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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3.03 눈이 그친 후
  2. 2004.03.02 뭘로 측정하는데? 뜬구름 잡기잖아? 2
  3. 2004.02.27 귀국 5
  4. 2004.02.27 신혼여행 #8 1
  5. 2004.02.23 신혼여행 #7 1
  6. 2004.02.21 신혼여행 #6
  7. 2004.02.20 신혼여행 중... 9
  8. 2004.02.20 신혼여행 #5
  9. 2004.02.19 신혼여행 #4 1
  10. 2004.02.18 신혼여행 #3
  11. 2004.02.17 신혼여행 #2
  12. 2004.02.16 신혼여행 #1 1
  13. 2004.02.15 결혼식 18
  14. 2004.02.14 고구마 2
  15. 2004.02.13 잔 걱정들 5
  16. 2004.02.11 이사 끝 5
  17. 2004.02.11 짜장면~ 3
  18. 2004.02.10 재미있는 프로그래머들 8
  19. 2004.02.08 You ain't gonna jump no more! 5
  20. 2004.02.07 오랫만이야 4
  21. 2004.02.02 청평사, 이것 저것 7
  22. 2004.01.30 처세 1
  23. 2004.01.27 우주력 4
  24. 2004.01.24 불타는 지방 3
  25. 2004.01.24 내추럴 시티 1
  26. 2004.01.23 독자가 왜 신나? 2
  27. 2004.01.21 해물탕 4
  28. 2004.01.20 술 마시기 1
  29. 2004.01.18 우주지도 (Complete Map of the Universe) 2
  30. 2004.01.18 눈 온 뒤

눈이 그친 후

잡기 2004. 3. 3. 19:19
드림위즈에서 휴면 아이디 살리기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알려준다. 가서 휴면 해지를 한 후 아이디를 없앴다.

MPD Psycho, 간츠,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 등의... 만화책을 읽었다. 오랫만이다.

화장실에서 칫솔질 하면서 간단하게 책 주문 좀 해보려고 했더니 안심비자 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시간만 허비하다가 시간이 없어 관뒀다. 지금까지 할인율, 적립금 등 여러 면에서 알라딘보다 좋은 것으로 알았던 코스북은 알라딘보다 좋지 않았다. 알라딘에서는 캐시백 서비스까지 활용하면 5만원 책을 4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었다. 매번 책 살 때마다 책값비교를 하고 한푼이라도 싸게 사 보려는 소비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그래서 두권의 책은 인터파크에서 주문하고 나머지는 알라딘에서 했다.

옮긴 사무실에 드럼 세탁기가 있어서 퇴근 전에 가방을 넣고 빨았다. 여름에는 입고 간 옷을 넣어 빨고 '오피스웨어'로 갈아 입은 후 일해도 될 것 같다. 오피스웨어 입고 집에 이어 제 2의 피지 낙원을 꿈꿔볼까? 사무실에서 팬티만 입고 일할 수 있다면.

지하철 타고 가며 내일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다가 역을 여섯 개나 지나쳤다. 블로그 쓸 때는 지나치는 일이 없었는데, 일 하는 것과 블로그질하는 것하고는 집중도가 아주 다른 것 같다.

최근 한 해 동안 듣기 싫어했던 것들: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다이버시티, 똘레랑스.

여행, 결혼 등에 관련한 제반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딱히 큰 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최근에는 두서없고 피곤하기만 하다...

눈이 많이 와서 집에 가기 귀찮아 사무실에서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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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 당신들이 못난 탓이야 -- 세상이 생각만큼 만만치 않으니까 열심히 하라는 설교 같은데... 듣고 열받지 않을까? 난 열심히 하는 사람 필요없다. 리소스 중 절대량에 가까운 시간은 열심히 한다고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게다가 '사람을 뽑는 사람'도 뽑아야 할 사람 만큼의 성능이 나와 줘야 한다. 부족한 경험이지만, 한국에 제대로 된 인사 담당자나 중간 관리자나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는지 의문이다. 인사 담당자가 검증 가능한 구체적인 증거를 알아볼만한 실력 쯤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작자들이 없다고 한탄할 것도 없다. 없으면 자기가 하면 된다. 이왕 하는 김에 갖은 수를 다 써서 잘하면 된다. 다행히 요즘 프로그래머들은 프로그래밍 기술 학습 뿐만 아니라 방법론, 계량, 설계에도 열심이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매일 술을 마셨다. 안 그럴 사람으로 믿었던 나타스 아저씨는 좋은 술 먹고 설교를 늘어놓았다. 설교를 들으면 지나간 10대, 20대 시절에나 느끼던 반항의 뜨거운 정열이 새삼스럽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이제 결혼을 했으니 결혼 안 하고 개기며 인생을 즐기는 바보들을 욕할 차례다. 입장이 바뀐 것이다.

사무실에서 하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잊어버려 어레이 엑세스를 추가했다는 소스를 대충 살펴보고 어프로브하고 cvs에 올렸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소스를 살펴보다가 오른손을 꼭 쥐고 머리통에 알밤을 메겼다. 어레이 엑세스는 이미 구현되어 있었다. 코딩해 놓고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돌아올 때 쯤이면 내게 한 가지 요구 사항이 생겨야 하는데 아무도 묻지 않았다. 즉, 자리를 비운 지난 13일 동안 아무도 거기까지 진행하지 않았고, 내 식으로 말하자면, 놀았다. :) 괜찮다. 나도 놀았으니까. 나는 안 노는데 댁이 놀면 차후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진다. 나도 놀고 댁도 놀고 다 놀면 행복한 것이다.

아는 사람들의 블로그에도 별다른 재밌는 사연은 보이지 않았다. 10일이면 별일 없는 것이 정상인 기간인 것이다. 100일도 그렇고 300일도 그랬다. 앞으로도 쭈욱 그럴 것 같다.

내 가슴 저 깊숙한 곳에 차꼬를 세우고 내 영혼의 눈은 갈수록 맑아집니다.
내 어렴풋이 그려 오던 것 마침내 당신에게서 찾았습니다.
저 거친 삶이 가시발길에서 내 끝내 다스리지 못했던 것
당신의 황홀한 눈길과 함께 까닭 없이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칼 마르크스의 연시. 마르크스의 부인은 시집 가서 죽을 때까지 고생했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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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잡기 2004. 2. 27. 18:14
총정리

결혼 비용: 예식장 비용 총 110만원 가량.
신혼 여행: 항공권 84만원 가량 + 여행 경비 820$. 200불 가량을 선물(술 다섯 병. 그래 술판이다) 구매에 사용. 620$중 200$ 가량은 필리핀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는데 사용. 그럼 420$ 가량이 순수 여행 경비. 420*1150(달러당 환율) = 483000, 다 합쳐 132만원.

예단, 예물은 하지 않았다. 반지를 33만원 주고 만들었다. 집은 원래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다가 어떻게 해 보기로 했다. 결혼 비용과 신혼 여행비는 부조금 받은 것으로 메울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식 준비로 스트레스 받았냐고? 별로. 비록 결혼식 자체가 원숭이 쇼 같았지만, 소위 말하는 '흥행'에 성공한 셈.

결혼식 사진부터 신혼여행까지 블로그에 올릴 여유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짬이 나면 디지탈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늘 들고 다니는 노트북으로 옮겨와 간단한 어노테이션을 달고 맨날 쓰는 글, 한두 줄 갈겨 쓰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면 그때 올리면 그만이다.

귀찮아서 왠간하면 그냥 넘어 가려다가 여행기를 마저 썼다. 시시콜콜해서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결혼을 축하해 주신 분들에 대한 약소한 예의라고 자위해 두자.

여행기: 필리핀 | 타이완
사진 총정리: 필리핀 1 | 필리핀 2 | 필리핀 3 | 타이완

어젯밤 돌아올 때 서울 시내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참으로 썰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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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8

여행기/Taiwan 2004. 2. 27. 17:14
한식당(북경)에서 짬짜면(짬뽕과 짜장면)과 우동을 먹었다. 김치와 깍두기, 단무지와 양파 등이 밑반찬으로 나와 그럴듯 했는데 세 음식 모두 뭔가 맛이 좀... 어쨌든 듬뿍 들어 있는 야채와 '정상적인' 면발로 배를 채웠다.

간혹 한국인 남자가 필리핀인 여자의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http://phillove.co.kr에 가면 필리핀의 나이트라이프에 관한 많은 양의 정보를 구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바에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아내가 옆에 있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났다. 식비는 100페소 이상씩 펑펑 쓰면서도 마지막까지 4페소 짜리 지프니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네 번 씩이나 패스포트를 꺼내 검사 받고 줄을 서서 짐 검사를 두 번씩이나 했다. 시간이 많이 걸려 비행기 떠날 시간이 다 되어 탑승 승객을 찾는 final call 방송을 들으면서 비행기에 탔다. 그런 와중에도 짐 검사를 한 줄로 하더라. 비효율. 오랫만에 보잉의 7xx 시리즈가 아닌 에어버스 비행기를 타본다.

Manila -- air 2hrs --> Taipei -- bus 1hrs --> Hsinjoo -- train 15min --> Hsinfong

타이뻬이에서 42km 떨어진 창카이섹 국제 공항에 도착. 어리벙벙하다. 중국 여행의 경험이 생각나 왠지 숨이 막혀 왔다. 사전 지식 없이 공항에 올 때까지 가이드북도 안 읽었으니까. 공항->시내, 시내에서의 숙소, 3일 간의 일정을 잡고 있는 동안 아내가 유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장난 전화기를 붙들고 헤메고 있었다. 간신히 통화에 성공, 하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만인의 도움으로 공항 버스를 탔다. 15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승객들이 내렸다. 어리벙벙하게 따라 내렸다. 갈아타야 한단다. 가는 길 내내 즐비하게 늘어선 공장을 보았다. 신쭈우(新竹)에 내렸다. gps로 포인트를 찍어 보았다. 여차하면 타이뻬이로 돌아가야 하니까. 신쭈 근처에는 컴퓨터 생산 공장이 있다. 사이언스 파크도 눈에 띄었다.

내리고 나자 다시 황당.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도시. 물어물어 택시를 타고 간만에 들어보는 그 정겹고 이가 갈리는 이름, 후어처짠(기차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한 달 남짓 있는 동안 후어처짠을 4성에 맞춰 발음하느라 고생했다. 발음이 안 좋아 대다수 중국인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신쭈에서 신퐁(新豊) 행 전철을 잡으면서 다시 헤멨다. 2시간 반 동안 정신없이 이동한 끝에 천주당(성당)에 도착했다. 천주당 입구에 김대건 신부가 갓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 신부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제관에서 머물도록 허락해 주셨다.

마치 도교 사원 처럼 생긴 중국식 천주교당에서 미사에 참가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유 신부님에게는 실례된 말씀이지만, 마치 사이비 종교의 제례를 닮은 다소 희안한 미사를 구경했다. 수녀 중에 젊은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유신부님이 자신의 월급의 1/5에 해당하는 돈을 경비에 보타 쓰라며 불쑥 건네 주신다. 아내는 안 받으려고 한사코 사양 했지만 난 누가 뭔가를 주면 거절하지 않는 타입이다. 평소에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편이다.

대만에서의 첫 식사는 샤부샤부 였다. 대만식 김치를 넣었다는데 얼추 김치찌게 비슷한 맛이 났다. 듣자하니, 신쭈와 신퐁에는 한국에서 반도체 도면을 빼돌려(산업 스파이) 그것을 대만에 팔아버린 한국인 기술자들이 모여 산다고 하더라. 밤에는 파푸아 뉴기니에서 오신 이 신부님과 합석해 술 먹고 노래를 불렀다. 이 신부님이 사람을 20여명이나 죽인 살인마에게 영세를 줬던 어처구니 없는 사연을 얘기해 주셨다. 신부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수용 신부와 수출용 신부. 아무래도 수출용 신부님들이 훨씬 재밌다. 하하하. 58이라 불리는 끝내주는 고량주와 여러 종류의 맥주를 섞어 마셨다. 새벽 5시쯤 파장.


대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샤브샤브 가게. 이곳은 김칫국물이 육수였다!

-*-

아내가 아홉시에 깨웠다. 어젯밤 술을 섞어 마셔 술이 안 깬다. 얼른 씻고 나왔다. 아랫배가 찌부두둥해 가게에서 우육면 비슷한 것을 시켜 먹었다. 머리가 아파 전철에서 줄곳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을 마시는 건데...

기룽까지 2 시간 동안 전철을 타고 갔다. 그동안 아까 먹은 느끼한 국수 때문에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기룽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토하니 속이 시원하다. 두통약(아세트아미노펜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브루펜인 듯. 아내의 말로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성분으로 하는 타이레놀보다 브루펜 계열이 부작용이 적고 좋단다)을 사다 먹느라 1시간을 소비했다. 좀 진정이 되는가 싶더니만, 이번에는 아내가 보리 음료를 마신 후 피부가 견딜 수 없이 가렵단다. 다시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며 안티 히스타민 약을 샀다. 늘상 보아오던 zirtec(하이드로클로라이드)이었다. 우리 둘은 약 먹은 병아리처럼 골골 대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버스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비정성시를 찍은 골목길이 있는 그 도시에 가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정을 포기하고 근처 중산 공원으로 향했다. 약기운이 퍼지기 시작한 아내는 중산공원 꼭대기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진통제 때문에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 그나마 3일 밖에 안되는 일정 중 하루를 이동하고 술 마시느라 보내고 그 다음날은 전날 숙취와 희안한 알러지 때문에 날려보내는구나 싶었다.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은 절에 들러 시주하고 사이좋게 기대 졸다가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은 것이 없다. 벌써 오후 3시다. 거리에서 음식을 사먹으며 기운을 좀 차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아내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지룽의 명물은 구경도 해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돌아왔다.

터미널에서 신퐁행 버스가 눈에 띄었다.별 생각없이 차표를 구입해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2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로 가는 버스가 시내버스라는 점이 이상하긴 했지만 대만이 워낙 작은 동네고, 금액이 얼추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고, 우리 부부는 맛이 간 상태였다.

버스에서 졸다가 깨어보니 보여서는 안 될 해안선이 보였다. 머리 속의 자석은 버스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시했다. 우리는 서쪽으로 가야 한다. 어쨌거나 바다가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졸았다. 깨어보니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버스가 멎은 채 우리만 남았다. 운전기사 아저씨와 손짓 발짓으로 얘기해 보니 우리는 신쭈 근방의 신퐁에 온 것이 아니라 지룽 근교의 신퐁이라는 똑 같은 이름의, 한창 건설이 진행중인 신 도시에 온 것이었다. 얼레벌레 엉뚱한 표를 사고 엉뚱한 버스를 탄 것이다.


여기가 대체 어딜까... 말도 안 통하고... 무작정 버스를 기다리며.

잠이 다 깼다. 정신 차리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하루 일정을 망친 것도 모자라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다니... 아내는 환불 받아야 한다며 버스 터미널 매표소로 가서 아저씨들한테 따졌다. 일단 한 번 산 표는 환불이 안된다고 말하지만 아내가 우기면 안 되는 일이 왠일인지 잘 되는 경향이 있었다. 240위엔(8400원) 주고 산 표를 시내 버스 두 번 타고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약간 손해를 보면서' 150원(5250원)을 환불 받았다.

배가 고파 이것 저것 사 먹으면서 전철에 올라 또다시 꾸벅꾸벅 졸면서 신퐁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 무렵이다. 배가 고프던 차에 신부님이 남은 해물탕과 밥을 주셨다. 밥 먹고 잠깐 중국인의 구린 정신 세계에 관해 얘기하다가 잠들었다. 어제, 오늘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허전하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신부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타이뻬이로 향했다. 오늘은 기필코 일정대로 하자고 다짐했다. 먼저 온천에 들러 온천을 한다, 그리고 나서 장제스가 중국 본토에서 날라온 70만점의 유물이 있다는 고궁 박물관 National Palace Museum에서 공들여 중국 문화의 진수를 맛본다. 그리고 쇼핑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비교적 쉽게 타이뻬이 근교의 온천을 찾아갔다. 간판이 모두 한문 일색이라는 점을 빼면 타이뻬이가 마치 서울 같아 보였다. 10:20분 도착했는데 온천이 잠시 문을 닫았다가 12:00pm부터 다시 문을 연단다. 1시간 반을 공중에 날리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밥을 먹고 근처를 떠돌며 시간을 보내다가 노천탕이 문을 열자 마자 들어갔다. 유황 냄새가 코끝을 징하게 달군다. 필리핀에서 검게 태운 살 껍질이 사정없이 벗겨졌다. 온천이 뜨거워 1분 이상은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어 정말 시원하다.



계획대로 고궁 박물관으로 향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버스 정류장 앞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오디오 가이드를 구할 수 없어(기계를 이미 모두 대여 중) 아쉽지만 별다른 설명을 들어 보지 못한 채 유물을 관람해야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예전에 책에서 본 중국 최고의 보물들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1,2,3층을 뒤져 보았다. 문가에 놓인 어느 팜플렛을 뒤적이다가 전시물 중 아주 귀한 것들은(특히 서화류) 10월에서 11월 사이에만 공개한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3시간 이상은 구경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던 고궁 박물관 관람은 2시간이 채 안 되어 끝났다. 딱히 볼만한 것들이 없었다. 전시 상태가 훌륭하지만 중국의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들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몇몇 물품들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전에 봤던 그 많은 보물들은 다 어디 쳐박혀 있는건가. 2004 taiwan touch your heart라면서 타이완이 관광진흥책을 펴고 있었다. 가슴을 그렇게 건드려대니 가슴이 아플 수 밖에. 고생해서 왔는데 화가 치밀고 입가에 욕설이 슬며시 맴돌았다. 이런 잡동사니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3일 내내 닭짓 하다가 고작 이걸 보려고... 뭐 그런 것이었다.


찍으면 안되는데, 찍었다. 서화는 찍지 말란다.

아내가 급하게 서둘러 타이뻬이 시내로 돌아오자 마자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는 안 막힐 때 1시간 가량 걸린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40분 가량 걸렸다. 볼 때마다 희안한 생각이 드는 가이드북이었다. 이 책은 배낭여행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대부분 중고급 호텔을 숙소로 소개해 놓았고 관광 포인트의 지도가 부실했다. 교통편은 그걸 정보라고 적어놓은 것인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만한 정보량을 축적한 한국인이 쓴 가이드북이란 점이 존경스러워 저자 부분을 살펴 보았다. 어... 그런데, 이거 일본 가이드 북 번역하고 어니홍이란 사람이 감수한 것이잖아? 살 때 미처 보지 못했다. 악, 하고 말았다.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선물을 샀다. 필리핀에서도 사고 대만에서도 샀다. 술만 다섯 병을 샀다. 이것 저것 합치면 대략 200$ 가량이 선물 값으로 나간 것 같다. 950$을 환전해 들고다니면서 그중 720$을 썼다. 선물값 200$을 빼면 520$ 가량을 순수 경비로 사용한 셈이고 그중 200$이 필리핀에서 비행기를 2번 타는데 든 비용이다. 그럼 대략 320$ 가량을 10일 동안 쓴 셈이 되나? 계산을 제대로 안 해 봐서 정확하지 않지만, 큰 비용을 들이지는 않았다.

열흘 동안 비행기를 여섯 번 탔다. 잘한 짓은 아니다.

일정이 짧아 제대로 구경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여행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은 그 동안의 짬밥 때문에 생긴 자만심 탓이리라. 여행 기간이 짧으면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여행 계획을 정교하게 짜야 한다.

타이완에서 세계 최고의 철도 코스 중에 하나인 아리산 철도를 못 타본 것이나 요리 한 접시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대만은 여행하기 참 편한 나라다. 중국처럼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것도 아니고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어 별 고생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인 것 같다. 언제 한 번 다시 가 보고 싶다.

9:30분쯤 한국에 도착. 인천 국제 공항에 비행기 타고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착륙하고 나서 한참 동안 비행기를 자동차처럼 굴려 게이트로 향하는 과정이 몹시 지루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 앞으로 걸어가다가 눈보라를 만났다. 황당했다. 오뎅국을 만들어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잤다. 소주가 쓰다.

대만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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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cay -- boat 15min --> Caticlan -- air 1hrs --> Manila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북 루손, 마닐라 북부의 Angeles(앙헬레스)는 미국 주둔 시대의 대규모 공창으로 명성을 날렸다. 여전하다. 북 루손의 더 북쪽으로 세계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 불리우는 rice terrace로 유명한 Banaue가 있다. 북 루손과 남 루손은 육로로 연결된다. South Luson에는 원뿔형의 mayon 화산이 있다. 남 루손 끝단에서 서쪽으로 Visayas 주의 섬들이 늘어서 있는데 Cebu 섬의 세부는 태국의 푸켓에 버금가는 필리핀의 주요 관광지다. 세부섬 옆의 Bohol 섬에는 괴상하게 생긴 Chocolate Hills가 있다. 세부섬 남쪽에 있는 거대한 Mindanao 섬에는 수많은 이슬람이 살고 있고 분쟁이 잦아 관광지로는 부적합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슬람에 대한 이런 기분나쁜 평가를 무시하면 아무도 안 가는 민다나오 섬이야 말로 가볼만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세부섬 북서쪽의 Panay섬 북단 끝에 위치한 Boracay 섬은 한국인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적인 관광지다. Panay 섬 서쪽으로 Palawan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던데, 어떤 작자의 말로는 한국의 해상 국립 공원과 태국의 코 피피 섬 부근을 합쳐놓은 듯한 곳이란다. 우리 여행의 첫번째 타겟이었지만 워낙 깡촌이라 카드가 안되고 교통편이 부실해서 안 갔다. 팔라완 섬에서 동쪽으로, 그러니까 파나이 섬 북쪽으로 Mindoro 섬이 있다. Puerto Galera를 중심으로 보라카이에 버금간다는 White beach와 나잇 라이프의 중심지인 Sabang beach가 있는데 마닐라에서 가까워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들, 또는 한국인들이 보라카이의 관광지스러움을 피해 가는 곳이다. 그곳도 가고 싶었지만 시간 때문에 가지 못했다. 그외에도 필리핀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인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끝내주게 멋있는 개인 소유의 섬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다.

아내나 나는 섬 생활에 별다른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보라카이 섬에서의 며칠은 특히나 지겨웠다. 식사의 가격대 성능비가 형편없고 해변에 나가면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밤에는 바에서 틀어대는 음악으로 소란 스러웠다. 마침 그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한 일이지만 해변에 누워 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전등빛이 사방을 밝혔다. 일부는 보라카이 섬이 주변 섬들과 가까워 충분한 고립감을 체험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보라카이 섬을 빠져 나왔다.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향했다.


전날 asiatravel.com 사이트를 통해 Atrium hotel을 정가의 25%에 예약했는데 컨펌을 받지 못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토요일, 일요일이었다. 아트리움 호텔에서 저렴하게 마닐라만의 전설적인 석양을 볼 수 있다. 전설적인 석양은 마닐라의 고질적인 매연 -- 대기중 부유물질 -- 때문에 생긴 것이다. 아트리움 호텔의 위치가 좋았고 가격대 성능비가 썩 괜찮았다. 아쉽지만, Malate 지구에서 아트리움 호텔보다 더 비싸고 시설은 후진 Adriatico 호텔을 대신 잡았다. 대략 26$ 짜리, 지금까지 잡은 숙소 중 가장 비싼 것이다.

마닐라에 도착하자 마자 호텔 맞은편의 hot pot 식당에 들어갔다. 신선로나 일본의 샤브샤브, 말레이의 hot pot은 재료가 조금 다를 뿐 기원이 같은 음식이다. 한국식 샤브샤브와 신선하고 맛있는 어묵을 넣는 말레이의 핫 폿을 좋아했다. 중국것은 기름기가 너무 많고, 일본 것은 맹숭맹숭했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원래 계획은 곤지를 먹으려던 것이지만 식당 분위기를 보니 hot pot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샥스핀으로 만든 딤섬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입이 쩍 벌어지는 800페소 짜리 식사를 했다.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넣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은 없었지만 간만에 매운 소스를 만들어 건더기를 찍어 먹으니 땀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너무 많이 먹어 움직이기 거북한 아내를 숙소에 남겨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리잘 공원과 마닐라 박물관을 찾아갔다. 문을 닫았다. 중국 정원에 앉아 쉬다가 부산에 자주 갔다는 필리핀 아저씨를 만나 한 동안 얘기했다. 밤에 거리에 나다니지 말란다. 필리핀의 밤 거리가 약간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위험하다고 느낄 사람도 아니었다. 한국 여성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위험에 대한 자각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어쩌면 동행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들이 혼자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걸어보기는 한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아내에게 밤거리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아내는 필경 날더러 겁쟁이라고 할 것이다 -- 겁쟁이 소리를 들어도 기분 상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운동 때문에 광장이 시끄러웠다. 피노이들이 '글로리아'라고 부르는 현 대통령(글로리아 아로요일 것이다)을 밀어내고 선거에서 '에디'를 대통령으로 밀잔다. 광장에는 '에디 형제'의 사진이 그려진 노란 티셔츠, 수건, 모자를 입고 쓰고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에디 측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것인 줄 알고, 평소 에디 만이 필리핀을 구할 애국자라고 생각했기에 한 장 얻으려 했는데 티셔츠 한 장이 100페소란다. 그럼 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티셔츠를 샀단 말인가? 대단하군. 민중 봉기로 부패한 정부를 단죄한 실력 있는 국민들이다. 선거 운동을 축제처럼 재밌게 한다. 부럽다.


브라더 에디의 선거 유세.

Robinson Place의 2층, 3층, 4층 한쪽 wing의 대부분은 음식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하루에 식사를 다섯 번 한다고 들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임은 알겠지만 건물의 3개 층을 오직 음식점만으로 채워 놓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내는 들짐승 고기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해물만 애타게 찾아 다녔다. 그 많은 '저렴한' 식당들 앞에서 환희의 탄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7일째 질리게 먹은 해물을 또 먹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아내가 해산물을 잔뜩 넣은 베트남 쌀국수를 그저 그리운 마음에 먹는 동안, 나는 중국식 패스트푸드점인 초우 킹에 들러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곤지(피노이들은 고또 goto라고 불렀다)를 먹었다. 이름이 King's Gongee. 쌀죽에 잘게 썰은 생강과 파를 넣고 고소하기 짝이 없는 양곱창을 몇 점 넣었다. 별도의 접시에 나온 튀김을 하얀 쌀죽에 얹고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었다. 정말 맛있다. 깔끔하고 담백하다. 감동했다. 중국식 만두도 하나 시켜 먹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살사 소스와 치즈를 잔뜩 바른 나쵸스를 또 먹고 노점에서 샥스핀 딤섬(피노이식으로는 샤오마이)을 한 접시 주문해 먹었다. 마지막으로 차갑고 신선한 두유(라지만 설탕을 넣은 두부 국물)를 한 잔 들이켜 식사를 깨끗이 마무리하려다가 배가 불러서 먹지 못했다.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100페소(2$)가 안 되었다. 웰빙 한답시고 음식점에서 500-800 페소씩 주고 먹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보라카이 섬에서 먹은 음식들 때문에 이틀 동안 가벼운 설사를 했다. 보라카이 섬에서 채소, 과일, 육류 할 것 없이 모두 철이 지난 재료를 사용한 것인지 먹고 나서 속이 안 좋았다. 따뜻하고 담백한 곤지가 설사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

피곤해서 저녁 나절 부터 정신없이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났다. 목이 말라 음료수라도 사 먹으려고 호텔을 나왔다. 여자들 서넛이 졸졸 붙어 다니며 한국어를 포함해 4개 국어로 사랑 한 번 하자고 중얼거렸다. 심지어 호모도 한 마리 붙어서 호텔까지 따라왔다. 경비원이 막아서지 않았다면(어느 가게에나 경비원이 있었다) 방까지 쫓아올 기세였다.

책을 몇 권 노트북에 들고 갔지만 읽지 않았다. 지금 읽는답시고 노트북에 넣어 둔 것은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 브라이언 버드의 '환자와의 대화', 임휘명의 '머리가 좋아지는 음식물 나빠지는 음식물' 등등. 진도가 참 안 나간다.

2004/2/23

아침부터 마닐라 만에 비가 내렸다. 그 유명한(글로리아 마리스 만큼은 안 유명할 지도 모르겠다) 합창 찻집에서 곤지와 국수로 간단히 요기했다. 항공권을 리컨펌하고(할 필요는 없지만 길 가는 도중에 항공사가 보여서 화장실에 갈 겸 들른 것) Kalesa라 불리우는 마차를 타고 Fort Santiago로 향했다. 가격을 몰라 마부와 적당히 협상하다가 30페소를 줬다. 2km 정도의 짧은 거리였으나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으니 비용 만큼의 효용은 있었다.

산띠아고 성은 스페냐드가 파시그강과 마닐라 만 사이의 전략적 요지에 지은 곳이다. 스페냐드에 저항하던 의사(Physicist면 의사 맞지 않나?)이자 작가인 호세 리잘 Jose Rizal이 처형 당하기 전까지 구금되어 있던 장소였다. 그는 자신의 감방으로부터 걸어서 Intramuros를 지나 Rizal Park의 한 장소에서 처형 당했다. 길이 몹시 길어서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의 처형은 애국의 거센 태풍을 일으켰다. 피노이들은 그를 Our hero, Sir Rizal 이라고 꼬박꼬박 경칭했다. 어렸을 적에 안중근 '선생'과 윤봉길 '선생'이 리잘과 마찬가지로 의사(doctor)인 줄 알았다.

일본군 점령 당시 산띠아고 요새는 포로 수용소로 쓰였다. 필리핀 애국자들(게릴라들)을 정기적으로 도살하던 장소였다. 총알이 아까워 스시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마닐라 대 공습 당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많은 수의 포로와 민간인을 죽였다. 미국인의 공습 역시 무고한 민간인을 무수히 죽였고 인트라무로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퇴각하던 일본군과 미국군의 십자포화로 10만여명에 달하는 필리핀 민간인들이 죽었다. 상당히 지랄같은 경우였다(하지만 마닐라 공습은 한국의 6.25 전란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닐라 대 공습(raid)이라고 하지 않고 마닐라 전투(battle of Manila)라고 불렀다. 인트라무로스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마닐라 시가지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에서처럼 나는 gps를 가지고 산띠아고 요새와 인트라무로스를 돌아다녔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비를 맞았다. 리잘이 사형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따라 산띠아고 요새를 빠져나와 인트라무로스로 향했다.


호세 리잘이 처형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동판으로 땅에 새겨 놓았다. 엄숙한 역사 앞에서 숙연해야 한다. 장난치지 말고.

Manila Metropolitan Cathedral에도 역사가 있었다. 1571년 처음 지어진 후 태풍에 날아가고, 화재로 소실되고, 세 번의 지진에 차례차례 파괴되었다. 1945년 1월 마닐라 대 공습 때도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역사를 머금은 성당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필리핀 시민들의 신심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저성장, 저개발, 또는 마르코스의 독재로 인해 성당 지을 돈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여튼 1945년의 마닐라 대 공습(또는 전투) 때문에 마닐라는 볼 것 없는 도시가 되었다. 마닐라는 there is nilad라는 뜻. nilad는 망그로브. 가이드북에 보면 다 나오는데 어떤 친구의 필리핀 여행기에는 마닐라를 색다른 뜻으로 적어 놓았다.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LRT를 타고 가다가 EDSA 역에서 MRT로 갈아타고 Ayala 역에서 내려 SM 몰의 기념품 상가에서 기념품을 샀다. 필리핀에서 살만한 기념품은 조개로 만든 것들, 야자 섬유로 만든 전등갓 등의 수공예품과 자연산 진주인데 다른 열대 국가들처럼 손기술이 한국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인 것 같다. 한국의 자개상감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 같다 -- 적어도 필리핀의 자개 제품 중에 한국것과 경쟁할 만한 것들은 없어 보였다. 조개 제품을 자꾸 사들이면 환경주의자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다. 조개제품을 자꾸 사면(수요가 생기면) 바닷 속에서 잘 살고 있던 조개를 자꾸 따서 조개들을 죽인다고 한다. 마치 환경주의자들이 밍크 코트나 여우 코트를 입은 사람을 싫어하듯이, 사람 가죽을 벗겨 책 표지로 써서 일부 몰지각한 장서가들을 기쁘게 하면 증오심에 불타는 환경주의자들의 눈초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 어메이징 쇼를 보러 갈까... 하다가 남장 여자들이 춤추는 쇼인 것 같고, 20$씩이나 해서 관뒀다. pc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쓰게 해 달라고 우겨보고, 맥주 한 병 마셔야겠다.

런닝 바람에 수영복을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면서(마치 현지인처럼) 노트북을 들고 pc방에 왔다. -- 이 정도면 마닐라의 밤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입증한 것 같은데? pc방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다.


나머지 사진들: 필리핀 사진 2, 필리핀 사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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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코코망가스 식당을 찾아갔다. 피자를 제대로 만들긴 하지만 14가지 토핑을 얹어준다던데, 맛이 가고 기름이 질질 흐르는 참치를 포함해 토핑 수가 일곱 가지 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피자가 찌꺼지 음식으로 만드는 것이라지만 다 시들은 피망 따위를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용서가 안된다. 297 페소 짜리 미디엄 사이즈 피자를 거의 혼자서 꾸역꾸역 먹었다. 보라카이 해변 중심에 독일인이 운영하는 steak house라는 집이 유명하다던데 갈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스테이션 2 피어 근처에 앉아 한국인들이 내리는 모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젊은 필리핀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5시간 동안 1200 페소에 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서 한국인 가이드에 관한 얘기를 또 들었다. fun diving 원래 단가가 50$, 라이센스가 있으면 25$ 가량인데 한국인 가이드를 통하면 100$ 이란다. 아웃트리거 보트 1시간 타는데 10$ 받는 것을 두당 20$씩 따로 받는단다. 그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한국인 가이드와 한국인 업소가 그들의 일을 빼앗아 가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정말 그런지 궁금해서 아내가 한국인 다이빙 업소에서 바삐 뛰어 나오는 직원에게 가격을 물어 봤다. fun diving 2시간에 100$란다. 다음은 독일인이 하는, 나이트록스 장비를 제대로 갖춘, 꽤 괜찮은 다이빙 샵에 들어가 물어봤다. 50$를 불렀다. 글쎄다... 태국의 한국인 다이빙 샾은 그런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데...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다이빙 강사를 모셔 오기가 무지 힘든 관계로 단가를 두 배 받아야 하는가 보다. 한국인 관광 가이드나 한국인 다이빙 샵이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150 페소 주고 트라이시클 타고 Luho 산에 올라갔다. 전망이 끝내준다는 곳인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트라이시클을 타거나 물건을 살 때나, 필리핀 사람들이 기본적인 바가지 이외에 별다른 사기를 안 치고 독한 면이 없어서 대하기가 편했다. 오직 이 동네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들은 한국인 업소, 한국인 가이드 뿐인가 보다.


가랑비가 살살 와서 하루종일 빈둥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저 그것 밖에 하지 않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냈다. 필피피노 컵라면을 먹다가 워낙 맛이 없어서 버리고 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사다가 먹었다. 섬에서 별로 먹을만한 것이 없다. 어젯밤에 부페를 먹을 때는 해산물이 신선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채소나 과일을 사도 신선한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 뿐더러 가격 마저 비싸다. 이제 그만 섬을 나가고 싶다.

아내는 살이 쪄서인지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아내가 나온 사진은 지웠다.

보라카이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이트에도 안 가고, 밤에 바에 앉아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칵테일 한 잔 기울여 보지도 못했다. 시시하다. 수퍼 가서 맥주나 사 들고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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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중...

잡기 2004. 2. 20. 15:58
글을 어디에 올릴까 하다가 예전 중남미 여행하던 블로그에 계속 기록하기로 했다: 필리핀 여행기 색깔은 좀 구리군...

사진은 여전히 위키로: 지금까지 찍은 사진

필리핀의 인터넷 사정이 별로 안 좋아 쓸만한 인터넷 까페를 찾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보라카이에 있고 뒤지다 alice's wonderland 식당 뒤에 있는 아무도 없는 인터넷 까페에서 리브레또를 연결해 사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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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다. 크게 쓸모가 있다기 보다는 값싸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들어두는 것이 바람직했다. 여행중 인터넷으로 들 수도 있지만 저번에 8개월 짜리 여행할 때도 귀찮아서 안 들었다. 동부화재던가? 3개월 짜리가 3만원. 남미 여행 중에는 들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보통 연수 명목으로 보험을 들지 않고 3개월 짜리 여행자 보험을 들고 나중에 재가입하는 식이었다.

어젯밤에 진통제를 먹고 잤다.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당기고 화끈거려서 저녁 9시 이후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거리를 걸었는데, 어제 탄 부위에 햇살이 닿으니 욱신욱신 거렸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신혼 부부 중에 새까맣게 탄 피부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은 보지 못했다. 아웃트리거의 오른쪽 날개에 엎어져 낚시줄을 드리우고 바닷속을 뚜러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30분, 오후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숯불 그릴에 올려놓은 꼬치구이처럼 피부가 익었다.

상당히 비싸 보이는 리젠시 호텔 레스토랑에서 로미와 국수, 달랑 다섯 개 나오는 참치 초밥을 시켜 먹었는데 먹은 양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600페소)을 불렀다. 음식 먹을 때마다 일로일로와 자꾸 비교가 된다.

난 필리피노의 영어를 잘 알아 듣는 편인데 아내는 잘 알아듣질 못했다. 발음... 때문이라고 하지만 c,t를 강하게 발음하고, 엑센트가 거의 없이 줄줄 이어 붙어 가지만 그네들 발음에 딱히 문제는 없다고 본다. 가게에서 가끔 그들은 스패니시 숫자를 사용했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때 '뜨레인따' 라고 말했다. 마치 라틴 아메리카의 어떤 나라를 여행하는 것처럼 반자동적으로 30페소를 꺼냈다.

미용실 아가씨는 날더러 가이드냐고 묻는다.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은 보통 한국인 관광객을 이끌고 오는 가이드라고 한다. 가이드들이 단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시장에 데리고 온 한국인 관광객의 등을 쳐먹고 산다고 말했다. 옆 아줌마도 지리한 예를 들어가며 맞장구를 쳤다. 이틀 내내 한국인 가이드의 바가지에 관한 얘기를 듣다보니 그들이 순 사기꾼 같아 보였다.

일주일 전쯤 어느 게시판에서 필리핀 정보를 수집하던 차에(필리핀 여행 정보가 별로 없다) 한 배낭 여행자가 보라카이 섬의 한국인 관광 가이드의 횡포를 언급하자, 자기는 가이드라며 2개월 동안 필리핀에 관해 고시공부 하듯 두문불출하며 빡세게 공부하고 나름대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이가, 섭섭했는지 일부 가이드들의 행태를 대다수의 '좋은' 가이드에게 같은 혐의를 뒤집어 씌우지 말아 달라고 적어 놓았다. 유명한 여행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쟁이고, 좋은 가이드도 있고 나쁜 가이드도 있으니 이런 걸로 논쟁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정도로 보통 결론이 난다. 웃겼다.

그의 말마따나 몇 푼 벌지도 못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오직 보람과 자부심만 가지고 일할 정도로 생각있는 친구라면 관광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주변의 가이드들 역시 그만 두라고 권유하거나, 그 배낭 여행자 편을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작 2개월 공부한 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한 나라의 문화와 정서, 언어를 이해하는데 2개월 고시공부로 될까? 글쎄올시다.

아내는 가이드 일을 잠시 했다. 가이드가 아니라 길잡이라고 불렀다. 교통과 숙박편을 원래 가격 그대로 거래를 성사시켜 주면서 함께 다니다가 여행객들이 그 나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면 서약서를 쓰고 '독립' 시켰다.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관해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서약서다. 그들은 참, 별로 돈 안 들이고 재밌게 여행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퍽 바람직한 시스템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즐거워 하고 길잡이 일이 끝나면 받는 약간의 보수로 자신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 희안한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는 한국인 관광 가이드와 다르기 때문에 아내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길잡이라고 불렀고 어디 가서도 떳떳했다. 그들은 길잡이 이전에 여행자였고 여행의 고충을 이해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여행자들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다.

태국이나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관광 가이드와 그 점이 달랐다. 가이드는 관광객을 이끌어 숙소를 잡아주고 그들 대신 투어를 예약하고 협상하는 일을 하면서 커미션을 받는다. 그들은 커미션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아까 글을 쓰는 작자들이 흔히 자신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대다수의 좋은 가이드'라고 말하거나, 남에게 자신의 퍼포먼스를 입증하기 위해 가격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 가격은 얼마든지 검증받을 수 있고 정당한 커미션과 깨끗한 거래는 누구나 환영한다. 그리고 그 가격은 혼자 하는 배낭 여행자보다 싸야 맞다.

게시물을 쓴 그 배낭여행자가 자기는 배낭 여행(요즘은 자유 여행이라고 하드만) 중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40$에 했는데 한국인 가이드를 끼면 80-100$로 펄쩍 뛴다고 했다. 가격은 단순 비례가 아니다. 인원수가 늘면 현저하게 단가가 떨어진다. 참고로 그 배낭여행자와 달리 우리는 20$ 가량에 했다. 가격이 워낙 낮아 길에서 호객하던 뱃사공 마저도 그 가격에는 맞출 수 없다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관광 가이드란, 인원수를 무기 삼아 아일랜드 호핑 투어를 두당 15$에 성사시키는 사람이지 호핑 투어의 단가가 80$라며 두당 60$의 삥을 뜯어 현지인 여행사와 한국의 여행사와 자신이 나눠 먹으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간단할 수 있음에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가이드는 필리핀 현지인, 한국인 관광객, 여행자들에게 십자포화를 당하는 일이 당연했다. 가이드는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했다. 밤마다 술 퍼먹으러 돌아다니고, 사고나 치고, 여자를 찾아 혈안이 되어 있지만 스스로 사귀는 것은 못하는 한국인 남자들 때문에 인간에 관해 메스꺼움을 느끼면서 과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수요가 있으니 관광 가이드질도 할 만한 것이겠지. 한국이란 나라는 3면이 바다고 그나마 땅덩이가 붙어있는 북쪽은 갈 수 없는 나라다. 섬이다. 땅덩이가 붙어 있는 인접국이 없으니 해외여행의 기회가 드물고 그것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이나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반대 급부로, 그래서 외국에 나가야 한다.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나라에 혼자 가서 사기 당하고 삥 뜯기고 상처 입고 두들겨 맞으면서(심했나?) 돌아다녀 봐야 한다. 가이드 없이, 겁 먹지 말고.

5일째 해산물만 먹었더니 슬슬 해산물 식단이 질리기 시작한다. 필리핀 먹거리 중에는 투포투포, 이하우이하우, 라푸라푸 등 재밌는 이름이 많다. 말레이 음식처럼 코코넛 밀크를 사용하기도 하고 스패니시의 영향 때문에 많은 양의 음식을 내놓았다. 해산물 요리는 중국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먹는 국수는 뭘 먹어도 꽝이었다. 아내와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며 각 나라의 맛있던 음식을 떠올렸다.

필리피노 퀴진은 극단적으로 야채를 적게 사용한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설마 했는데 고기가 담긴 접시에 야채라고는 오이 한 조각 뿐인 식이다. 먹을만한 과일이 별로 안 보여 열대과일이 풍성한 이 좋은 나라까지 와서 수퍼에서 후르츠 칵테일 통조림을 사먹을 때는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저녁은 야채를 잔뜩 진열해 놓은 부페 식당에 들어가 고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야채를 왕창 먹었다. 웨이터가 음료수를 마시라고 권했지만 사양했다. 음료수 마시면 배가 금방 차서 몇 접시 먹지 못하니까. 둘이서 여섯 접시를 비웠다.

옆방에 묵고 있는 필리피노 연인이 작업 중이라 야자잎으로 엮어 놓은 숙소 전체가 좌우로 흔들렸다.

숙소 벤치에 앉아 산들 바람에 맥주를 들이키며 노트북에 들어있는 John Cusac 주연의 High Fidelity를 보았다. 아내는 재미가 없는지 일찍 잠이 들었다. 야자잎으로 만든 숙소에는 개미가 우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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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들이 소란스럽게 울었다. 게으른 장기 배낭 여행자 답지 않게 오늘도 아침 7시 30분에 어리벙벙 깨어났다. island hopping 하는 날이다. 알란과 선장을 만나 시장통에서 생선(120p)과 오징어 반 킬로그램(65p), 굴 1kg(20p), 조개 1kg(25p) 따위를 샀다. 양파와 양념, 숯 등등도 잊지 않고 샀다.

장기 배낭 여행자 답게 옷은 다국적이었다. 이집트 다합에서 산 얇고 긴 여성용 바지와 터키 이스탄불에서 산 팬티, 영등포에서 산 수영복, 필리핀의 보라카이 시장통에서 3달러 쯤 주고 산 빨간색 러닝 셔츠, 스님이 줬다는 소림사 티셔츠 따위를 챙겼다. 일반 배낭 여행자들은 열대에서 짧은 팔에 반바지, 샌들을 신고 다니지만(한국인의 표준 복장이랄까?) 우리는 긴팔 바지와 긴 팔 셔츠와 운동화나 쪼리를 질질 끌면서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녔다. 꾀죄죄하고 초라하고 허름해 보이긴 하지만 그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번 투어 동안은 줄곳 젖을 예정이라서 투 피스(수영복, 티셔츠)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살 타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아웃트리거 보트를 타고(이거 참 재밌다) 보라카이 섬 남단을 지나 크리스탈 섬과 크로커다일 섬을 둘러갔다. 알란은 우리가 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로지른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 파도가 높아서 신혼여행 코스로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죽여줬다. 선장은 올해 1월에 열린 아웃트리거 보트 대회에서 7위를 했다. 그가 피우는 담배는 hope였고 말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척 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트의 평균 시속은 어림잡아 40kmh 가량이었다. gps를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바다에서야 말로 gps가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데 말이다. 모터 보트보다 빠른 속도였고 달아놓은 돛대 만으로 그 정도의 속도가 난다는 것이 놀라웠다. 로맨틱하지 않냐며, 알란이 또 말하길, 이 배를 타고 한국까지 갈 수도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나는 시속 40kmh로 주욱 달리면 한국까지 직선 거리로 대충 70일쯤 걸린다고 말해 찬물을 끼얹었다. 수치는 나의 사랑스러운 벗이다. 알란은 지지 않고 고기 잡으면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동남아에는 인간을 잡아 귀중품을 빼앗고 고기밥으로 바다에 던져 버리는 해적이 판을 친다. 리얼리티 역시 나의 오랜 벗이다.


만조 때 였고, 까띠끌란과 보라카이 섬 사이에 형성된 작은 해협으로 강한 조류가 흘러 바람을 안고 가는 동안 큰 파도가 몰아쳐 여러 차례 물 보라를 뒤집어 썼다. 아내는 바닷물 샤워를 할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나는 배의 균형을 잡으려고 오른쪽과 왼쪽 윙으로 아슬아슬하게, 바삐, 움직였다. 여차하면 추락이고 뼈도 못추릴 것 같은 파도에 조류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낄낄거렸다.

몽키 아일랜드에 멈췄다. 선장이 시장에서 사온 해산물을 요리하는 동안 우리는 스노클링을 했다. 알란이 아내의 손을 잡고 바다 쪽으로 나가는 동안 나는 멕시코의 무헤레스 섬에서 공짜로 얻은 스노클과 돗수 있는 선글라스 겸용 수영 안경을 끼고 코를 노출 시킨 채 느적느적 그들 뒤를 따라갔다. 고글이 코를 가리지 않아 생각만큼 헤엄치기가 쉽지 않아 콧속으로 바닷물이 자꾸 들어갔다. 핀이 있으면 좀 더 속도를 내서 해변에서 상당히 떨어져있는 몽키 섬까지 왕복할 수 있을 테지만 파도가 높아 여의치 않았다.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 해파리에게 물렸단다. 그들은 돌아갔고 나도 그들이 있던 자리까지 헤엄쳐 가다가 해파리에 쏘였다. 다리가 굳었다. 잠시 쉬면서 산호초 사이에서 뛰노는 물고기들을 구경하며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쉬었다. 물고기가 참 많다. 아침에 빵 사오는 것을 잊어버려 물고기들을 내 손으로 유인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스노클링 할 때마다 번번이 잊어버렸다.

만조라서 먼 바다에 있던 해파리들이 가까운 해변까지 떠밀려 왔던 것이다. 아내는 해파리에 쏘여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근육 경직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해파리는 거미처럼, 평소 작은 고기들을 독으로 마비시켜 싱싱하게 살려둔 채 소화기로 빨아들여 천천히 녹여 먹어 치우는 것 같다. 말하자면, 자기 소화기로 빨아 먹을 수 없는 커다란 인간에게 독을 허비하는 바보짓을 한 것이다. 그들은 왜 여름이면 한국의 동해안에 바글거리는 인간을 먹어치우기 위해 거대하게 진화 하지 않는 것일까? 가오리나 오징어는 뭔가 깨달았는지 금새 커졌더만.

해파리 때문에 더 이상 스노클링은 어려울 것 같아 선장이 불을 피우고 생선을 굽고 있는 자리에 갔다. 보기 보다 엄청나게 큰 생선이다. 그들은 오징어의 내장을 빼지 않고 그릴에 그대로 올려 구웠다.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다소 원시적이랄까. 간장 소스처럼 보이는 것에 하얀 소스를 넣고 거기에 레몬즙을 타고 양파를 잘게 썰어 맛깔스러운 소스를 만들었다. 선장이 현지인에게 밥을 사 왔다. 넓은 바나나 잎에 구운 해산물과 소스에 버무린 약간의 야채, 그리고 밥을 얹고 동굴 곁 자리로 옮겼다. 코코넛 나무 자른 것을 의자 삼아 앉아 식사했다. 선장, 알란, 나, 아내, 그리고 개 두 마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알란이 따온 코코넛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배 터지게 먹고 음식을 남겼다. 다시 출발. 아까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파도가 사방에서 밀려왔다. 보트는 공중에 떴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아내는 무서웠는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나는 그저 너무 기뻤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코티지 열쇠가 사라졌다. 얼씨구?

보라카이 섬의 북부 해변에 도착했다. 인적없는 해변은 우리가 묵고 있던 화이트 비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멋졌다. 그 멋진 해변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때 CF 메모리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가 정말 멋진 곳일까?

몰디브와 사모아 제도의 몇몇 섬들의 해변을 가보지 못해 어떤 해변이 세계 최고라고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태국의 꼬 따오에서 롱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꼬 낭유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꼬 낭유안은 지금까지 여행하며 돌아다녀 본 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해변에 앉아 발가락 주위로 모여드는 물고기를 구경하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신혼 여행 때 해야 한다는 장래 계획을 잡아보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우리도 어젯밤에 장래 계획에 관해 고민한 후 결론을 내렸다; 왠만하면 잘 먹고 잘 살자. -끝-

마지막으로 닻을 내리고 바다 한 가운데서 낚시를 했다. 아내는 고기 한 마리를 잡고 해파리 한테 다시 쏘였다. 나는 그 망할 해파리 두 마리만 낚시줄에 달라 붙어 있엇다. 여지 없이 쏘였고, 선장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보라카이 스테이션 3 피어로 돌아왔다. 2시 30분. 다섯 시간 반 동안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피부를 태웠다.

아내가 새카맣게 탄 피부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다. 약국에서 약(care for sun burn)을 샀다. 글리세린과 비타민 A, 비타민 D가 들어있는, 근본적으로 보습제에 약간의 피부 영양 성분을 함유한 것이다. 알란의 말에 따르면 피부가 타면 시장에서 식초를 사서 문지르는 것이 좋단다. 음. 냄새 나잖아. 옷집으로 원피스를 사러 들어갔다. 아가씨들이 실실 웃어 낯 뜨거워서 허겁지겁 원피스를 사서 나왔다. 언제든지 빤스는 빨아서 널어줄 수 있지만 원피스를 사 가지고 오라는 등등의 민망한 짓은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사진은 찍지 못했다. 특히 파도가 좋았다.


Boracay, Island hopping tour를 마치고 코티지에 돌아오자 마자 찍은 사진.

숙소로 돌아오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섬은 섬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숙소 앞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아쉽게도 숙소에 해먹이 달려 있지 않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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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ilo -- bus 4hrs --> Kalibo -- minivan 2hrs --> Caticlan -- boat 15min --> Borcay

나는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아내는 7개월 전에 마지막 해외 여행을 마쳤다. 다시 말해, 게스트 하우스의 욕실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궁상스럽게 팬티와 양말을 빨아본 것이 적어도 7개월 전이 마지막이다.

호텔에서 '공짜'로 준다는 아침 식사를 챙겨먹기 위해 일어났다. 새소리가 들린다. 또 아침 7시다. 이러다가 아침형 인간들과 친구 되겠다. 해산물을 간절히 기대했지만 쓸데없는 날짐승, 들짐승 류 따위가 나온 부페식 이침 식사는 실망스러웠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 하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에어컨 버스는 10시 20분에 있고 논 에이컨 버스는 15분 마다 있단다. 두 말 할 것 없이 논 에어컨 버스에 탔다. 값싸고 신선한 시골 공기를 흠뻑 마실 수 있고 서는 정류장 마다 떼거리로 버스에 올라와 물건을 파는 행상들이 있어 여러 모로 이익이다. 시골 버스의 또다른 장점은 서스펜션/쿠션이 상당히 안 좋아 심하게 덜컹이는 관계로 고급 버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전신 운동이 골고루 되고 내장도 함께 흔들려 소화 촉진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에어컨 버스 같은 고급 버스를 타면 쿠션이 너무 좋아 자세가 고정되어 졸다가 목이 아프다거나 허리가 결리고 배가 더부룩해 지는 등 건강에 안 좋다고 본다.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이니 만큼 이제는 시골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다.

네 시간 동안 평균 50kmh의 속도로 달려 칼리보에 도착했다. 칼리보는 예상했던 대로 썰렁한 도시였다. 물어물어 까띠끌란행 미니밴을 찾았다. 사람들이 다 차야 출발한단다. 시간이 남고 승객이 더 생기려면 한참은 걸릴 것 같아 보여 아내를 놔두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다가 초우 킹의 쇼 윈도우에 달싹 붙어 상당히 맛있어 보이는 곤지(congee)를 군침을 흘리며 쳐다 보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처럼 필리핀에도 중국음식점이 많았다. 언젠가는 저 곤지를 꼭 먹고 말겠다. 미니밴 터미널로 돌아오니 운전수, 차장, 승객들이 모두 바깥으로 나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까띠끌란 항에는 한국인들이 우글거렸다. 배표가 17.5페소인데 항구 이용료가 20페소라니 웃기잖아?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에서나 보던 아우트리거 보트(out-trigger boat)를 탔다. 모터가 달려 있다. 여기저기서 전라도 사투리가 들렸다. 20분쯤 뱃전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섬에 도착했다. 이런 저런 코티지, 팬션,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시장 뒷편에 있는 코티지를 잡았다. nipa hut이라고 불리우는 야자잎으로 얽기섥기 엮어 만든 오두막을 하룻밤 400페소에 잡았다.

보라카이 해변이 세계 최고라고? 이런 저런 여건을 보건해 보라카이가 태국 해변에 비하면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2km에 달하는 하얀 모래 해변은 인상적이었다. 하얀 모래 해변은 아마도 산호가 바스러져서 생긴 것일께다. 대낮에 해변을 돌아다니면 눈이 아플 것만 같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물어 값싸게 해산물을 잔뜩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알아두었다. 시장통에 있었다.


Boracay,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한숨 돌린 후 해변에서...

해변에서 빈둥거리다가 arlan이란 18살 짜리 꼬마와 모래로 장난치면서 협상을 시작했다. 2-30분쯤 떠들면서 어르고 구워 삶아서 3시간에 1000페소 짜리를 5시간에 1200페소(22$ 가량)에 합의했다. 세 가지가 다른 패키지와 달랐다. 1. 내일 아침에 알란을 데리고 시장에 나가 해산물을 현지인 가격으로 사 준다. 2. 고여사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3. 우리 둘과 캡틴, 보조 딱 4명만 배에 타고 간다. 가이드가 붙어있는 한국 관광객의 경우 80-100$ 주고 열댓 명이 떼거지로 하는, 소위 Island hopping이란 것이다.

알란은 한국인 가이드가 엄청난 커미션을 챙긴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관광객이 없으면 보라카이는 망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보라카이에는 맨 한국인들만 보였다. 특이하게도 어느 여행지를 가나 바퀴벌레처럼 꾀죄죄한 몰골로 돌아다니는 일본인 여행자들이 필리핀에서 만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피노이들한테 일본 식민지 시절의 증오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돈 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해산물 식당을 못 찾아 상하이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나마 싸고 맛있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상하이 레스토랑의 식사는 한심했다. 일로일로에서 워낙 잘 먹은 탓에 이런 평범한 배낭여행자의 식사가 이제는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가난하고 꾀죄죄한 배낭 여행자가 아니란 말이다, 지난 날의 고생을 딛고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 두 사람이 하루 평균 40-50$씩 쓰는 21세기형 웰빙 배낭 여행자란 말이다.

해변에 밀려온 뗏목이 보였다. 아내를 태워 바다로 밀었다. 멀리 떠나 보내고 제 2의 인생을 살아보자는 계획이었다. :)

보라카이 해변 북쪽에는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가 여럿 보였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리조트 등의 비싼 숙소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1박에 100$ 이상씩 하는 호텔 수준의... 아내가 저런 숙소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아 다행이다.

워낙 생각없이 온 탓에 준비한 것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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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la -- air 1hrs --> Iloilo

다시, 오전 6시 반에 일어났다. 피곤한지 택시를 잡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난 별 일 없으면 택시를 타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해서 걸어야지. 한 시간쯤 거리를 헤멨다. 어제 오랫만에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물먹은 솜뭉치처럼 몸이 무겁다.

오전 7시 10분, 근처 공사장에서 인력시장이 열렸다. 고양이들이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어제 LRT(light rail transit)를 탈 때는 몰랐는데, LRT 차량 앞쪽은 여성 전용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필리핀에서 '헐리우드가 놀란 blockbuster' 쉬리를 개봉했다. 동남아 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늦은 축에 속할 것이다.

국내선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돈이 아까와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건강을 위해서다. 터미널에는 많은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있었다. 가슴에 여행사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들이 가게될 까띠끌란과 보라카이가 궁금하지 않을까? 필리핀의 애국지사가 누군지, 필리핀이 어째서 특이한 저성장 구조를 가지고 있고 관광 사업에 목숨을 거는지, 그들의 지난한 역사를 반영하는, 영어와 스패니시가 뒤죽박죽 섞인 따갈로그에 관해서도, 복잡한 인종 구성을 가지게 된 배경도 아는 바가 없겠지. 25만년 전 얘기니까. 하다못해 나를 향한 사랑 뿐, 거의 아무 것에도 관심없는 내 아내도 그쯤은 기본적으로 안다. 어리고 값싼 술집 여자들과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 이외에 그들에게 필리핀은 뭘까? 게을러 터진 나무늘보같은 사람들이 사는 그저그런 저개발 열대 국가?

한국이 동남아의 모든 국가에서 왕따 당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길 희망한다. 나라 밖에서 사고 치지 말고, 한국과 동남아시아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럴 여지는 충분하다.

iloilo 행 비행기를 탔다. 두당 43$, 1시간 운행. 싯 벨트를 끌르자마자 스튜어디스가 마이크를 잡더니 자리에 앉은 승객들 더러 나와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한다. 두어 사람이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정말 노래를 불렀다. 어, 관광버스 같은데?

택시는 대충 무시하고 물어물어 지프니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탁월한 방향감각에 힘입어 제대로 찾아가서 20$ 짜리 호텔을 잡았다. 파나이 주의 프로빈셜 오피스가 있는 일로일로의 중간급 호텔 중에서는 최상급이다. 에어컨, 케이블 tv, 냉장고, 그리고 아침 포함. 여행 중에 이런 호텔에 묵어본 적이 없었다.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돌아 다니다가 두고 두고 핀잔 듣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신혼 여행'이니까.

시내 중심가에서 불이 났다. 강한 북풍 때문에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주민들 틈에 끼어 전망 좋은 곳에서 30분쯤 불구경을 했다. 남의 재산이 활활 타 들어가는 불구경은 역시 지역 주민과 함께 봐야 제맛이다.


일로일로, 강한 북풍으로 불이 삽시간에 번졌지만 20분 만에 진화되었다.

박물관에 갔다. 전시한 것들은 구석기 시대부터 근세의 원주민, 식민 시대 좌초한 배에서 '출토'한 중국 도자기 등등 보잘 것 없었다. 한국에서부터 필리핀의 고대사에 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32도의 뙤약볕 아래서 어려운 걸음 해 주셨는데 전시 수준이 신석기 수준이었다. 우리는 심지어 아이들이 그린 창의력이 철철 넘치는 그림을 보기도 했다.

일로일로는 별 볼 일 없는 도시다. 알고 있었다. 옆에 붙어 있는 마다가스카르같이 생긴 섬에는 별 볼 일이 있지만 MTB를 빌려 산악길을 달려야 재미가 나는 섬이라 아내에게는 상관없는 섬이었고 그래서 나한테도 상관이 없어졌다.

그럼 일로일로에 왜 왔을까? 일로일로에는 영어 연수를 받으러 오는 한국인들이 많다. 일로일로는 1200만의 인구가 바글거리는 마닐라처럼 지저분하고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대도시와 달리 소박한 지방 도시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일로일로는 파나이 섬의 가장 큰 도시다. 다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다. 그저 일로일로를 묘사하는 가이드북에서 seafood paradise라는 것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마치 형광펜으로 밑줄이라도 그어 놓은 것처럼 상당히 환하게 눈에 띄었다.

그랬다. 8.4$ 짜리 값비싼 식사를 하고 나서 여행 중 드물게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24개의 엄청나게 신선한 굴이 단돈 40페소(880원) 였다. 믿어지지 않는 가격이다. 8.4$ 짜리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의 식사를 했지만, 웨이터에게 1. 광둥 스타일의 해산물 수프, 2. 한 접시 가득한 spicy drunken shrimp, 3. 전복, 버섯, 오징어, 새우 등의 재료를 듬뿍 넣어 굴 소스로 조리한 mixed seafood, 4. 평범한 fried rice 한 접시, 5. plain steamed rice 한 접시, 6. 신선한 pineapple juice를 주문했다.


사람들이 친절했다. 일로일로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 오직 우리 같은, 음, 맛따라 길따라나 오는 곳이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하루 밖에 머물지 않는다.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high speed internet이라지만 초당 3.2kB/sec 짜리였다. 인터넷 사용에 대비해 뭔가 적절한 준비를 해 오지 않았다. 따라서 이 여행기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인터넷에 올릴 수 있게 될 것 같다.

수퍼에서 맥주를 샀다. 호텔의 텅텅 빈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시간쯤 급속 냉동했다. 작전 시각은 6시 40분. 비극의 '아폴로 13'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일로일로의 또다른 특산물은 '끝내주게 맛있는 세계 최고의' 망고다. 망고 수확철은 4월이다. 우리는 '끝내주게 맛있지만' 덜 익어 떫은 망고 두 개와 피넛, 피스타치오를 안주 삼아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산 미구엘 필센과 산 미구엘 라이트를 마셨다. 산 미구엘 라이트는 독일산 맥주의 공세에서 산 미겔의 매출이 떨어지자 2년전 등장해 필리핀을 휩쓴 맥주다. 마치 맥시코의 테카테 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맥주라기 보다는 청량음료에 가까웠다. 330ml 짜리 캔이 18페소(대략 400원)다. 알딸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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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 subway 1hrs --> Kimpo Domestic Airport -- shuttle bus 30min -->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 air 2hrs --> Taipei -- air 2hrs --> Manila

전날 밤 짐을 싸뒀다. 큰 배낭 하나, 작은 배낭 하나, 힙쌕 하나, 10.95kg. 버릴만한 옷들을 입고 챙겨 가져갔다. '신혼 여행'을 앞 둔 우리의 결심: 이번에는 빈티 내지 말자. 다운시프트 웰빙하자.

아침 7시에 일어나니 피곤하다. 걷고, 뛰고, 지하철을 옮겨 타고, 버스를 타는 등 가장 저렴하게 공항으로 갈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비행기 출발 40분 전에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 사람들이 많이 밀려 보딩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늘 있는 일이니까 늦는 것 정도로는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싸구려 항공권이라 오고갈 때 트랜짓을 했다. 좋다. 2만원을 더 주고 돌아오는 편을 트랜짓에서 스탑오버로 변경했다. 왕복 항공권으로 필리핀과 대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신경 썼더라면 38만원 미만의 항공권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신혼 여행'이니까 돈에 연연하지 말자.

서울->타이뻬이 2시간, 1시간 트랜짓 대기, 타이뻬이->마닐라 2시간, 4시간 비행에 기내식을 두 번이나 줘서 흡족했다. 누군가의 경험에 따르면 필리핀 사람들(pinoy)이 워낙 굼떠서 조금이라도 이미그레이션에 늦게 도착하면 처리 시간이 두어 시간씩 걸린다는 말을 듣고 인천 공항에서 발권할 때 앞자리를 달라고 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뛰다시피 걸었는데, 왠걸, 순식간에 처리되어 맥이 빠졌다.

인천공항을 빠져나갈 때 아내의 패스포트에 문제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인적 사항이 기록된 여권의 첫 장이 떨어져 나갔다. 까다로운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 잘못 걸리면 본국으로 송환될 우려가 있다. 위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첫 페이지가 손상되어 고생하던 외국인 여행자를 본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조하기 간편한 여권을 만든 이들이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다. 자기 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 불합리하게 억류되면 왜 그런 지역에 가서 사서 고생하느냐고 팔짱을 끼고 호통을 치는 바로 그 외교통상부였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 사람이 잡혔다고 치자.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여행자들은 갖은 수를 다 써서 여행자들을 귀환시키는데 한국 외교통상부는 감방에 갇혀 3개월이 흐르고 나서야 뭔가 조처를 취하는 식이다. 가끔은 여행자들을 통해 라면 배달도 시킨다. 외교통상부 덕택에 한국인 여행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하는데 익숙한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고 해 두자. 때로는 이렇게 지독한 인간들을 만들어 주시는 외교통상부가 고맙다. 요즘은 서사모아 제도의 이름모를 무인도 한 귀퉁이에 떨구어 놓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을 지나가다가 강력접착제를 샀다. 숙소를 잡고 나서 짐을 풀자 마자 여권을 정말 튼튼하게 붙였다. 외교통상부 덕택이다.

인천 공항, 타이뻬이 공항, LRT 스테이션, 필리핀 도메스틱 에어포트 등을 거치는 동안 기내 반입이 금지된 칼을 배낭 속에 넣어 두었다가 인스펙션에 걸려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그 동안 갈고 닦은 탁월한 솜씨 덕택이다.


대만, 타이뻬이 공항, 트랜짓 대기 시간 동안 가이드북을 읽는 아내

필리핀의 첫 인상: 꼬모에스타라는 인삿말이 있고 우노,도스,트레스,꽈뜨로,씽꼬라는 숫자가 있다. 거리 이름과 사람 이름은 에스파뇰이고 거지 마저도 영어를 알아 듣고 말했다. 일부 거지는 '한국돈 만원 오케이' 라고 당당하게 외치기도 했다. 메스티소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비슷하게 살이 쪘고 무표정한 것 마저도 비슷했다. 바둑판 모양의 거리는 깨끗했다. 거지들이 개, 고양이와 함께 땅바닥에서 굴러 다니며 자더라도 쳥결에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마닐라에서의 첫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150페소(3300원)짜리 간장 소스에 볶은 굴 요리를 포함한 세 가지 요리를 시키고 시원한 산 미구엘 맥주를 곁들였다. 케이블 방송에서 '겨울연가(?)' 따갈로그 더빙판을 보면서... 90페소쯤 슬쩍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지만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거리를 헤메다가 간신히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아직 거리 개념이 잘 안 잡힌다. 거리 구조도 스페인식 바둑판이었다. 단지 필리핀 인들은 n blocks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다. 무조건 over there이란다.

밤 10시. 식당을 나와 걸었다. 아니 숙소를 못 찾아 헤멨다. 구걸하는 사람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나자빠져 자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전에는 별 일 없어 보이던 가게들이 모두 bar로 변한 것만 같다. 필리핀에는 두 종류의 바가 존재했다. 웨스턴 바와 girlie bar라는, 여자가 나오는 나가요 분위기의 술집. 바 앞에 여자들이 앉아 초롱초롱 눈알을 빛내고 있었다.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숙소에 돌아오자 마자 나가 떨어졌다. 피곤하다.

아내는 자기 사진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아 식음을 전폐한 채 다이어트에 몰두해 있다. 세 접시를 깨끗이 먹어 치우고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는 특이한 다이어트였다.

벽은 얇고 창문은 안 닫히고 복도의 불빛이 환하게 12$짜리 게스트 하우스를 비춰주었다. 피곤한 관계로 첫날밤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묻지마 첫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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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잡기 2004. 2. 15. 23:38
피자 먹다가 열차를 놓칠뻔 했다. 맨날 이 모양일까... 대구가 막창이 유명하다는 것을 어젯밤에야 알았다. 새벽 다섯 시까지 술을 마셨다. 여관방에 누워 빈둥대다가 그래도 식장에 나가봐야 겠기에 들러서 얼굴에 분칠 하고 콩나물 시루 같은 결혼식장에서 정신 사나워져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호텔 문지기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복장이 그 모양이었다. 어떤 꼬마애가 날더러 잘 생겼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 한다. 신부는 소복 입은 귀신 같았고 결혼식 내내 웃었다.

신혼 여행을 빙자해 머리 식히러 가기로 했지만 필리핀 쪽 코스가 잘 안 나왔다. 섬 사이의 배 스케쥴이 들쑥날쑥 해서 짧은 일정에 아일랜드 호핑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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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잡기 2004. 2. 14. 01:39
정월 대보름에 술에 취해 옥상에 올라가 쌍안경으로 보름달을 보았다. 그날 밤의 달은 무자비하게 컸다.

3년 쯤 벤치마크 했다.
장가 가면 슬퍼할 여자가 몇이나 될까? 한둘쯤? 잘 살겠지.

하객 수를 계산해보니 열댓 명 정도, 딱이다. 신부 친구들만 대략 100명이 몰려 온대서 오지 말라고 사정하는 편이지만, 나는 아는 사람이 얼마 없다. 평소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 차이가 실로 드라마틱하게 보였다. 그런데 왠지 성공한 듯한 기분이 들어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루크의 인생에서도 상식이 통할 전망이다' 라고 말한다.

고구마를 맛있게 쪄 먹고 방구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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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걱정들

잡기 2004. 2. 13. 00:53
신부될 사람은 여기, 내가, 쓰는 글을 싫어한다. 잘난 척 하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낸다고 생각한다. 저번 블로그는 있지도 않은 사실의 예가 될 것이다. 첫번째 그림은 두개골에 갇힌 산업화된 비생산적 이성이다. 찢어진 글자들이 새겨진 두번째 그림은 내 뇌가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텍스트와 경쟁하면서 그것들을 용기에 담아 흔들어 좀 더 알아보기 쉬운 형태로 의미를 세척했다. 세번째 그림은 흔들리는 카메라로 찍은 성운이다. 네번째는 대기를 뚫고 쏟아져 내려오는 코스믹 레이, 자연 방사선이다. 세포내 원자는 우주선에 의해 주기적으로 파괴되고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네번째 그림은 방사선을 맞고 서서히 파괴된 피부 내지는 감마선 레이다로 찍은 170광년 떨어진 어느 이름모를 성운의 모습이다. 네번째 그림은 솔라리스다. 다섯번째 그림 역시 끓어오르는 유기 사고 집합체, 솔라리스다. 여섯번째 그림은 우주의 특정 지점에 위치한 내 자리다. 일곱번째 그림은 일 없이 붕괴된 또다른 현실이다. 이상, 세계-내-존재, embodied conversational agent, 해석 엔진으로써 설명을 마친다. 웃자고 하는 그림에도 안 웃는 세계-내-존재가 다수 있는 것 같다.

술 먹다가 늦어서 사무실에서 잤다. 아침에 깨어 샤워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 정리를 하다가 밤 아홉시를 넘겼다. 어쨌건 이사는 나흘 만에 끝났다. 무슨 사정이 생겨 매년 한 번씩은 꼭 가게 되는 이사가 아주 지긋지긋하다.

이문열은 인터넷을 쓰레기장, 잡설을 늘어놓는 네티즌을 탈레반으로 묘사했다. 기사 말미에 균형잡힌 보수주의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자기 곁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겨레의 어떤 컬럼, 남성 패미니스트가 쓴 글에서 최근 빅 히트를 기록한 한국 영화의 내부에 코딩된 가부장적 권위, 물화된 여성을 증오심을 담아 한탄스럽게 묘사했다.

유지나는 LoTR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서는 등장하는 네 마리 호빗 중 두 마리는 여성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독창적인 시각에 항상 감탄했다.
잔걱정이 많다.
별 일 없으면 이문열이나 유지나가 나보다 먼저 갈텐데, 그럼 심심해서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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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끝

잡기 2004. 2. 11. 17:07

책 사러 갔다.










읽었다 책.










눈 오는 밤










눈 오는 밤, 행복한 밤. 술에 취해.










돌아 누워










프라이팬 닦기










지옥의 프라이팬 닦기










이사를 마치고.










Latte E Miele, Passio Secundum Mattheum, Il Pianto (1:49)

앨범 표지는 인간의 실루엣에 담긴 푸른 하늘로 형상화된 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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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잡기 2004. 2. 11. 00:46
노트북을 꽤 알뜰하게 사용해 왔다. 기차를 타면 차량 중에 맨 앞 칸과 맨 뒷칸에 220V 컨센트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지하철 역이나 공공 장소를 잘 살펴보면 청소부 아줌마들이 사용하는 전동 청소기구를 꽂을 수 있는 아웃렛이 있어서 어댑터를 끼우고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다. 아웃렛에 어댑터를 꽂아 놓고 쭈그리고 앉아 블로깅을 하는... 좀 불쌍한가?

파나소닉의 신 제품 노트북은 배터리 사용시간이 무려 7시간에 달했다. w2b가 스펙상으로 5시간, 실제로 동영상을 볼 때 3시간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스펙의 7시간은 적어도 서울에서 부산에 내려갈 때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니콘 공유기에 있는 문제로 추정되었던, 지나치게 많은 포트를 한꺼번에 사용하면 공유기의 성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현상은 푸르나에서 오버넷으로 교체하고 나니 한결 나아졌다. 여전히 집의 공유기로는 특정 서버 포트 스캔 따위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지만.

이번이 몇 번째일까. 유무선 공유기를 네 번째로 산다. 새로 옮긴 사무실에서 사용할 용도로 용산에 들러 14만 5천원 짜리 OvisLink AirLive WL-5404AR를 샀다. 주인장이 오비스링크 공유기를 어떻게 알고 사냐고 물었다. 되는대로 첫 눈에 띄는 제품을 골랐다고 대꾸했다.

새로 지은 용산역. 어디서 많이 본듯한 디자인.

집을 나서기 전에 구매할 공유기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어야 하는데 깜빡 잊었다. 인터넷을 뒤져봐야 하는데... 이럴 때는 한 달 사용료 15000원 짜리 넷스팟 아이디가 아쉽다. 주변의 누군가 한 사람만 총대를 매면 다수가 행복해지는데 말이야.

어쩌면 좋지. 난감하네... 아, 방법이 있다. 시도해 보자. 상가 1층에 놓인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펴들고 site survey를 해서 발견된 ap 또는 유무선 공유기에 차례차례 접속을 시도해 보았다. 실패. 실패. 실패. 무응답. 실패. 빙고. 걸려 들었다. WEP 암호화를 사용하지 않는 어느 매장의 유무선 공유기가 잡혔다. 용산 터미널 상가의 노트북 매장들은 전시하는 노트북의 무선랜을 시연할 목적으로 유무선 공유기를 즐겨 사용한다.

앉은 자리에서 편안하게 인터넷을 공짜로 사용하며 구매할만한 유무선 공유기를 뒤졌다. 눈에 띈 것이 오비스 링크의 WL-504AR, 유선에서 95Mbps의 throughput이 나오고 100MBps FTTH 서비스인 ntopia에 접속해서 테스트해 본 사용기가 있었다. 802.11b와 802.11g가 혼재된 네트웍에서도 대역폭의 희생을 일으키지 않는 기술을 사용. 껍데기는 촌스러워 보인다. 가격대는 145k에서 259k 사이, 가장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게가 선인상가 21동에 있다. 필요한 정보를 다 모았기에 노트북을 접고 일어나 가게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헌혈차가 눈에 띄었다. A형 혈액을 급히 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헌혈을 해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여행 중에 만난 외국인과 얘기 도중(그도 헌혈을 해 본 적이 없다) 체내에서 피가 빠져 나가면 마치 고산증과 유사한 증세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좋은 일도 해 볼 겸, 정말 그런지 실험도 해 볼 겸, 무료로 피 검사도 받아볼 겸, 용기를 내서 문을 밀고 불쑥 들어갔다. 사실 피 뽑는 것이 무서워서 여태까지 헌혈을 해 본 적이 없다.

설문 항목 중에 최근 1년 이내에 말라리아가 있는 지역에서 머문 적이 있냐는 항목과 B형 간염 여부를 묻는 질문이 있었고 aids 감염 여부를 탐문했다. 자신있게 '아니'라고 적고, 대답했다. 400ml쯤 피를 빼는 동안 대롱이 간지러워서 몸을 뒤틀었다. 처음에는 피가 쩨쩨하게 흘러 나가서 힘을 잔뜩 주어 피 빠져 나가는 속도를 초당 10ml 이상으로 증가시켰다. 좀 더 노력하니까 15ml까지 가능했다. 피를 빼고 난 후 계단을 오를 때 힘이 들었고 머리가 멍하다. 고산의 희박한 대기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본분을 다하지 못해 헐떡일 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갑작스럽게 졸음이 밀려와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졸았다.

책상을 들여 놓고 인터넷을 설치하고 컴퓨터를 올려놓는 등, 사무실 셋업이 대충 끝났다. 15층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대 빨면서 바라본 야경이 가관이었다. 디스코, 나이트, 백화점, 롬살롱 등등이 네온사인을 번쩍였다. 사각형 밖에 눈에 띄는 것이 없는 서울 근교 계획 도시가 이런 것이었구나.

"짜장면~~~" -- 영화, '오! 브라더스' 중. 이사가 끝나고 먹는 꿀맛 짜장면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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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처럼 팔자가 편한 사람들을 본 적 없다. 실력만 좀 있으면 정말 살아가기 편한 것이 엔지니어다. 인문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십년 동안 고려사를 연구하던 사람과 학사 졸업하고 현업에서 십년 굴러 먹은 엔지니어와 연봉을 payopen.co.kr 가서 비교해 봐라.

이공계 논란, 학문적 위기 등의 얘기는 술자리에서나 할 얘기라 생략하고, 실무 차원에서;

이공계 졸업하고 자바 프로그래밍을 1-2년쯤 취미삼아 이런 저런 프로젝트 몇 번 해본 사람을 기업에서 뽑아줄까? 나라면 안 뽑는다. 외국에서 박사 학위 따고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으며 C 프로그래밍을 5년쯤 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안 뽑는다. 특정 프로그래밍 기술은 2-3개월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라면 엔지니어 마인드가 있는 사람을 뽑겠다. 엔지니어 마인드를 정확히 꼬집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들에게 엿보이는 몇 가지 특징은 요약할 수 있다;

1. 논리적이다.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똥고집을 부리며 개처럼 싸우지만 결과에 승복한다.
2. 어떻게? 보다는 왜?에 약간 더 관심이 많다.
3. 자나깨나 공부 한다. 그 자신이 기술적 다형성의 표상같다. 달리 말해 여러 부문을 넘나든다.
4. 자기 만족과 기술적 성취에 혈안이 되어 있다.
5. 4항에 힘입어 실험과 모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6. 현실의 제 문제를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접근한다.
7. 혼자서도 잘 한다.

그리고, 기술한 항목을 통합해 마지막으로 -- 온갖 잡소리가 다 나오겠지만,

8. 선천적+후천적으로 여지없는 기술자다.

2항의 어떻게?는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팀장질 하는 작자나 윗분들에게 맡겨두면 저절로 해결된다. 윗 사람이 무능력하면? 프로젝트를 위해 그가 짤리게 공작한다. <-- 긴 얘기가 되므로 생략.

사람들을 면접할 기회가 잦아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기술한 내용 중 적어도 2-3항목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에서 성취도가 높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엔지니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경력은 저들 항목과 무관해 보인다. 십 년 이상 C 프로그래밍을 했는데도 문제 해결 능력이 형편없고 아이디어가 잘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달 전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사람이 BSP 트리를 지극히 독창적으로 응용하는 흔치 않은 경우도 있다. 프로그래머의 성격, 기질, 생활상의 난잡스러움 등등의 문제는 1항을 충족하면 얘기 자체가 부질없다.

아까는 안 뽑는다고 심하게 씹었는데, 사실은 면접을 볼 때 먼저,

1. 관상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자부심과 고집불통은 확실히 얼굴에 드러난다)
2. 자질구레한 대화를 나눠본다. (광범위한 분야의 잡담이다)

면접볼 때 이력서 내용을 거의 보지 않는다. 이력서에는 '본의 아니게' 뻥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1-3년은 어리버리 지나갔고, 4-7년차는 프로젝트를 할 만큼 해 봐서 자신감이 붙는 시기다. 그래서 제일 말이 많은 작자들이 보통 경력 5년차에서 7년차 사이다. 경력 5-7년차면 뭔가 대단한 기술자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프로그래머 답게 하루 12-18시간 일하면서 낮밤 모르고 살아왔지만 기술한 다섯 항목을 인터뷰 중에 평가하다 보면 의외로 재미없는 사람들이 많다.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값싼 1-3년차를 쓰는 것이 여러 면에서 현명하다. 어떤 프로그래밍이든 1년 이상 하면 전문가 된다. 못할 것이 없다. 못한다고? 역으로 말해 저 항목들은 훌륭한 프로그래머들이 되기 위한 조건(어쩌면 천연적인)이기도 하다. 조건+자극+노력이면 안되는 것은 없다.

훌륭한 프로그래머는 2항과 7항 처럼 자신이 레퍼런스와 매뉴얼을 뒤적이고 1항처럼 알고리즘 효율성이니 뭐니 해서 동료들과 박 터지게 싸워대고 3항처럼 프로그래밍과 관계없이 여러 분야에 관해 기술적인 교양을 쌓고 프로젝트에서는 4항과 5항처럼 도전적이다. 6항은 항목중 유일하게 기질과 관련된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설명 생략.

내가 보고 싶은 것은 '프로그래머'다. 그런 사람들이 있고, 보았고, 함께 일하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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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sttop computer라 불리우는 Suunto X6HR, 스테인레스 바디의 X6HRM 보다는 플라스틱을 선호하는 편. 바다 속에서는 회로가 단락되므로 심박측정기를 사용할 수 없다. 두번째 단점은 컴퍼스가 자북을 가르킨다는 것. (자북과 진북을 간단히 계산할 수는 있지만 gps가 지닌 정밀도에 비하면... 좀... 뭐 사실 20km 작은 반경에서 자북이나 진북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이 시계에서 쓸만한 것이라고는 기압계와 심박 측정기 정도이고 나머지는 gps를 이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다시 말해, 나머지 별볼일 없는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wristtop computer까지는 필요 없고, 심박 측정기가 정말 필요한 기능인가? (신경질나지...) 에는 의문이 생기며 바로메터를 차라리 gps에 내장하는 것이 이 값비싼 기계 보다 정밀도와 (내 까다로운) 요구 조건(특히 가격 상의 매릿과 배터리 교환의 편의 등등)을 만족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썬토의 팔목 컴퓨터에 그렇다면 gps를 내장할 수 있을까? 경험상 gps 리시버는 그렇게 효과적으로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 목줄 아래로 늘려 놓기만 해도 형편없이 수신율이 떨어지고 조그마한 시계에 gps 리시버를 구현하는 복잡한 회로를 넣는다면 소비전력 면에서 만만찮은 상실감을 맛보게 될 여지가 충분하다. 결론: 손목 컴퓨터는 사치품이다.

가끔 지구로 자유낙하 하는 꿈을 꾼다.



군이 추진하던 엑셀시어 3 프로젝트. Joe Kittinger가 '가히 미친 짓' 하는 사진 보고 감동 먹었다. 헬륨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31km(102800 feet) 상공에서 뛰어내려 거진 음속에 달하는 속도로 자유 낙하했다. 지구를 향해. 1960년 세운 최고, 최장 시간 자유 낙하 기록이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나이의 길!

아참, 사나이질은 왠만하면 결혼 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들으면 들을수록 유쾌해지는 노래, Band of Borhters에서 이지중대 공수부대원들(?)이 합창하던 노래.

GORY, GORY (Sung to the tune of "Battle Hymn of the Republic") (5:50)

He was just a rookie trooper and he surely shook with fright;
As he checked all his equipment and made sure his pack was tight;
He had to sit and listen to those awful engines roar,
"You ain't gonna jump no more!"

Gory, Gory, what a helluva way to die!
Gory, Gory, what a helluva way to die!
Gory, Gory, what a helluva way to die!
And he ain't gonna jump no more.

"Is everybody happy?" cried the sergeant, looking up;
Our hero feebly answered "yes," and then they stood him up;
He jumped right out into the blast, his static line unhooked,
And he ain't gonna jump no more.

He counted long, he counted loud, he waited for the shock;
He felt the wind, he felt the cold, he felt the awful drop;
He pulled reserve, the silk spilled out and wrapped around his sock,
And he ain't gonna jump no more.

The lines were twisted round his neck, the connectors broke his dome;
The risers tied themselves in knots around each skinny bone;
The canopy became his shroud as he hurtled to the ground,
And he ain't gonna jump no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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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이야

잡기 2004. 2. 7. 22:06
eouia님의 구더기... 뭐라는 글을 읽다가 생각난 김에 블로그 코리아에서 탈퇴하려고 들어갔더니 탈퇴 메뉴가 안 보인다. '블로그 없음'으로 바꿨다. 도메인 옮기고 나서 조횟수가 줄고 코멘트가 줄어 기뻤다. 조만간 호스팅을 옮기긴 해야 하는데 시간이 안 난다. 구글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robot exclusion rule을 작성해야 할텐데... 더글러스 호프스테터가 자기 초월에 관해 말하다가 언급했던 우스운 역설이 생각났다. 신은 자기도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을까? 앵무새처럼 중얼거리자면 알라께서는 누구에게나 능력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아티클 수 128개, 코멘트 513개에 대한 답글 22개. 들락거리는 사람들이나 나는 별 일 없고, 행복하니, 부담 없이 블로그질 하자.

일전 대낮, 심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Watching My Life Go By가 Watching my life go away로 보였고, keeping me human이 keeping me inhuman으로 보였다. 내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일본과의 30분 시차가 한국인을 일본인보다 언제나 30분 늦은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언젠가는 인체생리와 전자기술의 진보로 시각(time)을 느낄 수 있게 될 것 같다. 전 인류가 시간을 '느끼고' 싱크로나이즈 닭질하는 모습이 흐뭇하다.

교보에서 가이드북을 두 권 샀다. 전에 시공사에서 날더러 가이드북 써볼 생각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다. 체질상 가이드북을 쓰면서 여행하긴... 좀 그렇다. 하여튼 Just Go 시리즈가 그래 나왔다. 팔라완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마닐라에서 출발하는 배편이 일주일에 하나 밖에 없다. 일단 바클라란에서 배를 타고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코스를 잡았다. 언젠가 방콕에서 만난 여행자가 필리핀에 있는 개인 소유의 작은 섬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기억이 안 난다. 게코와 뱀들이 우글거리는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지상 낙원이라던데.

수학 유전자(math gene)의 앞 장(적어도 반 이상)은 몹시 지루했다. 책이 지루한 이유는 작가가 글을 잘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얘기를 적어도 책의 반, 150페이지가 넘어가는 동안 늘어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지리하고 친절한 해설보다는 책을 압축해서 100 페이지 이내로 요점 정리 했더라면 읽기 편했을 것이다.

책을 찾게 된 동기가 자연어와 기계어, 그리고 수학 사이에 모종이 결연이 있다는 막연한 추측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였다. 옛날 김씨 아저씨와 대화하던 중 그가 그 셋 중 둘은 관계가 없거나 무관하거나 그 관계가 희미하다고 말했다. 셋 사이의 공통점이 없었더라면 배우고 체현하는데 힘들었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 역시 언어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언어 구조, 수학 구조가 근본적으로 대뇌에 고착된, 프로그래밍된 '형태/형식'이라는 주장이다. 해설을 위해 증거가 아닌 논리를 사용한 것이 부적절해 보이지만(그 분야에 증거라고 할만한 두터운 퇴적층이 있어야지), 그와 비슷한 생각을 어렴풋이 품고 있다. 역시 증거는 없다.

숫자들 사이의 균질성, 동등성을 배우고 숫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숫자를 대체하는 상징적인 체계, 즉 대수를, 추상화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후로는 두 자리 덧셈도 어려워하는 바보가 되었지만. 대칭성, 자기 유사성, 반복성 등과 논리와 사실을 기술하는 자연어 표현이나 그것보다 좀 더 엄밀한 논리적 표현양식(수식)이 상호 유사하다는 점. 저자의 주장은 과도한 외삽을 보여 주었다. 심지어 자신이 외삽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윤씨 아저씨는 나처럼 하드웨어를 잘 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도 본 적 없다. 술 먹다가 간다며 일어나길래 하는 수 없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캐나다인과 동석했다. 쉐인이라고 하는 친구였다. 소주에 콜라를 타 마셨다. 아니면 그 반대던가. 그와 오, 아, 리얼리? 세 마디만 사용했음에도 대화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술을 만들어 먹는 친구다. 맥주 마시러 가자고 끌고 나왔다. 중간에 사라졌다. 아침에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가 간밤에 먹은 것들이 올라올 것 같아서 숙소로 황급히 돌아왔다. 두통약을 먹고 자다가 일어났다. 해장국 집에 다시 가서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그날밤 눈이 아주 많이 왔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다. 동남아 인기 스타 장동건을 이제사 처음 본다. 실미도 보다 재미있다. 한국인의 삶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머리가 홱 돌아버린 영화가 이다지도 많이 나오는걸까? 영화가 남 얘기 같지 않다. 마지막 장면의 신파가 나오는 동안, 저 불필요한 장면은 왜 넣었을까 생각 하면서도, 여긴 한국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사무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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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이것 저것

잡기 2004. 2. 2. 20:56
woweb.net의 특정 호스트에서 발생하는 속도 저하 문제를 해결한다고 수 시간 동안 사이트에 접근이 안되었다. 일기를 draft로 올린다는 것을 publish 해 버렸다. 쓰다만 것들을 마저 쓰고 정리.

집을 나와 길을 걷다가 청살모 한 마리가 느적느적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았다. 별일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느긋한 청살모를 보다니.

토요일 아침 일찍 춘천행 기차를 타러 청량리 역에 갔다. 오랜 세월 변치 않고 그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홍익회 국수를 안 먹으면 입에 가시가 돋힐 것 같아(그 집 우동을 처음 먹은 것이 20년 전이고 매 번 출발 전에는 우동을 한 그릇 먹었다. 세상에는 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보다) 출발 4분을 남겨놓고 국수를 시켜 먹다가... 열차를 놓쳤다. 먹거리 때문에 기차를 놓치다니... 어지간히도 바보스러웠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강변 버스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탔다. 기차보다 1시간 늦었다. 아줌마가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춘천역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기차를 놓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 추가: 뚝섬역.

춘천역에서 소양댐 행 버스는 기차 도착 시각에 맞춰 도착한다. 기다리기가 뭣하다. 택시를 타고 소양댐 행 시내버스를 탈 수 있는 소양2교 앞으로 갔다. 20분쯤 덜덜 떨고 있으니까 시내 버스가 도착했다. 그럴 바에는 춘천역에서 따뜻하게 앉아 30분을 기다리다가 오는 버스를 편히 타는 건데. 소양댐에 도착하자 청평사행 보트가 마침 출발했다. 전화받고 화장실 들르며 여유 부리다가 놓쳤다. 30분쯤 기다려 보트를 타고 가면서 오늘 참 되는 일이 없구나 한탄했다.

소양댐 정상.

개울과 그림자 연못은 얼어붙었고 고려 때 지었다는 청평사는 단청칠을 새로 하는 바람에 영 모양새가 꽝이 되었다. 옛날 그 좋았던 분위기는 온데 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길 가는 사람을 잡아 덕담을 하는 할매집 할멈만은 변치 않았다.

청평사. N37.98578, E127.80897, 해발 277m

세월교에 들러 샘밭 막국수에서 막국수와 감자전을 먹고 가려다가 아침에 떨면서 버스 기다리던 생각이 나서 곧장 시내로 들어왔다. 오후 5시. 남부 막국수에서 막국수와 감자전을 시켜 먹었다. 사람들을 만나 소주를 열댓병쯤 마시고 광적으로 놀았다. 너무 늦어 예매한 기차표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하룻밤 묵었다.

다음날 아침 말짱하게 깨어났다. 오로지 소주만 마시면 다음 날이 개운하다. 역시 소주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달리 말하자면, 소주를 제외한, 또는 소주보다 유익한 화학 물질에 대한 적응에 실패한 것이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 지하철을 타고 가던 도중 문이 막 닫히려 할 때 내리다가 중간에 끼었다. 이런 된장할. 이틀 동안 이게 무슨 일인지. 소주 다섯 병 마셨다. 그리고 아주 쉽게 잠들었다.

조사장과 스펙을 다시 점검했다. 난상 토론 끝에 몇 가지를 완전히 바꿔버리자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매우 훌륭한 스펙이 완성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과거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게 되었다. 사무실에 들어온 지 수 개월 만에, 사무실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청소라는 것을 했다.

악마와 미스 프랭,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연금술사. 이들 책의 공통점은 파울로 코엘료가 지었고 지난 한 달 동안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싶어도 대출할 수 없었던, 인기 초절정의 책이라는 점이다. 알라딘의 연금술사에 관한 소개글 중;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또 안다고 해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의지와 끈기를 지닌 사람은 몇 명이나 될는지. 지은이는 이 책 안에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 반드시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한 것은 내가 우주비행사가 되길 간절히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한국에서 우주인을 공모로 뽑아 미국의 우주선에 태워 보내 최초의 한국인 우주인을 만들자는 꽤 당황스럽고 멋진 계획을 유보시킨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은 문제 없다. 그럴 마음이 아직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저러다가 과학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란 평가를 듣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가 해야 한다고 믿는 여러 가지 일들의 우선 순위 리스트에서 과학기술 육성책은 한참 밀린 것일께다. 이제사 드디어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Every man has his humor.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피차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Marianne Faithful, This little bird (2:04) -- 잠결에 듣고 하루 종일 신경 쓰이던 음울한 멜로디. overnet으로 부러 검색해서 다운 받았다....and the only time she touches ground is when that little bird dies. 새대가리 치고 의외로 바른 생활 하는 새가 아닐까 싶다. 날 수 있을 때 날아 두고 죽을 때 푹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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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

잡기 2004. 1. 30. 17:38
어젯밤엔 벨 커브에서 양 극단에 속하는 특이성을 지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류에 관한 얘기를 했다. 여러 종류의 '평범한' 성향, 성격분석이나 적성,지능 테스트는 그런 사람들이 지닌 특이성을 잡아낼 수 없다 라고. 살인마가 내성적이라던가 결정을 잘 이루지 못해 망설인다던가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재능을 가지고 있다던가 하는 정도 뿐이라 참 귀엽기 까지 하다. 이상 정신 세계, 이를테면 예술가나 과학자, 범죄자의 성향을 제대로 분석하려면 절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량적 분석을 시도하는 테스트는 무의미하다는 것. 을 강조하고 싶었다. 간만에 콜린 윌슨 얘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정씨 아저씨나 김씨 아저씨는 자기들이 그 극단에 속하는 사람들 임을 인지하지 못하던가 어렴풋하게 자각하는 수준이었다. 갈 데까지 가려면 자각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예수나 부처는 자각했고 놀부, 흥부는 자각이 없었다. 머릿 속의 라디오는 그런 주파수를 찾아다녔고 또한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인간이 가진 개성과 카리스마 따위는 눈을 현혹시키는 옷 같은 것이고 믿을 것은 몸에서 직접적으로 뿜어 나오는 희미한 에너지 발산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특이한 종류의, 조제된 인간성이 매력적으로 보인 적은 없었다. 매력적인 사람이란 범죄자,예술가,과학자가 지닌 특성이 혼합된 형태를 띄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예술가나 범죄자의 대다수가 별로 기대할 것 없는(차도가 안 보이는) 또라이라고 여기는 편이었다.

8월부터 로또복권 천원으로 인하 -- 미래를 일종의 투기, 사기도박으로 간주하는 평범하고, 늘 재수가 없는 소시민을 두 번 죽이지 않는 방법이 뭐가 있을런지.

'아침형 인간'도 처세술 책인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짐작컨대, 아침형 인간이란 저녁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 든든하게 챙겨먹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그리고 언제나 미소와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자신이 뜻하는 바를 능동적이고 생기있게 추진해 나가는 사람일 것 같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에 몹시 긍정적이다.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굳이 아침형 인간이 될 필요가 있나? 내가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침형 인간들이 모두 자고 있을 오전 1시에서 4시 무렵이다.

'직장의 쓸개빠진 놈팽이들, 월급이나 받아 먹으며 이놈 저놈에게 빌붙어 사는 무능력한 놈들은 가차없이 짤라버려야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회사다닐 때 했어야만 하는 정치적, 전술적 행동양식을 처세술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그런 류의 인간에 속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녀석들이 세상을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뿐더러, 특히, 재미가 없다. 권력의 불균형에 따른 파워 포텐셜을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하 생략. 자신이 살기 위해서 타인의 등을 처먹는 놈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갖은 수단을 동원해 정의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하고 그의 이익을 가로챈 후, 여유가 되면 사회단체에 전액 기부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작자는 믿을 수 있지만, 그것에 세계평화라든지, 한민족의 중흥을 위해서 라든지 하는 갖가지 이데올로기를 갖다 붙이는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비슷한 얘기를 어딘가 처세술 책에서 보았던 것 같다. 후자는 사정이 생기면 딴소리를 한다. 차라리 내가 이런 일을 했을 때 마진이 얼마고 나한테 떨어지는 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왠 녀석이 이익이 아닌 윤리 교과서에 나옴직한 얘기를 늘어놓을 때는 믿을 수 없는 자라고 단정지었다. 앞으로 튀기고, 뒤로 뒤집어 다시 노릇하게 튀겨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이데올로기 땟국물을 증발시켜야 한다고도 믿었다. 하하하.

아프리카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사막이 갑자기 멎은 것처럼 별 생각없다. 의문은 바다와 함께 멀리 떠나갔다. 그래도 박진감이 철철 넘치는 생활소사에 관한 의문은 남았다. 미역국을 끓일 때 조갯살을 넣는 것이 좋은가, 조갯살 중 홍합살만 넣는 것이 좋은가? 해물전 아줌마가 문제를 해결해 줬다. 미역국에는 홍합살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결혼한다니까, 다들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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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잡기 2004. 1. 27. 02:39
홈페이지 바깥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마실용 블로그, 위키 사이트, 게시판, 신문 사이트를 phpnews로 통합해 놓은 덕이다. 홈페이지의 안 보이는 곳에 기사 모니터링 룸을 잔뜩 설치해 놓았다. 덕분에 세상사에 어두워졌다.

손가락 지름이 궁금하단다. 가만있자... 사무실 어느 구석에도 줄자나 줄자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수치를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A4 용지 뿐이다. 275x210. 가로변을 길게 잘라 손가락에 감아 표식을 남기고 반으로 접었다. 210/2 = 105mm. 그것을 다시 반으로 접으면 52.5mm. 표식과 근접하도록 나머지 반을 접고 또 접어1/4 하면 52.5/4=13.125. 1/4한것을 반 접으니 6.5625. 손가락의 둘레는 52.5 + 13.125 - 4(눈대중 오프셋) = 61.625mm, 지름은 61.625 / pi = 19.6158mm, 손가락의 반지름은 9.80mm. 손가락 반지름이 g와 비슷해서 외우기 좋았다. 재밌는 발견이다.

hochan.net에서 한국 표준시에 얽힌 안 좋은 이야기를 읽었다. 표준 시간대에 얽힌 일제 강점기의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실이다. 15도를 1시간으로 계산해서(360도/24시간=15도) 서울이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동경 127.5이므로 127.5/15(시간당) = 8.5가 나온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8시간 30분, 즉 gmt+8.5가 되어야 옳다. 그보다는 영국이 거대한 해양 세력이었을 당시 임의로 제정된 gmt 그러니까 utc를 문제 삼고 싶다. 왜 영국인들이 자기들 멋대로 정한 시간을 세계 표준 삼아야 하는가 하는. 한 나라의 자존심을 들먹이는 것 보다는 세계를 생각하는 안목으로 이김에 스타트랙의 스타데이트처럼 우주력을 만들어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레고리언 달력이나 24시간 체계는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짜증난다. 십진법이나 이진법, 하다못해 16진법으로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들쭉날쭉한 한 달의 길이나, 윤달, 윤년의 존재, 거기다가 음력까지 보태지면... 카오스다. 문화/사회/정치/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들은 대체로 그런 양상을 띄고 있다. 경제성, 합리성, 효율성 하고는 거리가 멀다. 자존심, 허풍, 과장, 히스테리 등 정서적인 문제로 바뀐다. 모르는 관계로 입 다물고 생업에 충실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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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지방

잡기 2004. 1. 24. 22:46
같이 가자길래 어제도 오늘도 기다렸지만 이틀 동안 기온이 -14도, -12도 라서인지 연락이 없다. 겨울 등산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거지. 여름에 등산할 때는 땀을 바가지로 흘리지만 겨울에는 안 흘려서 좋은데 말이야.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오후 1시쯤 아이젠과 장갑, 모자를 챙겨 산행을 준비했다.

집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5분 거리. 입장료 1600원. 목에는 쌍안경을 걸고, 양쪽 주머니에 각각 GPS와 디지탈 카메라를 넣어두고 산꼭대기에서 무선랜이 되는지 보려고 가방에 노트북을 넣었다. 인터넷으로 북한산에 관해 뒤져 봤어야 하는데 어떻게 되겠지 싶어서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산으로 올라갔다. 엊그제 스트레칭을 해 둔 덕택인지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하기사 700m 짜리 산을 오르는데 힘들게 뭐가 있겠나. 페루와 볼리비아를 돌아다닐 땐 2500m 이하는 산 취급도 안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힘들었다. 근육이 땡기고 지방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나는 지경이었다. 8개월 동안 의자에만 앉아 있었더니 몸이 많이 굳어버린 것 같다.



길이 미끄러워서 아이젠을 착용했다. 한 시간쯤 지나면 근육이 풀리고 귓가에서 헤비메탈 사운드가 울려 퍼지면서 'godspeed luke'라고 속삭이는 말이 들려와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보통은 그 다음부터는 뛰지만 허파꽈리들이 심하게 헐떡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걸었다.



달랑 500ml짜리 물 하나 들고 갔는데 문수봉에 올랐다. 플라스틱 병 모가지에 얼음이 잔뜩 끼어서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두들겨 깨서 얼음을 아득아득 씹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볼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면 바람 때문에 체온이 급강하했다.



망원경으로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툭하면 망원경을 빼들고 사방을 살폈다. 원래 이런 용도로 구매한 것은 아니지만...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이 시작된다' 라고 어떤 작자가 말했더라? 인적 없는 산속에 들어가 원없이 헤메며 서바이벌을 해 보려고 했는데 일정이 괴퍅하게 틀어져 버렸다. 그리고 밤에 눈밭에 드러누워 별을 쳐다보려고 산 것인데...

수증기와 먼지가 대지에서 기어 올라오기 전에 일찌감치 출발했더라면 상당한 가시거리가 확보되었을 터지만 망원경으로 한강의 여러 다리와 명동과 여의도가 보인다는 점이 놀라웠다. 50mm 짜리라 시야각이 넓어서 까마귀와 까치가 싸우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카메라의 전지를 갈아두는 것을 잊어버려 사진을 얼마 찍지 못했다. 모바일폰에 달려 있는 cmos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봤지만 화질이 영 구렸다. 이거 도대체 초점을 어디에 잡아놓은 거야? 노트북의 무선랜은 되지 않았다. 손가락이 곱아서 키보드를 두들기는데 애로가 많아 블로그 작성을 하다가 말았다. 카메라폰으로 찍은 사진을 email로 전송하는 것도 실패했다. 폰 전지가 바닥이다.



노적봉 부근까지 가려고 했지만 gps를 보니 1시간 후면 해가 지는 판이라(5:47pm) 하는 수 없이 대성문(또는 대동문?)을 거쳐 우이동 산골짜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늦게 출발했다. 할렐루야 기도원이 보였고 '작정 100주 기도' 라는 현수막도 보였다. 담배는 모두 세 가치 빨았다. 담배를 한 대씩 피울 때마다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6-1 버스를 타고 청량리로 가는 도중 중간에 내려 4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삼각지에서 내려 만두 잘하는 중국집에 가려니 문을 닫았다. 아참 춘절이지. 6호선으로 갈아타고 불광역에서 순대국 잘하는 집을 찾아 가려니 역시 문을 닫았다. 아참 구정이지. 벌벌 떨면서 처량하게 음식점을 찾아 다녔다. 기어코 순대국을 먹고(맛이 형편없었다)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잔 했다. 경로를 반쯤 가다가 해가 져서 그냥 돌아왔으니 대체 오늘 뭘 한 건지 모르겠다.



파노라믹 뷰를 만들었다. 카메라 전지가 다 닳아서 360도를 못 돌리고 찍다 말았다. -_-;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Panorama Factory V3.1. 그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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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시티

잡기 2004. 1. 24. 04:28
2080년 서울을 배경으로 했다는 한국 '최초'의 'sf멜로물' 내추럴 시티는 묻지마 사랑을 주제로 전면 부각시킴으로서 부실한 스토리가 영화를 어느 똥통에 쳐박을 수 있는지 모범적인 예시가 되었다. 영화는 그저 '나도 할 수 있다'는 감독의 불쌍한 자기만족처럼 보였다.

비주얼?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이버 펑크물을 골고루 베껴 먹었는데, 시나리오나 미술감독, 연출은 그런 짓을 하고도 낯 뜨겁지 않았을까? 스토리를 이루는 주요 소재로부터 대 분류 쯤은 되는 '영혼 더빙'까지 어디 한 구석도 독창적인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영화라서 처음에는 코메디물인 줄 알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R이란 주인공은 피비린내 나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술집에서 술 한 잔 하는 것 외에 별달리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는 오따꾸인데 (그의 유일한 인간관계는 자기와 사이보그를 족치러 다니는 동기 한 명뿐) 어쩌다 보니 술집에서 바 잡고 춤추는 쇼걸 사이보그와 사랑에 빠진다. 사이보그의 유통기간이 얼마남지 않은 관계로 그는 부정축재를 일삼는 부패한 공무원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갖가지 부품을 슬쩍해 어떻게든 자신의 사랑을 지속해 보려고 뻘짓을 하다가 그를 등쳐 먹으려는 미친 과학자(사기꾼)에게 농락당한다. 최근 한국 영화 주인공중 이런 무뇌아는 처음 봤다. 말도 안되는 사랑 놀음에 뜯어 맞춰야 했기 때문에 미친 과학자가 사이보그 쇼걸의 영혼을 더빙하기 위해 갖은 ...을 되풀이하다가 잘 안되니까 울화가 치밀어서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막 나간다.

아구가 통 안 맞는 스토리와 군상의 면면으로부터 내추럴 시티를 지저분한 치정극이라고 하지 가슴아픈 사랑 얘기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예술적 순수함(또는 오리지널리티)과 충분히 개연성과 당위를 가진 스토리로 사랑을 뒷받침한다면? 음. 여전히 치정극이다. 정신병리적 상태를 드라마틱하게 매체로 꽃치장해봤자 정신병리적 상태라는 점에서는 달라지지 않듯이.

유지태는 언제까지 변태 캐릭터만 맡으려는지 궁금하다.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실마리가 감상주의로 떡칠 하다시피 했다. 사이보그는 별 대사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기껏 한다는 액션이 자기 목덜미의 코르크 마개 같이 생긴 메모리를 빼어내 피를 흘리며 자살하는 것 정도였다. 남자 주인공들은 무의미한 욕설을 늘어놓다가 그냥 죽었다.

촬영후 더빙은 분위기를 착실하게 망가뜨리고 있었다. 어째서 아무도 이 'sf영화'에 관해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

약이 올라서 룰을 무시하고 감상문을 올리고 말았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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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왜 신나?

잡기 2004. 1. 23. 03:09
240$면 면봉으로 입천장을 긁어 dna 샘플을 보내 이브의 일곱 딸들 중 내가 어느 clan에 속하는지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서비스의 범위가 불분명하고 데이터베이스가 아직 작아서 신청은 삼갔다. 내가 누비아의 왕이라고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깜둥이다. 그러나 나는 왕이다' -- 미셀 투르니에의 동방박사(?)의 멋진 첫 문장.

노스모크에서 옛날 진화론을 부정하는 글을 읽고 잠깐 동안 옛날에 배웠던 것들을 회상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 대개가 진화론 '신자'는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저게 논쟁이 되는걸까. 신기했다. 비슷한 것이 하나 더 있다.

eouia님의 블로그에서 알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에 관한 마초 논쟁을 읽었다. 나처럼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마초는 요즘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었다. 번역물의 원문 대조를 안 하면 어불성설이 되나 보다. 원문대조 운운하는 걸 보니 문유님은 y님이 번역한 것보다는 본인이 한 것이 원문에 충실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시시한 얘기 보다는, 코멘트 중간에 x가 이름을 숨기고 얍삽하게 뭔가 써놓고 튄 흔적이 보였다. 만날 저런 짓을 하고도 아직 한 대도 안 맞았다.

'아이도 썰고, 어른도 썰어 넣으세요.' -- food 채널에서 얼핏 들은 말. x는 cold meat pie가 될 자격이 있다. 노래 한 곡 땡기자. ELP, Brain Salad Surgery, Benny the Bouncer (2:21)

'진정한 사나이가 되고 싶다면, 내 배에 타라'
'지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야당놈들에게 들키면 큰일이야'
'한순간 우주 전체가 동시에 흔들렸습니다!'

이상, 자기 우주선을 갖고 있는 원조 마초 Captain Herlock TV판에서 본 대사들.

2004년 번역SF물 시장의 판도 -- '현명한' 독자라서 그런지 최근 출간된 sf중 알라딘의 서적 보관함에 forge of god 단 한 권만 담아놓았다. 저 아저씨는 자기는 번역서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볼 형편이 안되면서 한국의 sf 독자들은 신나겠다며 두미쌍괄식으로 얘기하던데, 소화 안 된다. 서비스가 좋아야 책 장사가 잘 되리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출판사는 책이나 잘 내면 된다고 본다. 독자들 한테 꼬리 흔들고 알랑방구 끼면 책의 품질이 저절로 향상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하다못해 반sf적이고 상상력 0에다가 저 유비퀴터스적으로 바보스러운 한국 sf의 표지가 개선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오역은 그렇다치고 오탈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출판사가 프로페셔널 집단이 아니라는 증거다. 프로그래밍 코드에서 철자 하나 틀리면 원자로가 폭발할 수도 있다. 나같은 극빈층 프로그래머 조차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프로그램을 짜는데(어, 과장과 명백한 논리적 오류) 출판사 편집,교열원은 왜 죽기 살기로 자기 직업에 충실하지 못하나. 오탈자 하나당 곤장 한 대씩, 뭐 이런 내부지침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그 출판사에서 기획자가 사장님 눈, 귀 다 막아 놓은 걸 뻔히 다 아는데, 기획자만큼은 정성들여 씹어도 될 판인데, 저 아저씨는 늘 오줌 싸다 말고 지퍼 올리듯이 시시한 문제(출판 시장 따위)에 집착하는 것을 레코드 판 걸어놓은 것처럼 수 년째 반복했다. 하여튼 sf 종수는 늘었어도 뭐 읽을만한 것이 있어야지. 다들 자기들 지론이나 펼치기 바쁘지, 정작 나같은 독자는 아직까지 신날 일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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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

잡기 2004. 1. 21. 01:59
지난 2주간 숙원 사업이던 '해물탕'을 해 먹었다. 재료비 만원 가량. 무를 깔고 새우, 우럭, 게, 오징어 따위 해산물을 얹고 쑥갓과 파를 얹고 고추장 약간, 고추가루 왕창, 마늘, 생강, 매운 고추 따위를 갈아 양념장을 만들어 얹고 육수를 부어 끓였다. 저녁 늦게 재료를 구하느라 낙지, 쭈꾸미를 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해물탕을 할 줄 모르지만 만들고보니 꽤 시원하다. 국물이 장난 아니게 맛있어서 하는 수 없이 수퍼에 가서 술을 사와 곁들였다.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세.

PG-K7000 핸드폰용 usb 케이블을 구매했다. 비닐봉투에 넣어둔 usb cable만 달랑 있었다. 그러고도 2만 7천 5백원을 받아 먹다니, 욕 밖에 안 나온다. 소프트웨어는요?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에서 다운 받으세요. 죽이는군. 사이트에 전용 소프트웨어가 없어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PD6500용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으란다.

usb 케이블로 충전도 할 수 있고, 핸드폰을 pc cam처럼 사용할 수 있긴 한데 화질이 너무 구리다. pc sync 소프트웨어와 아웃룩이 동기가 되므로 palm desktop을 outlook 동기로 맞추어 놓고 일정과 전화번호 따위를 먼저 아웃룩에 옮겨 놓은 후 그것을 핸드폰용 소프트웨어로 임포트해서 핸드폰으로 전송했다. 그룹 세팅이 모두 깨졌다.

며칠 써 본 바로는 curitel의 PG-K7000은 어디 권하고 싶은 핸드폰이 못 되었다. 이런저런 ui가 구리기 그지없다. 핸드폰이 꽤나 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ui가 이렇게 한심한지 모르겠다. 누가 컨셉을 잡고 프로그램을 짠거야?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쪽 팔리지 않나?

안 쪽 팔리니까 그렇게 만들어 놨겠지.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인가. 남이 만들어 놓은 소프트웨어를 비아냥거리는 것보다는, 해물탕 끓여 먹고 행복해 하는 것이 백배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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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기

잡기 2004. 1. 20. 02:16
통장 정리나 한답시고 은행 잔고를 보다가 섬뜩해졌다. 이건 아니다 싶다.
남은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구정 때 며칠 놀러 가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돈 안 드는 책을 읽던가 일을 하자.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판돈이 떨어졌으니 당분간 술은 가급적 안 마신다.
판돈이 생겨도 이놈에 소비 행태는 개선이 필요하다.

개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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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다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어린 시절에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다가 보면 어른이 되었을 때 쯤이면 은하계 횡단팀에 끼거나 최소한 밀항은 할 수 있을 꺼라고, 신기한 세계를 볼 수 있을 꺼라고 꿋꿋하게 믿고 있었는데(그건 종교였다) 아직 달이나 화성에도 못 가 본 채 지구상에 존재하는 산적한 문제꺼리들, 땅바닥에 달라붙어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 먹고 살기 위해 벌이는 아비규환, 이런저런 피비린내나는 분쟁 따위를 지켜보고 있으니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90도 꺾어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면 서울에서 춘천 만큼의 거리(100km) 도 되지 않는 곳에 우주가 있다. 서울에서 6300원짜리 고속 버스를 타고 한시간 반이면 수평 이동해서 춘천에 갈 수 있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수직 이동해서 우주에 올라가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비행기를 탔을 때 기내 영화 중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우주로 올라가는 일본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국민 학교 교실에서 남들은 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유독 그 친구만은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했다. 남 얘기가 아니다.

박씨 아저씨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희망사항이라지만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하록이라고 짓고 싶어했다. 최근 방영했다는 하록 tv판에서 선원들한테 사기 치고 퀀텀 사이에 존재하는 태초의 악과 싸우러 홀로 떠나며 하록이 예의 그 후까시를 잔뜩 잡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후까시는 나도 하록 선장만큼 할 자신이 있지만 하록에게는 우주선이 있고, 난 우주선이 없어서 영 모양이 안 나온다. 그게 문제다.


Logarithmic Maps of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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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 뒤

잡기 2004. 1. 18. 19:14
술 기운에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카메라를 들고 앞산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산을 내려와 해장국을 먹고 사우나를 마치고 나와 보니 어느새 눈이 다 녹아 있었다. 피곤해서 하루종일 집에 박혀 일주일 내내 냉장고에서 삭아가던 야채들을 그러모아 반찬꺼리를 만들고 GTO TV판을 봤다. 자다 깨보니 tv가 켜진 채 였다.


집 옥상에서 찍은 사진. 우리집 뒷산. 북한산.

이하, 앞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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