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에 해당되는 글 569건

  1. 2003.11.27 plastic beer 6
  2. 2003.11.25 영혼의 무게 3
  3. 2003.11.22 aco 3
  4. 2003.11.20 vamos
  5. 2003.11.19 time to let the night go by... 2
  6. 2003.11.14 euler path 3
  7. 2003.11.12 lambrequin 6
  8. 2003.11.07 for your present course can only end in sorrow... 5
  9. 2003.11.04 million roses 7
  10. 2003.11.01 bloody hot thick soup 11
  11. 2003.10.30 wiki 3
  12. 2003.10.27 기생충 2
  13. 2003.10.25 can you ride? 3
  14. 2003.10.25 다윈 이후 3
  15. 2003.10.24 tailoring 2
  16. 2003.10.23 like him as a men 2
  17. 2003.10.21 hydria 5
  18. 2003.10.18 한가한 하루 4
  19. 2003.10.17 remoteness 8
  20. 2003.10.16 냉정과 열정사이 4
  21. 2003.10.15 파키스탄 3
  22. 2003.10.14 고집 2
  23. 2003.10.12 흠...
  24. 2003.10.11 BOTY 2002 2
  25. 2003.10.10 보름달
  26. 2003.10.09 famous rendering subject 2
  27. 2003.10.02 SD 3
  28. 2003.09.30 job 3
  29. 2003.09.25 민속 바위 메들리(44:23) 5
  30. 2003.09.24 임베디드 팡타그뤼엘 6

plastic beer

잡기 2003. 11. 27. 02:59
11월 3일엔 민방위 훈련을 안 나갔다. 바빠서 날짜가 지나간 줄 모르고 있었다. 깜빡 잊고 동사무소에 재교육 신청하는 것도 잊었다. 그게 지금 기억났다. 어떻게 되겠지.

아침 8시에 주인집 아줌마가 깨웠다. 잠든 것은 6시 무렵이었다. 11시에 전화 세 통이 왔다. 늦었다. 벌떡 일어났다. 백화점에서 도시락을 사들고 기차에 올랐다.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았다. 졸립고 피곤하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돋은 채 뇌가 반쯤 뜯어먹힌 좀비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마음을 졸이고 있던 임베디드 보드 프로토타입은 전원을 인가하자 별 일 안 생겼다 -- 회로는 죽은 척 하고 있었다. 한숨 한 번 쉬고 인공호흡을 시작하자. 회로도를 펼치고 미심쩍은 부분을 살폈다. vhdl 컨버젼을 못한다고 cpld 프로그래밍을 안 해놨네? 가만있자... 3.3v 레귤레이터 핀 배열이 뒤집혀 있었다. max232의 in, out이 바뀌어 있었다. usb측 분압 저항값 선정을 잘못해 놓았다. 그건 디폴트 하이 시그널이 들어갔어야 했다. a0에 풀업을 빼먹었다. 어? a0가 어디간거야? 하이z 상태인 핀들도 눈에 띄었다. 회로 디자인이 엉망진창이다.

작동은 시켜야겠기에 회로도를 보고 고칠 곳들을 알려줬다. 납땜질에서 손 뗀지 어언 4년이 넘어간다 -- 내 갸날픈 손가락에서 단백질이 타들어가는 고소한 냄새를 맡아본 지도 오래되었다. 씁쓸하다. 회로 설계에서 손을 뗀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회로를 고치고 다시 전원을 넣었다. 리눅스가 부팅하고 be bug free 라는 message of the day가 떴다. 오래 전에 집어넣은 메시지였다. 커서가 깜빡였다. 상당히 신기하게 쳐다 보았다. 이게 왜 작동할까 하면서. 2-3개월 전에 뭘 했는지 통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뭔가 했으니까 이게 작동하겠지.

무간도, 무간도2를 봤다. 시작하자 마자 한 친구가 죽을 꺼라고 생각했고 끝에 가니 예상이 맞았다. 시간 때우기 좋은 영화였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영화 만드는 이 친구들은 한국의 아침 드라마를 한 번쯤은 봐야 할 것 같다. 2편의 대부분을 예측해서(다음 장면에는 쟤가 죽을꺼야, 저 친구는 지금 잘못하고 있어 배신해야지 식으로) 같이 보던 선배는 좀 김이 샌 모양이다. 비디오 짬밥이 얼만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무간도 시리즈 같은 단순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서적으로는 맞지만, 졸립다. 스토리의 정합성과 내적 완결성을 견고히 유지하면서 시청자를 지겹게 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하드보일드나 느와르나... 사나이들의 신파다. 별 갖잖은 것으로 눈물을 찔찔 흘리거나 여러 가지 변명을 갖다붙여 한의 정서를 가진다던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속성인 양 시청자들에게 공범의식을 뒤집어 씌웠다. 잘 나가던 카우보이 비밥도 그렇게 망가졌다. 그건 아닌데 싶었다. 그래도 무간도, 무간도2에서 건질만한 장면은 있었다. 감독 이름이 궁금했다. 어쩌면 내가 정신차리고 제대로 봤더라면 볼만한 것들이 꽤 많지 않았을까? 엘리베이터 천정에 총알 구멍이 뚫리면서 내려가는 장면이나 여자가 차에 치여 죽는 장면 같은 것 -- 이 장면에서 카메라가 지나치게 오래 머물러 있어서 감독의 악취미라고 폄하했다.

아. 사이먼 싱의 코드북을 잊고 있었군. 오래토록 기다린 보람이 있다.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을 읽고 왠지 불편했는데 (별 영양가가 없어서) 책 읽고 한동안 속이 시원했다. 바빠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와 함께 올해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으로 권해주고 싶지만 주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 멸종해 버렸다. 권해주고 싶어도 권해줄 대상이 없어진 셈인가? 나름대로 나쁘지 않군. 책 내용이 어떻다느니 구질구질하게 설명하는 블로그가 아닌 바에야, 읽을만한 책이지 한 마디면 족하지 않을까? 웹에다 뭔가 감상평을 구질구질하게 올리는 것은 점점 하기... 싫어졌다.

용산에 갔다.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정작 산 것들은 2000원 짜리 세정제와 9000원 짜리 떨이로 파는 로지텍 광마우스였다. 사러 갔던 메모리는 8만원을 주고 세금계산서 대신 거래명세서를 받아왔다. 바보같으니라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 dvd 다섯장을 3만원에 팔고 있었다. 2만원 정도면 살만할 듯 싶었는데... 얌전히 내려 놓았다. 그나저나 듄 tv 시리즈는 통 보이질 않는군.

집에서 선배와 함께 1.6리터 짜리 PET 병에 들은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PET병에 담는 것은 1994년에 우리가 술 먹다가 맥주 회사에 응모했던 아이디어였다. 맥주 회사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상품이라고 맥주 한 짝을 보내줬고 감사히 잘 받아먹었다. 얼마나 술을 퍼마셔댔는지 그 당시 시냅스 접합은 몽땅 끊어진 상태지만 억울했던 사연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하하하.

모빌폰은 전화를 안 받기도 하거니와 요즘은 전화가 잘 걸리지도 않았다. 기계라서인지 세상사에 무감하고 냉담해진 것이다. 시계로 잘 쓰고 있다. 내 모빌폰은 테트리스도 가능했지만, 이제 슬슬 갈아치울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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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게

잡기 2003. 11. 25. 01:37
죽기 직전의 인간을 데려와 어떤 저울로 정밀 측정해 보니 죽은 다음 근소하게 무게가 줄어 들었다고 하는, 아주 오래전에 읽은 글이 생각났다. 진위 여부를 떠나 영혼의 무게가 지극히 가볍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거운 육신이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동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하늘로 날아올라 갈 수 있는 영혼의 가벼움이 말이야.

동숭로에서 한 꼬치에 250원 하는 오뎅을 먹고 입맛을 버렸다. 오뎅은 얼마든지 맛있어 질 수 있었다. 한 동안은 오뎅을 입에 대지도 못할 것 같다. 그동안 서울에서 먹은 것은 미지근한 구정물에 담궈놓은 채 탱탱 불어터진 것들이었다. 일요일 오후에는 시내에서 떨어진 어떤 전원 주택에 가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 돼지 목살이 이렇게 맛있는 줄은 몰랐다. 일곱 병쯤 소주를 마셨고 해가 졌다. 닭처럼 졸았다. 취하진 않았지만 만사가 귀찮고 피곤해서 파리가 입에 들어가도 무감할 지경이었다.

밤 늦게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였다. 택시를 잡았다. 시내는 텅텅 비어 있었다. 매번 지나가던 코스로 가지 않고 운전사에게 부탁해 광화문을 거쳐 구기터널로 가자고 말했다. 막히지 않겠죠? 택시 기사는 대시보드의 조그만 디지탈 시계를 골똘히 보면서 2분... 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황급히 대꾸했다. 안 막혀요. 좀 달릴까요? 힘껏 달려보세요. 차가 달렸다. 속도계를 흘낏 쳐다보니 120km였다. 시내는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 있었고 도로 중앙으로 미친듯이 택시들이 내달았다. 마치 자동차 게임같았다. 판문점에서 별다른 스릴을 느껴보지 못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상품으로 팔만한 훌륭한 서비스였다. 세상에 어느 도시에서 도심 한 복판을 120km로 달리며 레이스를 벌이는 스릴을 맛볼 수 있을까. 운전수가 말했다. 어제보다 3분 빨리 왔어요. 상쾌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두 통의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왜 생일 축하같은 것을 받거나, 하고 싶지 않은가 장황하게 설명하면 돌아오는 답변이란 것들이 이런 식이었다: 왜 그렇게 잘난 척을 하지? 가진 것이라고는 고작 불알 두 쪽 밖에 없으면서. 입 다물자. 사실이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거리를 걸었다. 타인을 즐겁게 하거나 기쁨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외계인이다. 라고 말했는데 누군지 잊어버렸다. 장 폴 사르트르? 버나드 쇼? 하여튼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신들 전부 외계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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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

잡기 2003. 11. 22. 01:50
머리를 깎으러 갔다. 머리숱이 많아서 늘 고민이다. 맞은편 거울을 통해 먼저 머리를 깎은 친구가 히히 웃으며 뭐라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나도 히히히 웃었다. 엄마가 그를 데려왔다. 삼십은 되어 보이는 그는 정신박약인 듯 싶었다. 레서, 오드, 아웃사이더는 날 보면 왠일인지 웃어주곤 했었다. 애들은 웃지 않았다. 여성은 표현을 자제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사람들과 별로 웃을 일이 없었다. 그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보다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었다. 최소한 푸어, 레서, 오드, 디프레스드, 호프레스, 강아지들은 내가 정상인보다 견디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 같다. 나는 푸어, 레서, 오드, 디프레스드, 호프레스에다가 스켑티컬, 타이어드, 페시미스틱, 컨템플레이티드, 릴럭탄트 등등의 특징이 더해져 있었다. 십년이 지나면 지금 상태에서 루즌, 슬러기시, 글루미, 리플렉티브 등등이 추가되어 정서적으로 더 바랄 나위 없이 완벽해질 전망이다.

하늘은 썩 맑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원치 않는 바람 머리를 하고 거리를 이리저리 헤맸다. 식당을 찾고 있었다. 얼핏 지하철역 입구 표지판을 보고 올리브 파스타를 찾아갔다.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프랑스 여자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9500원 짜리 알프레도 스파게티를 천천히 먹었다. 누가 봐도 나는 음식을 맛없게 먹는 족속에 속했다. 맛이 있다고 해도 죽상을 하고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골똘히 했다. 식사 시간 외에는 '나'에 관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나'에 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음식맛은 형편없어졌다. 고개를 들고 창 밖으로 골목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벌떡 일어섰다. 샤베트를 거절하고 지불한 다음 황급히 나왔다. 입 안이 텁텁했다. 포도주 한 잔 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블로그를 작성했다.

사무실에서 하릴없는 일들로 시간을 보내고 열 시까지 64비트 타입과 연산자들을 컴파일러/인터프리터에 추가했다. win32에 unsigned __int64 형이 없어서 시시한 트릭을 사용했다. 리눅스에서는 unsigned long long 타입이 가능했다. 128비트도 필요하지만 long long very long형은 없는 듯 싶었다. 항상 비표준의 무답지를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win32에는 strtoull 함수조차 없었다. (vc6에만 없는걸까?) 어쨌거나 이제는 네이티브 코드로 64비트 you와 8비트 i 사이에 i = you & i 연산이 가능하다. 언제나 you에게 감사한다. 나를 explicit하게 64비트로 만들어줘서. 생각난 김에 예스가 천사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you and i를 감상해 보자. Yes, Close to the Edge, you and i(10:09)

A man conceived a moment's answers to the dream.
Staying the flowers daily, sensing all the themes.
As a foundation left to create the spiral aim,
A movement regained and regarded both the same,
All complete in the sight of seeds of life with you.
Changed only for a sight of sound, the space agreed.
Between the picture of time behind the face of need,
Coming quickly to terms of all expression laid, <-- 64bit가 가능해졌다는 뜻.
Emotion revealed as the ocean maid,
All complete in the sight of seeds of life with you. <-- 64bit가 가능해서 인생이 그만큼 완전해 졌다는 뜻.
...
sign at the time float your climb.
Watching the world, watching all of the world,
Watching us go by. <-- 64bit의 새로운 세계로 의기양양하게 나아가자는 뜻.

And you and I climb over the sea to the valley,
And you and I reached out for reasons to call. <-- 64비트 you and i는 살아가아할, 서로에게 기댈, 이유가 생겼다는 뜻.

you가 64bit wide expression으로 웃지 못한다면 내가 정신박약아처럼 웃어줄께. 난 그거 하나만큼은 기차게 잘해.

blob (binary large object) 타입의 일부 구현을 구상했다. 젊은 처녀 따먹기 같은, 예전이라면 흥미진진했을 게임이 요새는 도저히 흥미가 안 생겼다. 늙은건가? 할 일 없고 심심할 땐 머리속에서 스펙을 만들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그렇게 해서 즐거이 자동 삽질 모드로 들어섰다. 왠지 모르겠지만 눈을 감으면 늘 지평선이 보였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면 정신병자처럼 실룩실룩 웃고는 했다.

Ant Colony Optimization는 GA의 적자인 것 같은데, 유전자의 교배를 룰렛 형태로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np-complete 중에 하나인 tsp에서 aco가 보이는 성능에 뜨악했다. 페로몬에 의한 경험적 패쓰의 확률적 '강화'가 어쩐지 nn 모델을 닮았다. 시간 나면 차분히 뒤져볼까? 하지만 어디 써먹지? 어디 써먹을까. 어디에 써먹을지부터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다. 어쩌면 게임의 mob 디자인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aco 알고리즘을 적용한 경찰이 쫓기고 있는 주인공을 고양이 쥐 몰듯이 귀신같이 잡아 족친다던가... 학습을 통해 우주전에서 연승가도를 달리며 희희낙낙하는 주인공 우주선을 한 치의 자비심이나 동정 없이 때려 부숴 의기소침하게 만든다거나... 그나저나 집에 설치해 놓은 개미컴벳 때문에 개미가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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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mos

잡기 2003. 11. 20. 04:26
기사: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난 뭐냐/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기계의 도움을 받아 '난 뭐냐/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ihong님의 의견에는 동감이지만 도구를 통한 감각의 확장이 의미하는 것은 오감 이상을 체험하자는 것이지 전적으로 기계에 의존하여 기계가 제공하는 제한된 감각을 수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 흄, 칸트 등 구닥다리들은 인용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하이데거를 인용하는 것을 잊었다. 현실은 거기서 선호, 선택의 문제가 되겠고. 물리적인 현실을 '선호'하거나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온갖 바보스러운 철학에도 불구하고 행복 추구를 결코 단념한 적이 없었다. 그점이 중요하다. 개중에는 어떻게든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쓴다?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가 거의 비슷한 주제(현생 인류의 지지부진함)를 다루고 있었다. 저자는 분자생물학을 통해 신생인류의 인위적인 발생을 추진하지만, 방법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런 말투: 서구가 한창 자멸해 가고 있는 마당에, 그들에게 가능성이 있을 리 없었다. 적어도 십 년 전부터 우엘벡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호머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가망이 없다고. 빌어먹을 원숭이 자손들은 절대로 전쟁을 중단하지 않을 꺼라고. 자기 얼굴이나 후려갈길 것이지. 그리고 어제 전쟁반대를 다짐하며 피켓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어떤 원숭이들 때문에 희망을 가진 적은 없었다고. 우엘벡은 저번주에 읽은 황야의 이리가 추구한 방식을 비웃었다. 뭐 어차피 헤세도 자기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지 후기소설에서는 황야의 이리에서처럼 개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지적은 적확했다. 독일인들은 유머감각이 적어서 인생을 퍽이나 고달프게 살고 있다는 점. 자기들이 반쯤은 이리를 동경하고 있다는 점. 자, 헤세와 우엘벡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헤세가 히피와 비트족이 판을 치던 시대에 히피들이 읽은 어떤 종류의 이데아라면 우엘벡은 적어도 자기가 쓴 소설의 절반 이상을 히피들을 희롱하고 욕보이는데 소비했다.

하루 1-2시간 짜리 명상 요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우스워 보였다. 하시시로 헤롱거리면서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도 상당히 우스웠다. 베트남 중이나 달라이 라마는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체험이 아닌 것으로부터 시시껄렁한 자기만족을 얻었다. 하여튼 정신의 가치에 대해 떠드는 놈치고 침대에 자빠져 누워 도대체 인류가 왜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최소한 내가 만난 히피들은 좀 얘기가 진전되면 횡설수설하기 바빴다. 그들을 그들의 생각과 어리석은 감정 때문에 만난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래도 아무 생각없이 머리를 비우고 다니는 여행자들 보다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생각도 좀 해본 족속들이었다.

직장 생활도 안하고,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끔 인간과 세계를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이럴진대, 나머지 사람들은 그 점에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을까? 없다. 내 절망적인 추산에 따르면 인류의 90% 이상은 아무 생각없이 살아 있다.

오늘 ytn 티비 프로그램 캠페인을 보니, 5분 웃는 것이 5시간 웃는 것과 등가하단다. 그래서 어떤 초등학교 애들이 정신병자처럼 웃는 모습을 10여초 보여줬다. 참 웃기는 캠페인이었다. 웃음이 5시간 운동한 것과 등가하다느니 운운하려면 섹스 한 번 하면 천미터를 전력질주한 것과 등가하다는 얘기도 해야지. 그래, 열나게 웃고, 섹스 열나게 하고, 건강식품 존나게 쳐먹어대면서 건강에 관해 신경증환자처럼 바르르 떨며 히스테리를 부려야 트랜드에 맞지 않을까? 그렇다. 다리가 찢어지더라도 트랜드를 쫓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니들이나 많이 해라. tv 광고에나 나오는 있지도 않은 욕망을 쫓고 허영심에 젖어 개같은 문화소비자인 채로 자신이 없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하면서 같은 레인을 타고 동 시대를 주행하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만끽해라.

나츠시마 나나코가 나오는 드라마, 얼음의 세계를 보면서 코드 리파이닝을 하고 있다. 나나코는 여전히 교사질을 하고 있었다. 자막을 보다가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허걱 하고 말았다. 어째서 50살은 먹은 아줌마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오는걸까. 그것도 10년 전에나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일본 드라마에는 항상 음악이 흘러 나왔다. 시작부터 끝까지 음악은 거의 멎지 않고 흘러나왔다. '얼음같이 비정한 세계에서 나는 그것을 찾았다. 확실히 찾았다' 라고 중얼거린다. 극 중반이니까 찾을 때도 된 것이다.

기다리던 S3C2440칩이 나온 듯. 매스 프로덕션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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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na Carta, Seasons, Prologue - Seasons (22:14, 10MB)



앨범을 제대로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다가, 내가 듣고 좋으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했다.

일요일에는 개미컴뱃을 들고 하릴없이 거리를 왔다갔다 했다. 전날 먹은 술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개미컴뱃은 여왕개미를 노렸다. 개미는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자기 둥지로 물고 가 영양교환을 한다. 그러다보면 여왕개미 역시 독극물에 중독되어 죽게 되는 원리라고 적혀 있었다. 여왕개미가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기뻐서 이히히 웃고 말았다. 방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에 달라붙어 있는 개미들은 참을만 했다. 하지만 침대까지 기어 올라와 등짝을 살짝 깨물고 지나가는 일개미들에게는 교훈이 필요했다. 먹이 대 주고,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해줬으면 그 동안 잘해 준 거지.

2003.2.18, 마하1.0에 도전했던 국산 비행기에 대한 얘기가 TV에 나왔다. 똥 마려운 걸 참고 끝까지 봤다. 기체는 그렇다치고, 얼핏 본 것으로는... 국산화라고 보기가 좀 민망하지 않나 싶었다.

랜딩 기어 제작을 맡긴 어떤 프랑스 업체가 납기 내에 그것을 납품하지 못하면 사장을 비롯한 기술진이 목을 매달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에피소드와, 그 회사 사장의 입으로 한국인들 독하다는 류의 얘기가 나왔다. 글쎄다. 그런 에피소드에 감동할 이유가 없다. 일상적으로 겪는 종류의 일이니까. 목 매달기. 자막이 올라가면서 들국화의 행진이 흘러 나왔다. 프로그램을 본 소감: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초음속을 12번째로 돌파했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이 항상 세계 12위 부근을 차지한다는 점이 희안하게 여겨졌다.

간만에 항공 드라마를 보며 나날이 고갈되어 가는 비타민을 보충했다. 거진 국민스타 같아 뵈는 기무라 다쿠야가 나오는 구뜨럭(good luck). 일본에서는 히트를 쳤다던데...

구뜨럭에서 빠가 파일롯역을 훌륭히 소화해 낸 기무라상은 어째 하는 행동이 참 한국인스러웠다.스토리 구조는 단순했다. 별다른 역경과 고난이 없는 탓에 주인공 다리를 부러뜨린다. 항공기 조정이 뭐랄까... 좀 쉬워 보였다. 왠간한 것들은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일테고 이착륙만 잘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스튜어디스는 별 관심이 안 가지만(게다가 ANA의 스튜어디스들은 별로란 말이야!), 특히 눈에 띄었던 캐릭터는 자기 부모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후 다시는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그 결심으로 항공기 정비사가 된 못생겼지만 귀여운 아가씨였다. 부모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기술자로 훌륭하게 자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연인 사이였다가 모종의 사고로 바보가 된 기장과 스튜어디스(CA) 사이의 대화는 참 마음이 아팠다. '여행이라도 갈까? 파일롯과 CA가 아니라 여객기의 승객으로서. 어디가 좋을까?' 그렇게 말하자 여자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한다. '파리가 어떨까?' '난 나흘 동안 파리를 갔어. 그 보다는 런던이 어때?' '일주일 내내 런던을 오락가락 했는걸. 스톡홀름은 어떨까. 지금 가면 너무 음침한가?' 그들은 고민했다. '글쎄 어디가 좋을까...' 20년 동안 이곳 저곳 날아 다니느라 그들은 갈 데가 없었다.

난 어디로 가야하나. 훗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이름모를 식당에 들어가 초밥 몇 접시에 사케를 한 잔 곁들여 먹고 싶다. 바이칼에서 바로 구운 청어에 보드카를 한 잔 하고 싶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지프를 몰고 다니며 캠핑을 하고 싶다. 캥거루가 쪼개보면 허리와 고개를 푹 숙이고 맞짱 뜰 의사가 없음을 명백하게 밝힐 것이다. 언젠가는 실크로드를 거쳐 어떤 여행기에 묘사된 커다란 나무를 보고 싶고, 중간에서 방향을 틀어 동유럽으로 꺽어져 독한 과실주를 마시고 아침에는 시장통에서 걔네들 해장국을 먹고 싶다. 오오츠크 해를 따라 올라가다가 베링 해협 근처에서 브랜디 한 잔하며 극광을 보고 싶다. 필리핀의 이름 모를 섬에 머물며 일주일쯤 빈둥거리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다. 몰디브는 어떨까? 생각보다 별로 가보고 싶은 곳이 없었다. 서바이빙 게임은 피곤하기만 하고. 굶주림, 추위, 가난 따위. 따뜻한 방에 누워 놀고 싶다. 그 뿐이다.

짬을 내서 코드를 작성하고 대체 어떤 키워드로 내 홈페이지를 찾아오나 살펴 보았다. 검색 키워드 리스트: 남자들 주사실에서 간호사가 엉덩이에 주사를 놓기, 페트레이버설계도, 그것이 알고 싶다-10대 동성애의 두얼굴, 태국 섹스관광 여행기,개인누드올리기, 프랑스 부르르 박물관, 명품족이 나타난 시기, 외계 지성 의사소통, 토마토 요술램비, 여자가 옷을벗은체로 그림보기, 우인(愚人: 중국 허수아비 인형)의 저주, 슈퍼맨은 왜 팬티를 밖에다 입을까, 남성 고추 삼각팬티, 달 탐사할때 주의 할 점, 좆데이, 북한의 100원짜리 돈에는 누구의 얼굴이 찍여 있을까, 회초리 엉덩이 노예, 스웨덴보르그, 가장빠른우주선, 죽은 토끼에게 예술을 얘기하기

이상한 것들이 많은데?

http://soo-jin.com 얼마전에 이 사람은 중남미 여행을 떠났다. 가끔 들락거리며 사진을 구경했다. 저 자리에 서성이고 있었지. 하면서. 사진을 얼마 안 찍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하 6층에서 지상까지 올라오면서 anger management라는 영화에서 나왔던 질문을 생각해 봤다;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보세요. 자기가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나는 사람입니다.

'당신처럼 예쁜 분에게 유혹을 받는다면 보통 소년이라면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겠습니까?' 마녀의 조건이란 드라마에서 형사가 26살 먹은 여자를 잡아놓고 말했다. 미성년자 유괴. 그녀는 17살 먹은 자기 제자와 사랑에 빠졌고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 별볼일 없는 드라마였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것, 나츠시마 나나코 출연 드라마를 끝장내기로 했다. 그녀는 몸매가 영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냉정한 판단력을 잃을 일은 없어 보였다.

4시다.
go to sleep little child, time to let the night go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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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ler path

잡기 2003. 11. 14. 04:52
Magna Carta, Seasons, Elizabethan (2:38)

도서관 소식지를 읽어보니 은평구립 도서관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4개월동안 108권을 먹어 치웠다. 하루에 평균 한 권 정도 읽는 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삼국지, 아리랑, 드래곤 라자, 태백산맥, 수호지를 시리즈로 읽거나(도서관 탑 5 대여서적 리스트) 하루에 적어도 2시간 이상은 별 일 없어야 그렇게 읽을 수 있는데. 그것도 매일. 어쩌면 나처럼 출퇴근 길에 책에 코를 쳐박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난 뭐냐. 쪽팔리게. 일주일에 두 권 읽기 바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성질만 더러워지고. 하루에 세 권 정도씩 읽어치운 거라고는 불과 얼음의 노래 밖에 없었다. 무협지처럼 팍팍 잘 넘어가던데. 생각해보니 그 책 3부는 언제나 나올려나. 어딘가에서 몇몇 사람들이 3부를 번역하고 있다는 얘긴 들었는데 귀찮아서 찾아보질 않았으니.

'황야의 이리'는 어렸을 적에 본 책이었다. 기억이 안 나서 마음 아팠다.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타입의 소설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RPN 스택을 안 쓰고 재귀 호출만 사용해서 expression evaluator를 만들었다. 한 시간만에 코딩했다. 사용 중인 컴파일러/인터프리터의 버그를 두 개쯤 때려 잡았고(소스가 복잡해서 세 시간 가량) 남는 시간에 wdm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만들었다. 2주 동안 regular expression library와 xml parser, 범용 해시 테이블, 압축 알고리즘 따위를 여기저기서 줏어와 만들었다. 별 지랄 다 했다.

그 와중에도 영화와 드라마를 엄청나게 많이 봤다. 남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잡지를 해치우고 책을 읽고 밥을 해 먹고(어제는 '쇼타의 초밥'에 자극받아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물에 빠진 귀신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만날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앞으로도 줄곳 이랬으면 좋겠다.

the one, tar가 적어서인지 맛이 깔끔한 걸. 그나저나 이건 매트릭스 담배냐? 아니다. 타르 1.0mg, 니코틴 0.1mg의 담배. 그럼 only one이라고 할 것이지.

매트릭스 3부를 보느니 '옹박'을 보는게 백배 낫지. 시시한 악당짓을 하고 단지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얻어터지는 악당들이 가엾었다. 저건 연기가 아니라 쌩으로 두들겨 맞는건데? 어휴... 진짜 아프겠다.

비가 그친 다음의 북한산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골목길도 그렇고. 천문대 지붕이 얼핏 보였다. 낙엽이 다 떨어진 창밖 나무에는 홍시가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저것들이 다 떨어지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텐데. 맘 독하게 먹고 22분 짜리 종합선물세트 seasons를 틀어 버릴까? 다음 기회에. and the waves steal the footprints of the summer from the sand beneath the silver moon. the north wind blows, the fading leaves again.

정신나간 놈처럼 히히 웃으면서 일하다 보니 또 다섯 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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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brequin

잡기 2003. 11. 12. 02:25
블로그도 안 써 버릇 하니까 할 말이 없군. 뭘로 킥스타트를 할까? 음... 내가 만지는 것은 빛이 되고 내가 버리는 것은 모두 숯이 되었다. 틀림없이 나는 불꽃이다. -- 니체.

화재다, 산불이다, 재앙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파장 분위기인 시장에서 오징어를 한 마리 샀다. 할멈은 천오백원인데... 하고 말을 흐렸다. 왜요? 왜긴 뭐가 왜야. 천오백원이라니깐. 살꺼여? 퉁명스러운 할멈을 쳐다보고 대꾸했다. 천오백원이 뭐가 어쨌다는 거요? 할 말이 없는지 낄낄낄 웃음으로 때운다. 오징어 두루치기를 만들고 일부는 고추장을 엷게 풀어 국을 끓였다. 두루치기는 훌륭한 안주감이 되었다.

블랙 아이스를 보고 나서는 싱싱한 생선을 사다가 옥상에서 석쇠에 구워 먹을 궁리를 해 봤다. 생선과 스페인식 쌀요리, 와인이었던가? 생선과 스페인식 쌀요리와 와인, 그리고 어젯밤에 머리가 날아간 시체에 관한 생각할 꺼리 정도. 여자는 뺐으면 좋겠고.

멕시코 넥타이에 목이 졸려 죽은 시체 생각을 하다 보니까... 요리에 관한 일본 만화, 드라마를 대체 얼마나 본 것일까. 일본 드라마에서 배울 점은 사람이 있고 기예를 존중한다는 점.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탓일까. 멈칫거리고 주저하고 밥 먹다가 말고 오이시 라고 말하며 흐느끼는 장면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일본 드라마를 보노라면 그것도 적잖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나 같았으면 일찌감치 깽판을 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야성의 부름을 좇아 콘크리트 숲으로 어기적어기적 사라졌을 것만 같다.

하루에 두 번 한강을 건넜다. 한강의 모습이 이렇게나 다채롭구나 싶었다. 그것들을 연출한 주역은 바람이었다. 어느 날은 바람이 없었고 어느 날은 실바람이 불었다. 강물에 새겨지는 잔주름의 패턴이 아름다웠다. 덕택에 밤마다 많은 꿈을 꾸었고 혈관을 따라 흐르는 핏물은 주기적인 맥동에 따라 소박한 리듬을 만들었다.

비가 내리자 낙엽이 앉았다. 황야의 이리를 읽기 시작. 블랙 아이스에서 필립 말로우가 나오는 롱 굿바이와 자신을 이리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해리 할러가 나오는 황야의 이리, 이렇게 두 권의 책이 소개 되었다. 해세의 다른 책은 읽었으면서 황야의 이리를 여태까지 안 읽었다. 그렇게 따지니 무한정 읽기를 보류한 몇몇 오래된 책들이 있었다. 시간이 들더라도 언젠가는 마무리를 지어야 하겠지.

그래. 헤세. 쓰레기 같은 서문을 재빨리 건너뛰었다. '나는 내 나름의 거칠고 소심한 생활 방식대로, 숫처녀를 유혹해 슬그머니 목을 조르듯이 그 날도 그렇게 죽여버렸다' 해리 할러와 나는 생활 방식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다. 굳이 말하자면 여러 좋지 않은 사정 때문에 절망하거나, 이 세계에 환멸을 느낄 수가 없었다 -- 환멸이 단맛을 이끌고 증폭해 주는 소금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금요일 밤에는 프로그램을 짜다 말고 사무실에서 뛰쳐 나왔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나와서 며칠 전에 얼핏 본 블로그 어워드 모임에 갔다.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거리를 가로 질렀다. 홀로비트 아저씨를 만났고 여전하구나 싶었다. 술 얘기는 삼갔다. 술 한 잔 안하고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비를 맞았다. 생각난 김에 sf 컨벤션 준비 과정 중에 찍은 비디오를 보았다. 컨벤션 하기 싫어서 관두고 싶은 티가 내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꾹 참고 일을 거들었다. 마지막이니까.

토요일에는 매트릭스 2를 다시 보고, 매트릭스 3을 보았다. 오라클 역을 맡았던 배우는 당뇨병으로 죽어 3편에서 다른 배우로 바뀌었다는 얘길 들었는데, 2편에서와 마찬가지로 3편에서도 여전히 사탕을 좋아했다. 그러니 죽었지 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만진 것은 타올랐고 내가 버린 것은 재였다. 여섯 갑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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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atu, Hope, So Said the Lighthouse Keeper(5:51)

하드보일드는 전날의 하드보일드를 전범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전날의 드러운 감상주의까지 고대로 재현한다. 그래도 깨알같은 활자체의, 마이클 코넬리가 지은 블랙 아이스는 괜찮았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발견했다.' 번역솜씨가 좋은걸. 어, 이 양반, 크리시 번역한 사람이구나.

삼성 컴퓨터는 수백명의 박사급 인재들이 모여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때로는 의아할 정도로 거지 같아 뵈는 컴퓨터를 만들어 내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있을 줄로 안다. 삼성 컴퓨터의 장점은 이를테면 a/s가 확실하다는 것인데 노트북의 배터리가 고장난 것만으로도 새 것으로 교체해주기도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문제가 좀 있긴 했다. 예를 들면 후지쯔 노트북은 사고 나서 3년 동안 온갖 비바람에 시달려도 a/s껀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반면, 주변에 삼성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기분전환도 할겸 자주 '새 것'으로 교체했다.

삼성 노트북을 선전하는 띨빵하게 생긴 로봇 캥거루, '센스캥'은 워낙 바보라서 삼성 노트북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진하고 착하게 생겨 먹은 커다란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 얘기가 아니었지.

칫솔질 하면서 웹 브라우징을 하고 화장실에서 메시징을 하며 약속을 잡고 국 끓이면서 컴파일을 하는 사람은 분명 전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요즘 노트북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 코딩을 하거나 디버깅을 하면서 걸어 다니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어떤 녀석이 들고 있던 노트북을 센스로 착각했고, 심지어는 내가 센스깽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면 안 되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다.

template inline c_element*
hash_table::_get (const c_key& that_key, bool cf)
{
return ((idx = get_index(that_key, cf)) < 0) ? null : &bucket[idx];
}
extern "C" {
namespace hash {
typedef hash_table hash_type;
inline void* get(HND h, char *key) { return *((void**)((hash_type*)h)->_get(key, true)); }
};
}

소스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hash::get()함수는 두번째 인수로 진실함(true)을 사용하나, 그 결과값으로 공허함(void)을 얻는다. 그다지 아름답진 않지만 리얼리티 만큼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알레고리 프로그래밍, 에피파니 프로그래밍, 데시스 프로그래밍, 소울 프로그래밍. 하지만 나는 프로그래밍을 못 한다. 15년 삽질의 중간평가는진실 그대로 공허하고 처참했다.

#define IDX(h) ((((h ^ (h << 4)) >> (3*8 - HLOG)) + h*3) & (HSIZE - 1))

렘펠, 지브, 허프만의 비손실 압축 알고리즘 구현 중 정말이지 우아하다 싶을 정도로 작은 어떤 소스 코드 중의 한 매크로 정의는 저랬다. 대체 어떻게 해서 저런 해시 함수가 나왔을까 싶어 의문을 품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거기에 이런 주석이 달려 있었다: decompression is not dependent on the hash function. the hashing function might seem strange, just believe me. it works. 이걸 작성한 친구는 시프트를 누르기 귀찮다는 이유 만으로 문장의 첫 글자를 소문자로 시작했다. 그래서 믿을만 했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진실인데, html과 마찬가지로 c/c++ 프로그래밍은 20일이면 누구나 배워서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에 따른 즐비한 변명과 거짓말은 우아하게 개무시하면 된다.

모자익에서 최초의 hypertext를 목격했다. 사실 언제 봤는지 기억도 잘 안났다. 문서에 그래프와 수식을 간단하게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 자체가 경이였다. 지금의 홈페이지는 클릭커블한 링크에 대해 일종의 강박관념을 강요하는 시대다 --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더 나빠질 것이 없기에 기대하는 것도 없다. 하이퍼텍스트는 어디론가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하이퍼'에만 충실할 뿐, '텍스트'나 컨텍스트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표제어 '효리, 드디어 벗다' 밑에 효리가 더워서 점퍼를 벗었다. 라고 씌어 있는 것처럼. 당연히 웹 기획자들의 궤변에 넘어가는 일 따위는 없었지만, 그들의 새로운 직업관과 철학에는 아낌없이 비웃음을 쏟아부었다. 그들의 대가리에 들은 것이라고는 웹이 TV 광고와 얼마나 비슷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인 것 같다.

만삼천원 짜리 작업이 잘된 안심을 사다가 스테이크를 해먹었다. 만들 때 포도주를 너무 많이 부어 고기 먹고 대낮부터 알딸딸했던 기억이 갑자기 났다. 어젯밤에는 히히덕거리면서 헤네시 xo를 감사히 마셨다. 그저 저따위 소스 만드는 단순반복 작업에 머리가 확 돌아버릴 지경이어서 일 하다 말고 뛰쳐나와 술을 마셨다.

7시간 동안 넋이 빠져 괄호를 세다보니 담배를 세 대 밖에 피우지 못했다. 체내 니코틴 고갈로 제대로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울트라 에디터 10.0 이상 버전에서는 소스를 에디트할 때 matching parentheses라는 작고 편리한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괄호 세느라 눈에 힘주던 가난한 시절은 광속으로 멀어져 갔다. 그런데 왜 ctags를 디폴트로 지원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일까.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행복해질텐데. 편지나 쓸까?

맛있는 밥 짓는 법

적당한 양의 물을 붓는다.
한 시간 정도 물에 담가 둔다.
전기밥솥일 경우에는 전기 스위치를 누른다.
뜸을 적당히 들인다.
맛있는 밥이 된다.

선배는 내가 밥을 굶는다고 생각해서 쌀을 사다 주었다. '강화쌀' 4kg 짜리의 포장지 뒷면에 적혀 있는 저런 글은 여러 모로 심금을 울렸다. 인스트럭션의 요점: 적당히 잘하면 맛있는 밥이 된다. 한국에 산다는 것이 이다지도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씨구?
밥 해 놓고 갔네?
오늘은 북어해장국이다.
이걸 먹고 기뻐할 내 얼굴을 떠올리며 신선한 재료를 엄선해 정성껏 칼질해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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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lion roses

잡기 2003. 11. 4. 03:53
소설로 읽는 경제학1, 수요공급 살인 사건을 읽고 있는 중.

95p. '저 여자와 저 여자의 남편은 많은 부부들이 그렇듯이 상호 의존적인 효용함수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사랑을 그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

'사랑뿐 아니라 미움이나 그밖에 온갖 인간적 감정들도 경제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 내가 당신에게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내 효용 내지 행복이 당신의 효용 내지 행복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뜻이지.'

책을 1/4쯤 읽다가 히히 웃었다.

'효용 내지 행복' 이라던가 '밀접하게' 같은 두루뭉실한 표현이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저 코메디를 보니 경제학자들은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경제학자와 기상관측대 요원과의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경제학자가 기상관측대 요원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일기예보'를 해서 연구 보고서나 강연회 따위로 돈을 챙기고 명성도 얻는다는 점? 경제학과 점성술의 유사점이나 경제와 종교의 유사점도 나열해 볼만 할 것이다.

'와일드카드'를 재밌게 봤다. 노래방에서 90점 넘었는데 죽였다. 영화가 끝나자 크레딧을 뒤져 배우 이름을 찾아봤다. 양동근.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친구 같은데. 너구리 같이 잘 한다. 영화에서 마이 페보릿 심수봉의 sf송이 나왔다. 백만송이 장미 (5:23)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영화는 경제학적으로 '번역'이 가능했다. 뻑치기가 노래방에서 만난 아가씨들을 살해한 것은 그들의 경제활동을 방해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그들이 뻑치기를 하는 까닭은 적은 노력을 들여 최대의 효용을 얻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뻑치기를 잡으려고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거는 것일까? 왜냐하면 범인을 잡아 유치장에 가두면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효용(정의 사회 구현, 자기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경찰은 행복해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범인을 때려 잡는다. 월급도 받고, 대인 관계의 폭도 넓히고.

심지어 심수봉의 노랫가사 역시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 경제학자라면 경제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노랫가사만 봐도 명백했다. 목숨을 걸고 사랑을 주고 백만송이 꽃을 피우면 고향행 티켓을 얻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노래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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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y hot thick soup

잡기 2003. 11. 1. 18:17
동네를 헤멨다. 쌀이 떨어져서 밥을 해먹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며칠 전에는 싸고 맛 좋은 순대국밥을 먹었고 또 며칠 전에는 꽤나 보기 드물었던, 깔끔한 갈비탕을 먹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눈도 안 움직이겠지? 음식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슬기 해장국이나 먹으러 가자. 어린 시절 냇가에서 달팽이를 잡았다. 잡은 달팽이를 들고 집에 가면 맛있고 고소한 달팽이 국을 끓여줬다. 펜치로 달팽이 끄트머리를 따고 쪽쪽 맛있게 빨아 먹은 기억이 났다.

요란하게 선전하는 음식점에서 파는 지극히 깔끔하기 짝이 없는 다슬기국의, 몇 마리 안되는 희박한 다슬기의 밀도를 상상하고 마음이 변해 가던 길에서 돌아섰다. 집에 가서 김치찌게를 끓여 먹기로 결심했다. 시장에서 두부 반 모와 돼지고기 약간, 파 따위를 사고 집 근처에서 쌀 한 푸대를 샀다. 그리고 성장기 청소년 음료 '한뼘 더 일팔칠일육팔'을 잡았다. 성장기 청소년 음료 먹고, 간바레.

달팽이는 자웅동체의 생물체다. 민달팽이는 껍데기가 없다. 반면, 다슬기는 자웅이체다. 폐디스토마의 중간 숙주인데 날 것으로 먹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내가 어린 시절에 기억하고 있는 달팽이는 다슬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기다가 또 졌다. 한숨을 쉬다가 정말 그럴까 싶어 다시 검색해 보았다.

다슬기는 우리나라 냇물에 흔한 연체동물입니다.
심산유곡의 깨끗한 냇물에서부터 강, 호수,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강 하구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이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서식합니다. 이름도 많아서 고둥, 민물고둥, 골뱅이, 고디, 소라, 달팽이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다슬기로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고둥은 연체동물 가운데서 나선모양의 껍데기를 가진 3백60여종의 동물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고, 소라는 바다에 사는 고둥류 전부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달팽이는 육지에 사는 연체동물을 말하는 것이고 골뱅이, 고디 등은 고둥의 사투리입니다.

그러냐? 그랬다. 강원도에서는 다슬기를 달팽이라고 불렀고 냇가에 가면 나륵이 많이 달린 놈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동강다슬기 -- '다슬기가 하는 일은 민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것과 강이나 연못, 개울, 호수 등 물 속의 정화작업을 하여 사람들에게 맑은 물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슬기가 하는 일이 민물 고기의 먹이가 되는 거야? 사람들에게 맑은 물을 주면서 봉사하고? 생각이 깊군.

길거리에서는 조심했어야 한다. 지나가는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안 그럼 정강이 곁에서 맴돌며 놀아 달라고 따라오고 달겨드니까. 강아지, 고양이, 그리고 일부 사람, 전부 그런 족속이다. 왜들 그럴까. 저혼자 고독을 즐기면서 재밌는 상상이나 하고 히죽히죽 미친놈처럼 웃게 내버려두지. '사토라레'에서 주변에 자신의 사념파를 뿌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일본어로 된 생각을 알아 먹기 쉽게 드러내 놓고 다니는 젊은이가 등장했다. 가끔은 내 마음이 타인에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계산해 보니 여자 한 명이 적어도 세 마리 이상의 남자를 바보로 만드는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양념을 만들었다. 간장에 마늘 간 것과... 생강, 생강이 없구나. 고춧가루를 넣고 돼지고기를 버무렸다. 김치는 물에 씻어 썰었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았다. 양파를 썰어 넣고 물을 부어 소금으로 간을 맞추며 끓였다. 파와 두부를 넣어 천천히 보글보글 끓였다.

혼자 즐기기에 아까운 상상 -- 행책의 리스트는 영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하지만 머리에 제대로 칩이 박힌 사람은 저런 글은 안 쓴다고 생각했다.

10월 31일, 매년 10월 31일이면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 이란 노래가 흘러 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노래 잘 듣고, 시월 마지막 날에 돈 세탁을 했다.

김치 찌게는 성공작이었다. 존나게 맛있었다.
우두커니 황량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시 잤다.
깨어났다.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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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잡기 2003. 10. 30. 21:51
도서관에서 밥 먹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남자가 낄낄 웃으며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만보니 정신이 나간 사람이었다. 남 일 같지가 않다.

도서관에서 빌린 파인만의 투바는 내가 처음 대출하는 것 같다.

매일 공사하는 소음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겨울이 되어 가면서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고 그래서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따갑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대낮에 일하긴 글른 것 같아 한동안 사무실을 출입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민방위 훈련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보충교육이 나왔다. 김 새는 일로, 조국은 나를 잊지 않았다.

시간나면 TravelWiki를 정리해야지. 새 버전의 GyparkWiki에는 pda로 보기가 있는데, 잘만 활용하면 여행갈 때 TravelWiki를 통째로 떠서 pda에 넣어두고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혹시나 다음에 여행갈 때는 여행계획을 미리 세워두고 그런 방식으로 돌아 다녀야지. Electronics 페이지 추가.

이거야 원. 매번 블로그를 화장실에서 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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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잡기 2003. 10. 27. 11:20
오고가며 '옛날 신문을 읽었다' 라는 책을 읽었다. 64년 한국일보 기사 중에 어떤 소녀의 죽음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배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은 아이를 수술하니 몸 속에 1063마리의 기생충이 살고 있었다. 아이 몸무게의 25%에 달했다.

...

약국에서 종합 기생충약을 하나 사 먹어야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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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you ride?

잡기 2003. 10. 25. 16:07
그러니까. 한국의 젖줄, 미국의 막강한 경쟁력, 기녀집이 맛사지 가게라며 버젓이 길거리에서 영업하는 나라, 돈이 장땡인 나라, 대인, 영웅은 커녕 소인배만 우글거리던 나라, 발꼬랑내와 떡머리가 아주 인상 깊었던 나라, 쭉쭉빵빵이 즐비한 나라, 대 중국은 세계적으로 욕을 먹을 지언정 소수민족을 통합하는 영약한 전략만큼은 가히 예술적이라 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몽골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고 한 시간에 40위엔 하는 '초원에서 말 달리기' 놀이는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고작 한 시간 타고 어떻게 호방한 대륙 기질을 일깨울 수 있을까. 관광용 멘트, 개소리지.

그래서 L.E.가 언젠가 말했던 중국 서북부 깡촌으로 기어 올라갔다. 사실은 광둥 지방에 가서 중국 음식을 배터지게 먹을 생각이었지만 안양에서 만난 중국 아가씨가 중국 최고의 절경은 구채구라고 주장했다. 두말없이 경로를 바꿨다.

말 한 마디 안 통하는 가운데, 한 중국인의 도움으로 구채구에서 호화로운 3성급 호텔에 하룻밤 저렴하게 묵고 길을 잃고 헤메다가 구채구 내의 티베탄 숙소에서 하룻밤 더 묵었다. 중국영화에서 그곳을 본 적이 있었다. 와호장룡의 배경으로 나왔던 곳이었다. 어쨌든 더럽게 추워서 얼어죽을 지경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송판에 들렀다. 목적지다. 도착하자 마자 정말 무협지에서나 볼성 싶은 광경을 보았다. 말들이 성문을 지나 다그닥 다그닥 길거리 한복판을 가로질러 갔다.


사진 왼편에 보이는 하얀 건물에서 하룻밤 묵었다. 그 맞은편에 오스트레일리아 여자와 결혼해 호스 트래킹을 한다는 가게가 있었다. 그 집에 들렀더니 대뜸 아이스 마운틴 트래킹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상당히 추워 보였지만, 나머지 '투어'는 숲속을 천천히 돌아다니는 것이라 재미가 없어 보였다. 아이스 마운틴 트래킹 신청서에 사인했다. 하루에 80위엔 꼴로, 세끼 식사와 잠자리, 그리고 종일토록 말 달리는 코스였다. 나오는 입구에서 이스라엘리가 아는 척을 했다. 그와 얘기하다가 내가 스노우 마운틴에 간다니까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거기 아무도 안 가는데? 걱정 말라고 그를 다독였다.

새벽에 벌벌 떨면서 기다렸다. 사전 정보가 없어 비를 피할 옷가지 정도만 챙겼다. 대략 2-30명 정도 되는 사람이 호스 트래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에 배낭을 통째로 들고 갔다. 음식도 상당히 많이 준비한 것 같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처음 타보는 말이라 자세가 영 불편했다.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들과 함께 5분쯤 시내를 달리다가 갈림길이 나타났다. 어? 나만 빼고 다들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나흘 동안 가이드와 나, 둘이 아이스 마운틴 트래킹을 시작했다.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말은 세 마리였고 한 마리의 등에 나흘 동안 먹을 식량을 실어 놓았다.

그가 말 엉덩이를 걷어차자 말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재밌어 보여서 말 옆구리를 박차로 찌르고 잔가지를 꺾어 엉덩이를 때렸다. 한 손으로 안장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고삐를 쥐고 있었다. 고삐를 이리저리 틀어봤지만 말은 제멋대로 달렸다. 순전히 지 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했다. 몇번 인가 떨어질 뻔 해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용케 중심을 잡았다. 가파른 비탈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첫날은 순조롭게 끝났다. 해발 2000미터 가량?

캠프 사이트에 당도해 천막을 치고 음식을 준비했다. 속으로, 이건 관광상품이야. 고생이란 있을 수 없어. 라고 생각했다. 가이드의 눈치를 보아하니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다. 오후 두 시 였다. 밤이 되자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져 장작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덜덜 떨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냇가에서 세수를 하려니 뼛 속까지 시원했다. 정상에서 눈이 녹은 물이 시내를 이룬 것이다. 갑자기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여차하면 세수하다가 발을 삐끗해 떠내려 갈 것 같았다. 결심했다. 세수... 이젠 하지 말자.

온 몸에 말 냄새가 배어 더 이상 말똥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말에게는 백수(white beast)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후 나흘 동안 내가 백수에게 한 말은 전부 욕지기 뿐이었다.


첫날, 이놈이 백수다. 어쨌거나, 누가 날더러 백마 타 봤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꾸할 수 있다.

갑자기 길이 가파라지고 한나절이 되어도 기온이 오르지 않았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태양빛은 강렬했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급격히 체온을 떨궜다. 얼굴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추워서 오금을 펼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비가 올 것 같다는 시늉을 하며 속도를 내려고 백수의 엉덩이를 자꾸 걷어찼다. 성질이 나서 무진장 겁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껏 달렸다. 경사가 적어도 40도 가량은 되는 커다란 산맥의 산허리에 15cm 폭의 길 사이를 정신없이 달렸다. 왼편으로는 끝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낭떠러지였다.

광경은 이루 말할데 없이 공포스러웠다. 조금만 삐끗하면 말 잔등에서 떨어져 추락할 것 같았다. 가이드는 내 발이 등자에 너무 깊이 박혀 있는 것을 우려했다. 생각해보니 말에서 떨어질 때 등자에 발이 걸려 있으면 발목이 쉽게 부러질 것 같았다. 고삐를 양 손으로 잡고 그것도 모자라 안장 손잡이를 함께 잡은 채 몹시 볼썽 사나운 모습으로 벌벌 떨면서 절벽을 지나갔다.

그날도 너무 일찍 캠핑 사이트에 도착했다. 말 타는 것이 점점 무서워져서 도저히 안되겠기에 걱정하는 가이드를 캠프에 남겨두고 말을 몰았다. 연습이라도 좀 해볼 요량이었다.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면서. 얼어죽겠는데 말은 뜻대로 안 움직이고 절벽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때마다 더럭 겁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파곤죽이 되어 캠프로 돌아와서 어제와 같은 식사를 했다. 밀가루 반 포대, 쌀 주머니 하나, 오이 스무개, 호박 몇개, 찻잎, 이게 식재료의 전부였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함께 밤이 찾아왔다. 장작을 더 때려고 도끼를 들고 설치는 내 모습이 가이드 눈에는 몹시 가련하게 보인 것 같았다.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래서 장작으로 쓸만한 나무가 없었다. 도끼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생나무를 찍었다. 설상가상으로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생나무 연기에 거의 훈제되다 시피 하고 머리는 아파죽겠고 음식은 쌀죽과 밀가루 빵 뿐이고 장작불 곁을 떠나면 입김이 얼어붙었다.


가이드에게 돌아가자고 사정했지만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강을 따라 한참 가다보면 조그만 마을이 있다고 손짓발짓으로 가르쳐 주었다. 말 타고 강을 따라 삼십분쯤 달렸다. 뭐라도 먹고 싶었다. 가게에서 주인장이 권해주는 맥주를 들이켰다. 가게에 맥주를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는 필요없었다. 맥주에는 살얼음이 끼어 있었으니까. 맥주를 몇 병 사서 주머니에 우겨놓고 지나가는 동네 아줌마한테 생 닭을 한 마리 사서 전속력으로 캠프로 달렸다. 맥주다! 기쁨에 겨워서. 뜨거운 물에 닭을 담궜다가 꺼내 털을 뽑고 장작불에 구운 다음 가이드와 함께 히히덕거리며 찌그러진 양철 그릇에 맥주를 따라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구워먹은 닭 때문에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비가 온다... 죽겠군.

머리는 아프고, 추워 죽겠고, 정강이 사이는 쑤시고, 밤새 뒤척였다. 아침부터 머리가 아파 타들어가는 목구멍으로 두통약을 두 알 삼켰다. 간밤의 비로 텐트와 침구 전부가 물에 젖었다. 텐트는 방수가 아니었다. 텐트를 걷으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아침 메뉴는 변함없었다. 한 조각만 먹어도 목이 메이는 밀가루 빵을 꾸역꾸역 삼켰다. 이거라도 안 먹으면 허기져서 쓰러진다. 어제는 오이 볶음, 오이 국, 호박국 이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오이찜이 나왔다. 점심 메뉴가 기대된다. 오이튀김이었으면 좋겠다.

백수에게 짐을 얹고 출발 준비를 했다. 짐 무게 때문에 휘청거린다. 간밤의 비로 손가락이 얼어붙어서 고삐를 제대로 잡기가 힘들었다. 다시 가랑비가 왔다가 햇볕이 쨍쨍 내리 쬐었다. 구름은 거센 바람 때문에 신속하게 움직였다. 오버 트라우저를 벗어 후드를 머리에 덮어 쓰고 소매를 묶어 망토처럼 걸쳤다. 선글래스를 끼었다. 보는 이도 없겠다, 앰버의 왕자처럼 망토를 걸치고 헬라이딩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3일째가 되니 백수한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백수는 피골이 상접한 흰색 말이었다. 이제는 한손으로 고삐를 쥐었고 남은 한 손으로 칼을 쥐었다. 칼? 어젯밤 불가에 앉아 도끼로 나무를 갈아서 길다랗고 두꺼운 회초리를 하나 만들었다. 이틀 동안 나를 우습게 보고 말 안 듣는 백수 새끼가 딴전을 피우면 가차없이 휘둘렀다.

오르막길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말이 발이 꼬여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떨어지면 끝장이다. 절벽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데 30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시체는 아마 너덜너덜하겠지? 배가 터져서 대장이 길죽하게 뻗어나와 다시 온 몸을 칭칭 감고? 따라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죽을 똥 말 똥 기어 올라가는 백수에게 무자비하게 굴었다. 덕택에 평지에서는 시속 5-60킬로미터의 속도로 쾌속 질주가 가능했다. 말 그대로, 망토를 휘날리면서.

3일째도 너무 일찍 도착했다. 아침 6시에 출발해서 2시간 만에. 가이드가 손짓 발짓으로 정상에 가보겠냐고 물었다. 댁은? 자기는 안 간단다. 말을 타고 산 비탈을 힘겹게 힘겹게 올라갔다. 백수는 제트 추진 방구를 뀌면서 없는 힘을 보탰다. 그놈은 아무데나 똥을 쌌다. 길은 맞게 올라온 것일까?

눈밭이 나타났다. 고도는 3000m쯤 되는 것 같다. 산 꼭대기에서 눈을 움켜 쥐었다. 눈덮인 산자락이 발 밑에 깔려 있었다. 도저히 인간이 살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 톨킨의 소설에나 나올법한 광경이었다. 여태까지 개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백수가 비지땀을 흘리며 푸르럭거렸다. 놈의 몸에서 올라온 김은 즉각 바람에 휩쓸렸다. 망토가 펄럭였다. 막대기를 치켜들고 힘차게 소리 질렀다. 우어어어!!

내려오는 길에 먹구름이 삽시간에 끼더니 엄청난 우박이 쏟아졌다. 엄지 손가락 만한 우박이 사정없이 내리 꽂혔다. 백수는 히히힝 거리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우박에 맞으니 어깨와 머리가 되게 아팠다. 우박에 맞으니까 도심에서 머리를 싸메고 하던 여러 실존적인 고민들이 상당히 부질없어 보였다.

우박에 맞아 죽고 싶지 않아 마구 달리다가 근처에 보이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으로 급히 피신했다. 나무를 얽기섥기 엮어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눈알을 반짝였다. 따뜻하다... 산막의 늙은이가 야크차를 권했다. 야크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시종 낄낄거리다가 알았다는 듯이 뒷참을 뒤적여 자랑스럽게 술을 꺼내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목구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어, 좋은데? 담배를 나눠 피우고 독주를 마시며 우박이 멎기를 기다렸다. 술을 좀 과하게 마셨다. 우박이 잦아들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난롯가에 떨어지며 치직치직 소리를 냈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초가집의 이가 들끓는 늙은이와 껴안고 기분좋게 헤어졌다.

오이 볶음을 아홉끼나 먹으니까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게 반짝였다. 그 사이로 거친 바람이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살갖을 찢어놓을 듯이 지나갔다. 마치 대기 중에 마녀가 떠돌며 생명을 희롱하는 것 같았다. 3일 동안 숲속에서 일을 봤다. 화장지가 없어서 나뭇잎으로 닦았다. 의외로 잘 닦였다.

나흘째, 백수의 잔등에 올라탔다. 자세가 나왔다. 말 엉덩이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가 앞뒤로 흔들렸다. 마치 섹스하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 고삐를 쥐고 말 잔등에서 밥을 먹었다. 폭 15센티의 말 한마리가 간신히 지나갈 절벽길에도 콧방귀를 뀌었다. 말을 타고 천천히 걸어갈 때면 형식적으로 고삐를 쥐고 있었을 뿐이다. 처음의 공포감은 사라졌다.

돌아가는 길이다.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산을 내려올수록 바람이 따뜻했다. 훈풍이 온 몸을 포근하게 감쌌다. 형형색색의 옷을 차려입고 깔깔거리며 웃는 소수민족의 마을을 지나고 물방울을 튀기면서 시냇물을 건너고 낙엽이 켜켜이 쌓인 숲속을 지나고 먼지를 흩날리며 민둥산을 거쳤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쫓아오는 가이드는 나보다 백 배는 말을 잘 타니까. 돌아오는 길은 순식간이었다. 말에 익숙해진 탓도 있었다.

오전이 끝날 무렵 도시로 돌아왔다. 가이드는 히죽히죽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말을 반납하고 트래킹 사무실에 가니 주인장 역시 히죽히죽 웃으며 날더러 '말을 무척 잘 탄다'고 가이드가 말했단다. 어억? 그건 또 뭔 소리여? 분석: 가이드는 내가 말을 잘 타는 줄 알고 있는대로 속도를 높인 것이었다.

숙소에 뜨거운 물이 안 나와 물어물어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 있는 가게에서 몸을 녹이고 시내에서 맛있는 삼겹살덮밥(이름을 잊어버렸다)을 원없이 퍼먹고 푹 잤다. 다음날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탔다. 말은 타고싶은 만큼 탔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뭘 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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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이후

잡기 2003. 10. 25. 01:36
다윈 이후 -- 제목이 멋있어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인 것 같은데. 훗훗훗.

코드 컴플리트와 저니맨 투 크라프트맨을 읽고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 할까? 그런 책들은 아무래도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달쯤 태국의 섬에서 달콤한 휴가를 즐기며 느긋하게 읽는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고 말구,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니깐? 라고 맞장구나 치면서.

지금처럼 밍기적거릴 때에는, 코드라도 한 줄 보는 것이 낫다. 어드레스 변환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겨 이틀 쯤은 속이 쓰렸다. 간신히 회로의 최종 수정 전에 맞출 수 있었다. 빙산의 일각이다. 남은 할 일은 저 차가운 바닷속에 80퍼센트나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뺑이치는 백조고.

어떤 책에서 본 '선택적 모순'이란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아직 모르겠다. 삽질과 자가당착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골때리지 않은가? 교육받은 식자들이 기본적인 과학 용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는 사실이. 그런 골때리는 현상은 경제정책을 논하는 정치가에게도 나타나는가 보다. 폴 크루그먼의 팝 인터내셔날리즘에서 본 등가식: 저축 - 투자 = 수출 - 수입

크루그먼은 경제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식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가 국제경쟁력이 얼마나 허구의 가정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인가,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학에서는 기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검증된(?)' 룰을 무시할 때 얼마나 가공할 일들이 벌어지는가... 를 설명하다가 나왔다. 식에 따르면 경제강국이 개발도상국에 생산 투자를 할 때 개발도상국의 임금 상승이 생산이 지속됨에 따라 상승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싼 노동력과 양질의 공산품이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딱히 미국 등의 '초'강국의 내수산업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도 말했다. 거듭 수식을 살펴봐도 설명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같다. 안 그럼 클린턴 행정부의 강력한 무역제제 정책이 왜 틀려 먹었고, 국가 경쟁력 재고를 위한 여러 정책들이 왜 허구인가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니까. 미국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경제학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원할 따름이었다. 하여튼 국제무역이 전쟁판이 아니라는 크루그만의 견해에는 심정적인 안도감을 느꼈다. 왜 남들 괴롭혀? 자기 얼굴이나 후려칠 것이지.

프로그래머로서, 기술적 경쟁 우위라는 말이 무가치하다고 여겼다. 그 말은 기술을 세습화하고 특허권을 만들어 인류 복지 공영에 이바지하는 대신 이전투구를 위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몸부림치겠다는 말 이상이 아니었고 자신의 이기심을 아주 뻔뻔한 방식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상대성 이론에 특허권을 걸자는 수작이지! 기술은 인류의 공동작업의 공동산물이라고 믿는 편이니까. 벌만큼 벌었으면 로얄티 같은 것은 없애야 한다. 그러다가 듀의의 십진 분류법을 사용하는 어떤 기관이던지 로얄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하여튼 저작권과 로열티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철부지같은 주장이 한국을 바짝 뒤쫓는 중국 때문에 한국이 장차 망할 것 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씨알이나 먹혀 들어갈까? 오히려 철없는 헛소리로 치부하겠지.

세포는 어느날 체온을 36.5도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옆세포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수백억개의 세포들이 함께 살자고 맞장구를 쳤기 때문에 나는, 또한 인간은, 분해되거나 썩지 않고 살아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래서 별로 낭만적인 것이 못 되었다. 말로 하긴 상당히 귀찮은 설명이다. 그런데 이게 내 의지란 말인가? 내가 하는 어떤 생각조차도, 심지어 곧 자살하겠다고 결심한 후 손목에 칼을 긋는 것도, 세포들이 살겠다고 맞장구를 쳤기 때문이란 말인가? 흐흥. 도킨스가 있었지. 밈을 생각하면 왜 세포들이 갑자기 죽겠다는데 맞장구를 치는지 이해가 갔다. 갔던 것 같다.

한번도 자살할 생각을 못해 봤다. 도킨스의 '밈'은 날더러 살아남으라고 속삭였다. 밈의 거시적이고 은밀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은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을 살아남게 했다. 고 사기를 칠 수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은 진실보다는 '밈'같은 그럴듯한 것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으니까. 이타주의는 적대적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치고, 자살은 정말 희안한 생각 아닐까. 왜 죽어?

아예 홈페이지 제목을 reason to be meanful로 바꿔 버릴까? 알라 말씀 중에 아홉 지옥을 건너... 어쩌구 하는 댓구도 있는데. 알라께서는 삶은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셨다. 라던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욕지기 밖에 안 나왔다.

사이언스21이란 tv 프로그램의 어젯밤 주제는 유비퀴토스였다. 우연히 봤다. 뭔 소리하나 하고. 우려했던 대로 약장수 선전같은 방송이었다. 프로듀서는 자기가 뭔 방송을 만드는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프로그램에 Kevin Warwick이 나왔다. 평소 좀 맛이 간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자기 몸에 칩을 박아서라기 보다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건 아닌데 싶은 구석이 있었다. 이번에는 자기 마누라한테도 칩을 박았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팔뚝 근육의 운동 신경에 직접 연결한 칩인데 팔 아랫부분 근육의 운동(수의근)에 의해 발생하는 미약한 신경 전달 신호를 외부 증폭기로 증폭한 후 무선 회로로 날려 보냈다. 그럼 자신의 뉴런에서 전이되는 신경전달 신호를 마누라의 신경 조직에 전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자신의 의도를 원격 전송할 수 있다. 워윅 교수가 손바닥을 구부리자 그의 마누라가 깜짝 깜짝 놀라면서 '어이, 어이 (, 어이 씨발)'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짜릿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짜릿함(전기가 흐른다)이 다소 신경에 거슬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에서 맨날 워윅 교수가 손바닥을 구부릴 때마다 짜릿짜릿한 기분을 즐기고 있다고 보기는 뭣 했다. 그보다는 오르가즘 증폭기 같은 것이 상업성도 있고 백배 낫지 않을까?

다음번에 케빈 워윅 교수를 보게 되면... 음... 시상하부를 짜릿짜릿하게 해주는 칩을 박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출현할 지도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패달을 콕콕 밟으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다가 게거품을 흘리며 죽은 모르모트가 생각났다. 케빈 워윅은 인류 중에 최초로 칩 박은 사이버네틱스 교수로 영원히 이름이 남을 것이다. 그건 실험을 위해 자기 위장에 암세포를 주입한 의사들의 이타 정신에 필적하는... 아, 내가 뭔 소리를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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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loring

잡기 2003. 10. 24. 00:18
양복 맞추러 돌아다녔다. 머지 않아 줄줄이 이어질 장례식을 생각해서? 황가 소개로 찾아간 가게는... 꽤 유명한 곳 같아 보였다. 하루에 양복 10벌을 만들어야 수지타산이 맞는단다. 티파니 양복점? 이름이 맞나? 오늘 가봉하러 찾아갔을 때는 어딘지 몰라 20분쯤 거리를 헤멨다.

어젯밤엔 술김에 블로그를 작성했는데 읽어보니 죽여주는걸. 술김에 쓰는 건 안 좋아보인다. 술 한 잔 하던 동대문역 근처의 설렁탕집 조선족 점원이 너무너무 귀여웠다. 잡생각을 좀 했다.

새삼스럽게 내가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R.O.D. TV 시리즈:
'너도 작가라면 작품으로 날 죽여봐.'
'너희들은 소설가 놀이에 고민하는 인간쓰레기야.'
괜찮았는데, 편이 진행되어 갈수록 쓰레기가 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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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him as a men

잡기 2003. 10. 23. 01:56
으슥한 밤 거리를 걸으며 적절하고 바람직한 키스에 관해 생각했다... 이쯤되면 실패는 구조주의적이었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에 관해, 아주, 지겹게, 연금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 가르치듯이 시시콜콜하고 구질구질하게 늘어 놓았다. 드물게도 혐오하는 작법이다. 배우고 싶으면 내가 찾아서 배워 작가 새끼야. 애도 아니고 젖꼭지 물려주고 꼬치꼬치 수다를 떨어대는 스타일은 밥맛이야. 특히나 그것이 이미 알고 있거나 뭐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주제와 지식이라면. 백과사전 편집하나? 상상력과 글빨과 인물을 가지고 소설을 쓰란 말이다 소설을. 책상 구석에 살짝 밀어 놓았다. 더 안 봐도 될 것 같다.

스텔비아를 2년 만에 마저 본다. 처음 볼 때 그래픽 스타일이 어째 홈월드를 닮았구나 싶었다. 태양계 근처에서 초신성이 폭발해 지구에 재난이 닥치고, 그 후 밀어닥치는 second wave를 막기 위해 인류가 189년 동안 단결해서 지구와 달을 감싸는 에너지 필드를 만들어 지구를 지킨다는 얘기였다. '지구의 운명을 어린애에게 맡기란 말인가?' 라는 대사가 나오는 학원우주물이었다.

언제는 안 그랬나? 일본 애니를 보면 지구는 당연히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지켜야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이야 말로 청춘을 불살라... 안 중요해.

가슴이 출렁거리는 미소녀들, 사랑과 관심을 잃으면 금새 시들어 버리고... 눈물 짓는... 눈물을 흘릴 때나 애교를 부릴 때면 신체의 여러 덜렁거리는 부분이 함께 흔들렸다. 그건 건버스터 이후 무슨 전통이라도 된 것 같았다.

2년 만에 마저 본 애니 중에는 풀 메탈 패닉도 있었다. 군사 매니아도 아니지만 몇몇 생각지못한 세심한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여자도 싫고 떼거리는 더더군다나 싫다면? 오늘 어떤 나이 든 아저씨가 날더러 그랬다. 자네는 의도와 정념으로써 세습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의외로 훌륭한 반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세련됨을 세상에서 그다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비로서 젊다는 걸 느끼게 해 준 그 아저씨에게는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부끄럽게도, 그런 것을 보고 싶었다.

함께 술을 쳐먹은 황가는 언제나 멋졌다. 너무 멋있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뿐. 그래서 생각하길, 브레쓰 인테이크를 걱정하기 이전에 작약의 성능을 생각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남자다움이 여성에 대한 알맞은 봉사(이런 저런 좆같은 것들)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딱히 할 일 없으면 후배에게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는 옳지는 않았다. 그건 나쁘지조차 않은, 그저그런 '남자'와 다를 것이 없었다. 너무 폄하했나? 남자로서, 남자라는 것으로서, 더 이상 사정이 나빠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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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dria

잡기 2003. 10. 21. 00:55
굴다리집이 문을 닫았다.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인지 휴일인지. 후자였으면 좋겠다. 그제서야 그 술집이 1997년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 친구가 인도 간다던데,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부디 살아서 돌아오길 빈다고 말했던 것 같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중용의 미덕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1/3만 살아 있거나 63.5%는 죽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존재의 실감, 현실의 해상도, 지평의 축 따위 별 의미도 없으면서 잰 체하는데나 쓰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았던 것 같다. 옛날에.

토요일 밤에 모인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시간과 외화를 낭비하며 인도에 갔다왔다. 그래서 전역한 향토예비군 모임 같았다. 일주일 후 인도에 가는 그에게 해준 말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해서 안 하는 말인데, 인도에 가서 떨이나 잔뜩 하다가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떨 고르는 법, 떨 마는 법, 떨 피우는 법에 관한 대화가 오고 갔다. 떨을 피우고 인도 고대 건축을 바라보면 한층 더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닭아이 아저씨에게는 내가 인도에서 만난 비인간성, 그러니까 나같은 회의주의자가 쳐 놓은 거의 완벽한 매시 그리드를 한 마리 미꾸라지처럼 유연하게 돌파하여 머리통에 화살을 박아 주시는 것들에 관해 삼세 번 말했다. 그는 거듭거듭 부정했다. 그는 죽어라고 자력갱생을 고집했지만, 그가 늙었고 모범은 그 자신 밖에 없는 매우 좆같은 상황에서 인간 정신의 다른 측면을 스스로 체현하고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늙고 머저리같아 지는 것은 비할 데 없이 서글픈 것이다.

들고 올 책 무게나 가볍게 해 주자. 돌아올 일요일에 가볼 곳이 있다. 딱히 연락 안 해도 블로그를 봐주시겠지?

주인 아줌마는 닷새 전에 내 방에서 어여쁜 아가씨가 나가는 모습을 봤다고 주장했다. 어여쁜 아가씨가 뭘 하다 갔을까. 털어갈 만한 것도 없는데. 집에 돌아올 때면 아줌마가 쪼르르 따라와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안방, 작은 방, 화장실 곳곳을 꼼꼼이 기웃거리면서 어디 예쁜 아가씨 없나 애타게 찾는 모습을 볼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비현실감을 느꼈다.

시월 밤의 내 방에는 정신 나간 모기 밖에 없다. 뭔가 더 있다면 내 음식의 100만분의 1을 삥 뜯어먹고 사는 막가파 개미 한 패거리와 확률적으로 38%쯤 죽은 거북이 한 마리, 냉동실에는 한달 전에 잘라 보관해 둔 머리 정도?

아줌마는 어느날 내 방에서 거북이가 어여쁜 아가씨로 변신하는 모습을 놀라운 듯이 쳐다본 후 거 봐, 내 말이 맞지 하며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옆집으로 달려가 윗집 총각이 죽음과 나누는 파렴치한 불륜에 관해 떠들 것이다.

아줌마는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예를 들어 어젯밤 새벽 4시 반경, 얌전히 잠이나 자고 있어야 할 컴퓨터들 중 hell이 갑자기 켜졌다. 그리고 20분 후 다시 꺼졌다. 나흘 전에는 책장과 책갈피 사이로 녹색 피가 줄줄 새어나와 닦아내고 제대로 다시 감추느라 진땀을 흘렸다.

집에 돌아와서 간만에 밥을 지어 먹었다. 밤마다 물을 길어다 주는 대리석처럼 창백한 피부를 지닌 그리스 출신의 어여쁜 우렁각시가 내게 있을 리 만무하니까. 냉장고에 있던 각종 생체 부속들을 활용해 반찬 네 가지를 만들고 갈아놓은 고기로 걸죽한 국을 끓여서 밥과 함께 일곱 가지 찬과 국을 먹었다. 맛에 관해서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

날씨가 참 좋아서 잠시 딴 마음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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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하루

잡기 2003. 10. 18. 20:36
수중에 돈이 없이 지하철 역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뭔가 열을 올리며 떠들다가 마지막 지하철을 놓쳤다. 놓친 김에 더 마셨다. 별 수 있나? 나와서 택시를 잡으려고 보니 지갑에 달랑 만원 짜리 한 장 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에게 만 원 어치만 주행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끝까지 다 가서 내려준다. 고마웠다. 술 마시고 택시비도 못 내는 꼬락서니가 우스웠지만.

아침부터 머리가 헤롱거렸지만, 기분좋은 바람과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며 도서관에 올라가(언덕 위에 있으니까) 빌린 책을 반납했다. 어디선가 '헤르메스의 기둥'이란 책 제목을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저번 주 토요일에는 도서관 구내 식당에서 두 끼를 먹었고, 저녁 무렵 건물의 모든 문을 잠궈 잠깐 동안 갇혀 있었다.

전력 절약, 원격 컴퓨터 부팅에 관한 간략한 셋업법 정리 -- 컴퓨터 셋업할 때 한 번 씩은 다 해 본 것 아니었나? 괜한 문서 작성한 것 같은데...

집에서 빈둥대면서 짬뽕을 시켜 먹고 침대에 누워 '맥시멈 코리아'를 읽었다. 미국인이 한국에 놀러와 얼마간 지내면서 느꼈던 감상문. 한두 명도 아니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길모퉁이 자판기의 인스탄트 커피를 예찬 하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

오늘자 SBS 8시 뉴스에서 자동차 번호판 각도조절기라는 것을 봤다. 과속 단속 카메라에 기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30만원 짜리 기계였다. 캬... 그 얍삽함이 정말 죽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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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oteness

잡기 2003. 10. 17. 03:54
어젯밤 사무실에서 집 컴퓨터의 ftp에 다운을 걸어두고 갔는데 아침에 가니 랜 케이블을 뽑아 놓았다. 다운로드 걸어놓은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나. 희안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집의 ftp 서버의 최대 업로드 스피드가 30KB/sec 밖에 안 되는데 고작 그것 때문에?

집 컴퓨터의 ftp는 외부에서 엑세스하면 자동으로 켜지는 줄 알고 있었는데 (dyndns.org에 등록해 놓은 유동 IP 서버) IP 공유기가 내부 IP에서의 접근에는 반응하지만 외부 IP에서의 접근에는 반응하지 않는 것 같다. 아... 엿 같다. 그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접속 요구가 거의 없는 컴퓨터를 켜놓아야 한단 말인가? 전기세 아까워서 그럴 수는 없지. ftp 운영은 이걸로 끝내자.

집에 있는 컴퓨터들의 이름은 각각 hell, ishtar, libretto 이다. 다른 3대의 컴퓨터는 3일에 걸쳐 사무실로 옮겨 놓았다. '이쉬타르는 페이퍼백을 들고 지옥에 갔다'

hell: 192.168.123.200. duron 800Mhz. 주 작업용.
ishtar: 192.168.123.201. pentium iii 600Mhz. 다운로드, ftp 서버.
libretto: dhcp. cruso 500Mhz (celeron 300Mhz 가량). 리모콘.

컴퓨터 세 대의 클럭 주파수를 모두 더해도 2.4Ghz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당분간 업그레이드 계획은 없다. 지난 4년 동안 잘만 사용했다. ishtar가 꺼져 있더라도 hell 이나 libretto에서 엑세스를 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켜진다. 평상시에는 최대 절전 모드에서 쥐 죽은 듯이 있다.

1. 침대에 누워 libretto로 ishtar에 접속해 ishtar가 hell에서 다운받은 영화를 복사한다. 그동안 ishtar는 새로운 영화를 다운 받도록 해 놓는다. 다운이 끝나고 별 일 없으면 ishtar는 자동으로 꺼진다.
2. 침대에 퍼져 libretto로 ishtar 가 영화를 플레이하도록 지시한다. 아드레날린을 사용하면 플레이가 끝난 후 컴퓨터를 자동으로 끌 수 있다.
3. 침대에 누워 리모컨으로 29인치 TV를 켠다. 컴퓨터에 플레이되는 영화는 NTSC 단자를 통해 TV overlay 된다. TV는 취침 예약을 걸어놓으면 영화가 끝난 후 꺼진다.
4. 침대에 앉아 libretto로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웹 브라우징을 하면서 영화를 본다.
5. 스르르 잠이 든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일찌감치 잠든다. 먼저 libretto가 꺼지고, 그 다음에 ishtar가 꺼지고, TV가 꺼진다.
6. 매일밤 반복한다.

침대맡의 작은 플렉시블 스탠드는 하지만 자동으로 꺼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동화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해결 방법이 있긴 했다. 전파상에서 타이머 스위치를 사서 스탠드 전원 유입선에 설치하면 된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발이 슬슬 시려오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데 왠만하면 침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냉장고를 수리했다. 냉장고의 주 컨트롤러는 DIP 패키징 타입의 AVR인 것 같다. 어엿한 MCU인 것이다. 수리공은 회로의 부품 중에서 SSR을 갈았다. SSR 문제가 아니라면 다음에 와서 온도 센서를 고쳐 주겠다고 말했다. 일주일쯤 작동시켜 보니 별 문제 없다. 첫번째 수리공은 냉장고 내의 온도 분포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천천히 내려앉는 냉기는 가장 윗칸이 2도, 그 다음칸이 3도, 그 다음칸이 4도, 야채칸은 대략 5도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어렴풋이 과일은 5도에서 당도나 맛이 가장 좋다는 것을 어디선가 배웠던 것 같다. 수리공은 자기가 들고 다니는 PDA(흑백 iPaq)에 수리 내역을 기록한 후 떠났다. 우체부들 들고 다니게 될 PDA 입찰 때문에 몇몇 pda 공급업체끼리 싸움 붙었다던 것 같은데... 세상 많이 좋아졌다. 피자집,중국집에서 PDA를 쓸 날도 머지 않았다. GPS까지 달아서? 한국의 빌어먹을 지번 지적 시스템이라면 GPS 내비게이션이 필요하지, 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고지서가 날아왔고 정지(유예)기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러니까 앞으로 국민연금을 매달 꼬박꼬박 내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협박이었다. 별로 내고 싶지 않은데,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겁을 준다. 국민연금 안내고 개기면 최고장이 날아오고, 심지어는 차압이 들어올 수도 있다나? 자기는 안 내는 줄 모르고 있다가 차압이 들어와서 고생했다나? 여행 때문에 외국에 오래 있었고 현재 직업이 없으며 열심히 직업을 구하고 있는 중이니까 우예를 연장해 주시던가, 하다못해 연금 월 납입 액수를 낮춰 주십쇼.. 등등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여차하면 한 판 붙을 각오로 긴장한 채 관리공단을 방문했다. 내가 뭔 말을 하기도 전에 고지서를 흘낏 보더니 내년 9월까지 유예기간을 연장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먼저 말한다. 어처구니없게 끝났다.

여새를 몰아 의료보험증을 만들러 갔다. 직장을 그만 두었으니 의료보험증이 소멸된 줄 알고 신규 발급하려고 했더니 직장을 그만 둔 다음 달부터 직장->지역으로 자동 이전되었단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언제 이전을 했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의료보험관리공단에 찾아온 다른, 여러 사람들이 이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관람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소리를 질러 주시는 아줌마, 아저씨들 틈에서(뭐 이런 날도둑놈들이 다 있어! 야 이 개새끼들아! 등등 육두문자가 사무실에 짱짱 울려 퍼졌다) 아저씨가 진력이 난다는 듯이 나를 향해, 이봐요, 의료보험은 의무입니다. 그게 의무가 아니면 의료보험은 유지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료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한 달에 얼마 내는 줄 알아요? 라고 되레 내게 차분히 물었다. 모르는데요? 한달에 110만원 냅니다. 만일 의료보험이 의무가 아니면 그 사람들이 그렇게 내겠어요? 이거 해지할 수 없나요? 없어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욕설을 퍼부어대는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승산이 없어 보였다. 젠장할.

외국에 나가 있었어요? 네. 한 일년 쯤이요. 그가 컴퓨터를 투닥투닥 두들겨 출입국 내역을 프린터로 뽑아와 보여주면서 6개월 이내는 유예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작년 5월에 나갔다고 올 2월에 들어온 것은 안 내도 되지만, 올 3월에 나갔다가 6월에 들어온 것은 유예기간에 포함되지 않아요. 다시 말해 2월부터 10월까지 밀린 체납금을 내셔야 합니다. 난감하고 억울해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려고 하니까 자자, 싸게 내는 법을 알려 줄께요. 이런저런 서류를 만들어서 제출하세요. 그래서 얌전히 그렇게 했다. 그걸 조정액이라고 불렀던가? 지금 세들어 있는 집의 계약자가 여행 가 있는 동안 내 방을 빼고 이사를 간 후배로 되어 있는데 남의 집에 얹혀 산다는 것을 서류로 제시하면 보험료를 적게 내는 것이었다. 전세계약서 사본과 후배의 사인을 위조해서(내가 그 녀석 사인을 알게 뭐냐?) 제출했다. 그래도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 의료보험관리공단에 갈 일이 있으면 공부 좀 해서 후련하게 소리나 질러봐야지.

놀라웠던 것은 의료보험관리공단의 단말기에서 내 입출국기록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쩐지 미국보다 전산화가 잘 된 것 같아 감탄스러웠지만, 한편으로 왜 내 기록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일까 기분이 별로... 동사무소, 보험회사, 병의원, 은행, 신용평가원, *관리공단, 경찰서, 스팸을 보내주시는 웹사이트들은 신상자료를 공유하기도 하고. 거참. 프라이버시를 외치며 전자주민증을 반대하던 한국인들은 자기들에게 과연 프라이버시가 있기나 한 건지 알고는 있을까? 전자주민증을 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같다. 주민등록번호를 난수로 만들겠다더니... 요즘은 조용하군.

어디선가 날아온 스와핑 사진을 보다가... 할 말을 잃었다. 섹스가 그렇게 재밌나? 애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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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잡기 2003. 10. 16. 03:33
'냉정과 열정 사이' 어? 뒷머리를 긁게 만드네. 보다가 말았다. 정서가 안 맞았다.

2032년, 또는 돌의 후계자, 제로 컨택트가 마음에 들었다. 암자만 아니다뿐 이런 식의 자폐증적인 금욕생활이 취향에 맞았다. 소설은 끝내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

삼성물산의 HTH(Home to Home 아닐까?)가 36.5도 짜리 서비스를 했다. 온도를 약간 올려서 38도 열혈 서비스를 해줬으면 좋겠다.

재건축 명목으로 집 앞 건물을 삽시간에 부숴 버렸다. 폐허 위로 달이 기울었다. 얼마전 사우나에서 동네 아저씨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강남에서 활약하던 부동산 투기꾼들이 은평구로 올라와 집값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토지 공개념' 얘기를 들은 후 아무 생각 없다.

3일에 걸쳐 다이어그램 3장 달랑 그려놓고 노려보았다. 정말 머리가 안 돌아가는구나. 어제는 세 줄 짜리 수식을 힘겹게 전개하고 담배를 두 가치 태웠다. 하루 담배 소비량이 반으로 줄었다.

에프라임 키존, 동물 이야기. 십년만에 키존의 글을 읽었다. 키존은 그대로고 나는 변했다. 문양은 내가 변했다는 말을 듣고 우려를 나타냈다. 무관심 때문에 좋은 친구들을 잃어갔다.

오랫동안 PDA 전지를 갈아주지 않아 PDA가 맛이 갔다. 최근에는 PDA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서브 노트북으로 다 해 버리니까.

오늘 아침에 할 일:
* USB 케이블을 찾자. 어디 갔을까.
* 의료보험관리공단에 들르자.
* 제안서를 작성하자.
* 데이타 스크램블링 수식화
* 스펙 조언
* 리스트프로
* vss
* 도서관에 들러 책 반납. 웃기는 책 찾아볼 것.
* 저녁에 술 한 잔(?)
* 인상 펴고 웃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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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잡기 2003. 10. 15. 05:53
맛없는 음식으로 인생이 비참해지기까지야 하겠는가 싶지만, 길가에 앉아 막퐁뒤를 안주삼아 병째 와인을 들이키고 싶은 인간들이 있고 감자탕에 소주를 먹을만한 사람들도 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 그다지 우아한 편도 아니면서, 아... 빌어먹을 까탈스러움만 남았다.

한나라당에 관련된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닭장에서 패권을 다투며 홰를 치고 꼬꼬댁거리는 닭들이 생각났다. 사무실에 갈 때 매번 한강을 건넜다. 한강의 낮과 밤은 단순히 넉넉하고 아름다웠다. 맞은편에 보이는, 눈에 거슬리는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한나라당이 의석의 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이 폭발하면 썩 괜찮은 불꽃놀이가 되겠구나, 하고 매번 생각했다. 불꽃과 닭털이 무수하게 흩날리지 않을까? 마치 눈처럼, 민들레 홀씨처럼.

영화 City of God, 시우다드 델 데우스는 닭 잡는 것으로 시작해서 닭 잢는 것으로 끝났다. 천진난만하게 총질을 해대는 아이들이 나름대로 인생을 개척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상 받아도 될만한 영화지만 피가 너무 많이, 총질이 너무 심해 구역질이 난다는 미국인들의 평가를 보니 부조리함을 느꼈다. 이를테면 특이한 식습관을 가진 안소니 홉킨스가 뇌를 떠먹거나 식사시간에 인간을 통째로 접시에 내어놓고 먹어대는 변태스러운 영화를 만드는 서구에 메스꺼움을 느끼는 편이라서. 어쨌거나, '신비스럽기만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깨끗해 보이는 아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종류의 문화였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새벽 5시. 꿈속에서 파키스탄이 보였다. 인도를 떠나 파키스탄의 국경을 넘을 때부터 인상적인 문화적 격차를 절감했다. 아주 지저분한 나라(인도)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풍기는 병원 복도를 지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국경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투어 가이드를 한다는 유럽인과 얘기했었다. 그는 아시아인의 사기 방법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떠벌렸다. 라호르의 극장 뒷편에 숙소를 잡았다. 활기찬 밤거리를 지나 괴물생선튀김을 파는 노천 식당에 앉았다. 라마단 바로 직전이었고 식사는 매우 훌륭했다. 숙소에는 세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한 친구는 시장에서 적어도 30년은 썩은 것 같은 주름 사진기를 사들고 왔고 더벅머리 아가씨에게 챠도르를 씌우고 이란 비자용 사진을 아침 내내 찍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이집트의 룩소르에서 다시 만났다. 더벅머리는 나를 오빠라고 불렀고 만도는 그녀를 못 생겼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욕심 많은 아가씨가 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피차 정체가 뭔지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더벅머리 아가씨는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약간의 분쟁이 있긴 했지만 여행이 무척 순조로왔던 나에 비하면.

테러 국가 파키스탄의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비록 길거리에서 총을 팔고 여자들이 길거리를 함부로 나다닐 수 없어 호모가 우글거리기는 했지만 파키스탄은 자존심이 강하고 경건한 이슬람 국가였다. 사람들은 소박하고 친절했다. 저녁 무렵 스즈끼 뒷좌석에 그들과 끼어 앉아 있을 때 금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들은 말없이 나에게 말린 과일을 나눠 주었다. 그들이 음산하게 눈알을 반짝이면서 낄낄 웃으면 나도 낄낄 웃었다. 여자들이 좀 무서워할만한 좀 그런 광경이긴 했다.

라왈핀디에서 알 아잠 호텔에 이틀, 파퓰라 인에서 이틀을 보냈다.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서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길깃으로 갔고, 일본인들 몇몇이 길거리를 개처럼 배회하던 카리마바드(훈자 마을)에서 일주일을 라마단과 함께 보냈다. 살구씨는 소화불량과 관련이 깊었지만 무척 추운 관계로 화장실을 들락거리지 않았다. 검은 빙하와 흰 빙하를 걸었고 대상무역의 흔적을 발견했고 위대한 이슬람의 전파를 목격했다. 카리마바드로 가는 길에 본 인상적인 모습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과 나무 그늘 아래 러그를 깔고 경건한 자세로 메카를 향해 기도하던 수염난 늙은이의 모습. 그림에서나 보던 종류의 광경이었다. 페샤와르의 투어리스트 인에서 애꾸눈 주인에게 부탁해 금박을 입혀놓은 꾸란의 번역본을 구했다. 꾸란은 번역될 수 없는 것이다. 번역된 꾸란은 이미 경전이 아닌, 해설서에 불과하다. 꾸란을 읆조리는 강하면서도 시적인 음율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시장을 헤멨다. 꼬마애가 나에게 잘 구부러진 장식이 멋진 칼을 팔고 싶어했다. 주인장에게 놀림감이 되곳했던 일본 승려를 만났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개구리를 접어줬다. 그는 생고집을 부리며 추운 북쪽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추위 때문에 병에 걸릴까봐 걱정스러웠다. 라왈핀디에서 30시간 동안 먼지나는 기차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퀘타에 도착. 이틀쯤 머물다가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란과의 접경도시 타프탄에 도착. 일본인 둘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비스켓 하나도 쪼개먹는 한국인과는 달리 얌체스러운 녀석들이었다. 너무 추워서 국경이 열릴 때까지 햇볕을 쬐며 이란 국경 사무소에 붙어있는 수염난 호메이니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보따리 장사를 하는 파키스타니가 말을 걸어왔고 총값 시세에 관해 궁상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하루하루가 생생하게 기억났다. 심지어는 라호르에서 처음 먹었던 괴물 생선 튀김 맛부터 해를 등지고 덜덜 떨면서 이란 국경으로 걸어가며 입 안에 씹히는 모래를 퉤하고 뱉어냈던 것까지.

자다 깨서 왠 봉창 두들기는 소리냐. 여행에 관해 굳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의료보험증을 만들러 가니 출입국 날짜가 화면에 나타났다. 도서관 회원증의 사진은 퀘타에서 부러 꽃단장하고 찍은 것이었다. 그래서 꿈 속에서 기억을 되짚으며 춥고 덥고 먼지나고 매연이 자욱했던 파키스탄을 다시 여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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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잡기 2003. 10. 14. 03:18
블로그 컬러 업데이트. 색깔 참 구린걸. 뾰족한 수가 안 보여 내버려 두기로. 심리 상태가 그 모양이니.

위키 업데이트. RSS 지원. 위키는 '좋은, 훌륭한' 기술이다. 2년 동안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어제 아침에도 어김없이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다.

스타트랙 네메시스 극장판을 봤다. 아... 재미없다.

장 미셀 트뤼옹의 2032년. 프랑스 작가스러운 너저분한 장식체. 말이 왜 이렇게 많은걸까. 시급히 본론으로 넘어갈 것이지. 구질구질하게 설명을 늘어놓긴... SF 한두 번 읽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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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잡기 2003. 10. 12. 22:52
엊그제 아침, 어제 아침 무렵 밥 먹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성명인지 인터뷰인지 하는 것을 보았다. 소화가 잘 안 되었다. 터질 것이 터졌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제발 국민투표까지 가는 일이 없기를.

쿼런틴이 드디어 출간되나 보다. 여러 사람 즐겁게 해줄만한 책이 될 듯. 그것하고 퍼뮤테이션 시티가 마저 번역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SF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린 몇 권의 인문 소설을 읽었다. 끝내기야 끝냈지만 도저히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아는 사람들에게 권해 주다가 책이 아직 안 나오고 해서 시들해졌다. 읽을 사람은 읽게 되겠지.

밀린 메일을 후다닥 보냈다. 읽지도 않고 200통씩 쌓여있는 스팸 사이에서 바위 틈에서 김을 파내듯이 알만한 아이디를 골랐다. 신중하게. 잃어버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스팸의 절반은 국내에서, 나머지 절반은 해외에서 보내주신 것들이었다. 일단, 해외에서 보내주는 지속적이고 뜨거운 관심에 감사드렸다. 하지만 자지 길이를 2인치 씩이나 늘이거나 섹스 파트너를 구하거나 쉽게 돈버는 방법에 관심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12cm는 가정용, 15cm는 영업용, 18cm는 가정파괴용' 이란 노랫가사가 있던데...

신진대사, 적응, 번식이 생명체의 특징이라면 번식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번식기가 끝난 노인네들은 얼어붙은 현재를 기준으로 불완전한 생명체이거나 맛이 간 생명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절간에서 목탁을 두들기며 앉아 번식을 외면한 대머리들도 있었다. 신부, 수녀들 역시 남녀상열지사에 한눈 팔지 않고 신의 영광에 온 정성을 쏟아부었다. 즉, 생명 활동에 별 관심들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그런데 의아하게도 번식하는 체 하는데 사용하는(생명체의 정의에 충실한 체 하는데 사용하는) 콘돔 착용을 반대했다. 가톨릭은 지나치고 무책임한 생명 활동을 죄악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인간은 이성이 있으므로 동물이나 식물처럼 아무하고나 달라붙어서 막무가내로 번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거나, 신의 노여움을 산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느껴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인간의 두뇌는 신진대사, 적응, 번식을 고도화하기 위해 우연찮게 주어졌고, 그 자체가 적응의 산물이라고 보는 편이라서. 다시 말해, 거대하고 불안하게 생긴 인간의 머리통은 생명을 좀 더 잘 유지해 보려고 어쩌다가 우연히 목 윗쪽에서 콩나물처럼 쑥쑥 자란 것이라고 믿었다. 예를 들면 번식 활동을 위해 자지가 쑥쑥 자라고 젖가슴이 쑥쑥 자라나듯이.

하지만 내 목 위쪽에 달려있는 것은 거의 백퍼센트에 가까운 비율로 여자들이 별로 예쁘지 않아 기분이 늘 비참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번식에 도움이 안된다. 생명체의 정의를 가지고 너무 빈정거렸나? 음. 좋은 방법은 번식을 생명체의 정의에서 빼버리는 것이다. 중하고 신부도 끼워줘야 그들이 삐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적응도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적응이 무슨 의미인지 애매하다. 인위적으로 계의 환경을 조작한다던가, 우연히 개체풀 속에서 자연선택(도태)에 의해 간신히 살아남는 것을 적응이라고 한 것인지...

중, 신부, 수녀, 생각없이 잘 살고 있는 AIDS 바이러스들까지 포함하려면 신진대사도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신진대사를 좀 더 우아하게 정의해서 계의 엔트로피를 낮추고(복잡성을 축적하고) 주변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쓰레기를 배설하는) 경향을 보이는 활동을 통털어 살아보려고 애쓰는 현상이라고 눈 딱 감고 정의하자. 그러면 인간이 만든 기계와 로봇을 몽땅 생명체의 범주에 포함하게 될 뿐더러, 산소와 수소가 불꽃을 튀기며 만나 물이 되는 것도... 불편하기 그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현상에 대해서 30년 이상 세뇌를 당했다고 생각해봐라. 마치 민주주의에 세뇌당한 것처럼.

생명의 정의에 관한 저런 고리타분한 정의 말고 좀 더 쌈박하고 확 깨는 정의는 없을까? 노무현, 수구꼴통, 조선일보 애독자, 중, 신부, 수녀, 선인장, 아메바, AIDS 바이러스를 다 포함하면서. 이중 몇몇은 아무 생각 없이도 생명력을 과시하며 참 끈질기게 잘 산다. 단백질의 존재 양식, 생명은 제어 그 자체다. 이런 저런 말들.

옛날 옛날 무슨 책인가에서 읽어보니 의식의 수준을 생명성(?)의 강도로 해석한 대목이 있었다. 예를 들어 바위는 의식이 전혀 없으므로 생명력이 지극히 약하고, 아메바는 바위보다는 형편이 좀 낫고, 동물에게는 약간의 의식이 있으며 인간은 의식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생명력이 강력하다는... 그럴듯 하긴 한데, 문제가 좀 있었다. 정박아는 침팬지와 비슷한 수준의 생명력을 가진 셈이 되고, 아인슈타인은 그럼 지구 생명계의 정수쯤 된다.

밤에 쓰는 글은 낮에 쓰는 글에 비해 감상적이란다.

당분과 섬유질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출격하는 개미들이 깍아놓은 배 찌꺼지에는 접근하지 않아 희안했다. 그들의 작전지역이 궁금해졌다.

요즘 뜨는 서브노트북 리스트:
후지쯔 라이프북 P5010
소니 바이오 PCG-TR1L
JVC 에어웍스 MP-XP7310KR/골드
도시바 포테제 R100
스펙만 봐서는 후지쯔 라이프북이 제일 나아 보이는데, 글쎄다. 써봐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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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Y 2002

잡기 2003. 10. 1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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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잡기 2003. 10. 10. 21:01
인터넷과 떨어져서 자폐증 환자로 지내니까 이렇게 좋은걸.

핸드폰이 파르르 떨렸다. 잘 받지도 못 하는 주제에... 수도 공사 때문에 계량기의 밸브를 막아놨는데 집에서 물 새는 소리가 들린단다. 수도 꼭지를 열어놓고 나왔나 보다. 저녁 식사 약속을 취소하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지하철이 한강을 건널 때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집 근처로 오니 북한산 자락 위로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수도 꼭지가 제대로 닫혀 있어 저녁 식사를 하러 갔더라면 보름달은 구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을 밤하늘에 떠오른 아름다운 보름달에 비하면 저녁 식사 약속이야 하잘 것 없는 것이지... 라고 말하면 때릴 지도 모르겠구나.

맞지 뭐.

Ash Ra Temple, New Age of Earth, Deep D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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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ous rendering subject

잡기 2003. 10. 9. 22:21
책을 읽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강에 빠져 익사하는 시체는 항상 하나 이상인데 그 숫자가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별 일 없으면.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나도. 생각은 그만하고 얌전히 마저 책을 읽었다.

그를 쥐새끼같은 놈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리 생각지 않았다. 내가 틀렸을까? 눈치나 보며 적당히 비벼먹는 비열한 기회주의자.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인물형. 사람을 관찰하고 보고 알게 된 것을 철부지처럼 입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인간은 불안정하다. 삶은 깨어지기 쉬운 보석이다. 쉽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하랄트 뮬러의 문명의 공존(Das Zusammenleben Der Kulturen)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술 먹고 책 보고 하는 와중이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읽은 후 꼬박 5년 만이다. 진작 읽었더라면 문명의 충돌에서 느꼈던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들을 일찌감치 씻어버렸을 것이다. 헌팅턴의 주장에서 가장 기괴하고 황당했던 것은 이슬람 문화는 그 문화의 고유 가치에 의해 아이들을 토끼떼처럼 양산하며 토끼떼처럼 늘어난 그들이 자신의 수구 전통을 고수함으로서 장차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폭력적인 근본주의 다수 세력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과, 이슬람과의 문명 경계선이 와해됨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해악과 분쟁으로 부터 멀어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과 단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란다. 골때리는 사고방식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이슬람에 대한 다소 한심하고 막연한 저작들을 보면서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왠걸? 이슬람 만큼 철저하게 서구에 의해 재단되고 오도된 곳은 과연 없었다. 뮬러는 그러나 지나친 서구이성주의의 합리성이 다음 세계의 문명간 공존에서 규범이 될 것이라는, 또다른 방식으로 불편한 서구 문명에 대한 찬양을 전개했다. 뮬러는 서구를 확신했다. 민주주의는 정말 오랫동안 실험되었으니. 뮬러의 근본주의 꼴통들에 대한 낙관이 의심러웠을 뿐더러, 국가에 대한 신뢰도 고리타분했다. 책 뒤의 인터뷰는 무엇 때문에 실었을까, 의아스러워 했다.

한미은행이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몇 년 전부터 홈페이지를 블 때마다 참 잘 만드는구나 생각했다.

뭔가 많은 책들을 빌려 읽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얼음과 불의 노래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중. 이제 한 권 남았나? 1부는 넌더리나게 지겨웠다. 책 읽으면서 졸아보기는 참 오랫만이다. 시작했으니 중간하기도 그렇고... 이어폰으로 프로그레시브가 흘렀고 판타지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용산으로 컴퓨터를 사러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레시브가 흘렀고, 양 손으로 새로 산 컴퓨터를 들고 있었다. 조지 알알 마틴의 판타지는 눈 앞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둥둥 떠다녔다. '넘겨' 라고 말하면 페이지가 넘어갔다. 햇살이 따뜻했다. 원서를 읽어본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수개월째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흘러 간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전보다는 일을 잘 하게 되었지만 일을 천천히 할 생각이다. 노력한다고 이 지리멸렬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몸만 축날 뿐이니. 인터넷이 시들해서 며칠은 메을은 커녕 인터넷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팅 시디를 만들고 다운을 받고, 영화 몇 편 보다가 지겨워 하거나 벌컥 화를 내고. 비서(secretary)라는 영화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했던가? 수상작 답게 꽤 재미없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전에 본 똥개라는 영화에서 가장 한심스러웠던 친구가 주인공이었더랬다.

냉장실이 얼어 붙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병 꺼내고 마지막 남은 한 권을 마저 읽자.

그러나 명심할 점: 책 많이 읽으면 바보 된다. 펀다멘탈리스트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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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

잡기 2003. 10. 2. 02:55
집에 들어갈 때 맥주를 몇 병 샀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그리고 늘 통했다) 형도 맥주를 몇 병 사왔다. 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주는 보잘 것 없었다. 안주가 보잘 것 없었다는 점, 애당초 우리는 순진하지 않았다.

'똥개'를 봤다. 오랫만에 재밌게 본 영화다. 정우성은 이미지 변환에 실패했다. 자알... 논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 그건 아니라고 보지만, 맞짱 뜰 메신저 놈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일하는 거 말이야. 똥개야, 그거 참 마음에 든다. 사투리 그만해라. 잦증난다.

Anglagad, Hybris, Kung B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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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잡기 2003. 9. 30. 14:54
쿼런틴 표지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표지 그림을 보니... 책을 읽은 느낌이 이렇게 다른건가?

책을 읽을 때 이상한 버릇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의식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책을 읽다가 접을 일이 생기면 (이동 중에만 책을 읽는다. 시간이 없어서) 접을 페이지를 무의식적으로 일련의 숫자에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선호하는 페이지 경계는 16, 32, 64, 128, 256, 512. 2의 멱수는 아니지만 잘 잊지 않는 쪽수는 48, 56, 80, 86, 96, 144, 160, 186, 192, 245, 286, 386, 398. 이런 페이지는 비교적 잘 기억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기억하는 숫자에는 일련의 특징이 있었다. 예를 들어 58페이지에서 멈췄다면 58=32+16+8+2 = 64-6 = 0x40 + 2^2 + 2^1. 102페이지는 96+4가 되어 0x60 + 2^2이 된다. 96은 16진수로 0x60이라 그냥 외웠다. 책 페이지를 이리저리 뒤질 때 별로 유용한 테크닉은 결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이렇게 하면 페이지를 잘 잊어버리지 않았다. 책의 쪽수는 왼편을 기준으로 언제나 2의 배수가 되니까. 어쩌면 머리가 2진수와 16진수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0x1f=0x20-1=32-1, 이런 것들은 경계 숫자라 별다른 암산 없이도 머리에서 실시간으로 튀어나왔다. 어렸을 적부터 2진수와 16진수를 외우고 다니던 버릇일까? 16=10, 32=20, 48=30, 64=40. 80=50, 전화번호는 0x9c632e0이고 가끔 데이터의 헤더 매직으로 사용하는 숫자는 3405705229(0xcafef00d)다. 어떤 때는 일련의 규칙성을 띤 숫자를 하나 떠올리고 그것을 사이트 암호로 쓰기도 했다.

핸드폰이 꺼진 줄 모르고 이틀 동안 집에 틀어박혀 일본 드라마를 봤다. '파이팅걸'에는 왠 한국인이 나와서 부도덕하고 상식 없는 한국 여성의 전형을 보여줬다. 드라마를 통해서 일본인은 한국인이 대접하는 사람의 면전에 대고 맛없는 음식을 맛 없다고 말하는 악취미를 가졌고, 한국에서는 여성에게 자유가 없다는 류의 비딱한 사고방식을 가질 것 같다. 재미가 없다. 캐릭터는 밥맛 떨어지고 극에서 완급 조절이란 것이 전혀 없다시피 했다. 19세의 소년/소녀가 꿈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며 삽질하는 그저그런 얘기였다. 애들이 예쁘기를 하나, 옷이 예쁘길 하나(주인공들은 옷가게 차렸다가 쓰디쓴 현실 앞에서 망가진다), 스토리가 재밌길 하나, 이걸 참고 본 나 자신이 대단했다.

'야마토 나데시코(요조숙녀?)' 라는 드라마도 봤다. 주인공 여자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가난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미모 밖에 없는 이 여자는 고등학교(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쿄로 올라가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돈 많은 남자를 만날 기회가 가장 많은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름한 집에서 살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옷만큼은 기가 막히게 비싼 것을 사서 입고 수많은 미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에 그는, 갑부를 걷어차고 빚을 잔뜩 진 보잘 것 없는 남자를 쫓아간다. 교훈극이랄까? 그녀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단 한 가지를 갖고 싶어했는데 그 남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나? 첫 화에서 그 남자는 미국에서 수학 공부를 하다가 돌아왔다고 하던데 필드상 시상식 사진에 얼굴이 얼핏 등장해서 잠깐 놀랐다. 필드상을 수상한 젊은 수학자가 도쿄로 돌아와 빚더미에 나 앉은 채 생선 배달을 하고 있다? 상당한 리얼리티인걸. 잘못 알았다. 그는 그냥 좌절한 30세 수학자였다. 45분 짜리 11화가 계속 되는 동안 여자는 딱 한 번만 같은 옷을 입었다. 옷 만큼은 충분히 눈요기가 되었다.

맛없는 장어구이를 먹었다. 정말 정말 맛없는 피자를 먹고 울상이 되었다.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어찌된 일인지 마음에 쏙 드는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어본 것이 벌써 몇년 전 일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파스타를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얘네들은 면과 밀가루에 관해서는 어쩌면 중국에 한수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글 안 쓰고 놀기 시작한지 오늘로 딱 6년째 되는 날이다.

게으르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오늘 거리를 걷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정신질환이 심할 때는 페이지의 글자수를 세면서 책을 읽었다. 지금은 다 나은 것 같다.

퍼온 그림: 그릇된 가장, 그릇된 결론. 적당한 그럴듯함.



Alizee, J`en ai marre! 동영상. 이런 걸 보면 여자가 악이란 생각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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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병은 관계기피증 -- 크리시 중 어떤 대사: 언제나 문제가 있었지. 언제나 여자와, 문제가 있었지. 여러 여자분들께서 내 관계기피증을 '확립'해 주셨다. 불가에서는 인연을 끊어야 해탈한다고 수천년 째... 저러고 있다. 한곡 땡길까? Esperanto, Last Tango, Last Tango

'올드 스쿨' 올해 최악의 영화, 낄낄거리면서 재밌게 봤다. '맛있는 섹스'는... 시간낭비였다. '2fast and 2furious'는... 오래전에 눈알을 반짝이면서 fast and furious에 나오는 차들을 쳐다봤다. 이번에도 차와 운전기술은 단순히 멋졌다. 그뿐이다. Nissan Skyline GT-R


처음에는 많이 웃고 아이같은 말을 하다가 점점 강아지 같아 지면서 나중에는 촛점을 잃은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데, 자의식이 강해서인지 하던 안 하던 처신이 그닥 다르지 않다고들 하지만 해석이 안되고 학습한 적이 없는 여러 종류의 외국어가 마치 한국어처럼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체험, 그것이 대뇌를 오염시켜 대량의 시냅스를 차단하면서 피질 하부의 뇌에 전해지는 자극을 피층에서 거르지 않기 때문에(사실은 그 역이지만) 상대의 마음이 해석과 여과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대뇌피질의 기능 부전이 보다 원시적인 뇌의 하부구조를 상대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서 짐승 내지는 파충류의 본성을 드러내 보이게 하는데, 놀라웁게도 그 짐승에게서 비정함이나 적개심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 내적으로는 사물의 정합성이랄까, 논리적으로 세상이 맞아 떨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풍부한 감각의 세례를 받는듯한 기분이 들었지만(감각차단이 주는 아이러니컬한 풍부함).

깨고나면 (엿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쿼런틴의 마지막 글귀처럼.
마약? 나노드럭 얘기 중. 닐 스티븐슨의 다이아몬드 시대가 곧 나온다길래.

델과 HP는 갑자기 TV를 만들고 싶어했다. 이유야 뻔했다. 새로운 os가 수요를 창출하리라 믿었지만 두 차례나 기대가 박살났다. 시급히 돈벌이에 집착해야 하는데... 앞으로 PC로 장사해 먹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래, 유비퀴토스 티브이다. 나 멋졌어? 이러고 있을 것 같다. 유비퀴터스에도 디스플레이와 입력장치가 필요하다. 아... 키보드에 무선을 달고 화장실에 앉아 전면 거울에 떠오른 집안의 모든 기기들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것? 시시한걸. 아니면 자이로스코프를 단 TV 리모컨을 이용해 화면에서 커서를 움직이며 쑤신 팔에 짜증을 내던가? 방 구석 구석에 달려있는 동작감지센서들이 나를 지켜봐 주고 있을까? 외롭지 않게? 충실한 자바 지니처럼? 슬쩍 지나가기만 해도 유령집의 폴터가이스트처럼 장농이 제멋대로 열린다던가 불이 켜진다던가... 그래! 하나도 외롭지 않겠어! 니르바나의 주인공처럼 지랄하는 엘리베이터에 이렇게 한마디 해줄 수 있겠지. 닥쳐! 아니면, 꺼져! (be off!) 또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 등장하는 빌어먹을 인공지능 엘리베이터(우울한 엘리베이터?)에 농락당하면서 망연자실해지던가.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u-computing이란 조어가 일상화되기 전, 그러니까 소박하게 mcu니 avr이니 하는 것들로 불리던 작은 기계들이 있었고 지금도 하다 못해 냉장고나 TV, 전기밥통, 보일러 등에서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임베디드는 모르겠지만 유비퀴터스는 통신을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했다. 따라서 외롭게 돌아가던 밥통과 세탁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트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요청을 받아들이고 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밥통에 관해 말하고 싶은 '전부'는 입 다물고 밥이나 잘해 정도. 톨게이트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과금되는 시스템은 위험스러워 보였다. 유비쿼터스는 도심 거리를 꽤 짜증나는 것으로 만들 것 같다.

그렉 이건의 '리얼리즘 사이버펑크'는 확실히 그런 면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그의 피부 열전통(skin to skin infrared communication)은 근접 거리에서 악수를 하는 것만으로도 명함카드의 교환을 없앴고 보안 통신의 신기하고 재밌는 양상을 보여줬다. 게다가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전력선 통신은 홈 네트웍에서 별도 배선의 필요성을 없애줄지도 모른다. 푸른 수염이 장미빛 미래를 보여줬을 때, 주변의 아무도 블루투스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스펙은 지저분했고 대체 왜 그렇게 지저분하고 라이센스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딜버트식으로 말해 비즈니스 세계는 세상의 우수한 또라이, 최고급 멍청이들, 최최고급 바보 기술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전념하는 삽질을 통칭하는 일반 명사기 때문에?

무선은 대세가 되겠지만 즐비한 무선에 오염되는 인간은? 거리에서 마저 난입하는 무선 스팸이 집요하게 달라붙는 것을 달가워할까? 반무선주의, 반편재 노선이 출현할지도. 무선클린지대나, 안티커넥션리스트같은. 난 '연결'되고 싶지 않다. 최소한 연결만큼은 선택하고 싶다. 불가에서는 '커넥션'을 끊어야 해탈한다고 수천년 째 저러고 있다.(어찌된 일인지 르네상스 이후 자유의지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처럼 취급되었다. 그것이 없던 시대에 살지 못해서 어떤 기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디즈니 만화부터 재미는 없고 한예술 한다고 우기는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떠벌린다. 하여튼, 휴양림 한복판에서 말을 걸어오는 빌어먹을 나무 따위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 어떤 나쁜 새끼가 내 임베디드 언더웨어에 채널을 맞추고 사정을 유도하는 개같은 광고를 보내는 걸 감내할 자신은 없다. 다 때려치우고 태양전지가 왕창 매달려있는 쓸쓸한 시골집에 머물러 백과사전이나 뒤적일까. 22세기 걱정은 그만하고.

나노테크=코스메틱스의 혁명. 나노테크는 산업계 하드웨어보다 진.선.미, 그것들을 몽땅 합친 '절대미'에 도전하는 여성 수요가 강력한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노포그가 정강이 털을 뽑아주고, 옆구리의 지방을 쪽쪽 빨아 분해하거나, 보톡스하고는 쨉이 안되는 믿음직한 성능으로 눈가위의 이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테니까.

다시 영화 니르바나로(사실 20세기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리얼리즘 사이버펑크'는 이 영화 밖에 없다), 끊임없이 옷 색깔이 바뀌는, 유비퀴토스 나노통신을 통해(일곱단계만 엮으면(커넥션) 인류 모두가 친구가 된다는 기괴한 이론도 있지만 그때 통신은 돈이 드는 장거리 직접 '인연'이 아닌 근거리 연속 체인을 통한 통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번은 팝아트 키취스러운 밀라노 패션이었다가 한번은 올 가을 도꾜 패션쇼에서 등장한 똥걸레 패션 따위로 옷가지를 바꿔준다. 나노포그면 사실 옷이란 것들이 필요없다. 피부, 그리고 포근한 나노포그. 이 정도면 족하니깐. 드렉슬러는 몽상가였고 그의 몽상은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나노포그는 화장빨이란 말을 없애고 나노빨이란 신조어로 대체될 지도 모르겠다. 나노포그는 물속에서 숨을 쉬게 해주고 벽 너머를 보게 해줄 수도 있다. 2300년쯤 되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부처와 예수를 비롯한 몇몇 성인들만 독점적으로 나노테크 후광을 달고 다녔지만 나노포그는 23세기 인류의 아우라가 된 채, 나노머신이 유전자를 후벼판 덕택에 성경 묘사 그대로 하늘에 물이 있던 시절처럼 모두 300살까지 장수할 것이다.

오래 살다보면 인류가 하느님만큼 타락해서 별에별 짓을 다 하겠지만. 그때 인류가 사지가 멀쩡하리라 생각지도 않았다. 뉴 에덴에 상주하는 사지타리우스와 인쿠부스 등등. <-- 황금 꽃가지가 빠졌군. 시들해진 인류는 외계인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외계인을 어느날 '발견'하고 환호작약할지도 모르겠다. 21세기의 후줄그레한 인종문제 따위는 쨉도 되지 않을 것이다. 코스메틱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닐 스티븐슨의 물질변환기(머티리얼 컴파일러)는 인류 전체를 살아서 숨도 쉬는 바로크, 여백을 두려워하는 괴물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두통이 사라지고 제정신이 들었지만, 원치도 않는 '인연'을 주구장창 엮어주시는 유비퀴토스 때문에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가 맛본 환희 같은 것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다.

관계기피증? 그저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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