해죽 웃으며 쳐다보니 나이는 들었지만 호리호리한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다. 좋은 자전거다. 다운힐에서 보니 항력이 없어 잘 나가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업힐 중간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가는 것 같다. 내 자전거는 앞에 자전거 가방을 달아 바람의 저항이 있어 잘 나가지 않는 편이고 브레이크가 무겁게 걸린다. 고작해야 자전거와 짐을 합쳐 그 '좋은 자전거'들과 7-9kg 가량의 차이지만 그 차이는 무시못할 지경이다. 자전거 경량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하면, 자전거 차체 무게 1kg 줄이는데 못해도 50만원은 든다. 3킬로 줄이면 150만원이다. 그래서 필요도 없는 1kg가 넘는 짐받이를 굳이 붙이고 온 것이 후회될 지경이다.

아침에 우유 하나, 빵 하나 먹고 500ml 짜리 물병 하나 사온 처지라 지나가다가 수퍼라도 보이면 들르려고 했는데 잘 안 보인다. 일기예보의 기온은 34도 라는데, 실제 도로에서 내 시계로 찍은 온도는 35~36를 오락가락 했다. 쉬었다 가야 한다. 저 멀리 언덕에서 아지랑이가 이글이글 피어 오르고 아스팔트는 더위에 녹아 길 옆으로 몇 센티미터 밀려 있다. 지긋지긋한 업힐, 다운힐이 반복되는 가운데 도저히 더 이상은 기어올라가지 못할 것 같아 자전거에서 내렸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여기 언제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시감을 느꼈다. 신남 해수욕장이라? 마을 입구에 멀쩡한 간판까지 달려있는 것이 영락없는 관광지 같다. 아주 오래전에 동해안을 거침없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들렀던 곳인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내려갔다. 동네 전체가 민박촌으로 변했다. 포구 하나와 작은 해변이 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만 기껏해야 10여미터가 안되는 그 중간의 모래밭을 지나갈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친다. 살 타면 여행 끝이다.

대신 민박집 주인 할머니에게 부탁해 수돗가에서 한참 동안 흐르는 수돗물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수퍼에서 메로나 하나를 사먹었다.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와 노가리를 풀었다. 할머니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늘을 까면서 이 더위에 왜 자전거를 타고 사서 고생이냐고 징한 영동 사투리로 타박한다. 영동 사람들은 나같은 영서 사람들의 서울말 닮은 '얍삽한' 사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내 말이 그 말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연습을 충분히 한 건지, '비교적 쉽다는' 동해안 도로를 대상으로 현지 검증을 하려고 온 것이지 땀을 바가지로 흘리면서 여름을 저주하고 한국도로공사를 저주하고, 개처럼 혀를 내빼고 헥헥 거리는 품위 안 서는 바보짓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동네가 다 민박촌으로 바뀌었지만 인심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수퍼 아줌마는 이 더위에 미쳤지 쯧쯔 라고 도움 안되는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나.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씩씩하게 일어섰다. 일어서서 고갯마루로 올라가는데 다리에 힘이 안 생긴다. 손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 팔다리를 닦고 목에 둘렀다. 십여분쯤 멍하니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두 시다. 두 시 넘기 전에 반은 가야지.

이 놈에 업, 다운, 업, 다운은 언제 끝나나. 이제 두 시다. 열파가 악마떼처럼 도로를 휩쓸고 지나갔다. 눈썹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안경을 타고 공공연하게 흘러내렸다. 볼이 미끈거리고 입안이 타들어갔다. 졸립다. 바야흐로 신경계의 셧다운이 일어나려 하는 것 같다. 업힐 몇 개 하고 지쳐 나가떨어져 잼버리 공원인지 하는 곳의 송림 속으로 자전거를 들이받듯이 몰고 들어갔다. 급제동하다가 페달의 뾰족한 모서리가 허벅지를 긁어 피가 맺혔다. 신경 안 쓴다.

피서 나온 몇몇 가족이 돗자리를 펴고 고기를 구워먹으며 한가하게 즐기고 있다.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니 머리가 확 돌아버렸다. 마침 전화가 울려 김씨 아저씨가 밥 맛있게 먹고 술 한 잔 하며 잘 놀고 있다고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래... 염장을 질러라.

생각해 보니 아침에 우유, 빵 쪼가리 하나 먹은 걸로 지금까지 버틴게 기적이지. 밥을 안 먹어서 그런거야. 아니야, 그 동안 업힐 연습을 게을리 한 거지.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자만한거지, 고작해야 30분짜리 업힐 연습을 하루에 한번 한 걸로 지구를 다 정복할 수 있다고 뻔뻔하게 군거야, 그런데,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별별 잡 생각이 다 든다. 비좁은 벤치에 몸을 다 누이지 못한 채 그 나마도 벤치가 기울어 몸도 절로 반쯤 기우뚱한 자세로 누워, 먹을 꺼라고는 자일리톨 껌 두엇과 미지근한, 1/3쯤 남은 물을 아끼느라 홀짝이면서 이러고 있으니 처량하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얼음물을 마셔도 안 시원하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고기를 쩝쩝, 물을 꿀꺽꿀꺽 맛있게 먹는 그 소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담배 한 대 빨았다. 담배는 pain killer다.

오후 3시. 심장이 헐떡이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업힐, 온 몸이 타는 것 같다. 이번에는 목표가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첫번째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자. 첫번째 음식점이 해장국집이다. 작은 마을을 거쳐가는 운전수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곳 같다. 열량이 제일 높아 보이는 해장국을 주문했다. 꽁꽁 얼린 물을 내준다. 1.5리터 들이 병의 반을 비웠다. 대체 땀이 얼마나 흐른건지 알 수가 없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니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밥 더 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물이라도 더 마셔요, 여기 물이 아주 맛있어요. 정말 맛있네요. 그러더니 내 빈 병에 물을 채우라고 물을 한 통 더 꺼내준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업힐이다. 언덕만 보이면 아주 돌아버리겠다. 구름이라도 해를 가려줬으면 고맙겠고만. 방금 음식 먹은 것들이 소화되면서 더위와 더해져 체온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것 같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쿵쿵 뛴다. 안장에서 내렸다. 한 친구가 내 옆을 스르르 지나쳐 간다.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그가 그늘에서 자전거를 세운 채 헉헉거리고 있었다. 우리 둘 다 땀을 비오듯이 흘렸다. 짐받이를 보니 흘낏 지도가 보인다. 대체 이 길이 언제쯤 끝나요? 내가 물었다. 원덕 까지는 계속 이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디까지 가세요? 울진이요. 탄식하듯 대꾸했다. 저는 오늘 울진까지 가려고 했다가 원덕에서 쉬려고요. 원덕? 원덕은 어디지? 얼마나 먼 거지? 얼마나 먼지 무슨 상관이겠어 일단 나는 울진까지는 갈 것이다. 힘 냅시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출발했다.

그 친구와 나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한동안 같이 달렸다. 나하고 체력이 비슷한 것 같다. 딱히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 젊은 친구는 근육질 몸이고 내 몸에는 근육 비슷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든 형편이다. 그와 내가 비슷한 체력이라는 점에서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체중 대비 머슬 파워인 것 같다. 대략 70kg 쯤 되어 보이는데, 그가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지고 있을 지언정 여분의 4kg을 부양하려면 나만큼이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w/kg라는 단위는 썩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마라톤 선수들이 닭처럼 바짝 말랐고, '갸날픈 몸매로 세계를 여행한 여자들'이 부지기수인 것을 보면.

맛있는 물이 다 떨어졌다. 다운힐중 휴게소가 보였다. 빙과류중 폴라포를 집었다. 탁월한 선택이다. 폴라포는 500원에 거의 얼음덩어리와 당분이 주성분이고 용량이 140ml 밖에 안된다. 메로나 같은 것은 한 입에 꿀꺽 삼킬 수 있지만 폴라포는 얼음 덩이 때문에 140ml를 입에 다 넣으려면 5분은 걸린다. 급해도 천천히 먹을 수 밖에 없고 다 먹어도 그 용량이 140ml 밖에 안되니 액체로 된 음료수보다 몸을 식히고 수분을 섭취하는데 이상적이다. 왜 예전에는 이걸 몰랐을까. 폴라포를 맛있게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아까 그 친구가 언덕을 질주하는 것이 보인다. 씨익 웃어 주었다. 고개를 끄떡이며 마주 웃는다. 세워서, '폴라포를 먹어요. 이거 끝내줘요'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원덕에 이르렀다. 개울이 보인다. 웃통을 훌렁 벗고 개울로 뛰어 들어가서 몸을 식혔다. 기분 끝내준다. 동네 사람들이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어 흡사 미친놈처럼 보일까 두려워 얌전히 '냉탕'을 즐겼다. 아, 정말 살 것 같다. 개울이 계속 나타났으면 좋겠다.

길 옆에 있는 임원 해수욕장에 다다르니 오후 4시다. 이번엔 해수욕을 즐겼다. 차갑고 짭짜름한 물 속에서 열을 식혔다. 나곡 해수욕장에도 들렀다. 오후 5시. 혼자 놀아도 상당히 재밌다. 자맥질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몸에 소름이 돋는다. 해가 서편으로 멀리 가 버리자 해수욕장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바닷물은 상대적으로 차갑다. 여기서 민박을 할까 아니면 울진으로 들어갈까 고민했다. 그래도 울진까지는 가보자. 다시 출발. 이번에는 웃통을 벗고 그야말로 수영복 차림으로 달렸다. 땀이 나서 다시 입었다. 쿨맥스 긴팔 티셔츠, 성능 끝내준다. 왜 진작 이걸 안 입었나 싶다.

7번 국도를 벗어났다. 앞에 개천이 보여 몸을 담그고 싶어서 개천가까지 갔다. 발을 담그니 물 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2급(하)수다. 얼른 다리를 뺐다. 강원도를 벗어나자 마자 하천이 이 모양이 되다니 거참 신기하네. 울진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쳤다. 울진 원자력 스포츠 센터에 들렀다. 비타500 한병을 자판기에서 뽑아먹고 안면 몰수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팔다리를 씻었다. 샌달도 박박 씻었다.

다시 출발. 터널을 지날 때마다 뒤쫓아오는 차량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온다. 무섭다. 마치 눈알을 히번뜩이며 이빨을 자근자근 가는 나쁜 늑대들에게 쫓기는 기분이다. 내장과 심장이 덩달아 쿵쾅거려 서둘러 패달을 밟았다.

7번 국도에서 한참 벗어났기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렵다. gps의 나침반은 진행방향이 맞다고 표시하고 있지만 어딘지 을씨년스럽다. 차 한 대 안 지나가는 외진 도로의 차량 정비소에 이르니 사방에서 개들이 미친듯이 짖어댄다. 이리 가면 맞아요? 가다가 길이 막히면 공항로로 우회하면 됩니다. 도로가 끊긴 지점에 이르렀다. 새 도로로 우회하면 되지만 공사중이라고 도로를 막아놓은 쪽으로 들어섰다. 얕은 오르막 경사가 이어지는, 시원하게 죽 뻗은 도로 중간에 폭주족 애들이 썩 훌륭한 오토바이를 모아놓고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이 길로 죽 가면 울진 나와요? 네. 그중 한 친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그들 옆을 고작 시속 14kmh로 스쳐가는 나를 보더니,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빌어먹을 자식들 누굴 놀리나. 이렇게 체통을 구기면서 발질 또는 지랄하고 있는 나 보다는 니들이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라고 안 들리게 중얼거렸다.

gps를 보니 울진까지 8km 남았다. 거의 다 온 셈이다. 막힌 도로 마지막 지점에서 풀밭에 대자로 누웠다. 잠시 후 모기와 날파리들이 몰려와 살갗을 물어 뜯었다. 풀잎이 정강이를 베고 있어도 신경쓰지 않았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이래 가지고서야 포항까지 갈 수 있을까.

일어섰다. 해가 지고 있다. 미등이 있긴 하지만 시원찮아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헤드 라이트도 없다. 해가 지는 시각은 7:17pm. 여명을 고려하면 7:30pm. 그전까지는 울진 시가지에 도착해야 한다. 7시다. 해가 곧 진다. 해 지면 가로등 하나 없는 지방도에서는 좆된다. 패달을 힘차게 밟았다.

다행히 울진 시가지에 도착했다. 차분한 시가지다. 마음에 든다. 가면서 저렴한 가격에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반짝, 햄버거가 떠올랐다. 햄버거집을 찾자. 시내 중심부에 이르니 롯데리아가 보인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 불고기 버거 셋에 콜라 대신 오렌지 쥬스를 시키고 감자칩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콜라를 한 잔 더 시킨다는 것이 직원이 리필로 알아듣고 돈도 안 받고 채워준다. 이게 왠 횡재냐? 원래 롯데리아에서 리필이 되나? 단백질과 수분 보충을 끝내고 gps 지시에 따라 찜질방을 찾아갔다. 찜질방에서 맥주 한 잔 하기로 하고 해바라기씨도 샀다.

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무게를 재어봤다. 64.4kg,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니 64.1kg, 그새 2kg이 빠졌단 말인가? 햄버거 200g, 오렌지 쥬스+콜라 하면 500g은 족히 될 터이고 그동안 먹은 음식과 물의 양을 생각하면 실제 빠진 것은 10시간 만에 4~5kg? 전율을 느꼈다. 아내에게 꼭 권해줘야겠다.

찜질방이 어째 동네 목욕탕 스러워 보인다. 찜질방이 돗대기 시장같다. 안에 식당이 없어 전화를 걸어 동네 가게에서 냉국수를 시켜 먹었다. 메뉴는 냉국수, 온국수, 미역국 뿐이란다. 대낮 동안 수분을 섭취하고 배출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염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먹은 음식만으로는 부실하고 충분치 않은데. 이틀째 제대로 염분을 섭취하지 못했다. 눈 딱 감고 세포들이 뽀드득해지길 기원하면서 목욕탕의 이빨 쑤시는 소금을 한 모금 집어 삼켰다.

8/14

이번에도 잠을 설쳤다. pc 방이 없어 포항까지의 도로 사정을 조사하지 못했다. 나와보니 자전거가 어째 좀 이상하다. 누군가가 세자리 숫자로 돌아가는 키락을 열어놨다. 하지만 훔쳐가지는 않은 것이 장난 치면서 키락을 깬 것에 스스로 흐뭇해진 것 같다. 자식.

근육이 욱신거린다. 울진 시가지를 빠져 나가면서 옆에 터미널이 보였다. 가지 말자. 더 이상 가면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실험은 끝났다. 실험 결과: 아직 여행할 수준이 못 된다. 지구력을 강화하고 업힐 연습을 더 많이 하자. 포항행 7번 도로에서 방향을 틀어 터미널로 돌아섰다. 서울행 표를 끊으려다가 경주 가는 차가 보이길래 얼떨결에 경주행 버스표를 끊었다. 아무래도 대미는 '관광'으로 장식해야지 싶다.

울진에서 포항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다. 가는 길에 키락의 바뀐 번호를 알아내려고 000-999 사이의 조합을 시도했다. 쉽게 풀린다. 이런 종류의 자물쇠는 원래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해에서 울진까지 gps에 찍힌 주행거리는 78.5km다. 이래저래 쉰 시간을 빼면 8시간 동안 78.5km를 달린 것이니 시간당 10kmh로 잡으면 울진에서 포항까지 117km면 10시간에 충분히 주파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10시간 넘게 35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 주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교만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포항까지 가서 하룻밤 자고 포항에서 경주까지 30여 km를 달려서 경주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남들 다 하는데 나는 못하는 것 뿐이다. 체력이 안되니까.

경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내렸다. 자전거를 꺼내는 도중에 서두르다가 다시 페달에 정강이를 긁혔다. 피가 맺혔다. 관광 안내소에서 자전거 도로 지도를 얻었다. 불국사까지 얼마나 걸려요? 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불국사까지 18km이며 2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희안하네? 18km 가는데 2시간이나 걸린다니. 그럼 대부분 그 지긋지긋한 업힐, 다운힐 반복이란 말인가? 그것은 경주 도로가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는 '사실'과 배치된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왔다.

터미널에서 출발해 대릉원, 첨성대, 계림, 석빙고, 안압지, 국립경주박물관 코스를 밟았다. 자전거로 돌아다니기 정말 딱 좋다. 경주 박물관 가는 길에서 주행 중 물병을 꺼내 마시다가 물병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셔 왈칵, 사래 걸려 컥, 핸들이 틀어지면서 내리막길에서 가로수와 들이받았다. 핸들을 놓을 새도, 물병을 던질 생각도 못하고 미련하게 오른 팔과 다리로 나무를 밀다가 긁혔다. 이런 젠장. 오른 팔 소매가 찢어지고 팔이 긁히고 다리도 긁혔다. 양쪽 정강이와 팔 다리에 무수한 상처와 멍이 생겼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생기다니... 욱씬거린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수건에 물을 적셔 피를 닦아내고 돗대기 시장처럼 바글거리는 박물관 구경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나왔다. 사람이 많으니 집중이 안된다. 날은 오지게 덥다.

상처가 쓰리고 아침부터 먹은 거라고는 바나나 두 쪽 뿐이라 허기가 져서 불국사행을 포기하고 시내로 들어섰다. 뭘 먹을까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식당이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아... 이게 그 경주 밀면이구나. 4천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얼음덩이가 송송 뜬 푸짐한 국수가 나왔다. 면발이 쫄깃하고 국물이 시원하면서 얼큰한 것이 그럴듯 하다.

배가 부르니까 갑자기 희망적인 생각이 들어(방금 전에 바보같은 짓을 하다 팔 다리가 상처 투성이가 되어 스스로를 자책하며 의기소침했는데) 불국사를 향해 패달을 밟았다. 새삼스럽게 음식의 소중함을 느꼈다.

자전거가 어째 무겁다. 뒷바퀴를 흘낏 쳐다보니 바람이 없는 것 같다. 불국사 초등학교 앞에서 지나가던 할아버지한테 내가 앉아 있을 때 뒷바퀴가 어떻냐고 물어보니 빵꾸났단다. 어, 펑크인 거냐? 펑크 패치가 있지만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펑크를 때울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마침 장터 근처에 있어 장기 두고 있는 자전거 가게 아저씨한테 3천원 주고 때웠다. 내가 때우려고 노력했더라면 아마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구멍이 워낙 미세해 튜브를 물에 담그고 한참을 이리저리 굴려서 간신히 찾아낸다.

그 동안 장터를 구경했다. 시골장 같다. 거참 신기하다. 경주는 관광 산업으로 꽤 큰 도시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침에 본 여러 관광지보다 장터 구경과 동네 청년들이 8.15 기념 운동회 하는 걸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술과 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거저 나눠주는데 점심을 배터지게 먹은 것이 아쉽다.

불국사까지 주행시간만 1시간 20분, 펑크 때우고 구경하느라 1시간, 족집게 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춘 관광안내소 안내양에게 경탄했다.

불국사 주차장에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가방도 그대로 놔뒀다. 훔쳐갈만한 것도 없으니까. 훔쳐가봐라. 그냥 확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겠다.

화장실에 들러 웃통을 벗어 빨았다. 소금끼가 묻어 하얀 자국이 나 있다. '옷가지 빨지 말 것'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내친 김에 팔 다리도 깨끗이 씻었다. 절집에 가는데 옷차림이 단정해야지 무슨 헛소리야?

불국사는 어렸을 때 본거나 지금 본거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볼거리는 많지 않다. 울궈먹기도 이런 울궈먹기가 없을 것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한국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 그 담백함과 깔끔함은 한국인의 개같은 민족성과 심하게 배치되어 보일 때도 있다. 음, 이를테면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걔네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이유는 개같은 한국인들을 워낙 많이 상대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믿는다. 그런 아름다움인 것이다...

석굴암까지 가는데만 50분 걸린다기에 덥고 지쳐서 그냥 근처 잔디밭에 앉아 그저 빙과류 마시면서 시간을 때웠다.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일본 애들이 보여 광복절인데 한국에 찾아와 관광을 즐기는 일본애들의 깡에 경탄했다. 불국사 관람한 소감이 어떻냐고 물으니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헤헤 웃더니 그냥 달아난다. 얘들아, 내가 비록 몰골은 심하게 없어 보여도 불교면 불교, 이슬람이면 이슬람, 힌두교면 힌두교, 조금씩은 다 안단 말이다. 일본 갈 때 두고보자. 말 걸었는데 무시하다니... 영어로 해서 그런가...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이나 우물안 개구리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해 보였다. 한국에는 심지어 신문의 국제면에서 쓸만한 기사가 거의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저 해외토픽 수준이지.

보문관광단지로 향했다. 야트막한 업힐이라 길은 아주 쉬웠다. 그래도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려 휴게소에 들러 폴라포를 하나 사 먹었다. 수분을 섭취한 세포들이 몹시 기뻐한다. 맛있어 보이는 팥빙수를 먹고 싶지만 배가 무거울 것 같다. 한가하게 오리배 떠다니는 모습을 관람했다. 보문관광단지의 마스코트는 아무래도 오리배와 현대xx건물 인 것 같다.

전혀 발 담그고 싶은 기분이 안 드는 2급수 형산강변을 따라 시내로 천천히 주행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멈추지 않고 경주 주변을 내내 돌고 있다. 대나무숲이 물결치면서 피리 불듯이 낮게 부우부우 우는 소리를 낼 것만 같다. 그야말로 서라벌에 부는 바람이다. 자전거 모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더위 때문에 지친다. 대교 눈높이 전국 축구대회가 마침 벌어지고 있었다. 대회장 식수터에 가서 물과 차를 얻어 마시고 잘한다고 박수도 쳐줬다. 애들 축구 잘하네?

시내로 들어서니 오후 5시. 여전히 덥다. 돈을 찾으러 은행의 ATM에 들어가니 시원해서 신발 벗고, 음, 아예 드러누었다.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무료로 시간 보내면서 더위 식히기 딱 좋은 장소인데. 감시 카메라에 어떻게 찍혔을 지 가관도 아니겠다. 감시 카메라를 고려해서 엉덩이를 잠시 까 보였다.

gps의 좌표만 믿고 찾아가보니 시외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어? 이게 아닌데... 찜질방은 어디간거지? 아뿔싸, 이 좌표는 시외버스 터미널 좌표다. 찜질방 좌표를 입력하지 않은 것이다. 관광 안내소는 문을 닫았고 지나가는 택시 기사한테 물어보니 경주 시내에는 찜질방이 없다는 것이다. 찜질방은 시 외곽으로 나가야 있다나? 어떻게 찾아 가야 하는지 지도를 내밀고 물으니 그 따위(!) 지도로는 찾아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 지도 괜찮은데?

어쩐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자전거 몰고 다니며 찾을 수는 없고 시내 구경도 하고 싶고, 어차피 내일 터미널에 다시 돌아와야 하니 터미널 주변에 즐비하게 널린 자전거 가게를 찾아 다니며 자전거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한 가게가 5천원 주면 맡아 주겠단다. 자전거를 맡기고 시내 구경을 했다. 중심가란다. 롯데리아에 들러 에어컨 바람 쐬면서 단백질 보충하고 콜라 리필해서 두 번쯤 더 마시고 나왔다. 에어컨 앞에서 기체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찜질방이 어딨냐고 물으니 동대 부근에 있단다. 이런... 동국대면 아까 경주 시내로 들어오면서 지나친, 다리 건너편인데. 뭐 그게 어렵다고 택시기사들이 안 알려준건지?

동대 황토 찜질방에 택시 타고 갔다.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어쩌나 보려고 택시를 타 봤다. 택시 기사가 한참 헤메면서 찾았다. 3500원 나왔다. 택시 기사가 일부러 헤멘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 왜냐하면 나는 경주 시내 지리를 안다.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아 봤으니까. 다음날 아침 우연히 동대 앞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를 다시 타게 되었는데 그때는 1900원 나왔다. 경주 택시 기사 양반들이 그 따위로 하면 그네들 인상만 구겨질 뿐이란 것을 제주도 관광택시들이 오래전에 이미 전례를 만들었다고 보는데.

찜질방이 다소 생각외다. 목욕탕은 없고 샤워실에 수건 하나 달랑 준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라고? 물론 찜질방이 가동중이지도 않았고 에어컨 조차 켜지 않았다. 그냥 7천원 짜리 도미토리다. 그래도 경주 시내의 값비싼 호텔이나 여관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tv로 남-북 축구 보면서 주인 아줌마와 노가리 까고 가게도 봐주면서 맥주 한 잔 하고 아무 방에 들어가 누웠다. 새벽 두 시까지 한 사람 두 사람, 사람들이 꾸역꾸역 찾아와 아무데나 널부러져 잤다. 분위기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유일하게 선풍기가 달려있는 넓은 회의실을 통째로 차지하고 방바닥을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돌바닥에 오래 머무르면 미지근해 지니까 포지션을 바꿔서). 아무도 안 들어와 혼자 편히 자고 있는데 여자애들 셋이 한꺼번에 들어와 회의실의 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반만 굴렀다.

8/15

요란하게 한방 황토 찜질방임을 과시하는 이곳은 들창으로 아침이 가차없이 침투하는 구조라 6시에 어쩔 수 없이 깨어났다. 3일 내내 제대로 잠을 자 보지 못했다. 샤워하고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와 동대 앞까지 걸어가 택시를 타고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 자전거 가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돼지국밥 한 그릇 시켜 먹고 터미널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자전거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내 자전거가 괜찮은 자전거란다. 글쎄, 그다지 안 좋다. 거의 한 달 타고 돌아다녔더니 BB나 페들 어딘가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스프라켓을 통째로 갈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프레임은 괜찮지만 디레일러만 빼고는 어쩐지 부속들이 싸구려 같다. 최근 며칠 타고 다니는 동안 걸리적 거리는 소음이 들려 서울 올라가면 자전거를 제대로 한 번 점검 받아야겠다.

자전거를 싣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16300원. 울진에서 경주로 오는 온갖 군데 다 서는 시골 완행 버스를 13500원 주고 타고 왔는데 그보다 낫다. tv에서 노무현이 광복절 기념사를 하고 있었다. 60주년을 맞은 이번 광복절은 여러 행사가 덧붙여 지면서 나름대로 특별해진 것 같다.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남부 터미널에 도착. 어떻게 강북으로 가야할지... 무작정 반포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반포대교 밑으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를 빠져나가는 두 가지 주요 경로를 다 알게 되었다. 동서울 터미널과 남부 터미널까지 가는 길.

평균 20kmh 속도로 꾸준히 14km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폴라포도 하나 먹어줬다. 보약이다. 팔 다리가 상처 투성이다. 코끝과 다리가 새카맣게 탔다. 약국에 들러 약을 사서 바르고 여행 내내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사먹었다.

자전거 타고 혼자 다니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자전거 여행은 타지 여행과 참 많이 비슷하다. 서로 만나면 아는 척도 하고. 수고 많으시다.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 살이 좀 타서 화끈거리는 것 빼고 다리에 근육통이나 뭐 이런 것이 없다. 신기하네...

뻔뻔하게 나흘 내내 수영복만 줄곳 입고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개울이나 바다에 마음껏 뛰어들 수 있어 아주 좋았다는 것 빼고,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건진 것은 고작, 건강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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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술자리에서 부른다. 스티프(stiff, 시체)를 읽으며 낄낄 거리다가 버스를 잘못 탔다. 간만에 웃기는 책이다. 택시로 갈아 타면서 그 동안의 트레이닝이 효과가 있는지, 내일 연습 삼아 동해안에 가볼까 생각했다. 황가는 50cc 오토바이로 방향을 바꿨다. 함께 자전거 타이어로 일본 땅을 밟아보자는 계획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 같이 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라도 가야지. 부슬비가 내렸다.

8/12

느즈막이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다가 휴일 나흘 동안 멍하니 집에 틀어박혀 건강에도 안 좋은 컴퓨터만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어제 술집에서 헛소리 한 대로 동해안에 가기로 했다. 누나한테 전화하니 동생 때문에 방문하기 힘들단다. 숙소 하나가 날아가는군. 홀씨 지도로 위치 검색해 좌표를 찍어보다가 데이텀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고양시 중남미 문화원을 gps에 입력해 놓고 찾아가다가 200m 정도 어긋났다. 아무래도 데이텀을 Japan을 사용하는 것 같다. 국토지리원도 거의 표준인 wgs84 대신에 japan을 사용해서 데이텀 변환이 아주 귀찮았다. 홀씨 지도는 그러니까... 무료라는 점 이외에 거의 쓸모가 없었다. 다행히 알맵 딜럭스는 wgs84인 것 같다.

12:20pm, 얼른 준비해야 할텐데, 찜질방 닷 컴과 '야후 거기'를 뒤져 숙소를 알아내고 그것을 알맵 딜럭스에서 다시 검색해 경위도를 얻었다. 야후 거기는 의외로 쓸모 있다. 그렇게 해서 두 시간에 걸쳐 동해, 울진, 포항, 경주의 찜질방 좌표를 얻은 것이 작업의 전부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울시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동서울 터미널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준비를 끝낸 시각이 3:00pm.

짐:

* 전자기기: gps, pda, 모바일폰, pda 충전 어댑터. 이것들을 넣을 비닐봉투.
* 자전거관련: 휴대공구, 예비튜브, 펑크 패치 셋, 백라이트, 휴대용 에어펌프
* 옷가지: 반바지 한 벌과 쿨맥스 팬티 하나는 비닐봉투에 쌌다. 그리고 입고 있는 수영복 바지, 쿨맥스 긴팔 티셔츠, 등산 손수건, 손가락 끝을 잘라낸 작업 장갑, 모자
* 기타: 스카치 테이프, 가위 -- gps를 스템에 고정하기 위한 것.

저울로 무게를 달아보니 가방 포함해 3.4kg, 별 것 없는데 의외로 무겁다.

BB나 패달, 또는 스프라켓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일단 점검을 받아보려고 동네 자전거 포에 들렀는데 문을 닫았다. 두어 군데 들러 봤지만 자기들 제품이 아니라고 손봐주기를 거절한 채 산 곳에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야속한 주인들이지만 그 중 한 아저씨가 미안하다며 말릴 틈도 없이 wd-40을 기어에 뿌려준다. 어, 뿌리면 안되는데...

중랑천 입구까지 잘 나갔다. 그런데 지루하다. 중랑천 건너편으로 넘어가니 자전거 도로가 끊겼다. 어디로 가야 자전거 도로가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2호선 지하철 역을 따라 강변 역까지 간신히 갔다. 도착하니 6:30pm, 집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데만 3시간이 걸렸다. 중간 중간 길을 헤메고 자전거 포가 보일 때마다 들렀더니만... 어이가 없군. 자전거를 터미널 앞에 묶어놓고 얼른 동해행 표를 끊었다. 강원도 가는 사람들이 창구마다 바글거린다.

버스에 자전거를 싣겠다고 하니 어떻게 실을 꺼냐고 묻는다. 잘 실을 수 있다고 웃으며 대꾸했다. 자전거는 버스 짐칸에 쉽게 들어갔다. 배가 고파서 김밥과 바나나 우유를 사 먹었다. 버스는 3시간 조금 넘어 동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사방은 컴컴하고 터미널이 시 외곽에 위치한 탓인지 참조할만한 지형지물이나 길을 물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와 본 도시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gps를 스카치 테이프로 스템에 고정하고 스위치를 켠 후 첫번째 목표로 내비게이션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악천후 계기비행인 셈이다. 10여분 화살표를 따라가니 오차 범위 20m 이내에서 화정원 찜질방을 가르켰다. 알맵 지도에도 안 나온 장소를 어림잡아 찍었지만 gps는 아주 양호했다.

자전거 여행할 때 찜질방을 전전한다는 얘기를 동호회에서 익히 들었지만 자전거 보관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했다. 창구 여직원에게 물으니 지하 기계실에 놓아 두란다. 찜질방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술 먹고 들어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올라온 관광객들인 것 같다. 배가 고파 미역국 하나 시켜먹고 잠을 청해 보려고 했지만 사위가 시끄러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마치... 난민 구호 캠프 같다.

8/13

선풍기 옆 구석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사람들이 오락가락 하며 선풍기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느라 부스럭 거리고(이 선풍기 어떻게 켜는 거에요? 라고 깨워서 묻기도 한다...) 가끔은 허벅지나 발을 밟고 지나갔다. 잠을 설치며 뒤척였다. 햇살이 눈부셔 일어났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별다른 계획은 없고 오늘부터 그저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정신 차리고 샤워 한 후 체중을 재어 보았다. 어제는 66.6kg, 오늘도 66.6kg,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고 어째서 수년 전부터 저울로 몸무게를 잴 때마다 별일 없으면 66.6kg가 나오는지 의아하다. 내가 바로 정신이 육체를 제어한다는 살아있는 증거? 아마 몇 년 전에 공교롭게도 몸무게가 66kg였는데, 이왕이면 600그램만 더 더해서 분위기 로맨틱하게 만들어보자고 작심했다. 그렇게 되더라.

8:30am 출발. 햇살이 '소름끼치게' 싱그럽다. 시계를 보니 기압은 1010밀리바, 약한 측풍, 아침 기온은 음지에서 27.5도 가량. 양호하군. gps를 트래킹 모드로 맞추고 목표지점2, 3, 4를 route로 맞췄다. 이렇게 해두면 3일 동안 울진, 포항, 경주를 차례로 거치게 된다. 부산에 가려다가 경주가 자전거 하이킹 하기 좋다기에 수십년 전 수학여행 가서 어리버리 둘러보다가 지나친 유적이나 한가하게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 싶어 부산 대신 경주로 최종 목표를 변경했다.

몇 번 검토해 봐도 마찬가지다; 동해안 도로는 7번 국도를 따라 주욱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쉬운 루트도 없을 것이다.

찜질방을 나오자 마자 uphill, 아침부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업힐, 다운힐, 업힐, 다운힐을 반복했다. 1차선, 2차선을 왔다갔다 하는 도로임에도 뒤쫓아오는 버스가 위협적으로 크랙션을 울리며 빵빵 거리지 않고 조용히, 슬며시, 배려 하면서 멀찍이 옆에 거리를 두고 지나쳐갔다. 역시 강원도야. 빌어먹을 서울 시내 같지 않다고.

동해시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한참을 지나도 삼척이 안 보인다. 겨우 삼척 동쪽 외곽에 다다라 수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우유와 빵으로 허기를 때우고 물을 한 병 샀다. 잠시 쉬었다. 기온은 29도. 7번 국도는 삼척 외곽을 따라간다. 다리를 건너 삼척역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업힐, 다운힐이 계속 반복되었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나 다리 옆에서 쉬었다. 싯포스트가 자꾸 덜렁거려 조여야 할 것 같다. 트럭들이 쌩쌩 옆으로 지나간다. 담배 한 대 물고 열심히 휴대용 공구로 작업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던 친구가 옆에 섰다. 어디까지 가세요? 묻는다. 울진이요. 아 저도 오늘 울진 가요. 그런데 이 길 맞아요? 글쎄요 이 길 맞는 것 같은데...

7번 '국도'가 갑자기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뀌는 지점이다. 그래서 차들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하는 곳이다. 좀 물어봐야겠네요, 하더니 사라진다. 멋진 자전거다. 한달 내내 거리에서 자전거만 보이면 물끄러미 쳐다보는 버릇이 생긴 탓에 그의 자전거가 최소한 60만원 이상 가는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 그러니까 델로어급은 된다는 것을 대충은 알았다. 상의, 하의 모두 저지를 갖추고 등에 달라붙는 전용 가방을 매는 등 복장이 나하고 엄청 비교되었다.

여행 다닐 때 쓰는 구깃구깃한 모자에 인부들이 작업용으로 쓰는 고무 밑창 달린 장갑을 가위로 손가락 나오게 잘라 내고 등산 상의에 수영복 하의를 입은 나하고는 참 비교 많이 된다. 자전거는 또 어떻고. 어설픈 MTB에 억지로 갖다붙인 짐받이,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gps를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놓았으니 참 없어 보이는게, 마치 유럽 배낭 여행자와 인도 배낭 여행자만큼이나 격차가 컸다. 어쩌겠어, 자전거 여행은 장비가 아니라 근성으로 하는거지, 암!

그 친구가 돌아와서 말한다. 이 길 말고요, 저쪽 해수욕장으로 나는 구도로로 가는 것이 낫대요. 하긴 그렇겠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 들어가서 갓길에 짜부러든 채 오들오들 떨면서 갈 수야 없으니까. 아 고마워요, (장비 때문에 기가 죽어서) 먼저 가세요. 라고 말했다. 예 그럼 수고 하세요. 그 친구가 멀어진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패달질을 시작했다. 시작하자 마자 업힐이다. 언제 끝나는건지 원. 해는 중천에 떠올라 기온이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뻗뻗해진 무렵에 업힐이 끝났다. 언덕 아래로 바다가 새파랗게 보인다. 지평선 너머는 경계가 불투명하다. 구름이 띠엄띠엄 흘러가고 그 위에 군림하는 태양이 성질을 갈군다. 고갯마루에 이르자 시야 중앙 아래에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신나는 다운힐이다. 바람이 귓가로 스쳐가고 모자가 펄럭였다. gps의 속도계에는 45kmh가 찍혔다. 길이 구불구불해서 속도를 더 올리는 것은 겁이 난다. 브레이크를 간간히 잡았다. 앞서 가던 친구와의 격차는 10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벌써 한참 지나갔는지 그림자도 안 보인다.

넘은 고개는 한치이고 언덕에서 본 아름다운 백사장은 한치밀 해수욕장이다. 다운힐이 끝나자 기분좋은 평지가 주욱 펼쳐졌다. 하맹방 해수욕장을 지나 개천이 보이길래 잠시 쉬었다. 11시 무렵. 자전거를 제방에 자빠뜨리고 다리밑 그늘로 기어들어가 웃도리를 벗고 개울로 뛰어 들었다. 시원하다. 20분쯤 물속에 몸을 담그고 물장구 치고 놀면서 담배 한 대 빨다가 올라왔다. 너무 기분 낸 것 같군. 자, 다시 출발해야지.

어? 그런데 아까 본 친구가 버스 정류장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사 하고 먼저 간다고 빙긋 웃었다. 바로 옆에 시원한 개울 있는데 왜 버스 정류장 처럼 사방이 막혀 바람 한 점 들어갈 틈이 없는 곳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일까? 아, 그렇지. 그는 져지를 입고 있었지. 나야 수영복 입고 나돌아다니니까 개울만 보이면 뛰어들어도 괜찮지만 그 친구는 좀 그렇겠지. 아마 수영복 입고 자전거 여행 하는 사람 없을꺼다. 하하하.

한참을 갔는데 쫓아오는 기색이 안 보인다. 평지는 끝났다. 업힐, 다운힐을 반복했다. 지긋지긋하다. 근육이 뻑뻑해지기 시작한다. 해는 하늘 천정에서 화살촉같은 햇살을 쏘아대고 있다. 도로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상의는 쿨맥스 임에도 다 배출하지 못한 땀이 배어 나면서 축축하게 젖었다. 힘겹게 업힐을 끝내면 다시 짤막한 다운힐이 이어지고 패달을 밟아도 밟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언덕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지쳐갔다. 대체 어디까지 온 것일까... 지도가 없으니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황영조 기념 공원을 지나칠 때 앞서가는 자전거가 보였다. 앞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를 목표로 삼으면 덜 힘이 든다. 리듬을 그에게 맞추고 천천히, 천천히, 간신히 고갯마루에 이르니 그가 그늘에 자전거를 세우고 앉는다. 옆을 지나쳤다. 쉬었다 가요. 아, 예. 해죽 웃으며 쳐다보니 나이는 들었지만 호리호리한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다. 좋은 자전거다. 다운힐에서 보니 항력이 없어 잘 나가기 때문에 다음에 이어지는 업힐 중간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가는 것 같다. 내 자전거는 앞에 자전거 가방을 달아 바람의 저항이 있어 잘 나가지 않는 편이고 브레이크가 무겁게 걸린다. 고작해야 자전거와 짐을 합쳐 그 '좋은 자전거'들과 7-9kg 가량의 차이지만 그 차이는 무시못할 지경이다. 자전거 경량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하면, 자전거 차체 무게 1kg 줄이는데 못해도 50만원은 든다. 3킬로 줄이면 150만원이다. 그래서 필요도 없는 1kg가 넘는 짐받이를 굳이 붙이고 온 것이 후회될 지경이다.

아침에 우유 하나, 빵 하나 먹고 500ml 짜리 물병 하나 사온 처지라 지나가다가 수퍼라도 보이면 들르려고 했는데 잘 안 보인다. 일기예보의 기온은 34도 라는데, 실제 도로에서 내 시계로 찍은 온도는 35~36를 오락가락 했다. 쉬었다 가야 한다. 저 멀리 언덕에서 아지랑이가 이글이글 피어 오르고 아스팔트는 더위에 녹아 길 옆으로 몇 센티미터 밀려 있다. 지긋지긋한 업힐, 다운힐이 반복되는 가운데 도저히 더 이상은 기어올라가지 못할 것 같아 자전거에서 내렸다.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여기 언제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시감을 느꼈다. 신남 해수욕장이라? 마을 입구에 멀쩡한 간판까지 달려있는 것이 영락없는 관광지 같다. 아주 오래전에 동해안을 거침없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들렀던 곳인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내려갔다. 동네 전체가 민박촌으로 변했다. 포구 하나와 작은 해변이 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만 기껏해야 10여미터가 안되는 그 중간의 모래밭을 지나갈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친다. 살 타면 여행 끝이다.

대신 민박집 주인 할머니에게 부탁해 수돗가에서 한참 동안 흐르는 수돗물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수퍼에서 메로나 하나를 사먹었다.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와 노가리를 풀었다. 할머니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늘을 까면서 이 더위에 왜 자전거를 타고 사서 고생이냐고 징한 영동 사투리로 타박한다. 영동 사람들은 나같은 영서 사람들의 서울말 닮은 '얍삽한' 사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내 말이 그 말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연습을 충분히 한 건지, '비교적 쉽다는' 동해안 도로를 대상으로 현지 검증을 하려고 온 것이지 땀을 바가지로 흘리면서 여름을 저주하고 한국도로공사를 저주하고, 개처럼 혀를 내빼고 헥헥 거리는 품위 안 서는 바보짓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동네가 다 민박촌으로 바뀌었지만 인심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수퍼 아줌마는 이 더위에 미쳤지 쯧쯔 라고 도움 안되는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나.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씩씩하게 일어섰다. 일어서서 고갯마루로 올라가는데 다리에 힘이 안 생긴다. 손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 팔다리를 닦고 목에 둘렀다. 십여분쯤 멍하니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두 시다. 두 시 넘기 전에 반은 가야지.

이 놈에 업, 다운, 업, 다운은 언제 끝나나. 이제 두 시다. 열파가 악마떼처럼 도로를 휩쓸고 지나갔다. 눈썹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안경을 타고 공공연하게 흘러내렸다. 볼이 미끈거리고 입안이 타들어갔다. 졸립다. 바야흐로 신경계의 셧다운이 일어나려 하는 것 같다. 업힐 몇 개 하고 지쳐 나가떨어져 잼버리 공원인지 하는 곳의 송림 속으로 자전거를 들이받듯이 몰고 들어갔다. 급제동하다가 페달의 뾰족한 모서리가 허벅지를 긁어 피가 맺혔다. 신경 안 쓴다.

피서 나온 몇몇 가족이 돗자리를 펴고 고기를 구워먹으며 한가하게 즐기고 있다.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니 머리가 확 돌아버렸다. 마침 전화가 울려 김씨 아저씨가 밥 맛있게 먹고 술 한 잔 하며 잘 놀고 있다고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래... 염장을 질러라.

생각해 보니 아침에 우유, 빵 쪼가리 하나 먹은 걸로 지금까지 버틴게 기적이지. 밥을 안 먹어서 그런거야. 아니야, 그 동안 업힐 연습을 게을리 한 거지.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자만한거지, 고작해야 30분짜리 업힐 연습을 하루에 한번 한 걸로 지구를 다 정복할 수 있다고 뻔뻔하게 군거야, 그런데,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별별 잡 생각이 다 든다. 비좁은 벤치에 몸을 다 누이지 못한 채 그 나마도 벤치가 기울어 몸도 절로 반쯤 기우뚱한 자세로 누워, 먹을 꺼라고는 자일리톨 껌 두엇과 미지근한, 1/3쯤 남은 물을 아끼느라 홀짝이면서 이러고 있으니 처량하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얼음물을 마셔도 안 시원하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고기를 쩝쩝, 물을 꿀꺽꿀꺽 맛있게 먹는 그 소리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담배 한 대 빨았다. 담배는 pain killer다.

오후 3시. 심장이 헐떡이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업힐, 온 몸이 타는 것 같다. 이번에는 목표가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첫번째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자. 첫번째 음식점이 해장국집이다. 작은 마을을 거쳐가는 운전수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곳 같다. 열량이 제일 높아 보이는 해장국을 주문했다. 꽁꽁 얼린 물을 내준다. 1.5리터 들이 병의 반을 비웠다. 대체 땀이 얼마나 흐른건지 알 수가 없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니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밥 더 줘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물이라도 더 마셔요, 여기 물이 아주 맛있어요. 정말 맛있네요. 그러더니 내 빈 병에 물을 채우라고 물을 한 통 더 꺼내준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업힐이다. 언덕만 보이면 아주 돌아버리겠다. 구름이라도 해를 가려줬으면 고맙겠고만. 방금 음식 먹은 것들이 소화되면서 더위와 더해져 체온은 점점 높아져만 가는 것 같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쿵쿵 뛴다. 안장에서 내렸다. 한 친구가 내 옆을 스르르 지나쳐 간다.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그가 그늘에서 자전거를 세운 채 헉헉거리고 있었다. 우리 둘 다 땀을 비오듯이 흘렸다. 짐받이를 보니 흘낏 지도가 보인다. 대체 이 길이 언제쯤 끝나요? 내가 물었다. 원덕 까지는 계속 이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디까지 가세요? 울진이요. 탄식하듯 대꾸했다. 저는 오늘 울진까지 가려고 했다가 원덕에서 쉬려고요. 원덕? 원덕은 어디지? 얼마나 먼 거지? 얼마나 먼지 무슨 상관이겠어 일단 나는 울진까지는 갈 것이다. 힘 냅시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출발했다.

그 친구와 나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한동안 같이 달렸다. 나하고 체력이 비슷한 것 같다. 딱히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 젊은 친구는 근육질 몸이고 내 몸에는 근육 비슷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든 형편이다. 그와 내가 비슷한 체력이라는 점에서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체중 대비 머슬 파워인 것 같다. 대략 70kg 쯤 되어 보이는데, 그가 울퉁불퉁한 근육을 가지고 있을 지언정 여분의 4kg을 부양하려면 나만큼이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w/kg라는 단위는 썩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마라톤 선수들이 닭처럼 바짝 말랐고, '갸날픈 몸매로 세계를 여행한 여자들'이 부지기수인 것을 보면.

맛있는 물이 다 떨어졌다. 다운힐중 휴게소가 보였다. 빙과류중 폴라포를 집었다. 탁월한 선택이다. 폴라포는 500원에 거의 얼음덩어리와 당분이 주성분이고 용량이 140ml 밖에 안된다. 메로나 같은 것은 한 입에 꿀꺽 삼킬 수 있지만 폴라포는 얼음 덩이 때문에 140ml를 입에 다 넣으려면 5분은 걸린다. 급해도 천천히 먹을 수 밖에 없고 다 먹어도 그 용량이 140ml 밖에 안되니 액체로 된 음료수보다 몸을 식히고 수분을 섭취하는데 이상적이다. 왜 예전에는 이걸 몰랐을까. 폴라포를 맛있게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아까 그 친구가 언덕을 질주하는 것이 보인다. 씨익 웃어 주었다. 고개를 끄떡이며 마주 웃는다. 세워서, '폴라포를 먹어요. 이거 끝내줘요'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원덕에 이르렀다. 개울이 보인다. 웃통을 훌렁 벗고 개울로 뛰어 들어가서 몸을 식혔다. 기분 끝내준다. 동네 사람들이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어 흡사 미친놈처럼 보일까 두려워 얌전히 '냉탕'을 즐겼다. 아, 정말 살 것 같다. 개울이 계속 나타났으면 좋겠다.

길 옆에 있는 임원 해수욕장에 다다르니 오후 4시다. 이번엔 해수욕을 즐겼다. 차갑고 짭짜름한 물 속에서 열을 식혔다. 나곡 해수욕장에도 들렀다. 오후 5시. 혼자 놀아도 상당히 재밌다. 자맥질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몸에 소름이 돋는다. 해가 서편으로 멀리 가 버리자 해수욕장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바닷물은 상대적으로 차갑다. 여기서 민박을 할까 아니면 울진으로 들어갈까 고민했다. 그래도 울진까지는 가보자. 다시 출발. 이번에는 웃통을 벗고 그야말로 수영복 차림으로 달렸다. 땀이 나서 다시 입었다. 쿨맥스 긴팔 티셔츠, 성능 끝내준다. 왜 진작 이걸 안 입었나 싶다.

7번 국도를 벗어났다. 앞에 개천이 보여 몸을 담그고 싶어서 개천가까지 갔다. 발을 담그니 물 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2급(하)수다. 얼른 다리를 뺐다. 강원도를 벗어나자 마자 하천이 이 모양이 되다니 거참 신기하네. 울진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쳤다. 울진 원자력 스포츠 센터에 들렀다. 비타500 한병을 자판기에서 뽑아먹고 안면 몰수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팔다리를 씻었다. 샌달도 박박 씻었다.

다시 출발. 터널을 지날 때마다 뒤쫓아오는 차량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온다. 무섭다. 마치 눈알을 히번뜩이며 이빨을 자근자근 가는 나쁜 늑대들에게 쫓기는 기분이다. 내장과 심장이 덩달아 쿵쾅거려 서둘러 패달을 밟았다.

7번 국도에서 한참 벗어났기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렵다. gps의 나침반은 진행방향이 맞다고 표시하고 있지만 어딘지 을씨년스럽다. 차 한 대 안 지나가는 외진 도로의 차량 정비소에 이르니 사방에서 개들이 미친듯이 짖어댄다. 이리 가면 맞아요? 가다가 길이 막히면 공항로로 우회하면 됩니다. 도로가 끊긴 지점에 이르렀다. 새 도로로 우회하면 되지만 공사중이라고 도로를 막아놓은 쪽으로 들어섰다. 얕은 오르막 경사가 이어지는, 시원하게 죽 뻗은 도로 중간에 폭주족 애들이 썩 훌륭한 오토바이를 모아놓고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이 길로 죽 가면 울진 나와요? 네. 그중 한 친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그들 옆을 고작 시속 14kmh로 스쳐가는 나를 보더니,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빌어먹을 자식들 누굴 놀리나. 이렇게 체통을 구기면서 발질 또는 지랄하고 있는 나 보다는 니들이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라고 안 들리게 중얼거렸다.

gps를 보니 울진까지 8km 남았다. 거의 다 온 셈이다. 막힌 도로 마지막 지점에서 풀밭에 대자로 누웠다. 잠시 후 모기와 날파리들이 몰려와 살갗을 물어 뜯었다. 풀잎이 정강이를 베고 있어도 신경쓰지 않았다. 힘들다. 정말 힘들다. 이래 가지고서야 포항까지 갈 수 있을까.

일어섰다. 해가 지고 있다. 미등이 있긴 하지만 시원찮아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헤드 라이트도 없다. 해가 지는 시각은 7:17pm. 여명을 고려하면 7:30pm. 그전까지는 울진 시가지에 도착해야 한다. 7시다. 해가 곧 진다. 해 지면 가로등 하나 없는 지방도에서는 좆된다. 패달을 힘차게 밟았다.

다행히 울진 시가지에 도착했다. 차분한 시가지다. 마음에 든다. 가면서 저렴한 가격에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반짝, 햄버거가 떠올랐다. 햄버거집을 찾자. 시내 중심부에 이르니 롯데리아가 보인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가 불고기 버거 셋에 콜라 대신 오렌지 쥬스를 시키고 감자칩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콜라를 한 잔 더 시킨다는 것이 직원이 리필로 알아듣고 돈도 안 받고 채워준다. 이게 왠 횡재냐? 원래 롯데리아에서 리필이 되나? 단백질과 수분 보충을 끝내고 gps 지시에 따라 찜질방을 찾아갔다. 찜질방에서 맥주 한 잔 하기로 하고 해바라기씨도 샀다.

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무게를 재어봤다. 64.4kg,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니 64.1kg, 그새 2kg이 빠졌단 말인가? 햄버거 200g, 오렌지 쥬스+콜라 하면 500g은 족히 될 터이고 그동안 먹은 음식과 물의 양을 생각하면 실제 빠진 것은 10시간 만에 4~5kg? 전율을 느꼈다. 아내에게 꼭 권해줘야겠다.

찜질방이 어째 동네 목욕탕 스러워 보인다. 찜질방이 돗대기 시장같다. 안에 식당이 없어 전화를 걸어 동네 가게에서 냉국수를 시켜 먹었다. 메뉴는 냉국수, 온국수, 미역국 뿐이란다. 대낮 동안 수분을 섭취하고 배출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염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먹은 음식만으로는 부실하고 충분치 않은데. 이틀째 제대로 염분을 섭취하지 못했다. 눈 딱 감고 세포들이 뽀드득해지길 기원하면서 목욕탕의 이빨 쑤시는 소금을 한 모금 집어 삼켰다.

8/14

이번에도 잠을 설쳤다. pc 방이 없어 포항까지의 도로 사정을 조사하지 못했다. 나와보니 자전거가 어째 좀 이상하다. 누군가가 세자리 숫자로 돌아가는 키락을 열어놨다. 하지만 훔쳐가지는 않은 것이 장난 치면서 키락을 깬 것에 스스로 흐뭇해진 것 같다. 자식.

근육이 욱신거린다. 울진 시가지를 빠져 나가면서 옆에 터미널이 보였다. 가지 말자. 더 이상 가면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실험은 끝났다. 실험 결과: 아직 여행할 수준이 못 된다. 지구력을 강화하고 업힐 연습을 더 많이 하자. 포항행 7번 도로에서 방향을 틀어 터미널로 돌아섰다. 서울행 표를 끊으려다가 경주 가는 차가 보이길래 얼떨결에 경주행 버스표를 끊었다. 아무래도 대미는 '관광'으로 장식해야지 싶다.

울진에서 포항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다. 가는 길에 키락의 바뀐 번호를 알아내려고 000-999 사이의 조합을 시도했다. 쉽게 풀린다. 이런 종류의 자물쇠는 원래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해에서 울진까지 gps에 찍힌 주행거리는 78.5km다. 이래저래 쉰 시간을 빼면 8시간 동안 78.5km를 달린 것이니 시간당 10kmh로 잡으면 울진에서 포항까지 117km면 10시간에 충분히 주파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10시간 넘게 35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 주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교만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포항까지 가서 하룻밤 자고 포항에서 경주까지 30여 km를 달려서 경주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남들 다 하는데 나는 못하는 것 뿐이다. 체력이 안되니까.

경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내렸다. 자전거를 꺼내는 도중에 서두르다가 다시 페달에 정강이를 긁혔다. 피가 맺혔다. 관광 안내소에서 자전거 도로 지도를 얻었다. 불국사까지 얼마나 걸려요? 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불국사까지 18km이며 2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희안하네? 18km 가는데 2시간이나 걸린다니. 그럼 대부분 그 지긋지긋한 업힐, 다운힐 반복이란 말인가? 그것은 경주 도로가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는 '사실'과 배치된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왔다.

터미널에서 출발해 대릉원, 첨성대, 계림, 석빙고, 안압지, 국립경주박물관 코스를 밟았다. 자전거로 돌아다니기 정말 딱 좋다. 경주 박물관 가는 길에서 주행 중 물병을 꺼내 마시다가 물병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셔 왈칵, 사래 걸려 컥, 핸들이 틀어지면서 내리막길에서 가로수와 들이받았다. 핸들을 놓을 새도, 물병을 던질 생각도 못하고 미련하게 오른 팔과 다리로 나무를 밀다가 긁혔다. 이런 젠장. 오른 팔 소매가 찢어지고 팔이 긁히고 다리도 긁혔다. 양쪽 정강이와 팔 다리에 무수한 상처와 멍이 생겼다.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생기다니... 욱씬거린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수건에 물을 적셔 피를 닦아내고 돗대기 시장처럼 바글거리는 박물관 구경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나왔다. 사람이 많으니 집중이 안된다. 날은 오지게 덥다.

상처가 쓰리고 아침부터 먹은 거라고는 바나나 두 쪽 뿐이라 허기가 져서 불국사행을 포기하고 시내로 들어섰다. 뭘 먹을까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식당이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아... 이게 그 경주 밀면이구나. 4천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얼음덩이가 송송 뜬 푸짐한 국수가 나왔다. 면발이 쫄깃하고 국물이 시원하면서 얼큰한 것이 그럴듯 하다.

배가 부르니까 갑자기 희망적인 생각이 들어(방금 전에 바보같은 짓을 하다 팔 다리가 상처 투성이가 되어 스스로를 자책하며 의기소침했는데) 불국사를 향해 패달을 밟았다. 새삼스럽게 음식의 소중함을 느꼈다.

자전거가 어째 무겁다. 뒷바퀴를 흘낏 쳐다보니 바람이 없는 것 같다. 불국사 초등학교 앞에서 지나가던 할아버지한테 내가 앉아 있을 때 뒷바퀴가 어떻냐고 물어보니 빵꾸났단다. 어, 펑크인 거냐? 펑크 패치가 있지만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펑크를 때울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마침 장터 근처에 있어 장기 두고 있는 자전거 가게 아저씨한테 3천원 주고 때웠다. 내가 때우려고 노력했더라면 아마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구멍이 워낙 미세해 튜브를 물에 담그고 한참을 이리저리 굴려서 간신히 찾아낸다.

그 동안 장터를 구경했다. 시골장 같다. 거참 신기하다. 경주는 관광 산업으로 꽤 큰 도시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침에 본 여러 관광지보다 장터 구경과 동네 청년들이 8.15 기념 운동회 하는 걸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술과 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거저 나눠주는데 점심을 배터지게 먹은 것이 아쉽다.

불국사까지 주행시간만 1시간 20분, 펑크 때우고 구경하느라 1시간, 족집게 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맞춘 관광안내소 안내양에게 경탄했다.

불국사 주차장에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가방도 그대로 놔뒀다. 훔쳐갈만한 것도 없으니까. 훔쳐가봐라. 그냥 확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겠다.

화장실에 들러 웃통을 벗어 빨았다. 소금끼가 묻어 하얀 자국이 나 있다. '옷가지 빨지 말 것'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내친 김에 팔 다리도 깨끗이 씻었다. 절집에 가는데 옷차림이 단정해야지 무슨 헛소리야?

불국사는 어렸을 때 본거나 지금 본거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볼거리는 많지 않다. 울궈먹기도 이런 울궈먹기가 없을 것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한국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 그 담백함과 깔끔함은 한국인의 개같은 민족성과 심하게 배치되어 보일 때도 있다. 음, 이를테면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걔네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이유는 개같은 한국인들을 워낙 많이 상대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믿는다. 그런 아름다움인 것이다...

석굴암까지 가는데만 50분 걸린다기에 덥고 지쳐서 그냥 근처 잔디밭에 앉아 그저 빙과류 마시면서 시간을 때웠다.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일본 애들이 보여 광복절인데 한국에 찾아와 관광을 즐기는 일본애들의 깡에 경탄했다. 불국사 관람한 소감이 어떻냐고 물으니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헤헤 웃더니 그냥 달아난다. 얘들아, 내가 비록 몰골은 심하게 없어 보여도 불교면 불교, 이슬람이면 이슬람, 힌두교면 힌두교, 조금씩은 다 안단 말이다. 일본 갈 때 두고보자. 말 걸었는데 무시하다니... 영어로 해서 그런가...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이나 우물안 개구리라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해 보였다. 한국에는 심지어 신문의 국제면에서 쓸만한 기사가 거의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저 해외토픽 수준이지.

보문관광단지로 향했다. 야트막한 업힐이라 길은 아주 쉬웠다. 그래도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려 휴게소에 들러 폴라포를 하나 사 먹었다. 수분을 섭취한 세포들이 몹시 기뻐한다. 맛있어 보이는 팥빙수를 먹고 싶지만 배가 무거울 것 같다. 한가하게 오리배 떠다니는 모습을 관람했다. 보문관광단지의 마스코트는 아무래도 오리배와 현대xx건물 인 것 같다.

전혀 발 담그고 싶은 기분이 안 드는 2급수 형산강변을 따라 시내로 천천히 주행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멈추지 않고 경주 주변을 내내 돌고 있다. 대나무숲이 물결치면서 피리 불듯이 낮게 부우부우 우는 소리를 낼 것만 같다. 그야말로 서라벌에 부는 바람이다. 자전거 모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더위 때문에 지친다. 대교 눈높이 전국 축구대회가 마침 벌어지고 있었다. 대회장 식수터에 가서 물과 차를 얻어 마시고 잘한다고 박수도 쳐줬다. 애들 축구 잘하네?

시내로 들어서니 오후 5시. 여전히 덥다. 돈을 찾으러 은행의 ATM에 들어가니 시원해서 신발 벗고, 음, 아예 드러누었다. 왜 진작 이러지 않았을까, 무료로 시간 보내면서 더위 식히기 딱 좋은 장소인데. 감시 카메라에 어떻게 찍혔을 지 가관도 아니겠다. 감시 카메라를 고려해서 엉덩이를 잠시 까 보였다.

gps의 좌표만 믿고 찾아가보니 시외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어? 이게 아닌데... 찜질방은 어디간거지? 아뿔싸, 이 좌표는 시외버스 터미널 좌표다. 찜질방 좌표를 입력하지 않은 것이다. 관광 안내소는 문을 닫았고 지나가는 택시 기사한테 물어보니 경주 시내에는 찜질방이 없다는 것이다. 찜질방은 시 외곽으로 나가야 있다나? 어떻게 찾아 가야 하는지 지도를 내밀고 물으니 그 따위(!) 지도로는 찾아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 지도 괜찮은데?

어쩐다. 날이 어두워지는데 자전거 몰고 다니며 찾을 수는 없고 시내 구경도 하고 싶고, 어차피 내일 터미널에 다시 돌아와야 하니 터미널 주변에 즐비하게 널린 자전거 가게를 찾아 다니며 자전거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한 가게가 5천원 주면 맡아 주겠단다. 자전거를 맡기고 시내 구경을 했다. 중심가란다. 롯데리아에 들러 에어컨 바람 쐬면서 단백질 보충하고 콜라 리필해서 두 번쯤 더 마시고 나왔다. 에어컨 앞에서 기체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찜질방이 어딨냐고 물으니 동대 부근에 있단다. 이런... 동국대면 아까 경주 시내로 들어오면서 지나친, 다리 건너편인데. 뭐 그게 어렵다고 택시기사들이 안 알려준건지?

동대 황토 찜질방에 택시 타고 갔다. 버스 타고 가면 되는데 어쩌나 보려고 택시를 타 봤다. 택시 기사가 한참 헤메면서 찾았다. 3500원 나왔다. 택시 기사가 일부러 헤멘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 왜냐하면 나는 경주 시내 지리를 안다.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아 봤으니까. 다음날 아침 우연히 동대 앞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를 다시 타게 되었는데 그때는 1900원 나왔다. 경주 택시 기사 양반들이 그 따위로 하면 그네들 인상만 구겨질 뿐이란 것을 제주도 관광택시들이 오래전에 이미 전례를 만들었다고 보는데.

찜질방이 다소 생각외다. 목욕탕은 없고 샤워실에 수건 하나 달랑 준다. 내일 아침에는 어쩌라고? 물론 찜질방이 가동중이지도 않았고 에어컨 조차 켜지 않았다. 그냥 7천원 짜리 도미토리다. 그래도 경주 시내의 값비싼 호텔이나 여관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tv로 남-북 축구 보면서 주인 아줌마와 노가리 까고 가게도 봐주면서 맥주 한 잔 하고 아무 방에 들어가 누웠다. 새벽 두 시까지 한 사람 두 사람, 사람들이 꾸역꾸역 찾아와 아무데나 널부러져 잤다. 분위기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유일하게 선풍기가 달려있는 넓은 회의실을 통째로 차지하고 방바닥을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돌바닥에 오래 머무르면 미지근해 지니까 포지션을 바꿔서). 아무도 안 들어와 혼자 편히 자고 있는데 여자애들 셋이 한꺼번에 들어와 회의실의 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반만 굴렀다.

8/15

요란하게 한방 황토 찜질방임을 과시하는 이곳은 들창으로 아침이 가차없이 침투하는 구조라 6시에 어쩔 수 없이 깨어났다. 3일 내내 제대로 잠을 자 보지 못했다. 샤워하고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와 동대 앞까지 걸어가 택시를 타고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 자전거 가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돼지국밥 한 그릇 시켜 먹고 터미널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자전거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내 자전거가 괜찮은 자전거란다. 글쎄, 그다지 안 좋다. 거의 한 달 타고 돌아다녔더니 BB나 페들 어딘가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스프라켓을 통째로 갈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프레임은 괜찮지만 디레일러만 빼고는 어쩐지 부속들이 싸구려 같다. 최근 며칠 타고 다니는 동안 걸리적 거리는 소음이 들려 서울 올라가면 자전거를 제대로 한 번 점검 받아야겠다.

자전거를 싣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16300원. 울진에서 경주로 오는 온갖 군데 다 서는 시골 완행 버스를 13500원 주고 타고 왔는데 그보다 낫다. tv에서 노무현이 광복절 기념사를 하고 있었다. 60주년을 맞은 이번 광복절은 여러 행사가 덧붙여 지면서 나름대로 특별해진 것 같다.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남부 터미널에 도착. 어떻게 강북으로 가야할지... 무작정 반포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침 반포대교 밑으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를 빠져나가는 두 가지 주요 경로를 다 알게 되었다. 동서울 터미널과 남부 터미널까지 가는 길.

평균 20kmh 속도로 꾸준히 14km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중간에 폴라포도 하나 먹어줬다. 보약이다. 팔 다리가 상처 투성이다. 코끝과 다리가 새카맣게 탔다. 약국에 들러 약을 사서 바르고 여행 내내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사먹었다.

자전거 타고 혼자 다니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자전거 여행은 타지 여행과 참 많이 비슷하다. 서로 만나면 아는 척도 하고. 수고 많으시다.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 살이 좀 타서 화끈거리는 것 빼고 다리에 근육통이나 뭐 이런 것이 없다. 신기하네...

뻔뻔하게 나흘 내내 수영복만 줄곳 입고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개울이나 바다에 마음껏 뛰어들 수 있어 아주 좋았다는 것 빼고,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건진 것은 고작, 건강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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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행

잡기 2005. 8. 12. 14:01
주행시간: 1h3m, 주행거리: 18km, 최고속도 45kmh, 평균속도 14kmh

평가: 간만에 비가 내리지 않아 탔지만, 오다가다 비를 맞았다. 아내가 사준 쿨맥스 상의와 팬티는 쓸만했다. 옆에서 소리없이 추월하여 앞서가는 아저씨를 보았다. 거리는 점점 멀어지면서 아저씨와 자전거는 까마득한 소실점이 되어갔다. 힐끗 gps를 보니 속도계에 40kmh가 찍혔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자전거를 탄다. 나는 마치 허우적거리는 오리 같았는데.



요즘 자전거 타고 자주 가는 코스



어제는 물이 좀 불었지만 이런 데서 발 담그고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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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음식 솜씨

잡기 2005. 8. 10. 22:11
아내는 아까 터키 갔다. '공식' 일정은 15일. 기왕 나가는 김에 여기저기 몇 개월쯤 돌아다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면 자기를 보고 싶어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슬기롭게 대처했다.

a. 마누라는 예전에 남들 앞에서 내가 자신을 마누라 라고 호칭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와이프'라는 말은 결혼 후 사용한 적 없다. 마누라가 '아내'보다 훌륭한 뜻을 갖고 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더만 역사를 공부하는 누나가 술자리에서 마누라의 어원을 설명해 주고 나서야 입을 닫았다. 그 때까지 내 입으로는 마누라가 아내보다 왜 나은지 말하지 않고 그것도 모르냐고 비웃었다. b. 영화 보고 새벽 두 시쯤 집으로 걸어오면서 방금 본 버그 투성이 동막골에 관해 얘기하다가 오필리아와 나르시서스 얘기를 슬슬 했더니 내가 햄릿과 그리스의 (바보스러운 그 민간) 설화를 잘못 알고 있다며 웹으로 검색해 보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내가 맞았다. c. 하루는 초밥에 와사비와 간장을 어디에 찍어 먹는가 하는 문제로 티격태격했다. 아내는 다음 날 열심히 웹을 검색해서 메신저로 '초밥 제대로 먹는 법' url을 날려줬다. 내가 틀렸다.

세 가지 일화의 공통점은, 제 남편에게 권위나 믿음이 심하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내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콧방귀를 뀌었다.

결혼하고 2년이 되어 간다. 날이 갈수록 내 칼질이나 음식 솜씨는 나아지고 있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술에 취한 다음 날 아침 숙취로 골이 땡겨도 쓰린 배를 움켜쥐고 아내가 차려 주기 전에 '서둘러' 발딱 일어나 북어국을 끓였다. 시원한 북어국 한 사발 먹고 자면 개운하다. 아내의 음식 솜씨는 변화가 없다(아내는 자신의 음식 솜씨가 '평범한 수준'은 된다고 믿었다) -- 나아지거나 나빠지지 않았다. 그나마 밥 만큼은 잘 했는데, 그날 날씨나 기분에 따라 그것도 오락가락했다. 댁 음식에는 정성이 없어서 그래. 딸깍, 밥 한 공기 깔끔하게 비우고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말하면,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밥하고 설겆이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보통 일이다) 그걸 해 주고 싶어하는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맛 없다고 꾸준히 투덜거리는 남편 때문에 열 받겠지? 암.

아내가 아는 결혼한 여자들 얘기를 이것저것 들어보니 제 남편한테 꼬박꼬박 밥상 차려주는 여자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가사가 즐겁다면 즐겁게 하면 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이지, 뭐하러 욕 먹어가면서, 말년에 억울해질 것이 틀림없는 가사노동이랍시고 하나?' 라고 말하면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은 대개 기분 나빠 한다. 남편이 무뇌아 바보라서 고생하는 아내들이 꽤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내 아내와 같은 사람은 그저 그런 가치중립적 사실과 별 볼 일 없는 사실 관계의 평가로부터 상처를 입는, 스스로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또라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들린다. 아내나 누구든 날더러 그냥 또라이라고 말해도 화나거나 자존심 상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재현한 원인이 내 자신인 바에야.

미역국, 콩나물국, 북어국, 김치찌게, 된장찌게 등 평범한 음식을 좋아한다. 수 년 동안 trial and error method를 적용해 본 결과 콩나물국은 간단하면서도 이상하게 맛 내기가 힘들었던 음식이다. 콩나물 잘 씻어 냄비에 넣고 소금 치고 끓여 한 숨 죽이고 식혔다가 물 붓고 끓이다가 파, 마늘 넣고 소금간 맞추면 끝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음식이건만! 맑은 콩나물국이 잘 되면 거기에 고춧가루를 조금 뿌리거나, 숨죽일 때 좋은 천일염을 쓰거나, 멸치 대가리 등속으로 국물을 우려 김치와 함께 넣어 김치콩나물국을 만드는 등 여러 시리즈가 가능하다. 정확히 어떤 과정을 밟아왔길래 내가 콩나물국을 잘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타이밍 탓인 듯 싶다.

아내가 만든 수상한 콩나물국이 맛이 없다고 하면 그건 그저 '취향' 문제일 따름이며, 내가 몹시 까탈스럽게 군다고 핀잔을 준 후, 내가 한 콩나물국은 맛이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부부에겐 맛에 관해 서로 적대적인 모르모트가 각자 하나씩 있는 셈이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 것이 맛이 없다고 끝까지 우기는 편이 승리를 거머쥐는데, 아내는 장구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아마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진화에 관한 우스개: 현생 인류,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강한 생존압 속에서 끝까지 살아 남은 승리자들의 후손이다. 다른 관점: 음식점에서 음식이 맛없다고 계속 주장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그와 함께 외식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그 자신에게 이익을 줄 지도 모르는 동인이 점점 작아진다. 따라서 먹을 기회를 확대하려면 맛 없는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어주고, 맛있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그 이상한 관점에서 보자면 내게 가장 큰 인센티브가 되는 경우는 나만 알고 맛있게 배불리 먹는 것이지 '먹을 기회의 확대'는 아닌 것 같다)


돼지갈비에 새우를 함께 구워 먹는 것이 아내의 '취향'이다.


돼지갈비에 새우처럼, 여행자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것도 아내의 '취향'이다. 인도, 자이푸르.

북어국도 콩나물국처럼 쉬우면서도 맛내기가 어려운 음식인지 모르겠다. 최소한 아내가 만드는 북어국에서는 a. 북어맛이 안 나거나, b. 호박 비린내가 나거나, c. 난데없이 멸치맛이 난다. 북어를 잠깐 물에 불리고 참기름에 볶은 다음 물 붓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썰어 붓고 끓이면 끝이다. 주로 호박, 감자, 양파, 청고추, 홍고추 등 냉장고에 자투리로 돌아다니는 흔한 야채를 사용하는데 양념은 후추가루 아주 약간, 고춧가루 약간 넣고 적당히 끓이다가 두부 있으면 넣고 파, 마늘을 넣고 약불에서 10여분 정도 끓인다. 계란 풀어 넣을 때도 있고 계란 안 넣어도 맛있다. 요즘은 나의 자랑스러운 북어국 만큼은 왠간한 업소에서 만들어 파는 것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해서 북어국과 콩나물국을 어렵게 개척했다.

미식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냉소하는 몇몇이 있긴 하겠군). 해먹는 음식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내는 생야채를 아주 좋아하고, 조미료를 싫어하고, 밀가루 음식 중에서도 튀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생선을 뺀 갑각류 해산물을 좋아하고, 초밥을 즐기고, 맵고 얼큰한 음식을 즐기고(청양고추를 날 것으로 씹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온다) 들짐승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심지어 개고기도 안 먹었다.

'취향'이 그 모양이니 6개월 가량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나마 작은 사람이 살이 쏙 빠지고 얼굴에 기미가 끼고 광대가 튀어나온 채 더위에 비실거렸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에어컨이 갖춰지고 비교적 위생적인 레스토랑을 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다 -- 아내의 만족도는 낮았다. 레스토랑으로도 안 되어 게스트 하우스 주방을 빌려 아내에게 밥과 국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며 인도로 도망치는 네팔 난민처럼 바싹 말라가는 모습을 눈뜨고 못 보았다.

반면 나는 이란에서 먹은 노린내가 심한 양골 샌드위치 빼고는(썩은 듯)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 그러니까 박쥐고기,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들짐승의 고환, 바퀴벌레 튀김도 흥미진진하게 잘 먹었다.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심지어 시장통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자동차 먼지를 뒤집어 쓰고 파리가 들끓는 위생상태가 몹시 의심스러운 음식이나, 기름과 모래 먼지들이 둥둥 떠다니는 물 마저도 잘 먹고 잘 마셨다. 참고로 원효는 편식을 극복하고 나서 불교사에 길이 빛나는 걸작을 남겼다.

아무튼 뭔가를 잘해 보려면 꾸준히 관찰하고 학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 이 교조적이고 밥맛 떨어지는 말은 희한하게도 항상 톱니바퀴 물린듯 옳게 작동한다. 나는 노력했고 아내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고만장해서 잘난 척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그뿐이다.

진실은 음식에 있다. 제 남편의 굳은 믿음은, 음식이 맛 없으면 성질이 드러워진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가장 가까운 증거지. 암. 좀 더 확장하자면, 음식이 맛이 없으면 Intelligent design이나 핵이나 천동설이나 이라크 침공이나 무기소지 합법 같은 것이 받아 들여지는 똥오줌 못가리는 국민들이 우글거리는 미국 같은 변태 국가가 된다.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활력 넘치는 서민 생활의 기본이랄 수 있는 네 가지 국 만큼은 심혈을 기울여 팔팔 끓여보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남편은 아내를 믿고, 아내는 남편을 믿고, 노력과 끈기로 갖은 편견과 고난, 특히 '취향'을 극복해 내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리 앞에 펼쳐진 무한한 맛의 세계를 개척해 나아가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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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g 분량의 짐을 억지로 만들려고 3권의 하드커버를 짐받이에 묵어 저번 주에 반포대교까지. 가운데 구멍이 뚫려 불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전립선 안장인데... 땀에 바지가 흠뻑 젖었을 때는 자지 주위만 바람이 통해 거기만 달랑 말라 있어서 보기가 좀...

이 바닥에서는 근효율을 W/Kg로 나타내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와이어드 기사를 읽은 기억 때문일까? 와이어드 기사를 읽은 게 틀림없는데 검색해보니 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보통 사람은 200w/kg 정도고 자전거 선수들은 400-500w/kg 까지 나오는 것 같다. 균효율이 일정하다면 몸무게가 가벼운 쪽이 낫다고 단정한다. 운동선수가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젖산 역치는 무시.

근육이 찢어지고 망가진 다음에 회복되면서 미오신과 액틴 가닥들이 결합함으로서 이전보다 효율이 좋고 튼튼한 근육이 형성된다고 옛날에 알았던 것 같다. 오직 먹은 밥과 산소 만으로 분당 70회 발을 저으면서 3시간 이상 주행해도 근육이 피로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한 2주 동안 열심히 망쳐 놓은 다리 근육이 재생되길 기대하며 며칠은(나가려니 비가 왔다) 자전거를 타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내 몸이나 뇌에 '근육'이란 개념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 근육에는 안 가고 머리에서만 엄청나게, 그리고 부질없이 소비되는 그 많은 양의 포도당을 생각하면 동등한 권리를 타고난 다른 많은 세포들을 위해서라도 혼자만 열심히 먹어대는 재벌에 해당하는 머리를 확 잘라 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자전거를 안 탔으니 그 동안 밀린 공부 잠깐;

* 탄수화물(포도당 및 글리코겐)이 주된 에너지원이나 산소 공급이 불충분하다면 포도당으로부터 형성된 pyruvate(6탄당 글루코스-> pyruvate 2분자+2 ATP??)는 시트르산 회로에 들어가지 못해 젖산으로 환원된다.

* ATP가 가수분해 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50-60%는 열로 소비된다. 근육의 기계적 일 효율은 20-30% 가량이다. 의외로 낮아서 놀랍다.

* 결체 조직 및 대사산물의 생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근 피로 및 근육통은 운동후 12시간 후부터 시작하여 4-6일 후 소실된다. 경험으로, 알이 배기거나 통증을 느낄 때는 스트레칭을 해주면 통증이 그렇게까지 오래가지는 않는 것 같다. 아마도 근섬유 재생하라는 시그널에 세포들이 시들해질 무렵 스트레칭을 하면 근섬유가 조금 더 파괴되어 세포들이 놀고 있을 틈이 안 생기기 때문이지 싶다. 마치 애들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 것처럼 내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고통을 느껴야... 음. 실없는 소리를 하고 말았군!

* 근육에는 두 종류 타잎이 있는데 (type I, red muscle, type II, white muscle) type I에서는 세포내 호기성 호흡과정을 통해 에너지가 생산되고 type II에서는 혐기성 과정을 거친다. 필요한 것은 글리코겐 소모량이 적고 피로도가 낮으며 미오글로빈 함량이 높고(그래서 근색이 적색) 수축 속도가 느린 등, 장거리 운동 선수에게 많은 type I 근육이다.

* 지방을 태우려면 저부하 운동이 권장된다. 또한, 근 일률을 높이려면 과부하가 아닌 중등 규모의 부하 조건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고단 기어에서 무리하게 힘주지 말고 저단으로 낮추어 지속적으로 근육을 사용.

* 장거리 운동을 지속하면 근섬유 크기는 변화하지 않고 골격근 내 모세혈관 수와 호기성 대사능력이 증가한다. 뭐야? 그럼 마라톤이잖아?

* 결론적으로, 자전거 전용도로는 지구력이 강한 근육 운동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단 놓고도 끊임 없이 다리를 허부적거려야 하는 북한산성->송추계곡 코스가 적합.

그나저나 자전거 운동에 관해 뒤진다는 것이 생리학 쪽을 뒤지고 말았군. 다음에는 요리 쪽을 뒤져볼까? 영양도 영양이지만(고기와 야채, 밥을 다양하게 골고루 섭취하면 아무 거라도 영양만점이다)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여야 세포들이 감동해서 일 잘 하고 말도 잘 듣지. 암.

상위: 그 탁월하신 영도력의 비결이 뭐기요?
촌장: 머를 마이 멕여야지

-- 웰컴 투 동막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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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잡기 2005. 8. 8. 15:32
* 코스: 집->응암역->월드컵경기장->반포대교->월드컵경기장->불광역->집 (38.5km)
* 주행시간: 2h6m
* 최고속도: 29.6kmh
* 평균속도: 16.4kmh

평가: 짐받이에 4kg 분량의 책을 싣고 평지만 줄곳 달렸다. 맞바람에서 17-19kmh, 바람을 등지고 22kmh가량을 꾸준히 유지. 짐 때문에 발이 무겁고 돌아와서 피곤했다. 비가 온 후 강변을 따라 펼쳐진 석양이 몹시 아름다웠다. 일주일 가량 한 셈인데 생각만큼 체력이 금방 좋아지지 않는다.

* 코스: 집->북한산성->의정부시 경계->다시 집 (33.4km)
* 주행시간: 1h27m
* 최고속도: 86.4kmh
& 평균속도: 17.2kmh

평가: 두 차례에 걸쳐 송추계곡 근처까지 왕복. 아무리 내리막에서 발질을 했다지만 최고속도가 86.4km가 나온 것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추측: gps가 일시적인 음영상태로 들어가 거리/시간이 점핑하면서(토끼 현상) 순간 최대속도가 잘못 계산되었다. 12ch gps이고 샘플링이 1s 단위라 단 몇 초 동안의 일시적인 음영이 이런 현상의 배경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관찰한 최대속도는 44km였다. 집에서부터 의정부시 경계까지 꾸준히 오르막길이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2차례 주행, 한 번은 비를 많이 맞았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이내가 20km 안팎이 되어 주행 연습을 하면서 생활권이 넓어진듯한 기분이다. 매일 오후 5시에 시작하여 7시쯤 끝낸다. 2주 전보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긴 했으나 특별히 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니 근육이 붙는다거나 크게 운동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밥 먹는 양만 늘었다.

컨트롤: 범죄자에게 약을 먹여 그의 본성적 폭력성을 순화시킨다는 내용. 제목의 컨트롤을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보다가 나중에서야 무릎을 쳤다. 이렌 젠장, 그냥 시약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대조군(control)을 말하는 것이었잖아? 제목이 영화의 반전이다. 그게 전부였다. 영화를 이제는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만드는 건가? -_-

웰컴 투 동막골: 아내 말로는 연극이었다고 한다. 좀 더 잘 만들 것이지, 영화 끝나고 중얼거렸다. 연출이 의도했던 인문적이고 자연적인 공간(그들이 옳다고 믿는 일종의 히피즘(동막골이 그런 뜻이다) 또는 똥고집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학습한 거부감 탓인지, 역사적 비극 앞에선 휴머니티가 환경과 생존에 대한 이해를 답보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판타지가 된다는 바로 그 생각을 연장한 영화다 -- 아무리 반복해도 모자란듯한, 인간성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그 머저리같은 경험과 인지의 똥덩이 같은 거대한 축적 말이다. 환상과 현실, 자연과 비자연의 대치, 융합, 교번의 도식을 그래서 좋게 보지 않는 것인지도. 좋은 플롯과 썩 괜찮은 연출로 양질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음에도 CG로 떡칠하고 '좋은 감정'을 슬며시 짜내는데야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 스미스의 찔찔 짜는 울음에 이르러 잠깐 공감했다. 거의 문학적 코드라 할 수 있는 광년이의 개입은 이해하지만서도 소총 몇 자루, 기관총 몇 자루, 박격포로 남북 '연합군'이 '광포'한 미제 전투기 네 대를 격추시키는 씬에 이르러서는 진정 이 영화가 넋빠진 환상이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강원도 산간벽지(아마도 태백 부근인 것 같다)의 꾀죄죄함과 비루함이 '인간성' 하나만 믿고 환상적으로 각색될 수 있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을 터인데. 강원도를 뭘로 보는건지; 강원도 촌놈의 입장에서는 거부감 느껴지는 반시골스럽고 비시골스러운 풍경이기도 했다(비록 기억에 의해 왜곡된 환상적인 어린 시절이긴 하나, 내 시골은 늘 썩은 사료와 소똥 냄새가 함께 했다).

인터넷을 떠돌다가 영화 만든 작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동막골을 신비스러운 곳으로 만들자고 아주 굳은 결심을 한 것 같다. 호감 안 가는 아~주~ 굳은 결심!

redemption ark: 마지막이 약간 횅뎅그레 하지만(이 소설에서 가장 자주 쓰였던 형용사가 vast가 아닐까 싶긴 하다) 래널즈의 세심하게 묘사한 하드 SF적 묘사는 스타워즈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늘 개무시하는 과학적 정합성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렉 이건이 도깨비같다면, 래널즈는 모래밭에서 소꼽놀이 하는 여자애처럼 세심하다 -- 많은 것들이 이 두꺼운 책에 있지만(670p. 아마 내가 읽은 SF중 가장 두꺼울 것 같다) 10g로 가속한 두 우주선의 추격전은 압권이다. 전혀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는 느리고 속 터지게 지루한 문장임에도(추격전이 거의 100p에 달한다) 흥미와 압박감을 준다는 점에서. 물리학자 출신이라서 그런 것일까? 가속 중인 우주선에서 발사한 무기의 상대론적 효과를 이렇게 자세하게(뭐 지루하달 수도 있고) 묘사하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과연 있기나 할까? 그리고 은근슬쩍 스토리는 왜 이 황량하고 광활한 우주에 생명체가 극히 드문 것인가 하는 공상적인 이유(설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에 대한 자문자답을 제시한다.

써 놓고 보니 누가 봐도 몹시 재미없을 것 같은 SF겠군. -_-

오랫만에 안드로메다 4기를 보는데 두어편 보다가 끝없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꺼버렸다. 안드로메다 만든 작자들인 자기들이 무슨 걸레를 만들어놓은 것인지 알고는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한심한 액션과 어설픈 스토리, 그렇다고 매력적인 주인공 하나 없고 한결 같이 웃기지도 않은 농담 쪼가리나 되는 대로 내뱉어대는 이 시리즈물이 대체 어떻게 7기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안드로메다 보다는 차라리 스타게이트 아틀란티스가 낫다. 그러다가, 아틀란티스의 주연 여류 과학자가 바빌론 시리즈에서 가장 시시한 캐릭터였던 딜런 역을 맡은 그 여자와 비슷해 보였다. 옳은 소리만 지껄이는 불행한 암탉 신세라는 점에서 정말 많이 닯아, imdb를 뒤져보니 각각 Mira Furlan, Torri Higginson이 배역을 맡았다. 흠. 무능력한 알파 암탉의 출연은 단순히 미국 SF 시리즈물이 지닌 유사점인 것일까?

MSG 의 진실 -- 모기불 아저씨가 썩 괜찮은 얘기를 하기 시작. MSG가 인체에 해로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리즈로 근거 자료를 제시할 수준은 못 되었다. 글루탐산 나트륨은 아시아 음식에서 '자연적으로' 예전부터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평생 먹게 되는 그것을 건강에 안 좋다고 먹지 말자고 하는 것을 대체로 신기하게 생각했다. 내가 MSG를 싫어하는 딱 한 가지 이유는, 남들 말만큼, 모든 음식 맛을 평준화 시킨다는 것 정도다.

'텍스트 지향' 운동 -- 깬다. 물심양면으로 꾸준히 나라 걱정하는 조선일보나, 세상을 인간이 만족하는 그날까지 정원과 꽃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환경운동처럼 껍데기가 교조적이다. 버전 1.0은 그나마 뭔 소리인지 알아 먹겠고 확실히 반대할 수 있지만 1.1에 이르러서는 그렇잖아도 애매모호한 것을 순화시키면서 괴상해졌다.

1등.
헤헤
그렇다면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



ㅅㅂㄴㄷ 또 시작이네

저런 간단한 댓글(부정확한 정보전달, 부정확한 표현, 의미 불명, 책임없는 문자질, 불건전, 불건강, 인터넷 자원의 낭비) 따위를 스스로나마 지양하자는 마음에 정이 가나? 난 안 간다(아마 블로그질하면서 뭔가를 똑 부러지게 표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쓰여진 텍스트의 질감과 농도를 그렇다면 평가할 수 있나? 글쎄다.

취지에 공감하지 않고, 대다수 인간이 '텍스트 지향'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믿지도 않는다. 새해 금연 결심처럼 글을 똑바로 잘 써서 인터넷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노라는(또는 공공장소에서 오줌을 눗지 않겠노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야 하고 싶은 사람이나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사물에 지점을 가지는 '언어'를 신뢰하지도 않고), 캥기는 구석이 있다. 어린 시절 인터넷 꿈동산에서 뛰놀 때는 인터넷이란 곳이 진지하고 참여하는데 기쁨을 느끼던, 볼만한 글이 많은 작은 세계 마을 같은 곳이었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개나 소나' 다 하게 되니까 늘어나는 것은 쓰레기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들을 쓸어버리는 거대한 패킷 필터를 상상하기도 했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나만 그런 생각했던' 것이 아닌, 교조적인 도그마를 지녔던 꼬마에게 낯을 붉히고 쪽팔려 하는 것이다.

블로그질을 통해서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하겠다는 야심은 없다.

MBTI 테스트를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하는 것 같은데 십수년 동안 INTJ와 INTP를 시계추처럼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다. 이번에는 INTJ가 나왔다. 토정비결 보다야 약간 나은 신뢰성을 가진다고 믿는 MBTI 테스트 결과가 그래서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타고난' 과학자 타잎의 인물처럼 보이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는 평범한 취미가 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학자가 될 '경향성'은 따라서 내게 없다. 그럴 마음도 없고.

관찰 당하고 관심받기를 즐기는 불쌍한 여자들에게 첫 눈에 반하거나 지남철에 끌려오는 쇠조각처럼 이끌리는 것이 우연이 아니고 타인들의 성질을 긁고 울리고 웃기는 광대 같은 소질이나 언어에 상처받지 않는 특이한 기질은 외연이 가능한 유연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과학자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심지어 텍스트적이지도 않다. 텍스트에서 컨택스트를 읽는 것은 감정이입이라는 아마도 인간이 타고난 재능(gifted) 때문일 것이다. 계집애들 대부분이 어쩌다 사고로 잃어버린 초능력일지언정 그것에 경의를 표한다.

빈 서판식 생물학? 핑커가 책에서 한 주장이 맞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생물학을 더 이상 과학이라고 부를 수 없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눈물 지었다.

'빈 서판'이 말하는 '환경'은 pc 같은 것을 굳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독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이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발현을 조장하는 우연한 사건의 조합 또는 그러한 사건의 조합가능한 다양성으로의 노출'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럴듯한 문명' 속에서 양질의 고등교육을 입수하는 것은 아니다. 고등교육은 노출과 발현의 '기회'를 증대시킬 따름이다 --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으면 IQ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상황에 직면해 문제를 좀 더 잘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고 끼리끼리 어울리다보니 INTP가 꽤 많아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우습게도 INTP, INTJ는 전 인류의 몇 % 내외라고 한다.

따라서 '적절하고 바람직한 교육(?) 환경'이란 것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 라고 생각한다; 초딩때 애들끼리 url 돌려보던 야동 때문에 자신의 본성에 눈을 뜬 아이는 예쁜 연애인과 한 번 해보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섹소폰에서 소질을 발견하고 밴드 활동 하다가 딴따라가 되어 대학에 특채로 들어가서 왠지 폼 나 보이는 외계 생물학을 전공하다보니 어쩌다가 학위를 얻어 미션 스페셜리스트 자격으로 화성 탐사에 참여했다. 거대한 샌드스톰 속에서 고장난 우주선을 수리 중 뇌내 산소 고갈로 죽음의 문전을 오락가락 하다가 느낀 존재한 적 없는 존재란 경외감 때문에 머리가 돌은 것으로 판단한 NASA는 그를 해고했다. 수십년 만의 첫 여행지로 선택한 티벳에서 티벳 불교에 심취해 다람살라에 머물며 달라이라마의 죽음을 지켜보다가 할 일 다한 기분이 들어 손자들에게 좋은 할아버지가 될 결심이 서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아들 내외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좌절하며 돌아서서 하는 수 없이 먹고 살아야겠기에 어스틴에서 어쩌다가 두부장사를 시작했는데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자극이 없는 말년은 시시했다. 환경에의 노출은 우연의 소지가 크고 유전 몇%, 환경 몇% 따위의 이상한 얘기와는 상관없다. 오히려 모험하는 이들(쇼부를 보겠다는 이들)이 절대적이고 심지어 터무니없어 보이는 간극을 극복하게 된다 -- 오독은 그렇게 발생하고, 심지어 예측조차 가능하다.

대개의 사람은 환경(생존)이 자신을 짓누른다고 생각하지(그래서 다양한 인생 경험이 적어 자기를 여덟 번 째로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해, '존재론적 이상향'을 찾는데 좋은 자극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분석적이고 심지어 논리적이기까지 하고 타인에게 가혹한 차가운 파충류라고 믿는 사람들은 내 인생을 드라이브 했던 가장 강력한 '힘'이 환경과 별 상관없는 열정과 의지, 또는, 로맨티즘이라는 것을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마치 인간성과 사회와 국가가 그러해야 한다는 괴퍅한 믿음처럼. 그렇게 해서 생긴 오해와, 텍스트 지향 운동과, MBTI 테스트 결과와, 본성의 유전은 내게 서로 유관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쓰레기 같은 '환경'을)

-- 해병대 애들의 말로 추측.

휘리릭

철퍼덕
빠지지직
으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조심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피치못할 사고가 발생하여 길가에 엎어졌을 때;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 있을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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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평가

잡기 2005. 8. 2. 21:10
조선일보의 논조는, 그들 디스토피아 세계관 설정에 헛점이 많고 식상한 애국애족 구라를 재탕해서인지 신선한 면이 없어 임펙트가 약하다. 조선일보는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보는 신문이라고 한다. 나도 더울 때는 비가 좀 왔으면 하고 바란다. 조선일보 3개월 보면 누구나 노 대통령을 욕하게 된다는데 나는 왜 안될까. 조선일보를 3개월 구독 운운하는 전제를 의심하기 앞서, 무언가 정신상태에 잠재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갑자기 반짝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중앙일보를 함께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불찰이다. 동아일보까지 곁들여 삼위일체를 이뤄야 하는 것이다. 어떤 판타지 소설에는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소주 세 병에는 안주 하나가 이상적이듯이.

직지 CD 좀 구할 수 없냐고 편지가 왔다. 한글로 쓰여진 글에 아이들이 목말라 하는데 인터넷으로 다운로드가 불가능하다고. 집에 짱박아 두고 무덤에 함께 매장할 생각으로 남겨두었는데 몇 장 보내주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꼭 필요한 사람 아니면 직지 CD 보내달라는 것을 적당히 무시했다. 한글에 굶주렸다는 케냐의 교민 아이들에게 쓸모가 있길 바랬다.

자전거 가방 연결고리 때문에 캄 사와 며칠에 걸쳐 email 대화를 했다. 친절하다. 심지어 바엔드 구매 비용까지 일부 부담해 주겠다고 하는 것을 사양했다. 바엔드의 두께가 두꺼워 통과시킬 수 없다면 벨크로 패스너를 가방에 박음질 해서 보내 주겠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다.

* 코스: 집->연신내->구파발->고양시->구파발->연신내->집 (33.5km)
* 주행시간: 2h
* 최고속도: 41.6kmh
* 평균속도: 14.3kmh

평가: 스트록 방법을 바꿔 만족스러운 패달링을 했다. 직선로에서 그리 힘들이지 않고 23kmh 정도의 평균 속도를 꾸준히 유지하며 신호 위반 다섯 번 하는 등 국도를 겁없이 달렸다. 비오듯 땀을 흘렸지만 저번주 주행 테스트 결과보다 고무적이다. Q: 매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A: 고기를 먹었다.

간간이 비가 내리던 일요일에 돼지갈비를 사다가 아내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자리 펴고 구워 먹었다. 소주도 한 잔 했다. 아내가 고기 사줘서 고맙다. 다음 주 쯤이면 짐을 싣고 연습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습이라고는 하지만, 운동이 되고, 바깥 매연을 쐬니까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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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잡기 2005. 8. 2. 15:13
김씨 아저씨와 와인을 홀짝이다가 pda에 담긴 그가 쓴 소설을 보여줬다.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는 책을 etext로 구한 것이다. 아저씨가 쓴 글인데요, 다운 받았어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그는, 괜찮아요. 심지어는 내가 쓴 글이 인터넷에 돌아다니지 않으면 무척 섭섭했을 겁니다 라고 서글하게 대꾸한다. 불법복제된 그의 글을 면전에 들이대는 것은 악취미지만 매번 그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짓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또 했다.

Reynolds의 redemption ark를 이제서야 읽기 시작. 보통 빌린 책은 얼른 해치우는 편인데 굳이 늑장을 부리는 것은 이 책 이후로 더 볼만한 책이 없어서 아껴보려는 심산이다. 오늘 알게 된 것인데, 스트로스가 cc에 입각하여 accelerando를 웹에 공개했다. 얼마나 웃길지 기대된다. 읽을 글이 하나 더 생긴 이상 미적거릴 이유가 없다.

revelation space 시리즈는 뭘 읽어도 친숙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친절하게 전 편, 전 장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서로 모두 연관이 있어 그 두꺼운 책을(다 합치면 1600페이지쯤 되려나?)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작가는, 철자 중독증 환자에게 꺼지지 않는 땔감을 공급한다는 의미에서 장편의 미덕을 아는 것이다. 지루해질만 하면 기간틱하고 신기한 것들이 등장했다. 논리에서 결함이 눈에 띄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 마치 프로그래밍 소스를 보는 것처럼 철자 오류 하나 없는 으시시한 묵시록적 설정과 그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하드 사이언스적 내공이 적절하게 융화되어 있다. 썩 괜찮은 스페이스 오페라다.

갈리아나는 죽었다. 볼요바는 수백만년 전에 한 행성계를 전멸시킨 고대의 적을 상대로 캐시 웨폰을 사용하려고 우주선과 융합한 선장을 설득한다. 자폐증 펠카는 인식의 회랑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우주적 악을 보았다. 데마키스트를 비롯한 인류는 조만간 전멸하게 생겼다. 클라방은 컨조이너를 배신하고 다시 영웅놀이를 시작한다. 컨조이너들은 인류가 어떻게 되던 뉴트리노 궤적을 감추고 늑대들을 피해 지들 끼리만 멀리 달아날 생각을 하고 있다 -- 어젯밤까지 읽은 부분. 우와, 내가 쓰긴 했지만 스포일러가 정말 하나도 없네?

아는 한, 한국에는 현재 Alastair Reynolds의 팬이 딱 두 명 뿐이다. 마이너 아싸 골뱅이 슬립스트림 게토 닷 오알지 김씨 아저씨에게 가끔씩 마이너한 생활에서 벗어나 빛을 추구하라고 충고해 주기도 했다. 그는 그의 이름을 레이놀즈라고 발음하면 안되고 레널즈라고 교정해 주었다. 서로의 블로그에 코멘트를 남기거나 가끔 만나 술 한 잔 하기도 하는 등,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감싸고 아껴준다.

내 인생은 그냥 마이너 해, 서민이거든.

-- 어떤 아저씨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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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주행

잡기 2005. 7. 28. 21:20
오후 다섯 시 좀 넘어 하던 일을 정리했다. 홀씨를 얼마 전에 다운받아 놓았는데, pc에 설치 가능하고 데이터 역시 무료로 다운 가능해 지도가 좀 허접해도 참고 써줄만 하다. 지도를 참조해 응암역과 월드컵경기장 각각의 경위도 정보를 얻어 GPS에 입력하고 집 위치를 잡은 후 비가 오기 전에 자전거 주행 연습을 시작하러 나갔다.



스템에 스카치 테이프로 칭칭 감아놓은 GPS

난잡한 도로는 여전히 무서웠고,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차체가 밀려 으시시했지만 간간히 비를 맞으며 귓가로 슁슁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니 상쾌하다. 월드컵 경기장 북단으로 계속 자전거 도로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중간부터 비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무작정 갔다. 개울 넷과 자갈밭을 통과하면서 험하게 몰았는데 의외로 재미 있어서 신나게 탔다.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와 보니 차체가 진창으로 엉망진창이다. 재밌긴 하지만 왠만하면 도로로 달리자. 홍제천 자전거 도로로 올라오려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여의도를 지나 노들섬 앞까지 갔다.


흙받이를 떼어냈더니 가방에 온통 흙이 묻었다. 안장은 갈길 잘했다.

한산한 자전거 도로에서 맞바람에서는 평균 20km/h 가량, 바람을 등지니 23km/h 가량 나온다. gps는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잘 잡혔다. 속도계를 따로 사려고 했는데 gps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오히려 낫다. 코스를 미리 설정해 놓고 마치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트래킹할 수 있으니까. 이미 서해안 코스의 경위도 정보를 수집해 놓은 상태다. 내일 당장 출발해도 괜찮지만 일단은 체력이 안된다. 그나저나 나보다 더 체력이 간당거리는 황가는 연습하고 있나?

3시간 가량 자전거를 열심히 탔다. 이번에는 운동이 좀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입안이 바짝 마르고 허벅지가 묵직하다. 샤워하고 허기져서 주문한 피자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 코스: 집->불광역->응암역-[자전거도로]->월드컵경기장->경기장 북단->경기장->용산->경기장->응암역-[자전거 도로 끝]->연신내역->집 (39.9km)
* 주행시간: 2h43m
* 최대속도: 32.3km/h
* 평균속도: 14.6km/h

문제점:

1. 평균속도: 낮다. 하루 평균 100km를 5시간에 주파하려면 시간당 23km를 꾸준히 유지하도록 체력을 단련할 필요가 있다.

2. 최대속도: 기어를 최고단으로 시프트 해 놓고 신나게 밟아도 32km 밖에 안 나온다. 그 속도에서 브레이크를 잡으니 대략 5m 밀리고(10m 까지 밀려도 될 듯) 스키드 패턴은 아직 S 커브를 그린다. MTB의 타이어의 접지력이 의심스럽기도 하고 체중 배분을 좀 더 연습해 봐야 겠다.

2. 주행패턴: 전방 이동물체(인간)의 상대속도 평가 미숙. 아직 겁이 많아서 멀어지는 쪽과 가까와지는 쪽의 상대 속도를 가늠할 수 없어 일단 브레이크를 잡는 버릇이 있다. 애들이 앞에 보이면 속도를 낮추는 것은 무조건 몸에 익도록 하자.

3. gps 거치대: gps가 의외로 파워풀해서 상당히 쓸모가 있긴 한데 핸들에 고정할 적당한 방법이 뾰족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는 무조건 gps 들고 나간다.

4. 항상 물을 챙길 것.


세상에는 고수가 많다.

자기가 고수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진짜 고수



식객에서 봤다.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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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자전거 실험

잡기 2005. 7. 25. 22:47
자전거 사고 나서 공구를 안 사 며칠 동안 자전거를 방치했다. 집에 육각 나사 드라이버가 없다. 구매한 휴대용 공구가 도착해 완전 분해 완전 조립을 해 보려고 했으나, 역시 휴대용 공구로는 무리다. 공구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브레이크 이격 조절 하고 짐받이, 미등, 에어펌프 거치대, 물병 거치대 설치하고 안장 교체하는데만 두 시간 걸렸다.

이것 저것 사느라 자전거 외에도 15만원 가량 돈이 들었다. 가장 큰 지출은 QAMM 사의 자전거 가방, 시중가 11만원, 7월 중 행사가로 6만 7천 900원에 판매.



* 구매 리스트

* 안장 가방 6000 -- 싯 포스트 뒤에 붙이는 것. 산 것을 후회중.
* 알미늄 물통 케이지 5000
* 자전거 가방 18000 -- 바퀴를 분해해 자전거를 수납후 이동할 때 사용
* 경량 에어 펌프 5000 -- 매우 허접. 후회.
* 펑크 패치 50장 3000
* 여분 튜브 x 2 5000
* 착탈식 알미늄 짐받이 16000 -- 하중 10kg까지 버틸 수 있음.
* 2m 고무줄 1000
* 벨로 MTB 안장 20000 -- 장거리 여행용 (전립선 보호?)
* 휴대용 공구 20000 -- 18가지 공구 셋

뒷 바퀴가 QR 레버라 싯 포스트와 뒷 바퀴 축에 연결해 달 수 있는 패니어를 사용할 수 없다. 패니어 가방 자체가 비싸기도 할 뿐더러 국내를 돌아다니는데 많은 짐을 실을 이유는 없다. 아이디어가 괜찮은 QAMM 가방을 사고 나서 장착해 보려니 연결 고리 크기가 작다. 자전거의 바엔드는 23x40인 반면 연결 고리는 30x30, 캄에 문의해 보니 새 연결 고리를 제작중이며 제작이 끝나면 장착할 수 있게 가방을 다시 보내달란다. 가방 자체는 그럭 저럭 마음에 든다. 작은 코펠과 버너, 옷가지 약간, 카메라, PDA, 충전기 등을 수납하기 충분하다.

대충 조립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했다. 응암역에서 올림픽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 도로로 갈까 하다가 북한산성까지 차도를 따라 달렸다. 주로 국도로 다니게 될 터다. 저속 주행하는 인간이나 자전가가 유일한 장애물인 자전거 도로는 그래서 이런 저런 연습 정도에 필요하지 고려 대상이 못 된다.

한 시간 반 가량 도로 주행하면서 브레이크 이격을 재조정하고 안장 높이를 이리저리 조절했다. 안장 높이를 1.5cm 높였을 뿐인데도 패들링 감각이 달라진다. 안장을 높인 만큼 핸들도 따라 올려야(스템이라고 하던가?) 장시간 주행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앞 쇼바 덕택에 손목에 무리가 덜 갈줄 믿었지만 인도로 올라와 요철을 십여분 통과하니 손목이 뻐근하다.

앞 브레이크는 둔하게 하고 뒷 브레이크를 빡빡하게 조절했다. 브레이크 자체는 여러 번 조절하여 좋아졌지만 가속을 신나게 받아 시속 30km 정도에서 급제동 하니 바퀴가 멎은 상태에서 귀에 거슬리는 타이어 마찰음이 들리면서 차체가 통째로 비틀린다. 제동 거리는 대략 15-20m 사이, 살 떨린다. 여러 번 시도하면서 제동 거리와 브레이크 감을 실험해봤지만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 ABS처럼 짧게 여러 번 브레이크 레버를 당겨서 관성을 흡수하면 제동 거리가 길어질 뿐이다. 앞 브레이크 잡는 속도를 뒷 브레이크보다 늦추면 앞으로 고꾸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차체가 밀리는 현상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브레이크가 너무 잘 드는 것이 문제다. 몇년 전 제주도에서 비슷한 문제로 미끄러져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급경사에 빗길이라 브레이크가 안 먹어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박차고 뛰어내려 낙법을 하는 등 생쑈를 하고도 결국 피를 봤다. 핸들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바로 사고다.

앞 기어는 3단으로 고정, 뒷 기어만 조절했다. 앞 기어 건드릴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긴 오르막길에서 허벅지의 근육이 당긴다. 산을 여러번 타면서 하체를 보강했지만 그래도 운동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하지 않은 탓에 근육에 힘이 없다.

차도라서 갓길을 따라 달리면서도 버스가 가장 신경 쓰인다. 서울 시내처럼 복잡한 곳에서 자전거를 타 보는 것이 처음이고 애당초 도심에서 자전거 타는 것에 겁이 난다. 갓길까지 밀어붙이는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왼쪽 손을 스쳐갈 때마다 식은 땀이 흘렀다. 교차로 부근 신호등 앞에서 차량이 정체될 기미가 보이면 택시가 요리조리 방향을 바꾸며 진로를 가로막아 신경이 곤두섰다. 갓길이 없는 좁은 1차선 도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차량과 같이 주행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승용차와 속도를 맞춰야 하니 몹시 땀 난다.

주행 시간 1시간 30분, 8시 45분 무렵에 휴, 살았다는 심정으로 집에 도착. 자전거를 끌고 4층까지 올라갔다. 도로를 따라 달려서인지 별로 운동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샤워 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실험 결과를 정리했다.

1. 편한 안장으로 교체했지만 사타구니 사이가 아프다. -- 자주 타서 익숙해지는 것 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2. 앞쇼바에도 불구하고 손목이 아프다. -- 허리가 숙여져 상체의 체중이 손목에 부담을 주는데, 스템을 좀 올려야 할 것 같다.
3. 핸들 잡은 손에 땀이 나서 미끌거린다. -- 장갑을 껴야겠다.
4. 가방을 메서 등에 땀이 많이 배긴다. -- 가방은 짐받이에 묶자. 그러려고 부러 별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면서도 돈 들여 산 것이니까.
5. 차량 사이의 좁은 길을 통과하고 그 사이에서 회절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6. 브레이크 잡는 것은 연습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
7. 저단 기어에서 패들링의 매 레볼루션마다 뒷 디레일러와 스프라켓을 주회하는 체인에서 귀에 거슬리는 딸깍음이 들린다. -- 디레일러 조정은 아직 자신이 없는데 천천히 시간내서 배우며 해야겠다.

애당초 레크레이션이나 진짜 산간을 데굴데굴 올라갈 목적으로 산 MTB가 아니라 '자전거 여행'이 목적이긴 한데, 어째서 국내에는 소위 시티 바이크처럼 편안하고 MTB 처럼 튼튼한 자전거가 시판되는 것이 없을까 아쉽다. 처음 자전거를 살 때 물망에 올려두었던 것은 아메리칸 이글 AE5300이었지만 14.5인치 짜리로 좀 작은 편이고 바퀴 분리가 안 되어 자전거 가방에 수납하기 귀찮다. 자전거 가방은 이 동네에서는 요술가방으로 불리는데, 기차나 지하철에서 규정상 자전거를 끌고 승차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자전거 가방에 넣으면 승차가 가능하단다. 그런데 가방 자체가 묵직하고 부피가 있어 이걸 들고 다녀야할 지 난감하다.

옛날에 읽은 김훈의 서정적인 여행기,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 보다는 여행에 촛점을 맞췄다. 그래서 자전거의 최적 기어비를 찾거나 스포크 렌치를 들고 스포크 이격을 조절하거나 펑크를 때우는 '지저분한' 일들은 책에 적은 적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니까 정말 좋더라, 뭐 그런 수준이었다. Science Fiction처럼 Science는 안 중요하고 Fiction에 무게 중심을 싣는 것과 비슷하다. '자전거 여행'이므로 나는 '자전거'와 '여행' 양자를 다 중시할 것이다.

SF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SF 읽기를 최근 등한시 한 덕택에 가장 최근에 읽은 SF는 시공사에서 나온 가드너 도조와의 앤솔로지, 21세기 SF 도서관 2권, '유전자가 수상하다'가 마지막이다. 역자 후기의 구한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빼고는 책을 훌륭하게 잘 만들었다. 역시나 개중 볼만한 글은 레이놀스 형님과 해밀턴 형님의 글이다. 둘 말고 그나마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레즈닉 할아범의 래글태글 집시, 오! 외에는 나머지는 왠 잡동사니인가 싶다.

가드너 도조와의 '편집 솜씨'에 거부감을 갖는 편이고 그가 Science Fiction의 Science는 유행에 맞춰 적당히 구색을 갖추는 정도라서 그 양반의 매년 묶음집 시리즈를 '올해 SF계의 10대 뉴스' 수준으로 여기는 정도다. 아울러 앤솔로지를 쇼핑 가이드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10대 가수의 최근 앨범에 리듬앤 블루스, 락발라드, 펑키, 재즈필 등을 뒤죽박죽 섞어놓은 컴필레이션인지 쓰레기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보다 하나의 일관성있는 컨셉을 주제로 전곡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앨범을 장기간 섭취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그렇고, 당분간은 브레이크 잡는 연습하고 자전거 조정(?)하고 체력을 키우는데 주력하자. 속도를 내거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거나 앞 바퀴 들고 달리는 것에는 관심없다. '자전거 여행'이 목적이니까. 아, 나는 어린 시절 내 키보다 큰 자전거를 타고 살던 터전을 벗어나 18시간 동안 어딘 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 달렸다.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을 지정사 모임에서 이씨 아저씨한테 받았다. 3일에 걸쳐 하루에 한 편씩 봤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게 낫다. 별 재미가 없다. 귀에 익은 주제가 빼고는 촌스럽기만 하고. 사무라이 숭배와 45년 패망후 일본인 전후 세대에 뿌리박힌 패배의식이 사나이들의 자기 중심적이고 낭만적인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반물질 테레사가 말했다. '나는 외로워요'
그러자 야마토의 승무원이 재빨리 말했다. '상태가 안 좋아보여. 빨리 가야 해!'

일본인하고 친해지기 힘든게, 정서적으로 안 맞는다. 물론 일본 여자들은 별개다. 야마토에서는 문법에 안 맞을 뿐더러 괴이한 헛소리를 줄곳 해내는 녀석들 때문에 보기가 좀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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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잡기 2005. 7. 22. 17:14
서버 메모리 릭을 수정 안하고 방치해 두었다. 그 동안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그쪽 일을 미뤘더니 일주일 놔 둔 서버 프로그램이 소중한 메모리를 12메가나 잡아 먹었다. 어제 저녁 일이 기분 좋게 마무리 되어 미뤄두었던 메모리 릭을 잡고 3억 가량의 패킷을 날려 테스트. 즐거운 마음으로 '사치코의 화려한 인생'을 보러 갔다. 눈 아프고, 졸았다. 별 재미 없다.


사치코의 화려한 인생을 보러간 필름포럼.


힘겨운 업무 조정을 마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일 하겠다는 친구가 안 한다고 정중히, 조심스럽게 고사했다. 영입에 거의 일 년을 준비한 일이고 그게 마무리 되어서 안도하다가 상황이 180도 달라졌지만 그의 입장을 수긍했고, 이해한다. 그에게 이 일은 큰 변화다. 그것을 그에게 접근시키는데 많은 잘못을 했다 -- 연착륙 유도를 하지 않았고 겁만 잔뜩 주었다. 게다가 그가 면접하러 공장에 내려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은 삭막함, 무거운 책임, 고독감, 반쯤 붕괴된 둣한 회사 이미지 등등 이지 싶다. 포근함과는 거리가 먼 횅한 공장이 과연 프로그래머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두 말 할 여지가 없다. 가뜩이나 썰렁한데 겁까지 주니 일할 맛 나겠어? 그런 상상을 하다가 히죽히죽 웃었다.

한 눈으로 과거를 보고 다른 눈으로 미래를 보면 중간에 낀 현실은 개판이 된다는 고래의 속담이 있다. 일이 틀어져서 개인적으로 서운하고, 그간 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낙담했지만 뭐 어쩌겠나 싶다. 어린 시절부터 독선적인 내 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다가 작살난 케이스가 한두 번이 아닌데 이번에도 그런 케이스다. 아내 역시 늘 그 점을 지적했다. 반성하자.

대성형 말로는 일 년 들인 노력치고는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간 들인 노력과 무관하게, 그 나름대로 생각 많이 한 듯 하고 그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문제라서 경중으로 치면 그의 생각을 존중하는게 옳겠다. 뭐 나름으로는 재고, 삼고해 보길 바라는 미련이 있지만 내 관점이 똥탕을 튀겼는데 다시 내 관점으로 얘기할 수도 없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럼 내 관점을 바꾸면? 내 관점은 '일'을 모색하고 해석하는 수 많은 관점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남은 더 많은 관점은 그 자신의 것을 포함하여, 스스로 발견하던가 무수한 다른 관점을 통해 입수하는 것이라고 본다.

자전거가 도착해서 일단 브레이크 유격부터 조절해야 하는데(그래야 '시승'해 보지) 마땅한 공구가 없다. 몇몇 사람들의 평에 따르면 20만원 주고 옥션에서 산 '다이아몬드백 쏘렌토'(라레이 M20)는 MTB 입문으로 쓰기에는 사양이 수상 쩍은 기종이다. 하지만 마음에 든다. 무게 13kg, 앞뒤 바퀴와 싯 포스트에 QR 레버가 달려 분해가 쉽고 24단이면 언덕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같이 딸려온 '사은품들', 자전거 자물쇠, 암밴드, 핸드폰 지갑, 안전등, 브레이크등, 헬멧 등등을 다 합치면 굳이 다른 것은 장만하지 않고도 한 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좀 허접해 보여도!



프레임 상단에 뒤 브레이크, 기어 시프트 와이어가 보기 흉하게 노출되어 있다. 이런 젠장.



앞 기어 시프터



뒤 기어 시프터 및 '사은품' 딸랑이.


앞 바퀴 quick release lever



앞 바퀴 포크, v-brake 및 쇽 앱저버


이걸 bb라고 부르던가? 디레일러와 BB? 3단.



패달. 크랭크 축과 패달이 좀 허접해 보임.



뒷 바퀴, 디레일러 8단



뒷 바퀴, quick release lever


뒷 바퀴, v-brake, 3000원 짜리 흙받이



seat post와 QR 레버. 이런 안장으로 내 불알과 사타구니가 무사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헬멧과 잡동사니들.

앞으로 살 것들:

* 자전거 가방
* 패니어
* 휴대용 공구셋
* 펑크 킷
* 안장 젤 커버
* 물통/물통받이
* 헤드라이트

돈 많이 깨지게 생겼군. 그나저나, 이걸 타고 3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뜨거운 도로를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땀이 삐질삐질 돋아나는 것 같다.

'파신'이라 불리우는 잘 생긴 아가씨가 있는데 자전거 타고 호주를 횡단한다던가, 춘천에서 설악산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등 여러 모로 존경스럽다. 술도 잘 마신다고 하더라. 본받자.

아내는 내 카메라 들고 제주도에 놀러 갔다. 일주일 후에 돌아올 것이다. 올린 사진을 모두 30만 화소짜리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는데 뭐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은 듯.


6500원 주고 산 카메라 방수 케이스 속에 넣은 캐논 A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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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청하기

잡기 2005. 7. 18. 00:01
도서관에 들어가 없는 책들 신청하려고 검색할 때마다 번번이 책이 있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스티프, 빈 서판, 대체 누가 이런 '잡동사니'같은 책들을 신청했을까 몹시 궁금해진 나머지 신청 게시판을 뒤져 보았다. 뒤져 봤더니, 내가 신청한 것들이다. 그랬군. -_-

도서관이 개장하여 사람들이 처음으로 책을 신청한 날짜가 2001년 11월 21일, 첫 책은 맑스주의의 향연이고 그 다음 책은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였다. 두 권 다 재미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책들이긴 하지만(아폴론과 디오니서스 아닐까?) 처세술이 득세하는 세상에서(이를테면 블루오션 운운하는 책들도 처세술로 규정하는 야비함이 있어서) 저런 책을 신청하는 사람이 있어 놀랍다. 내가 처음으로 책을 신청한 날은 2004년 8월 29일, 그동안 겨우 18권 밖에 신청하지 못했는데, 그것 밖에 못한 것은 별로 읽을 사람들이 없을 것 같은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신청해 놓은 상태였고, 심지어, 그 '인기있는' 책들을 나는 일 년 내내 번번이 대출 못 하고 있는 형편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동시성의 과학 싱크 같은 책들도 이미 신청된 상태였다. 대략 4년 동안 3500여권이 비치 희망 도서로 신청되었다. 분발하자.

개마초 스타일의 내 이름은 콘라드 같은 책을 보기도 하는 사람이 있는 걸로 보아 젤라즈니를 읽는 사람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디스크 월드 시리즈와 딜비쉬를 추가로 신청했다.

핸드폰에 들어있는 찌꺼지 사진 처분.


AMD의 Geode 프로세서로 만든 fanless 보드. 위쪽으로 pc100 인터페이스가...


한가한 저녁이면 뒷산에 올라가 느적거렸다.


용산의 어떤 식당에서 먹은 3500원 짜리 백반


썰렁한 스페이스9


새로 산 '국산' 마우스. 마우스 갈자 마자 생산성이 매우 향상됨.


'신입사원'이라는 드라마. 처음 몇 화는 꽤 재미있었다. 그 후로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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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사람을 구했다. 같이 일할 사람을 물색하느라 거의 일년을 보냈다. 여건이 안 맞고 상당한 리스크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기에 사람을 추천하기도 힘들고 또 그렇게 해서 파생된 책임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바람이 변하고 흰구름들이 다 흘러간 지금에 와서야 컨셉을 바꾸는 센스를 보여준 자신을 빈정거렸다. 사람은 구했지만 그래서 기분은 안 좋다.

멍청하면 사랑도 못한다.

20세 이전에는 음악을 안 들었다. 처음 들은 것이(처음? 웃기겠지만 음악에 전혀 관심없었다) 하드락과 클래식이었고 들을만 해서 집요하게 찾아다니며 듣기 시작했다. 모짜르트나 바하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시하고 재미가 없다. 음악과 수학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밥맛이 딱 떨어지는 그레고리언 성가류의 교조적인 음의 변화에 진력을 느끼기에 내심 음악이 수학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바하의 음악이 지닌 대칭성은 거의 건축 양식이나 수학 공식에 필적했다. 1/f. 2-5차원 프랙탈. 인정한다 -- 모짜르트나 바하는 천재다. 어떻게 그런 음악을 '재단'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들 음악은 정서적으로 잘 안 맞았다. 브람스나 차이코프스키는 마치 재즈처럼 참고 듣기 어려울 지경이고(예외가 있다면 마일즈 데이비스 정도?) 리스트, 베토벤, 말러, 스트라빈스키, 파가니니 등 소위 '천재성'은 그들보다 떨어지지만 열정적이고 신경질적인 음악을 즐겼다.

음악 때문에 확 맛이 간 첫 경험은 마이크 올드필드의 튜블라 벨즈를 들을 때 였다. 단조로운 멜로디 라인에 제각각 악기들이 소개되고 마지막으로 종 소리가 귓가에서 거대하게 울려퍼질 때의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 그 멋대가리 없고 깽깽거리는 종이 음악이 되는구나. 거리의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사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심장이 멎을듯한 충격에 휩싸여 뎅뎅거리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넋이 나갔다. 음악이 그런 강렬한 이미지와 충격을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별별 고만고만한 소설을 읽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경악과 비슷했다. 머리속에서 별들이 펑펑 터지는 느낌. 15년 전의 일이다.

어쩌다가 데이터가 거의 날아간 조디악에 새로 이것저것 복사한 음악 중에 올드필드가 끼어 있었다. 그동안 시냅스가 늙어서 조용히 사라졌다고 생각했건만, 15년 전의 그 느낌이 마치 사고로 지워진 하드를 간신히 복구한 것처럼 50% 가량 되살아났다. Mike Oldfield, Tubular Bells Part 1 (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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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hill

잡기 2005. 7. 13. 00:24
깜빡했는데, 아침에 만기 되었다고 전화가 와서 은행 가서 적금 해약하니 기념품을 준다. 섭섭하게, 해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 년 좀 넘게 한 달에 십만원씩 적금을 부었는데 아내 항공권 사줄 돈으로 쓰기에는 모자란다. 나머지 여행 경비는 알아서 충당하라고 일렀다. -- 항공권이야 약속한 것이니 그렇다치고, 아이들도 자기 여행할 비용은 여름방학에 열심히 알바 뛰어서 버는데, 사지 멀쩡하고 정신 생생한 사람이 남편한테 돈 타서 여행 갈 생각하면 안 되는 거지 미리 못을 박는다. 강하게 키우자.

일요일 오후 불광 지하철 역에서 어떤 에스키모 아줌마가 영어로 구걸했다. 갑자기 여행지에 온 듯한 환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슬슬 준비해봐야 하기에 이리저리 자전거를 알아봤다. 자전거는 애당초 값 싸고 튼튼하고 잘 나가기 힘든 물건 임을 새삼 깨달았다. 어제 서너 시간이나 투자해 얻은 지식을 종합해 본 결과 원하는 자전거가 MTB, 가벼운 알루미늄 합금 소재의 16인치 프레임과 타이어를 달고 24단 이상의 기어와 시마노 이지 파이어, 왠간하면 좋았으면 싶은 허브 달고 바퀴에 퀵 릴리즈가 장착된 대략 10~12kg 안팎의 것이다. 이상한 것은 완제품 자전거의 무게를 표기해 놓은 쇼핑몰이 거의 없다.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모두 고려해 볼 때 가격은 못해도 50만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쿨럭.

조셉 풀먼의 황금 나침반을 몇 년 만에 읽는다. 2편 까지 읽었는데, 3편 호박색 망원경을 읽으려니 도무지 전 편이 기억 안 난다. 옛날옛날 읽은 크릭의 책에서는 머리 속에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인상을 농축한 뉴런이 각각 한 마리씩 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이를테면 전애인A를 전담하는 뉴런, 전애인B의 기억을 전담하는 뉴런) 신경생리학자들한테 오랫동안 '무시'당하다가 얼마전 기사에서 크릭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발견' 기사를 봤다. 한국의 과학기자들의 훌륭한 수준을 감안하여 어쩌면 수십년전 물리학자였다가 별 재미 못 보고 생물학에 투신해 이중나선을 발견한 위대한 생물학자의 '놀라운 가설'을 지금 와서 떠들고 있는 것인지, 정말로 그 가설이 입증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어쨌건 내 머리통에서 풀먼 스토리 뉴런이 거의 죽어가는 것만큼은 확실하고 직관적이라 받아들이기 쉽다. 크릭은 당시 카오스 이론을 몰랐고 뉴런 끼리의 시냅스 접합이 뇌의 각각 부위의 다른 뉴런들과 균등하지 않게 연결되었다는 것이나, 뇌내 노이즈의 음, 중요성, 인접 뉴런과의 시냅스 접합의 통계적 분포보다는 상대적으로 뇌의 각각 부위에 하나씩 엉뚱하게 연결된 지류가 뇌의 초고속 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 당시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희망 전도서의 첫 장에서 뇌에 관해 주구장창 잠꼬대처럼 늘어놓는 말, 인간은 평생 자기 뇌의 10%도 쓰지 못한다 심지어 아인슈타인 조차. 같은 말은 여전히 노력하고 삽질하는 자에게 응분의 보상이 따른다는 말처럼(사실 같은 말 아닌가?) 잘 먹혀 들어간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되는 거다. 우기지 말자. -- 그렇다고 노력 안 하면 바보지.

apple ipod shuffle: life is random. <-- 즐~
tapwave zodiac: work smart, play hard. <-- 브라보!

and live well(being well). 웰~빙~머신 조디악은 완전방전되어 하는 수 없이 프로그램을 리스토어했다. 뉴런0에서 n까지 많은 기억들이 날아갔다 -- 한 동안 싱크 안 했다. 기억과 마찬가지로 뉴런은 영생하는 타입은 아니다. 뉴런은 그렇게 시들어 가고, 언젠가 이 우주의 모든 0은 0으로 남고 모든 1은 0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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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기

잡기 2005. 7. 11. 01:46
씬시티: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루트거 하우어, 그외 기타 등등 한물간 느와르 액션 배우들이 완벽한 만화 삘로 제대로 후까시 잡았다. 오케바리 캐스팅. 별점 준다면 4/5 정도. 챈들러가 시작했지만 챈들러의 멜랑콜리에 일찌감치 싫증을 느낀 탓인지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피가 펑펑 튀는 하드고어 하드보일드 액션물이 체질에 맞는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기생 오라비 녀석이나, 주둥이질에 여념 없어 금새 싫증 나는 오따꾸 스타일의 양아치 타란티노가 낀 것이 내 딴에는 '옥에 티'다. 로드리게즈 잘 한다!

시네큐브에서 하는 '인 디스 월드'를 제끼고(여행하면서 실시간으로 볼만큼 봐서 날 더운데 심지어 영화까지 보면 울화만 치민다) 신나는 블록버스터 액션물인 우주전쟁을 보기로 했다. 스필버그가 감독이라니, 궁상스러울 것 같아 그 점이 좀 마음에 걸린다.

집에서 20분 걸음, 새로 생긴 CGV 불광점은 어떤 양반이 디자인한 것일까? 돗대기 시장이 컨셉인 듯 라운지가 영 정신 사납다.

우주전쟁 전반부에서 아내는 EMP 벼락을 맞고도 차도 중앙에 차가 멈춰서 있지 않고 주인공이 탄 차가 쌩쌩 잘만 달린다고 불평을 늘어 놓았고(분사 밸브와 초크를 CPU보드로 제어하는 대부분의 차량은 멎지만 배터리와 스타팅 모터, 그리고 아날로그 기기들로 들어찬 옛날 자동차들이 멎을 이유는 없고 EMP가 그렇게 원거리까지 작용하지도 않는다) 후반부에서는 수류탄 두 개로 어이없이 무너지는 트라이포드에 낄낄 웃었다. 덕택에 우주전쟁이 아내에게 먹혀 들어갈 만한 구석은 없고 시종일관 코메디스러웠나 보다. 난 안 그랬다.

전쟁터로 달려가 죽을 줄 알았던 녀석을 영화 종반에 멀쩡히 살아 있었다. 죽었어야 한다. 배 타는 씬에서 주인공은 아들딸 잡고 마을 구석으로 미친듯이 달려갔어야 했다. 저러고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영화 본 사람들 의견은 악평 일색이지만 나는 트라이포드의 침공에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지구인들을 입 벌리고 정신없이 쳐다봤다.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진 외계인의 공격에 맥없이,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무너지는 인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 나쁜 감정이야 알 바 아니고 스필버그가 무슨 정치적, 철학적 함의를 담은 영화를 제작해 왔다는 것인지는 의문이고, 스토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중요해진 건지 의문이고, 스필버그식 가족애가 여기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도 아니었다 -- 이런 생각은 영화가 끝난 후에야 든 것이다. 보는 내내 정신없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쩌다보니 운좋게 살아 남은 서바이벌 게임이었고 나는 줄곳 내가 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실시간'으로 궁리했다. -- 덕택에 몰입 잘 되었다.

탐 크루즈 연기 훌륭했다. 그... 문근영처럼 유명한 다코다 패닝이 공포에 질린 꼬마 계집애였던가? 별 관심 없고, 없어도 괜찮은 배역인데 왜 끼워 넣었을까, 그래서 다들 스필버그의 '가족애'에 격분하게 된 것 아닌지 몰라.

어쨌건 올해 본 블럭버스터물 중 최고다. 당위와 갈등, 명분,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전쟁 류의 대량학살과는 달리 인간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는 점에서 설정을 따져가며 근심걱정할 여지가 없었고 재난의 효과적인 디스플레이에 압도되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 모르겠다, 외계인은 그저 닥치는 대로 죽였다 -- SF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재난은 그저 현실과 상당히 유리된 초현실적인 공상일 뿐이겠지만 태어나서 줄곳 지구인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괴이하고 초현실적인 SF'만' 줄줄이 섭렵한 나같은 작자에게 트라이포드가 인류를 신나게 작살내는 씬은 의외로 시원하고 신선하게 잘 먹혀 들어간다. 내가 기억하는 원작과는 꽤 다르지만(오글비가 저런 바보로 나오지 않았다) 등장하는 외계인의 침공은 인간이 힘겹게 맞짱 떠가며 동지애, 인류애 운운하며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미생물에 의해 어이없이 당하는 것, 아무 문제없이 소화 잘 된다 -- 댁이나 생각 많이 해라.

루카스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당대 최고의 바보, 스필버그가 이번에 한 껀 해냈다. 잘했다 스필버그. 구질구질한 ET 같은 거 찍으면서 아까운 인생 낭비 하지 말자고, 오케이? 총평: 진득진득하고 무더운 장마철의 시원한 블록버스터! [우주전쟁] 추락하는 스필버그에게는 날개가 없다. -- 내 눈에는 몹시 외계인스러워 보이는, 어떤 양반의 바이아스 쫙 걸린 평

다운 받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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