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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4.07.22 네 끼 먹기 3
  3. 2004.07.19 주말 1
  4. 2004.07.13 서울로 돌아와 1
  5. 2004.07.10 방콕으로 돌아와 2
  6. 2004.07.09 수코타이에서
  7. 2004.07.08 다시 방콕에서
  8. 2004.07.06 방콕에서 1
  9. 2004.07.04 크라비에서 1
  10. 2004.07.01 ...
  11. 2004.07.01 피피에서
  12. 2004.06.30 방콕에 내려 2
  13. 2004.06.29 나가기 전 3
  14. 2004.06.28 지하철에서 본 글 2
  15. 2004.06.22 altered reality 2
  16. 2004.06.20 24시
  17. 2004.06.12 원더우먼 8
  18. 2004.06.10 hero
  19. 2004.06.09 예술 실무 9
  20. 2004.06.08 랏시 만들기
  21. 2004.06.07 You're Only Lonely 4
  22. 2004.06.04 리트라이 1
  23. 2004.06.03 달의 몰락 1
  24. 2004.06.01 벨소리 업로드 2
  25. 2004.05.31 바깥에서 보기
  26. 2004.05.30 que sera sera 5
  27. 2004.05.30 유세프 3
  28. 2004.05.26 석가탄신일
  29. 2004.05.24 경복궁 4
  30. 2004.05.19 타이거! 타이거! 2

기생충

잡기 2004. 7. 26. 00:30
열차 좌석마다 찌라시가 한장씩 놓여 있었다. 내용이 이랬다;

대중 교통은 시민고통!

이명박 시장은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누구에게 봉헌할 셈인가?

엉망으로 꼬인 대중교통, 시민들이 실험용입니까? <-- 그렇다.

서민들의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요금인상, 해도 너무합니다. 물가 인상률을 훨씬 뛰어넘는 과다한 요금인상은 서민들의 생활고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구간에 따라 50%가 넘어가는 인상폭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도시서민과 봉급생활자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 대중교통 개혁입니까? 정부와 서울시가 책임져야 할 대중교통 운영을 서민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는 꼴입니다.

저렴하고 안전한 지하철을 만드는 총파업입니다 <--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평균 연봉 4400만원, 사측에 제시한 임금인상율 8%(맞나?), 주5일 근무제 실시 요구, 인력 충원 요구, 그리고 지하철에 근무하는 근무자의 가족에게 한 장씩 무상으로 지급되는 평생 무료 통행권을 가졌고, 매년 적자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8700억원(맞나?)를 지원받는 지하철공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보잘것 없는 연봉을 받으면서도 하루도 쉬지 못하는 등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해 보려는 그들의 불굴의 의지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적자폭이 더 늘어나면 시민들로부터 세금을 좀 더 걷어가면 되는 것이다.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서울시민과 서울 인근의 주민 모두에게서 공평하게. 좋잖아? 그런데 갑자기 '투쟁'을 중단했다. 뭔 소리를 하는건지 언제나 궁금하기만 한 시민단체나 이해집단의 강력한 자기주장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관광지 삐끼나 기생충이 떠오르고는 했다.

잊지 않고 구충제를 먹었다.

금요일. 공장에 내려갔다가 맥주에 훈제치킨으로 배를 채웠다. 취한 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PET 단층 촬영으로 베일에 싸인 미이라의 이미지를 찍는 모습을 구경했다. 별로 독특하거나 뛰어난 기술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새벽에 잠들었다. 6시에 일어나 씻고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 가서 라면 한 그릇 시켜먹고 8시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머리를 깎고, 사우나에서 두 시간쯤 때를 밀고 사우나와 냉탕을 오락가락했다.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냉탕에 쳐박혀 숨을 멈추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변하지 않았다. 길면 1분 조금 넘는 시간, 짧으면 40초 가량? 어째서 몸의 나머지 부분들은 세월을 먹고 담배와 술과 변변한 우주 콜로니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세상때문에 지쳐 가는데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은 변치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점심을 먹었다. 졸립지만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집 근처에서 아내와 함께 소주 한 잔에 돼지갈비를 먹었다. 냉면을 공짜로 준다. 타일랜드 스타일의 수박쥬스를 만들어 먹었다. 씨를 제거한 수박과 얼음과 연유, 약간의 설탕을 넣고 블랜더로 갈아 마셨는데 '짜릿함'이나 '아찔함'은 오리지널에 비해 부족했다.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쳤다. 날씨가 마음에 든다. 괴상한 김치찌게를 해 먹고 집을 나가 오후 내내 거리를 돌아다녔다. 대학로에서 2000원 짜리 짜장을 먹고 낄낄거리면서 거리 공연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수박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 했다. 금요일부터 줄곳 심신이 지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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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끼 먹기

잡기 2004. 7. 22. 01:19
옥상에 돗자리 깔고 누워 이 글을 작성 중. 오늘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노트북의 키보드가 맛이 가 이 키 저 키를 다른 키로 매핑한 상태인데 최근에는 모음 '애'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가끔 안 써지는데 남은 키가 없어 어떻게 하여야 하나...

산학 하면서 삥 뜯어먹을 궁리 중.

마로 아가씨가 삼계탕을 사 준다길래 감사히 먹었다. 곧이어 경자 누나가 맥주를 줬다. 손님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바깥으로 나가 선선한 바람을 쐬며 번데기 안주에 소주 한 잔해ㅆ다.

버스 체계 변경의 근본적인 취지에 찬성. 몇 번인가 이명박 얘기를 술자리에서 하다보니 그를 옹호하는 사람처럼 되었다. 버스 체계 개편에 관한 팜플렛을 수개월 전 동사무소에서 받았다. 서울시가 그걸 홍보하는데는 일정 정도 한계가 있었을 터이고 체계 개편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산장애나 마그네틱 카드를 스마트 카드로 전환하지 못한 것 등등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결함을 내포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체계이기도 하다. 그럼 시민들이 뭘 가지고 버스 체계 변경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들어보면 가장 큰 문제는 체계 변경에 따른 극심한 혼란과 그에 따른 불편, 그리고 요금 인상인데, 이명박이 욕을 바가지로 먹을 '남다른' 각오가 없었더라면 이전 시장들처럼 요금을 안 올리면 그만이었다. 이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서울 대중교통 요금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두번째, 나로서는 '혼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전의 난잡하고 규칙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버스 번호와 노선보다 단순해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마로 아가씨와 황가에게는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눈,귀가 어두운 노인네들도 아닌데? 인터넷 어디에서나 그들의 주장과 비슷한 불평과 짜증을 봤다.

그보다는, 무슨 일 새ㅇ기면 늘 개처럼 짖어대는 언론이 그 동안 침묵을 지킨 것에 웃음이 나왔다. 똥개같은 언론, 쓸모없는 것들. 현실감이 별로 없는 쪼다같은 공무원들이 만들어 놓은 일에 비판과 이성을 주입하고 이슈화할 놈들이 놀았다. 정말 욕먹을 자식들은 그놈들이라고 봤다. 아마 '첫날 풍경' 이나 일 터진 후에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하고 전문가의 진단(같지도 않은 진단)이라는 것을 첨부한 흔해빠진 기사 나부랑이 따위나 쓰고 있을 것이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간신히 taxi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속이 안 좋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아침에 북어미역국을 먹고 점심에는 콩국수를, 저녁에는 볶음밥을, 야참으로 간만에 리조또를 만들어 먹었다. 태국에서 사온 안남미로 만들었는데 찰지지 않고 양념이 잘 배어 그럴듯하게 되었다. 집에서 카오 팟 탈레나 카오 팟 꿍 정도는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손이 잘 안 간다.

남을 귀찮게 하면서 일하는 것이 체질상 맞지 않기 때문에 작업시간을 밤으로 옮겼다. 마찬가지로 누가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얼굴에 드러나는 지 처음 보는 사람 조차도 내 성격의 가장 생산적인 그 부분을 하나의 특이한 개성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전화질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전화받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전화도, 메일도, 메신저 메시지도. 그럼 업무 협의를 어떻게 하냐고? 내 말이 그말이다. 안 했으면 좋겠다.

반 헬싱을 보다가 히죽히죽 웃었다. 뱀파이어 아가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웨어울프가 된 사내를 촉매로 사용해 에너지를 뽑는 장면이다. 놈은 '인간성이 부족해!(humanity insufficient)'라고 외쳤다. 반인반수가 된 웨어울프의 인간성이 부족해서 뱀파이어 생산은 실패했다.

난 돈과 인간성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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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잡기 2004. 7. 19. 00:12
아침에 일어나니 19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잡혔다는 기사가 마침 TV에서 흘러나왔다. 상쾌한 아침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놀러갔다. 두번째인데 700원이 아깝지 않다. 옆에 있는 한적한 경희궁도 구경했다. 어떤 꼬마가 지하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물을 쳐다보고 있던 날더러 '그건 지하수에요' 라고 말했다. '지하수인가?' 라고 대꾸했다. 경희궁의 어떤 창호지 구멍이 숭숭 뚫린 방에는 보도 블럭을 단정하게 깔아 놓았다. 서울시의 문화행정 관련 부서는 특이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경희궁 바깥의 안내판에는 '공사중이라 관람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예의도 있었다. 경희궁을 둘러보면서 내게도 이렇듯이 동심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여성 미술 전시회에서 그림을 잔뜩 구경했다. 거의 전부가 끝내주게 시시했다. 아내에게 잘 그린 그림이 지닌 특징은 그림을 보고 나서 여러 가지 의미나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떠오르는 것이고, 사물과 주변을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믿지 않는 편인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긴 하지만 어나더 월드 씨어리나 특이한 정신세계를 지닌 남편의,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독창적인 사고방식 정도로 여겼다. 아내는 맛없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집앞을 지나 서대문 까지 가는 155번 노선 버스가 사라져서 이만 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환승하면 되지만, 버스에 올라 느긋하게 pda를 봐야 할 시간에 환승 정류장에 멀거니 서서 7.5분 간격으로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길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도 생긴다; 노력 끝에, 그리고 운이 따라서, summing을 20단계 이하로 끝장 낼 수 있게 된 목전에서 내심 기뻐하던 중 버스가 마침 덜컹거려 엉뚱한 장소에 스타일러스가 닿았다. 미처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숫자 두 개가 빈 칸에 파박 찍혔다. 여러 좋은 신들은 무시한 채 쩨쩨하게 개신교 신한테만 서울시를 바친 이명박을 저주했다.

장마 막바지, 일은 잘 되지 않고 연일 술을 마셔 피곤해서 주말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재미도 없는 smallville을 줄기차게 보았다. 느려터진 pdbox 대신 nate의 드라마 클럽에 가입해서 그것들을 얌전히 다운 받아 순한 똥개처럼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자니 젊은 수퍼맨 clark kent가 성장 호르몬을 맞은 프로도 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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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아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한결같이 최근 여행자들은 예전만 못하게 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어 보였다. 뭐 대단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나라 언어나, 문화, 역사조차 공부하지 않고, 중대 결심을 해야 나올 수 있던 소위, '해외여행'을 이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옆집 애가 갔으니 나도 갈 수 있다 분위기. 그리고 머리가 나쁘다는 것. 뒈지게 더운 나라에 와서 뒈지게 덥다고 말하는 바보가 있는 것이 증거? 현지어는 한 마디도 모르고 영어만 사용하는 여행자나 그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기가 살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워낙 교조적인 이야기이고 저마다 개성과 취향이 있지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먹지 않거나(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벌레를 먹어야 한다) 오른쪽 차선 통행인데 죽어라고 왼쪽 차선으로 오토바이를 모는 것. 태국 같은 좋은 나라에 와서는, 외국에 나와서 한국음식을 먹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며 자기는 팍치도 잘 먹는다고 하면서 죽어라고 태국음식만 먹어대는 것도 이해가 잘 안가긴 마찬가지다. 이런 예를 보면 질이 떨어지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예전 여행자들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저녁에 땅화생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했다.

오징어에 대한 아내의 불가해한 정열로 인해: 오징어포 17, 생선포 16, 비스켓 스틱 9,
집에서 노상의 불량식품 스러운 수박 쥬스를 만들어 먹으려면 : 연유 18
꿰이띠오 남을 집에서 해 먹자: 쌀국수 3개 단가 6.75, 쁘라놈 소스 17.5, 고추 소스 11, 남 쁠라 18, 고추가루 15.25, 갈릭 파우더 27.5
아내가 월남쌈을 만들어 보겠단다 그래서 : 라이스 페이퍼 59
술먹은 다음날 꿀차? : 꿀 228
그리고 집에서 월남미로 카우 팟을... : 쌀 20

쌀 까지 산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들을 아내와 내 배낭에 나눠서 차곡차곡 쑤셔 넣었다. 남 쁠라를 매번 느억 맘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자주 했다. 남 쁠라는 참치나 멸치 등의 생선을 발효시켜(썩혀) 만든 생선 간장같은 것인데 태국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말하자면 핵심 컴포넌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쁘라놈은 달고 시고 매운 소스인데 남 쁠라와 마찬가지로 식탁에 항상 놓여 있다. 국수 먹을 때 마다 내오는 다섯 가지 소스 중 빠진 것은 고추기름과 고추 식초 절임인데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고추 절임에 라임이 살짝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확실치 않다. 수퍼 마켓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향신료가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거리를 거닐다가 그리웠던 카우 카 무(족발덮밥)을 먹었다. 아내는 쌀국수 매니아다. 시공사의 Just Go 태국편을 잠깐 봤는데 대부분 나하고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음식 섹션 하나 만큼은 장관이다.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다. 어디서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국 음식 기행은 할만한 것이다. 이렇게 싸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태국 말고 다른 나라가 있을까 의문이다.

숙소에 들어왔다가 잠깐 나갔다. 빗속을 거닐어 홍익인간 앞에서 봉지 구아바를 샀다. 나보다 앞서 구아바를 산 용감한 한국인들이 이게 대체 무슨 과일인데 맛이 하나도 없냐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판매상은 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중인데 내가 '알로에 막막'이란 말을 제대로 발음하도록 갖은 애를 썼다. 얌마, 정신차리고 구아바나 제대로 깎아라. 니가 지금 발음이 안 되는거야.

7/11

새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월텟에 들러 몇 가지 쇼핑을 하고 돈이 남으면 영화를 보고 마사지를 하고 수끼를 먹기로 했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일반 버스 대신 에이컨 버스를 타는 바람에 빠두남 시장에서 내렸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용산 전자 상가에 해당하는 빤팁 플라자에 들러 일 없이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월텟으로 갔다. 지갑을 몇 개 사려고 들렀지만 백화점이다 보니 흔해빠진 가오리 지갑이 1000밧이 넘어갔다. 50% 할인을 하더라도 500밧 가량?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것이라고 해서 뭔가 남다른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디자인, 평범한 박음질.

원래 가려고 했던 MBK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국에서 뭔가 물건을 살 일이 있으면 마지막에는(본의아니게) 항상 MBK에 들렀다. 적당한 가격에 쓸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으니까. 선물, 기념품은 짜두짝 주말시장과 나라야 판, 이세탄, 센 백화점 따위를 전전했고 생필품을 살 때는 삔까오 다리 건너 있는 이름을 잊어버린 백화점과 짜두짝, 빠두남, 나이럿 시장, 카오산 옆 시장을 배회했다.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형편없는 곳은 언제나 카오산이었다. 카오산에서는 가짜 학생증을 만들거나, 가이드북이나 중고소설을 구매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도착하자마자 팟 타이와 바나나 팬 케잌(로띠)을 먹는 장소였다. 방콕에 가면 매번 숙소를 수쿰윗에 잡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김없이 카오산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직 많은 여행자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때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MBK 6층 Thai Corporation 매장에서 코끼리 가죽 지갑을 샀다. 가오리 지갑이나 상어 가죽 지갑은 워낙 흔해빠진 아이템이라 희소성이 떨어졌다. 게다가 상어 가죽은 비싸다. 코끼리 가죽으로 밀어 붙이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선물하기로 했다 -- 휴가를 일주일 갔다오기로 했는데 일주일 더 놀았다. 지갑은 정가 600밧 가량 하는 것이고 잘 깎아봤자 300밧 정도 될 꺼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협상 솜씨는 여전히 눈부셨다. 개당 225밧 가량, 일곱 개를 샀다. 그리고 860밧 짜리 실크 삼각 베게를 600밧에 샀다. 협상이 가능하지만 마침 파는 곳이 거기 뿐이고 기념품 천지인(게다가 상점 점원들의 악어처럼 상큼한 미소) 나라야 판까지 가기는 이 더위에 거리가 멀다.

카오산에서 워낙 싸구려 같은 것들만 봐서인지 이 가게에서 산 것은 의외로 품질이 좋았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아내가 가지고 있던 65$ 미화 짜투리를 다 환전해서 간신히 물건들을 구매했다.

거대한 비닐봉투에 삼각 베게를 담고 묵직해진 보조 배낭을 어깨에 맨 채 다시 센트랄 월드 플라자로 향했다. 제철이 아니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데도 아내는 망고스텐을 먹고 싶단다. 정 먹고 싶으면 빅 씨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빅 씨의 단 한 코너에서 망고스텐을 팔고 있다. 껍질을 보아하니 맛이 간 것 같다. 실패할 것이 뻔해 반 케이지(kg)만 샀다. 그리고 저녁 대신 먹을 이런저런 식품들을 샀다. 바나나빵 6개(13), 초밥 세트(99), 구아바 쥬스(10), 벨프룻 쥬스(10), 드래곤 프룻 반 토막(9). 초밥을 맛 때문에 먹는 것은 아니다.


싸얌에서 월텟 쪽으로 가는 길에서 보는 철사 공예품 판매상. 몇 년이 지났건만 매번 그 자리에 있다.


이세탄 백화점. 이런 사진은 대체 왜...


방콕의 악명높은 교통 체증... 가변 차선... 아니다. 이 구간은 체증이 없다.


Big C 수퍼마켓의 과일 판매대

시간이 너무 지나 초조하다. 카오산에 도착하니 6시 무렵. 서둘러 숙소에 맡겨 놓았던 짐을 찾고 복권청 앞에서 59번 버스를 기다렸다. 남은 돈은 34밧 뿐인데 59번 일반 버스는 올 생각을 안 한다. 돈이 모자라 탈 수 없는 59번 에어컨 버스는 벌써 두 대가 지나갔다. 기다린 지 50분이 지났다. 머칫까지의 교통 체증이 걱정되고 초조해서 하는 수 없이 다음에 오는 에어컨 버스를 탔다.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은 1034밧, 500밧 짜리 공항세 티켓 두 장을 사면 34밧 밖에 남지 않아 에어컨 버스 비용인 두당 20밧에서 6밧이 모자란다. 아내가 안내양에게 사정하자 옆에 있던 태국인이 10밧을 그냥 준다. 아내가 답례로 10밧 짜리 구아바 쥬스를 그에게 줬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면 가방에 잔뜩 들은 몇 가지 물건을 꺼내 태국인들에게 물건을 주고 모자란 돈을 얻을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한심한 기분이었다. 바로 전에 레몬티만 마시지 않았어도 59번 에어컨 버스에 진작 탈 수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먹다 얼음만 남은 레몬티 봉지는 초밥을 차갑게 식히는데 쓸모가 있다. 초밥은 차가워야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카오산 옆 랏담넌 거리. 겁나게 피어오르는 구름.

아내는 짐을 부치고 나는 짐을 들고 비행기에 타기로 했다. 아내 비행기는 10.30pm에 떠나고 내가 타는 비행기는 11.15pm에 떠난다. 통로 옆 의자에 앉아 아까 BigC에서 산 음식들을 꺼내 펼쳐 놓고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니들 99밧 짜리 럭셔리한 초밥 도시락 먹어봤냐? 주머니에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탑승대기실에 앉아 있다. pda를 꺼내 오늘 일정을 정리했다. 대기실은 한국인들의 수다로 시끄럽다. 지나가던 한국인이 아는 척 한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이다. 저장해 놓은 mp3를 들으며 이 글을 작성중이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리얼타임 로그는 여기까지다.


공항에 앉아. PDA 속에 담긴 내 여행 기록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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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보딩 패스를 내밀고 문을 나와 셔틀버스를 탔다. 이런 저런 비행기가 창 밖으로 보인다. 예전 숙소에서 봤던 아줌마가 아는 척을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 버스가 비행기를 향해 공항을 한가하게 운행하고 있을 때 PDA에서 마침 Mascagni,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3:31) 가 흘러 나왔다. 대화를 중단하고 음악을 들었다. 뭔가 사무치는 감정이 일었다. 이런 것이다; 항공권 본전도 제대로 못 뽑고 이 좋은 열대를 떠난다는...

옆 자리에 앉은 한국인 아가씨들은 CA(cabin attendant가 맞다)가 하는 영어를 당체 알아듣지 못했다. 시선이 느껴져 옆을 흘낏 쳐다보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사람 같다. '줄거리'라고 씌어있는 문서 뭉치를 읽고 있다. 옛날 중국 여행할 때 따리에 짱박혀 뭔가를 쓰고 있다는 작가인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닐까 싶었다.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이번 열대에서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황가나 아내에게 부처 얘기를 해 줬다. 옛날에 부처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누린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설교를 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물 위를 걷거나 치료기적을 행하거나 하다 못해 공중 제비 돌기 등의 아크로바트 하나 변변히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다 쓸만한 제자 하나 없는 부처가 민심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도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두들이, 바바들이 있었다.

제자가 열댓명은 되야 그나마 한 가닥 하는 성자 축에 끼고 무슨 말을 하건 들어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자기 패거리를 늘리기 위해 제자를 수집(구걸)하고 다녔다. 똘똘한 제자를 거느려야 성자의 후광도 그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팔정도 같은 것은 부처가 만들지도 않았다. 비교적 역사화가 잘 된 예수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똘똘한 제자들이야 말로 성자의 값어치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영성사업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키 포인트가 된다.

제자 수집 사업을 열심히 하다보니 오버했다. 그의 밑에 따르는 무리가 한떼거지가 되니까 부처 및 제자 일동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떼거지를 몰고 다니면 패권을 다투는 지역제후나 동종 업종(영성 사업)에 근무하는 바바지들과 불편한 관계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그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부처가 워낙 유명한 성자다 보니 그의 그런 궁상은 잊혀지거나 무시당했다. 내가 그 얘기를 하는 동안 황가는 슈렉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아내는 내가 또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NWD theory 같은 것을 차마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서양이 동양을 재평가하고 있다는 류의 얘기들이 즐비했다. 동양의 정신적 문화에 대한 서구의 관심에 관한 얘기다. 까보면 의외로 보잘 것 없는 정신성 나부랑이에 스스로 흡족해 하면서 과학기술에 비딱한 태도를 보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은 아직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동양에만 특이한 스피리튜얼리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문화적 차이를 혼동하거나 착각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의 정신세계는 서양인들이 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개뻥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도 정신적인 것들에 부정적인 이유는 어렸을 적부터 지나치게 영적인 삶을 살아서 일께다. 마치, 청자라면서 흔해빠진 싸구려 개밥 그릇을 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서양인들이 그 개밥그릇을 보고 감탄하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과 기분이 비슷했다. 아무튼 건강한 육신과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제대로 된 회의(skeptism)가 나온다.

아내가 오기 전부터 한 달 동안 고생하고 왔으니 편히 지내라고 먹을만한 식당을 물색했다. 황가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방콕에 있는 동안 사전답사도 하고 여기 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태국에 오기 전부터 내 PDA에는 방콕의 유명한 식당 리스트와 여차하면 호텔에 들어가려고(아마리 워터게이트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호텔 할인 바우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여행사 전화번호 따위를 저장해 두었다. 번번이 한 두 시간씩 일정이 늦어지고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고, 유명 식당 대신 25밧 짜리 국수를 파는 식당이나 노상에서 음식을 해결했다. 아내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스럽게 돈 몇푼에 조잔해지는 내 궁상(?)을 미리 알고(게다가 심하게 영적이라서 욕심이 없기까지 하다) 편한 숙소나 맛있는 음식을 부러 마다했다. 일정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쓸만한 레스토랑 리스트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번쯤은 호강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 반편에는 돈을 쳐발라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1500밧 짜리 호텔에 들어간 다음 카드 결제액수를 보고 신경질을 낼 꺼라고 부러 짐작했다. D-flawless나 스바로프스키, fossil 매장을 쓰레기 봉투같은 짐을 질질 끌면서 빈티나게 돌아다닐 때 비교적 값싼 다이아몬드나 괜찮은 시계를 사주고 싶었다. 단가 100$ 내외면 심하게 동양적인 내 영혼이나 아내의 불가해하고 이니그마틱한 영혼이 동시에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보잉 777-200 이 떴다. 보잉 777의 엔진은 ETOPS 롤스 로이스 엔진(Extended-range twin-engine operations)이다. 777은 사연 많은 비행기다. 시시한 기내식. 하지만 시시한 비행기. 다섯 시간 비행 후 오전 6:40분 인천공항에 도착. 이미그레이션을 광속으로 빠져나왔다.

아내가 먼저 도착해서 어라이벌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6800원 짜리 602번 버스를 타고 신촌역에서 내렸다. 비가 추절추절 내리고 있다. 집에 돌아와 배낭을 풀어 헤치고 방콕의 수퍼에서 산 각종 '생필품들'을 정리한 다음 오후 7시까지 내리 잤다.

깨어나서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에 드래곤 프룻과 밤이 있다. 배낭여행자는 세관에서도 검역에서도 잡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집이 불에 타 없어진 '파이트 클럽'적인 당황스러운 상황을 상상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지금까지 쓴 태국 휴가 기록을 살펴봤다. 잘못 적어놓거나 모호한 것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실수한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여행 기간: 13일 (6.29 ~ 7.11)
항공료: 309000원 (세금 포함)
2주간 여행 경비: 420000원. 일평균 32300원(28$).
쇼핑(여행경비와 겹침): 3000 baht -> 8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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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8시 기상. 아내가 느적거려(쉬러 왔으니까... 란다) 9시쯤 체크아웃. 내가 짐 싸는 속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2-3분이면 숙소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 짐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배낭에 쑤셔넣을 수 있다. 배낭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을 다년간 연구한 결산이다. 짐이 없기도 했다. 티셔츠 하나, 런닝 하나, 새로산 반바지, 팬티 두 장, 양말 두 켤레가 옷가지의 전부.

숙소 주인장이 카오산까지 바로 가는 여행사 버스는 없단다. 버스 터미널까지 픽업해줄테니 10분만 기다리란다.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은근히 걱정되었다. 방콕에 오후 다섯시쯤 떨어지면 교통체증 때문에 머칫에서 방람푸까지 가는데 두 시간은 걸릴 것이다. 따라서 가능한 빨리 버스를 타는 것이 바람직했다.

종업원들이 밤이나 낮이나 묵고있는 손님을 대하면 생글생글 웃어서 괴기스럽다. 밥 먹으면서 숙소에 있던 코엘료의 eleven minutes를 잠깐 읽었다. 주인이 책이 마음에 들면 가져가란다. 도로 내려놨다. 꿈을 꾸게 한다는 코엘료의 소설은 다음에 읽자. 지금은 노트북에 있는 아즈망가를 마저 봐야 한다.

주인이 차로 데려다 주면서 TR 게스트 하우스에 식당이 생긴 다음 부터는 아침에 공짜로 주던 티가 없어졌고 대신 버스 터미널까지 프리 픽업을 투 웨이로 해준다며 가이드북에 꼭 그 내용을 업데이트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한국인 여행자들 중 일부는 자기 숙소에 묵으면 말 한 마디 없이 앉아 있다가 그냥 간다고 한다. 여행 중 묵게 되는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은 보통 정보 수집의 1차 소스다. 그 다음은 삐끼. 그런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지 못하면 가이드북에 코박고 있어야 할텐데? 영어의 장벽이 그리 심할까? 믿기지 않는다. 그들은 과묵한 사람들이거나 나처럼 늘상 뻔한 대화가 귀찮고 지겨워서 안 하고 자력갱생하는 타잎일 것이다.

터미널에서 티켓을 끊으려니 250b란다. 올 때 2등 에어컨 버스를 200밧 준 기억이 나서 카운터에 물었더니 정부버스가 200밧, 자기들 wintour의 사설 버스는 1등 버스이고 요금이 250밧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999 또는 99번 창구에서 판매하는 정부 버스는 가격에 비해 서비스가 떨어지는 편이라서 내심 꺼리는 편. 두 말 없이 wintour의 1등 에어컨 버스를 끊었다. 빵과 우유, 음료를 두 번쯤 나눠준다. 티켓에 붙어있는 식권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고양이 머리띠를 한 안내양은 유니폼으로 입는 치마 폭에 다리가 걸려 뒤뚱뒤뚱 펭귄처럼 걸었다. 안내양은 손님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그들이 사용한 컵을 모아 휴게소 뒤켠에서 씻는다. 체크 포인트나 검문소를 만날 때마다 쪼르르 달려나가 사인을 받고 일지를 기록한다. 새로운 손님이 타면 자리를 안내해 준다. 손님들이 음료나 담요를 요구하면 갖다 준다. 안내군도 있다. 안내군은 노는 것 같다.


장거리 버스가 잠시 정차하는 휴게소. 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2년 전에 비해 눈부시게 발전했다. 눈부시게!

지루한 버스 여행 동안 노트북을 꺼내고 pda를 꺼내고 그동안의 일정을 정리했다. sony에 번들로 포함된 intellisync는 업그레이드를 안해서인지 outlook과 싱크할 때 엔트리를 자꾸 잃어버렸다. 그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일전에 메모리 스틱이 날아갔을 때 하드리셋을 한 후 싱크를 하니 최근 2주 간의 엔트리가 하나도 싱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소니는 역시 소니스럽다. 하여튼 일정을 다시 입력했다.

6시간 걸린다던 버스는 방콕에 다 이르러 갑작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한 시간 가량 서행했다. 알고보니 교통 경찰 ten birds이 멀쩡한 도로를 막아놓았다. 어느 나라나 경찰 ten birds이 문제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단속하던 경찰을 봤다. 과속은 아니고,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했고 머플러를 개조한 것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녀석을 잡아 세웠다. 면허증도 제대로 제시한다.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도무지 무슨 꼬투리로 멀쩡히 잘 가던 오토바이를 세웠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옆에 있던 황가가 '쯧쯔... 반바지로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런건가? 잡힌 놈만 유달리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착하니 5시. 끔찍스러운 교통체증 때문에 3번 버스를 타고 짜두짝 공원까지 가는데만 1시간이 걸렸다. 방람푸까지 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 지 알 수 없다. 갈길이 멀다. 물론 이런 상황도 예상했다. 차야 가던말던 한가히 뵈는 아내와 달리 나는 '언제나' 대안이 있었다. 미련없이 머칫 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BTS로 갈아 타고 Chit Lom으로 갔다. 여섯 정거장 밖에 안되는데 표값이 35밧이다. 서민이 이런걸 타고 다닐 수 있을까? 시민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한달에 400달러를 버는 나라에서. 벌이는 그렇지만 먹을 것이 워낙 많아 굶어죽는 거지는 절대 없다는 것이 태국의 '자랑거리'다.

방을 잡기 전에 먼저 아내에게 약속했던 대로, 야마네에 들러 김초밥과 오에코돈, 짬뽕을 먹고 오이시에서 80밧 짜리 초밥 세트와 35밧 짜리 날치알이 들은 삼각김밥을 샀다. 교통체증이 심화되기 전에 월텟 앞에서 2번 버스를 탔다. 복권청에서 내려 볼수록 정 떨어지게 생긴 카오산 로드를 횡단해 사원 뒷편 길로 이동. 러브호텔로 지역 주민들에게 명망높은 쑥바삿 게스트하우스에 투숙. 400밧, double, with bath, a/c, tv.

쑥바삿 게스트 하우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인터넷 가게에서 한 시간에 35밧 짜리 인터넷을 했다. 어제, 그제 쓴 로그를 올렸다.

오후 10시. 땅에 복수라도 하듯이 미친듯이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세븐일레븐에 들러 맥주와 오징어, 물을 사왔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해 사방팔방에서 바퀴벌레처럼 튀어나와 우왕좌왕 거리를 헤메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나는 '홀로' 우산을 쓴 채 그 모양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발바닥이 빗물에 잠긴다. 반바지 섶이 젖어든다. 우산을 뚫고 들어온 빗방울이 물안개를 이룬다. 비맞은 생쥐들이 처마 밑에서 벌벌 떨고 있다. 내 우산과 나를 쳐다본다. 거리는 텅 비었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숙소로 돌아와 아내와 건배.

빨래하고 샤워했다. 11시가 넘었다.

7/10

9시 기상. 바깥의 습기는 60%가 넘지만 통유리로 막아놓은 방에서 에어컨을 밤새 틀어 놓으니 방이 몹시 건조하다. 아내가 홍익인간에 들러 아는 척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아내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만남의 광장을 싫어한다면 나는 홍익인간을 꺼렸다. 별 이유는 없다. 만나는 장기여행자마다 만남의 광장이나 홍익인간 얘기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홍익인간은... 특별히 아는 사람이 아닌 한 노골적인 푸대접 때문인 듯. 장기여행자들 대개가 아는 사람이 많아서 한 사람 들어오면 떼거지로 우르르 몰려들어 좁은 일층 식당을 점령한 채 나갈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일 없으면 안 가고 안에서 개기지 않는 것이 타지에서 고생하는 교민을 돕는 길인 듯 싶다.

아내가 벌써 여러 번 한국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전화카드를 구입하란다. 아내더러 인터넷 까페에서 인터넷으로 전화하라니 자주 끊긴다며 전화를 찾아 이리저리 카오산을 돌아다녔다. 걷다가 지칠 무렵 분당 15밧 하는 인터넷 전화를 걸었다. 통화 품질이 깨끗하고 전화도 잘 걸렸다. 15밧이면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다.

땅화생 백화점 가는 길에 있는 국수집에서 25밧 짜리 꿰이띠오 남을 먹었다. 파쑤멘 거리에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위만맥 맨션으로 향했다. 47밧. 50밧을 내고 아내는 3밧을 거슬러 주지 않는다고 기사와 실갱이를 벌였다. 우수리는 보통 기사에게 그냥 주는 것이고 태국인들도 그렇게 한다고 말해줬다. 방콕 시내의 택시가 모두 미터로 바뀐 다음 sur-(over-) charge는 없어졌다. 방콕에 무수히 들렀지만 아내는 그런 세세한 것들을 잘 몰랐다. 카오산의 어딘가 숙소에 짱박힌 채 어디 돌아다닐 생각도 안 하고 식당과 숙소 사이를 전전하며 아는 사람들 만나는 장소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관광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내와 여행할 때 한번도 택시를 탄 적이 없다. 오늘 그 사실을 알았다. 택시란 3인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이 버스에 투자하는 돈을 다 합친 가격의 3배 이내일 때라야 내키진 않지만 탈만 하다고 본다. 위만맥 멘션까지 가는 버스비가 4밧이니까 둘이 합치면 8밧, 택시비가 50밧이니 무려 6배나 되는 가격이다. 50밧이면 쌀국수(25) 두 그릇 또는 꼬치(10) 다섯 개, 또는 계란(5)을 얹은 팟타이(15) 한 접시 먹고 고명을 얹은 밥 한 접시(20) 먹고 수박 쥬스 한 봉지(15) 마실 돈이다.

위만맥 멘션의 입장료는 100밧, 뭐 그리 대단한 볼꺼리가 있다고 이다지도 비쌀까 싶었는데 12군데의 전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 이거 의외로 보람차네? 열한시 부터 두 시까지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Royal Carriage Building,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his royal highness) Princess Orathai Thep Kanya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Arunwadi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등 특히 공주들 방을 집중적으로 방문했다. 공주들은 하나같이 못 생겼다. 현재의 국왕이 재즈에 미쳐 있다는 얘긴 오래 전에 들은 바 있고, 그가 찍은 그저 그런 사진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Suan Hong Residential hall


HRH princess Puang Soi Sa-ang Residential Hall. 공주집. 인형, 오래된 시계들.

오늘의 주요 관람꺼리인 Vimanmek mansion을 구경했다. 라마 5세가 기거하던 곳인데 들어가기 전에 짐 맡기는 곳에서 20밧을 삥 뜯겼다. 다른 곳은 돈 안내고 짐을 무료로 보관해 주는데 유독 비만맥 맨션에서만 돈을 받으니 확실히 이건 삥이 맞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짐을 다른 곳에 보관해 두는 건데! 10밧 짜리 동전 두개를 바꿔 코인락커에 짐을 넣은 후 잠그려는데 안 잠긴다. 직원을 불러 안 잠긴다고 말하니 동전을 넣지 않은 것 아니냐, 다른 동전을 넣은 것 아니냐며 되레 의심한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해결할 생각을 않길래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도둑놈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더니 우리 짐을 무료로 맡길 수 있는 곳에 맡기는 것이 아닌가. 나쁜...


티크목으로 만든 건물 중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Vimanmek Mansion을 방문한 중학생들. 300개의 창문, 200개의 문.

1시 15분 영문 안내를 받으며 맨션을 돌아다녔다. 안내원이 한쪽 구석을 가르키며 여기는 2차대전 중 일본이 폭탄을 떨구어 파손된 부분입니다 라고 말하니 어떤 노인네가 'fuck japan'이라고 중얼거렸다. 안내원: 여기 일본사람 없지요?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맞아요 fuck japan이에요. 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보내온 썩 괜찮은 청자가 온전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었다. 눈여겨 보면 볼만한 것들이 꽤 많지만 후다닥 해치우려는지 머물 시간을 안 준다. 설명을 들으면서 다니려니 영 지겨웠다. 위만맥 맨션은 라마 5세가 5년만 살고 주욱 잊혀져 있다가 현재 국왕의 왕비가 82년에 리노베이션해서 박물관으로 열어놓은 것.

두 개의 운하에는 똥물이 흐르고 있지만 두씻 정원은 시원한 열대를 보여줬다. 맨션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풍경도 그럴듯 했다. 그 기분에 왕 노릇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밧 내고 뙤약볕 아래서 여기저기 땀을 펑펑 흘리며 구경하는 왕궁 보다는 두씻 정원과 맨션이 훨씬 나았다. 왕궁은 일반에 공개된 장소가 별로 없어 사실상 볼꺼리가 없는 곳이다.

오후 두 시부터 위만맥 맨션 옆 스테이지에서 타이 전통 춤 공연을 했다.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다. 여기저기서 한 부분씩 훌쩍 떼어내 맥락없는 내용을, 약간 솜씨가 떨어지는 것 같은 춤꾼들이 공연한다. 이들 공연중 볼만한 것은 라마야나인데 오래되어서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다섯이나 여섯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는 라마야나 얘기를 몇 차례 해줬지만 관심없어 보였다. 라마는 나쁜 놈이라고 몇 번쯤 말했던 것 같다. 고생스럽게 구한 아내가 악마와 놀아났다고 그녀를 버린 놈이다. 그녀가 불 속에 뛰어들어 자신의 순결을 증명했지만 라마는 끝끝내 아내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인도놈들은 마음에 안드는 아내를 태워 죽이거나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열녀가 되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불에 태웠는데도 타 죽지 않고 살아 남아야 '정품 인증' 마누라다. 옛날옛날에 자기 마누라를 마녀로 고발해 태워 죽인 유럽인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몹시 궁금해지는군.


라마와 시타. 기쁨의 춤.


그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보낸 나날(라마야나의 앞부분? 또는 시타를 구한 뒷부분?). 나도 내가 왜, 어떻게, 어째서 이들의 춤이 라마야나의 한 장면 임을 추측도 아니고 확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재주부리는 얘는 하누만 같다.


두씻 정원의 한가운데 쯤 있는 거대한 나무. 매력적.

abhisek dusit throne hall을 구경했다. 대관식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안을 꽉 채운 것은 공예품들 뿐이었다. 하지만 수공예품의 손기술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 저런 물건을 시장통에서 구할 수는 없겠지 싶다. 그런데, 이란의 보물들을 구경한 다음 부터는 왠간한 보석들은 시시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어 건축 양식으로부터 확연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Abhisek Dusit throne hall의 입구.

어느 건물에 들어가나 건물을 지키는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지, 물건을 훔쳐가는지 감시했다. 사진은 기회가 되면 찍었다. 반도 채 보지 못했지만 오후 3시가 넘었고 배도 고프고 지쳐서 궁전 옆에 임시로 가설한 건물에 들어선 오이시에서 초밥(65)과 샐러드(40)를 사 먹고 방람푸로 돌아가는 택시(41)를 탔다.

꼬치를 먹고 싶은데 아직 때가 일러 꼬치구이가 노변에 보이지 않아 계란을 넣은 팟타이(20; 비싸네?)를 사 먹고 구아바(10)과 수박(10)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구아바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별 맛이 없다는 이유로), 비타민의 황제, 열대과일 중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난 과일이다. 구아바 3개는 지각있는 여성의 하루 두 끼 식사로 더 바랄 나위가 없을 정도다. 태국 여성들의 건강한 피부는 구아바가 책임지고 있다. 구아바는 그렇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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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9시에 일어났다. 죽과 쌀국수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썽태우를 타고(10b) 므앙까오(수코타이 역사공원)로 갔다. 자전거를 빌리고(하루 20b) 아내를 뒷자석에 태워 공원 입구로 향했다.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입장권(150b)을 샀다. 그리고 역사공원을 동에서 서로 관통해 성벽을 지나 Wat Si Thone 까지 달렸다. 별 것 없다.

자전거 체인이 빠져 애를 먹었다. 어느 도시에서건 자전거 탈 때 마다 한 번씩은 체인이 빠졌다. 지나가던 서양 소년이 체인을 다시 달도록 도와줬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한가로운 농촌을 유람했다. 150밧이나 주고 왔으니 뭔가 봐야겠기에 다시 역사공원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더 이상 살이 안 탈 꺼라고 생각했는데 살이 조금씩 더 타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왠 태국인이 한국인 여성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줄 알았단다. (뭐야? 부러운거야?) 수코타이 역사공원이 원래 생긴 모양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말레이지아의 타이핑처럼 노동자들을 동원해 대단위 인공 호수를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얕은 인공호수는 대량의 물을 증발시키면서 다소간 더위를 식혀주었다. 돌은 여전히 뜨겁다. 시원하게 생긴 나무그늘에 앉아 워터멜론 쥬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뙤약볕 아래 걸어다니면서 유적지를 관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이 보였다. 가엾다. 땀흘리며 빌빌 거리는 가엾음이다.

람캉행 대왕의 동상을 얼핏 보고 지나갔다. 더워서 자세히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얼굴은 봐줘야 할 것 같았다. 태국어를 만든 왕이다. 동서로 엄청나게 영토를 넓힌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 같은 놈팽이는 별로 대단한 인간 취급을 안 하지만 글자를 만든 선행을 한 왕이라면야...

오후 1시쯤 돌아가기로 했다. 입구의 가게에서 얼어 붙은 수박쥬스를 급히 마시다가 골이 띵하더니 줄곳 두통이 달라 붙었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에 인터넷 가게에 들렀다. 두 가게 모두 windows 98이라 메모리 카드 리더의 usb storage 가 잡히지 않았다. 캐논의 생각없는 엔지니어들은 WIA(windows image acqusition) 드라이버와 twain만을 지원했다. removable drive를 지원하지 않아 메모리카드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 따위에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수 년 전에 싼 맛(9900원)에 구매한 메모리 카드 리더기를 이번 여행에 들고 왔다. 하여튼 windows 98 용의 usbstor.inf 파일만 있으면 쉽사리 해결될 문제인데 아쉽게 되었다. 다른 곳에 가보니 usb 포트가 없다. usb 포트가 있는 곳을 부러 알려준다며 방금 나온 가게를 손짓했다. 아내는 메신저질을 하면서 재밌는 방식을 사용했다. 메신저에서 한글 입력이 안 되니까 내 블로그 페이지를 열어 놓고 거기 코멘트의 텍스트 창에 한글로 문장을 입력한 다음 메신저 대화창에 컷앤 페이스트 했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싶다.

점심 먹으러 시장통으로 갔다. 그린 커리와 밥을 시켰는데 평범한 덮밥이 나왔다. 어째 커리와 밥을 합쳐 20 밧 밖에 안 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양이 안 찬다. 가판에서 태국식 팬케익을 사 먹었다. 7밧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참 착하고 순한 것 같다. 관광객 상대로 도무지 사기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처 사원(wat rajthanee)에서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중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두통이 심해서 숙소로 돌아와 타이레놀을 삼키고 잤다.

동네를 둘러봐도 마땅히 식사할 만한 곳이 없어 숙소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타이 커리와 밥(60b), 야채볶음과 밥(60b), 수박쥬스(20b), 싱하(35b)을 주문했다. 레드 커리가 나왔다. 커리(깽인데, 까리라고도 하는 것 같다)는 갖가지 향신료와 야채, 코코넛 밀크를 넣고 끓인 것이다. 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 똠얌꿍보다 어떤 면에서는 맛있고 여러 향신료 때문에 시큼하면서도 담백하고 또한 깊고 은근한 매운맛이 난다 -- 태국 음식은 본질적으로 맵다. 깽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을 꺼라고 확신하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은 볶음밥과 쌀국수만 죽어라고 먹었다.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깽의 징그러운 첫인상 때문인지 잘 안 먹는 것 같다. 편의상 색깔로 나누어 레드, 그린, 옐로우 커리가 있고 해산물이나 닭고기, 소고기 따위를 넣는다. 벌써 두끼를 먹은 숙소의 음식 솜씨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추천해도 되겠다.

주인장이 밥 먹는 동안 tv를 틀어주었다. YTN이 나와서 화들짝 놀랐다. 주 5일 근무제에 관한 토론 방송이 나오는 중이다. 뭐 다른 것은 모르겠고 일한 만큼만 임금을 지급했으면 좋겠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이 글을 작성중. 대체 왜 이렇게 시시콜콜한 여행기를 작성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주인장이 게스트북을 들고와 82년생 아가씨가 혼자 와서 외로워 하고 있다며 방 번호를 가르쳐준다. 맥주 다 마실 때까지 안 오면 방으로 들어갈란다.

누군가 방문을 발로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아까 그 한국인 아가씨다. 방에 놀러오라고 했다. 여행 처음 하고 한 달 일정이고 치앙라이, 치앙마이, 치앙센 등을 다녀왔고 북쪽에서 방콕까지 슬슬 내려가는 중이고 18명이나 되는 엄청난 떼거지와 함께 트래킹을 했고(그중 15명이 한국인) 캄보디아와 푸켓 등에 갈 예정이란다. 오늘이 생일이라 케잌을 들고 왔는데 잘 안 먹어서 내가 세 조각 중 두 조각을 먹었다. 아내는 남은 과일을 다 줬다.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부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여행중 눈이 맞아 사랑의 행각을 벌이는 커플이라고 알아두면 될 듯 싶다.

아내가 pda에 있는 여자들 이름을 가지고 트집을 잡았다. 옛 여자친구 전화번호를 보더니 연락할 필요 없으니 지워버리겠단다. 놔두라고 했다. pda에는 6년 동안의 지난 기록이 있다. 언제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여행했으며 누구와 술을 마셨나 따위. 최근 1년 동안은 거의 아무 것도 적지 않았다. 결혼, 신혼여행, 이번 여행 기록 정도 밖에. 지난 1년은 지지난 1년에 비해 사건이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황을 흔히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생활, 죽을 때까지 하게 될 일.

일찍 잔다. 더 볼 것이 없고 심심해서 내일 아침 일찍 방콕에 내려가 식도락이나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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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Si Thone.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공부한 고승이 남쪽 망고숲 옆의 Si Thone에 살았다는 말이 왓 파마무앙에 적혀 있다. 남은 것은 무의미한 폐허 뿐.



호수 공원.


눈 감고 걷는다.


갖가지 '양식'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700년 전의 석조 유적.


비정상적인 손가락 길이. 비정상적인 귀의 길이. 머리에 난 뿔 등등,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고, 거대로봇류 처럼 생겼다. 악당에 대한 자비심으로 그들을 지옥에 보내주는 마징가 제트같은 거대 로봇.


특이하게 생긴 입술. 열반의 끝없는 기쁨 때문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쯤 감은 눈으로 반은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그 반은 사바세계를 보고 있다. 늘어진 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부처 머리에 난 뿔은 깨달은 자만이 누리는 크나큰 기쁨, 완전히 열린 차크라를... 맞나? 열반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흡족한 나머지 눈을 게슴츠레 감은 채 입가에 미소를 짓는 상태와 비슷해 뵌다.


피사의 사탑? 동남아 열대 문명의 건축은 왠일인지 다 이 모양이다.


부처가 즐거워 보인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적지에는 거대로봇이 많았다. 부처들끼리 벌떡 일어나 한판 붙어 폐허가 된 것은 아닐까. 슈로대(슈퍼로봇 대전)


호박


Wat Mahathat. 스님 한 분이 단체사진을 찍고 짐을 챙겨 나가는 중.


제단에서 향을 피우고 절 했다.


폐허를 배경으로 한 골프 코스는 없는 것일까? 부처님 머리에 맞을 지도 모르겠군.


금색 매니큐어, 푸른 눈물. 지긋이 감은 눈.


매부리코, 달관.


악마들을 무찌르러 금방이라도 출격할 것만 같은... 손 길이.


SD 몽크


어딘가 모르게 크메르 양식을 생각나게 하는... 벽돌을 굽지 않아서인지 습기를 먹어 눌려 탑들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반반해 보이는 것들은 '완벽하게' 시멘트로 복구한 것.



등 돌린 부처


등과 힙 라인의 저 섹시함이란...


부처의 팔 다리에는 근육이 없다. 그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


Wat Mahathat의 스투파.


유적 공원에서 Wat Mahathat만 봐도 전체 유적지의 절반은 본 것 같다.


표정만 봐도 흐뭇한걸.


반석을 받치고 있는 도깨비


반석 밑에 거꾸로 매달린 도마뱀


해골을 든 인간?


골프 코스로 정말... 딱이다.


Wat Sasi.


우유 먹다가 흘렸나?


필라가 제각각.


새집. 가짜 새까지..


구운 거위 모양의 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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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쇼핑하러 간다길래 싸얌 스퀘어에서 황가와 헤어졌다. 앞에 보이는 건물에 커다랗게 적혀있는 MBK가 무슨 뜻일까. 선경을 SK라고 하고, 럭키 골드스타를 LG라고 하듯이 아마도 마분콩을 MBK라고 하다가, 마분콩이란 이름은 SK나 LG처럼 자연소멸할 것 같다. 더워서 움직이기 귀찮아 MBK에서 oishi에 들러 품질에 비해 심하게 비싼 뎀뿌라 라멘(89)을 먹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일식이 먹고 싶다.

태국 전역은 바겐세일 중이다. 의류 매장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690밧 하는 반바지를 50% 세일가인 345밧에 샀다. 디자인은 꽝이지만 품질은 만족스럽다. 닷새째 수영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짓을 이제 그만 하게 된 것이다.

MBK의 SF Cinema City에서 스파이더맨 2(100b)를 봤다. 그저 더위에 바깥에 나가기 싫다. 그래피컬한 스파이더맨의 움직임이 재미있고 동전 빨래방에서 유니폼을 빠는 '영웅'의 일상사가 재미있다. 여하튼 영화의 분위기를 망치고 '영웅'이란 것들을 궁상 떨게 만드는 것들은 항상 여성이다. 그놈에 궁상은 끝이 없다.


불 지르고 왼쪽으로 튀어라?


석쇠에 남녀를 가지런히 올려 구운 후 오른쪽으로 서빙

저녁은 뭘 먹을까. 일식집에서 초밥을 먹자고 결심을 굳히고 Big C 4층의 Yamane에서 오코노미야키(59b)와 마키모노모리(130b)을 시켜 먹었다. 마요네즈를 잔뜩 처바른 오코노미야키는 영 꽝이고 김초밥 맛은 평범했지만 간만에 찰밥을 먹으니 위장이 즐겁다. 그러나 잘 만든 인디카종 쌀밥 맛과 향기좋고 단맛이 강한 자포니카 쌀밥의 맛에 굳이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문화 때문이지. 중국의 일부 지역, 한국, 일본만이 자포니카 종을 소비하는 별종들이다. 태국식 찰밥의 이름이 카우 니여우란 것이 갑자기 생각났고 라오스와 태국 북부에서도 먹었다. 손가락으로 돌돌 뭉쳐 먹는 찰밥의 맛이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월텟 앞에서 미어터지는 2번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9시다. 일반 시내버스 요금은 0.5밧씩 올라 각각 4밧(주야간), 5.5밧(심야)씩 했다. 에어컨 버스의 가격은 올랐다가 내렸다. 황가는 쇼핑한다고 젓가락 몇 개를 사고 7시에 돌아 왔는데 내가 방 열쇠를 가지고 있어 샤워를 못하고 있었다.

숙소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낄낄거리면서 어제 하다만 여행 얘기를 계속 했다. 젊은이들 셋이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지아, 싱가폴을 25일 동안 주파한다는 말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말레이지아에서의 정글 트래킹과 산악 트래킹은 사나이의 피를 끓어 오르게 하지만, 말레이지아를 루트에서 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충고하면서 뒤가 캥겨 멈칫멈칫 했다.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나같은 사람들 몇 명에 둘러 싸여 미주알 고주알 경쟁적으로 자기가 아는 만큼만 늘어놓는 '경험담'을 들어 좋을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여행일진대 가이드북에 나오는 도시 중에서도 특히 그곳을 지나간 경험이 있어 어디를 가고 어디를 빼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 보면 사서 고생하는 여행의 '진미'를 제대로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험자의 그런 말을 듣고 여행을 하다 보면 늘상 뻔한 코스 밖에 안 나온다. 25일 일정 중 거의 10일을 차 안에서 보내게 되는 가엾은 상황이라도 애당초 계획했던 일정대로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 낯선 도시에서 헤메고, 졸다가 엉뚱한 장소에서 내리고, 연속적인 실패로 좌절하고, 피치못할 사고로 일정을 드라마틱하게 변경하게 될 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못한 나머지는 관광과 다를 것이 없다고 봤다. 모험심이 별로 없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문학에서 상상력을 기대하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들 안가는 별난 도시의 시시함과 진부함을 진중히 견디며 문명의 결절점인 도시의 내재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 말이야 그럴듯 하지만 난 피곤해서 그렇게 안 한다.

오전 0시, 아내를 마중나갈 시각. 동대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행객 말을 들어보니 동대문은 오후 10시 30분쯤 문을 닫는단다. 어쩌다 그렇게 된걸까. 카오산이 변하긴 했지만 오전 두 시까지 안 변하는 것 하나 쯤은 남아 있었으면 했는데. 그뿐만 아니라 사원 옆길의 장황한 노상 주점도 사라졌다. 길거리에서 칼부림하고 웩웩 거리며 지나가는 취객들이 못마땅한 나머지 사원에서 철거를 요구했을 지도 모른다. 동대문 역시 취객들의 소란이 귀찮아서 일찌감치 건전하게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대문이 일찍 문을 닫아 하는 수 없이 옆 술집에 앉아 땀냄새, 몸냄새 풀풀 풍기는 서양인들 틈에 끼어 한가하게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미 술을 많이 마신 듯 혀가 꼬부라졌다. 서양인들이 불교 얘기를 하는 것은 언제 들어도 신기했다.

황가와 싱하 한 병(90b) 시켜놓고 히주그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어? 새벽 2시쯤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열시 좀 넘어 도착했는데 승객이 거의 없어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자마자 짐도 바로 찾을 수 있었고 그대로 택시 잡고(200b) 카오산에 왔단다. 그 좋은 59번 버스 놔두고 값비싼 택시는 왜 혼자 타는지, 게다가 150밧에 올 수 있는데... 등등 조잔하게 궁시렁거렸다.

황가에게 줄 선물로 석류즙을 인도에서 사왔다. 아침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여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고, 에스트로겐과 유사하다던지 그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떠들어 댔다. 아침 방송의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건강 코너는 순 구라 같아 보였다. 궁금해서 여기저기 뒤져보니 석류즙이 여성 성인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입증된 적이 없다. 희안한 민간 전승 대로라면 지네나 고양이 먹고 허리가 튼실해졌다는 말도 주부들에게는 먹혀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이 나라의 주부'님'들은 과학적 사고방식과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궁금하지 않은건가?

아내에게 쌀국수를 먹이고 시원한 수박 쥬스를 사주고(그래, 이 맛이야! 라고 감탄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까 화기애애하게 떠들던 무리는 사라졌다. 방 안에서 잡담을 늘어놓다가 야심한데 떠든다고 빈축을 사고 오전 두 시쯤 잠들었다. 팟뽕 갔다 돌아온 옆방 아가씨들이 그때쯤 방에 돌아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과 방 사이가 베니어 판이라 온갖 소리가 다 전도되니까 아내가 왜 이런 방을 잡았냐고 궁시렁 거렸다. 필리핀에서의 '허니문' 첫날밤도 베니어판으로 지은 방에서 잤는데 새삼스럽게 뭘... 에어컨 펑펑 잘 나오고 사위가 조용하고 창문과 발코니까지 달린 방을 카오산에서 300밧에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던가?

7/7

황가는 아침 일찍 공항으로 떠났다. 문을 두들기지 않았고, 일어나기에는 좀 피곤했다. 황가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맘 뿐이다. 일주일 내내 나같은 놈하고 같이 다니느라 된통 걸어다니기만 했다. 택시는 딱 한 번 탔는데, 아가씨들 둘이 있어서 일행이 넷이라 쉐어하니 두당 10밧 정도 밖에 안 나올 것 같아 눈 딱 감고 잡았다. 개중 하일라이트는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숨 막히는 더위에서 길이 1.6km짜리 빠통 비치를 네 번 왕복한 후 저녁에 다시 세번 왕복한 다음 몇 시간 못자고 아침에 일어나 섬에 들어가 한 시간 반을 길을 잃고 헤메다가 간신히 숙소를 잡고 퍼진 일이다. 밥도 안 먹이고 온 사방으로 걸어다녔다. 건강한 육신에 건강한 회의가 깃든다. 어쨌건 미안한 맘 뿐이라(히히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야겠다.

아홉시 조금 넘어 일어나니 할 일이 없다. 그저 방콕을 탈출해야 만사가 지겨워지는 이 망할 방콕병에서 벗어날 것만 같아 어젯밤 그렇게 좋다는 수코타이로 가기로 했다. 가이드북에는 오전 중에 차편이 하나 정도 나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가이드북을 믿지 않았다.

숙소에서 나오는 길에 아내가 이틀 전에 숙소에서 나와 함께 얘기하던 아저씨를 아는 척 한다. 3년 전 베트남에서 만났단다. 베트남?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아내의 기억력은 종종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는 하노이에서 아내에게 고추장을 줬고 아내는 라오스의 방비엥에서 나를 만났다. 방비엥에서 전날 술을 먹고 완전히 뻗어있던 나를 깨워 시장에서 사온 찰밥에 그가 준 고추장을 비벼 줬다. 꿀맛이었다. 우리 셋은 고추장으로 연달아 맺어진 인연인 셈이다. 고추장에 비빈 밥이 영 맛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아내를 다시 안 만났을 것이고 혼인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가 준 맛있는 고추장 때문이다. 그는 오늘 라오스에 간단다. 길지 않은 대화 였지만 이런 사정이 꽤 재미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콘송 머칫 마이(북부 터미널, 이런 단어가 갑자기 메모리에서 팝업되는 것도 놀랍다. 대체 이런 기억들은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것일까) 행 버스 번호를 물었다. 3번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 28번인지 29번 창구에서 수코타이 행 2등 에어컨 버스표를 샀다. 7시간 30분이 걸린다. 터미널에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왔는데 버스표가 있었다. 수코타이가 안되면 아유타야나 깐차나부리, 또는 롭부리, 정 안 되면 치앙마이나 치앙라이로 갈 생각이었다. 이런 '낙천적인'(될대로 되라) 사고방식은 여행이 내게 가져다 준 부작용이자, 덧없는 즐거움이다.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차에 올랐다.

오후 열두시 출발. 태국어로 화장실이 헝남이란 것마저 떠올랐다. 급하면 뭔가 머리속에서 하나씩 떠올랐다. 정말 신묘하다. 아내와 나는 버스 뒷좌석에 불량(?) 청소년처럼 편한 자세로 널부러져 쉴새없이 떠들었다. 오후 7시 30분 수코타이 터미널 도착.

대충 협상하고 좀 많이 준다 싶은 기분으로 쌈러를 타고 20밧에 숙소로 찍어준 TR 게스트하우스까지 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깐차나부리나 아유타야를 말리면서까지 추천한 도시에다가 숙소까지 꼭 거기 가보라고 찍어 주던데, 생글생글 웃는 아가씨나 체크인이 끝나기 무섭게 지도 한 장 펼쳐놓고 수코타이 시내와 유적지를 일일이 설명하는 친절한 주인 아저씨 덕택에 인상이 좋다. 방도 널찍하고 그럭저럭 훌륭했다. 전화하면 버스 터미널에서 픽업까지 해준다던데... 그 점을 잊고 있었다.

짐을 풀고 곧장 밥 먹으러 나갔다. 호텔 식당에 들러 79밧 짜리 부페 수끼 2인분과 싱하 큰 병(65b)을 시켜 먹었다. 재료가 많지 않아 약간 맛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아내는 오랫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서인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참 잘 먹는다. 비가 살살 와서 우산을 쓰고 과일시장에 들러 sallaca(0.5kg, 15b)와 람부탄(1kg, 40b)을 샀다. 망고스틴은 보이지 않았다. 부직포같은 껍데기를 벗기면 시큼한 알맹이가 들어있는 살랏(sallaca)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먹어보는 열대과일이다.

사람들 표정이 순하고, 도시가 작아 마음에 든다. 오랫만에 유적지를 볼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기도 했다. 오래전에 여행중 태국 역사를 공부할 때 얼핏 기억하고 있는 수코타이는 아마도 태국의 최초 왕조였던 것 같다. 태국에 와서 유적지를 구경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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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여행기/Thailand 2004. 7. 6. 16:26
7/5

그래서는 안되는데, 일찍 일어났다. 배편은 오후 1:30에 있고 일어난 시각은 7:00am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노트북 가지고 장난치다가 클리에에 꽂아두었던 렉사 128MB 메모리 스틱을 망가뜨렸다. 포맷을 해야겠는데 인식이 안되니 똥줄이 탔다. 포기했다. 방콕 가서 고치자. 소니는 역시 소니스럽다.

피피섬의 세븐 일레븐 앞에서 만난 친구는 가슴에 한자 세 글자를 문신으로 새겨 놓았다. 그게 무슨 글자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놀랍게도 서양인스럽지 않게 선, 의, 애를 제대로 설명한다. 뭐하는 친구일까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한눈에 태국에서 굴러먹은 히피... 라고 나왔다.

배에 올랐다. 그는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배 꼭대기 '선텐하는 서양인들'을 교묘하게 피한 좋은 자리, 말하자면, 여행 노하우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석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리는 뜬금없이 브라흐마에 관해 얘기했다. 브라흐마는 힌두교에서 가장 인기없는(을) 신인데 우주를 만든 것 외에 그가 딱히 한 일이 없다. 우주를 만든 행위조차 별로 감동적이거나 영웅적이지 않았다. 한무더기의 쓰레기를 생산한 것이 기뻐해야 할 일이라도 되나? 히피가 내 의견에 공감해줘서 기뻤다. 그는 개구리같은 자세로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눈알을 이리저리 히번뜩이고 있었다.

'다빈치 코드' 상권을 다 읽었다. 베스트셀러용으로 제작한 소설인듯 싶은데 내용이 3류스럽고 번역은 꽤나 버벅거렸는데,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비슷한 역자들을 생각해보니 비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모르겠으면 차라리 영어 병기를 해 놔라.

크라비의 선착장은 기억하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다. 선착장이 시 외곽에 위치해 있는데 그 위치가 어디인지 몰라 난감하다. 배에서 뒤늦게 나오는 바람에 썽태우는 이미 떠난 상태고 배에서 내린 찌꺼지들을 어딘가로 날라주고 왕창 뜯어먹을 심산으로 보이는 몇 안되는 삐끼들이 가격 담합을 끝낸 후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크라비 타운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니,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다. 어... 여기가 어딜까. 택시에 30밧을 주면서 내심 속이 쓰렸지만 크라비타운으로 들어섰다.

300밧 짜리 여행자 버스를 거절한 채 버스 터미널에서 에어컨 2등 버스를 황가에게 경험시켜 주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어컨 2등 버스는 일반버스보다 한 등급 위로, 고장이 극히 적고 길 한 가운데서 연료가 떨어져 세워야 하는 일반버스처럼 차가 퍼지거나 뒤에서 밀어야 할 일이 없어 보이는 고급 버스다. 여행사에서 예약하면 300밧에 카오산까지 갈 수 있음에도, 380여밧을 주고 게다가 방콕의 남부 터미널에서 시내 버스를 타야 카오산에 도착하는 귀찮은 코스를 선택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 동안 별로 관광지스럽지 않은 순박함이 아직은 조금쯤 남아있는 크라비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타운의 어떤 인터넷 까페에서 주인장에게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손봐 주었다. 그래서 out of time. 썽태우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나서야 황가가 내일모레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하자면 크라비에 오래전부터 하루쯤은 묵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푸켓이나 파타야와는 달리 이곳에는 그나마 순진한 사람들이 살았고 인사라도 할라치면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는 여자애들도 있었다. 그 재미에 여행하는데 말이다.

섬에 있는 동안 섬 개미들이 내 몸을 물어뜯어 알러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미산이 침투해 부풀어 오른 조그만 몽우리가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개미에게 물리면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옛날에 섬에 있을때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녀석이 말하길, 가끔 sweet body가 있는데 개미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꼬인다는... 달콤해? 약을 사먹어야 겠는데, 크라비 타운에서 이러저런 이유로 시간을 지체하다보니 약국 찾아갈 시간이 없다. 어쨌건 가지고 있던 약을 몇 알 삼켰고 그래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크라비 타운에서 방콕으로. 열두시간 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도착, 30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에 도착. '정글뉴스'를 찾아 파아팃 거리 건너편으로... 새벽의 카오산은 굴러 다니는 송장도 안 보이고 의외로 얌전했다. 죽집이 사라져서 기분이 비참했다. 서양인 둘이 밤새 술을 쳐먹고 비틀거리다가 건널목에서 말을 걸어온다. 한국의 붐붐걸들은 리얼리 썩스라고 말한다. 동감이라 고개를 끄떡이다. 한국의 여자들이 외국인들에게 따먹히든 말든 어린 시절에 느끼던 분노와 증오심은 사라졌다.

정글 뉴스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키가 바깥에 있으니 문을 열고 들어와 쉬고 있으란다. 주변은 주택가로 조용하다. 여덟시 조금 넘어 체크인.

짐을 내려놓고 카오산으로. 해가 떠오르면서 갓 생긴 시장통이 활기를 더해간다. 하지만 옷 가게들은 아직 문을 덜 열어 바지를 살 수 없다. 빠통 해변의 토니 리조트에 혁대를 두고 왔다. 반바지는 혁대가 없으면 지퍼가 자꾸 열리고 그렇잖아도 다 낡아 더 입고 다닐 수 없어 버렸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작은 바지 빼고는 입을 옷이 없어 그후 하루종일 시내에서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수영복 만이 내가 가진 유일하게 제대로 된 옷인 셈.

약국에서 zirtec을 사고 인터넷을 한 시간쯤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황가의 피부에서 발진이 생겨 지르텍을 먹였다. 샤워하고 '다빈치 코드'를 마저 읽었다. so what? 소설에 묻고 싶은 질문이다. 왠 얼간이가 이것저것 억지로 짜맞춰 써놓은 시시껄렁한 소설 같아 뵌다. 퍼즐 대부분이 따분하기 그지 없는 것들. so what? 베르베르의 '뇌'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다. 잘 쓰지도 못하고, 재미 없는 소설인데 베르베르가 썼기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일까?

한두 시간 쯤 자고 일어나 15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가는 길에 길이 막혀 버스에서 내렸다. 마침 내린 곳이 Jim Tomson's house 앞이었다. 내린 김에 들렀다. 짐 톰슨은 실크 수입상인데 어느날 행방불명되었다. 미수금을 갚지 않으려고 토낀 것은 아닐까 싶다. 그에 관한 몇가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별 관심없다.

아내에게 주려고 코끼리 그림이 있는 480밧 짜리 연분홍색 실크 스카프를 샀다. 썩 괜찮은 제품들이 눈에 띄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정작 관광해야 할 톰슨의 집은 입장료가 100밧 씩이나 해서 들어가지 않았다.

피피에서 제비집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황가가 제비집과 샥스핀을 먹고 싶단다. 별 맛이 없음을 미리 경고했다. 걸어서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싸얌까지 갔다. 싸얌의 한 중국식 레스토랑(scala restaurant)에서 무려 800밧이나 하는 샥스핀과 500밧에 종지 하나 달랑 나오는 제비집을 시켜 먹었다. 맛있냐고 물으니 맛있단다. 내가 먹어본 샥스핀 중 지느러미의 양이 가장 많았다. 게살과 계란, 녹말가루로 적당히 얼버무려 양을 늘려놓지도 않았다. 제비집은 그저 그랬다. 제비집이 쥐꼬리 만큼 밖에 없다. 후루룩 쩝쩝 먹어치우고 한끼 식사로 1300밧이라는 거금을 카드로 긁었다. 그다지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황가가 말했다. 다음 식당은 어디에요? 그래 오늘, 내일은 맛따라 길따라 하기로 했다. 뿌 팟뽕 까리(fried crab with curry)를 먹여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롬까지 슬슬 걸어갔다. 뿌 팟뽕 까리를 방콕에서 가장 맛있게 한다는 somboon seafood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 밖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한 시간 동안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노점상에서 만들어준 10밧 짜리 차갑고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솜씨가 예술이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빵 속에 넣어 팔고 있다. 고소한 바베큐 냄새가 거리에 진동했다. 그런것들을 먹고 싶지만 뿌 팟뽕 가리를 먹기 위해 한 시간을 넘게 걸어왔으니, 참자. 최고급 식당 중 하나인 부사라쿰이 근처에 있다. 그곳에 수영복 입고 입장이 가능할지 늘 궁금했다.

실롬까지 가는 길에 소니 간판이 보여 무작정 들어가 메모리를 포맷해 달라고 부탁했다. 클리에에서 정상적으로 인식한다. 기쁘다. 거리에서 이것저것 사 먹었다. 거리음식이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 주고 먹는 음식들보다 항상 맛있었다.

오후 4시를 3분 남겨놓고 솜분식당에 들어갔다. 뿌 팟뽕 까리 두 접시와 작은 밥, 그리고 맥주를 시켜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게를 즐겼다. 이런 저런 기회 때문에 먹어봤지만 이렇게 살이 토실한 게는 처음 봤다. 커리가 너무 진해 게 맛을 압도하지도 않았고 양념과 잘 어울렸다. 생각해보니 상하이 게 요리 스타일이다. 기름이 워낙 많아 끝맛은 약간 느끼한 편. 황가가 말하길, 여자들이 좋아하겠다고. 너가 여자 마음을 알아? 라고 쏘아 붙였다. 절대 모를껄 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알지 라고 생각했다.

15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 로드까지 가는데 1시간 20분이 걸렸다. 태국이 경제난으로 위기에 처한 후 서민들이 신분과시용으로 구매했던 자가용을 다 팔아버려 교통체증이 완화되었다던데, 경제 사정이 나아져서 이 사람들이 다시 신분 과시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숙소로 돌아와 한국인 여행객들과 얘기를 하며 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69년생 아저씨는 날더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는 타잎인 듯 하여 생섬(럼주)를 권하지 않았다고 미안해했다. 그가 제대로 본 것이다. 사람보다는 생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게스트하우스 복도에서 연주씨가 남긴 메시지를 보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열두 시가 조금 넘어 잠들었다.

7/6


아침에 에어컨 룸으로 방을 옮겼다. 황가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자기와 여행 다닐 때는 죽어라고 팬룸만 가더니 중얼중얼... 내 방은 2층 W2, 보라색 침대시트, 큼지막한 창틀, 베란다, 시원한 에어컨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겁먹은 고양이가 베란다의 귀퉁이에서 얼굴만 살며시 내민 채 쳐다보고 있었다. 푸른 눈.

511번 에어컨 버스를 타고 수쿰윗으로 향했다. 날도 더운데 움직이는 일이 귀찮다. 방콕병 증세가 나타난 것 같다.

수쿰윗 쏘이 23을 주욱 올라가면 유명한 베트남 식당인 Le Dalat이 나온다. 그 맞은 편이 Baan Kanita, 2001년, 2003년 태국 요리 부문 베스트로 선정된 식당. 길 하나 건너 쏘이 24에는 명성이 하늘을 찌를 것 같긴 하지만 쥐꼬리만한 음식이 나오는 레몬 그라스가 있다. 레몬 그라스를 가느니 골목 귀퉁이의 꼬치집에서 꼬치를 200개 사 먹고 만다. 세트 메뉴 가격은 2년전 그대로 380밧이었다. 맥주 한 병에 잘 먹고 배를 채웠다. 보기 드문 종류의 소박하지만 기품있고 은근한 맛, 그래서 다시 찾은 곳이지만 태국 음식하면 이 집 음식이 떠올랐다.

TAT 부스에 대고 영어를 정말 유창하게 늘어놓는 아가씨에게 이 근처(쏘이 23)에서 가장 좋은(best) 타이 마사지 가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니 타임 스퀘어 지하를 가르쳐 준다. 타임 스퀘어 지하에 있는 맛사지 가게의 이름은 'best thai massage'였다. -_-;

황가가 오일 맛사지를 받는 동안 나는 이층의 한국인 사장님이 만든듯한 인터넷 까페에 앉아 이렇게 로그를 작성중. 이제 나가자. 나가서 바지를 사자. 수영복을 입고 며칠째 벌건 대낮의 시내를 활보했다. 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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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한 시에 잤다가, 새벽에 잠깐 깨어 여명이 끼어든 새벽을 관람했다. 전깃불 덕택에 원시적인 새벽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침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얼굴만 문대고 어리벙벙한 상태로 숙소에서 일하는 친구를 따라 450밧 짜리 스노클링 투어를 신청했다. 항구 앞에서 사람들이 모이자 커다란 녹색 배를 타고 피피 레를 향해 배가 나아갔다. 피피 돈과 피피 레 사이에서 강한 해류가 흘렀다. 조류라고 해야할지 해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배가 치솟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오른쪽으로 기울기도 했다.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고물이 치켜 올라가기도 했다. 상석에 앉아 있었던 관계로 거진 바이킹 놀이기구에 가까왔다.

사진기나 현금은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장비를 챙겨 입수. 이번 스노클링은 '빵'과 함께 했다. 빵을 부숴서 뿌리니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들었다. 어, 정말 재미있다. 빵을 자꾸만 뿌려 내 주변은 온통 물고기떼로 가득 찼다. 봉투 안에서 빵을 떼어 내려니 더 이상 빵이 없다. 대신 소세지가 잡혔다. 물고기들이 소세지를 좋아할까? 좋아한다. 훨씬 좋아했다. 백 빵 보다 소세지 하나가 더 낫다. 소세지를 흔들며 물고기를 희롱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세지 하나로 한 30분을 잘 놀았다. 소세지가 1/3 토막 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손 바닥으로 소세지를 잡고 살짝 손바닥을 펼쳐 물고기떼가 미친듯이 몰려들 때 재빨리 손가락을 오무려 소세지를 감췄다. 이거 정말 재미있다. 물고기는 지능이 낮은 탓인지 그렇게 놀려대는 데도 쉴 새 없이 몰려 들고 흩어졌다. 물고기떼는 마치 삐끼들처럼 행동했다.

스노클링 한 번, 밥을 먹고, 다시 두 번 더, 각각 한 시간씩 하니 기진맥진했다. 황가는 겁을 집어먹고 스노클링을 하다가 말았다. 입수하자 마자 10-20m 깊이여서 혈압이 솟구치고 팔다리가 뻣뻣해 진단다. 배 위에는 여러 국적의 여자들이 비슷한 이유로 우아하게 썬텐을 하고 있었다. 스노클링은 깡으로 하는 거야. 말했다. 내가 두번째 스노클링을 할 때는 함께하는 여행자가 없었다. 롱 테일 보트에서 뱃사공과 함께 바다에 나가 그냥 막무가내로 떨구고 (살아서) 헤엄쳐 돌아오는 것이었다. 수영은 전혀 할 줄 몰랐고 라이프 자켓이라고 준 것은 어설픈 스티로폼이었다. 어쨌거나 살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 다음부터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캐러비언 씨에서의 스노클링은 개중 가장 멋졌고 가장 무서웠다. 1-2미터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파도의 골과 용마루 사이를 왕복하면서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내팽개쳐지고 수도 없이 튜브로 물이 들어왔고, 목구멍으로 쓰디쓴 바닷물을 넘겼다. 라이프 자켓을 벗으면 무서워서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 절대로 라이프 자켓을 벗지 않았을 뿐더러 핀을 벗어 던지는 등의 만용도 부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의 한계를 안다.

배 갑판에 누워 살이 타들고 가고 있을 때 황가에게 도가 사람들이 단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 얘기해줬다. 어제는 부처 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태국이나 필리핀의 무인도로 가는 왕복 배편을 만들고 현지 여자들을 몇명 사들여 섬에다 풀어놓은 다음 사냥해서 잡아 먹는 계모임에 관한 얘기도 했다.

네번째 스노클링은 하지 않았다. 조류가 거세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내려갔다. 그렇잖아도 지쳤는데 그 조류에서 버틸 재간은 없었다. 스노클링 투어는 오전 열 시에 시작해서 오후 네 시에 끝났다. 세 시간쯤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섯 시간이나 했고, 밥도 주고 물은 무제한 공짜였고, 과일 쪼가리도 몇 개 준다. fin을 빌리려면 별도로 50밧을 내야 할 꺼라고 생각했는데 그 비용도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450밧에 여섯 시간을 잘 놀았으면 괜찮은 투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선실로 몰아놓고 우리가 투어를 할 동안 비디오를 찍던 친구가 찍었던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DV로 찍은 것으로 화질이 생생하고 스노클링 하면서도 미처 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말미잘, 산호 사이를 오가는 물고기들, 바닷속에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여러 생물체들이 그야말로 총천연색으로 하늘거리는 멋진 비디오였다. 500밧에 cd로 떠 준단다. 필요없다. 내가 나오는 장면은 고작 두 컷 뿐이었고 소세지를 든 채 대마왕처럼 물고기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기가 막히게 멋진 모습은 누락되었다.


물 빠진 해변

시장통에서 40밧 짜리 쇠고기 국수를 먹고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입구에서 어제 방을 안내해준 직원이 불러 세웠다. 오늘 방값을 지불하란다. 어제 이틀치 600밧 다 줬잖아? 아니란다. 600밧은 하루치 방값이란다. 무슨 소리냐, 너가 어제 방 하나에 300밧이라서 여기 온 거잖아. 코 피피에서 방 안에 냉장고, 온수를 제공하고, 해변에서 이렇게 가까운 숙소가 300밧 짜리는 없고, 두당 300밧이란다. 어제 분명히 너가 그렇게 말해서 따라온 거지 안 그랬으면 내가 미쳤다고 따라오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영수증을 보여줬다. 영수증에는 어제 하루치 방값 600밧을 지불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가 얼굴을 쳐다 봤다. 황가는 숙소를 잡아본 적이 없다. 지불할 때 확인을 안 한 것이다. 직원의 말이 괘씸해서 더 따져볼까 하다가 600밧 더 주고 그냥 숙소로 걸어갔다.

여행사에 들러 200밧 짜리 크라비행 배편을 예약했다. 해변을 가로질러 뷰 포인트로 올라갔다. 해가 지는 모습이나 구경하자 싶어서 였다. 다들 올라가는 계단으로 안 가고 반대쪽 로달람 비치 쪽으로 난 비스듬한 산등성이를 기어 올라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해가 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사진을 다 찍은 태국인들이 먼저 내려가고, 그 다음으로 사진을 다 찍고 볼일을 마친 일본인들이 내려갔다. 지평선에 떠 있는 구름의 형태로 보건대 오늘 '끝내주는' 석양을 구경하기는 다 글렀다고 생각한 우리도 해가 지기 5분 전에 내려왔다. '로맨틱' 운운하며 끝내 남아 있는 떨거지들도 있었다. 석양은 필리핀의 보라카이가 드라마틱하고 멋졌다. 아무래도 보라카이가 석양 만큼은 최고같다.



내려오는 길에 '활달하게' 뛰어가는 무슬림 아가씨가 있었다. 어쩌다가 말을 해 보니 난생 처음 보는 '타이 무슬림'이었다. 타이 무슬림 여자는 남자와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나 보다, 무척 신기했다.

다시 시장통에 들렀다. 황가에게 해변의 해산물 요리를 사주기는 커녕 시장통에서 밥 사다가 숙소에서 먹는 궁상을 차마 더 하기에는 미안한 나머지 혹시나 해서 수년 전 추억의 맛집에 들렀다. 음식은 여전히 맛있다. 주인은 여전히 친절했고 그 친절한 주인은 여전히 날 보고 '곤니찌와'라고 말했다. 바나나 쉐이크 25밧 짜리 2개, 코코넛 밀크로 만든 커리 50밧, 플레인 라이스 10밧, 카오 팟 까이 40밧 이렇게 해서 135밧을 지불했다. 주인은 15밧을 덜 계산했다. 오래오래 추억의 맛집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8시 30분. 냉장고에는 물병만 다섯개가 있었다.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쉬었다. 살은 끔찍하게도 많이 탔다. 더 뭔가를 하기에는 지친 하루다.

'다빈치 코드'를 읽기 시작. 나는 책 한 권 들고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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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04. 7. 1. 23:11
별일 없는 관계로 여행 블로그에 한동안 작성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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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에서

여행기/Thailand 2004. 7. 1. 18:43
7/2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아저씨 말을 믿어 무궁한 옵션을 스스로 제약한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토니 리조트 맞은편에는 아침 포함 400밧 짜리 숙소가 있었다. 선라이즈 직원이 말한, 싸다는 해산물 가게에서 오징어 두 마리, 새우 네 마리, 생선 한 마리, 카우 팟 둘, 맥주 한 병을 먹고 무려 900밧을 냈다. 사실 직원이 말 못한 사실도 더 있었는데 푸켓에 가면 먹을만한 음식이 솜찟 국수라는 것. 그가 일러준 무에 타이 경기장은 옛날에 사라졌고 한국 식당 주인에게 물어서 찾아간 무에타이 경기장도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타이거 바에서 한 숨 돌릴 때까지 주 도로를 두 번 왕복했는데, 약 한 시간 반 동안 거리를 헤멘 셈이고 그 동안 쏟아지는 비를 피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겨 다녔다. 아무튼 그 '잘난' 배낭여행자 주제에 그저 좀 귀찮다는 이유로 '관광사 직원' 말을 듣고 있었으니 잘될 일이 없었다.

토니 리조트에 바우처를 주고 방을 잡을 때 아침 식사 티켓을 주지 않아, 왠지 이상해서 방으로 돌아갈 때 프론트에 아침을 언제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티켓을 슬며시 준다. 피곤에 지쳐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잔 하고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 밤 열시쯤, 빠통 비치의 끝내주는 나이트라이프는 완전 무시한 채 잠이 든 것이다. 황가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사실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봉쑈, 게이바, 사이몬 쑈, 이런 것들은 이제 졸업한 것이다. 선라이즈 직원 말에 따르면(그는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췄다) 아가씨는 1500밧이란다. 어? 방콕은 2000밧인데? 글쎄다. 예전에 왔을 때도 빠통 비치에 괜찮은 계집은 통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방콕의 나나 플라자가 나은 것 같다. 콧구멍이 돼지처럼 벌렁 제껴지고 바싹 마르고 새까맣고 조그만 남부 아가씨들보다는 방콕 북부를 비롯한 태국 전역에서 제발로 온 예쁜 아가씨들이 많으니까. 북부 유럽 놈들은 바통의 그런 아가씨들에 환장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네들의 미적 기준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저렇게 못생긴 여자를 옆에 끼고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방안의 알람 시계는 고장난 상태였고 두 번이나 부탁했던 모닝콜은 울리지 않았다. 픽업 봉고가 온다는 바로 그 시각이라 허겁지겁 짐을 꾸렸다. 기껏 얻어온 티켓으로 아침을 챙겨먹기는 커녕, 세수도 하지 못하고 봉고에 올랐으니 그 시각이 7시 30분. 봉고는 5분 동안 지체했다. 그 와중에도 리조트 직원들은 방 키를 들고 냉장고에서 뭐 먹고 계산을 덜 한 것이 있나 뒤지러 방으로 올라갔다. 바쁘다 바뻐.

봉고 안에는 한국인 부부 둘과 중국인 부부가 타고 있었다. 한 팀은 푸켓에 온 적이 있거나 어디서 얻은 정보(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가 아닐까?)를 다른 부부에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스노클링 투어 하면 '정가'가 600밧이니까 알아서 잘 깎아보라고 정성어린 충고를 해 준다. 나도 한 마디 할까 하다가 괜히 친한 척 할까봐, 잘 알지도 못하는 피피섬에 관해 이것 저것 물을까봐 관뒀다; 스노클링 투어는 정가가 450밧이고 점심, 물, 과일 포함이고, 큰 배로 가는 편이 작은 배로 가서 작열하는 햇살 아래 고생하는 것보다 낫다 라고.

파도가 거칠어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배멀미로 고생하거나 토할 것만 같은 상황을 꾹 참고 버티고 있었다. 의외로 거친 파도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파도가 높아 피피 레는 갈 수 없다고 한다. 거친 파도 위에 먹구름이 삽시간에 드리우고 폭우가 쏟아졌다.

돌아가는 길의 파도는 조류를 거슬러 가기 때문에 더 거칠텐데 사람들이 견딜 수 있을까? 황가에게 크라비로 가자고 말했지만 그도 배멀미 탓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지 나중에... 라고 말한다.


피피 섬의 톤사이 만에 이르자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이 고깃배들이 왜 여기있나 싶어 의아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피피섬에 다다르자 마자 황가를 scv처럼 섬 이곳저곳으로 보내 숙소값을 알아보라고 하고 나는 세븐 일레븐 옆에 앉아 삐끼들과 노가리를 깠다. 황가가 가이드북에서 찝은 숙소는 짚시2 게스트 하우스였다. 싸긴 싼데 벌레가 우글거릴 것 같고 내부가 어두울 것만 같다. 손톱깍기를 꺼내 발톱을 깎으면서 숙소 가격을 흥정했다. 어찌된 일인지 황가는 한 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숙소 열곳은 둘러 보라고 했더니 정말 그러나 보다. 한가하게 앉아 있다가 온수가 나오고 냉장고가 있는 안다만 리조트를 300에 합의했고 그 정도면 적당하다 싶었는데 황가는 여전히 안 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돌아온 SCV는 섬을 한 바퀴 돌다가 길을 잃고 헤멨단다. 어쨌거나 짐을 픽업해서 핫 야오의 숙소로 향했다. 숙소가 그럴듯 했다. 아니 이런 숙소를 300밧에 얻어 내심 뛸듯이 기뻤다. 황가를 괜히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앉아 있다가 가격을 물어보고 올껄 그랬구나 싶다. 난 정말 나쁜 놈인 것 같다.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 모기가 없다는 증거일까?


숙소에서 해변까지 걸어서 15초 가량 걸렸다. 경험한 가장 해변이 가까웠던 숙소는 97년 꼬 따오에서 잡았던 이름모를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바로 앞이 바다였다. 그후 그런 숙소는 다시 보지 못했다.

식당을 찾아 다녔다. 내 기억에 피피호텔 뒷편에 로칼리 식당이 있다. 찾다 지칠 무렵 나타났다. 어제 900밧 씩이나 주고도 한심한 식사를 한 탓에 다운시프트 웰빙 트래블 한답시고 스마트 애스인 척 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120밧에 카우 팟 꿈, 카우 팟 까이 각각 한 접시, 팟씨우 한 접시를 먹었다. 새우가 매우 싱싱했다. 섬이라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 끼 40밧 짜리 식사는 어쩔 수 없는 가격이다. 물론 남 깽 쁠라우(얼음물)는 공짜였다. 푸켓 사람들이 돈에 미쳐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뭍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과일을 좀 샀다. 황가는 어제 람부탄과 망고, 그리고 뭔가 열대과일을 먹었다. 오늘은 어제 빠통 해변에서 태운 피부가 땡긴다고 해서 엄청나게 비싼 애프터 선 로션과 선 블럭 크림을 샀다.

할 일이 없어 해변에 누워 있다가 비를 맞거나 고양이와 놀다가 비를 맞거나 숙소 의자에 앉아 오는 비를 쳐다 보았다. 황가는 책을 읽다가 자거나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자빠져 잤다.


지나가던 고양이를 불러 놀았다. '야옹'이라고 말하면 '야옹'이라고 대꾸했다. 애꾸 고양이도 있었는데 그 놈은 눈을 잃은 후 정신 상태가 이상해진 탓인지 '야옹'이라고 말하면 묵묵무답이다.


숙소에 고양이들을 재웠다. 검은 놈은 나이가 어려 어리석다.


해변에 룽기를 깔고 누워 '칼의 노래'를 읽었다.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해변에 먹구름이 밀려 왔다. 곧 광기어린 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후 3시가 지나자 썰물 때문에 톤사이 만의 물이 만 바깥쪽 저 멀리로 밀려갔다. 그제서야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고깃배들이 왜 그곳에 정박해 있나, 이유를 알았다.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따라 만 입구까지 걸었다. 해변의 모래가 찰져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한 시간쯤 걷다가 조개를 잡는 아가씨들과 노닥거렸다. 옷이 바닷물에 흠뻑 젖었다.

오후 6시까지 책을 마저 다 읽고 저녁 꺼리를 준비하려고 해변에서 일어섰다. 시장통에서 10밧 짜리 밥을 둘 사고 10밧 짜리 반찬을 둘 사고 Took BBQ에서 새우 꼬치와 닭똥집 튀김을 각각 2개씩 90밧에, 내일 스노클링할 때 쓸 10밧 짜리 고기 먹이(빵 찌꺼기)를 제과점에서 사고 세븐 일레븐에서 50밧 짜리 창 맥주와 85밧 짜리 메콩 위스키를 샀다. 뭘 사건 비싸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냉장고에 넣어둔 코코넛을 20밧에 팔았다. 섬 여기 저기 그저 매달린 채 할 일 없이 익어가는 그것들이 이제는 돈을 받고 판매되는 상품이 된 것이다. 워낙 자연적인 수순인지라 안타깝지 않았다. '칼의 노래'를 빌어서 표현하면, (나는 자본주의의)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없다.

프론트에 부탁해서 숟가락을 얻었다. 왠지 장기여행자스러운 이런 궁상이 황가에게 미안스러웠다. 하지만 어제 식으로 돈을 펑펑 쓰게 되면 일주일에 이삼십만원은 우습게 깨질 것이다. 웰빙 여행의 공허함을 견딜 수 없다.

밥은 몹시 맛있었다. 비단 20밧에 한끼를 해결했다는 담백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원한 코코넛 수액을 반쯤 먹어 없애고 그 자리에 메콩을 반쯤 부었다. 옛날에 고씨가 그렇게 만들어서 참 희안한 칵테일이다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마시는 놈들이 있었다. 해적들은 럼을 코코넛과 섞어 마셨다. 수상쩍은 맛 때문에 다 비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알딸딸했다. 해변에 누워 있다보니 밀물이 밀려와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고양이들이 식사를 함께 했다. 메콩 코코넛 칵테일을 빨대로 빨아 먹었더니 몹시 알딸딸했다.

이 소상한 일지는 이순신이 난중일지를 적던 그 시절의 정밀함에 필적했다. 그러나 내가 적는 이 한푼 어치도 안 되는 보잘것 없는 사실들의 기록은, 베어버릴 적도, 수사의 공허함도, 죽음을 향해 진군하는 삶의 덤덤한 묘사하고도 하등 관계되지 않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 그의 문장 스타일을 하나하나씩 깨우쳐 갈수록, 그의 글에서 푹력에 버금가는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도 함께 깨우쳐 갔다. 그의 글에 상을 준 심사위원들은 그의 글을 젊다고 표현했다. 그렇게나 잘 만든 음식에서 나는 지랄스러운 청춘을 느끼지 못했다.

밥 먹고 해변에서 밀물이 발바닥을 희롱할 때까지 누워 궁상을 떨었다. 시간의 느림, 정지를 가끔씩 체험했는데 이번에도 그것이 보였다. 신체와 마음의 시간이 느려지면 사물의 상대적인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럴 때면 달의 움직임이 보였다. 달이 움직인다. 지금쯤 꼬 팡안에서는 LSD를 빨면서 미쳐 돌아가지 않을까? 지금쯤 치앙마이 트래킹의 한 지점에 머문 여행자들을 아편으로 꼬드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달이 달 같지 않고 바다가 바다같지 않고 해변이 해변같지 않은 무의미한 사진.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돌아오니 열시가 넘었다. 열시 반부터 불쑈를 숙소 바로 앞의 히피 바에서 한다던데 별로 구경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봉 양쪽에 불을 붙이고 빙글빙글 돌리는 묘기인데 그런 걸 봐서 뭘 하나, 지겹기만 하지. 바에 들러 술을 마시려다가 황가를 내버려두고 가는 것도 왠지 꺼림직스러워 관뒀다. 바와 몇몇 가게를 제외하고 섬의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참, 평화로운 하루였다. 이 맛에 섬에 들어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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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비닐 봉투에 담은 쥬스를 들고 입가에 Krong Tip을 물고 카오산 거리를 돌아다니던 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다른 많은 것들은 바뀌었다.

황가는 어디로 가야할 지 갈팡질팡 했다. 처음에는 라오스 일주를 계획했으나 시간이 없어 포기, 그 다음에는 북부 트레킹과 남부 섬 일정을 계획했지만 편히 쉴 곳을 간절히 원하는 직장인에게는 맞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푸켓을 거쳐 꼬 피피에 들러 며칠 푸욱 쉬다 오는 일정으로 다시 잡았다. 나야 뭐 아무데나 가도 상관없다. 여기가 거기같고 저기가 여기 같았다. 아무데나 가서 아무렇게나 돈을 쓰다 보면 날짜란 흘러가게 마련 아니었던가.

비행기를 탈 때 짐 무게를 달아보니 5kg이 나왔다. 배낭 무게만 해도 1-2kg은 나갈텐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다. 티켓은 타이항공 것이지만 아시아나 부스 옆에서 출입국 신고서를 레이저 프린터로 깔끔하게 출력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으로 태국음식이 나왔고 간만에 먹은 탓인지 먹자 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갔다. 태국의 첫 맛은 늘 설사였다. 태국 음식에 사용되는 향신료 때문이 아닐까 싶다.

28만원짜리 항공권은 97년도에나 나올법한 가격인데다 방학이 겹쳐 기내에는 외국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국서류는 말 그대로 20초도 안되 다 채워 넣었다. 지루한 비행 후 돈 무앙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서둘러 입국 수속을 마쳤다. 이력이 생긴 탓인지 저절로, 퍼스트클래스보다 늦게 나오고도 퍼스트 클래스 보다 일찍 나왔다. ATM에서 카드로 3000밧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는 현금(달라)를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공항 오른쪽으로 주욱 가서 5밧 짜리 59번 버스를 탔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엄청나게 많은 한국인들 중 59번 버스를 타고 카오산으로 가는 작자들은 나와 황가, 이름모를 한국인 한 명 뿐이었다. 혹시 그들은 그 버스가 24시간 운행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나저나 그들이 한결같이 들고 다니는 '헬로 태국' 분홍색 책은 2년 전의 것이고 정보 대부분이 out of date된 것들이다. 인세 문제로 저자가 더 이상 책을 업데이트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이라면 한국 출판사는 변함없이 한심해 보였다.

버스는 후덥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광포하게 한 시간을 달려 민주 기념탑, 복권청 맞은편에서 내렸다. 카오산으로 걸어갔다. 카오산 거리는 2년 새에 많이 바뀌었다. 마치... 바뀐 인사동 같았다.

숙소 찾기를 황가에게 맡겼다. 홍익여행사는 자리를 옮겼고 만남의 광장도 자리를 옮겼다. 사원 뒤로 돌아 홍익인간 골목으로 들어가 peachy guest house에서 직원을 깨워 160밧 짜리 팬 더블룸을 잡으니 새벽 2시 10분. 그나마 그 동네에서 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땅히 술 한 잔 할 곳이 없어 닭꼬치 셋과 맥주 두 병을 사들고 숙소로 다시 돌아와 샤워하고 마셨다. 눈을 붙일 때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이다.


Peachy Guesthouse. 팬이 잘 안돌았지만 자는 중에는 그리 덥지 않았다.


6/30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나 항공기 날짜를 바꾸러 홍익 여행사에 들렀다. 홍익여행사에는 한국인들이 바글거렸다. 저 줄을 기다리려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직접 타이항공에 전화를 걸어 항공권 일자를 바꾸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타이항공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TAT에 들러 지도를 얻고 타이항공까지 걸어갔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홍익여행사에서 이전에 이집트 다합에서 만난 적이 있는 한국인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는 최근에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고 경찰서에서 몇 시간을 보냈으며 태국 방송에도 나왔다고 한다. 여전히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다. 만나고 다시 만나고 또 만나고 카오산 같은 곳에서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 여행자들의 운명 같은 것일까? 아무래도 비슷한 고생을 한 동병상련의 감정 탓일께다. 다른 한국인들과는 사실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욕을 먹던 만남의 광장이 없어진 탓에 사람 만나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식당을 하고 있는 홍익인간에 앉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물어보며 죽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영업방해다. 그래서 그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홍익인간 역시 한국인이 적었을 당시에는 재밌는 곳이었을 것이다. 만남의 광장 사장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나 들어와 다다미방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을 참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기 뛰는 여행자들이 잘난척하며 영웅담? 고생담?을 늘어놓으며 여자애들에게 껄떡대는 모습이나 노련한 경험?으로 그들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풀고 날로 먹으려는 수작질을 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닐진대, 만남의 광장 사장만이 유달리 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예쁜 아가씨들에게 껄떡댄다고 볼 수도 없었고 여행 나와 제대로 마음 단속 하지 못하는 여자애들에게 똑같은 책임전가를 한다는 것을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쨌던 구설수는 참 무서운 것이다. 수년 전 악당처럼 생긴 만남의 광장 사장이 참담한 표정으로 내게 묻던 일이 생각났다. 여기 있는 컴퓨터 전부가 바이러스 먹어서 인터넷은 못해. 누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30번 버스를 타고 콘송 사이따이(남부터미널; 이름을 잊은 줄 알았는데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에 들러 푸켓행 VIP 24석 버스를 755밧 주고 예약했다. 이렇게 비싼 버스는 처음 타 본다. 예전에 푸켓에 갈 때는, 아니 태국의 어디를 가던 창문을 열고 다니며 온갖 지점에서 서는 일반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세수를 하면서 코를 풀면 콧구멍에서 검정색 땟국물이 나왔다. 일반 버스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타는 버스라서 여행자들이 잘 타지 않았는데 뒷자석에 대자로 누워 잠자기 좋았다. 가끔은 탑승한 현지인들이 위스키를 권해 주기도 했고 야심한 밤에 기어 올라와 흔들어 깨우는 잡상인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 그런 짓은 다시 못 하겠다.

다시 511번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이동. 수쿰윗의 반 카니타에 가서 태국 궁중식을 먹어보려 했지만 오후 두 시가 넘어 포기했다. 가게 문을 닫았을 것이다. 대신 월텟의 MK restaurant에서 오랫만에 수끼를 먹었다.


World Trade Center는 World Plaza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맞은편에 Gaysorn 백화점이 공사를 마치고 새로 개장했다. 센과 이세탄 백화점 앞에는 밤이면 밴드 연주를 하며 맥주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노천식당이 생겼다. 지나가는 태국인 중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고 그들은 2년 전에 볼 때보다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 급속한 문명화의 부작용일께다. :)

카오산으로 돌아와 tanning oil과 mosquito repelant를 구입하고 한 시간쯤 인터넷을 했다. 홍익 여행사에 맡긴 짐을 찾아 남부 터미널에 가서 버스에 올랐다. 난생 처음으로 태국에서 VIP 버스를 타 본다. 상당히 넓은 좌석이고 항공기보다 편한 리클라이닝 시트다. 들어가자 마자 빵 세트와 우유, 물 따위를 나눠주었다.


남부터미널로 가는 도중 시내 버스 안에서. 왼쪽의 서 있는 작자는 차장. 버스에 차장과 운전수 체계로 운영하는 것이 운전수 혼자 돈 받고 운전도 하는 한국식 시스템보다 나아 보인다. 비록 비용은 더 들겠지만 운전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새벽 한 시쯤 버스가 멎고 VIP 전용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감격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VIP 버스구나 싶었다. 버스에서는 비디오로 Torque를 틀어주었다. 뒤척이면서 자다가 깨보니 푸켓에 도착했다. 7:30pm 출발해서 6:30am 도착.

7/1

어젯밤 인터넷으로 뒤져 알아낸 선라이즈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황가는 까말라 비치에 가길 원했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마땅한 정보가 없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물어볼 생각이었다. 방은 3일치 예약이 꽉 찼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게스트하우스의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이도 배낭여행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저렴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까말라 비치에 fantasea가 있다는 것 정도? 빠통 해변의 지도 위에 갈만한 곳을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푸켓에는 볼꺼리가 없어 비치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글쎄다. 볼 것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수년 전에 푸켓타운에 묵을 때는 150밧에 혼자서 샤워가 달린 더블룸을 잡았다. 아마 그때 숙소에서 베트남 상이용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숙소를 푸켓타운에 잡아두면 그곳을 기지삼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 좋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비치에서 아무리 싼 숙소라도 400-500밧 이상이 나온다. 그가 권해준 토니 리조트는 게스트하우스가 아니었고 무려 1100밧이나 했다. 황가의 의향을 물으니 서슴없이 그곳에 묵잔다. 직원이 바우쳐를 뽑아올 동안 이번에도 역시 관광이 되는구나 탄식했다. 푸켓타운에 볼꺼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푸켓타운의 시장이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중국 화교 및 이슬람의 영향, 씨 짚시들, 거기에 포르투갈 양식의 건물 등등을 나름대로 흥미롭게 관찰할 수도 있을텐데... 싸게하려면 얼마든지 싸게 할 수도... 모르겠다.

선라이즈 사장님이 우리를 국수집 까지 태워 주셨다. 25밧 짜리 바미 남을 시켜 먹었다. 상당히 훌륭한 맛이다. 라농 거리에서 빠통 비치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옆에 앉아있던 할마시가 친절하게도 버스는 두당 15밧이라고 가르쳐준다. 썽태우는 20밧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시내에서 중국인들처럼 중국식 아침을 먹을 수도 있고 딤섬도 먹을 수 있다는 것, 시장통에서 밥과 반찬을 사먹던,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버스가 빠통 비치에 접근해 가는 동안 집채만한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좆됐다' 라고 중얼거렸다. 피부를 올리브 빛으로 태우려는 열망으로 이곳에 온 황가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숙소는 상당히 좋아보였다.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를 하니 피곤이 몰려왔다.



간단히 짐을 챙겨 해변에 나갔다. 의자 하나 빌리는데 50밧, 태닝 오일을 몸에 바르고 누웠다. 하늘이 수시로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가끔 비가 오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피부를 태웠다. 갑자기 비가 와서 해변을 떠났다. 첫번째 ATM에서 돈을 뽑는데 실패, 그 옆의 것에서는 다행히 돈을 뽑을 수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져 숙소로 황급히 대피했다. 비는 한 시간 내내 미친듯이 내리다가 말끔하게 개었다. 지구 온난화에 발맞춰 태국의 우기도 점점 지랄스러워 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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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기 전

잡기 2004. 6. 29. 15:25
김선일이 죽은 것 때문에 시끄러워 보인다. 세금을 내도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다. 외교부에 등신들만 모아 놓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대사관이 하는 일이란 한국에서 나온 관료를 접대하거나, 그 나라에 주재한 한국인들 등을 쳐먹거나 맛집을 찾아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것 등으로 기억된다. 외국 갔을 때 힘이 되주지 못하는 놈들이니까, 이 나라 국민은 자력갱생 해야 할 것이다. 애당초 정부에 바라는 것이 없으니 지금 와서 유난히 아쉬울 것도, 김선일씨 목이 잘린 것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억울하게 죽은 그 친구에게 조의를 보일 이유나, 공분할 이유도 없었다. 지금 분노하는 사람들은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여태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김선일씨가 가엾은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외칠 때도 죽을 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50억이라? 목숨값 한 번 비싸군. 그것도 세금으로 나가겠지.

이제부터 휴가가 시작된다. 휴가... 라고 할 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가 버리는 것인데. 방금 짐을 꾸렸다. 입고 있는 옷을 빼고 한 벌만 여벌로 준비했다. 트레킹 때문에 오버 트라우저도 챙겼다. 태국은 이번주 내내 비가 오고 번개가 칠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치앙마이에서 잠깐 하게 될 트레킹이 상당히 멋질 것 같다.

서울 역사 박물관에 들러 앙코르와트 보물전을 먼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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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본 글

잡기 2004. 6. 28. 03:03
어느 여행가가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면서 원주민의 도움을 받았다. 첫 날, 아프리카인들은 너무 열심히 먼 길을 달려와 주었다. 그는 목적지까지 빠른 시일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몹시 기뻤다. 그런데 그 다음날, 원주민들은 도무지 길을 나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통역인을 통해 이유를 묻자 말했다. "어제 육체가 너무 빨리 달려와서 아직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다. 그들은 영혼을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당신의 영혼 역시 지금 회복을 갈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 송광택 / 방송인. 독서운동가

감상평: 아아, 그들의 말이 촉촉하게 가슴을 적셔 오는구나. 라고 말할 줄 알았지? 뭔 개소리야.

며칠 동안 출장을 갔다. 정신없이 일했다.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야채를 그러모아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를 대충 다 비웠다. 지난 몇 주 동안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짓도 오래하다 보니 점점 나아지는구나 싶었다.

여권용 사진을 찍었고(만원) 동네에서 모자를 하나 사고(만원) 종로5가에서 LED 플래시(오천원)와 수영타올(삼천원)과 손톱깍이 세트(천원), 10년 동안 배터리가 닳지 않는다는 듀얼타임 손목시계(만오천원)를 샀다. 이런걸 굳이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라오스 코스를 잡으며 일정을 계산하다가 라오스에 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가한테 맡겨봤자 일정을 짜 본 적이 없으니 잘 할 것 같지는 않고, 방콕에 도착하면 각자 다니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부 가서 소수민족 마을을 전전하는 편이 아무래도 취향에 맞았다.

아아, 내 영혼은 침대에 이미 누워 있고 몸뚱이는 이렇게 따분한 타이핑을 자동적으로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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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ed reality

잡기 2004. 6. 22. 23:24
어젯밤에 맥주 마시고 아침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몸이 약해졌다는 것, 의지에 따라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서글프기 짝이 없다. 가사가 거시기한게 참 계집애스럽지만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네들과 함께 눈물을 닦으면서; Nicole Flieg, A Little Peace (3:00) -- 우리는 바람 속에 나부끼는 깃털 같은 존재지요. 백조의 깃털일까? 참새, 닭들과 마찬가지로 백조도 조류다.

이전에 있던 메인스트림(제1금융권) 통장을 모두 정리해서 MMF와 상호저축은행으로 재분배했다. MMF의 수익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상호저축은행은 시중 이율이 3.5%를 유지하고 있을 때 1년 약정 6.5%라는 이율이 돋보였다. 신추가금전신탁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 투자성향은 '중립적'이 아니라... 아무도 알 수 없다. 휴면 계좌만 정리했는데도 10여만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가방의 지퍼를 수리했다. 사물에 아무런 애정이나 집착을 보인 적이 없는 내가 이 가방을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자기 아들이 사이버 검색 뭔가를 학교 숙제로 받았다며 1999년 미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다섯 문제 중 하나란다. 찾다가 못 찾아서 날더러 대신 찾아달라고 하던데, 지식인한테 물어보면 될 것을 왜 내게 물을까 의아했다. 찾아주기야 했지만 지각있는 어른이 왜 애들 숙제를 대신 해주는 것이고, 그런 류의 인터넷 검색은 30이 넘어 안팎으로 맛이 가고 만사가 시들해진 사람보다 똘똘한 애들이 더 잘해내지 않을까 싶었다. 술집에서 술 먹다 말고 4대 sf상이 뭐냐고 묻길래 의아스럽긴 하지만 네 가지 유명한 상을 말해 줬더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자기 마누라한테 전화를 해서 지식인을 뒤져 보더니 내 말이 맞아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묵묵무답. 지식을 인터넷에 방만하게 분산해 놓은 상태라 머리속에는 레퍼런스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생각을 통해 재조립, 재생산할 수 있는 재료가 너무나 적어 뜻밖에도 입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는 왠지 개소리로 들렸다. 또는, 이미 생각이 끝난 것들은 최종 결론만을 알고 있기에 그 과정이 지닌 무수한 선택지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잃어버린 지식은 다시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들 모두가 사실은 단 한 가지, 삶을 목적으로 전용되어 왔던 것이라도 이제는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설명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지금의 '지식'이나 '정보'가 호사꺼리인지라. -- 이를테면, 김씨 아저씨가 날더러 Ted Chiang의 소설 중 뭘 읽었냐고 물었다. 읽긴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재미가 없으면 잊어버렸다. 더 기억해서 뭣하나. 값비싸고 오류가 잦은데다 용량이 제한적인 메모리를 쓸데없는 것들로 채워둘 수는 없는 형편이라.

술집에서 만난 아저씨와 얘기하다가 레이저 포인터를 얼떨결에 받았다. 수입해서 판매하다가 쫄딱 망했다고 한다. 3km라는 믿을 수 없는 통달거리를 자랑한다던데, 확산폭을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한 그것의 참용도는 i love you 필터를 끼우고 63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한강에 i love you라는 글자를 새겨 옆에 있는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것인데, 술집에 앉아있던 아가씨들은 그런 것에 시큰둥했다.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방비엔의 알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마침 술집에 계셨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따리의 넘버쓰리 gh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는 말을 들었다. 따리에서 빈둥거리며 사장님과 여러가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말 타고 돌아다니다가 최근에 다리가 부러졌다나? 후훗. 따리에서 창산까지 말 타고 기어 올라갔던 기억이 났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개울가에서 조선족 아저씨와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다. 비단 아저씨도 가게에 들르는 것 같다. 진정한 사나이, 아니 미친놈만 갈 것 같은 타클라마칸 횡단을 같이 해보자고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었다. 악마의 발톱처럼 피부를 할퀴는 모래바람 속에서 비틀비틀 낙타를 몰고가는...

밀린 영화들 보기. 투모로우, 페이첵, 기타 등등. 얼마전 TV의 출발 비디오여행인지 하는 프로그램에서 투모로우의 '작품 해설' 겸 예고편을 미리 봐서인지 딱하게도 더 볼 것이 없었다. 하품을 한참 하다가 나왔다. 달말에 상영할 i, robot의 예고편을 보니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킬빌, 킬빌2는 영 재미가 없었고 맨 온 파이어하고 스파이더맨2를 기다리는 중. 오늘은 헬보이와 데스티네이션2를 보다가 자기로. 꿀꿀한 노래는 집어치우고, England, Garden Shed, Midnight Madness (6:59) -- 언제 들어도 지겹지 않은 몇 안되는 (내 생각에) 프로그레시브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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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

잡기 2004. 6. 20. 23:31
hero 보다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만 뒀다. 꽤 오랫동안 일본 애니와 드라마를 봐온 것 같은데, 왜 그걸 자꾸 보나 모르겠다. 다운로드에 48시간 걸리고 보는데 대략 10시간은 걸리는 '24시'를 보기 시작. 콩가루 같은 counter terrorism unit의 주 업무는 일하는 척 하면서 눈알을 굴려 동료, 상사의 상태를 살핀 후 그를 고발하거나 모함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료 끼리 죽이기도 한다.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신 영웅 잭 바우어를 제외한 나머지 떨거지들의 주 업무는 그의 소재 파악을 하거나 그가 뒤에 남긴 시체를 정리해주는 것이다. 놀랍게도 1,2,3부에 등장하는 모든 악당들은 하나같이 순하게 생겼는데, 개중 돋보이는 악당은 잭 바우어의 딸인 킴 바우어였다. 그 계집애만 나타나면 드라마는 갑자기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킴 바우어의 명언록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 싸가지가 없어서 극에 등장하는 악당 중 하나가 제발이지 킴을 없애 버렸으면 하는 소망마저 생겼다. 3부가 워낙 지겨워서 졸면서 간신히 봤다.



바탕화면을 얼핏 보다가... 2004-6-19 13:20, 태풍 디앤무가 한반도로 진격 중. 그런데 저 심상치 않은 흰 줄은 대체 뭘까.

구멍이 숭숭 뚫려 통풍이 잘 되는 신발을 할인점에서 8800원 주고 샀다. 배낭의 지퍼가 망가져 가슴 아프다. 작년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 하나 하나 망가지기 시작해 이제 남은 것이 없다. 부슬비를 맞으며 동네 산길 어귀에 있는 등산용품 할인점에서 3만원짜리 배낭을 샀다. 말이 35리터지 실제로는 20리터가 될까말까한, 왠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배낭이다.

아내가 덜컥 항공권을 끊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6월 29일 방콕으로 가게 생겼다. 황가한테 갈 생각 있냐고 별 생각 없이 물으니 다음날 그가 항공권을 끊었다. 28만원짜리, 아슬아슬하게. 7월부터는 성수기 요금이 적용되어 같은 항공권이 40만원 대가 된다. 그 차액 12만원이면 7일을 버틴다. 그런데 아내가 방콕에 떨어지는 날짜가 7월 6일 이후라서 그동안 어디 좀 놀러가야 하는데, 당체 별로 가보고 싶은 곳이 없다. 음... 라오스 북부에서 썽태우 타고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빡세게 여행해 볼까? 여행이란 고생스러워야 제맛이지. 아니면 앙코르와트나 다시 가볼까? 여권 문제 때문에 두 가지 코스가 일정이 빡빡해서 잘 될까 모르겠다. 꼬창이나 꼬사멧 등지의 섬을 돌아다니는 것이 차라리 낫지 싶다. 아내가 오면 그때 북부로... 음. 계획이 영 엉망이군. 찰싹. 정신 차리자. 지금은 일을 하자.

원래는 올 여름 일본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사서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연습 좀 해두려고 했는데, 집과 사무실 사이의 직선 거리가 20킬로미터이고 사무실까지 가는데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릴 것 같고, 돈을 쳐 발라서 뙤약볕 아래 죽도록 개고생하며 도쿄까지 간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번째 배팅은 최근 러시아 비자 받기가 쉬워졌다길래, 동해안에서 배편으로 러시아로 들어가 백두산까지 갔다고 돌아오는 코스인데 머리속으로 얼추 계산해 봐도 20일은 되야 최소한 여행한 것 같은 꼬라지가 되었다.

며칠 파곤죽이 되어 있던지라 일은 잠깐 접어두고 휴식을 취하며 '신암행어사'라는 만화책을 봤다. 한국의 각종 민담,설화를 각색해 일본에 연재하는 만화책인 것 같다. 가터벨트를 하고... 아무래도 정조대같아 보이는 것을 입은 춘향이가 죽은 몽룡이 대신 박문수를 열심히 쫓아다니며 악을 섬멸하는 얘기였다. 어사 박문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서 자력갱생하지 않는 힘없는 백성들은 죽게 내버려뒀다.


암행어사(바닥에서 버둥대는)를 잡아 먹으려는 못된 여우들을 학살하는 춘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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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잡기 2004. 6. 12. 03:39
그의 말에 따르면 내 몸에는 영업의 피가 흘렀다. 탁자를 탕 치면서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중얼거렸다. 갈림길에서 표지판을 무시하고 달리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돼지 껍데기와 갈비가 맛있는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행책에서 쓸어온 책을 한 권씩 나눠줬다. 옛날 어느 신문기사에서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사람들이 나다니는 곳에 슬며시 놓고 사라지는 모임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매우 이상한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쯤 별이 반짝이는 라자스탄의 사막에 누워 있겠군. 조그만 관심과 사랑 정도면 여자는 인상적인 괴력을 발휘한다.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대낮에 차 타고 가다가 졸기는 오랫만이다 -- 나이를 먹어간다. 뱃살이 나와 움직임이 둔해졌다 -- 바나나를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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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

잡기 2004. 6. 10. 02:02
{펌} 인터넷뱅킹 공인인증서 무료로 일년연장하는 법!!!! -- 공인인증서 유료화가 금감원의 반대로 당분간 보류되지 않았던가? 인증서 폐기 후 신규 신청을 하려다가(이 글 보기 전에 그런 꽁수는 진작 알고 있었다) 내 인증서를 발급했던 외환은행은 친절하게도 인증서를 갱신하라는 메일을 보내 주셨고 갱신했더니 2005년 7월까지 연장되었다. 외환은행은 어제 통장을 해지했다. 때려주고 싶은 십장생이다.

로널드 레이건: 이 피투성이 깡패가 20년만 더 일찍 죽었더라면.... -- 공감.

결혼까지 7일: 생일 -- 결혼까지의 '험난한' 길을 블로그로 남기겠다며 며칠 째 쓰고 있는데 결혼식이라는 귀찮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던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은 아주 잠시 뿐이지 않을까 싶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그들이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시류를 따랐을 뿐.

신문에 만두 얘기가 자주 나와서 오늘은 만두를 구워 먹었다. 재료가 양배추, 두부, 양파, 돼지고기, 대파 로 나와 있어서 실망했다. 결혼 전에는 워낙 쓰레기같은 음식을 먹고 지낸 탓에 가끔 제정신이 아닐 때도 있었다. 집에서 한 음식만 계속 먹다 보면 현실 인식이 강해져 두통이 생길 때도 있었다. 이럴 때는 거리에서 정크푸드를 먹어줘야... 만두, 라면, 떡볶이, 햄버거, 피자, 기타 등등 맛있는 것들.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hero를 보기 시작. 저런 검사가 우리 나라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쩐지 인상 드러운 바텐더가 개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건 또 뭐야, 검사야? 하는 내 안에 숨겨진 원초적 마초성을 살며시 간지르는 눈빛. 1,2화까지 봤다. 바텐더가 뭔가 한 껀 해줬으면 하는데 말야. 어이 각본, 펜을 굴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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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실무

잡기 2004. 6. 9. 03:05
아침부터 이곳 저곳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었다. 사업을 접게 되어 퇴사한다는 양씨 아저씨 일행을 만나러 그들의 사무실로 갔다. 의기소침해 있을 그들을 위로한다기 보다는... 퇴사가 결정된 마당에 다음번에는 무슨 일을 할까, 그들의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 산 sj33 자랑 할 겸. sj33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런 저런 잡담을 늘어놓다가 열이 받아서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그들의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프라이멀 누마 클러스터를 비롯한 이런 저런 도형을 그렸다. 사각형에 어노테이션을 달아놓은 전형적인 그림은 자주 수정되었고, 논쟁이 이어지면서 무언가를 첨가하거나 지웠다. 퇴사할 인간 둘이 자기들 친구를 사무실로 불러들여 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는걸까, 인수인계나 잘 하지. 그 이유가 궁금했는지 어떤 작자가 빼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회의실을 들여다 보았다. 두 갑째 피웠다. 하다 하다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져 의자에 기댄 채 물끄러미 화이트보드에 완성된 그림을 보던 그들 중 한 친구가 우리 사이에서 욕설에 해당하는 말을 했다. '이건 아트야' 구현되지 않은 기술은 헛소리일 따름이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위로는 제대로 한 것인지, 자랑은 제대로 한 것인지 문득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아트야 늘 하는 거지만 하늘은 흐렸다.


지하철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내 sj33을 보고 물었다. '이거 핸드폰 됩니까?' 아니요. '인터넷은?' 안 되는데요. 할아버지는 뭐 그런 것도 안되느냐는 표정으로 슬며시 관심을 거두었다. 이것이 중고가가 무려 20만원이나 하는 첨단 기술의 집적체인 PDA가 천대받는 한국이란 말인가? 구매한 이후로 줄곳 좌절이다. 꺼내 들라치면 상위 기종이 불쑥 탁자에 나타나질 않나, pda가 없는 사람들은 인터넷, 핸드폰 되냐고 묻질 않나. 나야 견딜만 하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sj33이 가엾다.

최씨 아저씨는 양아치 같은 차림으로 한국에 왔다. 이온 프로펄션 쪽을 공부하는 것 같던데 의문인 것은 동태를 여기저기 배달하는 외우주 이민선도 아니고, 최근 각광 받고 있긴 하지만, 지구 근궤도에서 그걸로 충분한 걸까? 충분치 않은 시간 때문에 흥미로울 것 같은 얘기를 물어보지 못했다.

박씨 아저씨한테 디스크 볼륨 레이블이 '즐'인 HDD를 건네주긴 했지만, 뭔가 석연찮은 것이 내심 불안하다. 왜 KIN일까?

좌담회에서 밥값을 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었다. 입이 안 떨어졌다. sf를 읽으며 이미 수준이 올라갈대로 올라가 버린 독자들을 만족시키고(흥행성?) 동시에 어리석은(?) 문단을 엿먹이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탁월한 수단과 신선하고 이질적인 시선으로 감동과 기쁨을 주는 '아트'(내지는 평양의 그 유명한 '날으는 처녀들'에 필적하는 아크로바트)를 보여줄 수 있는 역량있는 작가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 아줌마와 아스 아가씨가 말하는 서사라... 요즘은 어디서 서사 얘기를 들으면 맥락의 일관성을 말하는 것인지 이야기 구조가 본질적으로 지닌 점착성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 영광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던 주제의식의 빛나는(정말 빛이 났다) 개연적 통합을 얘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삼자 사이의 배분과 혼합을 얘기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글빨이 서사에 포함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문장의 대가를 보고 싶다. 그건 글자로만 할 수 있는 일인데 백날 똑같은 시시한 연애담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아무래도 문장력 때문이다. 통 글 잘 쓰는 사람을 못 봤다.

pda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박씨 아저씨를 쳐다봤다. 그는 창작을 하지 않았다. 그 옆의 고양이 아줌마도 쳐다봤다. 그는 창작을 무기한 보류했다. 그 옆옆의 김씨 아저씨도 쳐다봤다. 자기는 여차하면 창작도 할 수 있다고 늘 자신만만이다. 내 발 끝도 쳐다봤다. 기다리다 보면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리고 젊은 변태가 나타나 줄곳 패시미스틱해 지기만 하는 sf계에 새파란 피를 긴급 수혈해주지 않을까? 한국 sf계를 구원할 예수가 나타나도 팬덤의 회의주의자들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린 채 푸른 피를 질질 흘리며 죽어갈 가능성이 더 높긴 했다. 푸른 피를 받아먹은 팬덤의 유태계 노인네들은 불노장생할 것이다. 출판사도 불노장생할 것이다.

출판사가 철수하고 문학이 일정대로 뒈지고(왜?) sf 번역서가 출간되지 않고, 창작이 시원찮아도, 이렇게 호기심 많고 즐거운 떼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서로 도륙질을 하며 같이 늙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몇 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지한 일은 지각있는 올드보이들에게 맡겨 두자.

* 난지도 야외캠핑장에서 바베큐 파티를 언제 하나?
* 애영동에서 Lexx를 낄낄거리면서 같이 볼 수 있을까?

정도가 관심꺼리다. 할일은 많은데 배 부르고 잠이 솔솔 오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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랏시 만들기

잡기 2004. 6. 8. 00:09
파하르 간즈 끝자락 기차역 근처의 구멍가게에서 랏시를 먹고 있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나나(2천원), 우유(천원), 달디단 서울 요구르트 세 줄(천원)을 사왔다. 우유 1리터에 요구르트 네 병(260ml)를 넣고 바나나 일곱개를 까서 블렌더로 갈아 1.6리터 가량의 바나나 랏시 컴패티블을 제작했다. 굴러다니던 호밀빵과 함께 그중 400ml를 마셨다. 맛이 그럴싸하군.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컴퓨터의 케이스를 뜯어 80mm 팬을 제거했다. 케이블을 연장해 컴퓨터 내부에서 12v를 빼어내 탁상 위에 조그만 선풍기 대용으로 돌렸다. 12v 브러시리스 팬에 극성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컴퓨터도 컴퓨터지만 당장 내가 더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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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Only Lonely

잡기 2004. 6. 7. 04:20
가고일은 지나가던 인간을 돌도끼로 때려 잡아 몹시 기뻐하는 오크같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텅스텐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슬라이드와 실크 스크린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텅스텐은 썩 괜찮은 pda였다. 어쨌거나 기분이 상해서 얼마 전에 자이어71을 자랑하다가 sj33의 저주를 받아 lcd가 박살이 난 이씨 아저씨의 슬픈 사연을 구체적으로 얘기해줬지만 약발이 통하지 않았다. "무상 as기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거든요" 당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액정은 말이야, 무상 as가 안되는 걸로 알고 있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겠지. 라고. 그나저나 아직도 pda를 사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pda는 핸드폰에 완패했다. 완패했고 방향도 그쪽이 아니지만, 내 주변에서 pda 산 사람들은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bookwarez에서 챙긴 책들은 평생 봐도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굴다리집에서 오랫만에 몇몇 얼굴을 만났다. 한씨 아저씨가 나왔더라면 욕설을 퍼부어주고 싶었는데 때마침 더위 먹고 나오지 않았다. 결혼식에 오지 못해 미안 하다던데 글쎄다, 안 와줘서 기쁘다. 어떤 아저씨 말대로 결혼은 두 번 할 수 있어도 결혼식은 두 번 할 것이 못 된다. 김씨는 날더러, 자기는 하나도 안 취했는데, 하드플래닛에 기사를 써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돈이 안 되는데 왜 쓰나 했지만 요즘 추세가 괘씸하고 술도 취했고 해서 몇 개월은 쑈를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그러마 대답했다. 자가발전 얘기를 하니 흥미가 있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바닥에서 내 신용은 말 그대로 언더그라운드였는데, 30대 중반의 결혼한 남자가 기댈 언덕은 재테크 밖에 없다. tv에서 낚시 채널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재테크와 메주콩 낚시다. 겟타를 빼니 왠지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도 40대 열혈 궁상은 40대에.

아내가 병아리들 오리엔테이션 중에 가르쳐 줬다는 팁: 트랜짓 할 때 CA(이제 기억났다. 스튜어디스의 올바른 명칭은 cabin assistant)에게 내리기 전에 미리 손님에게 대접한 식사 중 남은 음식 찌꺼지를 달라고 말해두면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의 지루하고 허기진 시간 동안 음식을 챙겨 먹을 수 있다.

기내에서는 니들셋(반짓고리), 카드셋, 두통약, 생리대를 비롯한 각종 상비약, 쉐이드(수면 안대)를 부탁하면 구할 수 있고 화장실에서 화장지와 치약, 일회용 칫솔 따위를 챙길 수 있다. 국적기(라고 불리는 한국인 상대로 삥 뜯어먹고 사는 두 항공사)를 타면 튜브에 들은 고추장이 기내식에 곁들여 나온다. 몇 개 모아두면 쓸모가 있다. 항공기를 탈 때마다 보급받는 심정으로 이것 저것 챙겼다.

보딩패스를 받을 때 자리를 지정할 수 있다면 가능한 앞자리를 얻는 것이 좋다. 착륙할 때 비즈니스 클래스 다음으로 내려 출입국 수속을 빨리할 수 있으니까. 항공기에서 담요 따위를 챙겨 한국 여행자로서 빈티나는 모습만은 제발 보이지 말자는 얘기들이 오가는 것을 여행 사이트에서 본 적이 있었다. 글쎄... 한국보다 잘 벌어먹고 사는 서양 여행자들도 거리낌없이 그 짓을 했다. 가난하고 꾀죄죄한 우리들은 모두 추위에 얼어죽지 않으려고 그것을 망또처럼 두르고 돌아다녀도 하나도 쪽팔려 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만전을 기하는 자신의 영악함을 자랑스러워 했다. 재질이 중요했다. 울, 폴리에스테르, 폴리우레탄, 쿨맥스, 고어택스 따위 소재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다가 한번은 내가 이겼다. 그런데 고어텍스 담요가 정말 있단 말인가? 그렇다쳐도 본 적은 없었고, 내것이 제일 '가볍고' 따뜻했다. 어느 항공사 것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것의 소재는 싸구려 폴라폴리스였다. 터번처럼 두르고 다녔다. 침대에 깔기도 하고 목에 두르기도 했다. 여행중의 내 거지 패션은 특별히 튀는 것이 아닌 이 바닥의 수수함 그 자체였다.

오랫만에 들른 인천 공항의 아시아나 창구에서 아시아나 항공권을 구입하진 않았지만 출/입국 신고서를 프린터로 예쁘장하게 프린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시아나 항공은 통 타 본 적이 없지만 스타 알리안스 때문에 쌓인 마일리지 덕을 보긴 했다.

공항에서는 여전히 내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를 한 번 도와드렸고 일본인 배낭여행자들이 종로행 버스를 타도록 도와주었다. 이전까지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역에서 내려 인천공항행 셔틀 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저렴하게 공항에 갈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셔틀버스의 운행요금이 4500원에서 6000원으로 뛰었다. 30분 운행에 6000원이라. 교통에 관한 한 사회주의 국가인 한국의 실정에 비춰볼 때 터무니 없다.

아내는 인도로 나들이갔다. 한달 반쯤 후에나 돌아올 것이다. 그녀에게는 일곱 번째 인도행이다. 일이 바쁘게 돌아가지 않고, 시간이 된다면 태국에서 만날까 생각 중.

여행 생각나는군. 기내에서 얻을 수 있는 갖가지 흥미로운 물건들을 비롯해 항공사의 담요의 품질에 관해 노련한 장물아비들처럼 질 좋은 정보를 교환하다가... 과떼말라에 있을 때 어떤 체한 여행자의 손가락 끝을 달군 바늘로 따 주면서 이것이 바로 동양의 신비스러운 침술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왜 소화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손가락 끝에 바늘을 찔러 해결하는가? 라고 물었다. 당연한 의문이다. 경락을 뭐라고 번역해야 할 지 난감해서 pressure point라고 하고, 인체에는 무수한 경락이 있는데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의 분자구조의 중심에는 철 입자가 있고 침은, 아니 바늘은, 피부 밑의 신경 절 부근을 자극해 미세한 전자기 변화를 일으켜 철 원자를 포함한 헤모글로빈의 방향을 정렬시켜 혈류 흐름을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물론 사기다.

얘기는 좀 더 발전했다. 생물체의 신경계는 신경전달물질을 비롯한 이온의 농도 변화에 따른 세포 내의 화학적 변화와 전기적 변위에 의해 국지적으로 자기 조직화 되고 되먹임질 되는데 그것이 경락이 다른 부위 보다 변화를 심하게 일으키는 이유라고 말했던 것 같다. 호르몬, 체액, 혈류, 이 모든 것들은 인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도관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특히 자율신경계는 외부에서 전달되는 자극에 따라 의지와 무관하게 여러 종류의 호르몬을 방출하는데 이 호르몬이 신경계를 긴장케하고 자극을 주어 인체를 평범한 상태가 아닌 비상 사태로 변화시킨다. 이를테면 팔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병사가 자기 진지로 기어갈 힘을 주는 것은 노르에피네프린과 체내에서 자가 생성되는 몰핀 계열이 감각 차단을 일으켜 극심한 고통에 의해 신경계가 오작동하는 것을 방지토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체했을 때 하필 손, 손가락일까? 손가락 끝은 인간의 인지체계에서 촉각에 관한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촉각을 곤두세운다 라는 표현도 있다. 이곳이 체내에서 가장 큰 신경절인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신경이 몰려 있다는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침으로 손가락 끝에 일점의 집중적인 자극을 가하면 인체는 즉각적으로 비상체계로 돌입한다. 중국의술에서는 발바닥도 중요한 부위인데, 발바닥 역시 평상시의 고른 압력 분포에 따른 자극의 변화를 딱히 느끼지 못하다가 침등의 극단적인 일점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튼 비상체계 하에서 신경 하나 없어 고통을 가장 둔감하게 느끼는 소화계는 부적당한 소화물 탓에 흔히 양의 되먹임질(포지티브 피드백)에 걸려 인체 스스로 자기 조절한답시고 자가발전하다가 오히려 자멸의 길을 걷는 자율신경계의 오작동을 중단시키고 신경의 모든 방향을 위험이 비롯된 손가락 끝에 집중시킨다. 신경계를 기만한다는 점에서 감기약이 인체를 기만하여 시간을 벌어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에 방어할 시간을 주는 치료 방식과 다른 점이 없다. 감기약은 인체의 화학적 조성을 변화시킴으로서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을 동반하나 침술은 단지 신경계만을 자극할 따름이다.

그 정도면 카프라에 속아넘어갔던 서양인들에게도 충분히 이런 사기가 통했다/검증했다/반복했다/사기 행각은 사뭇 끝이 없었다. 카프라와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전문용어를 써가며 잘 알지도 못하는 인체와 자연의 기작을 주물럭거렸다. 카프라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굳이 교주 스타일을 흉내낸다거나 실세계에 상존하는 위협과 공포를 도외시하며 평화와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 뿐이다. 긴장과 대치의 동역학을 거세한 조화는 하시시 빨고 헤롱거리며 세상이 평화롭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어불성설이다. 당신의 자기만족은 세계를 긍정적으로, 다시 말해 지금보다 덜 멍청한 방향으로 이끌어 본 적 조차 없다. 글쎄다. 굳이 약 빨고 샤픈, 블러, 모자익 등 화상처리를 하여 컬러풀하고 원더풀한 세상을 볼 까닭이 없다. 약 안 해도 충분히 볼 수 있다. 인간의 상상력, 특히 자가발전 모델은 애당초 신경계의 과민반응에 따른 오작동이다. 예술과 정신질환 사이의 상관관계를 굳이 언급해 짜증을 불러 일으킬 이유가 있을까? 이상 정신세계는 말 그대로 이상한 세계를 보게 한다. 하여튼 감기약과 항생제가 몸에 해로운 것을 안다면, 마찬가지로 인체의 화학적 조성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하시시, 대마초 역시 장기적으로는 좋을 리가 없다는 것 쯤은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약 먹은 돌대가리야, 사실 기대는 안 해. 그렇게 살다가 뒈져버려!)

핸드폰에는 마누라의 사진이 있고 그 밑에 여행자들이 행운을 빌어주며 하던 말이 적혀 있었다. godspeed luke. 여행 중에 만난 어떤 점쟁이 말에 따르면 나에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고 생일이 셋이다. 쪽집게였다. 따라서 사주팔자, 생일별점이 개판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바보같아 보이는 점쟁이 말을 믿지 않는 것은 합리적 회의주의자라서이기 보다는, 그저 횡설수설이 웃음꺼리 밖에 되지 않아서인 이유도 있고 내가 그보다 이상 정신세계에 관한 풍부한 실무경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고 그들 생각의 총합이 내가 된다. 하드플래닛의 아저씨들 말대로 내가 남들에게 굳이 신용, 정직을 거들먹 거릴 이유는 없다. 그점이 특히 하드플래닛에 기사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게 해주는 훌륭한 핑계였다.

수중에 딱 만원이 남아 택시 탈 형편이 안 되어 이제는 mp3p로 백퍼센트 전용한 pda로부터 들려오는 올드팝스를 들으며 한참 동안 집을 향해 걸었다. 소주만 마셨더니 속이 편해서 좋다. 어둠의 떨거지들 팀의 미덕은 소주를 마신다는, 그것이었다. 굳이 벌이가 시원찮다는 공통점 만은 아니었다. 새벽 한 시, 한적한 거리, 날씨와 바람은 더더욱 좋았다. 아아, 신음하는 지구여, 어서 이 땅에 아열대를.

마누라도 없는 이 자유스러움이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며 노래 한 곡 땡길까? J.D. Souther - You're Only Lonely (3:43) 이 시대에 30대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행운이다. 가사에는 늘 의문이 샘솟았지만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고 그들이 누군지 정도는 노력 없이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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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라이

잡기 2004. 6. 4. 00:56
얼마전에는 멍하니 매뉴얼을 읽다가 순환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뱅뱅 돌았다. 집에 도착하니 12시 가까이 되었다. 사무실에서는 9시쯤 출발했다. 정신이 어디 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기가 다시 시작된 것 같다. 지하철에서 종종 역을 지나치거나 꿈 속에서 숲속의 짐승을 보는 것 등등.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얕게 떠 있는 붉은 달을 보았다. 몇 년 전 사막에서 밤을 맞아 밝은 달 아래 터벅터벅 걸어 오아시스로 돌아오던 때가 기억나서 두근거렸다. 그런 기억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오늘도 옥상에 올라가 달을 찍었다. 요령이 생긴 탓인지 어제 찍은 것 보다는 나았다.

아내한테 언제나 한쪽 면만 보이는 달이 자전하는지, 자전하지 않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자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내와 같은 착각을 했다. 달에 관한 많은 재밌는 해석들이 있었다. 이젠 그런 것들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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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몰락

잡기 2004. 6. 3. 00:57
소니 클리에 생산 중단? 잘들 논다.

사흘 동안 지방 출장.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퍼 마셨다. 이틀을 강의만 하다보니 지쳤지만 내 덕에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해 내심 기뻤다.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발견할 때 즐겁게 몰두할 수 있다. 겉모습은 누구나 평범하고 닭대가리 같아 뵈지만 프로그래밍이 왜 재밌고 신나는지 알려주다 보면 눈빛이 달라진다. 개중 워낙 심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한 친구는 3개월 후면 나만큼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고 떵떵거렸다. 그러길 바랬다. 동료를 원한다.

홈페이지에 갑자기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락거려 뭔 호들갑일까 궁금했는데 혹시, mirable dictu에서 점보기 릴레이 중이라서? 그랬군. 이런 오비이락은 감정이입과 텔레파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그것도 3개월 전에 써두고 퍼블리시를 안 하다가 재고정리 차원에서 올렸는데 마침 점보기 릴레이중이었다니. 하하하

pda에서 플라네타리움을 보다가 오늘이 보름 때 임을 알았다. 바탕화면에 깔린 한반도의 구름 상태를 보니 밤하늘이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망원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혼자 보기 아까워 어디 가서 술 한 잔 하며 즐기고 있을 아내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어 보기로 했다. 삼각대가 어디있지... 아, 맞아. 없지. 디지털 줌으로 최대한 땡겨봤지만 손톱만한 크기. 안 되는군.



망원경을 왼손에 들고 왼손 검지로 놉을 조절하면서 오른 손에 든 디지털 카메라를 망원경의 아이피스에 살짝 끼우고 줌 레버를 조절해 땡겨 디지털 10배까지 밀어 붙였다. 이 좋은 시대에 어거지로 디지털 줌을 쓰는 내, 싸구려, 스냅샷용 카메라. 손이 떨려서 도저히 달이 잡히지 않는다. 사격 자세로 앉아 이십여분 이것 저것 씨름하다가 최종적으로 연사 모드로 열댓 장을 순식간에 찍었다. 카메라와 망원경의 렌즈가 결합하여 절묘하게 증폭된 색수차는 어쩔 수 없었다. 찍고 나니 결과가 별로 만족스럽지 않아 왜 이런 짓을 할까 싶었다.



F4.8, 셔터속도 1/120, 측광모드 스팟, 노출보정 -1ev.



앗! 그런데... 달이 순간 이그러지는 듯 하다가 갑자기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DJ. Yusef의 흥겨운 음악(4:39) 을 들으며 지구 멸망을 자축.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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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소리 업로드

잡기 2004. 6. 1. 20:23
음원 데이터를 어쩌다가 구했다. 핸드폰에 업로드하려니 실패한다. 확장자를 바꿔서 업로드하려니 타사의 음원은 사용할 수 없단다. PG-K7000 또는 KTF 폰의 내부에 저장되는 미디 파일의 형태는 야마하의 smaf와 동일한 것 같은데(같은 음원칩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니까) 음원을 폰으로 업로드할 수 없어 파일 구조를 살펴보니 KTF의 .xmf 파일은 야마하가 사용하는 .ma2 파일 앞에 헤더가 좀 더 붙어 있었다. 따라서 에디터로 앞부분의 헤더만 적당히 추가하면 될 것 같다. 업로드가 되었다. 5000여개의 음원 데이터를 값싸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회사들도 저 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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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보기

잡기 2004. 5. 31. 02:26
이번 달에도 아티클수 12개는 채웠다. 오늘 3개째 쓴다. 은근히 귀찮군.

구름양이 늘어 바깥에서 보는 지구가 나날이 밝아지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몹시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라고 하던데 모르고 있었다. 3시간 마다 한번씩 구름이 업데이트 된다. 지구를 돌아다니는 위성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저녁 나절부터 보기 시작했다. 지구가 서서히 어둠에 잠겨가는 모습과 남한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살짝 가린 구름이 인상적이다. 작업을 마치고 책상 위(desktop)를 정리할 때마다 한번씩 보이는 그모습에 왠지 가슴이 시렸다. 내 고향별, 떠난지 오래 되었구나.... 흐흐흐. 분위기에 걸맞는 음악을 하나 틀고 싶지만 지금 새벽 2시다. 자자.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실시간 구름 사진 바탕화면

General Tab:


[check] start Xplanet every 600 seconds
[check] for clouds every 30 mins

[check[ start XPlanet after timed download
[check] transparent Icon background at start
[check] hide xplanet window

Parameter tab:

[check] easy parameter
[check] day : earth_new.jpg
[check] night: night_new.jpg
[check] clouds_2000.jpg

misc: radius: 40
viewpoint: latitude: 37, longitude: 128

Download settings tab:

cloud file: http://myhome.hanafos.com/~xplanetkorea/cloud_data/clouds_2048.jpg
local path and name: ...\clouds_2000.jpg
[check] execute file after download
c:\...\GenCloudMaps.bat
[check] download cloud file timer
[click] download now

[click] render now

Network time protocol client (104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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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 sera sera

잡기 2004. 5. 30. 14:58
Doris Day, Wahever will be(Que Sera Sera) (2:16) -- 천절하고 말랑하게 백퍼센트 확신을 가지고 말하건대, 얘야, 너는 이 시대에는 너무나 보편적인, 감정을 대량 소비하는 다마고찌적인 인간이 될꺼야. 케세라세라.

블로그에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것들.

1. 블로그에 관한 글. (지금 작성하는 이 글도 포함)
2. 갖잖은 영화에 관한 장구하고 시덥잖은 영화 감상문.
3. 지리멸렬한 수다
4. 400% 감상주의
5. 점 보기 릴레이
6. 20개의 카테고리에 하나씩 들어찬 빈약한 아티클 슬로팅.

블로그에서 보고 싶은 것들

1. 드라마틱한 일상
2. 유머러스한 독설
3. 여행 실황 중계
4. 볼만한 블로그 '모닝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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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프

잡기 2004. 5. 30. 04:08
자기 일을 좋아한다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일에 사로잡혀 있고, 한주간 세금에 관해 이것저것 공부한 덕택에 머리가 몹시 아팠다. 머리가 몹시 아파서 통 안 먹던 술을 마셨다. 술집 마담 누나가 우리집에서 자고 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니 별로 믿는 사람도 없었다. 집에 누가 자고 가는 것에는 비교적 관대해 옛날에 내 자취방에는 송구스럽지만 뉘신지 모르는 팔도 사나이들이 마른 명태처럼 사이좋게 일렬로 누워 자기도 했다. 아무래도 집안에 여자를 끌어들이려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그런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날 좋아하던 여자애들이 구름처럼 많았다고 말하면 아내는 거짓말로 생각하면서도 내심 내가 바람을 피울까봐 집요하게 추궁했다. 구름처럼 많았다? 뻥이다. 연애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해서 사랑에 빠지는지, 어떻게 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하다 못해 여자를 꼬시려고 도끼질, 작업을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주로 한 것은 달아나기 였고 수십년을 자기 등짝에 채찍질을 하며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지냈다. 사실상 매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매력이 있다고 하는 계집애들의 착각은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었다. 영화를 봐야 찔끔 눈물이 나오는 정도로 차갑고 정이 없어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접근을 꺼리는 편이었다. 이런 사람이 결혼을 했으니 오죽 신기할까?

아내가 아니었다면 여행 중에 만날 지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다. 국적을 굳이 따지지 않았고 나이나 미모, 지성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여행이 무서운 점은 일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의 공포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 상태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가면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좋았을 터이지만 그런 발랑 까진 거짓말은 메스꺼워서 할 수 없다. 내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더더더 무서웠다. 아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어떤 꼴이 될지 소름끼치게 잘 알고 있었다(지금보다 백만 배는 더 멋있는 놈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는 나를 통해 꿈꾸던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내가 훨씬 더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아내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아내의 자아는 진을 속이고 사막에서 훔친 것이 아니다.

[펜더이야기] 조선시대 노총각 노처녀 -- 국가는 노총각, 노처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국가가 실력이 없어 못하는 일에, 나는 모범을 보이고 원한의 매듭을 풀었다.

python과 php 따위 스크립트 언어의 성능을 테스트해 보았다. 비표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 영 마음에 걸렸고, 파이썬이 충분히 빠르다면 갈아탈 생각이었다. 캐시와 파이프라인, 지능적인 분기 예측 때문에 벤치마크 테스트는 날이 갈수록 복잡하게 짜야 되지만 그저 단순한 뺑뺑이만으로도 충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어쨌건 바이트 코드의 인터프리트 속도가 루프를 돌릴 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시스템 함수는 어떤 언어라도 대동소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테스트를 해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php는 우리가 만든 사제 언어보다 2배 빨랐고 파이썬은 3 배 느렸다. 테스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눈을 비비고 수차례 테스트를 반복했다. 결론: 파이썬 만큼은 완전히 제외. 특별한 장점이 없으며, 탁상용 계산기 정도로 쓰면 알맞겠다. 그런데 대체 파이썬이 빠르다는 평소의 생각은 어쩌다가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오랫만에 y 아저씨와 함께 길손에 들렀다. 날이 선선하고 기분 좋았다. 가게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연 것 같은데, 삼치 맛은 여전했고 히레도 괜찮았다. 딱 한 잔 하기 좋은 술집이지만 가기에는 영 내키지 않는 것이 밤마다 손님들이 너무 바글거렸다. 확장 개업 했음에도 여전했다. y 아저씨의 나이를 아무도 몰랐다. y 아저씨는 루이스 캐롤이 아니라서 자기 나이를 알아맞출 수 있는 퍼즐을 만드는 등의 유머감각은 떨어졌다. 옛날 옛날에 나이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하던 나이 든 남자가 살고 있었지요. 루이스 캐럴이란 필명으로 글을 쓰던 작자인데 그의 취미 생활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바칠 말장난으로 가득 찬 싯귀와 퍼즐을 밤새 만들어 갖다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꼬마애가 캐롤에게 나이를 묻자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퀴즈를 냈지요~~ 1893년 작년에 너의 나이는 내 나이의 꼭 두 배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내 나이가 네 나이의 세 배였을 때는 언제였을까? 이 문제는 한국의 중삐리들에게는 누워서 떡먹기지만 한창 뛰어놀 어린 여자애가 풀기에는 조금 벅찼던 모양인지 소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들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비율이 더이상 무의미해지지요~~~ 해가 뜨고 달이 차듯 함께 늙어가는 것이지요~~~ 음. 재미없군. 나이 같은 건 알아서 뭐하나. 귀찮지.

어젯밤 피카드처럼 얼 그레이만 마시는데다 상당히 훌륭한 pda를 가지고 있어 기분 나쁜 장씨와 얘기 도중 체리 키보드 얘기가 나와 내친 김에 용산에 들러 키보드를 구매했다. 메커니컬 타입은 명품 소리를 들을만 하지만 타이핑할 때 소음이 워낙 심해 사무실에서 쓰기는 영 꽝이다. 이전 키보드는 7000원 짜리 맴브레인 타입으로 키감이 구린 중국제 싸구려 키보드였는데 일년도 채 안 되어 키캡의 실크 스크린이 벗겨지고 한 번도 안 닦아 꼬질꼬질하기 그지 없다. 새로 산 키보드는 노트북 키보드 같은 팬타그래프 타잎인데 del, ins, bs, home 키의 위치가 묘해서 적응하는데 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오른쪽에 ctrl키가 없다. 더 끔찍했던 것은 용산의 매장을 전전하다가 본 genius의 19e가 내가 산 i-rocks 6130보다 키감이 훨씬 쫀득쫀득하고 훌륭하더라는... 충동구매해서 성공한 경우가 없는데, 이미 사버렸으니 후회해도 늦었다.

토요일이고 해서 심청전을 들으며 프로그래밍을 했다. 아내가 꺼내놓은 cd를 보니 예전에 내가 구워줬던 것이다. 카이로였다. 일본인들이 바글거리는 베니스 호텔(술탄이었던가?)에서 궁상 떨다가 거기 컴퓨터에서 우연찮게 복사한 것이었다. 아아, 카이로의 무슨 대학을 왔다갔다 했었는데... DJ. Yusef, ???, ???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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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잡기 2004. 5. 26. 22:58
모처럼 느긋하게 보낸 하루.



자다가 영감이 떠올라 잊기 전에 집에 남아있는 찌꺼지를 활용해 우동을 만들기로 했다. 가츠오부시 국시장국(?), 멸치, 다시마, 새우를 냄비에 넣어 무조건 끓이고, 오뎅을 데친 물에 30분이나 거리를 헤메 간신히 구입한 우동면을 삶고 얼음물에 밀가루를 풀어 쑥갓으로 덴뿌라를 만든 다음, 오뎅, 게맛살(?), 쑥갓, 덴뿌라를 고명으로 얹고 끓인 국물을 부었다. 돈까스도 곁들였다.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열반한 부처 부럽지 않았다.



고구마를 사와 고구마 튀김을 만들어 간식으로 먹었다. 어떤 식재료에 관해서도 그 누구도 나쁜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최근에 깨닫고 흠칫 놀라워 했다. 예를 들면, 고구마는 섬유질을 많이 함유하고 비타민 뭐뭐가 들어간 식품이라고 하지, 고구마는 하등 쓸데 없는 식물이며 인류의 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식재료에 대한 그런 식의 존중이 불가피한 결과의 원인이 된다는 경고가 살짝 곁들여지고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먹어대는 당신이야 말로 어리석거나 우둔할 따름이지 않던가? 고구마 튀김은 아삭하니 맛있었다.



우리 부부의 원래 계획은 인근 절집(절간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명칭이 아니라고 하더라)에 들러 대중공양을 챙기고 하루를 느긋하게 보내는 것이었지만, 저녁 때가 되어서야 뒷산(북한산)을 탔다.



야심한 밤에 한 쌍의 무장공비처럼 산에 오르는 것은 뭔가 연인스럽게 수상한 짓을 하기 위함이던가? 여름에 슬며시 기어 올라와 문명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맥주 한 잔 하기 딱이다.



부처의 광휘가 느껴지는 절집에 들렀다. 대중공양은 끝난 상태였다. 젠장. 절 하고 나면 집에 가서 김치 볶음밥이나 해먹자. --> 김치볶음밥에 시원한 열무김치를 곁들여 먹고 세속적인 니르바나를 느꼈다.



내공이 심후한 스님들은 공중부양을 하거나, 카퍼필드처럼 순간 이동이 가능하지만 무지한 대중을 현혹할 우려가 있어 잘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신심이 깊은 불자들과 함께 탑돌이 경공술을 펼치는 중.



부처님이 오신 기쁜 날, 이 작은 절에서 불목하니가 날더러 몇 번이냐고 물었다. 숫자 중에서 9를 유난히 좋아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절집은 한국 샤머니즘의 메카, 내지는 한통속이 아닐까? 미사고의 숲처럼 온갖 괴기스러운 것들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테서렉트의 그림자를 연상시키는 연등의 초현실적인 입체 형태는... 그리고 술집, 홍등가를 연상케 하는 저 은은한 불빛이 주는 부조리함은...



U.F.O. 숭배 사상의 오리진이기도 했다. 사진 찍을 때마다 짓는 저 V자는 늘, 어린 시절 외계 파충류 여성이 흰쥐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떠오르게 했다. 남자 주인공 이름이 도노반이었던가? V자는 또, '여기 소주 두 병 추가요'를 연상시켰다.

핸드폰으로 찍은 코믹 스트립: 깜빡 잊고, 몇 개월 전에 찍고 나서 정리 안했던 것 창고 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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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잡기 2004. 5. 24. 02:24
bejeweled: 기록으로 치면 이번달 세계순위에서 39위쯤 된다. 내 기억에는 비주얼드를 10만점 넘기는 사람들이 주위에 수두룩 했던 것 같은데, 순위 사이트에 자기 이름을 기록하는 짓은 안 할 것 같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8만2천점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비주얼드는 튜링 머신의 정지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을 하나 짜면 100만점 나가는 것도 문제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왠지 치사해 보여서 그러지는 못하겠다.

장인 어른 내외를 모시고 경복궁에 놀러갔다. 경복궁은 결혼사진을 찍으러 가는 장소로 알고 있다. 왜 그런 사진을 자기 돈 들여가며 찍는 것일까 늘 궁금했다. 그리고 복원한 기와선이 왜 저 모양일까도 궁금했다. 날이 더워서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았다.



수문장 교대식



듣자하니, 이들은 공익근무요원이었더라. 경복궁은 '믿음직한' 공익...이 지킨다. 제2의 명성황후 시해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중국 구경을 하고 나니 경복궁은 마치 자금성의 카피본 같았다. 규모는 좀 더 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드는 중국 건물보다는 접근성이 높고 인간 친화적이라고 할까. 그야, 건축물의 형태도 달랐다.



연못에는 두루미 밀납 인형이 서 있다.



어? 움직이네?



잘못 생각한 듯 싶다. 밀납인형이 아니라 비행 두루미 로봇이다.



연못의 수면은 잔잔하기만 하다. 전자 두루미를 비롯해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지 의심스러운 분위기.



연못의 잔잔한 수면을 만들 목적으로 개울에서 끌어들인 물의 운동 에너지를 감소시키고, 못과의 온도 차이를 줄이기 위해 2m 깊이의 돌로 만든 소용돌이 수통을 경유해서 오른쪽 아래로 흘러나오게 했다. 그래서 거의 물살이 없다. 고생스럽게 만들었지만, 바람에 대한 대책은 부실해 보였다.



에디슨 밑에서 일하던 전기 기술자가 들어와 연못 앞에서 전깃불을 밝혔다. 러시아보다 2년 앞섰다. 전기불을 밝히느라 열심히 작동하는 발전기의 열을 식히기 위해 연못의 물을 끌어다 썼는데, 그러다보니 연못 물의 온도가 올라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 같다. 물고기가 죽는 것을 안 좋은 징조로 생각한 사람들은 물고기를 없애는 대신 발전기를 제거했다.



경회루. 한국식 파르테논 신전? 전기불은 없고, 대신 촛불을 켜고 외국에서 온 사절단을 맞았다. 거나하게 퍼마시며 파티를 벌이던 장소로 기억된다. 영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아래로 밀어버린다. 연못 깊이는 2m로 거대한 잉어들이 살고 있는데, 파티 때면 그 잉어들은 수입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처마선을 빼면 정말 자금성을 빼닯았다. 다만, (어쩌면 기술 부족으로) 몇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 건축물의 특정 부분들을 지칭하는데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지 알지 못해 그 점을 제대로 지적할 수 없다.



한강 다리. 지하철 소통을 빙자해 건설한 다리. 비상시에 한쪽 끝이 들린다. 직선 구간의 초전도체에 흐르는 강력한 전류에 의해 발생한 자기장을 이용하여 화물을 수송하는 레일건으로 사용한다. 한강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떼죽음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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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타이거!

잡기 2004. 5. 19. 01:17
박찬욱 감독이 상 받아서 잘 나가길 바랬다. 별별 소리 다 하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소수장르인 SF를 좋아한다니 실없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며. 그의... '복수 3부작'인지 뭔지의 마지막 극본은 얼마 전에 재번역되어 나온 알프레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가 될 것 같은데? 추세가 그래 보였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그것보다 나은 대안을 발견할 수 없었다.

...


P.S. 개인적으로는 복수는 이쯤에서 끝내고 그렉 이건의 쿼런틴이나 그렉 이건의 클로저 등 저렴하게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영화가 나오길 좀 더 바랬다. 이 블로그의 제목은 Closer의 Ndoli에 얽힌 농담을 적은 것인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하여, 경구나 속담처럼 자주 쓰이는 말 아니었던가 싶다. 공학적으로 텔레파시와 역지사지의 구현을 다룬 단편, 클로저의 마지막 문장은, 'nobody wants to spend eternity alone' 이었다. 그 양반은 늘 어디서 몇 번쯤은 들어본 말들을 주구장창 늘어놓고는 했다. 아니면 내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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