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은 조직적이고 연속적인 활동이다.
주말에는 다들 뭘 하며 지낼까?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서 만화책을 봤다.
'더 파이팅'을 열독했다. 생기가 넘친다. 연초부터 재수가 좋다. 센스있는 대전 포스터가 마음에 든다. 이런 포스터라면 권투 경기장에도 가보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극 중 주인공인 일보는 작가와 팬들의 의지력으로 탄생한 인물이지 싶다. 권투에서 진정한 승부를 보고 싶어하는, 포인트로 착실히 점수 따서 승부하는 건전 스포츠가 아닌 진짜 피 튀기는 투쟁을 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팬들(은 물론 만화가 본인)의 의지가 땀냄새와 섞여 있다. 그래서 70권이나 하는 만화에서 판정은 극히 드물었다. 호쾌한 KO승이야 말로 육식동물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본질적인 열망이 아닐까? 대등한 지능과 육체적 힘을 갖춘 상대를 합법적으로 때려 눕히는 게임으로써 말이다. 게다가 일보는 트레이너 말도 잘 듣고 끊임없이 성장하는(전형적인) 타잎이며, 심지어 겸손하기 까지 하다. 만화가가 평소 무슨 생각하며 잉크를 흘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각 권당 호흡수가 짜 맞춘 듯이 일정하고 그림체도 역동적이고 생기발랄해서 간만에 쓸만한 만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음. 좀 더 생기가 넘치고... 암울... 하면 좋겠지만... 복싱계의 구질구질한 뒷모습까지 들추지 않은 것은 작자의 권투선수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런 때문인지 과학도 중요하지만 노력과 근성도 챙기는 이 만화책에서는(일본 만화책에서 왠지 죄송스럽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노력과 근성 빼면 뭐 남는게 있어야지 쩝쩝) 특이하게도 프로선수들이 '파이트머니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류의 먹고 사는 근근 생활사가 없다. 오직 끝없는 격투가 있다. 환자의 몸을 촉진하듯이 상대에게 주먹을 먹이고 그 강도에서 회복될 시간을 측정하여 계산대로 진행하는 엘리트 닥터 박서가 흥미로웠는데, 그래도 투지, 노력, 근성에는 차질없이 무너져 주셨다.
어쨌거나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만만하게 앞 지퍼를 열고 다녔다. 일본 만화의 전형적인 상대방 추겨 세워서 이쪽이 얼마나 더 대단한 놈들인지를 빛내주는 꼴 사나운 모습은 뭐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물론이지! '필살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그걸 누굴 쳐죽이는 기술이라고 하지 않고 '특기'라고 한다. 일본인도 '팔살기'같은 날나리스러운 단어보다 육중하고 투박하지만 사실 그대로인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를 희망했다.
아참. 그런데, 그 대사가 살짝 마음에 들었다.
'운도 실력이라고 떠들어대는 자식은 흠씬 두들겨주지'
'권투에는 럭키 펀치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거럼.
그나저나 늙어서 사회보장제도의 그늘 밑에서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것을 조장하는 사회라는 것이 생존을 고도화한 것인지, 아니면 얼간이를 컨베이어 벨트로 찍어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매 주 한 번씩은 꼭 가게 되는 영등포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담배를 빨다보면 형씨, 담배 한대만 주쇼 라며 다가오는 노숙자를 본다. 정신이 나간 친구나 이 나라의 박사 때문에 한국이 망한다는 '애국지사'까지 다양하게 봤다. 그들 중 극히 일부만이 어설픈 쌍욕을 구사했다. 앞뒤도 맞지 않고 논조도 없고 신문에 사설을 쓸 필력도 없다. 그저 지지부진하고 꾀죄죄한 노숙자 뿐이다. 환경단체에 버금가지 않을까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경찰은 수시로 그렇게 행패 부리는 '시민'을 여기서 저기로 퍼다 날랐다. 알기는 할까? 그들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역병이 되는 '것'들이라는 점을. 그들은 담배를 꾸거나 무료 급식소가 있는 곳까지 갈 차비를 모으려고 백원을 달라고 한다. 얼마 전 TV에서는 그들 중 7-80%가 전과자라고 했다. tv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때는 왠지 tv에 증오심이 생겼다. 언론과 달리 평범하다는 사람들은 가난뱅이, 병신, 쪼다, 미친놈, 전과자를 푸코 말대로 완벽하게 격리처분했다. 여행자들이 갈만한 곳이 못되는 중미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지랄같은 가난의 악순환이었다. 평생 그 모습을 머리속에서 지우는 것은 불가능할 꺼라고 생각한다. 생존에 대한 이런 식의 구체적이고 살벌한 실감 때문에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겠지. 피치못할 궁지에 몰리면 내가 주저하지 않고 냉정하게 처리할 놈이란 것을 안다. 자식이나 가족 핑계를 대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형태를 유지하고 존재하는 이유가 그런 본능을 끝없이 억제하기 때문이었다. 산다는 건 정말 비합리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잉글리시스펙트럼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시끄럽다. 거기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여자들이 젖을 드러내고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사진을 뭔가로 처리하기 전에 우연히 봤다. 약 먹고 물쑈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잘 논다. 열받거나 충격을 먹거나 뭔가 욕설을 퍼붓거나,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비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관계에 관해 모험심이 대단하고(어느나라 여자나 마찬가지다. 장담한다), 남들이 탐내는 자신이 가진 것(몸뚱이)을 잘 활용했다. 어이 당신, 그 여자들더러 몸 파는 년이라고 비웃을 처지는 되나? 올해 댁의 연봉, 그러니까 몸 값이 얼마였지? 혹시 나처럼 때때로 영혼까지 팔아먹고 있는 것 아냐?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또는 돈이 몹시 좋다고 비굴하게 군 적은 없었나? (그나마 친구들은 내가 자존심이 너무 쎄서 사회생활하기 영 글러먹은 타잎이라고들 하는데도 그 모양이다)
남녀 관계는 그런데, 어느 나라나 '처절하게' 궁상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실례를 들어, 이탈리아 애들하고 프랑스 애들하고 술 퍼 마시다가 서로 자기 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못났는지 신나게 떠들다가도(술자리 주제에서 여자 얘기가 빠진 적은 내 기억에... 음. 별로 없다) 분위기가 달아올라 상대방 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가랑이를 힘차게 벌리는지 덕담을 주고받다 보면 그 동안 좋았던 분위기가 상당히 살벌해지기도 했다. (마음에 걸리는 여러 팩터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 잉글리시 스펙트럼에 얽힌 한국인 남성의 반응이 '국제표준'으로 보아 유난히 신경질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어느 나라나 내 어머니, 내 딸들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국가를 자부심을 갖고 모국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아무튼 어느 나라 여자가 가랑이를 잘 벌리느냐 경합하다가 피치못하게 실내 기온이 빙점 부근에서 오락가락 할 때면 멕시코 여자들이 술자리 분위기를 살렸다. 그들은 정말, 단순히 말해, 훌륭했다. 아내를 꼭 멕시코에 보내고 싶다. 해거름 무렵 노상 까페에 혼자 앉아 맥주 한 잔 놓고 마리아치의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꽃다발과 와인이 자기 탁자로 날아오고 매너 좋은 어떤 아저씨가 흔쾌히 저녁과 술을 사주는 그런 기분좋은 저녁을 체험하게 하고 싶다. 아내는 늘 제정신이고 오직 남편 뿐이라 그런 똥파리 같은 녀석들의 유혹을 활용하고(뜯어먹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것이라는 점에는 일말의 확신이 있다. 그러다 바람나면? 애당초 내가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말하자면 제대로 된 본디지가 아니라면 일찌감치 접는 것이 낫다. 우리는 서로 제품의 품질과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본다.
그런데 일본여자애들은 한국 남자애들을 꽤 좋아한다. 외국에 나가서 일본 여자 여행자와 한번 대화해 봐라. 미끼를 제대로 문 돔처럼(아니면 잘못 걸린 운동화처럼) 놔주지 않는다. 이 얘길 일본 남자애들한테 할 땐 얼마나 즐겁고 분위기가 좋던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화에는 항상 피치못할 오해와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동양 여자들 꼬시러 한국이나 일본에 영어강사로 왔다는 얘기를 늘어놓는 녀석들과 비슷한 수준에서(그래 저질이다) 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동양인이 서양 여자애를 농락하는 애기를 들려줄 때 우리들은 '세계시민' 사이에서 흐르는 강렬한 유대감과 더불어 경쟁상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서양 여자애들은 동양 남자애들을 대체로 외계 원숭이 취급한다. 사실이다. 그들이 그런 생각에 저항하며 외계 원숭이와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하기 싫은 대화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처음에는 괴롭고 자존심 상했는데 나중에는 즐기니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 듣도 보도 못한 깡촌 오지에 살고 있는 외계 원숭이가 심지어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미스테리이자 흥미요소 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남자애들의 특징이 뭔줄 아나? 한국 남자애들은 그 많은 동양인 중에서 '상대적으로' 역사에 해박하고 정치,경제,문화,과학기술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다. 댁이 외운 유럽사를 지껄일 때의 유럽애들 표정은 재밌기만 하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에서는 평균적인 상식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아참, 과학기술은 빼자. 다들 흥미없어 하니까. 이게 다 강력한 주입식 교육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건 그들이 동양 여자 후리는 솜씨만큼이나 나도 서양 여자 후리는 솜씨가 어디 가서 빠지는 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남자의 매너는 좀... 그들이 언어와 매너만 개선한다면 서양여자들이 동양의 제대로 숙성된 주입식 지성은 물론이고, 동양 자지의 근성과 우수한 압축율(동서양의 그것들을 한데 모아 모스 경도계로 제대로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단단한 그것이 피치못하게 발달시킨 엑조틱한 기술성에 끊임없이 경탄사를 내뱉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이 나라에서 여자들에게 무능력한 병신 주제에 오만하고 할 말은 참 많다는 따위의 괴상한 투정과 희망사항과 비웃음을 듣기보다는 외국에 나가 '서양문화'도 제대로 삽입하고 활극도 좀 하지... 시간이 없어서 못다한 자기 정체성에 관한 고민 등의 딸딸이를 더 빡세게 쳐보라거나(고독, 자기탐구, 내면의 관조라고들 하는 무리도 있다. 과연, 그러려면 자기 집에 콕 박혀 있기만 해도 될 성 싶긴 하나, 어쨌건 국면 전환은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씨앗을 펑펑 뿌리며 저 나름의 애국정신으로 자폭하자는 얘기는 아니고, 시선에 부드러운 인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인간성을 바깥에서 바라보았으면 싶지만... 왠지 말투가 계몽틱해지는 것 같아 속이 메스꺼워 접자.
주말에는 다들 뭘 하며 지낼까?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서 만화책을 봤다.
'더 파이팅'을 열독했다. 생기가 넘친다. 연초부터 재수가 좋다. 센스있는 대전 포스터가 마음에 든다. 이런 포스터라면 권투 경기장에도 가보고 싶어지지 않았을까. 극 중 주인공인 일보는 작가와 팬들의 의지력으로 탄생한 인물이지 싶다. 권투에서 진정한 승부를 보고 싶어하는, 포인트로 착실히 점수 따서 승부하는 건전 스포츠가 아닌 진짜 피 튀기는 투쟁을 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팬들(은 물론 만화가 본인)의 의지가 땀냄새와 섞여 있다. 그래서 70권이나 하는 만화에서 판정은 극히 드물었다. 호쾌한 KO승이야 말로 육식동물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본질적인 열망이 아닐까? 대등한 지능과 육체적 힘을 갖춘 상대를 합법적으로 때려 눕히는 게임으로써 말이다. 게다가 일보는 트레이너 말도 잘 듣고 끊임없이 성장하는(전형적인) 타잎이며, 심지어 겸손하기 까지 하다. 만화가가 평소 무슨 생각하며 잉크를 흘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각 권당 호흡수가 짜 맞춘 듯이 일정하고 그림체도 역동적이고 생기발랄해서 간만에 쓸만한 만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음. 좀 더 생기가 넘치고... 암울... 하면 좋겠지만... 복싱계의 구질구질한 뒷모습까지 들추지 않은 것은 작자의 권투선수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런 때문인지 과학도 중요하지만 노력과 근성도 챙기는 이 만화책에서는(일본 만화책에서 왠지 죄송스럽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노력과 근성 빼면 뭐 남는게 있어야지 쩝쩝) 특이하게도 프로선수들이 '파이트머니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류의 먹고 사는 근근 생활사가 없다. 오직 끝없는 격투가 있다. 환자의 몸을 촉진하듯이 상대에게 주먹을 먹이고 그 강도에서 회복될 시간을 측정하여 계산대로 진행하는 엘리트 닥터 박서가 흥미로웠는데, 그래도 투지, 노력, 근성에는 차질없이 무너져 주셨다.
어쨌거나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자신만만하게 앞 지퍼를 열고 다녔다. 일본 만화의 전형적인 상대방 추겨 세워서 이쪽이 얼마나 더 대단한 놈들인지를 빛내주는 꼴 사나운 모습은 뭐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물론이지! '필살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그걸 누굴 쳐죽이는 기술이라고 하지 않고 '특기'라고 한다. 일본인도 '팔살기'같은 날나리스러운 단어보다 육중하고 투박하지만 사실 그대로인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를 희망했다.
아참. 그런데, 그 대사가 살짝 마음에 들었다.
'운도 실력이라고 떠들어대는 자식은 흠씬 두들겨주지'
'권투에는 럭키 펀치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거럼.
그나저나 늙어서 사회보장제도의 그늘 밑에서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것을 조장하는 사회라는 것이 생존을 고도화한 것인지, 아니면 얼간이를 컨베이어 벨트로 찍어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매 주 한 번씩은 꼭 가게 되는 영등포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담배를 빨다보면 형씨, 담배 한대만 주쇼 라며 다가오는 노숙자를 본다. 정신이 나간 친구나 이 나라의 박사 때문에 한국이 망한다는 '애국지사'까지 다양하게 봤다. 그들 중 극히 일부만이 어설픈 쌍욕을 구사했다. 앞뒤도 맞지 않고 논조도 없고 신문에 사설을 쓸 필력도 없다. 그저 지지부진하고 꾀죄죄한 노숙자 뿐이다. 환경단체에 버금가지 않을까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경찰은 수시로 그렇게 행패 부리는 '시민'을 여기서 저기로 퍼다 날랐다. 알기는 할까? 그들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역병이 되는 '것'들이라는 점을. 그들은 담배를 꾸거나 무료 급식소가 있는 곳까지 갈 차비를 모으려고 백원을 달라고 한다. 얼마 전 TV에서는 그들 중 7-80%가 전과자라고 했다. tv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때는 왠지 tv에 증오심이 생겼다. 언론과 달리 평범하다는 사람들은 가난뱅이, 병신, 쪼다, 미친놈, 전과자를 푸코 말대로 완벽하게 격리처분했다. 여행자들이 갈만한 곳이 못되는 중미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지랄같은 가난의 악순환이었다. 평생 그 모습을 머리속에서 지우는 것은 불가능할 꺼라고 생각한다. 생존에 대한 이런 식의 구체적이고 살벌한 실감 때문에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겠지. 피치못할 궁지에 몰리면 내가 주저하지 않고 냉정하게 처리할 놈이란 것을 안다. 자식이나 가족 핑계를 대지도 않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형태를 유지하고 존재하는 이유가 그런 본능을 끝없이 억제하기 때문이었다. 산다는 건 정말 비합리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잉글리시스펙트럼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시끄럽다. 거기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여자들이 젖을 드러내고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사진을 뭔가로 처리하기 전에 우연히 봤다. 약 먹고 물쑈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잘 논다. 열받거나 충격을 먹거나 뭔가 욕설을 퍼붓거나,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비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관계에 관해 모험심이 대단하고(어느나라 여자나 마찬가지다. 장담한다), 남들이 탐내는 자신이 가진 것(몸뚱이)을 잘 활용했다. 어이 당신, 그 여자들더러 몸 파는 년이라고 비웃을 처지는 되나? 올해 댁의 연봉, 그러니까 몸 값이 얼마였지? 혹시 나처럼 때때로 영혼까지 팔아먹고 있는 것 아냐?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또는 돈이 몹시 좋다고 비굴하게 군 적은 없었나? (그나마 친구들은 내가 자존심이 너무 쎄서 사회생활하기 영 글러먹은 타잎이라고들 하는데도 그 모양이다)
남녀 관계는 그런데, 어느 나라나 '처절하게' 궁상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실례를 들어, 이탈리아 애들하고 프랑스 애들하고 술 퍼 마시다가 서로 자기 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못났는지 신나게 떠들다가도(술자리 주제에서 여자 얘기가 빠진 적은 내 기억에... 음. 별로 없다) 분위기가 달아올라 상대방 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가랑이를 힘차게 벌리는지 덕담을 주고받다 보면 그 동안 좋았던 분위기가 상당히 살벌해지기도 했다. (마음에 걸리는 여러 팩터가 있긴 하지만) 그래서 잉글리시 스펙트럼에 얽힌 한국인 남성의 반응이 '국제표준'으로 보아 유난히 신경질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어느 나라나 내 어머니, 내 딸들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국가를 자부심을 갖고 모국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아무튼 어느 나라 여자가 가랑이를 잘 벌리느냐 경합하다가 피치못하게 실내 기온이 빙점 부근에서 오락가락 할 때면 멕시코 여자들이 술자리 분위기를 살렸다. 그들은 정말, 단순히 말해, 훌륭했다. 아내를 꼭 멕시코에 보내고 싶다. 해거름 무렵 노상 까페에 혼자 앉아 맥주 한 잔 놓고 마리아치의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꽃다발과 와인이 자기 탁자로 날아오고 매너 좋은 어떤 아저씨가 흔쾌히 저녁과 술을 사주는 그런 기분좋은 저녁을 체험하게 하고 싶다. 아내는 늘 제정신이고 오직 남편 뿐이라 그런 똥파리 같은 녀석들의 유혹을 활용하고(뜯어먹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것이라는 점에는 일말의 확신이 있다. 그러다 바람나면? 애당초 내가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나를 믿지 않는다면, 말하자면 제대로 된 본디지가 아니라면 일찌감치 접는 것이 낫다. 우리는 서로 제품의 품질과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본다.
그런데 일본여자애들은 한국 남자애들을 꽤 좋아한다. 외국에 나가서 일본 여자 여행자와 한번 대화해 봐라. 미끼를 제대로 문 돔처럼(아니면 잘못 걸린 운동화처럼) 놔주지 않는다. 이 얘길 일본 남자애들한테 할 땐 얼마나 즐겁고 분위기가 좋던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대화에는 항상 피치못할 오해와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동양 여자들 꼬시러 한국이나 일본에 영어강사로 왔다는 얘기를 늘어놓는 녀석들과 비슷한 수준에서(그래 저질이다) 한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동양인이 서양 여자애를 농락하는 애기를 들려줄 때 우리들은 '세계시민' 사이에서 흐르는 강렬한 유대감과 더불어 경쟁상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서양 여자애들은 동양 남자애들을 대체로 외계 원숭이 취급한다. 사실이다. 그들이 그런 생각에 저항하며 외계 원숭이와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하기 싫은 대화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처음에는 괴롭고 자존심 상했는데 나중에는 즐기니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 듣도 보도 못한 깡촌 오지에 살고 있는 외계 원숭이가 심지어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그들에게는 미스테리이자 흥미요소 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남자애들의 특징이 뭔줄 아나? 한국 남자애들은 그 많은 동양인 중에서 '상대적으로' 역사에 해박하고 정치,경제,문화,과학기술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다. 댁이 외운 유럽사를 지껄일 때의 유럽애들 표정은 재밌기만 하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에서는 평균적인 상식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아참, 과학기술은 빼자. 다들 흥미없어 하니까. 이게 다 강력한 주입식 교육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건 그들이 동양 여자 후리는 솜씨만큼이나 나도 서양 여자 후리는 솜씨가 어디 가서 빠지는 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남자의 매너는 좀... 그들이 언어와 매너만 개선한다면 서양여자들이 동양의 제대로 숙성된 주입식 지성은 물론이고, 동양 자지의 근성과 우수한 압축율(동서양의 그것들을 한데 모아 모스 경도계로 제대로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작고 보잘 것 없지만 단단한 그것이 피치못하게 발달시킨 엑조틱한 기술성에 끊임없이 경탄사를 내뱉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이 나라에서 여자들에게 무능력한 병신 주제에 오만하고 할 말은 참 많다는 따위의 괴상한 투정과 희망사항과 비웃음을 듣기보다는 외국에 나가 '서양문화'도 제대로 삽입하고 활극도 좀 하지... 시간이 없어서 못다한 자기 정체성에 관한 고민 등의 딸딸이를 더 빡세게 쳐보라거나(고독, 자기탐구, 내면의 관조라고들 하는 무리도 있다. 과연, 그러려면 자기 집에 콕 박혀 있기만 해도 될 성 싶긴 하나, 어쨌건 국면 전환은 참 듣기 좋은 말이다), 씨앗을 펑펑 뿌리며 저 나름의 애국정신으로 자폭하자는 얘기는 아니고, 시선에 부드러운 인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인간성을 바깥에서 바라보았으면 싶지만... 왠지 말투가 계몽틱해지는 것 같아 속이 메스꺼워 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