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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2005.02.06 건강검진 & 이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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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Hsipaw

여행기/Myanmar 2005. 4. 3. 14:27
6시 알람이 울렸다. 십오분쯤 잠자리에서 누워 있었다. 벌떡 일어나 샤워하고 짐을 챙기니 6시 45분. 늦겠다. 남은 옷가지들을 챙겨 얼른 체크아웃하고 버스 티켓 오피스 앞으로 갔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근처 노점 야채상에서 토마토 두 개를 사 먹었다. 여행할 때는 본능적으로 야채나 과일을 찾았다. 밥은 안 먹어도 야채와 과일은 먹어야 한다.

버스 터미널까찌 승객을 실어나르는 픽업 트럭은 7시 십오분 출발. 7시 45분 버스 터미널에 도착. 짐을 꾸리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버스는 여덟시 이십분이 되어서야 출발. 요마 익스프레스, 고속도로를 올라가는 이 버스의 바닥에는 상자들이 가득했다. 온갖 종류의 짐이 다 실리고 사람이 짐짝과 골고루 잘 섞여 빼곡히 들어찬 후에야 버스가 털털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 그러고도 굴러가는 것이 신통하다.

차가 핑우린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더위에 퍼진 차들이 즐비하게 길가에 늘어서 있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중고차다. 운전수들은 제각각 물병을 들고 라디에이터에 직접 뿌리거나 공구를 꺼내 엔진을 분해한 후 실린더를 한가하게 걸레로 닦고 있었다!! 이 나라 운전수들은 대체...

좌석이 좁아 역시 편히 자기는 글른 듯. 왠 중이 하나 다가와 미얀마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어릴 적에 출가해서 줄곳 중 생활을 해 왔는데 절간에서 대학을 마쳤단다. 총명하고 잘 생긴 친구라 절간에서 썩히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출가했으면서 왜 자기 여동생과 놀러 다니는 걸까. 날도 더운데.

만나는 미얀마 사람들마다 마치 누추한 집에 초대한 귀한 손님 맞듯이 나를 대하니 좀 불편했다. 중은 멀리 떨어진 좌석에 앉아 있는데도 졸졸 따라다니며 밥 먹을 때나 담배를 피울 때나 충심을 다해 도와주려고 애썼다.

내 옆에도 중이 하나 앉아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몰라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버스를 갈아타야 할 때, 멋모르고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자기 갈 길을 안 가고 내가 버스 탈 때까지 도와줬다. 말은 안 통해도 고마운 작자들이다. 마치 이란에 온 듯한 기분. 대하면 대할 수록 미얀마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자기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사람 불편해 할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눈길을 안떼고 쳐다보고 있다가 '살며시' 도와주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런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미얀마가 잘 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군부 독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많이 늦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앞으로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3세계 거북이들이 느릿느릿 움직일 동안 서구세계(서구화된 세계) 토끼들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버스가 해발 천여미터의 핑우린을 지날 무렵 잠시 시원했을 뿐, 얼레벌레 도착한 띠보 역시 어나더 더운타운(hot town)이었다. 별 정보 없이 왔으니 어디로 가야 하나 거리를 휘휘 둘러봐도 마땅히 보이는 것이 없어(그러나 가이드북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길 건너편의 Mr. Kid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갔다. 천오백짯(under 2$) 짜리 방을 보여준다. 얼씨구나 하고 잡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상관없다. 주인장이 지도를 건네주고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해준다.


게스트하우스 리노베이션 중 -- 침대 매트리스를 가는 일. 새로 산 그 매트리스에 처음으로 자빠져 누운 놈이다.

차를 일곱시간 탔더니 드러난 피부에 먼지가 앉고 얼굴은 햇빛에 타서 시커멓고 콧구멍에서 검정때가 나왔다. 샤워 할까 하다가 시간이 얼마 없어 자전거를 빌렸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 2시간에 200짯(하루 종일은 400짯, 아쉽지만).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신나게 달려 두 마을을 방문, 동네방네 기웃거리며 '저 왔어요'하고 인사하고 다녔다. 인도였다면 어떤 꼬마가 날더러 헬로 하고 인사를 할 때 응수라도 한 마디 해 주면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쫓아오면서, 게다가 그 수가 점점 불어나, 헬로 헬로 미친듯이 짹짹거릴 터이지만, 이곳 동남아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정하고 따뜻하달까. 아내가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은 후회할 만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곳인데...

하늘이 흐려 멋진 선셋을 뷰포인트에서 바라보기는 글른 것 같아 강변으로 내려가 빨래하는 동네 아줌마들과 동네 꼬마들이 물장구 치는 곳에서 옷을 벗고 강에 뛰어들었다. 동남아 치고는 덜 똥물이다, 아니 이 경우에는 맑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께다. 상쾌한 기분으로 병아리들을 괴롭히다가 더운타운으로 돌아왔다.

단 시간에 자갈길을 미친듯이 달렸더니 엉덩이 곳곳이 욱신거린다. 신사용 자전거다. 신사용 자전거로 폭 2-30cm의 자갈이 비쭉비쭉 돋아난 농로를 달렸다. 그 길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교차하기도 했다. 내가 자전거를 이리도 잘 탔던가? 옷가지에서 물이 두둑두둑 흘러내리고 봉두난발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샤워 하고 저녁 준비중인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맞은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조금 지나면 강변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난다. 다만 그 곳이 공공 쓰레기 투기 장소라서 냄새가 좀 난달까...

마을(이 아니라 엄연히 도시지만)이 참 예쁘다.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까 하다가 내일 아침 기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빨래하고 잠시 자리에 앉아 쉬었다. 입고 다니는 옷이 하나 뿐이라 그 점이 좀 아쉽다. 빨고 나니 입을 것이 없어 이 더위에 츄리닝을 입고 있는 꼬라지라니.

츄리닝 입고 다시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 중국 음식점(Mr. Food)에 들러 터민쪼(볶음밥)와 800짯 짜리 만들래 비어 스트롱을 시켰다. 도시에서는 똑같은 맥주 한 병에 천이백짯을 받았다.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켰다. 두 잔째, 알딸딸하다. 볶음밥을 정성 들여 만들었고, 맛도 있었다. 술을 더 먹을까 하다가 여행 초심 생각이 다시 나서 자제했다.

맞은편 식탁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앉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근처 농가 사람인 듯 한데 아내한테 호강 한 번 시켜 주려고 이 중국집에 들러 값비싼 음식을 시켜 먹은 것 같다. 단순히 알딸딸한 내 상상에 불과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미얀마 농민은 한 달에 30 달러를 못 번다. 그들이 시켜먹은 볶음밥 2인분과 여자 앞에 놓인 스타 콜라 한 병은 다 합쳐 0.8$ 가량 된다. 돌아갈 때 보니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없다. 남자가 앞서고 여자가 뒷서서 걸어간다. 내 상상일 따름이지만, 어쨌든 보기 좋다.

전기가 '덜' 들어오는 관계로 별빛이 화창하게 빛나는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숙소로 돌아간다. 생맥주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참았다. 이 동네 정말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돌아다녀 본 도시 중 단연 순박함 만큼은 최고다. 그래서인지 실수 하는게 아닐까 싶다. 며칠 더 있다가도 괜찮은 동네다.

숙소에 도착하니 하나뿐인 외국인 손님인 나를 위해 발전기를 돌려 주셨다. 얼른 할 일을 마무리 짓고(남은 돈 세기, 일기 쓰기) 자리에 누웠다. 재빨리 불을 껏다. 발전기가 슬며시 멎는다. 주인 내외도 이제 자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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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Mandalay

여행기/Myanmar 2005. 4. 2. 21:06

만달래에 다다르기 전 마지막 휴게소.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다. 잠을 거의 못자고 꼬박 밤을 샜다. 일부는 밤새 틀어놓은 비디오 때문이다.

휴게소에 들러 비빔 국수를 먹었다. 우리네 참기름과 유사한 것에 땅콩가루와 양념을 넣고 비벼준다. 그리고 작은 종지에 배추국을 담아 주는데 흔히 휴게소에서 파는 쓰레기 같은 음식치고는 둘 다 맛있다. 지불하려고 하니 잔돈을 사탕으로 준다. 이 녀석이 외국인이라고 몹시 순진한 방법으로 골탕 먹이네. 캔디를 돌려주고 돈으로 받았다.

만달래 도착. 시외버스 터미널이 시 중심 시가지와 4km쯤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11km인 것 같다. 미얀마 삐끼들은 몇 마디 안해도 알아서 자기가 다 말해준다. 세상에 이런 순박한 삐끼가 어디 있을지. 시내까지 천짯에 갈 수 있단다. 700이면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단가도 모르고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불러대면 대충 감 잡을 수 있겠지... 700에 가겠다는 친구가 나타났다. 500부터 시작할껄...

론지 뒤에 수첩을 차고 있길래 빼서 읽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다. 젊은 아버지다. 아무튼 삐끼와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의 수첩 첫 장에는 경구가 2개 국어로 적혀 있고 그 다음 장에 청동 캐스팅에 관한 얘기가 있고, 그 다음부터 그가 공부한 여러 가지 분야의 학습 내용이 적혀 있다. 찬찬히 읽었다. 작은 노트라 35분 가는 동안 다 읽을 수 있었다. 감동했다. 수준의 고저를 떠나 이 친구는 낮에 싸이카 운전수로 밥벌이하고 틈틈이 시간나는 대로 이것 저것 공부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의 영어 발음에 자신이 없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정치 얘기가 나오자 그가 쉿 하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말한다.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그가 미얀마에 살고 있는 나가 라는 원시 종족에 관한 얘기를 해줬다. 나가 종족에는 두 가지 타잎이 있는데 한 쪽은 조상이나 적의 머리를 베는 습속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쪽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갑자기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조사해보자.

로얄 게스트 하우스 앞에 도착. 천짯을 운전수에게 건넸다. 300은 당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에 온 후로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 감상적이 되는 것 같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날더러 '안녕하세요' 라고 말한다. 설마 이곳을 2주 전에 다녀간 아내가 가르친 것은 아니겠지. 한국인들이 지나가면서 그런 걸 가르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사방에서 들려오는 '곤니찌와' 만으로도 충분히 지겹다. 5달러 짜리 방을 보여주다가 살며시 아래위로 내 분위기를 살피더니 3달러 짜리 방이 있다고 말한다. 그야 당근 3불이지. 방 상태는 살피지도 않고 얼씨구나 하고 잡았다. 이제 오전 열시 이십분.

띠보(Thibow, Hsipaw)행 버스를 예약하려고 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를 가진 게스트 하우스 주인 자매에게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좌표를 그대로 말한다.

만들래의 거리는 격자형. 가로 도로 넘버와 세로 도로 넘버로 참조. 아주 쉽다. 티켓 오피스에 가기 전에 그 유명한 나일론(닐론) 아이스크림 샵에 들렀다. 300짯 짜리 아이스볼(팥빙수)을 주문했다. 명불허전,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좀더 이것저것 시켜봐야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나나 스플릿을 꼭 먹자.

버스 티켓 오피스에 찾아갔다. 버스 회사 사무실이 안 보인다. 한참 헤메다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이나 일단 하자. 가게에 들어가니 30분당 이천짯을 부른다. 순 날강도네. 6메가 분량의 파일을 올려야 하는데 속도가 나올까? 해보니 너무 느리다. 그만하겠다고 하자 2천짯을 달란다. 에게 3분 사용했는데? 그래도 받겠단다. 하는 수 없이 줬다.

다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티켓 오피스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티켓 오피스라고 믿어지지 않는 위치에 그것이 간신히 존재했다. 2800짯, 내일 아침 티켓을 예매. 할 일 다 한 기분이 들어 밥이나 먹자는 생각으로 라쇼 레이 식당(Lashio Lay)을 찾아 북쪽으로 올라갔다. 거리가 워낙 orthographical해서 n 블럭 동쪽으로 이동 후 n 블럭 북쪽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은 바로는 이런 도로 설계법이 몇 가지 단점이 있단다. 단점이 뭔지 잊어버렸다. 라쇼레이에서 새우 한 접시와 돼지고기 한 접시, 밥 한 됫박(정말 됫박이다), 카믈라 티를 시켜 먹고 워낙 양이 많아 남겼다. 2550짯 나왔다.

엄청나게 럭셔리한 식사를 한 탓에 죄책감이 들어 만들래 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대략 6km, 오후 1시 20분, 열심히 걸으면 1시간 내 도착할 거리. 걷기 시작했다. 양곤과 달리 만들래 거리에는 그늘이 거의 없다. 40도 땡볕에서 30분을 걷자 온몸이 뜨거워지고 입 안이 타 들어갔다. 그때쯤 객기 그만 부리고 싸이카를 탔어야 하는데 한 30분 더 걷고 나니까 악이 생겼다. 오냐 끝까지 가보자. 6km 걷는데 1시간 30분 걸렸다. 엄청나게 더웠고 더 걷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만들래 언덕의 입구가 나타났다. 오렌지 쥬스 한 잔 사 마시고 잠깐 쉬다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 790여개인지 1600여개의 계단인지 모르겠지만 중간에 가다가 멈췄다. 더 걷다간 쓰러진다. 사원에 누워 30분 동안 잤다. 그리고 물을 끊임없이 마셨다. 탈진하기 바로 직전인 상태였다. 아, 내가 미쳤구나...


'아뵤! 여기야 여기! 내가 죽은 후에 여기서 불교가 열나 뜰꺼야!!' 라고 지존께서 말씀하신 언덕이 바로 만들래 언덕이다. 그는 불법을 설파하기 위해 인도로부터 그 먼 길을 걸어왔고 바로 이 자리에서 만들래라는 도시가 융성하게 될 것을 예언했다. 하지만 동상의 생김새는 그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이 자리에 그대로 뻗어 잤다. 더 이상 올라가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이쯤에서 숙소로 돌아가 닐론 아이스크림에서 맛있는 아이스크림이나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몸이 나른한 것이 일사병 증세다. 손수건에 물을 적셔 온 몸을 닦고 목덜미에 얹었다. 사원마다 조그만 물항아리가 있다. 나그네가 사원을 방문하면 더위를 식히라고 떠놓은 '구원의 물'이다. 그 물로 버텼다. 한동이는 썼다. 그 물, 사먹는 물보다 시원하고 맛있다. 토기 항아리라 먼지가 잔뜩 낀 물이라도 몇 시간 놓아두면 먼지는 모두 침전되고 항아리 숨구멍을 통해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내용물이 차가와지는 것. 어린 시절 시골에서 이런 물을 마셨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물맛이 달았다.

30분 쉬고 힘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다섯시 전에는 내려와야 싸이카 삐끼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헬렐레 하고 있는데 삐끼가 다가왔다. 1500짯이면 다운타운까지 데려다 준단다. 500짯. 그건 불가능하단다. 8km나 되는 거리를 500짯에 어떻게 가냐고. 난 그 거리를 걸어왔다. 천짯 부른다. 가라고 힘없이 손짓했다. 그럼 천짯에 만들래 힐 주변의 몇몇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가는 코스는 어떻겠냐고 오히려 삐끼가 제안. 좋다. 3군데 둘러보고 다운타운까지 가는 조건으로 천, 합의. 하지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관광이고 나발이고 전혀 기운이 안 난다. 겉모습만 후다닥 보고 얼른 닐론 아이스크림으로 가고 싶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도착하자 마자 닐론 아이스크림에서 300짯 짜리 후루츠 칵테일을 먹고 담배 한대 피우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건기 40도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더위 속에서 걷는 것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자.

숙소에서 샤워를 마치고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나일론 호텔로 갔다. 내 백달러 짜리를 상인들이 거절하기 일쑤였다. 나일론 호텔에서 여러 모로 내 헌드레드 노트를 살피더니 스몰 헤드는 안된단다. 상인한테도 그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스몰 헤드 말고 빅헤드를 달라고. 왜 거두를 선호하는지, 그게 무슨 뜻인가 물어보니, 백달러 노트 신권은 큰 대가리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구권은 작은 대가리란다. 아항... 내게 있는 것들은 모두 스몰 헤드라서 앞으로 애로사항이 꽃필 전망이다. 이런 젠장할. 숙소에 물어보니 역시나, 숙소에서도 바꿔줄 수 없단다.

궁리하다가 길거리에 보이는 싸이카 운전수 중 가장 몰골이 형편없는 작자를 골랐다. 이왕 도와줄 바에는 손님들에게 선택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가엾은 사람을 도와주자 싶었다. 시도나 호텔까지 투웨이로 얼마요? 투 따우잔드. 노 완 따우잔드. 잇츠 파. 완 따우잔드. 타협이 안 되서 그를 보냈다. 내 수중에는 마침 천 짯 밖에 없다. 그가 가다가 말고 돌아와서 오케이 한다.

시도나 호텔은 정말 멀었다. 그러나 난 관광객이 아니고, 그 가격은 (최소한 내 감으로는) 맞다. 호텔 입구에 그를 기다리게 해 놓고 들어갔다. 미얀마 기준에서는 으리으리한 호텔이다. 프론트에서 다짜고짜 도와 달라고 청하고 백달러 노트를 꺼내 작은 돈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매니저 눈치를 보는 아가씨가 망설이다가 매니저의 눈짓을 받고 바꾸러 가는 동안 옆에 있던 아가씨가 말을 붙여온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시죠?' 꽥. 왠 난데없는 한국어람. 한국어 배우는 중인데 발음이 안 되서 고민이란다. 참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다. 국경과 신분을 초월해 사랑을 꽃피울 정도는 되었다. 그 동안 여자애들을 봐도 시큰둥했는데 미얀마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있을 줄이야... 꼬시면 백퍼센트 넘어온다. 뭐 그런 확신이 들었지만 내게는 훌륭한 아내가 있다. 미련없이 홱 돌아서서 나왔다. 호텔 앞에서 플라타너스 잎사귀처럼 흔들리는 수많은 삐끼들을 마다하고 내 전용 운전사의 싸이카에 올라타고 다시 나일론 호텔 앞으로 왔다.

숙소에서 몇천짯 꺼내와 즉시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나일론 아이스크림으로 들어가 아이스볼을 주문해 먹었다. 아, 정말 맛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가는 크림과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얼음 덩이, 그리고 혓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과즙. 베트남 시장통에서 먹어본 잊을 수 없는 푸룻 아이스크림에 필적했다. 그러고 보니 내 생애 하루에 세 번 들른 음식점은 이 곳이 처음이다.

숙소에 돌아와 노트북으로 음악을 듣다가 그대로 뻗었다. 정말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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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Bago

여행기/Myanmar 2005. 4. 1. 21:00
여섯시 기상. 숙박비에 포함된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 3장. 커피와 인디아식 밀크티, 짜이의 인스탄트 버전을 맛보다.


담배 한 대 빨면서 밝아오는 아침을 구경.


숲의 도시 양곤의 중심 시가지.

이틀 정신없이 걸어 다녔더니 몸 여기저기서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젯밤에 숙소 점원에게 바고로 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물어봤으나 아웅 밍글라 버스 터미널로 가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친절하게 미얀마어로 적어주었다. 중심가 어딘가에서 분명히 바고로 가는 픽업이나 버스가 있을테지만 한시간 반을 고생해서 가는 것보다는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는 것일까... 좀 쉬고, 움직이자.

시청 맞은편에서 43번 버스를 기다렸다. 무수히 많은 43번 버스가 지나갔지만 차장이 아니란다. 원숭이처럼 오는 버스마다 팔짝 팔짝 뛰어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담배 파는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탔다. 어제 열나게 걸어다니던 인야 호수가를 지나 시골 마을 몇 군데를 거쳐 50분을 달려 아웅 밍 갈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삐끼가 친절하게 맞아 주신다. 10시 차가 때마침 있다. 1000짯 주고 올라탔다. 그럼 그렇지. 2500짯이라니 놀랐잖아. 버스는 열 시 정각에 출발했다. 기다리는 15분 동안 땀을 비오듯이 흘렸다. 덥다. 몹시 덥다.

버스가 잠시 정차할 때마다 후끈한 열파가 밀어닥쳤다. 어서 달려서 바람이라도 들어와 주셨으면... 열두 시에 바고에 도착했다. 사이카(자전거 옆에 좌석을 붙인 세발 달린 트릭쇼, 탈 것) 삐끼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내내 삐끼의 어원을 궁리해 봤다. 아무래도 picky 같다.

일단 삐끼의 사이카에 올라 코딱지만한 바고 중심가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바고에서 만달래(mandalay)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알아 보았다. 사기꾼 같이 생긴 친구가 에어컨 버스를 8천 부른다. 넌에어컨 버스는 6천. 하다야 까페에서 물어보니 자리는 없고 4500에 midst seat를 끊을 수 있단다. midst seat가 뭘까 궁금해 하니 aisle에 붙여놓은 좌석을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 타면 일어서 주고, 누군가 나가면 일어서 주는, 그러니까,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좌석이랄까. 그 좌석은 좀 난감해서 하다야 까페 옆의 노상에서 버스표를 파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좌석이 없단다. 샌프란시스코 호텔로 갔다. 역시 없다. 미야난다 호텔 직원이 슬며시 끼어들며 자기한테 좌석이 있단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가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분위기를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삐끼가 자기가 아는 장소가 하나 더 있다며 데려간다. 정부 관리 호텔, 자리 없음. 구둣방 주인, 전화 한참 해 봤으나 역시 자리 없음. 남은 옵션은 하다야 까페에서 4500짯 짜리 표를 사는 것과 10$짜리 엄청나게 비싸고 5시간 더 늦게 도착하는 기차표 정도. 만난 사람 누구도 삐끼와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입술을 씹고 하다야 까페에서 미디스트 좌석을 예약했다. 로봇처럼 말하길, 5.30pm까지 까페로 오란다.

나 때문에 1시간 넘게 자전거를 끌고 땀을 질질 흘리면서 이리저리 함께 돌아다닌 40살 먹은 말라깽이 삐끼를 그냥 보내기도 뭣하고 해서(뭐 그걸 노리고 하는 일이지만), 그와 투어 협상을 했다. 1500에 여섯 군데 사이트를 모두 돌기로 합의봤다. 혹시 10$이나 하는 입장료 안 내고 들어갈 방법은 없는지 물어보니 자기한테 입장료의 반액을 주면 4-5pm 이후 외국인 입장객 감시원들이 퇴근할 때 맞춰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것 봐라? 머리 굴리는데? 그 얘긴 즉슨, 내가 천오백짯만 줘도 시간 잘 맞추면 여섯 군데 다 들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당신한테 5달러 줄 필요가 없지.

그가 강가 까페로 나를 데려갔다. 분위기 괜찮다. 110짯 짜리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가격 협상을 하다가, 문득 자선하는 셈치고 이 친구한테 5달러를 주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지도를 그리고, 동선을 따져보면 이 친구가 나를 태우고 40도의 뙤약볕에서 하룻동안 운행하는 거리가 20km 가량 된다. 시간으로 따지면 3시간 반 이상.

입장료 수입은 정부가 챙긴다. 따라서 각 사이트에서 감시하는 사람들도 자기 수입으로 들어오는 일이 아니니 근무시간이 끝나면 외국인이 입장하건 말건 그냥 멀뚱히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이 얘기는 여러 여행 사이트에서 확인한 것이다. 내가 굳이 자선할 이유가 없지만 이 친구의 행실을 보니 사기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겨우 5천원 벌려고, 이 비수기에 열파 속에서 삽질하는 그 친구를 가여워 해서라기 보다는 군부 독재정권에게 고스란히 돈을 갖다 바치는 대신 현지인이 이득을 보게 하는 방법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5달러는 큰 돈이고 만일 내가 5달러를 준다면 그것이 선례가 되어 다음에 오는 여행자들이 5달러씩 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 속으로 생각한 적정가는 2천5백짯이고 제시할 협상가는 2천짯이지만 눈 질끈 감고 5달러로 했다. 마음 속에서 너는 지금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라는 메아리가 들렸다.


먼저 들른 곳은 무슨 monastry(승원). 아마 Kha Khat Wain Khaung일 것이다. 4년 동안 빨리(pali, 원래는 팜트리 껍데기에 산 스크리트어로 새겨진 독경 같은 것)를 열나게 외우는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돗데기 시장같은 분위기지만 삐끼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한가하게 지켜보았다. 암기교육의 본산.

그는 40살 먹었고 두 자식을 데리고 있다. 그는 대학을 나왔고 병원에서 안경을 조제하는 일을 하다가 싸이카 모는 것이 수입이 더 좋을 것 같아 업종 전환했다. 사이카 한 대 가격은 15만 짯, 사이카의 라이센스 플레이트를 정부로부터 받으려면 7만짯을 내야 하고, 자기 사이카를 장만하기 위해 월부금을 열심히 붓고 있는 중.

아들은 중학교 다니고 미얀마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며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단다. 정부를 몹시 싫어했지만 입 밖에 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버마와 타일랜드의 역사 때문에 그 두 민족은 알게 모르게 일본과 한국처럼 자존심 싸움을 가끔 벌이는 것 같다. 미얀마 군은 육군 밖에 없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는 2차대전 때나 쓰던 소총 뿐이라 타이와 한판 붙으면 작살 나는 쪽은 가난한 미얀마지만, 마치 북한처럼 그저 자존심과 악과 깡이 남았다. 그럴 때는 안 건드리는 것이 이롭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로 알고 있는데 타이를 침공했을 때 부처 대가리는 왜 베었소? 하니까 그때는 전쟁중이었으니까, 하는 따위의 말을 했다. 아웅산 수지 사건을 그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심지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폭탄 테러범의 이름까지도 알고 있었다.

바고에 한국인 individual traveller는 얼마나 왔소? 하니 일 년에 다섯명 보기 힘들단다. 성수기때 그의 수입은 하루에 5달러 정도씩 삥 뜯어서(유러피안은 사정이 나아서 20달러까지 가능하단다) 한달 250달러 가량. 꽤 수입이 괜찮은 편. 약은 일본 학생들은 투어 단가를 3천짯까지 떨구기도 한단다. 말은 안 했지만 그 가격이 내 생각(2500)에도 적정가 맞다. 물론 태국 여행자는 미얀마에 극히 드물다. 형편이 풀린 태국 학생 배낭 여행자들이 최근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고 보면 역사란게 무섭긴 하다.

과거 미얀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영국과의 관계는? 그들과의 비즈니스는 국가 차원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관계는 나쁘지 않다. 그런 정치적 멘트야... 그러나 미얀마인들, 특히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in deep inside of mind, i...)...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 시절을 보냈던 모든 동남아 국가들에 관해 유난히 알고 싶은 내용이었다. 내가 평소 특히나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것은, 이 동남아 새끼들은 더위 먹어서 배알이 없나? 였다. 알았으니 됐다.


여기가 어디더라... 마하깔랴니시마(Maha Kalyani Sima). 옛날에 승려들 출가 의식 하는 곳. 누워서 한숨 자기 좋다. 개와 사람들이 누워 자고 있다.


마하깔랴니시마에서 눈 붙이고 있는데 다가와서 히히거리던 아이들. 얼굴에 칠한 것은 단라까 라고,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나무에서 추출한 가루인데 천연 자외선 차단/보습제 같은 것. 여기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칠하고 다니는데 효과가 우수한 것 같다. 미얀마 여자들 피부 곱다.


그래도 명색이 투어 인지라 갈 곳은 빠짐없이 들렀다. 뭔가 설명을 들었는데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보리수 그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 함께 있던 제자들. 미얀마 나름의 시뮬라시옹. 보리수도 심고, 제자들도 잘 배치해 놓고... 저 아이랑 놀았다. 참 순진하다. 발랑 까진 한국의 초딩과 워낙 비교가 되었다. 날 졸졸 따라다니며 부처님 계시니까 신발 벗으라고... 알았다니깐... 응... 벗을께. 됐지?



싸이카로 하는 싸구려 투어인 관계로 바고시 입구의 사면 부처상은 못 보러가고 대신 짝퉁이나마... 아, 진짜 관광사진 찍기 싫다.


쉐구레 파고다 Shwegulay pagoda, 파고다 내부에 64명의 부처상을 모셔놓은 곳.

2시가 좀 넘자 시계에 찍힌 기온이 41도다. 믿어지지 않았다. 바짝 마른 싸이카 운전사는 땀나게 페달을 밟고 있는데 나는 오르막에서 내려 주거나 그가 쉴 시간을 벌어주려고 투어를 늦추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41도라니 이건 좀 심하다 싶어 노점에 자전거를 세우고 그가 좋아하는 스타콜라를 사줬다. 그 맛없는 청량음료를 미얀마 사람들이 자주 먹더라. 나는 얼음에 담가놓은 멜론을 썰어 먹었다. 60짯. 얼음에 담근 멜론을 썰고 설탕과 연유를 뿌려 컵에 내오는데 맛있어서 하나 더 먹었다.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이번 미얀마 여행에서는 대체로 초심으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열심히 돌아다니고 식사는 대충 되는 대로 줏어 먹고 숙소는 잠만 잘 수 있으면 된다. 그래야만 했다. 몸이 맛이 간 것은 둘째치고 정신상태가 글러먹어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입가에 군침이 도는 그 맛있어 보이는(약간 짤 것이다) 샨 음식이나 버마식 백반을 멀리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싸이카 운전사는 눈에 띄게 지쳐 있었다. 어쩌겠나. 5달러 벌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다시 출발. 태양의 기세는 좀 수그러 들었다. 38도, 약간의 바람과 다양한 흙먼지, 이 정도면 견딜만 하다. 슬슬 '공무원'이 빠져 나갔을 장소로 향하자.


힌타곤 파고다 Hintha Gon pagoda, 무당, 기(gyi)라고 한다. 낫 신앙에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무당과 비슷한 여자. 머리에 아카시아 꽃을 두르고 소매, 주머니 여기 저기, 그리고 입에 지폐를 문 채 퍼쿠션에 맞춰 춤을 추며 쉰 목소리로 실성한 사람처럼 뭔가를 중얼거린다. 한국에서야 제대로 신을 맞았는지 무당질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꼼꼼이 확인하고 칼에서 춤을 추지만, 이 친구들은 워낙 순박해서인지 무당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굳이 확인하지 않는 듯. 하다못해 간단한 차력 시범 정도는 보여줘야지 싶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신통력도 없는 무당을 신뢰할 수 있다고...


힌타곤 파고다, 시원해서 낮잠 자기 딱 좋게 생겼지만 시간 관계상... 싸이카 운전수를 좀 고생시켜 쉴 새 없이 계획에도 없던 곳들을 돌리고 있다. 어쩌겠나. 시작한 투어는 제대로 해야지. 누운 부처상(shwethalyaung budha)은 흘낏 보고 지나쳤다. '크다'는 것 외에 별 감흥이 없다. 대신 그 둘레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힌타공 파고다에서 바라본 쉐모도 파고다.


쉐모도 파고다 Shwemawdaw Pagoda, 오늘의 메인 이벤트. 5pm이 되어 도착. 20분 이내에 다 보고 나와야 하다야 까페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듯. 사진을 재빨리 찍었다.


쉐모도 파고다야 쉐다곤 파고다 만큼이나 유명하니... 이제 만들래에 가서 마하무니 파고다만 보면 짜익티요 삐고는 다 보는 셈인가.


마치 이란의 모스크처럼 이것들은 끊임없이 금칠을 새로 하고 보수한다. 국제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저 찢어지게 가난할 뿐인 싸이카 운전수는 자기한테 2000달러가 있으면 여기에 파고다를 만들 것이란다. 왜? 그것은 지위, 부, 체면, 명성, 그러니까 그들 사회의 근본적인 계급 구조와 사회 구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굶어 죽어도 파고다는 수십만 개를 만들어 놓았지. 백만 달러 정도면 100m 짜리 웅장한 파고다를 만들 수 있단다. 잘들 한다.


그래서 저 새끼 파고다는 기증자들이 돈 되는대로, 쥐꼬리만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전시하는 것이다.
그들 문화를 비아냥거릴 생각은 없다.


쉐모도 파고다 안에서 만난 이 친구, 한참 이야기 하는 중에는 웃기도 잘 웃고 다정하고 재밌었는데, 얼씨구? 사진기를 들이대자 곧바로 근엄해지네? 이래서 종교가 싫다니깐.


투어를 마치고 돈을 건네주니 사색이던 얼굴에 콰광 희망의 번개가 쳤다. 입이 찢어지게 좋아한다. 이 비수기에 단비같은 돈인건가. 돼지같은 군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 벌이가 짭짤해 뵈는 파고다를 중들로부터 빼앗아 보수해서 외화벌이 한 돈으로, 이 나라 저 나라에 자기 딸들을 수출한 돈으로 대체 뭘 하고 있을까. 하다못해 국민이 굶주린다고 찔찔 짜다가 자기 아니면 나라 못 바꾼다고 말년에 머리가 돌아버린 박정희 대통령이라도 닮았으면...

하다야 까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라파이를 시켜 홀짝 홀짝 마셨다. 인디아의 짜이와 그 맛이 백퍼센트 똑같은데 과자 몇 접시가 함께 나왔다. 과자를 집어 먹으면 나중에 합산해서 계산해준다. 하다야 까페 주인은 마치 rpg 게임에 나오는 mob처럼 대사가 기묘하게 정해져 있었다. 재밌다. 좋은 사람 같다.

영어할 줄 아는 미얀마 인한테 필수 생존 미얀마어 세 가지를 배웠다. i want to go to mandalay -- 쩐노 만달래 꽈찬례, please tell me this is mandalay -- 만달래 야오예 뚀바, how much is it -- 배 라울래

그 다음부터는 고독했다. 옆 자리에 아일랜드 여자와 남자가 앉았다. 평소에는 여행자에게 말을 안 붙이는 편인데 여행자가 하도 없다보니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인레 호수로 간단다. 난 아마 안 가게 될 것 같다. 나를 미얀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제임스 조이스를 안다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봤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전공이 조이스였다. 호, 이런 즐거운 우연의 일치가... 그래서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낮에는 구두 수선하다가(이 나라에는 그런 대학생들 천지다) 저녁에 잠깐 시간이 나면 이 책 저 책 읽어본 미얀마의 대학생 정도 되는 신분으로, 그녀는 조이스의 본고장에서 온 조이스를 공부하는 학생쯤 되는 사람으로서,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인 초식부터 보여줘야 하니까 내가 읽은 조이스의 저서를 얘기했다. 어 포트레이트 오브 영 아티스트, 피네간스 나잇, 율리시즈. 그녀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제외하고 다른 책들은 읽어본 적이 없었나 보다. 게다가 night가 아니라 wake인데 알아채지 못했다. 말을 더듬더듬하더니 그런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는지 눈알을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렸다. 나는 조이스가 왜 미쳤는지 얘기 중이었다. 차가 와서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미얀마가 세계에서 고립된 깡촌오지가 아니라는 점만 알았으면 된 거다.

차에 오르니, 얼씨구? 4500으로 들었는데 5500을 내란다. 무슨 소리냐? 설마 자리라도 있는거냐. 고개를 끄떡인다. 미얀마인들의 보이지 않는 친절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일쑤다. 누군가 나 때문에 midst seat로 옮겨간 것이 뻔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나는 각기 다른 에이전시를 통해 이미 표가 없음을 수 차례 확인했다. 없는 표가 하늘에서 떨어질 일은 없고, 미얀마에서는 차를 잡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지금은 새해를 맞이해 엄청난 인구가 이동중이라 못해도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 표를 구할 수 있다. 게다가 내 자리에 있어야 할 물병과 물수건이 없다. 누군가 앉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져간 것이다. 어쩌면 하다야 까페 주인이 손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쓴웃음을 짓고 돈을 건넨 후 자리에 앉았다. 차가 좁아 허리가 아프다. 에어컨 버스인데 에어컨 나오는 모양을 보니 기대할 형편은 아닌 것 같고, 사람들이 창문을 열어놓았다. 자리가 불편해 잠이 안 온다. 비디오를 틀어놓으니 차안의 모든 미얀마인들이 그 비디오를 보느라 정신 없다. 차 안에 있는 외국 여행자는 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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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Yangon

여행기/Myanmar 2005. 3. 30. 20:56
이번 여행부터 찍는 사진은 1024x768로 사이즈를 바꿨다. 파일 크기가 3배쯤 늘어나지만 최소한 프린팅이 가능한 수준이 되도록.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뻐근하다. 잘 때 자세가 안 좋았던 듯. 6시에 깨어 세수하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남은 잔돈으로 쥬스를 하나 사 먹고 50밧 지폐는 나중을 위해 남겨 두었다. 쓸모가 있으리라. 59번 에어컨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며 졸았다. 이틀 묵었던 만남의 광장이 마음에 든다. 마치 누가 죽고 누가 경찰에 잡혀가는 등 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갑자기 뜸해진 델리의 나브랑 게스트하우스처럼 묵고 있는 투숙객은 나와 어느 방송사 PD를 비롯한 방송팀 뿐, 남은 객실은 텅 비었다. 만남의 광장이 운하 옆으로 이전해서 아침에 식당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건너편 상인들이 장사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 보며 담배를 피웠다. 방콕에 가게 될 일이 있으면 다시 만남의 광장으로 갈 것이다. 24개의 침대가 텅 비어있는 도미토리를 혼자 쓸 수 있는 기회는 당분한 흔치 않을 테니까.

양곤행 비행기는 대략 1시간 운행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기내식과 음료 서비스가 나왔다. 배 고픈데 잘 되었다. 주는 대로 빼놓지 않고 받아 먹었다. 양곤에 가면 점심 한 끼 안 사먹어도 된다. 푸켓 에어의 737-200 항공기 좌석수는 200여개지만 손님은 30명이 채 안 되었고 배낭을 든 사람이 없는 걸 보니 그나마 나같은 배낭 여행자는 없는 것 같다.


동남아를 꽤 많이 다닌 셈이지만 비행기에서 델타를 본 것은 처음. 양곤에 거의 접근. 버마를 거저 먹은 영국은 이 델타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채고 양곤을 전략 수출입 도시로 키웠다. 그나저나 미얀마의 주요 수출품은 티크목재, 황마, 쌀, 그리고 흥미롭게도, 아편이다.


미얀마의 비옥한 델타. 뭔가를 한창 건설중인 듯. 버마는 영국 식민 시절의 이름인데, 나중에 만나는 미얀마 사람들마다 물어보니 영국에 별다른 적개심을 가진 것 같지 않다. 동남아 대개 국가는 제국주의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데, 나같은 제 3자가 오히려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선교사가 동남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친절하게도 이 종족, 저 종족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해 주시는 바람에 종족 간에 잘 지내던 나라들이 불화에 휩쌓이게 된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북부 카렌족은 여전히 군부독재와 투쟁중이고, 여전히 핍박받으며 도망다닌다. 자기들이 버마족이라고 믿고 있는 미얀마인들의 태반은 몬족이다. 마치 한국에 양반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처럼. 티벳 몽고어족인 미얀마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다. 버마족은 과거 매우 강대한 종족이었고... 이런...

양곤 공항에서 출입국 수속을 대충 마치고 공항 바깥으로 빠져 나오니 삐끼가 달라 붙는다. 양곤 시내까지 택시 3$ 부른다. 협상이나 할까 하다가 마음이 바뀌어 그에게 어디서 버스 탈 수 있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친절하게라... 의외로군. 택시가 글른 것 같으니까 환전하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달러당 얼마? 450짯. 900으로 해 주세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동료들과 뭐가 재미있는지 킥킥 웃더니 좋은 여행 되길 빈다고 말한다. 미얀마 첫 인상이 상쾌하다. 생각해보니 시리아가 그랬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물어 20짯 짜리 픽업을 타고(시외버스 터미널처럼 생긴 아담한 공항을 빠져 나와 왼쪽으로 직진, 주욱 가면 픽업들이 서 있는 교차로가 나타남) 잔시(?) 라는 곳으로 가서 내린 다음 버스를 기다려 탔다. 51번 버스 40짯. 둘 다 사람들이 미어터져 몸을 꼼짝할 수가 없다. 아무튼 미얀마 숫자 쓰는 법을 익혀둔 덕택에 버스 번호가 눈에 보인다. 미얀마 알파벳도 좀 알아두고 싶은데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

버스에서 영어를 썩 잘 하는 대학생과 얘기했다. 전공이 경제학인데 한국에 내년에 가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그의 형은 부산에서 일한다. 한국에서 일하게 되면 어떤 직업을 갖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묻는다.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할 지... 전공이 뭐든 상관없이 동남아에서 풍운의 꿈을 안고 온 대학생들이 별로 적절치 않은 대접을 받으며 공장에서 나사 만드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줄까. 이 지역에서 대학생이면... 그러나 교육수준이나 질은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 물론 그들 역시 많은 것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삽질해서 번 '큰 돈'으로 미얀마에서 부유하게 살아보는 것이 꿈일 테니까. 버스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옆 라인에 토니여행사의 짚차가 섰다. 미얀마 여행을 계획할 때 한 번 쯤은 접하게 되는 이름.

대학생의 안내로 술레 파고다에 내려 오끼나와 게스트하우스까지 함께 가면서 그에게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한국에 오게 되면 한번 연락하라고... 오끼나와 게스트하우스는 시설이 꽤 좋은데 가격이 비싸 그냥 나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얀마에 온 한국인은 무슨무슨 호텔에 묵는다고 하더라. 내가 묵으려 하는 곳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좀 싼 편이라고 한다.

기절할 정도로 쌌으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술레 파고다 바로 앞에 있는 가든 게스트 하우스로 올라갔다. 싼 방은 다 나가고 에어컨 방 밖에 없단다. 6$, 고민하다가 잡았다. 오끼나와에서 5$주고 도미토리에 묵는 것보다는 낫지. 이 숙소에 대한 트래블 게릴라의 평가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5층을 오르락 내리락하기에는 불편하단다. 술레 파고다를 바라보는 끝내주는 전망 얘기는 없었다. 어쩌면 탑들이 지겨워서인지도.


Sule Pagoda, 붓다의 머리카락이 여기 있다는 소문이 있다. 양곤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본 파고다. 한국으로 치면 남대문쯤 되겠지. 앞으로 수천 개의 파고다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양호한 숙소 아닐까 싶다. 물론 2002년에 새로 지은 오끼나와의 럭셔리함과는 비교가 되겠지.

시장통에서 달러당 900에 50$만 환전. 론지를 살까 하다가 3000씩이나 한대서 망설였다. 삐끼와 바고 가는 차가 있냐 없냐로 옥신각신했다. 그의 말로는 2500짯이라는데 바고 까지 고작 한 시간에 2500짯이면 어딘가 가격이 불합리해 보인다. 걸어서 보따타웅 파고다까지 갔다. 2$를 삥 뜯기고(현지인은 무료입장) 낫 사당부터 보았다.


낫(nat, 정령) 신앙의 본거지인 뽀빠산에는 안 갈 생각. 절간의 삼신각과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절간 어느 한구석에 조그맣게 쳐 박혀 있는 것이 이곳에서는 금칠도 하고 대접 받는다. 이놈은 좋은 신령 같다.


어서옵쇼


보따(군인) 타웅(천명)은, 다곤(현재의 양곤)에 살던 두 형제인 Okkla와 Bhallika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곳인 인디아의 부다가야로 찾아가 부처에게 꿀케잌을 바치고 그가 건네준 여덟 가닥의 성스러운 머리카락을 받아 다곤으로 돌아올 때 오칼라파 왕이 천명의 지휘관을 데리고 나와 영접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천명의 군인과 자비의 화신이라...


이 파고다는 내부를 공개하여 부처의 머리카락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부처의 머리카락을 보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나도 노력했다. 그런데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저렇게 털기 쉬운 성물이라니... 이 김에 인디아나 정스가 되서 털어봐...


정말 성스러운 곳이라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입장료와 별개로 1$를 더 내야 한다. 딱히 감시하는 것 같지는 않고 해서 사진기를 들이댔다. 안의 거울처럼 꾸민 여러 방에는 각각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갯벌이 반인 이 해변에서 무려 천 명이나 되는 지휘관이 서서 부처의 머리카락이 당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명의 군바리와 부발의 묘한 아이러니. 부처는 왜 미얀마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뜯어 줬을까? 팜플렛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부처는 불교가 미얀마에서 융성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부처는 락이 가고 블루스가 왔던 것처럼 미얀마에서 불교가 뜨리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던 것이다.


2500년이 지난 현재, 해변 도로의 건너편에는 천 개의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시계를 흘낏 보니 기온이 38.5, 최근 12시간 동안 기압은 안정적. 아까도 꽤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는데 이 더위에 차욱타지 파고다까지 6km를 걷는 것은 몹시 위험한 짓인 것 같아 중간에 택시를 세웠다. 1200짯에 대충 협상하고 올랐다. 아내가 늘상 하는 양상의 호구 조사를 해보니 운전수에게는 1년 7개월된 딸 하나 있고 딸 생각만 하면 입이 찢어지려고 한다. 심도있게 조사해보니 수입은 하루 7000짯 가량, 많을 때는 15000짯 까지 벌었다. 환산하면 8$-20$쯤. 택시는 렌트해서 사용하는 것, 하루 렌트비가 7000짯. 일인당 국민소득이 150$이라는 나라에서 의외로 고소득자였다. 아니면 개방 이후 다른 많은 나라처럼 미얀마 경제가 급속히 팽창하는 중이라던가, 관광객이 늘어났던가. 호구조사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는 영어라고는 숫자가 거의 전부인 기사 양반과 별별 수단을 동원해서 알아낸 것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깨달음도 얻었고 해서,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길이 195m 짜리 부처


이 나라 부처의 피부는 유난히 희다. 그가 미얀마어로 말했다; 아웅 레베 까잇데(아웅 목 아파), 뭐 재밌는 일 없을까?


쫄따구들이 오늘 공양은 잘 했는지... 내가 일어서기만 하면 군부 독재 정권 쯤이야 우습지. 보살들 시켜서 법륜 한 번 땀나게 굴려봐?


저 아저씨는 안 가고 아예 죽치고 살려나 보네. 그냥 눕지 그래... -- 이 나라에서 네번째로 큰 이 집 부처가 하루를 보내는 방법.

차욱따지 파고다를 나와 축축 늘어지는 더위 속에서 걸었다. 쉐다곤 파고다까지 만큼은 걸어볼 심산이다. 지나가던 아이가 앞에서 쳐다보길래 싱긋 웃어주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모르는 아이답게 내 얼굴을 한참 노려본다. 한 시간쯤 걸어가니 아까 그 아이가 어떻게 앞서 갔는지 앞에 다시 서 있다. 다시 웃어 주었다. 이번에는 아이도 살짝 웃는다. 낯선 외국인이 미소 지을 때는 함께 미소지으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 연습도 해 보고, 실무에 적용해 본 것이다. 재밌긴 하다.

쉐다곤 파고다 앞에서 파는 150짰 짜리 얼음 넣은 사탕수수 즙 먹고 힘냈다. 쉐다공 파고다에 다 왔다. 5$ 삥뜯길 준비도 했다. 가능한 안 걸려서 안 냈으면 좋겠다. 계단을 오르려니 아이가 따라와서 비닐 봉투를 덥석 손에 쥐어주고 신발을 싸서 들고 가란다. 5짯 주니까 히힛 웃으면서 사라졌다. 5짯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5원 가량? 이들 물가 수준이 아직 감이 안 잡힌다. 수퍼에 들러 대충 가격이라도 알아봤으면 좋겠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소문대로, 어디선가 귀신같이 나타난 젊은 친구가 나를 잡더니 티켓 판매소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외국인은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친절은 계속되었다. 티켓 안내소의 아가씨들은 미소를 지으며 5000짯이라고 말하고, 꼭 사야할 것 같은 팜플렛은 1000짯 별도라고 말한다. 달러로 내겠다고 했다. 그 편이 계산하면 더 싸니까. 팜플렛을 사양하니 풀이 죽은 것 같다.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혹시 카메라 있으시냐고 묻는다. 카메라는 1$ 더 내야 한다. 없다고 했다.


카메라가 없긴 왜 없어. 있지.


지나가던 카메라 촬영사나 가이드는 내 생일이 금요일이라니까 공교롭게도 붓다의 생일도 금요일이라고 기뻐하며, 오늘 당신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행운이라고 자기들이 더 기뻐한다. 저게 행운의 참 모습이냐? 공사중이라 찬란한 황금빛에 대나무 금이 갔다. 공사는 5월에나 끝난단다.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삐끼들은 그러나 여전히 당신은 행운아라고 말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공사가 마무리된 꼭대기의 찬란한 보석들은 볼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신경질이 난 나머지(마누라는 먼저 갔다오고도 공사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가이드와 쉐다공 파고다에 대해 누가 더 많이 아는지 서로서로를 가이드 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 뭐가 달라졌는지 구분 안하였다. 나는 그가 겪은 고난 중에 마야(마라)가 특히 그의 심경을 괴롭혔음을 강조하고 틈틈이 미얀마 숫자를 자유자재로 읽을 수도 있음을 과시했다. 그리고 쉐다곤 파고다에 박혀 있는 무수한 보석들이 밤에 조명을 받아 반짝여 봤자, 꼭대기에 달린 다이아몬드의 찬란한 번쩍임 만큼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루비는 피빛으로 붉고 사파이어는 안다만 바다처럼 시퍼런데, 직접 보고 나서 말하라고 한다. 구석에 몰려도 아웅산 수지가 감방에서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주저 앉아서 지나가는 카메라 삐끼들과 한가한 얘기나 나누며 사람들이 절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파고다의 이름에 스웨가 접두어로 붙는 것들이 많다. 스웨는 황금이란 뜻이다. 스웨다곤은 황금 다곤, 다곤은 양곤의 옛 이름. 파고다에 자기 몸무게 만큼의 금을 기부하는 풍속은 미얀마에서는 신소부 여왕때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그녀가 기증한 금은 40kg이었다. 그녀가 기부한 금의 무게가 현재에 살아가는 많은 여성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지, 공주가 만약 80kg의 금을 기부했다면 지금처럼 존경받았을까? 의문이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받은 이미지: 쪼리를 질질 끌고 다니며 담배를 뻑뻑 빨고 있는 승려, 콘크리트 붓다, 부처 머리에 앉아 똥 싸는 참새, 한가한 가족 나들이, 한 줄로 주욱 즐비하게 늘어선 기부함, 라이브 도네이션 현장. 사원에서 기부받은 돈을 즉석해서 회계처리하는 인디아식의 영리함을 이곳에서는 보지 못했다. 인도에서 가장 큰 사원의 회계사에게 물었다.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이 들락거리는데 어떻게 한푼의 에누리도 없이 정확하게 계산이 맞아 떨어지는가? 그야 신께서 도와주시니까. 영적으로나 회계적으로나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그 분께서 장부 처리를 도와주고 있을까? 돈을 세고 있는 하나님 모습을 상상했다. 지나가던 독일인이 지겹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부다, 부다, 부다, 어나더 부다...' 부처가 참 많긴 한데, 각 부처마다 보살피는 것이 다른 것 같다. 낫 신앙과 뒤섞인 힌두식 남방불교. 미얀마는 대승 불교에서 소승 불교로 갈아탄 것으로 알고 있다. 인상깊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세계 주요 도심에서 나름대로 진화하기 전의, 닭둘기 조상이 이곳에 대거 서식한다.


저녁 8시쯤 정전. 술레 파고다는 그래도 희미하게 빛났다. 성스러운 전용 발전기가 있는 것 같다.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인 도심의 한복판에서 파고다가 surealistic하게 반짝인다. 그야말로 sf였다. 노출보정 +1, 노출시간 0.6초, iso200, 손 삼각대. 아마추어 사진에 더 많은 것을 바래서는 안되겠지. 더 이상의 노력은 포기.

오끼나와 식당에서 1200짯 짜리 오끼나와 특별 수프를 시켜 먹었다. 정전 탓에 촛불을 켜고. 방콕에 있을 때 똠양꿈을 못 먹어 섭섭했는데 여기서 먹게 될 줄이야... 오끼나와 스페셜 스프는 똠양꿈 맛인데 그런 줄 모르고 설탕을 안 넣어 시디 신 라임소다를 곁들여 먹었다.


에어컨 프로텍터. 전압이 242v 이상 치솟으면 에어컨 전원을 off 시키는 것 같다. 인디아에서는 왜 이런 장치를 본 적이 없을까. 60-250v까지 제멋대로 정신없이 변하는 전압에서는 섬세한 일본 기기나, 유럽, 미국의 전자기기들은 가차없이 나가 떨어졌다. 한국의 모 기업의 tv가 인디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은 60-250v까지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전압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정격의 수 배에 달하는 내압을 지닌 값비싼 컨덴서를 포함한 회로를 전자기기에 장치하면서 부터다. 발전 사정이 좋지 못한 비서구권 제3세계 국가에서 한국 전자기기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훌륭한 현지적응 사례다.

보조제 마켓의 한 노점상에서 손톱깎이를 살 때 상인은 태국제, 중국제, 한국제를 구별했다. 한국제가 가장 비싸다. 주저없이 중국제를 골랐다.


어둠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좋아 날뛰고, 불빛 주변에는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모였다. 덕택에 미얀마의 수도에서 별을 보았다. 쩨주베(고맙다).

인터넷 까페는 아홉시에 문을 닫고 이 글은 언제쯤에나 블로그에 올리게 될지. 노트북에 저장해 둔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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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리닝을 입고 인천 공항에 도착. 아내가 뭐라고 그러더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긴 했다. 수속을 마치니 간신히 비행기에 오를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1시 방콕 도착. 공항을 빠져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20분을 넘게 기다려서야 59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에어컨 버스, 20밧. 버스 가격이 올랐나?

카오산에 도착해 싸구려 숙소들을 돌아다녀봤지만 방이 모두 찼다. 간신히 새로 옮긴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니 새벽 3시. 도미토리를 잡고 들어갔다. 한국인이 한명 자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시간당 120밧 하는 맛사지를 두 시간 받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편. 항공권을 컨펌하고 날짜로 모두 11일로 고쳤다. 13일은 죽어도 표가 안 난다. 그놈에 송크란 때문에..

그리고 파아팃 선착장으로 가서 보트를 타고 창 선착장으로, 창 선착장에서 다시 보트를 타고 50여분을 달려 방야이로, 방야이에서 버스를 타고 남 선착장으로, 남 선착장에서 논타부리 선착장으로... 논타부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파 아팃 선착장으로... 이렇고 돌아다니니 5시간 걸렸다. 오늘 테마는 챠오프라야 강을 보트 타고 돌아다니자... 였는데 방야이에 가니 방콕이 수상도시라는 것이 실감났다.


챠오프라야 강


방야이로 가는 길.

숙소로 돌아와 샤워 하고 차이나 타운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차이나타운 갈 때도 보트를 타고 가면 되지만 귀찮아서 버스를 탔더만 교통체증에 걸려 중간에 내려 걸어갔다. 거리에서 파는 50밧 짜리 제비집 수프를 먹고 딤섬을 이것 저것 줏어 먹었다. 오렌지 쥬스를 15밧 주고 샀는데, 이럴수가... 거의 1리터 가량을 갈아서 줬다. 먹다가 속으로 '좆됬다'고 중얼거렸다. 더 이상 다른 것을 먹을 수가 없었으니까...

배도 채웠고 차이나타운에서 걸어서 방람푸까지 왔다. 시계의 나침반도 실험할 겸 운동도 할겸. 방람푸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8번 버스를 타고 빅토리 모뉴먼트로 갔다. 섹소폰 2층에서 맥주 한 병 시켜놓고 다리를 쉬었다. 연주 솜씨는 그저 그랬다. 아마추어 티를 갓 벗어난...

전승기념탑 주변에서 버스를 타고 어떻게 돌아가야 할 지 난감해서 MRT를 타고 일단 씨암에서 내려 15번 버스를 타고 방람푸로 돌아와 죽 한 그릇 먹었다.

내일은 그렇게 속을 썩이던 미얀마 들어가는 날. 아내는 미얀마에서 10일을 보내고 돌아왔고 볼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버강 유적지는 앙코르 와트, 보르부르드와 다불어 동남아시아 3대 유적지다. 아내나, 동남아를 여행하는 여행자 대부분이 동남아 문화와 역사에 대해 그다지 공부하는 것 같지 않았다. 흠... 미얀마의 선사시대, 고고학적 역사에 관해서 얘기해 봤자 들어줄 사람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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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잡기 2005. 3. 28. 00:53
짐 무게를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애썼다. 준비물: 걸레같은 바지 하나, 티셔츠 1, 팬티 2, 양말 2 합쳐서 4-500g, 세면도구(비누,쓰다남은 치약,칫솔, 일회용 면도기 1, 수영타월) 4-500g, 리브레또 1kg, 충전기, 배터리 AA 6개, GPS, PDA, 디지탈 카메라, 잡동사니 케이블 해서 1.5KG, 의약품 약간(타이레놀 10알, 지르텍 6알, 항생제 8알, 쓰다남은 연고 하나).

흠... 안 좋군. 짐을 줄이기 위해 가이드북을 뺄까 말까 고민했다. 배낭 자체가 2kg쯤 되었고, 입은 옷을 포함해 모든 짐을 재어보니 6kg. 가이드북을 넣으면 6.5kg쯤 되지 싶다. 가이드북 대신에 경로 정리한 몇 장을 프린터로 뽑았다. 아내도 내가 뽑아준 프린트물 달랑 몇 장 들고 갔다. 양곤에 도착해서 첫 숙소까지 가는 방법만 알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되니까. 노트북을 빼면 이것 저것 포함해서 2킬로쯤은 더 빠지고, 그렇게 되면 배낭을 안 들고 가도 된다. 그래도 짐이 조금 쯤은 있어야 '배낭여행'하는 것 같지 않을까? 배낭이 없으면 그냥 히피 날나리 같지 않을까? GPS는 그냥 좌표 찍어보려고 가지고 다니는 것이고 이번에는 기압계, 전자 나침반이 달린 시계까지 차고 간다. 시계는 68g이다. 계산에 넣지 않았군.

아침 일찍 일어나 토요일에 산 랜 케이블과 공구를 들고 낑낑대면서 공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의 설계 스펙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일 좀 하다가 시간이 되어서 허겁지겁 서울로 올라간다. 말 안하고 간다고 욕을 직싸게 먹었다. 팀원들한테는 1주일 후쯤 돌아오겠다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런데, 값비싼 항공료를 들여 가서 고작 1주일만 있으면 미얀마가 몹시 섭섭해 할 것 같다. 저번 주 토요일이 되기 전까지 항공권 스케쥴을 모르고 있어서 사실 우연을 배제한 완벽한 계획을 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계산기처럼 정확하게 일정을 재단한 후 계획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하는 것. 이런 걸 한번 해 보고 싶다. 여행이란 워낙 우연의 요소가 많다보니(또 그 재미라고 우기는 녀석들도 많은데, 그 우연이 대개는 사고다), 우연을 완전히 배제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입증하고 싶다. 거의 불가능한 과제이긴 했다.

이게 다 아내덕이지. 암. 아내가 항공권을 잡았다. 그 일정에 맞춰 저번 주에 뺑이쳤다. 한 며칠 동안은 on load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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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잡기 2005. 3. 26. 11:58
사람이 꽤 많이 참석해서 번잡할 것이 뻔한 sf 모임에는 가지 않았다.

저작권법 이외의 대안이 있는가 하는 얘기를 듣고 보니, 코리 닥터로우가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한 SF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군. 인간 활동의 동기 부여를 화폐에 대한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욕망에서 집단내 순위를 유지하려는 원숭이 수준으로 떨구어 놓은 소설이었다. 비아냥 아니고 칭찬이다. 그 소설에서 나처럼 국가경쟁력 향상에 묵묵히 음지에서 삽질하는 '산업역군'은 최하층 쓰레기였다.

저작권은 '거래'가 된다. 그 거래는 저작자가 원할 수도 있고 저작을 원하는 다른 사람이 원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파악한 21세기 저작권법의 본질은 그 거래의 신뢰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에 워낙 냉소적이고 순 욕설만 늘어놓아서 내 얘길 들어주는 사람은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블로그는 정치적 올바름이 왜 한심한 사고방식인지, 저작권법이 왜 악법인지 블로그 들락거리는 사람에게 조리있게 설명하는 사이트도 아니고 앞으로 그럴 생각도 없다. 거래의 주체는 아까 말한 대로, 저작권자 뿐만 아니라 개나 소나 다 된다 이다. 자본주의 체계 이외의 대안이 없다면(예술의 여러 동기부여 중 자산증식을 통한 행복의 고취도 무시 못할 수준이라고 하더라. 미소 지었다. 너도 옳고 너도 옳다) 거래가 되는 것들에 관한 논쟁은 일정 수준의 암묵적 합의가 필요한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았다. 예도 필요할까? 개인적으로 저작권 때문에 슬픈 추억이 많다. 슬프다기 보다는 배고픈 기억이다. 이를테면 회사와 거래할때 내가 소스를 GPL하에 두고 싶다고 철딱서니 없이 밝히면 업체에서는 거의 실시간 내지는 자동적으로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파블로프의 침흘리는 개를 연상하면 딱이다), 계속 고집을 부리면 댓가를 치뤄야 했다 -- 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평소 철학'은 그만 논하고, 가치를 발견하면 침을 흘리는 자와 거래한다. 거래된 '품목'이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 한, 그 침흘리는 자는 '나'라는 원저작자와 상관없이 댓가를 치른 후 권리를 양도 받고 다른 침흘리는 자와 거래 한다. 그 다른 자는 또 다른 침흘리는 자와 거래한다. 표현이 매우 컬러풀하나, 머리속에 별다른 예가 떠오르지 않는다. 저작권이나 특허권이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침 흘릴 가치가 있는 소중한 그 무엇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는, 피터 드러커가 수 권의 저작을 통해(어쩌다 보니 수 년에 걸쳐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는 경악스러운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그렇게나 입에 침이 마르게 주구장창 강조하는 '지식노동자'다. 게다가 그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거의 모범답안에 가까운 지식노동자였다. 나같은 사람에게 아이디어는 판매할 시장에서 쳐주는 값비싼 상품이 아닌 그저그런 '근로 생활'이다. 난 직간접적으로 많은 특허를 만들었고 한 달에 보통 2-3개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적용한다. 그리고 그 근로 활동을 일당 7만원 받고 잡일하는 잡부와 동등하다고 여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7만원 보다 더 주고 싶어 하는데 '나의 평소 세계관과 철학'을 논하며 말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근로 활동이 나로서는 한 십년 해 봐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포크레인 삽질(해 봤다. 어렵다)보다는 가치가 있다고 경영학계의 다시없을 위대한 석학을 비롯한 모든 침흘리는 자들이 주장하면서(물론 드러커가 주장하는 것은 전이와 트랜드를 말하는 것이지 이런 식의 논리는 아니었다. 드러커는 언제나 지식산업 이외의 것을 다소 낮게 평가했고 테일러식 관찰과 학습에 따라 언제든지 쉽게 재현, 대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30년 동안 구두를 꿰메다가 도통한 사람이라든지 위폐를 가려내는 전문가나 병아리 감별사, 난자에 체세포 핵을 솜씨좋게 집어넣는 한국인들, bga를 납땜인두로 귀신같이 붙이는 사람들이었다. 드러커는 그런 사람들과 옆집에 살아본 적도 없을 뿐더러... 음... 노동과 기술, 예술과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그의 편견에 대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길어지므로 다음에 기억나는 대로 할 말을 정리해 둬야겠다) 급여를 올려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나. 저작권이 자원,자본,지식,으로 이어지는 서구의 자산 이동의 핵심이고 더 이상 울궈먹을 것이 없어진 나머지 그것을 고도화하여 비좁은 지표상에서 이루어지는 제로섬 게임에서 일시적인 자원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서구의 나머지 세계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인류공영을 위해, 모두가 이익인 제도라는 헛소리에 맞장구를 쳐줘야 함을 그렇게 쌀 떨어지는 생활감각으로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타임 선정 20세기 최고의 서적 100권

Ⅰ. 문학

1. D.H.로렌스/ 아들과 연인/ 1913
2. 루쉰/ 아큐정전/ 1921
3. 엘리엇/ 황무지/ 1922
4.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5. 토마스 만/ 마의 산/ 1924
6. 카프카/ 심판/ 1925(?)
7.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27
8.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1927
9. 헤밍웨이/ 무기여 잘있거라/ 1929
10.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1929
11.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1932
12. 앙드레 말로/ 인간조건/ 1933
13.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14. 리처드 라이트/ 토박이/ 1940
15.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1941
16. 카뮈/ 이방인/ 1942
17. 조지 오웰/ 1984/ 1948
18. 사뮈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1952
1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1955
20.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1956
21.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22.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1957
23. 치누아 아체베/ 무너져내린다/ 1958
24. 귄터 그라스/ 양철북/ 1959
25. 조지프 헬러/ 캐치 22/ 1961
26.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962
27.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1967
28.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980
2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30.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 1989

II.인문

1.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1900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강의/ 1916
3.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920
4. 라다크리슈난/ 인도철학사/ 1923~27
5. 지외르지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923
6.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927
7. 펑유란/ 중국철학사/ 1930
8.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1931~64
9. 마오쩌둥/ 모순론/ 1937
10.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41
11. 장 폴 사릍르/ 존재와 무/ 1943
12.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45
13.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1947
14. 시몬 드 보봐르/ 제2의 성/ 1949
15.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951
1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953
17. 미르치아 엘리아데/ 성과 속/ 1957
18. 에드워드 헬렛 카/ 역사란 무엇인가/ 1961
1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1962
20.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1962
21.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1964
22. 미셸 푸코/ 마과 사물/ 1966
23. 노엄 촘스키/ 언어와 정신/ 1968
24. 베르터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1969
25.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앙티오이디푸스/ 1972
26.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1976
27.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1978
28.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979
29.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1979
30. 위르겐 하버마스/ 소통행위이론/ 1981

III. 사회

1. 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1902
2.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 과학적 관리법/ 1911
3.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1926~37
4. 라인홀트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1932
5. 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이자.화폐 일반이론/ 1936
6. 윌리엄 베버리지/ 사회보험과 관련 사업/ 1942
7. 앙리 조르주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1947
8. 앨프리드 킨지/ 남성의 성행위/ 1948
9. 데이비드 리스먼/ 고독한 군중/ 1950
10.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1950
11. 존 갤브레이스/ 미국의 자본주의/ 1951
12. 대니얼 벨/ 이데올로기의 종언/ 1960
13. 에드워드 톰슨/ 영국노동계급의형성/ 1964
14.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1964
15. 마셜 맥루헌/ 미디어의 이해/ 1964
16. 케이트 밀레트/ 성의 정치학/ 1970
17. 존 롤스/ 정의론/ 1971
18. 이매뉴얼 위러스틴/ 세계체제론/ 1976
19.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1980
20.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1987

IV.과학

1. 알버트 아인슈타인/ 상대성원리/ 1918
2. 노버트 비너/ 사이버네틱스/ 1948
3. 조지프 니덤/ 중국의 과학과 문명/ 1954
4.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1962
5. 제임스 워트슨/ 유전자의 분자생물학/ 1965
6.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1978
7.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1980
8. 칼 세이건/ 코스모스/ 1980
9. 이리야 프리고진/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10.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1988

V.예술,기타

1. 헬렌 켈러/ 헬렌 케러 자서전/ 1903
2.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1926
3. 마하트마 간디/ 자서전/ 1927~29
4. 에드거 스노우/ 중국의 붉은 별/ 1937
5.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940~50
6.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1947
7. 에른스트 한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948
8. 말콤 엑스/ 말콤 엑스의 자서전/ 1966
9.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1975
10.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긴 여정/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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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책이 있고... 왜 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책도 있고... 목록 자체가 21세기 하고는 거리가 먼 구닥다리인 것 같다. 컨템포러리 마스터피스 쪽은 거의 전멸이랄까? 다른 말로 하면 목록 작성한 이들이 살 날 얼마 안 남아 좋았던 옛날을 추억하는 노인네들이지 싶다. 쳇. 몇 권 읽은 책이 없어 목록에 굳이 트집을 잡았다. 저것들 중 49권 읽었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나머지 51권은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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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공장에 박혀 일했다. 일 하고 밥 먹고 일 하고 밥 먹고. 아침에는 눈이 왔고 나는 내 일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히히히 하고 웃었다. 히히 웃고 나서 사장과 모델과 프로토타잎의 설정선 때문에 대판 논쟁을 벌였다.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보일러 수리공처럼 나타난 텍트로닉스 외판원이 기계 셋업 도중 그라운드 노이즈를 잡다가 공장의 전원을 셧다운 시켰고 모든 서버가 리부팅했다. 그에게 밥은 먹고 가라고 권했지만 식은 땀을 흘리며 황급히 사라졌다. 슬랩스틱 전문 코메디언으로 전업하면 성공할 것 같다. 나는 다시 히히 모드로 돌아갔다. 중국집에서 점심을 배달해 먹고 큰 공장에 불려가 난데없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레이저 포인터가 내 앞으로 굴러와 하는 수 없이 떠들었다. 외주 준 공장에 들러 제작 마무리 단계인 기계를 보고 왔다. 프론트 패널에 적어놓을 기계 모델명도 지었다. 피처럼 붉은 색으로 새겨질 것이다. 6개월여간 해온 프로젝트 명은 페가(리)수스, 즉 '천(리)마'지만, 공식적인 명칭과는 별개로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그 기계를 '쌩닭' 2호기, 또는 '닭들, 두 번 살다'로 불리웠다. 그간 이룩한 비장한 닭짓의 집대성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모두 내가 지었다. 불만있으면 기탄없이 말하라고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다들 불만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다음 프로젝트 명도 마음 속에 생각해 두었다. 살라만더의 비법(salamander's mystery (재떨이(ashtray))가 적당하지 않을까? 사연 있는 이름이니까. 예명은 fried chicken 3(세 번 들볶은 닭)으로 지어야지.

6주 전에 한 아르바이트의 보수가 입금되었다. 커미션을 떼어 보내주고 옥션에서 prg 70v를 주문했다. 타이타늄은 113g이나 나가서 68g짜리 우레탄으로 마음의 닻을 내렸다. 터프 솔라 파워가 오늘의 심경과 일치하지만, hey suuny, tough ain't enough. 썰렁하기 그지없는 짙은 남색 집에 돌아오니 우체부가 왔다갔다. 전등을 밝혔다. 3일 전에 먹고 치우지 않은 설겆이감이 눈에 띄었다. 턱에 지저분하게 돋아난 수염을 깍고 꼬질꼬질한 옷을 세탁기에 던져 놓고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다음주에는 다이 본딩하고 몰딩만 한 디바이스 300개로 신나는 불꽃놀이를 할 것이다. 나와 상관없다. 내 마음은 이미 뜨거운 햇살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스웨* 빠야로 향해 있다.

집에 있는 컴퓨터 이름은 hell이다. 얼마 전에 hell에 hell blazer를 다운받아 놓았다. 오늘밤에는 느긋하게 그것을 읽을 것이다. 정신상태가 개발도상중인 나와 달리 지옥에 보낼 것은 지옥에 보내고 천당에 보낼 것은 천당에 보내는 등 돈 안 되는 일을 주로 하는 니코틴 콘스탄틴의 평소 생활태도가 그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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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죽 벗기기

잡기 2005. 3. 22. 00:06
터민 짠 - 백반집. 커리 한두 가지 고르면 밥을 포함한 일체의 음식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786 - 할랄 레스토랑. 786은 '자비롭고 은혜로운 신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allah the most beneficient and merciful)'라는 뜻의 아랍어와 비슷하게 생긴 숫자들. 치티, 체티 - 무제한 탈리를 먹을 수 있는 인디언 식당. 읽다가 침흘리면서 감동했다. 음식이 이리도 훌륭하니 이 나라 국민성은 틀림없이 좋을 것이다.

예전부터 교보문고를 마땅찮게 여기는 편인데, 아마존에 주문하려니 제 시간에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교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다. 주말 포함해 나흘 기다렸다. 오늘쯤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출장을 미루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소식이 없다. 아침에 교보문고를 통해 배송현황을 조회해 보니 책은 이미 배송완료된 상태였다. 어? 책을 못 받았는데? 연락도 없고? 교보문고와 현대택배에 전화했다. 기사와 연결해 줄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란다. 나가봐야 해서 시간마다 줄곳 전화질을 했지만 연락이 없다. 8시간이 지났고, 교보와 현대택배의 상담하는 아가씨가 덜덜 떨 정도로 좀 심하게 다그치니까(그 아가씨들이 무슨 죄가 있겠냐만) 오후 다섯시가 다 되어서야 근처 편의점에서 다 떨어진 핸드폰 배터리를 허겁지겁 충전했다는 기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 진작 통화가 되었더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 한권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사놈은 책을 집 옆 창고에 던져놓고 나와 통화하지 않은 채 배송완료되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일에 치여 지난 몇 주 골치가 아팠는데, 오냐, 잘 걸렸다, 간만에 기사놈에게 조리에 맞게 고저장단을 맞춰 욕설을 퍼붓고 나니 의외로 시원했다. 조카들이 보고 있을지 몰라 이 블로그에 욕 안 쓰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수 개월 전 일; 택시 운전기사는 연세가 꽤 든 할아버지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경제 얘기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을 살짝 깨물어 육즙이 흥건히 배어나올 때까지 씹어주고, 시간이 남아 빨갱이들 욕을 하다가(나는 옆에서 맞장구치고) 세월을 거슬러 일제시대 얘기까지 진행되었다.

할아버지는 당시 동네 일본놈들이 쌀을 빼앗아가 먹지 못하고 헐벗었다는데, 어느 집에선가 몰래 먹던 쌀이 발견되어 순사가 본보기로 그 집 아저씨 가죽을 벗기고 소금을 뿌려 길가에 버렸는데, 그 아저씨는 일본놈들 눈치 보느라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햇볕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죽었다고 한다. 죽일 놈들! 하고 분개하면서 혹시 그 순사놈이 한국인 아니었어요? 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한국놈들이 더 지독했다고 한다. 참 어렵게 살으셨구나 하면서, 나는 보릿고개 얘기와 산에서 나무껍질 벗겨먹던 애기를 실감나게 늘어놓았다(뭐, 다 해봤으니까).

정신나간 젊은 놈 답지 않게 자꾸 맞장구를 치니까(살 날 얼마 안 남은 할아버지한테 꼬치꼬치 따지며 개겨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기분이 상했는지 교통체증으로 차가 잠시 멎었을 때 눈길을 길가로 돌리더니 '혹시 저게 뭔지 알아?' 라고 물었다. '저거요? 음 보리같지는 않고 밀이군요.' 기사 할아버지는 '요즘 젊은 것들은 보리하고 밀도 구분못해' 라는 말씀을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입을 우물거렸다. '보아하니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네 녀석이 보릿고개를, 그리고 우리 세대가 고생한 얘기를 알 턱이 있겠냐, 그저 책에서 읽은 얘길하는 거지, 내가 생생한 경험담을 또 해줄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고생을 20세기에 했다.

영양가 없는 고생담은 생략하고, 할아버지와 달리 나는 지금 들판에 잡초가 우거진건지 보리가 자라는 건지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별로 할 말이 없다. 어차피 전쟁나면 생각없고 날나리같다는 그 젊은 것들하고 나가서 나라 지키겠다고 총질하고 있을텐데 사이라도 좋아야지 괜한 트집 잡을 틈이 있을까? 우리 세대는 나라가 힘을 잃으면, 나라를 빼앗기면 좆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거의 세뇌교육 수준이라 몸은 미국으로 발르고 싶어도 마음은 바로 총을 잡고 혹성탈출을 꿈꾸는 일본원숭이떼와 맞붙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면은, 누군가 또 다시 살가죽이 벗겨지고 우리 모두는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살게 될 것이다.

노인네 말씀에 따르면 '아무 생각 없고' 피만 펄펄 끓는 젊은 놈이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칭칭 감고 비장한 눈빛으로 참호 언저리를 쳐다보며 '제가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너의 희생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하겠다, 뒷일은 맡겨라' 하고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 시마네현이 뽀개질뻔한 야당을 단결시키고, 여당과 야당이 한 목소리를 내게 했다. 심지어 이문열마저도 한마디 했다. 그런데 노총은 동참하지 않고 뭐 하고 있나? 못 살겠다며 머리 밀고 배째고 분신하는 것이 주특이잖아? 한,둘쯤은 과감히 불을 땡겨야 '애국'에는 노총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동질감을 주지. 분야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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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y, tough ain't enough.

잡기 2005. 3. 20. 00:36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권투 배우러 온 송아지처럼 생긴 소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쭈그렁 할아범이 되었어도 언어는 여전히 더티 해리 스럽다.

메모:

어떤 한가한 작자가 평생 한가했던 쇼팬하우어에게 이렇게 물었다. 결혼에 관해,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쇼팬하우어는 여자가 더 현명하다고 대꾸했다. 왜? 남자는 여자와 결혼하고, 여자는 남자와 결혼하기 때문이지. (옛날 사람들이, 아직 우주여행도 제대로 못해 비록 시시껄렁하고 한심하지만, 21세기로 날아오면 눈 앞에서 코베가도 모를 시골뜨기 취급 당해야 하지만 이런 얘기가 아직까지도 먹혀 들어간다!!)

사자, 당나귀 그리고 여우가 함께 사냥을 했다. 사자는 수북한 사냥감을 흡족해 하며 당나귀더러 사냥한 것들을 나누라고 지시했다. 당나귀는 공평하게 3등분했다. 사자는 그렇게 나눠놓은 꼴을 보고 화가 나서 당나귀를 물어 죽이고 여우더러 사냥감을 나누라고 재차 말했다. 여우는 대부분을 사자 몫으로 주고 자기는 쥐꼬리만큼 가져갔다. 사자는 여우를 기특해하며 너 참 영특하구나,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지? 하고 물었다. 여우는 당나귀한테 배웠지요 라고 공손하게 대꾸했다.

늑대는 산을 내려오다가 물가에서 길 잃은 어린 양을 발견했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라서 늑대는 양을 데리고 놀기로 했다. 그는 양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고, 그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잡아 먹겠다고 으르렁거렸다. 양은 늑대의 첫번째 질문에 벌벌 떨면서도 조리있게 대답했다. 늑대의 두번째 질문에 양은 지혜롭게 대꾸했다. 세번째 질문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양의 명석함에 감탄한 늑대는 즉시 양을 잡아먹었다.

이런 얘기들에 깃들었다고 믿는 '교훈'부터,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늙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아범처럼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구름 흘러가듯 한가하게) 상황에 맞춰 그 말을 꼭 해 봐야지.

1. girly, tough ain't enough.
2. wolfy, tough ain't enough.
3. liony, tough ain't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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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고어 테스트

잡기 2005. 3. 19. 09:32
그동안 제작하고 실험하던 하드웨어 보드의 테스트가 끝났다길래, 더 해 볼 것 없냐고 물어보니, 더 해 볼 테스트가 남아있지 않다고 말해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라고 속으로 괴성을 지르면서) 그럼 내가 테스트 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 후 한 장은 작동 불능 상태가 되고 다른 한 장은 폭발했다. 에러는 다섯 개를 잡았다. 터진 보드의 수리가 끝난 후 다시 세 시간쯤 테스트 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이번에는 수리해도 안 될 지경으로 맛이 갔다. 표정이 굳은 채 보드 들고 바로 공장으로 간다. 지난 한 달 동안 멋진 불꽃놀이를 수도 없이 해 왔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김이 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는 기계를 적당히 만들어서 팔아먹을 수는 없고. 사람들이 서서히 지쳐간다. 입만 열었다 하면 이렇게 말했다; 이것만 통과하면 올 클리어 올 고다! 도로를 포장하는 과정인 셈인데 공사가 끝나면 천상의 고속도로를 달리며 선명한 푸른빛을 띤 하늘을 볼 수 있다. 나? 나야 늘 꿈동산에 사는 텔레토비니까 좌절할 시간이 없다. 희망, 꿈, 용기 등등의 갖잖은 허풍에는 생체 연료전지, 즉, 체력이 필수적인데, 다들 집에서 닭 한 마리 고아먹고 힘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누라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본다.

엔지니어들과 작당해서 다음 번 임베디드 컨트롤러에 몇몇 회로를 슬며시 넣어기로 했다. 내년 초에는 나도 손수 만든 PDA를 들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흐뭇하고 음흉한 미소를 띄워본다.

naver.com, yahoo.co.kr, 이 두 회사는 굳이 로봇 배제 규칙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웹 페이지를 긁어가 자기들 검색 페이지에 버젓이 내 블로그 페이지가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싸가지 없는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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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sync

잡기 2005. 3. 17. 02:19
집에서 조차 노트북과 데스크탑을 같이 사용하니까 여기 있던 파일이 저기 없고, 저기 있던 파일이 어디갔는지 모르겠고, 매번 일일이 날짜, 크기 비교하고 일일이 파일을 열어 확인하려니 답답하다. gypark.pe.kr에서 unison을 사용해 pc를 동기화 한다는 글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막상 하려니까 두 컴퓨터 모두 windows pc이다보니 셋업이 귀찮아 포기했다. 그러다가 영 안되겠기에 오늘 다시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설치해 보니 dirsync가 그럴듯 했다. 과자도 구하기 쉽고 딱 필요한 기능, 스케쥴링과 bidirectional sync 등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파일 이력 보관이 안되어 이쪽에서 지웠지만 저쪽에서 지우지 않은 파일은 다음 싱크할 때 저쪽의 지우지 않은 파일을 다시 이쪽으로 복사. 당분간 이걸 사용하고 더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뒤져 봐야겠다.

줘 봤자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지만 아내가 떠나기 전에 지도와 정보를 프린트해서 건네 주었다. '밍글라바'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나 싶었다. 놔떼 하고 모레 하지만 마넥부터 뾰하자면 일만 죽어라고 했다. 쩌노 같으면 마띠부해서 헤메지 말고 몇 마디 더 배워서 쩨쭈 띤 바떼 정도는 뾰하고 똥야짜리 터민쬬 싸, 밍굿떼 실컷 싸하고 하루 종일 닝 샤웃 똬봐 하겠지만 아내가 과연 그럴까? 아내는 자신이 꽤 여행을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글쎄? 여행 요령 정도가 몸에 붙었겠지.

간만에 orcad로 회로를 그려본다. 정말 오랫만이다. 몹시 버벅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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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뒷산으로.

잡기 2005. 3. 14. 01:26
저번 주와 같다. 담배를 한갑 반 피우고 이틀 연속으로 술을 마신 다음날이고, 아침에 머리 아프고 속이 쓰려 겔겔 거리다가 산에 갈 요량으로 향긋한 냉이국에 밥을 말아 후루륵 먹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한 시간쯤 더 잤다. 간다, 갈꺼다. 더 실험해 봐야 한다. 더 자면 안된다.

12시 좀 넘어 gps와 만보계 따위를 챙겨 출발. 근육이 뻣뻣하고 묵직하다. 비봉까지 쉬지 않고 걸었는데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불안하다. 무시하고 걸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 비봉 꼭대기에서 서 있다가 종잇장처럼 날려갈 것 같아 얼른 내려왔다. 눈이 녹았고 일요일임에도 의외로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발 끝으로 사뿐사뿐 걸었다. 발끝으로 걸으면 이동중심을 잡는데 편했다. 그 탓에 만보계를 허리에 차도 천 걸음을 걸으면 구백 걸음 정도 밖에 찍히지 않았다.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속이 메슥거려 시원하게 위장에 들은 것은 다 게워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사모바위까지 악다구니로 쉬지 않고 걸었다. 휘휘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옷깃을 세우고 컵라면을 먹고 배를 뜨뜻하게 한 다음 다시 출발했다.



문수봉 언저리에 다다랐다. 저번주에 여기서 꼭대기까지 네 차례나 가다 쉬기를 반복했다. 그때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로 내 몸이 망가졌단 말인가? 그럴리가...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상태가 이상해져서 별 것 아닌 일마저 사회, 국가 탓을 하게 됨은 물론, 수시로 짖어대는 옆집 천문대의 스패니얼 강아지마저 증오하게 되니까.

한숨 한 번 쉰 다음 이를 악다물고 기어 올라갔다. 쉬지 않고 한번에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배낭에서 아내가 싸준 약밥을 꺼내 걸으면서 우물우물 씹어 먹었다. 그리고 찰칵 스위치가 켜졌다. 뛰었다. 더 가도 괜찮지만 저번주처럼 평창동 쪽으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연시내 역에 내려 사우나에 들어가 각각 사우나실에 세 번, 냉탕에 세 번씩 몸을 담궜다. 냉탕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머리통에 계속 맞아 가벼운 두통이 생긴 것까지 저번주하고 똑 같았다.

저번주에는 산행에 다섯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세시간 반 걸렸고 저번주에는 알이 배어 이틀이 지나 알이 풀렸지만 이번에는 알이 배기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저번주에는 내리막길에서 다리가 반쯤 풀려 있었지만 이번 주에는 내리막길에서는 다리 근육에 부담을 주려고 일부러 걸음걸음을 가능한 천천히 떼었다. 저번주에는 죽을 둥 말둥 하면서 간신히 기어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술기운이 사라질 무렵부터 뛰어서 올라갔고 앞서가던 사람들이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길 옆으로 비켜주었다. 그래서 평균 속도 2.6km/h, 최대 시속 17km이라는 기록이 gps에 남았다. 만보계에는 19049걸음이 찍혔고 총 9.1km를 걸었으며 620kcal를 소모하고(만보계여, 웃기지 말아라. 그 이상이다) 1.8리터 분량의 수분을 체내에 흡수하고 300그램을 사우나에서 땀으로 빼냈다. 체중은 66.6kg, 지난 2년 동안 변하지 않은 그 체중으로 신속히 복귀했다.

이번 산행은 어디까지나 저번 주 산행의 당혹스러움, 말하자면 시골 소년의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이를 으드득 갈면서 하게 된 것이다. 그 정도로 몸이 나빠졌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주일 내내 그 생각에 잠 못 이뤘다. 체력이 그 모양이면 지금 내 상태는 거진 정신지체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이 있다면, 노화(둔화)가 시작 되었다는 것. 그런 씁쓸한 생각을 하며 으슥한 숲속으로 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눗는데,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자지 끝이 몹시 시렸다. 노화는 필연적이다.

어젯밤 같이 술 마시던 상유 아가씨 말에 따르면 내가 안띠구아에서 죽을 고생을 했던 화산 이름이 빠에야 라고 한다. 그 동안 이름도 모르는 화산을 증오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비바람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여서 분화구까지 내려가(물론 미친 짓이다) 벌건 용암과 쉭쉭 거리며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엄청난 수증기의 장벽 때문에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따뜻한 돌을 주워 손과 가슴에 품고 체온 저하를 막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가시거리는 2m 안쪽이었다. 본능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머리통이 데프콘3의 전략상황실로 탈바꿈해 있었다 -- 내게 생존 욕구는 본능 보다는 정보 처리에 더 가까왔다. 빠에야는 활화산이라서 최근에도 활화산다운 짓거리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아마존 정글 한 복판이나 그런 비바람이 몰아치는 화산에서 GPS, 노트북, 위성인터넷 따위의 첨단장비가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시골 소년의 '감'보다 못하고 쓸모 없는 것이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다.

공교롭게도 저번주에 혜관과 술 마시며 얘기하던 것과 비슷한 주제였다. 오늘 내가 입고 간 옷은 네팔리 양아치가 입고 다닐법한 네팔산 캐시미어 색동옷에 집에 나돌아다니는 작업용 목장갑을 끼고 체육복 바지 차림이었는데, 북한산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서(북한산은 전세계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산으로 기록되었다) 등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관계로 몹시 돋보이는 생뚱 맞는 패션이었다. 고작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입는 것 하나만큼은 가히 일품이었다. 쿨맥스 내의, 폴라 폴리스 옷감에 고어텍스 오버트라우저는 기본이었고(개중에는 고어텍스 XCR도 있을 것이다) 트랙스타나 블랙 약 따위의 신발을 신고 멋진 선글래스와 밀러 배낭을 매고 다녔다(다행히 카멜 팩은 안 보였다). 노스페이스, 코롱스포츠, 영원, 에델바이스, 온갖 '메이커'는 다 봤다. 그것도 모자라서 지팡이를 집던가 충격 흡수 티타늄 쌍지팡이까지 들고 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아가씨 말이 맞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이를테면 나는 오늘 그 화산에 돌아다닐 때 신고 다녔던 다 닳아빠진 신발을 신고 산에 갔다. 4년 전에 동대문에서 만원 주고 산 것이고 아직 해체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신고 다닌다. 30도의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 않은 암반을 발끝으로 밟으면 얼음판의 아이스하키 퍽처럼 스무드하게 미끄러질 뿐만 아니라 지하철 바닥에 물청소라도 하면 직직 미끄러지는 신발이라 온 신경이 곤두서고 그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았다. 빨판이 고어텍스 하이퍼그립이었다면 45도 암벽에서 허리 뻣뻣이 세우고 발끝으로 사뿐사뿐 건방지게 올라갔을 것이다.

이를테면 GPS, 쑨토 시계 따위 고가 장비는 멋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럴만한 댓가를 치룰 위험이 있을 수 있는 곳에서 보잘 것 없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 (난 피드백에 사용한다. 내겐 정보 처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경제 사정이 허락하면, 신발부터 제대로 된 것을 사고 싶다. 굳이 산에 오를 생각은 없지만 기압계가 달린 시계도 필요하다. 내가 이래뵈도 겁데가리가 없다는 축에 끼는 사람인데, 대자연 앞에서 괜히 겸손한 체 하지 않는다. 대자연의 엄청난 폭력에 기가 질려 공포에 떠는 편이다.그런데 정글 한 복판에서 위성 인터넷이라니, 북한산 트래킹 코스에서 최고급 장비 쓰는 것만큼 천박해 보이긴 하지만 비웃지 않는다. 장비의 가치를 아니까. 그렇다고 위대하신 자연이 준비 안 된 놈들만 유난히 조지는 것은 아니지. 대자연은 항상 정치적으로 올바르시니까.

산에서 옷 많이 껴 입을 필요없다. 무조건 방수,방풍만 되면 된다. 달리말해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어떤 등산객이 내 15만원짜리 오버트라우저를 흘낏 보더니 하는 말을 듣고 감동먹었다. "최고의 방수,방풍복이 뭔지 아나? 동네 수퍼나 애들 문구점에서 파는 커다란 김장용 비닐이야. 왔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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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로봇 전시회

잡기 2005. 3. 12. 16:45
아침에 일어나 그 동안 잊어버려 미루었던 PC-GPS 연결 케이블을 만들었다. 안 쓰는 카드를 자르고 저항 다리를 적당히 잘라 접점을 만들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케이블 중에서 쓸만한 것을 연결하고(스테레오 헤드폰잭 암/수) 글루건으로 적당히 고정했다. 노트북과 PC로 접속을 해보니 NMEA 시그널이 잘 나왔다. GPS를 워낙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위성을 추적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동안 GPS에서 백업받지 못하고 방치했던 waypoint data를 백업했다. GPS를 PDA에서 사용하기 위해(왠지 바보짓 같다) pathaway 프로그램을 다운 받았고 서울 시내 상세 지도도 구했다. PDA와 GPS를 연결하기만 하면 적어도 지도를 이용한 트래킹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서울 시내에서 뭣하러 지도 봐가며 돌아다녀야 하는지 사실상 쓸데없는 짓이었다. (핸드폰으로 건당 50원이면 위치추적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어쨌거나 웨이포인트 데이터베이스를 이리저리 구해서 다른 활용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로봇, FA 전시회 때문에 코엑스에 들렀다. 별로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들른 김에 윗층에서 하는 국 제 레저 스포츠 전시회인지에 들러서 몇 가지 물건을 샀다. 15000원 짜리 자가 발전등(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다는데 글쎄다..), 3천원 짜리 폴리머 아이스(?)라는 소재로 만든 냉각 스카프, 3천원 짜리 수영 타월. 월요일에 여행 가는 아내 주려고 샀다.

예전에 코엑스에서 무선랜이 '무료'로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노트북을 꺼내 시도해 보았다. 몇 군데 AP가 잡히긴 하지만 DHCP 서버를 운영하지 않아서 접속이 되어도 IP를 받아오지 못했다. 자리를 옮기니 된다. 무선랜도 되고 해서 엔트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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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잡기 2005. 3. 10. 22:54
아내가 비자를 만들어 왔다. 비자를 발급받고 나니 여권에 더 기록할 페이지가 없다. 2001년에 만든 여권이니 그동안 많이도 울궈 먹었다. 이번 미얀마 비자는 희안하게도 여권에 붙은 비자 스티커와는 별도로 석 장의 서류를 미리 작성하고 공항에 도착해 그 중 두 장을 제시해야 한다.

대마초의 법적인 허용이라... 글쎄다.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신해철, 전인권 등과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이를테면 노래를 업으로 삼는 행운을 누리지 못해 삽질이나 하는 팀원들이 평소 즐겨하던 그 재밌는 일은 안 하고 사무실 구석에 벌러덩 누워 대마초를 빨면서 세상은 좋은 것이야 하고 헬렐레 하는 모습을 쳐다보는 상상을 했다. 옛날 마약의 폐해를 경고하던 '공익'광고와 내 머리속에서 떠오른 영상이 그렇게나 똑 같았다. 왠 미친놈이 거리에 자빠져 눈이 뒤집힌 채 헤헤 거리고 있는 광고의 한 장면. 게시물을 읽다보니 어떤 친구가 이렇게 적어 놓았던 것 같다. '사강이 말하길,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왜 그것을 공권력으로 막으려 하는가?' 좋은 말이다. 하고 싶은 것 있으면 다 해봐라. 나중에는 쪽팔려서 못하니까. 그나저나 자식이 그런 말을 하면 안타까워 할 부모가 한둘 쯤은 있을 것 같다. 피워보면 알게 되겠지. 법적 제제가 풀려 마음껏 대마초를 피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이후가 몹시 궁금하다. 대마초를 좋아했고 기회만 주어지면 피워댔지만, 안 피울꺼다... 라고는 못하겠고... 법이 풀어줘도 거의 안 피울 것이다.

전인권은 대마초 빨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된다. 그림도 되고 글도 된다. 그런데 운전이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나 프로그래밍은 잘 안될 것 같다. 아참, 내 경우에는 대마초 피우니까 발기가 잘 안 되었다. 그저 세상이 웃기고 즐겁고 재밌었다. 그래서 생각컨대, 정서적 파탄의 시기에 대마초가 술, 담배, 맛있는 음식, 사랑의 손길, 심지어 친구의 진심어린 충고보다 백 배쯤 효과적일 꺼라고 나름대로 평가한다. 대마초를 피우는 내 모습을 바퀴벌레 쳐다보듯 하는 한국인을 향해서도 환하게 웃어줄 수 있다. 그렇게 좋다.

CVS를 갈아엎고 subversion을 쓸까 하다가도 벌써 수개월째 망설이기만 했다. 하필 툭하면 깨져서 인상이 매우 안 좋은 버클리DB를 사용할 줄이야... 좀 더 지켜보고. CVS 특히 *닉스 버전의 CVS는 여러가지 괴롭고 신경 쓰이는 문제들이 많았다. CVSNT를 사용하다가 보안 때문에 리눅스에 CVS를 설치해서 쓴 이후로 잡다하고 귀찮은 일꺼리들이 늘어났다. 학교의 네트웍에 서버가 물려있다보니 러시아, 필리핀, 우크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어떻게든 비비고 들어오려는 녀석들이 하루에 너댓명씩은 되었다. NT가 인트루더에 대해 특별히 로그를 남기는 것도 아니고 오디팅 기능이 미흡해서 그동안 NT 서버를 쓰면서 해킹 시도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NT를 없애고 서버군을 모두 리눅스로 갈아치웠다. 와우 대신 페도라를 설치하고 SE모드를 사용하고 ssh를 비표준 포트로 사용하니 아예 시도 자체가 블로킹 되어 갑자기 서버가 잠잠해졌다. 지금은 열악한 모뎀으로 매일 꾸준히 방문해 주셨던 필리핀 해커가 그리울 지경이다. 제작년에 17만원 주고 산 서버는 사망하셨다. 리눅스를 설치했던 그 서버는 자기가 맛이 가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주셨다. NT였다면 아무 말 없이 픽 죽어버렸을 상황이었다.

도서관에서 점심 먹고 잡지를 읽다 왔다. 올해 지금까지 읽은 책은 여섯권, 건질만한 책은 한 권도 없었고, 진도가 매우 느린데, 중간에 묵향을 19권까지 읽고 다큐멘터리를 30여편 가까이 보고 시리즈물도 꽤 많이 봤고(스타트랙, 커넥션, 리제네시스, 배틀스타 갤럭티카, 밀레니엄, 사이언스21, 바빌론5 따위), 7-80권씩 하는 만화책을 서넛 보고 매일 12시간씩 일하니까 책(단일 주제를 가진 단행본이 더 정확하겠지) 읽을 시간이 많이 줄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미디어물이나 시리즈물, 만화책 따위에 각각 책과 등가한 점수제를 도입해 책 읽은 갯수를 늘릴까 하다가 왠지 쩨쩨하고 야비해 보여서 관뒀다. 그동안 그것들은 카운트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 폄하한다기 보다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매년 미디어물에 대한 비중이 늘어났다. 특히 올해는 3개월 동안 영화와 미디어물을 합쳐 적어도 400시간 이상 보았고 하루에 2-300kb 분량의 텍스트를 본다. 이동 중에 간신히 책을 읽는 정도다. 일과 여가 활용이 그 모양이다보니 산에 올라가서 근육이 당겨 헉헉 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저번 산행은 생각할수록 당혹스러웠다. 세 시간 동안 쉬지않고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체력이 그렇게나 바닥이 났을 줄이야... 어쨌든, 그렇다고 그렇게 본 것들이 소화가 잘 될까? 대다수 영상물은 하향평준화 되다 보니 중언부언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놓는 탓에 밀도가 낮고 단위 시간당 흡수율이 떨어졌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일정 정도 이상의 품질을 찾기 힘들다. 이유야 뭐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인문사회학에 대한 강한 거부감 탓인데, 요즘은 서점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더라도 기술서, 실용서 따위만 보고 인문 서가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서점에서 한두권씩 읽은 책들은 읽은 책에 포함시킨 적이 없다. 올해 관심있게 본 책들은 건축, 환기 시스템, 항공, 위성통신, PIC, AVF, FPGA에 관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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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간접투자상품

잡기 2005. 3. 9. 17:20
동네 수퍼에서 담배를 판다. 팔 수 없는데 팔았다. 그래서 늘 수퍼를 나설 때 잔소리를 들었다. '나가실 때 담배 좀 주머니에 숨겨 주세요' 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잠깐 시간이 나서 PC에 달 적외선 리모컨 포트를 만들었다. 시리얼 포트의 DTR에 78L05를 달고 적외선 모듈에 +5V를 공급해 모듈에서 수신한 시그널을 RxD로 받는 간단한 것이다. IRAssistant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PC를 리모컨으로 제어할 수 있다. 해보니 잘 된다. 시간 나는 대로 슬슬 하나씩 만들어 가자.

작년에 제2금융권에 예금을 넣어둔 것이 있는데 복리 연이율이 5.27%였다. 예금 뿐만 아니라 아내 여행자금 대 주려고 적금도 들었는데 그건 6% 짜리였다. 비과세고, 은행 금리보다 나았는데 이율이 그렇다고 수 개월 전 술자리에서 말하니 김씨 아저씨는 그럴 리가 없다, 이것 저것 다 까고 나면 은행의 시중 금리보다 크게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정말이라니깐 하고 우기다가 나중에 이자 받을 때 두고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집 계약하면서 예금을 해약할 때 실제로 받은 이자는 원금의 2.6% 가량이었다. 내가 틀렸구나 싶어 인정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통장을 찢다가 살펴보니 예치 기간이 6개월이었다. 따라서 실제 이율은 연 5.27%가 맞았다. 이럴 수가. 닭대가리인 내가 또 옳았단 말인가? 며칠 전에 다시 김씨 아저씨와 술 먹다가 형이나 나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고 자존심 따위는 없는 것이 낫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는 자존심은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는데, 웃기지 말라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보잘 것 없는 주제에 자존심은 무슨 얼어죽을 자존심이 있냐고 말했더니 갖가지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 아내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self-centred라서 남 생각은 눈꼽 만큼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내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기 생각을 많이 했다. 건강에 안 좋다.

한미은행이 시티은행에 합병된 후 따뜻한 몬드리안 간판을 내리고 매우 구리게 생겨 밥맛 떨어지는 시퍼런 시티뱅크의 간판이 내걸렸다. 심지어는 그런 간판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행할 꺼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여튼 그동안 귀찮아서 안 가던 은행에 들렀는데, 점원이 잘못 안내해주는 바람에 이상한 사람한테 불려가(CE라는 직책은 뭐지?) 난데없이 투자상품 설명을 들었다. 자기는 일억 미만의 고객은 상대하지 않는데 어쩌다가 내가 자기한테 '배당'되었는지 어리둥절해서 새로 갈린 직원에 대한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 눈치였다. 그가 일억 미만의 고객은 상대하지 않게 된 것은,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작년에 주식으로 일억을 깔끔하게 날렸기 때문이지 싶다. 일억도 날리고 해서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지, 아니면 특별히 할 일이 없었는지 그는 두 시간을 넘게 설명했다. 나는 그저 어떤 것이 훨씬 자극적인 투자가 되는지 그가 내미는 카탈로그마다 쳐다보고 있었다. 남들처럼 유행을 쫓아 적립식 펀드나 가입하려고 은행에 왔는데, 그가 떠드는 걸 들어보면 참 대단한 정열이다. 다른 은행들처럼 그도 처음에는 '변액 유니버셜 보험'에 열을 올렸다. 변액 유니버셜 보험의 '변'자만 들어도 짜증이 나는 형편이라 2분쯤 들어주다가 가입할 생각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나저나 내가 죽었을 때 보험금이 나온다면 아내가 상실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의 조언대로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넣는 돈은 최소한으로 줄일 생각이다.

인터넷에서 매번 투자성형 테스트를 할 때마다 왜 '안정지향형'이 나오는지 평소 지니고 있던 의문을 말하자 그가 설명했다. 최소한 수억의 여유자금으로 5년 이상 꾸준히 투자하면서 원금 다 까먹고도 미소를 잃지 않아야 '공격형'이 된다는 것이다. 글쎄... 투자 개념이 없는 무지자라서가 아니고? 그렇게 고객을 폄하할 수는 없으니까 비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적으로 돈도 별로 없고 그럴 시간도 없고 더더군다나 돈 다 잃고도 미친놈처럼 웃고 있을 이유가 없는 나 같은 서민은 그러니까 애당초 공격형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름대로 내가 매우 공격적이고 하이 리턴을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이유없이 하이 리스크를 즐긴다는 것을 그 동안의 삶 동안 잘 알고 있었다. 설명을 더 들어봤자 재미도 없고, 일억을 날린 뒤 이상한데 정열을 보이는 아저씨의 권유를 멀리하고 흥미로워 보이는 100% 주식 투자 상품 둘에 올인했다. 그리고 외화 거래 통장을 비롯한 통장 셋을 받고 시계도 선물로 받았다. 이번 달 생활비만 빼고 통장에 있던 돈을 몽땅 쏟아 넣었다. 나름대로 공부도 했던(경제신문 2년 쳐다보기 뭐 그따위 것들) 주식만은 그 동안 할 수가 없었다. 본업도 아닌 것에, 자기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그래프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헬쓱한 얼굴로 쳐다보는 것은 영 흥취가 안 생겼다.

잊어버리고,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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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본 것들 정리

잡기 2005. 3. 6. 21:44
Enterprise title song (1:19) -- Star Trek Enteprise가 매우 저조한 '실적' 때문에 시즌 4를 끝으로 종영된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훨씬 재미없는 Stargate 시리즈는 끝을 모르고 지속되고 있다는 점.

세시간쯤 산길을 이리저리 걷다가 대남문에서 잠시 멈췄다. 엊그제 온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 눈이 살살 내린다. 아내가 싸준 주먹밥을 먹고 보온병의 물을 따라 컵라면을 먹었다. 오랫만에 근육을 썼더니 몸이 확실히 맛이 간 것을 느꼈다. 평창동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집 근처로 돌아와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고 아내를 불러내 냉면을 먹었다. 차가운 것을 먹으니 내장이 얼어붙어 덜덜 떨었다.

Regenesis. 간만에 보는 따끈따끈한 '첨단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흐음...


50 first dates. 하품.


콘스탄틴. 이게 뭐야? 안티 스모크 켐페인?


팜므 파탈. 역시 브라이언 드 팔머 답다.


팜므 파탈. 장면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팜므 파탈. 이 영화(또는 관음증)의 모든 것. 기적의 순간.


아 이건 뒷산(북한산)에서 찍은 집 모습


나를 지켜주었던 손난로, 작년에 지하철에서 산 5천원 짜리 피콕 짝퉁. 그래도 24시간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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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기 전

잡기 2005. 3. 5. 11:07
이 바닥에 은거고수가 많다는 것은 어림짐작하고 있었지만 나이 60먹은 노인네까지 강기를 뿜어낼 줄이야...

데모는 어영부영 끝났고 나는 새로운 컴파일러를 시작했다. 컴파일러만 벌써 네개째다. 지겨워 죽겠다.

내셔널 지오그래피 센츄리 컬렉션(100편 분량)을 몽땅 올려놓은 사람이 있다. 중간중간 몇 개 이가 빠졌을 뿐 총 용량이 60GB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이다. 40GB 하드 디스크를 미디어 스토리지로 쓰고 있어 본 것들은 재빨리 지워버리고 순환시키길 벌써 일년여 해오다 보니 수중에 남은 것이 없다. 60GB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올리는 천사같은 분도 있는데 그에 조응하지 않으면 큰 실례가 될 것 같아 어떻게 할 것인가 궁리 하다가 머리가 아파, 무작정 용산에 가서 98000원 주고 160GB 하드 디스크를 사버렸다. 삼성 스핀포인트 1614N, 8MB 버퍼 크기. 시게이트의 바라쿠다를 살까 하다가 버퍼 크기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 DVD-+RW + DVD 미디어라는 도식으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가격은 충분히 떨어졌고 메릿도 있다) 굽는데 드는 그 시간과 정성, 게다가 그 지저분한 CD를 보관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저 무작정 저장해 놓고 하드가 다 차면 10만원 주고 다른 하드 사버리는 것이 시간, 돈을 함께 절약하는 길이다. 자, 이제 열나게 다운 받는 일만 남았다.

60GB 짜리 기쁨을 아내와 함께 나누고 싶어 3500원 짜리 만보계를 사줬다. 아내는 날더러, '평생 다큐멘터리나 봐라!' 라고 말하며 홱 나가버렸다.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생각이다.

아내는 나하고 같이 안 가고 연정 아가씨와 둘이 미얀마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라고 대꾸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기쁜 표정을 지을 것 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내 감정은 얼굴에 쉽게 드러난단다. 얼굴에 '지화자 좋구나' 라고 씌어 있었다.

좋은 미디어 있으면 나눠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저번, 인터넷 무료로 사용하던 시절에는 업로드 스피드가 30KB 밖에 안 나와서 ftp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았더랬다. 집 컴퓨터야 24시간 켜져 있으니까 ftp 서비스를 운영하려고 해보니 얼마 전에 새로 산 공유기가 말썽을 부렸다. 이래저래 해도 안되길래 Reenet 서비스 센터에 이틀에 걸쳐 전화질을 했다. 그쪽 엔지니어는 끝끝내 공유기 잘못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며칠 테스트 해보고 연락 준단다. 정답은; NAT의 포트 포워딩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공유기의 펌웨어를 업데이트 해야 한다. 아무쪼록 갖은 꽁수로 온갖 고생 다 해 보시길. 나야 팔짱 끼고 가끔 전화나 넣어줘야지. ftp야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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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풍기 프로젝트

잡기 2005. 2. 25. 00:50
블로그 한 줄 남기자.

요즘 가지고 싶은 것: Casio PRG-70 V3, 옥션에서 17만원 가량에 판매. 터프 솔라를 사용해 배터리 교환 불필요, 전자 나침반, 고도계, 온도계? 그리고 기압계 따위가 내장되어 있다.

SMPS에서 발생하는 고주파 스위칭 잡음 때문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는데 옆에 있던 엔지니어들은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말했다. 대략 17Khz 정도 되는 것 같은데(예전에 작은 주파수 발생 장치를 만들어 내 몸을 바이오피드백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435Hz와 440Hz의 두 음을 구분하려고 노력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왜 그리도 중요했을까? 아마도 절대음감을 '학습'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던 것 같다) 다섯 명 중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이 나 뿐이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신경이 거슬리는 소리였는데 다들 내가 사기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주파 잡음과 함께 power는 다운되었다. 실험은 중단되었고 다섯 시간을 파워 문제로 허비했다.



에드워드 윌슨인 것 같은데? 본 지 오래되서 잊어버렸다. 사람 얼굴은 궁금하지도 않지만. PBS의 다큐멘터리, Evolution은 요점 정리가 잘된 썩 괜찮은 시리즈인데, 애들 위해서라도 한국에서 어느 방송국에선가 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남의 사생활이나 시시콜콜 들추고 주로 바보스러운 얘기를 늘어놓는 연예가 중계인지 하는 잡것들은 그만 좀 틀지. 다운 받은 7개의 divx 파일에는 별도로 창조론자의 코멘트가 적힌 파일들이 있었는데 내가 성질이 더러운 탓인지 두 개쯤 문서를 보다가 깨끗이 지웠다.



구채구(지우자이구). 여기 갔었다.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나온 것이 인터넷에 떠돌길래 다운받아 봤다. 티벳의 아홉 마을.



'동양의 알프스'라고 불리웠던 것 같다. 매우 아름답고 또 추웠던 곳으로 여기 가게 된 것은 유팽이란 아가씨가 중국에 가볼만한 곳은 여기 뿐이라고 추천해줘서 였다. 오가면서 꽤 고생했다. 동영상에 내가 죽치고 앉아 있던 마을들이 하나 하나 나타나는 것이 참 신기했다. 아 저긴 내가 발담그고 놀던 곳, 저긴 아줌마가 주는 해바라기 씨를 까먹던 곳, 저곳은 동네 양아치 녀석들과 껄떡대던 곳.. 뭐 그런...



구채구에 갔다가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져 어쩔 수 없이 구채구 안의 티벳 마을에 묵었다. 관광객들이 다 떠나고 난 후 그 춥고 썰렁한 곳에서 주인집 딸들이 부엌으로 초대해 함께 밥을 먹었다.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는 귀여운 아가씨들. 동영상을 보니 괜한 생각으로 사진을 안 찍은 것이 후회 되었다. 중국 여행이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꽤 그림이 그럴듯했던 영화. 빌리지.



공포영화라고 할 수는 없겠는데... 농촌 생활의 애환을 다룬 잔잔한 생활 드라마...

예전에 김씨 아저씨는 dBm이 무슨 뜻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SN비가 70dB이면 얼마만한 비율인지 얘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비슷한 것으로 Vrms도 있다. 설명하려면 식을 써야 하는데 그런 것도 몰라 물어보니 귀찮고 신경질이 나서 안 가르쳐 주고 그런게 있어 라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설명이 장황하고 지저분해지면 아예 성을 내면서 그런게 있어, 내 말이 옳으니까 그냥 믿어 라고 말하는 일이 최근 잦아진 것 같다. 이러다가 설명하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2주 전에는 교수님과 원생한테 그들이 처음 들어본다고 주장하는 허프만 코딩과 LZW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저 교수가 정말 수학을 전공한 전산학과 교수고 학생일까 몹시 어이 없었지만 꾹 참고 생글생글 웃으며 설명하던 기억이 났다. 학교에서 알고리즘도 좀 배웠으면 좋겠는데... 매년 한번씩은 재수없게 산학을 하게 되는데 그 귀찮고 짜증나는 일은 어느 업체에 있으나 꼭 나한테 맡겼다. 자기들 멋대로 무슨 무슨 연구원 따위로 불러대고... 난 그냥 벌레 같은 프로그래머란 말이야!

틈틈이 시간을 내서 부품과 공구를 구매했다. 전자부품 쇼핑몰 4개, 용산에 한 번 들렀다. 집에 변변한 부품도 없고 공구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커터, 손도끼, 망치, 스트리퍼, 플라이어, 렌치셋, 바이스, 직소, 드릴셋, 이 정도는 갖춰야 제대로 된 남자가 아닐까 싶긴 한데... 심지어 인두 마저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는 실정. 공구가 없다니, 이건 인생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아직 가장 중요한 mcu가 도착하지 않았고 온습도 센서는 샘플 오더라도 가격이 워낙 비싸(개당 2만원) 망설이는 중. 싱가폴에서 구매하려고 했더니 개당 4만원을 불렀다. 도둑!

i2c, can, 전력선 모뎀, rs-422 중 뭘 사용할까 궁리하다가 rs-422(또는 rs-485)로 마음을 굳혔다. 전력선 모뎀이 가장 훌륭한 방식이지만 돈 들고 부품 수도 많아서 귀찮다. 대부분 아날로그라 아무 계측기도 없는 상태에서 트러블슈팅하기도 힘들고... can 역시 칩 가격이 rs-422 line driver에 비싼 편이라 그냥 싸게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뭐 대단한 속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바보스럽게 무려 20개나 구입한 75176 정도로 반이중 통신을 만들고 프로토콜을 구현하고 멀티 마스터 멀티 슬레이브로 한다. 사실 이런 설계는 플렌테이션의 여러 시스템간 통신에서 자주 사용하는 구성 방법이었다. 사용해 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어떻게 사용하는 지도 잊어버렸다.

파워 구동은 릴레이, SSR, 옵토 아이솔레이터+트라이악를 사용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릴레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릴레이야 공장가면 공짜로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제로 크로스 스위칭을 할 수 있는 트라이악이 꽤 땡기긴 하는데.. 만일 단순히 라인 하나의 스위칭을 하려면 릴레이 밖에 사용할 수 없다. 릴레이에 b접점이 있으면 그걸로 3로 스위치를 구성할 수도 있고... 제로 크로스 스위칭을 하던 SSR을 사용하던 두 선이 모두 필요하니까 매립된 스위치에 있는 하나뿐인 선에는 부적합해 보였다. 각 노드는 마스터와 6선의 트위스티드 페어 랜 케이블으로 연결되어 그중 2선을 마스터로부터 전력을 얻는데 사용하고 2선을 통신라인으로 사용하고, 노드로부터 노드로 데이지 체인을 구성한다.

마스터는 USB로 PC와 연결되고 PC에는 원격 제어용 웹 서버를 설치하고, 마스터에 rs-422로 연결된 각 노드는 A/D 포트와 digital i/o가 몇 있는 16MIPS 짜리 AVR을 mcu로 사용하고(저렇게 고성능의 mcu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나중에 전력소모를 고려해 클럭 주파수를 낮추자) 전력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릴레이를 2-3개 달기로 했다. 부하는 250VAC, 5A 가량. 노드의 센서 인터페이싱에 관해서는 여러 모로 궁리해 봤는데, 일단 적외선 수신 모듈과 CDS을 달고 그리고 옵션으로 온도 모듈이나 온습도 모듈(비싸다..), PIR 센서를 달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머리통을 깨끗이 비우고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대략 20여만원에 해당하는 한 상자 분량의 부품과 공구를 구했다. 아직도 부족한 부품들이 있다.

십수년 전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계를 만들던 취미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지금 일이 바빠서 얼마나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빌빌 대면서도 술 마시던 바로 그 돈으로, 책 안 사고 아끼던 돈으로, 어디 놀러갈 엄두도 못 내고 집에 짱박혀 컴퓨터만 죽어라고 두들기던 그 손으로. 현재 목표는 마누라가 누워서 리모컨으로 건너방 전등을 켜고 끄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기능을 구현하는데 있다. 기술적으로도 전혀 흥미로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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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골쇄신

잡기 2005. 2. 18. 02:43
뼈를 부수면 가루만 날린다. 짜증나니까 그러지 말자.

오늘은 일도 안 되고 확 열 받아서 나갔다. 술 마시면서 '양아치스러운' 의경들을 비웃다가(비웃을만한 것이긴 한가?) 요즘 인기 있는 '공공의 적2'가 검사 똥구멍을 열심히 핥아대는 영화라는 얘기가 나왔다가(물론 내가 했다, 심지어 그걸 극장에서 봤다), 양동근이 주연한 영화 제목이 와일드카드(*)라고 말하고 그 유래까지 설명해 줬더니 적어도 세 명이 와일드카드가 아니라 와일드 키드(kid)라고 우겼다. 그중에 한 명은 바로 전에 평소 환청을 자주 듣는다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각자 핸드폰으로 영화 제목이 맞는지 확인했는데, 와일드 키드가 맞다고 하는 분위기였다. 언제나 꼼꼼해서 여러 사람 열 받게 만드는 말카 아저씨는 손수 몇 통의 전화를 걸여 판도를 뒤집었다. '와일드카드'가 맞다는 것이다. 정치적 협상 끝에 우리는 그 영화가 '양동근이 최초로 벗은 영화인 와일드 오키드'라고 합의했다. 언제나 사람을 열받게 만들고 분위기를 잡치는 말카 형은 '와일드카드'라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애꿎게 나와 선후배 사이에서 쌍욕이 자유롭게 오가는 바람에 적응이 무진장 쉽다고 여기는 가엾은 후배 놈은 분위기에 편승해 선배인 황가를 씹었는데, 당근, 황가는 호응이 없었다. 나도 호응이 없었다. 아무도 호응이 없었다. 보드라운 선배를 계란말이처럼 칼질해 먹으려면 내공이 되야 하는데 나처럼 애당초 마기를 솔솔 풍겨 '쟤는 글렀어' 분위기가 나지 않으면, 언제나 실력만을 숭상한다는 마교에서조차 그건 안되는 거다.

그러다가 '점잖은' 술자리로 워프하니, 혜관과 함께 (망할) 인간성의 장래에 관해 얘기했다. 요점 정리를 잘 했는데, 혜관은 인간성의 미래에 관해 나처럼 '가설'을 풀지 않았다. 가설을 푸는 대신 책 세 권을 소개해 주기로 했다. 그게 참 희안한데 대개의 사람들은 내 세계관이 절망적이고 비관적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관점을 소개시켜 주려고 하는데, 엄밀하게 따지면, 달성될 수 없는 생물학적이고 교조적이고 인문적인(이 셋은 표현의 수위를 떠나 거의 동격이다) 개소리의 끊임없는 나열로부터 별다른 즐거움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다.

남 얘기 같지만 이게 다 내 얘기다.
오늘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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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不福, 福分

잡기 2005. 2. 17. 00:36
누구나 분수에 맞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 같다.

연초, 결혼기념일, 아내 생일이 연달았다. 몹시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상태가 high다. 저번주에 술 먹다가 완전 맛이 갔다. 술 먹다가 송씨 아줌마 더러 왜 살아있는가?를 주책없이 물어보니 수년 전과 다름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이 살아있는 상태가 얼마나 괴상망칙하고 스릴 넘치는지 그는 끝내 모르고 죽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일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일을 하고, 또 하고, 또 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열나게 할 것이다.

지금 빡세게 하고 있는 메인 잡과,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는데, 욕실에 환풍기를 다는 것이다. 계획을 세워보니 욕실에 환풍기 다는데 대략 2개월쯤 걸릴 것 같다. 꼭 해야 하지만 귀찮고 걸리적거리는 돈벌이들(일) 때문에 시간을 더 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 동안 손과 머리가 녹슬어서 제대로 돌아가 줄 지가 의문이다. 그리고 욕실에 환풍기를 단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차니까 기쁘고 흥분되어서 약간 맛이 간 상태인 것 같다. 별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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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인테리어

잡기 2005. 2. 6. 22:57
이사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 거실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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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서쪽. 별들이 반짝인다.



방 북서쪽. 역시 별들이...



방 천정. 천정이 뻥 뚫린 낭만적인 방은 아니고... 천원샵에서 야광 별 스티커를 구입했다. 천정을 은하수로 장식했는데 그럴싸 했다. 인테리어 비용으로 4천원 들었다.



방 북서쪽. 사진의 밝기를 올리니 벽면이 희미하게 보인다.



방 천정. 형광등도 보였다. 언젠가 방 천정을 저렇게 장식하고 싶었다. 사진으로는 알 수 없지만 3차원에 색색이 별들이 깜빡이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것이 환상적이다. 자빠져서 별을 보며 잠들기라는 소원을 풀었다. 그런데 옆집이 천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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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 이사

잡기 2005. 2. 6. 17:20
아내가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통해 이삿짐 센터와 연락. 이전에 집을 한 번 방문하여 이삿짐의 규모와 이사 방법 따위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사다리차 2회 사용 각각 5만원씩 10만원, 4인 포장이사 용역 비용 30만원 합쳐서 40만원. 이틀 후 계약하고 계약금 5만원을 입금. 고작 50m를 이동하는데 40만원이라는 돈이 나가니 속이 쓰렸지만 2층에서 짐을 내리고 짐을 50m 이동한 후 4층으로 짐을 올리려니 아는 사람들 불러다가 이사하는 것이 더 고생스러울 것 같다. 책 옮기는 건 정말 끔찍하니까. 포장이사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5만원 더 주면 포장이사라길래 고생 좀 덜하기로 했다.

2/2 이사.

8am - 용역회사에서 도착. 짐 포장 시작.
8.30am - 짐 싸는걸 구경하며 멀뚱멀뚱 서 있다가 방해만 될 것 같아 이사가려는 집으로 갔다. 그쪽은 새벽 6시부터 이사를 시작했다는데 10시 이전에 이사가 끝날 것 같단다. 열쇠를 받았다. 이사 끝나면 문을 건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러겠단다. 전 집에서 계약금을 받고 은행에서 찾아둔 돈을 들고 아침 식사 중인 주인집 교수님과 3명이 계약서 작성. 부동산 가게를 통하지 않았으니 이사 비용이 복비라고 쳤다.
9am - 집에 들러 아저씨들한테 짐 다 꾸리면 바로 이동하라고 지시하고 도서관으로 갔다. 컴퓨터실 좌석 예약. 법무부인지 홈페이지에서 등기부등본 열람하려 했지만 액티브x 다운에서 자꾸 에러가 나서 실패. 가스회사 직원이 이사가려는 집의 가스비 납입 확인 전화. 한참 도서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영수증 더미를 뒤졌다. 확인. 여기저기 전화가 걸려와 더 이상 인터넷 할 형편이 안된다. 예약한 한 시간 동안 한 것이 거의 없다. 나왔다.
9.30am - 동사무소에 들러 전입신고 하고 확정일자를 받았다.
10am - 열쇠 복사. 앞 사람이 열쇠를 8개나 복사하느라 시간 무척 걸렸다.
10.20am - 은행에서 포장이사 비용과 미납 공과금을 지불하기 위해 ATM으로 돈을 뽑았다.
10.30am - 이삿짐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이사가려는 집이 어디인지 모르겠단다. 지도도 안 가져왔나? 서둘러 이사 가려는 집으로 음료수를 사들고 돌아갔다. 문을 열어 주고, 아줌마는 청소를 시작. 이삿짐 센터에서는 네 사람이 온다고 했는데 세 사람만 왔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살던 집이라 짐이 빠져 나간 집안은 흉가를 방불케 했다. 고생길이 활짝 열렸다. 거미줄 걷어내고 서너번 쓸어도 먼지가 쌓인다. 짐 올라오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하는데... 장난이 아니군.
11am - 사다리차의 짐칸이 무수한 전선에 자꾸 걸린다. 생쑈를 하며 전선들을 치우고 짐칸을 올렸다.
11.30am - 짐을 올리기 시작. 방별 가구 배치도를 3장 그려 소장님에게 드렸지만 쳐다 보지 않고 짐들을 안방에 몰아넣는다. 다시 옮겼다. 책 지고 다니는 아저씨가 몹시 불쌍했다.
12pm - 세탁기가 화장실로 안 들어간다. 문짝을 뜯었다. 화장실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12.20pm - 주방에 설치할 행거가 안 맞는다. 철사를 끊었다. 전자용 도구밖에 없어 작은 공구로 2mm 철사를 끊으니 손아귀가 쑤신다.
1pm - 얼마 되지도 않는 책이지만 그것도 정리하려니 머리가 아프다.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 주인 아줌마와 세금 계산을 했다. 전기세, 수돗세 합쳐서 10만 5천원? 대단하군. 이삿짐 센터에서 방을 깔끔하게 청소해 놓아 좋다. 이래서 다들 포장 이사를 하는 것이군.
1.20pm - 아저씨들이 포장 박스를 정리 중. 있어봤자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고 미적미적대서 대충 정리하라고 하고 계산해 주었다. 책 정리 하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지쳐서 책장에 되는 대로 꽂았다.
2pm - 청소. 먼지가 앉을테니 두어 번 더 청소해야 할 듯. 몇몇 짐들은 창고로 몰아넣고 복도를 쓸고 옥상에 올라가 케이블 경로를 추적. 컴퓨터를 물리고 가지고 있던 케이블 모뎀을 달아 혹시나 인터넷이 될까 요행을 바랐지만 되지 않았다. 케이블 TV 라인을 옥상에서 집으로 옮겨 TV와 연결. TV는 된다.
3pm - 인터넷 선전 찌라시를 찾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두루넷 25000원, 설치비 무료, 3개월 무료, 5만원 상당의 상품권 증정 따위. 전화하니 이래저래 귀찮은 얘기를 늘어놓는다. 드림시티 방송에 전화해 인터넷과 케이블 방송을 33000원에 설치 하기로 했다. 요행 바라지 말고 준법하자. 배가 고파서(아니 창자가 달라붙어서) 짬뽕을 시키려고 중국집에 전화했더니 중국집 배달원에 이사온 집에는 4층이 있을리가 없다고 우겼다. 설마 배달로 잔뼈가 굵은 동네 중국집이 잘못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을까. 거기 옥탑 아니요? 라고 하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그렇다고 했다. 배달원 짬뽕을 내려 놓으며 머리를 긁다. 4층이 있는지 몰랐네요. 동네를 주름잡는 배달원이 틀릴 수도 있구나.
4pm - 케이블 방송에서 전화. 뜬금없이 주민등록등본을 떼란다. 케이블 방송과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전 주인으로 이행받았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나. 아가씨의 갈팡질팡을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우겨서 안 떼기로 했다. 화장실 청소 시작.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온다는 가스공사 아저씨가 안와 독촉. 가스 이전 비용으로 19000원 줬다.
5pm - 아내에게 구원 요청. 아침부터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니 다리가 솜뭉치처럼 무겁다. 짐을 이 방 저 방으로 옮겼다.
7pm - 아내 도착. 주방의 냉장고와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다시 배치.
9pm - 나가서 소주 한 잔 하고 고기를 먹었다. 지친다.
10pm -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2/3 이사 계속

9am - 아침 먹고 오후 나절 까지 짐 정리. 안 쓰던 근육에 알이 배겼다.
10am - 책장 다시 정리 시작. 전 집 주인이 남겨놓고 간 신발장은 그들이 8만원에 구입했는데 2만원에 팔테니 사라고 한다. 뜯어가라고 했다.
12pm - 인터넷 라인 설치 때문에 전화를 몇 번 했다. 기사는 어디 간걸까. 12시쯤 도착. 평균 업로드 속도는 100kb/sec 가량. 업로드 속도가 무료로 사용하던 이전보다 3배 빨라졌다. 이젠 컴플레인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 준법이 좋구나.
3pm - 장 보러 나갔다. 이것 저것 사들고 오는데, 전에 살던 집에서 공과금 계산이 틀렸단다. 들러보니 가스료와 전기세가 정산되지 않았다. 가스 검침 확인하고 전력량도 기록해 두었다.
5pm - 못을 뽑거나 박았다. 창틀이 빗물에 완전히 썩어 있어 초벌 니스칠을 하고 시커멓게 닳은 도배지를 일부 새로 발랐다. 주방에 비닐 장판을 붙였다.
8pm - 저녁 먹고 어질어질. 한밤중에 못질 하려니 벽처럼 가슴이 쿵쾅거린다. 창에 블라인드를 설치.
11pm - 시체처럼 잠들었다. 아내도 마찬가지. 거지 같은 집에 이사 와서 미안.

2/4

9am - 깨자마자 니스칠을 재벌했다. 적어도 3,4번은 칠해야 할 것 같다. 덕택에 두통이 생겼다.
11am - 공장으로 갔다. 가는 도중 내내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공장에서 이것 저것 안 쓰는 부품 쪼가리를 주워 모아 환풍기 비슷한 것을 조립했다. 기계가 맛이 가서 테스트를 진행하지 못했다. 스펙 중 잘못된 부분 때문에 골치를 썩였다. 파워 문제 때문에 한 달은 고생할 것 같다. 팀원들 분위기가 매우 어둡다. 사기 진작을 위해 구정 연휴를 포함해 일주일 동안, 그간 고생 죽어라고 한 팀원들 쉬게 해 달라고 사장님께 부탁드렸지만 씨알이 먹힐까? 1년 넘게 개발만 하다보면 정신이상자가 될 수도 있는데... 나야 원래 생활이 그 모양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11pm -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귀환. 배 고파서 라면 끓여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잤다.

2/5

10am - 아침부터 창을 뜯어내 각질을 벗겨내고 창고에 쭈그리고 앉아 니스칠을 3번 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이 집을 거쳐간 세입자 양반들은 전혀 집을 메인티넌스 하지 않은 것 같다.
6pm - 송대관, 태진아 콘서트를 보러 갔다. 나이 들고 얌전한 청중 틈에서 태진아 노래를 줄창 1시간 30분 들었는데 송대관의 저음에는 별 관심없고 태진아의 그 목소리, 개울가에 자갈과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가 트로트에만 쓰이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통닭 한 마리 사들고 맥주와 함께 먹었다. 어쨌든 이사가 끝난 것 같다. 이사만 열댓번을 해 봤지만 이번처럼 피곤한 적은 없었다. 나이 먹은 탓일까. 그보다는 최근 여러가지 일(프로젝트 3개를 동시 진행)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평소에도 피곤해서 힘든 것 같다. 며칠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는 별다른 하자 내용은 없었다. B급 건강검진 결과 B급 건강 상태였다. 그런데 제정신인지는 왜 테스트 하지 않는거야.

2004.12.17 검사

* 체위검사: 신장 174cm, 체중 67kg, 비만도 정상체중, 혈압 108/71 mmHg (정상A: 139이하/89이하, 정상B: 140-159/90-94)
* 요검사: 요당 음성, 요단백 음성, 요잠혈 음성, 요 pH 5.5pH (정상A: 5.5-7.5, 정상B: 5.0-5.4, 7.6-8.0)
* 혈액검사
** 혈색소 15.3 g/dL (정상A: 13-16.5, 정상B: 12-12.9, 16.6-17.5)
** 혈당 82mg/dL (정상A: 70-110, 정상B: 111-120)
** 총콜레스테롤 235mg/dL (정상A: 230이하, 정상B: 231-260)
** AST(SGOT) 24 U/L (정상A: 40이하, 정상B: 41-50) <-- 간 이외의 효소. Aspartate amino transferase / Serum Glutamic-Oxalocetic Transaminase. U/L = unit per Litter
** ALT(SGPT) 39 U/L (정상A: 35이하, 정상B: 36-45) <--간의 효소. Alanine amino transferase / Serum Glutamic Pyruvic Transaminase
** γ-GTP 66 U/L (정상A: 11-63, 정상B: 64-77) <-- 술 마시면 올라감.

판정: 정상B: 콜레스테롤 관리. 건강에 이상이 없으나 식생활 습관, 환경개선 등 자기 관리 및 예방조치가 필요. <-- 혈당치를 좀 더 높이는 것이 바람직 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내 경우 극히 정상이다.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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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연금술

잡기 2005. 1. 30. 16:20


* CVS 서버는 NT 것이 linux에 디폴트로 깔리는 것보다 낫다.
* oodefrag는 스케줄을 걸어놔 새벽에 디스크를 정리한다.
* dhcp4nt는 bootp를 지원하기 위한 것.
* cygwin을 설치해 sshd와 nfs server군(portmap, mountd, nfsd)를 운영.
* ghost는 windows xp가 설치된 c 드라이브 파티션을 정기적으로 백업.
* dyndns는 dynamic dns 때문. 정기적으로 집 컴퓨터의 ip를 갱신.

그것외에 설치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어 타스크 매니저만 보면 트로잔이 작동하고 있는지 즉각 알 수 있지만 아스탈라비스타에서 과자를 검색해 다운 받다가 직격탄을 맞았다. 순식간에 34개의 트로잔으로 융단폭격을 당해 어... 어... 하다가 제대로 넋이 나갔다. 요즘 트로잔은 svchost.exe나 winlogon.exe처럼 시스템 프로세스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여 컴퓨터에 기생하기 때문에 찾아낼 때 헤멨다.

어제는 라면 끓여먹느라 깜빡 하고 연금술에 관한 얘기를 미처 다 하지 못했다. 에머랄드 타블렛을 읽어보면 2항 이후부터는 세계를 형성하고 통합하는 중요한 하나의 원리, 내지는 (암시적인 지칭인)'철학자의 돌'이 지닌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현대물리의 입자론으로 해석을 하건 뱀파이어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찾아 헤메는 예수의 피로 보건 1항의 전제, 가감하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애매한 말 때문에 완전히 미친 소리로 들리는 타블렛을 이해하기가 여간 수상쩍은 것이 아니다.

사상누각에 불과한 '철학자의 돌'을 찾아헤메는데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연금술'은 네 가지다. 음식 만들기, 프로그래밍, 글짓기, 그리고 연애. 넷의 공통점은 주어진 본질을 변성시켜 새로운 차원을 더하는 구태의연하지만 창조적인 행위이며 무한한 바리에이션이 가능한데 재료의 하찮은 본성을 넘어서는 변성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적은 말 그대로 빛나는 태양이 그 막대한 에너지로 가벼운 입자를 결합시켜 무수한 중입자를 만들고 우주에 상수를 부여하고 시간과 공간을 형성시킨 것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역 구내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던 멀쩡한 사람이(술도 안 마셨는데) '니가 그렇게 잘났냐'며 핏대를 올리고 으르렁거리며 시비를 거는 해괴한 사건을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당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럼 나는 놀란 개구리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풀에 나가 떨어질 때까지 상대를 쳐다본다. 지각있는 시민을 미쳐 날뛰게 만드는 카탈리스트로 작용하는 이것도 일종의... 기적의 연금술 아닐까 싶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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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랄드 타블렛

잡기 2005. 1. 30. 02:37
'주인을 기다리는 하얀 개는 정신이 맑고 배고픈 내면을 지니고 있으나 좌절하지 않는다.' 연초에 본, 앞 뒤 사정없이 지껄이는 사주가 꽤 괴상했다. 어느 날 카트에 실려나오는 딤섬들처럼 다양한 감정 중에서 우울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내 지랄병은 우울증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좌절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으로 생겨난 불치병 같은 것이다. 울화병은 매우 길고 복잡한 자기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단 것들을 먹어 혈당치를 증가시키면 이 불쌍한 머리통이 조금쯤 더 기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내에게 연애 전력을 설명했지만 그가 이해할 꺼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첫눈에 반했다. 늘 그랬다. 첫눈에 그 여자와 내가 잘 될지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각자만의 노선을 걷게 될 것인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오늘이 되건 수 년이 흐르건 우리가 다시 만나면 관계가 맺어질 것이란 점, 그들의 눈 뒷편으로 요동치는 감정이 보이기도 했다. 여자애들의 눈 뒷편에서는 참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백이면 백, 아주 백치같은 여자가 아니면(그런 여자들이 있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은 세상이다보니) 일종의 웨이팅 시스템이 작동했다. 결혼한 다음부터는 여자애들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짐승같은 감각 때문에 항상 사귀던 여자애를 울렸다. 특이하고 경멸스러운 '재능'이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그들의 지성과 나이를 먹어가면서 습득하는 자가통제의 마력을 십분 고려해도 쉽게 상처받고 망가지기 일쑤인 가엾은, 대상화되기에 부족한 동물이었다. 여자애들은 그들이 지닌 짐승같은 감각으로 내가 관계나 언어에 의해 상처받거나 그들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종류의 짐승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신시켰다. 마찬가지로 경멸스러운 재능이었다. 아직도 비행기가 베르누이의 정리 때문에 양력을 얻어 둥둥 떠다닌다고 학교에서 애들 상대로 사기 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과학은 여성의 대뇌에 주름이 좀 덜 잡혔다는 얘기를 싹 빼버리거나 지능에 관해서 만큼은 사기를 치는 것 같다.

1995년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만들 때, 그때 만든 첫 페이지가 육자진언에머랄드 타블렛이었다. 올해 처음 읽은 책은 코엘료의 연금술사다. '자아의 신화'를 쫓아가는 양치기에 관한 얘기다. 그는 그것을 연금술, 자아의 신화 등등으로 불렀는데, 동양에서는 도닦기라고 한다. 결말부가 어영부영 넘어가 심심했다. 개나 소나 떠들어대는 전 단계 말고, 코엘료는 그 다음 수순으로 벌어지는 아주 심각하고 전형적인 사건들, 이를테면 마음 속에 보석을 가지게 된 남자가 그것 때문에 울화병이 생겨 황폐한 삶을 살아가거나 보석이 지껄이는 무의미한 소음에 완전히 미쳐버려 직장 생활을 하게 되는 얘기는 안 했다. 사내의 지지부진한 삶은 색채가 결여되어 소설가가 흥미를 잃었거나, 심하게 비아냥거리자면 소설가가 그런 삶에 관해 모르고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소위 문학에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려웠다. 신랄하게 말해서 인간의 살 냄새와 사랑의 이름으로 적당히 후려치고 안주한 실패한 병신들의 자기만족에 겨운 계몽적 자전 같으니까. 이 먼지처럼 하찮고 보잘 것 없은 인간의 삶을 그나마 보람차게 만들어 주는 단 한 가지 그럴듯한 가능성은 진화다.

내 마음 속의 보석은 '네 몸은 더 이상 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옛날에 말한 적이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그 비웃음을 끈질기게 무시하고 깡으로 술을 마셨는데, 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다. 어째서 내 몸을 변화시키려는 것일까. 21세기에 적응하기 위해? 울화병은 더 심해졌다. 어젯밤에는 얼마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아침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사우나 갔다가... 거의 쓰러질 뻔 했다. 패배를 인정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작년 여름에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작은 양은 냄비를 샀다. 브로콜리를 데칠 때도 쓸모가 있었다. 시금치를 삶기 위해 그것보다 큰 양은 냄비를 찌는듯한 여름에 하나 더 샀다. 겨울은 무와 시금치의 계절이다. 요즘의 무가 참 맛있다.


잘 익은 김치와 찬밥이 남아 있다. 수타면. 쫄깃쫄깃한 면발은 대적할 상대가 없을 듯. 당근은 괜히 넣은 것 같다.



계란은 뜨거운 국물에 살짝 익혀, 노른자를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한 입에 꿀꺽.

남은 김치를 투입해 국물을 빨갛게 만들어 찬밥을 말아먹으니 시원하다. 도통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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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보기


x님의 인생총운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달밤에 문 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하얀 개의 형국으로, 그 마음은 항상 고독한 가운데 어떤 상념에 사로잡혀서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한 번 빠지면 온몸을 불태우는 정열을 보이다가도 이내 권태를 느끼고 돌아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생을 통해 높은 이상을 향한 꿈은 자신을 매우 분주하게 만들지만 그 가운데 재물과 명예 가 따릅니다.
당신은 바쁘면 바쁠수록 정신이 더 맑아지고 영감 또한 정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친구나 친척 등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없는 강한 자존심 때문에 고독하나,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는 어떠한 장애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나가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면은 아무리 배고프고 궁해도 그 약점을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완강한 고집과 허세, 질투, 진실성 결여 등 여러 가지의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이러한 단점을 잘 판단하여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 성공을 맞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당신은 금전의 출입이 빈번하고, 남의 일로 인해 분주하고 손재를 보는 일도 많으며,또 어떤 일이건 일단 착수하면 적극적으로 골몰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력은 강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일의 착수도 잘하지만 체념도 빠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은 항상 마음이 텅 비어 있는 것과 같은 허무를 느끼기도 하고, 감정도 매우 풍부하여 급한 성질에 반하여 남다른 뜨거운 인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정은 겉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워 차갑고 냉정한 면으로 나타나며 집념도 강하지만 체념도 또한 빠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 일에는 어디까지나 끝까지 우겨대는 성격이며 명랑과 우울이 교차되고, 순간적으로 마음이 우울해져 여러 가지로 상념에 잠겨 무슨 일에든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어 남에게 가끔 오해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일보다 남의 일에 걱정이 많고,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공연히 바쁜 사람 입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쳐 자만한 마음을 가질 때 그 공덕이 일시에 무너져 내심으로 후회하기도 합니다.

부모육친 운은 별로이며, 형제 운은 이복형제가 없으면 대부분 독신격으로 매우 고독합니다.
부부 애정 운은 만혼이 길하고, 가정생활은 밖에서와는 달리 냉랭한 편으로 중년에 한때 독수공방의 세월이 있습니다.
직업은 정치, 언론, 수사관, 인력관리, 예술 계통이나 의학 방면 등 특수한 기술방면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습니다.
배우자로는 남성은 갑인, 을묘, 무오 생의 여성이 대길하고 계축, 병진, 정사 생의 여성은 불길하며, 여성의 경우는 병오, 계묘, 임인 생의 남성이 대길하고, 정미, 을사, 갑진 생의 남성은 불길합니다.
건강은 만성 대장염, 췌장, 폐렴, 천식, 간염, 순환기 계통이나, 뇌일혈 등의 질환을 주의해야 하며, 수명은 18세, 20세, 40세, 49세, 59세, 65세 때를 주의하면 남녀 모두 77세 이상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 명입니다.

- 성격
당신은 마음속 깊숙이에 쉽게 알기 어려운 불가해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집념, 즉 일에 대한 집착도 매우 강한 반면 체념 또한 빠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연륜이 더해감에 따라 생과 사의 비밀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변해 개방보다 실속을, 폭로보다 은폐를, 웅변보다 침묵을 중시하는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게 합니다. 겉으로는 양적이면서도 마음속은 음적인 인생관을 형성하게 되며, 따라서 한 번 마음에 들면 인정에 매우 약하지만 일단 눈밖에 나면 언제가지나 독을 품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독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원망의 화살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잘 내보이지 않고 비밀로 간직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당신은 대체로 웃음을 잃은 듯 엄숙하며 남에게 겉치레를 않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상한 매력이 있으며, 이것은 오행상 음기의 힘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즉, 그늘진 음의 매력은 밝은 양의 매력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음적인 클레오파트라의 미가 양적인 영웅 시저를 매혹시켜 세기의 역사를 좌우했던 것이 바로 이 역리현상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수호신은 지옥의 왕 '명왕성'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표면보다 이면에 미치는 예민한 투시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음성적인 매력과 수호신인 명왕성으로부터 부여 받은 명민한 통찰력이 서로 합해짐으로써, 냉철하게 세상을 관찰하는 신중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깊이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겉으론 그 마음을 노출시키지 않습니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10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는 성품이면서도 혼자서 친구나 선배를 찾아 다니거나 사교계에 출입하는 일 따위에는 소심한 편이지만 한편으론 누가 찾아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정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화급한 성격에 도사리고 있는 당신의 지나친 자존심이 거부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대체로 체력이 충실한 편이지만 그보다는 지모와 계략으로써, 즉 두뇌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모사의 특성이 있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시기의 태양은 입동의 계절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모든 준비와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 보수적인 정신과 완벽한 처세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운명상으로 볼 때 당신은 모사와 계략에 철저한, 비밀 속에 숨겨진 지모의 소유자라고 하겠습니다.


- 직업운
당신의 인생은 한마디로 '의문에의 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조사나 탐구면에 특수한 재능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평소에 침묵을 지키는 생활 속에서도, 타인의 동향을 비롯하여 생과 사의 중간에 잠재하는 신비로운 것이나 불가해한 것을 조사, 탐색하는 데 뛰어난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부여 받은 강한 호기심은 보통 사람들의 호기심과는 다르며, 특히 사회의 동정을 조사하는 것과 같은 일에 탁월한데, 이것은 경솔한 언동을 삼가는 자제력과 위대한 집중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무릇 당신은 한 가지 직업에만 전념하기 힘든 성격으로 조용한 가운데 혁신을 꿈꾸며, 새로운 세계로 도전하기 위해 늘 마음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조급성에 비해 일의 결단은 몹시 우유부단하여 타인에게 행운의 기선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아울러 유달리 자존심이 강하여 남에게 간섭 받거나 지배 받기 어려운 성격으로 비록 실패와 함정에 빠져 고통 당하고 있을지라도 자존심이라는 장애에 걸려 일어서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디를 가든 자신의 능력에 비해 그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자존심 속에 숨어 있는 고집 때문에 남의 밑에 엎드려 생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당신은 자존심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하여 인간관계, 즉 사교성을 넓힘으로써 대성할 수 있는 비약적 운명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이와 같은 성격의 장. 단점을 살펴 직업 또한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당신에게 적합한 직업은 세심한 연구. 조사에 재능이 있으므로 의료계통 특히 신경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의사에 적합하고 그밖에 과학자, 천문학자, 고급수사관, 각종 기획 담당자, 등이 어울리는 직업입니다. 반면 부적합한 직업은 아나운서, 성악가, 외교관, 외무사원, 운수업, 사무경리, 기계기술자, 건설업자, 공장 경영 등의 직업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 금전운
비유를 예로 들면, 성경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온유한 사람'이란 당신과 같은 태생을 말하며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지위와 재산을 상속 받는 횡재 운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10년 거지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라는 속담과 같이 묘한 행운적 복록을 타고 났습니다. 즉 당신의 금전운은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사람에게 유순한 마음으로 다년간 봉사하는 데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모시고 있는 사람의 은퇴나 전임 혹은 사망 등에 의하여 행운을 계승하게 되는 복록을 타고났습니다. 옛말에 "산이 커야 그늘도 크다"는 말이 있듯이 '인장지덕'이라는 장자의 말을 항시 염두에 두고 처신한다면 대성의 문은 열립니다.

당신에게 있어 20대의 행운과 30대의 일시적 함정은 중. 말년에 있을 안전한 복록으로 통하는 하나의 관문이며 기초공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내면적인 조급함을 외면적인 온유의 덕으로 승화시켜 적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상을 저버리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기만 하면 큰 복이 있겠습니다.

당신에게 사업이나 금전에 행운이 깃드는 나이는 28세, 31세, 39세, 41세, 46세, 55세 이며, 불운의 변동 시기는 35세, 37세, 40세, 49세, 52세로 이때는 주의를 요합니다.

x님의 금년의 운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띠

식구 중에 근심이 발생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구설이 따르고 언쟁이 발생하므로 항상 주의하라.

1월 : 1월 집안에 나무탈로 인하여 환자가 발생할 운이므로 집을 수리하거나 신축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며 구설을 조심하라.

2월 : 이사나 신축을 하는 것에는 반드시 손재주가 따르니 주의하고 구설수가 있으니 처세에 조심하고 입 조심 하라.

3월 : 재산관계로 인하여 타인과 언쟁이 있을 운이니 돈거래에 있어서는 미리 주의 하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의연하라.

4월 : 집안에 탈이 나는 달이니 집수리를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하는 일마다 실패되어 후회하게 되리라

5월 : 관청관계로 인하여 이득 볼 생각은 하지 말며 관청을 상대로 하여 소송할 생각도 하지 말라. 작은 일이 크게 번진다.

6월 : 어떠한 일이라도 손재수 있는 운이므로 매사에 조심하고 특히 여자와의 교재는 건강에 나쁘니 주의하라.

7월 : 혼인 할 운이다. 그러나 혼인 후 손재와 후회가 있으니 인내하고 언쟁하면 손재수 있으니 참고하라.

8월 : 집안일이 순탄하지 않고 하는 일이 어렵게 찌들어가니 모든 일에 침착하게 정진함이 길하리라.

9월 : 문서관계로 구설을 당할 수 있으니 어음 등에 주의하고 절대 보증은 서지 말라. 관재까지 오게 된다.

10월 : 눈에 보이는 것이 돈 남는 물건 같으면 사두는 것이 좋고 이달은 재수가 좋으니 부동산투자도 좋겠다.

11월 : 다른 사람이 어려운 고비를 당하여 자기의 재산을 인수하라 한다면 인수하라. 반드시 이득이 있다.

12월 : 재산에 손재수 있으니 금전거래에 주의하고 재산관계에 철저하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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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업

잡기 2005. 1. 24. 19:20
춘천 음식 -- 닭갈비, 막국수 얘기 나오면 고향에 가고 싶어진다. 막국수를 외지 사람들에게 먹이기는 좀 그렇던데... 자주 먹어 본 사람이야 맛있다고 하지.

SketchUp을 언젠가 써먹어야지 마음 먹고 있다가 오늘 일 끝내고 남는 시간에 써 봤다. 예전에는 이사갈 때 가구 배치를 2d로 했는데 스켓쳡을 이용하여 3d로 만들었다. 프로그램은 툭하면 에러를 일으키고 죽었다. 처음 사용해서인지 잘 적응이 안되는 독특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수 시간 동안 무척 간단한 모델 따위를 만드는 데도 고생했다. 숏컷 키가 디폴트로 정의되어 있지 않아 마우스로만 그리려니 불편하다. 숏컷을 정의하면 되는데 귀찮아서 안 했다. 익숙해지면 간단한 스케치나 디자인에 쓸모 있을 듯.



x-ray mode로 본 것. 더 그려봐야 하는데 방바닥에 변사체 세 구를 놓고 나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모델 중에 왜 사체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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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했다.

잡기 2005. 1. 24. 15:16
저번주 금요일이다. 황씨 아저씨가 약속에 늦는다고 해서 교보문고의 기술서적 코너에 쭈그리고 앉아 PIC 매뉴얼을 보고 있었다. 16F84 칩을 써볼까 생각중이었다. 16 DIP 패키지에 우겨넣은 RISC 프로세서인데 산업현장에서 매우 인기있는 디바이스지만 그동안 그것과 인연이 없었다. 나처럼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기술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자기는 PIC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귀찮아서 건성으로 대꾸하고 이책 저책 끄집어 보는데 그 때마다 자기는 그 책들을 예전에 다 봤다며 말을 붙였다. 제기랄 약속 시간이 남아서 나름대로 보람있는 취미 생활하는데 왜 귀찮게 구는거야. 그러더니 내 입술에 뭐가 묻었단다. 오후 늦게 세면을 하고 수 시간 동안 뭘 먹거나 입에 손을 대지 않아서 뭔가 묻을 리가 없는데? 손가락으로 입술을 비볐다. 아직 묻어있단다. 다시 닦았지만 고개를 가로 젓고는 제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갖다 대더니 이리저리 비비적거렸다. 마침 김씨 아저씨가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나를 발견해서 일어섰다. 술 먹다가 문득, 그 놈이 하던 짓이 성적 제스쳐에 가깝다고 자각했다. 방심하다가 한심하게 당했다. 순진하게 호모의 먹이감이 되다니...


지하철에 최근 설치된 비상등

과연 저 전등이 연기가 자욱한 지하철 안에서 쓸모가 있을까? 비상등을 슬쩍 들어 보았다. 삑- 하는 버저음 때문에 들고 튀기는 부적합해 보여 제자리에 다시 꽂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거치대에 꽂아 두었을 때 두 전지 사이의 간격이 플라스틱 때문에 벌어져 있다가 빼면 불이 켜지고 버저 소리가 난다... 같다. 도식화하면, 휙, 철퍼덕, 반짝, 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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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 동안 펄사만 들었다. 십년 전에도 그랬고 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변함없는 내가 지겹다.

Pulsar, Halloween, Halloween Part 1 (20:00)

저작권 개무시하고 사는 마이너리그 답게. 그런데 1977년에 나온 노래도 잡아갈까?

김양이 '마음 속에 품은 숫자를 알아맞추는' 플래시 사이트를 알려주면서 어떻게 숫자를 맞출 수 있는지 궁금해 했지만 모른다고 간단히 대꾸하고, 인형 눈알 붙이기를 하면 인생의 무게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말하면서 쪽팔렸다. 수의 성질에 관한 몇 가지 재밌는 법칙이 있다. 정수일 때, 숫자를 더하거나 빼거나 나머지를 취하거나 패리티를 알아내거나 짝수인지 홀수인지에 관한 것이다. 10 미만의 정수를 다루는 숫자 맞추기 게임에(플래시 게임에서는 4자리 숫자지만 어쨌든 4개의 숫자다) 적어도 2번 이상의 연산 또는 셔플링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를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확률이나 게싱은 아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에 관해서 대답할 수 없었는데 불필요하고 시시해서 기억에서 잊혀졌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하면 괴롭다.

비슷한 시각에 kpug에서 2에 무한히 루트를 씌운(sqrt(sqrt(sqrt(2)))...)
값이 얼마인지 묻는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1에 수렴하니까 1일 꺼라고 지레 짐작하면서 질문에 붙은 덧글에서 그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부질없게 여기고 있었다. 왕초보님이 쓴 마지막 덧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푸는 법은 몰라도 답은 아는 저는 뭔가요. ㅠ.ㅠ 진정한 공돌이가 되어버린 듯 하군요.'

그랬구나. 내가.

용산에 들러 usb serial converter를 구입하고 양쪽이 수컷인 serial cable을 사려고 했지만 없다. 하는 수 없이 9핀 수컷 커넥터를 둘 사고 용산역에서 오늘 개통한 천안 종착 전철을 탔다. 1시간 50분, 완행, 2300원. 수원까지 앉을 자리가 없다. 개통일이라서인지 노인분들이 많이 탔다.

간신히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프로토콜 컨버터와 교신하는 프로그램을 짰다. 이번 주 화요일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신이 되지 않았다. pc와 장비를 연결하면 되고, 컨트롤러와 장비를 연결하면 안되고, 컨트롤러와 pc를 연결하면 되는 희한한 현상. 장비를 당분간 쓸 수 없어서 프로토콜 컨버터 에뮬레이터를 만들어 통신상태를 검증하고 스트레스 테스트까지 마친 상태지만 시리얼 교신이 안된다는 괴 현상 때문에 두 시간 내내 닭질 하다가 화요일에 공장에서 그냥 돌아온 것이다. 의심스러운 것은 usb serial converter였다. 모뎀과 시리얼을 자동으로 디텍트하는 것 같다. 공장에 도착하자 마자 9핀 커넥터를 케이블과 교차해서(serial) 납땜하고 연결하니 된다. 15000원짜리 usb serial converter가 원치 않는 기능까지 덤으로 해 주셔서 에러 잡기가 이렇게 힘들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추측한 대로 컨트롤 보드는 PLC의 접점에 직결되어 있고 24볼트를 다운시프트해 로직 레벨로 떨군 다음 래치를 거쳐 io와 연결되는 것이었다(그 역도 마찬가지). 화요일에는 유사장이 한국에서 그 방면의 권위자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 양반과 대화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는 PLC가 io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연결되어야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직원들에게 준 '미션'은 그 회사에 가서 항온조의 매뉴얼과 회로를 있는대로 긁어오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유를 모른다면 차라리 내가 회로를 보고 말지. 하여튼 거의 6년 동안 미스테리(?)로 통하던 장비 컨트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삽질 끝에 알아냈다. 그런데 의문은 그것이다. 그 사업을 15년 이상 해온 사람들이 자기들이 만든 장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단 말인가? 소문에 따르면 그들은 일본 기계를 복사하고 거의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유 보다는 이직 탓일께다. 사장님들께서는 직원이 나가면 기술도 함께 빠져나간다는 것을 잘은 모르고들 계신다. 경비절감이 가능하거나, 돈을 준다면 그들 프로그램을 21세기에 맞게 새로 만들어 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관심 없어 보였다. 프로그램의 첫번째 릴리즈는 15분 후 완성되었다. 예정보다 68시간, 대략 3일 늦었다.

flash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저 파일 시스템의 오해였을 따름이다. nand flash에 10만번 writing이 가능하다. 김사장에게 괜히 헛소리한 셈이 되었다. 그동안 permanent storage로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찮기도 하고, 굳이 그걸 사용하지 않아도 다른 대안이 있어(remote nfs server) 건드리지 않았던 커널 소스를 건드렸다. 참 무성의했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경탄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장비가 10년을 견딜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플래시 하나 날릴 각오하고 심하게 테스트하기로 했다.

2.6.8 커널을 컴파일했는데 테스트해 볼 시간이 없다. 2월은 몹시 바쁠 것 같다. 2월이 지나면 좀 쉬어야겠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경력들이 대단들 하셔서 김새게 나만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김사장은 날더러 왜 프리랜서를 하느냐고 물었다. 긴장하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는 긴장이 풀어져 있었다. 작업 기한 맞추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 벅찬 일을 맡아 해나가야 할텐데 일 하나 하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탕을 뛰면 퍼포먼스가 떨어져 양쪽에 미안해지기 마련이다. 요즘은 거의 집에 박혀서 일만 했다. 하루에 12시간 정도 일했다. 그래도 진도가 참 느렸다. 두 교수에게 드릴 제안서를 작성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는 술을 마셨다. 아저씨들 만나는 것이 20일 만이다.

따끈따끈 베이커리. 그런 만화다.



전자레인지로 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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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지?

잡기 2005. 1. 17. 23:57
신혼여행지로 어딘가를 추천한다면 딱 하나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몰디브다. 가보지도 않은 곳을 추천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럴 만한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몰디브를 추천하거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 떠오르지 않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갈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 아내를 데리고. 지구온난화로 몰디브의 섬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대략 50년 남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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