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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04.04.16 총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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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2004.03.10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 7
  30. 2004.03.06 과학기술 기사 2

SJ33/J

잡기 2004. 5. 18. 01:37
다소 부실한 clie 전기종 스펙 비교표. TJ35, TJ37을 사는 것이 이미 단종된 SJ33/J를 사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TJ37을 사느니 텅스텐 E를 ebay에서 구입하는 것이 낫겠다. 워낙 소니 제품에 신뢰감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라... 클리엥의 중고 게시판을 모니터링한지 거의 2주가 되었지만 SJ33의 가격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갈등하다가 무슨 잡지 원고 쓰고 '앞으로 받게될 지도 모르는 돈'으로 SJ33/J를 중고로 샀다. 굳이 japanese 모델을 산 것은 영문 롬으로 덮어 쓴 다음 남은 4MB의 플래시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배터리를 충전시키지 못할 형편이라면 재복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128MB Memory Stick을 포함해서 20만원. 직거래를 했는데 꼼꼼이 점검해보지 않아 엉뚱한 usb 케이블이 딸려 왔다는 것을 집에 와서야 알았다. 귀찮아서 연락하지 않았다. 집안을 뒤져 mini usb 플러그를 찾아 연결했다. 그나 저나, 물건을 받을 때 딸려 온 케이블이 니콘 카메라의 '특이하게 생긴,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인데, 물건을 판 친구가 행여 케이블이 없어 곤란해 하지는 않을까...

소니 제품을 처음 써보는 것인데, 소니가 지닌 도회풍의 허약함과 디자인의 이름으로 휴먼 인터페이스를 끝끝내 팽개치는 허접스러움에는 '역시 소니야'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주말 동안 갖은 고생 끝에(아, 안 보는 새에 pda가 이렇게나 발전했구나...) 왠간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했다. Visor Deluxe에서 사용하던 프로그램들이 워낙 구버전이라 새로 구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mp3는 id tag가 있거나, 한글 파일명이면 검색이 되지 않았다. 오로지 320x320 컬러 액정을 보고 구매한 것인데 일광에서 lcd 글자를 거의 알아볼 수가 없다. 그뿐이랴, 크래들이 없다. 허접스럽게 생긴 케이블과 전원 케이블을 각기 따로 연결시켜야 한다.

만충전 상태에서 LCD 밝기 최대로 해놓고 mp3를 무한 플레이하면서 batttery time으로 벤치마크를 해보니 2시간 40분을 버텼다. 아웃도어에는 부적합하지만, 그럭저럭.

케이블이 영 귀찮아서 웹 사이트를 뒤져 핀맵을 알아내 usb 케이블에서 충전할 수 있도록 회로를 수정했다. 핀맵을 보니 serial line이 나와 있던데 잘만하면 gps와 달아놓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연결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 시내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지도를 보고 찾아간다? 거참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한데, 어둠의 경로에서 알맵 딜럭스를 다운받아 리브레또 L1에 설치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단지 아무것도 설치해 놓지 않았다는 이유 만으로, 해서는 안되는 중독성 게임인 bejeweled를 하다가 하차해야할 역을 놓치고 버스도 놓쳐 사무실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라 용산 전자 상가에 들러 부품을 이것저것 구했다. 신기한 것은, 용산에 가는 길에 머리 속에서 회로를 황급히 그리고, 도착하자 마자 떠오르는 대로 부품을 달라고 말했는데 십년이 넘었건만 칩 넘버를 아직도 외우고 있었다. 심지어 해당 칩이 없다고 점원이 말하자, 그것과 등가한 칩과 부속 칩이 떠오르기도 했다. 574없으면 573이요. 00없어요? 그럼 32하고 00, 그리고 06도 하나 주세요. 이런 식이다.

집에 돌아와 안방 컴퓨터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각 팬 마다 저항을 달았다. 건너방에 부속과 기구를 널부러 놓고 작업에 착수했다. 황금같은 주말에는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컴퓨터 튜닝이나 pda에 사용할 사전 데이타를 모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낭만적이고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압축해서 13메가나 되는 다음의 프라임 사전은 예전부터 바이저 딜럭스에서 사용하던 2.3메가짜리 영한 사전보다 허접스러워서 의아했다. 심지어 표제어의 중요도를 표시하는 *** 마크 조차 없었다.

사전이 아니라면 128MB라는 광활한 메모리를 대체 뭘로 채워야 할까. 여행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지도를 몽땅 집어넣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mp3를 듣기로 하고. 출퇴근 하면서 PDA로 mp3를 들으며 코믹구루로 만화책을 봤다. 당분간 책 사지 말자. 20만원 짜리 pda니까, 한 4개월은 쉬어야 할 듯. 책 안 사고 정말 오래 버티는구나 싶다.

PDA 하나 바꿨다고 인생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 gray -> 65536 color, 160x160 -> 320x320, 8MB -> 16MB. 산술적으로 16384x4x2=131072배 업그레이드 되었다. 홍콩에서 산 바이저 딜럭스는 당시 23만원 주고도 싸게 샀다고 좋아했다.

새로 장착한 이빨(whitetooth) 역시 제 역할을 해 내고 있었다.
,

기사라...

잡기 2004. 5. 13. 01:36
글쎄다, 에피소드와 함께 디지탈 기기를 들고다니면서 여행하는 얘기를 써 달라고 하던데 나하고는 영 거리가 먼, 사진 찍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어제 먹은 술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번 주까지라니 급한대로 기사를 써서 보냈다. 왠지 횡설수설한 것 같고, 기사라는 것이 체질에 안 맞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도... 마누라, 보고 손 볼 것 있으면 알려줘. 내가 여행담 끄적이면 그게 다 '범죄의 재구성'이라며?

-*-

인도, 아그라의 한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흉내낸 수제비의 형편없는 맛 때문에 나름대로 실존적인 고민을 하던 차에 만났던 한 프랑스인 여행자의 사진이 색달랐습니다. 타즈마할의 정면이나 측면, 또는 아그라 포트에서 찍은 사진은 워낙 흔해 빠졌지만 타즈마할의 뒷면을 찍은 사진은 처음 보았지요. 어째서 뒤를 찍었을까, 타즈마할의 뒤는 강인데 보트 위에서 찍어도 그런 각도는 안 나올텐데, 의아해서 어떻게 찍었는지 물어봤지요. 강에서 배를 타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에서 펄쩍 뛰어내려 놀라서 경악하는 인도인 뱃사공을 뒤로 한 채 건너편까지 헤엄쳐 갔다고 말하더이다. 새벽에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배를 몰고 나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엄청난 똥물에 뛰어들어 기슭까지 기어 올라가 사진을 찍는 그의 열정은 사뭇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샤워는 꼼꼼하게 했는지 의심스러웠지요. 필자가 만난 배낭 여행자들 중에서 가장 지저분한 사람들이 프랑스 여행자입니다. 세수를 안 하고 다니는 것은 같은 여행자로서 이해가 가지만 마지막 샤워를 언제 했는지 날짜를 손가락으로 꼽는 친구들이 몇 있었지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여행이지요. '고향에서 죽는 자는 행복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여행을 시작한 이유가 십인십색(every man has his humor)이었습니다.

* 세상 구경이나 할까 해서 잠깐 바람 쐬러 나왔어요. 일년이 지났군요.
* 원래는 유럽이나 돌아보려고 했는데 자다 깨보니 아프리카네요.
* 친구 따라 나왔는데요? 친구는 돌아갔고요. 돈 떨어질 때까지 돌아다니려고요.
* 저는 비행장년이거든요. 갈 데가 없어요.

장기여행자 중 절반 이상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봤자 몇 컷 찍지도 않지요. 짐 된다고, 여행에 방해가 된다고요. 인도의 깐야꾸마리 부근에는 수많은 풍력 발전기가 언덕을 뒤덮고 있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석양 속에서 본 그 광경이 너무나 멋있어 사진을 들이대고 찍으려 했지만 속절없는 버스는 필자를 위해 차를 세워주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요. 그래서 석양 속의 풍력 발전기는 내 마음속에서만 천천히 돌아가게 되었지요. 지금은, 사진으로 안 찍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부터 여행에 관한 이런 저런 짤막한 정보와 여행과 디지탈 장비가 궁합이 맞는지, 필자의 경험을 빌려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행 계획 준비와 비용은 기간에 반비례 합니다. 만일 일주일 여정으로 여행을 계획했다면, 그리고 그곳이 처음 가는 곳이라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충분한 사전 준비와 일이 틀어질 경우에 따른 대안을 마련 하지 않으면 길 위에 돈을 뿌리고 다니기 십상입니다. 반대로 여행 기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더 자유도가 늘고 여행 비용이 줄어듭니다. 보통 2-3주가 지나면 다른 사람이나 가이드북의 도움 없이도 이동과 숙식 등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여행에 집중하게 되지요. 필자의 경우, 태국 1주일 여행 경비는 100만원 가량, 인도 한 달 여행은 120만원, 세계 1년 여행이 1000만원 가량 들었습니다. 천만원 중 400만원이 항공료였는데 보시다시피 여행 기간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점점 저렴해지지요? 몇몇 국가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해, 하루에 7불 이내로 여행이 가능합니다.

필자는 장기여행자 주제에 온갖 장비들을 들고 다녔습니다. PDA는 금전 관리, 특히 환전할 때 계산기로 쓸모가 있지요. 국경에서 환전을 하다보면 어떤 특이한 기술을 사용한 것인지 환전상의 계산기에서는 0.1 곱하기 10을 두들기면 9가 나옵디다. 사기를 치는 녀석에게 화를 내는 것도 잊고 그저 기발하고 신기했지요. 그것 외에 무료하고 심심한 이동 중에 책을 읽는다던지 하는 용도로 사용했고 인터넷에서 수집한 여행 정보를 넣어 두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짐받이 차의 요란한 뒷자석에서 충격을 받아 메모리가 포맷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 아주 요긴한 기기였습니다.

디지탈 카메라와 64MB, 128MB 메모리를 가지고 다녔고 찍은 사진은 노트북에 넣어두고 다니면서 여행자들을 만나 사진을 보여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비디오 테잎 크기만한 조그만 노트북으로 신통하게도 여러 가지 작업을 한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던데, 덩치 좋은 외국인들은 보통 거대한 노트북과 엄청난 장비를 이고 지고 들고 다니면서 여행을 하러 온 것인지 장비에 치여 다니려고 하는 것인지, 가엾어 보였습니다.

장비 때문에 여행을 망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 장비들과 함께 쉽게 하려고 결심한(피치못하게 방어적인) 여행과 관광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경계도 없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의 비교적 편안한 여행지에서도 고생스럽게 록키 산맥을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동차를 몰고 대륙을 횡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국의 해변에 누워 불어오는 따뜻한 무역풍에 읽던 책을 모래사장에 떨구고 느긋하게 낮잠을 자는 여행자도 있지요. 그 반면 몽골의 푸른 초원까지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날아가 한족이 만들어놓은 몽골 전통 관광 타운에서 말젖으로 만든 술을 마시고 30분에 10달러를 주고 말 한 번 타보는 것으로 썩 괜찮은 경험을 했다고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거의 아무도 안 가는 몽골 북서부 산악, 러시아 국경 부근의 길가에서 히치하이킹 안 해주는 똥차에 대고 욕설을 퍼부으며 인상을 쓰는 여행자나, 자그마한 카약에 하루 종일 앉은 채 수백 년 전 에스키모와 러시아 모피 상인들 외에는 발이 닿지 않는 처녀지를 천연덕스럽게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디지탈 장비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여행은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행자들의 철칙 중에는 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짐의 무게와 부피는 행동을 제약하는데, 8kg짜리 배낭 하나만 들고 다니는 여행자와 20kg 짜리 큰 배낭을 들고 다니는 여행자가 막 떠나는 버스를 향해 품위 없이 달음박질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버스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8kg 짜리 배낭을 맨 사람입니다. 여행이 점차 쉬워지고 있는 최근 상황에 비추어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30-40도를 오르내리는 뙤약볕 아래에서 버스 터미널로부터 숙소까지 3km를 짐을 지고 걸어가야 할 처지라면 심사숙고해 볼 가치가 있지요.

특히 여행을 처음 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미리 걱정하는 것은, 한국보다 사정이 안 좋은 나라에서는 좋은 물품을 구할 수 없고, 반대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에서는 물건 가격이 비싸므로 한국에서 미리 짐을 준비해가는 것이,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물건 중에서 외국에서는 동일한 품질의 공산품을 싯가로 구하기 어려운 것이 (극단적으로 말해) 신발 뿐입니다. :)

짐은 자신이 평소 입고 있는 옷과 평소 신고 다니는 신발과, 약간의 세면 도구 정도면 어떤 종류의 여행에서도 충분합니다. 그럼 자기 키만한 짐을 지고 다니는 서양 여행자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짐의 크기는 종종 그 여행자의 두려움의 크기만합니다. 여행자들의 속어로, 짐의 크기는 업보의 무게와 같다고도 합니다.

필자의 경우 일년 가량의 장기 여행을 준비하면서 옷가지 등의 부피가 나가는 짐을 줄이는 대신 중고로 구매한 작은 서브 노트북과 사용하던 PDA, 디지탈 카메라 등을 챙겼습니다. 노트북이 890g, PDA가 175g, 카메라가 250g, 여분의 전지 6개, 충전기, 몇 가지 케이블, 유니버셜 플러그 컨버터 등 대략 4kg 정도의 전자기기와 가이드북 1kg 가량, 기타 잡동사니들(2kg), 배낭 45리터(5kg) 등 짐의 무게가 15kg 내외였습니다. 서브 노트북이므로 공간이나 용적을 차지하지 않았고 PDA는 책 수백권 분량을 대체했습니다. 카메라, PDA 등속은 모두 일반 건전지를 사용할 수 있는 타입이었지요.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처지에서 일단은 값이 싸고 망가져도 굳이 미련을 남기지 않을 장비를 가져가는 것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효용가치가 높았던 것은 노트북과 PDA였습니다.

대다수의 물건은 현지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이 백 번 낫습니다. 그 핑계로 시장도 구경하고 하다못해 실랑이질을 벌이며 현지인과 대화 비슷한 것도 할 수 있지요. 플러그 컨버터는 시장에서 1 달러 미만에 살 수 있습니다. 케이블도 그렇고 건전지도 거의 싯가 그대로 구매가 가능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숙소에 전력 아웃렛이 존재하지 않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면? 물론 여행용품점이나 공항의 면세점에서 유니버셜 플러그 컨버터(각국의 사정에 맞게 전력 플러그를 교환할 수 있는 장치)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애당초 숙소에 아웃렛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게다가 충전할 기기는 세 개인데 아웃렛이 단 하나 뿐이라면? 멕시코의 남부 지방을 여행하는 도중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멕시코의 남부와 북부는 경제수준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데 남부에는 인디헤나라는 토착민들이 많이 살고 있고 멕시코의 오래 전 생활양식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지요(개발이 되지 않았지요). 멕시코 남부는 침략자들이 관심을 둘만한 황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부의 대다수 저렴한 숙소에는 아예 아웃렛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장 노트북을 충전하고 꽉 찬 디지탈 카메라의 메모리를 옮겨야 할 판인데 주인장에게 애걸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리로 무작정 나가 시장에 있는 작고 허름한 전파상에 들러 안되는 에스빠뇰로 몸짓 발짓을 하며 나중에는 사다리를 놓고 천정에 걸려 있던 백열전구용 리셉터클을 뽑아 지불하고 숙소의 천정에 매달려 있는 하나 뿐인 전등에 연결하고 220v -> 110v 플러그 컨버터를 리셉터클의 소켓에 연결한 후 충전기의 플러그를 다시 꽂았습니다. 이후로 남미에서 어떤 숙소에 묵더라도 전력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지요. 어쨌거나 전등은 어느 숙소에도 달려 있으니까요. 도난 등의 이유로 숙소의 프론트에 노트북이나 충전세트 등의 값 비싸고 잃어버리면 속 쓰린 장비를 맡겨 충전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캥기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소금평원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유우니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더 나빠졌습니다. 랜드 크루저에 물과 연료, 식량을 싣고 평균 고도 3500m의 고원 호수 지대를 나흘간 돌아다니는 동안 세수할 물은 커녕 어디에서도 전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지요. 이동 차량의 시가 잭에서 충전용 전기를 끌어쓸 수 있다고 별 걱정없이 장비를 챙겨온 여행자들을 더더욱 처량스럽게 만든 것은 차량이 워낙 노후해서 시가 잭으로부터 전기를 끌어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이드 겸 운전수 겸 요리사(다재다능하지요?) 말로는 일 년에 한 두번은 차량 고장으로 오도가도 못한 채 다른 팀이 도착해서 구조해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경우도 있답니다. 하여튼 그래서 카메라를 가지고 갔던 여러 여행자들은 이틀이 지나자 사실상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일반 건전지를 사용하는 카메라였기 때문에 전날밤 6개의 충전지를 모두 충전해 두고 별도로 건전지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려고 숙소에 묵고 있던 한 한국인 여행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에게는 유니버셜 플러그 컨버터 보다 더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한쪽은 220V용 3구 멀티 컨센트이고 다른 쪽은 보통 1구 컨센트에 꽂는 220V 플러그가 달려있는, 한국의 수퍼마켓 어디서나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연장 케이블을 구매해 플러그 부분을 떼어내고 나전선 그대로 방치해 둔 것입니다. 약간 위험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어느 나라, 어떤 종류의 컨센트에도 꽂을 수가 있었지요.

unreal하고 unusual한 끝내주는 경치를 보려면 문명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장소로 가야 하는데, 하다못해 여행자들이 많이 다녀 가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네팔의 안나푸르나 서킷 일주의 경우에도 보통 일주일에서 21일까지 장기간 트래킹을 해야 합니다. 꾸스코에서 시작하여 마추피추에 이르는 길도 나흘 이상 걸리고 가깝게는 중국의 사천성 북서부나, 우르무치 이후부터는 황량한 사막이 펼쳐지는 실크로드, 몽골의 북서부에서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경로도 사정이 마찬가지입니다. 별 방법이 없습니다. 충전지를 여벌로 준비하고 하루의 전력 사용을 면밀히 계획에 맞춰 하는 수 밖에요.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열대의 섬들은 늦은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발전기를 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일부 국가에서는 단전과 전력 불균형이 일상적입니다. 인도의 경우 하루에 수차례 전기가 나가는 것은 예사이고(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전압이 80V에서 240V까지 치솟는 일이 잦아 정전압 정전류 충전기가 아닌 값싼 충전기를 사용하면 기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지요. 노트북의 충전기는 세간의 상식과는 달리 전압 불균형에도 노트북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습니다. 믿겨지지 않지요? 필자는 일년여 노트북을 들고다니면서도 수십개국의 온갖 종류의 전력 사정을 경험했지만 열악한 전력 사정 때문에 노트북이 망가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정이 저렇다보니 필자의 경우 숙소를 고를 때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것이 숙소에 전력 아웃렛이 있는가를 무엇보다도 먼저 살펴보게 되었지요. 배게 위로 바퀴벌레가 한가하게 기어 다니거나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감방 같은 숙소라도 전력 아웃렛만 있으면 오케이였습니다. 숙소를 고를 때 그 다음에 체크하는 것이 안전한가 여부입니다. 숙소를 잡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창가에 기기들을 놓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창문을 통해 훔쳐갈 수 있지요. 창문 곁에 놓아둔 짐을 몇 가지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냄새 나는 양말과 팬티 따위는 왜들 훔쳐가는지 모르겠군요.

숙소 내부라고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충전 중이라도 기기를 침대나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보다는 충전 케이블을 배낭 속으로 끌어들이고 배낭을 잠궈두는 것이 좋습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숙소의 종업원이 슬쩍하고 입을 닦는 경우도 있는데, 숙소의 자물쇠 보다는 자신이 들고 간 자물쇠를 달아두는 것이 좋지요. 특히 인도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값비싼 것들은 잠시 눈을 떼면 뜬금없이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기기의 전력 사정 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충격과 모래, 먼지입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불어닥치는 모래 바람, 고작 200km를 이동했을 뿐인데 영하 30도에서 영상 40도까지 오르내리는 기가 막힌 날씨, 습도가 80%를 넘어 잠깐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의 대기, 저 먼 지평선은 물론 지근 거리의 모든 것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는 끔찍한 눈보라, 롱테일 보트의 갑판으로 쉴새 없이 밀어닥치는 바닷물 등등.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는 버스는 종종 20-30cm 떠올랐다가 콰당하는 소리와 함께 흙바닥에 내려 앉는데, 살과 지방으로 적절한 완충 작용을 하는 인체와는 달리 버스의 바닥이나 천정에 동여매 놓은 짐은 고스란히 그 충격량을 감내해야 합니다. 노트북 등의 기기는 그래서 티셔츠, 속옷, 양말 등 갖은 옷가지로 몇 번 싼 다음 짐의 중심부에 놓아 충격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필자는 몇 번의 여행으로 생긴 경험 덕택에 빅토리녹스 만능칼과 작은 드라이버를 챙겨 가고는 합니다. 기기를 분해해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면봉으로 모터 구동부에 쌓인 모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스 대용으로 콜드 크림을 바르는 일이 숙소에서 할 일 없이 앉아 있을 때 주로 하던 일이었습니다. 기기 정비가 끝나면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는 베란다에 앉아 벼룩을 잡거나 빨래를 했지요.

꾸준히 유지보수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 저기 발생하는 잔 고장을 다 막을 수는 없지요. 필자의 경우, PDA의 액정에 줄이 가고 전지가 닿는 접점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충전기의 충전 회로에서 기판이 뜯어지고 노트북의 하드 디스크에서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할 때 나는 괴이한 소음이 들렸습니다. 카메라는 진작부터 전지 홀더가 깨져 테잎으로 붙여 놓았지요.

기기가 고장나면 전기적인 문제의 경우 전파상에서 납땜질을 튼튼히 하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노트북이나 카메라, PDA를 가져가면 십중팔구 신기한듯이 쳐다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자기 녹슨 시계를 불쏙 꺼내 들고 이것과 교환 하자거나, 얼마면 구입할 수 있냐고 묻기 일쑤입니다. 새로운 기기에 보이는 그들의 호기심과 무작정 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전 정신은 높이 살만 하지만 수리를 맡겼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기기의 소형화 덕택에 SMD(surface mounting device)를 다량 사용하는 것이 최근 기기들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그들이 가진 납땜 인두를 잘못 들이댔다가는 수리는 커녕 기기를 날려먹기 십상이니까요.

험한 여행을 하고 난 뒤 대다수의 장비는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지요. 특히나 노트북은 고생을 하도 많이 한 탓인지 도착하자 마자 액정이 나가고 더 이상 부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놈에게 고맙고 해서,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싶었지요.

여행이 장기화될수록 카메라의 메모리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보조 기억 장치를 챙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여행 기간이 2주를 넘어가고, 디지탈 카메라의 비좁은 액정 화면으로 사진의 디테일을 충분히 알아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지우지 않은 채 남겨두는 사진을 고려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평생 단 한 번 밖에 방문하지 못할 여행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단 눈에 잡히는 대로 사진을 찍게 되는데, 하루 중에 메모리를 다 써버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인도의 카쥬라호(Kajuraho)에서 필자가 이틀 동안 정신없이 찍은 사진은 대략 400장이었습니다. 메모리나 저장 공간의 한계로 그중 320장을 눈물을 머금고 버렸습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는 1천장 이상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12개월 여행 기간 동안 찍은 사진은 대략 2만장이 넘는데 그중 2000여장만 남았습니다. 여행이 장기화될 수록 이들 사진을 메모리로 보전하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고 분실의 위험도 적지 않지요. 여행 중 특히 자주 일어나는 사고가 카메라 도난 사고인데(바깥에 나와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충분히 그 값어치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때는 경로가 같아 함께 여행하던 외국인 친구들이 숙소에서 슬쩍 기기를 훔쳐 달아나기도 하지요. 정작 카메라보다는 갖은 고생을 해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있는 메모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여행자들을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심지어 실수로 메모리 카드를 포맷하고 술과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여행지에는 메모리에 담긴 사진을 CDROM으로 구워주는 가게들이 있는데 그 나라의 수도에서 여행자들의 숙소가 밀집한 장소, 특히 PC방에서 CD-R 서비스를 해주고는 합니다. 베이징, 방콕, 호치민 시티, 마닐라, 방갈로르, 카트만두, 델리, 꼴까타, 쉬라즈, 에스파한, 이스탄불, 다합, 과달라하라, 안띠구아, 리마, 꾸스꼬, 라 빠스 등등 여행자들이 자주 오가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CD-R을 구워주는 가게가 있는데,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20불 미만) 600MB 정도의 CD를 구울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여행자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PC방을 찾아볼 수 있는데 현지인들에게 물으면 잘 가르쳐 줍니다. 심지어 한국인 여행자들이 다녀간 곳이라면 한글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아직은 USB 포트가 달린 컴퓨터나 windows xp를 운영체계로 사용하는 컴퓨터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대개는 windows 98을 사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전송할 수 있을까?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전송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300만 화소가 넘어가는, 프레임당 못해도 2MB 이상이 되는 사진을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IT 강국 답게 한국'만' 인터넷 사정이 좋지요. 미국에서 조차도 한국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파일을 전송하는 속도가 최대 100kb/sec을 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1달러 짜리 지폐를 사용하는 internet access point에는 USB 포트가 바깥으로 나와 있지도 않고 한글 사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달리 말해 2Mbytes 짜리 jpeg 파일을 하나 전송하는데 적어도 20초 이상 걸립니다. 미국, 일본, 중국등은 희망적인 경우이고 그외의 국가에서는 속도가 그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데, 필리핀의 마닐라 같은 경우 평균 속도가 30kbps를 넘지 않습니다. 서남 아시아, 중동,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도 사정이 대동소이합니다.

인터넷 비용은 보통 한 시간에 0.5불에서 아주 비싸봤자 5불 안쪽인데, 속도를 30kbps로 가정하고, 시간당 인터넷 사용료를 1불로 가정해서, 만약 2Mbytes 짜리 사진 100장을 전송한다면 19불 정도로 그렇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지만 19불은 19시간 동안 아무 사고없이 전송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더욱 상황을 끔찍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은 56kbps 모뎀으로 접속하여 20대의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한 PC방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상황에, 시도 때도 없이 접속이 종료되는 열악한 환경입니다. 그쯤 되면 인터넷으로 사진을 전송하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지요.

사진을 보전하는 방법은 그래서 별도의 저장장치를 들고가던가, CDROM을 굽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필자의 경우는 장기간의 여행인데다 그렇게 구운 CDROM을 들고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워 사진의 크기를 640x480으로 줄여 찍은 대로 인터넷의 홈페이지로 바로바로 전송하고 노트북에도 남겨 두었지요. 잘 발달한 문명권에 등을 돌린 채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여행할 생각이라, 애당초 사진을 인화한다거나 특별히 고해상도로 보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담을 줄였고, 심지어는 한 시간 전에 돌아다니며 찍은 이국의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두어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들에게 방송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필자는 한국의 웹 호스팅 업체에서 1-2만원을 주고 구매한 계정에 홈페이지를 꾸미고 여행 정보와 여행기와 여행 사진 등을 올려 두었습니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잘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한국에서 열심히 일 하시라고 염장 지르기에 참 효과적인 방법이더군요. 특히 블로그(blog)가 여행기를 올리기에 적합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친지에게 사진을 보내거나, 홈페이지에 전송하는 일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고려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개괄적인 내용이므로, 하향평준화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 사진의 용량. 위의 예에서 보셨듯이 사진의 용량을 줄이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PC방에 포토 리터칭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됩니다. 사진을 찍을 때 애당초 저해상도로 찍던가, 노트북 등의 수단을 사용하여 전송할 파일의 사이즈를 임의로 줄여놓는 방법이 있지요. 만일 노트북을 들고 다닐 사정이 안된다면 cd-rom에 프로그램을 구워놓고 pc방에서 설치하여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접속 방법. USB 포트가 달려 있고 windows xp가 설치된 컴퓨터라면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USB 포트는 있는데 windows 98이라면 카메라 별로 별도의 드라이버가 필요합니다. 드라이버를 다운받을 수 있는 위치를 잘 기억해 두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드라이버를 복사해 놓고 다운받아서 사용하는 방법이 있지요. USB 포트가 없다면? 그때는 노트북이 있어야 합니다. PC방에서 랜 케이블(RJ-45)을 뽑아 자신의 노트북에 연결하고 자신의 노트북으로 직접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비용은 그대로 지불해야 하고, PC방에 따라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전송방식. 웹을 통해 사진을 전송하는 것은 사진 사이즈의 20% 이상이 더 전송됩니다. 웹 페이지로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를 전송할 때는 base64라는 encoding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원본보다 항상 20% 이상 사이즈가 큽니다. 게다가 사진을 한 장, 한 장 전송해야 하므로 눈을 뗄 수가 없고, 전송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지요. 그래서 ftp로 다수의 사진을 한꺼번에 전송하는 편이 낫습니다. 별로 권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경우 필자가 써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PC방의 컴퓨터에 사진을 모두 옮겨놓고 ftp 프로그램으로 전송을 걸어 놓은 채 한 시간 분량의 사용료만 지불하고 슬쩍 PC방을 나오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은 내가 나간 후에도 계속 돌아가는 것인데 얌체스러운 방법이지요. :)

- 한글 문제. 외국에서 한글을 사용하려면 한글입력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여행감상을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친지와 잠시라도 대화하려면, 또는 email을 보내려면 한글 사용이 필요하지요. 무수한 여행 사이트에서 이에 대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한글 입력기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아 설치하는 것은 인터넷 사정이 좋을 때나 가능하므로 CDROM에 해당 프로그램들을 구워 가는 것이 좋습니다. MSN Messenger는 보통 PC방의 컴퓨터 마다 설치되어 있으므로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 PC방의 대다수 PC에 CDROM이 달려 있지 않을 경우에는 관리용 컴퓨터에 CD를 넣어두고 다른 PC에서 CDROM 드라이브를 공유해 설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PC방에 따라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인장에게 여기에 korean을 설치하면(korean font라고 해야 통합니다) 보다 많은 한국인이 찾아오게 되어 매출 신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해보세요. 점원하고는 얘기가 잘 안 통하니 한국에서처럼 윗 사람(사장)과 직접 얘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습니다. USB 포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카메라와 USB 케이블을 꺼내 보여주고 연결할 컴퓨터를 찾아봐야 합니다. 이런 절차가 굳이 영어나, 그 나라의 언어를 몰라도 손짓발짓으로 어떻게든 됩니다.

ftp 프로그램, 포토 리터칭 프로그램, 한글 프로그램 등을 CDROM에 담아 구워 다니는 것이 좋고요. 필자는 거기에 덧붙여 사진기의 메모리에도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담아 가지고 다녔습니다. 128MB 메모리에서 대략 20MB 정도를 차지했는데 CDROM 드라이버가 없는 컴퓨터에서 USB 포트에 카메라를 연결해 카메라의 메모리에 들어있는 프로그램들을 PC에 옮겨놓고 설치 했습니다.

windows xp의 경우에는 한글 프로그램 설치가 특수한데 windows xp cd를 가지고 다녀야 하지요. 필요한 경우 컴퓨터 가게에 들러 보통 3-5불 가량을 주고 windows xp cd를 복사할 수도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DA 말고도 이란의 테헤란에서 미제 GPS 리시버를 구매해서 들고 다녔습니다. 이틀 동안 건설 측량 장비를 파는 가게를 들락거리며 한푼이라도 깍아보려고 가격 협상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머나먼 한국에서 온 우리의 형제에게 사장님을 비롯한 우리 점원 일동은 지금까지 가게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스페샬 디스카운트'를 단행 하기로 결심했답니다. 여행자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는 훌륭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동 국가들은 언제라도 다시 가보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습니다. 중동 사람들은 여행자를 형제라고 부르고 중남미 사람들은 친구라고 부르지요.

GPS 리시버가 있으니까 좋아진 점이 하나 있었지요. 숙소에서 나올 때 현재 위치를 찍어두고, 원없이 거리를 마구 헤메 다녀도 걱정없이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그 후로는 고대 유적지가 있는 빨렝게의 울창한 밀림에서 길을 잃어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안띠구아의 화산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화산재와 거센 비바람을 만났어도, 다마스커스의 거미줄처럼 뻗은 뒷골목 미로에서도 길을 잃어본 적이 없었지요.

여행 중 만난 한 한국인 디자이너는 사진을 잘 찍을 뿐더러 여행 경험이 많았는데 카메라 두 개 뿐만 아니라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별도로 들고 다니더군요. 친절하게 대해주는 현지인 사진을 찍어주고 건네주면서 친구를 만듭니다. 다음에 여행할 때 한 번쯤은 써먹어 보고 싶은 훌륭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그가 그렇게 훌륭한 방법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가 된 식당 주인에게 애써 가르쳐 준 코리안 누들 수프(라면) 맛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요.

돈 몇푼 건네주면 '토속적인' 생활을 하는 현지 원주민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수월합니다. 그렇게 해서 경제 개념에 갑자기 눈을 뜬 원주민들이 더이상 원주민이기를 거부하고 점점 양아치가 되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여러 감정이 생기는 일이에요. 그네들은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전통 복식을 하고 몫 좋은 곳에 앉아 여행자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사진기를 들이대면 바로 손바닥을 내밀어 돈을 요구하지요. 여행지에서 찍은 소수민족의 전통 복식 사진과 그네들이 파는 기념품은 구분이 되지 않아요. 필자는 이런 저런 매체에 실린 소수민족의 사진을 보게 되면 몇 푼 주고 찍어서 사진을 얼마에 팔아먹었을까, 남는 장사였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전 지구적으로 어디 가나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이나 점점 사라져만 가는 소수민족의 문화를 망쳐놓은 여행자의 본의 아니게 몰지각한 행동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한번 쯤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필자는 소수민족의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사진기를 치워두고 동네 노인네가 권해주는 술잔을 받아들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고 또, 코닥 모멘트는 잠시 잊은 채 그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소수민족들이 그네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보전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들에게서 TV를 빼앗고 너희들이 전통을 제대로 보전하지 않아 섭섭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전통생활로 밥벌이를 하는 것보다 더 위선적인 것이지요. 베트남을 여행할 때 하노이에서 만난 한 젊은이는 여행자를 싸잡아 제국주의자라고 하더군요. 필자는 그의 친구였기에 안 제국주의자였지요. 이집트의 룩소르에서 만난 미국인 여행객은 식당의 여러 여행자들 앞에서 시건방을 떨고, 바깥에 나가 아랍인들 앞에서 건방 떨다가 그의 목에 칼을 겨누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고국으로 달아나더군요.

혹시 이란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있으시면 에스파한의 이맘 마스지드(Masjid; mosque) 사진을 찍어 필자에게 살짝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에스파한에서 만난 독일 사진 작가들은 며칠 동안 모스크의 사진을 찍느라 추위에 벌벌 떨며 고생하고 있었는데 찍은 사진이 신통치 않아 난감해 하고 있더군요. 모스크의 푸른 빛깔을 띤 외장 타일(페르시안 블루라고 하는데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청자기 기술이 원천입니다)의 굴곡이 일정치 않아 빛의 각도에 따라 난반사가 심해서 사진이 제대로 나온 것이 없답니다. 상당한 장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품질은 의외였지요.

필자의 경우, 여행담이란 것이 내가 당신보다 더 고생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 뿐이라면 상당히 재미가 없는 것이고, 쩍어놓은 사진을 구경하며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은 두 번 째로 재미가 없는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괜찮은 동료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현지에서 사람의 살냄새를 경험했다는 것은 세 번째로 시시한 것이지만, 일생을 통해 희박한 기회를 잡아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하나 뿐인 시공간 속에 거치된 '나'를 드라마틱하게 경험하는 것이라면 눈빛을 반짝이며 경청할만하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 색다른 경험을 하려고 여행을 하고, 심지어, 속칭 '선천성 여행중독증'이라는 치료불능의 질병을 안고 떠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 처녀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새로운 경험을 아직 해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처녀지입니다. '나'와 디지탈 장비와 함께 즐거운 여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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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04. 5. 12. 18:54
betanews의 어떤 기사를 보고 생각난 김에 핸드폰의 수리를 맡겼다. 액정이 흐리고, 통화음질이 나쁜 데다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화질이 못 봐줄 정도로 구렸다. PG-K7000의 계산기 모드에서 3.14*12345678012을 두들기면 핸드폰이 맛이 갔다. 다른 사람들의 핸드폰으로 시도해 봤지만 에러가 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 핸드폰을 되돌려 받았다.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고 스피커를 교체했다. 액정과 카메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PG-K7000에 두 종류의 기계가 있고 내 것은 품질이 좀 떨어지는 기종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같은 모델의 기계를 왜 두 종류로 만들었을까. 희안했다.

media player rc, gom player, adrenalin 등등을 테스트해 본 결과 pentium iii 600Mhz에서도 무난하게 동영상을 출력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오직 아드레날린 뿐이었다. CPU 부하율이 다른 두 프로그램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

바이저가 수시로 하드리셋 되었다. 데이터는 매번 날아가기 일쑤고 해서 이김에 pda를 갈아볼까 생각 중. 물망에 오른 것은 Tungsten E, zire71, sj-33 정도. 몸과 마음은 텅스텐 E를 지향했다. 머리털 마저도 그쪽으로 쏠리는 것만 같다. sj-33 중고를 사고 싶은데 보통 18-19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 가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소니가 만들었으니까?

사용중인 리브레또 L1을 대체할만한 노트북도 알아봤다. 전혀 없다. end of discusion.

우주의 팽창이 정보 저장과 처리의 근본 한계 설정 -- 며칠전 그렉 이건의 소설 엔딩을 보고 나서 한 동안 정신 못 차렸다. 대낮에는 모니터의 2차원 평면 scape를 방황하고 꿈 속에서 마저 우주를 떠돌았다. (엔딩이라기 보다는 은하계 'core'가 붕괴해 50만 광년(숫자는 정확치 않다. 소설 속의 시간의 규모가 수백만년이다) 내에 존재하는 6만개의 문명이 뉴트리노 복사선에 의해 절멸한다는 설정) 은하계의 문명들이 웜홀을 통해 다른 우주로 이주하는 동안(소설의 주된 맥락), 자신의 오리지널을 남겨두고 트랜스뮤터의 흔적을 쫓아 수백만 우주를 떠도는 두 지구인 비슷한 '것'들이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은 거대한 결정으로 자신들만의 모든 가능성을 실험한 우주를 건설했던 Transmuter의 '문명'이다. 기사는 우주의 팽창 속도가 근본적인 컴퓨팅 한계를 결정한다고 했는데, 이건이 새로 작성한 가설인, '모든 입자는 웜홀의 표현형이다'를 인정하고(Kozuch theory), 트랜스뮤터가 하던 방식을 좇는다면(페르미온과 보존 사이를 왔다갔다 하도록 입자의 스핀을 조절해 입자를 무겁게 하고 그것을 정보로 사용하는 저장 방식) 아무 걱정 없어 보인다.

소외감이란 '아, 나는 소외되었구나'하는 sentient being의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핵연료는 자기가 소외당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본인은 바빠서 느껴본 적이 없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쟤는 소외당해서 불쌍해. 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세계 전체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는 망상 또는, 생래적 조화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었다. 합의는 있어도 공감한 적 없다. 어쩌면 한번도 소외감이라는 실감과 자극을 제대로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들어서야 시야각이 극단적으로 좁아져서 세계와 사물을 보는 내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따름이다. 그렇게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마당에 이제와서 불평을 늘어놓고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을 질량과 촉감, 구성성분으로 분해하여 왜 그것들이 '합의도 없이' 머리 위로 떨어져야 하는지 짜증을 내거나 음식이 맛이 없어서 세상을 증오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되나? 그래도 된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고독을 맛보고 싶어도 갈구는 존재들이 워낙 많아서. 존재감을 일종의 질량으로 취급하고 그것 사이에 상존하는 인력과 척력을 수치화한 메타과학이 왜 없나. 이를테면 귀신은 존재감이 미미한데, 질량이 워낙 작아 상호 간섭의 영향력이 작아 일상 생활에서는 무시해도 되는 것들이라고. 염력은 전자기력으로, 광자를 매개로 전달되며 속도가 유한하다고. 메타과학을 하는 작자처럼 소외된 자들도 없을 것이다. 소외 되고 차별 당하고 상처 받은 그들을 위해 인권단체가 해준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뭔가를 비웃기 위해 스스로 우스꽝스러운 놈이 되는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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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도전한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크루즈 미사일 제작 편. 유인촌이 프로그램 마지막에서 한 말; '세계 무기 시장에 당당하게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 퍽이나 자랑스럽겠다. 이 프로그램의 늘 봐도 뻔한 포맷과 자랑스러운 한국인에 대한 자화자찬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게 된다.

며칠 두통에 시달리느라 한밤중에도 광자로 충만한 거리에서 머리가 아팠다. 그렉 이건의 소설에 나오는 아이디어가 굉장하다고 생각했다가, 곰곰히 거슬러보니 나도 10년 전에 스페이스 오페라의 아이디어로 써먹으려고 스케치했던 그것이었다. 중성자의 퀴크를 '꼬셔서' 진공에서 10^-33짜리 작은 구멍을 만들어 전자화된 인격을 다른 우주로 전송한다는... 뉴로맨서 류의 사이버펑크 양아치 소설이나 사이비 외계 종교 따위를 언급하는 소설에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고 대다수 SF작가들이 어째서 전자기술과 컴퓨팅에 관해서는 머저리같기만 할까 강렬한 의문과 회의를 품었던 시기였다. 매크로와 마이크로가 사방으로 쫙쫙 뻗어가는 그의 발산적인 소설을 읽는 것은 기쁨에 겨워 십이지장을 떨면서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것과 흡사했다. 이 작자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데 정말 천재적이다. 게다가 왠간하면 시원하게 우주를 뽀작내는 그의 스케일에 항상 존경심을 품었다.

최근 게시물을 몰아서 읽다가, 행책 사장의 시대착오적인 판단에 관해 뭔가 한 마디 할까 하다가, 70년대에 고착된 정서적 기억의 고고학적 답습을 공격하는 것은 본의 아닌 인신공격이 될 것 같다 관뒀다. 애당초 sf팬덤의 독자층을 흡수하려는 기획 의도가 없었으면서 이제와서 팬덤의 무관심을 경험하자 그들의 사랑과 관심을 구걸하는 것은 의아했다. 그는 마치 행책sf가 출판사를 자극해서 sf도 한번 내볼까 생각하는 출판사가 생겼다고 믿고 있지만 글쎄다, 문학은 뒈졌고 실용서 외에 출판시장에서 볼만한 꺼리가 없어진 즈음 그들은 굳이 행책sf의 날라리스러운 자극이 없었어도 대안을 다각도로 모색했을 것이다. 극소수의 기획자와 번역자의 견해와 권고만을 수용했기에 그가 생각하는 실제로 느슨하게만 존재하는 팬덤에 대한 오해는 애당초 잘못된 것이었다. 출판사의 출판 행위를 비즈니스라기 보다는 자기만족에 겨운 자위 행위로 평가하는 나로서는 출판사의 사정을 고려해 줘야 할 의무나 측은지심이 없을 뿐더러, 나같은 sf팬은 행책sf의 출범 초부터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 했다거나, 일단의 기대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행책 사장님 혼자 하는 착각은(그리고 그것의 원인 제공을 한 어떤 인간의 희안한 상상력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가 메말랐고 냉소적이고 독설이나 늘어놓는 놈이라서 일까? 재밌는 관점이다.

르 까레의 소설을 각본으로 사용한 동명의 Tailor of Panama를 tv에서 상영한다는 정보를 보고 부러 기다렸지만 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내가 뭘 잘못 본 것일까. 내 기억력은 정말... 누비고 다니던 파나마 시가지의 모습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샅샅이 훑어보고 싶었다. 우편 주소는 커녕 거리 이름 마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비 맞으며 무식하게 헤메다닐 때가 그립다. 꾸스꼬의 숙소 앞 층계 맡에서 일본인과 앉아 최대한 불량스럽게 코카잎을 씹었다. 집에서는 살떼냐를 만들어 먹으려다가 워낙 복잡해서 그냥 만두를, 아니 만두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젠장, 반죽만 해도 힘겨운데 언제 감자를 갈고 있어?



그리스도의 수난은 바벨 2세보다 재미가 없었다. 예수가 죽은 후 2000년 동안 벌어진 갖은 곤혹스러움과 피비린내와 생난리를 생각하면. 채찍으로 두들겨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부러 영화로 봐야 할까? 봤다. 보다가 재미가 없어서 이제는 시시하기만 한 바벨 2세를 봤다. 다시 본 '지구로'도 시시했다. 피부에 물을 뿌려도 새싹 하나 돋아나지 않을 것만 같은, 300백년전에 죽어 삭막한 풍경의 일부가 된 태백산 꼭대기의 주목처럼 말라 비틀어진 채 동시다발적으로 정서적 사막화가 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별 감정은 없다. 기억났다. 황가에게 몇 번이나 같은 얘기를 늘어 놓았다. 이 비참한 세계에는 웃을 일이 거의 없어. 하지만 여자들은 그래도 웃지. 그게 여자를 만나야 하는 이유야. 라고.

정리하면,

* 딴 세상에는 웃을 일들이 있다. 여자가 없어도 되고.
* 다른 세계에 여자마저 있으면 금상첨화다.
*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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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h

잡기 2004. 5. 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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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친정으로 약탈 원정을 떠났고 나는 평소처럼 가오 잡는 음악을 들으며 일했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Emperor, 1st Movement (20:46)


머리가 아파서 일찍 자야겠다.
침대가 다 내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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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티클을 드라프트로 저장해 버렸군. 어제 쓴 글:

월령 15일(보름)
시작: 3:00am, 고도 24도, 방위각 222도.
최대: 5:00am, 고도 5도, 방위각 243도.
저 모양이면 도심에서는 거의 볼 가능성이 없는데?
인천 앞바다라면 괜찮겠지만.

개기월식 예보

visor deluxe를 안 들고 다니려고 했지만 다시 손에 잡았다. 한때는 바이저 없으면 못 살 것 같더만 노트북으로 잘만 써오다가 주광에서는 노트북 화면이 워낙 흐려 책 읽기가 불편하다는 점 때문에.

특히나, 그렉 이건의 다이아스포라를 읽고 있는 요즘, 갑자기 폭발해서 flasher(육체에 집착하는 인류)들을 전멸시킨 라세르타(Lacerta)를 찾아보려고 planetarium을 기동시켰을 때 위력(?)을 발휘했다.
...
그러다가 PocketStars를 다운 받아서 노트북에 설치했다. 잘 만든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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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 under exposure

잡기 2004. 5. 3. 00:46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만 이용했더라면 각본은 더 나아질 수 있었다. 지루했지만 일단 시작한 것을 마지막까지 봤다. 자기 여동생하고 잤다는 사실을 쉬쉬 하다가 잘 살아도 될 것 같은 둘이 죽었다. 넌더리 나게도 (일본식) 사회적 죄의식을 어거지로 우겨 붙이는 거개 드라마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제목은 죽여줬는데 말이야...


두번째로 만들어 본 '전통' 김밥. 사이다와 곁들여 먹어야지 비로서 머나먼 소풍을 추억할 수 있다. 만들어 놓고 6시간 정도가 지나야 진정한 소풍 김밥 맛이 난다. 그점에서는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

'효자동 이발사'를 보러 갔다가 어린이날 개봉 한다길래 '범죄의 재구성'을 보았다. 한국에서 추리, 사기극이 발붙이지 못하는 까닭과 SF가 인기 없는 이유가 같지 않을까 싶다. 냉정하고 날카롭고 뒤가 깔끔한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항상 가능성만 남긴 채 용두사미를 반복하는 것만 같다. 범죄의 재구성은 구성이 허술해서 날카로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백윤식은, 만날 조연만 할 것이 아니라 느와르 물에서 악당 주연으로 나와 오일리 후까시를 마음껏 발휘하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다.아무나 할 수 있는 역을 맡은 염정아는 은퇴해서 팬션 사업이나 하며 노후를 대비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팜므 파탈이라나? 이 나라의 진정한 팜므 파탈은 아줌마 밖에 없다. 남편은 미련한 생쥐같고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로맨스는 물 건너 갔고 정 붙일 데가 없어 부동산 시세나 콩나물 가격 때문에 법과 도덕의 언저리를 아슬아슬 하게 오고 가며 어딘가 한 군데 악착같이 '게임'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따라서 여기저기 빌붙어 사는 벌레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염정아가 범죄의 언저리에서 젖가슴과 엉덩이를 흔들어 댄다고 팜므 파탈이 되지는 않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삐리에게 면박 당하는 존재가 팜므 파탈 일리야 없지.



불 구경. 버스가 지켜보고 있다. 용달차도 지켜보았다. 오토바이도 지켜보았다. 참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무효. 이번에는 색깔이 제대로 나오게 찍었다.




고속철도: 그렇게나 탈 기회가 많았음에도 이제서야 한 번 타봤다. 아홉 시가 넘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천안아산 역에서 영등포로 가는 30분 짜리가 10700원이었다. 시내에서 천안아산역까지 대중교통 편이 없어 만원이나 주고 택시를 타야 하는 형편. 차편도 그리 많지 않아 한 시간에 한 대 꼴이라 고속철도를 타느라 들이는 정성+금액이면 차라리 고속버스(5000원)를 타던가 일반 열차(4900원)을 타는 것이 나은데 고속철도 때문에 운행간격이 늘었고 고속철도를 이용하려는 승객보다 일반 철도를 이용하려는 승객이 늘어 역이 항상 혼잡스러운 데다가 예전에는 서지 않던 역에도 기차가 정차하느라 작년에는 1시간 걸리던 거리가 지금은 1시간 30분으로 늘어났다. 연착도 잦았다. 고속철도가 사정을 더 나쁘게 만든 것이다.



카메라의 자동 모드로 찍은 사진. 실패.



수동으로 조정했으나 노출 부족. 숨을 참고 총 쏘듯이 해야 하는데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디지탈 카메라의 조작 버튼은 하여튼 짜증스럽다.

결혼식장 가는 길에, 안경을 닦다가 나사가 부러졌다. 신사동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안경점이 보이지 않아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말 그대로 더듬거리며 가서 간신히 수리했다. 장애인 처우에 관해 최근에 어디서 들은 말: 장애라고 하지 말고 개성이라고 하자. 개성? 그래 좋다. 안경 부러지니까 개성이 향상되었다. 팔 다리 다 부러지고 목까지 부러졌으면 개성이 주체못할 정도가 되겠군. 장애자에게 별 편견이 없다(아마도 나처럼 그들에게 편견 없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병신 더러 병신이라고 불렀다. 병신이 재주 부리면 신기해 하는 작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병신이고 세상에 넘쳐 나는 정신질환자들 탓에 내가 지닌 장애는 보잘 것 없고 심지어 시시해 보이기까지 했다. 운동 신경 엉망, 눈 나쁘고, 이빨도 다 나갔고 애정 결핍, 인간에 대한 심한 경멸감 등 심각한 정서 장애가 있지만 복지국가 건설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며, 굳이 국가가 도와준다고 해도 거절하겠다. 철창 속의 원숭이로 남들의 호기심꺼리로 살아온지 어언 30년.



언제쯤에나 사람이 나오는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거리감이 줄지 않는 한, 가망 없다. 식장에서 아내 친구들이 날더러 잘 생겼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싱싱한 고등어 살 때 도움이 되는 훌륭한 눈썰미라고 생각했다. 봉당 아저씨가 가르쳐준대로 손바닥(그레이)를 이용해 조절하는데, 1-2초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야전에서 그보다 나은 방법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진 솜씨는 여전했다. 차도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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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spora

잡기 2004. 4. 29. 01:44
펜텍&큐리텔에서 구입한 핸드폰에 맞는 케이블을 2만5천원 가량에 구매했는데 용산 노점상에서 만5천원에 판매하는 것은 제대로 된 케이스도 있다. 기분 나빴는데, 그동안 바빠서 깜빡 잊었다. 나보다 나쁜 놈들. 잊지말자. 용산 들르면 사야할 것. IC remover.

보드에 들어가는 커넥터와 플랫 케이블 가격이면 LVDS multidrop을 사용하는 것이 싸게 먹힐 것 같아서 칩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2Gbps LVDS 칩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필요한 것은 400Mbps NRZ 정도고 그것도 임피던스 매칭 등등의 지랄같은 문제로 겁나게 떨리는 판인데, 기술 발전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전자 기술자들이 영 완고해서 나보다도 신기술에 대한 지독한 보수주의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뭐 단가만 떨굴 수 있으면 별별 짓을 다 해야 하는 것이 practical engineer가 마땅히 지녀야 할 고결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기술자들의 완고함을 가락에 맞춰 희롱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치과에서 이빨을 뽑는 와중에도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테스트가 진행중인지 물었다. temporary crown용 레진 믹스를 이빨에 갖다 붙일 때는 사실 노트북을 펼쳐들고 DMA를 구현할까 아님 RISC 칩의 메모리 밴드위드를 믿어볼까 고민하고 싶었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다그닥다그닥 말 달리듯이, 생각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일주일간의 유예기간 동안 이빨 네 개를 수리하는데 160만원을 들여야 하는지 고심했다. 하기로 했다.

원장은 자기는 사람들 볼 때 치아만 쳐다본다고 했다. (간호사 뽑을 때 이빨을 보고 면접을 봤어야 할텐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귀하의 치아는 현 상황에서 심미적인 미소를 짓기에 부적절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비심미적인 미소? 의치의 수명이 8-10년 정도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치과 기술은 아직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치의학은 재료공학과 아직도 크로스오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일까? 몇백년 동안 대체 뭘 한걸까? 해골에 나사못 박고 레진으로 땜빵질하고 여전히 고속드릴로 이빨을 갈아 도자기나 씌우고 있다니. 그래도 쇠줄로 갈아대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인도에서의 이빨 치료는 몬도가네, 무마취, 정전, 피투성이였는데.

베트남에서 이빨이 부러졌을 때는 앞이에 실금(crack)이 있었다. 엑스레이 사진에서 분명히 확인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번에 찍은 엑스레이 사진에는 실금이 없다. 베트남의 예쁜 여의사는 엑스레이 사진만으로는 확실치 않다며 일종의 초음파 충격 실험을 했다. 멀쩡한 이빨에 초음파로 진동하는 프로브를 대면 진동이 잇몸까지 기어 올라가 아파오는데, 부러진 이빨에서는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제대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한 번 나서 재생되거나 복구되지 않는 이빨에다가 신경치료를 받아 신경을 없애버린 이빨이 스스로 침 발라서 자가 용접한 것인가?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경제적이고 비심미적이기까지 한 빌어먹을 이빨이라...

날더러 69호도 안다며 어디서 그런 걸 알게 되었냐고 묻는다. 글쎄다? 치과 용어가 몇천 개씩 되기라도 하던가? 난 내 치아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화상처리까지 손수 하고,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원장 선생에게 얘기했다. 인터넷 뒤져 공부하면 치과의사와 소통은 가능하다. 인터넷에서 거의 모든 정보를 끌어들여 나름대로 어떻게 할 것인가 계획까지 세워 놓고 치과의사와 몇 가지 옵션을 놓고 토론을 했지만, 없는 것이 없는 인터넷에도 공개되지 않은 '시술' 가격을 보면 이들은 보라카이에서 한국인 관광객들 등을 쳐먹고 사는 가이드처럼 서비스를 파는 장사꾼이지 인술과는 거리가 멀다고 봤다. (장사꾼이니까 가격 협상이 가능했다) 베트남에서는 치아 하나당 80달러였다. 한국은 그 몇 배를 받아먹었다. 특히나 치과에 갈 때마다 스케일링을 강요하는 인간들을 보면 혓바닥을 강력하게 썩션하고 싶어진다.

치과의 한심스러운 기술은 접착제로 갖다붙인 레진이 치과를 나오자마자 떨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원장 선생도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했는가 보다. 간호사들이 가치를 만드는 것을 보고 미심쩍어 하던데.

기무라 다쿠야가 나오는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을 다운 받았다. 이게 과연 재미있을까...

읽을 책이 없어서 그렉 이건의 diaspora를 읽기 시작. permutation city의 연장선인 듯. 첫 문단부터 내리 20페이지까지 그렉 이건 특유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엉성한 문장으로 Orphan이 탄생하는 과정을 스케치했다. 재미있었는데 대개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것 같지는 않아 뵜다. h 아저씨, y 아저씨가 이구동성으로 이 소설이 재미없다고 하길래 여태 안 읽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 역시 그렉 이건이다. 가끔은 그들을 포함한 남들이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해지고는 했다. 그렉 이건처럼 문단, 문장, 심지어는 단어에 이르기까지 보간을 하며 그의 소설에 참여해 즐길 수 있는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는 개인적으로 지극히 드물었고(마치 그대의 부족함이 내가 있을 바로 그 자리에요 라고 연인이 안심하듯이) 대다수의 소설에서는 기대조차 하지 않을 뿐더러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빌어먹을 작가들의 딸딸이(서사라고 한다)에는 대체로 질린 편이었다. 노력할 만큼 했고, 십 년째 서사에 느끼는 짜증스러움은 여전했다. 하긴, 매뉴얼을 재밌게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름을 얻은 Orphan은 그들의 세계보다 800배나 느린 거지같은 '육체'를 말 그대로 질질 끌고(소설에서 사용하는 타우는 millisecond 같다) 브릿저들을 만나러 간다. 특이하게도 he, she 대신 인간이 아닌 것들을 통칭하여 ve, vhe를 사용했다. 저걸 번역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단한 기술의 진보가 고질적인 진화의 진행 장벽을 뛰어 넘었는데(이런 설정은 평범한 sf작가스럽다. 첫장부터 20페이지에 걸친 끈질기고 지랄스러운 서술은 정녕 글 잘 써보겠다고 하는 작가들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데 난 그게 감미로운 싯귀로 들리기까지 해서 주구장창 대사 한 마디 안 나오고 이어졌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실마릴리온의 창세기를 그렉 이건은 디지탈적으로 묘사했다), 문제가 좀 있었다. 엄청난 종 분화로 이기종 사이에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브릿저들은 그들 사이의 대화를 소통시키기 위해 특이하게도 다이버전스를 극대화하여 그들 사이를 희미하게 연결(브릿징)하는 방법론을 사용했다. y 아저씨에게 번역된 쿼런틴을 읽었을 때는 원서와 번역서 사이에 뭔가 읽는 느낌을 다르게 하는 부정합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니까, 그건 내가 원서를 읽은지 얼마 안되서 그렇단다. 그래서 책 나오기 전에 그렉 이건의 두 글을 다시 읽고 비교했는데 역시나... 였다. 번역을 잘 한다고 해서 그렉 이건의 공돌이 마인드가 찌르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쿼런틴 번역의 가장 큰 잘못은 있어 보이는 척 하려는 그렉 이건의 마음을 매끄러운 번역으로 망쳐 놓은 것이었다. 바보 영문학도가 번역했더라면 더 나았을 뻔 했다. 그랬더라면 그렉 이건의 엉성한 글투와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 사이의 생뚱함, 거칠음이 제대로 '구현'되었을 테니까! 아니, 차라리 번역 안하고 그렉 이건이 좋다카드라, 소문만 내면 될 것 같은데.

매 장 마다 신선하고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정말 존경스럽다. 대체 오스트레일리아 깡촌에서 자원봉사 활동한다는 이건은 머리통에 뭐가 들어있는 것일까? 일억 개의 반짝이는 별? 자, 그렇게 해서 하루에 30페이지씩만 읽으려던 것을 오늘 하룻 동안 출퇴근하면서 100페이지를 읽고 말았다. 조금 있으면 쌍성이 폭발해 엑스선을 태양계에 쏟아부을 것만 같다. 피폭을 줄이기 위해 목성을 내궤도로 끌어와 방패 막이로 사용할지도 모른다. 이건이 다음 장에서 또 어떤 황당한 아이디어를 보여줄까 기대된다. 아니면... 제목 그대로 우주에 디지탈 정액을 뿌린다?

Manfred Mann's Band, The Roaring Silence, The Road To Babylon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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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잡기 2004. 4. 27. 00:05
장남들, 바람과 구름 (4:25) -- 만사가 순진했던 시절의 노랫가락.

부는 바람아 너는 나의 힘
모든 슬픔을 거두어 가다오
광활한 대지에
끝없는 바다에
오 바람이 분다

가는 구름아 너는 나의 꿈
높은 저 곳에 데려가 다오
푸른 창공으로 영원한 곳으로
오 구름이 간다

나도 따라서 갈래 머나먼 저 곳으로
나의 꿈을 따라서 멀리 머나먼 곳에
부는 바람아 너는 나의 힘
가는 구름아 너는 나의 꿈
푸른 희망 속에 끝없이 달리는
오... 바람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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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테스

잡기 2004. 4. 26. 02:57
longest journey의 수중 퍼즐에서 막혀 한참을 헤메다가 게임부머에서 워크스루를 뒤져 간신히 해결했다. 이런 좋은 사이트가 있었다니... 무엇보다도 머리가 딸렸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약했다. 일은 해야겠고 일 하다가 자꾸 생각이 나서 찹터 10 이후부터는 막히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워크스루에 의존했다. 정확히 15분 만에 세 찹터를 주마간산격으로 지나갔고 만사가 순조롭게 처리되는 시시껄렁한 엔딩을 보았다. TLJ의 대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예전 어드벤쳐 게임은 잘못된 대사 한 마디로 그에 상응하는 값비싼 댓가를 치렀다. TLJ에서는 무슨 댓구/질문을 하던(게다가 참 착하게 말해서 신경을 돋군다) 게임은 게임대로 흘러갔다. 주인공이 죽을 리가 없는 그 플롯은 대체로 기분이 상하는 것이었다. 순서대로 움직여 몇 가지 해결책만 찾으면 되었다. 이김에 사이베리아, 사이베리아2를 다운 받았는데 할까 말까 생각중이다. 평가를 보니 tlj가 20세기 마지막 걸작 어드벤쳐라면 사이베리아는 21세기를 여는 어드벤쳐란다. 그런데 어떤 점 때문에 걸작이란 말일까? 궁금하군. 99.9%의 게임이 쓰레기인데 개중 좀 괜찮다는 게임을 걸작이라고 하는걸까? 아니면 하향 평준화가 될대로 되어 버린(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게임들이라 적당히만 갖추면 걸작이 되는걸까? 게임은 여전히 소설, 그것도 잘 만든 소설을 못 쫓아오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데...

얼음과 불의 노래: JRR 마틴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까지 9부작으로 완결하겠다며 갖은 늑장을 부리고 있는 이 판타지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판타지에 대한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재검토하게 만들어 주셨다. 얼음과 불의 노래 만큼 지저분하고 메스꺼운 기사들이 등장하는 소설도 없었고,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가 씨앗이나 받는 암캐로 출연하는 소설도 없었다. (아마 일천한 판타지 경험 탓이겠지만) 그래서 판타지에서 항상 부족하게 느꼈던, 어떤 부분들을 퍼즐의 조각을 맞추듯이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얼음과 불의 노래를 앰버 시리즈에 비견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앰버 시리즈에서 보이던 느끼함(일종의 메스꺼움) 같은 것이 안 보여 아주 좋았다. 해가 갈수록 젤라즈니는 밥맛 떨어진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자이메와 산도르다. 성정이 변한 탓인지 밑바닥에서 꿋꿋이 기어 올라가는 놈들보다는 추락하고 망가지고, 시궁창에 굴러 다니면서 버텨내는 놈들이 반갑다. 하여튼 소설에서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말 그대로, 망가졌다. 예외가 있다면 길고 가늘게 사는 재수없는 놈들과 대너리스 정도다. 마틴이 티리온에게 보이는 변태스러운 애정이 잘 이해가 안가지만 대너리스는 왜? 그녀는 왜 망가뜨리지 않는 것일까? 진행속도가 염장 지를 정도로 느리고 캐릭터가 너무 많아 태반의 하찮은 귀족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조차 없다. 3부가 말 그대로 갑자기 끝나 버려 맘 상했다. 원서로라도 4부를 읽어보려니 아직 안 나왔다. -_-

플라네테스: 만화책으로 나온 것을 3권까지 보고 여행을 갔다. 우주 관련 코믹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것이다. 우주는 사랑으로 넘쳐야 마땅하고, 우주비행사도 샐러리맨이라는 '진중한' 깨달음을 준 만화책이었다. 정크SF에서 이원님이 쓴 글을 보고 pdbox에서 26편을 이틀에 걸쳐 다운 받았다. 26편까지 보고 나니, 어, 이거 만화책으로 다 본 내용이네? 만화책이 낫잖아?

그 와중에 사무실에서 작업하던 하드 디스크가 날아갔다. 당황스러웠다. 멀쩡한 하드 디스크가 날아가다니... 작업하던 소스는 백업을 늘 받아두니까 별 문제가 없었지만... 때마침 컴파일러를 업데이트하고 대단히 많은 양의 코드를 새로 작성하여 테스트를 남겨둔 참이라 한 두 가지 버그를 잡기 위해 순전히 펜과 종이만 사용해서 갖가지 가설 내지는 억측을 만들고 디버깅 했다. 옛날 옛적 모니터가 없고 키보드만 달랑 달려 있는 타이프라이터 콘솔에서 작업하던 시절 생각이 났는데, 약 한 시간, 나름대로 끔찍한 시간이었다.

코드 프리징은 딱 두 번 밖에 안 했다.

하드 디스크가 날아가 금요일 저녁을 공쳤다. 하는 수 없이 하드 디스크를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서 고쳐야 할 것이다. 저녁에 황가와 아내를 만나 어떤 조그만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60대 할아버지와 30-40대로 보이는 손님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온다는 곳인데 손님들 사이에 의가 상할 염려 때문인지 정치 얘기를 일절 하지 않는 할아버지들이 좋았고, 우리들더러 20대를 보니 풋풋해서 좋단다. 풋풋하단 말인가? 아아... 우리중 누구도 우리가 30대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드문 단결력이었다. 아저씨들과 마담 누나가 각각 한 차례씩 술을 사줬다. 진실을 매몰차게 외면하면, 이 바닥의 풋풋함에는 즐거운 보상이 따르는 것 같다.

플라네테스: 내가 만약 목성에 가겠다고 핏발 선 눈으로 우기면 아마도 아내가 따라 나설 것이다. 나 혼자 좋은 곳에 가서 혼자만 재미 보는 꼴은 못 봐준다는 맨탈리티다. 아내에게 사주고 싶은 라디오는 쿠바 AM 채널과 단파 꾸란 방송 마저 들리는 멀티밴드 라디오지, GaAs FET를 부적절하게 낭비하는 명품 라디오는 아니다. 아내는 라디오보다는 거대 쿠션을 선물로 사달라고 하는데, 내가 말 안들으면 대신 두들겨 팰 뭔가가 필요한 것 같다. 곰곰히 저울질해보니 그 편이 훨씬 단가가 싸게 먹히고 실용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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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est journey

잡기 2004. 4. 22. 02:26
쉽다는 게임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아직 chapter 10까지 밖에 진행하지 못했다. 스타크와 아카디아 사이에서 헤멨다. 밤마다 두세 시간씩 게임을 했다. 그간 게임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 두 찹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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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없이 안 돌아가는 머리와 볼펜과 백지로 경로를 그렸다.
노래나 한 곡 듣고 자자. 등려군, 月亮代表我的心 (3:26)


니 웬 워 아이 니 요 둬셴 워 아이 니 요 지 펜
워 디 칭 예 젠 워 디 아이 예 젠 옐량 따이비야 워 디 씬

니 웬 워 아이 니 요 둬셴 워 아이 니 요 지 펜
워 디 칭 부이 워 디 아이 부 비엔 엘량 따이비야 워 디 씬

칭칭 디 이 그 웬 이징 다 동 워 디 씬
쉔쉔 디 이 동 칭 쨔워 쓰 니앙 다오 뤄 진

니 웬 워 아이 니 요 둬셴 워 아이 니 요 지 펜
니 치 시앙 이 시앙 니취칸 이칸 엘량 따이비야 워 디 씬

...

그대가 물었죠,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느냐고(워 아이 니 둬셴), 내가 그대를 얼마나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마음은 진심입니다. 내 사랑도 진심입니다. 저 달빛이 내 마음입니다(옐량 따이비야 워 디 씬).

조금쯤은 알아듣겠다. 등려군의 노래를 좋아했다. 언젠가 자기가 좋아하는 거라며 중국 여자애가 보내준 곡이다. 하드 디스크 정리하다가 며칠 전에 발견했다. 나는 아마 여자보다 달을 좀 더 좋아할 것이다. 완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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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est journey

잡기 2004. 4. 19. 18:49
한국, 외국인 자금 유입 규모 커 -- 왜들 저러나. 혹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국내 상황이 흥행사들의 심장을 자극하기 때문은 아닐까? 첸수이벤이 대만의 미래에 드리운 먹구름 만큼이겠지.

역시... 뻘짓을 했다. Ice Radio라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베네수엘라, 쿠바 라디오 방송 마저 들을 수 있다.

partition magic으로 40GB HDD를 각각 10GB, 30GB 파티션으로 나누고 첫번째 파티션에 xp를 재설치했다. 그동안 defrag를 끝없이 해봐도 속도 개선이 영 안되길래 하는 수 없었다. 10GB니까 앞으로는 부담없이 날리고 새로 깔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노턴 고스트는 정이 안 가는 프로그램이고, 매번 드라이버가 업데이트되는 현실에 안 어울려서 역시나 xp는 수동으로 일일이 설치하는 편이 나은 듯 했다. 그래봤다 한 시간이면 다 설치하는데.

도깨비뉴스에서 The Longest Journey의 한글 번역이 완료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슨 게임인지 궁금해 와레즈를 뒤져 다운 받아 설치하니 1.7G나 되었다. 할 일 없는 주말 저녁인데다가 며칠 걸려 다운 받은지라 노력과 정성이 아까워서 하는 수 없이 chapter 3까지 진행했다. 게임하고 담 쌓고 산지 오래 되었지만 폭력적이기 그지없는 이런 저런 게임에 비하면 스토리가 게임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어드벤쳐 게임에 상대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수다가 워낙 심해(심지어 주인공이 16살인지 18살 먹은 여자애라 일단은 세이브 시켜놓고 주먹질을 일삼는 나같은 마초는 감정이입이 불가능하다) 굳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뭐든지 묻고 일일이 답변을 듣다보면 지치는 경향이 있었는데 한글 패치를 깔고 나니 진행 속도가 두 배쯤은 빨라졌다. 역시 어드벤쳐 게임은 라면 끓여먹으면서 죈종일 하는 것이 제맛이다.

프롤로그. 장엄한 배경을 벗삼아, 란제리 차림으로 우뚝 서 있는 주인공.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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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 불의 노래

잡기 2004. 4. 17. 01:11
생각난 김에 들러보니 '얼음과 불의 노래' 3부의 번역이 끝났다. 캡쳐해 두었다. 새로 개척한 70번 노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읽었다. 1시간 반쯤 읽었는데도 스크롤바가 코딱지 만큼도 안 움직였다. 2MB 짜리 텍스트니까 400p 짜리 책 세 권 분량은 되지 않을까 싶다.

신카이 마코토의 자작극, the Voices of a distant star를 얼마 전에 봤다. 보고 나서 느낀 점: 본 거 또 봤구나, 뭐... 우주 건너편에서 외계인과 전투 중에 고향에 두고 온 남자친구에게 문자나 날리며 고독해 하는 계집아이나 그걸 기다리는 남자애 얘기라서 영 지루할 밖에.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12권을 시험 삼아 읽었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수도사의 일상사를 다룬 훈훈한 추리극으로 짐작된다. 으윽. 달리 읽을 책이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꾸역꾸역 한두 권씩 읽어보자고 다짐했다. 이 나라에서 취향 가리면서 책 읽다보면 낙동강 오리알 같은 독자 신세를 면키 어렵다. -- 간만에 행책에 가보니 그 동네는 여전히 오리 둥지처럼 시끄러웠다.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느끼하고 징그럽고 속이 메슥거리는 Iain Banks의 소설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을텐데... 뭐 나야 취향에 맞지만.

잠깐 짬을 내서 그동안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던 phpnews를 업그레이드 했다. 예전에 고쳤던 내용인데, 봉당 아저씨가 고쳐 보내준 소스를 업어 쓰는 바람에 이전 소스를 날리는 한심한 짓을 했고, 그런 다음 뭘 고쳤는지를 잊어버려 자포자기 한 나머지 내버려 두고 있었다. 대체 이걸 왜 업그레이드 하고 있을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 그것 때문에 시사에 밝아진 것도 있고 해서 ([조선일보 金大中칼럼] 졌지만 지지 않았다! - 뭔소리여?) 내버려 뒀다.

빌 게이츠가 수 년 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cleartype 폰트를 일주일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 lcd 화면에서의 영문 글자가 예뻐져서 영문 문서 읽을 때 마치 책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니터에서는 글자가 번져 쓰잘데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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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잡기 2004. 4. 16. 01:15
투표했다. 비례대표는 어떻게 잘 되었지만 지금 시각 현재 이재오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이번에 당선되면 3선이다. 열린우리당(진보누리에서는 열린뚜껑당, 돼지우리당이라고 불렀다) 후보와는 표차가 얼마나지 않았다. 이 사람 당선을 저지하는데 보탬이 되려고 내 생애 처음으로 투표한 것이다. 그는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면서 지역구 관리를 철저히 한 사람이다. 그 양반이 국회에서 탄핵 가결의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시장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결과가 이렇게 나왔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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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컨디션 #3

잡기 2004. 4. 14. 00:45
아내가 라디오를 듣고 싶다며 라디오를 사는게 어떨까 내게 물었다. 돈 들면서 그 효과가 별로인 것들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혐오감 탓에 라디오를 사 줄 수는 없고... 대신 방송사를 돌아다녀 multimedia stream service 어드레스를 알아내고 노트북에서 그것들을 스트리밍하여 들려 주었다. 전날 밤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잤다. MBC SFM, MBC MFM, KBS 1FM, KBS 2FM, KBS 1Radio, KBS 2Radio, KBS 3Radio, SBS Power FM, SBS Love FM

방송을 찾는 와중에 일반 브라우저에서 해당 페이지의 vod 서비스 소스를 볼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는 때는 상거래를 할 때 밖에는 없고 보통은 avant browser를 사용하기 때문에 페이지 소스 보기를 막아 놓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방 브라우저가 아니더라도 소스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일텐데? 설마 사용자들이 그걸 모를 리도 없을테고. 하여튼 무수한 종류의 멀티탭 브라우저가 존재하지만, 아방 브라우저는 수년간 써온 탓도 있고, 깔끔한 멀티탭 인터페이스 탓에 버리지 못하고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아방 브라우저 만큼 버그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프로그램도 없었다. 내가 뭔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들은 무척 드물었다. 아내 빼고. 브라우징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비결: temporary internet file path를 ramdisk로 지정하고 flash를 꺼버린다. 적어도 30-40% 이상 속도가 빨라졌다. ramdisk는 노트북을 사용하여 컴파일 등의 작업을 할 때 극단적인 스피드 상승감을 맛보게 해줬다. 디스크가 안 돌아가니 배터리도 오래쓰고. 언젠가 사용하는 프로그램들 목록을 만들어 봐야 할텐데...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주로 듣는 것은 KBS 1FM, 클래식 방송. 다른 것들은 귀가 간지러워서... 주둥이 닫고 줄곧 음악만 틀어주는 유일한 방송이랄까. 국악도 틀어주고. 곡명 같은 것은 애당초 궁금하지도 않단 말이다.

간단한 서버를 만들다보니 이상하게도 점점 메신저 서버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xml로 교환하고, 이젠 접속된 클라이언트 사이에 프리센스 정보를 교환하고 채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udp 브로드캐스트로 호스트가 살아있는지 여부를 알아내어 커넥션 닭질을 방지할 수 있지만 애당초 죽어 있던 놈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브로드캐스트 메시지를 날려 보내야 하는데, n개의 호스트가 서로 서로의 안부를 애틋하게 묻고 다니는 그런 패킷들을 전송하는 것은 트래픽 낭비라서 비현실적이다. 뭐 뾰족한 수가 없을까? 그래서 <identify entity="leonse" persona="shy" inform="welcome"/> <identify entity="fiona" persona="active" inform="deny:*"/> 같은 패킷을 만들었다. 레온세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는 않지만 타인의 프리센스를 수집한다. 피오나는 자신의 존재를 만방에 알리지만 타인의 프리센스 정보 수집은 거부한다. 뭐 그런 것이다. <me love="fiona"/>같은 패킷은 피오나가 네트에 접속하게 되면 그가 수줍건 말건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사랑이 철철 흘러 넘치는 서버 프로그래밍이 되었다.

캐스케이드 라우팅까지 구현하면 정말 이상한 서버가 될 것 같다. 왜 이런 짓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취미 생활? 그렇다. 업무란 본질적으로 취미생활의 연장인 것이다. 업무란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슬쩍 해 보면서 시간을 활용(낭비)하는 놀이인 것이다.

컨트롤 보드의 이더넷 칩에는 mac 어드레스가 없었다. eeprom에 짱박아 넣어야 하는데 ieee에 가서 mac address를 할당 받으려니 유료였다. 돈 안 들이고 쉽게 해내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망한 회사에 할당된 채 버려지고 잊혀진 특정 부분을 사용하기로 했다.

헨리 조지나 베블렌의 책을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서 찾지 못해 척 팔라닉의 세번째 소설을 빌려 단숨에 읽어치웠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프로그래밍만 하지 않으면 하루에 책 한 권씩 읽는 일이 예사였다. 척 팔라닉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은 가정학/만물 박사답게 갖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알려줬다.

'... 물건을 훔치는 대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흘린 영수증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그걸 들고 가게로 들어가 영수증에 적힌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든다. 가게 안을 서성이다가 점원에게 물건과 영수증을 내놓고 현금으로 반환하는 것이다. 물론 이 수법은 가게의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다. 명세 계산서일 경우에는 더욱 쉽다. 단, 오래된 것이나 더러운 영수증은 사용할 수 없다. 같은 영수증을 두 번 넘게 쓰는 것도 위험하다. 한 군데를 골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보다는 여러 곳을 돌아가며 이 수법을 써 먹는 것이 중요하다. ... 물론 가게 측에서도 다 알고 있는 수법이다.'

'값비싼 물건을 페인트 통에 넣어 페인트 통을 사면 검색대에서 발각되지 않는다.'

'가장 손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꼬리표를 뜯어내는 것이다. 우선 모자나 장갑이나 우산 같은 걸 찾아 꼬리표를 뜯는다. 그리고 그걸 분실물 신고센터로 들고 가 신고하는 것이다.'

'다트 증후군. 몽정을 하거나 소변을 봄으로써 정액을 잃어버린다는 잘못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증세를 가리킨다(차다, 아후야, 1990). 그것은 40 방울의 피가 한 방울의 골수와 같고, 40 방울의 골수는 한 방울의 정액과 같다는 힌두교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아크타르, 1988)이라고 한다.'

'음식과 섹스를 빼놓고 성서를 논할 수 있을까.'

'<마태볶음> 24장 13절. "그러나 마지막까지 견뎌내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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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컨디션 #2

잡기 2004. 4. 11. 01:24
꿈 때문에 두 번 잠에서 깨었다. 며칠 전부터 똑같은 꿈을 꾼다. 점점 세부 묘사가 나아지고 있다. 수백 미터의 엄청난 해일이 산을 넘어 모로코의 어떤 거리를 덮쳤고 길거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물벼락을 맞고 죽었다. 고 생각했는데 깨어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물에 쩔은 생쥐인 채로 공황 상태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버스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지만 같은 꿈을 여러 차례 꾸면서 요령이 생겼다. 그 다음부터는 해일이 밀려올 때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 둔 상태였다. 전신을 강타하는 물은 온갖 종류의 잡동사니 때문에 지저분하고 탁했다. 부러진 나무가 눈알을 파고들 땐 죽을 맛이었다. 그럭저럭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즐기긴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깨어나면 이미 죽은 자들과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우왕좌왕했다. 버스는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놓치면 끝난다. 그리고 다시 물벼락 맞고 죽으러 갔다. 왜 나와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할까. 같은 꿈을 계속 꾸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들국화, 다시 이제부터 2:16

아름다웠던 날이 지나고 차가운 바람에 갈 길 잊었네. 돌아볼 수도 없이 찾아갈 수도 없이 내 눈은 발끝만 보고 있네. 나는 이제 어디쯤 온건가, 아직도 대답은 들리지 않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쯤 온 건가, 내 눈은 햇빛에 어지러운데. ... 다시 가야겠지. 다시 가고 싶어. 다시 시작될 내일이 있으니.

두 아저씨들과 보안에 관한 얘기를 예전에 했다. 성문, 지문은 위조가 쉬웠다. 홍체 인식도 눈알을 뿝은 다음 싱싱하게 보전 하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었다. ... 이를테면 한 인간의 면역 글로블린의 형태와 나노 머신을 이용해 보안장치를 만드는 것이 훗날 가능할 것만 같다. 면역 글로블린 결합이란 문과 집이 일종의 항원, 항체가 되는 것이다. 나노머신은 자신과 꼭 맞아 떨어지는 열쇠가 아니면(마치 면역 글로블린처럼) 서로 싸운다, 파괴한다, 먹어치운다. 집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눈알을 굴리거나 목소리를 내거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다. 피부의 모공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나노 머신 연기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자 마자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이 문가의 인식장치에 스며 들어가 일정한 순서대로 키를 조립하면, 다시 말해 우두커니 문 앞에 서있기만 하면 문이 열린다. sequence scent라고 이름붙였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거리를 일정하게 돌아다니며 그 거리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나노머신을 하나 하나 체내에 축적한 후 집에 다다라야 문이 열리는 '문학적인'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거리를 걷거나, 그 자신의 생활 습관과 정서적 변화에 의해 형성된 패턴이 유기적으로 조직되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거나 애인을 만나고 한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를 돌아다니고 피트니스 센터에 들르고 도서관과 할인매장에 들르는 패턴이다. 그리고 어느날은 비를 맞고 상처받고 지친 몸으로 문 앞에 선다. 자신을 바꾸고 자신이 바뀌어 영영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문이 그러나 열린다. 김추자, 무인도 3:48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자.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우후~~~~~ 갑자기 생각난 수년 전 제주 여행기 (아아오에 아우아우에, 마우이, 또는 바람의 아오테아로아 등 흰색과 푸른색의 경쟁 조건)

사랑이 식은 후 상대에게 느끼는 미세한 감정은 그 격렬함에 있어 알러지와 유사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공평한 여행길에서마저도 침착함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경험을 오래토록 잊어버리고, 가끔은 다시 생각났고, 던져버리고 싶었다. 영혼이 빠져 나가듯 면역계가 방심하고 기만당하고 항원을 찾지못해 사라지면서 주기적으로 혼란이 찾아왔다. 일정한 강도의 보안 상태를 유지하려면 환경을 유연하게 재해석하고 적응해왔던 그 모든 과정에 대한 기억 전부가 필요했다. 아니면 지질로 이루어진 세포막이 서서히 용해되고 배터리의 황산 용액이 바깥으로 새어나가 듯이 세포질의 용액은 졸졸 흘러나가다가 종국에는 미이라처럼 바짝 말라 죽을 것이다. 난감.

오지혜(와이키키 브라더스), 사랑 밖에 난 몰라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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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컨디션

잡기 2004. 4. 8. 02:39
밤 아홉시 무렵, 보름달이 멋지게 한강을 비췄다. 술이 깬다. 이 맛이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 마저도 이런 잔재미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커넥션에 실패했을 때 다음 커넥션을 형성하기 위한 커넥션 시도 간격은 자연대수나 약간 더 지각있게 하려면 피보나치 수열을 따른다. 옛날에 왜 그래야 하는가 이유를 알고 있었으나 잊어버렸다.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으면 머리가 터지는데 아직 뇌일혈로 쓰러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망각 때문이었다. 자연에 방만하게 존재하는 수열이므로 이루 말할데 없이 '자연스럽기는' 한데, 커넥션 시도를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문제제기를 내가 하고 심사숙고하는 척 한 다음 곧바로 wru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aitp로 바꿨다. 이니시에이터가 브로드캐스트 메시지를 날리고 그것을 받은 클라이언트/서버는 <identify me="reallydumbcontrolunit" version="3.14" ip="162.2.88.45" status="sucked"/> 같은 패킷을 udp로 날려주는 것이다. 상당히 바보스러워 보이는 커넥션 리트라이 삽질이 없어졌다. 여기까지 들어본 서버 프로그래머들은 어 그거 dhcp나 시스코의 핫플러깅 프로토콜, 또는 netbios의 마스터 브라우저 일렉션과 유사하다고 맞장구를 친다. 누가 모르나? 모델이 그건데. 코딩이야 몇 줄 되지도 않았다. 문제는 토폴로지와 아키텍쳐, 즉 수사적으로 말하자면 디자인, 폴리시 매터지. 그런데 프로토콜 이름이 왜 그 모양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who are you protocol, anyone in there protocol 등 귀엽고 이해하기 쉬운 것들인데 디스트리뷰션 서버, 캐스케이딩 서버, 마스터 컨트롤러 등등 잡스러운 것들에서 하드웨어의 리비전에 따른 재분배와 로드 밸런싱에 사용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미션 크리티컬하다는 점. 혈관이 점점 굵어지면서 나날이 깡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펀다멘탈이 워낙 튼튼해서 무슨 프로그램을 짜던 일주일 이내에 끝난다고 조사장이 주장했다. 사실 그 설계를 만드느라 작년 여름 2개월 내내 닭질했다.

서버 설계를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한번쯤은 배웠을 법한(옛날 프로그래머들은 워낙 무식한 돌대가리들이 많았는데 요즘도 zdnet이나 마이크로소프트웨어 따위를 보면 설계를 등한시하고 코딩하면서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생각하다 보면 만사가 잘 된다고 믿고 있는 작자도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이 글을 그의 글을 보다가 어처구나가 없어서 반론을 쓰려다가 써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잡담으로 돌아섰다. 어쩌면 그는 천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설계는 코딩을 쉽게 해준다. 코딩을 하면서 설계를 하는 프로그래머계의 모짜르트같은 사람이 없을 수야 없겠지. 하여튼 부럽기도 하지만) 큐잉 이론이라고 있다. 임계 영역에서의 작동을 모델링하는 방법인데 큐잉 이론을 프로파일링, 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정의하다 보면 해결책도 나온다는 것 외에 코딩에는 밥풀데기 만큼도 도움이 안되는 이론이지만 실세계에서 시리얼포트나 네트웍 드라이버를 만들 때, 하다못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만들려면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용감하고 무식한 프로그래머들이나, 하다보면 설계가 저절로 나온다는 대단한 모짜르트들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부럽다.

코딱지만한 컨트롤러에 워낙 여러가지 날테크닉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덕에 폴트 톨러런트를 구현하는 리지드 서버를 만들려고 반쯤은 신경증, 편집증 환자가 되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 사정을 모르고 내 현재 상태를 단지 '바쁘다'라고 규정했다. 왜 바쁜지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무순단 시스템을 데모하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잠시 신경질이 났다. 사랑과 관심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신기술 아이디어 어쩌구 하는 걸 주관하는 무슨 정부 기관에서 날더러 아이디어를 담은 사업계획서를 보내달라고 전화했다. 별일이야. 돈도 몇푼 안주는 거라 몇 가지 적어서 유사장에게 넘기고 그가 쓴 글을 코치했다. 자금을 타내면 나도 좀 떼어주길 기대해 본다. 창업엔 관심 없다.

어제 술을 잘못 먹어 아침부터 속이 쓰리고 골이 지근지근 아팠다. 오랫만에 본 유사장은 내가 속이 안 좋다고 말하니까 그럼 돈까스를 먹으러 가잔다. 애절한 표정으로 속 쓰린데요 라고 말하니, 아, 그 집에 스파게티도 파니까 그거 먹으면 될꺼야. 라고도 말했다. 자상한 유사장님은 속이 정말 메스껍지? 하면서 담배도 권해줬다. 실시간으로 정감이 오가는 우리 사이의 대화란 늘 그 모양이었다.

마누라가 잘 놀다가 내일 집으로 돌아온다고 연락했다. 약간은 너저분해서 두서가 없는 방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유, 프리스타일, 그런지 등 좋은 말들이 여럿 떠올랐다. 한 일주일, 소파에서만 잤다. 마누라는 방안의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을 증오했다. 화분에 물을 줬으니 내가 할 본분은 완수한 것 같다. 마누라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래야만 하는 방 안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무시하고 고상함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행위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위해 마누라를 피해 동굴에서 예술을 창조했던 크로마뇽인들 마저도 즐겨 입에 담았던, 마음에 새겨둘만한 경구 하나; class inherit from super class, freedom derrives from absence of wifeness.

당은 민노당, 인물은 열우당을 찍을 것이다. 민노당의 38대 공약 중에 원전 반대가 있었다. 이유같은 것은 없었다. 어쨌던 의외로 나와 같은(비슷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놀라웠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걸까? 나? 난 오직 마누라 생각 뿐이다. 비합리성의 대마두인 마누라 실존의 부조리함, 마누라 부재의 한계효용. 마누라의 부당한 요구가 세계의 상식에 부합한다면 내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여전히 좆도 아닌가? 마누라는 왜 내 담배를 증오하나? 리팩터링 마누라 등등.

하지만 만약 그게 나오기만 한다면 민노당이나 열우당 대신 인공지능을 찍을 것이다. 절대권력이 절대부패를 낳고 평범한 권력이 평범한 부패를 낳는 등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면 국회의원 대신에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내지는 직접 민주주의에도 완벽하게 써먹을 수 있는)를 실현하기 위해 여론을 수렴하고 안건에 대한 의사 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널리지 베이스, 전문가 시스템,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만들어 '저렴한 비용'으로 청렴한 국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얘기가 왜 뜬구름 잡는 비현실적인 얘기로 간주되는 것일까. 원숭이만도 못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국회의원 보다는 낫지 않을까? 시민에 의해 업그레이드 되는 인공지능 국회의원 에이전트 말이다. 주변 여론의 부정적인 견해는 무시하고 하다 못해 커먼센스 베이스나, 팩트 네트웍으로부터 귀납추리를 하거나 진화연산망을 사용하여 무수한 가능태를 경쟁시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시스템에 관해 본격적으로 떠들어 보려고 했다가, 마침 주변에 한가한 프로그래머가 한 명도 없어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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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장

잡기 2004. 4. 6. 00:08
홈페이지를 옮기는데 약 2시간 걸렸다. 집에서 일을 할 형편이 안되어 후딱 해치웠다. 후련하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었다. 집에 읽을 책이 남아있지 않다. 잡지 보고 밥 먹고 책이나 빌리러 토탈 엔터테인멘트 멀티플렉스인 동네 도서관에 들렀더니 오늘은 쉬는 날이다. 마땅히 뭘 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거리를 하릴없이 배회했다.

마누라는 일주일쯤 놀러갔다. 마누라는 세상이 이처럼 시끄러운데도 평상심을 유지한 채 심지어 행복해 보였다. 마누라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건 한 별종 인간이 자기 개성을 한껏 발휘해 희안한 주장을 다그친다고 믿는 것 같다. 그가 만나본 내 주변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그저 합리적 회의주의자일 따름인데, 똥고집이나 부리는 괴퍅하고 냉소적인 인간 취급을 당하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단무지 길이, 어묵 길이, 햄 길이, 김의 가로 길이가 모두 일치했다. 이것들은 마치 김밥을 위해 특별히 짜고 만든 식품들인 것 같았다. 시장이 김밥 만드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듯 하다. 그래서 김밥용 재료만 샀다. 열 줄쯤 만들어 먹으면 단가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한 마음에 걸어오다가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 앞에 적힌 문구를 보았다. 김밥 한 줄 800원.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은 가게군. 아참, 그게 아니지. 망할, 만들어 먹는 것보다 싸잖아?

김밥 만드는 일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는 주장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실제로 김밥 재료 준비에 20분이 채 안 걸렸다. TV 보면서 김밥을 말았다. 예전보다 솜씨가 나아졌다. 김밥과 사이다로 점심,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오늘 한 일이라고는 화분에 물준 것 밖에 없다. 일을 마치고 소파에 이렇게 누워 게으름을 피워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LEXX 2.03 Lyekka를 보다가 웃겨서 뒤지는 줄 알았다. SF란 모름지기 웃기고 재밌어야 한다. 오늘 EBS 방송을 보니 예술이란 인생에 관한 통찰을 훌륭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묘사하여 감동과 기쁨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Lexx 시리즈는 묘사 방식이 철저하게 3류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에피소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감동과 기쁨을 준다. 이러다가 팬이 되겠다.

애욕전선 이상없다 -- 이 양반 만화는 왜 이렇게 재밌는거야...



'사랑의 열매는 농약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법'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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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야 마칸

잡기 2004. 3. 30. 23:00
"남극 세종기지에서 일할 분~" 월동대원 모집 -- 내겐 해당 사항 없다. 그럴듯한 책 제목에 끌려 장순근의 '남극 탐험의 꿈'을 읽고 나서 남극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싹 가셨다. 지지리도 글을 못 쓰는 양반이다. 그 양반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다시는 읽나 봐라.

지하철을 탈 때 합정에서 당산까지의 구간을 특히 좋아했다. 그것 때문에 2시간이나 걸리는 사무실까지 갈 기운이 생기고는 했다. 빛으로 가득한 한강을 건너다 보면 한국정치의 현실도 보였다. THE "BRIEF SAFE"

"Lexx: The Dark Zone" (1997) : 시리즈의 첫 편이 시작되자 마자 2만 행성 연합은 Bronen-G 행성을 시원스럽게 박살낸다. Kai는 그 와중에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이다. 브로넨 지가 박살난 후 2008년이 지난다. 행성연합의 어둠을 숭배하는 악당 족속들은 행성 파괴선을 건조하는데 브로넨 지에서 꽃피웠던 인섹트 모티브를 참고하여 사상 최강의 우주선을 개발한다. 양분을 섭취해 성장하는 우주선, 렉스가 그것이다. 쓰레기 같은 죄수의 몸에서 쓸만한 장기를 취한 후 남은 찌꺼지 고기를 우주선에 먹였다. 그래서 우주선의 벽에는 소화되다 만 생물 시체의 찌꺼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죄수들 중, 자신을 메스꺼워하는 신랑을 한방 먹이고 잡혀 들어온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받은 형벌은 전신 성형을 받은 다음 죽을 때까지 섹스 슬레이브로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성형 수술을 받을 때 마침 폭동이 일어나 재수없게 클러스터 웜의 신체 일부가 섞여 들어갔다. 여하튼 여차 저차 해서 몇몇 어중이 떠중이들이 렉스를 몰고 클러스터 행성을 탈출한다.

시리즈의 1,2편만 보고 판단하기는 그렇겠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렉스 시리즈는 보면 '건실한' 프론티어 철학을 가진데다가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인생을 심하게 비웃는 코믹 판타지물인 스타트랙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죽지도 않고 잘 살아가는 스타트랙의 등장인물들과 달리 사정상 딱히 살아 있어야 될 이유가 없는 생명체들은 떨어져 죽고 팔다리와 목이 잘리고 내장을 들어내고 뇌를 짜내고 먹히고 던져진다. 감독의 주장에 따르면 십대 떼거리가 클러스터웜에게 먹히는 모습이 나오는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환희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선은 파리처럼 하찮게 폭발하고 행성이 부서질 때는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주인공들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른다. 흡사 카펜터 영화의 차세대 버전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즐겁다.

'거짓말을 하겠다고 했으니 어떤 것도 진실이 될 수 없죠. 창문은 창문이 아니고, 문은 열리거나 닫히지 못합니다. 모두 진실의 모조품일 뿐이지요. 그런 이야기 속의 태양은 이 손을 따뜻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과일은 한번 먹으면 입맛만 다시게 되지요. 거짓말은 바다와 산이 있는 커다란 나라 같은 것이어서 인생처럼 잔인하고, 아이들처럼 아름다우며, 여우처럼 꾀가 많고, 달면서도 시고, 싱싱하면서도 말라 비틀어지고, 썩었는가 하면 싱싱하고, 오래 되었나 하면 갓 태어난 것 같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 거짓말이 주는 웃음처럼 통쾌한 웃음은 없습니다.'

'거짓말을 잘 하려면 자기가 하는 거짓말의 진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랑이나 선의 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실은 어떤 멍청이라도 말할 수 있지만 선의의 거짓말은 영혼이 깨어 있는 자만 할 수 있다.' -- 라픽 샤미, 1001개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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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nc

잡기 2004. 3. 26. 10:54
며칠 전, 냄비를 사러 여러 가게에 들렀다. 냄비 고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금새 달아오르는 것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삼성 home+에 들렀다. 물건을 사는 데는 5분 밖에 안 걸렸지만 들고 있던 짐을 맡기고 다시 찾는데 각각 10분, 15분씩 걸렸다. 고객 서비스 센터의 둘 밖에 없는 점원은 우유를 사는 손님에게 빨대를 나눠주는 일 마저도 번호표를 받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해서 '고객 불만의 소리' 투서를 작성했다.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객 만족을 울부짖는 삼성 홈플러스 서비스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중얼 염소처럼 늘어놓았다. 그들의 시스템에는 이상이 없었다. 직원도 친절했다. 다만 그 시스템이 비효율적이었을 뿐이고 내게 사과할 이유는 없다.

거리에서 허구헌날 사랑타령을 늘어놓는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여러 고행과 삽질의 댓가, 있지도 않은 위협과 리스크를 과장하면서 타인을 갈취하는 재미를 느끼는 비즈니스 세계, 설전, 또는 강렬한 프렌치 키스가 오가는, 또 그래야 하는 정치가의 풍운, 무엇보다도 격렬한 프로그래밍의 기쁨 따위를 노래하지 않는 한, 대중음악가는 아직 멀었다, 여전히 세상물정을 모르는 바보다.

바이너리를 엔코딩할 때 무려 30% 이상의 대역폭을 허비하는 base64가 상당히 밥맛 떨어지지만 xml에서 바이너리를 크기의 증가 없이 임베드할 마땅한 표준적인 방법이 없어 남 몰래 눈물 지으며 괴로워하던 차에 news group에서 인기있는 yEnc를 알게 되었다. 소스를 뒤적이다가 알고리즘이 너무 간단해 즉석해서 코딩(이라고 할 것 까지도 없는 지경이었다)하고 돌려보니 잘 돌아간다. 엔코딩할 때 원래보다 늘어나는 크기는 대략 (fs / ls * 2) / fs로 수 퍼센트 이하였다. 한 줄의 길이를 늘리면 크기 증가율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Why yEnc is bad <-- 이런 기사에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여튼, 영 마음에 안 들던 base64를 드디어 소스에서 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소하고 째째한 것들로 지속되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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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군은 어디로

잡기 2004. 3. 24. 17:25
테이큰 1부에서 10부까지 모두 봤다. 정서적으로 마음에 안 와닿을 뿐더러 30년 동안 외계인이 이 행성을 방문하는 목적을 외삽하는 단 한 가지 방법에 여전히 변화가 없다는 점을 재삼 확인했다. 영화의 결말이 매우 실망스럽다.

칼 세이건은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인류가 이 적막한 우주에 홀로 살며 고독에 치를 떨지 않아도 될 것 처럼 얘기했다. 이렇게나 거대한 우주에 생명체가 거주하는 행성이 단 하나뿐이라면 엄청난 공간 낭비가 되는 셈이니까. 사무실의 경우도 우주와 다르지 않다. 조사장과 나는 고독에 치를 떨지 않기 위해 사무실에 세 외계인을 끌어들였다.

민호군은 3주 전에 사무실에 왔다. 얌전하고 별 말이 없는 친구로, 외계인에게 납치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눈이 작아 마시마로같은 눈에 삼각형 턱이라 나름대로 개성있어 보였다. 사실은 눈 다리끼 때문에 눈이 퉁퉁 부은 것이었다.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했고 컴퓨터 튜닝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무슨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사무실에 가 보니 그의 컴퓨터와 짐 모두가 사라졌다. 짐 뿐만 아니라 본인도 한 마디 말도 없이 어디론가 갔다. 테이큰?

그가 사라지자 그가 가지고 왔던 밥솥도, 냄비도 함께 사라졌다. 프라이팬에 라면을 끓여먹어야 할 판이었다. 아쉽다면 몹시 아쉬운 점이다. 민호군의 행적이 묘연해지면서 남은 이들이 그가 떠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 화장실 앞에서 자는 바람에 화장실에 갈 수 없다.
*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 행여 말을 걸면 다리끼 얘기만 한다.
* 밤낮으로 사람이 들락거려 맘 편이 야동을 보며 DDR을 할 수 없다.
* 술 사준다고 해 놓고 안 사줬다.
* 3500원 안 갚았다.
* 쌀이 떨어졌다.

생각해 보니, 민호군이 왜 사무실에 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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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잡기 2004. 3. 22. 15:29
최근 본 뉴스: 라엘께서 친히 메시지를 보내 대통령 탄핵을 찬성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데서 열심히 외계인 영접관인지 외계인 대사관을 세우고 복제 열나게 하면 될 것을 사소하고 치사한 이유로 삐쳐 버린 것이 교주스럽지 않아 안 쓰러웠다.

ocn에서 Taken 시리즈를 방영하는 것 같다. 일단 유씨 아저씨 사이트에서 전 편을 다운 받아 4편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외계인의 존재를 일단 인정하고 넘어가는데(왜 그래야만 할까), 눈에 띈 가장 큰 축은 외계인이 왜 지구인을 접촉하는가 인 것 같다. 평범한 남자가 공포 때문에 악당스럽게 나와서 악당스러운 최후를 맞아 몹시 섭섭한 가정용 드라마다. sf 액션 무협 활극으로 결론날 것 같지 않지만 그랬으면 속이 후련하겠다. 오늘이나 화요일에는 Taken 전편을 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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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샷, 완 킬

잡기 2004. 3. 21. 14:57
별 내용도 없는데 밭작물을 망치는 두더지처럼 여기저기 들쑤셔 원치않는 링크를 걸어놓는(블로그 때문에 더 심해졌다) 검색엔진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늘어나서 홈페이지에 로버트 배제 규칙을 만들어 넣었다. 몇몇 검색엔진들이 deep search를 시작하려는 안 좋은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서칭 엔진에서 홈페이지가 검색되면 '최병렬 개새끼'라고 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다. 가뜩이가 가세가 기울고 있는데 사이버 수사대인지 사이버 검색대인지 하는 작자들이 잡으러 와서 무거운 벌금을 메길 지도 모르니 조심, 또 조심.

전전날 술 먹고 뻗어 하루를 공쳤다. 짐 들어오길 기다리다가 다음 날도 공쳤다. 오후에 온다는 짐이 오후 4시가 넘도록 안 와 멍하니 영화나 보고 있으려니 심심하다. 그 다음날은 하는 수 없이 열심히 일 했다.

토요일에 아내와 함께 광화문에 갔다. 5시쯤 도착했다. 행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스피커 만큼은 우렁차게 쾅쾅 울려 퍼지고 있었다. 2-3시간쯤 앉아 있다가 추위 때문에 방광이 오그라들어 일어섰다. '시민 축제' 라고 했다. 탄핵이 어이없는 짓거리라는 점에는 맞장구를 치지만 행사에 적응이 안 된다. 왜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하고 왜 나는 사람들과 입을 맞춰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외쳐야 하는가. 왜? 왜냐하면 시민이 뭉쳐 한 목소리를 내야 '힘'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떼거리 문화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가엾은 행사 진행자의 구호에 맞춰 단조롭고 바보스러운 '문화 행사'의 식순에 따라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구호 외치고, 같은 노래를 30번쯤 불렀다. 같은 노래를 30번쯤 부르다 보니까 마치 매스 게임을 하는 듯 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놈팽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사람씩 일어나 마이크를 붙들고 한참 욕설을 퍼붓던 3.12 밤 여의도 행사 때보다도 현장감이 없고 재미도 없었다.



민주 수호에 대한 열망으로 추위를 무릅쓰고 광화문까지 나와 밤 늦게까지 버티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행사장으로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김홍신을 만났다. 어렸을 적에 인간시장을 꽤 재미있게 읽었고 벌레 죽이기나 사회 개혁은 모름지기 장총찬의 방식이 적합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법, 제도, 질서, 평화, 타협, 합의, 토론 이런 것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사자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지켜보다가 늙어 죽은 후 손주 대 쯤에나 실현되겠지. 그래도 투정 부리지 말고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 김홍신 아저씨 더러 사인 좀 해달라니까, 옆의 보좌관이 사인하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흔쾌히 사인해 줬다. 대체, 사인은 왜 해 달라고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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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un di ujung rumput

잡기 2004. 3. 16. 15:56
집 정리하다가 반명함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내 책 어딘가에 살짝 꽂아놓아 두었던 것 같은데 사진 속의 여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기억해내는 일이 부담스럽다. 머리도 아프고, 왠만하면 안 했으면 좋겠다.

여행은 차이가 아닌 동질성을 찾는 과정이다. 라고 2001년 2월 말 무렵 말레이지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병으로 신음하던 중 노트에 적어놓았다. 차이도 동질성도 자아 발견도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의 나약함과 절대적인 고독이었다. 도움을 원치도 않았고, 그래서 늘 방황했다. Di Lalang은 말레이어로 no를 뜻한다고 노트에 적혀 있었다.

보라색 쥬스, 갈색 쥬스 따위 어딘가 미심쩍은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어쩌다 발견한 빛 바랜 종이 노트에 적어 놓은 작은 단서들, 기록들이 재밌긴 했다.

여행할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을 감추고 평소처럼 슬쩍 자기 얘기만 늘어 놓았는지 찾아보려고 홈페이지를 뒤져 보았다. 기억이 사라지듯 기록도 사라졌다. 기록을 보면 그 때 일을 완전하게 재생할 수 있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문장의 몇몇 지표를 통해 보간 하면 마른 도랑에 물이 흘러 복잡한 지류를 만들어 내듯이 기억이 재생되었다. 그런 것들은 표지만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다. 동남아를 돌아다닐 때 메모만 남기고 여행기를 작성하지 않았다. 언젠가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왜 쓰나, 써서 뭘 하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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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나 가기 전에

잡기 2004. 3. 14. 12:51
쉽게 되는 일이 없었던 지난 이틀 동안 건너방에서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를 그러모아 8만원을 투자해 pc를 '업그레이드'했다.

용산에 들러 53000원 짜리 Aver Key Lite TV Encoder를 구매했다. 29인치 tv와 hdtv connector로 연결하고 싶었으나 4년 전에 산 tv가 지원할 리 없었고, 하다 못해 s-vhs로 연결하려 했으나 싸구려 tv 답게 커넥터가 없었고... 그래서 ntsc rca 커넥터에 연결했다. TV Encoder는 video out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비디오 카드 중 하나를 구입해 설치하는 것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싸고, 나중에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대안이다.


용산에서 구매한 (무려, ridiculous) 2000원 짜리 video D-Sub Male to Male Gender Converter


굴러다니던 키보드, 마우스, 슬림 피씨, 아크릴 케이스에 우겨넣은 11.4" lcd 디스플레이, lan cable, usb 단자에서 전원을 공급받는 tv encoder를 대충 셋업 후 테스트 중. pc의 audio out을 tv에 직결. 어쨌거나 pc의 전원 스위치를 끄면 모든 기기가 off 된다. 선 정리는 나중 일!

냉각팬 교체는 아무런 보람이 없었고 며칠 후에 팬 스피드를 낮출 수 있는 1/4w짜리 저항을 직결할 것이다. 가격이... 10원쯤 하던가? 그 다음 lcd를 sub pc 본체에 고정시키고 av board및 lcd에 공급하는 전력은 sub pc의 내부에서 12V 전원을 뽑아 연결하면 안방에서 divx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lcd 파워는 pc에 전원이 인가되어야 전원이 들어온다. sub pc는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원격 제어하고, 가끔씩 인터넷을 사용하는 용도면 될 것 같다.


시험 운전. 원빈 닮은 친구가 나오는 일본 드라마, '러브 제네레이션'

물 허벅 장단에 맞춰 할마시들이 부르는 제주 민요, 용천검을 편곡한 김용우, 질꼬냉이, 용천검. 홈페이지: http://www.soriggun.co.kr. 공연: 문화일보홀 2004.3.27일(금) 7:30pm, 28일(토) 4pm, 7:30pm.

싸우나 하러 가야지.

찾던 칼을 쑥 빼고 보니 난데없는 용천의 검이라
명년이월 춘삼월 나면 다시 피는 꽃이로구나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서러워 마라
가면 가고 말면 말지 초신을 신고서 시집을 가나
가는 님 허릴 뒤 담쑥 안고 가지를 말라고 낙루(落淚)를 한다
물밀어라 돛달아라 제주 앞 바다 달맞이 가자

후렴) 에헤야라 데야 에헤야라 데헤야라 방애 방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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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나오는 하루

잡기 2004. 3. 13. 01:27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결혼이지만 그거라도 하고 나니 할 일이 이전보다 세 배쯤 늘어났다. 자질구레한 일상사 때문에 집에 들어가서 일을 하거나, 심지어 웹질 마저 할 시간이 없다. 내가 이 집안의 팀장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인 것 같다. 필경 장기 프로젝트가 될텐데 자금 계획을 세우고 인력을 배치하고 일정을 조정하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끈기와 집념이 요구될 것 같다. 하나 밖에 없는 팀원을 설득하고 함께 협업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솔선수범을 해야 할 것이다.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자금 누수를 막고 발생할 수 있는 가능한/치명적인 오류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세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아내가 내 말을 잘 따르도록 일련의 강도 높은 정신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세뇌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

아침부터 탄핵 가결 때문에 기분이 엿 같아서 일은 안 하고 뉴스 사이트만 들락거리다가 퇴근했다. 퇴근길에 책을 읽다가 얼떨결에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없어 보이는 관광지로 추측되는 국회의사당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고, 취향에 안 맞는 곳이지만, 멍하니 서서 누가 뭘 어떻게 잘못해서 감정이 상하지만 기운 내야겠다는 류의 얘기를 들었다. 어제 대충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국회의원인지 하는 작자들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consequence에 관해 불만을 토로할 수 없는, 절차 자체가 사회의 '제'목적성에 관한 합리적 근거가 될 때 그것에 무조건적으로 항복하기 싫어 잠시 저항해 보지만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은 느낌. 왠간하면 그 부수적인 개소리는 생략하고 싶다. <-- 어젯밤 좋은 술 마시고 취해 블로그에 메모해 놓은 것. 과연 뭔 소리일까. 궁금하다. 김씨 아저씨더러 나가 죽으라고 말한 기억이 났다. 예절에 어긋나는 짓이다.

쿨러 마스터를 취급하는 사이트에서 슬림PC에 사용할만한 적당한 쿨러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주문했다. DP5-5G11 (L53 x W50 x H27(mm), 5500rpm. 11.3CFM, 30dB, 5천원) 그런데 엉뚱한 쿨러가 도착했다. 표기된 27mm보다 6mm가 더 높은... 슬림PC의 케이스가 안 닫힌다. 엿된 것이다. 우송료를 3천원으로 가정하면 교환하는 것이 수지맞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lcd 아크릴 케이스는 드릴질 하나 하지 않은 말끔한 것을 보내주었다. 대책이 안 섰다. 11.4" 짜리 lcd라도 제대로 맞춰 놓으려고 av보드의 기판을 살피다가 보니 이전에 짐을 치울 때 기판이 긁혀서 인지 eeprom인 24c02의 핀이 몽땅 한쪽으로 슬린 채 부러져 있었다. 인두를 찾아 박스를 뒤적였다. 인두를 찾으니 땜납이 안 보인다. 간신히 칩의 다리를 납땜해서 욕설을 늘어놓으며 lcd에 장착했다.

하루 종일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코메디에 열중하는 국회의원인지 하는 것들 욕을 수도 없이 되풀이 했다.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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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guys, i have to say this.. My boyfriend has tried some penis enlargement pills and he's a new person since than. The confidence..., the courage!!' 때되면 한두번씩 올라오는 코멘트. 용기도 생기나?

혼인신고서를 들고 구청에 갔다. 인터넷에서 관련 내용을 뒤져보면 의견이 분분했다; 혼인 신고서를 두 통 작성해야 한다는 말이 있고 세 통이라고도 하고 네 통이기도 했다. 혼인 신고서에 개인의 사적인 정보를 적는 부분이 있었다. 직업 란에 무직이라고 적어놓고 잠시 흐뭇했다. 수백만 청년 실업자 중에 하나가 된 것이다. 외롭지 않다. 아내의 도장과 신분증을 가져 오란다. 어찌어찌 해서 넘어갔다. 혼인 신고서에 증인 2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한 명만 적어 놓았다. 그것 때문에 '서류 미비'로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 혼인 신고가 5분 안에 끝낼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닌가 보다. 오늘. 11:40am 집에서 출발. 12:03pm 구청 도착. 12:13pm 까지 기다리고, 12:22pm에 혼인신고를 끝냈다.

어느 나라에나 하나쯤은 꼭 있었던 괴테 학회(goethe institute)가 독일 문화원이었다. 그 동안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빵이 없어 굶어죽을 판인 나라에 어째서 괴테를 연구하는 학회가 있을까, 궁금한데 한 번 가볼까? 하고. 괴테 학회를 (괴테보다 더 위대한) 괴델 학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읽을 책이 없어 멍하니 서가를 둘러보다가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remaking the world)'를 다시 읽었다. 헨리 페트로스키를 테크널로지계의 계관시인이라고 했던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라는 지극히 편협한 한 장르에서 벗어나 여러 기술 분야에서 삽질하는 위인들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얼마전에 노벨 경제학상, 노벨 문학상, 노벨 평화상 등 보기에도 쓸데 없어 보이는 분야에 관한 상이 존재하는 것을 시답잖게 생각하여 몇몇 사람들과 불평을 교환했다. 그러고 보니 페트로스키의 글을 두어개 더 읽은 것 같다.

'사고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확신이고 이를 막는 것은 걱정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구였다. 페트로스키의 관점에 공감하고 그의 글을 재밌게 읽는 처지에서 그가 인용한 이 문장이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챕터가 거듭됨으로서 확인할 수 있었다. 걱정은 사고를 저지른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술자가 사고(모험)를 저지르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처지니까.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는 프로그래밍 교양서적들과 달리 페트로스키의 책에서는 기술자의 기술보다 기술자가 처한 사회적 여건과의 끊임없는 투쟁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기술을 하찮게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양반, 글이 그렇게 재미는 없지만(어쩌면 번역 때문?) 정말 마음에 든다.

얼마전 구매한 책 중에 '남극 탐험의 꿈'이 끼어 있었다. 저자의 '지질학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삽화가 많지 않아 그다지 재미가 없었는데 (암석을 삽화없이 어떻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책에는 사진을 좀 넣은 것 같다. 책 몇 페이지를 떠들어 본 결과로는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지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사우나에 갔다가 로비에서 어떤 아줌마가 서성이는 모습을 보았다. 잘못 봤는가 싶어 몇 번이나 다시 쳐다 봤지만 아줌마였다. 왜 남탕에 아줌마가 있는 걸까. 사우나의 한쪽 통로에 있는 불가마를 통해 들어온걸까. 옷을 벗어야 하는데... 망설여졌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고 아즘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남자들의 알몸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육보시 하는 셈치고) 팬티를 내렸다. 외면한다. 여자가 맞다.

지하철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한눈 팔고 걷다가 젊은 친구의 어깨를 치고 제풀에 뒤로 자빠졌다. 일어서더니 욕설을 늘어 놓았다. 젊은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지나갔고 그의 옆에서 걷던 친구가 조심하세요 하고 지나갔다. 할아버지가 열이 받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주위에 모여 그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같이 세상이 어떻다느니, 화를 내고 있었다. 얼이 빠진 채, 황급히 달아나는 젊은이들을 쳐다 보았다. 달아날 이유도, 화를 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양쪽 다 똥 밟은 것 같다.

사회는 왜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변치않는 의문이었다.

기술자에게 지식애와 지적 풍토는 있을지언정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없다는 점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수퍼 시디와 44Khz, 그리고 디지털 레코드의 음질에 관한, 이른 바 기술적으로는 결론이 뻔한, 무의미한 논쟁을 나눴다. 4년 만에 만나 아저씨와 논쟁을 벌이는 것 외에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친밀감을 구체화할 수 있는 언어적 방법이 없다는 것 역시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피차 여자를 좋아했다. 그점만큼은 일치를 보았다.

오늘 한 일은 Pentium III 600Mhz를 800Mhz로 오버클러킹하고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이것을 TV와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두번째, 서브PC의 CPU 쿨링팬을 대체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가로 3inch x 세로 3inch, 높이 1inch 짜리 쿨링팬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저항을 달아 쿨링팬에 인가되는 전압을 낮춰 팬의 속도를 조절하는 편이 나을까? 슬림PC의 부족한 슬롯을 채울 수 있는 8만원짜리 PCI 카드보다는 비용이 저렴한 5만 3천원짜리 TV encoder가 낫다고 결론 지었다. 그래서 작년 말부터 하고 싶어했던 업그레이드는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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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기사

잡기 2004. 3. 6. 01:51
조선일보: 美 과학자들 “시험관속 인공태양 만들었다” 주장
한국일보: "시험관안에서 핵융합 성공"

스포츠 찌라시의 연애인 가십 기사 제목처럼 '파격적'인 과학 기사를 보면 가끔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는 했다. 딱히 잘못 쓴 기사가 아니지만, 과학 기자가 기사를 저렇게 쓰는 것은 무지몽매한 대다수 대중의 계몽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인가 보다. 개소리 그만 하고 사실과 참조만 정확하게 전달해 줬으면 좋겠다.

같은 내용의 글을 KISTI에서 보면 제목 마저도 합리적 회의주의자가 마땅히 취할 시니컬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거품' 핵융합

예전에 NP complete 문제를 해결했다(대체 뭘 해결했다는 말인가?)는 막연한 제목의 기특한 한국인 수학자(?)에 관한 글을 한국의 '보통' 신문에서 얼핏 읽고 몹시 중대한 뉴스라고 평가했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혀야 한다고 확신하기에(아닌가?) 여기 저기 뒤져 봤지만 아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지금은 그것이 오보라고 생각하지만 신문사의 과학기자가 NP Complete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기사를 썼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렇게 무식하다고 믿고 싶지 않고 자기가 뭘 쓰는지 몰라 인터넷 한번 뒤져본 적 없다고 믿고 싶지 않고 사실 유무를 확인해 보지 않았다고 믿고 싶지 않다. 과학기자는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기생충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맡고 있다.

어젯밤에 상한 삼겹살을 먹고 체해 잠을 설치고 하루 종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저런 기사를 읽으면서 투정을 부리다니 스스로가 한심하다. 아, 맞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자기계발을 하자. e짠돌이를 30분쯤 읽었다. 책 두껍게 만들지 말고 엣센스만 전하란 말이다! 엣센스만! 구질구질한 일상은 궁금하지도 않다고!

pc 시대는 과연 끝났는가

게으른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pc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웹브라우징과 몇가지 문서(유사 문서) 작업, 이런 저런 프로그래밍, 홈 쇼핑과 전자 결재 밖에 없다. 게임을 안 했다. 더 이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점점 더 사용자를 소외시키고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셋업과 사용법을 가지는 등 일정 수준 이상의 복잡성을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내 밥벌이를 지속하기에 '알맞다'.

오늘은 테스트 패턴 프로그래밍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대단한 고급 기술이라는 평가를 들었는데, 밥 먹듯이 하던 것이라서 그게 내 아르바이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현실적으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는 없고 주변에서 그걸 할만한 사람을 알아보려니 정말 '고급'기술인 것 같아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참 골 때렸지만, 그런 시시껄렁한 '고급기술'로 누군가는 연봉 20만불짜리 밥벌이를 하고 산다. 난 많이 바라지도 않고 80 퍼센트 디스카운트 해서 연봉 6만 수준에서 맞춰줄 수 있다. 음... 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참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안타까워서.

스티븐 레비의 글에 나오는(그도 맥으로 컬럼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니컬러스 카의 주장은 옳지만 밥벌이에 열중하는 몇몇 사람들을 화나게 해서 그에게 이득이 돌아갈 것은 없어 보인다. 카의 비관적인 주장을 한담처럼 날려버린 것은 레비가 여전히 현명하다는 증거다. :P 그런데 RFID는 단가 문제지 기술 문제가 아니다. 아참, 은평구립도서관에서는 소장도서에 RFID를 사용하고 있다. RFID는 냉장고를 인텔리전트하게 작동시킬 수 있고 마케팅에 혁명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sf 한 권 쓸만한 분량이 나온다). 그래서 꿈의 기술이고, 일상의 혁명이다. 검색기술은... 머리 아프니까 관두자. 여전히 레비는 여늬 과학 기자나 테크 리포터와 달리 포인트 하나는 제대로 잡았다. 비즈니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는 적당히 무시하고. <-- 이히힛. 내가 이런 말을 다 해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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